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2. 땅과 존재 2-7. 스승과 푸닥거리 '선생의 뒤는 개도 먹지 않는다' 고 한다. 인간적인 접촉을 바탕으로 하여 젊은 학도들을 지도하느라 속을 태우다 보니 그들의 뒤는 개도 먹지 않게 됐다는 속설이 생긴 듯하다. 가르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생활을 끊임없이 되 돌아보고 미래지향적으로 자신을 힘써 갈고 닦아야 한다. 그가 이루는 일체의 가르침은 원천적으로 그가 갈고 닦은 학문과 인격의 수준을 넘을 수없기 때 문이다. (중용,,의 말씀에도 '성실한 것은 하늘이요, 성실하게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길이다'라고 하였는바, 쉼 없이 흐르는 냇물처럼 선생은 힘이 자라는 데까지 옆을 돌아 보지 말고 앞으로걸을 일 이다. 자기들은 제 아들 딸올 잘 이끌어 주지 못하면서, 선생은 마땅히 자기 아들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선생의 역할에 대한 학부모들의 이러한 기대를 선생들은 저버릴 수가 없고, 그 기대에 못 미친다고 판단되면 꾸지람의 화살도 당연한 듯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한민족의 전통으로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하여 선생의 역할에 상당한 무게를 두어 왔기 때문에, 서구화한 지금에 와서도 선생에 대한 그러한 기대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생산적인 방향으로만 승화시켜 나간다면 이런 문화적인 맥은 그 어느 겨레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흘륭한 정신적 전통이라고 본다. 가르침의 바탕은 참과 거짓, 옳고 그름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일깨우며 학습자의 창의력을 블지름으로써 전 인격적인 인간의 꿈을 키워 주는 데 있다고 본다. '참'이란 동사 '차다[滿]'에서 갈라져 나온 파생명사이고, 거짓'은 거죽 또는 겉[表面]에서 나온 말이다. 겉만 번지르르한, 참이 없는 교육, 그런 가르침을 원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올까. 혹 엉터리로 가르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참된 가르침을 바라며 그런 욕구를 실현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다. 그러기 위하여는 선생 자신이 거짓을 물리치며 잘못된 일을 과감하게 떨쳐 버려야 한다. 그는 늘 깨어 있기를 향한 몸부림으로 자신의 인생을 채워서 제대로 익은 향기로운 가르침에 가까이 가야 한다. 때문에 우리는 흘륭한 선생을 그리워하며 기린다. 어렸을 때에 감명깊게 읽었던 책을 잊을 수 없듯이, 마음 속에 깆이 아로새긴 선생님의 가르침은 깊은 샘물과 같아서 세월이 흘러도 마를 줄을 모른다. 오히려 그것은 그리움이 되어 푸른 강물처럼 한 인간이 살아가는 삶이라는 언덕에 굽이쳐 흐르게 된다. 그리움이 머무는 공간과 시간을 만드는 사람, 선생은 특히 젊은이의 생애에 있어 이정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항상 어두움을 밝히기 위하여 등과 기름을 마련한다. 행여 그 등블이 꺼지지 않나 하여 마음을 졸인다. 가르치는 사람을 선생. 교원. 사부(師舊). 스승'이라고 한다.'스승'은 선생을 높이는 말로, 아무 데에나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선생' 이란 호칭은 아주 많이 쓰이는데, 저 유명한 공자도 선생이었고, 또 선생이면 그만이다. 이율곡 선생 흑은 이퇴계 선생이면 그것으로 족하다. 시대와 공간이 달라지면서 일정하게 특수한 사람에게 쓰던 말이 아주 보편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부처님의 말씀마따나 '깨달으면 모두가 부처(卽心是佛)'이니, 누구든지 도리를 깨달아 알면 곧 선생이 되는 것은 그럴 듯하지 많은가. 옛말에 '스승'은 '무당<두해>, 선생 <능엄>, 고덕한 승려[화상(和尙) ; <석보상절>, 왕<유씨물명고>' 과 같은 뜻으로 쓰였다. 소리가 나는 형태로는 '고덕한 승려'라는 뜻의 '사승(師僧,중국어 발음으로 스승)'이 가장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언어는 사회와 그 역사의 산물이란 관점에서 볼 때, 더 가까운 말은 무당이 아닌가 한다. 함경도. 황해도. 평안도 지역에서는 무당을 스승이라 하고, 전라도 지역어에서는 당골.단골레라고 한다. 고대사회에서 무당은 위대한 제사장이자 행정의 머리였다. 신라시대까지만 해도, (삼국사기),에서 보듯 왕을 '자층(慈充)' 이라 하고 있다. 이 무렵에는 파찰음 계통의 소리가 없었음을 감안해 보면 '사승/스승'으로 발음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필자는 '스승' 이 (삼국유사),에 나오는 '소도' 에서 비롯한 것으로 생각한다. 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단을 모으거나 높은 산에 성황목(城皇木), 곧 신의 나무[神樹]를 세운 곳을 '소도'라고 하였다. 그곳은 살인자가 들어와도 체포하지 않는 거룩한 장소였다. 그곳에서 제사를 모시는 사제가 곧 '스승'이었다는 말이다. 그것은 소도'가 '숟~솟~슷~스승'의 변이형으로 쓰인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환응(琢雄)도 따지고 보면 '거룩하고 위대한 스승' 이란 말로 뒤칠 수 있다. 수컷 웅(雄)이라고 하는바, '숫~솟~숟 ~스승'파 같이 '소도'와의 걸림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바뀜을 따라 '스승' 이 담당한 영역의 변천을 간추리면 '제사장(종교+정치)>정치>교육/종교>교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점을 치는 무당도 마찬가지인데, 제사장은 길홍화복(솜凶禍福)을 알아서 미리 알려 주는 '예언'의 기능과 응어리진 마음을 풀고 닦아 주는 '해원 (解怨)'의 구실을 해 냈다. 이런 두 기능과 선생의 역할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한퇴지 (轉退之)는 '스승이란 도리와 문화 유산을 전달하고 의흑을 풀어주는 자(師者傳道授業解慾)'라고 하였다. 해원과 해흑이 서로 통하는 맥이 있다고 판단된다. 응어리진 마옴을 스승(무당)이 풀어 주듯이, 잘 모르는 의혹을 스승(교원)이 플어 주지 않는가. 그것이 꼭 예언자적인 성격은 아닐지라도. 공부 때문에, 교육 때문에 얼마나 고민하였으며 잠 못 이루는 외로운 밤을 보냈는지. 교육의 본질로 가는 길목에서 걸림돌이라도 되지 말아야 하겠다는 바람일 뿐이다. 내일의 새벽이 있기에 교원의 길을 걸으면서 끈질기게 교육사회의 봄이 옴을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스산한 겨울의 계절이더라도...... 2-8. 귀와 구멍 옳지 못한 일을 저질러 놓고 그게 드러날까 하여 제 귀를 제가 막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속담말로 '귀 막고 방울 도둑질한다' 함은 바로 앞의 경우를 두고 이른 말이다. 만일 인간에게 귀가 없다면, 제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라 하더라도 하등의 쏠모가 없으며, 인간은 결코 언어적 존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감각기관 중의 하나로서 얼굴의 좌우에 있으면서 소리 듣는 일을 맡은 것을 귀'라고 한다. 귀는 귀싸대기와 귀밑대기를 바탕으로하여 귓부리. 귓불. 귓구멍. 귓전. 귓바퀴와 같은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말하는 이의 뜻은 흔히 심리적-생 리적 -믈리적인 단계를 거쳐 말듣는 이에게 소리로 전달된다. 다시 거꾸로 말듣는 이는 믈리적 -생리적 단계를 거쳐 말소리에 담긴 뜻을 이해하게 된다. 이들 과정 중에서 생리적 과정과 물리적 과정은 귀의 기능과 밀접한 연관을 보인다고 하겠다 귀를 이루는 여러 부위 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곳은 귓구멍이다. 따라서 귀의 모양은 구멍으로 상징될 수 있다. 말하자면 말소리를 포함하는 모든 소리가 담기는 구멍이요, 소리꼴 담는 통이라고나 할까. 이 소리의 통, 소리의 구멍을 롱하여 인간의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이 사람에게서 사람에게 오고갈 수 있게 된다. 귀의 본바탕이 '구멍'이란 점과 '귀'의 형태 자체와는 어떤 상관이 없올까. 필자는 러'가 구멍을 뜻하는 '쟈'에서 나은 말이라고 본다. 즉 '굿+-이>구시>구미>구이>귀'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형태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굿'은 오늘날에는 무당이 행하는 일체의 연희과정을 말하지만, 원래는 굴, 곧 움푹 들어간 구멍을 뜻하는 말이었다. 지금도 방언에 따라서는 말이나 소의 먹이를 담아 주는 움푹 들어간 통을 '구시'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알 것이다. 표준어로 '구유'인 이 '구시'와 관련한 방언의 분포를 찾아 보면, '구수(층청. 전라), 구숭(강원 통천. 장전. 고성), 구시 (경상. 충청.전라. 제주. 함경), 구시통(전남 담양. 진도. 영암. 강진. 여수), 구유(전북 부안), 구이 (경남 울주), 귀 (경기 옹진/황해 은율 안악), 귀숭(강원 간성. 평창), 귀영 (황해 금천 재령. 서홍), 귀융(경기 장단/황해 해주/강원 간성. 양양. 횡성. 영월. 평창. 원주 춘천. 홍천. 인제), 귀이 (경북 경주. 영천. 포항. 홍해. 영덕), 쇠구시 (경남 납해), 밥구시 (전남 장성)' 등과 같다. '구유'의 방언으로서 음운론적인 시옷(ㅅ)의 변화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되는 형태로는 '구시/구이/귀'를 꼽을 수 있다. 물론 '구시>구이'의 과정에서 더 순탄한 진행을 보여 주려면, 반치음(△)단계의 '구시'가 있어야 하는데, 방언의 분포로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중세어 자료를 보면 그럴 가능성이 전척 없는 것도 아니다. (초간본박통사), 상 21을 보면, 일체의 우묵한 통을 중세어로는 '구△ㅣ[措子]'라 했음을 알 수 있으니, 방언 자료를 함께 고려한다면 '구시>구쇠>구이>귀'의 과정을 모두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앞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굿'은 자음교체를 통해 '굿/굳/굴'의 단어족을 이루는, 요컨대 '굴'을 가리키는 말이다. 굴은 굴이지만 특별히 작은 모양의 굴을 구시, 구이, 귀라고 썼던 것으로 보인다. 모음의 소릿값으로 보아 귀'는 복모음으로서 중세에는 '구이'라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구시>구△ㅣ>구이>귀'로 그 변천과정을 상정함에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귀'의 낱말겨레로는, '귀, 귀 개, 귀 거 칠다(듣기에 노떱다), 귀걸이, 귀걸이 안경, 귀고리, 귀구양('귓구멍'의 함경도 방언), 귀긋기 (단청에서 처마 등에 색칠을 하는 일), 귀긋기 뱃바닥[첨차(柰嬌). 장여 등의 뱃바닥에 귀긋기를 하는 일], 귀기둥(건물 모퉁이에 세운 기둥), 귀까리 ('귀때 기 '의 방언), 귀꽃(돌탑 등의 귀마루 끝에 새긴 플꿎의 장식), 귀꿈스럽다(보기에 아주 궁벽하여 혼하지 않다), 귀나다(한쪽으로 기울다), 귀돌(석축의 모퉁이에 놓는 돌), 귀동냥(남의 말을 귀로 얻어 들음), 귀먹당수(귀 머거 리), 귀밝이 (귀밝이술), 귀뿌리, 귓바퀴' 등이 있다. 칸트는 '가장 숭고한 명령이 양심의 소리'라고 하였는바, 저절로 들리는 게 소리지만 그것도 올바르게 듣고자 하는 의식이 있을 때 비로소 옳게 들리는 법이다. 하물며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상상의 소리를 물어 무엇하리. 귀가 있어 인간이 언어적 존재로서 바로 설 수 있으니 이는 진정한 축복이며 삶의 가능성을 크게 더해 준 능력의 징표라 할 것이다. 들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들음으로써, 우리의 언어적 상상력은 더욱 그윽한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배달의 나라는 대단히 '싹수'가 있는 영지가 될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의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리는 곳, 바로 그런 공간을 우리 모두가 세워 나가야 한다. 2-9. 미래와 용 신앙 문예사조를 살펴 보면 20세기초에 미래파(未來派)가 나온다.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새로운 예술운동으로 과거의 전통과 정적 (靜的)인 예술에 대한 반동으로서 새로운 예술의 창촐을 지향한 문학운동이었다. 아직 다다르지 않은 시간을 '미래'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은 뒤의 세상을 이르기도 한다. 미래(未來)'는 한자어인데 이와는 좀 다르지만 미래 개념을 지닌 순우리말로 '니리'라는 부사가있다. '어떤 일이 생겨나기 전에'란 뜻을 가진다. 인간은 현재로만 만족하지 않고, 더 좋은 미래의 시 간과 공간을 그리며 산다. 그것은 개인이나 집단이나 마찬가지이다. 마음 속에 그리는 바람이나 이상을 꿈이라고도 하는바, 다분히 심리적 존재인 우리 인간에게 앞날에 대한 의식이 없는 상황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꿈' 이란 말도, 없는 것을 다른 데서 빌리는 동작 '꾸다'에서 파생되어 나온 이름써이니, 꿈은 시간적으로 미래와의 관계 속에서 그 갓을 드러낸다. 누구나 보다 오래, 그리고 잘 살기를 바란다. 그 누가 이 세상에서 일꺽 죽기를 바라겠는가. 대담은 분명하다. 신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오랫동안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의 정신문화와 물질문명을 이루어 내기에 이른다. 그 대표적인 정신문화 중의 하나가 바로 '종교' 라고 할 것이다. 어떤 종교, 어떤 신앙에든 미래의 병원한 공간이나 시간이 설정된다. 무속신 앙에도 죽은 뒤의 세상 이야기가 있다. 자연의 순환이란 큰 흐름 속에서는 죽음이란 자연의 질서에 따르는 것이니, 우리 사람들만 영원한 삶의 시간과 공간을 그리떠 괴로워하고 맴돌 아무런 이유가 없다. 사후의 세계란 특정한 종교의 교리를 굳게 믿는 이들에게는 진리가 되겠지만,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오직 분명한 것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가장 확실한 공간, 여기 우리의 조상들이 살다 갔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있다는 사실뿐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있음과 없음이 본시 하나이며, 죽음과 삶도 같은 뿌리에서 돋아나온 존재의 양상(樣相)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고양이를 놓고 어떤 이는 귀엽다고 하고, 어떤 이는 무섭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까. 그러나 어쨌든 사람들은 미래로 연결되어 있는 무의식의 끈을 놓아 버릴 수가 없다. 우리말의 부사 '미리'는 미래의 예 언자이자 물을 다스리는 '미르[龍]' 곧 용신앙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용신앙[사신 (蛇神) 신앙]은 호랑이 신앙에 못지 않게 아주 폭넓은 분포를 보인다. 흔히 농경문화권에서는 비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만큼 물을 다스리는 용신이야말로 증년과 흥년을 좌우하는 두려운 존재라고 믿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용(龍)'은 만주어로는 '륑'으로, 영흔(신)의 뜻으로 쓰였다. 고유어로는 '미르(밀/미르기)'였으니 우리 조상들은 물과의 깊은 연관을 인정하였던 것이다. 장덕순의 <한국 설화문학 연구>, (1971)에 따르면, 용은 종교에 따라서 수호신으로 그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교세를 지키는 수교자(守敎者)로, 유교에서는 호국룡(護國龍)으로 나타난다. 절의 모양도 잘 보면 용의 머리가 있고, 지붕의 기와는 용린갑(證辣甲 ; 용의 비늘 모양으로 비늘을 달아 만든 갑옷)의 형상이며, 네 기둥은 용의 다리를 본뜬 것으로 판단된다. 용은 그것이 지니는 초자연적인 힘 때문에 제사장의 권위를 뜻하는 동시에 마침내 왕권을 상징하기에 이르렀으니, '용상(임금이 정무를 볼 때에 앉는 평상)용안. 용루(龍淚, 임금의 눈물). 용발(龍髮 ; 임금의 머 리털)' 등이 그 좋은 보기라고 하겠다. 짐작하건대, 용신 (물의 신)은 농경사회에서 쇠대한 신이니 태 양신 (불의 신)과 더불어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고 보인다. 신라의 문무대왕이 죽은 뒤 바다에 묻혀 호국룡이 되겠다고 한 것이나, 조선조 태종이 백룡과의 관계를 드러낸 것 둥은 뚱은 참고자료라고 볼 수 있다. 용은 지존자(至尊者), 믈의 지배자, 예언자, 인간적인 성품을 지닌 존재로 파악된다. 용파 관련된 지명도 많다. 지 명에서는 '용미르.미리.미르기' 둥의 변이형으로 표현되는데, 용은 한자어이고 나머지는 고유어계의 말이다. 예컨대 '미르기재[龍阮]'라는 지명이 널리 분포하는데, 이로써 본다면 석가모니 다음으로 중생을 건질 원대한 꿈을 가진 '미륵보살' 속은 '미륵'도 용과 관련이 있는 말로 보인다. '미륵'은 향찰식으로 읽으면 '일' 이요, 중국어 발음으로는 비르'이다. (훈몽자회),의 '미르 龍'의 '미르'와 우연스럽게도 일치한다. 미르, 용의 주기능은 물을 다스리는 일이고, 물을 다스리는 일은 짬날의 일에 대한 예언과 관련이 있다. 물은 삶의 원천인 만큼 물을 다스림은 곧 모든 생물의 살고 죽음을 다스리는 일이기 패문이다. 물은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모든 목숨을 좌우하는 요소인 탓에 물이 없는 곳에서는 삶이 그 의미를 잃고 만다. 물이 너무 많아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용을 섬기는 지역, 용을 섬기는 시대의 사람들에게 있어 용은 예언자이며 지존의 통치자이자 삶의 희망이뎌 아울러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먹는 양식으로서의 '말 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마시는 물을 용, 즉 밀이 다스린다면 그로인한 '밀' 은 직접적인 양식으로서 상여 삶에 활력을 주니 말이다. 오늘날 서양을 비롯한 빵을 주식으로 하는 지역의 사람들이 길러 먹는 밀도 우리나라 남부에서 채취한 '앉은뱅이 말'을 개량한 것이라 하니, 참으로 미르가 모든 사람에게 희 망이요, 앞날의 식생활을 보장하는 복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민족에게나 용 신앙을 찾기란 쉽겠지만, 특히 우리 배달겨레의 말에서는 용(밀)의 예언자로서의 기능이 고착되어 '미리'와같은 부사어가 상이니, 돋보이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낱말의 겨레라는 관점에서 보아 '미르(밀)-' 계에 드는 말로는 '미루다(이미 안 것으로 다른 것을 비추어 보다), 미루적거리다, 미룩미룩, 미륵도(경남 통영), 미륵봉(금강산), 미륵산(울릉도), 미륵치 (굉남 맹산), 미르기재 (강원 횡성), 미리' 등을 들 수 있다. 