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그리스 신화와 영웅들) - 사진 자료 및 참고 자료는 제가 편집해 올린 것입니다. 제5장 포르큐스-괴물의 출생 10. 헤파이스토스 헤파이스토스(Hephaestus, Vulcanus)는 원래 소아시아(동방)의 화산신인데 그리스에 와서 불을 다루는 신으로서 대장간의 신, 부엌의 신이 되었고 로마로 전파된 후에는 화산신 불카누스로 존중되었다. 그는 쇠붙이나 각종 금속을 불에 달구어 무기, 기계,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의 신이기도 하였다. 전하는 얘기로는 헤파이스토스는 헤라가 낳아 데려 왔다고 한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그는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인데 추한 외모에 절름발이의 기형이라 헤라가 기겁을 한 나머지 낳자마자 바다로 내던졌다고 한다. 바다에 떨어진 그를 구해 낸 것은 테튜스와 에우류노메로 9년간 바다동굴에서 키웠다. 헤파이스토스는 이 곳에서 야금의 명수 케달리온의 지도를 받아 교묘한 기구를 제작하고 보석을 조탁하는 기술을 익혔다. 다른 설에 의하면 헤파이스토스는 천상에서 다른 신이 키웠는데 제우스와 헤라간에 싸움에서 헤라를 편든 데 대해 화가 난 제우스가 올림포스에서 차냈다고 한다. 아흐레가 걸려 지상에 닿은 그는 마침내 렘노스 섬에 떨어졌는데 그 곳의 주민 신티에스가 공중에서 떨어지는 그를 보고 팔을 벌려 잡았다. 그러나 땅에 닿으면서 한쪽 다리를 다쳐 그 후로 절름발이가 되었다 한다. 렘노스에 자리를 잡은 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의 신전을 세우고 대장간도 차려 쇠붙이와 공예품, 생활용품을 만들어 냈다. 주민들은 그로부터 근면함과 교묘하고 유용한 기술을 배우고 깨달음으로써 비로소 야만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문명사회를 위하여 봉사하게 되었다. 헤파이스토스의 첫 걸작품은 마법의 황금옥좌로, 쇠사슬과 비밀 용수철 고랑이 달려 있어서 그 의자에 앉는 자는 누구든 그대로 묶어 버리는 의자였다. 그는 자신을 버리고 멸시한 어미에게 앙갚음을 하고자 이 옥좌를 헤라에게 보냈다. 황금옥좌를 선물받은 헤라는 아무 의심 없이 기쁜 마음으로 의자에 앉았으나 곧 손발이 쇠고랑에 묶여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들이 몰려와 헤라를 옥좌에서 떼어내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써 보았으나 실패하였다. 결국 헤파이스토스만이 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당장 와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 아레스는 우격다짐으로 헤파이스토스를 연행하려 하였다가 용광로의 불똥세례만을 받고 돌아왔다. 결국 디오뉴소스가 나서서 헤파이스토스를 포도주로 만취하게 한 후 나귀에 태워 올림포스로 데려와 크게 환대해 주었다. 그래서 모자가 다시 한자리에 만나 화해하게 되었다. 시문에서는 헤파이스토스가 천재적인 솜씨로 여러 가지 걸작을 만들었으며 그 중에서도 살아 움직이고 있는 인간처럼 그를 옆에서 도와주는 로보트도 만들었다고 찬사를 보내고 있다. 또한 제우스의 지시로 인간이 사랑에 매혹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덫이 될 아름다운 낭자를 만들었는데 그 낭자가 바로 지상의 첫 여성이 된 판도라이다. 시칠리아의 큐클로페스는 전속 직공 혹은 대행자로서 헤파이스토스와 함께 제우스의 벼락을 만들고 신이나 혹은 유명한 영웅들의 무기와 갑옷을 제작하였다. 화산이 있은 곳에는 어디나 대장간이 있다고 상상하였는데 특히 시칠리아의 에트나 산 동굴 속 대장간은 유명하다. 헤파이스토스가 인간에게 제공한 제작품 중에서 아킬레스의 무기, 아이네아스 및 헤라클레스의 방패는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카드모스의 아내 하르모니아에게 준 목걸이와 아르고스 및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소유가 된 홀도 이름난 물건이다. 