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강변'은 '노량진 나루터'를 말하는 고유명사 ...버드나무와 상관없어 우리는 보통 '노들강변'이라고 하면 버드나무가 휘휘 늘어진 어느 강변을 연상하지 않습니까?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의 민요가 그러한 인상을 주게 하지요. 아마도 '노들'이 '버들'을 연상시키나 봅니다. 그래서 어느 곳이든 이러한 풍경이 있는 강변이면 '노들강변'으로 생각하기 쉽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노들강변'은 보통명사가 아니라 고유명사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노들강변'은 서울의 '노량진' 나루터를 말합니다. 현재 서울의 흑석동에 있는 국립묘지 근처에 있던 나루터를 말합니다. 왜 그러냐구요? 다음 설명을 보시지요. 여러분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왜적과 싸우시던 '울돌목'을 아시겠지요? 이 '울돌목'은 한자어로 '명량(울명,돌 량)'이라 고 하지요. 이 '명량'의 '명'은 '울 명'자이고요. '량'은 원래 '돌 량'입니다. 이 '돌'은 충청도 방언에 '똘, 또랑'으로도 사용하고 있지요. '노량'의 '량'도 '돌 량'입니다. 그래서 '노량(이슬 노, 돌 량)'은 '노돌'이라고 했지요. 그러던 것이 '노들'로 변화를 했습니다. 그래서 '노량'이 '노들'로 변하고 거기에 '강변'이 덧붙은 것입니다. 이 '노들강변'은 옛날에 서울과 남쪽 지방을 잇는 중요한 나루였습니다. 그래서 이 '노들강변'은 애환이 많이 깃들여 있던 곳입니다. 홍 윤 표 (단국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이 태 영 (전북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여자무당' -> '임금의 선생님' -> '스승'으로 의미 변화 '스승'의 어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무격'이란 한자어가 있지요. '무'는 '여자무당'을, '격'은 '남자무당'을 말합니다.그런데 옛 문헌을 보면 '무'를 '스승 무' '격'을 '화랑이 격'이라 되어 있습니다. 결국 '스승'이란 '여자무당'을 말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자무당'은 고대사회의 모계사회에서 대단한 지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인디안 영화나 아프리카 영화를 보면 추장보다도 더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은 제사장입니다. 추장은 제사장에게 모든 것을 상의하지요. 결국 '스승'은 임금의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의 선생님을 한자어로는 '사부'라고 하는데, '사'자도 '스승 사', '부' 자도 '스승 부'입니다. 결코 '선생 사, 선생 부'라고 하지 않습니다. '여자무당'이 '임금의 선생님'으로 그 의미가 변화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일반화되어 '스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스승'이 '무당'을 가리킨다고 하니까 맞는 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몸이 아파서 강의실에 들어 가기 싫다가도 강의실에만 들어가면, 마치 무당이 신명이 난 것처럼 신명이 나서 떠들거든요. '남자무당'인 '화랑이 격'은 오늘날 '화냥 년'이라는 못된 욕을 할 때 사용하는 말로 변화했습니다. 이 '화랑이 격'의 '화랑'은 신라시대의 '화랑'과 같은 것으로 보입니다. '남자 무당'도 고대사회에서는 중요한 귀족 중의 하나였습니다. 신라 향가인 '처용가'에 나오는 '처용'도 '화랑'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남자무당은 여자무당에 비해 그 위세가 약합니다. 오늘날의 무당의 세계도 일처다부제가 보이기도 할 정도이니까요. 처용이 아내가 다른 남자와 동침하는 것을 보고 물러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도 알고 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 대목이지요. 