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그리스 신화와 영웅들) - 사진 자료 및 참고 자료는 제가 편집해 올린 것입니다. 제5장 포르큐스-괴물의 출생 12. 헤르메스 헤르메스(Hermes, Mercurius)는 제우스와 마이아(아틀라스의 딸)의 아들로 아르카디아의 큘레네 산 동굴에서 태어났다. 아기 헤르메스는 얼마나 성장이 빠르던지 태어나자마자 기저귀를 채워 뉘어 둔 요람에서 기어나와 걷기 시작하였다. 대개의 신족이 조숙하다고 하지만 헤르메스는 그 중 단연 최고에 속하였다. 동굴 입구로 걸어나온 아기 헤르메스는 이 고장에 흔한 거북을 보자 집어 가지고 들어와 죽여서 악기를 만들 생각으로 등딱지를 떼어냈다. 악기를 만들 생각이라든지 거북등이 수금의 음판이 되기는 처음있는 일이었다. 잠시 후 헤르메스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피에리아의 아폴론 목장으로 향했다. 한 무리의 우아한 소들이 유유히 풀을 뜯는데 목동이 보이지 않았다. 헤르메스는 소를 훔치기로 하되 흔적없이 끌어 갈 궁리를 하여 우선 쓰러진 참나무 껍질을 벗겨 소의 발바닥에 대고 풀로 엮어매었다. 자신도 짚신의 앞을 뒤꿈치 모양이 되게 만들어 신 자국이 반대로 나게 하였다. 일설에는 소들을 뒷걸음질치게 하여 몰고 갔다고도 한다. 밤이 깊어지자 조용히 소떼를 몰았다. 다음 날 자신의 소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안 아폴론이 소의 행방을 찾아 나섰다. 감시를 하였던 까마귀는 어린아이가 끌고 갔다고 말했으나 아폴론으로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라 그저 동서로 소의 행방을 찾아 헤매었다. 실레노스와 사튜로스 일행에게 후한 보상을 주기로 하고 자신과는 딴 방향을 수소문하게도 했으나 모두 허사였다. 여라 날 수색하여도 행방이 묘연하던 차에 한 노인이 밤중에 소떼를 몰고가는 어린아이를 보았다고 하였다. 이에 아폴론은 어린이가 있는 굴을 찾아나섰고 마침내 동굴에 도착해서는 참고 있던 화를 폭발하였다. 아기의 어미 마이아는 아기가 깨겠다고 야단을 하였으나 아폴론은 요람속에서 천진한 얼굴로 잠들어 있는 헤르메스를 깨워 소를 돌려보내라고 다그쳤다. 어린 헤르메스는 눈을 깜박이며 "소라니, 무슨 말이에요?" 하며 딴전을 피웠다. 수금의 줄을 만들기 위하여 이미 헤르메스가 자신의 소 두 마리를 잡은 것을 알게 된 아폴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헤르메스를 올림포스로 끌고 가 제우스에게 하소연하였다. 제우스는 사연을 알았으나 자기의 어린 아들이 저지른 이 깜찍하고 뻔뻔스런 언행에 기도 차고 재미도 나서 도리어 헤르메스를 부추겼다. 그러나 계속 핑계를 대는 일에 싫증이 난 헤르메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실토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이 만든 수금을 조용히 켜서 음률을 내는데 그 음률이 너무나도 매혹적이어서 아폴론은 소와 수금을 맞바꾸자고 제의하였다. 제우스는 자신의 두 아들 간에 대화와 거래 모양을 바라보며 이 어린아이의 눈치 빠르고 민첩한 재치와 깜찍하게 둘러대는 외교술에 스릴까지 느꼈다. 헤르메스의 비범한 재질을 확인한 제우스는 이를 대견해 하며 그를 자신의 길잡이와 전령사자나 대사로 쓰기로 하고 또한 길 떠난 나그네의 수호신 자격을 인정하였다. 아폴론도 또한 자신이 항상 지니고 있던 황금단장 카두케오스를 동생 헤르메스에게 주었다. 카두케오스는 신의 사자라는 증표로, 단장에는 뱀 두 마리가 감긴 상이 있고 위쪽에는 한 쌍의 날개 장식이 달려 있다(현재 의무대의 기장으로 사용한다). 