후에 하르모니아 목걸이의 소유자는 모두 저주를 받는 운명을 지게 되었으나 홀은 아가멤논 사후 카이로네아에 잘 보전되어 신성한 유물로 존중되었다. 헤파이스토스의 사랑이야기는 많지 않다. 제우스가 헤파이스토스에게 그가 원하는 여신이면 어떤 여신이건 결혼시키겠다 하여 아테나를 원했으나 그녀로부터 거절당하였다. 이에 그는 아테나를 우격다짐으로라도 차지하고자 하였으나 그녀의 다리에 열정의 흔적만을 남긴 채 놓치고 말았다. 당시 아테나는 그 불쾌한 흔적을 털헝겊 조각으로 닦아 낸 후 땅에 내던졌는데 여기에서 에릭토니오스가 태어났다. 제우스는 실의에 빠진 헤파이스토스를 위해 미의 세 자매 중 한 여신인 아프로디테와 맺어주었다. 그러나 정실이 된 이 아프로디테의 부정 행각은 유명하며, 특히 아레스와의 정사 사건이 헬리오스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남편인 헤파이스토스는 두 사람의 밀회 현장으로 덮쳐 신들에게 폭로하였다. 헤파이스토스 숭배는 이집트, 아테네 및 로마에서 성행하였으며, 공양하는 희생물은 통째로 구워 바치되 다른 신에서와 같이 희생물을 남겨 놓지 않았다. 그의 상징은 대개 땀에 범벅이 되어 있는 억센 팔로 대장간에서 달군 쇠붙이를 치는 상이며 가슴에 털이 많이 나 있고 검정색 앞이마를 갖고 있다. 또한 절름발이에 기형이며 공중에 올린 망치를 내려치는 상, 또 한 손으로 족집게를 잡고 벼락을 모루(받침쇠)에서 돌리고 있는 상, 그 옆에 한 마리 독수리가 제우스에게 벼락을 가져갈 차비를 하고 있는 상도 있다. 수염이 길고 헝클어진 머리에다 반나상을 하고 또한 작은 모자를 쓰고 있기도 하다. 물키베르, 팜파네스, 클륨토테크네스, 판다마토르, 큘로포데스, 칼라유소다 등의 별칭이 있는데 절름발이이나 전문직을 의미한다. 다른 신에 비해 엉뚱한 방식으로 천상에 합류한 헤파이스토스는 바람기 심한 아내를 가진 올림포스의 대표적인 오쟁이 남편이며, 아내는 절름발이 흉내를 내면서 밀통한 연인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였다. [ 기욤 쿠스투 1세의 〈대장간의 헤파이스토스〉 (루브르 박물관) ] 다이달로스 다이달로스(Daedalus)는 아테네의 헤파이스토스의 후손 에우팔라모스의 아들로 그리스 전설상 가장 천재적인 장인이자 발명가로 알려져 있다. 건축에 쓰이는 쐐기, 도끼, 송곳, 수평기, 톱, 다림줄(먹통), 아교 등을 발명하였으며 배의 돛과 돛대의 역할을 인식한 최초의 인간이었고, 그가 만들어 놓은 조각상은 어찌나 신묘한지 마치 살아 있는 사람같았다 한다. 여동생의 아이 탈로스를 수습공으로 삼았는데 뛰어난 학식과 비상한 재주를 갖고 있어 생선 등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쇠톱을 만들고 컴퍼스를 발명하였다. 이에 소년의 재능을 시기한 다이달로스는 그를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밀어뜨려 죽게 하였다. 아테나 여신이 이 소년을 수습하여 낮은 곳만 나는 자고새로 화신시키니 소년은 그 후 페르딕스로 불리게 되었다. 한편 탈로스를 죽인 후 그 보복을 두려워한 다이달로스는 크레타로 도피하여 크레타의 왕 미노스와 왕비 파시파에를 섬겼다. 그런데 해신 포세이돈이 미노스에게 기증한 우아한 황소에 욕정을 느낀 왕비는 다이달로스가 만든 살아 있는 듯한 암소모형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소떼와 함께 섞여 암소로 착각한 황소와 교접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황비가 낳은 소산이 바로 우두인신의 괴물 미노타우로스이다. 미노스는 다이달로스에게 미궁을 짓게 하여 미노타우로스를 여기에 유폐시키고 다이달로스와 그 아들 이카로스도 마찬가지로 미궁에 가둬버렸다. 미노스 왕은 왕비의 비행을 방조한 그의 행위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이달로스 부자는 육지와 바다가 엄히 감시당하고 있었으므로 공중을 통해 탈출하기로 하고 깃털 두 쌍의 날개를 만들어 반복연습을 한 후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아들 이카로스는 아비의 주의를 잊고 사모스 섬 근방에서 너무 태양에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에 깃털을 붙인 왁스가 녹는 바람에 떨어져 추락해 버렸다. 