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수성(創業守成) 創:비롯할/시작할 창. 業:업 업. 守:지킬 수. 成:이룰 성. [원말] 이창업 난수성(易創業難守成). [출전]《唐書》〈房玄齡專〉,《貞觀政要》〈君道篇〉,《資治通鑑》 일을 시작하기는 쉬우나 이룬 것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말. 수(隋:581~619)나라 말의 혼란기에 이세민(李世民)은 아버지인 이연(李淵)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관중(關中)을 장악했다. 이듬해(618) 2세 양제(煬帝)가 암살되자 이세민은 양제의 손자인 3세 공제(恭帝)를 폐하고 당(唐:618~907) 나라를 ‘창업’했다. 626년 고조(高祖) 이연에 이어 제위에 오른 2세 태종(太宗) 이세민은 우선 사치를 경계하고, 천하 통일을 완수하고, 외정(外征)을 통해 국토를 넓히고, 제도적으로 민생 안정을 꾀하고, 널리 인재를 등용하고, 학문?문화 창달에 힘씀으로써 후세 군왕이 치세(治世)의 본보기로 삼는 성세(盛世)를 이룩했다. 이 성세를 일컬어 ‘정관의 치[貞觀之治:태종 정관 연간(627~649)의 치세]’라고 한다. ‘정관의 치’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결단력이 뛰어난 좌복야(左僕射) 두여회(杜如晦), 기획력이 빼어난 우복야(右僕射) 방현령(房玄齡), 강직한 대부(大夫) 위징(魏徵) 등과 같은 많은 현신들이 선정(善政)에 힘쓰는 태종을 잘 보필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태종은 이들 현신이 모인 자리에 이런 질문을 했다. “창업과 수성은 어느 쪽이 어렵소?” 방현령이 대답했다. “창업은 우후 죽순(雨後竹筍)처럼 일어난 군웅 가운데 최후의 승리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인 만큼, 창업이 어려운 줄로 아나이다.” 그러나 위징의 대답은 달랐다. “예로부터 임금의 자리는 간난(艱難) 속에서 어렵게 얻어, 안일(安逸) 속에서 쉽게 잃는 법이옵니다.그런 만큼 수성이 어려운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그러자 태종이 말했다. “방공(房公)은 짐과 더불어 천하를 얻고, 구사 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났소. 그래서 창업이 어렵다고 말한 것이오. 그리고 위공(魏公)은 짐과 함께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 항상 부귀에서 싹트는 교사(驕奢:교만하고 사치함)와 방심에서 오는 화란(禍亂)을 두려워하고 있소. 그래서 수성이 어렵다고 말한 것이오. 그러나 이제 창업의 어려움은 끝났소. 그래서 짐은 앞으로 제공(諸公)과 함께 수성에 힘쓸까 하오.”
Board 고사성어 2024.02.21 風文 R 707
가던 길 그냥 가든가 “딴 여자 찾아보던가/ 아니면 가던 길 지나가던가” 요즘 인기 있는 걸 그룹의 노래 가사다. 노래만 들을 때는 몰랐는데 텔레비전 화면에 가사가 자막으로 나오니 잘못된 표기가 눈에 띈다. 바로 ‘찾아보던가, 지나가던가’의 ‘던가’인데, ‘든가’로 써야 맞다. 그러면 ‘가던 길’도 ‘가든 길’로 써야 하나? ‘던’과 ‘든’은 발음이 비슷해서 혼동하기 쉬운데 쓰임이 다른 말이므로 구분해서 써야 한다. ‘던’은 지난 일을 나타내는 ‘더’에 관형사형 어미 ‘ㄴ’이 붙어서 된 말로, 앞말이 과거에 일어난 일임을 나타낸다. ‘새집은 이전에 살던 집보다 훨씬 크다’거나 ‘깊던 물이 얕아졌다’처럼, ‘던’은 항상 과거와 관련 있는 상황에 쓰인다. 