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개고기 수육 예년과 달리 올해는 더위가 유난히 일찍 찾아왔다. 초복이 아직 멀었는데도 '보신탕집'에는 손님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예부터 땀을 많이 흘려 허약해진 몸에 영양을 보충해 주는 여름 보양식으로 보신탕이 최고로 꼽히기 때문이다. 보신탕집에 가면 개고기를 여러 가지 양념, 채소와 함께 고아 끓인 국인 보신탕(개장국)뿐 아니라 개고기 무침과 개고기 수육 등이 있다. 그런데 '개고기 수육'이란 표기는 현행 국어사전의 뜻풀이로 보면 잘못이다. '삶은 개고기' 정도로 표현해야 옳다. '돼지고기 수육'도 마찬가지다. '삶은 돼지고기'라고 써야 한다. 사전에서는 '수육←숙육(熟肉)'을 '삶아 익힌 쇠고기'라고 풀이하고 있다. 쇠고기에만 '수육'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뜻풀이는 언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돼지고기 요리 중에 '돼지 머리 편육'이 있다. '편육'이 '얇게 저민 수육'을 일컫는다면 '돼지 머리 편육'도 잘못이다. 국립국어원에서도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 번 사전에서 '수육'의 뜻풀이를 '삶아내어 물기를 뺀 고기'로 수정한다고 한다. 삶은 돼지고기를 김치 등과 함께 먹는 '보쌈'의 뜻풀이도 이해하기 어렵다. '삶아서 뼈를 추려 낸 소, 돼지 따위의 머리 고기를 보에 싸서 무거운 것으로 눌러 단단하게 만든 뒤 썰어서 먹는 음식'이라고 했는데 이 또한 언어 현실과 괴리가 있다. 이것 역시 보완이 필요하다.
Board 말글 2012.05.02 바람의종 R 12230
[우리말바루기] 다 되다, 다되다 우리말 바루기의 독자라면 띄어쓰기 하나로도 단어의 의미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되다'와 '다 되다'는 띄어쓰기로 인해 의미가 180도 변하는 참 재미있는 낱말이다. '다'와 '되다'를 띄어 써서 '다 되다'고 하면 '모든 일을 마쳤다, 완성했다'는 의미가 되고, '다'와 '되다'를 붙여 써서 '다되다'고 하면 "이제 최 부잣집도 다된 집안이다" "이런 큰 뜻을 몰라 준다면 이젠 세상도 다된 거요"에서와 같이 '완전히 그르친 상태에 있다'는 뜻이 되니 말이다. '다'는 일반적으로 "올 사람은 다 왔어" "줄 건 다 줬어"에서와 같이 '남거나 빠진 것 없이 모두'라는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다'는 "벼락치기로 시험 공부를 하자면 잠은 다 잤다" "비가 오니 소풍은 다 갔다"에서처럼 실현할 수 없게 된 앞일을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반어적으로 나타내는 말로도 쓰인다. '다'와 '되다'를 결합해 만든 단어 '다되다'가 '다 되다(모두 되다, 즉 모두 완성되다/이루어지다)'와 의미가 많이 다른 것은 '다되다'는 합성어가 만들어질 때 '모두'라는 의미의 '다'가 아닌 반어적 용법의 '다'가 와서 '되다'와 결합했기 때문이다. 띄어쓰기라는 작은 차이 하나가 의미의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정도로 우리말의 세계는 복잡 미묘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이지 않은가.
