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입골수(怨入骨髓) 怨:원망할 원. 入:들 입. 骨:뼈 골. 髓:골수 수. [원말] 원입어골수(怨入於骨髓). [동의어] 원철골수(怨徹骨髓), 한입골수(恨入骨髓). [출전]《史記》〈秦本紀〉 원한이 뼈에 사무친다는 뜻으로, 원한이 마음 속 깊이 맺혀 잊을 수 없다는 말. 춘추시대 오패의 한 사람인 진(秦)나라 목공(繆公)은 중신 백리해(百里奚)와 건숙(蹇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 장군에게 정(鄭)나라를 치라고 명했다. 진나라 군사가 주(周)나라의 북문에 이르렀을 때 마침 이곳에 소를 팔러 온 정나라의 소장수인 현고(弦高)는 진나라 장군 앞으로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정나라 주상(主上)께서는 장병들을 위로하시기 위해 소생에게 소 12마리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어서 거두어 주십시오.” 이 말을 듣자 생각이 달라진 세 장군은 공격 목표를 바꾸어 진(晉)나라의 속령(屬領)인 활(滑)로 쳐들어갔다. 당시 진나라는 문공(文公)이 죽어 국상(國喪)중에 있었으나 태자[太子:후의 양공(襄公)]는 즉시 용장(勇將)을 파견하여 침략군을 섬멸했다. 포로가 된 세 장군은 태자 앞에 끌려 나왔다. 그러자 목공의 딸인 태자의 모후(母后)는 그들의 구명을 청원했다. “저들을 죽이면 강국인 진나라 목공은 ‘원한이 뼈에 사무쳐[怨入骨髓]’ 반드시 이 나라를 칠 것이오. 그러나 저들을 살려 보내는 게 좋겠소.” 태자는 모후의 말을 옳게 여겨 세 장군을 모두 풀어 주었다.
Board 고사성어 2023.11.09 風文 R 980
산막이 옛길 내 고향은 충북 괴산으로, 수려한 자연 경관을 빼곤 딱히 더 내세울 게 없는 곳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화양계곡, 선유동계곡, 쌍곡계곡 등이 여름휴가 장소로 이름을 얻기 시작하면서 여름철엔 외지인으로 북적북적해졌다. 얼마 전부터는 ‘산막이 옛길’을 찾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산막이 옛길’은 산막이 마을로 가는 총 10리의 옛길을 이르는데, 괴산군에서 자연을 즐기며 천천히 걸을 수 있도록 복원해 놓은 산책길이다. 산책길로는 제주도의 ‘올레길’, 지리산의 ‘둘레길’, 제천의 ‘자드락길’, 강릉의 ‘바우길’ 등이 유명하다. 최근 올레길, 둘레길, 자드락길, 바우길 등으로 산책을 떠나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그렇다 보니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특색 있는 산책길을 개발하여 관광 상품화하고 있다. 그런데 산책길의 이름 대부분은 고유어나 그 지역의 방언으로 이름 붙여져 있다. ‘둘레길’의 ‘둘레’는 ‘사물의 테두리나 바깥 언저리’를 뜻하는 고유어이고, ‘자드락길’의 ‘자드락’은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을 뜻하는 고유어이다. 반면 ‘올레길’의 ‘올레’는 ‘골목’의 제주도 방언이고, ‘바우길’의 ‘바우’는 ‘바위’의 강원도 방언이다. ‘산막이 옛길’의 ‘산막이’는 ‘산(이) 막다’에서 파생된 말이므로 고유어로 볼 수 있다. 산책길의 이름으로 고유어나 방언이 활용되는 건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상품, 가게, 아파트 등의 이름 짓기에서는 외래어나 외국어가 더 널리 활용되기 때문이다. 많은 산책길이 특정 지역의 관광 명소로 개발된 데 말미암은 것이리라! 여하튼 고유어가 제한적이나마 대접을 받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어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현상이 좀 더 확대될 수 있기를 바라 본다. 박용찬 대구대 국어교육과 조교수
