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우리말의 풍토성 농경 생활 용어 3 - 사계의 고유 이름 "철 그른 남동풍"이라는 속담이 있다. 버스 떠난 뒤 손 드는 식으로 때를 놓친 경우를 이름이다. 무슨 일이든지 때가 있게 마련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를 지칭하는 우리말 "철"은 한자어 "절"에서 유래하였다. 절은 계절의 의미로도 쓰이지만 "철들다(철나다)"에서 보듯 사리를 분별하는 힘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세상일에는 저마다 꼭 필요한 시기가 있음을 알려 준다고나 할까. 1년 사계를 보는 시각은 저마다 또는 사는 지역 풍토에 따라 다르다. 폴란드 속담에는 봄은 처녀, 여름은 어머니, 가을은 미망인, 겨울은 계모라 부른다고 한다. 어느 영시에는 "4월은 내 애인의 얼굴 위에 있고, 7월은 그녀의 눈 속에 깃들여 있네. 그녀의 가슴 속에 우렁이 있고, 그녀의 마음 속에 냉랭한 12월이 있네."라면서 계절의 감각을 여인의 신체 부위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먼 옛날 이 땅에 정착한 우리 조상들은 오랜 세월 농사를 지으며 살아 왔기에 계절은 농사일과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었다. 봄을 나타내는 한자 "춘"은 봄 햇살을 받은 뽕나무 새순이 뾰족이 머리는 내민 날의 형상이다. 영어의 "spring"은 돌 틈에서 퐁퐁 솟는 옹달샘이나 겨울잠에서 갓 깨어난 개구리가 스프링(용수철)처럼 튀어나간다는 뜻이다. 절기로 말한다면 봄비 내리는 우수와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얼음이 깨져 나가는 소리에 놀란다는 경칩이 바로 이 춘이나 spring에 해당될 것이다. 우리말 "봄"의 어원은 무엇일까? 어떤 이는 따뜻한 온기가 다가온다 하여 "불(화)+옴(래)"의 결합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봄의 어원은 이처럼 생동하는 자연 현상을 단순히 "본다(견)"는 관점에서 찾아야 한다. 따뜻한 봄 햇살을 받아 초목에 새 생명의 싹이 움트는 경이를 인간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봄을 일러 "새봄"이라고 한다. 계절의 첫머리에는 모두 "새"가 붙을 법한데, 새여름이니 새가을, 새겨울이란 말은 들을 수가 없고 오직 봄만을 새봄(신춘)이라 일컫는 것이다. 뽕나무 새순이 돋는 날의 춘, 샘물이 퐁퐁 솟는다는 spring, 또 따뜻함(불)이 다가온다는 "불+옴" 어원설 들은 모두 지엽적인 자연 현상을 묘사한 데 지나지 않는다. 반면 우리말 봄(견)은 사람이 주체가 되어 그 현상을 관조하는, 그야말로 인간 중심의 호칭법이라 할 수 있으니 그런 점에서 의미상 한 차원 높다고 할까. 여름은 온갖 초목이 열매를 맺는 계절이다. 여름(실)과 녀름(하)을 고문헌에는 구분하여 적었으나 기실은 한 뿌리에서 나온 말로서 의미분화를 일으킨 결과이다. 열매가 열리는 경이는 흘린 땀의 보담인 동시에 대자연의 순리에 따른, 그 결실의 내면을 "열어(개) 보이는"일이기도 하다. 여름은 사람들이 옷을 벗어 몸뚱아리를 열어 보이고 대문이나 창문도 활짝 열어 놓는 개방의 시기다. 이런 의미에서 여름(하)은 열음(개)과 통할 수 있고, 여는 일은 맺는 일과 통할 수 있다. 여름을 영어에서는 "summer"라 한다. 가장 화려한 시기, 곧 한창 때를 지칭하는 말이다. 오곡백과가 강렬한 햇빛을 받아 왕성한 생명력을 구가하는 여름 한철은 사람으로 치면 혈기방장한 20~30대의 청년기라 할 수 있다. 젊은 시절 이처럼 치열하게 생명의 불꽃을 태웠기에 릴케는 "가을날"이라는 시에서 "지난 여름은 위대했다"고 읊고 있다. 가을은 여름 내내 가꾸어 온 땀의 결실을 거둬들이는 시기다. 추수를 고유어로 가실한다 또는 가슬한다고 하는데, 이는 거둬들인다는 뜻에 다름아니다. 영어의 "autumn" 또는 "harvest"와 마찬가지로 가슬(실)이란 무엇을 "끓을, 벨"이라는 관형어가 그대로 계절을 지칭하는 명사로 굳어진 어형이다. 흔히 가을을 슬픈 계절로 규정한다. 영어의 fall이나 한자말의 조락에서 보듯 이 계절명은 생명의 소진에서 오는 허무감을 강하게 내비친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윤회설을 믿은 탓인지 그런 비애의 흔적은 남기지 않았다. 말하자면 생명이 다하여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서구인들이 눈물지을 때 우리는 결실과 수확의 기쁨을 노래했던 것이다. 가슬이 가을로 굳어진 것처럼 겨슬(겨실)은 겨울로 굳어진다. "겨슬"은 단순히 "있다"의 존대어일 뿐으로 본말은 겨시다(계시다)가 된다. 여기서 "겨"는 존재(거 또는 재)를, "시"는 존칭을 나타낸다. 바깥 사람에 대해 늘 집안에 계시는 여성을 일러 겨집(계집)이라 하지 않는가. 겨울은 집에 계시면서 편안히 휴식하는 계절이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추수한 곡식을 곳간 속에 갈무리해 놓고 그것을 먹으면서 한겨울의 동면기를 즐기는 것이다. 자연이 쉬는 만큼 인간도 섭리에 순응하는 것이라 할까. 어떤 이는 말하기를 겨울은 내면의 계절이라 했는데, 두말할 나위 없이 바깥 세상이 폐쇄되면 내부 세계는 넓어지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따뜻한 정이 흐르기에 우리의 겨울은 결코 춥지 않았다. 계절명에 관한 우리말의 특징을 말한다면 서구어가 자연 중심의 직관적 사고에서 명명된 데 반해 우리 고유어는 인간 중심의 관조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외래어의 범람 속에서도 고유 계절명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우리말의 특성 때문이 아닌가 한다.
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우리말의 풍토성 농경 생활 용어 2 - 바람의 고유 이름 언젠가 "바람 바람 바람"이라는 대중가요가 그야말로 바람처럼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대 이름은 바람"이라며 절규하던, 그 노래말 속의 바람은 무슨 바람인지 모르겠으나 제목만은 제법 인상적이었다. 어떻든 바람이란 말이 추상어로 쓰일 때는 매우 격조 높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윤동주의 시가 그러하고, 자신을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고 술회한 미당 서정주의 생애가 그렇다. 그리고 일생 일대 단 한 편의 명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남기고 홀연 바람처럼 사라져 간 마가렛 미첼 여사의 생애가 또한 그러하다. 그 본체는 보이지 않으나 소리로만 들리는 이 자연 현상을 두고 우리는 "바람"이라 부른다. 소리로만 들리는 것이기에 바람이라는 말도 소리를 흉내낸 의성어일 것이 분명하다. 말하자면 "바르" 또는 "부르"라는 소리말에 "암"이라는 명사형 접미사를 붙여 바람이 된 것이다. 바람 그 자체가 움직임을 뜻하기에 "노래를 부르다(창), 소리쳐 부르다(호), 나팔을 불다(취)"에서처럼 부르다, 불다는 동사로 쓰이고 있다. 