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기다 세계적인 극작가이자 독설가였던 버나드 쇼는 재미난 일화를 많이 남겼다. 어느 날 그는 고관들에게 한 통의 전보를 보낸다. "모든 게 들통 났다. 튀어라." 전문을 본 이들은 그 길로 꽁무니를 뺐다. 당시 부패한 영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 주는 사건으로 뒤가 '캥기는'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방증이다. 마음속으로 겁이 나고 탈이 날까 불안한 것을 가리켜 '캥기다'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뒤돌아서면 왠지 찜찜하고 뒤가 캥기는 다른 정치인과 달리 그는 뒷맛이 개운한 과일 같은 사람이다" "캥기는 게 없다면 왜 거액을 조건으로 합의에 나섰겠느냐?"처럼 쓰고 있지만 '켕기는'이라고 해야 맞다. 'ㅔ'와 'ㅐ'는 다른 글자이지만 발음상 잘 구별하기가 어려워 '케케묵다'를 '캐캐묵다'로 적거나 '캐묻다'를 '케묻다'로 표기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처럼 '케'와 '캐'를 소리로는 구별하기가 쉽지 않아 '켕기다'를 '캥기다'로 잘못 쓰는 사람이 많지만 '켕기다'가 표준어다. "뒤가 켕기는 사람은 한밤 쥐가 우는 소리에도 기겁하지만 물욕(物慾)에 현혹되지 않는 사람은 태산이 무너지고 눈앞에서 고라니가 뛰어도 꿈쩍하지 않는다" "본업을 숨기고 가공의 직업을 내세운 후보야말로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음이 틀림없다" "속으로 켕기는 거라도 있어?"와 같이 써야 한다. '켕기다'는 '단단하고 팽팽하게 되다' '마주 버티다' '맞당겨 팽팽하게 만들다'는 뜻으로도 사용한다.
Board 말글 2011.11.21 바람의종 R 13590
친구이다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친구이다" "친구다" 둘 중 어느 쪽으로 표기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 경우 둘 다 가능한 표기이기는 하다. 그러나 서술격조사의 기본형인 '-이다'는 '친구'처럼 모음으로 끝나는 명사 뒤에 붙으면 어색하다. 이때는 '이'를 빼고 '-다'만 써야 자연스럽다. 특히 '아이' '보기' '예' 등 'ㅣ' 모음으로 끝나는 명사 뒤에 '-이다'를 붙여 쓰면 아주 거북하다.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태도이다" "그것은 당연한 결과이다"는 "~태도다" "~결과다"가 자연스럽다. "그는 참으로 영특한 아이이다" "잘못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이다"는 "~아이다" "~예다"가 부드럽다. 실제 생활에서는 이들을 ''-이다''가 아니라 ''-다''로 말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내가 이 일에 나선 것은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서이다"와 같이 '-이다'는 용언의 어미 또는 조사나 부사 뒤에도 붙을 수 있다. 이때도 모음으로 끝나는 경우 "~생각하느냐다" "~위해서다"처럼 '-다'만 붙여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모음으로 끝나는 말 다음에는 '-이다'보다 '-다'가 자연스러움에도 표기에 혼란을 주는 것은 문어체인 '-이다'를 고집하면서 아직까지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주로 학자들로, 과거의 타성에 젖어 실생활에서 쓰는 말과 동떨어진 문어체 표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다'와 같은 문어체로는 '되어''되었다'와 '하여''하였다'가 있다.