Board 말글 2023.11.09 風文 R 2145
왕의 화병 나같이 온순하고 청순하며 버들강아지처럼 보드라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 울그락불그락하는 얼굴로 눈엔 쌍심지를 돋우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끝마다 쐐기벌레처럼 톡톡 쏘아붙이며 화내는 사람을 만나면 화덕 위에서 졸아붙고 있는 청국장처럼 몸이 쪼그라들고 속에선 매캐한 탄내마저 나는 듯하여 웬만하면 초장부터 안 만나는 쪽이 심신건강에 유익하렷다. 걸핏하면 화내는 사람은 주변 인심을 잃을지는 몰라도 자기감정을 시원 방탕하게 배설하니 무병장수할 공산이 큰 반면에, 당하는 사람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억울함을 삭일 길 없어 몸에선 열이 나고 초점 잃은 눈으로 기운 없이 고개를 떨구었다가 이내 허공 위로 긴 한숨을 내뱉고는 답답한 가슴을 팡팡 치기도 하고 맥없이 드러누워 있다가 급작스럽게 벌떡 일어나기를 거듭하며 입이 깔깔하고 볼살이 빠지며 주름은 깊어지는데 예전엔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자리에 눕는 걸로 시위라도 했건만 이젠 그마저도 보기 어려워졌다. 기록상 최초의 화병 환자는 선조였는데 만인지상의 권력을 누리는 자가 울화병에 시달렸다니 이런 아이러니도 없겠으나 방계로 왕위에 올라 주변의 눈치를 봐야 했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도성을 버리고 도망치는 굴욕을 당했으며 전쟁 뒤엔 자신들이 왕을 잘 모셨다며 휘호를 내려달라는 조정 대신들의 상소를 접하니 어찌 화병을 앓지 않고 배길쏘냐. 선조 스스로 “나는 화병을 앓고 있는데 나에게 올리는 글을 읽으니 심기가 더욱 상하여 목구멍이 붓고 가래가 끓는 걸 내시들도 다 알고 있다”고 토로하였더라. 왕의 화병에 측은지심이 발동하다가 문득, 화를 내는 왕과 화병을 앓는 왕 중에 누구를 골라야 할지 궁금해진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Board 말글 2023.11.09 風文 R 2713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그리스 신화와 영웅들) - 사진 자료 및 참고 자료는 제가 편집해 올린 것입니다. 제5장 포르큐스-괴물의 출생 11. 아프로디테 아프로디테(Aphrodite, Venus)는 그리스의 사랑과 미의 여신으로, 후기 로마인이 이탈리아의 여신 비너스와 동일신으로 융화하여 숭배하였다. 아프로디테의 출생을 둘러싸고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그 하나가 우라노스의 딸이라는 설로, 크로노스에게 참패하여 거세된 우라노스의 남근이 바다에 던져지자 거품에 싸인 우라노스의 씨들에서 탄생하였다 한다. 또 하나는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이라는 설이다. 아프로디테가 바다에서 나오자 곧 바람의 신 제퓨로스가 큐테라를 거쳐 동쪽 키포로스 섬 해안으로 데려갔고, 이 곳에서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환대하여 옷을 입히고 치장시켜 영생하는 신족의 거처로 인도하였다. 루키아노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녀를 처음 데려온 것은 네레우스였다고 한다. 후에 플라톤은 아트로디테를 두 가지 성격을 지닌 여신으로 규정하였는데, 즉 우라노스의 딸인 아프로디테는 천상의 사랑의 여신, 디오네의 딸 아프로디테 판데미아는 일반 서민의 여신으로 구분하였다. 신화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는 철학적 견해다. 