윤동조는 그의 시 "자화상"에서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고 했는데, 이는 소리처럼 바람이 부는 것이 아니라 소리 자체가 바람인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바람을 공기의 흐름만으로 보지 않고 더 높은 차원의 의미, 이를테면 하늘의 기운이나 우주의 숨결 정도로 인식했던 것 같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거느린 세 신들 중에서 우사나 운사보다 풍백을 앞세우는 것도 이러한 우주론적 상징성에 기인한다. 말하자면 구름이나 비는 바람을 만났을 때 비로소 땅 위에 생산과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풍월, 풍류라는 말이나 자연지리를 뜻하는 풍토, 풍수라는 말을 보더라도 바람은 그 자체가 자연과의 조화나 본래의 기운을 상징하고 있다. 바람 이름을 보면 자연 현상에 순응하고자 했던 우리 조상들의 생활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고유어 풍명을 보면 춘하추동 사계절과 동서남북 네 방위에 따라 농어촌, 특히 어촌에서 사용되던 아름다운 우리말이 잘 보존되어 있다. 봄에 부는 동풍을 일러 "샛바람"이라 한다. 샛바람의 "새"는 방위로는 동쪽을 나타내고, 시간으로는 맨 처음, 곧 새로운 시작을 나타낸다. 날이 새다, 설을 쇠다의 동사 "새"를 비롯하여 새벽, 새롭다의 관형사 "새-"와도 어원을 같이한다. 샛바람을 한자어로 춘풍이라함은 계절의 시작이 봄이기 때문이다. 샛바람이 일기 시작하는 초봄에는 살바람, 소소리바람, 꽃샘바람까지도 곁바람로 따라붙는다. 이른 봄 살 속으로 파고들기에 살바람이요, 그래서 소름이 솟기에 소소리바람이며, 꽃이 피는 데 대한 동장군의 시샘이 고약하기에 꽃샘바람이라 이름하였다. 서풍을 "하늬바람" 또는 "갈바람"이라 한다. 하늘 높은 곳에서 불어오기에 하늬바람(천풍)이며, 주로 가을에 불기에 가수알바람 또는 갈바람(추풍)이라고도 했다. 이 바람은 별로 강하지 않게 솔솔 불기에 실바람이며, 늦더위를 식혀 주기에 선들(산들)바람이며, 얼마 안 있어 서릿바람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되어 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는 말에서 마파람은 남풍을 뜻하는데, 우리가 사는 마을과 집들이 모두 남향이기에 이 바람은 앞바람(전풍)과 동일어로 쓰인다. 마파람의 "마"와 이마의 "마"는 동일어로서 이마를 속되게 이를 때 "마빡"이라 하니, 말하면 정면에서 불어와 마빡에 부딪치는 바람이라는 뜻이다. 겨울철 북에서 휘몰아치는 매서운 바람을 된바람 또는 뒷바람이라 한다. 한민족의 이동경로가 북에서 남으로 이어졌기에 북쪽 오랑캐를 일러 되놈, 된놈(호인)이라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이 남이요, 귀가 북인 것이다. 가옥 구조에서도 화장실은 뒤에 있으며, 아울러 인체 구조상 대변을 보는 기관은 뒤에 있기에 화장실을 "뒷간"이라 하고, 용변을 보는 일을 "뒤본다" 하지 않는가. 이처럼 새, 하늬, 갈, 마, 뒤가 동서남북을 지칭하는 고유어임을 안다면 뱃사람들이 말하는 샛마가 동남풍이고 높새가 동북풍, 갈마가 서남풍, 높하늬가 서북풍, 된새가 북동풍, 된하늬가 북서풍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북풍이 비록 모질고 맵다고는 하나 IMF의 한파에 비길까. 그 강도는 바늘 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황소바람이었고 그 위력은 미 대륙을 덮쳤다는 토네이도, 이른바 돌개바람과 비견할 만한 것이었다. 우리 경제는 바람맞은(중풍) 사람처럼 운신이 어려워졌고, 이웃 나라로부터 바람맞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한동안 허파에 바람 든 사림처럼 허둥거린 대가로 이런 매서운 바람을 맞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신바람"이라는 또 다른 비장의 바람이 있다. 언제까지나 이런 찬바람에 떨고 있을 민족이 아니다. 이보다 더한 바람도 맞아 왔던 우리 민족은 이제 댓바람에 일어서서 얼른 훈훈한 봄바람을 맞아야겠다. 차가운 웃음(고소)을 짓던 이웃들에게 신바람의 가공할 위력을 다시 한 번 보여 주어야겠다.
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우리말의 풍토성 농경 생활 용어 1 - 북돋워 주고 헹가래치고 현대를 산업화 또는 정보화시대라 규정하지만 한국 문화 속에는 아직도 농경시대의 유습이 뿌리깊게 남아 있음을 본다. 수천 년 동안 지속된 농경 생활에서 우리의 언어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으니 우리말 속에 남아 있는 이런 흔적들을 농경 용어라 이름한다. "짓다"라는 말처럼 농경 용어를 대변하는 어휘가 또 있을까. 농사만 짓는게 아니라 집도 짓고 옷도 짓고 밥도 짓는다고 한다. 의식주 전반에 걸친, 그야말로 생산과 창조의 근원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짓(작)과 집(가)이 같은 어원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짓"은 사람에게도 달라붙어 지아비, 지어미라 하여 부부의 호칭으로도 활용된다. 지아비가 노래하면 지어미는 따라 부른다는 부창부수라는 숙어도 남편과 아내가 모두 농사일에 종사한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 같다. 자연에 순응하여 식물에 열매를 맺게 하는 작업, 이 농사일을 일러 "여름짓다"라고 한다. 또한 이 일에 매달리는 농부를 "여름지슬(을)아비"이라 하여 곧 열매를 맺게 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쓰인다. 농작물을 가꾸는 일만이 짓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도 짓는 일로 여겼다. "자식농사"도 그래서 생긴 말이며, 이와 관련하여 교육에 해당하는 "가르치다"란 말도 농사일과 같은 개념에서 비롯되었다. 교육이란 바로 심전의 밭을 갈고(경 또는 마), 가축을 치듯(육) 정성을 다해 후세를 기르는 일이다. 거칠고 메마른 마음의 밭을 갈고 북을 돋우고 물과 거름을 주어 가꾸는 작업, 가르쳐 일깨우고 힘과 용기를 더해 준다는 "복돋우다"라는 말도 이와 다름 아니다. "북"은 초목의 뿌리를 덮고 있는 흙덩이를 이름이다. 북을 돋운다는 말은 농작물의 밑동에 흙을 긁어모아 영양분이 고루 퍼지게 하며 바람에 쓰러지는 것을 막아 주는 일이니, 자식을 키우고 이를 뒷바라지하는 일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재배라는 한자어의 배에 해당된다고 할까.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 용어도 모두 농사일과 결부되어 있고, 동서남북 네 방위를 주축으로 하는 바람의 이름도 농사일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현대인들이 즐기는 바둑의 기원도 역시 농사짓는 일에서 찾을 수 있다. 바둑이란 "밭돌(독)", 곧 네모 반듯한 밭에다 희고 검은 돌을 번갈아 놓은 데서 유래한 말이다. 아울러 개를 부르는 보통명사 "바둑이"도 털무늬가 바둑판의 희고 검은 모습을 닮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찧고 까분다"는 말도 농사 용서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가실할(추수할) 때 거둬들인 곡식을 방아나 절구에 넣어 찧기도 하고, 키에 담아 까분다는 데서 이 말이 생겼다. 