Board 말글 2012.04.30 바람의종 R 9685
[우리말바루기] 송글송글, 송긋송긋 불한당(不汗黨).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땀이 나지 않는 무리라는 뜻이다. '땀'은 날씨가 덥거나 몸에서 열이 날 때 분비되는 것이지만 몸과 마음을 다해 애쓰는 걸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는 점에서, 정당한 노력 없이 남을 등치며 괴롭히는 사람들을 불한당이라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땀방울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땀을 흘리며 산다.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피땀'을 쏟기도 하고, 어려운 일 앞에서 '진땀'을 빼기도 한다. 무더위로 '비지땀'에 젖고, 몸이 쇠약해지면 '식은땀'도 난다.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는 '구슬땀'이 방울방울 맺히고, '방울땀'도 송송 돋는다.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선지 땀을 나타내는 말도 다양하다. 그러나 이때 주의해야 할 표현이 있다. 살갗 등에 땀이 잘게 많이 돋아나 있는 모양을 '송글송글'이나 '송긋송긋'이라 하지만 모두 틀린 말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뜨끈한 국물을 마시고 나면 코에 땀이 송긋송긋 솟는다"처럼 쓰고 있지만 '송골송골'이라고 해야 맞다. 의성어.의태어에선 양성모음은 양성모음끼리, 음성모음은 음성모음끼리 어울리는 모음조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난다. 오순도순.싹둑싹둑처럼 예외도 있지만 '송골송골'은 모음조화가 일어난 형태를 표준어로 삼고 있다.
Board 말글 2012.04.30 바람의종 R 14194
[우리말바루기] 유월, 육월, 오뉴월 어느덧 유월도 중순을 넘어 여름으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 벌써 한낮의 기온은 30도를 웃돌고 있다. 음력으로도 '오뉴월 더위에는 염소 뿔이 물러 빠진다'는 오뉴월로 접어들었다. '오뉴월'은 오월과 유월을 함께 뜻하며, 여름 한철을 일컫는 말이다. 6월을 일월.삼월.팔월처럼 '육월'이라 하지 않고 '유월'로, '오육월'을 '오뉴월'로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육월'이나 '오육월'로 쓰면 어떻게 될까. 한자어는 본음으로도, 속음으로도 발음한다. 속음은 본음과 달리 일반 사회에서 널리 쓰는 음을 뜻한다. '육월(六月)'을 '유월'로, '오육월'을 '오뉴월'로 읽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경우 받침이 없는 것이 발음하기 쉽기 때문이다. 음을 매끄럽게 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변화를 '활음조(滑音調)' 현상이라 한다. 인접한 음소들 사이에서 모음조화나 자음동화, 모음 충돌을 피하기 위한 매개 자음 삽입 등의 형태로 활음조 현상이 일어난다. '유월'과 마찬가지로 '십월(十月)'은 '시월'로 읽는다. 보리(菩提), 보시(布施), 도량(道場:도를 얻으려고 수행하는 곳), 초파일(初八日), 모과(木瓜), 허락(許諾), 곤란(困難), 희로애락(喜怒哀樂)도 본음과 달리 소리 나는 것들이다. 맞춤법은 '유월'과 같이 속음으로 읽히는 것은 그 소리에 따라 적는다는 규정하고 있어 '육월'이라 쓰면 안 된다. '오뉴월'을 '오육월', '시월'을 '십월', '초파일'을 '초팔일'로 써도 틀린 것이 된다.
Board 말글 2012.04.23 바람의종 R 14488
[우리말바루기] 안정화시키다 요즘 '-화시키다' 형태의 말이 유행하고 있다. '-화하다'로만 해서는 말맛이 약하다고 생각하는지 강한 표현을 선호한다. '-화시키다'를 쓰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취업난을 경험하고 있는 청년층의 노동시장을 안정화시키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보유세 강화가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해 지가를 안정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처럼 '안정화시키다'를 많이 쓰고 있지만 '안정화하다' '안정시키다'가 바른 표현이다. '바뀌어 달라지지 아니하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함'이란 뜻의 '안정(安定)'은 자동사로 사용할 경우 '안정되다' '안정하다'로 표기한다. 