이 문장들에서 ‘살던’ 일은 지금이 아닌 과거의 일이고, 물이 깊었던 것도 이미 지나간 시절의 일이다. ‘든’은 ‘든지’ 또는 ‘든가’가 줄어진 말로, 선택과 관련된 상황에서 쓰인다. ‘노래를 부르든 춤을 추든 마음대로 해라’ ‘어디서 무엇을 하든 이것만은 기억하기 바란다’처럼 여러 대상들 중에 무엇이든 선택이 가능할 때 쓴다. 위 첫 번째 예문은 노래를 부르는 일과 춤을 추는 일 중에서 무엇을 해도 좋다는 의미다. 두 번째 문장에서는 둘 이상이 직접 나열되진 않았지만 ‘어디서 무엇을’이라는 말이 다양하게 열린 가능성을 나타내므로 역시 선택의 의미가 들어 있다. 인용한 노래 가사는 ‘딴 여자를 찾든지 말든지’ ‘가던 길을 계속 가든지 말든지’ 상관 않겠다는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선택의 ‘든’을 사용해서 ‘찾아보든가, 지나가든가’로 써야 맞다. 다만 ‘가던 길’의 ‘던’은 길을 걸어가는 행위가 잠시 전이긴 하지만 분명히 과거의 일이므로 ‘던’을 쓰는 게 맞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2.21 風文 R 3441
‘끄물끄물’ ‘꾸물꾸물’ 반가운 단비가 내렸다. 올 가을 들어 전국적으로 비다운 비가 내린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우리도 이제 물 부족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때가 되었다. 비 때문에 요 며칠 맑은 하늘을 보지 못했다. 자꾸 흐려져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를 ‘끄물끄물’하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끄물끄물’의 발음이 어려워서인지는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꾸물꾸물’로 잘못 쓰고 있다. ‘꾸물꾸물’은 매우 느리게 자꾸 움직이는 모양, 혹은 게으르고 굼뜨게 행동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로 ‘끄물끄물’과는 뜻이 다르다. 이렇게 기억하면 쉽다. “날씨가 끄물끄물하다고 너까지 꾸물꾸물거리는 거니?” 날씨와 관련해서 자주 혼동하는 말 중에 ‘작열’과 ‘작렬’이 있다. ‘작열하는 태양’이 맞을까? ‘작렬하는 태양’이 맞을까? ‘작열(灼熱)’은 ‘사를 작’에 ‘더울 열’을 써서 ‘뜨겁게 타오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작열하는 태양’ ‘작열하는 사막’과 같이 쓰는 것이 맞다. 비유적으로는 ‘분노가 작열하다’와 같이 쓸 수 있다. 반면에 ‘작렬(炸裂)’은 ‘터질 작’에 ‘찢을 렬’을 써서 ‘터져서 퍼진다’는 뜻이 있다. 포탄이 터지는 것처럼 박수가 터져 나온다거나 경기에서 공격이 연속해서 나올 때 ‘박수가 작렬하다’ ‘골이 작렬하다’와 같이 쓸 수 있다. 요즘 방송이나 광고 등에서 ‘ㅇㅇ작렬’이라는 말을 많이 접한다. 매력이 넘칠 때, 혹은 연속해서 실수를 해댈 때 ‘매력 작렬’ ‘실수 작렬’ 등과 같이 쓸 수 있을 것이다. ‘작열’의 발음을 〔자결〕로 하는 경우가 있는데 ‘작열’과 ‘작렬’ 모두 발음은 〔장녈〕로 같다. 아무튼 당분간은 맑게 갠 하늘보다 ‘끄물끄물’한 하늘이 더 반가울 것 같다. 임수민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2.21 風文 R 4015