지금은 함부로 경솔하게 군다는 좋지 않은 의미로 쓰이지만 본뜻은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팽개친다, 평미리친다, 헹가래친다"등 이른바 "치다"류 어사들도 농사일에서 유래하였다. 팽개치다, 곧 하던 일을 중도에서 포기한다는 "팽개"는 본래 "팡개질"에서 나온 말이다. 팡개는 곡식이 여물 무렵 새를 쫓는 데 쓰이는 대토막을 이름이다. 이 대토막의 한 끝을 네 갈래로 쪼개어 작은 막대를 물려 동였다. 이것을 흙에 꽂으면 그 틈새로 흙덩이가 끼이게 마련인데, 이를 휘두르면 흙덩이가 퉁겨 나가면서 새를 쫓게 되는 것이다. 평미리치다의 평미리(레)는 됫박이나 말에 곡식을 담고 그 위를 평평하게 고를 때 사용하는 방망이를 말한다. 곡식의 분량을 잴 때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고봉이라 하여 되 또는 말에 수북이 담는 경우와 평미리쳐서 담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평미리친다는 말은 매사를 평등하게 처리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헹가래친다는 말은 항용 운동 경기에서 쓰는 말이다. 시합에서 이긴 경우 선수들은 그들의 지도자를 높이 쳐들어 공중에 헹가래침으로써 기세를 올리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다. 헹가래질은 본래 가래로 흙을 파기 전에 빈 가래로 손을 맞춰 보는, 일종의 예행 연습인 헛가래질에서 유래한 말이다. 사람을 들어올릴 때도 거기 참가하는 사람들의 호흡이 맞아야 하는 것처럼 가래질에도 손발을 맞추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헹가래치는 장면을 보면서 필자는 가끔 불안감을 느낀다. 한 사람을 높이 던져 놓고 뭇사람들이 일시에 빠져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 말이다. 물론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아무튼 헹가래질을 보면 서 이들 농경 용어들을 우리릐 실생활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어린 새싹들을 가르쳐야 하고, 부정한 일은 과감히 팽개쳐야 하며,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모든 여건이 평미리쳐야 한다. 여기게 곁들여 우리 사회에 헹가래칠 일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다만 모두가 합심하여 들어올린 지도자가 졸지에 추락하지 않게 자리를 지키며 끝까지 복돋워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우리말의 풍토성 명절, 절후 용어 3 - 외래 명절과 고유 명절 어느 해인가 정월 대보름과 "발렌타인데이"가 겹친 때가 있었다. 그때 모 신문에서 "부럼과 초콜릿의 한판 승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승부는 단순히 두 상품의 판매 경쟁을 넘어서서 고유 명절과 외래 명절의 한판 대결이기도 했다. 두 상품의 판매 경쟁은 아쉽게도 초콜릿의 압승으로 끝났다. 전통 민속이 상업적인 외래 풍물에 백기를 들고 만 것인데, 이를 두고 필자는 초콜릿을 팔아 주는 행위가 민족의 혼을 파는 일이라면서 분개했다. 사랑 고백을위한 것이라지만 초콜릿 같은 서양 식품이 건강에도 좋은 고유 식품을 몰아낸 일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발렌타인데이가 본래 장삿속에서 유래한 행사가 아닐진대 어쩌다가 "연인의 날"로 둔갑하여 이 땅에서도 값비싼 수입 추콜릿을 먹어야 한단 말인가. 외신에 따르면 멀리 있는 연인을 위해 컴퓨터 통신망을 통해 간접적으로 키스 체험을 느끼게 하는, 이른바 "사이버 키싱"이라는 상품도 개발되었다고 한다. 서양풍이라면 덮어놓고 맹종하고 보는 우리네 풍조로는 이 사이버 키싱도 조만간 파급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더욱이 발렌타인데이의 상술은 초콜릿만으로 그치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한 달 후인 3월에는 "화이트데이"라는 이름으로 사탕을 내놓고 어린 고객들의 주머니를 노린다. 내세우는 구실은 그럴 듯하다. 앞서 여자친구가 준 초콜릿 선물에 남성이 사탕으로 답례한다는 그럴듯한 얘기다. 뿐만 아니라 한술 더 떠서 4월에는 "엿데이"라는 괴상한 날을 만들자는 제안도 있다. 말하자면 메아리 없는 사랑 고백에 대해 "에라, 엿이나 먹어라!"하며 바람맞은 자가 보복을(?) 가한다는 것인데, 어떻든 스토리까지 갖춘 명절 상술도 이 정도에 이르면 가히 경지에 들었다고 할까. 우리 민족에게 연인의 날이 있다면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이 되어야 마땅하다. 음력으로는 2월중이지만 양력으로는 3월 5일경으로 화이트데이와 근접한 무렵에 해당된다. 예로부터 경칩일은 사랑을 나누는 날이었다. 이 날 해가 저물면 동네 처녀, 총각들이 동구 앞 은행나무 주변을 맴돌면서 서로의 속마음을 표시하곤 했다. 다 아는 대로 은행나무는 암수가 마주보고 있어야 열매를 맺는, 그야말로 격조 높은 사랑의 나무다. 은행나무의 열매, 곧 은행알은 예사로운 열매가 아니다. 나무 주위를 돌며 자신의 속마음을 내보였던 이들이 함께 은행알을 나눠 먹었다면 이는 사랑이 결실을 맺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이제 경칩을 우리 고유의 연인의 날로 정하고 초콜릿이나 사탕 대신 잘 구운 은행알을 나눠 먹게 하면 어떨까? 이렇게 하는 것이 어줍잖은 외래 풍조를 배격하고 우리 것을 찾는 지름길이라 생각되기에 하는 말이다. 세밑이나 성릉 맞는 풍속도 마찬가지다. 한 해의 밤을 마지막으로 지운다는 섣달 그믐밤을 제야 또는 제석이라 한다. 이 섣달 그믐 곧 세밑(본래는 설밑 또는 설아래)을 각종 "세시기"에서는 신일이라 적고 있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인데, 이런 뜻 깊은 날을 요즘처럼 해외 여행이나 풍치 좋은 유원지에서 흥청거릴 일은 아니라고 본다. 세밑, 곧 신일은 새해라는 시간 질서에 맞추기 위한 준비 기간에 해당한다. 예전에는 실제로 외양간을 치우기도 하고 부뚜막을 손질하기도 하며 밭에 해묵은 거름을 퍼내는 등 집안 정리에 여념이 없었다. 또한 묵은 세배를 올리고 해지킴(수세)라 하여 집안 곳곳에 불을 밝히고 첫닭이 울 때까지 밤을 새우곤 했다. 특히 마당을 쓸어 티끌을 모아 모닥불을 피우는 것은 모든 잡귀를 물리치고 새해를 맞는다는 신앙적 의식이 깃들인 행사였다. 조상들이 맞은 이런 신일과는 달리 현대인들은 그믐날 공연한 일로 바쁜 시간을 보낸다. 한 해를 마무리 짓고 묵은 해를 보낸다는 송년회라면 그런대로 괜찮다. 뭐가 그리 잊어야 할 일이 많은지 망년회라는 이름으로 술자리를 펼치고 술기운으로 흥청망청 헤매기 일쑤다. 얼마 전까지 성탄을 전후한 세밑은 마치 지구의 종말이라도 온 듯 그야말로 광란의 밤이었다. 지난 시간도 소중한 법인데, 그렇게 깡그리 잊는다고 좋은 일만은 아닐 게다. 1999년 12월 31일, 1천년대의 마지막 밤 광화문 네거리에서의 행사 역시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남들처럼 우리도 꼭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화려한 굿판을 벌여야만 했을까 묻고 싶다. 그것도 시민이 배제된 유명인사들만의 행사를 말이다. "밀레니엄"이라는 용어 사용부터 좀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새천년"이란 쉬운 말도 있고 또 조금만 성의를 보인다면 "즈믄 해"라는 멋진 고유어를 찾아 쓸 수도 있다. 