일의대수(一衣帶水) 一:한 일. 衣:옷 의. 帶:띠 대. 水:물 수. [유사어] 일우명지(一牛鳴地), 일우후지(一牛吼地), 지호지간(指呼之間). [출전]《南史》〈陳後主紀〉 한 줄기 띠와 같이 좁은 강물이나 바닷물이라는 뜻. 곧 ① 간격이 매우 좁음. ② 강이나 해협을 격한 대안(對岸)의 거리가 아주 가까움. 서진(西晉:265~317) 말엽, 천하는 혼란에 빠져 이른바 남북조(南北朝) 시대가 되었다. 북방에서는 오호 십육국(五胡十六國)이라 일컫는 흉노(匈奴)/갈/선비(鮮卑)/강(羌)/저 등 5개 이민족이 세운 열 세 나라와 세 한족국(漢族國)이 흥망을 되풀이했고, 남방에서는 송(宋)/제(齊)/양(梁)/진(陳:557~589) 등 네 나라가 교체되었다. 북방의 북조 최후의 왕조인 북주(北周:577~580)를 물려받아 수(隋:581~618)나라를 세운 문제(文帝:581~604)는 마침내 남조 최후의 왕조인 진나라를 치기로 하고 이렇게 선언했다. “진왕(陳王)은 무도하게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도다. 이제 짐(朕)은 백성의 어버이로서 어찌 ‘한 줄기 띠와 같이 좁은 강물[一衣帶水]’ 따위를 겁내어 그들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있으랴.” 양자강은 예로부터 천연의 요해(要害)로서 삼국 시대의 오(吳)나라 이후 남안(南岸)의 건강(建康:南京)에 역대 남조의 도읍이 있었다. 문제의 명에 따라 52만의 수나라 대군은 단숨에 양자강을 건너 진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통일했다.
Board 고사성어 2023.11.27 風文 R 710
흰 백일홍?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은 꽃이 제아무리 고와도 붉은 빛이 열흘 이상 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말이 무색하게 석 달 열흘 동안이나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꽃이 있으니 바로 ‘백일홍’이다. 한 번 핀 꽃이 백일이나 가는 것은 아니고, 새로운 꽃이 거듭 피고 지면서 백일을 간다. 꽃뿐만 아니라 나무 모양도 아름다워 예로부터 정자 주변이나 산사에 즐겨 심었는데 요즘에는 가로수로도 많이 눈에 띈다. 지난 주말 공원에서 흰색 꽃이 핀 백일홍나무를 처음 보고 궁금증이 생겼다. ‘붉을 홍(紅)’자가 쓰인 ‘백일홍’은 ‘붉은’ 꽃이 피기에 붙여진 이름일 텐데 흰 꽃이라니? 그럼 이 나무는 백일홍이 아닌 걸까? 만약 이게 백일홍나무가 맞다면 그 이름은 ‘백일백’이 되어야 할 거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사전을 찾아보니 대부분의 꽃 색깔은 붉은 빛을 띄나 흰색 꽃이 피는 것도 있어 따로 ‘흰 백일홍나무’로 부른다고 한다. ‘흰 백일홍’이라니 ‘둥근 네모’처럼 앞뒤가 안 맞는 이름이다. 아마도 처음엔 붉은 꽃만 피는 줄 알았다가 나중에 흰 꽃이 피는 나무가 발견되자 그런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짐작되었다. 백일홍나무는 ‘목백일홍’ 또는 ‘배롱나무’라고도 한다. 목백일홍은 똑같이 ‘백일홍’으로 불리는, 국화를 닮은 한해살이풀과 구분하고자 할 때 쓴다. 배롱나무는 백일홍나무의 발음이 변한 말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추측만 할 뿐 근거는 없다. 백일홍나무의 또 다른 별명은 ‘간지럼나무’이다. 나무줄기를 손으로 문지르면 나뭇가지와 잎, 꽃이 떨리듯 하늘거리는데, 이것이 간지럼 타는 모습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말 그런지 백일홍 꽃이 한창인 지금, 백일홍나무를 찾아 살살 간질여 보는 건 어떨까?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3.11.27 風文 R 4411
일망타진(一網打盡) 一:한 일. 網:그물 망. 打:칠 타. 盡:다할 진. [준말] 망타(網打). [출전]《宋史》〈人宗紀〉,《東軒筆錄》 한 번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다 잡는다는 뜻. 곧 범인들이나 어떤 무리를 한꺼번에 모조리 잡는다는 말. 북송(北宋) 4대 황제인 인종(仁宗) 때의 일이다. 당시 북방에는 거란[契丹:요(遼)]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남쪽에서는 중국의 일부였던 안남(安南)이 독립을 선언하는 등 정세가 불리하게 돌아가는데도 인종은 연약 외교로 일관했다. 그러나 내치(內治)에는 괄목할 만한 치적이 적지 않았다. 전한(前漢) 5대 황제인 문제(文帝)와 더불어 어진 임금으로 이름난 인종은 백성을 사랑하고 학문을 장려했다. 그리고 인재를 널리 등용하여 문치(文治)를 폄으로써 이른바 ‘경력(慶曆:인종의 연호)의 치’로 불리는 군주 정치의 모범적 성세(聖世)를 이룩했다. 이 때의 역사적인 명신으로는 한기(韓琦)/범중엄(范仲淹)/구양수(歐陽脩)/사마광(司馬光)/주돈이/장재(張載)/정호(程顥)/정이 등이 있었는데, 이들이 조의(朝議)를 같이하다 보니 명론탁설(名論卓說)이 백출(百出)했고 따라서 충돌도 잦았다. 결국 조신(朝臣)이 양 당으로 나뉘어 교대로 정권을 잡게 되자 20년간에 내각이 17회나 바뀌었는데, 후세의 역사가는 이 단명 내각의 시대를 가리켜 ‘경력의 당의(黨議)’라 일컫고 있다. 이 무렵, 청렴 강직하기로 이름난 두연(杜衍)이 재상이 되었다. 당시의 관행으로는 황제가 상신(相臣)들과 상의하지 않고 독단으로 조서를 내리는 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내강(內降)이라 했다. 그러나 두연은 이 같은 관행은 올바른 정도(政道)를 어지럽히는 것이라하여 내강이 있어도 이를 묵살, 보류했다가 10여 통쯤 쌓이면 그대로 황제에게 돌려보태곤 했다. 이러한 두연의 소행은 성지(聖旨)를 함부로 굽히는 짓이라하여 조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때 공교롭게도 관직에 있는 두연의 사위인 소순흠(蘇舜欽)이 공금을 유용하는 부정을 저질렀다. 그러자 평소 두연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어사(御史:검찰총장) 왕공진(王拱辰)은 쾌재를 부르고 소순흠을 엄히 문초했다. 그리고 그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을 모두 공범으로 몰아 잡아 가둔 뒤 재상 두연에게 이렇게 모고했다. “범인들을 일망타진(一網打盡)했습나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 유명한 두연도 재임 70일 만에 재상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주] 안남 : 인도차이나 동쪽의 한 지방, 당나라의 안남 도호부(安南都護府)에서 유래한 명칭이어서 베트남인들은 쓰지 않는다고 함.