이렇게 하여 헤르메스는 신의 전령사자로서 올림포스의 신족이 되었는데, 특히 명계의 신인 숙부 하데스는 헤르메스를 불러, 죽어가는 인간의 눈 위에 황금접시를 얹어 깊은 잠 속에서 편히 이승에서 저승으로 인도하라 하였으므로 그 후 자주 지하세계를 출입하게 되었다. 젊은 신 헤르메스는 나이든 올림포스 신들의 귀여움을 듬뿍 받아 아폴론은 그에게 자갈돌로 점을 치는 법과 피리부는 기량을 알려주었으며 아르테미스는 수렵에 가담시키기도 하였다. 성장한 후 헤르메스는 자신의 아이들을 두었는데 모두 그리스 세계에서 한 몫을 하는 이름난 인물이 되었다. 예컨대 키오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아우톨류코스는 희대의 도둑이 되고, 시칠리아 월계숲 요정에게서 낳은 다프니스는 그리스 세계 최고의 시인이요 목가의 창시자가 되었다. 또한 아프로디테와의 사이에서 낳은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카리아 샘의 요정 살마키스에게 붙잡혀 양성인 반음양체로 화신하였다. 인간 낭자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 뮤르틸로스는 커서 피사 왕 오이노마노스의 기병대장으로 이름난 기사가 되어 공주 히포다메이아를 탐내었다. 이륜마차 경주에서 자기와 견줄 자가 없다고 믿었던 피사 왕은 자신을 이기는 젊은이에게 딸을 주되 경기에 패한 자에게는 죽음을 내린다고 공포한 후 여러 젊은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마침 펠롭스가 여기에 도전을 하였는데 뮤르틸로스를 꼬여 공주는 양보할 테니 왕의 수레에서 바퀴의 빗장을 빼놓으라고 하였다. 결국 경기중 왕의 수레가 전복되어 왕은 죽었으나 약속은 이행되지 않아서, 뮤르틸로스 자신마저 매수자의 손으로 수장당하여 죽음을 맞았다. 시신은 어느 해안으로 흘러 들어가 그 곳에서 영예로운 장례가 치러졌으며 사후 헤르메스의 아들로서 별자리에 올랐다. 그 밖의 헤르메스의 아들로는 안티아니라와 사이에서 태어난 아르고 원정대의 보도담당 에키온, 드류오페 혹은 페넬로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신이된 판이 있다. 헤르메스는 아르카디아 태생으로 그 지역의 원초적 신이며 아폴론보다도 더 오래된 목신으로서 나라가 형성되기 전부터 정착한 신이다. 옛적 그리스 나라에 풍요를 가져오게 하고 인간의 생식이나 다산만이 아니라 조류나 가축의 증가에도 효험이 큰 수허신으로서 매우 숭배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형태의 남근 입석으로 숭배되었으나 점차 헤르메스로 발전하면서 두상(입석두상)이 조각되고 아랫부분은 가는 입석으로 바뀌었다. 이후 입석 중앙 부위에 힘찬 남근이 돌출된 조상이 곁들여져 에너지와 풍요를 상징함과 동시에 안정과 행운을 가져다 주는 신으로 믿어졌다. 이러한 남근체제(Phallocracy)는 그리스뿐만 아니라 유사 이전에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존중되었을 것이다. 또한 다산이란 당연히 땅과 관련이 깊으므로 헤르메스는 지하 및 죽음과도 연관성이 가져 죽은 인간의 영혼 안내자(Psychopompos)로 신화에 등장하기도 한다. 한편 헤르메스는 다재다능한 젊은 신으로 숭배되고 청춘남녀에게 가장 친밀감을 주는 신이기도 하였다. 경기장에서는 헤름(헤르메스 입상)이 세워져 있는데 특히 유명한 올림피아 경기장의 초상은 젊고 늠름한 승리자의 상으로 헤르메스가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헤르메스는 또한 도둑, 도박, 거짓, 상거래, 웅변, 외교, 체육 의술, 혹은 평화의 수호신이자 길 떠나는 나그네의 보호신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시, 음률 및 천문에 능하고 항상 날개 달린 짚신을 신고 있으며 때로는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서 하늘의 새보다 빠른 속도로 천상에서 지하세계까지 날아다녔다. 