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3. 생명의 말미암음 집과 수풀 집도 절도 없나. 거처하는 집이나 재산도 없이 이리저리로 떠돌아 다니는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다. 목숨살이 모두에게 집이란 늘 안식과 희망의 샘터가 된다.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나 짐승들의 보금자리 혹은 겨레붙이의 한 떼나 물건을 담아 두거나 끼워 두는 그릇을 싸잡아 이른다. 보금자리는 특히 새들이 깃들이는 둥우리를 가리키며 지내기가 매우 포근하고 아늑한 장소를 뜻하기도 한다. 옛 적에는 우리들의 한아비들이 바윗굴이나 나무숲 같은 데에서 살았다고 한다.마치 여우나 새가 굴 또는 둥지에서 살아 가듯 말이다. 중국의 자료에서 한민족-동이들은 여름에 둥우리 살이, 겨울에는 굴살이를 했다고 적고 있다(진서(辰書)등). 거리에 따라서는 조금씩 다르기는 하다. 심지어 굴의 깊이가 아홉개의 사다리가 들어 갈 만큼의 깊고 큰 무덤과 같은 집이 있었다고 한다(삼국지). 여기서 잠시 새들이 사는 둥지와 같은 보금자리에서 살았다는 데 유념해 보자. 하긴 숲속에서 먹거리로서 열매며 옷감으로서 실오라기는 물론이요, 집 삼아 나무 위에서 살며 살아있음의 가능성을 키워 나아갔을 법하다. 소리상징으로 보아 집과 숲의 걸림은 없는 것일까. 있다면 소리의 질서는 어떠한 것인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흔히 밭에 풀을 맬 때 '김'을 맨다고 하며 밥상에 놓는 바다풀은 '김'이라 한다. 먹는 것이나 매서 뽑아 버리는 것이나 모두 풀이 되기는 한 가지이다. '김'은 '기음'의 줄임말이다 그럼 '기음'은 어떤 소리에서 바뀌어 온 것일까. '김(草)'을 사투리말로 '기음·기임·기심·지슴·지섬·지심·짐'으로 소리 내는 일이 있다(최학근(1987) 한국방언사전 참조). 사투리말의 보기 가운데에서 '기심'이 상당한 실마리를 준다고 본다. 시옷이 모음 사이에서 약해져 떨어지면 '기임'이 되고 한 소리마디로 되면 '김'이 된다. 이 때 모음이 길어지는 기움현상이 일어남은 보편적이다.'기심'의 경우 '깃'에서 갈라져 나온 갈래말이 아닌가 한다. 하면 '깃'은 무얼 가리키는가. 새가 깃들인다고 할 때의 '깃'은 곧 보금자리이다. '깃'은 '굿-곳'의 또 다른 형태로 같은 낱말의 겨레들이다. 더 좁혀서 살피자면 '깃-긷-길'은 같은 계열에 따라 붙는 말임은 물론이요, 소리와 뜻이 함께 걸림을 보이는 보기들이다. 옛말글 자료를 보면 '긷(내훈(서)4)'은 오늘날의 기둥을 드러낸다. 아울러 '깃'이 기둥 위의 어느 곳에 만들어 놓은 둥우리-보금자리라 하면, '길'은 보금자리로 통하는 통로를 이른다. 사람의 말을 잘 듣도록 짐승을 가르치는 일을 '길 들인다'고 한다. 보금자리로 들자매 오고 가게 마련이요, 오고 가니까 낯이 익게 되어 있다. 하기야 나쁜 일도 한두 번 길이 들면 자꾸 하게 되니까 말이요. 지렁이도 그 나름의 길이 있듯이 겨레들만이 잘 알고 눈에 익은 길이 있다. 서로가 사는 길이 다르면 공동체가 아니듯이 생존을 위한 수단이나 그릇으로서의 길이 없으면 살아 남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김-집'의 걸림을 떠 올려 본다. 집은 '김'에서 말미암음은 것으로 보인다. '김'이 입천장소리되기를 따라 '짐'이 되며 이는 다시 받침이 바뀌어 터지는 입술소리로 되면 '집'이 되지 않는가. 중세말에서 '집'은 '사는 집·풀짚'의 뜻으로 쓰이다가 뒤로 오면서 서로 독립된 말 '집(家)-짚(지푸라기·볏집등)'으로 쓰이게 된다. 집은 숲이 뿌리 마침내 '짐-집-짚'은 '깃'에서 비롯한 낱말들의 겨레로서 숲-풀에다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새가 깃들이다'뿐만 아니라 '집을 짓다'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깃'이 입천장소리로 되면 '짓'이 되니 모두가 나무와 숲을 전제로하는 숨은 뜻이 있음을 알아 차릴 수 있다. 중세어에서 '깃깃다(둥지를 틀고 살다)·깃다(풀이 무성하다)'가 되는데 이 또한 '집'과의 걸림을 보이는 경우들이다. '김'은 짐-집-짚으로 발달한 한편, '김-깁-깊'으로도 새끼를 쳐 나아간 것으로 짐작이 간다. 비단으로, 집 지을 때 쓴 재료를 일러 '깁'이라 한다. 한자어로 급(級)이 있기는 하다. 본래 우리말 '깁'과는 구분해서 써야 된다. 형용사 '깊다'의 '깊'도 나무와 숲에서 멀리 있는 말이 아니다. 숲은 생명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희랍신화의 숲 이야기들은 거의 그러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의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그리 수고하지 않아도 살아 갈 수 있는 자연의 어우러짐이 깃든 곳. 이름하여 낙원이라 한 것이다. 먹고 입고 쉴 안식처가 있으매 더 무얼 바라랴. 그래도 일이 있어야 할텐데. 일하지 않는 이는 먹지도 말라 했으니까. 그건 우리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에서도 '소도(솟대)'가 그 좋은 보기라고 할 것이다.박달나무가 있는 숲속의 제단-소도. 해서 거룩한 얼안이요, 사람과 하늘 땅이 함께 교통하는 장소가 아니던가. 이름하여 신단수(神壇樹). 배달겨레가 말미암은 거룩한 숲이요, 나무이며, 겨레의 얼이 깃든 솟음터인 것이다. 먹거리의 샘은 숲속에서 풀의 열매로부터 비롯된다. 나무와 숲으로 뒤덮힌 공간은 목숨살이들의 깃들임이 있다. 풀을 먹는 짐승은 말할 것도 없으며, 고기를 먹는 짐승 또한 같은 무리에 든다. 고기를 먹는 짐승도 근본적으로 풀 먹는 짐승을 먹이로 하는 고리사슬이 있으니까. 그 곳에는 흔히 얘기 하는 낭만이 있는 것만은 결코 아니다. 먹고 먹히는, 숨막히는 살아 남기의 싸움이 줄곧 일어 난다. 같은 나무 가지도 해를 받지 못하는 가지는 말라 죽듯이 적응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그 빛을 잃고 죽음의 누리로 갈래를 달리 하기 마련. 숲을 목숨이 깃드는 집이라면, 집은 우리의 몸과 얼이 함께 더불어 사는 보금자리요. 삶의 터전이 된다.
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3. 생명의 말미암음 옷이 날개인가 차라리 죽은 뒤에 범나비나 되오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가는 데 족족 앉았다가 향 묻은 날개로 임의 옷에 옮으리라 임께서 날인 줄 모르셔도 내 임 좇으려 하노라 ('사미인곡'에서) 애틋한 임의 옷에 들꽃같은 향내음을 드리워 주고 싶은 마음. 그것도 살아서는 안 되니까 죽어 벌나비가 되어서까지도 말이다. 이는 분명 삶과 죽음을 뛰어 넘는 속내 깊은 사랑의 살핌이다. 좋은 음식을 그럴싸 한 그릇에 담아 먹음은 있음직한 일이다. 무릇 모든 내용이란 특정한 형식에 담기게 마련. 윗글에서 임의 옷은 임의 한 부분이다. 임 자체는 아닐지라도 임을 떠올림에 뺄 수 없는 상징물이 되기에 넉넉하다. 실용 이상의 정서를 일으킴은 물론이요, 사회생활의 한 도구처럼 쓰이는 게 옷이다. 전통적으로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에서 벌거벗은 일을 생각할 수 있을까. 가령 논개나 춘향의 모습에서 단아하게 차려 입은 치마 저고리며 점잖은 선비에게서 의관을 빼어버린다면 이미 이야기가 되질 않는다. 말 그대로 옷이 날개인가 보다. 옷의 모양이나 빛깔에 따라서 사회적인 신분이 다르고 나이나 성의 구별이 뚜렷해 지질 않던가. 군인은 군복, 학생은 학생복,무당은 활옷, 사제들은 사제복, 승려들은 가사장삼의 승복, 옛적 임금은 곤룡포 등 옷은 바로 그 옷을 입는 사람들의 신분과 취향이나 같은 집단의식의 상징으로서 쓰여 왔다. 옷이란 무엇인가. 옷이란 말의 뜻바탕과 그 말의 겨레들에는 어떠한 형태들이 있는지를 더듬어 보도록 한다. 중국의 자료이긴 하지만 우리의 옷에 대한 기록이 보이는 것은 꽤 오래다. 삼국지에 이르되 '공식적인 모임에 입는 옷은 금과 은으로 장식하였다.'고 하여 고구려의 복식에 관한 풀이를 하고 있다. 흔히 금관조복이라고 하거니와 제도적으로 품계에 따라서 그 빛깔은 물론이요, 장식품이 달랐다. 이를테면 사대부의 대표라 할 문관은 학의 무늬를 놓은 띠를 했으며 싸움을 지휘하는 무관은 호랑이 그림을 놓은 호대(虎帶)를 띠었다. 또한 양서(梁書)에서는 백제의 말에 대하여 적고 있다. 백제의 말은 거의 고구려와 같았으니 모자는 관(冠)이라 했고 소매는 복삼(複衫)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신라에 대하여는 같은 책(양서)에서 몇 개의 말을 들어 보인다. 신라의 말은 백제와 비슷하다. 모자를 고깔(遣子禮)로, 소매를 우개(尉解)로 적었다. 소개한 자료로 볼 때 오늘날의 '옷'은 우선 신라어 계통의 우개(尉解)에서 비롯하지 않았나 한다. 이렇게 볼 수 있는 바탕은 무엇일까. 문헌자료가 없는 때의 말의 형태는 시골말을 통하여 재구성을 하는 일이 있다. 이를 일러 내적 재구성이라 한다. 그 대립 개념으로서는 같은 친족어로 보이는 말들과의 맞걸림을 통하여 알아봄이니 흔히 외적 재구성이라 이른다. '옷-우개'의 경우 내적 재구성의 방법으로 우리말에서 그 속사정을 따져 보기로 한다. 같은 말이라도 쓰이는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서 조금씩 소리가 다를 수도 있으며 심하면 뜻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옷'의 경우는 어떤가. 김형규(1986)의 한국방언연구를 보면 '옷'의 사투리말은 아주 다양하다. '옷'은 전 지역에서 쓰인다. 그 밖의 우티(경기·강원·평남) 우테(황해·평님) 오트이(황해·연안·해주) 우트이(함경·황해·경기 일부·강원일부)와 같은 시골말들이 쓰여 왔다. 그럼 이 말들과 '옷'은 어떻게 맞걸리는 걸까. 중세국어에서 위·아래의 '위'는 '우'였으며, ㅎ종성명사의 특징을 드러낸다(석보상절 등). 하면 우테의 경우, '우(ㅎ)'에 '데'가 붙어 거센소리되기가 일어 났으니 우(ㅎ)데→우테가 된 것으로 보인다. 다시 '테'가 혀앞소리가 되면 '티'가 되어 결국 '우티'가 되지 않겠는가. '옷'의 방언형태 가운데 '우티'가 쓰였는데, 하면 '옷-우티-우개' 같은 말을 뜻한단 것일까. 그렇다면 그리 상정할 수 있는 말의 질서는 어떻게 되는가. 그러면 위(上)의 옛말 '우(ㅎ)'에 대한 방언의 형태는 어떠한지 또 이들 형태 중에서 '우개'와의 걸림은 어떤가에 관하여 더듬어 보기로 한다. 지역에 따른 말의 분포를 보면 위(전지역) 우(전지역) 우이(김포) 우그(익산·부안·고창·정읍)우구(전주) 우게(전라도)의 말들이 쓰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그-우게' 특히 '우게'는 옷의 글말인 우개(위개)와 같은 형태라는 암시를 얻기에 충분하다. 우개의 '개'에서 모음이 바뀌면 바로 '우게-우그(우구)'와 같은 형태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해서 우-우개(우게·우그·우구)-옷이 맞걸리니 마침내 '옷'이란 말은 '위(우)'란 등식이 이루어진다. 먼저 우-옷의 형태가 다른 것은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따져 보자. ㅎ종성명사의 ㅎ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서 변해가는 과정을 보면 여러 형의 소리(ㅎ-ㅅ-ㄱ-ㅇ)로 바뀌어 윗말의 받침으로 녹아 붙어 쓰이기도 한다(살코기-셋·웃-바둑(바돌(ㅎ)→바ㄷ→바독→바둑)-땅·지붕(집우(ㅎ)→지부(ㅎ)→지붕)·요컨대 '우(ㅎ)→웃'이 되고 다시 모음이 바뀌게 되면 웃-옷의 형태가 서로 같은 '우(위(上))'를 뜻하는 말에서 갈라져 나왔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일본말에서 옷을 오스히(褶)라 하는데 우리말의 옷이 건너가 쓰인 가지말에 드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옷은 피륙과 천 따위를 몸에 걸침으로써 추위와 더위를 다스리고 몸뚱이를 가리기 위하여 사람이 입는 물건으로 풀이된다. 한마디로 옷은 몸'위'에 걸치는 것. 몸이 주인이라면 옷은 그에 딸린 따름붙이다. 옷 없이 살 수는 도저히 없겠지만 실로 거추장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옷은 살아감에 있어 사회적인 물리적인, 심미적인 바람의 주요한 부분을 메워 준다. 뿌리가 있으면 그 곳에서 말미암는 많은 가지와 잎새가 있기 마련. 위를 뜻바탕으로 하는 '옷'을 뿌리로 하여 갈라져 나온 말의 겨레로는 어떤 낱말이 있을까. '옷'의 낱말 겨레들 말이 갈라져 발달해 가는 틀로서 소리의 바뀜과 소리의 덧붙임과 줄이기 등이 있다. '옷'의 경우 어말자음 시옷(ㅅ)이 터짐갈이 소리 'ㅊ'으로 바뀌면 곧 '옻'이 된다. 칠하는 칠감 또는 살이 닿아서 가렵고 부어 오르는 피부중독을 이르는게 옻이다. 한데 중세어 자료를 보면 입는 옷이나 칠로 쓰는 옻이나 모두가 '옷'으로 적힌다(법화경언해·석보상절등). 같은 형태로 쓰이다가 칠이란 뜻으로 쓰이는 '옻'으로 새끼를 친 셈. 옻나무의 진은 검고, 옻칠을 해서 장식의 값어치를 더한다. 생각해 보면 장농에 입히는 옻칠도 끝내는 가구 붙이의 나무 '위'에다 입힌다. 마치 우리 몸 위에 옷을 걸치듯이 말이다. 볼거리로서 겉모양은 물론이요, 그 향긋함이며 옻의 독성으로 벌레가 장농을 해치지 않게 함은 우리 옛 선인들의 슬기라 하기에 넉넉하다. 피부병으로 '옻이 올랐다'고 할 때에도 옻이 옮음으로써 살갗의 위가 가렵고 부어 오르니 어떤 물체의 윗부분에 걸림을 둔 모습에 틀림이 없지 않은가. 옷과 걸림을 보이는 말겨레로는 '옷깃·옷고름·옷걸이·옷가슴(옷이 가슴에 닿는 부분) 옷매무시 ·옷감·옷공젱이(옷걸이의 한 갈래) 옷끈·옷단·옷섶·옷자락·옷잔치(패션쇼)옷주제(차림새)옷치레'와 같은 낱말들이 있는데 한자어로 이루어진 의(衣)∼계의 말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 난다. 한편 '옻'을 중심으로 하는 말에는 어떠한 낱말들이 있을까. 주로 옻이 앞에 오는 복합어의 보기가 많다. 예컨대 '옻기장(검은 기장) 옻그릇(옷칠을 한 그릇)옻나무·옻병·옻빛(검붉은 옻의 빛깔) 옻칠·옻칠하다·옻타다'와 같은 낱말들이 옻의 계열에 든다. 옷-옻과 함께 같은 말의 겨레에 드는 형태로는 '올'을 들 수 있다. 소리마디의 끝에서 '옷-ㅇ-올'과 같이 닿소리받침이 바뀐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ㅇ칠(구급방언해)옷칠(번역소학)올다(上)석보상절)). 동음이의어로서 실·열매·자람이나 익는 정도가 빠를 때 올벼에서처럼 '올'이 쓰인다. 실의 경우, 몸 위에 걸치는 게 옷이고 그 옷을 올로 짜는 것이니 모두가 몸 위에 걸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올벼에서와 같이 상대적으로 다른 풀이나 열매보다 앞서는 차례 곧 윗 단계라는 말이 된다.올다의 '올(上)'은 낮은 데에서 높은 곳으로 옮기는 웃자리 지향의 움직임을 드러낸다. 옷은 위요, 드러남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옷이 다 보이는 것만은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마음의 옷이므로. 겨레와 한 몸 되기 고난의 운명을 지고 역사의 능선을 타고 이 밤도 허위적 거리며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고지에 대한 그리움. 어느 날에 배달겨레의 그리움이 충족이 될 것인가. 머리의 글은 노산 선생의 '고지가 바로 저긴 데'라는 시조의 앞 부분이다. 겨레들은 한 조상에서 말미암는다. 해서 같은 피와 같은 먹거리와 믿음과 그리움을 운명이듯 이고 살아 온 무리들이다. 목숨살이의 과정에서 씨알보존은 하나에서 여러 갈래로 나누어 이루나니, 거꾸로 이르자면 갈래에 값하는 부분-개체들이 모여서 한 덩이, 한 몸을 이루었다고 하겠다. 씨족이라고 하는데 이는 같은 성씨를 가진 피붙이 무리를 이른다. 배달겨레-한민족은 단군에서 비롯하는 한아비의 핏줄을 이은 운명공동체로서 문화를 함께 누리고 끈질기게 살아 왔다. 역사의 능선을 넘어서 말이다. 겨레의 밑바탕은 갈라짐 곧 갈래에서 찾을 수 있다. 마치 산봉우리는 하나인데 물이 여러 곳으로 나뉘어 뭇가람을 이루듯이 한아비의 같은 핏줄이 많은 사람의 씨앗을 싹 틔워 낸다. 한아비에 값하는 게 몸이다. 몸을 '모으다(集)'의 파생명사라고 하였는바, 여러 개의 부분 조직들이 모이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몸이 아닌가. 결국 몸이란 겨레에서 겨레로 이어지는 겨레의 모음이 된다. 예술이 발달해 온 모습을 보더라도 종합예술에서 단일예술로 갈라져 나아간다. 이르러 민송무용(ballad dance)이라 함은 음악·미술·문학·무용이 한데 어우른 미분화 상태의 예술을 가리키는 것이다.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시대를 거슬러 오르면 종합문화의 성격을 띤다. 조금씩 다르긴 하나 부여계나 한계 모두가 비는 문화를 바탕으로 하여 나라가 이끌어진다. 부여에는 영고, 고구려에는 동맹, 예에서는 무천. 이름은 없으나 마한에서도 농사가 시작되고 마쳐질 때에 제의를 통한 생활의 가락을 매듭으로 하여 다스림이 이루어졌던 것. 