밤 하늘의 아름다운 미리내(은하수)를 보고 누가 용(밀)을 연상 할까마는, 미리내는 용 신앙과 깊은 상관 속에서 쓰이는 표현으로 보인다. 은하수의 위치를 보아 수확의 때를 알아차렸던 것도 결국은 물을 다스리는 용에 대한 신앙의 잠재된 의식과 관련이 있다고 하여 무리는 없을 것이다. 앞날의 일에 대하썩 미리 가치 있는 일을 예비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지만, 그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더욱 소중한 것이 아닐는지. 2-10. 만남과 헤어짐 서로 만나서 바로 헤어질 때, '만나자 이별'이라고 한다. 상대방과 마주보게 되거나 재앙 또는 앙화를 입을 경우, 또는 어떤 때를 당하거나, 인연으로 말미암아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을 일러 '만난다'고 한다. 작은 시내들이 만나 큰 내를 이루고, 다시 가람이나 바다를 지어 내듯이, 사람들은 서로 만나 관계를 맺으며 모듬살이를 이어 나아간다. 불가에서는 만남과 헤어짐을 하나의 말미암음으로 이해하여 살아감의 주요한 계기로 풀이하기도 한다. 이러한 만남과 헤어짐의 섭리 속에서 세상 만물이 나고 사라진다. 사람들의 삶도 그 예외는 아니다. 잊을 수 없는 친구간의 아름다운 우정도 서로의 만남에서 그 실마리가 생겨나뎌 애끓는 남녀간의 사랑도 그러하다. 부모와 자식, 임금과 신하도 서로가 만나 교통함으로써 관계가 이루어지 니, 신과 인간의 만남이다고 어찌 다를 수있으랴. '만나다'라는 말의 짜임으로 보아 '맞다十나다>맞나다>맏나다>만나다'로 그 형성과정을 풀이할 수 있다. 현대 국어에서는 '만나다'가 표준'어이지만, 원래는 '맞다'가 합성되어 이루어진 복합어이다. 오는 사람을 맞아들이는 일을 '맞이'라고 하고, 오는 사람을 기다려 받아들이거나 불러서 오게 하는 동작을 '맞다'라고 한다. 그러니까 '만나다'는 사람을 오게 해서, 또는 사람을 맞아들이기 위하여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뜻으로 새길 수 있다. 말의 쓰임을 보아, '맞다'는 대체로 행위의 대상이 높임의 대상일 때 쓰인다(맛조이 ; (신어, 5-l8). 오늘날에도 '해맞이. 달맞이. 손님맞이. 봄맞이' 라고도 흔히 쓰지만, '원수맞이. 재 앙맞이. 거지맞이' 라고는 잘 쓰지 많는다. 쓰더라도 자연스럽지 않다: '맞-'은 '맛/맏/맡/말(머리)'과 같은 단어족으로 으뜸가는 지도자, 앞 또는 위를 말한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마한(馬轉)'도 '말한'이라고 읽어, 제일 큰 한족의 나라라고 새겨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혈거생활과 연관지어 보면 재미있을 듯싶다. (후한서), 나 더삼국지),와 같은 중국의 문헌자료에서처럼 굴이 수직으로 무덤같이 생겼올 경우엔, 굴에서 나와 누굴 만나려면 우선 머리 위쪽, 곧 머리맡으로 나와야 한다. 수굉의 경우도 그러하다. 안으로부터 굴의 입구(맡)로 나와야 한다. 어느 쪽이든지 맞이하기 위하여 집에서 나옴은 배달겨레가 지닌 인간관계의 적극성을 뜻함이요, 인간존중의 소산이라고 하겠다. 때에 따라서 만남은 하나의 약속, 곧 계약일 수 있다. 우리가 쓰는 말을 통하여 우리는 직간접으로 온갖 모양의 계기를 마련한다. 말은 특정한 겨레의 정신이 담기는 그릇이요, 우리 겨레를 동여매는 질기고 단단한 끈이기도 하다. 말은 만남의 바탕스런 약속으로, 우리는 서로 언어공동체를 이루고 더불어 살고 있다. 말은 징검다리이기도 하다. 아무리 특별히 화려한 삶을 누린 세대라 할지라도 곧 사라져 가지만, 다음 세대들에게 그들이 살던 동안의 경험과 슬기만큼은 문자언어인 글로 옮겨 주고 간다. 뒤로 갈수록 지식과 경험의 고원은 넓어지고 더욱 높아질밖에. 사람들의 만남에 대한 욕구는 다양하다. 살아서 정들었던 이들은 죽은 뒤에도 신앙의 힘을 빌려서, 아니면 자연현상의 윤회를 따라 만날 것을 기대하며 살아 간다. 기다림은 아름답다. 작가가 온 마음을 쏟아부은 문학작품이라면 그 글에 글을 쓴 사람이 지닌 영혼의 목소리가 담기기 마련이다. 종교의 경우 십중팔구 죽음과 관련하여 사후에 펼쳐질 만남의 공간과 시간이 설정된다. 같은 신앙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만나서 신과 더블어 살기를 바락는 것이지만, 만남이 있는 곳에 반드시 헤어짐이 있으니 그것이 곧 신의 섭리요 보이지 않는 만남의 철리인 듯하다. 만남이 서로간의 관계로 플이되거니와 형태에 따라서 단일어나 복합어로 싱이는 일이 있음은 널리 아는 일이다. 보기를 들면, '맞닥뜨리다, 맞당기다, 맞담배질, 맞두레 (물을 푸는 두레의 히나), 맞모금, 맞미닫이, 맞바느질 (바늘 두 개를 양쪽에서 한 구멍에 마주 넣어서 꿰매는 바느질), 맞바람, 맞부꽤 (광산에서 하는 두 사람의 동업), 맞이, 맞자라다(서로 같이 자라다)' 등으로 '맞-'계가 중심을 이룬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규정되거니와 흔자서는 살 수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길지 않은 한평생을 살면서 여러 모양의 사람과 일을 만나게 된다. 아름답고 소박한 만남을 위하여 서로가 맞이하는 마음가짐과 의지 (힘)를 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움을 꽃피우고 참된 만남의 기쁨을 얻기 위하여 이 땅에 밭을 일구고 믿음을 심어야 한다. 혹여 만났다가 안타까운 헤어짐을 간직한 채, 서로 그리면서도 만나지 못하며 가슴닳이를 하게 되더라도. 아마도 우리의 육신과 영혼 속에는 삶과 죽음이 함께 일어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변하지 않는 만남을 찾아 긴 나그네의 길을 걷는다 그 길은 또 길로 이어질텐데.......
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2. 땅과 존재 2-5, 기원과 별 신앙 한번 잘못을 저질떴을지라도 자신이 지은 죄를 알고 발면 아무리 모진 마음을 가진 사람도 용서하게 된다. 이를 두고 속담에 비는데 는 무쇠도 녹는다고 한다. 자신의 소원대로 되기를 바라며 기도하거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바라는 것을 우리는 '빌다'는 말로 드러낸다. 비는 동작은 요컨대 비는 사람이 았어야 하고 비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문화가 분화되지 않았던 시대에는 비는 사람이 제사장으로서 정치와 종교를함께 관장했고, 온 부족의 안녕과 질서, 풍성한 생산을 기도드렸던 것이다. 고대 한국사에서는 단군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맡았는데, 단군이 비는 대상으로 삼은 것은 무엇알까 ? 태양신으로서의 니마(>님>임)' 와 태음신으로서의 '고마(> 곰~금)'에게 빌었으니, 북방의 별로 상징되는 물과 땅을 다스리는 단군의 어머니 신이었던 '고마'에 대한 믿음이 오늘날까지 별 신앙의 뿌리 갗은 흐름을 이루어 준 것으로 필자는 보고 있다. 태양신과 태음신의 상징적인 본래의 관념은 불과 물이었다. 사람의 삶에 가장 중요한 자연물로 인식하였던 결과 마침내 그것에 신성(神性)을 부여하게 되었고, 이를 숭배함으로써 끊임없이 자연과의 친화와 합일 (合一)을 꾀하였던 것으로 보는 것이다. 중세어 자료를 보면 별을 뜻하는 진(辰) 자를 두고 '미르 辰(광주본 (천자문,,), 별 辰(신미본)천자문),' 으로 플이하고 있다. '미르'는 '용(미르 龍: 신미본 <천자본>), 또는 '물'을 뜻하였으니 물과 별은 어떤 언어적인 관계가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오늘날의 지방 사투리를 보면 별을 빌 (강원 층남. 층북. 전남. 전북 경남)'이라고 하고 있다. 비는 동작을 '빌다' 로 한 것은 농경사회에서 물신[水神]에게 기도했던 정황을 설명해 준다. 여기 물신은 고마신 (단군의 어머니 신)이며 북방의 북두칠성의 별신을 뜻한다. 그럼 '빌다' 는 어떻게 '별~빌'과 관계가 있는가. 동작이나 상태를 뜻하는 동사나 형용사가 만들어지는 언어적인 특징을 보면, 명사에 접미사 '-다'가 달라붙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빌다'의 경우도 그러한 보기로 플이하면 될 것이다. 결국 별의 방언형태인 빌'에 접미사 '-다'가 붙어 만들어진 셈이다. 이러한 짜임으로 볼 수 있는 말들의 떼는 상당히 넓은 분포를 보인다. 별을 향하여 비는 사람을 제사장인 단군, 무당이라고 하였는바, 지금도 전라도 방언에서는 무당을 '단골' 혹은 '단골레'라고 한다. 중세어 자료를 보면 별 또는 빌과 같은 두 가지 형태가 이미 쓰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석보상절) 9-33 에는 '별'이, 같은 자료 6-53 에는 '빌다'가 나오고, (신증유함), 상 2에는 별자리신(辰)' 이, (월 인석보), 7-31 에는 '빌먹다'가 나온다. 현대 어에서도 별과 관계된 말의 떼를 찾아 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별, 별나라, 별 빛, 빌붙다(남에게 아첨하다), 벼르다(별 +으+-다>벼르다), 벼름벼름' 등을 쉽게 열거할 수 있다. 흔히 하늘의 별자리 중 큰곰자리우 별 가운데에서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 국자 모양으로 늘어선 일곱 개의 별을 북두칠성이라고 한다. 북두. 북두성. 칠성 (七星)이라고도 하며, 불교에서는 칠원성군(七元星君)이라 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북두칠성이 곧 고마별(곰별)로 아주 위대한 별로 보고 빌었으니 지금도 칠성신앙은 도처에 화석처럼 그 형태가 남아 있다. 사람이 죽어 무덤으로 갈 때 등 뒤에 별이 홉어진 모양을 본떠 일곱 개의 구멍을 뚫은 널빤지를 깔고 그것을 칠성판이라고 하는 예가 그러하며, 오늘날까지 쓰이는 칠성바위, 칠성시장 등과 같은 땅이름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불가에서는 일곱 별에 모두 임금에 해 당하는 군호(룸號)를 붙여, 탐랑(貪淡)성군.거문성군.녹존(祿存)성군.문곡(文曲)성군. 염정 (廉貞)성군.무곡(武曲)성군.파군(破軍)성군이라 하여 일곱 별신으로 모셨던 것이다. 저 아름다운 금강산의 최고봉인 비로봉의 경우를 보자. 한자로 표기는 하지만 우리말의 '빌(별)'을 비슷한 한자의 소리로 적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곧 높고 제단이 있는 것을 상징한 것으로 보이니, 묘향산의 비로봉이나 속리산의 비로봉이나 치악산의 비로봉이나 소백산, 지리산의 비로봉이 모두 별과 관계가 있는 것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불가에서 연화장세계에 살며 그 몸은 법계(法界)에 두루 차서 큰 광명을 주는 부처를 비로자나불이라고 한다. 비로자나는 범어로 바이로자나였는데 한자로 옮겨 적는 과정에서 비로자나가 된 것으로 본디는 광명을 뜻하는 말이었다, 천태종에서는 법신불(法身佛), 화엄종에서는 보신불(報身佛), 밀교(料敎)에서는 대 일여래 (大日如來)라고도 부른다. 별의 속성 가운데에서 가장 중시했던 것은 밤 하늘에 빛나는 불, 곧 광명으로서의 특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광명의 뿌리는 태양으로서, 이를테면 별은 해의 변형이며 어두운 정신과 삶의 누리에 비치는 빛이었다. 마치 우리의 육신을 밝히는 것이 얼굴의 눈이듯이 별은 밤에 맞나는 저 멀리의 촛불이요, 영흔의 등대라 할 것이다. 별처럼 수많고 아름다운 나라에의 그리움으로 우리가 살아 간다면, 인간 의식의 언덕에는 늘 푸른 하늘에의 꿈이 자랄 수 있을 것이다. 2-6. 임과 해 한 가지 일뿐 아니고 그 이상의 좋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날 때, 일석이조 (一石二,옳) 라고도 하지만 속담으로는 '임도 보고 뽕도 딴다'고 한다. 앞서 살다 간 선인들의 문학작품이나 오늘을 사는 우리의 언어생활의 밑바닥에는 개인 또는 집단이 그리는 이상적인 인간상이랄까 신의 모습으로서의 임에 대한 지향성이 두드러진다. 만해 한용운이 <님의 침 묵>에서도 노래하였듯이 우리는 생애를 살면서 가장 아름다운 임, 바로 이데아의 임을 찾아 평생을 헤매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임이 다스리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펴 보이고자 하여 끝없이 인간의 상상력이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바로 그 임의 목소리는 영원한 시간으로 메아리치며, 임의 눈빚은 온 우주에 가득하여 더함도 덜함도 었다. 인간은 그런 믿음을 갖고 이제까지 살아 왔고, 뒤에 을 날들도 그떻게 살 것이다. 필자가 보기로는 그런 임의 세상은 바로 이 땅이며 과거와 미래가 함께 숨쉬는 바로 이 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과 죽음을 함께하게 하는 임은 불행히도 행복도 아닌 공평무사한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상대방을 높여 부를 때, 접미사 '-님'을 붙여 공대어로 쓴다. 스승님, 할아버님, 임금님이라 할 때의 '-님'이 그런 경우이다. 참으로 인간존중의 셍각을 생활화하는 좋은 언어관습으로 보인다. 임은 넘 '에서 구개음화된 소리가 말머리에서 떨어져 생겨난 것이고, 더 오래된 전단계의 형태는 '니마'였다. 지금도 얼굴의 한 부분으로 눈썹 위에서 머리털이 난 부위의 사이를 이마라고 하는바, 니 마' 라는 말이 그 뜻이 바뀌어 신체부위의 명칭으로 화석이 되어 남은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종의 의미전성이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해서 본래의 뜻파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니마 혹은 님이 태양을 뜻하는 불의 신이며 방위로는 남쪽(앞)이니 신체부위 중 높으면서 앞쪽이 됨은 본래의 의미에서 갈려나온 것으로 짐작된다. 니마와 고마는 더불어 하나의 짝을 이루는 하늘신과 땅신의 상징이었으나, 고마에 대한 자료는 상당한 분포를 보이지만 니마에 대한 것은 드문 편이다. 니마의 상징성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신으로는 땅과 물의 신, 계절로는 여름, 동꿀로는 주작, 빛깔로는 붉은색, 성으로는 남성, 소리로는 헛소리가 된다. 또한 계층으로는 군왕(君王)에 해당하는 상징성을 보인다. 신체의 한 부위의 명칭인 '이마'라는 말에 니마의 형태가 남아 있다고 하였는데, 우리쪽 자묘와 더불어 일본어의 형태가 큰 암시를 주고 있다. 이마를 일본어로 히타이라고 한다. 여기서 히는 해를, 타이는 흙을 둥글게 쌓아 제사를 위한 장소를 뜻하는 말로서 제단의 모양과 같이 높고 툭 뒤어 나온 몸의 일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한다. 많은 분포는 아니지만, (삼국사기), 지명자료를 보면 '니마'의 너 '와 '日/熱/尼(魯)'의 관련 가능성을 찾아 볼 수 있다. 일본어의 자료에서도 너' 가 주로 '赤.熟.紅.日'의 뜻으로 대응이 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능성을 받아들인다면 '니마'는 태양신으로, '니 +-마(존칭의 전미사)>니마'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말로 풀어 볼 수도 있다. 이에 상응하는 '고마'는 물과 땅의 신으로서 생산을 맡는다. 니마는 단군의 아버지 신격이고, 고마는 단군의 어머니 신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단군왕검에서 우리는 임금이란 말의 원형을 볼 수 있는데, 임금은 니마와 고마신의 변이형으로 보이며 제사를 모시던 대상신의 뜻은 없어지고 오히려 신을 제사하던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즉 '님금(태양신과 태음신-불의 신과 물의 신)-님금 (>임금, 태양신과 태음신을 제사하는 사람)'으로 간추릴 수 있다. 제사장으로서의 '단군' 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오늘날 전라도 지방의 방언에서 무당을 뜻하는 '당골. 단골레'로 삽이고, 혼히 '단골짐' 이라고 할 때의 단골을 뜻하게 되었다. 임금의 복장을 보면 붉은색에 용 무늬를 놓은 곤룡포를 입는다. 붉은색은 태양신, 용은 태음신 (물의 신)을 슬배하는 상징성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니 왕의 원형은 태양신과 태음신을 제사하는 제사장이었다고 하겠다. 군왕의 권력은 절대적인 것 으로서, 그 권력은 신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믿어 왔다. 이집트의 경우 왕을 파라오라고 하는데, 이는 '큰 집' 곧 신전(神穀)이란 뜻이었다. 이 파라오가 태양신인 '라 Ra'의 아들이며 제사장을 가리키게 되었음을 상기하면, 고대국가의 왕의 위치는 신을 모시는 일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여 지나치지 많을 것으로 보인다. <훈몽자회>,에서 '님 쥬(主)' 로 풀이하는 임금을 뜻하는 말 '主(주)'도 등불을 뜻하는 글자 화산불 곧 태양을 상징하는 '王'이 합하여 이루어진 것 이니, 임금은 태양숭배의 책 임자였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현재 누가 '임'에 대한 역사적인 뜻을 생각하면서 그 낱말을 쓸까마는, 임은 따지고 보면 태양신 곧 광명의 신으로 숭앙되었으며, 절대적인 위치에 있었던 것 이다. 앞에서 풀이한 별 신앙도 결국은 태양숭배의 밝음 지향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미루어 보건대 상대방을 '-님'이라고 부르는 우리의 관습은 태양신과 같은 존재로 본다는 의식이 그 밑바닥에 있으니 참으로 소중한 인본주의의 드러냄이 아닐 수 없다. '니마'는 태양신을 뜻하는 말에서 제사하는 군왕으로 다시 상대방을 높이는 접미사로 쓰였으니, 말 그대로 언어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셈이라고나 할까. 태양처럼 빛나는 밝음에의 지향을 갖고 사는 배달겨레는 예부터 어두움, 사악하고 블의에 찬 것을 매우 싫어하였다. 가장 종교적인 개념에서 비롯한 임의 뜻과 정서가 이제 인간적인 개념으도 쓰이고 있다. 하늘과 땅에 사는 사람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전제가 없고서는 참다운 임의 세계는 저만치 있을밖에. 서로는 임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이상적인 삶에 그 빛을 더하면서 하늘의 큰 복을 기다려야겠다.
