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를 '잔나비'라고 하는 까닭을 아셔요? 우리네 동양 사람들은 천간을 따져서 나이를 무슨 띠로 말하곤 합니다. 사람의 난 해를 지지(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속성으로 상징하여 말하는 것이지요. 지지 중에 '신'자가 붙은 해(예컨대 '갑신'년)에 태어난 사람을 '원숭이띠'라고 하지만, 이것은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고, 옛날 노인들은 '잔나비 띠'라고하셨습니다. 왜 원숭이를 '잔나비'라고 했을까요? 우리 말에 옛날에는(17세기까지도) '원숭이'라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18세기에 와서 한자어인 '원성이'(원숭이 원, 원숭이 성)가 생겨났고 '성'의 음이 '승'으로 변하여('어'가'으'로 발음되는 경우는 많지요. '어른'도 '으른'이라고 하지 않나요?) '원승이'가 되고 이것이 또 변하여서 오늘날'원숭이'가 된 것입니다. 원숭이의 고유어는 '납'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숭이를 뜻하는 한자 '원'의 새김도 '납 원'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재다'(동작이 날쌔고 재빠르다)의 형용사형 '잰'이 붙어서 '잰나비'가 되고 이것이 음운변화를 겪어서 '잔나비'가 된 것입니다. 원숭이가 재빠르긴 재빠르지요(여기의 '재빠르다'도 '재다'와 '빠르다'가 합쳐진 말이군요). 아직도 방언에서는 원숭이를 '잰나비'라고도 하지요. 홍 윤 표 (단국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이 태 영 (전북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미역국을 먹다'는 여러가지 어원이 있습니다. '미역국을 먹는다'는 말은 요즈음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미끄러져서 떨어진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원래는 미역국은 애기를 낳은 산모가 먹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해서 시험에서 떨어진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미역국의 미역이 미끌미끌하니까, 그렇게 사용된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름도 있을텐데, 하필이면 미역국을 비유의 대상으로 삼았을까요? 아직까지 이 말의 원래뜻은 분명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설이 있습니다. '미역국을 먹는다'는 말은 원래 취직자리에서 떨어졌을 때를 속되게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도 유래가 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를 강점하면서, 우리나라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을 때, 그 '해산'이란 말이 아이를 낳는다는 '해산'과 말소리가 같아서, 해산할 때에 미역국을 먹는 풍속과 관련하여 이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역국을 먹었다'는 말은 '해산' 당했다는 말의 은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취직자리가 떨어진 것과 시험에 떨어진 것과 같아서 '미역국을 먹었다'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 설은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니,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은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홍 윤 표 (단국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이 태 영 (전북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옛날 옛적 고리짝에'는 '옛날 옛적 고려 적에'의 뜻 오늘날의 어린이들은 쉽게 책과 접할 수 있어서 많은 동화책을 읽을 수 있었지만, 연세가 좀 드신 분들은 어린 시절에 그런 동화책 대신 우리의 전래 동화나 신화, 전설, 민담을 할아버지 할머니께 듣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 할머니나 할어버지의 옛날 이야기는 으례 이렇게 시작되곤 하였지요.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옛날 옛적 고리짝에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도 아마 '옛날 옛적 고리짝에'의 '고리짝'의 뜻을 알고 말씀하신 분은 거의 없으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냥 입에서 귀로 전래되어 와서 그냥 말씀하신 것일 뿐이지요. '고리짝'이 '고려 적'(고려 때)이 오랜 동안 구전되어 오면서 그 뜻을 잃어버린 단어임을 아셨더라면, '옛날 옛적 고려 적에'로 말씀하셨겠지요. 옛날 이야기는 먼저, 지난 시기에 일어난 이야기임을 듣는 사람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조선 시대에는 그 이전의 시대, 즉 '고려 시대'를 언급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남아 있는 많은 고소설의 대부분이 '조선 숙종대왕 즉위 초에' 등으로 시작하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옛날 옛적 고려 적에'로 시작된 것인데, 이것이 오늘날 '옛날 옛적 고리짝에'로 변화된 것이지요. 홍 윤 표 (단국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이 태 영 (전북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양말'의 ‘말’은 한자의 '버선 말'자...여기에 '서양 양'이 붙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고 다니는 '양말'이 한자에서 온 말이라고 하면 깜짝 놀라시겠지요.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한자어입니다. 원래 버선을 한자로 '말'이라고 했습니다. '버선 말'자이지요. 그런데 서양에서 이 버선과 비슷한 것이 들어 오니까 버선을 뜻하는 '말'에 '양' 자를 붙여서 '양말'이라고 했습니다. 버선하고 양말이 이렇게 해서 달라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서양에서 들어 왔다고 해서 '양' 자를 붙이거나 '서양'을 붙여 만든 단어들이 꽤나 있습니다. 그 예가 무척 많음에 놀라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뜻도 잘 모르게 변한 것들도 많습니다. 몇 가지를 예를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양철'(또는 '생철') 양철도 '철'에 '양' 자가 붙어서 된 말입니다. 쇠는 쇠인데, 원래 우리가 쓰던 쇠와는 다른 것이 들어 오니까 '철'에 '양'자만 붙인 것이지요. 더 재미있는 것은 이 '철'에 '서양'이 붙어서 '서양철'이 되고, 이것이 다시 변화되어서 오늘날에는 그냥 '생철'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2. 양동이 국어에 '동이'라고 하는 것은 물긷는 데 쓰이는 질그릇의 하나인데, 서양에서 비슷한 것이 들어 오니까 여기에 '양'자를 붙여 '양동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입니다. 3. 양순대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인데, 서양에서 '소시지'가 들어 오니까 '순대'에다가 '양'자를 붙여 '양순대'라고 했는데, 이것을 쓰지 않고 '소시지'라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되살려 쓰고 싶은 단어입니다. 중국의 우리 동포는 이 '소시지'를 '고기순대'라고 하더군요. 너무 잘 지은 이름이 아닌가요? 4. 양은 양은은 '구리, 아연, 니켈을 합금하여 만든 쇠'인데, 그색깔이 '은'과 유사하니까 '은'에 '양'자를 붙여 '양은'이라고 한 것입니다. 5. 양재기 '양재기'는 원래 '서양 도자기'라는 뜻입니다. 즉 '자기'에 '양'자가 붙어서 '양자기'가 된 것인데, 여기에 '아비'를 '애비'라고 하듯 '이' 모음 역행동화가 이루어져 '양재기'가 된 것입니다. 6. 양회 이 말도 앞의 '양순대'와 같이 거의 쓰이지 않는 말입니다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세멘트'를 '양회'라고 했습니다. '회'는 회인데 서양에서 들여 온 회라는 뜻이지요. 이 말도 다시 썼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7. 양행 이 말도 오늘날에는 쓰이지 않는 말이지요. 서양에 다닌다는 뜻으로 '다닐 행'자를 붙인 것인데, 이것이 무역회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유한양행'이라는 회사가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지요. 이 이외에 '양'자가 붙어서 만든 단어들을 몇 가지 더 들어 보겠습니다. 양복, 양장, 양궁, 양단, 양담배, 양란, 양배추, 양버들, 양식, 양옥, 양장, 양잿물, 양주, 양초, 양코, 양파, 양화점 등. 홍 윤 표 (단국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이 태 영 (전북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