이름하여 제정일치의 거룩한 스승문화 시대라고나 할까. 한 민족의 언어와 역사, 학문과 예술은 하나의 원형으로 풀이할 수 있다. 나중에 갈라져 나오긴 했으나 다른 겨레의 문화와 견주어 볼 때에는 같은 보람을 지닌 하나의 끈으로 묶임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금도 민법에서는 같은 성씨 끼리 결혼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민법 809조). 물론 아이를 낳음에 못난이가 출생할 확률이 있음도 한 원인이 되겠으나 그보다도 다른 씨족의 사람들과 혼인함으로써 더불어 하나되는 삶의 슬기를 제도화한 몸살이 구실에 중심을 두지 않았을까. 고조선의 단군신화에서 보여주듯이 곰신앙을 밑으로 하는 제의문화가 있었음은 널리 아는 일이다. 이른바 곰 토템의 삶이 오늘에 이르도록 소리상징에 되비치어 쓰이고 있다. 중세만해도 고마-곰은 경건하게 예배해야 할 흠모의 대상이었다. 삼국유사에서 보여주듯 한 굴에서 호랑이와 곰이 같이 살았으니 모듬살이로 보면 호랑이 토템의 겨레와 곰 토템의 겨레가 함께 살았으리라고 상정할 수 있다. 이 때 하늘로부터 환웅이라는 해우러름의 청동기문화를 지닌 강력한 세력이 나타난다. 마침내 사람이 된 곰은 환웅과 혼인을 한다는 것이니 이는 겨레 사이의 큰어우름이요, 더불어 섬에의 몸짓이 아닌가 한다. 한국 사람 성씨 가운데 가장 많은 겨레가 김(金)씨다. 김의 본디 소리는 금(金)으로 땅이름의 한자 대응관계를 보면 '금-검-감-어머니(母)'의 걸림이 드러난다. 하면 김씨가 곰 겨레의 정통을 이은 음상징의 거울이라고 하면 어떨까. 한 겨레가 다른 겨레와의 어울림을 마치 여러가지 영양을 골고루 받아 들여야 우람한 나무가 되는 것에 비길 수가 있을 것이다. 김(金)자를 한자의 뜻으로 보면 이는 쇠붙이 곧 청동기 문화를 지닌 해우러름의 알타이 겨레를 드러낸다. 본디 알타이(Altai)란 말이 쇠붙이를 뜻한다고 한다(aisin(金)(만주)). 방언형으로 보면 '쇠-새-세(쎄)'가 같은 쇠붙이를 뜻하는바, 나중에 새-해(日)의 형태로 바뀌어 쓰임은 암시하는 바가 크다. 앞에서 일렀듯이 '금'의 소리는 곰(검-금-감-굼)의 변이형 중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다. 여진족이 세운 12세기의 금(金)나라도 따지고 보면 백두산을 사이해서 북방의 곰 신앙을 시작으로 하는 곰 겨레가 아닐까. 이러한 풀이를 받아들인다면 한국인의 가장 많은 김(金)씨는 '금'씨로서 결국 곰겨레의 내림을 이은 겨레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면 단군신화의 곰(검-금) 토템겨레와 환웅계의 청동기 문화가 서로 녹아붙어 일군 자손들이라 하여 지나침이 있을까. '겨레'는 가지됨이니 낱말의 짜임을 보면 '겨레'는 '결'에 '-에(애)'가 녹아 붙어 되는데 이 때 기본은 '결'이다. '결'은 음절의 끝소리가 바뀐 열매로서 '겯-결-겻(ㄱ·ㄱ)'을 기본으로 하는 잔말겨레들임을 알면 '결'의 속뜻을 이해함에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받침의 바뀜을 따라 이루어진 형태들로서 받침에서 말음규칙을 따라 디귿(ㄷ)에서 발달했다. 밑소리되기를 떠올리면 [겯]이 기본형이 될 것이다. 오늘의 말에서는 거센소리를 거쳐 겯-곁이 되어 쓰인다. '어느 한 군데에 딸린 쪽 혹은 옆'으로 풀이되는바, 이를 바탕으로 하는 말에는 곁가닥(원가닥에서 갈라진 가닥)·곁가리(갈빗대 아랫쪽에 붙은 가늘고 짧은 뼈)·곁고름·곁간·곁군(일을 도와 주는 사람)곁길·곁눈·곁 따르다·곁두리(일 할 때 사이 참으로 먹는 음식)·곁말·곁매(제삼자가 싸움판에서 덩달아 치는 매)·곁붙이(촌수가 먼 일가)·곁사돈(친척의 사돈)·곁쇠(대용 열쇠)·곁쪽(가까운 일가)·곁콩팥 등의 말들이 있다. 중세어로 가면 겯권당(친척)(소학언해)·겯방(소학언해)·겯아래(겨드랑이 아래)(월인석보)와 같은 낱말들이 보인다. 날개 에서 '겨드랑이가 가렵다'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 겨드랑이도 팔 밑의 오목한 부분을 이르는데 몸에서 갈라져 나간 부분이란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말밑 '겯(傍)'에 접미가 '-으랑이'가 붙어 된 말이며 시골말로는 흔히 저드랑이로 소리를 낸다. 해서 혹 젖 옆에 붙어 있는 무엇인가 하는 재미스러운 생각을 할 수도 있을 터. '겯-결'의 걸림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받침에서 디귿(ㄷ)이 흘림소리되기를 따라서 이루어진 말의 갈래들이다. '곁'에는 여러가지 쓰임이 있다. 가령 나무결이라든가 때나 사이의 뜻을, 더러는 물결의 경우가 그러한 보기라고 하겠다. 이들 사이에는 어떤 맞걸림이 있는 것일까. 나무결의 경우,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이루는 상태나 무늬를 이른다. 알맹이는 굳거나 무른 조직이다. 그 조직체들이 몸이라면 무늬나 상태는 따라 붙는 더움 곧 곁이 아닌가. 겨를이 없다고 한다의 '겨를'도 마찬가지다. '결'에서 갈라진 말로 하는 일이 본이라면 나머지 부분이나 시간은 곁가지가 되는 것으로 보아 그 뜻의 걸림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럼 물결의 '결'은 어떤가. 마찬가지다. 파도의 높은 부분과 부분 사이에서 생겨나는 것이니 물이 몸이요, 그 움직임이 몸이라면 나머지는 따라 붙는 한 겨레에 지나지 않음에서다. 그럼 같은 계열의 겯-겻(ㄱ)에서 '겻(ㄱ)'의 겅우는 어떻게 풀이 할 수 있을 것인가. 겻(ㄱ) 역시 '겯'에서 갈라져 나아간 형태로 보인다. 중세어의 경우, 겻(ㄱ)과 함께 어울리어 쓰이는 말 가운데에는 '겯(곁)'과 서로 넘나 들어 쓰인 보기들이 상당수 있다 예컨대, 겻눈질(한청문감) 겻도라이(곁달아)(한중록) 겻조치일(곁 따른 일)(한청문감) 겻칼(장도)(청구영언) 겻셔다(角立하다)(법화경) 겻자리(옆자리)(청구영언)와 같은 말들이 그러한 보기들이다. 말의 받침에서 시옷이 말음법칙에 따라서 안으로 터지는 내파음 디귿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한편 받침에서 시옷이 터짐갈이를 겪으면 지읒(ㅈ)이 되어 입ㄱ의 'ㄱ'이 된다. 입ㄱ은 입ㄱ 또는 입ㄱ이라고도 적힌다. 한문의 글월을 오해 없이 읽게 하기 위하여 한문의 문장과 문장 사이에 붙이는 이음새 부분이다. 한문의 글이 몸이라면 몸에 달라 붙는 종속물이란 뜻이 아닌가. 이르러 조사나 어미에 값하는 이어감말들이 입ㄱ이다. 겨레는 한아비 곧 한 몸에서 갈라져 나와 이루어진 갈래를 밑바탕으로 한다. 흔히 말은 기본형에서 일정한 틀을 거쳐 더 많은 낱말겨레를 이룬다. 이르러 낱말의 가족이라고 한다. 조상의 얼은 겨레들의 핏줄 속에서 가지를 치고 꽃과 열매를 빚는다. 그 열매는 다시 한아비가 묻힌 이 땅 위에 떨어져 다시 태어난다. 고지에의 그리움을 안고서. 나뭇잎이 떨어져 그 뿌리로 돌아 가는 건 예나 오늘이나 같은 거지 뭐(落葉歸根). 뿌리를 알아야 한다. 겨레의 뿌리를.
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3. 생명의 말미암음 밥이 하늘 덜커덩 방아를 찧어서 거친 밥일망정 맛있게 지어 보세. 부모님께 드린후에 행여 남는 밥이 있으면 내 먹어 볼꺼나. 지은 때나 지은이를 알지 못하는 고려시대의 방아 찧는 노래(相杵歌)다. 열성으로 일을 해서 방아를 찧어 밥을 지어도 자신이 먹을 밥이 넉넉지 않음을 금새 알아차릴 수 있다. 밥을 하늘이라 한다. 금강산 구경이 좋기는 하지만 밥을 먹은 후라야 제 맛이 나는 법. 오늘의 세상살이와는 참으로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진다.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 때문에, 남아도는 오래된 쌀 관리 때문에 일천억원을 웃도는 돈을 써야 하지 않는가. 지금도 우리가 사는 지구 어디에선가는 먹거리가 없어 굶어 병들어 죽는 사람들 소식이 자주 신문에 오르내린다. 우리가 먹거리를 스스로 해결한 것은 겨우 이십여 년. 따지고 보면 쌀은 남아 도는데 남의 나라에서 많은 양의 먹거리를 사들여야 하니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정말 잘못이지. 시간을 거슬러 고려 중엽때의 문헌인 계림유사를 볼라치면 방아노래에서처럼 엄청나게 먹거리 곧 밥거리가 모자란 것으로 보인다. 논에서 벼와 함께 자라지만 잡초로 여겨 뽑아버리는 풀을 '피'라고 한다. 이 피로 물건 값을 정해 물건을 서로 바꾸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옛날에는 옥수수, 피, 벼, 수수, 호밀, 콩을 통틀어서 여섯가지 쌀이라 하였거니와 곡식의 낟알을 모두 쌀이라 하다가 지금은 벼의 열매껍질을 벗긴 알맹이만을 이른다. 이것만으로는 먹거리가 충족되지 않았을 뿐더러 정착하여 여름지이를 한 뒤에도 나무열매나 풀뿌리로 모자란 부분을 때워 나갔던 것이다. 나무열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밤'이라 하겠다. 삼국유사 권4에 전해오는 밤나무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원효의 어머니가 해산기가 있을 즈음 지금의 경산땅 불지촌이란 마을의 밤나무 밑을 지나다가 미처 집에 닿기도 전에 아기를 낳게 되었다. 남편이 밤나무에 옷을 걸어 막아주었다 하여 이 나무를 사라수(詐羅樹)라 했으며 열매 또한 이상하여 '사라밤'이라 불렀다. 이곳에 있던 절을 주관하는 사람이 절머슴에게 저녁 끼니로 밤 두개씩을 주었다. 절 머슴이 그 양이 적음을 관청에 알리자 관원이 이를 이상하게 여겨 그 밤을 가져다가 알아보았다. 밤 한개가 바릿대에 하나 가득 차므로 오히려 밤 한개씩만 주라고 판결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율곡(栗谷) 곧 밤골이라 하였으며, 원효가 집을 나온 후 그 집을 절로 삼아 초개사(初開寺)라 하고 사라밤나무 곁에 절을 지어 '사라사'로 부르게 되었다. 옛 사람들은 밤과 대추 복숭아 오얏 살구를 5과라고 불렀으며, [청산별곡]에서는 머루·다래를 먹고 살아가는 산 속의 삶을 부분적으로나마 드러낸다. 이 밖에 풀의 열매로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물론 여기서는 피와 벼를 빼 놓고 나무열매에 맞먹는 경우를 살펴보자. 삼국유사 권2에 보이는바, 저 유명한 [서동요]의 바탕글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고 서동은 늘 '마(저)'를 캐어다가 팔아서 생계를 이었다. 선화 공주를 사모한 나머지 머리를 깎고 서울로 와서 마을 아이들에게 '마'를 준 대가로 자신이 지은 노래를 따라 부르게 하였으니 이 노래가 바로 [서동요]다. '마'는 덩이뿌리로서 약용으로 쓰이며 뿌리에서 나는 싹을 먹기도 한다. 지금은 약용으로만 쓰이지만 옛 기록으로 보아 식용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물 속에서 자라는 풀로서 '마름'이라고도 하며, '말'이라 하는 경우는 어떤가. 훈몽자회를 따르자면 민물 또는 바닷물에서 자라는 풀을 '말[m l]'이라 한다. 문종 임금이 풀이해 적기로는 '말왐'이라 하였으니 '머구리밥 빈(頻)'을 '말왐 빈'으로 드러내었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지금도 마름을 '말밤'이라 이르니 '말밤→말왐(말암)'으로 바뀌어 간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글에 이르기를 물에 잎이 뜨는 말은 조(藻)요, 가라앉는 것은 빈이라 하였다. 유씨물명고에서는 마름 또는 말밤을 '물밤(水栗)'이라 하였으니, 그럼'머구리밥'의 '밥'과 말밤의 '밤' 사이의 걸림은 어떻게 풀이할 수 있을까. 끼니로 먹는 모든 음식을 '밥'이라 한다. 더러는 동물의 먹이(미끼)로 풀이하기도 하며, 좁혀서 쌀·보리·좁쌀 따위의 곡식을 씻어서 솥 같은 것에 안치고 물을 부어 낟알이 풀어지지 않도록 끓인 음식을 일컫기도 한다. 그러니까 크게 보아 개구리 곧 머구리밥이나 사람이 먹는 말밤이나 모두가 밥이 되기에 충분하다. '밥'은 '밤'에서 밥을 만드는 게 심 그게 진짜 심이지 (조재훈의 '물로 불'에서) 글쓴이가 보기로는 '밥'이란 말은 '밤'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고대사의 비교언어학적연구(강길운,1990)에서는 지리지의 마주걸림(栗木→冬斯)을 떠 올려, 터키어 계통의 밤나무-거스다네(kestane)가 쓰이고 있음을 보이면서 지금의 밤과는 거리가 있을 것으로 상정하고 있다. 방언에 따라서 겨울을 일러 '겨슬·거실·겨실·기실'로 함을 보면 그럴듯한 대응이 보인다. 밤송이에 가시가 돋히듯이 생긴 말밤(마름)을 '거ㅅ연밥 검)이라 함은 더욱 그러한 믿음을 갖게 한다. 우리말을 중심으로 하면 밤송이에 가시가 많이 돋혀 찔리면 아픈 것처럼 겨울은 춥고 지내기가 어려움을 뜻하는 걸림을 찾아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겨슬(거슬)이라고는 하지도 않으며 모두 밤이라 부른다. 나무열매로서 밤이나 물풀 열매로서 말암(말밤·마름)은 모두 딱딱한 껍질을 벗겨내고 그 알맹이를 요리하거나 날것으로도 먹게 된다. 물론 유씨명물고 에서도 그렇게 풀이하고 있다. 그럼 밤이란 말은 무엇을 벗겨낸다는 말에서 온 것은 아닐까. 우선 '밤'은 밤나무열매·놋그릇을 부어 만드는 틀, 어린 송치가 어미 뱃속에서 먹고 자라는 물결이란 뜻 등으로 두루 쓰였다. 우리말 방언을 보면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길게 소리나는 '바암(대구), 바:ㅁ(경상도)'과 같은 소리꼴들이 눈에 띈다. 벼나 보리가 채 익기도 전에 이삭을 훑는 일을 '풋바심'이라 한다. 본디 바심이란 집 지을 재목을 연장으로 깎고 파고 하는 일을 말한다. 방언에 따라서는 '바슴·바심'이라 한다. 신증유합 같은 옛말글 자료에서는 '부수다(碎)'는 뜻으로 자주 쓰였다. 결국 불필요한 부분만 들어내는 것이다. '바스러지다'나 '바심'은 말의 됨됨이로 보아 겉(表·外)을 뜻하는 '밧(벗)' 동사파생접미사 '∼다'가 붙어 된 말들이다. 한마디로 '벗겨냄 떨어냄 어떤 틀에서 벗어남'으로 뜻의 보람을 풀이할 수 있다고 본다. 하면 고대사의 비교언어학적 연구의 풀이와도 크게는 같은 흐름에서 그 쓰임을 간추릴 수 있다. 이제 '밤→밥'이 된 과정을 따져 보자. 형태가 갈라져 쓰이는 틀 가운데 모음이나 자음이 바뀌는 것이 으뜸이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보면 'ㅁ→ㅂ'으로 바뀌어 형태가 달라진 것이다. 그럼 낮과 밤의 '밤'은 어떠한가. 먹는 밤의 소리가 더 길다. 바탕은 같을것으로 보인다. 낮의 모습에서 벗어나면 밤이 되고 밤에서 낮이 비롯된다. 이러한 밤의 어두운 틀 속에서 빛을 인식하게 되며, 비로소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그 빛깔도 먹는 밤과 크게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검은 색은 신의 영지요, 큰 가능성이기도 하다. 나무열매로서 밤의 생산이 중시된 것은 땅이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가장 많은 예는 밤골 밤고개 밤나무 밤밭 밤실 밤가지 등이다. '마-말'과 '벼-피'의 풀이를 덧붙이자면 '마'는 ㅎ끝소리명사로 아예 윗말에 붙어 '마(ㅎ)-맣-맛-맏-말'로 발달한 것이요, '벼-피'는 같은 '비'에서 비롯한 것이다. 경상도에서는 벼를 '비'라고 함이니, 거센소리가 없던 때에는 피를 '비'로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밥 한알이 귀신 열을 쫓는다 했거니와 음식을 소중하게 여길 일이다. 몸과 묶음 이 몸이 생겨날 적 하늘의 뜻을 따랐으니 일평생의 일을 하늘이 모를까 이내 몸이 젊어 있고 임께서 날 아껴주시니 이 사랑과 애틋한 마음을 어디에다 비길까. 참으로 찐더운 사랑의 마음이 드러나 있다. 신하로서 임금에 대한 그리움이 이에 이르면 가히 정겨운 그 무엇이 있을 듯하다. 널리 읽히는 송강이 지은 <사미인곡>의 머리글이다. 글의 끝부분에 가면 몸이 죽어 벌나비가 되어 임의 옷에 옮아 다니면서 꽃 향기를 전한다는 마무리를 하고 있다. 신외무물(身外無物)이라. 제 몸을 잃을진대 온 누리의 물질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한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충성을 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흔히 왜 사느냐고 묻는다. 여러가지의 대답이 있을 수 있다.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생물은 제몸보존과 씨알보전의 목적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여기 보존의 중심은 '몸'이다.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 주는 이를 몸알리-지기(知己)라고 하거니와 몸이란 여러가지 복합적인 쓰임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옛부터 몸의 관리를 중요하게 다루었으며 신(身)·언(言)·서(書)·판(判)이라 하여 몸의 생김새를 사람 저울질의 큰 자로 삼아 왔지 않은가. 