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하도록 도와주는 것 - 조장(助長) 助(도울 조) 長(길 장) 孟子 <공손추公孫丑>상편에는 공손추와 맹자의 문답이 실려 있다.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설명하고 나서, 순리(順理)와 의기(義氣)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송(宋)나라의 한 농부의 조급한 행동을 예로 들었다. 그 농부는 자기가 심은 곡식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그 싹들은 뽑아 올렸으나, 그 싹들은 모두 말라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무리해서라도 잘 되게 하려고 했던 농부의 행동은 오히려 무익(無益)의 정도를 넘어서 해악(害惡)이 되었던 것이다. 助長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도와서 성장시키다 라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쓸데없는 일을 해서 일을 모두 망쳐버리다 라는 부정적 의미가 훨씬 강하다. 싹과 같은 우리의 아이들이 가정과 학교에서, 그리고 과외 학원을 전전하며 뿌리가 흔들리도록 助長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맹자는 아이들을 가르침에 마음을 망령되이 갖지 말며(心勿忘), 무리하여 잘 되게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勿助長也)고 우리 어른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어린이날 하루 만이라도 마음껏 놀도록 아이들을 助長 해 보았으면. …………………………………………………………………………………………………………………………………
? 개구리는 짠물에서 못 산다 - 정중지와(井中之蛙) 井(우물 정) 中(가운데 중) 之(갈 지) 蛙(개구리 와) 장자莊子 <추수편秋水篇>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황하의 신(神) 하백(河伯)은 가을 홍수로 황하의 물이 불어나자 기뻐하며 천하의 훌륭함이 모두 자기에게 모여있다고 생각하였다. 물을 따라 동해의 북쪽 바다에 이르자 하백은 바다의 위세에 눌려 한숨을 지었다. 그러자 북해의 신(神)인 약(若) 은, 우물 속의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해 말해도 소용없는 것은 그가 좁은 곳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오(井蛙不可以語於虛也, 拘於虛也). 지금 당신은 대해를 보고 비로소 자신의 꼴불견을 깨달았으니, 이제는 대도의 이치를 말할 수 있을 것이오. 라고 하였다. 井中之蛙 란 우물 안의 개구리, 즉 생각이나 식견이 좁은 사람이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井蛙不知大海 라거나 井底蛙 라는 표현도 모두 같은 의미이다. 얼마전 까지만해도 Globalization 인지 세계화 인지를 외치며 우물 안의 개구리 소탕을 선도했던 사람을 요즘 들어선 보기 어렵다. 뜬금없이 우물 밖으로 나가라 하니, 영어 과외가 급증하지 않고 국제 공항이 붐비지 않고서야,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 정중지와(井中之蛙) / 우물 안 개구리, 즉 견문이 좁아서 넓은 세상의 사정을 모름의 비유. 《出典》'莊子' 秋水篇 / '後漢書' 馬援傳 황하의 신(神)인 하백(河伯)이 흐름을 따라 처음으로 바다에 나와, 북해(北海)까지 가서 동해(東海)를 바라보면서, 그 끝이 없는 넓음에 놀라서 북해의 신(神)인 약(若)에게 말했다. 그러자 북해의 신(神)인 약(若)이 이렇게 말했다. "우물 안에서 살고 있는 개구리에게 바다를 얘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좁은 장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며, 여름 벌레에게 얼음을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여름만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식견(識見)이 좁은 사람에게는 도(道)를 말해도 알지 못하거니와, 그것은 그들이 상식의 가르침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좁은 개울에서 나와 큰 바다를 바라보고, 자기의 추(醜)함을 알았기 때문에 이제 더불어 큰 진리에 대하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北海若曰 井?