이카로스는 미노스의 여자노예 나우크라테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혹은 아테네에서 같이 도피해 왔다고도 하는데, 그를 깊이 사랑했던 다이달로스는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그 곳을 아들의 이름을 따 이카리아 섬, 이카리아 해라고 명명하였다. 그 후 다이달로스는 시칠리아로 가서 그 곳의 왕 코칼로스의 환대를 받았다.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그를 잡기로 마음먹고 시칠리아로 가서, 고동껍질에 실을 꿰는 사람에게는 후한 상을 준다고 선언하였다. 시칠리아 왕은 그 일을 해 낼 수 있는 딱 한 사람이 왕궁에 있다고 말하였고, 미노스의 생각으로는 이를 해낼 수 있는 그 영리한 자가 바로 자신이 찾은 죄수일 것이라 짐작하였다. 코칼로스는 과연 이 고동을 망명해 온 다이달로스에게 가져갔다. 다이달로스는 궁리 끝에 고동 끝 부위에 아주 작은 구멍을 낸 후 거미줄을 매단 개미를 구멍으로 집어넣고 고동의 입구에는 꿀을 발라 놓았다. 아니나다를까 개미는 단맛이 나는 곳을 향하여 나선통로로 바삐 달려갔다. 다음에는 같은 방식으로 실을 매단 개미를 통과시켜 어려움은 있었지만 실을 고동에 넣는데 성공하였다. 기쁨에 넘친 코칼로스는 이를 급히 미노스에게 가져가 보였다. 그러자 미노스는 그 일을 해낸 자는 틀림없이 자신의 죄수인 다이달로스일 것이니 그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였다. 이 요구를 받은 시칠리아 왕은 매우 화가 났으며 또한 그간 여러 가지 기술을 배우고 친근한 사이가 된 왕의 딸도 큰 충격을 받았다. 이에 다이달로스에게 크레타의 왕이 왔음을 알리고 괴롭히는 미노스를 함께 없애 버리기로 모의하였다. 이에 궁의 목욕탕 천장에 수로를 설치하고 미노스가 사치스러운 욕탕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 보이지 않게 가려 놓은 수로를 열어 끓는 물을 분출시켰다. 결국 미노스는 질식하여 열탕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어 계획대로 비통한 사고사처럼 가장하고 엄숙한 장례를 치른 후 왕릉을 만들어 안치하였다. 일설에는 크레타로 운구하였다고도 한다. 다이달로스는 천재적 재능을 발휘하여 시칠리아에 여러 작품과 기념물을 남기고 그 후 사르디니아 섬으로 가서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위대하고 천재적 장인으로 그 이름을 길이 남겼으며, 다이달로스라는 이름 자체도 '교묘하고 정교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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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그리스 신화와 영웅들) - 사진 자료 및 참고 자료는 제가 편집해 올린 것입니다. 제5장 포르큐스-괴물의 출생 9. 아테나 그리스의 아테나(Athena, Minerva) 여신을 로마인은 이탈리아의 수공예 여신 미네르바와 동일시한다. 아테나는 제우스와 메티스의 딸인데 메티스가 임신하여 분만일이 다가오자 제우스는 그녀를 삼켜 버렸다.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말이 아들을 낳으면 신권을 찬탈할 것이고, 딸을 낳으면 외손자가 생겨 제우스를 천상에서 추방할 것이라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제우스는 심한 두통을 느끼고 헤파이스토스에게 도끼를 가져와 머리에 일격을 가하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거기서 창과 방패 등으로 완전 무장한 낭자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그녀는 함성을 질러 천지를 뒤흔들었다. 이 낭자가 바로 아테나로, 리비아의 트리토니스 호반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트리토게네이아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어린 아테나는 트리톤이 길렀으며 트리톤의 딸 팔라스와 사이좋게 지냈으나 전쟁놀이를 하다 팔라스를 죽게 하였다. 