살아가는 우리네 둘레와 몸을 고리지어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좋은 음식을 찾기도 하며 온갖 옷감이나 집 지을 재료들을 마련하기에 매우 바쁘다. 하루도 걸름이 없이 먹는 먹거리도 그 뿌리는 모두가 목숨이 담기는 몸들이다. 쌀이 그렇고 맛있게 먹는 고기들이 그러하다. 본시 사람 때문에 태어나 일생을 마치는 목숨살이들이 몇이나 될 것인가. 사람의 목숨이, 몸이 값진 것이라면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먹고 살아 감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양만큼의 물질은 있어야지. 다른 생물의 몸이나 목숨을 어떤 즐김의 대상으로 함은 분명 큰 잘못이 아니겠는가 (죄업이지). '몸'이란 무엇인가. 짐승이나 사람의 머리로부터 발까지 그에 딸린 모든 부분을 일컬어 몸이라 풀이한다. 우리말 '몸'에 드러난 겨레들의 깨달음 바탕은 무엇이며 예서 비롯하는 말들의 겨레로는 어떤 형태들이 있을까. 몸을 이루는 부분으로는 제각기 다른 구실을 하는 많은 기관들이 있다. 눈 코 귀 입이며 머리로 이루어지는 얼굴,목 가슴 배 허리 궁둥이 등의 몸체부분이 있으며 여기에 나뭇가지처럼 달려 있는 팔 다리며 이에 붙어 있는 손 발은 말할 것 없고 다시 이에 딸린 손발의 가락들이 있다. 사람의 몸을 일러 작은 우주라고도 한다. 침뜸을 주로 하는 한의학에서는 침 놓는 자리를 경혈(經穴)이라 이른다. 그 수는 지구가 자전하는 삼백육십여개로 본다. 우연으로 보기에는 상당한 마주걸림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니까 우리 몸은 크고 작은 부분들이 모여 유기적인 걸림을 조화있게 이룸으로써 목숨 보전에 필요한 에너지의 공급과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뼈만 해도 그렇다. 해부학에서는 우리 사람의 몸에는 약 200개 가량의 뼈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뼈는 석회질과 아교와 같은 교질이 단단하게 엉겨 붙어 소화기 등의 내장을 보호하고 운동의 거멀못 노릇을 한다. 쇠로 만들어진 못을 박아 두 개 이상의 물질을 결합시킨다. 이를테면 몸의 뼈가 못과 같은 구실을 한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몸은 여러 부분들이 질서 있게 모인 아주 정교한 틀이라고 할 수 있다. 몸이란 모인 것 그러면 작은 부분들을 모아만 놓으면 목숨살이가 가능할까. 그렇지는 않다. 가령 집의 경우를 더듬어 보자. 나무와 벽돌과 기와 등 필요로 하는 물질이 있다고 해서 집의 기능이 살아 오르지 않는다. 요컨대 몸도 보다 작은 부분들이 일정한 질서의 흐름을 따라 결합되고 해체되며 이러한 신진대사가 되풀이 될 때에만 삶의 교향악은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되지 않겠는가. 하면 '몸'이란 말이 한데 어울려 이루어진 '결합체'란 말인가. 그러한 말의 발전과정과 속사정은 어떠한가. 우선 '몸'이 쓰이는 시골에 따라서 조금씩은 다른 경우를 들어보기로 한다. 예천·문경 등지에서는 몸떵어리, 경상 전라 강원도의 일부에서는 몸뚱아리, 전남 영광에서는 모뚜이, 양산에서는 몸디, 남원·임실·예천 등지에서는 몸떼이, 산청 등지에서는 몸띠이라고 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풀이가 다르겠으나 몸떵어리가 상당한 실마리를 갖고 있다고 하겠다. 이르자면 몸떵어리는 몸과 덩어리가 어우러져 이루어진 합성어이다. 덩어리는 덩이라고도 하는바 작은 부분들이 모여 이룬 떼를 가리킨다. 몸데이란 것은 몸덩이의 덩이에서 모음이 바뀌어 일어남이요, 몸띠이(몸띠)는 데이→디이(디·띠)와 같이 모음이 쉽고 편한 전설모음으로 된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몸'이 '모으다'에서 비롯되었다면 어떨까. 여럿을 한 곳으로 오게 하거나 돈이나 물건을 저축하는 일, 또는 담 등을 쌓아 올리거나 나무의 여러 쪽을 짜맞추어 배를 만드는 움직임을 통틀어 '모으다(모다)'라 이른다. 하면 움직임을 드러내는 동사의 어간 '모으∼'에 명사형 어미(ㅁ)이 붙어 음절이 줄어지면 '모음→몸'이 되어 긴 소리로 내게 된다. '모으다'는 기원적으로 같은 뜻을 드러내며 이륜행실도·노걸대언해 등에 보이는 '못다'에서 발달해 온 낱말겨레가 아닌가 한다. 짐작하건대 '못'에 조음소 '으'와 동사화어미(-다)가 붙으면 '못으다→모스다→모 다→모으다'로 된다. 그럼 여기 '못'은 무엇을 드러내며 '모으다-모음-몸'의 몸과는 어떤 걸림이 있는 걸까. 훈민정음해례·아언각비 등의 자료를 보면 연못의 못(池)과 쇠로 만드는 못(釘)과 같은 뜻이라 적고 있다. 앞의 경우 넓고 깊게 팬 땅에 늘 물이 괴어 있는 곳이다. 못은 다른 곳보다 낮으니까 늘 다른 곳에서 물이 흘러 들어온다. 곧 여러 줄기의 물들이 함께 모이어 이루어진다. 뒤의 경우는 두 물건을 하나로 결합시켜 모이게 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옛글에서는 못이 'ㅁ'으로도 적힌다(왜어유해·훈몽자회). 오늘날의 '모두·모든·ㅁ다(제주도)'와 같은 말은 예서 비롯한 말의 겨레들임을 알 수 있다. 홍명희의 임꺽정에서 '한 달이 채 못 되어서 육천명이 ㅁ이었다'의 'ㅁ이다'도 같은 경우라 하겠다. 지역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모이다'의 경우 '모둔다(상주·산청·광양) 못다(정선·제천) 모당께(마산·함안·창녕) 모단다(부산·마산·함안)'의 말들이 쓰이는데 'ㅁ-'계가 중심을 이루는바 상당히 미더운 보기들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못-ㅁ은 어말자음의 바뀜에 따른 것이요 뒤로 오면서 갈래져 별개의 말로 굳어지기에 이른다. '못'이 모음 곧 모여서 이룸이란 뜻을 드러냄과 관련하여 모음이 바뀌면 못은 뭇이 된다. 지금도 장작이나 잎나무를 한 묶음씩 작게 추스려 놓은 셈의 단위를 '뭇(束)'이라 하지를 않는가. 혹은 세금을 받을 때 계산하기 위한 땅 넓이의 단위도 뭇이라 하며 수효가 많음을 드러낼 때에도 '뭇-'이란 말조각을 쓴다. 잇몸을 왜어유해 같은 말에서는 '닛무윰·닛므음'이라 적고 있다. 여기 '무윰(므음)'의 소리마디가 줄어지면 '뮴(믐)'이 되는데 모두가 '몸'의 또 다른 변이형이라 보면 좋을 듯하다. '무우'도 묶음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부른다 ('사우'에서) 부는 봄바람에 흐드러진 야생 무꽃 - 청라꽃을 보노라면 벌써 내 지나쳐 버린 유년의 뜨락이 눈에 선하다. 일상으로 우리는 밥과 함께 배추와 무우김치를 먹는다. 이 때 '무우'도 '뭇'과 걸림이 있는 말로 보인다. 시골말의 쓰임을 보면 흔히 무시·무수·무꾸와 같은 말이 많이 사용됨을 알 수 있다. 500년전 무렵의 두시언해를 보더라도 무우를 '무?'라 하였으니 이를 한데 간추리면 '무수(무시)-무?-무우'와 같이 됨을 알겠다. '뭇'과 무우는 어떤 걸림이 있을까. 본디 무우는 겨자과에 딸린 한 해 또는 두 해살이 풀로서 잎은 뿌리에서 무더기로 모여 나고 자줏빛 혹은 흰빛의 네잎 꽃이 '무더기'로 피어 올랐다간 지고 그 자리에 열매들이 무더기로 꼬투리 안에 열린다. 시골말에서 무우를 '무꾸'라 했거니와 이는 '뭇(못)'이 이른바 기역(ㄱ)으로 끝이 나는 말조각과 같이 쓰이어 특수변화를 하는 명사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흔히 기역 종성체언이라 하는바, 때로는 위엣 말의 받침이 되어 아예 굳어져 녹아붙기도 한다. 가령 '뭇(ㄱ)다>ㅋ>묶다(묶음)'도 그러한 보기라 할 것이다. 시옷이 기역에 거꾸로 닮아 완전하게 같은 소리로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우리의 몸이 여러 부분을 한데 얼려 한 인간의 영혼을 기르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거룩한 자연도 하나의 몸-곧 공동체인 것이다. 하물며 우리의 이웃이나 배달겨레로서 같은 핏줄을 나눈 남과 북의 말미암음은 같은 한아비의 몸에서 갈라져 나왔으매 우리의 몸, 우리 겨레는 하늘이 섭리하는 한 묶음이다. 세상살이란 게 작은 묶음에서 큰 묶음으로 이어지는 고리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어울림. 때로는 삶과 죽음의 모습으로 달라지기는 하나 본디 그 또한 한 몸에서 비롯한 것을. 나 혼자만이 어떻게 해 보겠다 함은 마침내 해 볼 수 없다는 물음과 고뇌에 부딪히고 마는 것을. 그래 세상은 한 몸이야, 한몸.
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3. 생명의 말미암음 목숨과 어우르기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떨어지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아예 눈을 감네 한 목숨이 열리고 닫히는 생명의 미학을 노래한 이호우님의 글이다. 하늘과 땅이 어우러지고 보이지 않는 손이 있으므로 태어나는, 더불어 하나가 되는 상징이 피는 꽃으로 옷을 입는다. 살아있음은 분명 큰 축복이요 즐거움인 것이다. 무릇 모든 목숨살이들은 숨이 붙어 있어 살아간다. 대체 숨이란 무엇이며 숨이란 말에 드러난 겨레들의 소리보람은 어떠한가. 흔히 사람이나 짐승이 코나 입으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기운 혹은 그렇게 하는 일을 숨으로 풀이한다. 호흡이라 하거니와 들이마시는 숨을 들숨이라 하고 내쉬는 것을 날숨이라고도 이른다. 들숨-날숨의 되풀이가 호흡의 바탕이요, 이로 말미암아 호흡작용의 가락이 일어난다. 요즈음 쓰레기 줄이는 운동이 한창이다. 어떻게 하면 재활용을 할까를 놓고 걱정이 많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의 부아-폐에서 나오는 쓸모없는 남은 숨은 못 쓰게 된 공기가 아니라 사회생활의 결정적인 도구이자 사람이 말을 하는 존재로 서게하는 바, 말글살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날숨은 2센티 전후의 성대를 울리면서 빠져나와 입과 콧구멍 사이를 거쳐 혀와 더불어 홀소리와 닿소리를 만들어 낸다. 이 소리로 사람의 슬픔과 기쁨 같은 느낌과 생각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들숨이 있으면 날숨이 있게 마련. 하면 숨이란 말의 밑바탕은 어떠하다는 말인가. 코를 곤다고 할 때 코의 바탕을 '골'에서 찾을 수 있듯이 '숨을 쉬다'에서 숨의 바탕은 '쉬다'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움직씨 '쉬다'는 이름씨 '쉬'에 접미사'-다'가 어우러져 이루어진 형태다. 중세어에서는 '쉬'의 모음이 복모음이었으므로 '수이'로 읽어야 된다. 그러니까 '수이→쉬'로 발달해 온 것이다. 하면 '수이'란 바뀐 과정으로 보아서 무엇인가. 소리가 바뀐 과정으로 보아서 '숫(슷)+-이>수시>수 >수이>쉬'로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숫-슷'은 표기상 서로가 같은 뜻을 보여 주며 '사이·구멍(훈몽자회-슷間)'을 뜻하는 말로 떠오른다. '숨'은 '사이' '숨-사이'의 걸림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바탕으로 시골말을 또다른 보기로 들 수 있다. 정수리가 채 굳지 않아서 숨을 쉴 적마다 팔딱거리고 뛰는 곳을 '숨구멍'이라 하지만 평안도 지역에서는 '숫구녕' 혹은 '숫구멍'이라고 하며 함경도에서는 '숫궁기'라 이른다. 해서 '숨-숫'의 서로 맞걸림을 알아차리게 된다. 한편 옛 글에서는 숫구무(두창집언해) 숫굼(분문온역방) 쉬구멍(물보) 쉬궁(훈몽자회)으로 드러나 보이는데 모두가 '숨-숫(쉬)'의 대응성을 보이고 있다. 심증이 간다고는 하나 숫을 '사이'로 볼 수 있는 더 확실한 보기는 없는 걸까. 글쓴이가 보기로는 '숫'과 '슷'의 걸림이라 하겠다. 먹는 무의 일종으로 순무를 유씨물명 에서는 '숫무우'라고 하며 분문온역방에서는'숫무수'라 한다. 그럼 '숫-슷'이 표기상 서로 모음만 다른 형태라 하겠다. 한데 훈몽자회 에서는 '슷間'으로 풀이하였으니 마침내 숫(슷)이 '사이'를 뜻하는 말들임을 알게 된다. 외롭고 힘들 때면 휘파람이라도 불어 보자고 한다. 휘파람도 두 입술 사이에서 날숨에 따른 바람이 서로 갈리면서 입술을 울려 소리를 낸다. 사투리로 휘파람을 쉬파람이라 하거니와 이같이 소리 나는 이치가 달라도 소리를 내는 방법이 같으면 들리는 소리의 느낌은 같은 갈림소리로 느껴지게 된다. 모든 언어에서 시옷(ㅅ)소리는 시끄러운 마찰음으로 나거니와 이는 바로 조직이나 물체 사이에서 서로 갈려서 나는 두드러진 소리의 보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한 뿌리에서 많은 가지들과 잎새들이 돋아나 살아가듯이 말 또한 예서 크게 다르지 않다. '사이'라는 뜻 바탕에서 풀이할 수 있는 숫(슷)에서 비롯되는 말의 겨레로는 어떠한 형태들이 있을까. 모음이나 받침의 자음들이 바뀌어 말들의 겨레들이 움 솟아 갈라져 나간 것들이 있다. 예컨대 '숫(숯)-숟(숱)-술/슷(숯)-슬' 등이 그 뼈대를 이룬다 하겠다. 먼저 '숫(숯)'의 경우를 들어보자. '숫'이 드러내는 뜻 바탕으로는 ①깨끗하고 순진하다 ②수컷 등으로 풀이하는데, 앞의 경우, 나무나 풀의 가지 또는 뿌리 사이에서 처음으로 돋아나온 부분을 싹이라 할 때 이 싹의 상태를 이른 걸로 보이는데 이는 싹의 옛말로 '사이'를 드러내는 '삿'에서 갈라져 나온 형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컷으로 본 것은 몸에서 밖으로 솟아나온 수컷의 성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가령 '숫'에서 모음이 바뀌고 다시 말의 머리에서 터짐갈이소리로 되면 '숫-솟-좃'이 한 겨레로 묶일 수 있는 갈래말들이 되지 않는가. 그럼 '숫-숯'의 걸림은 어떠한가. 먼저 소리로 보면 '숫'의 받침이 갈이 소리로부터 바뀌었으니 자연스러운 소리의 피어남이라 할 것이다. 소리를 내는 사람에 따라서 '숫이 좋다, 숫이 잘 탄다'라 함을 보면 시옷(ㅅ)에서 치읓(ㅊ)이 갈라져 나왔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뜻으로 보면 '숯'은 완전히 생나무도 아니며 그렇다고 모두가 재가 되어버린것도 아니질 않는가. 그 '사이'쯤 되어 언제든지 여건만 되면 다시 탈 수 있는 땔감이 바로 숯인 것이다. 이런 까닭에 땅이름에도 숯고개·숯재·숯뫼 등의 이름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실적으로 숯의 생산과 직간접으로 걸림이 있을 수도 있긴 하겠지만. 아울러 숯은 물기를 빨아들이거나 독성을 중화시키기 때문에 가볍게 물을 거르거나 간장을 만들 때 장독에 넣는다. 상징적으로 나쁜 기운을 미리 막아내기 위하여 애기 낳은 집 대문에 금줄을 맬 때 반드시 숯을 넣어 맨다는 것도 그럴듯함이 있는 습속이라 여겨진다. 숫가락·숫가마·숫간(몸채 뒤에 자그맣고 낮게 지은 땅이나 객실)·숫구(경상)·숫구뎅이(제주)·숫기(숯-함경)·숫나사·숫놈·숫눈(쌓인 대로의 눈)·숫밥(손대지 않은 밥)·숫사람·숫색시·숫증(부위 사이에 물이 고이고 붓는 증세)등이'숫-'계열의 말들이고, 숯가루·숯가마·숯구이·숯막(숯 굽는 사람들이 쓰는 집)·숯 자동차·숯장이들은 '숯-'계열에 드는 낱말겨레들이다. 여기에 같은 뜻의 한자말을 넣는다면 더 많은 말들의 겨레를 들 수 있음은 물론이다. 발효시켜 마시는 게 술 가다보니 배 부른 독에 설진 강술을 빚는구나 조롱곳 누룩이 매와 잡사오니 내 이를 어찌 하리오 ('청산별곡'에서) 이와 함께 '숟-술'의 경우는 어찌되는가를 생각해 보자. 흔히 밥이나 국물 따위를 떠먹는 기구를 일러 숟가락이라고 한다. 음식물 사이에 숟가락을 넣어 필요한 만큼의 먹거리를 마시거나 먹는다. 약이나 조미료의 경우도 숟가락 혹은 술 단위로 저울질하여 쓰는 수가 종종 있다. 자리잡고 살 때 그 사람 밥술깨나 먹는다고 하며 거지가 동냥할 때 밥 한술 주슈 한다. 하면 '숟-술'은 같은 뜻으로 쓰이는 동의어임을 알 수 있다. 받침에서 디귿(ㄷ)이 리을(ㄹ)로 바뀌었는데 이는 우리말에서 흘림소리되기라 하여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럼 마시는 술은 어떠한가. 우선 보기로는 도구로서의 '술'하고 동음이의어로 보인다. 기록으로 본 술의 역사는 오래다.[삼국지]를 보면 하늘제사를 모실 때 술이 있었음을 드러내고 있다(連日飮酒歌舞聲不絶). 술은 날 것도 썩은 것도 아니면서 곡식을 뜸팡이로 처리 보존한 것이다. 신과 인간의 사이에서 종교와 행정을 함께 다스려 간 지도자-스승의 시대였으니 제사 음식에도 그러한 가운데라는 의미 부여가 있음직하지 않은가. 술에 취한 이를 송강은 [관동별곡]에서 취선이라 하였거니와 술은 신과 인간이 하나되고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이 하나이게 하는 촉매제로 쓰일 법하다. 사람을 사회적 존재로 풀이한다. 혼자는 살 수 없듯이 숨을 쉬면서 살아 있음도 들숨과 날숨의 상호작용이며 부분과 부분 '사이'에서 일어나는 어울림의 하나됨인 것이다.
