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질'은 양지(버드나무 가지)에 접미사 '질'이 붙은 것 여러분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양치질'을 하시지요? 이 '양치질'의 어원을 아시나요? 언뜻 보아서 한자어인 줄은 짐작하시겠지요? 그러나 혹시 '양치질'의 '양치'를 '양치'(기를양, 이 치)나 '양치'(어질 양, 이 치)로 알고 계시지는 않은지요? (간혹'양치질'의 '치'를 '치'( 이 치)로 써 놓은 사전도 보입니다만, 이 사전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양치질'의'양치'는 엉뚱하게도 '양지질' 즉 '양지'(버드나무가지)에 접미사인 '질'이 붙어서 이루어진 단어라고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러나 실제로 그렇습니다. 고려 시대의 문헌(예컨대{계림유사})에도 '양지'(버들 양, 가지 지)로 나타나고 그 이후의 한글 문헌에서도 '양지질'로 나타나고 있으니까요. '양지' 즉 '버드나무 가지'로 '이'를 청소하는 것이 옛날에 '이'를 청소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오늘날 '이쑤시개'를 쓰듯이, 소독이 된다고 하는 버드나무 가지를 잘게 잘라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청소하는 것을 '양지질'이라고 했던 것인데, 이에 대한 어원의식이 점차로 희박해져 가면서 이것을 '이'의 한자인 '치'에 연결시켜서 '양치'로 해석하여 '양치질'로 변한것입니다. 19세기에 와서 이러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 '양지'는 일본으로 넘어가서 일본음인 '요지'로 변했습니다. '이쑤시개'를 일본어로 '요지'라고 하지 않던가요?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 중 '이쑤시개'를 '요지'라고 하는 분들이 있지 않던가요? '양지질'이 비록 '이쑤시개'와 같은 의미로부 터 나온 것이지만, 양지질'과 '이쑤시개'는 원래 다른 뜻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두 단어 모두가 오늘날의 뜻과 동일한 것이지요. '양지질'에 쓰는 치약으로 는 보통 '소금'이나 '초'를 사용하여 왔습니다. 이렇게 '양지질'이 '양치질'로 변화하는 현상을 언어학에서는 보통 '민간어원설'이라고 합니다. 즉 민간에서 어원을 마음대로 해석해서 원래의 단어를 해석하거나, 그 해석된 대로 그 단어를 고쳐 나가곤 합니다. 이렇게 민간에서 잘못 해석한 단어는 무척 많습니다. 여러 분들이 잘 아시는 '행주치마'가 그렇지요. 원래 '행주'는 '삼' 등으로 된 것으로서 물기를 잘 빨아들이는 천을 일컫는 단어인데, 이것을 권율 장군의 '행주산성' 대첩과 연관시켜서, 부녀자들이 '치마'로 돌을 날랐기 때문에 그 치마를 '행주치마'라고 한다는 설이 있지만, 그것은 민간에서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부엌에서 그릇 을 닦는데 사용하는 걸레인 '행주'는 어떻게 해석할까요? 걸레의 하나인 '행주'와 '행주치마'의 '행주'는 같은 단어입니다. 홍 윤 표 (단국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이 태 영 (전북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처녀들께서는 부끄럼 타지 말고 '총각김치'를 드셔요 국어에서는 남녀를 나타내는 말이 무척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혼인할 나이가 된 성인 남녀를 지칭할 때에는 '처녀' '총각'이란 한자어를 사용합니다. 그 중에서 '처녀'는 그 단어 속에 '여'가 들어 있어서 그 뜻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지만, 아마도 '총각'은 그 어원을 전혀 짐작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한자인 '총'은 지금은 '다 총' 등으로 '모두'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지만, 원래는 '꿰맬 총', '상투짤 총' 등으로 쓰이던 것입니다. '각'은 물론 '뿔 각'이고요. 중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이 머리를 양쪽으로 갈라 뿔 모양으로 동여맨 머리를 '총각'이라고 했었습니다. 이런 머리를 한 사람은 대개가 장가가기 전의 남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머리를 한 사람을 '총각'이라고 한 것이지요. 옛날에는 어린 소년들에게도 '총각!'하고 불렀습니다. 이것을 마치 어린 소년을 높여서 부르는 것처럼 생각한 분은 안계신지요? 여기에서 '더벅머리 총각'이라는 말도 생겼지요. 어떤 사람은 '떡거머리 총각'이라는 말도 쓰는데, 이때의 '떡거머리'가 무엇을 나타내는 말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느 사전에도 '떡거머리'란 단어는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에 연유해서 생긴 단어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총각김치'란 말입니다. '총각김치'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듯, 손가락 굵기만한 어린 무우를 무우청째로 여러 얌념에 버무려 담은 김치를 말하는데, 그 어린 무우가 마치 '총각'의 머리와 같은 모습을 닮아서 생긴 단어입니다. 그런데 처녀들은 그 '총각김치'란 단어 자체나 또는 실제의 김치를 기피하곤 했었습니다. 그 총각김치가 마치 총각의 생식기를 형상하는 것에서 생긴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것이 절대 아니니, 처녀들은 이제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총각김치를 드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홍 윤 표 (단국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이 태 영 (전북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한 살'의 '살'과 '설날'의 '설'은 어떤 관계일까요? 우리 나라에서는 태어난 지 이틀밖에 안된 아기가 나이로는 '두 살'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한 해가 지나면 자연히 한 '살'을 먹게 되니까요. 음력 섣달 그믐날에 태어난 아기가 그 다음 날, 그러니까 '설날'만 되면 비록 태어난 지 이틀밖에 안된 아기지만 금방 두 살이나 됩니다. 서양에서는 아직 한 살도 되지 않은 아이를 두 살이라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 의아해 하는 분도 많지만, 그 생각은 서양식 교육의 영향인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나이 계산 방법에 의하면 그 아기는 분명히 두 살입니다. 왜냐구요? 