이에 아테나는 팔라스를 신상으로 조각하여 신통력을 지니게 하였는데 이 신상이 트로이 시의 방어신인 팔라디움이다. 또한 그녀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에 계승하여 팔라스 아테나라고 하였다. 거인족과 신족 간의 격전에서 팔라스 아테나는 거인족의 괴물 팔라스(트리톤의 딸과 동명이인)와 엔켈라도스를 처치하였다. 처치한 팔라스의 가죽을 벗겨 자신의 가슴받이로 하고 엔켈라도스는 멀리 시칠리아까지 추격하여 에트나 화산으로 덮쳐 묻어 버렸다. '일리아드'에서는 아카이아(그리스) 쪽에 서서 싸우고 있는데, 이다 산의 미의 경연에서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내린 판가름에 한을 품고 트로이에 적개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중에 여신은 디오메데스, 오듀세우스, 아킬레스 및 메넬라오스를 비호하였다. 마찬가지로 헤라클레스도 비호하였는데 특히 어려운 노역을 하게 되자 그를 무장시켰고 또 놋쇠징을 주어 스튬팔로스 호수의 새떼인 스튬팔리데스를 놀라게 해 활로 쏘아 떨어뜨리기 쉽게 해 주었다. 이 때문에 헤라클레스는 노역을 마친 후 에우류스테우스에게서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를 돌려받아 아테나에게 주었으며 거인족과의 싸움에서는 아테나를 도왔다. 아테나는 인간 중에서는 오듀세우스를 가장 아꼈다. 오듀세우스의 이타카 귀향을 도와주기 위해 표류중에 어려 모양의 인간으로 변장하여 적극적으로 개입하였으며, 파이아키아 왕의 딸 나우시카에게는 꿈을 통해 왕궁의 빨래를 나귀에 싣고 궁녀들과 바닷가로 향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녀로 하여금 여기에서 난파당한 오듀세우스를 만나 구조케 하고 자비심을 발휘케 하여 귀중한 배 한 척을 내 주어 고향으로 떠날 수 있게 하였다. 오듀세우스가 오규기아 섬에서 난파당하였을 때는 요정 칼륨소로부터 후대를 받고 함께 산다면 불사신으로 화신하게 해 주겠다는 제의를 받아 7년간이나 체류하였으나 아테나가 제우스에게 오듀세우스를 고향으로 보내는 것이 본인의 의사이며 도리라고 하여 5결국 놓아주게 만들었다. 당시 오듀세우스는 칼륨소와의 사이에 나우시투스와 나우시누스라는 아들을 두었다고도 전한다. 아테나는 그리스 세계에서 자신에 대산 숭배가 지배적이었던 도시 아테네를 매우 아꼈다. 이성, 입법, 예술, 문예를 꽃피게 한 아테나 여신은 음악의 신으로도 추앙받았으나 실질적으로 시문과 음악보다는 철학에 더 긴밀한 연계성을 갖고 있었다. 또한 기능공의 여신으로 직물, 자수 수공예를 발달시켰으며 그에 대한 자부심 또한 컸다. 그래서 직물자수에 능한 아라크네라는 한 낭자가 우쭐하여 아테나도 자신을 따를 수 없다고 한 말에 그녀와 경연을 벌인 끝에 억지로 이기고 그녀를 거미로 화신시켜 버린 일도 있었다. 아테나의 천성을 전투정신에 연결시켜 4필의 말이 이끄는 전차, 2륜 전차를 발명하였다고 하기도 하며 거대한 아르고 호의 건립도 지휘한 것으로도 추앙하였다. 한편 아테나의 천성을 평화의 기량으로 추앙하여 아티카에 올리브 나무 재배와 올리브유를 발견한 여신으로도 숭배하였다. 즉 아티카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포세이돈과 갈등이 생겼을 때 두 신 중 아티카에 최고의 선물을 한 신에게 그 권한을 부여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에 포세이돈은 삼지창으로 땅을 찔러 아크로폴리스에 소금물 샘이 솟아오르게 하고 아테나는 이 언덕에 올리브 나무를 자라게 하였다. 올림포스 주신은 올리브 나무가 더 귀중하다고 판정을 내렸고 이후 아티카는 아테나의 관할권으로 넘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아테네의 아크로 폴리스 언덕에 서 있는 장엄하고 우아한 파르테논은 바로 이 아테나 여신에 봉헌된 신전이다. 이 밖에도 여러 지역에서 아테나 여신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떠 받들어졌다. 아테네에서 멀리 떨어진 스파르타, 메가라, 아르고스 및 그 외 나라 성체에서 여신의 신전을 봉현하였다. 