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푸른색, 파란색 파릇파릇 돋아나는 봄의 새싹을 '푸른 새싹', '파란 새싹' 어느 쪽으로 불러야 할까. 둘 다 가능하다. 사전에는 '푸르다'와 '파랗다'가 똑같이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풀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고 돼 있다. '푸르다'의 옛말은 '프르다'로 '풀'의 고어인 '플'과 맥을 같이한다. 그렇다면 '푸르다'는 풀의 빛깔을 나타낸다. 한자어로 치면 녹색(綠色)이다. '파랗다'는 옛말이 '파라다'로 '풀(플)'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파랗다'에서 나온 '퍼렇다' '시퍼렇다'를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청색(靑色)을 나타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르다' '파랗다'를 동일시하는 것은 둘 다 '풀'에서 나온 말로 풀색과 하늘색을 뭉뚱그려 하나로 봤기 때문이라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 자연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 아니라 심정의 세계를 적당히 노래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 보는 이도 있다. 신호등이 문제다. 아이에게 파란색이 들어오면 길을 건너라고 했더니 하루 종일 기다려도 파란 신호등이 안 들어온다고 하더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물감 등의 색상에선 '파랑'이 하늘색만 뜻하기 때문이다. '푸른' '파란'을 같은 뜻으로 쓰다 보니 '녹색 신호등'을 '청색 신호등'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푸른' '파란' 어느 쪽으로 써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원에 맞게 녹색과 청색으로 구분해 '푸른 새싹' '푸른 신호등', '파란 하늘' '파란 바다' 등으로 구분해 쓴다면 색상에서 오는 혼란을 피할 수 있다.
Board 말글 2011.12.23 바람의종 R 11163
[우리말 바루기] 지지배, 기지배, 기집애, 계집애, 임마, 인마 "어느 날 여고 시절 우연히 만난 사람/ 변치 말자 약속했던 우정의 친구였네/ 수많은 세월이 말없이 흘러…". 예전에 즐겨 듣던 '여고시절'이란 노래 가사다. 노래처럼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나면 학창 시절의 추억을 얘기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동창 사이에선 "기지배, 요즘 잘나간다며" "야 임마, 정말 오랜만이다"처럼 격이 없이 '기지배' '임마'라는 말을 주고받는다. 인터넷상에서도 '기지배' ' 임마'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기지배' '임마'는 '계집애' '인마'가 바른 표현이다. '임마'는 '인마'를 편리하게 발음하다 보니 생긴 것이며, '인마'는 '이놈아'가 줄어든 말이다. '인마'의 'ㄴ'은 '이놈아'의 'ㄴ'에서 온 것이다. '인마'가 '임마'로 발음되는 것은 'ㄴ' 뒤에 'ㅁ'이 올 때는 'ㄴ'보다 'ㅁ'으로 소리 내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신물, 근무, 논문'을 '심물, 금무, 놈문'으로 발음하는 게 편한 이치와 같다. 물론 표준발음대로 하려면 'ㄴ'을 정확하게 발음해야 한다. '인마'는 "야, 너 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지 마, 인마. 가끔가다가 네가 엄만지, 내가 엄만지 헷갈린단 말야"(공지영 '즐거운 나의 집')처럼 사용된다. "기지배, 왜 연락 안 했니" "여우 같은 지지배" "참 이번 기집애는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황순원 '소나기')에서처럼 '기지배, 지지배, 기집애' 등으로도 쓰이지만 이들 또한 표준어는 아니다. '기지배'는 방언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지지배, 기집애'는 '계집애'가 맞는 말이다.
