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 화설 조선국 세종조 시절에 한 재상이 있으니, 성은 홍이요, 명은 뫼이라. 대대 명문거족으로 소년 등과하여 벼슬이 이조판서에 이르매 물망이 조야의 으뜸이요, 충효겸비하기로 이름이 일국에 진동하더라. 일즉 두 아들을 두었으니 일 자는 이름이 인형이니, 정실 유씨 소생이요, 일자는 이름이 길동이니 시비 춘섬의 소생이라. 선시에 공이 길동을 나을 때의 일몽을 얻으니, 문득 뇌정벽력이 진동하여 청룡이 수염을 거스르고 공에게 달려들거늘 놀라 깨달으니 일장춘몽이라, 심중에 대희하여 생각하되, 내 이제 용몽을 얻었으니, 반드시 귀한 자식을 나으리라 하고 즉시 내당으로 들어가니, 부인 유씨 일어나거늘 공이 혼연히 그 옥수를 이끌어 정히 친압코자 하거늘, 부인 정색왈, 상공이 체위 존중코자 하거늘 연소경박자의 비루함을 행코자 하시니 첩은 봉행치 아니하리소이다 하고 언파의 손을 떨치고 나가거늘 공이 가장 무색하여 분함을 참지 못하고 외당으로나가 부인의 지식이 없음을 한탄하러니 마침 시비 춘섬이 차를 오리거늘, 그 고요함을 인하여 춘섬을 이끌고 협실에 들어가 친압하니, 이 때 춘섬의 나이 십팔이라 한 번 몸을 허한 후로 문외에 나지 아니하고 타인을 취할 뜻이 없으니 공이 기특히 여겨 인하여 잉첩을 삼았더니 과연 그 달부터 태기가 있어 십삭 만에 일개 옥동을 생하니, 비범하여 짐짓 영웅호걸의 기상이라 공이 일변 기뻐하나 부인에게서 나지 못함을 한하더라. 길동이 점점 자라 팔 세 되매 총명이 과인하여 하나를 들으면 백을 통하니 공이 더욱 의중하나, 근본 천생이라 길동이 매양 호부 호형하면 문득 꾸짖어 못하게 하니, 길동이 십 세 넘도록 감히 부형을 부르지 못하고 비복 등이 천대함도 각골통한하여 심사를 정치 못하니 추구월 망간을 당하매 명월은 조요하고 청풍은 소슬하여 사람의 심회를 돕는지라, 길동이 서당에서 글을 읽다가 문득 서안을 밀치고 탄왈, "대장부 세상에 나매 공명을 받지 못하면 차라리 병법을 외어 대장인을 요하에 빗기 차고 동정서벌하여 국사의 대공을 세우고 이름을 만대에 빛남이 장부의 쾌사라. 나는 어찌하여 일신이 적막하고 부형이 있으되 호부호형을 못하니, 심장이 터질지라 어찌 통한치 아니라오." 하고 말을 마치며 뜰에서 내려 검술을 공부하더니, 마침 공이 또한 월색을 구경하다가 길동의 배회함을 보고 즉시 불러 문왈, "네 무슨 흥이 있어 야심토록 잠을 자지 아니하는가?" 길동이 공경 대왈, "소인이 마침 월색을 사랑함이여니와, 대개 하늘이 만물을 나심이 오즉 사람이 귀하오나 소인에게 이르러는 귀한옴이 없사오니 어찌 사람이라 하오잇가." 공이 그 말을 짐작하나 짐짓 책왈, "네 무슨 말고?" 길동이 재배고왈, "서인이 평생 서룬바는 대감 정기로 당당한 남자 되었사오매, 부생모육지은이 깁삽거늘, 그 부친이라 부친이라 못하옵고, 그 형을 형이라 못하오니, 어찌 사람이라 하오잇가?" 하고 눈물을 흘려 단삼을 적시거늘, 공이 청파에 비록 측은 하나 만일 그 뜻을 위로하면 마음이 방자할까 두려워 크게 꾸짖어 왈, "재상가 천비소생이 비단 너 뿐이 아니어든 네 어찌 방자함이 이 같느뇨? 차후 다시 이런 말이 있으면 안전에 용납지 못하리라." 하니 길동이 감히 일언을 고치 모샇고 다만 복지유체 뿐리아. 공이 명하여 물러가라 하거늘 길동이 침소로 돌아와 슬퍼함을 마지 아니하더라. 길동이 본디 재기 과인하고 도량이 활달한지라 마음을 진정치 못하여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더니일일은 길동이 어미 침소로 가 울며 고왈, "소자, 모친 은덕으로 더불어 전생연분이 중하여 금새의 모자 되오니, 은혜 망극하온지라. 그러나 소자의 팔자 기박하여 천한 몸이 되오니 품은 한이 깁사 온지라, 장부가 세상에 남의 천대받음이 부가능하온지라 소자 자연 기운을 억제치 모샇여 모친 슬하를 떠나려 하오니 복망 모친은 소자를 염려하시고 귀체를 보중하소서." "재상가 천비소생이 너 뿐이 아니어든 어찌 협한 마음을 발하여 어미 간장을 사으나뇨?" 길동이 대왈, "엣날 장충의 아들 길산은 천생이로되 심 팔 세에 그 어미를 이별하고 운봉산에 들어가 도를 닦아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유전하였으니, 소자 그를 효즉하여 세상을 벗어나려 하오니 모친은 안심하사 후일을 기다리소서. 근간 곡산모의 행색을 보니 상공의 총을 잃을가 하여 여러 모자를 원수같이 아는지라 큰 화를 입을가 하옵니다. 모친은 소자 나감을 염려치 말으소서." 하니 어미 또한 슬퍼하더라. 원래 곡산모는 본디 곡산 기생으로 상공의 총첩이 되었으니, 이름은 초란이라. 가장 교만 방자하여 제심경에 불합하면 공에게 참소하니, 이러므로 가중폐단이 무수한 중 저는 아들이 없고 춘섬은 길동을 나아 성공이 매앙 생각하매 무녀를 청하여 왈, "나의 일신을 평안케함은 이 곳 길동은 없애기에 있는지라. 만일 나의 소원을 이루면 그 은혜를 갚으리라." 하니 무녀 듣고 기거 대왈, "지금 흥인문 밖에 일등 관상녀가 있으니, 사람을 상을 한 번 보면 전후 길흉을 판단하나니, 이 사람을 청하여 소원을 자세히 이르고 상공께 천거하야 전후사를 본 듯이 고해면 상공이 필연 대혹하여 그 화를 없애고자 하시리니, 그 때를 타 어차여차 하면 어찌 묘계 아니리이꼬." 조란이 대희하여 먼저 은자 오십 냥을 주며 상자를 청하여 오라 하니 무녀 하직하고 가니라. 이튿날 공이 내당에 들어와 부인으로 더불어 길동의 비범함을 일컬으며 다만 천비소생임을 한탄하고 정히 말씀하더니, 문득 한 여자가 들어와 당하에 문안하거늘, 공이 괴이 여겨 문왈, "그대는 어떠한 여자완대 무삼 일로 왔느뇨?" 그 여자 왈, "소인은 관상하기로 일삼더니, 마침 상공 문하에 이르렀나이다." 공이 차언을 듣고 길동의 내사를 알고자 하여 즉시 물러 뵈니, 상녀가 이윽고 모다가 졸라 왈, "기 공자의 상을 보니, 천고영웅이요, 일대호걸이로되, 다만 지체 부족하오니 다른 염려는 없을까 하나이다." 하고 말을 내고자 하다가 주저하거늘, 공과 부인이 가장 괴이 여겨 왈, "무삼 망을 바른 대로 이르라." 상녀 마지못해 좌우를 물리치고 왈, "공자의 상을 보온즉, 흉중의 조화가 무궁하고 미간의 산천정기 영롱하오니, 짐짓 왕후의 기상이라, 장성하면 장차 멸문지화를 당하오리니 상공을 살피소서." 공이 청파에 경아 하야 묵묵 반향의 마음을 정하고 왈, "사람의 팔자는 도망키 어렵거니와 너는 이런 말을 누설치 말라." 당부하고 약간의 은자를 주어 보내니라. 차후로 공이 길동을 산정에 머물게 하고 일동 일정을 엄숙히 살피니, 길동이 이 일을 당하매 더욱 설움을 이기지 못하나 하릴없어 육도삼략과 천문 지리를 공부하더니 공이 이 일을 알고 크게 근심하여 왈, "이놈이 본대 재주 있으매 만일 범람한 의사를 두게 되면 성녀의 말과 같으리니 이를 장차 어찌 하리요."하더라. 이 때 초란이 무녀와 상자를 교통하여 공의 마음을 놀랍게 하고 길동을 없애고저 하여 천금을 버려 자객을 구하니 이름이 특재라. 전후사를 자세히 이르고 초란이 공께 고왈, "일전 상녀가 아는 일이 귀신같으매, 길동의 내사를 어찌 처치하시니잇가? 천첩도 놀라고 두렵워하옵나니, 일찍 저를 없이 함만 같지 못하리로소이다." 공이 이 말을 듣고 눈썹을 찡그려 왈, "이 일은 내 장중에 있으니, 너는 번거이 굳이 말라."하고 물리치나 심사가 자연 산란하여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인하여 병이 된지라. 부인과 좌랑 인형이 크게 근심하여 아무리 할 줄 모르더니 초란이 곁에 모셨다가 고왈, "상공 환후가 위중하심은 길동을 두심이라. 천한 소견은 길동을 죽여 없이 하면 상공의 병환도 쾌차하실 뿐 아니라 문호를 보전하오리니 어찌 이를 생각지 아니시나잇고?" 부인 왈, "아무리 그러나 천륜이 지중하니 차마 어찌 행하리요." 초란 왈, "듣자오니 특재라 하는 자객이 있어 사람 죽임을 낭중 취물같이 한다하오니, 천금을 주어 밤에 들어가 해 하오면 상공이 알으시나 할 길 없사오리니, 부인은 재삼 생각하소서." 부인과 좌랑이 눈물을 흘려 왈, "이는 차마 못할 바로되, 첫째는 나라를 위함이요, 둘째는 상공을 위함이요, 셋째는 홍문을 보존함이라, 너의 계교대로 행하라." 초란이 대희하여 다시 특재를 불러 이 말을 자세히 이르고, "금야에 급히 행하라."하니 특재 응낙코 받들기를 기다리더라. 차설 길동이 그 원통한 일을 생각하매 사각을 머무지 못할 일이로되, 상공의 엄령이 지중하므로 하릴없이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더니, 차야에 촉을 밝히고 문득 들으니, 가마귀 세 번 울고 가거늘 길동이 괴이 여겨 혼잣말로 이르되, "이 짐승은 본래 밤을 꺼리거늘, 이제 울고 가니 불길하도다." 하고 잠깐 팔괘를 벌려 보고 대경하여 서안을 물리치고 둔갑법을 행하여 그 동정을 살피더니 사경을 하여 한 사람이 비수를 들고 완완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지라. 길동 몸을 감추고 진언을 염하니, 홀연 일진 음풍 일어나며 집은 간데 없고 첩첩한 산중의 풍경이 거룩한지라, 특재 대경하여 길동의 조화가 신기함을 알고 비수를 감추어 피하고자 하더니, 문득 길이 끊어지고 충암 절벽이 가리웠으니, 진퇴 유곡이라. 사면으로 방황하더니 문득 저 불기를 그치고 꾸짖어 왈, "네 무삼일로 나를 죽이려 하는가? 무죄한 사람을 불하면 어찌 천앙이 없으리요." 하고 진언을 염하더니, 홀연 일진 흑운이 일어나며 큰비 붓듯이 오고 서석이 날리거늘 특재 정신을 수습하여 살펴보니 길동이라. 비록 그 재주를 신기히 여기나, "어찌 나를 대적하리요."하고 달려들며 대호 왈, "너는 죽어도 원망치를 말라. 초란이 무녀와 상자로 하여금 상공과 의논하고서 너를 죽이려 함이니 어찌 나를 원망하리요."하고 칼을 들고 달라들거늘 길동이 분기를 참지 못하여 요술로 특재의 칼을 아서 들고 대매 왈, "네 재물을 탐하여 사람 죽임을 좋이 여기니, 너 같은 못된 놈을 죽여 후환을 없이 하리라."하고 한 번 칼을 드니, 특재의 머리 방중에 나려지는지라. 길동 분기를 이기지 못하여 이 밤에 바로 상녀를 잡아 특재 죽은 방에 들이치고 꾸짖어 왈, "네 날로 더불어 무삼 원수 있관데 초란과 한가지로 날 죽이려 하더냐?"하고 베이니 어찌 가련치 아니하리요. 이 때 길동이 양인을 죽이고, 건상을 살펴보니 은하수는 서로 기울어지고 월색은 희미하여 수회를 돕는지라. 분기를 참지 못하여 또 초란을 죽이고자 하다가 상공이 사랑하심을 깨닫고 칼을 던지며 망명도생의 생각하고 바로 상공 침소에 나아가 하직을 고코자 하더니, 이 때 공의 창외가 언적 있음을 괴이히 여겨 창을 열고 보니 이 곧 길동이라. 인견 욀, "밤이 깊었거늘, 네 어찌 자지 아니하고 이리 방황하느뇨?" 길동이 복지대왈, "소인이 일찍 부생모육지은을 만분지일이나 갚을가 하였더니 가내의 불의지인이 있사와 상공께 참소하고 소인을 죽이려 하오매, 겨우 목숨은 보전하였사오나 상공을 뫼실 길 없삽기로 금일 상공께 하직을 고하나이다."하거늘 공이 대경 왈,"네 무삼 변고가 있건대 어린 아회 집을 버리고 가려 하는다?" 길동이 대 왈, "날이 밝으면 자연 알으시려니와 소인의 신세는 부운과 같사오니 상공의 버린 자식이 어찌 방소를 두리잇고." 하며 쌍루가 종횡 하여 말을 이루지 못하거늘 공이 그 형상을 보고 측은히 여겨 개유 왈, "네 너의 품은 한은 짐작하나 금일로부터 호부호형함을 허하노라." 길동이 재배 왈, "소자의 일편지한을 여야께서 풀어 주옵시니 죽어도 한이 없소이다.. 복망 야야는 만수무강하옵소서." 하고 재배 하직하니, 공이 붙들지 못하고 다만 무사함을 당부하더라. 길동이 또 어미 침소에 가 이별을 고하여 왈, "소자가 지금 떠나오매 다시 뫼실 날이 있사오리니, 모친은 그 사이 귀체를 보증하소서." 춘섬이 이 말을 듣고는 무슨 변괴 있음을 짐작하나 아자의 하직함을 보고 집수통곡왈, "네 어데로 향코자 하는다? 한 집의 이사도 처소가 처간 하야 매양 모자 상봉함을 바라노라." 길동이 지배 하직하고 문을 나매, 문산이 첩첩하여 지향없이 행하니, 어찌 가련치 아니리요. 차설 초란이 특재의 소식 없음을 의아하여 사기를 탐지하니, 길동은 간 데 없고 특재의 주검과 계집의 시신이 방 중에 있다 하거늘 초란이 혼비백산하여 급히 부인께 고하니, 부인 또한 대경하여 좌랑을 불러 이 일을 이르며, 상공께 고하니 공이 대경실색왈, "길동이 밤에 슬피 하직함을 괴이 여겼더니, 이 일이 있도다." 좌랑이 금히 은휘치 못하여 초란이 실사를 고하매 공이 분노하여 일변 초란을 내치고 가만히 그 시체를 없이 하며 노복을 몰러 이런 말을 내지 말라 당부하더라. 각설 길동이 부모를 이별하고 문을 내매 일신의 표박하여 정처 없이 행하더니, 한 곳에 다다르니 경개 절승한지라. 인가를 찾아 점점 들어가, 큰 바위 밑에 석문이 닫혔거늘, 가만히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평원광야에 수백 호 인가가 즐비하고 여려 사람이 모두 잔치하며 즐기니, 이 곳은 도적의 굴혈이라. 문득 길동을 보고 그 위인이 괴수를 정치 못하였으니, 그대 만일 용력이 있어 참여코저 할진대 저 돌을 들어보아라. 길동이 이 말을 듣고 다행하여 재배 왈, "나는 경성 홍 판서의 천첩 소생 길동이러니, 가중 천대를 받지 아니하려 사해 팔방으로 정처 없이 다니다가 우연히 이 곳에 들어와 모든 호걸의 동료 됨을 이르시니, 불승감사하거니와 장부가 어찌 저만한 돌 들기를 근심하리요." 하고 그 돌을 들어 수십 보를 행하다가 던지니, 그 돌의 무게 천 근이라, 제적이 일시에 칭찬 왈, "과연 장사로다. 우리 수천 명중에 이 돌을 들 자 없더니, 오날날 하늘이 도우사 장군을 주심이로다." 하고 길동을 상좌에 앉히고, 술을 차례로 권하고 백마 잡아 명세하며 언약을 굳게 하니, 중인이 일시에 응낙하고 종일 즐기더라. 이 후로 길동이 제인으로 더불어 무예를 연습하여 수월 지내에 군법이 정제한지라, 일일은 제인이 이르되, "아등이 벌써 합천 해인사를 쳐 그 재물을 탈취코자 하나 지략이 부족하여 거조를 발치 못하였더니 이제 장군의 의향이 어쩌하시니잇고?" 길동이 소왈, "내 장차 발군하리니, 그대 등은 지휘대로 하라."하고 청포 흑대의 나귀를 타고 종자수인을 달리고 나가며 왈, "내 그 절에 가 동정을 보고 오리라." 하고 가니, 완연한 재상가 자재라. 그 절에 들어가 먼저 소승을 불러 이르되, "나는 경성 홍판서의 자제라. 이 절에 와 글공부하러 왔거니와 명일의 백미 이십 석을 보낼 것이니 음식을 정히 차리면 너희들도 한가지로 먹으리라." 하고 사중을 두루 살펴보며 후일을 기약하고 동구를 나오니 제승이 기꺼하더라. 길동이 돌아와 백미 수십 석을 보내고 중인을 불러 왈,"내 아모 날은 그 절에 가 이리하리라."하고 그 날을 기다려 종자 수십 인을 데리고 해인사에 이르니, 제승이 맞아 들어가니, 길동이 노승을 불러 문 왈, "내 보낸 쌀로 음식이 부족치 아니하더뇨?" 노승 왈, "어찌 부족하리잇가, 너무 황감하여이다." 길동이 상좌에 앉고 제상을 일제히 청하여 각기 상을 받게 하고, 먼저 술을 마시며 차례로 권하더니, 모든 중이 황감하여하더라. 길동이 상을 받고 먹더니, 문득 모래를 가만히 입에 넣고 깨무니 그 소리 큰지라, 제승이 듣고 놀라 사죄하거늘 길동이 거짓대로 꾸짖어 왈, "너희 음식을 이다지 부정케 하뇨? 이는 반다시 능멸함이라." 하고 존자에게 분부하여 제승을 다 한 줄에 결박하여 앉히니, 사중이 겁하여 아무리 할 줄 모른지라. 이윽고 수백 여 명이 일시에 달려들며 모든 재물을 다 제것 가져가 듯하니 제승이 보고 다만 입으로 소리만 지를 따름이다. 이 때 불복한이 마침 나갔다가 이런 일을 보고 즉시 관가에 고하니, 합천 원이 듣고 관군을 조발하여 그 도적을 잡으라 하니, 수백 장교 도적의 뒤를 쫓을 사 문득 돌아보니 한 중이 소라를 쓰고 또 장삼을 입고 뫼에 오라 외쳐 왈, "도적이 저 북편 소로로 가니 빨리 가 잡으소서."하거늘, 관군이 그 절 중이 가르키는 줄 알고 풍우 같이 북쪽 소로로 찾아가다가 날이 저문 후 잡지를 못하고 돌아가니라. 길동이 제적을 남편 대로로 보내고 저 홀로 중의 복색으로 관군을 속여 무사히 굴혈로 돌아오니, 모든 사람이 벌서 제물을 수탐하여 왔는지라, 일시에 나와 사례하거늘, 길동이 소 왈, "장부 이만 재주 없으면 어찌 중인의 괴수가 되리요."하더라. 이 후로 길동이 자호를 활빈당이라 하여 조선팔도로 다니며, 각 읍 수령의 불의로 재물 있으면 탈취하고 혹 자빈 무의 한자 있으면 구제하여 백성을 침범치 아니하고 나라에 속한 재물은 추호도 범치 아나하니, 그러므로 제적이 그의 취를 항복하더라. 일일은 길동이 제인을 모으고 의논 왈, "이제 함경 감사가 탐관오리로 준민고택하여 백성이 다 견디지 못하는지라, 우리 등이 그저 두지 못하리니, 그대 등은 나의 지휘대로 하라."하고 하나씩 흘러 들어가 아모 날 밤에 기약을 정하고 남문밖에 불을 지르니, 감사 대경하여 그 불을 구하라 하니, 관속이며 백성들이 일시에 내달아 그 불을 구할 사, 길동의 수백 적당히 일시에 성중에 달려들며 창고를 열고 정곡과 군기를 탐하여 북문으로 달아나니 성정이 요란하여 물끓듯하는지라, 감사 불의지변을 당하여 아모리 할 둘 모르더니 날이 밝은 후 살펴보니, 창고의 군기와 전곡이 비었거늘 감사 대경실색하여 그 도적 잡기를 힘쓰더니 홀연 북문에 방을 붙였으되 아모날 전곡 도적한 자는 활빈당 행수 홍길동이라 하였거든, 감사 발군하여 그 도적을 잡으려 하더라. 차설 길동이 제적과 한가지로 전곡을 많이 도적 하였으나 행여 노중에서 잡힐가 염려하여 둔갑법과 축지법을 행하여 처소에 돌아오니 날이 새고자 하였더라. 일일이 길동이 제인을 모으고 의논 왈, "이제 우리는 합천 해인사에 가 재물을 탈취하고, 또 함경감영에 가 전곡을 도적 하여 소문이 파다하려니와, 나의 성명을 써 감영에 붙였는지 오래지 아니하여 잡히기 쉬울지라. 그대 등은 나의 재주를 보라." 하고 즉시 초인 일곱을 만들어 진언을 염하고 혼백을 붙이니, 일곱 길동이 일시에 팔을 뽐내며 크게 소래 하고 한 곳에 모다 난만히 수작하니, 어느 것이 길동인지 아지 못하는지라. 팔도에 하나씩 흩어지되 각각 사람 수백 여 명씩 거느리고 다니니, 그 중에서 정 길동이 팔도에 다니며, 호풍환우하는 술법을 행하니 각 읍 창곡이 일야간에 종적 없이 가져가며 서울 오는 봉물을 의심 없이 탈취하니, 팔도 각 읍이 소요하여 밤에 능히 잠을 자지 못하고 도로에 행인이 끊겼으니, 이러므로 팔도가 요란한지라 감사가 이 일로 장계하니 대강하였으되, "난데없이 홍길동이란 대적이 있어 능히 풍운을 짓고 올라가지 못하여 작란이 무수하오니 그 도적을 잡지 못하오면 장차 어느 지경에 이를 줄 아지 못하오리니, 복망 성상은 좌우 포청으로 잡게 하소서."하였더라. 상이 보시고 대경하사 포장을 명초에 하실사 연하여 팔도 징계를 올리는 지라 연하여 때에 보니 도적의 이름이다 홍길동이라 하였고 전곡 잃은 일자를 보시니 한 날 한시라, 상이 크게 놀라사 가라사대, "이 도적의 용맹과 술법은 옛날 치위라도 당치 못하리로다. 아모리 신귀한 놈인들 어찌 한 몸이 팔도에 있어 한날 한시에 도적하리오. 이는 심상한 도적이 아니라 잡기 어려우리니 좌우 포장이 발군하여 그 도적을 잡아라." 하시니, 이 때 우포장 이 흡이 주 왈, "신이 비록 재주 없사오나 그 도적을 잡아오리니, 전하는 근심 마르소서. 이제 좌우 포장이 어찌 병출하오리잇가." 상아 옳히 여기사 급히 발행을 재촉하시니, 이 흡이 하직하고 허다 관졸을 거리고 발행할 시 각각 흩어져 아모날 문경으로 모임을 약속하고 이 흡이 약간 포졸 수삼 인을 다리고 변복하고 다니더니, 일일은 날이 저물매 주점을 찾아 쉬더니, 문득 일위 소년이 나귀를 타고 들어와 뵈거늘 포장이 답례하되, 한숨 지며 왈, "보천지하에 막비왕토요, 솔토지민이 막비왕신이라 하니 소생이 비록 향곡에 있으나 국가를 위하여 근심이로소이나." 포장이 거짓 놀라며 왈, "이 어찌 이름이뇨?" 