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와 ‘사스’ 며칠 후 메르스 사태 종식을 공식 선언할 것이라고 한다. 메르스 감염자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됐다는 소식이 보도될 무렵, 왜 SARS는 ‘사스’인데 MERS는 ‘메르스’로 읽느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SARS, MERS는 각각 이 질환들의 공식 명칭인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과 ‘중동 호흡기 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의 영어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약자로부터 온 말이다. 영어 약자를 우리말로 옮기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유엔(UN)’이나 ‘아이엠에프(IMF)’처럼 알파벳 이름을 낱낱이 나열하는 것과 ‘유네스코(UNESCO)’처럼 철자를 연결해서 하나의 단어처럼 읽는 방식이다. 이 중 어느 것을 택할지는 대개 영어의 관례를 따른다. SARS와 MERS는 모두 한 단어처럼 발음된다. 이에 SARS는 영어 발음에 따라 ‘사스’로 적게 된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같은 원칙에 따르면 MERS는 ‘머스’로 적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처음 우리말에 들어올 때 관계 기관에서 ‘메르스’로 표기를 했고, 그것이 언론을 통해 널리 퍼지면서 원칙에 맞지 않는 표기가 굳어진 것이다. 이미 ‘메르스’로 표기가 통일된 뒤에는 ‘머스’로 되돌리는 게 불가능하여 관용 표기인 ‘메르스’를 추인하게 되었다. 그러니 외국어에서 온 말은 처음 들어올 때 올바른 표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 ‘바흐’나 ‘고흐’의 경우에도 이 말을 쓰기 시작할 초기에 일본어의 영향을 받아 ‘바하’ ‘고호’라고 표기했던 것이 아직도 일부 쓰이고 있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6.21 風文 R 1096
치인설몽(癡人說夢) 癡:어리석을 치. 人:사람 인. 說:말씀 설, 달랠 세. 夢:꿈 몽. [원말] 대치인몽설(對癡人夢說). [동의어] 치인전설몽(癡人前說夢). [출전]《冷齋夜話》〈卷力〉,《黃山谷題跋》 바보에게 꿈 이야기를 해준다는 뜻. 곧 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의 비유. ② 종작없이 지껄이는 짓의 비유. ③ 이야기가 상대방에게 이해되지 않음의 비유. 남송(南宋:1127~1279)의 석혜홍(釋惠洪)이 쓴《냉재야화(冷齋夜話)》〈권9(卷九)〉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당나라 시대, 서역(西域)의 고승인 승가(僧伽)가 양자강과 회하(淮河) 유역에 있는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지방을 행각(行脚: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수행함)할 때의 일이다. 승가는 한 마을에 이르러 어떤 사람과 이런 문답을 했다. “당신은 성이 무엇이오[汝何姓]?” “성은 하가요[姓何哥].” “어느 나라 사람이오[何國人]?” “하나라 사람이오[何國人].” 승가가 죽은 뒤 당나라의 서도가(書道家) 이옹(李邕)에게 승가의 비문을 맡겼는데 그는 ‘대사의 성은 하 씨(何氏)이고 하나라 사람[何國人]이다’라고 썼다. 이옹은 승가가 농담으로 한 대답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어리석음을 범했던 것이다. 석혜홍은 이옹의 이 어리석음에 대해《냉재야화》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는 곧 이른바 어리석은 사람에게 꿈을 이야기한 것이다[此正所謂對癡說夢耳].’ 이옹은 결국 꿈을 참인 줄 믿고 말았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주] ‘치인설몽’이란 말은 요즈음에는 본뜻과는 반대로 바보(치인)가 ‘종작없이 지껄인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음. 이옹 : 일명 이북해(李北海), 678~747. 특히 행서(行書)에 능하여 생전에 쓴 비서(碑書)가 800여에 이른다고 함.
