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탕, 마탕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 중에 튀긴 고구마에 설탕과 물엿을 졸인 액체를 끼얹은 요리가 있다. 중화요리 '빠스(拔絲.외래어 표기법으로는 '바스')'와 유사한 이 요리는 그 이름이 아직 국어사전에 오르지 않아 두 가지 표기가 혼재하고 있다. '맛탕'과 '마탕'이 그것이다. 이렇듯 표기가 두 형태로 엇갈려 쓰이는 것은 이 말의 어원이 불분명한 데서 기인한다. 곧, '맛+탕'인지 '마+탕'인지 확실치 않다. 어원이 전자의 경우라면 '맛'은 단맛.쓴맛의 맛일 터인데, 후자의 경우라면 '마'가 무엇인지 아리송하다. '고구마'의 '마'가 아닐까 추측해 보기도 하지만 이는 다음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하나는 단일 형태소인 '고구마'에서 '마'만을 분리해 낼 수 없다는 점이고(물론 속어.은어에서는 이런 식의 조어가 있긴 하다), 다른 하나는 이 요리가 고구마만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감자.당근.옥수수와 같은 다른 재료를 가지고도 만들어진다는 점이다(감자 맛탕/마탕, 당근 맛탕/마탕, 옥수수 맛탕/마탕도 있다). 그렇다면 '맛+탕'은 타당성이 있는가? 이 역시 명쾌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 의미를 해석하자면 '맛을 낸 탕' 또는 '맛있는 탕' 정도일 터인데, 왜 그것이 이 요리의 이름이어야 하는지 잘 와 닿지 않는다. 또한 '탕'이 무엇인지도 분명치 않다. 설탕의 '탕(糖)'인지(액체가 설탕을 졸인 것이라는 점에서?), 곰탕.쌍화탕의 '탕(湯)'인지(액체를 고거나 달이듯이 졸였다는 점에서?) 알 수 없다. 이 요리명은 '맛+탕'이나 '마+탕'과 같은 합성어이기보다는, 어원을 알 수 없는 단일어 '마탕'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Board 말글 2010.11.25 바람의종 R 11928
Board 말글 2010.11.21 바람의종 R 13012
~답다, ~스럽다 한 지상파 방송에서 방영되는 코미디 프로그램 '형님 뉴스'에서 외치는 문구가 있다. "뉴스가 뉴스다워야 뉴스지!" 이는 뉴스가 새 소식이라는 말뜻에 걸맞은 가치를 지니고 있을 때 뉴스'답다'는 말이 쓰인다는 점을 잘 보여 준다. '-답다'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런 성질이나 특성이 있음'의 뜻을 더하고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다. "겨울은 추워야 겨울답고 여름은 더워야 여름답다"처럼 '-답다'가 설명하는 주어는 '-답다' 앞에 오는 명사와 동일해야 잘 어울린다. 특히 '-답다' 앞의 명사가 사람일 경우 '~의 자격이 있다' '~의 신분이나 특성에 잘 어울린다'는 뜻을 나타낸다. '남자답다' '어른답다' 등이 다 그렇다. '-스럽다'도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러한 성질이 있음'의 뜻을 더하고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다. '-스럽다'의 주어가 '-스럽다' 앞 명사의 성질이나 느낌이 배어 있음을 나타낸다. 여기까지 봐서는 '-답다'와 '-스럽다'를 구별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답다'와 달리 '-스럽다'라는 술어가 설명하는 주어는 '-스럽다' 앞에 오는 명사와 그 종류가 다른 경우에 쓰인다. 또한 '-답다'에는 그 앞 명사의 성질이나 특성이 가득 차 있는 느낌이지만, '-스럽다'에는 그런 성질이 있으나 미흡한 느낌이 있다. "그 집 막내아들은 여러 명의 누나들 속에서 자라 여성스러운 점이 많다" "어린애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너무 어른스럽다" "그가 사내답지 못하게 구차한 변명이나 하다니" "국가의 지도자는 지도자답게 행동해야 한다" 등을 견주어 보면 둘 사이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Board 말글 2010.11.21 바람의종 R 10168
계기, 전기, 기회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앞머리는 더부룩해 누구나 쉽게 잡을 수 있지만 지나간 뒤엔 다시는 붙잡을 수 없도록 뒤통수는 대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리시포스는 이런 모양의 동상을 만들어 '기회'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어떠한 일을 하는 데 적절한 시기나 경우를 가리키는 말인 기회(機會)는 삶의 변화를 이끌기도 하고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이를 달리 '계기'나 '전기'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는데 그 쓰임새는 다소 차이가 있다. '계기(契機)'는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변화하도록 만드는 결정적 원인이나 기회를 일컫는다.