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2. 땅과 존재 2-2. 고마움과 태음신(太陰神) 흔히 우리들은 고마움에 대한 표현으로 '감사합니다' 또는 '고맙습니다/고맙다'는 말을 한다. 앞의 것은 한자어 계통의 말이고 뒤의 표현들은 고유어 계통의 말이다. '2-3. 믿음과 대지'에서도 다시 제기되겠지만, 이 중 고마움과, 신과 인간을 섬기는 문제에 대하여 살펴 보기로 한다. '고맙다'는 그 됨됨이를 풀어 보면, '고마+-ㅂ다' 와 같다. 이때 '고마 는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나오는 말로, 두 음절로 쓰이면, '고마'요, 한 음절로 줄어 쓰이면 '곰'이되는 것이다. 소박하게 '곰/고마'를 짐승인 곰으로만 보면 그저 그뿐이겠으나, 신화학의 통설을 따라 가지 않더라도 상징적인 표상임을 간과할 수 없다. 한마디로 '고마'는 물과 땅과 여성 등으로 일컬어지는 태음신 (太陰神)으로, 니마/님(>임)'으로 표상되는 태양신 (太陽神) 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쓰였다고 하겠다(필자의 책 <낱말의 형태와 의미>, 1988) 중근세어의 자료로 미루어 보아 '고마'는 '신(神). 크다. 많다. 곰. 뒤. 구멍 소리 및깔. 물. 첩. 깃발 거북' 과 같은 복합적인 뜻을 드러낸다. 신이라면 태음신이요, 방위로는 뒤 곧 북방이 된다. 빛깔로는 검은색, 별로는 북두칠성, 계절로는 겨울, 소리로는 후음(목구멍 소리), 깃발로는 후군(後軍)으로 상징된다. 성으로는 여성이 되어 생산과 주거와 물과 소리의 통제자 역할을 담당한다. 중세어 자료에서 '고마'는 첩의 의미로 쓰인 경우도 나타나는데 이는 신앙의 대상에서 아끼고 그리워하는 여인으로 위상이 전락해 버린 경우라고 할 것이다 현대어로 오면서 어두자음이 된소리되기를 따라 귀엽고 어린 아이를 애칭으로 '꼬마'라 함도 고마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앞에서 '고마'는 우리 조상들이 숭배하던 신이었음을 지적하였다. 쓰이는 형태에 따라서 I 음절어, 2음절어의 형태가 지명자료라든가 고문헌에서 검증된다. 1 음절어의 형태로는 '곰/감/금' 과 같은 것이 있으며, 2 음절어의 형태로는 '고마/구마/개마/가마' 등의 형태가 있다. 일본어에서 신 (神)을 뜻하는 말인 '가미' 도 우리말 '곰/감'의 변이형으로 보인다. 주로 한자로 표기되었던 지명을 중심으로 보면, I음절 형태에는 '.龜. 黑. 漆. 釜'와 같은 뜻을 중심으로 나타내는 훈차(訓舊) 계열의 한자가 쓰였으며, 2 음절형태로는 '金馬. 甘勿. 舊廊. 古莫 加莫 久麻 蓋馬 乾馬' 등의 한자표기들이 확인된다. '고마' 계열의 지명은 거의가 물의 북쪽이나 뒷편에 있는 장소에 붙여진 이름들이다. '곰' 또는 '감'의 변이형들이 관련되어 쓰인 낱말들로는 '고마(고맙다.고마하다), 검 (검다 거미 검어리), 감[감감하다(>깜깜하다). 가물가물. 가물], 금(그믐. 금적이다), 굼(굼다. 굼벙이 구멍. 굼틀대다)' 등이 있다. 이 중 '고마. 검' 계열의 단어들이 가장폭넓은 분포를 보인다. '고마' 는 태음신을, 니마' 는 태양신을 드러내면서 대립개념으로 쓰인다고 하였다. '니마'는 말 그대로 '고마'에 대립적인 표상으로서 태양. 앞. 붉은색. 불. 남성. 여름. 헛소리. 군왕. 남칠성. 낮. 벌판'의 뜻으로 쓰인다. 필자는 단군왕검이 바로 '고마/니마'와 연관됨을 지적한 일이 있다. '단군'은 비는 제사장이고, '왕검'은 '님금'으로서 님 (니마 ;태양신)十금 (고마 ;태음신)'으로 풀이 된다. 결국은 태양신 '니마(님>임)'와 태음신 '고마(>곰)'에 제사지냈던 부족 대표자가 단군왕검이라고 보는 것이다. 단군왕검에서 단군은 후대에 내려 오면서 아예 쓰이지 않게 되고 빌고 숭배하는 대상으로서의 '니마'와 '고마'가 제사장 곧 통치자를 상징하는 말인 님금(>임금)'이 되어 버렸다. 단군은 본래 '단골' 이라고 읽었으니 지금은 '단골집. 단골서리' 등의 말에서나 화석처럼 그 모습이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방언, 특히 전라도 지역어에서 무당을 지금도 당골 흑은 당골레라고 쓰고 있음을 생각해 볼때, '단군'이란 말 속에 담긴 제사를 모시는 제사장이라는 뜻이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 하겠다. 말이란 쓰이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갑자기 블쑥 나타났다가 훌연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오랫동안 쓰이거나 어떤 지역에서만 쓰이는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좋은 보기라고 할 것이다. 비는 사람을 제사장 '단골(당골/당골레)'이라고 하였는데, 이때 '빌다' 는 칠성신앙이 비는 동작으로 투영된 것이라고 본다. 말의 됨됨이를 보면 빌 十-다>빌다'로 플이할 수 있다. 여기서 '빌'은 광명의 실체로서의 별'을 뜻하는 말이다. 빌'을 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근거를 살펴 보자. 방언자료에서 강원도(고성. 통천. 장전), 경북(봉화. 문경. 예천. 상주. 의성. 포항 염천 `. 김천.금릉. 달성), 경남(창녕) 등의 지 역에서는 별을 빌로 읽고 쓰는 일이 많이 있다. 이와 함께 (삼국사기), 권 34에 보면 그런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빌다'가 별에서 비롯되었다는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고마'는 북두칠성으로 니마(>이마>임)' 는 남칠성으로서 별 (광명)로 대표되는 신을 믿었던 신앙이 우리말에 끈질기게 반영되어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 하나같이 광명정신 곧 태양숭배로 이어지는 맥을 짚을 수 있음은 우연의 일이 이니다. 모든 빛은 태양에서 말미암으니까. '믿음'은 대지를 밑으로 하는 동작을 드러내는 '믿다'에서 갈라져 나온 말이다. 배달겨레의 전통적인 믿음의 대상은 태양신 '님'과 태음신 '고마'였으니 하늘과 땅으로 이어지는 자연에 대한 신앙이요, 친화사상이 잘 나타나고 있다. 필자는 목숨은 본디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 나무의 뿌리에서 서로 가지가 다르게 벋듯이 나는 사람, 그대는 짐승 혹은 플과 꿎으로서 삶의 한 주기를 살다가 가는 것이다. 보잘것없다고 여겨지는 플벌레 한 마리도 반드시 사람을 위하여 태 어났다가 죽어가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같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같은 목숨을 타고 나서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 갈 뿐, 다른 설명이 더 필요하지 않다. 환경에 적응하면 살아남고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요, 자연스러운 질서인 것이다. 구태여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만이 절대자의 가호를 받을 이유는 하나도 없다. 같은 공간에서 삶을 함께하는 이상 서로는 존중하고 감사하면서 고마운 마음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밑바닥으로 10킬로미터를 못 가서,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뜨거운 불덩어리가 그 무엇을 위하여이글거리며 타고 있지 않은가. 삶과 죽음의 연속선을 우리의 관념으로써 아주 정확하게 한계를 긋기란 매우 힘드는 노릇이다. 현대과학에서 생명의 기원을 이른바 수층기원 (水層起源)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말 그대로 무기물에서 유기물이 나왔다는 것이다. 어쩌면 생명은 물과 땅의 신인 '고마'가 태양신 '니마'와 더불어 함께 만들어 낸 최대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존재론적으로 생명에 대하여 끊임없이 정의하고 속성을 규정하지만, 분명 지구가 하나인 것처럼 생명은 하나다. 죽음과 삶도 생명의 말미암음을 보면 서로 둘이 아니요 하나이다. 바로 이러한 생각들은 단군의 아버지 환웅(舊雄)이 하늘에서 환인(琢因)으로부터 받았다는 천부인(天符印)에 실린 뜻이요, 최치원 선생에 의하여 81자로 적혀 그 내용이 전해지고 있는 (천부경 (天符經) 에 담긴 뜻이다. 거기에서도 '모든 것은 가고 또 온다(萬往萬來)' 고 하였거니와 시작과 끝은 서로를 향한 조화로움을 잃지 않으면서 하늘의 섭리를 실상으로 이루어 내곤 한다. 절대자와 대자연에 대한 고마움으로 우리의 삶이 충만하도록 힘써 간다면 바로 그러한 시간과 공간은 하늘의 시간이요 공간이며, 하늘의 백성이 되는 첩경이 되지 않겠는가. 목숨이 하나일진대 그에 수반하는 모든 것은 단지 부속 가치일 뿐. 예부터 성현들이 겉옷을 달라거든 속옷까지 주라고 한 것이나, 모든 존재를 허무로부터 설명한 것이나, 그 기본 정신은 평등과 화합으로 이 땅에 천국을 실현하는 것이다. 단군왕검의 홍익인간이 곧 평화주의요, 인본주의라는 점도 그 후예로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배 달겨레에게는 암시하는 바가 크지 많을까. 2-3. 믿음과 대지 분명히 잘 되어 가려니 하고 믿고 있던 일에서나, 그런 사람으로부터 뜻밖에 어떠한 낭패를 당할 경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한다. 또는 믿는 나무에 곰이 핀다'고 이르기도 한다. 반드시 어떻게 되리라고 여기는 마음을 흔히 믿음으로 정의한다. 믿음의 의미적 특성은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관계'를 필요층분 조건으로 삼는다. 믿음은 흔히 약속으로 이어진다. 여러 가지의 행위가 있는데 특히 언어행위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에 음성적 기호를 매개로 하는 계약성을 기초로 한다. 언어의 계약성은 아리스토벨레스 로부터 비롯되어 소쉬르 에 와서 이른바 자의성 (恣意性)으로 요약되기에 이른다. 그러면 언어의 계약성과 함께 인간관계에서 드러나는 믿음의식이란 어떤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동과 서를 불구하고 믿음이란 언어 이전의 생활이며 삶의 뿌리와도 같은 것이다. 믿음이란 인간생활에 있어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존엄의 주촛돌과도 같은 근거로서의 '믿음'은 자연을 두렵게 여기는 자연외경 (自料畏敬)에서 시작되어 제도적인 차원의 법조문이나 언어나 종교와 같은 문화현상으로 되비치어 발돋움을 하였다. 믿음이란 낱말을 중심으로 하여 욱리 민족의 가치판이 어떻게 언어적으로 반영되었는가를 알아 보는 일은 낱말의 밭 이라는 관점에서뿐 아니라 일반적 관점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란 말이 보여 주듯이 참으로 운명공동체로서의 우리 겨레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중요한 믿음이 전제되고 있다. '사람이 그럴 수 있느냐'고 하거니와 우리 인간 사이에 기본적인 믿음이 허물어겼을 때 쓰는 말이다. '우리'란 말은 본래 소 우리, 돼지 우리라고 할 때의 '우리'에서 비롯된 말로 이처럼 처음에는 공간 명사로 쓰이다가 후에 복수 인칭을 나타내는 대명사로 쓰이게 된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우리'는 '울+이>우리'로서 워낙은 몸을 둘러싼 울타리와 같은 것, 말하자면 너와 나의 공간을 뜻하였다. 이때 '울'은 '웃'의 시옷(ㅅ)받침이 리을(ㄹ)르 바뀌어 된 말인바, 그 원초적인 의미는 몸에 걸치는 옷과 바탕을 같이하고 있다고 하겠다. '믿음'은 '믿다'란 말에서 온 명사로 믿는 동작이 명사화해서 된 말이다. '믿다'는 사전적인 의미로 볼 때, 인정. 감정. 의지. 바람. 쓰임. 선호 등의 여러 가지 속성으로 풀이된다. 떵다'라는 동사의 지배관계를 만족시키는 대상으로서는 인간과 신 (절대자),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물, 인간과 자기 자신을 들 수 있다. 우리말의 발달이란 관점에서 보아, 흔히 명사의 어간에 정동사 어미 '-다'를 붙여 동사나 형용사를 만들어 내곤 한다. '믿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믿 +-다>믿다' 로 그 생성과정을 풀 수 있다. 오늘날에는 '믿'이란 형태가 흘로 쓰이지는 않지만, (훈몽자회(訓蒙字會))와 같은 중세어 자료를 보면 오늘날의 밑'에 해당하는 형태가 바로 '믿' 이었음을 알 수 있다. 중세어에서 믿' 이 들어가 이루어진 말을 찾아 보기란 어렵지 않다 맏가지(본가지), 믿겨집(본처), 믿글월 (원문), 믿곧(본고장), 믿나라(본국), 믿성 (본성), 믿얼굴(본질), 믿집 (본집), 믿퍼기 (본기둥), 믿흙(본토)'와 같은 보기들을 찾을 수 있는바 믿'을 '밑'으로 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준다. '믿'은 본래 볼기. 항문, 밑. 밑천 등의 뜻으로 쓰였으며, 중심이 되는 뜻은 역시 '밑' 으로 보인다. 현대 국어에서 '밑' 은 어떤 뜻으로 쓰이는가. 무엇이 있는 자리의 아랫속이나 아래쭉 또는 일의 근본으로 쓰이며, '밑동. 밑구멍. 밑바닥. 밑절미'의 줄임말로서 쓰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가치기준의 공간적. 시간적. 심리적인 바탕이라고 하겠는데 땅의 의미로 대표될 수 있다. 중세 어에서는 '믿다'가 '밋다'로도 표기되었다({(두해),). 믿지다'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풀어 보면 '믿이 떨어지다(심층구조)-믿지다(삭제 변형)-믿지다(표층구조)' 와 같이 그 생성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서 믿'은 본전 곧 원래의 자본을 뜻함이 아니겠는가. 밑'은 바탕이요, 근원의 의미로 환치될 수있다고 하였다. 보다 실체적인 뜻으로 보아서는 그것이 곧 땅이요, 우리가 목숨을 이어가며 무리지어 살고 있는 공간인 것이다. 이러한 공간의식에 기초하여 믿지다'와 같이 공간성을 가지는 형태소를 포함하는 새로운 형태의 언어로 발전해 나아간 것이다. 믿음과 관련하여 믿고자 하는 대상 곧 '믿다'의 동작을 층족할 수있는 대상은 종교적인 절대자일 수도 있고, 인간일 수도, 자연물일수도 있다. 흑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는 것이다. 믿음은 '믿다'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인바, '[어떤 대상을] 밑으로 하다(여기다)'의 뜻으로 플이된다. 종교적인 경우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신은 모든 가치의 출발점, 곧 근본이자 종착점인 셈이다. 이를테면. 촐발과 종점이 하나인 원구조를 이루고 있다고나할까. 실재하는 모든 사물의 아르케가 둥근 원의 모양을 하고있는 점과 궤를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미세한 원형의 세포와 우주의 형태가 서로 같다는 아인슈타인 의 장이론과 맥을 같이한다고나 할까. 삶은 밑 곧 땅에서 시작되어 생물학적으로 죽음에 이르면 다시 대지의 품으로 돌아간다. 종교적인 믿음의 구경(究竟)을 삶과 죽음을 통제하는 신의 나라에 두고 있는 것은, 우리 배 달겨레의 언어인식으로는 절대자가 대지(밑)와 같은 속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믿고 바라는 것이라고 정의되기도 한다. '바람'은 절대자의 공간과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요, 미래 지향적인 꿈인 것이다. 원래 '미래 (未來)'라고 함은 블가에서는 죽은 뒤에 올 세상의 시간을 일컫는다. 신의 영지, 곧 신의 대지를 그리워하고 절대자의 섭리를 가장 확고하게 모든 행위에 앞선 가치의 절대기준으로 삼고 판단의 뿌리로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종교적인 믿음의 바탕인 것이다. 농경사회에서의 대지란 모든 태어남의 바탕이 됨과 동시에 종착점이 된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사람에 대한 믿음의식은 사랑의 표현으로 쓰이기도 하였으니 <서경별곡>의 '信(믿음)이야 그칠 수가 있는가' 하는 데에서 그러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랑은 믿음을 전제로 하여 이루어진 다. 믿음이 없는 곳에 어떻게 사랑이 있겠는가. 시대에 따라서 상이는 표현이 달라지기는 했으나, 믿음 곧 인간신뢰가 없는 사랑이란, 적어도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한한 사랑으로 가득찬 절대자도 절대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늘 백성이 됨을 허락하지 않는다.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자연의 섭리를 알아차려 그러한 믿음의 가치인 진리를 토대로 하여 인간은 활동을 전개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소망으로 일컬어지는 바람은 믿음이 확고할 때 일어나는 감정이며, 영원히 부인할 수 었는 그리움인 것이다. 어머니의 품과 같은 대지는 인간에게 무수한 시련과 고통을 주기는 하지만, 우린 하늘과 땅과 신과 인간을 믿기에 하늘이 푸르듯 변함없는 믿음을 길러가야 하는 것이다. 가족간의 믿음이 그러하고 국가간의 믿음이 그러하다. 신의가 깨지면 거기에는 배신과 미움과 갈등의 시간과 공간이 전개될 것이다. 때 문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미더운 존재인가를 살피면서 믿음과 사랑의 공간을 가꾸어 나아 가야 한다. 2-4. 땅과 존재 '땅을 파다가 은(銀)을 얻었다'고 한다. 별것 아닌 일을 하다가 뜻밖의 소득을 얻게 된 경우에 쓰는 속담이다. '땅'은 바다를 제외한 지구의 겉 또는 논밭을 모두 통틀어 이르는 말로서, 흔히 영토 흑은 영지, 특정한 장소 등으로 쓰인다. 한마디로 땅은 공간을 드러내는 순수한 우리말 계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을 포함하는 모든 존재들은 땅이 있음으로써 그 존재가 가능하다 태어나서 목숨을 거두고, 세대를 이어가는 터전이 바로 땅인 것이다. 공간개념으로서의 땅은 심리학적으로 볼 때, 객관적으로 관찰된 위치. 방향. 대소가 서로 같은 시간에 이루는 상호작용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한뛴 철학적으로 보면 공간은 시간과 함께 사믈의 체계를 이루어 내는 기초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공간은 원초적으로 보아 언어적인 개념이 이 루어지기 이전에도 이미 존재했던 삶의 장소이며 죽음의 터이기도 하다. 하늘에 빗나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그 힘을 숭배하고,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을 보며 탄생과 죽음에 이르는 별자리의 수를 헤아렸던 곳도 다름 아닌 땅이었던 것이다. 우리 겨레에게 우리가 살아갈 한반도야말로 삶의 시작이자 끝이 되는 숙명적인 공간이라고 하겠다. 단군왕검이 태양신 '니마'와 태음신'고마'를 향하여 종족의 안녕과 번영을 빌었던 곳이 바로 아사달의 거룩한 성소, 소도(蘇捨)가 아니었던가. 왼시신 앙의 판점에서 보면바다나 땅은 모두가 하느님의 존재하시는 공간이지만 점차 분화되어 우리가 사는 '땅' 은 신을 제사하는 신전이 되 었다. 예컨대 오늘날의 무덤과 같이 생긴 굴 곧 굴은 어떤 통과제의 initiation를 거쳐 특별한 신분의 지도자가 되거나 죽게 되면 다시 돌아가게 되는 영원한 안식처로서 인식되었던 것이다. 부(富)의 상징이 땅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땅이 소유와 존재의 근거를 마련헤 주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살아 존재하느냐 죽느냐가 문제'라는 셰 익스피어의 명제는 오늘날에 와서, 특별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갖느냐 못 갖느냐의 문제로 바뀌어 간다. 