트로이에서도 옛 팔라디움 성상을 모시고 숭배하였으며 팔라디움이 있는 한 트로이 시는 함락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졌다. 그래서 디오메데스와 오듀세우스가 야밤에 트로이 시에 잠입하여 이 성상을 몰래 들고 나와 도시 수호의 상징을 없앴던 것이다. 역사시대에 와서는 로마의 베스타 사원에 모신 팔라디움이 바로 그 성체이며 로마시 수호의 상징이 되었다. 한편 아테나는 처녀성을 자부하고 순결을 지키는 신으로 되어 있는데 일설에는 아들이 있다고 한다. 즉 어느 날 아테나가 갑옷을 부탁하기 위하여 헤파이스토스 대장간에 들렀는데 때마침 아프로디테에게 배신당한 헤파이스토스가 아테나를 보고 첫눈에 반하여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였다. 이에 기겁한 아테나는 그를 피해 도망쳤으나 결국 헤파이스토스에게 붙잡혀 포옹을 당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 이상을 허용하지 않았으나 헤파이스토스의 열정의 흔적인 정액이 아테나의 다리에 묻게 되었다. 불쾌히 여긴 그녀는 털헝겊으로 이를 닦아 땅에 내던졌다. 이것이 대지의 여신 가이아에게 수정되는 바람에 에릭토니오스가 태어났는데 이는 털(erion)과 땅(chthon)의 합성어다. 아이를 받은 아테나는 그를 자기 아들로 삼기로 마음먹고 다른 신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길렀다. 아이를 불사신으로 만들고자 바구니에 넣어 뱀에게 감시하게 하고, 아테네 왕의 공주 아글라우로스에게 극비로 양육할 것을 위탁하였다. 그런데 공주의 자매들이 호기심이 발동하여 바구니를 열어보았다가 아기와 뱀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실성, 아크로폴리스에서 몸을 던졌다고 한다. 에릭토니오스는 신성한 경내로 옮겨져 후에 아테네의 왕이 되었다. 아테나의 상징은 창, 헬멧 및 양가죽 방패이며 제우스와 같이 사용하였다. 그리고 페르세우스가 여신에게 선사한 고르곤족 메두사의 머리를 방패에 달았다. 비록 잘린 머리지만 메두사의 눈은 이를 쳐다보는 모든 인간을 돌로 화신시키는 괴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식물은 올리브 나무고 새는 부엉이다. 아테나가 '부엉이 눈을 한'이라는 뜻의 별칭 글란코피스로 불리는 것이나, '쓸데없는 짓을 하다'나 '사족을 붙이다'는 뜻의 영어속담 'Bring owls to Athens'가 생긴 것은 모두 이 부엉이와 연관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아테나는 크지만 조용한 자세로 부드럽고 기품을 풍기는 여신으로 전해진다. 시문에서는 맑고 아름다운 눈의 여신이라 하고 심리학에서는 지혜와 진실의 여신으로서 정신적 투쟁을 상징한다. [Mattei_Athen - 루브르 박물관] 니케 니케(Nike)는 승리의 뜻을 의인화한 여신신으로 로마인은 빅토리아라 하며 날개가 있고 빠른 속도로 난다. 헤시오도스에 의하면 티탄족인 팔라스와 스튝스의 딸이며 그녀에게는 젤로스, 크라토스 및 비아라는 자매가 있다고 한다. 올림포스 신들 편에 서서 티탄족과 싸워 승리함으로써 제우스의 찬양을 받은 니케는 경기에서는 승리의 여신이며, 그리스가 페리시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급격히 각광을 받아 군대의 여신으로 아테나 여신과 대응하는 여신이 되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는 니케 신전(아테나 니케 신전이라고도 한다)이 있으며 그 외 그리스 각지에 신전이 있다. 로마에는 팔리티네 언덕에 여신의 신전이 있다. 올림피아 출토 여신상과 사모트로라케 여신상이 유명하다. [파이오니오스의 《니케상》] 팔라스 팔라스(Pallas)는 티탄족의 한 명으로 크레이오스와 에우류비아(폰토스의 딸)의 아들이며 아스트라이오스와 페르세스와 형제간이다. 스튝스를 아내로 맞이 하여 네케, 젤로스, 크라토스 및 비아라는 네 딸을 두었다.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팔라스는 기간테스와 올림포스 신족 간의 전재에서 아테네에게 살해당한 거인이다. 아테나는 이 거인의 껍질을 벗겨 갑옷으로 만들고 그 날개를 발에 부착하였다. 일설에는 아테나 여신의 아비였는데 딸을 범하려다 죽임을 당하였다 한다. 또 같은 이름을 가진 것으로 어려서 아테나 여신과 함께 자란 트리톤의 딸이 있는데, 아테나와 전쟁놀이를 하다 잘못하여 죽게 되었다. 그녀의 죽음을 비통해한 아테나는 그녀의 목상을 파서 갑옷을 입히고 신상으로 하였다. 이 신상을 팔라디움이라 하며 이것을 소유하는 도시를 수호해 주는 영험을 지니고 있었다. 그 후 아테나는 자신의 이름을 팔라스 아테나라고 부르게 되었다.