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3. 생명의 말미암음 물과 불의 만남 - 생명의 기원 물결의 한 끝은 하늘을 치고 다른 물결의 한 끝은 땅을 치는 무서운 바다에 배질합니다. (한용운의 '생명'에서) 마음에 둔 그리운 임에게 애틋한 사랑이 쏠리거나 바라던 바를 이룸으로써 우쭐거리며 뽐냄을 이르러 '물 본 기러기 꽃 본 나비'라고 한다. 우리의 삶에 있어 물이란 불과 함께 늘 필요한 물질이다. 물이 없는 곳에 살아있는 존재를 생각할 수 있을까. 물에 어른이 빠져 돌아가셨더라도 우리는 그 물을 마셔야 하고, 온 집안이 불에 타버렸더라도 그 불을 쓰지 않고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요컨대 물과 불은 삶의 원초적인 요소가 됨은 물론이려니와 생명현상이 일어나고 이어감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말미암음인 것이다. 불의 비롯됨은 태양으로 이어지며 이는 다름 아닌 하늘의 얼안을 대표하는 보람이 되었다. 그럼 물은 어떠한가. 물이 존재하는 얼안은 땅이요 우리들 삶의 터전이 된다. 해서 옛적 자연물 숭배를 바탕으로 하는 제정일치 시대에는 부족을 다스리는 지도자가 불신과 물신을 섬김은 물론이요, 여기서부터 부족장의 절대적인 권위가 생겼다. 삼국유사 와 같은 옛글에서 살펴보았듯이 불신과 물신에 대한 숭배는 우리 배달겨레의 한아비이신 '단군왕검'과 바로 맞걸려있다. 필자의 글에서 '단군→제사장, 왕검→불신(태양신 하늘신)=임(니마)/물신(태음신 땅신)=곰(고마)'으로 풀이한 바 있다. 그러니까 본디 태양신이요 하늘의 신 '니마(님>임)'는 단군(제사장)의 밖부모인 환인→환웅으로 이어지며, 태음신이요 땅신·물신인 '고마(곰)'는 웅녀 곧 안부모인 어머니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해서 '곰(굼)→흠(흠)→음(움)'으로 말의 소리와 형태가 바뀌면서 오늘날 '어머니'로 되었으니 단군조선 때의 제의문화는 실존해 있었던 우리들의 실증적인 겨레의 역사가 된다고 하였다. 이는 오늘날 많은 실증주의적인 고고학자들의 살핌에서 밝혀진 바 있다([단군신화의 신연구](1974), 김재원·[한국사논문선집](1978),손보기). 태양 곧 불은 빛의 샘이요 뿌리됨이니 모든 힘-에너지의 바탕이다. 참으로 위대한 가능성이며 희망이요 밝음지향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전깃불이 없는 세상에서 떠올랐다가 지기는 하지만 이글거리는 저 태양이 없는 누리에 삶의 가능성이란 도무지 그 뜻을 찾아 볼 길이 없다. 해우러름을 문화적인 보람으로 하는 보기는 아주 보편적이다. 돌그릇문화시대에 우리 겨레를 상징할 만한 빗살무늬토기의 빗살이라든가 고인돌로 일컬어지는 큰돌세우기, 겨레 공동체에서 정착된 농경사회로 바뀌는 길목에서 바뀐 땅이름인 서라벌 사벌 달구벌의 '벌', 거룩한 성소로 불리우는 '소도(솟대)'등은 모두가 태양신 곧 불신을 우러르는 믿음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오늘날의 인류문명이 있기까지의 에너지 뿌리는 바로 불이다. 옛부터 나무·불·흙·쇠·물을 오행이라 하여 이른바 동양적인 물질구조의 알맹이로 생각하여 왔다. 희랍신화에서도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옮겨 사람에게 넘겨준 죄값으로 벌을 받다가 헤라클레스에게 구원의 손길을 받는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다른 짐승과는 달리 사람은 만물의 으뜸으로 그 자리를 굳혔으니 참으로 불의 힘이란 위대한 것이다. 핵분열반응에서 얻어진 방사성원소 이름이 '프로메트륨'임은 프로메테우스 불신 곧 태양신과 무관하지 않다. 태양 곧 불은 높은 열과 빛 그리고 에너지를 갖고 있다. 에너지는 흔히 힘이라고 이른다. 우리말 '힘'은 시골말에서 '심'이라 하거니와 이는 해-태양이란 말의 형태와 의미의 걸림을 둔다. '심←세다(시다)'와 같이 '세다(시다)'에서 비롯한 말이라 볼 수 있다. 이남덕의 한국어원 연구(1985∼1986) 에서 풀이한 바와 같이 엿쇄(>엿새) 닷새의 '새(쇄·쌔∼세·쎄∼시·씨)'는 모두가 해를 가리키는 말이다. 소리의 틀로 보아 맞걸림을 함께 공유하는 탓으로 'ㅎ↔ㅅ'은 많은 넘나듦을 보여준다(형-성·힘-새·희다-시다·헤아리다-세아리다 등). 삼국사기의 지리지를 중심으로 한 땅이름의 바뀐 과정을 보면 불과 관계된 땅이름이 신라·백제 지역에서 쉽게 찾아진다. 가령 '-벌'계가 그러한 보기라 하겠다(達句火·推火-達句伐·密伐(密陽)/-夫里(卑離)). 그러니까 '-벌'의 뿌리는 태양의 빛처럼 환하고 탁 트여 있는 얼안이다. 힘과 함께 '빛'이란 우리말도 '불'에서 갈라져 나온 소리다. 옛말감을 통해 볼 때 '밝(발)-/붉(별)-/빌(빗-빛-ㅂ)'과 같은 낱말겨레들이 있음에서도 알 수 있다. 아울러 온도의 높낮이를 불러 일으키는 '열'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따스함을 드러내는 옛말은 아래아로 표기되는 '닷다'(향약구급방 상8)인데 말밑으로 보아 갈림성에 터를 두고 있다. 곧 땅을 말하는 '다(ㅎ)>닷+∼다>닷다'로 만들어진 형태의 짜임으로 풀이할 수가 있다. 마찰을 하면 그 세기에 따라서 높은 열과 빛을 내기도 하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빛과 열 그리고 에너지, 힘은 해로부터 말미암은 소리 보람들이다. '임'은 해보다 앞서 하면 태양을 뜻하던 '임'은 '해'보다 앞선다. '임(님)'과 '해'의 관계는 어떻게 풀이하면 좋을까. 같은 태양을 뜻하기는 마찬가지이나 말을 쓰는 겨레중심으로 볼 때 임(님)계는 원주민격인 한반도와 중국의 동북부에 이르는 곰토템을 믿는 맥족의 말로 보인다. 이는 사회변동의 요인으로 짐작한 것인바 실증사학의 동구권 학자들에 따라서 이미 학계에 알려진 적이 있다(고조선(1990), 유엠부찐 등). 한편 '해(새)'는 알타이 산맥에서 시베리아쪽에 이르는 쇠그릇문화의 지배족인 예족의 말이다. 그러니까 예족이 맥족을 다스리게 되면서 '님(임)·새(해)'가 같이 쓰이다가 차츰 '해(새)'계로 옮아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드러내는 푯대는 태극기인데 이때 태극은 성리학에서 이르는 물과 불을 상징하는바 흔히 음양으로 풀이한다. 음양이 모든 물체를 빚어내는 뿌리임을 인식하는 게 성리학의 기초요 [훈민정음]제자해의 밑바탕이다. 보통 목숨-생명을 풀빛으로 표시한다.단적으로 풀은 모든 목숨들의 보람으로 이해되기에 이른다. 모름지기 살아있는 목숨살이들은 물 불과 함께 파란 생물이 있음으로써 살아간다. 빛깔의 어울림과정을 보면 불색으로 보이는 주황과 물의 푸른색을 어우르면 초록이 된다. 꿈과 희망을 불러 일으키는 무지개를 보라. 가장 가운데의 색깔이 초록색이 됨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거의 대칭관계에 있는 불색과 해의 주황색이 빚어낸 색채의 어울림 가락이라고 할까. 그럼 물과 불이 합하여 풀이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우리말로 본 이 세 가지 요소의 서로 맞걸림은 어떻게 볼 것인가. 물-불-풀에서 같은 소리인 중성과 종성을 빼버리면 결국'ㅁ-ㅂ-ㅍ'이 남는다 이 세 소리는 두입술에서 나는 두입술소리로 소리냄틀이 서로 다를뿐 그 밑이 되는 소리상징은 같다. 소리의 발달단계로 보면 'ㅁ- ㅂ- ㅍ'으로 그 기초가 되는 소리는 'ㅁ'이다 여기에 무성파열을 더한 것이 'ㅂ'이요, 터짐소리와 거센 소리를 더한 게 'ㅍ'이다. 거센 소리는 일종의 갈림성을 밑으로 하는바 물과 불이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생겨난 것이 바로 '풀'이다. 우리말로 본 목숨살이의 말미암음은 물론 물과 불의 서로 만남에 터한 그 보람이며 물과 불에서 풀로 가는 맞걸림의 논리다.
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2. 태양숭배와 곰신앙 곰신앙과 땅이름 곰사냥을 할 때 치러지는 제례를 통틀어 곰제의라고 이른다. 곰을 제의 대상으로 하는 지역은 폭 넓은 분포를 보인다. 북아메리카에서 유러시아를 싸 안는 범북반구에 걸친 뿌리 깊은 수조신앙이라고 하겠다. 수조신앙, 이는 곰을 사람의 조상으로 보는 곰토템인 것이다. 한반도와 만주지역은 물론이요, 일본 북해도의 아이누(Ainu) 사람들에서는 아주 두드러지는 보람을 드러낸다. 먼저 여러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곰제의의 공통된 점을 몇가지로 간추려 볼 수 있다. 곰이 들짐승이나 숲속의 주인 또는 사명을 지닌 짐승이란 점. 본디는 사람인데 곰의 모습을 했기에 사냥이 있을 때마다 곰은 곰가죽을 벗고 사람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기를 열렬히 바란다(글쎄 곰이 무슨 의견이 있을라구). 놀랍게도 곰은 사람의 말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곰을 보고 나쁜 욕설이나 손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으로 곰을 부를 때면 직접 곰을 부르지 않고 친족을 부르는 말 곧 할아버지, 누나, 어머니와 같이 부른다. 일종의 금기랄까, 은어랄까. 또한 사냥으로 잡은 곰의 고기는 사냥하는 현장에서 먹어 치운다. 아예 제의에도 직접 참여하지 못하지만 여성은 곰의 고기를 먹지 않도록 금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곰의 뼈는 마구 버리거나 부러뜨리지 않는다. 더욱이 머리 부분은 소중하게 다룬다. 곰의 고기를 먹고 난 뒤, 곰의 뼈를 마구 버리거나 다치게 함은 조상을 해치는 일이 된다. 그 가운데에서도 머리뼈는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왜 그랬을까. 퉁그스들의 곰숭배에서도 나오지만 뼈는 흙 속에서도 오랫동안 썩지 않듯 뼈는 죽은 이들의 영생으로 보는 까닭에서다. 풀이하는 이에 따라서는 구석기 시대에 곰을 매장한 보기라든가 동굴의 벽그림에 드러난 곰의 모습을 보고 이미 이른 시기에 곰을 숭배하는 제의가 있었으리라고 상정한다. 스위스의 드라헨록(Drachenloch) 동굴의 경우가 그러한 보기라고 할 것이다. 이들 곰제의는 공간과 시간의 물결을 타고 여러가지 모양으로 변모하였을 것으로 상정, 핀란드 민속의 혼인예식이라든가, 위굴겨레들의 가면극이, 퉁그스겨레들의 신화의 재현이 곰제의의 변형으로 보는 경우라 할 것이다. 매년 때만 되면 곰 제사를 주기적으로 행함으로써 문화의 맥을 이어준 것이라고나 할까. 퉁그스들의 곰 숭배 곰은 큰 사슴, 야생 사슴, 산양, 고라니와 함께 퉁그스들이 숭배하던 대상이었다. 이들 짐승을 사냥을 했을 때, 큰 사슴의 머리는 천막 속에 모셔둔다. 그리고서는 천막 안에 사는 이들이 짐승, 특히 곰의 머리를 향하여 화해의 노래를 부른다. 이른바 화해굿이 끝나면 곰의 고기를 먹는다. 먹고 남은 뼈는 광속에 넣어두든가 아니면 나무에 매어 달아 둠으로써 다른 이들이나 짐승들이 해치지 못하도록 한다. 이는 곧 곰에 대한 사람들의 열등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풀이하는 이들도 있다. 퉁그스의 한 겨레인 에벤키((evenki)들의 곰 축제에서 그런 징후가 보인다는 것. 사할린에 살고 있는 에벤키족인 나데인(nadein)들은 곰을 부를 때 다른 퉁그스의 겨레들이 부르는 것처럼 나키다(nakida)라고 하지 않는다. 곰을 특별히 에게케(egeke-할아버지), 바카야(bakaja-엉덩이)라고 하며, 한편 퉁그스의 일파인 에벤스들도 곰을 아미카(amika-아버지), 메메케(memeke-끔직스러운), 케키(keki-노인)라 부름은 흥미로운 보기들이다. 곰이 숭배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고기와 가죽, 약으로 쓰는 웅담을 얻기 위하여 종종 곰을 사냥하는 일이 생긴다. 사냥을 할 때, 몇 가지 규칙을 지키기만 하면 곰에 대한 경배심을 허물지는 않는다고 믿었던 터. 곰의 숭배는 시간을 넘어 영원성을 띠기도 한다. 오호츠크 바닷가에 살고 있는 퉁그스들은 죽은 곰의 목숨이 다른 곰에게로 옮겨 가기 때문에 곰의 생명은 영원하다고 믿는다. 이른바 영혼 불멸과 함게 조상신 숭배 신앙의 본거지를 이루게 된다. 부분적으로 사냥의 대상이 되긴 하지만 마침내 곰의 종족은 번성하게 되며 더욱 사람들과 가깝게 된다. 쓰러진 짐승과 성 접촉을 하는 것도 주술의식으로 종족의 끝없는 번영을 비는 행위로써 에벤키(Evenki)들은 오래도록 민속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는 마치 우리 배달 겨레들의 민속의 하나인 하회별신굿 등에서 보이는 성적인 동작을 풍년 혹은 자손의 번창을 비는 기원행위로 봄과 비슷하다. 곰 사냥에 따른 제사의식 곰을 사냥할 때 벌어지는 제사의식은 특히 아무르강 유역에 살고 있는 고아시아족, 일본의 북해도 지역에 사는 아이누(Ainu) 겨레들에서 두드러진다. 일본말로는 구마마즈리(熊祭), 아이누 말로는 이요만떼(iomantte)라 한다. 아이누들이 곰을 사냥할 때 곰 새끼를 산 채로 붙들어다가 일정한 기간 동안 기른다. 어느 정도 곰이 자라 잡아 먹을 정도에 이르면 친족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축제를 벌인다. 신의 나라를 향하여 '그것을 보낸다'고 하면서 제의를 치르고 곰을 죽여 고기를 나누어 먹는다. 아이누어에서 오만떼는 '보낸다'는 뜻으로 풀이되니 신의 나라로 보낸다는 정도의 뜻으로 보인다. 아이누 말에 곰을 '가무이'라 하는데 신(神)이란 말로도 쓰이니 경건한 축제를 올릴 만도 하지 않은가. 이요만떼 곧 곰축제는 아이누 문화의 뼈대가 된다. 시기는 대략 음력 11월 13일 전후로 추정된다. 이는 이즈모(出雲) 지역에서 행하여졌던 웅신대사(熊野大神社)의 어수제(御狩祭)가 이 때 행하여진 것으로 보아 그렇게 잡아 본 것이다. 어수제란 임금이 친히 곰 사냥을 위한 제사의식에 참여하여 이루어지는 행사를 이른다. 그리이스의 신화에서 양(trago)을 잡아 번제를 지냄과 비슷한 점이 있다. 오늘날에도 일본에서는 영상자료로써 곰제의를 보관한 것이 있으며 민속 행사로서 왕왕이 치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곰의 새끼를 잡아다 산 채로 길렀다는 건 암시하는 바가 크다. 그러니까 곰 축제를 하던 때가 언제인가는 확실하지 않으나 이 때를 전후한 시기에 이미 들짐승을 길들여 집짐승으로 삼았다고 풀이하여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퉁그스족들의 곰사냥과 관련한 제의는 두드러진 바 있다. 곰사냥을 할 때, 그들은 곰과의 화해를 위하여 애정어린 노래를 부르고 주문을 외운다. 이런 의식은 사냥을 한 곰을 집으로 옮기거나 곰 가죽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무두질을 할 때, 또는 고기로 음식을 만들거나 광이나 일정한 장소에 갈무리할 때도 정해진 그들만의 의식을 갖는다. 마가단라무츠(Magadan lamuts)같은 퉁그스들은 암콤의 머리를 베어 낼 때 '에메게지디군 에킹굴(emekeciddikun ekingur)'라는 주문을 외운다. 이는 '우리 공동의 맏누이를 너의 누이로 생각하라'라는 뜻으로 곰과의 화해를 위한 제의의 표현. 무두질을 맡은 무당 니마크(nimak)는 곰의 고기로 만든 먹거리를 둘레에 모인 겨레들에게 모두 나누어 준다. 이 고기국은 데게문(tekemun)이라고 한다. 특히 곰의 심장, 눈, 목부분의 단단한 고기, 관자놀이 부분의 둥근 고기를 나누어 먹을 때 무당은 이런 말을 한다. "자, 그가 가진 것과 같은 두려움 없는 심장을 너도 가지기를. 자, 그가 가진 것과 같은 똑 같은 시선을 가지기를. 눈을 깜박거리지 마. 자, 내가 사냥할 때 그의 목을 찔러라. 자, 굴을 둘러싸고 주의를 기울여라. (나무 위에서...)" 곰과의 대화를 주고 받음으로써 곰을 더욱 가까이 하고 곰을 숭배하는, 곰을 닮아 가려는 지향성을 두드러지게 보여주고 있다. 곰을 파 묻을 때의 제의 곰을 사냥할 때와 함께 매장할 때의 의식은 곰 제의의 주요한 절차를 이룬다. 사람의 의례 가운데에도 으뜸이 상례와 제례이니, 가장 조심스럽고 경건한 의식을 치른다. 곰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매장하는 부분은 곰의 뼈가 된다. 서로 가까이 세워 놓은 나무 사이에 준비한 널판을 놓아 둔다. 직접 사람의 손을 써 사냥으로 조각 난 곰의 뼈를 모아서 해부학적인 순서를 따라서 정성스레 가즈런히 배열한다. 죽은 곰의 귀 부분에는 귀걸이, 손목에는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팔찌, 목 뒤로는 풀로 땋은 변발-땋아 올린 머리로 곰의 모양을 꾸민다. 마치 사람의 영구를 모시듯이 말이다. 곰의 눈은 특별하게 따로 다룬다. 나무 둥지의 뚫어 놓은 구멍에 넣어 두든가 아니면 나무 가지에 달아 놓는다. 눈시선의 방향은 일정하게 고정시켜 놓은 뒤 무당이 주문을 외우고 의식을 행한다. "나는 여기에 너를 두노라. 너는 늘 그리했던 것처럼 자연을 바라 보라. 나를 쳐다보지 마라." 주문을 외우는 일이 끝나면 곧 흙으로 파 묻는다. 퉁그스 겨레들은 전통적으로 죽음은 아무 것도 없는 세계로 보지 않는다. 이르자면 곰은 뼈와 함께 영원하게 산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이승의 끝이 나면 저승의 삶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영혼불멸을 굳게 믿는 것은 바로 곰의 영생이 가능한 때문이며 곰은 또 겨레삶의 상징이라 풀이하고 숭배한 탓이라 하겠다. 