이러한 소유의 개념은 개인과 개 인, 민족과 민족 사이의 모든 분쟁의 불써를 지핀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 세상이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세상이거나, 사람들의 생존과 생식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존재들의 집 합이라고 하여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소유하는 양과 질에 따라서 개인이나 단체 흑은 국가에 계층이 생기게 마련이고, 아들 계층은 서로가 같고 다른 한계로 인식되기도 하지 않는가, 땅이란 개념을 대소의 범주로 나누어 생각해 보면, 크게는 지구 전체의 땅덩이를 하나로 상정할 수도 있으나 이를 작게 쪼개어 보면 모래알보다도 작은 단위, 먼지와 같은 작은 입자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른바 나늄 separation 과 합일 unification의 두 상반되는 개념이 바로 땅에서 비롯되는 하나의 중요한 인식의 준거로도 보인다. 일단 땅 위에 살아 움직이는 가시적인 동작을 하는 동물의 경우, 뛰든지 걷든지 누워 자든지, 아니면 삶의 세계를 벗어나 주검이 되어 다시 대지의 일부분이 되든지, 언제나 서로가 일정한 부분만큼 닿게 된다. 일러 서로의 닿음이랄까. 돌과 돌이 서로 부딪히면 불이 일어나고, 나무와 나무가 바람에 서로 심한 마찰이 일어나면 불이 난다. 우리가 밟고 살아가는 땅, 곧 흙의 셍성과정을 상기해 보자.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식으면 흘러 가다가 굳는다. 그것은 다시 퐁화작용을 따라 부스러져 부드러운 흙이 되고, 그것이 생명체들의 삶의 보금자리가 된다. 원천적으로 모든 힘이 태양의 에너지로부터 비롯한다는 진제를 받아들인다면 살아 가는 생명현상 자체도 일종의 연소현상의 한 변이형태로 보아 좋을 것이다. 이러한 연소현상은 느린 것과 급작스런 것으로 나뉘는데, 앞의 경우는 음식물의 소화나 두엄이 썩는 과정 같은 것이고, 뒤의 경우는 불이 타서 빛과 높은 열을 수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땅은 지구산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존재 근거가 되어 인식의 바탕을 제공해 준다. 그러면 시간은 공긴과 어떤 상관이 있을까? 사전적으로 시간은 어떤 일정한 시각과 시각의 사이, 곧 때를 의미한다. '때'는 중세국어에서 장소, 즉 공간을 듯하는 말이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시간의 의미를 증심으로 하는 말이 되었다. 한마디로 시간의 개념은 공간의 개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은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져 볼 수 없다. 그러나 공간은 일정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 사이의 넓이를 선이나 색깔이니 겉표면의 모습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말의 땅은 이상에서 풀이한 것처럼 '시간. 소유. 근거 ' 연소. 분절. 접촉. 지표면. 공간. 닫힘'둥의 의미적인 특징을 바탕으로 하는 낱말이라고 간추릴 수 있다. 물론 이 특징들은 공간의 의미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들이다. 일반적으로 말의 쓰임에 있어서, 널리 두루 상이는 어떤 일정한 뜻은 일정한 형태에 담겨 말하는 이로부터 듣는 이에게로 옮겨가게 마련이다. 아울러 일정한 형태들은 그 형태 나름의 생명력을 가지고 가지를 넘어 나아간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의 낱말의 밭 또는 낱말의 겨레 word family를 이루게 된다. 공간의 뜻을 중심으로 하는 '땅'의 낱말겨레는 어떻게 이 루어지는지 시대를 달리하는 자료들과 사투리 또는 지명자료를 참고로 하여 더듬어 보기로 한다. '땅'은 아래아(`)롤 쓰는 ㄷ에서 시작하여 '다>따>땅'으로 발달해 온 형태이다. 각각의 형태는 시대에 맞게 가지를 변고떼를 이루어 쓰이게 되었는테, 앞절에서 플이한 바의 의미특징과 연관을 지어 분화형태들에 대하여 알아 보기로 한다. 공간을 드러내는 경우 'ㄷ' 는 중세어 자료 (월인석보), <화음계몽언해>, 등에서 장소를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공간의 '다'는 다시 시간을 나타내는 '때.덧'과 같은 말로 분화되어 쓰이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시간은 공간과 함께 상황인식의 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옛 사람들은 12지(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와 같은 시간을 헤아리는 단위개념을 받아들여 12진법 흑은 10진법으로 시간을 셈하였다. 이렇게 공간개념에서 시 간개념으로 개념이 전이된 말로는 몇시쯤.아침녁.한 끼 ' 등의 '쯤(즈음>쯤). 녁 끼'가 있다. 공간.시간을 나타내는 '다(>땅)' 계의 분화어와 함께 지표면을 나타내는 형태로는 '더 (>터). 들. 다'와 같은 말의 떼를 들 수 있다. 정녕 땅은 어떤 사물이 존재하거나 특정한 사실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이다. 인간이 하는 활동의 모든 것이 공간과 시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일어나지 않는가. 옛말에서 '다'는 히뭏(ㅎ)말음 체언으로, 모옴으로 시작되는 조사나 어미 앞에서 자동적으로 히읗(ㅎ)이 개입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말음이 아예 받침으로 쓰이게 되면서, 어말의 위치에서 비슷한 음가를 지닌 'ㅅ-ㄷ-ㅎ-ㅇ-ㅊ' 등으로 넘나든다. 처음에는 같은 말로 서로 넘나들다가 나룽에는 서로 다른 말로 굳어져 가기도 한다. 이때 양성모음이 음성모음으로 바뀌면서 대립되는 말을 만들어 가는 것은 생산적인 예로 볼 수 있다. '닻/덫, 닷(>탓)/덧'과 같은 말들이 이런 범위 안에 드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일본말에서 밭(田)을 '다' 라고 하는 것도 우리말 'ㄷ'에서 옮아 간 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동물이 땅 위로 빨리 가는 것을 '달리다'라고 하는데 본래 '닫다'에서 비롯된 말이다. 여기서 '닫-' 은 바로 땅을 뜻하는 말이다. 사람이 모여 부족 혹은 국가의 단위를 이루어 살게 되면 그곳에는 반드시 통치가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나라를 통치하는 것을 '다스리다'라고 한다. 필자는 '닷(땅)+-으리다>다스리다'와 같이 통치자가 특정한 영토를 이끌어 나아가는 행위를 드러낸 것으로 생각한다. 아무리 흘륭한 국민과 통치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토(땅)가 없으면 그 의미를 잃고 만다. 그러니까 통치를 하려고 하는 사람은 일정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사물을 보살펴 처리하고, 예상되는 상황에 미리 대처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스림에는 여러 갈래의 형태가 있다. 개 인적으로 볼 때, 스스로의 정신적인 내면 세계를 다스리는 일에서 자신의 건강이나 집안의 문제, 또는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이 맡고 있는 구실의 전체적 흐름을 다스리는 일에 이르기까지. 그런가 하면 짐단 생활의 다스림에는 크고 작은 집단의 생활을 이루어 가기 위하여 끊임없는 다스림의 움직임이 요구된다. 개 인적이든 집 단적이든 간에, 생존의 공간이라는 땅의 개념에서 유추되어, 땅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통치행위를 '다스림' 으로 드러낸 것은 일종의 연산작용에 따른, 의미의 옮겨짐으로 풀이할 수 있다. 땅의 의미를 나타내는 말들 가운데에서, 큰 것을 더 작은 것으로 쪼개는 분절의 뜻으로 쓰이는 형태들이 있다. 하긴 땅을 이루고 있는 구성요소로서의 흙도 용암 상태의 덩어리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갈라지고 부서져서 이루어진 것이다. 근원적으로 용암 자체가 불덩어리이기도 하지만 돌과 돌이 서로 맞부딪히면 불이 난다. 한마디로 땅의 속성 가운데 분절현상과 연소작용은 불가분의 성질로서 이것이 바로 언어로 투영된 것이 아닌가 한다. <방아타령>에서 방아를 찧는다고 한다. 이때 '찧다'는 중세어로 넘다'에서 비롯된 말인데 'ㄷ-' 이 바로 땅을 뜻하는 '다'가 변이를 하여 이루어진 중성모음 계열의 말이다(필자의 논문 <의존명사 '다'의 형태분화>, 1989) 따위가 부서져서 작은 단위의 돌로, 다시 흙으로 되듯이 벼나 보리 등의 곡식을 방아에 넣어 껍질과 속알을 분리시키는 과정을 쪼개어 가르는 것으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한꾄불올 지핀다고 할 때의 '지피다'도 중세어를 보면 널 '딛다~딧다'의 헝태였음을 알 수 있는데, 뒤로 오면서 형태가 바뀌어 이른바 입천장소리되기를 따라서 '지피다'의 형태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불을 땐다고 할 때의 '때다'도 '다히다>대다'에서 말미암은 말로서 땅의 속성을 투영시킨 형태로 보인다. 땅이란 말은 그 밖에도 여러 가지 형태로 변이하는데, 예컨대 달마다 보름날 밤이면 그리운 임처럼 돋아 오는 보름달의 '달'도 '다(ㅎ)~달/들/뜰/탈'과 함께 땅의 변이형으로 보인다. 우리가 생존하면서 인식하는 대상은 모두가 우리가 보고 듣는 말을 중심으로하여 표현되는 것이므로, 결국 달도 또다른 땅, 높은 곳에 솟아 있는 공간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구려 지명에서 '-달(達)'계의 말도 높은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늘에 높이 떠 았는, 지구와 같은 땅을 가리켜 '달'이라 하게 되었고, '달-'이 어간이 되어 달의 속성과 같이 높은 곳에 매어 두는 것을 '달다' 라고 하였으니 우연한 결과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땅을 바다의 물과 그 공간적인 위상을 놓고 본다면, 가시적으로 바다의 표면보다는 솟아 있어 높은 위치라고 볼 수 있으니, 높은 속성을 부분적으로도 인정 하지 많을 수 없다. 앞에서 분절작용에 따르는 문제를 제기한 일이 있거니와 흙. 먼지 등이 묻었을 때 '때가 묻었다/더럽다' 와 같은 표현을 하는데, 이때 '때/더럽다' 도 땅에서 유추되어 나온 표현이다 '때' 는 '다히>다이>대>때 '로, 러 럽다'는 '덜 +-업다 >더럽다'의 과정으로 비룻되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더럽다'고 할 때 그것은 비단 흙이나 먼지가 묻은 것만을 뜻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음이 천하다든가, 보기 싫다든가, 비겁하다든가, 아니면 명예나 지조(정조)를 상한 경우에도 유추하여 쓴다. 근원적으로 흙과 땅은 그것을 떠나서는 인간이 살 수 없는 것이지만, 이렇게 우리말에서는 땅의 속성이 부정적인 개념으로도 발달해 온 것이다. 땅이 드러내는 특성 가운데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닫힘'이다. '문을 닫아라'고 할 때의 '닫다'는 '닫+-다>닫다'와 같이 풀이할 수 있타. 열려 있는 상태의 공간이 무언가로 덮이면 그 공간은 닫힌 것으로 인식된다. 흙으로 덮어서 닫아 줌으로써 싹이 튼다든지 뿌리가 내려 자란다든지 하는 일이 일어나게 된 다. 굴 생활의 시대를 되돌아 보면 결국 흙 또는 바위로 특정한 공간을 닫고 열어 줌으로써 비로소 생볼이 가능했던 것이다. 새의 보금자러인 둥지도 그러한 특성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흔히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땅은 생명이 움트고 자라는 가장 구체적인 공간이며, 삶의 영원한 고향이다. 지옥 또는 천국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신앙의 차원까지 포함하여, 우리 인간이 실존할 수 있는 현장은 바로 이 땅이라고 하여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현생 인류가 지구상에 살기 시작한 삼만 년 이래의 자취가 바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죽은 사람이든 살아 있는 사람이든 앞으로 태어나 살 사람이든, 그 형태를 불문하고 존재의 현장은 여기 이 한반도를 포함한 '땅'이라는 실체인 것이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말이지만, 중세어 자료를 보면 '사랑한다'는 뜻으로 '닷다'가 쓰였다. 삶과 죽음, 그리고 소유와 생산이 있으니 그곳에 대한 애정이 있을 수밖에. 영토를 얻기 위하여 개인 또는 집단이 서로 그리도 엄청난 싸움을 해 왔고, 하고 있고, 할 것이다. 우리말에 서로 겨루어 승부를 내는 일을 '다투다'라고 하거니와 이 말도 '닫+호-다>다토다>다두다'의 과정을 밟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틈은 영토 싸움이요, 이는 곧 생존의 싸움이다. 정신적인 할동도 영역의 다틈이라고 풀이한은 지나친 유추일까. 땅은 한정되어 있다. 우리 한반도와 같이 좁은 영토에 많은 사람이 모여 서로가 서로를 믿으며 살기 위해서는 토지의 공개념과 같은 가치들이 다스림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다퉁 없는 살기 좋은 땅이 될 것이다
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2. 땅과 존재 2-I. 굿과 혈거생활 어떤 일에 회망을 걸거나 몹시 기대하는 것을 희롱하는 투로 얘기할 때, '굿에 간 어미 기다리듯 한다'고 한다 굿을 치르면 그에 따르는 이바지 물건이 있기 때문이다. 새에게는 보금자리가 있고 여우에게는 굴이 있듯이 우리 사람도 문화가 발달하기 이전에는, 모두가 굴살이(혈거)를 하였으며 다시 굴 속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였다. '굴살이'에서 '굴' 은 '굿'과 같은 의미로 쓰이다가 지금은 다른 뜻으로 굳어진 말이다. 두 말을 비교해 보면 음절.구조는 같고 다만 받침이 다른데, 받침 소리가 시옷(ㅅ)에서 디굳(ㄷ)으로, 다시 리을(ㄹ)로 넘나드는 변이 형태는 우리말에서 흔히 발견된다. 무당이 노래나 춤을 추며 귀신에게 치성을 드리는 의식이나, 연극과 같이 여러 사람이 모여 떠드는 볼 만한 구경거리를 통틀어 '굿'으로 정의한다. 또는 구덩이가 줄어서 변한 말로서 묘를 쏠 때에 구덩이 안에 널이 들어갈 만큼 잘 다듬어 놓은 속 구덩이를 '굿'이라고도 하는데, 구덩이가 무너지지 않도록 단속하는 일을 일러 '굿단속한다' 고도 한다. 지금도 방언에 따라서는 '소구시' 라는 말이 쓰이는데 (상주 지역 등) 소먹이 통을 뜻한다. 강원도 지방에서는 혼히 '구유. 구융'이라고 하는바, 모두가 '굿'의 변이형태로 보면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러니까 '굿/굳/굴' 은 하나의 단어족을 이루어서 쓰인 말인데, 이들 형태들은 배달겨레가 혈거생활(굴살이)을 했던 까닭에 그것이 언어적으로 투영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 당시는 '굴(굿/굳)'이 곧 삶의 보금자리였으니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굿'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낱말의 떼 (단어족)는 뒤에 살펴보기로 하고, 먼저 굴살이와 관련한 옛적 문헌에 대하여 대강을 알아보도록 한다. 우리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 ((삼국유사),의 기록들인데 먼저 단군신화의 경우, 한 마리의 호랑이와 한 마리의 곰이 같은 굴에서 살면서 [同穴而居]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환응신에게 빌었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호랑이와 곰은 신화학적으로 보아 각각의 부족을 상징한다는 풀이도 있거니와 일종의 토템신이기도 하다 곰은 '곰/고마'로 표기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고마(곰)'은 태음신으로서 물과 땅, 결국은 생산을 주재하는 여성신이었으며, 환응은 니 마(님>임)'계의 태양신으로 하늘과 불을 다스리는 제우스격의 신이었으니, 님과 곰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바로 단군왕검이었던 것 이다. 태어난 곳이 바로 굴이었고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장소도 굴이었으며 부족을 다스리는 공간(관청)도 굴의 형태였으니 '굴'은 모든 삶의 근거를 마련해 주는 공간이었다. (석보상절), 같은 중세어 자료에는 관청을 '구위'라고 하였는바, '굿>구위'의 변모과정을 거쳐서 된 말로 보인다. 시옷(ㅅ)이 반치음(△)으로 읽히다가 아예 음운의 탈락이 일어나고 한 음절이 덧붙어 '구위'가 된 것이다 (삼국유사),의 고구려조에 해모수가 유화를 압록강변의 굴에 감금하고 햇빛을 쬐어 잉태하게 한다는 기록도 역시 굴과 무관하지 않다. {(고구려국본기,, 에 따르면 삼신을 제사함에 있어 굉양의 기 림굴(林篇)에서 제사를 모셨으며, 맞이하는 의식은 무덤과 같은 굴(수혈 ; 隱穴)에서 행하였다고 한다. 한편 중국의 문헌에서는 어떠한가 ((후한서 (後舊書)),에는 동이전(東夷傳) 조의 일부분에서 '성곽을 쌓지 않고 흙으로 방을 만들었는데 그 모양은 마치 무덤파 같고(室形如舊) 그 위에다 문을 만들었다'고 하였으며, {(삼국지), 에는 '큰 집은 굴의 사다리 아흡 개를 놓아야 들어갈 만하고 깊이가 깊을수록 좋다(常穴房大家澤九構以多爲好)' 고 하였으며, {(진서 에는 동이전 부분에서 '여름에는 나무 위에서 살고 겨울이면 굴속에서 산다(夏則舊居冬則穴處)'고 하였다. 이상의 기록들로 보아 우리 서조들이 굴살이를 하였던 것은 분명하다. 박용숙의 {(한국의 시원사상), (1987)에 따르면, 여기 무덤과 같은 굴은 일종의 거룩한 성역이요, 그런 굴은 성전이었으니 이를 테면 하늘신을 제사하는 스투파 곧 절대적인 탑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삼국유사),에서는 소도(蘇塗)라는 종교적인 성역에 큰 나무를 세우고 가지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귀신을 섬겼다고 했다. (삼국지)등에서는 '소도'를 불가에서의 부도(浮居)와 같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의 장군총이나 광개토왕의 묘는 그 자체가 곧 소도였다. 지금도 무당의 집에 성황목(城皇木)을 세우는데, 이는 소도의 퇴화한 화석과 같은 것이며 약식화한 상징물포 보면 된다. (삼국유사),의 석탈해조에 탈해가 토함산에 올라 돌무덤을 지어 약 7일을 거기에서 살면서 왕성의 터를 물색하였다고 하니, 돌무덤이 곧 신전이 아닐까 한다. 고대의 신전이란 천문지리라든가 시간과 방향을 측정하는 공간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바, 신과 교통하는 영험스러운 장소였다. 글자의 발달과정을 보면 고(古) 자도 신전을 뜻하였다. 백천정 (白川靜)은 다음의 두 가지로 풀이한다 하나는, 신전과 그 내부의 모습으로 신상을 모신 집안에서 제사장이 여러 가지 제단 위에 제기를 벌여 놓고 예배를 드리는 광경이라는 것이다. 즉, (덮개.움막) + (물)+(그릇) +(제사장)十(음양의 접합)-舊이다. 다른 하나는, 신전의 모양은 드러나지 않지만 장막이 드리워진 상자 속에 우상이 앉아 있는 형상이 라는 풀이이다. 즉, (그릇)+(장막) +古(우상)-圍이다. 결국 글자의 모양이 간추려지는 과정에서 모시는 대상의 뜻만 남아 古로 쓰이게 되었으니 본래는 신전을 드러낸 글자였다는 것이다. 