즈믄이란 천을 뜻하는 옛말로서 고려가요를 비롯한 옛 문헌에 즈믄 해, 즈믄둥이라는 말이 쉽게 발견된다. 서기를 연호로 삼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라 어쩔 수 없다지만 새 천년을 맞는 행사만은 우리 식에 따랐어야 했다. 정말 새 천년에는 초콜릿보다는 은행알을 나눠 먹고, 쾌락의 밤을 지새기보다는 근신의 밤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우리말의 풍토성 명절, 절후 용어 2 - 한가위, 수릿날 아으 동동다리 "팔월 보름은 아으 가배날이언만 님을 뫼셔 녀곤 오늘날 가배샷다, 아으 동동 다리." 고려 때 유행하던 "동동"이라는 제목의 달거리 노래(월금농가)이다. 8월 보름에 아아, 님을 모시고 함께 지낼 수만 있다면 오늘이 참 한가위 명절다울 텐데, 대략 이런 정도로 해석되는 구절이다. 여기서 가배는 한자로 표기하고 있으나 "가운데(중)"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다. 이 고유 명절을 두고 세인들은 한결같이 추석이라 부른다. 가을 저녁, 곧 추석이라는 말이 더 유래가 깊고 운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나 본래 우리말은 "한가위"였고 정식 한자명은 중추절이라 해야 옳다. 한가위가 우리 고유 명절인 만큼 이름도 고유어로 불러 주어야 마땅하겠기에 하는 말이다. "동동"에 나오는 가배는 고유어 "가배(기본형은"갑")"를 소리 나는 대로 한자로 적었다고 했는데, "갑"이 가운데를 뜻하다 보니 한가위는 한가운데를 이른 말이다.여기서 한가운데는 계절의 정중앙을 말한다. 음력 7월과 8월, 9월까지의 가운데, 곧 8월이 삼추의 중앙이요 한 달 30일 중에 15일(보름)이 한가운데가 되니 한가위를 중추절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곡이 영그는 가장 풍성하고 아름다운 계절 가을의 한가운데, 그런 한가위하면 우선 둥근 보름달이 떠오른다. 그 보름달 아래 둥글게 둘러앉아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는 가족들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른다. 풍요와 화합을 의미하는 원형은 한가위의 상징이다. 달떡이라 부르는 송편은 보름달을 닮아 둥글고, 한가위 음식의 별미인 토란이나 송이 역시 둥글기는 매한가지다. 마을 아낙네들은 한 방에 둘러앉아 두레길쌈을 하면서 돌림노래를 즐긴다. 남정네들의 씨름판이나 쾌지나칭칭나네의 놀이판도 역시 둥글게 펼쳐진다. 둥근 보름달이 둥실둥실 떠오르면 여인들은 둥글게 원을 그리며 감감술레 놀이를 펼친다. "감고 감아라, 수레바퀴처럼 감아라." 이때 목청껏 부르는 노래가 "감감술레"가 되고 이것이 오늘날 강강술래가 되었다. 강강술래의 어우너에 대한 견해는 매우 분분하다. 강한 오랑캐가 물(바다)를 건너오기 때문에 대비하라는 뜻에서 강강수월래가 되었다거나, 또 "꽁꽁 숨어라, 술레한테 잡힐라."에서 왔다는 설도 모두 억측에 불과하다. 고려시대에 불린 노래에 어떻게 임진왜란 때의 이순신 장군이 등장할 수 있겠는가? 마땅히 고유어로 불러 주어야 할 명절로는 수릿날(단오)도 예외일 수가 없다. 월령가 "동동"에서 음력 5월장을 찾아본다. "오월 오일에 아으 수릿날 아침 약은 즈믄 핼 장존하실 약이라 받잡노이다. 아으 동동다리." 5월 5일 수릿날 아침에 드리는 날은 천년 만년 장수할 약으로 알고 바치옵나이다, 대략 이런 뜻인데 여기서 말하는 장수약이 값비싼 보약이 아니라 쓰디쓴 익모초와 쑥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음력 5월이면 닥쳐올 무더위와 각종 여름병에 대처하기 위해 쑥과 익모초를 뜯어 이를 약으로 알고 먹었다. 특히 5일 단오에 여인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 뿌리로 비녀를 만들어 머리에 꽂았다. 쑥과 익모초와 창포는 어느 것이나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자연의 산물이며, 그 효능에 대해서는 현대 의학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머리 꼭대기를 정수리라고 한다. 여기서 "정"은 곁다리로 붙은 한자어로서 "수리"라는 말 자체가 맨 꼭대기란 뜻이다. 수릿날은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서 똑바로 내리쬐는 날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수릿날은 한자어로 단오, 단양, 중오절, 천중절이라 함도 그런 이유에서다. 태양빛이 하늘 정수리에서 내리쬐기에 일년 중에서 가장 양기가 왕성할 것이며, 이런 날 정오에 창포물로 머리를 감으면 그 양기가 몸으로 곧장 스며들 것이 틀림없다. 지금도 창포가 비듬 제거용 약의 원료로 쓰인다고 하니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고유 이름을 잘 보존하고 있는 명절은 단연 설날의 "설"과 대보름날의 "보름"일 것이다. "설(원단, 정초)"은 나이를 세는 "살"과 마찬가지로 처음(초), 시작(시)을 뜻하는 "서리" 또는 "사리"가 줄어든 말이다. 서리,사리에 모음간 "ㄹ"이 탈락하면 새 또는 쇠가 되는데, 이 말은 현대어의 "날이 새다, 새롭다, 설을 쇠다"에서 흔적을 볼 수 있다. 설이라는 고유 이름이 지금도 쓰이고 있는 만큼 11월(음력)의 동짓날은 "아치설" 또는 "작은 설"로 불러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치"는 본래 "아시"가 변한 말로서 작다는 뜻의 고유어이다. 둘째 아이가 태어날 때 "아시본다"고 하는데, 여기서 아시는 작은 아이, 곧 동생을 뜻한다. 그런데 아치설이 난데없이 까치설로 둔갑한 것은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라는 동요 탓이 아닌가 한다. 찹쌀 새알심을 넣어 팥죽을 쑤어 먹는 동지는 단순히 24절기의 한자식 명칭에 불과하다. 정초의 큰설을 맞기 전 그 전초에 해당되는 작은 설이기에 고유어대로 아치설이라고 불러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지금은 전통의 세시 풍습이 변하여 명절에도 부모님이 자식을 찾아 상경하고, 또 자식들은 고향에 가는 대신 해외 여행이나 유원지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다. 풍속은 세태에 따라 이처럼 변한다 해도 고유한 명칭만은 잊지 말아야겠다. 특히 고유 명절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우리말의 풍토성 명절, 절후 용어 1 - 어정 칠월 동동 팔월 "어정 칠월 동동 팔월"은 절후와 관련된 우리말 속담이다. 농가에서 7월은 하는 일 없이 어정거리기만 하고 대신 8월이면 갑자기 바빠져 동동거리기에 이런 말이 생겼다. 동동 팔월을 때로 "건들 팔월"이라고도 하는데, 8월은 농사일로 바쁘긴 해도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건들바람처럼 그렇게 훌쩍 가버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보릿고개"의 말뜻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게다. 묵은 곡식은 바닥이 나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은 음력 4~5월, 세상에서 가장 넘기 어렵다는 이 보릿고개를 "깐깐 오월"이라 부르기도 한다. 