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풀이 술을 마시되 덜 취하는 방법이라든가, 술을 많이 마신 이튿날 속을 빨리 푸는 방법 등을 알려주는 기사들도 술꾼들에겐 일과성 조언밖에 안 된다. 술을 안 마시는 게 상책이겠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일찍이 현진건은 그 속내를 파악하고 '술 권하는 사회'를 써내기도 했다. 술을 거부할 수 없다면 숙취를 해소하거나 쓰린 속을 푸는 방법을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다. 속을 푼다는 뜻으로 '속풀이'란 말이 많이 쓰인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속풀이'를 찾아보면 첫째 뜻으로 '분(憤)풀이'의 잘못이라고 나와 있다. 둘째 뜻으로는 '분풀이'의 북한어로 돼 있다. 이것으로 보아 '분풀이'의 뜻으로 '속풀이'를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풀이'란 뜻으로 '속풀이'가 쓰이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속풀이'는 속을 푼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된다. "북엇국이 속풀이에는 최고야! 아니야, 콩나물국밥이 최고야!" "매운맛이 맞든지, 순한 맛이 맞든지 간에 속풀이 국물로는 재첩국이 제격이다." "속풀이에 좋은 북어와 콩나물로 우려낸 고급 라면, 코끝이 찡해지는 고추냉이와 입 안에서 톡톡 터지는 날치 알이 담긴 삼각김밥, 이 두 가지로 속 편한 아침을 맞이하자." '속풀이'는 '살(煞)풀이' '원(怨)풀이' '한(恨)풀이' '화(火)풀이' '골풀이'와 같은 부류의 말이다. '분풀이'와는 전혀 다른 의미인, '속을 푸는 일'이라는 뜻의 '속풀이'도 사전에 실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Board 말글 2010.11.03 바람의종 R 10865
고백, 자백 #1. 1912년 애인을 목 졸라 죽인 혐의로 한 남자가 기소된다.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지만 그는 범행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손톱에서 피해자가 쓰던 분홍색 분가루가 묻은 피부 조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2. 취조실에 용의자와 두 명의 경찰이 있다. 한 명은 용의자를 마구 윽박지르는 나쁜 경찰이다. 또 한 명은 나쁜 경찰을 나무라며 부드러운 말로 용의자를 타이르는 좋은 경찰이다. 처음에 나쁜 경찰에게 시달린 용의자는 이후 들어온 좋은 경찰의 한마디에 설득되며 자신의 죄를 순순히 밝힌다. 현대 과학수사의 길을 제시한 법의학자 에드몽 로카르의 일화를 다룬 첫 번째 얘기와 경찰과 용의자 간 고도의 심리전을 보여 주는 두 번째 얘기에서 결국 범인들은 자신의 죄를 스스로 밝힌다. 이 경우 '자백'이란 단어가 어울릴까, 고백이란 말이 적합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자백'으로 써야 한다. '자백'은 자기가 저지른 죄나 허물 등을 남들 앞에서 스스로 털어놓는다, '고백'은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이나 감춰 둔 것을 사실대로 숨김없이 말한다는 뜻이다. 둘 다 털어놓는 것이지만 주로 상대방의 추궁이나 강요에 의해 이뤄지는 게 '자백'이라면 '고백'은 본인의 뜻에 따른 것이란 점에서 차이가 난다. "달콤한 사랑 자백" "형사의 추궁에 범행 일체를 고백한 범인"이라고 쓰면 어색한 문장이 된다.
Board 말글 2010.11.03 바람의종 R 9777
먹거리 '먹거리'는 현재 비표준어다. 이러한 규범적 처리는 다음 두 가지 관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이 단어가 조어법을 어기고 있다고 보는 생각이다. 의존명사 '거리'는 명사 뒤나 동사의 관형형 어미 '-ㄹ/을' 다음에 오기 때문에('웃음거리, 입을 거리' 따위), 동사 어간 '먹-'과는 결합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해다. 위의 규칙은 통사 규칙일 뿐이다. 조어는 얼마든지 통사 규칙과 무관하게 이뤄질 수 있다. 만일 조어가 반드시 통사 규칙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면 '늦가을, 뛰놀다' 같은 소위 비통사적 합성어는 성립할 수 없다. '먹거리'가 조어법에 어긋난다고 하는 주장은 '늦가을, 뛰놀다' 대신 '늦은 가을, 뛰어놀다'로만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둘째, '먹거리'를 '먹을거리'로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두 말이 매우 비슷하긴 해도 결코 똑같지는 않다. 가령, "그는 가게에 가서 먹을거리를 좀 사왔다"와 "나는 어제 향토 먹거리를 소개하는 방송 프로를 보았다"의 경우, '먹을거리'와 '먹거리'는 맞바꾸기가 어렵다. 물론 둘 다 먹는 대상물을 가리키지만, '먹을거리'가 장차 끼니나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특정한 것을 가리키는 반면, '먹거리'는 일반적으로 즐기거나 섭취할 수 있는, 어떤 부류의 것을 뜻할 때가 많다. 따라서 '먹거리'는 '먹을거리(사실 이 말이 하나의 단어인지도 의문이다)'와 별개의 말로 인정될 필요가 있다.