그 신전이 바로 굴의 형태로 상징되었다 '굴'과 연관되는 낱말 겨레들은 어떻게 발달해 나갔는지를 좀더 알아보도록 한다. 지금은 무당이 치성 을리는 의식을 '굿` 이라고 하지만, 제정일치 시대에는 '굿' 이 국가적 차원에서 신을 제사하는 대회 (國中大會)로 치러졌으며, 제사를 모시는 사람도 부족의 통치자이자 제사장이었으니 지금 서양의 교황에 맞먹는 구실을 하는 인물이었던 것 이다. 제사를 모시는 신전은 거룩한 장소로, 오늘날의 '굴'과 같은 공간이었다. 공간을 조금 확대하면 거룩한 숲(聖林) 으로서 산과 교통하는 장소였고, 공간을 축소하면 속은 굴이지만 겉으로는 솟아 있는 '소도(蘇塗)' 였다. 오늘날에도 소수 남아 있는 국사당t國師棠)이나 심지어는 절간이나 기독교의 교회당이 모두 높은 곳에 자리를 잠고 있는 것도 이 '소도'의 특성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요컨대 '굴'은 '궂/굳'과 같은 의미로 쓰였는데, 증세어로 오면 그 의미가 갈라져 쓰이게 된다. 그 중 '굳'은 단독으로 쓰일 수 없는 형태지만 분화의 모습을 살펴 보기 위하여 함께 비교해 보기로 한다 '굴/굿/굳'의 의미와 낱말겨레 1) 굴-의 의미- 땅이나 바위의 깊숙히 파인 곳. 흑은 산이나 땅속을 인공적으로 길게 뚫어 만든 공간[관련형태] 구르다, 구름, 구렁이 (굴헝 十이>구렁이), 구렁말[栗色馬], 구레, 구리 (굴+이>구리 ; 굴에서 나온 것), 구리다[굴(구멍)+-이다>구리다], 꾸리, 꿀(굴>꿀), 굴(굴의 모양을 한 바닷조개), 굴다리, 굴대, 굴레, 굴렁쇠, 굴러다니다, 굴림대 등. 2) 굿-[의미] 잡귀나 불행을 피하기 위하여 무당이 노래.춤으로 치성 올리는 일. 무덤 속 널이 들어갈 만큼의 속구덩이.[관련형태] 굿것, 굿드리, 굿바얌(굿뱀 ; 土桃蛇-{유씨명), 구슬(-굴의 모양이 둥근 데서 연유), 구석 (방언에서는 구시.구역), 구실[굿+일>굿일>구실(稅役 ; 굿을 위한 부역과 물자)]굿거리, 굿막(광부들이 연장을 두기 위하여 구덩이 밖에 지은 집),굿병 (광산의 굴 안에서 생기는 병), 굿옷(굴 안에서 입는 작업복), 구스르다 등. 3) 굳-[의미] 굴. 땅을 우묵하고 깊게 파 놓은 곳[관련형태] 굳복(굴 안에서 입는 옷), 굳잠(깊은 잡), 굳다, 굳세다, 굳어지다, 구들(구들골), 구들목, 구들미, 구들장, 구데기(굳+에기 >구데기), 구덩이, 구덕구덕 (-어떤 모양의 굴이든 단단하게 만들어야 그 안에 들어가 살 수 있으니까), 구두질(구들을 뜯어 다시 놓는 일) 등. 이상의 판련된 형태 가운데에는 두음이 바뀌거나(굿굿하다>꿋꿋하다, 구들구들>꾸들꾸들), 말음이 바뀌어(긋-궂다) 새로운 어휘를 생산하는 경우도 있다 위에서 본 '굴/굿/굳'은 모음이 바뀌어 양성모음계의 형태로 이어지기 도 한다. 예컨대 '골/곳/곧' 이 그것이다. 음성모음계의 '굴/굿/굳' 이 내면의 잘 보이지 않는 공간이라면, 양성모음계의 '골/곳/곧' 은 보다 환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장소를 이른다. 이들의 의미와 분화형태를 알아 보면 다음과 같다. '골/곳/곧'의 의미와 날말겨레 4) 골- [의미 ] 물체에 얕게 파인 긴 흠과 같은 줄, 또는 그런모양으로 된 금. 지명 (밤나무골 가마골 ; 고구려의 '-홀(忽)'계와 같은 뜻으로 보임).[관련형태 ] 골감, 골갈이, 골골샅샅, 골갱이 (밭에서 쓰는 살써레의 한가지), 골바람, 골목, 골방, 고랑(두둑 사이의 길고 좁게 파인 곳), 쇠고랑, 고랑창(물이 있는 좁고 깊은 고랑), 고로록고로록(목구멍에서 나는 소리의 한 가지), 고름(곪아서 생기는 것),고름(옷고름), 고름하다(골막하다) 등 5) 곳-[의미 ] 일정한 자리나 지 역. 이수(里數)의 단위(완전명사]로서의 독립성이 거의 없는 의존적인 형 태임).[관련형태] 곳(>곶>꽃 ; <월석> 1-9), 곳갈(>곶갈, ((초두헤,,7-2I), 곳광이 ((한청), 3IOb), 곶의, 곶(>꽃 ;위로 솟고좁은 골이 졌으니까) 등 6) 곧-[의미 ] 곳((용가), 26). 바(((석보), 6-7). 일정한 장소[관련형태] 고둥(곧+-웅>고둥, 소라 우렁이와 같은 것의 총칭), 고달(송곳 따위의 자루에 박홴 부분), 고달이 (노끈 등으로 고리처립 만든 것), 산고뎅이 (산꼭데기), 고두리 (물건 끝의 뭉툭한 곳), 고드름(얼음이 아래로 길게 얼어붙은 것) 등. 앞에서 예를 보인 음성모음계의. '굴/굿/굳'과 양성모음계의 '골/곳/곧'등은 여기에서 그 가지벌음이 끝나지 않고 중성모음계의 '길/깃/긷'으로 낱말의 떼를 형성해 나간다. 여기에서 풀이하고 있는 양성과 음성, 그리고 중성모음의 대립이나 자음의 교체 현상이 모든 형태에서 다 발견되는 구조는 아니다. 그러면 '길/깃/긷' 계의 낱말들이 어떻게 가지를 벋어 나아갔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우선 '길-' 계를 살펴보자 '길/깃(짓)/긷' 의미와 낱말겨레 7) 길-[의미]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 도중. 두루마기.저고리 따위의 섶과 무 사이의 그 옷의 주장이 되는 넓고 큰 폭. 광산 구덩이의 통로, 키의 높이[관련형태 ] 갈갈래 (광산 구덩이 안의 이리저리 통하는 길), 길갈림, 길길이 (물건이 높이 쌓인 모양), 길동무, 길마(소의 등에 얹어 짐을 싣는 안장 ; 보금자리 또는 날개와 같은 도구에 해당함),길들다(짐승을 잘 가르쳐서 부리기에 뭉게 되거나 잘 따르게 되다), 길속(전문적인 일의 속내, 특정한 공간이나 영역) 등. 길은 사람이 다니는 통로요, 삶의 본거지이다. 서로는 한 길에서 만났다가 자신의 일이 끝나면 다시 헤어지게 되어 있다. 어찌 보면 사람은 나그네 속성을 갖고 있어서, 늘 길을 걸으며 살아가고 있다. 다른 사람이 걸었든 안 걸었든 자기의 길을 걸어 가야 한다. 군인은 군인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정치인은 정 치인대 로, 모두가 그 나름의 길이 있다. 보이는 길이 있는가 하면 전혀 보이지 않는 길이 있 어, 죽음에 이른 뒤까지도 우리 인생의 길은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도 한다. 번연 은 <천로역정 >,이란 글에서 영흔이 하늘의 길을 가는 미래의 길을 제시함으로써,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진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 해주고 있지 않았던가. 우리 배달겨레의 경우, 겨레와 올바른 삶의 도리를 위하여 끊임없이 순국하는 정신, 순교하는 정신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 간 선지자들을 쉽게 기억할 수 있다. '길' 은 '굴' 도 아니요, '골' 도 아닌 그 중간쯤 되는 통로요, 삶의 여로인 것이다. '굴'이 보이지는 않으나 신전을 모시던 제단이요, 보통 사람들의 삶의 보금자리였다면, `골'은 눈으로 볼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겉으로 튀어나온 모습을 한 공간이었다 결국 '길'은 굴과 골의 공간을 오고 가도록 만들어진 굴과 골의 연결통로라고 할 것이다. 다음에는 깃-'계의 의미와 낱말겨레를 살펴 보도록 하자. 8) 깃-[의미] 짚이나 대싸리로 바구니 비슷하게 만든 등우리(깃爲巢 ; {훈례). 새 날개에 달린 털. 짐승 우리에 까는 짚이나 마른 풀(새집 ; {(훈몽,, 하 7). 차지할 자신의 몫[관련형태 ] 깃다(풀이 무성하다), 깃것 [깃옷 : 졸곡(卒哭) 때까지상제가 입는, 생 무명이나 광목으로 지은 상복], 깃고대, 깃깃다(깃들이다 ; {(초두해), 9-2o), 깃들다, 깃털, 깃 (어린 아이의 포대기 ; (삼강), 열 3l), 깃목숨(남은 목숨 ; (보권문), 39), 깃그다(기쁘다, 가장 좋은 곳은 집이니까), 기숫잇 (궁중에서 이불을 덮는 횐 보자기), 기숭('구유'의 강원도 방언, 궂. 굴과도 같은 뜻으로통용됨), 기음(논밭의 풀 ; 일종의 숲의 뜻으로 쓰이며 방언에서는 기심), 기저귀 (깃'의 어말자음이 파찰음화한 형태), 짓다(깃'이 구개음화한 형태) 등. 위의 보기에서 (훈몽자회), (훈민정음해례본), 등 중세어 자료를 보면 깃' 은 새의 보금자리를 뜻하는 둥우리와 같은 형태이며 '기숭'은 강원도 방언으로 구유와 같이 움푹하게 들어간 곳을 말하고, 기숫잇은 덮는 보자기의 뜻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보기들로 보아, 깃이 굴이나 골이 드러내는 '굴살이' 공간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진서), 동이전 (東夷傳) 에 보면 '여름에는 나무 위에서 살고, 겨울이면 굴 속에서 산다(夏則렸居冬則穴處)'고 하였으니,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선조들도 새와 같이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았음을 엿볼 수 있다 굿과 깃, 다시 말해 굴과 나무는 소도(蘇塗)의 계절 변화에 따른 형태임을 짐작하게 된다. <단군>의 기록에서 '신단수(神壇樹)'가 나오는바, 그 나무는 신을 상징하는 성황목(城皇木)으로 거룩한 신전의 공간이 그곳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단군의 어머니가 그 신전에서 빌어 잉태를 하였으니 계절로는 겨울이 아닌 여름이었을 것이다. 웅녀가 살았던 공간은 굴이었으니 그곳은 시련의 도장이요, 이미 조건화되어 제의를 통과하면 신분변동이 일어나는 성지 (聖地)였다. 인도의 불교가 보이고 있는 탑문화 와 비슷한 속성을 갖고 있다. 집을 세우는 동작, 재료로 무엇을 만들어 이루는 일을 통틀어 '짓다. 라고 한다. 짓다'는 깃다'의 깃'이 구개음화하여 된 말로 오늘날에도 물건을 만드는 것을 이른다. 원래는 삶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데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수풀은 곧 보금자리였고 삶의 조건을 해결하는 곳이었다. 숲이 삶의 터전이었으니 거기에 보금자리를 만들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우에 따라서 보금자리로서 깃'은 삶의 안식처요, 피난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같은 겨레가 모여 만났다가 헤어지고 헤어졌다가 다시 모여드는 자리, 삶과 죽음, 젊음과 늙음의 바탕을 이루는 터전이었으니 말이다. 짐의 의미로부터 가지가 벋어 새의 날개 깃이라든가 옷깃과 같은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던 것 이다. 짓다'의 짓'과 연관을 보이는 말들의 겨레와 그 문헌 자료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9) 짓_[의미] 일을 행하는 노릇. 깃[깃 우(羽) ; <훈몽> 하 3].집 [어즈러온 짓 (逆家), (내훈) I-77].[관련형태] 짓거리 (홍겨워 하는 짓), 짓다, 짓내다, 짓두돌기다,짓둥이 등 짓' 이 집의 의미로 쓰인 <내훈>의 경우를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깃을 숲이라 하였고, 숲은 바로 삶의 터전이요, 거기에 보금자리가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결국 플과 나무, 굴 속의 어떤 장소에 보금자리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풀을 '김' 이라고 하는데 오늘날 반찬으로 먹는 김도 바로 바다에서 생산되는 플인 것이다. 집을 만드는 재료로서 김 ' 곧 풀을 빼 놓을 수가 없었으니 김과 집은 서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김'은 방언에 '기심/지심,/짐'으로 쓰이는데 집과 관련되는 형태는 '짐'으로 생각할 수 있다. 풀 곧.짐'으로 사람 사는 '집'을 만들었으니 '짐/집'은 같은 겨레의 낱말로 볼 수 있다. 어말자음이 교체되어 '짐' 은 풀섶이요 재료인데 '집'은 그것을 재료로 만들어 놓은 짓/집'이 되 었으니, 혈거생팔을 하던 시대에 풀, 나무를 이용하여 살 보금자리를 만들던 습속이 언어 속에 메아리처럼 깃들어 쓰여지면서 오늘날의 집, 곧 주택문화에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길/깃/긷'계에서 마지막으로 '긷'의 의미와 형태, 쓰이는 분포에 대하여 살되 보자. 10) 긷_[의미 ] 기둥(긷爲柱 ; (훈례), / 네긷 寶帳이잇고 ; (월석),8-l9). 그룻[관련형태] 긷다(우물이나 내 같은 데에서 물을 퍼서 그릇에 담다), 깃들이다, 긷티다((내 훈), 1-58), 긷그다(왜해,상 21), 기들오다(기다리다 ; (초두해) 21-3; 집으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기둥, 기둥서방, 기등뿌리 등. 집과 관련된다는 점에서는 '깃'과 대동소이하다. '깃'이 보금자리요, 둥우리라면 '긷'은 넨'을 받쳐 주는 받침나무요, 보금자리와 비슷한 그릇을 나타낸다. 앞의 보기에서 '기다리다' 를 중세어 자료. 기들오다'와 연계지은 것은, 집으로 돌아오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렇게 본 하나의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 '기들오다'의 형태를 긷 十_을十오다>기들오다'의 과정으로 풀어 본 것이다. 어버이가 집을 나간 자식을 기다릴 수도 있을 것이요, 어린 자식들이 어버이를 기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루에 배를 놓아 먼 곳으로 가버린 임을 그리는 <서경별곡>의 주제도 기다림의 미학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립고 안타깝고 아름다운 공간과 시간을 만들며,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삶의 보금자리를 빚어 나아가야 한다. 그 거룩한 소명이 있기에 우리는 어려운 삶의 고비를 끈기 있게 넘겨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I. 언어적 상상력의 바탕 1-4. 가정 (假定)파 언어 우리들이 살고 있는 공간과 시간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고작해야 일백 년을 헤아리는 세월을 살고, 하루 스물네 시간 동안 삶의 조건을 해결하기 위한 공간들을 헤매며 산다. (명심보감),의 이야기처럼, 한 사람이 하루 쌀 석 되, 사방 여섯 자 방이면 족한 것을 가지고 끝없는 욕망의 언덕에서 허우적거리다 마침내 자신에게 굴레를 씌우고 만다. 하지만 생활은 오늘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간접 체험을 통하여, 특히 기록으로 남겨진 것들을 이해함으로써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가설을 만들어 가게 된다. 누구든지 하나의 가정이나 상상을 할 수 있고, 단체도 그러하다. 그 가설이 어떤 방법으로 증명되어 누구에게나 보편성 있는 설득력을 지닌다면, 다시 말해 거듭 검증해 봐도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결과가 나오는 재현성이 있다면 그것은 지식이요, 학문적인 체계를 이루게 된다. 그 반대인 경우에는 그저 상상일 뿐이요, 경우에 따라서는 헛된 생각에 그치고 말게 된다. 학문이나 예술이나 모두 하나의 가정을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언어기호는 본디 하나의 약속이며 체계적인 가정인 것 이다. 인간의 생각을 전할 수 있는 소리 자체는 같은 소리일지라도 같은 사람이 같은 조건에서 발음을 했더라도 그 발음의 세기나 색깔은 다르게 마련이다 하물며 인종이 다르고 시대와 공간이 다른 사람끼리의 경우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사과'라고 말을 하면 우리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먹는 과일로서 동일하게 이해한다. 물리적인 실제의 소리는 추상화되어 심리적으로 같은 소리로 인식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 이라고 발음할 때 그 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속으로 이어져 나온다. 그러나 우리가 그 말을 들을 때는 마치 음운들이 끊어져 있는 것처럼 인식한다. 따라서 머리의 자음을 바꾸어 '자랑'으로 발음하면 금세 다른 말로 알아차리게 된다. 이를테면 연속으로 발음되는 소리들을 연속하지 않은 소리로, 즉 동적인 소리를 정적인 소리로 인식할 수 있다는 가정 위에서 사람은 그 엄청나게 많은 말을 하고 산다. 어디 그뿐인가. '사과'란 구체적으로 과일 그 자체를 의미하지는 않고 실은 한 덩어리의 소리에 불과하지만, 언어적 상상력은 곧바로 생리적인 조건으로 전이되어 마치 사과가 앞에 있는 것처럼 듣는 이는 먹고 싶은 욕구를 일으킨다. 한마디로 계속하여 이어 나는 음성의 연결체인 음절을, 심리적으로 분리하여 뗐다 붙일 수 있는 소리의 조각, 곧 음운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가정을 대전제로 하여 언어 인식이 비 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언어적 상상력은 한 언어공동체의 약속을 바탕으로 '가정' 을 전제하여 이 루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언어생활이 이러한 약속과 가정을 전제로 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언어생활을 해 나아간다. 그것은 언어로 표현되는 음성형식과 그 내용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큰 언어공동체 속에서 유기체적인 생명력을 지니고 있기 패문이다. 언중이 말을 만들어 내기는 하지만, 일단 만들어진 말은 언중의 사고에 큰 영향을 끼 치고, 인식의 도구로서 작용하며, 개인의 사회화에 결정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언어라는 무형의 끈은 민족의 경계를 만들고, 그들이 사용하는 말은 민족의 큰 유산이면서 중요한 재화가 된다 언어에는 그 민족이 누렸던 역사와 철학, 종교와 정치, 경제적 인 혼적들이 투영되어 나뭇가지처럼 벋어 나아간다. 이러한 언어의 투영현상은 상황에 의존하는 특성을 지녀, 언중의 문화와 함수관계를 갖게 된다. 그러면 언어로 드러나는 상황의 바탕은 어떠한 것 인가. 철학에서도 흔히 지적하는 바와 같이 언어적인 상황은 우선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 상황이 중심을 이룬다. 어떤 언어에도 가정의 상황을, 시간적으로든 공간적으로든 드러내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이른바 가정법으로 알려져 있으나 우리말에서는 접속법의 동사나 형용사의 활용어미에서 주로 찾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영어를 포함하는 인도-유럽어의 경우 시제별로 많은 가정법의 유형이 있다. 과거와 현재, 또는 미래 사실에 대한 가정이 다양하게 갈래를 이루고 있는데, 이들 시간의 상황은 원천적으로 공간을 그 밑으로 하고 있다고 본다. 적어도 인간이 구분하고 있는, 언어 표현으로서의 시간은 공간적 표현에서 옮아 온 경우가 많다. 우리말에서 시간을 의미하는 '때'도 역사적으로 보아 후기 중세어 자료에서는 장소를 뜻하는 말이었다 이처럼 공간인식을 근거로 하여 언어적인 시간관념이 발달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하여 더 많은 시간적 상항을 표현할 수 있는 형태들이 하나의 체계를 이룬 것이다. 반드시 칸트나 사르트르를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상상은 의식현상의 하나이며, 철저하게 우리 사람들의 인식에 기초한 인간중심의 정신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하나의 약속이자 가정으로서의 언어기호가 불러일으키는 감각적인 영상은 현상 그 자체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마치 대한민국의 지도가 대한민국의 영토 그 자체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인식의 활동은 인간의 의식 위에서 재 구성되어 사물이나 사실들을 판단하며, 이것이 다시 언어적인 모방과 사고를 형성하여 마침내 언어활동을 가능하게 한다고 본다. 