춥고 배고프고, 그래서 기억하기조차 싫은 춘궁기지만 그래도 보릿고개라는 이름만은 참으로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절후에 대한 인식이나 명칭은 이처럼 농사일과 결부되어 있다. 고달픈 삶이었지만 조상들은 그 속에서도 여유와 멋을 잃지 않았고,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는 과정에서 섬세한 계절감은 느끼고 살았다. 이른 봄 쌀랑한 추위를 일컫는 "꽃샘"이라는 말이 그 좋은 예가 된다.한겨울 추위보다 더 고약한 봄추위에 어떻게 이처럼 멋진 말을 붙일 생각을 했을까 싶다. 꽃이 피기 전 새싹을 시샘하는 "잎샘 바람"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 유명도에서 꽃샘 바람이나 꽃샘 추위에 미치지 못한다. 아름다움의 상징인 꽃은 일기 용어 여기저기에서 얼굴을 내민다. "바람꽃"이라는 말이 있다. 먼 산에 구름이 끼듯 하늘을 덮는 뿌연 기운을 이름이다. 눈부신 설경을 일러 "눈꽃"이라 하고, 수증기가 서려 차창에 엉긴 무늬를 가리켜 "서릿꽃"이라 추어준다. 뿐인가, 무지개를 보는 한국인의 시각 역시 별난 데가 있다. 무지개는 물의 지게, 즉 물로 된 문을 뜻한다. 불어의 "아르켄시엘"은 하늘의 아치라는 뜻으로 단순한 시각적 표현에 불과하고, 영어의 레인보우"는 비의 활(궁)이라는 뜻으로 다분히 전투적인 냄새를 풍긴다. 무력에 의해 침략이나 일삼던 그들의 눈에는 무지개마저 공격용 활로 보였던 모양이다. 우리말 무지개는 그것이 물로 된 문만이 아니라 용궁이나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을 뜻하기에 이 말 속에는 우리의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이른 봄 먼 산에서 꿈결처럼 아롱거리는 "아지랑이"라는 말처럼 무지개도 그 본뜻을 곰곰이 되씹어 보면 참으로 아지랑이처럼 시적이다. 비(우)의 이름은 더욱 다양하고 섬세하다. 는개, 이슬비, 가랑비, 보슬비 등에서 보듯 비도 내리는 철이나 양에 따라 독특한 이름은 가진다. 이 가운데 "는개"는 안개보다는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가장 적게 내리는 비를 이름이다. "는개 속을 거닐며 옷 젖는 줄 몰랐다."는 표현이 어느 소설에 나오지만 요즘 사람들이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할는지 모르겠다. 모심기 철에 때마침 오는 단비를 "모종비"라 하고, 볕이 든 틈새를 이용하여 잠깐 뿌리는 얄미운 비를 "여우비"라 한다. "심술비"라는 것도 그렇지만 억수로 퍼붓는 "작달비", 장대처럼 쏟아 붓는 "장대비"란 이름도 여우비만큼이나 재미있다. 요즘 "썰렁하다"는 말이 여러경우에 쓰인다. 저희들끼리 웃겨 좋고 별 반응이 없으면 "썰렁하다"면서 객쩍은 웃음을 짓는다. 의도하는 대로 분위기가 잡히지 않았다는 얘긴데, 어떻든 이는 날씨 묘사가 일반적인 분위기 쪽으로 의미 영역을 넓힌 것이다. 산산하다, 선선하다, 살랑거리다, 설렁대다, 산뜻하다, 쌀랑하다, 으스스하다, 오싹하다 등의 형용사도 비단 날씨 묘사만으로 쓰이지 않는다. 바람의 이름 또한 다채롭기 그지없다. 어촌이나 농가에서 동서남북 방위에 맞춰 불어 주는 샛바람, 하늬바람, 갈바람, 마파람, 된바람, 높새바람 이외에도 계절 감각과 관련된 이름은 얼마든지 있다. 이른 봄 살 속으로 파고들어 소름이 돋는 "소소리바람", 뒤에서 부는 "꽁무니바람", 이리저리 제멋대로 불어오는 "왜바람", 문풍지에 뚫린 바늘구멍에서 새어 드는 "황소바람", 못자리를 만들 무렵 실없이 부는 "피죽바람"등도 재미있는 바람 이름이다. 피죽바람은 그 무렵에 이 바람이 불면 피죽도 얻어 먹기 어렵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반면 "솔개그늘" 이라는 멋진 구름 이름도 있다. 흐릿한 구름의 그림자로서 대게 음력 2월 스무날에 날씨가 흐리면 풍년이 든다 하여 소리개(솔개) 그림자만한 구름만 끼어도 농가에서는 이를 크게 반겼다. 계절이나 절후에 대한 우리말은 이처럼 단순하고 소박하다. 표현은 직설적이고 준말이 대부분이나 그 속에 묘한 감칠맛이 있다. 구름이 서서히 물러가 날씨가 개는 현상을 일러 "벗개다"라 하고, 추위가 가시면 날씨가 "눅다" 또는 "눅지다"라고 한다. "나무말미"란 말도 본디말을 찾아야 그 뜻을 알 수 있다. 이는 긴 장마 끝에 잠깐 날씨가 개어 젖은 나무를 말릴 만한 틈새를 지칭하는 말이다. 또한 "자욱하다"와 "자오록하다"의 의미상의 차이를 안다면 우리말의 섬세한 감각미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연기나 안개가 끼어 잔뜩 흐린 상태를 자욱하다고 하고, 흐릿하면서 주변이 쥐죽은 듯 고요한 상태를 자오록하다고 표현한다. "풋머리"나 "찬바람머리"도 참 운치 있는 말이다. 맏물이나 햇것이 나오는 철을 풋머리라 하고 늦가을에 싸늘한 냉기가 감돌 때를 찬바람머리라 한다. 먼동이 튼 뒤 서녘 하늘에 남은 달, 곧 "지새는 달"이라는 표현은 자못 시적이다. 어느 소설에 "해미를 뚫고 햇귀가 떠오른다."는 구절이 나온다. 바다를 덮은 짙은 안개를 "해미"라 하고 해가 막 솟을 때 처음 발하는 빛은 "햇귀"라 함을 안다면,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생활 속의 우리말 상거래 용어 - 에누리와 디스카운트 물건값을 정가보다 낮추는 일을 에누리라 한다. 에누리는 본래 "어히다, 에이다(할)"에서 나온 말로 베어 낸다, 잘라 낸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 에누리없는 장사가 어딨어"라는 노래말에서 보듯 예전에는 값을 깍는 맛에 물건을 산다고 했다. 그러나 이 에누리 풍속도 정찰제에 밀리고, 또 "디스카운트(줄여서 "디시")"나 "바겐세일(또는 "세일")" 등의 새로운 서구식 상거래 풍속에 점차 사라지고 있다. 물건을 살 때 덧붙여 오는 것을 "덤"이라 하는데, 이것이 에누리보다는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것 같다. 덤은 인정과 통하는 말로서 콩나물 한 봉지를 살 때도, 밥 한 술을 덜어 줄 때도 덤이 예외없이 따라 붙는다. 인정 넘치는 민족의 언어답게 덤이라는 말도 어떤 말에든 그야말로 덤처럼 붙어 다닌다. 일 년 열두 달에서 한 달이 거듭되는 윤달을 덤달이라 하고, 호선으로 두는 맞바둑을 덤바둑이라 한다. 옛날에 법도 있는 가정에서는 "세덤"이라 하여 식구 외에 두세 몫의 밥을 여분으로 준비하곤 했다. 새우젓 장수는 알젓 외에 덤으로 주기 위한 덤통을 아예 준비하고 행상에 나섰다. 지금은 보너스 또는 상여금이라 칭하는 기본급 이외의 보수를 일러 "덤삯"이라 부르면 어떨까 싶다. 인정이라는 부가 가치가 붙는 덤은 더없이 좋은 것이긴 해도 한계를 넘으면 문제가 된다. 월부책 판매나 이발을 할 때 덤이 지나칠 정도로 극성을 부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형국이 될 수도 있다. 덤이란 주는 이의 정이나 상식에 의존해야지 받는 이의 요구에 의한다면 난처한 입장에 처할 수도 있다. 덤이 벼슬로 옮아가면 권한 밖의 권한을 함부로 휘두르는, 이른바 직권 남용이 된다. 덤이 세금에 따라 붙으면 이른바 인정세라는, 세금 아닌 세금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흔히 "떡값"이라 불리는 이 인정세는 돈을 "낸다"고 하지 않고 "뜯긴다"는 별도의 용어를 사용한다. 뜯긴다는 표현에 이르면 이는 분명 인정의 한계를 넘어선 부정이며, 또 영어의 "팁"과도 전혀 다른 개념이다. 공중전화에서 통화를 끝내고 남은 요금 가운데서 십원짜리 동전을 거슬러 받지 못한다 하여 말썽이 된 적이 있다. 