不可以語海者 拘於處也 夏蟲不可以語於氷者 篤於時也 曲土不可以語於道者 束於敎也 今爾出於崖擊 觀於大海 乃知爾醜 爾將可與語大理矣. 이것은《莊子》'秋水篇'에 실려 있는 첫머리의 에피소드로, 하백(河伯)과 북해의 신(神)인 약(若)과의 문답은 계속된다. 이 문답을 통하여 莊子는 道의 높고 큼과 대소귀천(大小貴賤)은 정하여진 것이 아니니, 대소귀천(大小貴賤)의 구별을 잊고서 道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井中之蛙 不知大海'는 '우물 가운데 있는 개구리는 바다를 말해도 알지 못한다'라는 뜻으로 중국에서는 '井蛙'라고 말하며 또 '井底蛙'라고 말하기도 한다. 【원 말】정중와 부지대해(井中之蛙 不知大海) 【준 말】정와(井蛙) 【동의어】정와(井蛙), 정중와(井中蛙), 정저와(井底蛙), 감정지와(堪井之蛙) 【유사어】촉견폐일(蜀犬吠日), 월견폐설(越犬吠雪) ………………………………………………………………………………………………………………………………… 정중지와(井中之蛙) 井:우물 정. 中:가운데 중. 之:갈 지(…의). 蛙:개구리 와. [원말] 정중와 부지대해(井中蛙不知大海). [준말] 정와(井蛙). [동의어] 정와(井蛙), 정중와(井中蛙), 정저와(井底蛙), 감정지와(坎井之蛙). [유사어] 촉견폐일(蜀犬吠日), 월견폐설(越犬吠雪). [참조] 망양지탄(望洋之嘆), 득롱망촉(得隴望蜀). [출전]《後漢書》〈馬援專〉,《莊子》〈秋水篇〉 우물 안 개구리라는 뜻으로, 식견이 좁음의 비유. ① 왕망(王莽)이 전한(前漢)을 멸하고 세운 신(新)나라 말경, 마원(馬援)이란 인재가 있었다. 그는 관리가 된 세 형과는 달리 고향에서 조상의 묘를 지키다가 농서[隴西:감숙성(甘肅省)]에 웅거하는 외효(隗囂)의 부하가 되었다. 그 무렵, 공손술(公孫述)은 촉(蜀) 땅에 성(成)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참칭(僭稱)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외효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기 위해 마원을 보냈다. 마원은 고향 친구인 공순술이 반가이 맞아 주리라 믿고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공손술은 계단 아래 무장한 군사들을 도열시켜 놓고 위압적인 자세로 마원을 맞았다. 그리고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옛 우정을 생각해서 자네를 장군에 임명할까 하는데, 어떤가?” 마원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천하의 자웅(雌雄)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는데 공손술은 예를 다하여 천하의 인재를 맞으려 하지 않고 허세만 부리고 있구나. 이런 자가 어찌 천하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마원은 서둘러 돌아와서 외효에게 고했다. “공손술은 좁은 촉 땅에서 으스대는 재주밖에 없는 ‘우물 안 개구리[井中之蛙]’였습니다.” 그래서 외효는 공손술과 손잡을 생각을 버리고 훗날 후한(後漢)의 시조가 된 광무제(光武帝:25~27)와 수호(修好)하게 되었다. ② ‘정중지와’란 말은《장자(莊子)》〈추수편(秋水篇)〉에도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북해(北海)의 해신(海神)인 약(若)이 황하(黃河)의 하신(河神)인 하백(河伯)에게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구애하기 때문이다. 여름 벌레가 얼음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여름 한 철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일밖에 모르는 사람과 도(道)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배운 것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에 번쩍, 서에 캄캄 - 신출귀몰(神出鬼沒) 神(귀신 신) 出(날 출) 鬼(귀신 귀) 沒(없어질 몰) 회남자淮南子 <병략훈兵略訓>에는 교묘한 자의 움직임은 신이 나타나고 귀신이 걸어가는 듯하며(神出而鬼行), 별이 빛나고 하늘이 운행하는 것 같아, 진퇴 굴신의 조짐도 나타나지 않고 한계도 없어, 난조(鸞鳥:전설 속의 새이름)가 일어나듯, 기린이 떨치고 일나는 듯, 봉황새가 날 듯, 용이 오르듯, 추풍과 같이 출발하여 놀란 용과 같이 빠르다. 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적으로 하여금 어떠한 정보도 얻지 못하도록 철저한 보안 유지나 위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神出鬼沒 이란 바로 神出而鬼行 이라는 구절에서 연유된 말이다. 