그래서 남자무당은 이 여자무당, 저 여자무당을 찾아 다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행실이 좋지 않은 사람을 '화냥이'라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남자에게 쓰이던 것이 여자에게 사용된 것이지요. 간혹 '화냥'을 '환향', 즉 '고향으로 돌아오다'라는 는 의미로 해석해서, 청나라에 끌려 갔던 여인들이 몸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 왔다고 해서 붙인 이름인 것처럼 알고 있는 분도 있으나, 그것은 민간인들이 만들어낸 어원입니다. 홍 윤 표 (단국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이 태 영 (전북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언어코드로 보는 '돼지'의 다양한 의미 2007년 정해년(丁亥年) 새해가 밝았다. 금년은 열두 띠 중에 '돼지' 해다. 여러 가지 접근 방법이 있겠지만, 언어코드를 통해 돼지를 만나는 것도 꽤나 재미가 있다. 생각보다 심오하면서 흥미있는 행간 코드를 읽을 수 있다. ◆ 돼지 = 원래는 '새끼 돼지'를 일컫던 말이다. 우리말 '아지'는 '새끼'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강아지'(개 아지), '송아지'(소 아지), '망아지'(말 아지) 등에서 이같은 예를 만날 수 있다. 어문학자들에 따르면 개화기 이전까지는 다 큰 돼지는 '돗', '돋', '돝' 정도로 적었다. 반면 새끼 돼지는 '도야지'(돋 아지)로 불렀다. 어떤 이유로 '도야지'가 '다 큰 돼지'(豚)의 뜻을 얻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돼지를 표기하는 한자로는 '豚'(돈)과 '猪'(저)가 있다. 그러나 그 뜻은 다르다. '집돼지'는 '豚', '멧돼지'는 '猪'로 표기되고 있다. 흔히 쓰는 말 '저돌'은 한자식 표현으로 '멧돼지 猪'(저) 자와 '부딛힐 突'(돌) 자를 쓰고 있다. 의역하면 '멧돼지처럼 앞뒤를 가리지 않고 일직선으로 돌진한다'는 뜻이다. 참고로 돼지새끼 할 때의 '새끼'는 '두 다리 사이에서 태어난 것' 정도의 뜻을 지니고 있다. 중세어 '샅기'(샅 기)가 '삿기'를 거쳐 지금의 '새끼'로 변했다. '샅'이 들어갔거나 변형된 말인 '샅바', '샅샅이', '사타구니' 모두는 혈연 관계에 있는 말이다. 이중 '샅샅이'는 두 다리 사이, 즉 사타구니를 뒤지 듯 빈틈없이 살핀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 윷놀이의 '도' = 윷놀이 할 때 얻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도·개·걸·윷·모 다섯 지다. 이중 '도'는 '돋'에서 온 말로 돼지를 의미하고 있다. 이유는 '도'는 1발, '개'는 2발, '걸'은 3발을 가야 한다는 놀이규칙 때문이다. 이중 '도'가 돼지처럼 발걸음이 가장 느리다. 여기서 '도'라는 말이 나왔다. 반면 '개'는 말 그대로 '犬', '걸'은 '말'(馬)의 의미하고 있다. '윷'은 4개의 윷가락과 관련이 있으나 '모'의 의미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참고로 윷놀이는 보기와 달리 심오한 사상을 담고 있다. 주역학자들에 따르면 쪼개지기 전 두 개의 나무는 '음양', 4개로 쪼개진 윷가락은 '사상'(四象), 그리고 도·개·걸·윷·모는 '오행'(五行)을 의미하고 있다. 이밖에 '윷'이 응용된 말로는 '윷진애비'가 있다. 이는 '내기에 지고도 다시 하자고 자꾸 달려드는 사람'을 일컫는다. 과거 윷놀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 돌고래 = 앞말 '돌'의 뜻이 바로 와닿지 않고 있다. 우리말 큰사전은 돌고래의 같은 단어로 '강돈'(江豚),'물돼지', '해돈'(海豚)· '해저'(海猪) 등을 적어 놓고 있다. 여기에 정답이 있다. 이때의 '돌'은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돼지의 중세어 '돋'에서 온 말이다. 원래는 '돋고래'였으나 발음하기 좋게 '돌고래'로 변했다. 잘 살펴보면 돌고래는 살이 토실토실한 것이 육지 돼지와 비슷한 몸매를 지니고 있다. 