Board 말글 2010.11.03 바람의종 R 10408
문책과 인책 '문책(問責)'과 '인책(引責)'은 분명히 다른 말인데도 혼동해 잘못 쓰일 때가 가끔 있다. '문책'은 책임을 묻는다는 뜻이다. '문책'의 문이 '물을 문(問)'이기 때문이다. '인책'은 자신에게로 끌어당겨 책임을 진다는 의미다. '인책'의 인이 '끌어당길 인(引)'이기 때문이다. ① "계열사가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경영진단은 해당 임원이나 실무 직원에 대한 인책으로 끝나지만, 그룹 차원의 경영진단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의 경질로 이어지기도 한다." ② "5.31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뒤에는 당 의장이 인책 사퇴하는가 하면, 의원들은 석고대죄하고…." ①에서 '해당 임원이나 실무 직원에 대한 인책'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만일 '해당 임원이나 실무 직원의 인책'이라면 '해당 임원이나 실무 직원이 책임을 진다'는 뜻이므로 말이 되지만, '해당 임원이나 실무 직원에 대한 인책'은 '해당 임원이나 실무 직원에 대한 문책'으로 바로잡아야 문맥에 어울린다. ②에서는 '당 의장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는 뜻이므로 '인책'이 바르게 쓰였다. '문책'은 '잘못을 캐묻고 꾸짖음'이란 의미다. "상사에게 문책을 당했다" "잘못된 일처리에 대해 담당자를 문책했다"처럼 써야 맞다. '인책은 '잘못된 일의 책임을 스스로 짐'이란 뜻이다. "인책 사임" "인책 사퇴"와 같이 쓰인다. 한편 "시민단체가 관련자의 인책을 요구했다" "시민들은 정부 차원의 사과와 담당 장관의 인책을 요구했다" 등의 문장에서는 '인책'과 '문책'을 다 사용할 수 있다. 물론 그 의미는 서로 다르다.
Board 말글 2010.11.02 바람의종 R 10342
~ㄴ 바 "이번 대학 입시에서 공부를 열심히 ①한 바 ②한바 합격할 수 있었다." 위 문장에서 ①과 ② 가운데 어느 띄어쓰기가 맞을까요? 정답부터 얘기하면 '한바'처럼 붙여 써야 합니다. 이때의 '-ㄴ바'는 어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에서 '-ㄴ'과 '바'가 연이어 나오는 형태는 두 가지입니다. "서류를 검토한바 몇 가지 미비한 사항이 발견됐다"에서처럼 '-ㄴ바'가 어미일 때와 "거기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에서처럼 관형사형 어미 ''-ㄴ'과 의존명사 '바'로 구성될 때입니다. 이 두 형태를 의미 차이로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쉬운 구별 방법이 있지요. '바' 뒤에 조사를 붙여 보는 것입니다. 의존명사에는 조사가 붙을 수 있지만 어미 뒤에는 붙을 수 없습니다. 조사를 붙여 보아 어법에 맞으면 '바'는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쓰면 됩니다. "회사에서 다음과 같이 공지한바 이를 알립니다." "회사에서 지난해 아래 사항을 공지한 바(가) 있습니다." 두 문장 중에서 앞의 것은 '바' 뒤에 조사가 붙을 수 없으므로 '-ㄴ바'가 어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는 붙여 씁니다. 뒤의 것은 '바' 뒤에 조사가 붙을 수 있으니 의존명사입니다. 그러므로 띄어 씁니다. "나는 그 사람의 친구인바 그의 어려움을 모르는 척할 수 없다."(어미), "그는 나라의 발전에 공헌하는 바(가) 크다."(의존명사)
Board 말글 2010.11.02 바람의종 R 11838
처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나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신영복 '처음처럼'> '아하' '단비' '새날' 중 하나로 명칭이 정해질 뻔한 두산 소주의 신제품은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의 시 '처음처럼'에서 영감을 얻어 올해 초 이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다. '처음처럼'은 출시 6개월 만에 소주 시장에서 마의 10%라는 점유율을 넘어서며 실질적인 업계 2위로 자리 잡았다. 