인식의 기초가 공간과 시간 에 대한 형식이므로 언어적인 사고 또한 이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의식과 언어기호는 일종의 거울과 같은 것이어서 감각적인 기능을 하는 대뇌부는 언어적인 기능을 하는 대뇌부에 심리적인 반사현상을 일으킨다. 이를테면 실물 대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약속과 가정으로서의 언어기호에 익숙한 언증은 언어기호가 불러일으키는 공간과 시간 인식을 바로 떠올리게 됨으로써 마치 실물대상이 있는 것처럼 느끼며 그러한 생각들을 말하게 되고, 말을 듣는 이는 아무 이상 없이 그 말의 내용을 알아차리며 그에 걸맞은 정서를 느끼고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인간이 앞으로 다가을 미래, 곧 죽은 뒤를 가정하니 설정해 놓은 공간과 시간에의 확고한 신념은 하나의 종교로서 표출되며 이른바 이데아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타난다 비록 그것이 의식상의 공간과 시간이라 할지리도, 그것이 삶의 토대가 되고 삶을 구원해 주리라는 의미를 부여한다면, 적어도 믿는 이들에게는 그것은 하나의 실상이며 영원한 아름다움이며 참된 빛이 흐르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 위에서 일어난 문화를 역사란 관점에서 살펴보면 굳건한 하나의 맥으로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의식 속에서 이루어진 이 세상과 저 세상의 문제, 즉 삶과 죽음의 구도에 대한 문제를 풀이함에 있어 의식 속에 설정되는 시간과 공간의 상황은 분명한 삶에의청사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낱말 하나하나는 소리가 드러내는 그 의미를 불러일으키는 기억 소자(柰子)가 된다고 하겠다. 실제로는 연속해 있는 자연의 세계를 수심만에 달하는 낱말과 이 낱말들을 이루고 있는 몇 개의 자음과 모음으로써 분리하기도 하고 결합하기도 하여, 자신이 필요로 하는 가정의 공간과 시간상에서 사물과 사실을 인식하게 되고, 자신도 잘 모르는 꿈과 같은 무의식의 언덕에시 헤매이며 삶의 조건을 풀기 위하여 방황한다. 자음과 모음이 컴퓨터의 글자판이라면 자음과 모음이 결합되어 음절 단위토 이루어지는 단어들은 기억의 소자들이 되는 셈이라고나 할까. 우리들의 의식은 모니터와 같은 반영의 공간이 되고, 여기에 비치는 다양한 언어형식 (단어와 문장과 단락)을 통하여 일정한 생각을 전달하게 된다. 자음과 모음이 분절되고 다시 통합하여 새로운 단어를 이루어 내는 것은 이른바 이합과 집산이라는 컴퓨터의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정은 언어적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큰 원리요, 인간정신의 중요한 작용이라고 하겠다. 이른바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조건과 그에 따른 반응으로서의 언어기호는 추상화된 대용자극이며, 대용반응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실물이 없는 언어적인 내용은, 가정의 약속인 언어기호에 저장된 언어적인 사고의 장을 자극함으로써 기억소자에 갈무리된 여러가지 정보들을 떠올려 사람들의 의식이라는 거울의 화면에 원하는 참된 뜻을 비추게 된다. 이른바 거울영상과 같은 속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문화 반사체로서의 언어기호의 성격과 인간의 상상력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1-5. 문화의 투영 인간 사회의 변천이나 발전의 과정을 기록하여 놓은 것을 '역사'라고 정의한다. 같은 뜻은 아니더라도 인간의 정신 활동으로 말미암은 모든 결과를 '문화' 라고 풀 수 있다. 거울 앞에 서면 자신의 모습이 되비치듯이 역사에는 특정한 민족이 살아온 여러 가지 모습들이 반영되어 있다. 일정한 시대를 중심으로 하여 이해하려고 할 때 역사는 세대를 달리하는 일정한 시기들의 집합이다. 따라서 각 시대의 사회 변천이 역사에 드러나게 된다. 각 시대는 그 시대를 살다 간 겨레들의 문화가 모여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역사는 문화의 반영체라 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역사는 어떻게 기록되는가. 인간정신이 만들어 낸 문자에 의하여 기록.보존된다. 물론 언어도 인간의 정신이 만들어 낸 문화의 범주 안에 드는 주요한 것이다. 무엇을 기록하거나 말을 한다는 행위 자체가 이미 어떤 문화의 내용이나 말하는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을 투사시켜 듣는 사람에게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원천적으로 어떤 대상을 안다는 것은 지각하는 사람의 의식에 대상의 모습이나 속성이 반영되어 인지됨을 뜻한다. 언어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은 의식에 반영된 대상을 말로써 전달하여 필요한 만큼의 정보를 주고 받는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사이의 이러한 상호작용에 의해 한 시기의 문화는 이루어진다. 문화의 형태가 분화되지 않은 고대로 을라 갈수록 문화의 투사체로서의 언어기호에는 문화반영의 모습이 뚜렷해진다. 절대적으로 혼자서 사는 사람에게 언어의 필요성은 반으로 줄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자기표현의 욕구가 있다고 해도, 근원적으로 자기의 말을 들어 줄 대상이 없다면 그 표현은 의미를 잃고 만다. 적어도 자신의 말을 들을 대상이 있을 때 의미가 살아나게 되며, 언어를 사회적이라고 함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언어공동체다는 말을 흔히 듣게 되는 바, 진정 하나의 겨레는 그 겨레만이 쓰는 언어를 함께 씀으로써 그 언어로 기록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생각과 느낌을 더불어 누리고 살게 된다. 말은 소리를 본질로 하는 공동의 약속이다. 이러한 약속은 개인에게 상당한 강제성을 행사한다. 이를테면 '보리쌀'을 '좁쌀'로 말한다면 고의든 아니든 그것은 약속 위반이 되어 오해를 일으킨다. 약속으로서의 말 속에는, 역사를 통하여 이루어진 공감대를 갖고 있는 문화의 화석과도 같은 특질들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거기서 더러는 가지를 쳐 더욱 많은 낱말의 겨레가 생 겨나고, 더러는 쓰이지 않게 되어 죽은 말이 되기도 한다. 필자는 언어를 문화의 투사체로 보는 관점에서 언어의 원형성을 특정한 겨레의 문화에서 찾고자 한다 이름하여 '문화 투영 이론'이라 해 둔다. 문화의 반사체인 언어에 되비친 말은 그 나름의 질서에 따라서 굴절한다 그래서 복합어라든지 파생어, 또는 문법형태소로까지 번져 나아가게 된다. 문화의 반사체로서의 언어의 원형성은 종합문화의 시기로 거슬러 갈수록 뚜렷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의 '고맙다`라는 말을 예로 들어 보자. 이 형태소를 쪼개 보면 '고마+-ㅂ다가 되는데 '당신은 고마와 같이 은혜로운 사람이다' 라는 역사적인 뜻으로 되풀 수 있다. 여기서 '고마' 는 무엇인가. ((삼국유사1,의 기록에 나오는바, 단군의 어머니 신인 곰을 뜻한다. 동물 상징으로는 곰이요, 용이요, 거 북이지만, 본디는 물과 땅의 신이요 생산을 맡고 있는 여성신, 곧 지모신 (地母神)이다. 그러니까 단군이 제사를 모셔 배달겨레의 번영과 넉넉한 생산을 빌던 대상신이 곧 고마였던 것이다. 이러한 제천의식을 드러내는 원형적인 의미와 형태로서의 '고마'가 오늘날 '고맙다'와 같은 형용사나 '꼬마'와 같은 명사에 화석처럼 남아 쓰이고 있음은 흥미로운 일이다. 단군만 해도 그렇다. 제사장이자 행정의 우두머리였던 '단군'은 지금에 와서는 방언에 따라 다르지만 전라도 지 역어에서는 '당골' 혹은 '단골레'라고 하여 무당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어쨌든 제천시대의 종합문화를 대표할 만한 대상들이 변천하여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말의 기본을 이루고 있음은 언어가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문화의 반사체로서의 말은 잠재 의식이나 개념을 언어에게 옮겨 줌으로써 낱말겨레의 분절, 언어적 사고의 유추, 가정에 대한 주요한 실마리를 마련해 준다. 이를테면 땅 이름만 하더라도 그러하다 신라가 경주 중심의 문화를 이루고 한반도를 통일한 뒤 경덕왕 때 땅 이름을 -주. -군 ' -현의 틀로 바꾼 일이 있었다 이리하여 서라벌에 담긴 새롭다는 뜻을 나타내려는 정치사회의 의지가 상당한 지명에 투사된다. 예를들어 '草. 東. 金. 新. 鳥. 鐵. 牛. 理' 등의 한자로 표기되는바, 고쳐진 지명은 거의가 새 롭다의 의미를 투영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소리와 소리의 관계에서 목청의 울림이 큰 소리가 작은 소리에 영향을 주어 소리의 변동을 일으키듯이, 문화와 문화의 관계에 서도 가장 영향력이 있는 문화의 유형이나 세력이 그렇지 못한 쪽에 영향을 주어 투사되는 경우가 많다 언어기호를 문화의 투사체로 보는 입장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다면, 문화는 곧 인간정신이 가져온 결파로서 당연히 인간의 언어적 상상력의 바탕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 종족의 보존과 번영을 꾀하는 데 직간접으로 결정적 구실을 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이 곧 인간의 현실 그 자체는 아니어도 현실에 바탕을 둘 때에만 개연성을 지닐 수 있는 만큼 언어에 반영되는 상상은 다분히 현실적이다. 언 어기호가 환기하는 인간의 상상력은 크게 정서적인 것과 지시적인 것 (상징)으로 나누어진다. 앞의 경우는 주로 문학적인 표현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뒤의 경우는 실용적이거나 논리적인 표현에서 흔히 만나게 된다. 언어의 정서적인 기능은 낱말 하나하나로서도 드러나지만 하나의 문장 안에서 연상작용을 통하여도 나타난다 데카르트는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로서 규정하였거니와 인간이 생각한 바는 거의 언어로 드러난다. 언어의 내용은 사람들의 생각이요 느낌이기 때문에 언어와 상상은 서로 데어 놓을 수 없다 개인의 생각이나 느낌이 어느 지역이나 특정한 시기에 보편성을 얻었을 때, 반대로 특정한 집단의 보편성이 개개인의 특수성과 서로 어울릴 싸 이른바 문화의 싹이 트게 되는 것이다. 문화는 인간의 정신활동을 내용으로 하고, 언어는 인간의 사고작용(정신활동)과 감각을 드러내는 것이니, 언어는 문화를 반명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문화란 말은 쓰지 않는다. 흔히 어느 집단이 이룬 정신활동의 집합을 문화라고 하는 만큼, 사회 구성원의 약속인 언어기호를 바탕으로 하는 상상력은 당연히 문화를 뿌리로 하여 덛어 나아간다.
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I. 언어적 상상력의 바탕 우리 사람들은 제한된 상황 속에 살면서도 그 지평을 넘어서고자 언어적 존재로서의 영역을 넓히고 깊게 해 가면서 생존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그윽한 의미를 전달하는 사람의 말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입을 나와 퍼져 울리는 순간, 그 말은 영원한 시간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림 또는 매듭이나 조개띠와 같은 구체적인 물건을 통하여 서로 약속을 정해 의사소통을 하다가, 마침내는 의미와 소리를 담아 놓을 수 있는 '말'의 체계를 이루게 된다 이른바 문자언어를 이용하여 생각과 느낌을 적게 된 것이다. 문자언어가 생겨난 뒤로, 사람들의 귀증한 체험이나 슬기는 기록으로 남아 후손에게 물려짐으로써 문화유산이 후대에 전 달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인류만이 누리는 이른바 '문화'라는 것을 이룩하게 된 것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그에 상응하는 많은 새로운 문화들이 형성되고, 일단 형성된 문화는 무리 없이 특정한 언어에 반영되어 담겨 쓰이게 된다. 사람이 보고 듣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에 층동을 주고, 상상력은 강물처럼 출렁이며 언어라는 논과 밭에 여러 가지 모양의 싹들을 틔운다. 사람들의 언어적 상상력은 특별히 뛰어나서 문학과 같은 정서적인 언어의 상상력을 촉발하기도 하며, 실용문과 같은 언어표현을 통하여 어떤 판단이나 생각을 듣는 이에게 층실하게 전달하기도 한다. 상상력이 없는 개인이나 민족 흑은 그러한 인류를 생각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다만 본능적인 다른 동물들의 세계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문화의 침체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 러한 언어적 상상력의 바탕은 무엇인가. 심리 학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나 사물을 재료 삼아 새로운 사실이나 관념을 만들어 내는 정신작용을 통틀어 상상(想像 ;이라 이르고 있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어떤 대상에 대한 분별 있는 인식(認識)을 뜻한다. 인식이라 하면 단순히 사물을 분별하고 의식하고 지각하는 작용을 총칭하는 것이지만 학문 체계로서의 인식론은 특정한 사물을 대상으로 하여 참값 truth value을 찾을 수 있는가 없는가를 문제로 삼아 사물의 기원. 본질. 범주에 대하여 더듬어 보는 것이다. 칸트가 지적한 바에 따르면 인간이 인식하는 모든 대상의 한계는 그들이 인식하는 시간과 공간에 제약된다. 인간이 지니는 언어적 상상이란 결국 인간 인식의 공간이나 시간에 기초하는 것이다. 필자는 언어적 상상력의 바탕이 되는 대전제를 분절성, 유추, 모방, 가정 및 문화의 반사로 나누어 살펴 보고자 한다 1-1. 분절의 조건 이 세상에서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참으로 다양하다. 아이가 울거나 웃는 소리에서 시작하여 병으로 신음하는 소리에 이르기까지 여러 갈래의 소리가 있다. 그러나 언어와 관련하여 중요한 가치를 갖는 것은 음성적인 특질에 따라서 구별할 수 있는 부류의 소리들이다.(훈민정음)에서는 자음을 조음위치에 따라서 아음.설음.순음. 치음.후음으로 나누고, 다시 음향감에 따라서 전청. 차청. 전탁. 불청불탁으로 나누어 분절음의 기준으로 삼았다. 현대 음성학의 관점에서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 방법을 가지고 가를 수 있다. 첫째는 혀의 위치에 따라 설첨성. 전방성 등으로 가르는 것, 둘째는 혀의 조음 방법에 따라 파열성. 지속성. 파찰성 등으로 가르는 것, 셋째는 모음을 변별하는 혓몸의 특질로 가르는 것이다. 이들 음성적인 분절성에 바탕을 두어 '달/탈/딸' 이 서로 다른 말로 들리게 되고, 서로의 의사소통이 원만해지는 것이다. 소리의 분절과 함께 의미의 분절은 어떻게 풀이할 수 있을까. 소리가 처음에는 한 소리로서 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음과 모음으로 분화되듯이, 의미 곧 전달하고자 하는 뜻도 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분화되는 특징을 보인다. 낱말의 집합은 일정한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낱말 하나하나의 가치는 그 체계 안에서 결정된다. 즉 낱말의 의미는 그러한 계열관계 속에서 얻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부분으로서의 낱말은 전체 속에서만 통용가치가 실현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향이 설정될 수 있다. 하나는 트리에르처럼 전체에서 개체로가는 방향이며, 또 하나는 포르치르 에서와 같이 개체에서 전체로 가는 방향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바이스게르버의 주장대로 언어로 드러나는 언어기호와 자연물 사이에, 특정한 언어 대중이 이해하고 있는 중간세계 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더 자세히 풀이하면 어떤 추상적인 낱말의 의미특성은 서로 변별적인 특징으로서 분절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땅' 이란 낱말의 밭은 제일 주요한 의미특성이 '공간성' 인데 여기에서 접촉. 분화. 연소 닫힘 근거' 등과 같은 의미 특질들로 하위분류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특징은 이에 맞먹는 낱말의 겨레 로 드러나게 된다. 배해수는 생명종식어를 생명체적이고 추상적이고 내세관적인 특징으로 분절시켜, 각각의 영역에 들어가는 낱말의 밭을 그 예로 들고 있다(l982). 생물진화를 보아도 미분화 단계에서 분화단계로 설명하는 게 보편적이다. 따라서 필자는 변별적인 의미의 특징을 전체의 큰 범주로부터 하위범주로 나누어 가는 것이 부분(개체)에서 전체로 가는 것보다 합리적이라고 본다. 앞의 것은 특정한 분야의 낱말밭을 플이하는 데 쏠모 있고, 뒤의 것은 한 문장이나 단락을 설명하는 데 알맞다고 판단되기 때 문이다. 소리이든 의미이든 어떤 대상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또다른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는 힘이 상상력인 만큼, 소리와 의미의 변별적인 특징들이 있고 없음으로 구조화하는 작업은 가볍게 다룰 수 없다고 하겠다. 따지고 보면 음성을 분절시켜 알아차린다는 것 자체가 인식론상의 한 가정으로부터 비롯되어 가능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언어의 전달과정이 공통의 약속이라고는 하여도 인간의 상상력에서 우러나온 결과라고 하겠다. 의미 또한 그러할 수밖에 없다. 언어적인 기능을 하는 음운 자체가, 연속체인 음성을 끊을 수 있는 불연속의 상태로 놓고 보는 한 가정, 곧 상상력의 조건을 층족시켜 주는 정신활동과 심리적-생리적 -물리적인 과정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정해진 소리의 체계는 구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개인이 마구 바꿀 수는 없다. 여기에 언어의 사회성이 있다. 1-2. 유추작용 말의 소리나 형태는 그 수가 무한정일 수는 없다. 그 수가 무한정이어서는 사람이 그것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따라서 같고 다른 형태나 의미를 구분하여, 비슷한 것들이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는 단어나 문법을 모형으로 하여 단어가 만들어지거나 변화된다. 