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 흙수저 정직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옛이야기들은 대부분 가난하더라도 착하게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잘살게 되리라는 교훈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더 이상 이런 얘기를 믿지 않는 것 같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노력보다 부모의 배경에 따라 장래가 결정된다는, 젊은이들의 현실 자조적인 생각에서 나온 표현이다. ‘금수저’는 돈 많고 능력 있는 부모를 둔 사람을 가리키는 반면, ‘흙수저’는 돈도 배경도 변변찮아 기댈 데가 없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이 말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라고 하는 영어 관용 표현으로부터 나왔다. 은은 값진 귀금속이면서 독극물에 닿으면 검게 변하는 특성이 있어 예로부터 고급 식기로 사용돼 왔다. 이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은수저는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기에, 날 때부터 ‘은수저를 물고’ 있었다는 것은 곧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의미가 되었다. 여기서 유래하여 처음 ‘은수저’라는 말이 집안 좋은 이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다가 은보다 금이 더 가치가 높다는 데서 곧 ‘금수저’란 말로 대체되었다. 이어서 ‘금수저’에 대비하여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흙수저’라는 말이 추가로 만들어진 것이다. 인터넷에는 금수저 연예인 명단과 함께 자신이 흙수저 계층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표까지 돌아다니고 있다. 언어는 사회의 거울이라고 한다. 특히 유행하는 신조어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을 꾸밈없이 비춰준다. 그것이 ‘금수저’와 ‘흙수저’로 상징되는 부의 편중과 대물림 현상이라는 것이 가슴 아프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2.08 風文 R 3331
김치 담그셨어요? 가뭄에도 불구하고 올해 배추와 무의 작황이 나쁘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도 김장철을 앞둔 재배 농가의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은 것 같다. 배추 파동으로 김치가 금치가 되는 해가 있는가 하면 어느 해에는 수확도 하지 않은 밭을 갈아엎기도 하고…. 가슴 아픈 일이다. 소비자도 농민도 올해는 모두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겨우내 먹을 김치를 담그는 김장은 우리 민족의 중요한 연중행사이다. 그런데 ‘김치를 담그다’와 ‘김치를 담다’ 중 어느 것이 맞는지 헷갈려 하는 사람이 많다. 김치나 술, 젓갈, 장 등의 재료를 버무리거나 물을 부어서 익거나 삭도록 두는 것은 ‘담그다’이다. ‘담다’는 그릇 등에 뭔가를 넣는 것을 말하므로 ‘담그다’와 구별해서 써야 한다. ‘담그다’가 원형이기 때문에 ‘담아’ ‘담으니’ ‘담았다’가 아니라 ‘담가’ ‘담그니’ ‘담갔다’ 등으로 쓴다. 이렇게 기억하면 쉽다. “담근 김치를 독에 담았다”. 파나 무채, 젓갈 같은 것을 고춧가루와 잘 버무린 것을 절인 배추 사이사이에 넣어 주는 ‘김칫소’는 수육과 곁들이면 별미 중의 별미이다. 김장하는 날이 동네 잔칫날이 되는 이유이다. 흔히 ‘김칫속’이라 하는데 이는 ‘김칫소’의 잘못이다. 송편이나 만두. 김치 등의 속 재료는 ‘소’이다. ‘오이소박이’는 오이 사이사이에 소를 박아 넣은 김치다. ‘오이소배기’는 틀린 말이다. 마찬가지로 ‘차돌배기’가 아니라 ‘차돌박이’가 맞다. | 종류가 200 가지가 넘는다는 김치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치는 총각김치다. 잘 익은 총각김치만 있으면 다른 반찬은 필요 없다. 무청의 생김새가 총각이 머리를 땋은 것과 비슷해서 ‘총각무’가 되었단다. ‘알타리무’ ‘알무’ ‘달랑무’라고도 하는데 ‘총각무’만 표준어다. 임수민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2.08 風文 R 3574
지록위마(指鹿爲馬) 指:손가락/가리킬 지. 鹿:사슴 록. 爲:할/위할 위. 馬:말 마. [출전]《史記》〈秦始皇本紀〉 사슴을 가리켜 말[馬]이라고 한다는 뜻. 곧 ① 윗사람을 농락하여 마음대로 휘두름의 비유. ② 위압적으로 남에게 잘못을 밀어붙여 끝까지 속이려 함의 비유. 진(秦)나라 시황제갸 죽자 측근 환관인 조고(趙高:~B.C. 208)는 거짓 조서(詔書)를 꾸며 태자 부소(扶蘇)를 죽이고 어린 호해(胡亥)를 세워 2세 황제로 삼았다. 현명한 부소보다 용렬한 호해가 다루기 쉬웠기 때문이다. 호해는 ‘천하의 모든 쾌락을 마음껏 즐기며 살겠다고 말했을 정오로 어리석었다고 한다. 어쨌든 조고는 이 어리석은 호해를 교묘히 조종하여 경쟁자인 승상 이사(李斯)를 비롯, 그밖에 많은 구신(舊臣)들을 죽이고 승상이 되어 조정의 실권을 장악했다. 그러자 역심이 생긴 조고는 중신들 가운데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폐하, 말[馬]을 바치오니 거두어 주시오소서.” “승상은 농담도 잘 하시오. ‘사슴을 가지고 말이라고 하다니[指鹿爲馬]’…‥. 어떻소? 그대들 눈에도 말로 보이오?” 말을 마치자 호해는 웃으며 좌우의 신하들을 둘러보았다. 잠자코 있는 사람보다 ‘그렇다’고 긍정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고는 부정한 사람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죄를 씌워 죽여 버렸다. 그 후 궁중에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천하는 오히려 혼란에 빠졌다. 각처에서 진나라 타도의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중 항우와 유방의 군사가 도읍 함양(咸陽)을 향해 진격해 오자 조고는 호해를 죽이고 부소의 아들 자영을 세워 3세 황제로 삼았다(B.C. 207). 그러나 이번에는 조고 자신이 자영에게 주살 당하고 말았다.