마땅히 되돌려 받아야 할 거스름돈을 일반적으로 낙전이라 부른다. 그런데 화투판에서 낙장이라는 말은 들어보았으나 "떨어진 돈", 곧 낙전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생소하기 이를 데 없다. 국어사전에도 오르지 못한 이 용어는 마땅히 거스름돈 또는 우수리돈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어떤 이는 이를 "잔돈"이라고 하는데, 잔돈은 작은 단위의 돈을 뜻하기에 거스름돈이 꼭 잔돈일 수는 없다. 거스름돈은 거슬러(반대로) 받는 돈(역전), 다시 말하면 지불한 금액에 대하여 우수리 부분을 거슬러 받는 돈이라는 뜻이다. 거슬러 받아야 할 돈이 어디 공중 전화 요금뿐이겠는가. 술집에서 술값을 치를 때, 택시를 타고 요금을 낼 때, 이발을 하고 봉사료를 낼 때 이 거스름돈이 자주 말썽을 일으킨다. 인정이라는 덤이 주는 것(파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것(사는 사람)으로 여길 때 문제가 야기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쩨쩨하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인지, 아니면 주머니 사정이 두둑해서인지 마땅히 받아야 할 거스름돈을 기꺼이 사양하는 부류가 많다. 당장 보기에는 멋져 보일는지 모르나 그렇게 호기를 부린 본인의 속마음은 그리 편치만은 않을 터이다. 과거 상거래에서 자주 쓰이던 "드림셈"이나 "드림흥정"이라는 용어는 이제 들어보기 어렵게 되었다. 물건을 사고 팔 때 값을 한목에 치르지 않고 여러 차례 나누어서 치르는 할부 판매를 예전에는 드림셈이라 했다. 지금의 할부와 차이가 있다면 언제, 몇 회에 걸쳐 치른다는 규정만 없을 뿐 채무자의 형편에 따라 빚을 갚아 나가는, 어찌보면 가장 한국적인 지불 방법이다. 드림셈이나 드림흥정이라는 제도가 우리 정서에 맞는 만큼 월부라면 달드림, 일부라면 날드림이라 하여 오늘날에도 되살려 썼으면 한다. "도르리"도 되살리고 싶은 말이다. 도르리는 본래 여러 사람이 제각기 음식을 돌아가며 내서 함께 먹는 일, 즉 이번에는 이 집에서 음식을 내면 다음에는 저 집에서 내는 식으로 차례대로 내는 방식이다. 이런 도르리는 식당에서 여럿이 음식을 먹고 똑같이 값을 치른다는 이른바 "더치페이"라는 말의 대용으로도 쓸 수가 있을 것이다. 금전 거래에서 현금 대신 사용되는 수표는 그 말의 유래가 확실치 않다. 북한에서 수표라 하면 수결과 마찬가지로 사인을 뜻할 뿐 우리의 수표와 같은 개념은 없다. 아마도 고유어 "어음(본래는 "어험")"이 일본이나 중국의 영향으로 수표라는 용어로 대체된 것이 아닌가 한다. 어음은 상거래에서 언제까지 돈을 지불하겠다는 약속의 증표로서 액수를 기록한 글씨가 두 쪽이 나게 잘라서 거래 당사자들이 한쪽씩 나누어 가졌다. 이는 현금 대신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었는데, 받는 사람은 지불 날짜에 그 발행인을 찾아 두 쪽을 맞추어 보고 돈을 받는 금전 거래법이었다. 어음이라는 말 역시 고유어로서 앞서 말한 에누리의 "어히다"에서 파생한 말이다. 경제 용어도 가능한 한 우리말을 되살려 써야 하지 않을까 한다. 디스카운트 대신 에누리, 프리미엄 대신 웃돈, 캐시나 현금 대신 맞돈이라고 써도 무방하지 않을까. IMF 사태 이후 우리 사회가 겪은 변화가 있다면 "경제의 국제화"일 것이다. 국제화라는 명분 아래 경제에 관한 한 모든 용어가 외래어로 채워지고 있다. 이런 거대한 홍수 속에서 우리말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참으로 비참한 지경에 이른 우리말의 신세, 이것이야말로 "우리말의 IMF 사태"라 하겠다.
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생활 속의 우리말 우리말 숫자관 - 닫히고 열리기가 골백번 필자가 12라는 숫자를 선호하게 된 것은 대학과 대학원 입시 때 수험번호가 모두 12번이었던 데서 비롯된다. 학번과 군번을 비롯하여 열 두번의 이사 횟수에 이르기까지 묘하게도 이 숫자는 나와 인연이 깊다. 20여 년 전 "12, 12 사태"란 것이 생겨서 한국 정치사에 고약한 시비거리를 제공한 바도 있지만, 1년 열두 달, 간지에서 12지, 예수님의 열두 제자 등등 대체로 12는 행운의 수로 인식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확히 셀 수도 없는 금강산의 봉우리도 1만 2천 봉이라고 자랑한다. 숫자관이라고 할까, 우리는 특정한 숫자에 대해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저마다 선호하는 숫자를 가지고 있다. 길수라 부르는 숫자가 그것인데, 일반적으로 짝수에 비해 1, 3, 5, 7, 9의 홀수를 좋아하는 것은 동서양이 서로 다르지 않다. 정월 초하루(1. 1), 삼월 삼질(3. 3), 오월 단오(5. 5), 칠월 칠석(7. 7), 중양절(9, 9)의 예에서 보듯 홀수가 겹치는 날을 명절로 삼는 것은 홀수를 양으로 보는 동양의 음양설에서 기원한다. 최근 경제 문제에 사회의 관심이 쏠리면서 자연스럽게 숫자 표시에 친숙하게 되었다. 주가, 환율, 부도 액수, 스포츠 스타의 연봉, 예산 규모 등의 숫자를 보면서 한결같이 놀라는 것은 액수가 엄청나다는 사실이다. 한때 "윽"하고 기절할 정도로 억수로(억세게) 커 보였던 억대가 어느새 조대에 그 위력을 넘긴 지 오래다. 그러나 억조창생이라던 "억조"도 얼마 안 있어 조의 1만 곱절인 "경"이나, 거 나아가 경의 1만 곱절인 "해"에게 자리에 물려 주어야만 할 것 같다. 대국이라 그런지 중국은 수 단위에서 경, 해 말고도 자, 양, 구 등 10여 개의 더 큰 단위를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불교에서 말하는 무량수나 불가사의까지 동원해야 할 날이 머잖아 보인다. 사람은 예로부터 수를 헤아릴 때 바른손을 세우고 하나하나 차례로 손가락을 꼽아 나간다. "세다, 셈하다"라는 말 자체가 손가락은 세운다(립)는 뜻이며, "곱절"이라는 말도 손을 다시 꼬부려 꺽는다(꼽는다)에거 나온 말이다. 숫자 표시가 많이 필요하지 않았던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은 다섯을 세면서 꼽았던 손가락이 모두 열리는(펴지는) "열(십)"에 이르면 벌써 많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여러분, 여러 가지, 여럿"에서 보듯 "여러(열)"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는 뜻이다. 열이 다시 열 번을 거듭하면 더 많다는 뜻의 "온(백)"이 된다. "온 나라, 온종일, 온갖"등의 예에서 보면 "온"은 이미 숫자의 개념을 넘어 전부(전) 또는 영원을 지칭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와 발전으로 "온"도 결코 전부가 되지 못한다. 즈믄(천)이 생이고, 골(만)이 생기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한자말의 도움을 청하게 되었다. 백번을 다시 백번 반복하면 이른바 "골백번"이 되는데, 우리 조상들은 이런 수치를 비처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앞서 손가락을 꼽고 펴는 동작에서 우리말의 수사가 생겼다고 했다. 손가락을 모두 꼽고 나면 이것이 다시 닫히는데, 이처럼 닫혔다 하여 "다섯"이란 말이 생겼다. "여섯"은 닫힌 손이 다시 열려 나가는 차례이며, 열에 둘이 없으면 "여덟"이요, 하나가 없으면 "아홉"이 된다. 다만 수의 출발점이 되는 "하나"만은 어원이 좀 별나다. 