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 세밑 올 한 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때마침 내린 눈과 거리 곳곳에서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성탄과 연말을 알리고 있다. 한 해의 마지막인 이때를 표현하는 말로 '연말' 외에 '세모'를 많이 쓴다. '세모(歲暮)'는 해(歲)가 저문다(暮)는 뜻으로, 해가 끝날 무렵이나 설을 앞둔 섣달그믐(음력 12월 30일)께를 일컫는다. '세모'는 특히 일본에서 많이 쓰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우리와 달리 '오세보(お歲暮)'라고 해서 12월 15일을 전후해 주위 사람들에게 지난 1년간 신세진 데 대한 표시로 선물을 보내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요즘 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는 추세이지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오세보'라는 전통적인 선물 풍습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최장기 호황을 누리고 있는 일본은 올해도 백화점이 선물을 사려는 인파로 넘쳐나고 'お歲暮'라 적힌 선물 보따리를 배달하느라 바쁘다니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다. '세모'는 이처럼 일본에서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지금도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우리에겐 원래 익숙한 단어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세모' 대신 '세말(歲末)'이 주로 쓰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때 세말에 그 지방 특산물을 스승.친척.친구 등에게 보내는 세의(歲儀)라는 풍속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세말'과 함께 세종(歲終).세저(歲底).연종(年終) 등의 한자어가 사용되기도 했다. '세모'가 쓰인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국립국어원도 '세모'가 일본식 한자어이므로 '세밑'으로 바꿔 쓰라고 권하고 있다. '세밑'은 해를 뜻하는 한자어 '세(歲)'와 순 우리말 '밑'이 결합한 형태다. 뭐 그렇게까지 따질 필요가 있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왕이면 '세모'보다 '세밑'으로 쓰는 게 낫겠다.
Board 말글 2010.10.21 바람의종 R 10991
노랭이, 빨갱이 돈에 인색한 사람을 흔히 '구두쇠, 수전노, 깍쟁이, 자린고비' 등으로 부른다. 최근 들어서는 속어로 '짠돌이, 짠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좀 어려운 말로는 '가린주머니, 보비리, 유재아귀(有財餓鬼)'와 같은 것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즐겨 쓰고 있는 '노랭이'라는 말은 유감스럽게도 비표준어 딱지를 붙이고 있다. 그 표준어는 바로 '노랑이'다. 표준어 규정 제9항에 보면 'ㅣ' 역행동화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되, 몇 낱말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했다. 곧 '-내기(시골내기/풋내기), 냄비, 동댕이치다'의 인정이 그것이다. 언어 현실을 반영하여 '-나기, 남비, 동당이치다'와 같은 원칙형 대신 동화형(同化形)을 인정한 것이다. 문제는 '노랭이'의 경우엔 왜 동화형이 인정되지 않는가이다. 동화형은 제9항에 예시한 세 경우에만 국한된 것인가? 그것은 아닌 듯하다. '빨갱이'(공산주의자의 속칭)는 제9항에서 예시하지 않았음에도 '빨강이'의 비표준어로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빨갱이'가 표준어라면 '노랭이'도 표준어라야 균형이 맞는다. '냄비, 빨갱이'가 언어 현실이듯 '노랭이'도 엄연한 언어 현실이다. '노랭이 영감, 노랭이짓'을 '노랑이 영감, 노랑이짓'으로 바꾸어 보라. 누런 황금에 눈이 어두워 다랍게 구는 사람이나 행위에서 느껴지는 말맛을 과연 느낄 수 있겠는가?