타동사로 쓰려면 '안정화시키다'가 아니라 '안정시키다' '안정화하다'로 해야 한다. '안정화시키다'는 현실에 뿌리내린 낱말도 아니고 틀린 표기이므로 '-화-'를 덧붙일 이유가 조금도 없다. '속도를 더하게 됨. 또는 그렇게 함'이란 뜻의 '가속화하다'도 마찬가지다. 이를 '가속화시키다'로 쓰는 것은 지나치다. '가속화하다'도 실은 '가속하다'(점점 속도를 더하다)로 해도 충분하다. '가속하다'를 타동사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사는 '가속되다'로 하면 된다. 잘못 쓰는 말이 퍼지기 시작하면 되돌리기가 어려우므로 처음부터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Board 말글 2012.04.23 바람의종 R 14702
Board 말글 2012.04.23 바람의종 R 15880
[우리말 바루기] 뒤처지다 / 뒤쳐지다 현대사회가 무한 경쟁사회라는 데에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끝도 없는 경쟁의 시대, 다른 이가 나를 앞질러 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한 번씩은 느껴 봤을 테니 말이다. 어떤 수준이나 대열에 들지 못하고 뒤로 처지거나 남게 된다는 의미로 쓰는 낱말이 바로 '뒤처지다'이다. 그러나 흔히 '뒤쳐지다'와 헷갈려 사용하곤 한다. '뒤처지다'와 '뒤쳐지다'는 그 모양과 발음이 비슷해 혼동하기 쉽지만 의미가 각각 다르다. '뒤쳐지다'는 "화투짝이 뒤쳐지다" "바람에 현수막이 뒤쳐졌다"에서와 같이 '물건이 뒤집혀서 젖혀지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기말고사 성적이 친구에게 뒤처졌다""시대의 변화에 뒤처졌다"처럼 주위와 비교해 따라가지 못했다는 의미로 쓰일 땐 '뒤처지다'라 해야 맞다. 쉽게 기억하려면 '뒤처지다'가 풀어 쓰면 '뒤로 처지다'라는 걸 떠올리면 된다. 뒤에 남게 되거나 뒤로 떨어진 모습을 보고 '처지다'라 하지 '쳐지다'라고 쓰진 않으니 말이다. '뒤처지면 안 된다'며 조급증에 빠져 있는 이 사회에 '느림의 철학자' 피에르 상소는 현대인이 잊고 사는 느림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한다. "느림은 단순히 빠름의 반대이거나 빠름에 적응할 수 없는 무능력이라기보다는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리지 않는 능력을 뜻한다"고.
Board 말글 2012.03.27 바람의종 R 13799
[우리말 바루기] 비속어 명확하게 정의하긴 어렵지만 통속적으로 쓰이는 저속한 말을 속어(俗語)라고 한다. 일반 대중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사용되면서도 정통 어법에서는 벗어난 말을 가리킨다. '꼴통, 죽사발(묵사발), 그놈, 양아치, 조진다, 쪽팔린다, 떡 됐다, (~의) 밥이다, (내가) 쏜다, 못해먹겠다' 등이 이런 속어라 할 수 있다. 속어는 정식 대화의 언어나 문장어(文章語)로서는 선뜻 내키지 않지만 친근한 사이에서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 '짱짱하다, 긁는다, (~를) 깼다, 망했다, 국물도 없다, 죽치고 앉아 있다, 부스럭지(부스러기)를 얻어먹는다' 등도 거친 표현으로 격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넓게는 속어에 포함할 수 있다. 속어보다 더 비천한 느낌을 갖게 하며 욕설로 느끼게 하는 것은 비어(卑語)라고 한다. '대가리(대갈통), 마빡, 상판때기, 주둥이(아가리), 다리몽댕이, 처먹는다, 닥쳐라, 뒈진다' 등 상대에게 모멸감을 주는 말이 비어다. 요즘은 특히 인터넷상에서 이런 비어가 난무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속어와 비어를 아울러 비속어라 하는데, 이런 비속어는 올바른 언어생활을 저해하고 특히 청소년에게 정서적으로 나쁜 영향을 준다. 어른들이 이런 비속어를 마구 쓴다면 청소년이 일상대화나 인터넷에서 즐겨 쓰는 '열라, 졸라, 절라, 걍, 넘넘, 지대로, 므흣' 등 일그러진 말을 타이를 구실이 없어진다. 비속어를 섞어 가며 하는 막말을 흔히 저잣거리의 시정잡배들이나 하는 말에 비유한다. 그만큼 천박한 말이라는 뜻이다. 말은 마음의 초상이라 했다. 만약 자리를 가리지 않고 이런 말을 마구 쓴다면 그 사람의 정서나 정신을 의심해 봐야 한다. 참, 위에서 든 속어의 예는 모두 며칠 전 대통령이 연설에서 한 말들이다.
