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무르다, 버무리다 봄은 어디서 오는가. 꽁꽁 언 땅을 뚫고 나와 바람결에 몸을 비비며 싱그러움을 내뿜기 시작한 봄나물들은 그 비밀을 알까. 겨우내 잃어버린 입맛을 돋우고 피로를 덜어 주는 것으로 알려진 봄나물은 데치고 무치고 버무려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우리 밥상에 향긋한 봄을 전해 준다. 음식을 할 때 '여러 가지 재료를 한데 뒤섞다'는 뜻으로 '버무리다'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런데 사람마다 이를 활용하는 방법이 제각각이다. "새콤달콤한 초고추장은 돌나물.달래 등을 날로 버무르거나 냉이.두릅 등을 데쳐서 무쳐 먹을 때 좋다" "봄동으로 겉절이를 할 때는 소금에 절이지 말고 버물어야 더 맛있다"처럼 사용하고 있지만 모두 잘못 활용한 것이다. '버무르다'나 '버물다'를 기본형으로 생각해 '버무르+거나' '버물+어야'처럼 쓰는 것으로 보이나 '버무리거나' '버무려야'라고 해야 어법에 맞다. '버무리다'만 표준어로 인정하기 때문에 "미나리에 생굴을 넣고 식초 양념에 버무려 먹으면 식욕을 되찾는 데 그만이다"와 같이 사용해야 한다. '버무리다'의 피동사인 '버물리다'를 기본형으로 알고 "어머니가 달래전을 만들려고 송송 썬 달래에 새우살을 넣고 버물렸다"처럼 쓰는 사람도 있지만 동작의 주체가 직접 행동한 것이므로 '버무렸다'로 고쳐야 맞다. '버무리다'에서 파생된 말로는 버무리(여러 가지를 한데 뒤섞어 만든 음식), 버무리떡(쌀가루에 콩.팥 등을 한데 섞어 찐 떡)이 있다.
Board 말글 2011.12.12 바람의종 R 10178
성대묘사 목소리를 바꿔 가며 1인4역을 해 거액의 돈을 가로챈 사람이 최근 구속됐다고 한다. 전화 통화로 부동산중개업자, 감정평가원 직원 등 그때그때 목소리를 달리하며 건물주에게서 억대의 돈을 뜯어냈다고 하니 재주가 놀랍다. 이처럼 남의 목소리를 기막히게 흉내 내는 것을 '성대모사'라고 한다. 그러나 '성대묘사'로 잘못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터넷에는 '성대묘사'라는 말이 무수히 나온다. 신문에서도 '성대묘사'란 표현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묘사(描寫)'는 소설.그림 등의 작품에서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해 옮기는 것을 뜻한다. '심리 묘사' '생생한 현장 묘사' 등과 같이 쓰인다. '모사(模寫)'는 사물이나 형체를 본떠 그대로 베껴 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작품은 원작의 모사에 불과하다" 등처럼 사용된다. '성대모사'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그대로 베낀 듯 흉내 낸다는 점에서 '묘사'가 아니라 '모사'다. '성대묘사'로 잘못 쓰기 십상인 것은 '묘사'와 '모사'의 뜻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는 한자나 예부터 전해 오는 한자 성어(成語)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다. 이 밖에도 잘못 쓰기 쉬운 한자 성어로는 포복졸도→포복절도(抱腹絶倒), 산수갑산→삼수갑산(三水甲山), 야밤도주→야반도주(夜半逃走), 풍지박산→풍비박산(風飛雹散), 양수겹장→양수겸장(兩手兼將), 홀홀단신→혈혈단신(孑孑單身), 절대절명→절체절명(絶體絶命) 등이 있다.