소년 왈, "이제 홍길동이란 도적이 팔도로 다니며 작란하매 인심이 소동하오니 이놈을 잡아 없애지 못하오니 어찌 분한치 아니리오." 포장이 이 말 듣고 왈, "그대 기골이 장대하고, 언어가 충직하니 나와 한가지로 그 도적을 잡음이 어떠하뇨?" 소년 완, "내 벅써 잡고자 하나 용력이 있는 사람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 그대를 만났으니 어찌 만행이 아니리오마는 그대의 재주를 아지 못하니 그윽한 곳에 가 시험하자." 하고, 한가지로 행하더니 한곳에 이르러 높은 바위 위에 올라 앉으며 이르되, "그대 힘을 다하여 두 발로 나를 차 내리치라." 하고, 양 끝에 나와 앉거늘 포장이 생각하되, "제 아무리 용력이 있은들 한 번 차면 제 어찌 아니 떨어지리오." 하고 편생 힘을 다하여 두 발로 매우 차니, 그 소년이 문득 돌아앉으며 왈, "그대 진짓 장사로다. 내 여러사람을 시험하되 나를 요동하는 자 없더니 그대에게 차이여 오장이 울린 듯하도다. 그대 나를 따라오면 길동을 잡으리라." 하고 첩첩 산곡으로 들어가거늘, 포장이 생각하되, "나도 힘을 자랑함만 하더니 오날 저 소년의 함을 보니 어찌 놀랍지 아니리오. 그러나 이 곳까지 왔으니 설마 저 소년 혼자도 길동 잡기를 근심하리오." 하고 따라가더니 그 소년이 문득 돌아서며 왈, "이 곳이 길동의 굴혈이라. 먼저 들어가 탐지할 것이니 그대는 여기 있어 기다리라." 포장이 마음이 의심되나 빨리 잡아옴을 당부하고 앉았더니 이윽고 홀연 산곡으로 쫓아 수십 군졸이 요란히 소리를 지르며 내려오는지라. 포장이 대경하여 피코자 하더니, 점점 가까이 와 포장을 결박하여 꾸짖어 왈, "네 포도대장이 이 흡인다? 우리들이 지부왕명을 받아 너를 잡으러 왔다." 하고 철삭으로 목을 옭아 풍우 같이 몰아가니 포장 혼불부테하여 아모란 줄 몰르는지라. 한곳에 다다라 소래 지르며 꿇어앉히거늘, 포장이 정신을 가다듬어 쳐다보니, 궁궐리 광대한데 무수한 황건 역사가 좌우에 나열하고, 전상을 일위 군왕이 좌탑에 앉아 여성 왈, "소인은 인간의 한미한 사람이라. 무죄이 잡혀왔으니 살려 보냄을 바라나이다."하고 심히 애걸하거늘, 정상에서 웃음소리 나며 꾸짖어 왈, "이 사람아 나를 자시 보라. 나는 활빈당 행수 홍길동이라. 그대 나를 잡으려 하매 그 용역과 뜻을 알고자 하여 작일에 내 청포소년으로 그대를 인도하여 이곳에 와 나의 위엄을 뵙게 함이라." 하고 언파를 좌우를 명하여 맨 것을 끌러 당에 앉히고 술을 권하며 왈, "그대는 부지없이 다니지 말고 빨리 돌라가되 나를 보았다 하면 죄책이 있을 것이니 부대 이런 말을 내지 말라." 하고 다시 술을 부어 권하며 좌우로 명하여 내어 보내라 하니, 포장이 생각하되 내가 이것 꿈인가, 상시인가 어찌하여 이리 왔으며, 길동의 조화를 신기히 여겨 일어나고자 하더니 홀연 사지를 요동치 못하는지라 괴이 여겨 정신을 살펴보니, 가죽 부대 속에 들었거늘 간신히 나와 본즉 부대 셋이 나무에 걸렸거늘, 차례로 끌러 내어 보니 처음 떠날 제 데리고 왔던 하인이라. 서로 이르되, "이것이 어쩐 일인고. 우리 떠날 제 문경으로 모이자 하였더니 어찌 이 곳에 왔느뇨?" 삼인이 고 왈, "소인 등은 주점에서 자옵더니 홀연 풍운에 쌓이여 이리 왔사오니 무슨 연고를 아지 못함이로서이다. " 포장 왈, "이 일이 가장 허무 맹란하니 남에게 전설치 말라. 그러나 길동의 재주 불측하니 어찌 인력으로 잡으리오. 우리 등이 이제 저기 들어가면 필경 죄를 면치 못하리니 아직 수월을 기다려 가자." 하고 내려오더라. 차시 상이 팔도를 행관하사 길동을 잡으라 하시되 그 변화가 불측하여 장안 대로로 혹 초헌도 타고 왕래하며 혹 어사의 모양을 하여 각 읍 수령 중 탐관오리하는 자를 문둑 선참후계하되 가어사 홍길동의 계문이라 하니 상이 진노하사 왈, "이 놈이 각 도에 다니며 이런 작란을 하되 아모도 잡지 못하니, 이를 장차 어찌하리오." 하시고 삼공 육공을 모아 의논하시더니, 연하여 장계오르니 다 팔도의 홍길동이 작란하는 징계라. 상이 차례로 보시고 크게 근심하사 좌우를 돌아뵈시며 문왈, "이놈이 아마도 사람은 아니요, 귀신의 작폐니 조신 중 뉘 그 근본을 짐작하리오?" 일인이 출반주 왈, "홍길동이 전임이조판서 홍모의 서자요, 병조 죄랑 홍인형의 서제오나 이제 그 부자를 나래하여 진문하시면 자연 아르실까 하나이다." 상이 익노 왈, "이런 말을 어찌 이제야 하는다?" 하시고, 즉시 홍모는 금부로 나수하고 먼저 인형을 잡아들여 친국 하실사 천위 진노하샤 서안을 쳐 가라사대, "길동이란 도적이 너의 서제라 하니, 어찌 금단치 아니하고 그저 두어 국가의 대환이 되게 하나뇨? 만일 접아들이지 아니하면 너의 부자의 충효를 돌아보지 아니리라. 빨리 잡아들여 조선 대변을 없게하라." 하시면 신이 죽기로서 길동을 잡아 신의 부자의 죄를 속하올가 하나이다." 상이 문라의 천심이 감동하사 길동을 잡지 못할 것이요, 일 년한을 정하나니, 수이 잡아들이라." 하시니 인형이 백배사은하고, 인하여 하직하며 즉일하여 감영에 도입하고 각 읍에 방을 붙이니, 이는 길동을 달래는 방이다. 기사의 왈, "사람이 세상에 나매, 오륜이 으뜸이요, 오륜이 있으매 인의례지 분명하거늘, 이를 알지 못하고 군부의 명을 거역하여 불충 불효하모면 어찌 세상이 용납하리오. 우리 부친이 널로 말미암아 병입골수하시고, 성상이 크게 근심하시니, 네 죄악이 관영한지라. 이러므로 나를 특별히 도백을 제수하사 너를 잡아들이라 하시니, 만일 잡지 못하면 우리 홍문의 누대청덕이 일조에 명하리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오. 바라나니, 아오 길동은 이를 생각하여 일칙 자현하면 너의 죄도 덜릴 것이요, 일문을 보존하리니, 아지못게라. 너는 만번 생각하여 자현하라." 하였더라. 감사 아 방을 각 읍에 붙이고 공사를 전폐하여 길동이 자현하기만 기다리더니, 일일은 한 소년이 나귀를 타고 하인 수십을 거느리고, 원문 밖에 와 뵈옵기를 청한다 하거늘, 감사 눈을 들어 자세히 보니, 때로 기다리던 길동이라, 대경대희하여 좌우를 물리치고 손을 잡아 오열 유체 왈, "길동아, 네 한 번 문을 나매, 사생존망을 아지 못하여 부친께서 벙입고황하시건늘, 너는 가지록 불효를 끼칠 뿐 아니라, 국가의 큰 근심이 되게 하니, 네 무삼 마암으로 불중불효를 행하며, 또한 도적이 되어 나로 하여금 너를 잡아들이라하시니, 이는 피치 못할 죄라. 너는 일찍 경사의 나아가 천명을 순수하라." 하고 말을 마치매 눈물이 비오듯 하거늘, 길동이 머리를 숙이고 왈, "전생이 이에 이름을 부형의 위태함을 구코자 함이니 어찌 다른 말이 있으리오. 대저 대감께서 당초의 천한 길동을 위하여 부친을 부친이라 하고, 형을 형이라 하였던들 어찌 이에 이르리잇가? 왕사는 일러 쓸데없거니와, 이제 소제를 결박하여 경사로 올려 모재소서." 하고 다시 말이 없거늘, 감사 이 말을 듣고 일변 슬퍼하며 일변장계를 써 길동을 항쇄족쇄하고 함거에 실어 건장한 장교 십여인을 뽑아 압령하게 하고, 주야 배도하여 올려보내니, 각 읍 백성들이 길동의 재주를 들었는지라 잡아옴을 듣고 길이 메어 구경하더라. 차시 팔도에서 길동을 잡아리니 제가 서로 다투어 이르되 제가 정길동이라 나는 아니라 하며 서로 싸우니, 어느 사람이 정 길동인지 분간치 못할러라. 상이 고이히 여기사 즉시 홍모를 명초하사 왈, "자자막여부라 하니, 저 여덟 중 경의 아들을 찾아내라." 홍공이 황공하여 돈수청죄 왈, "신의 천생 길동은 좌편 다리에 붉은 점이 있사오니 일로 조차 알리소서이다." 하고 여덟 길동을 꾸짖어 왈, "네 지척에 임금이 계시고 아래로 네 아비 있거늘 이렇듯 천고에 없는 죄를 지었으니, 다 죽기를 아끼지 말라." 하고 피를 토하여 엎어져 기절하니, 상이 대경하사 약원으로 구하라 하시되 차도가 없는 지라, 여덟 길동이 이 경상을 보고 일시의 눈물을 흘리면, 낭중으로 좇아 혼약 한 개씩 내어 입에 드리오니 홍공이 반향후 정신을 차리니라. 길동 등이 상께 주 왈, "신의 아비 국은을 입었사오니, 신이 어찌 감히 불측한 행사를 하리오까마는, 신은 천비소생이라 그 아비를 아비라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못하오니, 평생 한이 맺혔삽기로 집을 버리고 적당의 참례하였사오니, 백성은 추호불범하옵고, 각 읍 수령의 준민고택하는 재물을 탈취하였사오나, 니제 십 년능 지내면 조선을 떠나 가올 곳이 있사오니, 복걸성상은 근심치 마시고 신을 잡는 관자를 거두옵소서."하고 말을 마치매 여덟 길동이 일시에 넘어지니, 자세 본즉 다 초인이라. 상이 더욱 놀라시며 정 길동을 잡기를 다시 행관하여 팔도에 나리시니라. 차설 길동이 초인을 없이하고 두르 다니더니, 사대문의 방을 붙였으되, "요신 홍길동은 아모리 하여도 잡지 못하리니, 병조판서 교지를 나리시면 잡히리다." 하였거늘 상이 그 방문을 보시고 조신을 모아 의논하시니, 제신 왈, "이제 그 도적을 잡으려 하다가 잡지 못하옵고, 도리어 병조판서 제수하심은 불가사문어인국이로소이다." 상이 옳히 여기사 다만 경상감사에게 길동 잡기를 재촉하시더라. 이 때 경상 감사 엄지를 보고 황공송률하여 어찌할 줄 모르더니, 일일은 길동이 공중으로 내려와 절하고 왈, "소제 지금은 정작 길동이오니, 형장은 아모 염려 마시고, 소제를 결박하여 경사로 보내소서." 감사 이 말을 듣고 집수유체 왈, " 이 무거한 아희야 너무 동기어늘, 부형의 교훈을 듣지 아니하고 일국이 소동케 하니, 어찌 애닯지 아니리오. 네 이제 정작 몸이 와 나와 보고 접혀가기를 자원하니, 도리어 기특한 아희로다." 하고 급히 길동의 좌편 다리를 보니 과연 홍점이 있거늘, 즉시 사지를 각별 결박하고 함거에 넣어 건장한 장교 수십을 가리어 철통같이 싸고 풍우 같이 몰아가되, 길동의 안색이 조금도 변치 아니하더라. 여러날 만에 경성에 다다르니 길동이 한 번 요동하매 철삭이 끊어지고, 함거 깨어져 마치 매암이 허물 벗듯 공중으로 오르매, 표연이 운무의 묻혀가니, 장교와 제군이 어이없어 공중만 바라보고 다만 넋을 잃을 따름이다. 할 수 없이 이 연유로 상달하온대, 상이 들으시고 왈, "천고에 이런일이 어데 있으리오."하시고 크게 근심하시니 제신 중 일인이 주 왈, "그 길동의 원이 병조판서를 한 번 지내면 조선을 떠나리라 하오니, 한 번 제 원을 풀면 제 스스로 사은하오리니, 이때를 타 잡음이 조을가 하나이다." 상이 옳히 여기사 즉시 홍길동으로 병조판서를 제수하시고, 사문의 방을 붙이니라. 이때 길동이 이 말을 듣고 즉시 사모 관대데 서대 띠고 높은 초헌을 한가롭게 높이 타고 대로상의 완연이 들어오며 이르되, 어제 홍 판서 사은하러 온다 하니, 병조 하속이 마자 호위하여 궐내에 들어갈 새 백관이 의논하되, "길동이 오늘 사은하고 나올 것이니, 도부수를 매복하였다가 나오거던 일시에 쳐 죽이라." 하고 약속을 정하였더니, 길동이 궐내에 들어가 숙배하고 주 왈, "소신이 죄악이 지중하옵거늘, 도리어 천은을 입아솨 평생 한을 푸옵고 돌아가오나 영결전하하오니, 복망성상은 만수무강을 하소서." 하고 말을 마치매. 몸을 공중에 솟아 구름에 싸이어 가니, 그 가는 바를 아지 못할러라. 상이 보시고 도리어 차탄 왈, "길동의 신기한 재주는 고금에 희한하도다. 제 지금 조선을 떠나노라 하였으니, 다시는 작폐할 길이 없을 것이오. 비록 수상하나 일달장부의 쾌한 마음이 있는지라 족히 염려없으렷다." 하시고 팔도에 사문을 내리사 길동 잡은 공사를 거두시니라. 각설 길동이 제 곳에 돌아와 제적에게 분부하되, "내 다녀올 곳이 있으니, 여등은 아모데 출입 말고 내 돌아오기를 기다려라." 하고 즉시 몸을 솟아 남경으로 향하여 가다가 한 곳에 다다르니 이는 소위 율도국이라. 사면을 살펴보니, 산천이 천수하고 임물이 번성하여 가히 안신할 곳이라 하고, 남경에 들어가 구경하며 또 제도라 하는 섬 중에 들어가 두루 다니며 산천도 구경하고 인심도 살피며 다니더니, 오봉산에 이르러는 짐짓 제일 강산이라. 주회 칠백리요 옥야답이 가득하여 살기가 정히 의합한지라, 내심에 헤아리되, 내 이미 조선을 하직하였으니, 이 곳에 와 아직은 거하였다가 대사를 도모하리라 하고, 표현히 본 곳에 돌아와 제인에게 일러 왈, "그대 아모날 양천 강변에 가 배를 많이 만들어 모일에 경성 한강에 대령하라. 내 임금께 청하여 정조 일천 석을 구득하여 올 석이니, 기약을 어기지 말라." 하더라. 각설 홍공이 길동이 작란이 없으므로 신병이 쾌차하고 상이 또한 근심없이 지내더니, 차시 추구월 망간의 상이 월색을 따라 후원에 배회하실 새, 문득 일진 청풍이 일어나며, 공중으로서 옥저소리 청아한 가운데 한 소년이 내려와 상께 복지하거늘 상이 경문 왈, "선동이 어찌 인간에게 강굴하여 무슨 일을 이르고자 하나뇨?" 소년이 보지주 왈," 신은 전임 병조판서 홍길동이로서이다." 상이 경문 왈," 내 어찌 심야에 온다?" 길동이 대 왈, "신이 전하를 받들어 만세를 뫼시올가 하오나, 천비소생이라 문으로 옥당에 막히옵고 무로 선천에 막힌지라, 그러므로 사방에 오유하와 관부가 작폐하고, 조정의 득죄하옴은 전하가 알으시게 하옴이러니, 신의 소원을 풀어 주옵시니, 전하를 하직하고 조선을 떠나가오나 복망 전하는 만수무강아소서." 하고 공중에 올라 표연히 날거늘, 상이 그 재주를 못내 칭찬하시더라. 이후로는 길동의 폐단이 없으매, 사람이 태평하더라. 각설 길동이 조선을 하직하고 남경 땅 제도섬으로 들오가 수천 호 집을 짓고 농업에 힘쓰며 재주를 배워 무고를 지으매 군법을 연습하니 병정양족하더라. 일일은 길동이 살촉에 바를 약을 얻으러 망탄산으로 향하더니 낙천 땅에 이르러는 그 곳의 부자 백룡이란 사람이 있으니, 일찍 한 딸을 두었으되 재질이 비상하매, 부모 애중하더니, 일일은 광풍이 대작하여 딸이 간데 없는지라 백룡 부부가 슬퍼하며 천금을 흩어 사방으로 찾되 종적이 없는지라, 부부 슬퍼하며 말을 펴 왈, "아모라도 내 딸을 찾아주면 가산을 반분하고 사위를 삼으리라." 하거늘 길동이 그 말을 듣고 심중에 측은하나 하릴없이 망탄산에가 약을 캐며 들어가더니 날이 저문지라, 주저하더니 문득 사람의 소래 나며 등촉이 조요하거늘 그곳을 찾아가니 사람은 아니요, 요괴들이 앉아 지저귀거늘, 원래 이 짐승은 '율곧'이란 짐승이라, 여러해를 묵어 변화가 무궁하더라. 길동이 몸을 감추고 활로 쏘니 그 중 괴수가 맞은지라 모두 소래지르고 달아나거늘, 길동이 나무에 의지하여 밤을 지내고 도로 약을 캐더니 문득 괴물 수삼 명이 길동을 보고 문 왈, "그대는 무삼 일로 이 깊은 곳에 이르뇨?" 길동이 답 왈, "내 의술을 알매 이 산에 들어와 약을 캐더니, 그대들을 마나 다행하도다." 그것이 대희 왈, "나는 이 곳에서 산 지 오래더니, 우리 대왕이 부인을 새로 정하고 작야에 잔치하더니, 천살을 맞아 위중한지라. 그대 명의라 하니 선약으로 왕의 병을 고치면 중상을 얻으리라." 하거늘 길동이 생각하되, '이 놈이 작야에 상한 놈이로다.'하고 허락하되, 그것이 길동을 인도하여 밖에 세우고 들어가더니, 이윽고 청하거늘 길동이 들어가보니, 화각이 광려한 가운데 흉악한 것이 누워 신음하다가 길동을 보고 몸을 기동하여 왈,"보이 우연히 천살을 맞아 위태하더니, 시자의 말을 듣고 그대를 청하였으니, 이는 하늘의 살림이라. 그대는 재주를 아끼지 말라." 길동이 사사하고 왈, "먼저 내치할 약을 쓰고 비거 외치할 약을 씀이 좋을가 하노라." 그것이 응낙하거늘, 길동이 약낭의 독약을 내어 급히 온수에 화하여 먹으니 식경은 하여 한 소리 지르고 죽는지라. 모든 요괴 일시에 다려들거늘 길동이 신통을 내어 모든 요괴를 몰아치더니 문득 두 소년 여자가 애걸 왈, "첩 등은 요괴 아니라 인조 사람으로서 잡히어 왔아오니 잔명을 구하여 세상으로 나가게 하소서." 길동이 백룡의 일을 생각하고 거주를 물으니, 하나는 백룡의 딸이요, 하나는 조철의 딸이라. 길동이 요괴를 소청하고 두 여자를 각각 제 부모를 찾아주니 그 부모 대희하여 즉일에 홍생을 맞아 사위를 삼으니, 제일 백 소저라, 길동이 일조에 양처를 얻고 두 집 가권을 거느려 제도섬으로 가니 모든 사람이 반기며 치하하더라. 일일은 길동이 천문을 보다가 놀라 눈물을 흘리거늘 제인이 문 왈, "무삼 연고로 슬퍼하느뇨?" 길동이 탄 왈, "내 부모를 천상 성진으로 안부를 짐작하더니, 건상을 본즉, 부친 병세 위중하신지라 내 몸이 원처에 있어 및지 못할까 하노라." 하니 제인이 비감하여 하더라. 이튿날 길동이 월봉산에 들어가 일장 대지를 얻고 산역을 시작하되 석물을 국릉과 같이하고, 일척 대선을 준비하여 조선국 서강 강변으로 대후하라 하고 즉시 삭발위승하여 일엽소선을 타고 조선으로 향하니라. 각설 홍 판서 홀연 득병하여 위중한지라, 부인과 인형을 불러 왈, "내 죽으나 무한이로되, 길동의 사생을 아지 못하니 유한이라. 제 생존하였으면 찾아올 것이니, 적서를 분별치 말고 제 어미를 대접하라." 하고 명이 진하니, 일가가 망극하여 치상할 새 산지를 구하지 못하면 만망하더니, 일일은 문례 고하되, " 어떤 중이 찾아와 영위의 조문하려 하나이다." 하거늘 괴이 여겨 들어오라 하니, 그 중이 들어와 방성대곡 중인 상인에게 일장통곡한 후 가로되, "형장이 어찌 소재를 몰라 보시잇가?" 하거늘 상인이 자세히 보니 이 곧 길동이라, 붙들고 통곡 왈, "현재야, 그 사이 어대 갔더뇨? 부공이 생시의 유언이 간절하시매 어찌 인자의 도리오." 하고 손을 끌고 내당에 들어와 모부인께 뵈옵고, 춘랑을 상면할 새, 일장통곡 후 문 왈, "네 어찌 중이 되어 다니느뇨?" 길동이 대 왈, "소자 조선을 떠나 삭발위승하여 지술을 배웠더니, 이제 부친을 위하여 대지를 얻었으니, 모친은 물려하소서." 인형이 대회 왈,"네 재주 기이한지라 길지곳 얻었으면 무삼 염려 있으리오." 하고 명일 운구하여 제 모친을 데리고 서강 강변에 이르니 길동의 지휘한 바 선척이 대후 한지라. 배에 올라 살같이 저어 한 곳에 다다르니, 중인 수십 선척을 선상에 다다르니 인형이 자세히 본 즉 산세 웅장한지라 길동의 지식을 못내 탄복하더라. 산역을 마치매 한가지로 길동의 처소로 돌아오니, 백씨와 조씨 존고와 숙숙을 맞아 뵈온 후, 인형, 춘랑이 못내 길동의 지식을 탄복하더라. 여러 날이 되매 인형이 길동과 춘랑을 이별하고 산소를 극진히 뫼심을 당부한 후 산소에 하직하고 발항하여 본국에 이르러 모부인을 뵈온 후 전후 수말을 고한대 부인이 신기한 여기더라." 각설 길동이 제전을 극진히 받들어 삼상을 마치매 모든 영웅을 모아 무예를 익히며 농업을 힘쓰니 병정양족하니라. 남해중의 율도국이라 길동이 매양 유의하던 배라 제인을 불러 왈, "내 이제 율도국을 치고자 하나니 그대 등은 진심하라." 하고 즉일 진군할 새, 길동이 스스로 선두가 되고 마 숙으로 후군장을 삼아 정병 오만을 거느려 율도국 철봉산에 다다라 싸움을 도드니, 태수 김현충이 난데없는 군마가 이름을 보고 대경하여 일변 왕에게 고하여 일지군을 거느려 내달아 싸우거늘, 길동이 맞아 싸와 일합에 김현충을 베이고, 철봉을 얻어 백성을 안무하고 정철로 철봉을 지켜오고 대군을 휘동하여 바로 도성을 칠 새, 격서를 율도국에 보내니, 하였으되, '의병장 홍길동은 글월을 율도왕에게 부치나니, 대저 임군은 한 사림의 임군이 아니요, 천한 사람의 임군이라. 내 천명을 받아 기병하매 먼저 철봉을 피하고 물밀듯 들어오니, 왕은 싸우고자 하거든 싸우고 불연측일즉 항복하여 살기를 도모하라' 하였더라. 왕이 남필의 대경 왈, "아국이 전혀 철봉을 믿거늘 이제 잃었으니 어찌 저당하리오." 하고 제신을 거느려 항복하니, 길동이 성중에 들어가 백성을 안무하고 왕위에 즉위한 후 율도왕으로 의령군을 봉하고, 마 숙, 최 철로 좌우상을 삼고, 기여 제장은 다 각각 봉작한 후 만조백관이 천세를 불러 하례하더라. 왕이 치국 삼 년에 산무도적하고 도불습유하니 가위 태평성세더라. 왕이 백룡을 불러 왈, "내 조선 성산께 표문을 올리려 하니, 경은 수고를 아끼지 말라." 하고 표문과 서찰을 홍부에 부치니라. 백룡이 조서에 득달하여 먼저 표문을 올린대, 상이 표문을 보시고 찬 왈, "홍길동은 짐짓 기재로다." 하시고, 홍인형으로 위유사를 하이샤 유서를 나리시오니, 인형이 사은한 후 돌아와 모부인께 연중설화를 고한대 부인이 또한 가자 하거늘, 인형이 마지못하여 부인을 뫼시고 발행하여 여러 날 만에 율도국에 이르니, 왕이 맞아와 향안을 배설하고 유서를 받자온 후 모부인과 인형으로 받기며, 산소에 소분한 후 대연을 배설하여 즐기더라. 여러 날이 되매 유씨 홀연 득병하여 졸하니, 선능에 상장하고, 인형이 왕을 하직하고 본국에 돌아와 복명하온대, 상이 그 모상 당함을 위유하시더라. 파선 율도왕이 삼상을 마치매 대비이어 기세하매 선능에 안장한 후 삼상을 마치매 왕이 삼자, 이녀를 생하니, 장자, 차자는 백씨소생이요, 삼자, 차녀는 조씨 소생이라. 장자 현으로 세자를 보아고, 기여는 다 봉군하니라. 왕이 치국 삼십년에 홀연 득병하여 붕하니, 수가 칠십 세라. 왕비 이어 붕하매 선능에 안장한 후 세자 즉위하여 대대로 계계승승허여 태평을 누리더라. 상이 그 모상 당함을 위유하시더라. 파선 율도왕이 삼상을 마치매 대비이어 기세하매 선능에 안장한 후 삼상을 마치매 왕이 삼자, 이녀를 생하니, 장자, 차자는 백씨 소생이요, 삼자, 차녀는 조씨 소생이라. 장자 현으로 세자를 보아고, 기여는 다 봉군하니라. 왕이 치국 삼십년에 홀연 득병하여 붕하니, 수가 칠십 세라. 왕비 이어 붕하매 선능에 안장한 후 세자 즉위하여 대대로 계계승승하여 태평을 누리더라.