참고로 '하마'를 개화기 때는 '물 뚱뚱이'라고 불렀다. ◆ 삼겹살과 족발 = 돼지를 잡으면 부위별로 삼겹살, 갈매기살, 목심, 갈비, 안심, 등심, 전지, 후지 등을 얻을 수 있다. 이중 삼겹살이라는 단어는 문제가 있는 표현이다. 우리는 넓고 얇은 물건이 포개져 있는 것을 셀 때 '겹'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가령 '한 겹', '두 겹', '세 겹' 정도가 된다. 이것의 반대는 '홑'이다. 이같은 논리대로라면 '삼겹살'은 '세겹살'이라고 해야 맞다. 故 김형곤 씨가 유행시켰던 '공포의 오겹살'도 '다섯겹살'이 돼야 한다. 왜 이렇게 비문법적인 표현이 생겼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아마 도축현장에서 무심코 사용하던 말이 대중어로 굳어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참고로 돼지고기의 또 다른 종류인 '갈매기살'은 하늘을 나는 '갈매기'와 전혀 관련이 없다. 어문학자들에 따르면 이는 '가로막살'에 '이'가 붙어 생겨난 말로, '가로마기살'→'가로매기살'→'갈매기살' 순으로 변했다. 갈매기살을 한자로는 '횡격막'으로 적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때의 '횡격'은 '가로 橫'(횡), '흉격 膈'(격) 자다. 소주 안주로 잘 어울리는 '족발'도 어문상 문제가 있는 표현이다. '족발' 할 때의 '족'은 한자 '足'으로 뒷말 '발'과 중첩되고 있다. 이른바 의미중첩으로, '역전앞', '처가집', '초가집'과 같은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한자 '前'과 '앞', '家'와 '집'이 중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굳이 바른 표기 여부를 따진다면 '돈족'(豚足)으로 부르는 것이 맞다. '우족'(牛足)이라는 단어가 좋은 예가 된다. ◆ 제육볶음과 돈까스 = '제육볶음'은 돼지고기를 주재료로 고추, 파 등을 넣은 후 이를 볶은 음식을 말한다. 그러나 언뜻보면 어디에도 돼지고기를 의미하는 말을 찾을 수 없다. 그렇지 않다. '제육볶음' 할 때의 '제육'은 '돼지 猪', '고기 肉' 자를 쓴 '저육'이 변한 말이다. 원래는 '저육볶음'이었으나 언중들이 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제육볶음'으로 변했다.'제육'할 때의 '제'에 이른바 '이모음 역행동화' 현상이 일어났다. '돈까스'는 돼지고기를 얇게 썰어 빵가루에 묻힌 후 이를 기름에 튀긴 음식을 말한다. 그러나 엉터리 일본식 조어인 만큼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돈까스'의 원래 표현은 '포크 커틀렛'(pork cutlet)이다. '커틀렛'은 '얇게 썰었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일본사람들이 이의 발음이 잘 되지 않자 '포크'를 돈(とん), 그리고 '커틀렛'을 '까스레스'로 적었다. 그러나 '돈까스레스'가 길게 느껴지자 이를 다시 '돈까스'로 축약했다. '비후까스'도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 ◆ 한자 '家'와 劇 = 많은 사람들이 한자가 생겨난 청동기 시절 '집에서 돼지를 키웠다'는 뜻에서 '家' 자가 생겨난 것으로 알고 있다. 곧바로 제주도 '똥돼지'가 연상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갑골문 학자들에 따르면 고대 중국의 경우 왕이나 귀족에 대해서는 '사당'(廟)를 세워 제사를 모셨다. 그러나 일반 백성은 사당을 세울 수 없어 살던 '집'(갓머리)에 '돼지'(豕)를 잡아놓고 제사를 지냈다. '家' 자는 여기서 생겨난 문자로 가축 돼지와 관련이 없다. '家' 자가 지금도 주로 '서민의 집' 의미로 쓰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연극 할 때의 '劇' 자는 고대 중국의 무대공연과 관련이 있다. 당시 연극에서는 돼지와 호랑이 탈을 쓴 배우들이 자주 등장, 다양한 연기를 했다. 바로 '劇' 자는 무대 위에서 '호랑이'(虎)와 '돼지'(豕)가 '칼싸움'(刀)을 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