Board 말글 2010.10.21 바람의종 R 10321
본때없다, 본데없다, 본떼없다, 본대없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임 여성 1인당 출산율은 세계 최저인 1.08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6명보다 현저히 낮다. 자녀 수가 적은 까닭에 아이들을 귀하게 키우다 보니 공공생활에서 지켜야 할 예절을 무시하는 아이가 점점 늘고 있다. 정책으로 출산을 제한하는 중국에서도 '소황제'라 불릴 만큼 과보호를 받으며 자라는 외동아이들이 사회 문제가 된 지 오래됐다. 이처럼 버릇없이 행동하는 것을 나타낼 때 '본떼없다, 본대없다' 란 말을 많이 쓰지만 이때는 '본데없다'가 바른 표현이다. '본데없다'란 '보고 배운 것이 없거나 행동이 예의범절에 어긋나는 데가 있다'는 뜻으로, "빨리 한술 뜨고 그 자리를 면하는 게 수다 싶어 본데없이 보이건 말건 어른이 수저도 드시기 전에 밥을 먹기 시작했다"처럼 쓸 수 있다. 이와 비슷한 형태로 '본때(가) 있다, 본때를 보이다'란 말이 있는데 이것은 '본데없다'와는 완전히 의미가 다르다. 이 표현은 '본보기로 할 만한 데가 있다'라는 의미로, "그 사람은 본때 있는 집안에서 자랐다" "우리도 남들처럼 본때 있게 살아보자"처럼 쓰인다. '본때를 보이다'는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아니하거나 교훈이 되도록 따끔한 맛을 보이다'라는 뜻으로, "어린 녀석이 버릇없이 굴어서 본때를 보여 주었다"처럼 사용한다.
Board 말글 2010.10.18 바람의종 R 27575
못미처, 못미쳐, 못 미처, 못 미쳐 다음 문장에서 틀린 부분을 고쳐 보시오. ① "내소사 입구 천왕문 못미쳐까지 600m가량의 전나무 숲길에 쌓인 낙엽과 가을 풍경이 우리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준다." ② "이싸빅 선수를 제친 모따 선수가 페널티 지역 못 미쳐에서 슈팅했으나 골대를 빗나가고 말았다." '못미쳐' '못 미쳐'는 어떻게 쓰는 것이 맞는가. 문맥을 따져 봐서 알맞은 표현을 골라 맞춤법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예문①의 '못미쳐'와 ②의 '못 미쳐'는 둘 다 틀렸다. ①과 ②에서 '못미쳐' '못 미쳐'는 '일정한 곳까지 채 이르지 못한 거리나 지점'을 뜻하는 말로 쓰였으므로 모두 명사인 '못미처'로 바로잡아야 한다. 또 '못미처'는 한 단어이므로 '못 미처'로 띄어 써선 안 된다. '못 미쳐'는 어떤 상황에 쓰이는가. "명수는 ○○대학 입시에서 합격선에 못 미쳐 떨어졌다" "내 성적은 선생님께서 지목한 아이들의 그것에 훨씬 못 미쳤다"에서 보듯이 동사 '미치다'(공간적 거리나 수준 따위가 일정한 선에 닿다)를 부정할 경우에 사용된다. 즉, '못 미쳐'는 '미치지 못해'의 뜻이다. '못미처'는 명사로서 한 단어이므로 꼭 붙여 써야 하고, '못미쳐'로 적으면 틀린다. '못 미쳐'는 동사 '미치다'의 부정이라는 점과 띄어 써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Board 말글 2010.10.18 바람의종 R 22660
추격, 추적 미국의 이스라엘 영사관에 총알이 날아들었다. 이웃집 창문을 관통한 총탄은 그대로 벽에 박혔다. 테러범의 공격으로 추정한 미국연방수사국은 탄알이 노린 게 무엇인지 '추적'에 들어갔다. 총알이 박힌 곳에서 이웃집 창문을 향해 레이저 광선을 쐈더니 건물 몇 개를 지나 어느 공터에 멈췄다. 총알이 영사관에 날아든 시각, 그 공터에선 건물 경비원이 가방을 훔쳐 달아나는 범인을 '추격'하고 있었다. 결국 총알은 이 경비원이 쏜 것으로 밝혀졌다. 법의학서 '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에 나오는 실화다. 이 이야기에서 발사된 총알의 궤적을 더듬는 데는 '추적'을, 소매치기를 잡기 위해 경비원이 쫓아가며 총으로 위협한 일에는 '추격'이란 용어를 썼다. 일상에서 두 단어는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지만 이처럼 그 쓰임새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추적(追跡)'은 도망하는 사람의 뒤를 밟아 쫓거나 사물의 자취를 더듬는 것으로 "경찰은 범행 현장에 남겨진 지문을 토대로 범인 추적에 나섰다" "검찰은 관련자들의 계좌를 추적했다"와 같이 쓰인다. '추격(追擊)'은 "은행원이 흉기를 든 강도를 추격해 격투 끝에 잡았다"처럼 뒤쫓아 가며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둘 다 쫓는다는 뜻이지만 '추적'이 보이지 않는 대상의 발자취 등을 쫓는 것이라면 '추격'은 대상이 보이는 상태에서 공격을 가하며 쫓는 것이라는 점이 다르다.