아프로디테에 관한 일화는 상당히 많은데, 서로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고 여신의 성격상 개별적으로 색다른 역할들이 추가된 것이다. 아프로디테는 렘노스 섬의 절름발이 신 헤파이스토스와 결혼하였지만 전쟁의 신 아레스와 정을 통하였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태양신 헬리오스가 어느 날 아침 두 연인의 뜨거운 관계를 목격하고 이를 헤파이스토스에게 일러 바쳤다고 한다. 이에 헤파이스토스는 마법의 망을 쳐 둔 후 출타할 일이 있다며 집을 떠났다. 아프로디테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레스를 불러들여 동침하는데 이를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헤파이스토스가 부정을 저지른 두 신을 망으로 씌워 놓고 올림포스의 신들을 불러들이니 모두 이 흥미진진한 모습에 야유를 보내고 재미있어 하였다. 헤파이스토스는 포세이돈의 간절한 요청을 받고서야 망을 걷었고 아프로디테는 창피하여 키프로스로 도망갔다. 아프로디테는 아레스와의 사이에 에로스, 안테로스, 데이모스(공포), 포보스(두려움) 및 하르모니아를 낳았다. 아프로디테의 연애행각은 아레스에 한하지 않았다. 디오뉴소스와 관계하여 프리아푸스를 낳았으며, 헤르메스의 사랑고백을 듣고 하룻밤을 지낸 후 헤르마프로디토스를 낳았다. 또한 색다른 일화도 있다. 파포스 왕 키뉴라에게는 뮤라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이 자신의 아비를 사랑한 나머지 아비가 만취한 틈을 타 동침하고 대단히 귀여운 아도니스라는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된 아비가 딸을 죽이려 하자 아라비아로 달아나 뮤르나무가 되었다. 그러자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를 페르세포네에게 돌보게 하였는데 페르세포네가 아이를 돌려주려 하지 않았다. 이에 아프로디테는 제우스에게 호소를 하니, 1년을 3계절로 나누어 한 계절은 페르세포네, 또 한 계절은 아프로디테와 지내고 나머지 계절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지내도록 해 주었다. 아도니스는 이 결정에 따라 페르세포네와 한 계절을 지내고는 나머지 두 계절은 아프로디테와 지냈다. 그런데 사냥을 좋아했던 아도니스는 결국 멧돼지에 받혀 죽고 말았고, 비통함을 이기지 못한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를 아네모네 꽃으로 화신시켰다. 일설에 아프로디테가 아도니스를 너무 사랑하는 데 질투를 느낀 아레스가 죽였다고도 한다. 또 다른 일설에는 페르세포네가 상처입은 아도니스를 다시 살려내어 반년은 자기와, 나머지 반년은 아프로디테와 지내도록 하였다고 한다. 아프로디테는 이밖에 트로아스(수도는 트로이)의 이다 산에서 안키세스와 사랑을 나누고 두 아들 아이네아스와 류르노스를 두었다. 아프로디테는 분노를 폭발시켜 저주를 내리기도 하였다. 그 중 자신의 연인 아레스와 사랑에 빠진 새벽의 여신 에오스를 벌주기 위해 에오스의 연인 오리온에게 격정을 갖도록 사랑의 열기를 불어넣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또한 렘노스 섬 여인들이 사랑의 신인 자신을 숭배하지 않은 데 분노하여 이들에게서 고약한 악취가 나게 함으로써 남편들이 이 여성들을 버리고 트라키아의 노예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러자 맹랑한 렘노스 여인들은 섬에 있는 남성을 모조리 죽이고 여인천하를 만들었고 후에 아르고 호 대원들이 들어오고 나서야 아들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아름답고 친절함의 대명사로 알려진 아프로디테에게는 잘 어울릴 성 싶지 않는 다른 이름들도 있다. 