로마에서는 신의 속성을 메르쿠류 신에 결부시켰으며 천문에서는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인 수성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헤르메스의 동물은 독수리와 개이며, 제의에는 양젖과 꿀을 공양하였는데 웅변의 신으로 감미롭고 설득력 있는 재능을 가진 데 연유한다. 그리스인과 로마인이 동물혀를 불에 던져서 공양을 하는 이유는 구변(말)의 보호신에게 혀가 장기이기 때문이다. 헤르메스의 조각상에는 팔다리가 없는 표현도 있는데, 말의 효력은 어디서나 우세하여 팔의 도움 없어도 널리 보급되기 때문이라 한다. 상인이나 도둑이 매우 재수가 좋아 횡재하게 되면 헤르마이온(헤르메스의 선물)이라 하는데 이 또한 헤르메스의 속성에 기인한 것이다. 판 판(Pan)은 펠로폰네소스 중앙부 아르카디아 산악지의 오랜 목신이다. 이 지역에는 소가 거의 없고 주 목축은 양떼이므로 양을 보호하는 신은 필연적으로 양과 같이 뿔과 턱수염이 나 있고 다리는 산양과 같은 반신반수의 형상이라고 생각하였다. 야산, 고원지대, 동굴 등 조용한 자연을 좋아하고 또한 낮잠을 즐기는데, 방해를 받으면 크게 화를 내면서도 자신은 시끄럽고 유쾌하게 지냈다. 이름난 악사이기도 한 판이 부는 피리는 7개의 갈대로 만든 것이고 이 피리는 오늘날에도 아르카디아 목동이 즐겨부는 악기다. 판은 모든 것을 상징하는 신으로 그리스 종교의 배경이 되는 사회적 혹은 도덕적 가치관의 저변과 속속들이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판은 그리스의 어떤 신보다도 생활속에서 친밀한 신이며 본능적 욕구의 인성화로 상상속에도 존재하였다. 또한 새나 짐승을 기르는 옛 인간들 자신의 심성의 영혼과도 동일시 되었으며 인간에게 우호적인 도깨비신이기도 하였다. 판은 헤르메스의 아들이라 하지만 어미니는 확실하지 않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마라톤 전투(기원전 490) 직전에 아테네에서는 발이 빠른 필리피데스를 급히 스파르타로 보내 공동의 적 페르시아 침입군을 칠 원군을 요청하였다. 급히 달리고 있던 필리피데스는 파르테니온 산을 지날 때에야 비로소 같이 달리는 주자가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즉 판이 같이 뛰고 있었던 것이다. 필리피데스는 신의 이름을 대고 아테네 사람들의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이처럼 판은 아테네와 친숙하였으며 전에도 그러하였듯이 다시 도움을 주었으므로 아테네에서는 하나같이 판의 영예를 높이 올렸다. 이에 따라 승리를 거둔 아테네에서는 판을 숭배하고 아크로폴리스 동굴 신전에다 모셨다. 이 때부터 판 숭배는 아르카디아 이외의 나라로 보급되어 나갔다. 판은 한적하고 쓸쓸한 곳에서 이겨낼 수 없는 돌발적이고 이유없는 공포발작을 일으키게도 하고, 동물들에게도 이유없이 놀라 짖거나 도망치게 하기도 하였다. 또한 판은 기운좋고 장난이 심한 신이자 묵축에 다산을 가져오게 하는 신이므로 당연히 성행위와 관계가 깊어 사람들은 다산을 기원하는 예배를 올렸다. 올림포스 신들도 판을 존중하고 일설에는 아폴론의 예언술도 이 신이 전수하였다고 한다. 판의 사랑신화는 후기에 첨가된 것이고, 이 신과 관련해서는 에코, 슈링크스(갈대로 화신), 프튜스(소나무로 화신) 등의 요정들이 있으나 모두 판을 피하여 물체로 전환하였다 한다. 