Board 추천글 2023.10.18 風文 R 1335
원교근공(遠交近攻) 遠:멀 원. 交:사귈 교. 近:가까울 근. 攻:칠 공. [참조] 누란지위(累卵之危). [출전]《史記》〈范雎列傳〉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정책. 전국 시대, 위(魏)나라의 책사(策士)인 범저(范雎)는 제(齊)나라와 내통하고 있다는 모함에 빠져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진(秦)나라의 사신 왕계(王稽)를 따라 함양(咸陽)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은 진나라는 ‘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다[累卵之危]’고 자국(自國)의 정사를 혹평한 범저를 환영하지 않았다. 따라서 범저는 소양왕에게 자신의 장기인 변설(辯舌)을 펼쳐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소양왕 36년(B.C. 271), 드디어 범저에게 때가 왔다. 당시 진나라에서는 소양왕의 모후인 선태후(宣太后)의 동생 양후(穰侯)가 재상으로서 실권을 잡고 있었는데, 그는 제나라를 공략하여 자신의 영지인 도(陶)의 땅을 확장하려 했다. 이 사실을 안 범저는 왕계를 통해 소양왕을 알현하고 이렇게 진언했다. "전하, 한(韓)/위(魏) 두 나라를 지나 강국인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것은 득책(得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적은 병력을 움직여 봤자 제나라는 꿈쩍도 않을 것이옵고, 그렇다고 대군(大軍)을 출동시키는 것은 진나라를 위해 더욱 좋지 않사옵니다. 가능한 한 진나라의 병력을 아끼고 한/위 두 나라의 병력을 동원코자 하시는 것이 전하의 의도인 듯하오나 동맹국을 신용할 수 없는 이 마당에 타국 너머 멀리 떨어져 있는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옵니다. 지난날 제나라의 민왕이 연(燕)나라의 악의(樂毅)장군에게 패한 원인도 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초(楚)나라를 공략하다가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된 동맹국이 이반(離反)했기 때문이옵니다. 그때 덕을 본 것은 이웃 나라인 한나라와 위나라이온데, 이는 마치 ‘적에게 병기를 빌려주고[借賊兵(차적병)] 도둑에게 식량을 갖다 준 꼴[齎盜糧(재도량)]’이 되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나이다. 지금 전하께서 채택하셔야 할 계책으로는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이 상책(上策)인 줄 아옵니다. 한 치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촌토(寸土)이옵고 한 자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척지(尺地)가 아니옵니까? 이해득실(利害得失)이 이토록 분명 하온데 굳이 먼 나라를 공략하는 것은 현책(賢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이 날을 계기로 소양왕의 신임을 얻은 범저는 승진 끝에 재상이 되어 응후(應侯)에 봉해졌고, 그의 지론인 원교근공책은 천하 통일을 지향하는 진나라의 국시(國是)가 되었다.
Board 고사성어 2023.10.18 風文 R 773
