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택의 이야기 한자
온고지신(溫故知新) : 溫(익힐 온) 故(옛 고) 知(알 지) 新(새 신)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서 공자는 옛 것을 익히어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스승 노릇을 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라고 하였다. 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인과(因果) 관계 속에서 발전의 원리를 깨달아야 함을 말한 것이다. 옛 것과 새로운 것의 관계에 대한 이분법적 시각은 대립과 단절만을 만들어낸다. 구세대와 신세대, 여기에 쉰 세대와 낀 세대, X세대와 Z세대라는 표현들은 모두 지혜롭지 못한 생각에서 나온 말들이다. 올챙이를 한자로 과두(蝌蚪)라고 하고, 올챙이 적을 가리켜 과두시절(蝌蚪時節) 이라 한다. 올챙이 없는 개구리, 개구리 없는 올챙이는 존재할 수 없다. 선인들의 지혜가 응축되어 있는 고사성어(故事成語)야말로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반성과 발전의 실마리를 제시해 주는 가장 적절한 溫故知新 의 도구이다. 현대 중국어에서도 우리말의 복습(復習)을 온습(溫習) 이라 표현하고 있으니, 이는 배운 것을 익히고 또 익혀 늘 가슴 속에 간직한다는 의미이다. 새로이 고사성어(故事成語) 란을 집필함에 있어, 짧지만 깊은 옛 사람들의 지혜를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 간절하다.
두꺼운 얼굴에 부끄럼은 없다 - 후안무치(厚顔無恥) 厚(투터울 후) 顔(얼굴 안) 無(없을 무) 恥(부끄러워할 치)
옛날 중국의 하나라 계(啓) 임금의 아들인 태강은 정치를 돌보지 않고 사냥만 하다가 끝내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 난다. 이에 그의 다섯 형제들은 나라를 망친 형을 원망하며 번갈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들의 노래는 모두 書經의 <五子之歌>편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막내가 불렀다고 하는 노래에는 이러한 대목이 보인다.
만백성들은 우리를 원수라 하니, 우린 장차 누굴 의지할꼬. 답답하고 섧도다, 이 마음, 낯이 뜨거워지고 부끄러워지누나. 萬姓仇予, 予將疇依. 鬱陶乎予心, 顔厚有 .
厚顔 이란 두꺼운 낯가죽을 뜻하는데, 여기에 무치(無恥)를 더하여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로 자주 쓰인다. 이는 낯가죽이 두꺼워서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사람 을 가리킨다. 지난 주 동안, 한보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낸 증인들 중에는 후안(厚顔)을 무기로 나온 이들이 많았다.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면서도 그들의 얼굴에는 수치(羞恥)의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만백성들은 지금 그들이 태강의 동생들이 불렀다는 이 노래를 한번만이라도 읊조려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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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것을 익히고 그것으로 미루어 새 것을 안다는 뜻.
溫故는 '옛 것[故]을 배우다[溫]'이다. 溫에는 '배우다'는 뜻도 있다. 知新은 '새 것[新]을 알다
[知]'이니 溫故之新은 '옛 것을 공부하면 새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공자는《논어(論語)》〈위정편(爲政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옛 것을 익히어 새 것을 알면 이로써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느니라[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남의 스승이 된 사람은 고전(古典)에 대한 박식(博識)만으로는 안 된다. 즉 고전을 연구하여 거기서
현대나 미래에 적용될 수 있는 새로운 도리를 깨닫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예기(禮記)》〈학기(學記)〉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기문지학(記問之學:피상적인 학문)은 이로써 남의 스승이 되기에는 부족하다[記問之學 不足
以爲師矣]." 지식을 암기해서 질문에 대답하는 것만으로는 남의 스승이 될 자격이 없다는 뜻인
데 이 말은 실로 '온고지신'과 표리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고전을 연구함에 있어서도
고전의 현대적 의의를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며 여기에 고전 학습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