에벤키같은 퉁그스들은 곰을 호모뜨리(homottiri), 조상신을 호모꼬르(homokkor), 영혼을 호모겐(homogen)이라 함을 보면 곰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깊었던가를 엿보게 해 준다. 배달겨레의 거룩한 어머니, 곰부인 비 스승, 바람 스승, 구름 스승을 거느리고 환웅께서 아사달에 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이 땅에 내려오심이라. 하여 사람의 몸을 입은, 그것도 21일의 엄청난 시련의 늪을 지나 통과 제의를 거쳐 이룬 거룩한 곰부인과 만나서 단군 왕검을 낳기에 이른다. 하늘과 땅이요, 물과 불의 만남이 아니고 무엇이랴. 어둡고 그 힘든 굴 속의 시련을 겪은 성처녀, 곰여인은 정녕 겨레의 어머니요, 겨레삶의 말미암음 자체였던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퉁그스 겨레들이 곰은 조상신이며 영혼이라 하였듯이 배달겨레의 어머니 곰부인은 영생불멸의 민족혼이요, 겨레가 그리는 오래고 먼 그리움의 대상이 아닌가.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 처음으로 곰을 숭배하며 조상신으로 모셔 나라를 이룬 내력이 전해 온다. 시대와 지역이 달라지면 소리도 뜻도 달라지는 게 모든 언어에 두루 통하는 특징이다. 고조선 부분에 대한 곰 이야기는 충청도 공주의 곰나루 이야기가 가장 가까운 변형이라고 하겠다. '곰과 어머니 신앙' 부분에서 풀이한 걸로 대신 하기로 한다. 곰신을 모시는 경우는 우리나 퉁그스 밖에도 일본의 이즈모(出雲)지역의 구마노대신사(熊野大神社)를 들 수 있다. 땅이름으로라면 일본에도 곰-구마(kuma)를 바탕으로 하는 지역이 상당하다(熊本 熊山 등). 옛 자료인 신증유합 을 보면 '곰-고마'가 얼마나 경건하게 숭배해야 할 대상인가를 풀이하고 있다(고마敬 고마虔 고마欽). 본디 우리말인 '고맙다'의 경우가 가장 대표적인 보기라 할 것이다. 이름씨 '고마'에 접미사가 붙어 이루어진 말인데 '고마'는 곧 곰(용비어천가 3 15)이니 '고맙다-어머니(곰)'의 등식이 이루어진다. 참으로 말과 문화의 걸림이란 놀라운 바가 있다. 조상신이며 어머니는 누구인가. 말할 것도 없이 단군의 어머니요. 우리 겨레의 할머니인 것이다. 지금이니까 그렇지 중세어 시기만 해도 '고맙다'가 '아끼다 공경하다 높이다'는 말로 두루 쓰였음을 보면 고마(곰)가 경건하게 예배할 대상인가를 가늠케 해 준다. 앞(곰과 어머니)에서도 살펴 보았듯이 곰(고마)은 더 이상 단순한 짐승이 아니고 신격의 의미를 띄고 있다. 백남운이 지은 조선경제사회사의 지적처럼 추운 지역에 살던 사람들에게 있어 곰이란 아주 중요한 먹거리요, 옷감의 원천이 되고 뼈로 만든 무기 생산의 보고 역할을 했으니 그렇게 떠받들만도 하다. 끝없이 주는 원천을 곰으로 여긴 것이다. 곰을 많이 갖고 있으면 그만큼 삶의 가능성이 견고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사투리 말로 보면 어머니는 '엄마, 옴마, 암마, 움마, 오마니, 오매, 오메, 어메, 어무이, 어매, 어망'등으로 쓰인다. 앞에서도 살펴 보았듯이 단군의 어머니이신 곰(고마)의 소리가 약해진 것이 '옴(오마)-옴마 오매 오메'등으로 이어지는데 오늘날의 어머니와 그 원형이 곰(고마)신인 것이니 곰이 우리의 내력인 줄을 알겠다. 하니까 곰이 숭배와 경건한 예배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지를 아니한가. 별이름만해도 그렇다. 큰곰자리니, 작은곰자리니 하여 곰을 별이름의 부름말로 삼은 건 무슨 사연일까. 별자리와 관련하여 짐승의 이름을 붙인 것이긴 하다. 북두칠성의 손잡이 부분과 북극성 자리를 큰곰 작은곰으로 자리매김함은 곰과 북쪽을 고리지은 것이다. 곰은 추운 지방에 살면서 일생을 살다가 간다. 조상신과 영혼의 숭배대상이었던 곰이 영원히 살아 밤하늘의 별자리로 빛나는 것이라는 믿음때문인가. 물론 그리스 신화에서는 본디 별의 요정이었던 칼리토스가 여신 헬라의 미움을 받아 큰곰자리에 있게 되었다는 줄거리다. 북극성은 지는 법이 없다. 해서 언제나처럼 밤하늘에 빛나는 모습으로 우리들의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이 될 저승의 누리를 손짓해 준다. 우리말로 별의 바탕이 빛이요, 불이듯이 곰별은 우리들 마음 속에 늘 빛을 뿌린다. 해서인지 북두칠성은 자손과 우리삶의 모든 행불행을 쥐고 있다고 믿으며 오랫동안 우러름의 표적이 되어 왔으니 이가 곧 칠성신앙이 아니겠는가. 죽은 사람의 등뒤에 칠성의 별을 그린 널판을 지게 하고 다시 묻는다. 몸은 썩어 흙으로 돌아가나 그의 영혼은, 그의 생명은 온 하늘을 돌아 칠성님의 곰세계로 아니 영원한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뭔가 잘 안 되면 '칠성님이 앵 돌아졌다'고 한다. 별의 본바탕이 불이라면 그 비롯은 해 곧 태양이 되기에 이른다. 마침내 모든 별은 태양의 한 변종이라고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땅이름속에 곰 신앙 곰이 조상신이요, 생명의 젖줄인 겨레의 어머니라 했다. 옛부터 한 번 불리면 잘 바뀌지 않은 우리의 땅이름에는 어떻게 되비쳐 있을까. 세월이 가면 모든 게 바뀌게 마련. 살아가는 문화의 모습이 달라지면서 사회생활의 의사교환의 거멀못이라 할 말의 소리도 뜻도 바뀌어 간다. 곰(고마)의 경우도 마찬가지. 수렵문화를 지나면서 청동기 문화의 발달과 함께 농경생활로 접어 든다. 조상신이요, 영혼의 상징물인 '곰'은 농업생산의 어머니라 할 땅과 물을 다스리는 신의 뜻으로 바뀐 것으로 본다. 따뜻한 남쪽지역으로 와서 뿌리 내려 살면서도 겨레 신앙의 뿌리샘인 곰 신앙은 여전하여 우리 둘레의 산이며 강, 또는 땅이름에 조상신 숭배의 곰우러름을 떠올려 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말은 있으되 글자가 없었던 시절, 한자를 빌려 썼다.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빌렸으니 하나는 한자의 뜻빌림이요, 다른 하나는 한자의 소리 빌림이라고 하겠다. 먼저 한자의 뜻을 빌린 보기들을 풀이해 보기로 한다. 중세어 자료를 보면 곰은 '곰-고마'로 적히기도 하였다(고마 熊津 (용가3 15) 곰熊 (훈몽자회 상19)). 일본말에서는 지금도 곰을 구마(kuma)라 하며 고맙다는 인사말의 '고마'가 아직도 쓰이고 있음을 보아 '고마-곰'은 분명 같은 말이었다. 소리마디로 보면 열린 소리마디 '고마'에서 끝 홀소리가 떨어지면 '곰'이 된다. 일본말의 '구마' 역시 우리말 '고마'에서 첫소리 마디의 홀소리가 바뀌어 쓰인 결과라고 하겠다. 한자의 뜻빌림에서는 가장 두드러진 곰 웅(熊)을 비롯한 땅이름이라 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에 드러난 이름만해도 40여 곳 이상의 분포를 보여준다. (웅-계 땅이름의 분포) 웅구 웅기 웅신 웅산 웅천(창원)웅양 웅곡지(거창)웅곡 웅현(선산)웅저현(김해)웅촌(울산)웅림소 웅림 웅시원 웅령 웅양역(회양)웅전산(정선)웅천 웅진(공주)웅이 웅이령 웅이역 웅이천(갑산)웅화산(의주)웅곡악(안변)웅천(개성)웅치 웅첨소(장흥) 신증동국여지승람 쓰이는 자리에 따서 곰(고마)이 반드시 짐승으로서 곰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앞선 여러 풀이에서 고마(곰)는 '신(神) 크다 북쪽 북두칠성 뒤 굽다'등의 여러 뜻으로 쓰이게 되며 농경문화로 접어들면서 소리는 같으나 '곰'이 검(거북) 더나아가서 용(龍)의 뜻으로까지 확산되어 쓰인다. 우리말의 '검'이 신(神)을 이르거니와 물신과 땅신의 동물상징으로 거북을 가리키기도 한다. 양산민요의 '왕거미'노래나 신자전 의 자료를 보면, 함안지역의 땅이름 현무(玄武)를 이두식으로 읽으면 '검'이 나오기 때문이다(정호완(1992) '곰'의 언어적 상징). 일본말에서 거북을 가메(kame)라 하는데 이는 양산민요나 땅이름 현무(玄武)를 비교한 우리말 '거미'와 같은 계열의 형태로 보인다. '웅 계'의 땅이름은 강이나 산, 섬 고개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굽으러져 둥그런 모습을 한 곳이 곰(고마), 일본말에서도 파마(구마 가마 파마)이니 '곰-웅'계 땅이름은 굽으러진 곳을 이른다고 풀이한 논의도 있다(강헌규(1992) 공주지명에 나타난 '고마 웅 회 공 금'의 어원). 따지고 보면 '굽다'의 '굽-'도 구멍을 뜻하는 '굼'에서 비롯한 말이니 '곰'의 홀소리가 바뀐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경남 동해안 방언에서 '없다'를 '움다'로, 향가에서 '움는'으로 적음도 한 방증이 된다. 마침내 가장 바탕이 되는 곰(고마)의 뜻은 중심이고 여기서 갈라져 나아간 주변적인 뜻이 아닌가 한다. 동물상징에서 곰이 수렵문화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거북(검)은 농경문화를 가리키는 소리 보람이라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 '검-거북'을 밑으로 하는 구(龜)계열의 땅이름은 어떤 보기들이 있는가를 살펴본다. ('구(龜)-'계열 땅이름) 구녕원(평산)구담(담양)구석(보은)구도(창원)구복(웅남)구성(영주 지례 단성)구지진(김해)구산포(칠원)구산(홍산)구암봉(김해)구산령(안동)구봉산(부산)구포(동래)구미(선산)거미야 거미야 왕거미야 진산덕산 왕거미야(양산지방 민요 왕거미 노래)/현무(玄武)(함안)(검(玄)+ㅁ(武)) (대동지지) 거북의 상징성은 많은 자료에 드러나는 바, 벽화그림의 거북은 북쪽의 물기운을 맡고 다스리는 신, 북쪽의 일곱별(斗牛女虛危室璧), 대오방기의 하나 인 현무기(玄武旗), 군영의 후군을 가리키는 경우에도 많이 쓰인다. 가락국의 김수로왕을 맞은 곳이 구지봉이었으니 이는 거북의 신령함을 통하여 가야국의 첫 임금을 맞이한다. 가락의 가(駕)도 글자를 풀어보면 감(加+馬 감)으로 소리가 날 가능성이 있다. 웅 구- 계열의 땅이름과 함께 동음이의어로서 폭넓은 분포를 보이는 게 부(釜)-계의 땅이름이다. 훈몽자회 등의 자료에서 '부'는 가마(釜)로 나온다. 거북을 드러내는 거미 가메와 그 소리가 비슷하여, 그 모양이 거북 모양과 같다고 하여 그리 적은 것은 아닐까. (부(釜)-계의 땅이름) 부곡(창녕 영천)부산(동래)부곡포(웅천)부동(횡성)부항(김천)(대동지지)/감골(태안)외감 내감 중감(김천)가마골(태안 공주 갑천)가막골(태안) 이 밖에도 곰(고마)의 뜻을 밑으로 하고 지역을 달리 적는 땅이름들이 있음은 일종의 강한 메아리 현상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음죽-흑석리(黑石里) 음성-감비(甘味) 칠곡-거무산(巨武山) 감산(加木山-架山) 현풍-부동 음동 금동). 보기에서 주로 쓰인 한자는 칠 흑 현 음(漆黑玄陰)으로 그 뜻은 모두가 검(감)과 같은 곰(고마)의 홀소리 바꾼 꼴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한자의 뜻을 빌어 적은 보기들에 대하여 이제까지 알아 보았다. 그럼 소리를 빈 음독(音讀)의 경우는 어떠한가. 기원적으로 한자 가운데에서 '곰'으로 소리나는 글자는 없기 때문에 이와 비슷한 소리꼴을 지닌 금(金琴今) 검(儉) 감(甘)과 같은 한 소리마디의 보기들이 있고 '고마'에서처럼 두 소리마디로 적어 열린 소리마디가 되는 갈래를 살펴 볼 수 있다. 땅이름의 보기들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금(검 감)-계열 땅이름) 감물(甘勿) 금물(今勿)-음달(陰澾)-감천(甘川)-어모(禦侮)<대동지지 김천>감물아(甘勿阿)-감라(甘羅)-감열(甘悅)(대동지지 熊津浦) 공주(公州)-웅천(熊川) 금강(錦江)-웅천하(熊川河) 검단(儉丹) 玄(黑赤色 신자전 ) 마침내 한반도 서남부의 허리를 감아도는 금강의 뿌리가 곰강이란 말이 되고, 3산5악의 중악이 되었던 대구의 공산(公山)도, 금호강(琴湖江)도 모두가 조상신이자 겨레의 말미암음이라 할 곰신앙을 되비친 땅이름이란 말이 된다. 이쯤 되고 보면 벌써 짐승으로서 곰은 사라지고 조상의 꿈과 믿음이 서린 생산신의 상징으로 떠오른다. 세월의 깊이를 더하고 문화가 발달해서 곰신앙같은 샤머니즘이나 토템이 약해지고 없어졌지만 여전하게도 아주 잘 쓰는 '고맙다'와 같은 인사말에 살아 남아 쓰이질 않는가. 쓰인 한자는 상당히 다양하다. 곰에서 '검-금-공-굼(궁)-감'으로 번져 나아간다. 한자의 뜻과 곰의 속성을 따져 보더라도 상당한 암시를 받을 수 있다. 먼저 검(儉)의 경우, '사람의 으뜸으로 모심'으로 풀이되며 우리말에서 신(神)의 뜻이 됨은 더욱 곰과의 걸림을 미덥게 한다(神검也<신자전>). 하면 공(公)은 어떠한가. 귀공의 '귀'는 벼슬하는 이가 사는 관청 '구의(公<훈몽자회>)'를 뜻하는 말이다. 제정일치 때의 벼슬하는 이란 흔히 종교와 정치의 지도자를 겸하였으니 부족으로 보아서는 귀한 사람일 밖에 달리 볼 수가. 귀의 본디말은 '굿이-구시-구이-귀'에서 온 것으로 '굿'은 정치와 종교 직능을 하는 공간 즉 굴(窟)인 것이었다. 굴살이를 하던 때에 굴이 바로 관청이요, 종교 공간이 아니었을까. 금(琴 錦)의 경우, 음악적이며 좋은 옷감을 떠 올린다. 땅과 물신에게 잘 빌고 순리를 따라 여름지이를 하면 먹고 입을 것이 넉넉하게 된다.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고. 맞다. 배고픈 이에게 아름다운 소리가락이나 옷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울러 지적해 둘 것은 2음절형의 '고마'를 적은 경우인데, 분포의 보기가 많지는 않다. ('고마'계의 땅이름) 고마(固麻 格門)<만주원류고> 고마지(古麻只) 고마미지(古麻彌知)<삼국사기> 구마노리(久麻怒利)<일본서기> 개마(盖馬)<후한서> / 獸之初生之謂鼻(대한한사전) / 고히平코(석보상절19.7) / 가무이(神)<Ainu> 곰과 함께 고마가 널리 쓰였는데 곰은 고마의 소리마디가 줄어든 형태이고 고마는 기본형이 '고'이다. 하면 '-마'는 마니산의 '마'와 같이 높임을 드러내는 경칭접미사로 쓰였을 뿐인데 함게 늘 쓰이다 보니 한 단어처럼 굳어지고 줄어 '곰'이 된 것으로 보인다. '고'는 코의 뜻으로서 태반에서 짐승의 모습이 제일 먼저 생겨난 조직이라 풀이된다. 호흡이 이루어지는 부분도 코이며 가장 생명적인 부위가 아닌가. 모계사회에서 조상신이요, 영혼으로 우러르는 곰이야말로 겨레들의 말미암음인 생명의 씨알이라고 하면 상당한 걸림의 가능성이 있음을 상정할 수 있다. 오늘날에 이르면 '고-코'가 된다. '고(ㅎ)'와 같이 코는 히읗(ㅎ)말음특수명사이다. 소리의 바뀜으로 보아 아예 (ㅎ)이 윗말에 녹아 붙어 '곳-곶-곧-골'과 같은 낱말의 떼를 이룬다. 흔히 겉으로 불쑥 튀어 나온 부분을 '곶'(장산곶 장기곶)이라 하거니와 식물의 가장 중요한 조직을 '곶'이라 하며 뒤에 꽃이 되었다. 꽃으로 말미암아 씨앗이 생겨나 온 누리에 그 씨앗 퍼뜨림을 보면 분명 생명과 직접 걸림을 둔 주요한 두드러짐의 한 부분임을 알만한 일. 옛 조상들은 '곰'에서 겨레들이 움트기 시작해서 그 가지에 꽃을 피워 열매를 맺었음을 떠올려 그렇게 의미부여를 한 것일까. 곰의 변이형인 '굼'은 구멍을 뜻하며, 이 말이 바뀌면 소리가 약해져서 '굼 훔 움'이 되기에 이른다(람스테트, 1945, 알타이어학입문 참조). '움'도 따지고 보면 생명의 뿌리란 말 '굼(곰)'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곰의 낱말겨레 태풍의 정도가 심할수록 중심에서 더욱 멀리 영향을 미친다. 말 또한 그러하다. 특정한 언어사회에서 상징성이 강한 말이 있다면 소리나 뜻으로 보아 이에서 갈라져 나온 말이 더 큰 낱말의 떼를 이루게 될 것이다. 곰(고마)의 경우 배달겨레의 조상신이자 가장 경배하는 대상신이자 믿음의 존재였으니 많은 메아리로 우리말에 퍼져 쓰였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먼저 형태의 갈라짐을 보면 곰의 소리가 바뀌어 새끼를 친 낱말의 떼가 있고 뜻을 중심으로 갈라져 나아간 낱말의 떼가 있다. 곰(고마)에서 홀소리가 바뀌어 이루어진 말들의 보기를 더듬어 본다. 곰-감 계열이 밝은 홀소리의 경우이며, 굼-검-금 계열의 어두운 홀소리의 보기라고 할 것이다. 앞에서 풀이한 것처럼 머리의 닿소리가 약해지면 '홈-함 / 훔-험-흠'이 되고 다시 소리가 약해져 떨어져 가면 '옴-암 / 움-엄-음'이 됨을 알 수 있다. 순서에 따라서 '곰-감 / 굼-검-금'의 경우를 먼저 들어보기로 한다. 이 때 드러내는 뜻으로는 짐승으로서 곰은 물론이요, 검정색, 구멍, 신, 어머니 등과 같은 여러가지의 복합성을 띤다. 