아무도 모르게 귀신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뜻이며, 행동이 신속하고 그 변화가 심하여 헤아릴 수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옛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神出鬼沒 했던 홍길동의 출생지를 놓고 요즈음 관련 지방 자치단체들의 논쟁이 매우 진지하다.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일 것이라는 사실도 흥미롭거니와, 귀신 같은 양반을 서로 모시겠다고 열을 올리는 후손들의 길동 할아버지 에 대한 존경심은 시대적 해결사의 출현 을 고대하는 우리들의 속마음이 드러난 것이리라. ………………………………………………………………………………………………………………………………… . 신출귀몰(神出鬼沒) - 자유 자재로 출몰하여 그 변화를 헤아릴 수 없음. 《出典》'淮南子' 兵略訓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엮은《淮南子》'兵略訓'은 도가사상(道家思想)을 기본 이론으로 한 전략론(戰略論)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아군의 계략과 진(陣)치는 일과 군대의 세력과 병기가 겉으로 보아서 적군이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것이라면, 용병에 교묘한 것이 못된다고 말하고 있다.『교묘한 자의 행동은 신(神)이 나타나고 귀신이 돌아 다니는 것처럼 별과 같이 빛나고 하늘과 같이 운행하는 것이다. 그 나아가고 물러남과 굽히고 펴는 것은 아무런 전조(前兆)도 없고, 형태도 나타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신출귀행(神出鬼行)>이란 '신(神)이 나타나고 귀신이 돌아다닌다'는 뜻으로, 귀신과 같이 나오고 들어감이 자유자재여서 예측할 수 없는 것을 말하거니와, 같은 말이 병서(兵書)인《삼략(三略)》에도 실려 있다. 이 병서는 황석공(黃石公)이 이상(溝上)에서 유방(劉邦)의 공신인 장량에게 준 것으로, 淸나라의 적호(翟灝)가 지은《통속편(通俗篇)》'귀신지부'의 <神出鬼沒>에서 나온 것으로, 이《삼략(三略)》의 <신출귀행(神出鬼行)>의 말을 들고 있다. <神出鬼沒>이 직접 나온 것은《당희장어(唐絲場語)》에 나오는 '두 머리 세 얼굴의 귀신이 나타나고 없어진다.(兩頭三面 神出鬼沒)'의 구절이지만, 이것은《淮南子》나《삼략(三略)》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최영택의 이야기 한자 온고지신(溫故知新) : 溫(익힐 온) 故(옛 고) 知(알 지) 新(새 신)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서 공자는 옛 것을 익히어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스승 노릇을 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라고 하였다. 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인과(因果) 관계 속에서 발전의 원리를 깨달아야 함을 말한 것이다. 옛 것과 새로운 것의 관계에 대한 이분법적 시각은 대립과 단절만을 만들어낸다. 구세대와 신세대, 여기에 쉰 세대와 낀 세대, X세대와 Z세대라는 표현들은 모두 지혜롭지 못한 생각에서 나온 말들이다. 올챙이를 한자로 과두(蝌蚪)라고 하고, 올챙이 적을 가리켜 과두시절(蝌蚪時節) 이라 한다. 올챙이 없는 개구리, 개구리 없는 올챙이는 존재할 수 없다. 선인들의 지혜가 응축되어 있는 고사성어(故事成語)야말로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반성과 발전의 실마리를 제시해 주는 가장 적절한 溫故知新 의 도구이다. 현대 중국어에서도 우리말의 복습(復習)을 온습(溫習) 이라 표현하고 있으니, 이는 배운 것을 익히고 또 익혀 늘 가슴 속에 간직한다는 의미이다. 새로이 고사성어(故事成語) 란을 집필함에 있어, 짧지만 깊은 옛 사람들의 지혜를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 간절하다. 두꺼운 얼굴에 부끄럼은 없다 - 후안무치(厚顔無恥) 厚(투터울 후) 顔(얼굴 안) 無(없을 무) 恥(부끄러워할 치) 옛날 중국의 하나라 계(啓) 임금의 아들인 태강은 정치를 돌보지 않고 사냥만 하다가 끝내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 난다. 이에 그의 다섯 형제들은 나라를 망친 형을 원망하며 번갈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들의 노래는 모두 書經의 <五子之歌>편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막내가 불렀다고 하는 노래에는 이러한 대목이 보인다. 