우리 나라에서는 태어나면 곧 한 살이 되고, 다시 한 '설'을 지나면 한 '살'을 더 먹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에도 하나의 생명체로 생각해서, 태어나자 마자 한 살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한 살씩 더 먹는 날을, 서양처럼 각자 생일에 따라 각각 다르게 정하지 않고 모두 '설날'로 정한 것이지요. 이러한 생각이 서양사람들의 사고에 비해 얼마나 인간적이고 합리적인가요? 그래서 한 '살'을 더 먹기 위해서는 한 '설'을 지나야 합니다. 옛날에는 '한 살, 두 살 다. 이렇게 국어의 단어는 만들어졌습니다. 매우 경제적인 방법입니다. 새로운 뜻을 가진 사물이나 현상이 생기면, 이것에 전혀 생소한 단어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있었던 단어들의 자음이나 모음을 바꾸어 가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갑니다. 이것을 보통 '단어의 파생'이라고 합니다. 우리 국어에서는 이와 같이 모음만 바꾸어서 그 뜻을 조금씩 바꾸어 간 것이 무척 많습니다.몇 가지 예를 들어 볼까요? (1) '머리'와 '마리' '머리'가 하나이면 '한 '마리'지요. 그래서 옛날(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사람의 '머리'도 '마리'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한 사람을 '한 마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2) '남다'와 '넘다' : '남으면' '넘치지요'? 아니면 '넘으면' '남는' 게 되지요. (3) '낡다'와 '늙다' : 사람이 '낡으면' '늙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낡다'는 옛날에 는 '다'는 다른 사물에만 쓰는 단어입니다. (4) '맛'과 '멋' : '맛'이 있어야 '멋'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 이외에도 이른바 의성 의태어 는 모음을 달리해서 그 조그마한 뜻을 바꾸는 일이 너무 많지요. 다음에 드는 예문에 속한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는 상상만해 보세요. 그 사람은 (뚱뚱하다, 똥똥하다, 땅땅하다,땡땡하다, 띵띵하다) 홍 윤 표 (단국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이 태 영 (전북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마누라'는 원래 '임금이나 왕후를 일컫는 극존칭' 우리나라 말에는 남성이나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 여럿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을 지칭하는 말도 그 사람이 혼인을 했는지의 여부에 따라,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떠한 벼슬을 했는지에 따라, 그리고 누가 부르는지에 따라 각각 다르게 지칭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남자를 지칭할 때, '남정네, 남진, 남편, 사나이, 총각' 등이 있고, 여자를 지칭할 때에는 '아내, 여편네, 마누라, 집사람, 계집, 부인, 처녀' 등 꽤나 많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쓰인 것인지는 대개 알려져 있지만, 그 어원들을 아시는 분이 많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되어 여기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아내'는 지금은 그 표기법도 달라져서 그 뜻을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옛날에는 '안해'였지요. '안'은 '밖'의 반의어이고, '-해'는 '사람이나 물건을 말할 때 쓰이던 접미사'입니다. 그래서 그 뜻이 '안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안사람'이란 말을 쓰고 있지 않던가요? 거기에 비해서 남자는 '바깥 사람, 바깥분, 바깥양반' 등으로 쓰이고요. '부부''를 '내외'라고 하는 것이 그것을 증명해 주지요. '여편네'는 한자어이지요. '여편'에다가 '집단'을 뜻하는 접미사 '-네'를 붙인 것이지요. 어느 목사님께서 혹시 남편의 '옆'에 있어서 '여편네'가 아니냐고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즉 '옆편네'가 '여편네'가 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목사님의 설교에서 그렇게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자를 뜻하는 '남편'은 도저히 그 뜻을 해석할 수 없지요. '여편네'와 '남편'은 서로 대립되는 말입니다. '마누라'는 무슨 뜻일까요? 지금은 남편이 다른 사람에게(그것도 같은 지위나 연령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아내를 지칭할 때나 또는 아내를 '여보! 마누라' 하고 부를 때나, 다른 사람의 아내를 낮추어 지칭할 때(예를 들면 '주인 마누라' 등) 쓰이고 있습니다. 원래 '마누라'는 '마노라'로 쓰이었는데, '노비가 상전을 부르는 칭호'로, 또는 '임금이나 왕후에게 대한 가장 높이는 칭호'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극존칭으로서, 높일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 없이, 그리고 부르는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 없이 부르던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지위가 낮은 사람이 그 웃사람을 '마누라'라고 부르거나 대통령이나 그 부인을 '마누라'라고 부르면 어떻게 될까요? 큰 싸움이 나거나 국가원수 모독죄로 붙잡혀 갈 일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것이 아내의 호칭으로 변화하였는지는 아직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남편을 '영감'이라고 한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래 '영감'은 '정삼품 이상 종이품 이하의 관원'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판사나 검사를 특히 '영감님'으로 부른다고 하는데, 이것은 옛날 그 관원의 등급과 유사하여서 부르는 것입니다. 옛날에도 남편보다도 아내를 더 높여서 불렀던 모양이지요? 남자는 기껏해야 '정삼품'으로 생각했는데, 아내는 '왕이나 왕비'로 생각했으니까요. 이렇게 해서 '마누라'와 '영감'은 대립어가 된 것입니다. 왜 늙지도 않은 남편을 '영감'이라고 불렀을까를 의심하셨던 분은 이제 그 의문이 풀리셨 을 것입니다. 지난 날의 유행가 중에 '여보! 마누라, 왜 불러?' '영감, 왜 불러?' 하는 가사가 기억이 납니다. 홍 윤 표 (단국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이 태 영 (전북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