강도몽류록 적멸사에는 청허라 하는 한 이름높은 선사가 살고 있었다. 그는 천성이 어질었고 마음 또한 착했다. 추운 사람을 만나면 입었던 옷을 벗어 주었다. 배고픈 사람을 보면 먹던 밥도 몽땅 주어버렸다. 이래서 사람들이 그를 일러, '추운 겨울의 봄바람'이라거나 '어두운 밤의 태양'이라거나 하고 우러러 받들었다. 그런데 국운은 나날이 쇠퇴하였고, 호적이 침입하여 팔도강산을 짓밟았다. 상감은 난을 피하여 고성에 갇혔고, 불쌍한 백성들은 태반이 적의 칼에 원혼이 되었다. 이런 와중에서도 저 강도의 침상은 더욱 처절했다. 시혈은 냇물처럼 흘렀고, 백골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까마귀가 사정없이 달려들어 시신을 파먹었으나 장사 지낼 사람이 없었다. 오직 청허선사만이 이를 슬프게 여겼다. 선사는 몸소 시신을 거두어 묻어 주려고 했다. 그는 손으로 버들가지를 잡아 도술을 부렸다. 넓은 강물을 날아 건넜다. 강 건너 인가가 황폐하여 어디 몸을 의탁할 곳이 없었다. 이에 선사는 연미정 남쪽기슭에다 풀을 베어 움막을 엮었다. 그는 움막에서 침식하며 법사를 베풀었다. 어느 날이었다. 달이 휘영청 밝았다. 그는 어렴풋이 한 꿈을 꾸었다. 티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물빛같이 푸르렀고, 음산한 밤 공기가 주위를 휩쌌다. 이따금 찬바람이 엄습했고, 처량한 밤 기운이 감돌아 심상치 않았다. 청허선사는 손에 석장을 들고 달밤을 소요하고 있었다. 밤중이 되어 바람에 소리가 들려 오는데, 노래 소리 같기도 하고,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그 노래와 웃음소리, 울음소리는 다 부녀들의 것으로서 한곳에서 들려왔다. 선사는 매우 이상히 여기고 가만가만 다가가 엿보았다. 그 곳에 수많은 부녀자들이 열을 지어 앉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얼굴이 쭈글쭈글했고 백발이 성성했다. 또 젊은 여인도 있었는데 삼단 같은 머리하며 황홀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그들은 한데 있었는데, 비통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청허선사는 더욱 이상하게 생각했다. 좀더 나아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어떤 사람은 두어 발이 넘는 노끈으로 머리를 묶기도 했고, 또 다른 이는 자가 넘는 시퍼런 칼날이, 시뻘건 선지피가 엉긴 채 뼈에 박혀 있었다. 또 머리통이 박살났는가 하면, 물을 잔뜩 들이키어 배가 불룩한 사람도 숱했다. 이 끔찍스런 침상은 두 눈뜨고는 차마 볼 수 없었고, 날카로운 붓으로도 낱낱이 기록할 수 없는 생지옥이었다. 한 여자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종묘사직이 전란을 입어 그 침상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슬프외다! 하늘이 무심탄 말인가요. 아니면 요괴의 장난인가요. 구태여 그 이유를 따지고 든다면 바로 우리 낭군의 죄이겠지요. 태보의 높은 지위며 체부의 중책을 진 사람이 공론을 무시한 소치입니다. 사정에 이끌려 편벽 되게도 강도의 중책을 제 자식에게 맡겼지요. 자식놈은 중책을 잊고 밤낮 술과 계집 속에 파묻혀 마음껏 향락에 빠졌습니다. 장차 닥쳐 올 외적의 침입을 까맣게 잊어버렸으니 어찌 군무에 힘쓸 일을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깊은 강, 높은 성 천험의 요새를 갖고도 이처럼 대사를 그르쳤으니, 죽어 마땅하지요. 슬프외다, 이 내 죽음이여! 나는 떳떳이 자결했다고 자부합니다. 다만 제 자식놈이 살아 나라를 구하지 못했고 죽어 또한 큰 죄를 지었으니, 천우의 오명을 어떻게 다 씻어 버리겠어요. 쌓이고 쌓인 원한이 가슴 속속들이 박혀 한때라도 잊을 날이 없군요." 이 말을 끝나기도 전이었다. 한 부인이 몸을 글어 당겨 단정히 앉으며 말을 가로챘다. "낭군은 자기 재주가 감당하지도 못할 중책을 맡아 오직 천험 한 지리만 굳게 믿어 군무를 소홀히 했습니다. 이에 밀어닥친 적군을 막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이지입니다. 강을 휩쓰는 비바람에 사직이 무너졌고 삼군이 박살났습니다. 상감마마가 성에서 내려오시어 무릎꿇고 항복을 했으니, 슬프외다, 만사를 다 그르쳤습니다. 이것이 모두 강도를 지키지 못한 데서 연유한 것입니다. 낭군은 군부에 회부되어 도끼로 목이 잘려도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민구는 저의 낭군과 같은 책임을 지고 있었는데 무슨 충의가 있었다고 의젓이 성명을 보전하여 제 명대로 살았습니까? 또한 도원수 김자점은 해내에 웅거하였는 데다 병권을 장악하였으면서도 한 번도 나아가 싸우지 않았습니다. 적에게 지레 겁을 집어먹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도망쳐 바위 틈에 숨어 구차한 목숨을 보전했고요. 더욱이 어두운 밤에 상감마마를 만나서는 행인처럼 대했답니다. 그래도 왕법을 행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은총이 더했으니, 정말 가소로운 노릇이지요. 심기원은 그 기량이 보잘것없고 생각이 깊지 못한데도 도성을 사수할 중임을 맡은즉, 군신의 의리를 망각하고 몰래 제 몸만 빠져나와 환난을 피했습니다. 이처럼 나라의 은혜를 저버렸으며 군율을 몸소 행하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은총이 깊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낭군님만이 홀로 죽임을 당했으니 어찌 원통하지 않으리오까. 슬프도다! 내 이 한목숨도 애석하지 않사오나, 불쌍한 늙은 시아버님이 백발인생에 아들을 잃어 대가 끊어지게 되었으니, 이 원통한 정상이야 산 자나 죽은 자나 어찌 다르오리까." 이 말이 끝나자마자 또 부인이 나섰다. 그 부인은 나이가 새파란 젊은 나이였다. 날렵한 몸매에 초승달 같은 눈썹을 하고 있었다. 앵도알 같은 붉은 입술을 살짝 벌렸다. 그 얼굴에는 두 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자태는 서왕모가 요지연에 내려선 모습이었고, 삼원 봄바람에 방긋 웃는 복사꽃이었다. 월궁항아가 이슬을 가득 머금은 그대로 옥안을 나직이 숙이고 슬픈 회포를 하소연했다. "나는 본래 왕후의 조카딸로 비단 속에서 곱게 자랐습니다. 나이 들어 김씨의 아내가 되었지요. 원앙 금침에 파묻혀 향락인들 오죽했겠어요. 부귀영화를 영원토록 누리려고 했더니 뜻밖의 전란을 당하여 참혹한 가화를 입었느니, 나와 같이 박복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어요. 이 몸 한번 죽어지면 인세와는 영원히 이별이니, 하늘이여! 어찌하오리까? 더구나 낭군은 풍진 속에 홀로 남아있고 눈마저 멀었다오. 부모 잃은 망극한 슬픔과 간고한 그 형상은 죽은 넋인들 차마 못 잊을 거예요." 그 부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부인이 앉은자리에서 뛰쳐나왔다. 그 부인도 품은 뜻을 토하는데, 그 얼굴은 이미 철 지난 꽃처럼 시들었고 바싹 말라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도록 탄식을 하며 말을 했다. "나는 왕비의 언니이며 또한 대신의 아내가 되어 부귀 영화가 극에 달해, 내 평생에 오늘과 같은 참혹한 일이 있을까 생각이나 했겠어요. 그러나 사람의 알이 한 번 이같이 되니, 내 슬픔 이 죽음도 남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다만 정렬로 표창하여 죽은 넋을 빛내 줄뿐이니, 이것은 불량한 내 자식의 그릇된 처사입니다. 적군이 아직 밀려오기도 전이었지요. 강권에 못 이겨 칼을 들어 죽였으니 어찌 여론이 없었겠습니까. 억지 정절을 만들어 정문을 세웠으니 모두가 더 세상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오." 또 한 부인이 내달아 양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얼굴을 다소곳이 숙여 개연히 탄식하며 말했다. "천분이 정해 있으니 박명함은 피하지 못할 것인가 봅니다. 저는 남의 후처가 되어 청운을 헛되이 보냈지요. 살아 생전에 무슨 낙인들 보았겠어요. 성이 무너져 어지러운 풍우 속에 꽃잎이 흩어지고 옥이 부서진 것은 조금도 애석하지 않습니다. 단지 낭군이 상감마마를 가까이 모셔 천은 알 입었으니, 당대의 총신을 말한다면 제 낭군이 아니고 그 누가 알겠어요. 상감마마께옵서 굳게 믿으시고 원손과 비빈을 부탁하셨지요. 낭군은 한 번 크게 충성을 발하여 큰일을 하려고 나가긴 했습니다. 다만 한이 된 것은 낭군이 한 번 싸워 보지도 않고 성문을 활짝 열어놓아 되놈들을 받아들여 무릎을 꿇고 항복하여 구차한 죽음을 면했다는 겁니다. 이것은 슬픈 노릇입니다. 저승의 염라대왕은 인간의 선과 악을 두루 살피신 답니다. 지옥에 들어올 때 사자에게 이렇게 명령을 전했답니다. "너는 큰 화를 입기 전에 칼을 들어 자결했으니 고왕금래 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너의 남편이 임금의 은혜를 잊고 성을 버리고 구차히 생명을 도매했으니 그 죄는 진실로 중하 도다. 그래도 지옥에 던져 버려 영영 인세에는 태어나지 못할 것이다. "하였으니, 내 이 슬픈 회포가 어떻겠어요." 한 부인은 앞섶이 붉은 피로 낭자하게 물들어 있었다. 그 부인은 뜨거운 눈물을 한없이 쏟으며 머리를 살며시 숙여 조용 조용히 말했다. 시아버님의 죄과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이 슬픔을 어찌 억제할 수 있겠어요. 특별한 천은을 입어 강도유수가 되었습니다. 강도는 중한 땅이라 마땅히 굳게 지킬 것이거늘, 천험만 허황하게 믿는 데다 호병의 날카로운 찬 검을 우습게 여겼답니다. 그래서 해가 중천에 오르도록 단잠에서 헤어나질 못했지요. 또한 매일 크게 취해 강루에 누워 수욕만 채웠답니다. 이러니 국가의 전망을 꿈엔들 생각했겠어요. 그는 원래 제수하는 법을 알지 못했고 또한 험한 풍랑에 키를 잡을 수도 없었습니다. 자연히 주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적막한 강성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았어요. 전선만이 잔물결에 흔들릴 뿐이었습니다. 날랜 군사며 험한 지리를 가지고서도 인사를 그르쳤으니 어찌하겠습니까. 강개남아라고는 오직 강후 한 사람에 그쳐 그 만이 일전을 했을 따름이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시아버지시여,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허물 하겠어요. 제 비록 한낱 아녀자일망정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또 한 부인은 옷깃을 여미면서 나섰다. 귀밑 털이 희끗희끗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홍안은 이니 간 곳이 없었다. 훌쩍거리며 말했다. "낭군님 살아 생전에 이 몸 먼저 죽지를 못하고 모짐 목숨이 살아 이 난을 당했지요. 아들이 처사를 크게 그르친 까닭으로 하여 백발이 남은 목숨을 눈 깜짝 사이에 끊어버리고, 꽃다운 아이들이 적의 칼에 죽었습니다. 인사가 이지경이 되었으니, 감히 목숨을 논할 수 있겠어요. 육지에서의 피난도 면할 수 있었거든, 뒤늦게 강도에 들어온 것은 수비하는 군사들의 훈련을 알지 못하고 그러했던가요? 군무를 잘못 검찰해서 그랬던가요? 군사를 훈련시키는 사람은 장 신이었고 군무를 검찰 하는 사람은 김경징이었지요. 그렇다면 국가를 호위하는 충심이 없고 호사한 생활에만 정신을 팔다 천하의 요새를 잃었으니 말입니다. 무슨 관계 있어 이 강도에 들어왔다가 내 몸으로 하여금 천명을 누리지도 못하게 하였으니, 오호 낭군이여! 다행히 죽음을 지켜 주지 않는다면 늙은 이 몸의 목숨은 온전할 것입니다." 슬픈 회포를 미처 다 말하기도 전에 또 한사람이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 빼어난 풍채는 여자중의 장부였다. 강개하여 말했다. "사람이 이 세상에 나서 몇 번이고 살겠다고 그 야단인지요, 조만 간에 어차피 한 번은 죽을 것이어늘, 조용히 죽어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오리까. 슬프외다! 자결만이 부인의 정절로서 길이 청사에 빛날 것입니다. 혼은 천당에 들어갈 것이며, 또 속의 인간만이 오직 광채를 발할 것입니다. 상감마마가 내리신 옷을 입고 삼감 마마의 녹을 먹으며 살아 생전에 국운이 막중했지요. 그러나 몸이 창황한 즈음에 처해서 인사를 생각지 않고 오직 실기만을 좋아하고 죽기를 두려워해서 기꺼이 적의 종이 되었지요, 이러하니 풍채는 매몰이 되었고 체신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상투를 잘라내 버렸으니, 그 꼬락서니가 오죽했겠습니까. 살려고 한 짓이 이토록 추잡해졌을 뿐이옵니다. 정묘년의 호란 때, 강화를 주장하여 고국으로 무사히 살아 돌아온 것에는 진실로 까닭이 있었습니다. 선인의 유골을 팔아 사함을 받고서 집으로 돌아왔으니, 일세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이에 살아도 산 보람이 없습니다. 슬프외다! 구차하게 살아 남는 것이 어찌 비명에 죽어 버린 나와 같으리오." 꽃 같은 얼굴, 삼단 같은 마리의 또 한 부인이 다음을 받았다. 앵도 같은 붉은 입술로 조용히 발을 이어 갔다. "원래 우리 나라는 산천이 아주 험합니다. 적병을 맞아 싸우기에 유리한 지역이 어찌 한두 군데 뿐이겠읍니까. 낭군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을 적입니다. 서울에서 큰 난리를 맞으니 주인 없는 아녀자로서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갈 바를 몰라 허둥거리다가 군중을 따라 성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러나 천생의 약질이라서 걷자니 엎어지고 넘어지고 했지요. 그 고생스러움을 어찌 한 입으로 다 말할 수 있겠어요. 홀몸으로 울며 울며 사정을 해서 배에 간신히 올라 강도에 들어왔습니다. 와서 보니 푸른 바다와 높은 산이며, 상첩이 구름에 닿아 나는 새도 못 지나갈 것만 같았습니다. 어찌 호병들인들 별수 있으랴 하였지요. 그래서 적이 안심했는데 뜻밖에도 흉도들이 여기까지 밀어닥쳤습니다. 드디어 대낮인데도 강도 성안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위나라 산천이 견고치 않음이 아니었고, 진나라 군신의 지략이 모자랐습니다. 그 시운에 있어서 그 무엇을 탓하겠습니까. 사납고 약한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가 하면, 착한 사람 악한 사람 할 것 없이 함께 망하는 난장판이었습니다. 그래, 정절의 마음은 이미 드러났고, 흉적의 창탈은 무수히 박혔으니, 해외의 외로운 넋은 그 누굴 의지하겠습니까. 수국에 풍진이 자욱히 일어나니 망극한 슬픈 회포가 바다처럼 굽었습니다. 비단 저고리를 입고 푸른 띠를 두른, 머리털이 서리처럼 하얀 늙은이가 좌우를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두 여자를 가르키는데 한 여자는 며느리요, 또 한 여자는 딸입니다. 살아서는 혼백이 외롭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고 할까요. 어찌 원망인들 없겠습니까. 며느리와 딸은 꽃같이 젊은 나이였습니다. 비록 내 나이 늙었으나 이제 겨우 쉰입니다. 만약 병화가 없었다면 어찌 이처럼 인간 세계를 하직하겠습니까.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낭군이 지휘관의 몸으로 강도에 들어왔습니다. 강도란 땅은 능히 적을 막을 만한데 죽게 된 것은 낭군이 처사를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우거진 풀잎을 붉은 피로 물들였고, 혼백은 구천에 들어갔으니 인세의 가는 곳마다 비단 장막이 쓸쓸하고, 천년을 묵은 회표수에는 외로운 학이 돌아오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오직 우리 세사람은 다 같이 정절을 지켜 죽었으니, 우러러 하늘을 보고 굽어 땅을 본들 하나도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인간세계에 살아 남아 영영 빛을 앓은 자는 가엾은 내 동생이옵니다. 명관의 아내가 되어 정절을 지켜 죽지 못했으니 참으로 한이 되옵니다. 늘그막에 무슨 추문인지 비단옷을 차려 입고 나귀등에 높이 앉아 채찍을 휘두르며 봄바람 살랑거리는 낙조 비낀 언덕을 질주하니, 사람마다 쑥덕쑥덕 온 세상이 들썩였지요. 이러니 살았어도 죽음만 같지 못합니다. 나 떠한 무인 하여 몸둘 바가 없습니다." 좌중에서 또 한 여자가 나섰다. 얼굴은 뭉개지고 해골을 깨어져 온 몸에 피가 낭자하였다. 그 참혹한 모습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이나 끔찍했다.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말했다. "나는 그때 마니산 바위 속에 숨었었지요. 사람이 위를 버리고 살기에만 급급함은 차라리 한번 죽느니만 못합니다. 절벽에 투신하여 백골이 진토가 되었으니, 이것은 마음 이로나마 만족스런 처사였습니다. 조금도 한이 되는 바가 없습니다. 하오나 애닯도다. 어찌하여 낭군은 난세에 처하여 시세를 살피지 못했을까? 헛되이 서울에만 머물다가 전쟁이 터지니 강도에 들어왔지요. 높은 자리에 앉은 분들과 함께 불에 뛰어든 부나비처럼 되었으니 이것이 슬프옵니다. 