Board 고사성어 2023.11.25 風文 R 753
'마징가 Z'와 'DMZ' “디엠제트예요? 디엠지예요?”생방송을 앞둔 후배가 급하게 전화를 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디엠제트로 나와 있거든?” “요즘 다 ‘디엠지’라고 하는데요? ‘디엠제트’ 너무 어색해요.” “외래어라서. 외래어는 우리말로 굳어진 건데 디엠제트가 표준어야. 이상하면 그냥 비무장지대라고 하면 어때?” DMZ (demilitarized zoneㆍ비무장지대)는 군사 용어이다. 최근 뉴스에 “DMZ”가 자주 등장하면서 아나운서들은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에 빠졌다. 알파벳 ‘Z’의 발음이 문제이다. ‘Z’의 영국식 발음은 제드〔zed〕, 미국식 발음은 지:〔zi:〕이다. 국어사전에 알파벳 스물여섯 번째의 자모이름은 ‘제트’라고 표기되어 있다. ‘제트(Z)’를 ‘지’로 표기하면 ‘쥐(G)’와 헛갈릴 염려가 있다고 한다. 일리 있게 들리지만 ‘디엠지’라고 했을 때 ‘DMG’로 알아듣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마징가 제트’와 ‘전격 제트 작전’을 보고 자란 나와 같은 중년 세대들은 그나마 ‘제트’를 인정한다. 그런데 미국식 영어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제트’는 영 낯설다. 아시아나 항공을 가리키는 ‘OZ’는 ‘오지’ 아니냐고 항변한다. 알파벳 송을 예로 든다. 이 용어를 가장 많이 쓰는 군대에서도 요즘은 모두 ‘디엠지’라고 한단다. 이쯤 되면 정리가 필요하다. 외래어는 표기법은 정해져 있지만 발음법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버스(bus)’라고 쓰지만 ‘버쓰’ 혹은 ‘뻐쓰’라고 발음한다. 발음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의 융통성을 인정하는 셈이다. 조금 다른 문제이지만 ‘제트’와 ‘지’에도 이러한 융통성이 발휘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 아닐까? 임수민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3.11.25 風文 R 3794
반동과 리액션 한국 현대사에서 ‘반동’이란 말은 혁명과 역사의 진보를 믿는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지난날 반공드라마에 흔히 쓰이던 ‘반동 종간나 ××’라는 말은 공산혁명에 반대하고 봉건질서를 옹호하는 사람에게 붙이던 경멸의 딱지였다. 하지만 애초에 ‘반동’은 자연과학(물리학) 용어였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으로 알려진 뉴턴의 제3법칙이 대표적이다. ‘어떤 물체가 다른 물체에 힘을 가하면, 힘을 받는 물체도 힘을 가하는 물체의 반대 방향으로 같은 크기의 힘을 가한다’는 것이다. 정치 영역으로 확장된 ‘반동’은 역사의 발전과 진보를 방해하고, 낡고 오래되고 사라져야 할 구습을 유지하려는 모든 시도이자, 자기 이익이나 관행에 집착하는 자를 뜻하게 되었다. ‘반동’은 ‘진보’에 대한 반작용이니, 이 말을 쓰려면 역사의 진보를 ‘믿어야’ 한다. 그런데 역사의 진보란 게 뭔가. 사회적 모순의 혁파? 남북의 평화공존? 더 많은 자유와 평등? 기후정의? 더 편리하고 효율적인 생활환경? 불편하더라도 뭇 생명과 공존하는 생태적 삶? 오늘보다 나은 내일? 진보는 하나로 요약할 수 없다.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이 옅어진 시대이니, 반동이란 말도 쓰지 않는다. 반동을 뜻하는 영어 ‘리액션’을 더 많이 쓴다. ‘리액션’은 어떤 행동을 보고 취하는 반응. 박수 치고 환호성 지르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맞장구치는 것. ‘좋은 소통’은 상대방의 말에 성심성의껏 리액션하는 것. 눈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작용은 꿈도 못 꾼다. 기껏해야 리액션,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는 리액션. 새로운 시작보다는 반응하기, 진보보다는 안락과 안위. 반동의 시대엔 리액션이 살길인가 보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Board 말글 2023.11.25 風文 R 2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