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겨라” “바꼈어요”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이 나란히 토크쇼에 출연했다. “이 참에 둘이 아예 사귀는 게 어때요?” 사회자가 이 말을 하자마자 화면에는 ‘사겨라’라는 자막이 나타났다. ‘사귀어라’의 준말이 ‘사겨라’ 맞나? ‘사겨’뿐만 아니라 ‘바뀌어’의 준말을 ‘바껴’로 쓴 것도 여러 번 본 것 같다. 포털 검색창에 ‘바꼈어요’를 입력하니 ‘번호 바꼈어요’ ‘밤낮이 바꼈어요’가 연관 검색어로 자동 추천된다. ‘사귀다, 바뀌다’의 어간이 어미 ‘어’와 결합한 ‘사귀어, 바뀌어’의 음절이 줄어드는 현상이 우리말에 있다. 즉 우리는 때때로 ‘사귀어, 바뀌어’처럼 3음절이 아니라 2음절로 발음한다. 그런데 이것을 한글 문자로는 나타낼 방법이 없다. 만약 ‘ㅜ’에 ‘ㅕ’가 합쳐진 글자가 있다면 그 소리를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런 글자는 지금은 물론 옛 문헌에서도 사용된 적이 없다. 소리로는 존재하지만 적을 방법이 없어서 표기할 때는 항상 ‘사귀어, 바뀌어’처럼 줄어들기 전의 형태로만 써야 한다. ‘뛰다, 쉬다, 나뉘다’ 등 어간이 모음 ‘ㅟ’로 끝나는 용언은 모두 마찬가지다. ‘사겨, 바껴’ 등은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가져다 쓰는 표기형일 테지만 맞지 않다. 국어 문법에서 허용되지 않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모음 ‘ㅕ’는 ‘ㅣ’와 ‘어’가 합쳐져서 줄어든 소리를 나타내지 ‘ㅟ’와 ‘어’ 소리의 결합을 나타내지 못한다. ‘신을 신기다’의 ‘신기어’가 ‘신겨’가 되거나 ‘끼어들다’가 줄어서 ‘껴들다’가 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또 ‘사귀어’의 준말이 ‘사겨’로 발음되지도 않으므로 그런 표기는 실제 소리를 온전히 반영하지도 못한다. 입말로는 가능한 소리가 글로는 표현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으므로 불편하더라도 ‘사귀어, 바뀌어’ 등으로 써야 한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5.31 風文 R 1244
“산따” “고기떡” “왈렌끼” 광복 70년이자 분단 70년을 맞는 올해 KBS 아나운서실에서는 ‘통일시대를 맞이하는 남북한 방송언어’를 주제로 한국어연구논문집을 냈다. 체제와 문화의 차이만큼 지난 70년간 남북한의 언어도 많이 달라졌다.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통일의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논문집에 실린 북한이탈주민들을 대상으로 남북한 언어의 차이를 조사한 권순희 이화여대 교수의 ‘방송인이 알아야 할 남북한 생활언어 차이’는 흥미롭다. 발음, 억양, 문법의 차이도 있지만 어휘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이 논문에 따르면 ‘오징어’를 북한에서는 ‘낙지’라고 한다. 거꾸로 ‘낙지’는 ‘오징어’라고 한다. 북한에서 ‘번지다’는 ‘넘기다’, ‘다그치다’는 ‘힘쓰고 있다’는 뜻이다. “책장을 번지다” “정비를 다그치다”와 같이 쓴다. 어감의 차이가 있는 말들도 있다. ‘방조하다’는 남한에서는 불법 행위를 도와준다는 뜻이 있지만 북한에서는 긍정적인 뜻이다. 북한에서 ‘거래’는 불법적인 경제관계를 일컫는다. ‘버르장머리’는 남한에서 부정적인 뜻으로 쓰지만 북한에서는 습관이나 행동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쓴다. ‘소행’ 도 북한에서는 긍정적 의미로 쓰는 말이다. 한자어는 어순이 다른 경우가 있다. ‘왕래(往來)’ ‘창제(創製)’‘상호(相互)’를 북한에서는 ‘래왕’ ‘제창’ ‘호상’과 같이 쓴다. 많은 한자어를 고유어(문화어)로 대체한 북한에 비해 남한에서는 훨씬 많은 한자어가 쓰이고 있다. ‘홍수’라고 하면 북한 주민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북한에서는 ‘홍수’를 ‘큰물’이라고 한다. 남한은 서구의 영향을 많이 받은 반면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에 외래어에도 차이가 있다. ‘소시지’는 북한에서 ‘칼파스’ 혹은 ‘고기떡’이라고 하며 ‘샌들’은 ‘산따’, ‘롱부츠’는 ‘왈렌끼’라고 한다. 임수민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5.31 風文 R 1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