Board 말글 2011.12.22 바람의종 R 21607
[우리말 바루기] 건넛방, 건넌방 어릴 적 시골엔 대청마루에 앉아 마당에서 먹이를 쪼는 병아리 떼를 볼 수 있는 한옥이 많았다. 그러나 요즈음은 칸칸이 가로막힌 방으로 구성된 아파트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건넌방'이 없어지고 '건넛방'만 있는 세상이다. '건넌방'과 '건넛방'은 둘 다 건너편의 방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둘은 의미가 약간 달라 쓰임에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건너에 있는 맞은편 방을 가리킬 때 '건넛방'이라 한다. "옆방은 막내딸 보고 쓰라고 하고 건넛방은 첫째 보고 쓰라고 합시다" "수학여행에서 우리들은 운이 나쁘게도 선생님 건넛방을 배정받아 계획했던 일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와 같이 쓰인다. '건넌방'은 건너편에 있는 방이란 뜻을 가지고는 있으나 '안방에서 대청을 건너 맞은편에 있는 방'을 가리키는 말로 '건넛방'보다 좀 더 특수화된 의미로 사용된다. 따라서 '건넌방'은 한옥과 같이 대청마루가 있는 집에서만 가능한 말이라 할 수 있다. '건넌방'은 옛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데,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라는 소설에서는 "그는 도둑놈처럼 조심스럽게 바로 건넌방 뒤 미닫이 앞 담에 서서 주저주저하더니 담을 넘었다", 염상섭의 '동서'라는 소설에서는 "남편은 들이닥치는 길로 한마디 하고는 건넌방으로 들어간다"와 같이 쓰이기도 했다.
Board 말글 2011.12.22 바람의종 R 11278
버벅거리다 컴퓨터를 사용하다 보면 속도가 느리거나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신경질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때 주로 쓰는 말이 "버벅거린다" 또는 "버벅댄다"다. "예전엔 안 그러더니 컴퓨터가 갑자기 버벅거린다" "화면과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버벅대 영화를 볼 수가 없다"처럼 컴퓨터가 몹시 느리거나 어떤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끊김 현상이 일어날 때 '버벅거리다(버벅대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낯선 사람을 만나 긴장하거나 당황해 말을 더듬거리는 경우에도 '버벅거리다(버벅대다)'는 표현을 쓴다. "긴장한 탓에 할 말을 다하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말할 때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발음을 버벅대는 경우가 있다" "말솜씨가 없어 버벅거리기도 했는데 그가 오해하진 않았는지 모르겠다"와 같이 발음이 불명확하거나 얘기가 순조롭게 되지 못할 때 '버벅거리다(버벅대다)'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버벅거리다' 또는 '버벅대다'는 사전에 없는 단어다. '어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헤매거나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의미로 인터넷상에서는 물론 신문.방송 등 공공매체에서도 '버벅거리다'는 표현을 흔히 쓰고 있지만 표준어가 아니다. '말을 하거나 글을 읽을 때 순조롭게 하지 못하고 자꾸 막히다' '사정을 잘 알지 못해 행동을 민첩하게 하지 못하다'는 뜻의 '더듬거리다(더듬대다)'또는 '더듬더듬하다'로 바꿔 쓰는 게 바람직하다.
Board 말글 2011.12.14 바람의종 R 11393
과중, 가중 '목 뒤가 뻐근하고 온몸이 찌뿌듯하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기 십상인 직장인들이 흔히 호소하는 증상이다. 이러한 증세는 며칠 쉬고 나면 회복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충분히 자고 일어나도 몸이 천근만근 늘어지고 머리가 계속 무겁다면 "혹시 만성피로증후군이 아닐까?"하는 불안감이 가중된다. 만성피로의 원인으로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많이 꼽는다. 이때의 '과중(過重)'은 부담이 지나쳐 힘에 벅차다는 의미로 "업무량이 과중해 박씨의 간염이 급속히 악화된 점이 인정된다고 재판부는 판결했다" "그의 능력에 비해 과중한 직책이라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처럼 쓰인다. 하지만 이를 '가중(加重)'으로 바꿔 표현하면 다소 뜻이 달라진다. "팀장은 한 명의 부하 직원에게 업무량이 가중되지 않도록 효율적으로 일을 배분해야 한다" "운동 후 흡연은 피로를 풀리게 해 준다고 믿기 쉽지만 이는 니코틴 자극에 의한 일시적인 느낌으로 시간이 지나면 피곤함이 가중된다"와 같이 책임이나 부담 등을 더 무겁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두 단어 모두 부담이 무거워진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과중'은 부담을 지는 사람이 견뎌 내기에 힘들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의 계획은 업무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처럼 단순히 부담을 더하다는 뜻으로 사용할 때는 '가중', "과중한 업무로 누적된 피로가 습관성 두통이나 우울증 같은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처럼 부담이 너무 커 감당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쓸 때는 ''과중''으로 표현해야 한다.