Board 말글 2011.11.20 바람의종 R 12226
Board 말글 2011.11.20 바람의종 R 10196
거꾸로 / 반대로 얼마 전 슈퍼주니어-T가 트로트 싱글 '로꾸거'를 발표했다. 타이틀곡 '로꾸거'는 '거꾸로'를 뒤에서부터 표기한 것으로, 전체 가사가 앞에서부터 읽거나 반대로 읽어도 말이 되도록 구성돼 있다. 이러한 형식을 '팰린드롬(palindrome)', 즉 '회문(回文)'이라고 하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언어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거꾸로'와 바꿔 쓸 수 있는 말로 흔히 '반대로'를 떠올린다. '거꾸로'는 '차례나 방향, 또는 형편 따위가 반대로 되게'라는 뜻이다. '반대로'는 '두 사물이 모양.위치.방향.순서 따위에서 등지거나 서로 맞섬으로' 또는 '어떤 행동이나 견해.제안 따위에 따르지 않고 맞서 거스름으로'라는 의미로 쓰인다. '반대로'가 첫째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 '거꾸로'와 바꿔 쓸 수 있지만 둘째 경우는 그렇지 않다. 가령 "옷을 거꾸로(반대로) 입다" "일의 순서가 거꾸로(반대로) 되다" "토마토는 거꾸로(반대로) 발음해도 토마토다"와 같은 경우 두 말의 의미상 차이는 거의 없다. 그러나 "꿈 속의 이미지는 현실의 생각과 거꾸로 나타난다" "그는 나와는 항상 거꾸로 한다" 같은 경우엔 '거꾸로' 대신 '반대로'를 써야 자연스럽다. 그가 일할 때 내가 놀고, 내가 일할 때 그가 노는 것을 '거꾸로'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거꾸로 돌아간 세상'이란 노래가 있는데 이 경우엔 '반대로 돌아간 세상'이라고 하면 어색해진다.
Board 말글 2011.11.17 바람의종 R 12267
지천에 폈다 봄은 마음에서 먼저 시작된다. 개나리가 담장을 기웃거리고 진달래가 산허리를 수줍게 감싸기 전에 마음은 황망히 음습한 겨울을 밀어내고 봄맞이 채비를 서두른다. 그러나 올해는 봄꽃이 한발 앞서 계절을 알려 왔다. 남부 지방은 물론 설악산에도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었다는 소식이다. '지천'은 '매우 흔하다'는 뜻으로 "마을 뒷산에는 갖가지 들꽃과 봄나물이 지천이다" "예년보다 한 달가량 일찍 설악산 국립공원에 현호색.노루귀 등이 지천으로 피어 등산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와 같이 쓰인다. 주로 서술격조사 '-이다'나 부사격조사 '-(으)로'를 붙여 '지천이다' '지천으로'의 꼴로 사용하는데 이를 '지천에'로 잘못 표현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봄이면 진달래와 아카시아 꽃이 지천에 피어 마을은 온통 달콤한 꽃향기로 가득 찼다" "옛사람들은 봄이 되면 지천에 깔린 나물을 뜯어 반찬을 해 먹었다" "길가의 화단 등 지천에 널린 게 꽃이건만 꽃을 찾아 나선 상춘객들로 고속도로는 연일 붐빈다"처럼 쓰고 있지만 '지천으로'로 고쳐야 한다. '지천'의 한자어를 '땅과 하늘(地天)'로 생각해 '곳곳에' 정도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나 '지천(至賤)'은 사물이 여기저기 아주 흔하게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으로'를 붙여 쓰는 게 자연스럽다. "지리산 자락에 지천으로 핀 산수유 꽃이 화사한 봄 빛깔을 뽐내기 시작했다"와 같이 표현하거나 아예 쉬운 말로 풀어 쓰는 게 좋다.
Board 말글 2011.11.16 바람의종 R 10804
초생달 / 초승달, 으슥하다 / 이슥하다, 비로소 / 비로서 "초생달이 지고 밤이 으슥해진 뒤에야 그는 비로서 길을 나섰다." 이 문장에서 잘못 사용된 단어들을 찾아보자. 우선 '초생달'은 '초승달'로 쓰는 게 맞다. '초승달'은 초승(음력으로 그달 초하루부터 처음 며칠간)에 뜨는 달로 초저녁에 서쪽 하늘에서 볼 수 있다. '초승'이란 말이 '初生'이란 한자에서 나왔으니 사실 '초생달'이라고 쓸 근거는 있다고 할 수 있지만 현재는 '초승달'만 인정되고 있다. 북한어에서는 '초생달'을 사용한다. 초승달은 각월(却月).세월(細月).신월(新月).초월(初月).현월(弦月)이라고도 한다. 초승달은 초저녁에만 뜨므로 달이 지고 나면 밤이 차츰 깊어진다. 밤이 꽤 깊어진 것을 나타낼 때 "몇 시간을 앉아 있었지만 고기는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밤이 으슥할 무렵 드디어 낚싯대 끝이 휙 구부러지며 큼직한 놈이 한 마리 걸려들었다"에서처럼 '으슥하다'를 쓰는 걸 가끔 볼 수 있는데 이때는 '밤이 이슥할 무렵'처럼 '이슥하다'를 쓰는 게 바르다. '으슥하다'는 '무서움을 느낄 만큼 깊숙하고 후미지다' 라는 뜻으로 '집으로 돌아가려면 으슥한 골목길을 지나가야만 했다"처럼 사용된다. 끝 부분의 '비로서'도 자주 틀리는 단어인데 '비로소'로 쓰는 게 옳다.