익은 말이나 속담도 함께 고려한다. (곰- 계의 낱말) 가) 곰(熊) 곰거리 곰곰이 곰나루(공주) 곰취 곰방대 곰팡이 곰보 곰 실거리다 곰실곰실 곰작곰작 곰지락거리다 곰틀곰틀 곰 앞잡이 / 곰 가재 뒤지듯 / 고맙다 고마도(古馬島 전남 완도)고마(妾<훈몽자회 상 31>) 고마이 고마ㅎ다(내훈1.27) 고막(=귀청) / 공그르다 공글차다 공글리다 나) 감(枾 열매 중에 으뜸) 감노랗다(검은듯 노랗다) 감다(머리를 ) 감돌다 가마솥 가마니 가마귀 가마노르께하다 가마득하다 가마푸르레하다 가마채 까막눈 가만가만 가만하다 가맣다 감감-캄캄-깜깜하다 가매지다 가무댕댕 까무댕댕하다 가무러지다 까무러지다 가무레하다 가무잡잡하다 가물 가물다 가물거리다 가물에 돌 친다 가물 타다 가뭄 깜작하다 다) 검(神<신자전>) 검다 검기다 검기울다 검누르다 껌껌하다 검둥이 컴컴하다 검실검실 거문고 거문성(巨文星 큰곰 자리에 있는 별이름) 거문도(巨文島) 껌적껌적 검정 껌정이 검 질기다 검 접하다 껌정 검칙하다 검푸르다 겁나다(검(神)이 나오다) 라) (굼-)구멍 구멍을 보아 말뚝 깎는다 구멍가게 구멍밥 구멍새(구먹) 구메구메 구메농사 구메혼인 굼벵이 굼뜨다 굼실거리다 굼적거리다 굼지럭 굼지럭 굼튼튼하다 굼틀굼틀 구물거리다 구문소(태백) 궁글다 궁글리다 마) 끄먹거리다 끄무러지다 그물(함정 곧 구멍) 끄물거리다 그믐 그믐밤 끔벅이다 금쇠 주로 '검다 구멍 곰 신'의 뜻을 바탕으로 하는 낱말들이 떼를 이루어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곰-계열의 말에서 첫소리가 약해지면 목구멍 마찰음(ㅎ)이 되어 쓰이는데 함께 뭉뚱거려 낱말의 보기를 찾아 보도록 한다. (홈- 계열의 낱말 겨레) 가) 홈(오목하고 길게 파낸 고랑의 줄)홈끌 홈질 홈치다 홈치작거리다 홈켜잡다 홈켜쥐다 홈키다 홈통 홈파다 호물때기 호물거리다 호미(홈+이 호미)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 호미 씻이 호미자락 나) 하물하물 함지박 함빡 / 허물 허물다 허물어뜨리다 허물어지다 허물없다 허물하다 험집 / 후미지다 후미 후무리다 / 훔쳐내다 훔치다 훔쳐때리다 훔켜잡다 훔켜쥐다 훔 파다 훔 패다 훔척거리다 / 흐뭇하다(흠 ) 흐물흐물 흐무러지다 흠 흠뻑 흠실흠실 흠잡다 흠집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리가 약해져 떨어지면 소리값이 없는 말이 이루어진다. 그 대표적인 말이 어머니의 방언 형성 옴(엄 암 움)- 형이라고 하겠다. 낱말의 떼를 찾아보도록 한다. (옴- 계열의 낱말) 가) 옴 옴나위( 없다) 옴딱지 옴막집 옴쏙옴쏙 옴실옴실 옴쏙거리다 옴직옴직 옴실대다 옴츠러뜨리다 옴츠러지다 옴츠리다 옴크리다 옴키다 옴파리 옴 파다 옴 패다 옴 피우다 옴폭옴폭 옴포동이같다 오물거리다 오막살이 오매(어머니) 오목눈이 오목오목 오목조목하다 오목하다 오무래미 오물거리다 오물대다 오물할미 오므리다 오미(늪과 같이 물이 고여 있는 곳) 오밀조밀하다 옹글다 옹그리다(옴(ㄱ)으리다) 나) 우무러뜨리다 우무리다 우묵우묵 우묵하다 우물(웅굴<함경 강원>)우물대다 우물쩍우물쩍 우물쭈물 우무러들다 우무러지다 움(움안에 간장) 움돋이 움따기 움누이 움딸 움막 움집 움버들 움막살이 움베 움불 움뿅 움싹 움씰거리다 움쑥 움직이다 움직씨 움질거리다 움키다 움켜잡다 움켜쥐다 움 파다(움 패다) 움퍽 움펑눈 움푹 움쌀 움푹움푹 웅글다 웅둥그려지다 웅숭 깊다 웅크리다 다) 으물거리다 으물으물 으뭉스럽다 응그리다 응등그리다 / 어마(어머나) 라) (어머니의 방언) 니미(창원 진양) 아매(경원 온성) 애미(부산 김해) 엄니(충청 전라) 어마(영주 봉화) 어마니(강진 화순 보성 해남) 어마님(포항 화순 담양) 어마씨(김천) 어마이(남해 양산 안동 길주 명천) 어만(황해 평남) 어매(영주 안동 봉화 영양 상주 김천) 어머니(충청 경기 전북) 어머이(울진 포항 거창 산청 단양 영동) 어멍(제주) 어메(경북 경남 전라) 어무(울주) 엄냐(남해) 엄마(전국) 엄마이(황해) 엄머이(의령) 에미(경남 평안남북 함경 강원) 오마(함안) 오마니(김천 평안남북) 옴마(경상 진안 장계 온천) 이미(창녕) 움마(남해) 제미(온성 경성) 제에미(경원) / 어무(어모) 禦侮(金泉 甘川) <대동지지> 위의 낱말들의 보기에서 눈에 뜨이는 건 '어머니'의 사투리말이다. 곰의 변한 말이라 할 곰(검-감-굼-금)에서 홈(험-함-훔-흠)을 거쳐 옴(엄-암-움-음)이 되었음을 고려하면 어머니의 사투리말에 곰의 변이형이 모두 들어 있다는 것 알 수 있다. 겨레의 조상신이자 단군의 어머니신이 곰이니 세월이 지나면서 소리가 바뀌어 오늘날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줄거리가 되기에 이른다. 아울러 곰(감 검 굼 금)이 토씨와의 결합에서 까닭없이 기역(ㄱ)이 끼어 드는 기역특수곡용명사이고 그 소리가 바뀐 형들도 옴(암-엄-움-음)이 기역 앞에서 자음이 동화되어 옹(앙-엉-웅-응)으로 바뀐 것도 같은 맥락임을 한 터무니로 댈 수 있을 것이다. 공간으로 보면 구멍이요, 땅이요, 물이 곧 곰(고마)이다. 물이 있는 곳에 농업 생산이 가능하고 모든 목숨살이의 삶이 가능한 건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말이 구멍이지 좀 더 확대하면 굴이 된다. 이는 옛 조상들이 굴살이 - 혈거생활을 하였음을 떠 올리면 사회언어학적인 의미 부여가 어렵지 아니하다. 그러니까 어머니 - 고마(곰)는 우리 겨레의 생명이요, 그 생명이 깃들이는 안식처이자 영원한 그리움의 언덕이 되는 것이다.
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2. 태양숭배와 곰신앙 어머니,당신은 아무래도 멀리 계시옵니다 밤으로 가득한 강물은 물새 소리며 흩어지는 별빛을 안고 먼 그리움을 꿈꾸며 세상을 안아 흐릅니다. 저 먼 나라로 가신 지 벌써 이십여 년. 세상살이로 지친 마음 탓인가, 모습도 아련해 가고 자꾸만 멀어감을 어이 하올지요, 탓이라면 정성이 모자란 까닭일 밖에요. 그날밤도 봄이었더랬습니다. 검푸른 금강물, 하얀 백사장에 희미한 별빛을 받고 난 살기 싫다고 못 살겠다고 물 속으로 뛰어 들었던 당신. 병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러셨겠습니까. 평생을 심장병으로 온 몸이 뒤틀리는 고통으로 사셨으니 말입니다. 당신 어머니냐고, 이 할머니의 아들이냐고 젊은 경찰이 물었을 때, 그렇다고 했습니다. 아주 겸연쩍고 마지 못한 모습으로요. 말이 됩니까. 정말 그럴 수는 없는 건데요. 얼마 전 몹시 춥던 겨울날 갑자기 내린 혈압으로 한 이레 동안 몸져 누웠더랬어요. 다시 깨어나 일어났을 때 빛바랜 당신의 사진을 안고 마냥 울었습니다. 그냥요. 우리 아무개 내 새끼 하고 품에 안아 길렀던 당신의 아들이라 하기에는...... 사진으로라도 뵙고 싶었습니다. 어머니. 엊그제 팔공산 뒤편에 있는 인각사 절에 갔습니다.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삼국유사를 지으신 일연스님이 계셨다기에, 알고 보니 늙고 병드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그리 사람도 없는 외로운 산촌에서 세상의 보통 사람처럼 사셨다는 겁니다. 모르긴 해도 세상에서 멀리 하는 문둥이 같은 나쁜 병 때문에 스님의 몸으로 노모를 모시자매 그리 외딴 곳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니 당신에 대한 죄스러움이 먹구름 하늘로 가슴을 뒤덮더이다. 그날 따라 비가 내렸어요. 걸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뿐. 밤새 내린 비로 불은 도랑물이 벼랑에 메아리지고 그날 따라 공산은 저 멀리 아주 멀리 보였습니다. 밤 뻐꾸기가 강 건너 산에서 울고 있습니다. 밤도 깊고요. 비가 오려나 봅니다. 짙은 달무리를 한 달이 늦게 돋아선 막 서녘으로 지고 있습니다.세월이 흐르다 보면 저도 당신 계신 곳으로 가겠지요. 무엇이 되어 뵈올지, 한 줌의 흙이 되고 풀꽃이 되어. 아니 돌이 되어 당신은 어미 돌, 저는 그 아래 귀여운 아기 조약돌이 되어 응석을 떨어 볼런지요. 희미한 달빛으로 그림자 지는 강물. 갸름한 당신의 모습이 물 위에 여기저기 흩어져 간간히 부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한창 어우러진 아카시아 꽃 숲에는 당신의 젖비린내가 흔건히 배어 옵니다. 몸에 저리게 말입니다. 아픈 몸으로 저를 낳아 기르신 당신. 어떤 이들은 당신을 천치병신이라고, 반푼이라 합니다. 셈수도 모르고 잘잘못을 가리지 못하니까요. 당신 몸 하나 추단을 못했으니까. 저에게 그게 무슨 말입니까. 뭐가 문제입니까. 당신은 제 목숨의 샘물인걸요.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어렴풋이 알 듯합니다. 당신의 마음을요. 언제부터인가 흐르는 저 강물이, 밟고 다니는 이 부드러운 흙이 당신의 영혼 깃든 몸일 거라는, 저 하늘의 별이 당신의 넋일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산과 들에 나오면 흙을 만지고 일을 하노라면 당신의 품에 안겨 있다는 생각에 빠집니다. 발 빼고 강을 건너면서 당신의 사랑을 느끼곤 했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당신은 제 목숨의 텃밭이요, 둥지입니다. 작년에 여기 강물이 바라 보이는 강마을로 이사를 왔습니다. 이웃과 함께 슬픔과 기쁨을 나누면서 당신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당신을 대하듯이 어두운 곳에 사는, 저보다도 못한 이들과 더불어 살아 보렵니다. 막 달이 지고 있습니다. 야윈 찔레꽃 송이마다 별빛이 내려 앉은 듯 합니다. 이제 꿈을 꾸렵니다. 아무래도 당신은 멀리 계시지만 가까이서 당신 품에 안기는 꿈을요. 달홀(達忽)과 가라홀(加羅忽)의 어우름 금강에 살으리랏다 금강에 살으리랏다/운무 더리고 금강에 살으리랏다/홍진에 썩은 명리야 아는 체나 하리오 (이은상의 '금강에 살으리랏다'에서) 금강산. 말만 들어도 어쩐지 가슴이 설레인다. 하늘이 내려 준 천의무봉(天衣無縫)의 모습을 안개와 구름 속에 부끄러운 듯 감추임을 보고 얄팍한 세상살이에 울고 웃는 우리네 삶을 되돌아 보게 하는 노산 시인의 글이 제 격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아픔으로 시련의 안개요, 구름으로 뒤덮인 인고의 나날들. 우리의 힘 없음밖에 다른 이들을 탓해 보았자 무엇에 쓰리오. 가 보고 싶은 그리움의 산이련만 날씨 좋은 날 고성의 통일전망대에서 멀리 바라만 보고 있다. 산과 내가, 나와 산이 멀기는 마찬가지. 오죽했으면 중국 사람의 글에 고려에 태어나 금강산 구경을 해봤으면 하였을까(願生高麗國欲見金剛山). 금강산은 비로봉을 가운데로 하여 서쪽은 내금강이요, 동쪽은 외금강, 바다쪽은 해금강이 된다. 고성(高城)은 금강의 동쪽이자 바다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고성군의 군청 소재지는 원래 장전읍에 있었으며 외금강면과 서면과 함께 김일성의 다스림을 따라 가 볼 수 없는 땅이 되고 말았다. 해서 간성읍으로 군소재지를 옮겨 거진읍이며 현내면, 토성, 죽왕, 수동면을 싸 안아 의연한 모습으로 예국의 변방고을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성현과 간성현이 어울어 오늘의 고성군이 된 셈. 고성현은 달홀에서 본디 고성현은 고구려 땅으로 달홀(達忽)이라 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하면서 달홀주라 하여 군주(軍主)를 두어 다스리게 한다. 해서인지 군사들의 주둔지임을 알리는 정(停)을 붙여 문헌에 따라서는 '달홀정'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벌력천정·한산정·현효정 등) 신라 35대 임금인 경덕왕 16년(757) 고성군(高城郡)으로 바뀐다. 땅이름이 바뀌는 과정에서 그 걸림을 보면 달홀처럼 '달'이 땅이름 앞에 오면 높다·크다·넓다의 뜻으로 쓰이고, 땅이름 끝에 오면 군현읍성에 맞먹는 뜻이 되는 경우가 많다(高木-達乙·達句-大邱/阿斯達-平壤·烏斯含達-兎山). 해서일까. 고성에는 높을 고(高)의 영향으로 보이는고잠(高岑)·양진(養珍)·대강(大康) 등의 땅이름들이 눈에 뜨인다. 여기 양진의 진(珍)은 '달'로 읽는 뜻을 보이기에 그리 넣은 것이다. 고성현의 옛마을은 양가현과 안창현이 있었는데 뒤에 이를 어우러 없애고 달홀로 다시 고성으로 고쳐 부르게 된다. 양가(養가)마을은 고성의 북쪽 27리쯤에, 안창(安昌) 마을은 남쪽으로 27리쯤에 자리잡고 있어 남북으로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먼저 양가마을의 경우를 살펴보자. 양가 마을의 본디 이름은 돼지저자 저수혈(猪狩穴)로 또 달리 오사갑(烏斯岬)이라 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이르러 양가현으로하여 옛 고자 고성군(古城郡)에 속하게 한다. 저수혈-오사갑에서 먼저 혈(穴)-갑(岬)은 같은 '곶'을 드러낸 말이 아닌가 한다. 저수의 '저'는 마찰음 '서'를 표기한 것으로 보이며 수의 시옷을 윗 말의 받침으로 쓰면 '섯굴(섯궂)'이 되고 오사의 오(烏)는 '새'를 드러냄이니 이 또한 '삿갑(삿곶)'으로 보면 섯-삿이 모두 사이를 뜻하는 게 아닌가 한다. 그러니까 산봉우리 사이에 형성된 고장으로 보면 좋을 듯하다. 우리말을 한자로 적는 과정에서 갑(岬)은 뫼산이 변으로 붙은 갑(岬)으로 적음이 온당한 것으로 보인다. 자칫 갑(岬)이 누른다는 압으로도 읽힐 오해의 소지가 있음으로 보아 더욱 그러하다. 이를 돼지-돗(猪) 쪽으로 본다면 오(烏)를 됴(鳥)로 보아야 걸맞는 소리의 대응이 이루어진다. 이르자면 두드러진 높은 지역임을 상징하고 까마귀나 새로 보더라도 모두가 드높은 고장을 드러냄에는 다름이 없다고 하겠다. 그럼 경덕 임금 때 양가(養假)로 고쳐진 근거는 무엇이고 이를 고성(古城)에 넣게 된 건 무슨 까닭인가. 땅이름의 대응이란 걸림으로 보면 누르고 흰 곰 가의 '곰'과 저수혈(穴)의 혈-굼(구멍)과의 걸림이라고 하겠다. '곰-굼'은 모음이 바뀌었을 뿐 같은 뜻을 드러내고 있다. 또 고성(古城)은 무언가. 본디 고(古)는 조상의 무덤이요, 굴을 드러내는 글자로서 굴(구멍)과 서로 함께 어울리는 글자로 보이며 나중에 높다는 고성(高城)으로 바뀐 것은 우연이 아니다. 조상의 무덤이 있는 장소는 산지이니 높을 것이요 자손이 그 부모를 받들어 모심은 마땅한 것이다. 아마도 예국의 선조들이 여기를 기점으로 해 강릉으로 옮아갔을 가능성이 짙다. 이제 양가현과 함께 고성현의 옛 고장인 안창(安昌)의 경우는 어떠한가에 대하여 살펴 보도록 한다. 고성현의 남쪽 27리쯤에 자리한 안창현의 본디 이름은 막이(莫伊)였다. 고려 태조 23년에 안창으로 바뀌었다가 뒤에 고성으로 들어 간다. 간성의 옛 고장이던 마기라(麻耆羅)에서와 같이 막이(莫伊) 또한 같은 드러냄으로 보인다. 곧 막음기능을 중심으로 한 것이니 여진과 일본군의 침략을 막는 고장이어야함을 강조한 듯하다. 이름만큼이나 외세의 침략으로 큰 시련에 직면한다. 고려 현종19년 전함 15척을 이끌고 용진 나루에 쳐들어 와 중랑장 박흥언 및 70여인을 포로로 하여 물러간다. 문종 2년에는 양가현에 동번적이 쳐들어 와 갑자기 100여인을 쳐 죽이고는 달아나 버린다. 고종 36년에 이르러 고려의 별초군과 동여진의 군사가 고성 싸움에서 이를 물리친 바 있다. 이에 앙심을 품은 동여진은 고종 45년 고성현의 솔섬을 둘러 싸서는 우리의 전함을 불지르고 분탕질을 놓는다. 이뿐인가. 충렬왕 16년이 되자 적극적으로 우리 쪽에서 우군만호 김흔이 양가현에 주둔해 있으면서 하란의 몽고병을 대비하여 막아낸다(암, 그래야지). 공양왕 9년에 이르러는 왜적이 고성포구로 쳐들어 온다. 낮에는 배를 타고 밤에는 언덕을 기습하여 노략질을 한다. 참으로 편히 쉴 날이 없다. 드센 바람에 이는 밤바다의 파도이듯 말이다. 몽둥이처럼 억센 국방의 요새, 간성 금강산처럼 우뚝 솟아 외세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던 아니 막아내야 했던 간성, 방패요 몽둥이었으니. 본디 고구려의 땅으로 가라홀(加羅忽)이었다. 뒤에 갓변자 변(邊城)으로 다시 경덕왕 16년에 수성군(守城郡)으로 고쳐 부르게 된다. 많은 풀이가 있긴 하지만 여기 가라홀의 '가라'는 가름 기능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강릉을 중심으로 한 예나라(穢國)의 변방이면서 외세를 막는 국경수비대가 있었으니. '가라-변-수'에서 변·수에서도 나라의 경계를 가름하는 지역이니 변방의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함을 깨우친 듯하기도 하다. 또 다른 이름으로 물수자 수성(水城)이라 했다. 소리로는 지킬 수자 수성이나 다른 게 없지만 내용상으로는 물로 둘러싸여 바다의 경계를 환기하려는 의도가 바탕에 깔린 것은 아닐까? 사라진 폐현이 되기는 했으나 간성의 옛 고장은 열산(烈山)이었다. 열산은 본디 마기라(麻耆羅)였으며 달리 소물달(所勿達)이라고도 하였으며 경덕왕 16년에 아이동자 동산으로 부르다가 수성군의 속현이 된다. 동산은 그 전에 중승자 승산(僧山)으로도 불리워졌으니 아주 다양한 바 있다. 고려 태조 23년에 오면 다시 열산(烈山)으로 고쳐 부르기도 하였고 별도로 봉산(鳳山)이라고도 한다. 이를 간추려 보면 '마기라(소물달)-승산-동산-열산'의 걸림이 이루어진다. 먼저 소리를 따라서 생각하면 마기라-막으라(막을 곳)의 경비를 강조한 게 아닌가 한다. 앞 글에서 안창의 옛 지명이 막이(莫伊)라 했는데 같은 흐름이라면 어떨까. 달리 소물달이라 함은 함부로 하지 말라는 뜻인 듯하다. 본디 소(所)란 장소가 중심이지만 병영을 뜻하기도 한다.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국방을 튼튼히 하려고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는 병영이니 사람의 통행이 자유스러울 수 없고 게다가 머리를 깎은 중의 모습을 한 금강산이며 천진스러운 어린이의 정서를 일으켜서 그러했을까. 목숨을 바쳐 수자리, 간성을 지켜야 하니 매울 열자 열산이라 했다면 어떨까. 여기 어린아이 '동'은 듕-ㅈ-중으로 이어지는 소리의 연상도 가능하니 옛 선인들의 슬기로움을 새삼 느낀다. 고성현 못지 않게 간성현도 많은 시련의 세월을 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려조 덕종 시절(2년) 해적들이 간성의 백석포(白石浦)로 쳐들어 와서는 50여명의 포로를 데리고 물러 갔다. 다시 정종 8년 열산현 영파수(寧波戍)의 지휘관인 대정 간홍(簡弘)은 적에 맞서 싸웠지만 활도 떨어지고 힘에 부쳐 끝내 전사하기에 이른다. 