손꼽기 동작에서 유래한 말이 아니라 낟알, 곧 하나의 곡식 알갱이를 뜻하는 말이다. 부연한다면 "하나"는 "홑"과 "낟"이 합쳐진 말로서 홑은 홑이불이나 홀아비에서 보듯 겹이 아닌 단독임을 나타낸다. 이처럼 하나만을 손꼽기에서 차별화시킨 것은 하나의 수가 시작이기 때문이요, 또 곡식 한 알갱이도 귀하게 여기는 농경 사회의 특징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하나(줄여서 "한") 곧 홑은 겹이 아니기에 외로울 수밖에 없어 이런 외톨이의 허전함을 두 번째 손가락 검지가 포근히 덮어 준다. 둘(이)운 "두블"의 준말로서 엄지를 꼬부린 그 위에 검지(인지)를 덮는 모습을 나타낸다. "덮다"를 옛말에는 "둡다"고도 했는데, 현대어의 "두텁다, 두께"등과 함께 "더불어 산다"고 할 때의 "더불다"도 여기서 파생된 말이다. 셋(삼)은 손가락 한가운데, 곧 "사이(새)"에 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양쪽의 두 손가락들 사이에 위치하기에 한자어로 간지 또는 중지라고도 한다. 또한 이 가락은 다섯 가운데 가장 길기 때문에 길수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서양에서의 "럭키 세븐" 7보다도 더 선호하는 숫자가 되었다. 무엇이든 세워 놓기 위해서는 최소한 발이 셋은 있어야 한다. 셋의 "세"와 서다, 세우다(립)의 "서, 세"가 결코 무관치 않다. "수리수리 마하수리"라는 염불이 있는데, 이는 수리 곧 길상존을 세 번 연거푸 암송함으로써 모든 업을 씻어 달라는 간절한 염원이다. 삼각형의 안정된 기반 위에 하늘, 땅, 사람의 삼재와 삼계 및 삼위일체가 펼쳐지고, 하루 세 끼의 식사와 함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삼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가. IMF 사태로 나라 살림이 어려운 지경에 처했지만 우리는 결코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 삼세번이라는 그 세 번의 기회가 있는 만큼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손가락을 꼽으며 한 알 두 알 낟알을 모아 가노라면 천문학적인 숫자로 여겨지는 그 엄청난 빚도 언젠가는 갚을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니까.
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생활 속의 우리말 음료수 용어 2 - 차 한잔의 여유와 향기 다반사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항다반사, 즉 매일같이 차를 마시듯 밥을 먹듯 늘 반복되는 예사로운 일을 지칭한다. 중국인게게는 차를 마시는 일이 밥을 먹는 일보다 우선했던 것 같다. 인간의 죽음을 일컬어 우리가 "밥 숟갈 놓았다."고 표현한다면 중국인들은 "찻잔을 놓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다방에서 차를 마신다"에서 보듯 차는 "다"와 "차"로 읽힌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차의 한자음은 중국 남북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 가운데 한 갈래가 서양으로 들어가 지금의 "티(tea)"가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자 차는 풀(초)와 나무(목)을 사람(인)이 달여 마신다는 뜻을 나타낸다. 불교 설화에 따르면 선의 비조인 달마가 정진을 위해 자신의 눈썹을 밀어 버렸는데 거기서 차나무가 생겨났다는 것이다.따라서 차는 명상을 지속하게 하여 모든 정념을 극복하고 깨달음의 본질을 암시하는 초월의 경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차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신라 선덕여왕 때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이 시기는 중국에서 차가 유행하던 당나라 초엽에 해당하며 지금부터 1천3백여 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울 선조들이 차맛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200여년이 지난 흥덕왕 때 대렴이 당에서 차종을 가져와 왕명에 따라 이를 지리산에 심은 이후부터라고 한다. 따라서 차라고 하면 당연히 녹차를 지칭한다. 다방은 물론 다실, 자정은 본래 녹차를 즐기던 장소였다. 고려 때 불교의 성행에 따라 궁중에 다방이라는 관청을 두었고, 차를 재배하여 조정에 바치는 다촌이라는 마을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여기에 일반인들도 차를 즐기게 되었으니 다화회라는 친목단체나 다연이라는 연회까지 두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차생활이 한때 서구화의 물결에 따라 "차 한 잔 하십시다."고 하면 으레 다방이나 까페에서 커피나 홍차와 같은 서구식 조제차를 마시자는 것으로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초에 조상께 올리는 "차례"에서도 녹차 대신 술잔을 올리다 보니 주례로 변질되었고, 흔히 다도라 하면 일본 고유의 것인 양 잘못 인식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요즘에는 커피에 중독되었던 사람들이 점차 우리 녹차를 찾게 되었다. "차 한 잔 합시다"라고 할 때의 차가 바로 본래의 녹차를 지칭하기에 이른 것이다. 녹차가 상품화되고 일인용 다기를 비롯한 생활 다기가 양산됨에 따라 차생활이 우리 곁으로 다가온 느낌이다. 한때 "지푸라기 삶은 물"같다던 그 차맛도 몇 번 반복해서 마시다 보니 그 본래의 맛에 접근하게 되었다. 진정한 차맛이란 어떤 것일까? 중국의 석학 임어당은 "생활의 발견"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장황하게 언급하고 있다. "마음과 손이 함께 한가로울 때, 시를 읽고 피곤함을 느꼈을 때, 머릿속이 뒤숭숭할 때,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휴일에 집에서 쉬고 있을 때, 거문고를 뜯고 그림을 감상할 때, 명창정궤를 행할 때, 미모의 벗이나 날씬한 애첩이 곁에 있을 때, 벗들을 방문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하늘이 맑고 산들바람이 불어올 때, 가벼운 소나기가 내릴 때, 여름날 연못이 한눈에 내려와 볼 수 있는 누가 위, 조그만 소재에서 향을 피우면서 연회가 끝나고 손님이 돌아간 뒤, 사람 사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절간 같은 곳에서 차를 마실 일이다." 흔히 혼나 차를 마시면 이속이라 하고 둘이 마시면 한적이라고 했다. 차는 한적한 절간 같은 곳에서 홀로 마시는 것이 제격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 생활이 어디 그런가. 오늘의 삶이 "홀로서기"가 아닌 "마주보기"에 있는 만큼 홀로 즐기는 맛보다 이를 둘이 나눌 때 맛은 배가 될 것이다. 진정 차맛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누구와 더불어 마시느냐에 따라 맛도 달라질 것이다. 차맛에 대해서도 임어당은 "최상의 차에서 바랄 수 있는 향기는 어린애의 살결에서 풍기는 것과 같은 델리케이트한 향기"라 했다. "다경"에 이르기를 "심야산곡의 간 칸 집에 앉아 샘물로 차를 달일 때 송뢰와 같은 소리가 들리며, 이 때 피어오르는 연기 즉 다애를 맡을 때의 그 맛은 속인으로서는 도저히 가까이해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차생활의 이상향을 그렸을 뿐으로 차를 마시는 곳이 꼭 심야산곡의 절간이 아니어도 좋고, 그 곁에 미모의 벗이나 날씬한 애첩이 없어도 좋을 터이다. 그저 흉허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나 아내, 또는 가족과 더불어 하루 일을 되새겨 보거나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도 얼마든지 차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다정한 이웃과 나누는 차 속에는 따뜻한 인정이 스며 있기에 그 차맛은 고려 왕실의 어용차라고 하는 유차의 맛에 못잖을 게 분명하다.