젊은 청운에 올라 오래도록 부귀를 누린 자는 사직이 망할 때 절사함이 마땅한 일이오나, 불쌍한 우리 낭군은 벼슬 하나 얻지 못해 아무런 국은도 입음이 없이 해외의 위경에서 그 귀중한 목숨을 잃었으니 슬프고 애닯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는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 한숨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사람이 나왔다. 빼어난 자태는 천하의 일색이었다. 비단 옥은 함빡 적시고 뱃속 가득히 물을 머금었다. 이는 다름 아닌 창해에 빠져 죽은 사신이었다. 구슬 같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붉은 입술을 움직였다. 향기로운 이슬이 흘러내렸고, 맑은 소리는 이어졌다 끊어졌다 했다. "저의 낭군은 선비였습니다. 달밝은 연못가에서 서로 만난지 두어 달만에 큰 환란을 당했습니다. 의리로써 살 수가 없어 푸른 바다에 몸을 던져 지금 시체가 떠다니고 있습니다. 저의 이 애석한 정절은 그 증거가 없어서 하늘이나 알고, 해가 비칠 따름입니다. 이 한 조각 곧은 마음을 낭군이 몰라 주시고, 혹 호지에 끌려가 있는지. 혹은 길바닥에 죽어 누워 있는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외로운 혼으로 하여금 낭군의 꿈속에나 찾아들어 원통한 회포를 풀고 싶습니다. 그러나 구천이 아득하여 천 리나 되니 저와 낭군은 꿈속에서도 만나기 어렵습니다. 생각이 이에 미치니 설음이 북받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합니다." 이런 중에 또한 부인이 끼어들었다. 비단 같은 고운 얼굴, 꽃다운 매무새, 송죽 같은 절개는 추상처럼 싸늘했다. 세 치 혀끝으로 토해내는 말마다 의리에 사무쳐 지금까지 말 한 중에서 단연 으뜸이었다. "나라에 어진 장수가 없는 데다가 인심까지 험악했습니다. 그러고야 어찌 패망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산천이 험하기론 파촉 보다 더 합니다. 그러나 장수가 장수답지 못하고 병졸도 형편없으니, 등 애가 한 번 일어나매, 척의 후주 유선이 눈물을 뿌렸습니다. 성 높고 물 깊기로는 백제의 웅도와 같았습니다. 지세는 이러했으나, 가무만 일삼고 군무를 살피지 않다가 나라가 무너졌습니다. 백마강의 슬픈 역사 천 년 토록 깁사옵니다. 이러니 망하는 건 천운이요, 빛나는 건 낭군이요, 패하는 건 사람입니다. 사람이 변변치 못하면 금성도 견고치 못하며 탕지도 험할 것이 못 되는데, 하물며 저 강도는 해외의 조그만 땅입니다. 파촉에 비한다면 산도 산이라 할 것이 없고, 강도 강이라 할 것이 못됩니다. 이 산과 강을 험하다고 믿고 적의 무서운 군사를 하찮게 여겼으니 환난이 닥쳐와도 그 누가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루 아침의 비바람에 모든 꽃이 산산이 흩어지니 이 연약한 몸으로 어찌 목숨을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미련없이 자결하여 혼백을 구천에 들었으나, 그 향기로온 이름은 세상에 떨쳤습니다. 이 때 염라대왕이 나를 불러 말했습니다. '아름답고도 아름답도다! 청풍처럼 쇄락하고, 추상처럼 늠름하도다, 뇌성벽력을 하지 않았으며, 도기도 두려워하지 않았도다. 갑자년의 변고에는 원혼들의 목을 벨 것을 주장했고, 정묘년의 난리에는 화의를 배척하여 강도를 불태우고 국가의 기강을 바로 잡을 술책을 일렀고, 대의명분을 세워 형제의 맹약을 헌신짝처럼 하니 지극히 충성이요, 선견지명이로다. 주운 같은 곧은 절개여 급암 같은 바른 말은 이 사람 이외에 그 누가 또 있단 말인고. 이는 바로 너의 아비로다. 너 또한 그 뜻 그 절개를 본받아 절의로 죽었으니 가히 포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극락세계에서 편안히 지내게 하겠노라.' 했습니다. 이윽고 선동이 명부에 다다라 염왕께 아뢰기를, '전쟁의 사나운 풍파 속에서도 절의로 죽은 사람이 많사옵니다.' 옥황상제께서 측은히 여기시어 전교하시기를, '절부의 기록대장을 짐이 한 번 보고자 하니 너는 어김없이 명대로 하라.' 하셨습니다. 하니, 염왕이 친히 옥접을 봉하여 촌부에 올리니 상제께서 다 보시고 명부에서 조서를 내리시기를, '짐이 가장 중하게 여기는 것은 의이며, 또한 가장 귀히 여기는 것은 절개로다. 이 의와 절개를 능히 지키고 행한 사람은 모두 천당에 들어오게 하여 그 여생을 편안하게 하리라. 더구나 그대와 시아버지의 덕망과 절의는 짐이 가장 아끼는 바로다. 장차 포상하리니 명부에 두지 말고 옥허청궁 소계전에 보내어 월궁항아로 더불어 달밤을 즐기며, 직녀와 더불어 은하를 거닐게 하고, 떠한 염왕이 정절을 창명하면 짐의 의열을 존숭함이 나타나지 않겠는고' 하였습니다. 염왕은 그 명령에 절하여 사례하고 저를 학의 등에 태우니 구만리 창공을 지척같이 날아갔습니다. 정말 시아버지의 덕이 아니었다면 어찌 천부에서 생활할 것을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또 한부인이 나섰다. 난초같은 그윽한 기품과 고요한 자태가 눈 속의 송죽 같았다. 양미간을 찌푸리고 붉은 입슬을 열어 말했다. "저는 본래 선비의 아내로 낭군을 섬겨온 지 겨우 반 년이나 될까요. 강도로 피난을 나왔다가 낭군이 덜컥 역질에 걸렸습니다. 아무리 위험이 닥쳐온들 잠시도 병상 옆을 떠날 수 없어 곁에서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수같은 되놈들이 어찌 가만둘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소 혼백이 구천에 떨어졌습니다. 이 때 염왕이 말하기를, '광해군의 말년에는 조정이 혼탁하여 임금과 신하가 제 신분을 망각하고 광분하였도다. 또한 강도의 풍우 속에서 모두들 절개를 버리고 삶을 도모하였거늘, 너는 여자의 몸으로 그 욕봄을 부끄럽게 여겨 죽음을 달게 받았도다. 전후 할아비와 손녀의 절개가 어찌 다르리요. 그 할아비에 그 손녀로다. 참으로 아름답고 아름답도다. 이러므로 너는 천당에 들어가서 만세토록 길이 행복을 누리라.' 했습니다. 그러니 비록 젊은 나이에 죽었다고 한들 어찌 한이 되겠습니까. 다만 한스런 것은 백발의 양친과 나이 어린 낭군이 풍진 속에 간신히 살아남은 것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슬프게 우는소리며 꽃 지는 봄바람 오동나무에 내리는 이슬에 애타게 흐느끼며 눈물 마를 날이 없으니, 이별의 슬픔을 더욱 북돋는군요. 그러니 부모를 여의고 죽은 것은 이른바 불효요, 남편보다 먼저 죽은 것은 현숙하지 못한 것입니다. 나의 지은 죄를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흐느낀다. 모든 부인들은 제각기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깊이 탄식하기도 했고, 눈물을 줄줄 흘리기도 했으며, 대성통곡하기도 했다. 글로는 그것을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조금 시간이 흘렀다. 한 여자가 일어나 사람 속을 왔다갔다 했다. 그녀는 두 눈동자가 샛별같이 유난히 빛나고 초승달 같은 눈썹이며 삼단 같은 머리는 가히 선녀라 할 만했다. 선사는 매우 이상히 여기며 속으로 생각했다. '직녀가 은하에서 내려왔나, 월궁에서 항아가 내려왔나. 만일 직녀라 한다면 견우 낭군을 이별한 뒤에 만나지 못했으니 당연히 슬픔에 싸여 눈물을 흘릴 것이다. 또한 월궁의 항아라면 긴긴 밤 독수공방에서 애타게 그리워한다고 홍안은 늙어 가고 백발이 성성할 터인데, 도무지 이 여자는 복사꽃 아롱진 뺨에 근심어린 빛이 전혀 없으니 알지 못할 일이로다. 이 또한 괴이한 일이구나.' 혼자 온갖 궁리를 했으니 알 수 없었다. 이 때 그 여자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첩은 기생이라. 노래와 춤이 널리 아름답습니다. 못 사내들의 경쟁 속에 밤마다 운우지정을 즐겨 인생 환락이 극도에 달했습니다.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람에게 가장 귀한 것은 정절입니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마음을 가다듬고, 깊은 규중에 들어가 오래도록 한 남편을 섬겨 다시는 두 마음을 먹지 않으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난리가 일어나 꽃 같은 청춘이 그만 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오늘밤 이 높은 회합에 제가 낀다는 것은 너무나 과분합니다. 외람되게 숭렬하신 여러분들의 곁에 끼어 다행히도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 절의의 높으심과 정렬의 아름다움은 하늘도 감동하고 사람마다 탄복하지 않을 사람이 없겠습니다. 몸은 비록 죽었지만 죽은 것이 아닙니다. 강도가 함락되고 남한성이 위태로와 상감마마의 욕되됨과 국치가 임박하였지만, 충신 절사는 만에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만 부녀자만의 정절이 늠름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영광스런 죽음이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설워하십니까?" 이 말이 끝나자마자, 좌중의 여러 부인들이 일시에 통곡했다. 그 소리는 참담하기 그지없었고 차마 들을 수 없었다. 선사는 혹시나 알아차릴까 두려워 숲 속에 숨어서 몸둘 바를 모르고 있었다. 날 새기를 기다려 물러나오다 별안간 깨어 보니 한 꿈이었다.
계축일기 임자년 겨울에 유자신의 아내 정씨가 대궐 안으로 들어와 딸과 사위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사흘 동안을 자정이 넘도록 의논을 하더니 마침내 계축년 정월 초사흗날부터 흉악한 무옥의 계략은 시작되었다. 유자신, 이이첨, 박승종 등 심복과 꾀하여 대비의 아버지이시오, 대군의 외조부이신 김제남이 광해군을 내치고 대군을 왕위에 세우려고 한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사형수 박응서를 달래서 이렇게 억측으로 온통 시킨 대로 김제남과 함께 대군을 왕위로 세우기 위해 역적모의를 했다는 사실로써 거짓 자백을 했다. 이렇게 하여 김제남과 그 아들, 그리고 많은 나인들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고 마침내 대군을 끌어내려고 하여 이르기를, "조정에서 대군을 속히 내 놓으라고 날마다 보챘지만 어린아이가 무엇을 알겠느냐 하여 들은 체를 않고 있었는데, 서양갑, 박응서 따위의 도둑들을 사귀어 역모를 하는 등 대란이 일어났으니 이제 와서 뉘 탓으로 돌리려 하는고?" 하고는 다시, "대군을 하도 내놓으라고 보채니 듣지 않으려고 고집하였지만 이제 와서는 조정이 노하고 있으니, 그 노여움을 좀 풀어 주도록 잔치에 참석케 하려 하니 잠깐 문 밖에만 내보내서 노여움을 풀게 하여 주소서." 하니, 말이 하도 흉측스러워 윗전께서는 차마 바로 듣질 못하시고, 모시는 이들도 마음이 산란하여 가슴이 미어지는 듯함을 금치 못했다. 그 말에 대답을 아니할 수 없어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에서 저지르지도 않은 큰 변을 만나 아버님과 동생을 죽였으니, 내 자식의 일로 인해 어버이께 큰 불효가 되어 세상에 용납되지 못할 줄 알지만, 대군이 나이가 들어 철이라도 났다면 모르되 이제 동서도 분간치 못하는 여덟 살 철부지 어린애니 당초에 대군을 데려다가 종으로 삼아 제 명이나 다하게 하시고 아버님과 동생을 살려 줍시사 하며 내 머리털을 친히 베어 친필로 글월을 써서 보냈건만 받지 않고 이제 와서 어찌 이런 말을 하시나이까? 어린아이가 알기나 한 노릇이며 어른의 죄가 아이한테 당하기나 한 일입니까?" 하시니 광해군의 대답이, "선왕께서 불쌍히 여기라고 하신 유교도 계신 터이니 대군에 대해선 아무 염려 마옵소서. 머리털은 두지 못할 것이니 도로 드리는 겁니다." 하더라. 대비께서,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게 된 일을 생각하면 간장이 메어지는 것 같으되 나라의 법이 중하여 내 마음대로 살려드리질 못했으나, 이 아이는 선왕의 유자니 그래도 좀 생각을 하여 주실까 했는데 새삼스레 그런 말을 하시니 말의 앞뒤가 맞지 않음을 생각할 때 서러워질 따름입니다. 어린아이를 어디다 감추어 두겠습니까? 내가 품에 안고 죽을지언정 내어 보낸다는 건 차마 못할 노릇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니 또 글을 보내되, '아무려면 아이보고 아는 노릇이냐고 족치겠으며, 옛부터 문밖으로 피접을 나는 일도 있는 일이니, 그 정도로 여기시고 좀 내어 보내 주소서. 조정에서 하도 보채어 그들의 마음을 풀어 주려 하는 노릇이니 대군에게 해로운 일이 있을까 하는 건 조금도 근심하지 마옵소서.' 하니, 대답하시기를 "내 낯을 보아서가 아니라, 대전의 선왕의 아드님이시고 대군 또한 아들이니 정을 생각해서 차마 해할 리야 있으리까마는 대군이 나이 열 살도 못되었고 대전도 아시다시피 한 번도 대궐 밖을 나간 일도 어디다 숨겨두겠습니까? 대전께서 압력을 가하실 탓이니 선왕을 생각하셔서 인정을 베풀어주소서." 하시니 또 말하되, "문 밖에 내어 주십사 해 넣고 설마하니 먼 곳으로 떠나 보낼리야 있겠습니까? 이 서소문 밖 궐내에 벌써 가까운 곳에 벌써 거처할 집을 정해 놓았으니, 궐내에 두어 두면 조정에서 번번이 보채기를 없애버리라고 날이면 날마다 서너 달 동안이나 보채지 않는 날이 없으니, 내 비록 듣지 않으려고 하나 조정에서 시끄럽게 구니 오히려 문 밖으로 내어 보내 그들의 마음이나 시원케 해주는 게 대군에게도 좋은 일이니 어련히 알아서 잘 보살피지 않으리까? 진실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이 말을 철석같이 믿으시고 부디 내보내 주십시오. 다 좋을 대로 하리이다." 하거늘 대답하시기를, "여러 번 그렇게 말씀하시니 서러운 중에도 더욱 망극하고, 선왕을 생각하고 옛날에 국모라 하시던 일을 생각하신 다니 감격하거니와, 대전께서는 다시 한번 고쳐 생각해 보소서. 어미 치고 어린것을 혼자 내어보내고 차마 어찌 나만 살 수 있으리까? 차라리 나와 함께 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시나 막무가내니 이제는 더 버텨도 소용이 없을 줄 아시고, "이 설움을 어디다 견주리요마는 대군을 곱게 있게 해주마고 벌써 여러 날 말씀하신 터요. 내전에서도 속이지 않겠노라고 극진한 투로 글월에 적었으니 이 말을 믿고 대군을 내 보내겠습니다마는 살아 남은 둘째 동생과 어린 동생만이라도 살려 주시어 제사나 잇게 하여 주소서." 하시니 그제서야 기꺼이 대답하되, "두 동생일랑 고이 살게 하겠습니다. 대군을 빨리 내어 보내주십시오. 피접을 나가는 것이니 오히려 편안하시고 좋으실 것입니다. 날마다 안부 전하는 사람도 드나들게 할 것이며 하시고자 하는 일도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 날, 장정 여관 여 남은 명이 몰려와 사이문을 여니 우리 전 나인들은 두려워 구석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더니 그 년 들이 와서 침실에 올라앉으며 말하기를, "무엇이 부족하며, 무엇이 마땅치 않아 이런 일을 저지르시는고? 대군 곁에 돈이 없던가, 명례궁에 돈이 없던가? 대비의 치호라도 받으시고 대군을 살리려 하실 망정 어찌하여 이런 역모를 하실꼬? 어린아이가 무엇을 알까마는 일을 저질렀으니 뉘 탓으로 돌릴꼬? 어서 대군을 내어 보내소서." 하니, 말이 하도 흉악 망측하여 차마 들을 수가 없더라. 말 같질 않아 잠자코 있으니 저들이 또 꾸짖으며 이르기를, "다 옳은 말을 하였으니 입이 있다 한들 무슨 할 말이 있어 대답을 하겠는가? 너희 나인들이 대군을 빨리 납시게 해야지 만약 그렇지 않고 지체하여 더디 내보내시게 한다면 너희 나인들은 모조리 죽을 것이니 그리 알아라."하더라. 위께서 까무러쳐 계시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시고 저 집 나인 우두머리 너덧 사람을 들어 오라 하셔서 이르시되, "너희도 사람의 탈을 썼으면 너의 애매함과 서러움을 모를 리야 있겠느냐? 내 무신년에 죽지 않고 살아온 것이 대전이 선왕의 아드님이시기에 두 아이를 의탁하여 편안히 살게 해줄까 함이었는데 여러 해를 두고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이 백 가지로 근심만 하며 살아오다 흉적을 만나 용납할 수 없는 대역의 죄명을 내게 뒤집어씌우니 하늘이 무심하여 이토록 애매한 처지를 말해주지 아니하니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이냐? 이제 밖으로는 아버님과 동생을 죽이셨고, 안으로는 나를 기꺼이 받들던 나인들을 모두 죽였으니, 이 어린것의 몸에는 죄가 미칠 까닭이 없으련만 또 대군을 내놓으라 하니 차라리 내가 저희 앞에 바로 죽어서 이런 망극하고 서러운 말을 아니 듣고 싶으되, 대전의 말과 내전의 말이 아직도 내 귀에 쟁쟁히 남아 있고 나인들이 중인이 되었으니 임금이 설마 국모를 죽이겠으며, 범인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여러 번 은근히 일러 왔으니 그 말들을 철석같이 믿고 내어 보내겠거니와 두 어린 동생만은 놓아 주셔서 어머님을 모시게 하고 조상의 제사나 받들게 하여 주신다면 대군을 내어 보내려 하노라, 이 말대로 대전과 내전에 전하도록 하여라." 하고 애통해 하시니 사람으로서 눈물 없이 어찌 들을 수 있으리요마는 그 년들은 모진 말을 거리낌없이 하되, "이토록 않으시더라도 대전께서 어련히 알라서 처리하시겠습니까? 속히 내어 보내 주십시오." 차마 내어보내시지를 못하시고 한없이 통곡하시니 두 아기들도 겉에서 함'께 우시매 위께서 더욱 통곡하시며, "하느님이시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토록 섧게 하시나이까?" 하시고 하도 섧게 우시니 비록 철석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어찌 눈물이 나지 않으리요마는 장정 나인들은 틈틈히 앉아서, "너희들 울음소리가 들리면 대군을 아니 내어 주실 것이니, 좋은 낯으로 어서 빨리 들어가 여쭤야지 행여 서러운 빛을 보이기나 하면 죽여버리리라." 하고 얼르니 제각기 눈물을 감추고 들어가 여쭙는 것이었다. "벌써 법의 입을 면치 못하게 되었사오니 병드신 부부인께서 지금 살아 계심은 오직 위를 믿고 의지하심이요, 미처 부원군 뼈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신 형편이니 두 오라버님이나 살려 주시거든 제사나 받들게 하시고, 설움을 잠시 참으시고 대군을 내어 보내십시오." 날은 저물어 가고 어서 내라는 재촉은 성화 같고 또 안에서는 나인마저 나와 재촉하니 하늘을 꿰뚫은 힘이 있다 한들 어찌 그 때 이길 수 있으리오. 점점 더 늦어가니 우리 시위 인들을 각각 꾸짖으며, "너희들이 이래서야 할 수 없으니 우리가 들어가서 대군을 빼앗아 데리고 오리라. 너희들 한 사람이라도 살 수 있나 어디 두고 보자." 