혼히 논리학에서는 어떤 특수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그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다른 특수한 사실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을 유추(類推 ;로 정의한다. 여기에서 모형 이라고 함은 물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원래 이미지라는 말은 모방을 의미하는 말이었다는 것이 암시하는 것처럼, 유추는 어떤 원래의 이상적인 원형을 전제로 한 개념이기도 하다. 유추의 본질은 변화를 통한 일종의 언어창조라고 보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처엄>처음, 일홈>이름, 소곰>소금'과 같이 '-음'꼴로 만들어 가거나, '호랑>호랑이, 배암>배암이, 납>나비'와 같이 동물의 이름을 '-이'꼴로 만들어 가는 예는 그 좋은 본보기라고 하겠다. '처음' 과 '이름', '소금' 은 처엄', '일홈', '소곰' 에서 각각 말음이 '-음'으로 바뀌는 작은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름씨 (명사)' 라는 공통 요소를 가지고 기억하기 편하게 '-옴'으로 통일하는 유추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위에 든 동물 이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의 설명이 가능하다. 유추의 모형은 크게 통합관계에 따른 형과 계열관계에 따른 형으로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 '배암+-이>배암이'와 같은 통합관계에 따른 모형이 있다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이 계열성 조건이라고 할 것이다. 문장 단위로 볼 때, 기본문형은 일종의 글의 모형 으로 여기에 알맞은 어휘만 넣으면 얼마든지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언어의 유형으로 한국어, 독일어, 영어 등과 같이 단일어가 모여 합성어를 이루는 경향이 짙거나, 특히 음소문자를 쓰는 언어에는 유추에 따른 언어창조가 가장 알맞다. 우리말의 경우, 중세어 조어법에서 명사를 어근으로 하여 여기에 정동사 어미 '-다'를 붙이는 틀은 매우 생산적으로 이 모형에 따라 많은 용언이 생겨날 수 있었다(신+다>신다, 배+다>배다, 새+다>새다 등). 경덕왕 때에 인명. 지명. 관명을 한자식으로 모두 갈았다고 하는데, 예를 들면 사람의 이름을 석 자로 짓는다든가, 땅 이름을 '-주(州).-군(郡).-현(縣)'을 붙여 고친다든가, 한자의 소리만을 쓴다든가 하는 식으로 새롭게 고침도 일종의 유추현상으로서, 언어의 모양을 바꾸어 놓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아무리 일상적인 형태에서 유추된 모형을 따르는 어휘나 문법형태소라도 말을 직접 사용하는 언중이 쓰지 않으면 사어가 되고 만다 반대로 많은 독자층을 갖고 있는 작가의 말은 다소 생소하더라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사어가 되이 버렸던 '아스라이'가 어느 서정시인의 시에서 쓰인 뒤로 보편적인 말이 된 것은 그 좋은 예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 한때 정치 경제적으로 유력했던 사람의 방언이 특수성을 쉽사리 뛰어넘어 보편적인 말로서 자리잡는 말도 있었다. 유추는 음운변화와 함께 언어변화의 증요한 원리가 된다. 음운변화는 일정한 형태 안에서의 음절구조의 변동에 한정되지만, 유추는 음질구조의 제약과는 관계없이 새로이 고쳐진 형태로 닮아 가는 경향을 띤다. 음운의 변화는 미시적이고 유추는 보다 거시적인 언어변화의 주요한 통로라고 할 것이다. 형태의 변화를 보면 음운변화는 자음과 모음, 모음과 모음, 모음과 자음, 자음과 자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음절구조 내의 변동이지만, 유추는 아예 음절을 달리하여 덧붙이거나 완전히 이동시켜 버리는 일이 있다. 공시적 (共時的)으로 볼 때, 지명자료나 인명자료에서는 유추작용의 결과는 생산적이다. 유추작용은 일정한 틀을 마련한다. 새로운 문화가 수용되어 기존의 어휘자료가 다시 분석되어 새로운 말이 만들어질 경우, 유추작용은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유추작용과 관련한 언어적 상상력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공간지각에 따른 심상을 바탕으로 하는 표상(衰象)이라고 할 수 있다. 보고 만질 수 있는 사물을 포함한 '공간성'으로부터 사실을 포함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로 유추 전이되어 간다는 것이다. 인식의 기초로서 공간은 우리의 존재가 존재일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우리는 사고작용을 통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선(線)과 색채와 사물의 모양들이 있는 공간에서 그 존재들에 대한 인식에 눈을 떠간다. 공간 상황을 인식하는 기본요소를 몇 갈래의 범주로 나누어 보면, 밝기. 길이. 높이. 넓이. 무게. 거리. 크기. 두께. 방향. 생김새. 요철(凹凸). 강도. 속도. 온도. 맛 등이 있다. 공간상에 또는 공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위와 같은 기본요소들에 대한 우리의 감각과 판단을 통하여 제대로 인식된다. 구체적인 사물 대상에 대해서는 이러한 인식상의 여러 요소들을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있지만, 일단 어떤 사실이나 추상적인 개념 등에 접어들면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 좋은 예로 시간을 들 수 있다. 시간은 공간의 개념에서 전이되어 이제는 인식의 기초가 된 아주 대표적인 보기이다. 시간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으나, 운동의 주기라든가 지구의 표면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상환을 미루어 물리적인 시간과 심리적인 시간 등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순수하게 공간적인 개념에는 시간을 설정하기 어렵지만, 일정한 공간을 움직이거나 특정한 사물이 운행하여 변화가 생길 때 우리는 시간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말에서 본래는 장소를 뜻하는 말이었다가 시간을 가리키는 말로 변한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말로 '때.끼니.쯤.녁 즈음' 등이 있다. 독일어의 경우도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방면이나 방향을 뜻하는 Seite 와 시간을 뜻히는 Zeit 는 본래 같은 말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다. 일본어의 경우 도코로 는 위치도 되고 경우, 때로도 쓰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공간에서 시간으로의 유추, 전이는 우리말에서만 드러나는 현상은 아니라고 하겠다. 이렇게 의미상의 유추. 전이로 말미암아 언어적 상상력은 언어의 기능을 확대하여 나아간다. 심상(心像)은 드러내려는 물체를 닮거나 거울에 비친 물체의 모습과 같이 우리의 청각영상으로 이루어진다. 근원적으로 심상은 코실린이 설명한 바와 같이 상사형 표상을 중심된 내용으로 한다. 이를테면, '사과'라고 했을 때 머리속으로 이에 상응하는 물리적 장면을 상상하면서 구성하는 표상이 바로 상사형 표상이 된다. 그러나 언어로 드러낼 수 있는 모든 형태가 청각영상으로 치환될 수는 없다. 필자가 보기로는, 일단 가장 알기 쉬운 심상에서 파악된 기본적 인 인지요소들의 속성에 맞도록 의미상의 유추가 일어남으로써 추상명사와 같은 비실체적인 명제표상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열렬한 사랑' 이라고 할 때 '사랑' 이란 명제표상은 뜨겁고 환한 사물의 속성으로 그 심상이 환기된 것이다. 이처럼 근원적으로 상사형 표상에서 유추. 전이된 높은 수준의 개념들을 연상함으로써 마음대로 언어적 표현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알아차린다는 것은 비교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반드시 그 기준이 될 인지의 속성이 있어야만 한다. 인지의 속성에 따른 전이가 바로 유추로서의 주요한 구실을 한다. 부룩스의 실험에 따르면, 언어적인 조건보다는 시각적 조건에 따른 반사로서의 기억이 횔씬 쉽다고 한다. 이른바 양식의존적인 논거는 상사형 심상으로서 시각적인 정보가 중심을 이루게 된다. 우리의 감각기관에 와 닿는 것들이 직접적인 자극이라면, 언어적 상상력에 따른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인 청 각영상들은 간접적인 반응과 자극으로 그 구실을 해 낸다. 상사형 표상은 일차적이고, 언어에 의한 명제 표상은 이차적인 것이다. 앞서도 말한 바, 증간세계라고 일컫는, 사물과 언어 표상 사이에서의 언어적 심상의 형성과 정은 상사형 표상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보인다. 1-3. 모방과 언어적 사고 아무리 훌륭한 예술가라고 하더라도 그의 창작은 모방에서 시작된다. 플라톤은 창작을 이데아에 대한 모방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모방층동 이 있어 예술활동의 동기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언어의 경우는 어떠한가. 처음 말을 배우는 시기의 언어를 남어 라고 한다. 어린이는 몇 마디의 말을 배우기 위하여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친다. 어린이 자신에게 가장 영향력이 큰, 함께 사는 주변 사람의 말을 모방하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언어모방설 이 그것이다. 어린이는 이처럼 모방을 거쳐 올바른 발음과 의사 전달에 이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소리를 내는 방법 또는 위치, 소리감각을 모두 흥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을 배우기 이전의 상태에서는 아무리 홀륭한 생각을 한다 하더라도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 감각에 따르는 언어 감정을 몸짓으로, 흑은 울음과 웃음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시각적인 사고가 가장 두드러진다. 인간의 사고작용이란 본래 시각적인 사고에서 싹이 튼다(김춘일, 미술과 교육론,1989). 우선 말하는 모습을 보아야 입술의 모양을 홍내내고 혀의 놀림을 모방할 수 있으니까. 말의 본질은, 가장 소박하게 정의하면, 보이지 않는 생각과 느낌을 소리로 전달하는 것인 만큼 소리 자체가 가지는 상징성이 관여되지 않올 수 없다. 빗소리도 듣기에 따라서는 아주 다양한 느낌과 상징을 드러낸다. 이슬비가 내릴 때와 소나기가 올 때, 부슬비가 내릴 때의 소리는 서로 다른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물론 지표면을 흐르는 물의 소리와도 사뭇 다르다. '미/비/피'에서 보듯이 세 형태는 모두가 물과 관련이 있지만 존재하는 양상이 다름으로 해서 별개의 형태로 쓰이게 되 었다. 이 가운데 '비'는 다른 것에 비하여 보통의 파열성을 드러내는 소리의 상징을 갖고 있다 - 이와 같이 모방의 대상이 되는 소리는 모두가 상징하는 느낌이 있는데, 자음에서는 터짐과 갈림, 그리고 터짐 길이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성대의 떨림과 같은 소리의 상징도 있으나, 앞의 세 갈래의 상징보다는 확실하지가 않다. 자음은 특히 말의 머리에서 '예사소리/거센소리/된소리`와 같이 강하고 여린 정도에 따라 구별되기도 한다.- 한편 모음에서는 입의 벌림에 따라서'고설/중설/저설' 로, 혀의 위치에 따라서 '전설/중설/후설' 로, 입술의 모양에 따라서 '원순/평순'으로 상징적이고 가시적인 소리의 차이들이 각각의 상징으로 드러난다. 상징성이 제 일 두드러지는 것이 의성어나 의태어일 것 이다. 특히 의성어의 경우를 보면, 소리가 나는 느낌을 이용하여 실제로 나고 있는 소리를 모방한다. 이를데면 물이 냄비에서 끓는 소리를 들으면 파열성의 비읍(ㅂ)으로 시작되어 정말로 '부글부글`하는 듯하다. 일단 소리의 상징으로 채택된 형태는, 모음이나 자음의 교체를 통하여 뜻은 같으나 소리의 느낌이 다른 형태로 언어적 사고와 상상력을 다양하게 늘려 나아간다. '부글부글/보글보글/버글버글' 이나 '찰랑찰랑/촐랑촐랑/출렁출렁/철 렁철렁/쩔렁쩔 렁'의 경우 모음과 말머리의 자음이 바뀌어 서로 조금씩 다른 느낌을 자아내니, 그 각각에 각기 다른 정서들이 실려서 듣는 사람에게로 옮아가게 된다. 이와 같은 모방은, 언어학습기의 아이들에 있어서는 '감각적 사고에 의한 되돌림으로서의 언어적인 반영'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림 l은, 감각적 사고가 직접적인 자극으로서 모방을 수반하는 언어적 사고를 일으키는 말미암음이 됨을 표현한 것이다. 근원적으로 언어는 행위이며, 행위는 자극과 반응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면 모든 언어가 꼭 상사형 표상, 곧 실물 반영에 해당하는 형태로만 이루어지지 않음은 어떻게 설명할 것 인가. 이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유추작용을 따라서 일어나는 속성의 전이로 풀이 하면 될 것이다. 구체적인 사물대상의 상사형 표상이 가장 기본적 틀이 되어 비가시적인 명제 표상들을 가능하게 하나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모방이라고 하여 한없이 많은 양의 모방이 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말의 경우 그것은 한정된 수의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지는 형태소, 일정한 언어운용의 고리들, 이들 형태소로 만들어지는 문장의 규칙 안에서의 모방이어야 한다. 그것은 모방의 결과가 언어 공동체 속에서 통용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언어학습기가 지나면서 모방의 단계는 가고 자기화의 단계가 이루어진다. 이 단계에 이르면 때때로 일어나는 복잡한 생각과 느낌을 언어적 상상력을 따라 명제 표상으로 바꾸어 놓게 된다. 모방의 원리는 앞에서 플이한 바, 분절과 유추작용의 질서를 포괄하는 일반성을 갖고 있다. 언어적인 모방은 곧 분절의 과정을 전제로 하며, 상사형 표상에서 추상적인 명제 표상으로의 언어적인 여과가 가능하려면 유추작용이 활발하게 밑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제주와 한라산 - 한라산 철쭉은 왜 붉은가 산이 높아 하늘의 은하수를 잡아당길 수 있다는 한라산. 이 두리뭉실한 산(무두산) 정상에는 사철 마르지 않는 천상의 샘이 있다. 이름하여 백록담, 매년 복날이면 하늘 선녀들이 내려와 이 못에서 목욕을 즐긴다고 한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으니, 한라산 산신령도 선녀의 목욕 장면만은 외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해마다 이 날이면 산신령은 북쪽 방선문으로 나가 목욕을 끝내고 귀환하는 선녀들을 배웅하곤 했는데, 한번은 너무 서둘러 나간 탓에 그만 선녀들이 옷 입는 장면을 보고 말았다. 산신령인들 별 수 있으랴, 아리따운 선녀의 벗은 몸매에 그만 넋이 나갈 수밖에. 알몸을 보인 선녀들은 수치심에 몸을 떨었고, 그 보고에 접한 옥황상제는 한라산 신령에게 치한이라는 낙인과 함께 흰사슴으로 변신케 하는 벌을 내린다. 백록은 흰 사슴이란 뜻으로 지금도 해마다 복날이면 사슴 한 마리가 구슬피 울면서 이 못가를 서성거린다고 한다. 단 한 번의 실수가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 줄이야. 한라산 윗새오름에 서면 벌써 한라 특유의 숨결이 느껴진다. 사슴으로 전락한 산신령의 회한의 울음인가, 능선 위 갈잎을 스치는 바람소리는 애절한 휘파람 소리를 닮아 있다. 제주는 섬 전체가 한라산 하나로 형성된 만큼 예로부터 산신령의 위세가 대단했다. 사슴으로 전락하기 전 신령의 위세는 녹도나 용두암의 지명전설에서도 잘 드러난다. 언젠가 이 산에서 사슴 사냥을 하던 사냥꾼이 활을 잘못 쏘아 신령의 엉덩이를 맞히고 말았다. 그토록 위세당당한 신령이 가만히 있었을 리 만무하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신령은 산봉우리를 뽑아 무엄한 사냥꾼을 향해 던졌다. 사냥꾼이 거기에 맞아 즉사했음은 물론이요, 그때 봉우리가 뽑힌 자국이 지금 서귀포 앞 바다에 떠 있는 녹도(흔히 "문섬"이라 부름)가 되었다던가. 예로부터 제주는 여인의 섬이라 했다. 숫자도 많을 뿐 아니라 억세고 질기며 대단히 위대한 존재로 부각된다. 한라산을 달리 불러 여장군이라고도 하는데, 생긴 모습부터 여성적이며 그 품 또한 넓고 포근하기에 이르는 말이다. 슬하에 무려 5백명의 아들을 둔 여인이 한라산 서쪽 능선에 살았다. 고기 잡으러 바다에 나간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 하루는 큰 가마솥에 해파리 죽을 끓이고 있었는데 마침 신고 있던 돌나막신이 미끄러지면서 그만 펄펄 끓는 죽 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밤늦게 돌아온 아들들은 이런 사정은 모른 채 허겁지겁 죽부터 퍼먹기 시작했다. 배고픈 장정 5백명이 한꺼번에 덤벼들었으니 오래 갈 리가 없다. 순식간에 솥 밑바닥이 드러났고, 아들들은 거기에서 어머니의 나막신을 발견하고 놀란다. 어머니를 찾아보기도 전에 허기부터 채운 자신들의 경솔함을 뉘우쳤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결과적으로 어머니의 시신을 먹게 된 자식들은 통한의 눈물을 뿌리며 그 자리에서 자결하여 모두 돌로 굳어져 갔다.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법하던 인도의 영취산을 닮았다는 영실의 오백나한상 또는 오백장군상에 얽힌 아주 슬픈 전설이다. 이 부근에서 피는 철쭉이 유독 검붉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 한다. 5백명의 아들을 거느렸다는 영실기암의 전설보다 한라산 동쪽에 사는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과장이 더 심하다. 어느 천지에 이 할망보다 더 큰 사람이 있을까. 키가 한라산 만하다는 이 할망의 위력은 현대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어느 날 할망이 한 발은 성산 일출봉을 디디고 한 발은 식산봉을 디딘 채 쪼그리고 앉아 시원하게 오줌을 쌌더란다. 그런데 그 오줌발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섬 일부가 떨어져 나가 성산포에서 백여 리나 떨어진 우도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이기를 성산포 부근의 조류가 유독 급한 것도 할망의 오줌발 탓이라고 하니 과장도 이만하면 메가톤급 이라고 할까. 한라산 철쭉이 유독 붉은 이유는 이 섬에 절부나 효부 전설이 많은 탓이기도 하다. 절세미인 산방덕의 이야기는 제주 여인의 절개를 대변한다. 요즘은 제주도로 여행 온 신부는 이곳 산방굴사 약수샘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정성껏 받아 마신다. 이 물이 산방덕이 낭군을 그리워하며 흘리는 절개의 피눈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쪽 해안 외돌개의 할망바위도 절개의 표상이라는 점에서 절부에 포함시킬 수 있다. 고기잡이 나갔다가 죽은 하르방을 기다리다가 선 채로 돌이 된 할망은 시신으로 떠오른 하르방바위를 지금도 절망적인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산방덕 여인이나 할망 바위의 망부사는 옛날 이야기라 해도 차귀도가 건너다 보이는 용수리 해안의 절부암은 불과 150년 전에 실존했던 전설이다. 제주섬에 흩어진 절부 전설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라고 할까. 이곳 해안 용수리에 살던 고씨는 대나무를 구하러 차귀도에 갔다가 배가 전복되는 바람에 실종되고 말았다. 당시 열아홉 살이던 고씨의 아내는 남편의 시신을 찾지 못하자 절부암 옆에 있는 나뭇가지에 목을 매서 남편의 뒤를 따른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내가 죽은 바위 밑으로 남편의 시신이 떠올랐다는 것인데, 여필종부의 정신을 온몸으로 보여 준 부덕에 바다의 용왕도 감복한 것일까. 금년 봄에도 세찬 바닷 바람속에 한라산의 철쭉은 피어날 것이다. 이 철쭉이 유독 붉은 이유를 흰 사슴의 회한의 눈물에서, 또 제주 여인의 절개에서 찾아야 할 것만 같다.