Board 고사성어 2024.01.20 風文 R 678
바람을 피다? '바람을 피다'는 '바람을 피우다'의 잘못된 표현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한 이성에만 만족하지 아니하고, 몰래 다른 이성과 관계를 가질” 때 흔히 ‘바람을 피우다’라는 표현이 쓰인다. 이와 더불어 “바람을 피다가 걸리다”, “감히 바람을 펴” 등처럼 ‘바람을 피다’라는 표현 또한 널리 쓰이고 있다. ‘바람피지 마’라는 대중가요의 제목까지 있을 정도다. 그러나 ‘바람을 피다’는 ‘바람을 피우다’의 잘못된 표현이다. ‘바람을 피우다’에서 ‘피우다’는 타동사다. 즉, 동작의 대상인 목적어를 필요로 하는 동사다. 그리하여 이 표현에서는 그 앞의 ‘바람’이 목적어로 쓰인 것이고, ‘바람’에 목적격 조사 ‘을’을 결합하여 그것이 목적어임을 분명하게 표시하고 있다. 목적어와 서술어가 적절하게 호응하고 있는 표현이다. 반면 ‘바람을 피다’는 목적어와 서술어의 호응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 ‘피다’는 목적어를 취하지 않는 자동사인데 그 앞에 ‘바람을’이라는 목적어가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이유로 ‘담배를 피다’도 잘못된 표현이다. ‘담배를 피다’는 ‘담배를 피우다’로 바꿔 써야 한다. 한편 “밤을 새는 게 버릇이 되다”처럼 ‘밤을 새다’라는 표현도 자주 쓰이고 있는데 이 또한 목적어와 서술어 간의 호응에 문제가 있는 표현이다. ‘새다’는 목적어를 취하지 않는 자동사로서 그 앞에 ‘잠을’이라는 목적어가 쓰일 수 없기 때문이다. ‘새다’ 대신 ‘새우다’를 써서 ‘밤을 새우다’라고 해야 한다. 이처럼 ‘바람을 피우다’나 ‘밤을 새우다’ 대신 ‘바람을 피다’나 ‘밤을 새다’가 널리 쓰이는 것은 그 간결성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언어 사용에 대한 무신경이 더 큰 원인이 아닐까? 간략한 표현일지라도 어법을 꼼꼼히 살펴 정확하게 쓰려는 습관을 기를 필요가 있다. 박용찬 대구대 국어교육과 부교수
Board 말글 2024.01.20 風文 R 3311
‘시월’ ‘오뉴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라디오에서 자주 나오는 노래가 있다. 낮은 바리톤 목소리에 유려한 소프라노 화음이 곁들여진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이다. 고운 선율뿐만 아니라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람은 죄가 될 테니까’라는 아름다운 가사 덕에 결혼식 축가로도 자주 불린다. 그런데 이 노래 제목은 왜 ‘십월’이 아니고 ‘시월’일까? ‘십 일, 십 원, 십 점’ 등 ‘열’을 나타내는 한자 ‘十’은 모두 ‘십’으로 읽히는데, ‘월’과 결합할 때만 유독 ‘시월’로 발음한다. ‘유월’도 마찬가지로 ‘육월’이라 하지 않고 ‘유월’이라고 한다. ‘십월, 육월’ 대신 ‘시월, 유월’로 소리를 내는 것은 ‘활음조’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활음조란 인접해 있는 두 소리를 연이어 발음하기 어려울 때 어떤 소리를 더하거나 빼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소리로 바꾸어서 발음하기 쉽고 듣기 부드러운 소리가 되게 하는 것이다. ‘한글맞춤법’에서는 ‘시월, 유월’의 ‘시’나 ‘유’처럼 한자의 본래 음이 변해서 사람들 사이에 널리 통용되는 발음이 있다면 그 소리에 따라 적도록 하고 있다. 굳이 그 한자의 본래 발음을 살려 ‘십월’이나 ‘육월’로 적지 않는다.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말과 그 말을 적은 글이 서로 다르지 않게 하려는 ‘언문일치’ 원칙이 적용된 것이다. 활음조의 영향으로 본래의 음과 다르게 발음되는 예에는 ‘시월, 유월’ 말고도 ‘오뉴월, 초파일’ 등이 있다. 오월과 유월을 아울러 이를 때에는 ‘오륙월’이나 ‘오유월’이 아니라 ‘오뉴월’로 발음하고 표기해야 한다. ‘부처님 오신 날’도 ‘사월 초파일’이라고 하지 ‘초팔일’이라고 하지 않는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1.20 風文 R 3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