하고 들이닥치려 하는데 나이 많은 변상궁이 들어가 여쭙기를, "안팎 장정들을 보냈으며 밖에는 금부 하인들이 쇠사슬을 들고 둘러섰고, 나인들을 데려 가려고 저리 대령하고 있으니 우리 죽는 건 서럽지 않지만 위께서 오직 이 늙은 것을 믿고 계시며 소인도 살아 있다가 아기를 저토록 내어 주지 않으시니 이제야 죽을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위께서 말씀하시되, "너희들은 나인인 까닭으로 자식에 대한 어미의 정을 모르는도다. 인정상 차마 내어 주지를 못하겠다." 한편으로 대군을 모시고 있는 나인들이 대군 아기씨를 달래며, "사나흘만 피접 갔다가 올 것이니 버선 신고 웃옷입고 나를 따라 나갑시다." 하니 이르시되, "죄인이라 하고 죄인들이 드나드는 문으로 내려가려 하니 죄인이 어찌 버선 신고 웃옷 입어 무엇할까." "누가 그렇게 말합디까?" "남이 일러 줘야만 아나, 내 다 알았네. 서소문은 죄인이 드나드는 문이니 나도 죄인이라 하여 그 문 밖에다 가두려 하는 것 아닌가? 누님과 함께 간다면 가려니와 나 혼자는 못가겠노라." 하시니 위께서는 더욱 섧게 우시는데 어서 내라고 재촉하며, "내어 주지 않거든 나인들을 다 잡아내라." 날이 늦어지고 재촉은 성화와 같아 윗전은 정상궁이 업고 공주 아기씨는 주상궁이 엄 대군 아기씨는 김상궁이 업사왔으니 대군 아기씨가 이르시기를, "윗전과 누님께서 먼저 나가시고 나는 그 뒤를 따르게 하라." 하시기에, "어찌 그리하라 하시나요?"하니, "내가 먼저 나가면 나만 나가게 하시고 다른 두 분들은 아니 나오실 것이니 나 보는 데서 갑시다." 하시는 것이었다. 윗전께서는 생 무명의 상복을 입으시고 생 무명 보 덮삽고 두 아기씨는 남빛 보를 덮고서 상궁들에게 엎히어 자비문에 다다랐더니 내관이 십여 명이나 엎디어, "어서 나오십시오."하고 아뢰니 윗전께서 이르시기를, "너희들도 선왕의 녹을 먹고 살았으니 어찌 측은한 마음이 없겠느냐? 십여 년을 위에 있으면서도 자식을 얻지 못해 늘 근심하던 끝에 병오년에 처음으로 대군을 얻으시어 기뻐하시고 사랑하심이 비할 데 없으셨으나, 그 당시에는 강보에 싸인 어린것이기에 무슨 뜻을 두셨겠는가? 한갖 자라는 모양만 대견해 하시다가 귀천하시오니, 내 그때에 재궁을 좇아 죽었던들 오늘 날 이 서러운 일을 겪지 않으련만 모두 내가 죽지 못하고 살았든 죄라, 어린 아이 아직 동서도 구분하지 못하는 철없는 것을 마저 잡아내니, 조정이나 대간이나 선왕을 생각한다면 어찌 이런 서러운 일을 할까보냐?" 하시고 너무도 애통해 하시니 내관들도 눈물을 씻으며 입을 열어 여러 말을 하지 못하고 오직, "어서 납시옵소서. 우리가 어찌 그 사정을 모르리까마는 이길 일이 아닙니다."하더라. 저 집 나인 연갑이는 윗전 업은 나인의 다리를 붙들고 은덕이는 공주 업은 주상궁의 다리를 붙들어 걸음을 옮겨 딛지 못하게 하고 대군 업은 사람을 앞으로 끌어내고 뒤에서 떠밀어서 문 밖으로 내고 우우는 안으로 밀어들이고 자비문을 닫아 버리니, 그 망극함이 어떠하였으리오. 대군 아기씨만 문밖으로 업혀 나가서 등에 머리를 부딪쳐 우시면서, "어마마마 좀 보게 해 주."하다 못하여 다시, "누님이라도 보게 해 주."하시며 하도 애타 서러워하니 곡성이 내외에 진동을 하고 눈물이 땅위에 가득 차 사람들이 눈이 어두워 길을 찾지 못하였다. 문 밖으로 나간 뒤 그 주위를 환도와 화살을 찬 군인이 삥 둘러싸고 가니 그제서야 울기를 그치고 머리를 숙이고 자는 듯이 업혀가더라.
산성일기 병자년12월 17일서부터 26일까지의 일기를 현대 맞춤법으로 바꾸어 보이면 다음과 같다. 병자 12월 17일에 상이 남문에 전좌하시고 애통교를 나리오시니, 뜰에 가득한 제신이 아니 울 이 없더라. 18일에 북문 대장 원두표가 비로소 자모 받아 나가 싸워 도둑 여섯을 죽이니라. 성중 창고에 쌀과 잡곡 합하여 겨우 일만 육천여 석이 있으니, 군병 만인의 한달 양식은 되더라. 소금, 장, 종이, 면화, 병장기, 잡물이 다 이 서가 장만하여 둔 것을 쓰니, 이 서의 재주를 칭찬하더라. 19일에 남문 대강 구 굉이 발군하여 싸워 도둑 20여명을 죽이다, 이날, 대풍이 불고 비가 오려 하더니, 김청음을 명하여 성황신에 지하니, 바람이 즉시 그치고 비 아니 오더라. 20일에 마장이 통사 정명수를 보내어 화친하기를 언약할 새, 성문을 열지 않고 성위에서 말을 전하게 하다. 21일에 어영별장 이기축이 군을 거느려 도둑 여남은을 죽이고, 동문 대장 신경진이 또 발군하여 도둑을 죽이다. 22일에 마 부대 또 통사를 보내어 이르되, "만일 황연히 깨달아 왕자, 대신을 보내면 정하여 화친하자."하자, 상이 오히려 허락치 아니하시다. 북문 어영군이 도둑 여남은을 죽이고 신경진이 또 삼십여 명을 죽이다. 상이 내정에서 호군하시다. 23일에 동서남문의 영문에서 군사를 내고, 상이 북문에서 싸움을 독촉하시다, 24일에 큰 비 오시매 성첨 지킨 군대 얼어죽은 자가 많으니 상이 세자로 더불어 뜰 가운데 서서 하늘께 빌어 왈, "금일 이에 이르기를 우리 부자가 득죄함이니, 일성 군민이 무슨 죄이리꼬. 천도가 우리부자에게 회를 나리오시고, 원컨대 만민을 살리소서." 군신들이 안으로 들으시기를 정하되 허락지 아니 하시더니 미구에 그치고 임기 온화하거늘, 성중 인민이 감읍지 않을 이 없더라. 25일에 국한하다. 묘당이 적진에 사신을 보내기를 청하오니 상이 가라사대, "아국이 매양 화친으로써 적에게 속으니, 이제 또 사신을 보내어 욕될 줄 알되, 모든 의논이 여차하니, 이때는 세시라 술과 고기를 보내고 은합에 실과를 담아서 후정을 뵌 후, 인하여 접담하여 기색을 살피리라."하시다. 26일에 이경직, 김신국이 술과 고기를 은합에 넣어 가지고 적진에 가니 적장이 기로되, "궁중에 날마다 소를 잡고 보물이 산같이 쌓였으니 이것을 무엇에 쓰리오. 네 나라 군신이 필시 굶었으리, 가히 스스로 씀직하도다." 하고 드디어 받지 아니하리라.
장화홍련전 화설 해동 조선국 세종대왕 시절에 평안도 철산군에 한 사람이 있었으니, 성은 배요 이름은 무용이니 본디 향반으로 좌수를 지냈었음에 성품이 순후하고 가산이 유여하여 그릴 것이 없으되, 다만 슬하에 일점 혈육이 없음으로 부부 매양 슬퍼하더니, 하루는 부인 장씨 몸이 곤하여 침석을 의지하여 조을 새, 문득 한 선관이 하늘에서 내려와 한 꽃송이를 주거늘 부인이 받으려 할 때 홀연 광풍이 일어나며, 그 꽃이 변하여 한 선녀가 되어 완연히 부인의 품으로 들어오는지라, 부인이 놀라 깨달으니 남가일몽이라. 부인이 좌수를 청하여 몽사를 이야기하고 괴이하게 여기거늘, 좌수 이 말을 듣고 가로되, "우리의 무자함을 하늘이 불쌍히 여기사 귀자를 점지하심이라." 하며 서로 기뻐하더니, 과연 그 달부터 태기 있어 십삭이 차매, 하루는 밤중에 향기 진동하여 순산하여 옥녀를 낳으니, 용모와 기질이 특이하여 좌수 부부 크게 사랑하여 이름을 장화라 하고 장중 보옥 같이 여기더라. 장화 두어 살이 되매, 장씨 한 태기 있어 십삭이 되어 가니, 좌수 부부는 주야로 아들 낳기를 바라다가 역시 딸을 낳으매, 마음에 서운하나 할 일 없어 이름을 홍련이라 하였더니, 장화의 형제 점점 자라매 얼굴이 화려하고 기질이 기묘할뿐더러 효행이 특출하니, 좌수 부처 형제의 자람을 보고 사랑함이 비할 데 없는 중 너무 성숙함을 염려하더니, 시운이 불행을 다하여 장씨 홀연히 병을 얻어 자리에 누우니, 좌수와 장화 정성을 다하여 주야로 약을 쓰되, 증세 날로 위중할 뿐이요, 조금도 효험이 없는지라. 장화 초조하여 하늘에 축수하여 모친의 회춘하기를 바라더니, 이 때 장씨 자기의 병이 회춘치 못할 줄을 짐작하고 여아 형제의 손을 잡고 좌수를 청하여 슬퍼하여 가로되, "첩이 전생에 죄가 많아 아마 이 세상에 오래지 못하리니, 죽기는 설지 아니하나 장화 형제를 기를 사람이 없사오니, 지하에 갈지라도 눈을 감지 못할지라, 슬프다 이제 골수에 맺힌 한을 가슴에 품고 돌아가거니와 외로운 혼백이라도 바라는 바는 다름이 아니라 첩이 죽은 후 다시 취처하실진대 낭군의 마음이 자연 변하기 쉬운 것이매, 그를 두리는 지라, 낭군은 첩의 유언을 저버리지 말으사, 전일의 정을 생각하시고 이 두 딸을 어여삐 여겨 장성한 후 같은 가문에 배필을 얻어 봉황의 짝을 지어 주신다 하면, 첩이 비록 명명한 가운데라도 낭군의 은택을 감축하여 걸초보은 하리이다." 하고, 길이 탄식한 후 인하여 명이 진하거늘, 장화 동생을 안고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니, 그 가련한 정경은 칠석 간장이라도 슬퍼하리라. 그럭저럭 장일이 다달아 선산에 안장하고 장화 효심을 다하여 조석으로 상식을 받들어 주야 과상하더니, 세월이 여류하여 홀홀히 삼상이 지나매, 장화 형제의 망극함은 더욱 새롭더라. 이 때 좌수 비록 망처의 유언을 생각하나, 후사를 아니 돌아볼 수 없는지라. 이에 혼처를 두루 구하되, 원하는 자 없음에 부득이 하여 허씨로 장가드니, 그 용모를 의논할진대 두 볼은 한 자가 넘고 눈은 퉁방울 같고, 키는 장승만 하고, 소리는 이리 소리 같고, 허리는 두 아름이나 되는 것이, 게다가 곰배팔이요, 수중다리에 쌍언청이를 겸하였고, 그 주둥이를 썰어내면 열 사발은 되고 얽기는 콩멍석 같으니, 그 형용은 차마 바로 보기 어려운 중에 그 심사가 더욱 불량하여 남의 못할 노릇을 골라 가며 행하니, 집에 두기 일시가 난감하되, 그래도 그것이 계집이라고 그 달부터 태기 있어 연하여 아들 삼형제를 낳으매, 좌수 그로 말미암아 저으기 부지하나, 매양 여아로 더불어 장부인을 생각하며, 일시라도 두 딸을 못보면 삼추 같이 여기고, 들어오면 먼저 딸의 침소로 들어가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너의 형제 깊이 규중에 있어 어미 그리워함을 노부도 매양 슬퍼하노라." 하며 애연히 여기는 지라, 허씨 이러하므로 시기는 마음이 대발하여 장화 홍련을 모해하고자 꾀를 생각하더니, 좌수 허씨의 시기함을 짐작하고 허씨를 불러 크게 꾸짖어 가로되, "우리 본디 빈곤히 지내더니, 전처의 재물이 많으므로 지금 풍부히 살매, 그대의 먹는 것이 다 전처의 재물이라. 그 은혜를 생각하면 크게 감동할 바이거늘, 저 여아들을 심히 괴롭게 하니 무슨 도리뇨. 다시 그리 말라."하고 조용히 개유하나, 시랑같은 그 마음이 어찌 회과함이 있으리오. 그 후로는 더욱 불칙하여 장화 형제 죽일 뜻을 주야로 생각하더라. 하루는 좌수 외당으로 들어와 딸의 방에 앉으며, 두 딸을 살펴보니, 딸의 형제 손을 서로 잡고 슬픔을 머금고 눈물을 흘려 옷깃을 적시거늘, 좌수 이것을 보고 매우 잔잉히 여겨 탄식하요 가로되, "이는 반드시 너희들 죽은 모친을 생각하고 슬퍼함이로다." 하고, 역시 눈물을 흘리며 위로하여 이르되, "너희 이렇듯 장성하였으니, 너희 모친이 있었던들 오죽 기쁘랴마는 팔자 기구하여 허씨를 만나 구박이 자심하니, 너희들의 슬퍼함을 짐작하리라. 이후에 이런 연고 또 있으면 내 처치하여 너의 마음을 편케 하리라." 하고 나왔더니, 이때 흉녀 창 틈으로 이 광경을 엿보고 더욱 분노하여 흉계를 생각하다가 문득 깨닫고, 제 자식 장쇠를 시켜 큰 쥐를 한 마리 잡아 오라 하여, 가만히 튀하여 피를 바르고 낙태한 모양으로 만들어 장화 자는 방에 들어가 이불 밑에 넣고 나와 좌수 들어오기를 기다려 이것을 보이려 하더니, 마침 좌수가 외당에서 들어오거늘, 허씨 좌수를 보고 정색하며 혀를 차는지라, 좌수 괴이하게 여겨 그 연고를 묻는데, 허씨 가로되, "가중 불측한 변이 있으나, 낭군은 반드시 첩의 모해라 하실듯하기로 처음에는 감히 발설치 못하였거니와, 낭군은 친어버이라면 이르고 들면 반기는 정을 자식들은 전혀 모르고 부정한 일이 많으나, 내 또한 친 어미 아닌고로 짐작만 하고 잠잠하더니, 오늘은 늦도록 기동치 아니하고로 몸이 불편한가하여 들어가 본즉 과연 낙태하고 누웠다가 첩을 보고 미처 수습치 못하여 황망하기로 첩의 마음에 놀라움이 크나 저와 나만 알고 있거니와 우리는 대대 양반이라 이런 일이 누설되면 무슨 면목으로 세상에 서리오." 하고 가장 분분한지라, 좌수 크게 놀라 이에 부인의 손을 이끌고 여아의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들치고 보니, 이때 장화 형제는 잠이 깊이 들었는지라. 허씨 그 피 묻은 쥐를 가지고 여러 가지로 비양하거늘, 용렬한 좌수는 그 흉계를 모르고 가장 놀라며 이르되, "이 일을 장차 어찌하리오." 하며 애를 쓰거늘, 이 때 흉녀 가로되, "이 일이 가장 중난하니, 이 일을 남이 모르게 죽여 흔적을 없이 하면 남은 이런 줄을 모르고 첩이 심하여 애매한 전실 자식을 죽였다 할 것이오, 남이 알면 부끄러움을 면치 못하리니, 차라리 첩이 먼저 죽어 모름이 나을까 하나이다." 하고 거짓 자결하는 체하고 저 미련한 좌수는 그 흉계를 모르고 곧 대들어 급히 붙잡고 빌어 가로되, "그대의 진중한 덕은 내 이미 아는 법이니, 빨리 방법을 가르치면 저를 처치하리라." 하며 울거늘, 흉녀 이 말을 듣고, '이제는 원을 이룰 때가 왔다.' 하고, 마음에 기꺼하여 겉으로 탄식하여 가로되, "내 죽어 모르고자 하였더니, 낭군이 이다지 과렵하시매 부득이 참거니와, 저를 죽이지 아니하면 문호에 화를 면치 못하리니, 기세 양난이오니 빨리 처치하여 이 일이 탄로치 않게하소서." 한데, 좌수 망처의 유언을 생각하고 망극하나 일변 분노하여 처치할 묘책을 의논하니, 흉녀 기뻐하여 가로되, "장화를 불러 거짓말로 속여 저의 외삼촌 집에 다녀오라 하고, 장쇠를 시켜 같이 가다가 뒤 연못에 밀처 넣어 죽이는 것이 상책일까 하나이다." 좌수 듣고 옳게 여겨 장쇠를 불러 이리이리 하라 하고 계교를 가르티더라. 이 때 두 소저는 망모를 생각하고 슬픔을 금치 못하다가 잠을 깊이 들었으니, 어찌 훙녀의 이런 불측함을 알았으리오. 장화 잠을 깨어 심신이 울울하므로 십분 괴이하게 여겨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 앉았더니 부친이 부르시거늘, 장화 놀라서 즉시 나아가니, 좌수 가로되, "너의 외삼촌 집이 여기서 멀지 않으니 잠깐 다녀오라." 하거늘, 장화 너무나도 의외의 영을 들으매, 일변 놀라우며 일변 슬퍼 눈물을 머금고 대답하여 가로되, "소녀 오늘까지 지게를 나지 아니하여 외인을 대한 일이 없삽거늘, 부친은 어찌하여 이 심야에 알지 못하는 길을 가라 하시나잇가?" 좌수 대노하여 가로되, "네 오라비 장쇠를 데리고 가라 하였거늘, 무슨 잔말을 하여 아비의 영을 거역하느냐."하거늘, 장화 이 말을 듣고 방성 대곡하여 가로되, "부친께서 죽으라 하신들 어찌 영을 거역하릿까마는 야심하였기로 어린 생각에 사정을 고함이요, 분부 이러하시니 황송하오나 다만 바라옵기는 밤이나 새거든 가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좌수 비록 용렬하나, 자식의 정을 생각하고 망설이거늘, 흉녀 이렇듯 수작함을 듣고 문득 문을 발길로 박차고 꾸짖어 가로되, "너는 아비의 영을 순히 쫓을 것이어늘, 무슨 말을 하여 부명을 어기느냐." 호령하거늘, 장화 이를 보매 더욱 서러우나 하릴없어 울며 가로되, "아버님 분부 이러하시니, 다시 여쭐 말씀이 없사오며 분부대로 하오리다." 하고 침방으로 들어와 홍련을 불러 손을 잡고 울며 가로되, "부친의 의향을 아지 못하거니와 이 길의 아무리 하여도 불길하니, 시급하여 사정을 못다하거니와 가장 망극한지라. 다만 슬픈 것은 우리 형제 모친을 여의고 서로 의지하여 세월을 보내되 일각이라도 떨어짐이 없었거늘, 천만 의외에 이 일을 당하여너를 적적한 빈 방에 혼자 두고 갈일을 생각하면, 흉격이 터지고 간장이 타는 심사는 청천일장지로도 다 기록치 못할지라. 아무튼 잘 있으라. 내 길이 좋지 못할 듯하나 만일 순하면 속히 돌아오리니. 그 사이 그리운 생각이 있을 지라도 참고 기다리라. 옷이나 갈아입고 가리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형제 다시 손을 잡고 울며 아우를 경계하여 가로되, "너는 부친과 계모를 만나 극진히 섬겨 득죄함이 없게 하고 나의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면 내 가서 오래 있지 않고 수삼일에 곧 오려니와, 그 동안 그리워 어찌하여 너를 두고 가는 형의 마음 측량 없나니, 너는 슬퍼 말고 부디 잘 있거라." 말을 마치매 대성 통곡하여, 다만 손을 붙잡고 서로 나누지 못하니, 슬프다. 생시에 그지없이 사랑하던 그 모친은 어찌 이런 때를 당하여 저 형제의 형상을 굽어 살피지 못하는고. 홍련이 무망중에 형의 일장 설화를 들으매, 간담 미어지는 듯하여 서로 붙잡고 통곡하니, 그 가련한 정상은 일필난기러라. 이에 흉녀 밖에서 장화의 이렇듯 함을 듣고 들어와 시랑 같은 고리를 지르며 꾸짖어 가로되, "내 어찌 이렇듯 요란히 구느뇨?" 하고, 장쇠를 불러 이르되, "네 누이를 데리고 속히 외가에 다녀오라." 하거늘, 개돼지 같은 장쇠는 염라왕의 분부나 메인 듯이 소리를 벼락같이 질러 어깨춤을 추며 삼간 마루를 떼구르며 가로되, "누님은 바삐 나오소서." 부명을 거역하여 공연히 나를 꾸지람 들리니 아니 원통한가." 하며 재촉이 성화같은지라, 장화 하릴없이 홍련의 손을 떨치고 나오려 한즉, 홍련이 형의 옷자락을 잡고 울며 가로되, "우리 형제 일시에 떠남이 없더니, 갑자기 오늘은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가려 하시뇨?" 하며 좇아 나오니. 장화 홍련의 잔잉한 형상을 보매. 촌촌히 끊어지는 듯하나 할 일 없이 홍련을 달래여 가로되, "내 잠깐 다녀오리니, 울지 말고 잘 있으라." 하는 소리 설음에 잠겨 이루지 못하니, 노복들도 이 정상을 보고 눈물을 머금더라. 홍련이 형의 이마를 굳이 잡고 놓지 아니하거늘, 흉녀 들이닥쳐 홍련의 손을 뿌리치며 가로되, "네 형이 외가에 가거늘, 네 어찌 이처럼 요괴로이 구느냐." 하며 꾸짖으매, 홍련이 하릴없이 물러서니, 흉녀 장쇠에게 넌지시 눈주며 장쇠의 재촉이 성화 같으니, 장화 마지못하여 홍련을 이별하고 부친께 하직하고 말에 올라 통곡하여 가니라. 장쇠 말을 급히 몰아 산곡 중으로 들어가 한 곳에 다다르니, 산은 첩첩산봉이요, 물은 잔잔 백곡이라. 초목이 무성하고 송백이 욱하여 인적이 적막한데, 달빛이 회양청 밝아 있고, 구슬픈 두견 소리 일흔 간장을 다 끊는다. 장화 굽어보니 송림 중에 한 못이 있으되, 크기가 사십여 리요, 그 깊이는 아지 못할레라. 한번 보매 정신이 아득한 중 물소리가 처량한지라 장쇠 말을 잡고 내리라 하거늘, 장화 크게 놀라 가로되, "이 곳에 내리라 함은 어쩐 말이냐." 허나, 장쇠 대답하여 가로되, "누이의 죄를 알 것이니, 어찌 묻느뇨? 그대를 외가에 보내라 함이 정말이 아니라 그대 실행함이 많으되, 계모 착하신 고로 모르는 체하시더니 이미 낙태한 일이 나타난고로 나로 하여금 남이 모르게 이 못에 넣고 오라 하기로 이에 왔으니 속히 물에 들라." 하며, 잡아 내리는지라. 장화 이 말을 들으매 청천 백일에 벼락이 나리는 듯 넋을 잃고 소리를 외오 가로되, "하늘도 야속하오. 이 일이 웬일이오. 무슨 일로 장화를 내시고, 또 천고에 없는 누명을 싣고 이 깊은 못에 빠져 죽어 속절없이 원혼이 되게 하시는고. 하늘은 굽어살피소서. 장화는 세상에 난 후로 문 밖을 모르거늘, 오늘 날 애매한 누명을 얻사오니, 전생 죄악이 이같이 중하든지, 우리 모친은 어찌 세상을 보리시고 슬픈 인생을 끼쳤다는 간악한 사람의 모해를 입어 단불에 나비 죽듯 죽는 것은 설지 않거니와 원통한 누명은 언제나 서러워하며 외로운 저 동생은 장차 어찌할꼬." 하며 원통하여 기절하니, 그 정상은 목석 간장이라도 서러워하련마는 저 불측하고 무정한 장쇠놈은 서서 다만 재촉하여 가로되, "이 적막한 산중에 밤이 이미 깊었는데, 아무래도 죽을 인생 발악하나 무익하니, 바삐 물에 들라." 하거늘 장화 정신을 진정하고 가로되, "나의 망극한 정지를 들으라. 우리 비록 이복이나 아비 골육은 한가지라. 