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등장하는 말 중에 ‘갑질’이 있다.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말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약자인 상대에게 하는 부당한 행위’를 가리킨다. 이 말은 차례나 등급을 매길 때 첫째를 이르는 ‘갑’에 접미사 ‘질’이 결합해서 만들어졌다. 보통 계약서를 쓸 때 계약의 두 당사자를 편의상 ‘갑, 을’로 칭하게 되는데, 이때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쪽이 ‘갑’이 된다. 이런 관습으로부터 ‘갑’에는 권력이나 지위가 높은 쪽, ‘을’에는 낮은 쪽의 의미가 덧씌워지게 되었다. 여기에 ‘질’이 붙어 새말이 만들어진 게 흥미롭다. ‘질’이 붙은 말은 대개 부정적인 뜻으로 쓰인다. 물론 ‘가위질’이나 ‘바느질’처럼 부정적인 뜻 없이 단순히 그 도구를 사용해서 하는 일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직업이나 직책, 또는 사람이 하는 행위에 ‘질’이 붙을 때는 그 일을 비하하거나, 또는 그 일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가치 평가가 덧붙는다. 비단 ‘도둑질’ ‘싸움질’ ‘고자질’ 같이 본래 나쁜 일을 가리킬 때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선생질’이 있다. 학생들을 교육하는, 존중 받는 직업에 ‘질’이라는 접미사가 결합됨으로써 그 일을 하찮게 여기거나 낮잡는 상황에서만 쓰는 말이 돼버린다. ‘전화질’이나 ‘자랑질’도 마찬가지다. 쓸 데 없이 자주 전화를 하거나 지나치게 자랑을 많이 하는 경우를 비난하는 의미로만 쓰인다. 그런데 북한말에는 ‘질’에 그런 비하의 뜻이 없다고 한다. 새터민들 중에는 ‘선생질’을 ‘교사로서의 직분’이라는 평범한 의미로 썼다가 남한 사람들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사전에 없지만 ‘갑질’이란 말에는, 그런 행동이 해서는 안 될 ‘못된 짓’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3.27 風文 R 3779
천고마비(天高馬肥) 天:하늘 천. 高:넢을 고. 馬:말 마. 肥:살찔 비. [원말] 추고마비(秋高馬肥). [동의어]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 [유사어] 천고기청(天高氣淸). [출전]《漢書》〈匈奴專〉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 곧 ① 하늘이 맑고 오곡 백과(五穀百果)가 무르익는 가을을 형용하는 말. ② (흉노에게 있어, 전하여 오늘날에는 누구에게나) 활약(동)하기 좋은 계절을 이르는 말. 은(殷)나라 초기에 중국 북방에서 일어난 흉노는 주(周)/진(秦)/한(漢)의 삼왕조(三王朝)를 거쳐 육조(六朝)에 이르는 근 2000년 동안 북방 변경의 농경 지대를 끊임없이 침범 약탈해 온 표한(剽悍)한 유목 민족이었다. 그래서 고대 중국의 군주들은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늘 고심했는데 전국시대에는 연(燕)/조(趙)/진(秦)나라의 북방 변경에 성벽을 쌓았고,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은 기존의 성벽을 수축(修築)하는 한편, 증축 연결(增築連結)하여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완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흉노의 침입은 끊이지 않았다. 북방의 초원에서 방목과 수렵으로 살아가는 흉노에게 우선 초원이 얼어붙는 긴 겨울을 살아야 할 양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방 변경의 중국인들은 ‘하늘이 높고 말이 살지는[天高馬肥]’ 가을만 되면 언제 흉노가 쳐들어올지 몰라 전전긍긍(戰戰兢兢)했다고 한다.