징갱취제(懲羹吹?) 懲:징계할 징. 羹:국 갱. 吹:불 취. ?:냉채 제. [동의어] 징갱취채(懲羹吹菜), 징갱취회(懲羹吹膾). [유사어] 징선기여(懲船忌輿), 오우천월(吳牛喘月). [출전]《楚辭》〈七章 惜誦〉 뜨거운 국에 데어서 냉채를 후후 불고 먹는다는 뜻으로, 한 번 실패 한 데 데어서 모든 일에 지나치게 조심함의 비유. 전국 시대 말엽, 진(秦)나라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은 초(楚)/제(齊) 두 나라뿐이었다. 그래서 진나라 재상 장의(張儀)는 초/제 동맹의 강화론자(强化論者)인 초나라의 삼려 대부[三閭大夫:소(昭), 굴(屈).경(景) 세 왕족의 족장(族長)] 굴원[屈原:이름은 평(平), B.C. 343?~277?]을 제거하기로 작정하고 기회를 노렸다. 이윽고 초나라 회왕(懷王)의 총회(寵姬) 정수(鄭袖)와 영신 근상(勤尙) 등이 굴원을 증오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장의는 곧 그들을 매수하여 굴원의 실각 공작을 폈다. 드디어 굴원이 조정으로부터 축출되자 장의는 회왕에게 제나라와 단교하면 진나라의 국토 600리를 할양하겠다고 제의했다. 그래서 회왕은 제나라와 단교했으나 장의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속았다는 것을 안 회왕은 분을 참지 못해 진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대패하고 도리어 접경 지역의 국토까지 빼앗겼다. 회왕은 지난 일을 후회하고 굴원을 다시 등용했다. 그 후 10년이 지난(B.C.299) 어느 날 진나라로부터 우호 증진이란 미명 아래 회왕을 초청하는 사신이 왔다. 굴원은 믿을 수 없는 진나라의 초청에 응해서는 안 된다며 극구 반대했다. 그러나 회왕은 왕자 자란(子蘭)의 강권에 따라 진나라에 갔다가 포로가 되어 그 이듬해 객사하고 말았다. 초나라에서는 태자가 왕위에 오르고 동생인 자란이 재상이 되었다. 굴원은 회왕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자란에게 책임을 물었으나 이는 도리어 참소(讒訴)를 초래하는 결과가 되어 또다시 추방당하고 말았다. 이때 그의 나이는 46세였다. 그 후 10년간 오직 조국애에 불타는 굴원은 망명도 하지 않고 한결같이 동정호(洞庭湖) 주변을 방랑하다가 마침내 울분이 복받친 나머지 멱라(汨羅:동정호 남쪽을 흐르는 강)에 몸을 던져 수중 고혼(水中孤魂)이 되었다. 이후 사람들은 굴원의 넋을 ‘멱라의 귀[汨羅之鬼]’이라 일컫고 있다. 《초사(楚辭)》에 실려 있는 굴원의 작품 중 대부분은 이 방랑 시절에 씌어진 것들이다. 그는 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걱정하고 나라를 그르치는 영신을 미워하며 그의 고고한 심정을 정열적으로 노래했는데 ‘징갱취제’는《초사》〈9장〉중 ‘석송(惜誦)’이란 시의 첫 구절이다. 뜨거운 국에 데어서 냉체까지 불고 먹는데 [懲於羹者 而吹?兮(징어갱자 이취제혜)] 어찌하여 그 뜻(나약함)을 바꾸지 못하는가 [何不變此志也(하불변차지야)] ‥‥‥‥‥‥ ‘석송’은 굴원이 자기 이상으로 주군(主君)을 생각하고 충성을 맹세하는 선비가 없음을 슬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뭇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것을 분노하며 더욱이 어쩔 수 없는 고독을 한탄하면서도 그 절조만은 변절하지 않겠다는 강개지심(慷慨之心)을 토로한 시이다.