전에 우리 우애하던 정을 생각하여 영영 황천으로 돌아가는 인명을 가련히 여겨, 일시 말미를 주면 삼촌 집에 가 망모의 묘하에 하직이나 하고 외로운 홍련을 부탁하여 위로코자 하나니, 이는 결탄코 목숨을 보존코자 함이 아니라 발명한즉 계모의 시기가 있었을 것이요, 살고자 한 즉 부명을 거역함이니, 일정한 명대로 하러니와, 바라건대 잠깐 말미를 얻어 다녀와 죽음을 청하노라." 하며, 비는 소리 애원 측은하건마는 목석 같은 장쇠놈은 조금도 측은한 빛이 없어, 마침내 듣지 않고 재촉이 성화 같으니, 장화 더욱 망극하여 양천 통곡하여 가로되, "명천은 이 지원한 사정을 살피소서. 장화의 팔자 기박하여 칠세로 모친을 여의옵고, 형제 서로 의지하여 서산에 지는 해와, 동령에 돋는 달을 대할 제면 간장이 슬퍼지고, 후원에 피는 꽃과 옥계에 나는 풀을 볼 적이면 비감하여 눈물이 비오듯 지내옵더니, 삼 년 후 계모를 얻음에 성품이 불측하여 구박이 자감하온지라 서른 간장 슬픈 마음을 이기지 못하오니, 낮이면 부친을 바라고 밤이면 망모를 생각하며, 형제 서로 손을 잡고 장장 하일과 긴긴추야를 장우장탄으로 보내옵더니, 궁흉거악한 계모의 독수를 벗어나지 못하옵고 오늘날 물에 빠져 죽사오니, 이 장화의 천만 애매함을 천지 일원성신을 질정하소서. 홍련의 잔잉한 인생을 어여삐 여기사 나 같은 인생을 본받게 마옵소서." 하고 장소를 돌아보아 가로되, "나는 이미 누명을 쓰고 죽거니와 저 외로운 홍련을 어여삐 여겨 잘 인도하여 부모에 득죄함이 없게하고 부모를 모셔 백세 무량함을 바라노라." 하며 좌수로 홍상을 잡고 우수로 월귀탄을 벗어들어 신발을 못가에 놓고, 발을 구르며 눈물을 비오듯 흘리며 오던 길을 향하여 실성 통곡하는 말이, "어여뿔사 홍련아, 적막한 깊은 규중에 너 훌로 남았으니, 잔잉한 네 인생이 누를 의지하여 살아간단 말인가. 너를 두고 죽는 나는 쓰라린 이 간장이 구비구비 다 녹는다." 말을 마치고 만경청파 나는 듯이 뛰어드니 가련하다. 문득 물결이 하늘에 닿으며 찬바람이 일고 일광이 무색하여 산중으로 대호 내달아 꾸짖어 가로되, "네 어이 무도하여 애매한 자식을 모해하여 죽이니, 어찌 천도 무심하시랴." 이에 달려들어 장쇠놈의 두 귀와 한 팔, 한 다리를 떼어먹고 간데 없거늘, 장쇠 기절하여 땅에 거꾸러지나 장화가 탔던 말이 크게 놀라 집으로 돌아오는 지라. 흉녀 장쇠를 보내고 밤이 깊도록 아니 오매, 가장 괴이하게 여기더니, 문득 장화가 탔던 말이 소리를 지르고 달아나오거늘, 흉녀 생각하기를 장화를 죽게 한 줄 알고 내달아본즉, 그 말이 온 몸에 땀을 흘리고 들어오되 사람은 없는지라. 흉녀 크게 놀라, 이에 노복을 불러 불을 밝히고, 말 오던 자취를 찾아가 보니, 한 곳에 장쇠가 거꾸러졌거늘, 놀라 자세히 보니 한 팔, 한 다리와 두 귀가 없고, 피를 흘리고 불성이사 되었음에 모두 놀라 어찌할 줄을 모르더니, 문득 향내 진동하여 냉풍이 소슬하매 괴이하게 여겨 살펴보니, 향내 못 가운데서 나는지라, 노복등이 장쇠를 구하여 오니, 그 어미 놀라 즉시 약을 먹이고 상한 곳을 동여 주니, 장쇠 비로소 정신을 차리는 지라. 흉녀 크게 기꺼하여 그 연고를 물으니, 장쇠 전후 사연을 다 말하거늘, 흉녀 더욱 원망하여 홍련을 마저 죽이려고 주야로 생각하더라. 장화 형제의 애연한 한이 구천에 사무쳐 매양 설원코자 하매, 철산 부사 아문에 들어가 지극원통한 원정을 아뢰려 하면 부사들이 놀라 기절하여 죽는지라. 이렇듯 이 철산부사로 오는 사람은 도임한 이튿날이면 죽으므로, 그 후로는 부사로 오는 사람이 없어 철산군은 자연 폐읍이 되었으며, 연년이 흉년이 들어 사람이 아사지경에 이르니, 백성들이 사망으로 헤어져 한 고을이 텅 비게 된지라, 이러한 사연으로 여러 번 징계를 울리니, 상이 크게 근감하사 조정에서 의논이 분분하더니, 하루는 정동호라 하는 사람이 부사로 가기를 자원하니, 이는 성품이 간직하고 체모 정중한 사람이라 상이 들으시고 인견하여 가로되, 철산읍에 이상한 변이 있어 폐읍이 되었다 하매 가장 염려하더니, 경이 이제 자원하니 감히 다행이고 아름다우나 또한 근심이 되며 십분 조심하여 인민을 잘 안돈하라. 하시고 철산부사를 제수하시니, 부사 사은하고 물러나와 즉시 발행하여 고을에 도임하고 이방을 불러 물어 가로되, 내 들으니, 네 고을에 관장이 도임한 후면 즉시 죽는다 하니, 과연 옳으냐.이방이 여쭈오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오륙 년 이래로 동네마다 범이면 비몽사몽간에 꿈을 깨닫지 못하옵시고 죽사오니, 그 연고를 아옵지 못하나이다. 하거늘 부사 듣기를 다하고 분부하여 가로되, 너희들은 밤에 불을 끄고 자지 말며, 고요히 동정을 살피라. 하니 이방이 청령하고 나아가거늘, 부사 객사에 등촉을 밝히고 주역을 읽더니, 밤이 깊은 후에 홀연히 찬바람이 일어나며 정신이 아득하여 아무런 줄 모르더니, 난데없는 한 미인이 녹의 홍상으로 완전히 들어와 절하거늘, 부사 정신을 가다듬어 물어 가로되, "너는 어떠한 여자인데 이 깊은 밤에 와 무슨 사정을 말하려 하는가?" 그 미인이 고개를 숙이고 몸을 일어 다시 절하며 가로되, "소녀는 이 고을에 사는 배좌수의 딸 홍련이옵니다. 소녀의 형 장화는 칠 세 이옵고, 소녀가 삼 세 되는 해에 어미를 여의옵고, 아비를 의지하여 세상을 보내옵더니, 아비 후처를 얻으니, 후처의 성품이 사나옵고 시기 지극하온 중 공교히 연하여 삼자를 낳으니, 아비 혹하여 계모의 참소를 신청하고 소녀의 형제를 박대 자심하오나, 소녀 형제는 그래도 어미라 계모 섬기기를 극진히 하오되, 박대와 시기는 날로 심하오니, 이는 다름 아니오라 본대 소녀의 어미 재물이 많사와 노비 수천 구요, 전답이 천여 석이니, 보화 거재 두량이라, 소녀 형제 출가하오면 재물을 다 가질까 하여 시기를 품고, 소녀 형제를 죽여 재물을 빼앗아 제 자식을 주고자 하와, 이 바르고 낙태한 형상을 만들어 형의 이불 밑에 넣고, 아비를 속여 죄를 이룬 후에 거짓 외삼촌집으로 보낸다하고, 불시에 말을 태워 그 아들 장쇠놈으로 하여금 데려다가 못 가운데 넣어 죽였삽기로 소녀 이 일을 아옵고, 지원 극통하와 스스로 생각하온즉 소녀 구차히 살았다가 또 흉계에 빠질까 두려워 마침내 형이 빠져 죽은 곳에 빠져 죽었사오니, 죽음은 설지 않사오나 이 불측한 누명을 설원할 길이 없삽기로 더욱 원통하와, 동네마다 사정을 아뢰고자 하온즉 모두 놀라 죽사오매, 뼈에 맺힌 원한을 이루지 못하옵더니, 이제 천행으로 밝으신 사도를 맞자와 감히 원통한 원정을 아뢰오." 배좌수 나라의 처분으로 흉녀를 능지하여 두 딸의 원혼을 위로하였으니 오히려 마음에 쾌함이 없고 오직 두 딸이 애매하게 죽음을 주야로 슬퍼하여 그 형용이 보이는 듯, 음성이 들리는 듯, 거의 미칠듯하여 다시 이 세상에서 부녀지의를 남은 한을 풀고자 매양 축원하는 중 더욱 집안에 조석공양할 사람조차 없어 마음둘 곳이 없으므로 부득이 혼처를 구할 새, 행속 윤광호의 딸로 장가드니 나이 십팔 세요, 용모 재질이 비상하고 성정 또한 운순하여 자못 숙녀의 풍도가 있는 지라 좌수 크게 기꺼워 금실이 자별하더니, 하루는 좌수 외당에 있어 두 딸의 생각이 간절하여 능히 잠을 이루지 못해 전전반측할 새, 홀연 장화 형제 단장을 황홀히 차리고 완연히 들어와 절하며 가로되, "소녀 팔자 기구하여 모친을 일찍 여의옵고, 전생 업원으로 모진 계모 만나 마침내 애매한 누명을 쓰고 부친 슬하를 이별하오매, 지원극통하옴을 이기지 못하여, 이 원정을 옥황상제께 아뢰었더니, 상제 통곡하여 가라사대, '너희 정상이 가긍하나 이 역시 너희 팔자라나를 원망하리오. 그러나 너의 아비와 세상 인연이 미진하였으니, 다시 세상에 나가 부녀지의를 맺어 서로 원한을 풀라.' 하시고 물러가라 하시니 그 의향을 아지 못하나이다." 하거늘, 좌수 붙잡고 반길 지음에 닭소리에 놀라 깨달으니, 무엇을 잃은 듯 여광하여 심신을 능히 진정치 못하니라. 후취 윤씨 또한 일몽을 얻으니, 선녀 구름으로 내려와 연꽃 두 송이를 주며 가로되, "이는 장화와 홍련이니, 그 애매하게 죽으매 옥제 불쌍히 여기사 부인께 점지하나니, 귀히 길러 영화를 보라." 하고, 간데 없거늘 윤씨 깨어 보니 꽃송이 손에 쥐어 있고, 향기 방안에 가득하거늘, 크게 괴이하게 여겨 좌수를 청하여 몽사를 전하며, "장화 홍련이 어찌 된 사람이니이까." 물으니 좌수 이 말을 듣고 꽃을 본즉, 꽃이 넘돌며 반기는 듯 하는지라 두 딸을 다시 만난 듯하여 눈물을 흘리고, 딸의 전후 사연을 이른 후에, "내 전일에 그러한 몽사가 있더니, 오늘 부인이 도 그런 몽사를 얻었으매 이는 반드시 두 딸이 부인께 태어날 징조인가 하나이다." 하며, 서로 기꺼하여 꽃을 옥병에 꽃아 장 속에 넣고 두고 시시로 상대하여 사랑하니, 슬픈 마음이 자연 사라지더라. 윤씨 그 달부터 태기 있어 십삭이 되어 가매 배부르기 유명하니, 상태가 분명한지라 달이 차매 몸이 피곤하여 참상에 의지하였더니, 이윽고 순산하여 쌍태에 두 딸을 낳으니, 좌수 밖에 있다가 급히 들어와 부인을 위로하여 산아를 본즉 용모와 기질이 옥으로 새긴 듯 꽃으로 모은 듯 짝이 없이 아름다와 그 연꽃과 같은지라 좌수 부부 기꺼하여 그 꽃을 돌아보니, 벌써 간데 없는지라 가장 기이하게 여겨 꽃이 반드시 화하여 여아가 되었도다 하여 이름을 다시 장화 홍련이라하고 장중보옥으로 기르더라. 세월 여류하여 사오 세에 이르매, 두 소저 골격이 비상하고 부모를 효성으로 받들더니, 점점 자라 십오 세에 이르매 덕이 구비하고 재질이 또한 출중하므로 좌수부부 사랑함이 비할 데 없어, 그와 같은 배필을 구하고자 매파를 널리 놓았으되, 마침내 합당한 곳이 없어 가장 근심하던 등, 이 때 평양에 이연호라 하는 사람이 있으되, 가산이 누거만이 있으나 다만 슬하에 일점 혈육이 없어 슬퍼하다가 늦게야 선령이 현몽을 얻고 쌍태에 아들 형제를 두었으니, 이름은 윤필 윤석이라. 이제 나이 십륙 세요 용모 화려하고 문필이 출중하여 도내의 딸 둔 사람들이 모두 탐하여 매파를 보내어 청혼하매, 그 부모도 또한 자부를 선택하는 데 심상치 않던 중, 배좌수의 딸 쌍동 형제가 비상히 특이함을 듣고 크게 기하여 혼인을 청하였더니, 양자가 서로 합의하여 즉시 허락하고 택일하니, 때는 구추월 망간이더라. 이때 천하 태평하고 나라에 경사 있어 과거를 보일 새, 윤필의 형제 방에 참석하여 장원급제를 한지라, 상이 그 인재를 기특히 여기사 즉시 한림 학사를 재수하시니, 한림 형제 사은하고 인하여 말미를 청하였더니 상이 허락하시매, 한림 형제 바로 떠나 집으로 내려오니, 이공이 잔치를 배설하고 친척과 고구들을 청하여 즐길 제, 본관 수령이 각각 풍악과 포진을 보내고, 감사와 서윤이 신래를 불리며 잔을 나눠 치하하니, 가문의 영화는 고금에 드물더라. 이러구러 혼인을 당하매, 한림 형제 위의를 갖추고 풍악을 우리며 혼가에 이르러 예를 마치고 신부를 맞아 돌아와 고구께 현신하니, 그 아름다운 태도는 가위 한 싸의 명주요, 두 낱의 박옥이라 부모의 기꺼움을 측량치 못하더니, 신부 형제 구고를 효성으로 받들고 군자를 승순하여 장화는 이남일녀를 낳으니, 장자는 문관으로 공경 재상이 되고, 차자는 문관으로 대장으로 대장이 되었으며, 홍련은 이남을 두어 장자는 벼슬이 정남에 이르고, 차자는 학행이 높아 산림에 숨어 풍월에 벗을 삼고 금서를 즐기더라. 이러하므로 배좌수는 구십이 되매, 나라에서 특별히 좌찬성을 제수하시매, 이것으로 여년을 마치고, 윤씨 또한 세상을 버리매 장화형제 슬퍼하는지라. 한림형제도 부모가 돌아가고, 형제 한 집에 동거하여 자손을 거느리고 지내더니, 장화 형제는 칠십 삼 세에 한가지로 죽고, 한림형제는 칠십 오세에 죽으매, 그 자손이 유자하여 생녀하여 복록을 누리며 자손이 창성하더라.
만복사저포기 - 김시습(1435~1493)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작품인 '금오신화'의 김시습은 강릉의 구족으로써, 세종17년(1435) 서울 반궁 북쪽에서 충순위 일성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생후 8개월만에 한자를 보고 그 뜻을 알앗다고 하며, 5세가 될대까지는 '소학', '대학', '중용', '논어'등 사서를 배웠고, 한시를 지어 신동의 칭호를 얻었다고 했으니, 그가 얼마나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였던가를 잘 알 수있다. 깁시습이 신동이란 소문을 들으신 세종대왕께서 지사사 박이창을 시켜 승정원에 김시습을 불러 들여 그 허실을 시험해 모라고 하였다고 하며, 친히 김시습을 불러 보시고 삼각 산시를 짓게 하시고, 칭찬 끝에 명주 50필을 하사하시면서 직접 가지고 나가라 하여 그 의량을 보고자 하셨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김시습이 '상유양양서'에다 언급해 놓았고, 그가 평생토록 세종대왕을 추모해마지 낳았다는 것을 볼 때 사실이었다고 보아야하겠다. 김시습은 13세 되는 해에 성균관에 입학하여 당대의 석학인 김반, 윤상 등에게 사사하다가 어머니의 상사를 당하여 본향인 강릉으로 내려가 삼년상을 마치고 17세 되는 해에 상경하여 경저를 지키고 있다가, 단종와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하여 베푼 증광시란 과거에 응시했으나, 문명을 천하에 덜쳤던 그 로서도 낙방했다고 하니, 과거운은 없었던거 같다. 그리하여 더 수학하기 위하여 삼각산 중흥사에 올라가 독서하고 있던중, 21세가 되는 해에 수양 대군이 단종왕을 폐위시키고 위를 찬탈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고는 대성 통곡하여, 읽고 있던 유서를 불사르고, 입고 있던 유복을 찢어버리고, 광인으로 자처하고 승복을 입고 방랑의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와같이 김시습의 일생이 방랑으로 끝나고,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승려로 처신한 동기는 어떠한 이유보다도 세조의 왕위 찬탈에 있었다고 하지 않을수없다. 20세부터 세속의 부귀와 영화를 포기하고 59세로 일생을 마칠대가지 삼천리 강산을 두루 다니면서 독서, 저술, 독경, 참선, 작시, 음주, 금기, 제매등으로 세월을 보냈다. 이상과 같은 생애를 보내다가 30년대에 경주에 있는 금오산에 들어가 은거 하면서 중국인 소설인 '전등신화'를 모방하여 '금오신화'를 썼으나 세상에 공포하지 않고, 석실에다 감추고 놓고서는 ,"후세에 반드시 설잠을 알아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는 유언을 했다고 한 것을 보면 대단한 의욕을 가지고 지엇음을 짐작할수 있다. 옛사람으로서 '금오신화'를 본사람이 김안로와 이황밖에 없었고, 임진란 이후에는 전혀 본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임진란 때 왜병이 가지고 가서 우리나라 효종째 일본에서 간행하였고, 1927년 이르러 육당 최남선이 '계명'지 제19호에다 일본판을 전재함으로써 비로소 우리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현존하는 '금오신화'는 5편으로 되어 있는 단편 소설집으로서 한문으로 씌어져 있다. 첫 번째에 나오는 '만복사저포기'를 비롯하여,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등이 그것이다. 만복사저포기에 대하여 이 작품의 지리적 배경을 전라도로 설정하였음은 우연이 아니다. 작가가 경주 금오산으로 들어가지 이전에, 이미 호남의 유람에서 남원을 찾아 광한루도 올랐고, 또 만복사도 찾아보았던 인사을 이 작품의 배경으로 했을 것이다. 주인공으로는 일찍이 부모를 잃고 늦게까지 장가를 들지 못하공있는 양생이란 노총각을 등장시켰다. 양씨 성은 남원의 대성이다. 이와같이 작자는 현실적인 배경과 인물을 설정하고, 플롯으로서 양생이 2년 전의 왜구에 죽은 최처자의 환신을 만나 사랑을 속삭이다는 인괴교환 설화를 결구해 놓았다. 양생이 만복사의 부처님 앞에가서 아름다운 짝을 점지해 달라고 발원하는 것은 불교적인 발상이다. 불보살에 대한 영원을 믿고 있는 작자로는 당연한 발원이라 하겠다. 그런데 양생이 저포놀이를 부처님과 하여 그 승부에 따라 가우를 얻고자 한 저포놀이는 작자가 좋아햇던 놀이의 하나이다. 여주인공 최씨가 난리를 만나 왜구에게 몸을 더럽히지 않기 위하여 자살했다고 하는 왜구는, 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조에까지 남쪽지방을 수 없이 약탈했던 일본의 해적들로서, 신라의 문무왕은 죽어도 동해 용이 되어 신라르 왜구로부터 보호하겠다고 하였을 정도로 우리나라를 괴롭혔다. 여주인공 최씨가 왜구를 만나 수절하려고 자살햇다고 한 것도, 플롯에다 현실성을 부여하려는 작가의 용의 주도한 구상이다. 이 작품의 결미는 최씨가 양생과 3일간의 사랑을 속상이고는, 미로소 자기 신분을 밝혀 2년전 왜구로 해서 수절하려고 자살했음을 고백하며, 이별연을 베풀어 주고는 사라졌다가 이튿날 보련사에서 양생을 다시 만나 부모들이 차려주는 침식을 같이하고는 저승으로 돌아갔다는 것으로 끝난다. 이와같은 결미는 다른 인괴교환 설화와도 같으나, 양생이 절에가서 명복을 비는 재를 올린 지 셋째 날 밤에 그 여인이 꿈에 나타나 "당신도 정성으로 타국에가서 남자로 태어나게 되었으니, 유명을 달리했으나 감사하지 않을수 없으며, 당신도 다시 정업을 닦아 윤회를 벗어나소서."하며 일러주는 말을 보면, 이작품은 불교의 윤회사상을 가지고 긑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불교적인 영험사상을 발단으로 하고, 또 불교적인 윤회사상으로 결미해놓은 불교적인 종교 소설의 주제를 띠고 있다. 이러한 주제의 설정은 작자가 지니고 있었던 불교 사상의 반영이라고 하겠다. ************************************************************************************* 전라도 남원부에 양시 성을 가진 서생이 살고 있었는데,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는 아직 장가를 들지 못하고 만복사 동쪽 방에서 홀로 살고 있엇다. 그 방 밖에는 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그때 바야흐로 봄을 맞이하여 꽃이 활짝 피어서 마치 백옥나무에 은덩어리가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서생은 언제나 달밤이면 그 나무 밑을 거닐면서 낭랑한 목소리로 시를 읊곤했다. 읊기를 마치니 별안간 공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대 좋은 배필을 얻고자 할진댄 그 무엇 근심할것이 있으리." 서생은 그소리를 듣고서 속으로 기뻐했다. 이튿날이 바로 3월 24일 이었다. 이 고을에는 이날이 되면 만복사에 가서 등불을 켜고 복을 비는 풍습이 있엇는데, 청춘남녀들이 많이 몰려가서 각기 소원을 비는것이었다. 해가 저물어 저녁 불공이 끝나자 사람들이 드문 틈을 타서 서생은 소매속에 저포를 품고 부처님을 찾아갔다. 그는 저포를 던지기 전에 소원을 말씀드렸다. "제가 오늘 부처님을 보시고 저포놀이를 할까 합니다. 만약 제가 지면 불공을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지시거든 아름다운 배필을 구하셔서 저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시오." 빌기를 마치고 나서 저포를 던지니 뜻대로 서생이 이겼다. 그는 곧 부처님 앞에 꿇어 앉아서 말씀을 드렸다. "인연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속이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그는 불좌 밑에 숨어서 약속한 배필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잠시후에 한 아리따운 아가씨가 나타나는데, 나이는 열 대여섯 가량이 되어 보였다. 