Board 고사성어 2024.06.19 風文 R 405
‘달달하다’ ‘다디달다’ 단맛 나는 과자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더니 디저트 카페가 유행처럼 생겨나고 있다. 한때 건강에 해롭다고 환영 받지 못하던 단맛이 다시금 주목 받는 이유는 아마도 팍팍한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단맛의 마력 때문이리라.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요즘 TV를 켜면 자막이며 대사에서 “달달하다”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단 음식을 소개할 때는 물론이고 ‘달달한 입맞춤’ ‘달달한 신혼’ ‘분위기가 달달하다’처럼 남녀간의 사랑이 알콩달콩 느껴지는 분위기를 묘사할 때도 자주 쓰이고 있다. 그런데 ‘맛이 달다’는 뜻의 ‘달달하다’는 표준어가 아니다. 원래 강릉이나 충북, 경상도 등지에서 쓰이는 방언에서 온 말로 보인다. ‘달달하다’를 사전에서 찾으면 ‘①춥거나 무서워 몸이 떨리다(혹은 몸을 떨다) ②바퀴가 바닥을 구르며 흔들리는 소리가 잇따라 나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렇다면 ‘달다’는 뜻의 ‘달달하다’를 대신할 말은 없을까? 달콤하다? 달큰하다? 달짝지근하다? 약간은 여운이 남는 듯하면서도 입에 감기는 말 맛 때문인지 다른 말로는 ‘달달한’ 그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지 않는 듯 하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앞으로 더 많이 애용될 것 같다. ‘달다’는 뜻을 강조하는 ‘다디달다’라는 말이 있다. ‘달디달다’로 잘못 쓰는 경우가 흔히 있는데 ‘달디달다’에서 ‘ㄹ’이 탈락한 ‘다디달다’가 표준어이다. 아주 작다는 뜻의 ‘자디잘다’도 마찬가지이다. 어간의 끝받침 ‘ㄹ’은 원래 ‘ㄷ, ㅈ, 아’ 앞에서는 줄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다디달다’와 ‘자디잘다’는 ‘ㄹ’이 탈락한 형태가 널리 쓰여 표준어로 인정되었다. ‘달디단’이 아니라 ‘다디단’, ‘잘디잔’이 아니라 ‘자디잔’이 바른 표현이다. 임수민 KBS 아나운서
Board 말글 2024.06.19 風文 R 1010
‘이른둥이’ ‘따라쟁이’ 최근 출산 연령이 높아지면서 예정일보다 이르게 태어나는 아이가 크게 늘고 있다. 이들을 가리켜 ‘이른둥이’라 한다. 그런데 이들의 상당수는 2.5㎏이 채 안 되는 체중으로 태어나 면역력이 약할 뿐만 아니라 건강하지 못하다. 이로 인해 이들을 ‘미숙아’라 했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미숙아’의 부정적 의미 때문에 ‘이른둥이’라는 새말로 대신하여 쓰고 있다. ‘이른둥이’는 ‘이른’ 뒤에 ‘-둥이’를 결합하여 만든 말이다. 그런데 ‘-둥이’는 접미사로서 ‘귀염둥이’ ‘막내둥이’ ‘바람둥이’ 등에서처럼 ‘귀염’ ‘막내’ ‘바람’ 등의 명사 뒤에 결합하여 새말을 만들어 낸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용언 ‘이르다’의 관형형인 ‘이른’ 뒤에 접미사 ‘-둥이’를 결합한 ‘이른둥이’는 어법에 맞지 않는다. ‘이른둥이’처럼 어법에 맞지 않는 새말의 예로 ‘따라쟁이’를 하나 더 추가할 수 있다. ‘따라쟁이’는 ‘무엇인가 따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따라’ 뒤에 ‘-쟁이’를 결합하여 만든 말이다. 그런데 ‘-쟁이’는 접미사로서 ‘겁쟁이’ ‘멋쟁이’ ‘그림쟁이’ 등에서처럼 ‘겁(怯)’ ‘멋’ ‘그림’ 등의 명사 뒤에 결합하여 새말을 만들어 낸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용언 ‘따르다’의 연결형인 ‘따라’ 뒤에 접미사 ‘-쟁이’를 결합한 ‘따라쟁이’는 어법에 맞지 않는다. 이렇듯 어감만을 고려한 채 어법에 맞지 않게 만들어 쓰는 새말이 적지 않다. 이 가운데 어떤 것은 언중의 공감을 얻어 오랫동안 쓰이기도 한다. ‘새내기’ ‘먹거리’ 등이 그런 예이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잠시 쓰이다가 사라진다. 새말을 만들어 쓸 때에는 그 어법까지도 고려하는 것이 좋겠다. 박용찬 대구대 국어교육과 부교수
Board 말글 2024.06.19 風文 R 1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