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국내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졌다" "한국계 미식축구 선수인 하인스 워드의 성공담은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인종 편견을 반성하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처럼 사용한다. '전기(轉機)'는 전환점이 되는 시기나 기회를 이르는 말로 "허정무 감독에게 발탁돼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박지성 선수는 2001년 거스 히딩크를 만나 축구 인생의 전기를 맞이한다" "월드컵 공동 개최 이후 한국과 일본 간 문화.스포츠 등 민간 교류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와 같이 쓰인다. 두 단어 모두 기회라는 의미를 품고 있지만 '계기'는 어떤 것을 움직이고 결정하는 원인에, '전기'는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는 시기에 주안점을 두고 쓰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Board 말글 2010.11.16 바람의종 R 10756
생선, 생파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엄마, 생선 사야 돼. 돈 좀 주세요"라고 했다. "생선-, 생선은 왜." "생파에 가야 돼요." "뭐. 생파-." 무슨 말인지 몰라 멍하니 생각하던 엄마는 한참이 지나서야 '생선'과 '생파'가 '생일선물'과 '생일파티'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처음엔 무슨 과제물인 줄 생각했다. 신세대가 쓰는 말 중에 어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이뿐이 아니다. 비호감(호감의 반대말), 갈비(갈수록 비호감), 열공(열심히 공부함), 반띵(반으로 가름), 훈남(훈훈한 남자), 완소남(완전 미소남), 길막(길을 막는 행위), 출첵(출석 체크), 썩소(썩은 미소), 살소(살인 미소)…. 친구 사이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로 '열라' '절라' '졸라' 등과 어울려 쓰이기 일쑤다. 인터넷상에서 사용하는 줄임말이나 신조어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로긴, 아뒤, 비번, 자삭, 채금, 친추, 포샵, 지대, (캐)안습, 완소, 갠소, 므흣, 아놔, 넘넘, 샹훼…. 'ㅎㅎ', 'ㄱㅅ', 'ㅈㅅ' 등 자음만으로 이루어진 것도 적지 않다. 여친, 남친, 얼짱, 쌩얼, 악플 등은 이미 언론에서도 그대로 사용할 정도로 누구에게나 익숙한 것이다. 이들 줄임말의 출발지는 대부분 인터넷이다. 속도를 중시하는 인터넷의 특성상 줄임말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글자 수 제한이 따르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도 한몫하고 있다. 사물이나 감정 등을 이처럼 두 글자로만 표현하는 사람들을 '투글족'이라 부르기도 한다. 인터넷상에서 줄임말이 사용되는 것을 무턱대고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생선' '생파'에서 보듯 실생활에서 그대로 사용됨으로써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가져온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말들은 본질적으로 우리말 파괴를 수반하기도 한다. 기형적 언어의 양산을 막고 의사소통 장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자세와 올바른 우리말 교육이 더욱 필요하다.
Board 말글 2010.11.16 바람의종 R 11696
담갔다, 담았다, 담그다 지난해 개봉돼 관심을 끌었던 영화 '가문의 부활'은 최고의 조폭 가문으로 이름을 날리던 백호파의 회장이 검사를 며느리로 맞아들이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그렸다. 백호파 회장은 검사 며느리로 인해 조폭 생활을 청산하고 자신의 손맛을 기반으로 '썰어 담궈 묻어'를 외치며 '엄니손 김치' 사업으로 업종을 바꾼다. 영화에 나오는 '썰어 담궈 묻어'라는 노래는 '가문송'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여기에서 '담궈'는 '담가'의 잘못이다. 흔히 "계곡 물에 발을 담구니 시원하기 그지없다" "오랜만에 총각김치를 담궜다"처럼 '담구다' 또는 '담궜다'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담그다' '담갔다'가 바른 말이다. '담그다'는 김치.젓갈.술 등을 만드는 재료를 버무리거나 물을 부어 익거나 삭도록 그릇에 넣어 두는 것을 뜻한다. '담그다'는 무엇을 액체 속에 넣을 때도 쓰인다. 기본형이 '담그다'이기 때문에 '담구니, 담궈, 담궈서'가 아니라 '담그니, 담가, 담가서' 등으로 활용된다. '쓰(다)+어'가 '써'로 되거나 '쓰(다)+었다'가 '썼다'가 되는 것처럼 어간에 들어 있는 '으'가 모음으로 된 어미 앞에서 탈락한 경우다. 영화에 나오는 '썰어 담궈 묻어'는 '썰어 담가 묻어'로 해야 한다. 일부 지방에서 "김치를 담았다"고도 하는데, 이때의 '담다(담았다)'는 '담그다(담갔다)'의 사투리다. 단순히 '넣다'는 의미로는 "김치를 항아리에 담았다"처럼 표현할 수 있다. 배추를 양념에 버무려 김치를 만드는 것은 '담그다'이고, 그것을 그릇에 넣는 것은 '담다'라는 것을 알아두면 된다.