배운 게 도둑질 날이 밝으면 어제와 다른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처럼. 하지만 현실은 쳇바퀴 도는 다람쥐처럼 제자리걸음. 어제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숙명이란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붙이는 이름인가 보다. ‘배운 게 도둑질’이란 말에는 지금까지 해온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현실인식이 담겨 있다. 자기 일에 대한 겸손함의 표현이자 삶의 일관성을 부여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그릴 수 있는 원의 반지름은 여기까지! 배울 수 있는 게 한둘이 아니건만, 하필 도둑질이라니. 말이란 참 짓궂다. 도둑질은 직업인가 버릇인가. 물건을 훔치되 잡히지 않으려면 섬세한 기술을 갈고닦아야 한다는 점에서 전문성(?)을 인정해 줘야 할지도 모른다. 약간의 ‘요령’만 있으면 되는 주먹질, 싸움질, 이간질, 걸레질, 망치질과 사뭇 다르긴 하다. ‘도둑질’이란 말에서 풍기는 부정적 느낌을 잠시 접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내가 배운 ‘도둑질’은 무엇인가? 살갗처럼 내 몸에 붙어 있어 떼어낼 수 없는 일은 무엇인가? 나도 회사원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천성이 게을러서 정시 출근과 정해진 업무를 반복하는 게 싫어 그만두었더랬다. 그때 낮게 읊조렸었지. ‘내가 배운 도둑질은 기껏 선생질인가’. 자기 생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걸 분간할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롭다. 다만, 과거에 사로잡혀 지레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어버리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숙명과 분수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경계 너머로 발 내딛는 용기도 필요하다. 도둑질밖에 배운 게 없는 사람들이 권력의 주변에 몰려든다는 소문을 듣고 드는 생각이다. 부정문의 논리 캬, 이 기발한 문장을 떠올리고 나서 얼마나 안도했을까. ‘오염수 방류의 계획상에 과학적 기술적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우리 정부가 오염수 방류를 찬성 또는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줄여서 ‘문제는 없지만, 찬성하는 건 아니다’ ‘문제가 없으니, 찬성한다’거나 ‘문제는 없지만, 반대한다’고 하지 않은 게 이 문장의 묘미. 부정문은 고차원적인 논리 게임이다. ‘ㄱ은 ㄴ이다’ 형식의 긍정문이 어떤 대상에 대한 적극적 판단과 해석을 표현한다면, ‘ㄱ은 ㄴ이 아니다’라는 부정문은 소극적이고 유보적인 태도를 표명한다. ‘~가 아니다’, ‘~이지 않다’, ‘~하지 않았다’라고 하면 그것 아닌 모든 가능성을 허용한다. 세상사가 이분법적으로 확연히 나뉘지 않으므로. ‘너를 싫어해’ 대신 ‘너를 좋아하진 않아’라고 하면,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다. ‘너를 존경해’ 또는 ‘너를 사랑해’라는 ‘반전’을 꾀할 수도 있다. 상대방에게 해석의 여지를 많이 남길수록 나는 안전해지고 책임은 옅어진다. 당신도 이런 적이 있을 거다. “옷이 너무 마음에 들어. 하지만 사지 않을래.” 마음에 드는 옷을 보고 그 자리에서 사는 사람보다, 발길을 돌리는 사람이 더 많다. 돈이 없어서, 비슷한 옷이 있어서, 먼저 사야 할 게 있어서. 판단의 근거는 무한대. 잔머리를 굴려 ‘찬성하지 않는다’는 고급 표현을 썼지만, 그 판단의 근거가 ‘찬성한다’는 뜻으로 읽히기 충분한 ‘과학과 기술의 문제’를 들이댄 게 잘못이겠지. 차라리 ‘일본이 오염수 방류를 밀어붙이고 있고 우리는 그걸 막을 힘도 의지도 없지만, 그렇다고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이랬다면, 약소국의 설움을 함께 나누며 해양생태계의 궤멸을 ‘운명이겠거니’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말의 실패. 정치의 실패.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Board 말글 2023.10.18 風文 R 3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