Board 말글 2012.03.05 바람의종 R 11870
[우리말 바루기] 배부, 배포 #장면 1.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무료신문을 펼친 김씨. 거기엔 국정홍보처가 만든 책자가 끼워져 있었다. 언론통제라는 여론의 비판에도 취재 지원 선진화를 내세워 밀어붙이고 있는 기자실 통폐합과 관련된 홍보물이었다. #장면 2. 금융 전문 인력 취업설명회가 열린 한 대학 강의실. 삼삼오오 강의실을 빠져나오는 학생들의 손에는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 설명회를 개최한 금융회사 측에서 취업 희망자를 대상으로 건네준 입사 지원서였다. 국정홍보처가 서울 시내에 뿌린 홍보 책자를 보고 있는 장면 1의 김씨와 취업설명회를 연 회사의 입사 원서를 들고 있는 장면 2의 학생들은 '배포'된 인쇄물을 받은 것일까, '배부'된 인쇄물을 받은 것일까. '배포(配布)'는 신문.책자 등을 널리 나눠 주는 것으로 "중앙일보는 독일 월드컵 때 한국과 프랑스전 결과를 실은 호외를 발행해 거리응원을 한 시민들에게 배포했다"와 같이 사용한다. '배부(配付)'는 출판물.서류 등을 나눠 주는 것으로 "교육청은 출신 학교별로 합격 통지서를 배부했다"처럼 쓰인다. 둘 다 나눠 준다는 점에선 의미가 같지만 '배포'는 장면 1과 같이 한정돼 있지 않은 많은 사람에게 뿌리는 것이고, '배부'는 장면 2처럼 어느 정도 제한되거나 정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돌리는 것이란 점에서 차이가 난다. "사원들에게 사보를 배포했다" "행인들에게 광고 전단을 배부했다"고 하면 어색하다. 두 문장의 '배포'와 '배부'를 바꿔 써야 자연스럽다.
Board 말글 2012.03.05 바람의종 R 19948
[우리말 바루기] 시다바리, 나와바리, 당일바리 영화 '친구'에서 장동건이 한 대사 중에 "내가 니 시다바리가?" "니가 가라, 하와이" 등은 당시 유행어가 될 정도로 회자되곤 했다. 여기서 문제 하나. "녀석은 흑곰파의 막내 시다바리였다" "여기는 조선 땅이야. 너희들 나와바리가 아니야" (이환경 '야인시대'), "울릉도의 특산품으로는 호박엿과 당일바리 오징어가 있다"에서 쓰인 '시다바리, 나와바리, 당일바리'는 모두 일본말에서 온 것일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모두 다 일본말은 아니다. '시다바리'는 '아랫사람, 부하, 조수', '나와바리'는 '구역, 세력 범위'를 뜻하는 일본말이지만 '당일바리'의 '바리'는 우리말이다. '바리'란 "해마다 몇씩은 잡아다가 주리를 틀었고 그럴 때마다 돈 바리와 쌀 짐이 들어왔었다" '마소의 등에 잔뜩 실은 짐 또는 그 짐을 세는 단위'를 의미하거나 '놋쇠로 만든 밥그릇'을 뜻하기도 한다. '바리'는 '바로, 즉시'라는 의미로 쓰이는 경상도.함경도 지방의 방언이기도 하다. "백화점들이 명절을 맞아 자연산 전복과 당일바리 옥돔으로 구성된 명품 선물세트를 내놓았다" "반건조 오징어는 당일바리만 쓴다"에서 '당일바리'는 '그날 바로 잡은 고기(오징어)'를 뜻한다. 여러 지역에서 많이 쓰이고 있지만 아직 표준어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아이들의 밥을 담은 작은 밥 바리를 '애기바리'라 부른다고 한다.
Board 말글 2012.03.05 바람의종 R 18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