머리를 두 가닥으로 갈라서 쪽지고 개끗한 차림을 했는데, 얼굴과 태도가 흡사 하늘나라의 선녀와 같았으니 바라볼수록 엄전했다. 그녀는 고운 손으로 등잔에 기름을 따라 불을 켜고, 향로에 향은 꽂은 후 세 번절하고는 꿇어앉아 한숨을 짓고 탄식하며 말했다. "인생인 박명한들 어찌 나 같을수 있을까?" 아가씨는 품 속에서 축원문을 꺼내더니 불탁위에 얹어 놓았다. 그글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적혀있엇다. "OO고을 OO마을에사는소녀 OO는 삼가 부처님께 사룁니다. 지난번 변방의 방비가 부너져 왜구가 침범해와, 싸움은 눈앞에서 치열했고 봉화는 한해도록 계속되었습니다. 왜적이 집을 불사르고 백성을 사로잡아 갔으므로 사람들이 동서로 달아나고 도망해 가니 친척과 노복들은 사방을 흩어졌습니다. 저는 가냘픈 몸으로 멀리는 피난가지 못해 깊숙한 골방으로 숨어들어 끝내 굳건히 정절을 지키고 벗어난 행실을 저지르지 않고서 난리의 화를 면했습니다. 때문에 부처님께서도 여자로서의 수절함을 그르치지 않았다고 하여 한적한 곳으로 옮겨 잠시 초야에서 살게 해주셨는데 그것도 어느덧3년이나 외었슴니다. 저는 달 밝은 가을밤과 꽃피는 봄철을 상심으로 헛되이 지내고 뜬구름과 흐르는 물을 더불어 쓸쓸히 날을 보냈습니다. 그윽한 골짜기에 외로이 살면서 한평생의 박명을 한탄했고 꽃다운 밤을 혼자 보내면서 제홀로 살아감을 슬퍼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가고 달이 바뀌니 이제 혼잭마저 사라져 없어졌고, 기나긴 여름날과 겨울반에는 간담이 찢어지고, 창자마저 끓어질 듯 합니다. 자비하신 부처님이시여, 제발 소녀를 불쌍히 여기시어 각별히 돌봐 주십시오, 사람의 한평생은 태어나기 전부터 마련되어 있으며 선악의 응보는 피할수 없사오므로, 타고난 생명에 인연이 있을 것이오나 일찍이 배필을 정해 주시어 즐거움을 얻게 해 주심을 간절히 빌어 마지 않습니다." 여인은 축원을 마치고 나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이때 서생은 불좌 밑에서 여인의 보습을 보고는 바음을 걷잡을수 없엇으므로 뛰쳐나가서 말을 건넸다. "조금전에 부처님께 글월을 올리셨지뇨. 무슨 일 때문이십니까?" 그는 여인이 올린 글월의 사연을 읽어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쳐 헐렀다. "아가씨는 어떤 분이십니까? 어째서 여기에 홀로 오셨습니까?" 여인은 대답했다. "저도 사람입니다. 무슨 의심나는 일이 있으십니까? 당신께서는 다만 아름다운 배필만 얻으시면 되지 않습니까? 꼭 서명을 물으셔야 합니까? 그렇게 당황해 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때 만복사는 이미 허물어져서 승려들은 한편 구석징 방에 살고 있엇으며, 법당앞에는 다만 행랑만이 쓸쓸히 남아 있었고 행랑이 끝난 곳에 좁다란 판자방 하나가 있었다. 서생이 슬그머니 여인을 유인해서 그것으로 들어가니 여인도 어려워하지 않고 따랐다. 그들은 서로 즐거움을 나누었는데 보통 사람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이윽고 밤은 깊어서 달이 동산에 떠올라 달 그림자가 창살에 비치었다. 문득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여인은 입을 열어 물었다. "누구냐? 시녀가 온 것이냐 아니냐?" "예, 접니다. 요즘 아가씨께서는 출타하시더라도 중문 밖을 더나가지 않으셨고 보행을 하시더라도 서너 걸음 이상 하시지 않으셨는데, 어제 저녁에는 우연히 나가시더니 어찌 이곳가지 오셔서 이런 일이 있게 하셨습니까?" 여인은 말했다. "오늘일은 아마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하느님이 도우시고 부처님이 돌보셔서 한 분의 고운 님을 만나 백년 해로를 하기로 했다. 부처님꼐 알리지 않은 것은 예절에 어긋난다 하겠으나 서로 즐거이 맞이하게 된 것은 또한 기이한 이연이라 하겠다. 너는 집에가서 앉을 자리와 주과물을 가져오너라." 시녀는 분부에 따라 돌아갔다. 미구에 뜰에 술자리가 베풀어졌는데, 밤은 이미 사경이 되려고 했다. 시녀는 안석과 술상을 품위있게 펼쳐놓는데, 기구들이 모두 말쑥하며 무늬라고는 찾아볼수 없었다. 술에서 나는 내가 강렬하게 풍겼다. 정녕 인간 세상의 것은 아니었다. 서생은 비록 의심이 나고 괴이하게 여겼으나, 여인의 말씨와 웃음 소리가 맑고 고우며 얼굴과 몸가짐이 얌전했으므로 틀림없이 귀한 집 처녀가 담을 넘어온 것이려니 생각하고는 더 의심하지 않았다. 여인은 술잔을 건네면서 시녀에게 노래를 불러 술을 권하게 하고는 서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는 옛 가곡을 그대로만 부릅니다. 제가 새로운 가사를 하나 지어서 술은 권해도 괜찮겠습니까?" 서생은 기뻐하면서 대답했다. "좋습니다." 이에 여인은 만강홍 곡조로 맞추어 가사를 지어 시녀에세 부르게 했다. 노래가 끝나자 여인은 수심에 잠겨 안색이 달라지면서 말했다. "일찍이 봉래산에서는 약속을 어겼습니다마는, 오늘 이곳에서 옛 낭군을 다시 뵙게 되었으니 어찌 하늘이 준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낭군께서 저를 멀리하여 저버리지 않으신다면 끝내 낭군의 시중을 들까 하오며, 만일 소원을 들어 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영원히 멀리 떠나겠습니다." 서생은 이말을 들으니 한편 반가왔으나 또한 놀라면서 말했다. "어찌 당신의 분부에 따르지 않겠습니까?" 그대도 여인의 태도는 심상하지 않았으므로 서생은 그녀의 행동르 자새히 살펴보았다. 이때 달은 이미 서쪽 봉우리에 걸려 있었고 먼 마을에는 닭 울음 소리가 들여 왔으며 절 종소리가 처음으로 울려 오자 날이 바야흐로 새려 하였다. 여인은 시녀에게 말했다. "너는 자리를 거두어서 집으로 돌아가거라." 시녀는 대답하자 곧 없어졌는데 간 곳을 알수 없었다. 여인은 서생에 말했다. "인연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함께 저희 집으로 가셨으면 합니다." 서생이 여인의 손을 잡고 마을을 지나가니 개들이 울타리 밑에서 짖고 있고 사람들은 길을 나다녔다. 그러나 길가는 사람들은 서생이 여인과 함께 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다만 이렇게 물었다. "서생은 어디서 이렇게 일찍 돌아오시오." 서생은 대답했다. "마침 만복사에게 술에 취해 누워있다가 친구가 사는 마을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날이 새자 여인은 서생을 인도하여 깊은 숲을 해치고 가는데 이슬이 흠뻑 내려서 길을 찾을수 없었다. 서생은 여인에게 물었다. "어찌 거처하는 곳이 이렇습니까?" 여인은 대답하였다. "홀로 사는 여인의 거처는 본디 이렇습니다." 여인은 다시 시경의 옛 시 한수를 외면서 농담을 걸었다. 두사람은 읊고 한바탕 웃고 나서 마침내 함께 개녕동으로 갔다. 다북쑥이 들을 덮고 가시나무가 공중에 늘어선 속에 집한채가 있는데 자그마한 것이 매우 화려했다. 여인의 인도에 따라 들어가 이부자리와 휘장이 잘정돈되어 있는데 벌여놓은 품이 어젯밤과 같았다. 서생은 그곳에서 3일을 머물렀다. 즐거움은 평상시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시녀는 아름다우면서도 교활한 태도가 없었고, 좌우에 진열된 그릇은 깨끗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았다. 서생에겐 그것들이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니리란 생각도 들었으나 여인의 은근히 정에 끌려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흘후 여인은 서생에게 말했다. "이곳의 사흘은 인간의 세상의 3년과 같습니다. 도련님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셔서 옛날의 살림살이를 돌보셔야 합니다." 드디어 이별의 잔치는 시작되었다. 서생은 탄식하면서 말했다. "어쩌면 이별이 이렇게 빠릅니까?" 여인은 대답했다. "작별하더라도 다시 만나 평생의 소원을 다 풀수 있을 것입니다. 도련님이 누추한 이곳까지 오시게 된 것은 반드시 묵은 인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이웃 친척들을 한번 만나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서생은 말했다. "예, 좋겠습니다." 여인은 곧 시녀를 시키어 이웃 친척들에게 알렸다. 이날 모인 사람은 정, 오씨, 김씨, 류씨 등 여인인데, 모두 번영한 귀족집 따님으로서, 이 여인과 한 마을에 사는 친척들로서 성숙한 처녀들이었다. 성품이 온순하고 인자하며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고 또한 자질이 총명하며 문장에 능했다. 그들은 칠언 절구 네 수씩을 지어 서생을 전별해 주었다. 장씨는 태도와 인품이 갖추어진 여인인데, 곱게 쪽찐 머리채가 귀밑을 살짝 가리고 있었다. 그녀는 숨을 내쉬어 즉흥시를 읊었다. 오씨는 쪽찐 머리에 요염하고도 엄전한 태도로 붓에 먹을 찍더니 앞에 읊은 시가 너무 음탕하다고 책망하면서 말했다. "오늘의 모임에는 여러 말 할 것없이 다만 이 자리의 광경만 읊어야 할텐데, 어째서 마음의 회포를 털어놓아 우리말의 절조를 잃어야 할 것이며, 우리들의 소식을 인간 세상에 전해야 하겠습니까?" 하고, 그녀는 낭량한 복소리로 시를 지어 읊었다. 류씨는 엷게 한 화장과 하얀옷이 그다지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법도가 있어 침묵을 지키고 말을 하지 않더니 방그레 웃으면서 시를 종이에 적었다. 여인은 류씨가 읊은 마지막 싯구의 사연에 감동되어 앞으로 나오면서 말했다. "나도 또한 자획은 대강 분별할줄 아는데 나만 홀로 소감이 없겠습니까?" 그녀는 곧 시를 읊었다. 서생도 또한 글을 잘하는 사람이어서 그들의 시법이 깨끗하고 운치가 높으며 음운이 맑음을 보고 감탄하여 칭찬함을 마지 않았다. 그는 즉석에서 재빨리 시 한 장을 적어 회답했다. 잔치가 끝나자 다들 작별하게 되었다. 여인은 주발 하나를 내어 서생에게 주면서 말했다. "내일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모련사에서 음식을 대접받게 되어 있습니다. 낭군께서 저를 버리지 않으신다면 보련사로 가는 길에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저와 함께 절로 가셔서 저희 부모님께 인사를 드려 주십시오." 서생은 대답했다. "좋습니다." 이튿날 서생은 여인이 시킨대로 주발을 쥐고 서서 보련사로 가는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과연 어떤 귀족 집안에서 딸의 대상을 치르기 위해 수레와 말을 길에 늘어 세우고서 보련사를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대 길가에 한 서생이 주발을 들고 서있는 것을 보자, 종자가 주인게 말했다. "우리집 아가씨 장례 때 무덤속에 묻었던 물건을 벌써 어떤 사람이 훔쳐서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은 말했다. "뭣?" "저서생이 가지고 있는 주발이 그것입니다." 주인은 마침내 말을 서생에게로 다가 세워 물어 보았다. 서생은 그 전날 여인과 약속한 일을 그대로 일러주었다. 여인의 부모는 놀라고 의아해 생각하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내 슬하에 딸 하나가 있었네. 그런데 그 달이 왜구들의 난리때 싸움판에서 죽었어. 미처 정식으로 장례도 치르지 못해서 미루어 오다가 오늘에 이르게 되었네. 오늘이 벌써 대상날이라 절에서 재를 베풀어 명복이나 빌어 줄까 해서 가는 길일세. 자네가 약속을 지키려거든 내 딸을 기다라고 있다가 같이오게. 그리고 조금도 놀라지 말게." 말을 마치자 귀인은 먼저 보련사로 떠나갔다. 서생이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약속한 시각이 되자 과연 한 여인이 시비를 데리고 갸우뚱하면서 오는데 바로 그 여인이엇다. 그들은 서로 기뻐하면서 손을 잡고 절간으로 들어갔다. 여인은 절 문에 들어서자 부처님게 예배를 드리더니 휜 휘장안으로 들어가는데 친척들과 승려들은 모두 그녀를 보지 못했다. 다만 서생의 눈에 보일 뿐이었다. 여인이 서생에게 말했다. "진지나 드십시오." 서생은 여인이 한 말을 그녀의 부모님께 아뢰었다. 부모는 그말을 시험해 보기 위해 밥을 같이 먹게 했더니 다만 수저 놀리는 소리만이 들린뿐이었으나, 인간이 벅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여인의 부모는 이에 경탄을 마지 않더니 서생에게 권하여 휘장 옆에서 함께 자게 했다. 그들의 얘기 소리가 밤중에 분명히 들려왔으나 사람들이 가만히 엿들으려 하면 갑자기 중지되곤 했다. 여인은 말했다. "제 행동이 법도를 넘은 것은 저도 알고있습니다. 저도 어릴 때 시경와 서경을 읽었으므로 예의에 대해서는 대강 알고 있습니다. 시경의 건상장, 상서장에서 이른내용이 다 부끄러운 것임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하오나 다북쑥 우거진 속에 오랫동안 묻혀 있어 들판에 버림받은 몸이 되고 보니 사랑의 정서가 한번 일어나자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번에 절로 가서 복을 빌고 부처님앞에서 향불을 피우면서 한평생의 박명을 스스로 탄식했더니 뜻밖에도 3세의 인연을 만나게 되었으므로 검소하고 부지런한 아낙으로 도련님을 받들어 평생을 모시고자 했습니다만 애닯게도 업보는 비낄수 없어 저승으로 떠나야 하겠습니다. 즐거움을 채 다하지도 못했는데 슬픈 이별이 닥쳐왔습니다. 저는 이제 떠나야 합니다. 밤이 지나고 날이 새면, 구름과 비는 양대에서 떠나야 하고 저희들의 복을 빌러 온 이들과도 다 이곳에서 헤어져야 합니다. 이제 한번 가면 훗날을 기약할 수가 없습니다. 도련님 정말 슬프고 화급하여 무어라 말씀드릴수 없습니다." 이윽고 영혼은 떠났다. 여인은 전송을 받을 때는 울음소리가 끊어지지 않더니 문밖에 이르러서는 다만 은근히 소리만 들여왔다. 남은 소리는 점점사라지면서 목메어 우는 소리와 분별할 수가 없게 되자 이것이 사실임을 알고 다시는 의심하지 않았으며, 서생도 또한 그 여인이 귀신임을 알고는 더욱 슬픔을 느끼어 여인의 부모와 함게 머리를 맞대고 울었다. 여인의 부모는 서생에게 말햇다. "은주발은 그대의 소용에 맡기겠네. 그리고 내 여식에게는 토지 몇백 이랑에 노비 몇 사람이 있으니 자네는 그것을 신표로 가지고 내 딸을 잊지 말아주게." 이튿날 서생은 고기와 술을 가지고 개녕동 옛 자취를 찾아갔다. 과연 시체를 임시로 안치한 무덤이 있었다. 서생은 제물을 차려 놓고 슬피 울면서 그 앞에서 지전을 불사르고는 정식 장레를 지내었다. 그리고 제문을 지어 조상했다. "오오 님이시여! 당신은 어릴때에 천품이 온순했고 커서는 얼굴이 깨끗했소. 모습은 서시와 같았고 시부는 숙진을 능가하였소. 스스로 규문밖에 나가지 않았고 언제나 가정의 교훈을 고이 받아왔었소. 난리를 당하고도 오히려 정조를 지켰으나 끝내 왜구의 손에 목숨을 잃었소. 황량한 다북쑥에 몸을 의탁한채 홀로 살면서 피는꽃 밝은 달에 마음만 슬퍼했소. 봄날에 애끓는 두견새의 울음을 슬퍼했고 서리 내리는 가을엔 비단 부채의 무용함을 탄식했었소. 지난 하룻밤 당신과 만나 정을 바꾸었더니 유명은 비록 서로 달랐으나 물 만난 고기처럼 즐거워하였소. 장차 백년을 같이 해로하려 했는데 어찌 하룻저녁에 이별이 있을줄 알았겠소. 님이시여! 당신은 응당 달나라에서 난새를 타는 선녀가 되고 무산에 비를 내리는 낭자가 되리니, 당은 어둠침침해서 돌아볼수가 없을 것이요, 하늘은 아득해서 바라보기가 어렵겠소. 나는 집에 들어가도 그저 멍멍히 지냈고,밖에 나가도 아득하여 갈데 없는 몸이 되었소. 영혼 모신 휘장을 대하면 얼굴을 가리어 울게 되고, 좋은술을 따를 때엔 마음이 더욱 슬퍼지오. 요조한 그 모습은 눈에 삼삼하고 명랑한 음성은 들리는 듯하오. 슬프외다. 총명한 당신의 성품, 정밀한 당신의 기상. 몸은 미록 흩어졌을지라도 영혼만은 남아 있을 것이니 응당 내려와서 뜰에 오르시고 어쩌면 나타나서 곁에 있겠는지요. 비록 저승과 이승은 다를지라도 당신은 이 글월에 느낌이 있을 것이외다." 장례를 지낸후 서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토지와 가옥을 다 팔아 절간으로 가서 연달아 사흘 저녁을 재를 올렸더니, 여인이 공중에 나타나 서생을 부르며 말했다. "저는 낭군의 은덕을 입어 이미 다른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비록 저승과 이승이 막혀있지만 낭군의 은덕에 깊이 감사의 뜻을 올립니다. 낭군게서도 이제 다시 착한 업을 닦으시어 조와 함게 속세의 누를 벗어나게 하십시오. 서생은 그후 다시는 장가가지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면서 살아갔다 하는데, 그가 어디서 세상을 마쳤는지는 아는 이가 없다.