헤르마프로디토스 헤르마프로디토스(Hermaphroditus)는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태어난 후 프리지아의 이다 산 샘의 요정 나이아데스에게 위탁 양육되었다. 열다섯 살 되던 해에 호기심이 나서 세상구경에 나섰는데 소아시아의 카리아에서 경관이 뛰어난 한 호숫가를 발견하고 목욕을 하였다. 이 때 호수의 요정 살마키스가 그에게 연정을 느끼고 먼저 유혹을 하였으나 마음이 내키지 않은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요정의 애원에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끝내 사랑을 포기하지 못한 살마키스는 물 속을 헤엄쳐 가서 그를 끌어안고 신들에게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한 몸이 되게 해주기를 간청하였다. 신이 마침내 그녀의 기원을 들어주니 둘은 서로 붙어 한몸이 되었다. 그러나 각자의 성 기능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양성체가 되었다.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신에 감사를 올리며 살마키스 호에서 목욕하는 사람은 누구든 남성다움이 없어지고 아름다운 여성의 몸이 되도록 탄원하였다. 스트라보 시대에도 이 호수는 여성화의 징험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대에는 남녀 양성을 가진 신을 생식.번식.다산의 상징으로 숭배하였으며, 특히 사랑의 여신 숭배지 키프로스 아마토스 도시에서는 턱수염이 난 남성 아프로디토스 신을 모시며 이성의 옷을 입고 예배하는 복장도착의 습성이 있었으며 배우자 없이도 생산이 가능한 여자의 자율적 생식(자가생식)이 있었다.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아비와 어미 이름을 합친 합성명칭이며 미술에서는 유방을 가진 아름다움 젊은이, 또는 남근을 가진 미녀상으로 묘사되고 디오뉴소스를 수행하는 모습을 부조한 비각이 많다. 현재 헤르마프로디즘은 반음양, 자웅동체, 남녀추니라는 뜻으로 쓰인다. 프리아푸스 프리아푸스(Priapus)는 성욕을 유발하는 옛 신으로 로마인은 정원을 보호하는 신으로 존경하였다. 그는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아비는 헤르메스, 아도니스, 이오뉴소스 등 설이 다양한데 맨 나중 설이 보다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인도 순례에서 돌아온 디오뉴소스와 아프로디테가 사랑을 나눈 후 헬레스폰트의 람프사코스에서 낳았다는 것이다. 아이의 팔다리가 기형이고 성기가 특히 거대한 괴물로 태어났는데, 질투가 심한 헤라가 출생을 도왔기 때문이라고 하며 창피해서 산에다 버렸으나 양치기가 구해 내었다. 후기에 Propter deformidatem et memebri virilis magnitudinem이라는 긴 이름이 붙여졌다. 그의 출생지로 알려진 람프사코스에서 특히 존중받았으며 생산력을 상징하는 힘찬 남근으로 표현되고 그리스에는 알렉산더 대왕 때 전파되어 숭배되었다. 희생공양으로는 성욕이 유달리 강한 나귀가 선택되었다. 병적으로 일어나는 음경의 지속적 발기증을 뜻하는 프리아피즘이라는 용어는 그 이름에서 기원한 것이다. 북유럽에서는 메이퀸 축제 전야에 제단 앞에 성스러운 옛 프리아푸스 남근상을 배치하고 화환을 걸어 거리로 운반하는 성대한 성의식 광연이 개최되었다. 후기에는 메이폴(오월의 기둥)로 대치되어 대지의 자궁에 삽입시켜 뿌린 씨의 결실을 축원하는 봄 축제로 발전했으며 남근숭배 양상의 변화와 더불어 계속 전승되었다. 미혼남녀의 성적유희를 해금하는 전승도 성행하였다.