예컨대 그녀를 '삶 속의 죽음'의 여신이라고도 하며, 아테네에서는 운명의 여신 모이라이의 가장 맏언니 또는 복수의 여신 에리뉴에스의 자매라고도 한다. 다른 곳에서는 검은 여신이라는 뜻의 멜라이니스 혹은 암흑 속의 여신이라는 뜻의 스크티아라고도 불렀는데, 파우사니아스의 풀이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랑의 교제가 밤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플루타르크는 심지어 무덤의 여신이라는 뜻의 에피튬브리아라고 불렀는데 사랑의 종말이 죽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아프로디테 여신의 친절도 여신의 분노나 다를 바 없이 위험하였다. 불화의 여신 아레스는 황금사과를 내놓고 헤라, 아테나 및 아프로디테의 세 여신중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주겠다고 충동질하여 갈등의 씨를 뿌렸다.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시켜 세 여신을 트로아스의 이다 산에 모이게 한 후 양치기로 있는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판가름을 내게 하였다. 세 여신은 각기 어마어마한 선물을 약속하며 파리스의 환심을 사고자 했는데, 천하의 아름다운 처녀 헬레나를 주겠다고 약속한 아프로디테가 사과를 넘겨받았다. 이것이 트로이 전쟁의 씨앗이 될 줄이야! 전쟁중 아프로디테는 트로이를 지원하고 특히 파리스를 도와주었다. 메넬라오스와 단둘이 붙어 싸우다 패하게 될 찰나 위기에서 파리스를 구원해 준 것이 바로 아프로디테이며 그 결과 전쟁은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마찬가지로 트로이 쪽의 아이네아스도 돕는데, 디오메네스에게 죽음을 당하는 순간 아이네아스를 구하고 자기 스스로 상처를 입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수호에도 불구하고 트로이 시의 함락과 파리스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다만 트로이 민족의 명맥을 유지시키는 데는 성공하여 아이네아스와 그 부친 및 아들이 불타는 트로이를 탈출하여 신천지에 가서 나라를 세우게 된 것은 모두 아프로디테의 은혜였다. 그러므로 로마인은 아프로디테.비너스를 보호신으로서 각별히 모시게 되었다. 원초적으로 아프로디테는 생식과 풍요의 여신인데 시문에서 성의 본능과 사랑의 위력으로 화신시켜 표현하였다. 결혼 예식도 주관하였는데 이때 키프로스의 아프로디테는 수염을 가진 남성형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결혼은 헤라 여신의 영역이다. 코린트에서는 매음의 보호 여신으로도 숭배하였고, 키프로스의 도시 파포스에 있는 여신의 신전은 찬란하기 이를 데 없었으며 예배날에는 수천 군중이 모여 축제를 벌였다. 또한 우라노스 혹은 아레스와 합동으로 숭배하는 곳도 있고 항해 또는 전쟁의 여신으로 모시는 스파르타, 아르고 및 코린트의 신전 경내에는 무장한 여신상이 서 있다. 로마의 카이사르는 자신의 가문 율리우스의 선조신으로 비너스 여신을 모시기 위하여 장대한 신전을 봉헌하였다. 비너스는 원래 전원 혹은 뜰의 여신인데 아프로디테도 같은 성질의 여신으로 모신다. 신화에서 아프로디테는 아주 드물게 자신의 마법 허리띠를 딴 여신에게 빌려주는데 이 허리띠를 차고 있으면 상대가 마력에 걸려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프로디테 여신이 좋아하는 새로는 비둘기, 백조, 제비 등이 있고 여신이 탄 이륜차는 비둘기 무리가 끌었다. 꽃 중에서는 장미과 도금양(MYrtaceae)꽃을 좋아했고 여신에게는 비둘기를 공양하고 향을 피웠다.