Board 말글 2011.11.15 바람의종 R 19313
빼았기다 / 빼앗기다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은 아이들에게도 대목이다. 고대하던 세뱃돈을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얼마를 모을 수 있을지 가늠해 보기도 하고, 받은 돈을 어떻게 하면 부모에게 빼앗기지 않을지 궁리하기도 한다. '세뱃돈 많이 받기'와 '세뱃돈 빼앗기지 않기'가 아이들의 인터넷 검색어 순위 상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재미있는 글이 올라 있다. "세뱃돈을 엄마에게 빼았겼어요. 엄마가 미성년자라고 하면서 돈을 달라고 해서 할 수 없이 빼았겼어요. 그럼 전 미성년자라 돈을 갖고 있으면 안 되고 돌려받을 수도 없는 건가요?" 얼마나 억울했으면 이런 하소연을 남겼나 싶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처럼 '빼앗기다'는 내용을 언급할 때 '안 빼았기기' '빼았기지 않기' 등과 같이 잘못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각각 '안 빼앗기기' '빼앗기지 않기'로 적어야 한다. "누구에게도 당신의 꿈을 빼았기지 말라" "중국에 역사를 빼았겨서는 안 된다" 등처럼 어른들도 잘못 표기하는 예가 흔하다. '빼앗다'는 '빼앗아, 빼앗으니, 빼앗는'으로 활용된다. 준말인 '뺏다' 형태로도 사용되며, 이때는 '뺏어, 뺏으니, 뺏는'으로 활용된다. 어느 경우든 '뺐-'이나 '빼았-' 형태는 나올 수 없다. '빼앗아'는 준말로 활용하면 '뺏어'가 된다(빼앗아=뺏어). 아이에게서 세뱃돈을 뺏었다는 불평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곳에 쓰게 하거나 통장을 만들어 주는 등 요령이 필요하다.
Board 말글 2011.11.15 바람의종 R 12680
엄한 사람 잡는다 한 아낙이 잿불에 김을 올려놓고 잠시 밖에 나갔다 왔다. 돌아와 보니 굽던 김은 온데간데없고 이웃집 꼬마가 부엌에 서 있었다. 아낙은 김이 타 버렸단 생각은 하지 못하고 심부름 온 아이가 모두 먹어 치운 것으로 여겼다. 이때 아낙이 꼬마를 나무란다면 엄한 사람 잡는 꼴이 될까, 애먼 사람 잡는 꼴이 될까. 발음이 비슷해 많은 사람이 '엄한'으로 쓰고 있지만 '일의 결과가 다른 데로 돌아가 억울하게 느껴지는'이란 뜻의 단어는 '애먼'이다. 엄한 사람은 규율을 적용하거나 예절을 가르치는 게 철저하고 바른 이를 가리킨다. 경상도 쪽에선 '어만' '어먼'으로도 사용하지만 '애먼'이 표준어다. "애먼 사람에게 누명 씌운 것 아닌가?" "애먼 사람 잡아다 경을 치게 만들었군" "내가 언제 그랬어? 괜히 애먼 사람 잡지 마"와 같이 써야 한다. '애먼'은 "귀리를 뽑으려다 애먼 보리까지 뽑아 버릴라" "해충을 없애려고 살충제를 뿌렸는데 애먼 천적만 해치고 해충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네그려" "지금 할 일이 산더미인데 애먼 일만 붙들고 있구나"처럼 '일의 결과가 다른 데로 돌아가 엉뚱하게 느껴지는'이란 의미로도 사용한다. '애먼'과 비슷한 뜻의 말로 '애매하다'도 있다. '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아 억울하다'는 의미로, 줄여서 '앰하다'고도 한다. "죄 없는 사람에게 그런 벌을 주다니 애매한 두꺼비 돌에 치인 꼴인걸" "앰한 개 매만 맞는다고 아무 관련도 없는 자네가 꾸지람을 들었군"처럼 쓰인다.
Board 말글 2011.11.14 바람의종 R 9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