만백성들은 우리를 원수라 하니, 우린 장차 누굴 의지할꼬. 답답하고 섧도다, 이 마음, 낯이 뜨거워지고 부끄러워지누나. 萬姓仇予, 予將疇依. 鬱陶乎予心, 顔厚有 . 厚顔 이란 두꺼운 낯가죽을 뜻하는데, 여기에 무치(無恥)를 더하여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로 자주 쓰인다. 이는 낯가죽이 두꺼워서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사람 을 가리킨다. 지난 주 동안, 한보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낸 증인들 중에는 후안(厚顔)을 무기로 나온 이들이 많았다.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면서도 그들의 얼굴에는 수치(羞恥)의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만백성들은 지금 그들이 태강의 동생들이 불렀다는 이 노래를 한번만이라도 읊조려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뒤 막힌 진터(배수지진) 한나라 2년(서기전 205년)에 한나라가 초나라와의 싸움에서 지니까, 여러 나라가 초나라에 붙었다. 한나라 한신이 위나라를 치고 조나라를 치러 갔다. 조나라를 치려면 정경이라는 좁은 길을 지나야 한다. 조나라는 20만 병력을 정경 어귀에 배치했다. 조나라 광무군 이좌차(이좌거)가 성안군 진여에게 말했다. “한신 군대는 멀리에서 왔으므로 군량이 뒤에 처져 있습니다. 정경은 좁아 군대가 길게 늘어질 것이므로, 내가 기습 부대 3만을 끌고 샛길로 가서 한나라 군량을 끊겠습니다.” 성안군은 선비로서 정의로운 군략을 좋아하여 기습 부대 싸움을 싫어했다. 이 사실을 염알이꾼(첩자)으로부터 들은 한신은 군대를 이끌고 정경의 좁은 길 어귀 30리 앞에서 진을 쳤다. 한신은 날랜 기병 2000명을 뽑아 모두 붉은 기를 들려 샛길로 가서 산 밑에 숨어 조나라 군진을 엿보게 해놓고 말했다. “우리 군대가 도망한다. 조나라 군대가 본부를 비우고 쫓아올 것이다. 그 틈에 조나라 본부에 들어가 조나라 군기를 빼앗고, 한나라 군기를 세우라.” 한신은 정경 어귀를 나와 강을 뒤로 하고 진을 쳤다. 한나라 장수들이 한신에게 물었다. “병법에는 산을 뒤로 하고 강을 앞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한신이 답했다. “병법에 ‘군대를 꼭 죽는 고비에 두어야만 살길이 있다’고 했다.” 이것이 한신의 ‘뒤 막힌 진터’(배수지진)이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범탈 쓴 여우(차호위호) 권세 있고 깃발 날리는 자의 위력을 등에 업고 뽐내는 일을 ‘범탈 쓴 여우’(차호위호)로 비긴다. 출전은 <전국책>의 ‘초책’ 편이다. 초나라 선왕(재위 서기전 370~340년) 때 위나라 ‘강을’이라는 입담쟁이가 와서 있었다. 그런데 그 무렵 초나라에서는 재상 소해휼이 실권을 쥐고 있어서 강을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선왕이 여러 신하에게 물었다. “우리나라 북쪽 여러 나라가 소해휼을 두려워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참말로 그런가.” 아무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 그때 강을이 ‘범탈 쓴 여우’ 이야기를 했다. “범은 모든 짐승을 잡아먹습니다. 범이 여우를 붙잡았습니다. 여우가 범에게 ‘당신이 나를 먹으면 안 됩니다. 하느님이 나를 뭇짐승의 우두머리로 삼았습니다. 그런 나를 먹으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됩니다.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당신 앞에서 걸어갈 테니 그 뒤를 따라와 보십시오. 뭇짐승이 도망하나 안 하나’라고 했습니다. 범은 여우 말이 그럴듯하여 여우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짐승들이 모두 도망쳤습니다. 범은 짐승들이 여우가 무서워서 도망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지금 임금님의 영토는 오천리 사방, 군대는 백만, 이것을 소해휼 한 사람에게 맡겨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북쪽 여러 나라가 소해휼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님의 백만 군대를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사마귀의 도끼(당랑지부, 당랑거철) 사마귀(당랑)가 등을 빳빳이 세우고 도끼를 추켜올려 으르대는 자세를 취한다. 