Board 고사성어 2024.03.26 風文 R 615
웃어른/ 윗집/ 위층 걸 그룹 EXID의 ‘위아래’라는 노래가 인기다. “위아래 위 위 아래~” 흥겹고 반복적인 리듬에 묘한 중독성이 있어 나도 자주 흥얼거린다. ‘위’와 관련된 말 중에서 ‘웃-’ ‘윗-’ ‘위-’는 헷갈리기 쉽다. 웃어른? 윗어른? 표준어 규정에서는 ‘웃-’과 ‘윗-’은 ‘윗’으로 통일하고 있다. 다만 위아래의 대립이 없는 것은 ‘웃-’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윗목(아랫목), 윗도리(아랫도리), 윗마을(아랫마을), 윗집(아랫집), 윗니(아랫니)가 표준어가 되는 것이다. 어른의 경우 ‘웃어른’은 있지만 ‘아랫어른’은 없으므로 ‘웃어른’으로 쓴다. 마찬가지로 ‘웃풍’ ‘웃통’ ‘웃돈’이 표준어이다. 그러나 요즘은 ‘웃어른’이라는 말보다 ‘윗어른’이, ‘웃풍’이라는 말보다 ‘위풍’이 훨씬 많이 쓰이는 듯하다. ‘윗옷’과 ‘웃옷’은 무엇이 맞을까? 둘 다 표준어이지만 뜻이 다르다. ‘윗옷’은 위에 입는 옷, ‘상의(上衣)’의 뜻이 되고 ‘웃옷’은 맨 위에 입는 옷, 즉 ‘외투’의 뜻이 된다. ‘윗-’과 ‘위-’는 어떻게 구분하여 쓸까? 명사 ‘위’에 관형의 뜻을 지닌 사이시옷이 결합한 ‘윗-’이 붙는 것이 원칙이지만 된소리나 거친 소리 앞에서는 ‘위-’를 쓴다. 따라서 위층, 위쪽, 위짝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웃풍’ ‘웃통’도 ‘우풍’ ‘우통’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윗’은 명사 ‘위’에 사이시옷이 결합한 형태이지만 ‘웃-’은 그 자체가 ‘위’의 뜻을 가진 접두사이므로 ‘웃풍’ ‘웃통’이 맞다. 이것만 기억하자.“위아래 위 위 아래~” 위아래가 있으면 ‘윗-’, 위만 있으면 ‘웃-’으로 쓴다. 임수민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3.26 風文 R 3435
온나인? 올라인? 외국어에서 차용한 외래어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이러한 외래어의 한글 표기를 위해 ‘외래어 표기법’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한글 표기만으로는 외래어의 발음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외래어 발음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온라인’이다. ‘온라인’은 영어 ‘on-line’을 차용한 외래어이다. 그런데 ‘온라인’을 [올라인]으로 발음하는 사람도 있고 [온나인]으로 발음하는 사람도 있다. 둘 가운데 어느 것이 적절한지도 불분명하다. 영어에서는 자음 연쇄 ‘nl’를 그대로 발음할 수 있다. 반면 우리말에서는 자음 연쇄 ‘ㄴㄹ’을 그대로 발음할 수 없다. ‘ㄴㄹ’은 ‘신라[실라]’처럼 ‘ㄹㄹ’로 바꾸거나 ‘결단력[결딴녁]처럼 ‘ㄴㄴ’로 바꾸어 발음해야 한다. ‘온라인’도 한글 표기 그대로 발음할 수 없고 [올라인]이나 [온나인]으로 발음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ㄴㄹ’을 ‘ㄹㄹ’로 바꾸어 발음하거나 ‘ㄴㄴ’으로 바꾸어 발음하는 것은 얼마간 구분된다. ‘신라’와 ‘결단력’은 각각 ‘신-라’와 ‘결단-력’으로 분석되는데, ‘신-라’의 ‘신’처럼 앞말이 홀로 쓰일 수 없으면 ‘ㄹㄹ’로, ‘결단-력’의 ‘결단’처럼 앞말이 홀로 쓰일 수 있으면 ‘ㄴㄴ’으로 바꾸어 발음한다. ‘온라인’도 ‘온-라인’으로 어원적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온-라인’의 ‘온’이 홀로 쓰일 수 있는 말인지 여부를 결정하기 쉽지 않다. 영어에서 ‘on’은 전치사로서 홀로 쓰일 수 있는 말로 볼 수 있으나 우리말에는 전치사가 없다. 우리말에서 ‘온’을 별개 단어로 볼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사견이긴 하나 ‘온라인’을 [올라인]으로 발음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 박용찬 대구대 국어교육과 부교수
Board 말글 2024.03.26 風文 R 3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