Board 말글 2011.12.05 바람의종 R 8189
Board 말글 2011.12.05 바람의종 R 15282
~대, ~데 ㄱ. 진달래가 지천인데 설악산엔 눈이 내렸데. ㄴ. 진달래가 지천인데 설악산엔 눈이 내렸대. ㄱ과 ㄴ은 어떤 의미 차이가 있을까? ㄱ의 경우는 과거에 자신이 직접 경험해서 알게 된 사실을 지금 상대방에게 감탄조로 전하는 것이다. 이때의 '-데'는 '-더라'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자신이 설악산에 가 봤더니 눈이 내렸더라는 내용이다. 말하는 사람이 직접 경험한 일이 아닐 때는 사용할 수 없으므로 "내 친구가 그저께 가 봤는데 설악산엔 눈이 내렸데"처럼 쓸 수는 없다. ㄴ의 경우는 자신이 경험한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다. 즉 자신이 직접 설악산에 가서 눈이 내린 것을 본 게 아니라 그런 사실을 남에게서 들은 것이다. 이때의 '-대'는 '다고 해'가 줄어든 말이다. ㄱ. 마카오에는 작지만 예쁜 박물관들이 많다대. ㄴ. 마카오에는 작지만 예쁜 박물관들이 많다데. ㄱ과 ㄴ 중에 어느 것이 맞을까? 이 경우는 위와 좀 다르다. 말하는 사람이 과거에 들은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어서 '-다대'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ㄴ처럼 '-다데'로 쓰는 게 바르다. 이 '-다데'는 '-다고 하데'가 줄어든 표현이다. '-데'가 '-더라'의 뜻이고 '-대'가 '-다고 해'의 뜻임을 생각해 보면 '많다데'는 '많다더라'로 의미가 잘 통하고, '많다대'는 '많다다고 해'가 돼 어색한 것을 알 수 있다.
Board 말글 2011.12.04 바람의종 R 13632
유돌이, 유도리 자기계발 및 성공심리학 전문가인 컬린 터너는 "일에는 유능한데도 그다지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흔히 있다. 이런 사람은 대부분 융통성이 없이 고지식하기만 하다. 사고방식이 완고하거나 부정적이다"고 말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융통성이라는 얘기다. 특히 조직생활에서는 융통성이 윤활유 역할을 해 준다. 융통성이 없으면 스스로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이처럼 융통성이 없는 사람을 가리켜 보통 '유돌이(유도리)가 없는 사람'이라 부른다. '기계나 일이 돌아가는 것을 유들유들하게 해 주는 것' 정도의 의미가 연상돼 '유돌이' 또는 '유도리'란 말을 쓰곤 한다. 그러나 '유돌이(유도리)'는 사전에 없는 말이다. '유돌이(유도리)'는 시간.금전.기력 등의 여유를 뜻하는 일본어 '유도리(ゆとり)'에서 온 것이다. 일본에서는 주5일제 수업과 교과내용 30% 감축 등 고등학교의 '여유 있는 교육', 즉 '유도리(ゆとり) 교육'이 학력을 저하시켰다고 해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유돌이(유도리)'는 상황에 따라 '융통성' '여유' '이해심' 등 우리말로 적당히 표현하면 된다. "그렇게 유돌이(유도리)가 없어서 세상을 어떻게 사느냐" "성수기라도 한두 자리는 유돌이(유도리)가 있게 마련이다" "따뜻한 말로써 감싸 주는 아량과 유돌이(유도리)가 필요하다"에서는 각각 '융통성' '여유' '이해심'으로 바꿔 쓰면 된다.
Board 말글 2011.12.04 바람의종 R 16289
본따다 모방 심리가 강한 아이들은 부모의 행동을 따라 하게 마련이다. 유대인 속담에 배움은 흉내 내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말도 있다. 백 마디 충고보다 부모의 바른 행동 하나가 자녀에게는 더 큰 가르침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무엇을 본보기로 삼아 그대로 좇아 하는 것, 또는 이미 있는 대상을 본으로 삼아 그대로 좇아 만드는 것을 이를 때 '본따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어린 시절 그는 독서를 즐기던 아버지의 모습을 본따 서재에 앉아 눈썹을 치켜뜨고 책장을 넘기는 시늉을 하다가 책과 친해지게 됐다고 한다" "한글의 닿소리는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따고, 홀소리는 하늘과 땅과 사람을 본땄다"처럼 사용하고 있지만 '본떠, 본뜨고, 본떴다'로 고쳐 써야 맞다. '본따, 본따고, 본땄다' 등의 형태로 사용하는 것은 '본따다'를 기본형으로 잘못 알고 있는 데서 오는 오류로 보인다. 그러나 '본(本)'에 '따다'가 아닌 '뜨다'가 합쳐진 '본뜨다'가 기본형으로, 용언의 어간 '으'가 '아/어' 앞에서 탈락하는 동사 '뜨다'와 같은 꼴로 활용된다. "인간은 남의 행동에 맞춰 행동하도록, 대개 그들의 행동을 본뜨도록 진화해 왔다" "인기 있는 오락 프로그램의 상당수가 일본 방송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그림은 옛 민화의 이미지를 본뜨고 그 위에 화려한 색깔을 덧입혔다"처럼 써야 한다.