Board 말글 2011.12.14 바람의종 R 11135
수 표현 '이팔청춘(二八靑春)'은 16살 무렵의 꽃다운 청춘, 또는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을 일컫는다. 여기서 '16'을 한글로는 '열여섯'이라고 쓸 수 있다. 그러면 '열여섯'의 띄어쓰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열여섯'으로 붙여 쓴다. 국어사전에는 '열여섯'이란 단어가 올라 있지 않다. '열여섯'이 합성어가 아니므로 '열 여섯'같이 띄어 써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열여섯'으로 붙여 쓰는 이유는 한글 맞춤법 제44항 때문이다. 한글 어문 규정에 '수를 적을 때는 만(萬) 단위로 띄어 쓴다'고 돼 있다. '십이억 삼천사백오십육만 칠천팔백구십팔'과 같이 쓰라는 얘기다. '열여섯'도 마찬가지다. 만 단위로 띄어 쓴다는 것은 만보다 작은 수일 경우에는 언제나 붙여 쓴다는 뜻이다. '열여섯'이 나이를 나타내는 '살'과 결합할 때는 '열여섯 살'처럼 띄어 쓴다. 그러나 아라비아숫자로 쓸 경우엔 띄어쓰기가 달라진다. '16 살/ 16살' 둘 다 가능하다.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붙여 쓰는 것도 허용된다. 아라비아숫자와 그 다음의 단위명사를 붙여 쓰는 현실을 수용한 결과다. 현실에서 '16살'같이 붙여 쓰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면 '제2 차(제2차, 제 2차) 세계대전' 중에서 어떤 띄어쓰기가 맞을까? '제-'가 붙어 차례를 나타내는 경우의 띄어쓰기에서 많은 사람이 혼동한다. '제2 차(제2차) 세계대전'은 맞고, '제 2차 세계대전'은 잘못이다. 원칙은 '제-'는 접두사이므로 뒤에 오는 말에 붙여 쓰고, '차'는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쓴다. 단, 아라비아숫자 다음의 단위명사는 붙여 써도 된다.
Board 말글 2011.12.14 바람의종 R 10763
직빵, 약방문 봄에는 날씨 변화가 심하다. 반팔 셔츠를 입어도 좋을 만큼 화창하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바람이 불고 기온이 떨어진다. 여기에 더해 가끔 중국 쪽에서 황사까지 넘어온다. 이런 여러 심술에도 굴하지 않고 온 산천을 화사하게 물들이며 북상하는 개나리.벚꽃 등 봄꽃들의 행렬이 장하다. 고르지 못한 날씨가 이어지다 보면 감기에 걸리기 쉽다. 감기가 흔한 병이다 보니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직빵'이라는 치료법도 많은데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주에 고춧가루를 넣어 먹으면 낫는다느니 하는 주당다운 처방까지 널리 퍼뜨려 놓았다. 흔히 "이 약은 감기에 직빵이라기보다는 잠드는 데 직빵이다" "딸꾹질을 멈추기 위해 깜짝 놀라게 하는 방법을 쓰기도 하는데 이때는 코를 손으로 막고 입을 다물고 침을 다섯 번 삼켜 보세요. 직빵입니다"처럼 어떤 결과나 효과가 지체 없이 곧바로 나타남을 가리킬 때 '직빵'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때는 '직방'이라고 쓰는 게 맞다. 한자로 쓸 때도 처방(處方)을 연상해 '直方'으로 적기 쉽지만 '直放'으로 쓰는 게 바르다. 어떤 일에 대한 처방을 너무 늦게 내려 효과가 없는 경우를 뜻하는 '사후약방문'도 한자를 잘못 적기 쉽다. 이때의 약방문을 '약방의 문[藥房門]'으로 이해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지만 처방전을 뜻하는 '藥方文'이라고 써야 한다.