Board 추천글 2023.11.09 風文 R 1660
원입골수(怨入骨髓) 怨:원망할 원. 入:들 입. 骨:뼈 골. 髓:골수 수. [원말] 원입어골수(怨入於骨髓). [동의어] 원철골수(怨徹骨髓), 한입골수(恨入骨髓). [출전]《史記》〈秦本紀〉 원한이 뼈에 사무친다는 뜻으로, 원한이 마음 속 깊이 맺혀 잊을 수 없다는 말. 춘추시대 오패의 한 사람인 진(秦)나라 목공(繆公)은 중신 백리해(百里奚)와 건숙(蹇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 장군에게 정(鄭)나라를 치라고 명했다. 진나라 군사가 주(周)나라의 북문에 이르렀을 때 마침 이곳에 소를 팔러 온 정나라의 소장수인 현고(弦高)는 진나라 장군 앞으로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정나라 주상(主上)께서는 장병들을 위로하시기 위해 소생에게 소 12마리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어서 거두어 주십시오.” 이 말을 듣자 생각이 달라진 세 장군은 공격 목표를 바꾸어 진(晉)나라의 속령(屬領)인 활(滑)로 쳐들어갔다. 당시 진나라는 문공(文公)이 죽어 국상(國喪)중에 있었으나 태자[太子:후의 양공(襄公)]는 즉시 용장(勇將)을 파견하여 침략군을 섬멸했다. 포로가 된 세 장군은 태자 앞에 끌려 나왔다. 그러자 목공의 딸인 태자의 모후(母后)는 그들의 구명을 청원했다. “저들을 죽이면 강국인 진나라 목공은 ‘원한이 뼈에 사무쳐[怨入骨髓]’ 반드시 이 나라를 칠 것이오. 그러나 저들을 살려 보내는 게 좋겠소.” 태자는 모후의 말을 옳게 여겨 세 장군을 모두 풀어 주었다.
Board 고사성어 2023.11.09 風文 R 980
산막이 옛길 내 고향은 충북 괴산으로, 수려한 자연 경관을 빼곤 딱히 더 내세울 게 없는 곳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화양계곡, 선유동계곡, 쌍곡계곡 등이 여름휴가 장소로 이름을 얻기 시작하면서 여름철엔 외지인으로 북적북적해졌다. 얼마 전부터는 ‘산막이 옛길’을 찾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산막이 옛길’은 산막이 마을로 가는 총 10리의 옛길을 이르는데, 괴산군에서 자연을 즐기며 천천히 걸을 수 있도록 복원해 놓은 산책길이다. 산책길로는 제주도의 ‘올레길’, 지리산의 ‘둘레길’, 제천의 ‘자드락길’, 강릉의 ‘바우길’ 등이 유명하다. 최근 올레길, 둘레길, 자드락길, 바우길 등으로 산책을 떠나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그렇다 보니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특색 있는 산책길을 개발하여 관광 상품화하고 있다. 그런데 산책길의 이름 대부분은 고유어나 그 지역의 방언으로 이름 붙여져 있다. ‘둘레길’의 ‘둘레’는 ‘사물의 테두리나 바깥 언저리’를 뜻하는 고유어이고, ‘자드락길’의 ‘자드락’은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을 뜻하는 고유어이다. 반면 ‘올레길’의 ‘올레’는 ‘골목’의 제주도 방언이고, ‘바우길’의 ‘바우’는 ‘바위’의 강원도 방언이다. ‘산막이 옛길’의 ‘산막이’는 ‘산(이) 막다’에서 파생된 말이므로 고유어로 볼 수 있다. 산책길의 이름으로 고유어나 방언이 활용되는 건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상품, 가게, 아파트 등의 이름 짓기에서는 외래어나 외국어가 더 널리 활용되기 때문이다. 많은 산책길이 특정 지역의 관광 명소로 개발된 데 말미암은 것이리라! 여하튼 고유어가 제한적이나마 대접을 받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어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현상이 좀 더 확대될 수 있기를 바라 본다. 박용찬 대구대 국어교육과 조교수