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해남과 두륜산 - 종착지가 아닌 시발지 한반도의 서남단, 백두대간의 지맥이 흐름을 멈추는 해남반도의 남단을 땅끝, 곧 토말이라 부른다. 땅끝이라는 말이 주는 이미지, 또는 김지하 시인의 "애린"탓만은 아니다. 땅끝이라면 곧잘 끝장이라는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더 이상 갈 수 없고 더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절대절명의 공간, 그래서 해남땅은 지금까지 체념과 무관심의 땅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끝은 달리 생각하면 시작이 되기 때문에 해남은 우리 문화의 시발지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옛날 이 반도는 제주도를 비롯한 중국과 인도로의 뱃길이 열려 있어 불교를 비롯한 남방문화의 유입로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땅끝이라 하여 지맥이 여기서 끝난 것도 아니다. 소백 산맥이 이곳 사자봉에서 호흡을 멈춘 듯하지만 기실 바다로 숨어들어 그 맥이 제주의 한라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지역 문화 유산에 대한 평가도 재고해 볼 여지가 있다. 흔히 해남을 중심으로 이웃한 강진, 완도, 진도 등을 뭉뚱그려 유배 문화권이라 한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꽃피운 시가문학, 민요, 판소리, 회화등의 예술을 두고 내몰린 자들의 절박한 심성에서 우러난 산물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고 본다. 땅끝의 공식 지명은 갈두리다. 이곳에 칡이 많아서인지 사자봉 형세가 칡을 닮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떻든 칡꼬리가 아닌 칡머리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풍수설에 회룡고조라는 말이 있다. 천리 길을 달려온 산맥이 머리를 돌려 그 근본을 돌아본다는 뜻이다. 한반도에서 갈라져 나온 머리, 곧 갈두리 선착장 끝에 매달린 "맴섬"을 맴돌면서 이 말의 뜻을 음미해 본다. 과도에 씻긴 바위섬이 빙글빙글 맴도는 듯한 형상, 지구가 둥글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맥의 시원인 백두산을 되돌아보는 형상으로 새기고 싶다. 멀리 신라 때의 일이다. 돌 배(석선) 한 척이 홀연히 달마산 아래 사자포에 닿는다. 이 돌배는 사람들이 다가서면 멀어지고 돌아서면 다시 다가오기를 수십 차례, 결국 의조를 비롯한 수도자들의 간절한 기원으로 포구에 닻을 내린다. 배에는 황금빛을 발하는 금인과 금합에 쌓인 불경, 나한, 탱화와 함께 소 한 마리가 타고 있었는데, 이 소가 스스로 머무는 곳에 절을 지으라는 부처님의 계시를 받는다. 경전과 불상을 등에 실은 소는 달마산 중턱에 이르러 한 번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걷다가 큰 울음과 함께 두 번째 넘어진 곳에서 영영 일어서지 못한다. 계시에 따라 처음 넘어진 곳에 통교사를 짓고 두 번째 넘어진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 꿈에 계시를 준 금인의 황금색과 마지막 순간 소의 울음이 아름답고도 처량하였기에 절이름을 미황이라 지었다던가. 미황사의 창건설화는 금강산 오십삼불설화와 유사한 데가 있다. 또한 남방 불교의 해로 유입설을 뒷받침한다는 면에서 가야국 수로왕의 허왕비 도래설과도 일맥 상통하는 바가 있다. 돌배에 금인, 소, 용, 물고기등의 일치가 결코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 여행만으로는 남도의 아름다움을 체감하지 못한다. 발로 걸을 때, 특히 미황사를 안고 있는 달마산 능선을 종주해 보아야만 남도의 풍경을 비로소 만끽할 수 있다. 선의 비조 달마의 울통불퉁한 상호를 닮았음인지 날카로운 톱니, 그보다는 공룡의 등뼈와 같은 바위 능선을 따라 북으로 오르면 한결 펑퍼짐한 산줄기를 만난다. 이름하여 두륜산, 흔히 대흥사로 알고 있는 대둔사는 이 두륜산의 둥글고 넓은 품 안에 안겨 있다. 두륜은 때로 두둔으로도 불리는데, 이 두 한자 이름은 둘러쳐진 큰 산이라는 뜻의 고유어 "한듬(또는 "한둠")"에서 유래하였다. "한"은 크다(대)는 뜻이고 "듬(둠)"은 둥글게 감싸고 있는 산골(두메)을 이름이다. 어떤 이는 두륜산이 백두산의 두와 중국 곤륜산의 륜을 따온 것이라고 하나 두륜은 그저 둘러쳐진 산이라는 뜻의 고유어일 따름이다. 대둔사도 본래 "한듬절"이라 불리었다. 두루두루 갖춘 산인 두륜산에 안긴 한듬절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천불전에 안치된 1천개에 달하는 작은 불상들이다. 저마다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천불은 언제, 어디서,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승 불교의 가르침을 눈으로 보여준다. 녹차 향기를 따라 두륜산 중턱에 오르면 대둔사에서 반시간여 거리에서 초가 지붕을 머리에 인 일지암을 만난다. 비록 작은 초가 정자일지라도 풍기는 녹향은 보통 깊은게 아니다. 어디 다향뿐이랴. 혜장선사가 다선일미를, 강진 귤동에서 귀양살이하던 다신이 실학과 천주학을, 천하 명필 추사 금석학과 서지학을 강론하던, 그야말로 묵향까지 짙게 밴 곳이다. 그러나 정작 이 정자의 주인은 팔십 평생 풀옷 입고 풀잎 향내를 맡으며 입적했다는 초의선사다. 한국 녹차의 다성으로 불리는 이 스님은 일지암에서 40여년간 오직 차를 벗하며 독처지관했다지 않은가. 해남은 또 한분의 문화 인물 고산 윤선도의 시가 향기를 맡을 수 있어 좋다. 연동리의 녹우당에서는 지금도 고산의 체취를 느낄 수 있으며, 보길도의 부용동에서는 "어부사시사"가 흘러 나오고 있다. 해남과 강진을 유홍준 교수는 남도 답사 1번지라 하여 여정의 첫 손가락에 꼽았지만, 어디 남도뿐이랴. 전국 답사에서도 땅끝은 여행의 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동래와 영도 - 새울이뫼에서 고마뫼로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은 동래에서 비롯되었고 동래는 금정산 자락에서 유래되었다. 금정산은 태백의 줄기가 남으로 뻗어 내리다가 동남단 해안에서 멈춘 부산의 진산이다. 이 산에는 국내 최대라는 금정산성이 건재해 있고 산자락에는 유서깊은 대찰 범어사가 자리하고 있다. "동래현 북방 20여리에 금정산이 있고 그 정상에 우물이 있다. 둘레가 십여척이며 깊이가 일곱치에 이른다. 항상 마르지 않으며 물빛은 황금색으로 빛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금빛 물고기 한 마리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 우물에서 놀았다 하여 산 이름을 금정이라 하고, 또 이로 인해 절을 짓고 이름을 범어사로 하였다." 옛 문헌에 전하는 금정산과 범어사의 유래에 대한 기록이다. 이 산에는 "금샘"이라는 바위샘이 있는데, 비록 금빛 물고기는 없으나 지금도 언제나 물이 고여 있다. 산이름의 기원이 된 금샘을 찾는 길은 한나절은 족히 걸리는 멋진 산행이다. 범어사 동편 산록에 계명봉이라 불리는, 삼각형의 가파른 산봉우리가 솟아 있다. 가을이면 금정산에서 가장 현란하게 단풍으로 장식되는 범어사 경내의 암자인 계명암 일주문 앞에 서면 멀리 부산 앞바다의 풍경이 펼쳐진다. 암자 스님의 말에 의하면 이곳 계명봉에서 대마도를 바라보면 섬이 마치 지네처럼 보이고, 반대로 대마도에서 이곳을 보면 닭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 이름조차 자웅석계라 적은 문헌도있다. 지네와 닭은 자고초 천적사이니 대마도에 사는 왜인들이 닭 형상의 계명봉을 좋게 볼 리 만무하다. 오늘날 자웅석계가 본래의 모습을 잃은 것은 일제 때 왜인들이 이곳 암탉 바위를 훼손 했기 때문이라 한다. 계명은 닭울음이란 뜻이다. 사찰 연기설화에 따르면 옛날 의상조사가 절터를 물색하던 중 이 산속에서 한밤중에 난데없는 닭 울음소리를 듣고는 그곳에 암자를 지어 계명암이라 이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닭 형상이나 연기설화에서 말하는 닭울음은 한낱 전설에 불과하며 지명의 본뜻을 푸는 데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계명산을 전래지명에서는 "새울이" 또는 "새얼이" 라고 한다. "새울"은 동쪽에 있는 새 우물이라는 뜻이다. "새"는 동과 신을 아울러 뜻하난 우리말이다. 또한 "얼(울)"은 샘을 뜻하는 말로서 현용어 우물은 "울"과 "물"의 합성어이다. "닭 계"는 "새 조"와 통하는 한자이고 여기에 울 명이 첨가되었으니 계명은 고유어 "새울"을 차훈표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보면 계명뿐만 아니라 금정, 나아가 동래라는 지명까지도 모두 이 "새울"의 차자표기임을 알 수 있다. "동래부지"에서도 새울이를 동신서라 적고, 이 산에 효의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이곳 지명의 뜻을 푸는 데 참고가 된다. 계명산에서 보면 영도섬의 동쪽 해안이 그림자처럼 보인다. 영도는 한자말 그대로 해석하면 "그림자 섬"이다. 그러나 본 이름은 절영도 곧 그림자가 끊어진 섬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첫음절 "절"이 말 그대로 끊겨 나가 지금의 영도가 되었다. 이 섬에는 예로부터 말을 키우던 목장이 있었다고 한다. 가까운 조선조에는 나랏말(국마)을 키웠기에 한때 목도라도고 불렀다. 그런데 목도에서 기르는 말 가운데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명마가 있어서 절영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 천리마는 얼마나 빨랐던지 한번 달렸다 하면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여 이런 이름을 얻은 것이다. 말의 그림자가 끊어진 섬 절영도에서 동남쪽 백여리 쯤 떨어진 곳에 희미한 윤곽과 함께 이국의 섬 대마도가 보인다. 영도에서 기르던 천리마가 달려간 섬 대마도는 지금은 우리와 인연이 끊긴 일본땅이지만 대마라는 이름부터가 결코 예사롭지 않다. 대마도는 말을 키우던 목도와 마주 보고 있는 섬이라는 뜻으로 지명의 명명 주체가 우리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대마도를 "가라섬"이라 부르는 분도 있다. 말의 원산지 몽골어에서 검은 말을 "가라말"이라 하는데, 이 말이 우리나라를 거쳐 그곳까지 전해진 것이다. 그 옛날 한자나 말은 모두 우리가 전해 주었으니 섬이름도 우리가 지어 준 것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태종대의 자살 바위 위에 모자상이 서 있는 전망대에 서면 왼편으로 오륙도가 또렷이 들어온다. 부산의 상징이자 부산시의 문장으로도 쓰이는 오륙도를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조용필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며 옛날 식민통치시절의 향수를 달랜다는 일본일들에게, 또 툭하면 독도가 저희 땅이라는 식의 망언을 늘어 놓는 일본 정부의 각료들에게 절명도와 마주한 대마도가 원래 본래는 우리 땅이라고 우겨 보고 싶은 충동 말이다. 부산의 시원지 동래는 개화기 부산포의 개항과 함께 도심을 용두산 밑으로 옮기게 되었다. 옛 지명으로 말한다면 새울이뫼에서 가마뫼 또는 고마뫼(뒤쪽의 산이란 뜻)로 무대를 넘긴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도심은 뒷산으로 옮겨 갔지만 동래의 금정산은 여전히 부산의 진산으로 남아 있다. 또 산 정상에 있는 금샘도 여전히 마르지 않고 항상 새롭기만 하다.
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마산과 무학산 - 가고파의 바다가 보이는 마잿골 마산 앞바다에 그림처럼 떠 있는 작은 섬을 돋섬이라 부른다. 이 섬을 가리켜 오리가 먹이를 구하는 형상이라고도 하고, 돼지가 드러누운 형상이라고도 하나 항구 어느쪽에서 보아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마산항의 진주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아름다운 섬을 두고 하필이면 왜 돼지섬이라 부르게 되었을까? 옛날 가야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진가야의 왕에게 귀여운 공주(일설에는 후궁)가 있었는데 불행히도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골포(마산의 옛 이름) 앞 바다의 섬에 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부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 섬에서 공주처럼 보이는 미희가 웬 노파의 피리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노파는 마귀할멈이라고도 하고 지리산의 마고선녀라고도 했다. 어떻든 정보를 입수한 왕은 군사를 풀어 그 할멈을 잡고 공주를 구출해 오라고 명한다. 수많은 군사가 섬에 올라 포위망을 좁혀 가자 춤추던 공주는 돌연 금빛 돼지로 변하고, 피리 불던 할멈은 한줄기 연기로 화하여 무학산 정상의 바위 틈새로 사라졌다. 공주 구출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아리따운 공주가 일순 돼지로 변하다니, 현장에 달려온 왕은 자신이 손수 걸어준 조개 껍데기 목걸이가 돼지 목덜미에서 발견되자 그만 경악하고 만다. 이 일이 있은 뒤, 왕은 이 섬을 돋섬이라 명명하고 공주의 화신인 돼지가 편안히 살 수 있게 사람의 접근을 금하며 먹이감을 충분히 넣어주도록 배려했다. 그러나 돋섬은 이후로도 평안하지 않았다. 밤이면 돼지 울음소리가 요란하고 괴이한 광채가 밤새 섬주변을 맴돌았다. 그런데 이런 괴변은 대학자 최치원에 의해서 말끔히 해결된다. 당시 해변에 월영대라는 정자를 짓고 기거하던 최치원이 섬을 향해 활을 쏘았더니 울음과 광채가 멎었다고 한다. 이튿날 섬으로 건너가 화살이 꽂힌 곳에서 제를 올렸더니 다시는 그런 괴변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쪽 바닷가 마산은 물 좋고 따뜻한 항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십리 밖에서는 눈이 펄펄 내려도 이곳 마산 포구는 주룩주룩 비가 내리며, 무더운 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고 한다. 이는 오로지 마산의 진산인 무학산이 북풍을 막아주기 때문이란다. 봉우리의 형세가 학이 춤추듯 펼쳐져 있다고 하여 최치원이 무학이라 명명했다고 하는데, 확인할 길은 없고 다만 일제 때 일인들이 지은 이름이 아닌가 한다. 문헌상으로는 이 산을 두척산이라 적었는데, 두척은 큰 고개라는 뜻의 고유어 "마루재(준말로 마재)"를 차자표기한 것이다. 지금도 마을 이름에 두척동이 남아 있고 현지인들은 이를 "마잿골"이라 부른다. 따라서 현 지명 마산도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마산이라는 지명과 말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고려 때 몽골 군사가 이곳까지 들어와 왜구 정벌의 전초기지, 곧 정동행성을 설치했다고 하니 말도 함께 들어왔을 법하다. 그러나 그 이후로 말과의 인연은 끊어졌고, 또 이곳 지형에서 말을 닮은 곳도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마산의 마 자는 마루재, 마재의 "마"를 단순히 차음표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개항 백년의 마산은 그 역사가 짧은 만큼 유적이나 유물도 별로 많지 않다. 신라 때 고운 최치원이 후학을 가르쳤다는 월영정이나 고려 때 몽골 군사가 물을 마셨다는 몽고정, 조선시대 서원의 모습을 보여주는 관해정등이 고작인데, 그것마저도 잘 보존되지 않은 실정이다. 유물, 유적은 적으나 마산은 예향이라 부를 만큼 노래와 시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산호 공원에 "시의 거리"를 조성하여 10여개에 이르는 이 고장 출신 시인의 시비를 세워 놓았다. 뿐만 아니라 여객선 터미널에 "반야월 노래비" , 역 광장에 "선구자 노래비"등도 외래인들의 눈길을 끈다. 이 고장에서 태어난 노산 이은상은 타향을 전전하며 그렇게도 남쪽 바다 그의 고향을 "가고파" 했고, 출생지는 아니지만 이곳을 고향 이상으로 여긴 아동문학가 이원수는 동요의 고전 "고향의 봄"을 이 곳에서 지었으며, 또한 40여 년을 이 고장에서 살아 온 작곡가 조두남은 민족의 노래 "선구자"를 작곡하여 3, 15의거를 일으킨 이곳 마산 시민의 혼을 기렸다. 마산은 문화제가 적은 만큼 작은 전설 하나라도 현실로 만들어 놓는다. 무학산 중턱, 신마산에서 예곡동 감천골로 넘어가는 산마루에 "만날 고개"가 있고, 이 고개에 얽힌 전설을 상기하여 오늘날까지 그 일을 되새기고 있다. 만날고개는 먼 옛날 가난한 집 맏딸이 고개 너머 부잣집의 장애인에게 시집간 뒤 친정 가족과 극적인 상봉을 이루었다는 곳으로, 지금도 그 날이 오면 감천 사람들이 이 고개에서 만나 각자 준비해 간 음식과 함께 인정을 나누는 일이 지역 행사로 정착되고 있다. 노산 선생만큼 고향의 푸른 바다를 그리워한 마산인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그가 태어난 집, 그가 뛰놀던 동산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아 아쉬움을 준다. 집은 이미 허물어지고 그의 부모가 아들의 출생을 기념하기 위해 팠다는 "은상이 샘" 만이 폐정이 된 채 버러져 있다. 그가 뛰놀던 동산, 곧 노비산은 이제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였다. 예전에는 백로가 날아와 온통 산을 하얗게 뒤덮었던 노비산에 이제는 백로도, 제비도 날아오지 않는다. 이를 미리 예측이나 한 듯 선생은 "날 비"를 빼고 노산만을 자신의 호로 삼았던 게 아닐까. 노래말 그대로 내 놀던 옛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