Board 고사성어 2024.02.18 風文 R 694
배레나룻 얼짱 열풍에 이어 몸짱 열풍이 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탄탄한 몸매를 만드는 데 많은 돈과 시간과 투자하고 있다. 몇몇 남자 연예인들은 자신의 식스팩(?)을 노출함으로써 자신의 완벽한 몸매를 자랑한다. 이때 ‘배레나룻’도 함께 노출함으로써 자신의 남성성을 한껏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데 ‘배레나룻’은 아직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새말이다. ‘배레나룻’은 ‘아랫배에 수염처럼 잇따라 길게 난 털’을 가리키기 위해 새로 만들어 낸 말이다. ‘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을 뜻하는 ‘구레나룻’에 유추하여 만든 것이다. ‘구레나룻’은 ‘구레-나룻’처럼 분석되는데, ‘나룻’은 ‘수염’을 뜻하는 말로 그 어원이 분명하지만 ‘구레’의 어원은 불분명하다. 이러한 ‘구레나룻’을 ‘귀밑에 잇따라 길게 난 털’로 이해하여, ‘배 밑에 잇따라 길게 난 털’을 뜻하는 말로서 ‘배레나룻’을 새로 만든 것이다. 그렇지만 ‘배레나룻’의 구체적인 말 만들기 과정은 불명확하다. 우선 ‘배’와 ‘구레나룻’을 합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구레나룻’의 ‘구’가 절단된다. 달리 ‘구레나룻’을 ‘구’와 ‘-레나룻’으로 잘못 분석하여, ‘구’ 자리에 ‘배’를 집어넣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즉, ‘배’와 ‘-레나룻’을 결합하여 만든 것이다. 둘 다 우리말의 말 만들기 규칙과 큰 거리가 있어 아주 자연스럽지는 않다. 이렇듯 ‘배레나룻’이 불명확하고 자연스럽지 않게 새로 만든 말이지만, 순 우리말을 활용한 새말이라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최근 우리말의 새말 만들기에서 순 우리말의 활용도가 크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순 우리말을 활용하여 새말을 만들어 쓸 필요가 있다. 박용찬 대구대 국어교육과 부교수
Board 말글 2024.02.18 風文 R 3167
‘요새’와 ‘금세’ 오래된 수수께끼 중에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는 무엇일까’라는 게 있다. ‘종달새’ ‘참새’ ‘벌새’ 등 모두 자기가 아는 작은 새 이름을 떠올리느라 바쁘겠지만 정답은 ‘눈 깜짝할 새’이다. 눈을 한 번 살짝 감았다 뜨는 짧은 동안이니, 과연 그보다 더 작은 ‘새’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사이’가 줄어서 ‘새’가 되는 데 착안한 언어유희로, 어르신들은 ‘싱거운’ 소리라고 하실 테지만 젊은이들은 ‘썰렁한’ 농담이라고 할 것이다. 요새 젊은이들이 새로 만들어 쓰는 말 중에 ‘금사빠’라는 게 있다. ‘금세 사랑에 빠지는 사람’을 줄여 이르는 말이다. ‘그 친구는 금사빠야’ ‘내 금사빠 성향을 어떻게 고쳐야 하지’처럼 쓴다. 그런데 이때 ‘금세’를 어떻게 써야 할지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이 많다. ‘금세’가 맞나, ‘금새’가 맞나? ‘요새, 어느새, 밤새’ 같은 말에서처럼 ‘새’로 적는 게 맞지 않을까? 이 말들을 적을 때 혼동하는 이유는 우리말에서 ‘애’와 ‘에’의 발음이 잘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고 들을 때는 구분되지 않는 소리들을 구분해서 적자니 혼란스러운 것이다. 그럴 때는 이 말들이 어떻게 해서 생겨난 말인지를 알고 있는 게 도움이 된다. ‘요새, 어느새, 밤새’의 ‘새’는 ‘눈 깜짝할 새’의 ‘새’처럼 모두 ‘사이’가 줄어든 말이다. ‘요사이’가 줄어서 ‘요새’, ‘밤사이’가 줄어서 ‘밤새’가 되었다. ‘아이’가 줄어서 ‘애’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금세’는 ‘지금, 이제’ 등의 의미를 나타내는 ‘금시(今時)’에 조사 ‘에’가 결합된 ‘금시에’가 줄어서 된 말이다. ‘금시초문(今時初聞)’이라고 할 때의 ‘금시’와 ‘에’가 합쳐진 말로서, ‘금새’가 아니라 ‘금세’로 쓴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2.18 風文 R 3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