송년회 등으로 술자리가 많은 요즘 진로 '참이슬'과 두산 '처음처럼'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처음처럼'이 알코올 도수를 20도로 낮춰 시장에 내놓으며 돌풍을 일으키자 진로는 이에 맞대응해 마지노선이라는 20도보다 낮은 19.8도의 '참이슬 후레쉬'를 내놓았다. '처음처럼'의 성공은 단순히 순한 맛이나 광고에만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처음처럼'이란 감성적인 우리말 이름이 사람들의 감수성을 자극한 영향이 커 보인다. 소비자는 본능적으로 노력이 적게 드는 두 음절 단어의 이름을 기억하려 한다는 기존 관념을 '처음처럼'이 허문 것도 이런 해석을 가능케 한다. '처음처럼'은 여러 군데 한글단체가 선정하는 올해 좋은 이름에 뽑히기도 했다. 아파트나 고층 건물, 각종 상품 등의 이름에 뜻도 알기 어려운 외국어가 판을 치는 요즘 짧지 않은 순 우리말 이름 '처음처럼'의 성공은 신선한 바람이다. 내년에도 이런 좋은 이름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Board 말글 2010.11.01 바람의종 R 11865
팥죽에 새알심 동지를 예전엔 '작은설'이라 하여 사실상 새해의 시작으로 여겼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가 지나면 낮이 다시 길어져 태양의 기운이 새롭게 회복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책력을 나눠 주고, 액을 쫓아 준다는 붉은빛의 팥죽을 쑤어 먹으며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동지팥죽엔 반죽한 수수나 찹쌀가루를 새알처럼 동글동글하게 빚어 넣어 이를 제 나이만큼 먹는다. 지역마다 오그랑이.오그랭이.새알.새알심.옹심이.옹시미.옹시래미 등 부르는 이름도 무척 다양하다. "북한에선 동짓날 찹쌀.밀 등 낟알가루를 반죽해 둥글게 빚은 떡인 오그랑이를 넣고 오그랑팥죽을 끓여 먹는다" "제사를 지낼 때 쓰는 팥죽에는 새알을 넣지 않고 잡귀를 쫓는 데 사용하는 팥죽에는 새알심을 넣는 지방도 있다" "감자 옹심이는 감자를 갈아 물기를 짜낸 뒤 녹말가루와 섞어 새알처럼 만든 다음 육수와 함께 끓여 낸 강원도의 별미다"와 같이 제각각 쓰고 있으나 현재 '새알심'만 표준어로 인정한다. 특히 크기와 모양이 새알 비슷하다 하여 '새알'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이는 강원도와 경상도 지방의 사투리다. 같은 동지라도 음력 11월 10일이 채 못 되어 들면 '애동지' 또는 '오동지'라 하는데 올해는 애동지에 해당한다. 애동지엔 새알심을 넣은 팥죽 대신 팥시루떡을 해 먹기도 한다.
Board 말글 2010.11.01 바람의종 R 11725
맹숭맹숭, 맨송맨송 흔히, 술을 먹었는데도 좀처럼 취하지 않을 때 "오늘따라 왜 이리 맹숭맹숭하지?"라고 말한다. 또, 마땅히 할 일도 없이 우두커니 있을 때에도 "맹숭맹숭 앉아 있으려니 좀 뭣하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때의 '맹숭맹숭(하다)'은 '맨송맨송(하다)'의 비표준어다. 이 규범은 오늘날 우리의 눈과 귀에 모두 낯설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맨송맨송'을 거의 귀로 듣지 못하고 있다. 귀로 듣지 못하므로 그 표기 형태 역시 당연히 익숙지 않다. 우리가 언어생활에서 주로 듣고 쓰는 것은 '맹숭맹숭'이다. 20세기 초반의 문헌을 찾아보면 이 두 형태가 모두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 전반에 편찬된 초기의 사전들이 '맨송맨송'만을 표준어로 사정한 뒤로 지금까지 '맹숭맹숭'은 표준어의 자격을 얻지 못하고 있다. 실제 언어 현실에서는 '맹숭맹숭'이 '맨송맨송'을 경쟁에서 밀어낸 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비표준어로 방치돼 있는 것이다. 이제는 ''맹숭맹숭''을 표준어로 받아들일 때가 됐다. 그렇다고 '맨송맨송'을 비표준어로 몰아낼 필요는 없다. 이 말이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수염이 없어 맨송맨송한 아래턱'의 예에서는 '맹숭맹숭'보다 '맨송맨송'이 더 어울려 보인다. 취하지 않아 정신이 말똥말똥하거나 하는 일이 없어 멋쩍을 때는 '맹숭맹숭'이, 있어야 할 털이나 수염이 없이 반드르르할 때는 '맨송맨송'이 더 잘 어울리므로, 이 두 단어는 복수 표준어로 인정되는 것이 좋겠다.
Board 말글 2010.11.01 바람의종 R 13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