Board 추천글 2023.11.01 風文 R 1574
Board 고사성어 2023.11.01 風文 R 1009
‘내 부인’이 돼 달라고? ‘혼인하여 남자의 짝이 되는 여자’, 즉 ‘아내’를 이르는 말에는 ‘안사람, 집사람, 처, 마누라, 부인’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가리키는 대상은 같지만 쓰임새가 조금씩 다르다. ‘아내’는 특별히 낮추거나 높이는 뜻이 없어 가장 편하게 쓸 수 있는 말이다. ‘처’는 20여년 전만 해도 흔히 쓰는 말이었지만 오늘날 젊은이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팔순이 넘은 어느 노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이미 1960년대에도 ‘처’는 ‘머리를 쪽 찌고 치마저고리 입은’ 구식 아내를 연상케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의 아내를 ‘제 처’라고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점잖고 예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안사람, 집사람’은 아내를 남 앞에서 겸손하게 이르는 말이지만 아내의 역할이나 활동 공간을 집안에만 한정하는 듯하여 마땅찮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누라’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적어도 중년 이상의 아내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다. 이 말에는 상대를 약간 낮잡는 느낌이 있다.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 자기 아내를 허물없이 가리킬 때 ‘마누라’를 흔히 쓴다. 이 말은 어떤 상황에서 쓰느냐에 따라 정답게 들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내를 함부로 대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으므로 가려 쓰는 게 좋겠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나이든 아내를 함부로 대했다간 노후가 편치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부인’은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므로 자기 아내에 대해서는 쓰지 않는다. 우리말에서는 나와 가까운 사람을 남 앞에서 높이지 않는 것이 올바른 언어 예절이다. 아내를 존중해 주는 것은 좋지만 ‘우리 부인’ ‘내 부인’ 등으로 쓰는 것은 잘못이다. ‘청혼가’라는 가요의 노랫말에 ‘네가 나의 부인이 돼줬으면 해’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때 ‘나의 부인’도 ‘나의 아내’로 해야 맞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3.11.01 風文 R 2298
‘괴담’ 되돌려주기 이상야릇한 이야기. 비슷한 말로 ‘유언비어’, ‘뜬소문’, ‘가짜뉴스’, ‘허위사실’이 있다. ‘괴담’은 언제나 있었다. 1914년 8월1일 매일신보엔 ‘경성의 도깨비 이것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는데, 그 한 대목을 읽어볼작시면 이렇더라. “매일 밤 열한시나 자정이면 광희문 밖 정류장에 어떤 젊은 여성 하나가 괴이한 행동으로 차에 올라탔다가 차장이 돈을 받으려고 하면 갑자기 사라진다고 한다. 그는 서양식 여학생 복장을 하고 있고 늘 청량교 정류장에 내렸다. 하루도 빠짐없이 광희문 밖에서 타고 청량교에서 내리는 일이 하도 괴이하여 차장들 사이에서 도깨비장난이라는 말이 낭자하다.”(신출귀몰하는 상습 무임승차자였나 보군.) 시인 김지하는 1972년 ‘창조’ 4월호에 ‘비어’(蜚語)(맥주, 아니다)를 발표한다. “지치고 처지고 주리고 병들고 미쳐서 어느 날 노을 진 저녁때 두 발을 땅에다 털퍼덕 딛고서 눈깔이 뒤집혀 한다는 소리가 ‘에잇 개같은 세상!’ 이 소리가 입 밖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철커덕 쇠고랑이 안도(安道)놈 두 손에 대번에 채워지고 질질질 끌려서 곧장 재판소로 가는구나. 땅땅땅― 무슨 죄던고? 두 발로 땅을 딛고 아가리로 유언비어를 뱉어낸 죄올시다. 호호 큰 죄로다.”(시인은 체포된다. 박정희는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는 긴급조치를 내린다.) 항간에 떠도는 괴담이 있다. “녹아내린 핵연료와 뒤섞인 물을 바다에 아무리 갖다버려도, 어머니 품처럼 넓디넓은 바다는 모든 걸 정화해 주니 아무 문제가 없다.” 괴담은 불안과 불만에서 나온다. 어두운 골목에서 피어오른다. 그런데 요즘엔 권력자와 엘리트들의 입에서 나온다. 그들은 무엇이 불안하고 무엇에 불만인 걸까.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Board 말글 2023.11.01 風文 R 2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