그 턱없이 거센 서릿발은 일찍부터 사람의 눈길을 끌었던 것 같다. <장자>의 ‘인간세’ 편에 “그대, 저 사마귀를 아는가 모르는가. 그가 팔을 추켜세우고 수레바퀴에 부딪는다. 그가 제 할 일을 이겨내지 못함을 알지 못하는 짓이다. 그러면서 제 재주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이를 경계하고 삼가라. 이를 어기면 위태로운 것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여기에는 사마귀의 도끼 이야기는 없지만, 제 힘이 모자람을 돌아보지 않고 적에게 대드는 일이 덧없는 저항이라는 뜻은 엿보인다. 이것이 ‘사마귀의 도끼’로 나타나는 것은 육조시대 양나라 때 편찬된 <문선>에서다. 진림이라는 사람이 쓴 “원소를 위해서 예주에 격문을 보낸다”는 글이다. 그 글 가운데 “사마귀의 도끼로 큰 수레의 바퀴를 막으려고 한다”는 대목이 있다. “제나라 장공이 사냥을 나가는데, 사마귀가 앞발을 들고 수레바퀴를 멈추려 했다”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하늘 보고 주먹질(손가락질)한다”는 것이 있다. 하늘이 밉다고 주먹질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감히 당치도 않은 엄청난 짓을 한다는 뜻이다. “사마귀가 발도끼로 큰 수레를 막는다”는 것은 “하늘을 보고 주먹질하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흙불의 괴로움(도탄지고) ‘도탄지고’는 ‘도’가 흙구렁(진구렁), ‘탄’이 숯불, ‘지’가 의, ‘고’는 괴로움으로서, 흙구렁이나 숯불 속에 빠졌다는 뜻으로, 매우 괴로운 경우를 말한다. 출전은 <서경>의 ‘중훼지고’ 편이다. 내용은 탕왕이 하늘 뜻을 따르고 백성 뜻에 응하여 걸왕을 쳤다 하더라도 요순 이래 한 번도 있지 않은 일이므로 그의 마음에 늘 거리껴서, 중훼가 이 글을 지어 탕왕의 뜻을 풀어 밝혀 천하 백성에게 알린 것이다. 하나라 걸왕은 사나운 임금이었으므로 이를 쳐 없애고 새로운 왕조를 세운 이가 은나라 탕왕이었다. 탕왕의 처지에서 보면 그래도 자기 임금에게 반역한 것이 되므로, 거꾸로 그 혁명이 정당하다고 주장할 필요가 있었다. 탕왕의 어진 신하 중훼가 탕왕이 한 일이 올발랐다고 아뢰고 또 백성에게 알린 것이다. 이 글에 본받을 글귀가 많다. “오호라,/ 헤아리건대 하늘이 백성을 낳으셨는데,/ 하고자 함만 있고 가고자 함이 없으면 어지럽다./ (중략) 하나라가 덕을 잃어 백성이 도탄에 빠졌다./ 하늘이 곧 탕왕에게 용기와 슬기를 주시어,/ 온 천하를 바로잡아/ 우왕의 뒤를 잇게 하셨다. (하략)” 하나라 왕조는 천자가 덕이 없어서 백성이 ‘흙불의 괴로움’(도탄지고)에 빠졌다. 그래서 하늘이 탕왕에게 용기와 슬기를 내려 천하를 바로잡고 하나라 왕조를 세운 우왕의 본디 영토를 이어받게 했으므로 그 가르침을 따라 천명대로 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애꾸미르(독안용) ‘애꾸미르’(애꾸눈 용)는 당나라 말기 이극용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당당했던 당나라도 끝 무렵에는 쇠약해져서 힘을 잃고 큰 반란이 잇따라 일어났다. 그 으뜸이 ‘방훈의 난’이다. 정부 쪽 군대는 싸울 뜻이 없어 쓸모가 없었으나, 그 가운데에서도 잘 싸워 이 반란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사타 겨레 출신 장수 ‘주사적심’이었다. 그 공으로 적심은 황실과 같은 성 이씨, 이름은 ‘국창’이라고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서기 875년, 산둥의 소금 밀수 상인 황소가 일으킨 반란은 규모가 커서 중국 전역을 거의 혼란 속으로 빠뜨리고, 끝내는 서울 장안을 점령하여 도읍을 삼고 나라이름을 ‘대제’라 일컬었다. 당나라 정부는 쓰촨으로 도피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그때 뛰어난 공을 세운 사람이 이국창의 아들 극용이었다. 극용의 군대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으므로 ‘까마귀병’이라고 불려, 황소의 장병이 “까마귀병이 왔다”는 말을 들으면 그냥 도망쳤다고 한다. 극용은 이 난을 평정했다. 이 일을 <자치통감>에 “극용은 나이 28, 여러 장수 중에서 가장 젊다. 그런데도 황소를 쳐서 장안을 도로 찾았다. 그 공이 으뜸이다. 군대의 세력이 가장 강하여 여러 장수들이 두려워했다. 극용은 한 눈 애꾸눈이다”라고 적고 있다. 아마 한 눈이 작았거나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 사람들이 이를 ‘애꾸미르’(독안용)라고 했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