Board 말글 2023.11.09 風文 R 2230
왕의 화병 나같이 온순하고 청순하며 버들강아지처럼 보드라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 울그락불그락하는 얼굴로 눈엔 쌍심지를 돋우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끝마다 쐐기벌레처럼 톡톡 쏘아붙이며 화내는 사람을 만나면 화덕 위에서 졸아붙고 있는 청국장처럼 몸이 쪼그라들고 속에선 매캐한 탄내마저 나는 듯하여 웬만하면 초장부터 안 만나는 쪽이 심신건강에 유익하렷다. 걸핏하면 화내는 사람은 주변 인심을 잃을지는 몰라도 자기감정을 시원 방탕하게 배설하니 무병장수할 공산이 큰 반면에, 당하는 사람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억울함을 삭일 길 없어 몸에선 열이 나고 초점 잃은 눈으로 기운 없이 고개를 떨구었다가 이내 허공 위로 긴 한숨을 내뱉고는 답답한 가슴을 팡팡 치기도 하고 맥없이 드러누워 있다가 급작스럽게 벌떡 일어나기를 거듭하며 입이 깔깔하고 볼살이 빠지며 주름은 깊어지는데 예전엔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자리에 눕는 걸로 시위라도 했건만 이젠 그마저도 보기 어려워졌다. 기록상 최초의 화병 환자는 선조였는데 만인지상의 권력을 누리는 자가 울화병에 시달렸다니 이런 아이러니도 없겠으나 방계로 왕위에 올라 주변의 눈치를 봐야 했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도성을 버리고 도망치는 굴욕을 당했으며 전쟁 뒤엔 자신들이 왕을 잘 모셨다며 휘호를 내려달라는 조정 대신들의 상소를 접하니 어찌 화병을 앓지 않고 배길쏘냐. 선조 스스로 “나는 화병을 앓고 있는데 나에게 올리는 글을 읽으니 심기가 더욱 상하여 목구멍이 붓고 가래가 끓는 걸 내시들도 다 알고 있다”고 토로하였더라. 왕의 화병에 측은지심이 발동하다가 문득, 화를 내는 왕과 화병을 앓는 왕 중에 누구를 골라야 할지 궁금해진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Board 말글 2023.11.09 風文 R 2795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그리스 신화와 영웅들) - 사진 자료 및 참고 자료는 제가 편집해 올린 것입니다. 제5장 포르큐스-괴물의 출생 11. 아프로디테 아프로디테(Aphrodite, Venus)는 그리스의 사랑과 미의 여신으로, 후기 로마인이 이탈리아의 여신 비너스와 동일신으로 융화하여 숭배하였다. 아프로디테의 출생을 둘러싸고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그 하나가 우라노스의 딸이라는 설로, 크로노스에게 참패하여 거세된 우라노스의 남근이 바다에 던져지자 거품에 싸인 우라노스의 씨들에서 탄생하였다 한다. 또 하나는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이라는 설이다. 아프로디테가 바다에서 나오자 곧 바람의 신 제퓨로스가 큐테라를 거쳐 동쪽 키포로스 섬 해안으로 데려갔고, 이 곳에서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환대하여 옷을 입히고 치장시켜 영생하는 신족의 거처로 인도하였다. 루키아노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녀를 처음 데려온 것은 네레우스였다고 한다. 후에 플라톤은 아트로디테를 두 가지 성격을 지닌 여신으로 규정하였는데, 즉 우라노스의 딸인 아프로디테는 천상의 사랑의 여신, 디오네의 딸 아프로디테 판데미아는 일반 서민의 여신으로 구분하였다. 신화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는 철학적 견해다. 아프로디테에 관한 일화는 상당히 많은데, 서로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고 여신의 성격상 개별적으로 색다른 역할들이 추가된 것이다. 