Board 말글 2011.12.13 바람의종 R 11249
단절, 두절 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세 가지는? 개인마다 대답은 다르겠지만 요즘 세대들은 단연 휴대전화를 꼽는다. 통신이 '두절'되지 않고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는 조건이 전제돼야겠지만 '단절'된 세상과 연결해 주는 통로이자 무료함을 달래 주는 친구로 이보다 좋은 것도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인도에 홀로 남게 된다면 모든 것으로부터 고립되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을 "외부 세계와 단절되다" "연락이 두절되다"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 대개 '단절(斷絶)'은 유대.연관 관계가 끊어지거나 흐름이 연속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두절(杜絶)'은 교통.통신 등이 끊어지거나 막힌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런데 이 두 단어를 바꿔 써도 의미가 통할까? '두절' 대신 '단절'을 사용해도 무리가 없지만 '단절'이 올 자리에 '두절'을 쓰면 부자연스럽다. "''파리대왕''은 비행기 사고로 불시착한 무인도에서 문명과 두절된 채 생활하게 되는 소년들의 이야기다" "두 나라는 급기야 국교 두절을 선언했다" "역사는 두절되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된다"처럼 쓰면 어색한 문장이 된다. 모두 '단절'로 고쳐야 의미가 통한다. 그러나 "지난밤에 내린 폭우로 뱃길이 모두 단절됐다" "정전 사태로 섬 전체가 외부와 교신이 단절된 상태다"와 같이 '두절' 대신 '단절'을 쓰는 것은 자연스럽다. '단절'은 '두절'이 쓰일 수 있는 곳을 포함해 폭넓게 사용되는 반면 '두절'은 교통.통신이 끊어진 때만 쓸 수 있다.
Board 말글 2011.12.13 바람의종 R 10907
추근대다, 찝적대다 겨우내 숨겨둔 속살을 드러내며 온갖 꽃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봄은 여인의 계절이다. 일찍 찾아온 봄소식 덕분에 산과 들, 공원에는 꽃 잔치를 즐기려는 여인들로 가득하다. 꽃이 있는 곳에 벌과 나비가 있듯이 이 잔치에 남성도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간혹 초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꽃구경은 뒷전이고 아름다운 여인들을 '추근대는' 남성이다. 상대방이 싫어하는데도 계속 귀찮게 할 때 '추근대다'라고 말하거나 쓰는 것을 종종 본다. 그런데 '추근대다'는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치근대다'라고 해야 옳다. '치근대다(치근거리다)'는 '성가실 정도로 은근히 자꾸 귀찮게 굴다'는 뜻이다. "그가 구속된 뒤부터 단원 중의 하나가 그의 약혼녀에게 계속 치근대고 있었다/ 영자 역시 그에게 치근거릴 근력이 남아 있을 성싶지 않게 늘 탈진해 있었다"처럼 쓰인다. 여린말로는 '지근대다'로 써야 하며, 작은말로는 '차근대다(자근대다)'를 쓰면 된다. 비슷한 뜻의 '찝적대다'는 표기도 자주 눈에 띄는데, 이 또한 옳지 않다. '집적대다(집적거리다, 집적이다)/ 찝쩍대다(센말)'라고 써야 한다. '집적대다'는 '말이나 행동으로 자꾸 남을 건드려 성가시게 하다'는 뜻이다. "건달들이 여자에게 집적댄다/ 그녀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심심하면 나를 집적였다"같이 쓰인다.
Board 말글 2011.12.12 바람의종 R 13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