이어 문종 4년 무렵 중국 동번의 해적들이 열산현 영파수 자리로 공격해 온다. 그 때 18 사람의 포로를 잡아간다. 조선왕조에 들어서서는 원주에서 떨어져 간성군으로 독립하고 공양왕이 군(君)으로 강봉된 뒤로 다시 삼척부로 행정구역의 조직이 바뀐다. 늘 그러하듯이 옛부터 나라의 국경을 지키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잡혀 가고 죽임을 당했지만 끝내 그 자리를 지켰으니 따지고 보면 몇 사람의 지휘책임자는 말할 것 없고 이름 없는 이들 모두가 열렬한 충신이요, 열사들이었으니 과시 열산(烈山)이라고 할 만하다. 양간지풍 통고지설의 속내 말을 매어두고 한가로이 바닷가를 걸어 본다/차디찬 모래 울리는 소리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구나/ 느낌이 깊어 사람과 모래는 하나 되었나/슬기 많아 그대이련만 무슨 까닭으로 불평하려오. (捨馬閑行海上汀 寒步策策人鳴感 傷肯到無情物怜 汝何由亦不平) - 김극기의 한시에서) 양양과 간성에는 바람이 많고 통천 고성에는 눈이 많다는 얘기. 고성의 실개천들은 거의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고 했다. 대략 서쪽이 동쪽보다 높음으로서다. 영동지방으로서는 가장 북쪽에 자리하여 향로봉(1,293미터)을 중심한 건봉, 까치, 동굴, 칠철,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태백의 줄기들이 힘찬 기운으로 바다를 굽어 보며 하늘을 이고 산다. 바라다 보이는 산에는 눈이 허연데 바닷가 모래 벌에는 곱게 해당화가 핀다. 해서인가. 당시에 이곳 현감을 지낸 이식(李植)선생은 읊기를 "산에는 눈이 희끗희끗한데 바닷가 모래밭엔 해당화꽃이 벌써 지기 시작하네"라 했다. 물 맑고 바람이 좋은 곳, 특히나 밟으면 모래소리가 종소리와 같다는 명사(鳴沙)는 어떻구. 둘이 있는데 하나는 간성의 남쪽 18리에 다른 하나는 북쪽 60리쯤에 있다는 것. <대동지지>에서는 모래가 눈 같고 참으로 깨끗하며 쇠종소리와 같다고 했다. 꽤나 풍광이 빼어난 고장으로 금강이 통행만 되면 관광산업의 앞날이 아주 밝은 곳이다. 아울러 열산(烈山)호의 이야기 또한 자못 눈에 선하다. 본래 호수의 바닥에는 옛 마을이 있었다. 큰 물이 열산의 고을을 싸 안아 버려 산기슭 쪽으로 새로이 현을 만들어 옮겼던 터. 물속의 꿈꾸는 고장이 되었다. 날씨가 맑고 파도 잠잠한 날이면 옛 고을의 집이며 담장들이 보인다는 거다. 수족관이 아니라 물속의 고향 용궁의 나라가 되고 말았다. 그 마을을 보는 후손들의 마음이 어떠했으리. 참으로 열 받을만 하다. 이래 죽고 저래 죽고 남는 건 한뿐일 걸. 마음을 비우라고 씻으라고 밤바다의 파도만 일렁인다. 화진포의 부자 더운 여름이면 예외 없이 화진포 해수욕터에는 많은 이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옛날에는 열산호와는 달리 이 자리에 뭍이 있는 마을이었다는 이야기. 이화진이란 잘 사는 부자가 있었다. 하루는 지나는 화주승이 시주를 하라고 하자 어뿔사 바가지로 똥을 퍼부어 쫓게 된다. 이를 본 이 부자집 며느리는 시어른 몰래 화주승에게 쌀을 시주한다. 며느리 보고서 이 마을이 물속에 잠길 터인 즉 빨리 몸을 피하라고 화주승은 일러준다. 마침내 화주승은 도술을 써서 온 마을이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게 하였으니 엄청난 재앙을 일으켰다. 해서 그 자리는 연못이 되었고 이 화진이라는 이름을 따서 화진포(花津浦)라 했다는 것. 끝내 며느리는 스스로 자진하여 목슴을 끊는다. 그 한 많은 영혼은 이 마을의 서낭신이 된다. 땅이름처럼 모래가 향기로워 그 곳에서 피는 꽃잎은 모두 향료로 쓰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화진포 전설의 유형은 태백의 구문소 전설 등 적지 않은 분포를 보이는바, 꽃 화자 땅이름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화진이라, 꽃나루라 했을 터. 중세말로는 꽃을 곶이라 했다. 장기곶·장산곶에서처럼 눈에 띄이는 아름다운 모습에 대하여 꽃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름도 드높은 꽃나루에 금강산의 반가운 봄소식. 기다리던 실향한 이들의 봄소식이 곧 올거라는 다짐을 두면서 조금은 참고 기다리면서 버티어 볼 일이다.
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2. 태양숭배와 곰신앙 '해'의 소리 상징 신라성대 소성대 아달라의 임금 때 해는 연오의 아내 세오의 베틀에 가 매달려서 살았다. (서정주의 '해'에서) 옛적 동해가에 연오랑과 세오녀가 부부 되어 살았더니, 하루는 연오랑이 미역을 따러 바다에 나갔다 파도에 떠 밀려 일본의 소도(小島)에 가 왕이 되었다. 낭군을 잃은 세오녀는 찾아 나서 마침내 왕비가 되었다. 때에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제 빛을 잃고 말았으니 이를 어찌 하리오. 하늘을 보고 점을 치는 일관(日官)이 이르기를 연오와 세오는 해와 달의 신이기에 이런 변괴가 일어났다고. 아달라 왕은 사신을 보내 두 사람을 돌아 오도록 하였다. 사정은 뜻같지 않았다. 연오는 하늘의 뜻으로 이 곳에 왔으니 세오녀가 짠 비단을 갖고 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라고 한다. 사신이 돌아와 왕께 알리고 못 위에 그대로 하늘 제사를 올리니 해와 달은 그 빛을 다시 찾게 되었다는 이야기다(동국여지승람 참조). 해가 없는 곳에 삶의 빛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어두움의 혼돈을 깨는 그 환한 빛이며 따뜻함이란 실로 우리 목숨살이들의 뿌리요, 말미암음이 아니던가. 해서 옛부터 태양신을 우러르는 믿음이 있었고 이에 터하여 겨레를 다스려 간 것이다. 말은 문화를 되비친다. 어떤 사물이나 사실 자체가 아닐 뿐 이를 알맹이로 하는 소리 보람인 것이다. 그럼 '해'는 어떤 소리상징이요, 문화적인 속내를 드러내는 걸까. 소리 나는 자리나 방법이 같거나 비슷하면 서로가 닮거나 영향력이 큰 쪽으로 바뀌어 간다. 시간이 흐르고 지역이 달라지면 그 소리는 약해지거나 강해지기도 한다. '힘 - 심 형 - 성 혀 - 세 형편 - 셍편'과 같이 '해'는 같은 갈림소리인 '새'와 넘나들어 쓰여 왔다(닷새(五日)<어제소학언해>). 소리값으로 보아 중세국어 시기에 '새(日)'는 '사이'와 같이 겹홀소리로 냈던 터. 그러니까 '새 사이'라는 뜻으로 가늠할 수 있겠다. 이제 해와 '사이'는 무슨 걸림이 있는가에 대하여 더듬어 보자. 또 '해'의 문화적인 소리상징은 무엇인지를. 영원히 늙지 않는 해는 하늘, 땅, 바다와 하늘의 지평과 수평의 '사이'를 뚫고 솟아 오르는 거룩한 모습으로 온 누리에 빛을 드리운다. 그 눈부신 모습으로. 다시 그 사이로 지면 하루가, 한 달이, 한 해가 간다. 셈을 할 때의 '세다'도 해의 소리 '새(세)'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세다 - 헤아리다(헤다)'가 바로 그런 움직임을 드러낸 낱말겨레에 들지 않는가. 해 뜨는 동녁을 '새'라 함도 바로 해와 멀리 있지 아니하다. 예서 벌어져 나아간 말의 겨레 또한 적지 않음은 다 잘 아는 일. 한편 문화적인 소리상징으로서 해는 무슨 속내를 드러내는 걸까. 태양숭배와 철기 곧 쇠그릇문화를 속으로 하는 상징이 뼈대가 아닐까 한다. 빗살무늬 소도(蘇塗) 고인돌같은 거석문화 동침제(東寢制) 솟대신앙 등이 태양숭배요, 쇠그릇 문화를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이르자매 제정일치의 제의문화를 이끌어 간 스승문화 시대만 해도 그렇다. 남해자충과 같이 신라 초기에는 임금을 자충(慈充)이라고도 일렀다. 당시의 소리로 보아 '자충-즈증-스승'의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지읒(ㅈ)과 같은 파찰의 소리들이 아직 우리말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스승 또한 사이를 뜻하는 '슷(間)'(훈몽자회)에 씨끝 '-응'이 붙어 이루어진 말이다.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사이에서 정치와 종교의 직능을 함께 이끌어 갔으니 말이다. 여기 신은 하늘신 곧 태양신이었음은 앞 서 든 연오랑세오녀의 이야기나 단군신화에서도 고주몽, 김수로, 박혁거세의 말미암음에서 또한 그러한 암시와 개연성이 드러나 있다. 철기문화의 '쇠'와 태양숭배의 '새'는 사투리말로 보아 같은 낱말의 맥으로 이어진다. 지방에 따라서 쇠(鐵)는 '새(쌔) 시(씨) 소이'로 쓰나니 모두 '사이'를 뿌리로 하는 말이다. 돌도 아니요, 나무도 아니면서 두 쪽의 좋은 점을 가졌으니 사람의 삶에 큰 빛을 던져 준 것이 아닌가. 하긴 영오(迎烏)와 세오(細烏)의 오(烏)또한 '새'이니 맏새는 해요, 잔새는 달이 아니겠는가. 오늘 새벽의 초승달이 포항의 거리를 누빈다. 세오녀의 비단처럼. 말하는 남생이 말 없는 청산이요 태 없는 유수로다 값 없는 청풍이오 임자 없는 명월이라 이 중에 병 없는 이 몸 분별없이 늙으리라 흔히 말 때문에 말 다툼이 일어 나고 이래저래 말이 많다. 해서인지 우계(牛溪) 성혼(1535-1584)선생은 차라리 말이 없는 푸른 산의 덕성을 기려 노래하고 있다. 말의 가치가 아닌 말 없음의 가치를 읊은 것이다. 물과 불에 온 누리가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해서 그 물과 불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말 또한 그러하다. 하루라도 말을 하지 않고 사람의 모듬살이에 하루라도 생각을 나누면서 살 수 있으리오. 설령 하루 종일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하는 이라도 말의 질서를 거치지 않고는 통일된 생각과 느낌을 지닐 수 없게 된다. 남생이란 이가 토끼를 속여서 용궁으로 꾀어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도 그가 하는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는 우화라고나 할까. 본디 말을 하는 우리네 입의 구실이란 제일 으뜸 가는 게 먹음구실에 있다고 할 것이다. 입으로 물어 뜯어 공격하고 상대의 공격을 막는, 그래서 먹거리를 결정적으로 내 소유로 하는 먹그릇이 된 것. 먹음구실에 못지 않은 구실이 있다면 이는 바로 숨을 쉬는 것이다. 코나 입으로 들어 간 공기는 반드시 되돌아 나온다. 이르러 들숨과 날숨의 주기적인 운동이 입으로 이루어진다. 못난 자식이 효도한다고 필요없어 내어버리는 날숨이 말의 밑천인 울대를 울려 피리작용을 일으킨다. 여기서 피어 나온 소리는 우리의 입속에서 혀가 닿는 자리나 그 열림의 정도에 따라서 다른 느낌과 생각을 다른 이에게 옮겨 간다. 이른바 공명현상과 분절 - 소리나눔에 힘 입어 언어적 존재로서 우리들은 홀로 만물의 신령스러운 어른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숨을 쉬듯 언제나처럼 입으로 하는 말은 생각이나 느낌을 들을 이에게 옮기는 데 머리를 둔다. 같은 소리이면서도 다른 뜻으로 쓰이는 말(馬, 言, 斗)을 떠 올려 보자. 경상도말에서는 짐승인 '말'은 입으로 하는 말(言)보다 소리가 높게 들린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고 할 때 말(斗)은 가운데쯤의 높이로 낸다. 하면 뜻은 다르면서 소리는 같은 이들 세 낱말이 함께 지니고 있는 공통된 점은 무엇일까. 모두가 '전달성'에 보람을 둔다고 상정할 수 있다. 입으로 하는 말의 경우, 말하는 이에게서 듣는 이에게로 생각과 느낌을 전달한다. 짐승인 말은 어떤가. 마찬가지이다. 짐이나 사람을 싣고 일정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가지 않는가. 한편 되 말의 말(斗) 또한 그렇다. 뭔가 말질을 할 쌀이나 그 밖의 곡식을 일정하게 담아 팔고 사는 이에게 주고 받음의 활동을 도와 준다. 한마디로 곡식을 담아 옮겨준다는 말이다. 말 한 마디에 천량 빚을 갚는다고 한다. 듣는 이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면서 용기를 북돋울 수 있는 말이란 참으로 귀한 것이다. 성경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의 말씀은 하늘이 사람에게 주는 말씀이요, 명령이 아니겠는가. 그럼 사람이 알아 들을 수 있는 신(神)의 말을 하는 존재는 바로 사람이다. 이름하여 선지자요, 선각자들인 것이니 어둠을 헤매는 겨레들에게 길이며 빛으로서의 구실을 했던 이들이다. 사람은 참으로 말하는 존재들이다. 말에는 맛이 있다. 이게 말의 정서적인 기능이며 상징적 기능이다. 상징의 경우 특히 어떤 생각을 뭉뚱그려 옮기는 것이니 거짓말이나 과장된 말은 사실로서의 행위와는 거리가 있으므로 참값을 부여하기가 어렵다. 말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다른 이를 비난하거나 저주하는 따위의 부정적인데서부터 하늘의 신께, 조상의 신에게 바치는 거룩한 말들이 있다. 글로 쓰면 글말이요, 입으로 하면 입말이 된다. 꽃이 피었다 지는 의미, 바람에 구름이 흐르는 뜻, 봄이 되면 잎이 피어 새들이 우짖는 말의 소리. 싣달타가 깨달은 밤강물의 소리 등 사람의 말이 아닐 뿐. 살아 가는 동안에 말을 많이 한다고는 하지만 그 또한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말은 어떻게 써야 하나 말하면 잡류라 하고 아니하면 어리다네 빈한을 남이 웃고 부귀를 새오나니 아마도 이 하늘 아래 사롤 일이 어려웨라 (김상용) 옛 어른들은 말의 쓰임에 대한 상당한 조심스러움을 강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원체 많은 선비들의 떼 죽음이며 불행한 일을 많이 보고 살았기에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은 어떤가. 대중매체에 토크쇼라 해서 말로 공연을 해서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는 참으로 자유롭게 말을 하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말이나 허용이 되는 건 아니다. 같은 겨레끼리 나누어져 있는 적대 상황 아래에서 무단히 상대를 이롭게 하는 말은 할 수가 없는 것. 아니한 술 더 떠서 권위주의 시대에 반체제스런 생각이나 말을 하는 이들에게 돌아 오는 건 가시관이 있을 따름이었다. 지금은 옛 일이 되었지만 . 예(禮) 아니면 말을 듣도, 움직이지도 말라. 그저 도덕과 맞지 않는 말은 더 이상 존중할 값이 없다고 본 봉건주의 시대의 언어관. 마침내 군왕이나 웃 사람에게는 조건 없는 충성스러움이 있을 따름이었다. 얼이 살아 있는 말, 정의로운 말을 하는 이는 역적이요, 귀양을 보낼 사람이었으니. 그래 나라꼴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면 무슨 답을 할 것인가. 말은 무섭고 실수하기 쉬운 것. 믿을 게 아니란 것이 우리 옛 문학작품에 드러난 언어의 관점이었다(최정호,1984.한국사람의 전통적인 언어관 연구). 사람됨의 저울질은 말이 많고 적음에 두기까지 하였다. 고전소설의 경우, 심청전의 뺑덕어미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일년 삼백육십일을 입 잠시 안 놀리고는 못 견디어 집안의 살림살이를 홍시감 빨듯 ...'에서 말 많음을 덕이 모자란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율곡선생의 <격몽요결>에 이르면 당시대의 언어관을 엿 볼 수 있다. '친구와 함께 있을 때...문자와 의리만을 말할 뿐이지... 세속의 비루한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입말을 가볍게 여기고 글말을 좋게 여겼던 것. 물론 좋은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살얼음을 밟듯 눈치나 보는 게, 순종이나 하는 게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졌으니 몇 사람 손에 갈팡질팡한 역사의 능선을 달려 온 것이 아닌가. 하면 표현의 욕구, 표현의 자유는 말이든 글이든 무시되었다는 얘기다. 서양의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는 그리스의 아테네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말을 통해 마음은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고, 모든 사람들은 날개를 얻는다고. 말의 민주주의, 이는 곧 정치와 언론문화를 꽃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한다. 사람은 가도 글은 남는다. 글 또한 말이 아닌가. 살아 남은 위대한 작품들은 사람의 마음에 상상의 자유를 누리게 하며 좋은 말, 진실과 양심의 편에 서서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슬기를 더 해 주고 북돋운다. 참으로 바르고 참된 말을 힘쓰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존경해야 할 스승이다. 그 말속에는 우리 조상의 얼과 문화가, 영혼이 서리어 있으므로.