Board 말글 2010.11.10 바람의종 R 14882
옷걸이 / 옷거리 / 옷맵시가 좋다 '옷걸이'가 좋으려면 키가 어느 정도여야 할까?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옷을 가장 잘 소화하는 이상적인 신장을 물은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남자 175㎝, 여자 165㎝ 이상은 돼야 태(態)가 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여기엔 오류가 있다. '옷걸이'는 옷을 걸어 두도록 만든 물건을 가리키는 말로 "옷걸이가 좋다"고 하면 옷을 거는 기구가 나무랄 데 없어 만족한다는 뜻이 된다. 옷을 입은 맵시를 이르는 말은 '옷거리'로, 어떤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린다고 할 때는 "옷거리가 좋다"고 해야 맞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놓고 주름투성이의 양복을 옷걸이에 걸어 두면 수증기로 인해 주름이 펴진다" "길게 뻗은 팔다리와 고운 어깨선을 가진 사람을 보고 흔히 옷거리가 좋다고 말한다"처럼 그 의미를 구분해 써야 한다. '옷거리'를 달리 '옷맵시'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두 낱말 모두 옷을 입었을 때의 어울림을 뜻하지만 쓰임새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옷거리'가 옷을 입은 사람의 신체 구조나 조건에 주안점을 둔 것이라면 '옷맵시'는 옷을 입었을 때의 전체적인 모양새나 태도에 초점을 맞춘 말이다. "다니엘 헤니는 옷거리가 늘씬해 어떤 옷을 걸쳐도 옷맵시가 난다" "하체를 길어 보이게 해 옷맵시를 살려 주는 키높이 구두가 남성들 사이에 인기다"와 같이 둘 다 옷이 잘 어울리는 모양새를 나타내는 말이지만 미세한 의미 차를 염두에 두고 써야 한다.
Board 말글 2010.11.10 바람의종 R 17283
구랍 해가 바뀌면 언론매체에서 지난해 12월을 '구랍'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구랍 30일 개장한 눈썰매장이 시민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구랍 31일 지린성에서 남편과 감격적인 상봉을 했다" "구랍 31일 밤부터 해돋이를 보려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등이 이러한 표현이다. '구랍(舊臘)'의 '구(舊)'는 '옛'을 뜻하고, '랍(臘)'은 원래 납일(臘日:조상이나 종묘.사직에 제사 지내던 날)에 행하는 제사를 뜻하던 것이 차츰 변화해 '섣달'(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달)을 가리키게 됐다. 즉 '구랍'은 음력으로 '지난해 12월'을 뜻한다. 따라서 음력 1월 1일인 설날(올해는 양력 2월 18일)이 돼야 비로소 지나간 음력 한 달을 '구랍'이라 부를 수 있다. 위에서처럼 양력을 기준으로 지난해 12월을 '구랍'이라 하는 것은 잘못이며, 음력과는 날짜 자체가 맞지 않는다. "구랍 11월 22일부터 올해 1월 2일까지 행사를 벌였다" "구랍 12월 31일 영화를 개봉했다"는 식의 표현도 나온다. 이 경우 '구랍'을 '지난해 12월'도 아니고 단순히 '지난해'로 알고 있는 듯하다. '구랍'은 음력의 개념이므로 양력에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구랍'이 '지난해 12월'보다 짧게 표기할 수 있어 유용한 면이 있으나 음력과 양력은 날짜가 다르므로 단순히 바꿔 쓸 수가 없다. '구랍'은 대부분 사람에게 의미가 선뜻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굳이 이 단어를 써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Board 말글 2010.11.05 바람의종 R 11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