Board 말글 2011.11.30 바람의종 R 10215
있사오니 / 있아오니 철도역이나 관공서, 대형 할인점 등에 가면 "승차권을 임시 매표소에서 발급하고 있아오니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공지사항을 게재해 안내하고 있아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굴비세트를 선착순으로 할인판매하고 있아오니 서두르십시오" 등의 문구를 볼 수 있다. 이렇듯 공고문이나 안내장에서 '있아오니'라는 단어가 종종 나오는데 이는 표기법상 옳지 않다. '있사오니(있으오니, 있으니)'라고 써야 한다. 우리말에서 '-사오-, -으오-, -으니'라는 어미는 있지만 '-아오-'라는 어미는 없기 때문이다. '있사오니'를 분석하면 '있(다)+사오+니'의 형태다. 여기서 '-사오-'는 예스러운 표현으로, 자신의 진술을 겸양해 나타내는 어미다. '읽으오니, 잡으오리다'같이 서술이나 의문에 공손함을 더해 주는 어미'-으오-'보다 더 겸양의 뜻을 나타낸다. '-니'는 앞말이 뒷말의 원인이나 근거, 전제 따위가 됨을 나타내는 연결어미다. "당신을 믿사오니 힘내세요"에서 '믿사오니'를 '믿아오니'라고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있사오니'에서는 어간 '있'의 받침이 'ㅆ'이어서 뒤에 다시 'ㅅ'이 오면 중복되는 느낌이 있어 '있아오니'로 잘못 쓰고 있는 것 같다. '-사오-'처럼 겸양을 나타내는 어미로는 ''삽-(밥을 먹삽고/ 그 사람을 믿었삽더니)' '-자오-(듣자오니/ 받자와/ 묻자와)' '-잡-(스승의 뜻을 좇잡나이다/ 폐하의 명을 받잡고)' '-옵-(가시옵소서/진지 드시옵소서/저를 불러 주시옵소서)' 등이 있다.
Board 말글 2011.11.30 바람의종 R 13465
하꼬방 빈민촌이나 달동네의 허름한 집을 가리킬 때 '하코방'이란 말이 많이 쓰인다. "이곳 하코방들에는 변소가 없었다. 그러므로 여기 주민들은 대소변에 있어서 아주 개방적이었다"처럼 도시 빈민의 궁핍한 삶이나 소외된 도시 근로자들의 열악한 환경을 묘사하는 작품에 등장하기도 한다. '하코방'이란 인터넷 쇼핑몰도 있다. '하코방'은 상자나 궤짝 등을 의미하는 일본어 '하코(はこ.箱)'에 한자어 '방(房)'이 합쳐진 말이다. 그대로 풀이하면 '상자방, 궤짝방'이 된다. 판자로 벽을 만들어 흡사 궤짝같이 지은 허술한 집을 일컫는다. 우리말로는 '판잣집' 정도가 적당하다. 일제시대에는 토지 등을 빼앗긴 농민들이 서울 외곽으로 몰려들면서 '토막집' '토굴집'이라 불리는 무허가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판잣집이 생겨나기 시작한 건 한국전쟁 직후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황에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두꺼운 종이상자나 판자로 벽을 세워 대충 바람만 가리게 만든 집이 많았다고 한다. 판잣집이 모여 있는 매우 가난한 동네를 '판자촌'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공식 1호 판자촌은 서울 용산구 '해방촌'이다. 요즘은 방을 여러 개로 나누었다는 점에서 '쪽방'이란 말도 많이 사용하지만 아직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일본말인 '하코방'은 '판잣집'으로 쓰는 게 바람직하다.
Board 말글 2011.11.30 바람의종 R 15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