아프로디테는 렘노스 섬의 절름발이 신 헤파이스토스와 결혼하였지만 전쟁의 신 아레스와 정을 통하였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태양신 헬리오스가 어느 날 아침 두 연인의 뜨거운 관계를 목격하고 이를 헤파이스토스에게 일러 바쳤다고 한다. 이에 헤파이스토스는 마법의 망을 쳐 둔 후 출타할 일이 있다며 집을 떠났다. 아프로디테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레스를 불러들여 동침하는데 이를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헤파이스토스가 부정을 저지른 두 신을 망으로 씌워 놓고 올림포스의 신들을 불러들이니 모두 이 흥미진진한 모습에 야유를 보내고 재미있어 하였다. 헤파이스토스는 포세이돈의 간절한 요청을 받고서야 망을 걷었고 아프로디테는 창피하여 키프로스로 도망갔다. 아프로디테는 아레스와의 사이에 에로스, 안테로스, 데이모스(공포), 포보스(두려움) 및 하르모니아를 낳았다. 아프로디테의 연애행각은 아레스에 한하지 않았다. 디오뉴소스와 관계하여 프리아푸스를 낳았으며, 헤르메스의 사랑고백을 듣고 하룻밤을 지낸 후 헤르마프로디토스를 낳았다. 또한 색다른 일화도 있다. 파포스 왕 키뉴라에게는 뮤라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이 자신의 아비를 사랑한 나머지 아비가 만취한 틈을 타 동침하고 대단히 귀여운 아도니스라는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된 아비가 딸을 죽이려 하자 아라비아로 달아나 뮤르나무가 되었다. 그러자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를 페르세포네에게 돌보게 하였는데 페르세포네가 아이를 돌려주려 하지 않았다. 이에 아프로디테는 제우스에게 호소를 하니, 1년을 3계절로 나누어 한 계절은 페르세포네, 또 한 계절은 아프로디테와 지내고 나머지 계절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지내도록 해 주었다. 아도니스는 이 결정에 따라 페르세포네와 한 계절을 지내고는 나머지 두 계절은 아프로디테와 지냈다. 그런데 사냥을 좋아했던 아도니스는 결국 멧돼지에 받혀 죽고 말았고, 비통함을 이기지 못한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를 아네모네 꽃으로 화신시켰다. 일설에 아프로디테가 아도니스를 너무 사랑하는 데 질투를 느낀 아레스가 죽였다고도 한다. 또 다른 일설에는 페르세포네가 상처입은 아도니스를 다시 살려내어 반년은 자기와, 나머지 반년은 아프로디테와 지내도록 하였다고 한다. 아프로디테는 이밖에 트로아스(수도는 트로이)의 이다 산에서 안키세스와 사랑을 나누고 두 아들 아이네아스와 류르노스를 두었다. 아프로디테는 분노를 폭발시켜 저주를 내리기도 하였다. 그 중 자신의 연인 아레스와 사랑에 빠진 새벽의 여신 에오스를 벌주기 위해 에오스의 연인 오리온에게 격정을 갖도록 사랑의 열기를 불어넣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또한 렘노스 섬 여인들이 사랑의 신인 자신을 숭배하지 않은 데 분노하여 이들에게서 고약한 악취가 나게 함으로써 남편들이 이 여성들을 버리고 트라키아의 노예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러자 맹랑한 렘노스 여인들은 섬에 있는 남성을 모조리 죽이고 여인천하를 만들었고 후에 아르고 호 대원들이 들어오고 나서야 아들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아름답고 친절함의 대명사로 알려진 아프로디테에게는 잘 어울릴 성 싶지 않는 다른 이름들도 있다. 예컨대 그녀를 '삶 속의 죽음'의 여신이라고도 하며, 아테네에서는 운명의 여신 모이라이의 가장 맏언니 또는 복수의 여신 에리뉴에스의 자매라고도 한다. 