Board 말글 2010.10.18 바람의종 R 11755
Board 말글 2010.10.16 바람의종 R 12822
~하는 듯 하다 / ~하는 듯하다 / ~하는듯하다 "첫눈이 오는 날 다시 만나요." 이렇듯 겨울 사랑은 첫눈과 함께 온다. 아침부터 잿빛으로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니 금세라도 눈이 '①내릴듯 하다/ ②내릴 듯하다/ ③내릴듯하다'. 앞글에서 ① ② ③의 띄어쓰기 중 어느 것이 맞을까? 정답은 ①은 틀리고 ②와 ③은 맞다. 이렇듯 '듯'과 '하다'가 연결된 말은 띄어쓰기를 할 때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듯'과 '하다'가 결합하는 형태는 '듯'이 어간 다음에 바로 오는 경우("변덕이 죽 끓듯 하다/ 그는 그 많은 돈을 떡 주무르듯 한다")와 관형사형 다음에 오는 경우("오늘은 좋은 일이 있을 듯하다/ 기차가 연착할 듯하다")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의 경우는 어미 '-듯'과 동사 '하다'로 나누어지는 구조다. 이때의 '-듯'은 '-듯이'의 준말로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의 '가듯'과 같이 어간에 바로 결합한다. 그러므로 '끓듯 하다'처럼 띄어 쓴다. 반면 두 번째의 '듯하다'는 전체가 보조용언이다. 보조용언은 앞말과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붙여 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있을 듯하다/있을듯하다' 둘 다 가능하다. 이처럼 보조용언으로 쓰일 때는 앞말이 언제나 관형형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앞말이 어간이면 '-듯'이 어미이므로 '하다'와 띄어 쓰고, 관형형이면 '듯하다' 전체가 보조용언이므로 붙여 쓴다.
Board 말글 2010.10.14 바람의종 R 17473
보유고, 판매고, 수출고 상품 '판매고'에 따라 웃고 또 울 수밖에 없는 게 기업의 생리다. 1980년대 말부터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음악을 달리 틀어 '판매고'를 늘리는 기법을 활용했다. 백화점에선 차분한 음악으로 고객을 오래 붙들수록, 수퍼에선 빠른 음악으로 고객의 발길을 재촉할수록 더 많이 팔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정 기간 상품을 판 수량이나 금액의 총계를 흔히 '판매고'라고 한다. '판매'에 접사 '-고'를 붙인 것으로 "전설적인 그룹 퀸이 비틀스를 제치고 영국에서 가장 높은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가수로 선정됐다"와 같이 사용한다. 그러나 '판매고'처럼 일부 명사 뒤에 '-고'를 붙이는 것은 일본식 조어(造語)다. 일본에선 '-고(高)'를 '다카(だか)'라 하는데 이 말이 오면 액수나 수량.분량의 뜻을 더하게 된다. 생산(生産)을 의미하는 '세이산(せいさん)'에 다카(だか)를 붙여 '세이산다카(せいさんだか.生産高)'라고 쓰는 것이다. 이를 그대로 옮겨 '생산고'라 하는 사람이 많지만 '생산액'이나 '생산량'이라 해야 우리말 어법에 맞다. '판매고' 역시 '판매액'이나 '판매량'으로 순화해 써야 한다. 한술 더 떠 '매상고'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판매'의 일본말 '매상(賣上)'을 그대로 옮겨 온 것이므로 이 또한 삼가야 할 표현이다. 수확고·잔고·보유고·수출고 등은 모두 수확량.잔액.보유액.수출액/수출량으로 바꿔 쓰는 게 좋다.
Board 말글 2010.10.14 바람의종 R 9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