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생활 속의 우리말 음료수 용어 1 - 꽃 꺽어 산 놓으며 드사이다. 우리 고유의 음료수를 말한다면 단연코 숭늉과 막걸리를 빼놓을 수 없다. 숭늉처럼 우리의 민족성을 잘 드러내는 음료수도 없을 것 같다. 숭늉은 용어가 비록 한자 승랭(숭랭, 숙맹이 본말)에서 왔지만, 우리가 붙인 고유 한자어로서 고유어나 다름없이 쓰인다. 색깔이 없는 듯하면서도 사발에 따라 놓으면 마치 우리릐 피부색이나 온돌방의 장판색과도 같은 노르스름한 색이 내비친다. 색깔과 마찬가디로 맛 또한 없는 듯하면서도 깊숙히 숨어 있는 것이 숭늉이다. 오랫동안 혀 끝에 감도는 여운과도 같은 구수한 맛 말이다. 집집마다 전기 밥솥을 쓰는 요즘에는 누룽지도, 숭늉도 구할 수 없어 그 특유한 구수함을 맛볼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어느 식당에서 누룽지와 숭늉을 특별 서비스한다 하여 손님이 몰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잃어버린 맛에 대한 향수인가, 한잔의 숭늉을 통해 옛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기 위함인가. 막걸리는 창조를 뜨지 않고 걸러낸 것이기에 색깔도 맑지 않을 뿐더러 맛이 텁텁한 고유의 술이다. 한자말로는 탁주, 농주, 박주, 백주, 모주 등으로 불리나 이름 그대로 "막 거른 술"이기에 막걸리라는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린다. 주모를 쓰지 않고 맴쌀과 누룩에 물을 부어 그냥 발효시켜 빚은 술, 다시 말하면 인공 효소나 향료를 쓰지 않은 술이기에 어떤 한자 이름보다도 막걸리가 제격이다. 촌스럽고 투박한, 그러면서도 은근한 맛을 지닌 숭늉과 막걸리는 그 자체가 한민족의 본성을 대변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 속에 무뚝뚝한 할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배어 있고 따스한 할머니의 손길이 스며 있으며, 여기에 한국인의 애환과 체취가 서려 있다고나 할까. 숭늉과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도 역시 우리식이라 할 수 있다. 누가 한국인의 스케일이 작다고 했는가? 소주는 작은 "고뿌"에 따라 홀짝이고 맥주는 글라스(컵)에 따라 마신다. 양주, 특히 포도주는 투명한 글라스에 반쯤 따라 조금씩 음미하면서 마셔야 격에 맞는다. 그런데 막걸리는 어떠한가? 서구인들이 반쯤 따른 포도주를 들고 코 끝으로 향내를 맛보며 고양이처럼 혀끝으로 햝을 때 우리는 대형 국사발에 철철 넘치는 막걸리를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단숨에 들이킨다. 수염에 묻은 막걸리를 손바닥에 훔쳐내며 숨을 몰아 쉬는 그 호방한 모습을 어찌 서구인과 비교하랴. 그런데 술잔을 기울이기 전에 우리 조상들은 뭐라고 외쳤울까 궁금하다. 건배 용어라 할까, 축배 인사말이라고 할까. 어떻든 이런 용어는 우리 술자리에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전 문학에서도 "먹세 그려"라든가 "드사이다, 먹사이다, 듭세" 정도가 고작으로 이렇다 할 용례가 발견되지 않는다. "한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 꽃 꺽어 산 놓고 무궁무진 먹세그려" 주선 송강 선생의 술 권하는 노래에서도 이처럼 "먹세"정도로 그치고 있다. 어느 구절을 보아도 술잔을 들고 경망스럽게 무언가 외쳐대는 말은 찾을 수가 없다. 꽃 꺽어 산 놓으며 조용히 술잔이나 비우고 그러다가 흥에 겨우면 시문이나 읊조리는, 그런 점잖고 격조 높으 장면밖에는 찾을 수가 없다는 얘기다. 음주 형태를 두고 서양의 자작과 중국, 러시아, 동구의 대작, 우리의 수작의 세 가지 형태로 나누기도 한다. 수작이란 말은 서로 술잔을 주고 받는다는 뜻이다. 우리의 경우 막걸리를 마시는 자리에서 사람수만큼 별로의 사발이 갖추어졌을 리 만무하다. 술잔이 적다 보니 동시에 술잔을 들어올릴 수 없으므로 하나의 잔으로 여러 사람이 돌려 가며 마셨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음주 형태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작이라 할 수 있으니, 홀로 자연을 벗삼아 자음자작하며 즐기던 유형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수작이라는 말도 좋은 뜻으로 쓰이지 않는다. "수작 떨다, 수작 부리다"라고 하면 무슨 음모를 꾀하거나 말로써 경솔하게 구는 행동을 일컫는다. 술자리에서 술잔을 주고 받는 풍습이 언제부터 유행했는지 몰라도 지금은 잔도 많아지고, 또 위생적인 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제 수작은 그만 부리도록 해야겠다. 잔을 들어 부딪치며 소리를 지르는 주법은 어디까지나 서양인의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우리의 술잔인 사발은 한 손으로 들어 다른 사람의 것과 부딪칠 수 있는 그런 그릇이 못 된다. 일본의 술잔은 우리 것보다 작긴 해도 그들의 "간빠이(건배)"라는 풍습은 서양의 "브라보(bravo)" 풍습이 유입된 이후의 일이라는 게 통설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우리에게는 손윗사람 앞에서 맞술을 들거나 술잔을 들어 쨍 하고 부딪치는 행위가 애초부터 동방예의지국의 주법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인이 되어 술을 배울 때도 무릎을 꿇은 자세로 잔을 받고 마실 때도 상체를 돌리는, 그런 엄격한 주법을 배워 왔다. 어려운 분 앞에서 어찌 "브라보, 쨍!"이니 "위하여, 쨍!"과 같은 경솔한 행동을 보일 수 있겠는가 말이다. 브라보에 해당하는 우리 고유의 용어가 없음을 서운하게 여겨 "위하여!"와 같이 밑도 끝도 없는 새 말을 만들거나, 그것도 아니면 중국이나 일본의 "건배"를 수입하여 그들을 흉내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식대로 그저 "듭시다, 드십시오"라고 점잖게 권하면 "네, 드시죠."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면 그만이다. 우리가 마시는 한잔의 숭늉, 한잔의 술은 그것이 정이요 추억이요 예절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