다른 곳에서는 검은 여신이라는 뜻의 멜라이니스 혹은 암흑 속의 여신이라는 뜻의 스크티아라고도 불렀는데, 파우사니아스의 풀이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랑의 교제가 밤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플루타르크는 심지어 무덤의 여신이라는 뜻의 에피튬브리아라고 불렀는데 사랑의 종말이 죽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아프로디테 여신의 친절도 여신의 분노나 다를 바 없이 위험하였다. 불화의 여신 아레스는 황금사과를 내놓고 헤라, 아테나 및 아프로디테의 세 여신중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주겠다고 충동질하여 갈등의 씨를 뿌렸다.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시켜 세 여신을 트로아스의 이다 산에 모이게 한 후 양치기로 있는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판가름을 내게 하였다. 세 여신은 각기 어마어마한 선물을 약속하며 파리스의 환심을 사고자 했는데, 천하의 아름다운 처녀 헬레나를 주겠다고 약속한 아프로디테가 사과를 넘겨받았다. 이것이 트로이 전쟁의 씨앗이 될 줄이야! 전쟁중 아프로디테는 트로이를 지원하고 특히 파리스를 도와주었다. 메넬라오스와 단둘이 붙어 싸우다 패하게 될 찰나 위기에서 파리스를 구원해 준 것이 바로 아프로디테이며 그 결과 전쟁은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마찬가지로 트로이 쪽의 아이네아스도 돕는데, 디오메네스에게 죽음을 당하는 순간 아이네아스를 구하고 자기 스스로 상처를 입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수호에도 불구하고 트로이 시의 함락과 파리스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다만 트로이 민족의 명맥을 유지시키는 데는 성공하여 아이네아스와 그 부친 및 아들이 불타는 트로이를 탈출하여 신천지에 가서 나라를 세우게 된 것은 모두 아프로디테의 은혜였다. 그러므로 로마인은 아프로디테.비너스를 보호신으로서 각별히 모시게 되었다. 원초적으로 아프로디테는 생식과 풍요의 여신인데 시문에서 성의 본능과 사랑의 위력으로 화신시켜 표현하였다. 결혼 예식도 주관하였는데 이때 키프로스의 아프로디테는 수염을 가진 남성형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결혼은 헤라 여신의 영역이다. 코린트에서는 매음의 보호 여신으로도 숭배하였고, 키프로스의 도시 파포스에 있는 여신의 신전은 찬란하기 이를 데 없었으며 예배날에는 수천 군중이 모여 축제를 벌였다. 또한 우라노스 혹은 아레스와 합동으로 숭배하는 곳도 있고 항해 또는 전쟁의 여신으로 모시는 스파르타, 아르고 및 코린트의 신전 경내에는 무장한 여신상이 서 있다. 로마의 카이사르는 자신의 가문 율리우스의 선조신으로 비너스 여신을 모시기 위하여 장대한 신전을 봉헌하였다. 비너스는 원래 전원 혹은 뜰의 여신인데 아프로디테도 같은 성질의 여신으로 모신다. 신화에서 아프로디테는 아주 드물게 자신의 마법 허리띠를 딴 여신에게 빌려주는데 이 허리띠를 차고 있으면 상대가 마력에 걸려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프로디테 여신이 좋아하는 새로는 비둘기, 백조, 제비 등이 있고 여신이 탄 이륜차는 비둘기 무리가 끌었다. 꽃 중에서는 장미과 도금양(MYrtaceae)꽃을 좋아했고 여신에게는 비둘기를 공양하고 향을 피웠다.
Board 추천글 2023.11.01 風文 R 1772
Board 고사성어 2023.11.01 風文 R 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