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2. 태양숭배와 곰신앙 소리란 무엇인가 수풀에 우는 새는 봄을 못 이기어 소리마다 교태롭다. 물아일체러니 봄 흥취가 다르랴. 사립문에 서성이고 정자에도 앉아 보네. 천천히 거닐며 글을 읊는구나.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어 어울리는 삶. 그 즐거움이야 예와 오늘이 다를 리가. 아무래도 머리의 <상춘곡>을 쓴 정극인(丁克仁 1401-1481) 선생만이 누릴 수 있는 경지는 아닌 것이다. 봄 내음이 녹아 흐름이 어디 숲 속뿐이랴. 깊고 그윽한 산골을 흐르는 냇물소리이며 이에 질세라 노을 든 아침 저녁으로 울어 예는 작은 새들의 노래. 참으로 소리의 갈래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드러난다. 앞에서도 하였듯이 나즈막한 소리로 읽는 글소리, 짐승들의 울음소리 등 얼마나 다양한가. 소리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쉽게 들을 수 있는가 하면 듣지 못 하는 소리들도 있다. 빗방울 끼리 부딪는 소리며 벌레들이 잠드는 소리, 꽃이 피어 오르다 이내 져버리는 소리. 아니면 지구가, 온 하늘의 별들이 도는 소리, 해가 타오르는 소리가 들리는가 말이다. 사람을 일러 언어적인 존재라고 한다. 말에는 입말이 있고 글말이 있다. 약속된 글자로 입말을 옮겨 적으면 곧 글말이 된다. 분명 사람의 무리 사이에서 쓰이는 말소리와 다른 존재들의 소리와는 다르다. 사람의 소리에는 닿소리와 홀소리가 어우러져 일정한 틀모양을 바탕으로 해서 그 구실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다른 소리들은 반드시 그렇지는 아니하다. 새는 짝을 찾을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울며 죽음에 가까웠을 때 아주 선한 소리로 운다고 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라도 사람의 그것과는 달라 닿소리 - 홀소리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하나로 어우러진 소리여서 서로 다른 변별성을 띠지 못한다. 흔히 모든 자연의 소리를 음향이라 하고 사람의 소리를 음성이라 함도 이러한 변별성이 있고 없음에 따른 것이다. 대체로 개인의 언어활동은 크게 호흡기관 - 발성기관 -조음기관으로 나누어 풀이된다. 조음기관의 구실이 달라서 그렇지 짐승이나 사람이 소리를 냄에 있어 발동기관의 호흡작용과 발성기관의 발성작용이 그 터를 이룸에는 아주 비슷한 바가 있다. 그럼 언어 활동의 말미암음이라 할 호흡작용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최현배(1980, 우리말본)에서는 호흡을 나누어 날숨과 들숨으로 풀이한다. 들숨이 울대로 말미암아 새로운 공기를 빨아 들인다면, 날숨은 필요 없어서 몸밖으로 나온 것이다. 이 때 허파라 하는 숨틀의 얼안에서 들고 나는 숨의 되풀이를 따라서 필요한 공기를 취함은 물론이다. 이어서 숨틀을 나온 날숨은 울대를 울게 하여 소리를 내게 하여 소리를 고루는 혀와 입안에서 생각과 느낌을 상징화하는 홀닿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소리는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움직임만으로는 일지 않는다. 반드시 두 개 이상의 물체나 특정한 상황과 상황의 '사이'란 틀 위에서만 소리는 가능하다. 가령 냇물의 경우를 들어보기로 한다. 싣달타는 흐르는 밤의 강물 소리에서 인간의 희로애락을 깨달았다고 하거니와, 흐르지 않는 연못의 상태에서는 우리가 느낄 만큼의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하질 않는가.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터. 이는 만고에 변하지 않는 자연현상이다. 아래로 흐르는 물은 물의 갈래와 갈래가 부딪히기도 하며 돌부리에 더러는 나무나 갈대의 늪을 빠져 나가면서 물이 흐르는 소리를 낸다. 물리학에서는 소리를 물체의 떨림에서 비롯됨을 찾는다. 물체가 떨어 난 소리는 다시 귀청을 울려 청각기관을 자극한다. 말소리도 날숨이 성대를 떨게 하여 일어난다. 그러니까 소리는 어떤 둘 이상의 물체나 현상들이 서로 마주 부딪거나 어울려 일으키는 공명작용(共鳴作用)임에 틀림 없다. 듣는 이에 따라서 같은 소리라도 음악이 되기도 하며 시끄러운 소리가 되기도 한다. 판소리나 시조창, 타령, 서양 음악의 소나타나 심포니가 앞의 경우요, 망치소리나 돌이 부딪치는 소리, 악을 쓰는 사람의 소리가 뒤의 경우에 따라 붙는다. 역사적으로 보아서 역대 임금들은 음악의 어울림을 정치의 그 것과 비유하여 소중한 가치를 부여했다. 예기(禮記 에서 '누리를 다스리는 소리는 평안하고 즐거워야 정사 또한 화락해 진다. 한편 세상을 어지럽히는 소리는 원망스러움과 분노로 가득하여 정사가 어긋나게 된다. 아예 나라를 망하게 하는 소리는 슬픔을 생각하게 함이니 그 백성이 곤해 진다. 해서 소리의 도리 곧 음악의 길은 정사와 맞물려 통하는 것이다(聲音之道與政通矣).'라 함은 바른 소리의 값 있음을 힘 주어 풀이하는 표현이다. 아무리 훌륭한 생각이나 정서를 갖춘 사람이라도 말이나 글로 드러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조상 대대로 모든 역사나 문화의 유산을 글로 적어 뒷 사람들에게 옮겨 준다. 정말 사람들은 언어적인 존재일 시 분명하다. 소리란 떨림이며 서로 부딪혀 스침이요, 갈라짐의 현상이다. 사람이나 짐승의 몸안에서는 철저히 나오는 날숨을 따라 울대에 부딪혀 떨림으로 말미암는다. 다시 혀와 입안에서 갈라져 홀닿소리로 굳어져 언제나 같은 소리로 떠올린다. 실제 소리를 냄에 있어서는 계속 이어져 한 소리마디나 낱말을 말하는 것이언마는. 소리는 솟아남이라 '소리'란 낱말의 형태는 어떻게 이루어진 걸까. 더 이상 쪼가를 수는 없는 것인가. 글쓴이가 보기로는 소리는 '소리 솔+ 이 > 솔이 > 소리( = 솟아 나온 것)'로 나누어진다. 그러니까 숨틀에서 나온 공기가 성대(울대)에 부딪혀 떨림 - 울림으로써 생겨난 게 '소리'란 논리가 된다. 여기서 '이'는 사물이나 사실을 가리키는 접미사 - 씨끝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요, '솔'은 [솟음]을 뜻하는 말조각으로 보면 된다. 하면 무슨 까닭으로 '솔'을 솟아나옴의 뜻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한 개인의 존재를 알기 위해서는 그 집안의 내력이 담긴 가족의 족보를 찾게 된다. 그 뒤에 개인의 성격과 성장 과정 및 그 사람의 능력에 대하여 살피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소나무를 '솔'이라고도 한다. 풀 뿌리나 털 또는 나무 뿌리, 가는 철사 등으로 만들어 옷이나 먼지를 터는 데 쓰는 도구 또한 '솔'이라 이른다. 바늘처럼 솟아 있는 모양을 한 물체가 바로 '솔'이 아닌가. 더러 솔은 '솟'으로 쓰이니 '솔대 - 솟대'와 같이 쓰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민속의 한 행사로서 농가에서 세안에 다음 해의 풍년을 바라는 뜻으로 볍씨를 주머니에 넣어 높은 장대에 달아 놓는다. 이 때 장대를 '솟대'라 함은 널리 아는 일이다. 더러는 과거에 오른 사람을 기리기 위하여 마을 어귀에 높이 세우는 장대가 곧 솟대다. 결국 '솔'이란 바늘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는 모습을 한 물체이다. '솔'에 접미사 '다'가 붙으면 '솔다'가 되는데, 이는 아주 빨리 흐르는 물결이 용솟음쳐 오르는 모양을 드러낸다. 솔옷(=송곳) 또한 이 얼안에 든다. '솔 - 솟'의 낱말 겨레는 다시 'ㅅ(솥)'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솟'의 끝소리 시옷(ㅅ)이 디귿(ㄷ)으로 소리 난다. 흔히 일러 끝소리 규칙 또는 말음법칙이라 한다. 훈몽자회 와 같은 중세어 자료에서는 솥을 'ㅅ'이라 했다(ㅅ뎡鼎<훈회 중10>). 뒤로 오면서 거센소리되기를 따라서 솥으로 바뀌어 쓰인다. 솥은 이바지를 위하여 음식을 만드는 그릇이다. 대략 네 귀가 달려 있고 돌이나, 부엌에서 좀더 높은 곳에 자리해서 낮은 곳에다 불을 지핀다. 땅이름에서도 솥 모양으로 된 곳에서 흔적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전라북도 남원 땅의 ㅅ뫼(용비어천가)가 그러한 보기들이다. 말은 역사와 사회를 되비치는 소리상징이다. '솔 - ㅅ - 솟'의 낱말들이 드러내는 문화의 상징들은 삼국유사 에 보이는 소도(蘇塗) - 솟대가 태양숭배를 가리킨다. 솔 또한 마찬가지인데 빗살무늬 토기에서 빗살이 바로 소나무의 솔과 같은 뜻으로 바꾸어 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낱말들은 모두가 청동기 문화 즉 쇠문화가 시대의 획을 그으면서 일어난 문화의 상징들이라 하겠다. 살아 가는 동안에 우리들은 많은 말을 한다. 참으로 이 세상에서 입말과 글말이 많다. 하필이면 다른 이를, 겨레를 망치는 말을 할 것인가. 하나됨의 꿈을 실은 밝고 고운 소리로 짜여진 말을 할 일이다. 그 것이 바로 실현되지 않을지라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온 겨레가 '나누며' 사는 소리이다.
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2. 태양숭배와 곰신앙 지리산과 파랑새 꿈 살으리 살으리랏다 청산에 살으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으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청산별곡'에서) 머루와 다래를 먹고 살망정 시끄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음을 노래한다.오죽하면 세상이 그리도 싫었을까. 풀이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위 노래는 고려조 몽고의 침입을 입어 일백여년 간을 어둡게 살던 때에 헤어진 가족을 찾아 다니면서 지었을 거라는 설도 있다. 푸른 산은 우리에게 평안과 정서적인 해방감을 안겨 준다. 하지만 당시는 사정이 사뭇 달랐다. 20년 동안에 70만이 넘는 사람들은 몽고로 끌려 가고 정동행서성(征東行書省)이라 해서 일본을 치기 위한 군사기관에서 전쟁에 필요한 사람은 말할 것 없고 일체의 모든 물자를 고려에서 마련해 내라고 억지를 쓴다. 원감국사(圓鑑國師)의 <영남민간고상24운>을 볼라치면 주로 영남지역에서 그 엄청난 희생을 치러내야 했던 비참상이 잘 드러나 있다. 말 그대로 한반도는 쑥대밭이 된 셈. 일본의 36년 식민통치와 같은 게 137년이나 행해졌으니 한 입으로 어찌 다 이를 수가 있으리오. 최기호(1993,청산별곡의 몽고어 영향)에서는 원감국사의 <영남민간고상24운>을 바탕으로 한 노래가 민요화 과정을 거쳐 <청산별곡>이 만들어져 불리웠을 거라는 풀이다. 청산(청산)은 바로 지리산이었다고 같은 글에서 이르고 있다. 하여간 확고한 증거가 없는게 흠이기는 하지만 있음직한 생각이라 여겨진다. 후렴구의 '얄라'는 본디 몽고말인데 '서럽다 슬프다'의 뜻으로써 청산별곡의 시대적 상황을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현실도피 곧 데가쥬망의 한 서린 사연을 노래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우스개 말로 엉덩이 뚱뚱한 이를 엉뚱이라 한다. 지리산이야말로 경상 전라도를 걸치고 구례 남원 산청 하동의 4개군을 싸 안는다. 산의 둘레가 8백여리, 넓이는 미루어 1억 3천만평이라 하니 참으로 큰 엉뚱이산이다. 휴전선 이남의 내륙에서는 단연 제일 높은 머리산이다. 대동지지에 따르면 지리산은 여러개의 이름으로 불린다. '지리(地理)'는 때때로 두류(頭流), 더러는 방장(方丈)이라 한다. 동으로는 천왕봉이, 서로는 반야봉이 솟아 있어 그 능선의 길이는 백리가 넘는다. 큰 어려움이 있을 때면 예외 없이 지리산이 한 많은 사연의 터가 되곤 한다. 피 어린 한국전쟁 때 피아골의 싸움이며 임진란 몽고병란 등 크고 작은 싸움에서 때로 아군의 요새로, 때로는 적들의 거점 지역으로 쓰였으니 지리산이 생각하는 이라면, 정말로 골치 아프고 가슴 메어지는 일을 당하면서도 오늘의 하늘을 이고 버티며 의연하게 솟아 있다. 무슨 성자라도 되듯이 말이다. 방장 지리산이라는 이름이 쓰이지만, 글쓴이 보기로는 두류산(頭流山)이 가장 오랜 이름이 아닌가 한다. 정여창과 함께 산을 올랐다가 두류록(頭流錄)을 쓴 김일손의 기행문을 보더라도 그러하다. 하면 '두류'란 산이름의 뜻 바탕은 무엇일까. 두류산이란 이름은 대구와 해남 등지에서도 쓰인다. 이두식 향찰로 읽으면 머리두의 '머리'로 읽는 게 어떨까 한다. 하면 두류산은 '머리산 - 마리산(말산)'이란 속내가 드러난다. 머리는 옛글에 '마리(말)'라 했으니까(마리頭(훈몽자회(상)24등)). 머리가 사람의 몸에서 제일 높은 부분이듯 지리산은 높은 산이요, 명당이며 하늘에 제사하는 공간이 있는 '거룩한 산' 아니 거룩한 제단이었다. 그뿐인가. 골치 아픈 머리를 씻어 영혼을 맑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산이 높고 골짜기가 그윽하니 뭇새와 짐승이 깃들이고 흐르는 물은 모여 호남과 영남 벌판에 젖줄이 되어 많은 씨알을 낳는다. 씨 암탉이 알을 낳아 병아리를 까서 품에 안아 기르듯이 말이요. 이형석(1990, 한국의 산하)에 따르면 지리산은 신라 42대 흥덕왕 이후로 당나라의 차를 옮겨 심어 기른 다(茶)재배의 말미암음의 터라는 것. 숨어 사는 이들의 고향 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보니 도화 뜬 물 위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세라 아이야 무릉이 어디냐 나는 옌가 하노라 (조식) 마음에서 찾는 무릉도원이 어디 있으리오마는 정녕 두류산-지리산은 우리네 조상들에게는 마음의 고향이요, 그로부터 많은 은혜를 입은 삶터였다. 세상에서의 쓰라린 아픔도 두류산에서 다 잊어 버리고 청산에 살으리라를 노래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특히나 남명 조식 선생이 보기로는). 고려 적 학문과 덕이 있는 한 선비가 두류산에 살면서 세상의 어지러움을 떠나 살고 있었다(不涉人間). 임금은 사람을 보내 벼슬을 주어 함께 하기를 권했으나 한유한(韓維漢)은 마다 하였다. 이에 사신이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글 한 구절만 남겨 놓고 북창으로 나가 버린 게 아닌가. 글의 내용인즉 '내 빈 손으로 이 산에 들어와 이제 비로소 이름자나 알렸더니 세상일로 떨어지겠구나'하는 속사정이었다는 줄거리. 고려사에 따르면 유한의 집은 대대로 서울에서 살았다는데 벼슬살이를 하지 않았다. 최충헌이 벼슬자리를 팔고 제멋대로 나라 다스림을 보고 일렀으되 앞날을 기약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어 가족을 이끌고 지리산(智異山)에 들어가 고생스러우나 충절을 지키고 세상과는 인연을 끊고 살았다. 조정에서 사람됨을 보고 서대비원(西大悲院)의 녹사(錄事)로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음이라. 다시 더 깊은 골짜기로 들어 가 이내 되돌아 오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지리산에는 청학동 사람들이 산다. 이상향으로 이르러 푸른 학마을 곧 청학동이다. 오늘의 정서로 이르자면 파랑새의 꿈이 이루어지는 하늘의 나라요, 신시(神市)가 아닌가. 진주 대아고등의 박물관에 청학동도(靑鶴洞圖)가 있으니 지리산의 파랑새 마을은 7군데가 있다. 천왕봉, 세석평전, 반야봉, 화개 연곡, 악양, 하동, 묵계 백운산이 바로 청학동 마을이라는 게다. 정감록을 따르자면 우리나라에서 살기 좋은 곳이 10군데가 있는데 지리산이 나온다. 이 곳은 오래도록 살만한 곳이니 어진 정승과 훌륭한 장수가 이어 날 것이라는 예언이다. 흔히 나라가 어지러우면 슬기로운 선비를 생각하고 집안이 어려우면 어진 아내를 필요로 한다고 했다. 거꾸로 나라가 어지러울 것임을 미리 알고 안식의 땅으로서 청학동을 마련한 것인가. 세상은 살기 힘 드는데 글이 쉽게 쓰여짐을 뉘우친 윤동주 시인처럼. 지금의 우리네 삶도 참으로 힘겨운 일이 많다. 넘어야 할 고개가 그리도 많이 있다. 하지만 자유와 평등 통일과 인류의 평화를 꿈꾸는 파랑새는 그저 날아 들지 않는다. 정의와 진실의 숲이 있고 더불어 사는 홍익인간의 숲살이가 있어야 보금자리를 트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