임진록 (3/3) 유성룡이 할 수 없이 빈손으로 돌아와 임금께 아뢰니 모두들 크게 놀랐다. 임금께서는 크게 실망하시어 최일령을 불러 물으셨다. "명나라 황제가 구원병을 줄 수 없다고 하니 이 일을 어찌하리오. 이제 우리 조선은 망하였도다." 최일령이 엎드려 아뢰었다. "저하는 너무 염려하지 마옵소서. 구원병은 반드시 올 것이옵니다." "오, 경은 그렇게 생각하오?" "네, 전하. 그들이 스스로 구원병을 보낼 것이옵니다." 임금께서는 최일령이 천문 지리에 밝아 능히 앞날을 미리 내다보는 걸 알고 있는 터라 오직 구원병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때 왜장 평수길은 삼만 군졸을 거느리고 경상우도로 짓쳐 들어가 진주를 함락시켰다. 그러나 진주 기생 모란이라는 여인이 나라에 충성할 것을 맹세하고 한 꾀를 생각해 내었다. (내 목숨을 걸고 왜적이 괴수를 잡으리라.) 이에 모란은 촉석루에다 술상을 마련하고 평수길이 오기를 기다렸다. 과연 평수길이 부하들을 이끌고 앞을 지나가는데 거문고를 타는 소리가 은은하고 붉은색 치마 물빛을 비쳤는데 향기가 십 리 안팎에 진동하는 것이었다. "선녀가 인간 세계에 하강했단 말이냐? 웬 미인인고?" 평수길이 정신이 황홀하여 멍하니 바라보자 모란이 교소를 지으며 좌석을 같이하기를 청했다. "장군께서 오시기를 소녀는 눈이 빠지게 기다렸나이다. 오셔서 술 한잔 하소서." 평수길은 입이 헤 벌어져 즉시 부하 장수들과 함께 술을 즐기니 얼마 가지 않아 크게 취했다. 이에 모란이 지키는 군사가 없을 때를 취하여 일어나 춤추고 노래하니, 그 목소리와 뛰어난 자태는 보는 사람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좋도다!" 평수길이 흥을 이기지 못하고 모란을 껴안고 함께 춤을 즐겼다. 이때를 기다려 모란은 평수길을 꽉안고 촉석루 난간에서 뚝 떨어져 깊은 강물 속으로 떨어지니 어이하리오. 모란의 열 손가락에는 굵은 반지를 빠짐없이 끼어 있어 평수길이 벗어나려고 용을 써도 모란이 꽉 낀 팔을 풀지 못하고 원통한 물귀신이 되고 말았다. "앗, 대장님이!" 보고 있던 왜군들이 크게 놀라 즉시 평수길의 시체를 찾아 건져내으니 이미 싸늘히 식은 시체였다. 그리고 모란이가 죽으면서도 어찌나 세게 껴안았던지 아무리 풀려고 해도 손가락이 펴지지 않았다. 왜군들은 하는 수 없이 평수길과 모란의 시체를 함께 가지고 총대장 청정의 진으로 후퇴해 버렸다. 한편. 중국에서 구원병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시는 임금께 하루는 진주목사가 보내는 장계가 올라왔다. 임금께 장계를 펼쳐 보시니. (이미 은퇴한 재상 이순신이 왜적을 맞이하여 싸웠던 바 거북선을 이용하여 가는 곳마다 적의 배를 깨트렸나이다. 그러다가 한산도에서 적의 수병을 크게 깨뜨리고 자신은 적탄에 맞아 죽었나이다. 그리고 진주에 모란이라 하는 기생이 있사온데 오직 나라를 위하는 충성스런 마음으로 왜장 평수길을 데리고 죽었나이다. 세상에 이런 충절이 없을 듯 하여 감히 엎드려 아뢰나이다. 전하께서는 통촉하시옵소서.) 하였거늘, 임금께서 다 읽으시고 용안에 눈물을 지으시며 분부하셨다. "세상에 이런 충성과 열녀가 어디있단 말인가? 이제 시절이 태평하거든 이순신을 충무공에 봉하여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도록 하라. 그리고 모란은 촉석루 앞에 비를 세워 그 충렬을 기리도록 하라." 이때 명나라 황제는 조선에서 군사를 청하로 온 사신을 그저 보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아 늘 근심이었다. 그러다가 하루는 밤에 한 장수가 홀연히 나타나 엎드려 절하며 아뢰는 것이었다. "형님은 어찌하여 조선에 구원병을 보내지 아니하나이까?" 황제는 듣고 크게 놀라 물었다. "그대는 귀신인가 사람인가? 어찌하여 짐더러 형님이라고 부르는가?" 장수가 처연한 어조로 대답했다. "소자는 삼국시대의 관운장이옵나이다. 형님은 유헌덕이 도로 이 세상에 태어나 황제가 되옵고 막내 동생 장비 또한 다시 태어나 조선 나라 왕이 되었나이다. 소장은 미부인(유헌덕의 아내)을 모시고 조조에게 가 있다가 형님을 만나러 떠날 때 죄없는 사람을 죽이었으므로 미처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못하였나이다. 해서 조선을 지키었더니 지금 왜적이 조선을 침략하여 땅을 거의 다 빼앗고 종묘 사직까지 유린하는데 잘못하면 조선의 사직이 오늘 내일로 끊어질까 염려되나이다. 그런데도 형님께서는 구원병을 아니보내시니 어인 일이오니까?" 황제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크게 울적하여 눈물을 흘리며 그 장수를 자세히 살피더니 신장이 구척이요, 손에 청룡 은월도를 비껴들고 봉의 눈을 부릅뜨고 세 가닥으로 늘어진 수염을 꼿꼿이 세우고 있으니 분명히 관운장이 분명했다. 황제가 크게 당황하여 용상에서 일어나 절하며 물었다. "장군은 누구를 보내라 하시나이까?" 관운장이 다시 엎드려 절하며 아뢰었다. "구원병은 팔십만 명을 보내시되 대장은 이여송을 보내시면 왜적을 물리치고 조선을 구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이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을 덧붙였다. "형님께서 이 아우의 말을 듣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이옵니다." 그런 말과 함께 문득 간곳이 없거늘 황제가 크게 놀라 깨어보니 한바탕의 꿈이었다. 이에 이튿날 조회 때 신하들이 모두 모이자 하문하셨다. "짐이 간밤에 한 꿈을 꾸었더니 조선나라 경계선을 지키는 관운장이 와서 구원병을 보내라 하니 경들의 뜻은 어떠한가?" 좌승상이 엎드려 아뢰었다. "관운장은 본시 충절로 유명한 장수이니 지시대로 하옵소서." 황제가 옳게 여겨 즉시 팔십만 명의 대병을 일으키게 하고 익주자사로 있는 이여송을 불러다가 명하였다. "짐이 경의 용맹이 재주를 잘 알고 있도다. 이제 조선에 나가 왜적을 물리치고 공을 세워이름을 빛내고 돌아오면 이름이 청사에 올라 나라의 일등 공신이 되리라." 이여송이 엎드려 절하며 아뢰었다. "소신이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동방예의지국으로 나아가 왜적을 토벌하고 오겠나이다." 황제가 크게 기꺼워하시며 즉시 대원수의 칭호를 내리고 대장기를 주었다. 이윽고 이여송이 황제에게 작별을 고하고 군사를 이끌고 나아갈 때 만조 백관이 사십리밖까지 나와 전송하며 이구 동성으로 말했다. "장군이 만 리 밖의 동국에 나아가 크게 공을 세우고 돌아오면 그 공을 잊지 않으리라." 이여송이 가슴을 펴고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조그마한 왜놈을 어찌 근심하리오." 이여송이 팔십만 명의 대병을 지휘하여 행진할 때 장수들에게 일일이 소임을 맡기는데 아우인 이여백으로 선봉장을 삼고, 이여월로 그후 군장을 삼았다. 그리곤 전군에 엄히 명령을 내렸다. "만약 군령을 태만하게 이행하는 자가 있으면 군법으로 엄히 다스릴것이로다." 이여송이 천리준총마에 높이 올라 앉아 가는데 머리에는 용의 무늬가 새겨진 투구를 썼고, 몸에는 황색 전포를 걸치고, 오른손에 팔각도을 들고 왼손에는 대장기를 높이 들었는데 황금 글씨도 '대마사(지금의 국방부 장관)대원수 명나라 이여송'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팔십만 명의 대병이 조선으로 향하니 기치 창검은 햇빛을 가렸고 북소리, 호각소리는 천지를 뒤엎는 듯했다. 얼마후에 굽이쳐 콸콸흐르는 압록강을 건너니 미리 소식을 듣고 조선에게 임금이 제신을 거느리고 몸소 백리 밖에까지 나와 맞이했다. 인사가 끝난후 자리에 앉아 임금께서 원수에게 말씀하셨다. "원수께서 황제 폐하의 명을 받자와 먼길에 수고를 하시니 과인의 마음이 매우 불안하오이다." 이여송이 두 번 절하고 아뢰었다. "대왕께서 뜻밖의 왜란을 당하셨으니 오죽이나 근심하시리까? 황제폐하의 명을 받들고 소장이 왔으나 별로 도움이 안될 것 같지가 않으니 그냥 돌아가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임금꼐서 뜻밖의 이 말을 들으시고 크게 근심이 되어 최일령을 불러 물으셨다. "이원수가 그냥 돌아가겠다고 하니 이 무슨 변고인고?" 최일령이 엎드려 아뢰었다. "전하게서는 근심하지 마옵소서. 이원수 막사 뒤에 칠성단을 세우고 축문을 읽으시며 통곡하시오면 원수가 듣고 마음을 돌릴 것이옵니다." 임금께서 들으시고 즉시 영을 내리셨다. "즉시 칠성단을 세우라" 그리고 칠성단에 올라 슬피 통곡하시니 이여송이 듣고 물었다. "저 우는 소리는 어니서 들리는 것인고?" 수하 장수가 살피고 나와 보고했다. "조선왕이 원수께서 돌아가신다는 말을 듣고 우시나이다." 그러자 이여송이 문득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기이하도다. 내가 조선왕의 관상을 보니, 왕후의 상이 아니어서 실망했더니 이제 울음 소리를 들으매 용의 울음 소리가 분명하도다. 오백년 사직이 분명하도다." 이에 회군하기를 단념하고 장수를 불러 소임을 맡기는데 조선장수가 구름 모이듯 했다. 평안도 평강 땅 태생인 김응서, 전라도 전주 출신 강홍엽, 황해도에서 온 김승태, 함경도 태생인 유홍주, 강원도의 백철남, 경기도에서 온 문둔황 등 모두가 범 같은 장수들이었다. 각기 갑옷 투구를 갖추고 이여송에게 인사를 올리니 원수가 보고 크게 칭찬했다. "조선 같은 조그만 나라에 이렇듯 영웅 호걸이 구름같이 많으니 기이한 일이로다." 이어 그들의 재주를 시험해 보려고 높은 깃대 끝에 황금 만 냥을 달고 말했다. "그대를 중에 저기 달린 황금을 떼어 오는 자가 있으면 선봉을 삼으리라." 그러자 한 장수가 즉시 몸을 날려 철추로 치니 황금이 여지없이 떨어졌다. 박수 갈채 속에 다시 한 장수가 내달아 남은 황금을 가지고 비호같이 동라왔다. 이여송이 보고 물었다. "저들이 누구인고?" 수하 장수가 공손이 아뢰었다. "먼저 장수는 김응서라 하옵고, 두 번재 장수는 강홍엽이라 하오이다." 이에 이여송은 김응서로 선봉을 삼고 강홍엽으로 후선봉을 삼았다. 그리고 유홍수로 좌익장을 삼고 백철남으로 우익장, 김일관으로 군량장, 그리고 남은 장수를 모두 후군장으로 삼고 군사를 몰아 강원도에 있는 왜군 총대장 청정의 진으로 향했다. 임금께서는 유성룡을 불러 특별히 명하였다. "경은 우리 조선 군사와 명나라 군사의 군량을 급히 수송하라." 이때 이여송은 조선 장수들의 재주를 다시 시험해 볼생각으로 엉뚱한 명령을 내렸다. "좋은 술 천 독만 내일 아침에 대령하라." "알겠나이다." 김응서가 즉시 대답하고 나와 군졸들에게 명해 땅을 깊이파고 술 천독을 묻게 했다. 그리곤 그 위에다가 백탄 숯을 피워 밤새 돌고 술을 익히게 하니 이튿날 아침 어김없이 술 천독을 대령했다. 이여송이 보고 크게 칭찬했다. "과연 조선에도 재주가 뛰어난 인재가 있도다." 그리곤 또 영을 내렸다. "내일 아침에 용탕을 대령하라." 김응서가 대답하고 나와 하늘을 우럴러 슬피우니 하늘에서 갑자기 용이 한 마리 떨어져 시냇가에 죽었거늘 즉시 용탕을 지어 올렸다. 이여송이 칭찬하고 다시 영을 내렸다. "내일 아침까지 소상강에서 나는 젓갈을 올리렸다." 이에는 김응서라한들 어쩔 도리가 없어 깊이 근심하고 있는 터에 임금께서 사람을 보내 알려왔다. "전에 어떤 신하가 이 다음에 써먹을 일이 있다 혀며 소상강에서 나는 젓갈을 가져와 보관해 둔 것이 이 있느니라. 그러니 급히 가져가 원수께 올려라." 응서가 크게 기뻐하여 즉시 젓갈을 갖다 바치니 이여송이 진심으로 칭찬했다. "그대는 과연 천재로다. 그대같이 재주 있는 장수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여송은 아직도 장난이 하고 싶은지 또 분부를 내렸다. "내일 아침에 백마 백필을 대령하라." 응서가 기거이 대답하고 나와서 군졸들에게 명령하였다. "흰가루를 칠하여 백마 백필을 대령하라." 이여송이 듣고 크게 웃으며 칭찬했다. "임기응변이 저렇듯 빠르니 누가 당하리오. 내가 졌도다." 이에 청정은 강원도 원주성에 있다가 군사가 와서 보고하는 소리를 듣고 크게 놀랐다.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군대를 이끌고 오나이다." 청정은 급히 각도에 흩어진 장졸을 모두 부르니 장수가 팔백여명이오, 군사가 이십여명만명이었다. 이여송이 원주에 도착하여 적진을 살펴보니 제법 진식이 갖추어져 있었다. 원수가 북을 울려 싸움을 돋우니 적진에서 한 장수가 내달으며 크게 소리쳤다. "면장 이여송은 들으라. 우리 대장께서 조선을 거의 다 얻었거을 너는 무슨재주가 있다고 다 망한 조선을 구하려는냐? 빨리 나와 내칼을 받으라." 그러자 선봉장 김응서가 말을 몰고 달려 나오며 호통쳤다. "우리 진중에 영웅 호걸이 구름같이 모였거늘 너는 어지하여 죽기를 재촉하느냐?" 이에 양편 장수가 내달아 사워 삼십여 함에 이르러 김응서의 칼이 번뜩이더니 왜장 마원태의 머리가 땅에 굴렀다. 김응서가 적장의 머리를 칼 끝에 꿰고 돌아오려고 하자 왜진에서 다섯 장수가 뛰어나오며 외쳤다. "조선장수 김응서는 도망하지 말라." 김응서가 크게 분노하여 말머리를 돌리고 왜장 다섯을 상대로 싸우는데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청정이 이를 보자 크게 분노하여 벽력같이 호통치며 말을 내달아 명천검으로 김응서의 머리를 노리고 치니 응서가 가까스로 피했다. 그러나 그이 말이 적의 칼에 캊아 땅에 엎어졌다. 이에 김응서의 목숨이 풍전 등화처럼 위험했다. 이여송이 보고 크게 놀라 급히 새 장수를 보내어 김응서를 구해 오게 하였다. 김응서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본진으로 동라와 사례했다. "원수의 구함이 없었다면 소장은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 이때 양편 장수가 내달아 한데 어울려 싸우니 명나라 장수는 아홉이오, 왜장은 다섯이었다. 양쪽 진에게 내지를는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고 칼빛은 하늘의 햇빛을 가리는 듯한데 마치 산중 맹호가 먹이를 다투는 것 같고 용이 여의주를 갖고 싸우는 듯했다. 십여 합에 이르렀을 때 왜장의 칼이 번뜩하더니 맹장 이여우러의 머리가 떨어졌다. 거의 같은 시각에 강홍엽의 칼이 왜장 한일천의 머리를 잘랐다. 또한 김일관이 한소리 크게 호통치면서 왲아 한업의 머리를 떨어뜨렸다. 청정은 다섯장수가 허무하게 죽음을 당하자 머리 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말을 몰아 나는 듯이 달려나오며 우레 같이 호통쳤다. "내 너희들을 모조리 죽이리라." 이여송이 바라보니 청정은 신장이 구 척이오, 일백근짜리 황금투구를 쓰고 몸에는 구리갑옷을 입고, 오른손에는 백근 무게의 철수를 들고 왼손에는 천하명검 며천검을 들었는데 불과 삼합도 못되어 명장 태경을 한칼에 베었다. 이여송이 부하의 죽음을 보자 즉시 말을 몰아 나오며 호통쳤다. "직장, 청정은 어찌하여 나의 아장을 죽이는가? 너듣거라. 너희 왜놈이 그 옛날 진시황을 속이고 섬으로 들어가 나오지 아니하고 자칭 왕이라 칭하고 미친개가 짖듯이 감히 조선국 같은 예의지국을 침범하니 어지 하늘의 벌이 없겠는가? 어서 썩 나와 나의 칼을 받아라." 천정이 듣고 크게 노하여 호통쳤다. "내가 조선을 거의 다 얻었거늘 네가 왜 나서서 가로막느냐?" 호통과 함께 명천검을 휘둘러 이여송과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양쪽의 총대장이 이렇게 접전을 벌이니 북소리와 호각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여 하늘이 무너지고 당이 꺼지는 듯하는데 십여합이 지나도록 좀체로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청정은 기운이 달려 말머리를 돌려 본진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어딜 도망치느냐?" 이를 본 이여송과 명장 일곱이 우르르 뒤좇으며 호통쳤다. 청정이 죽을 둥 살둥 도망치는 데 문득 앞에서 한 대장이 나타나 크게 호령했다. "네가 감히 헛된 욕망을 품었으니 어찌 하늘인들 무심하겠느냐? 너는 도망치지 말고 내 칼을 받아라!" 청정이 눈을 들어 바라보니 바로 전에 본적이 있는 관운장이 아닌가. 청정이 크게 놀라 옆으로 도망치려고 하니 명장 일곱이 달려들어 전후 좌우에에 협공했다. 이렇게 되니 청정이 제아무리 용뱅한들 그물에 든 고기요, 함정에 빠진 호랑이와 마찬가지 였다. "목을 바쳐라!" 이여송이 우레 같이 호통치며 달려들어 칼을 번개같이 내리쳤다. 이에 청정의 목이 칼빛을 쫓아 떨어졌다. 김응서가 즉시 달려들어 청정의 목을 칼 끝에 꿰어 들고 이여송에게 치하했다. "원수의 용맹은 천추에 승전고를 높이 울리며 축하연을 크게 베풀었다. 이때 전라로 쳐들어갔던 왜장 동철, 충청도로 갔던 마웅태, 함경도로 갔던 봉철등은 청정과 합세하고자 급히 오다가 총대장이 죽었다고 소리를 득고 크게 졸라 급히 달려와 부르짖었다. "명장 이여송과 조선 장수 김응서, 감홍엽은 어찌하여 우리 대장을 죽였는가. 우리가 네놈을 죽여 대장의 원수를 갚으리라. 어서 나와 내 칼을 받아라." 이여송이 듣고 크게 분노하여 칼을 들고 곧 달려들려고 했다. 그러자 김응서와 강홍엽이 만류했다. "원수게서는 참으소서. 닭을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리가? 소장들이 나가 왜장을 베어 원수의 노함을 풀리라." 이어 두장수가 일시에 내달으며 꾸짖었다. "너희들은 조선에 김응서와 강홍엽이 있다는 말으 들었는가? 어서 나와 칼을 받아라!" 양편 장수들이 한데 어울려 싸우기를 이십여 합 긑에 김응서의 칼이 허공에서 원을 그리며 왜장 마웅태를 치니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문경이 이를 보자 크게 노하여 부르짖었다. "내 맹세코 너를 죽여 우리 장수의 원수를 갚으리라." 응서와 홍엽은 십여 합을 겨루다가 거짓 패한척 본진으로 도망쳐 들어가니 문경이 기세 등등하게 뒤를 추격했다. "도망가지 말고 내 칼을 받아라!" 김응서와 강홍엽이 나르듯이 본진으로 돌아 오자 포소리가 한번 크게 울리더니 진세가 갑자기 변하여 오행진이 되니 나는 제비라도 벗어날 길이 없었다. 왜장 문경이 크게 당황하여 이리저리 살길을 찾는데 김응서가 벽력같이 달려들어 허리를 감아쥐고 땅에 재던졌다. 문경을 사로 잡아 장대 밑에 굻어 앉히고 김응서가 크게 호령했다. "네가 감히 예의지국을 침범하고도 살기를 바라느냐?" "저... 제발 목숨남은 살려 주십시오. 저는 다만 청정의 명에의래 조선으로 나왔을 뿐입니다." 문경이 애걸하자 이여송이 매섭게 꾸짖었다. "네 놈이 천륜을 모르고 함부로 조선 같은 예의지국을 법하였도다. 조선에 영웅 호걸이 구름같이 많아 너의 대장 청정과, 소서, 평수길도 모두 칼날 아래 목없는 귀신이 되었도다. 내 너를 한칼에 메어 방자하게 군 죄를 물으려고 했으나 이미 항복하였기로 이대로 놓아 보낼것이니 빨리 돌아가 다시는 외람된 생각을 벅지 말라." 이에 문경은 머리를 감싸쥐고 왜국을 향해 도망쳤다. 이여송이 그제서야 군대를 거두니 남은 것은 산같이 쌓인 왜인이 시체뿐이었다. 이때 임금께서는 싸움의 결과를 애타게 기다리시다가 승전 소리를 접하시고 크게 기뻐하셨다. 그러나 승전의 기쁜도 잠시였고, 또하나의 걱정이 생겼다. "군량이 거의 바닥 났으니 이일을 어찌하면 좋을고." 임금께서 탄식하자 최일령이 엎드려 아뢰었다. "신이 듣자하니 평안도 식주다에 사는 김수업이라는 부자가 있는데 곡식이 기십석이 있다 하나이다. 그에게 명하여 군량을 대게 하소서." 김수업이 왕명을 받고 급히 달려나왔다. "왜적의 침략에 전하게옵서는 얼마나 근심하셧나이까?" 임금께서는 같이 탄식하시고 용건을 말씀하셧다. "지금 군량이 바닥나 야단이니 우선 그대의 곡식을 취하여 쓰고 이 다음에 시절이 태평하거든 갚고자 하노라. 그대 생각은 어떠한고?" 김수업이 엎드려 아뢰었다. "소신이 곡식은 바로 전하의 고식이오니 좋을대로 쓰시옵소서." 임금게서 크게 기뻐하시어 김수업으로 하여금 군량장을 삼아 곡식을 나르게 했다. 이때 이여송이 왜적을 쳐부수고 돌아오니 임금께서는 백리 밖에까지 나아가 맞이해 노고를 치하했다. "원수가 아니었다면 우리 조선국은 왜적의 송에 떨어질 뻔 했다. 원수의 이 은혜는 자손 만대에 걸쳐 잊지 않으리." "모든 것이 전하의 복이옵니다." 이에 이여송은 철비를 세워 승전을 천주에 길이 남도록 하고 비단 백필을 들여 승전기를 만들어 높게 세웠다. 그런 다음 크게 잔치를 베풀어 군사들에게 마음껏 즐기도록 했다. 이윽고 잔치가 긑난후 이여송은 임금께 하직 인사를 올리고 중국으로 떠나갔다. 그러나 이여송은 가는 도중에 이름난 산이나 강물의 혈맥을 일일이 자르게 했다. "혈맥을 자르지 앟으면 조선에 영웅 호걸이 자꾸만 태어날 것이로다. 이것을 방비하지 않으면 우리 중국도 장차 위험해질 것이다." 왜적이 물러간 다음 임금께서는 서울로 환궁하신 후 제신들을 모아 놓고 의논하였다. "왜장을 모두 죽였지만 왜장의 항서를 받지 안흥면 후환이 될것이니 군사를 일으켜 왜국으로 쳐들어가 항서를 받는 것이 어떠한고?" 이에 제신이 모두 찬성하여 왜국을 정복하기로 했다 임금게서는 김응서와 강홍엽을 불러 영을 내리시니 두 장수가 서로 선종이 되겠다고 다투었다. 해서 제비를 뽑게 하니 강홍엽이 선봉이 되고 김응서는 후군을 맡았다. 두 장수가 군사 이십만명을 이끌고 왜국으로 떠나니 때는 무술년 시월달이었다. 군대가 경상도 동래에 도착하여 배를 탈 때 문득 뒤에서 김응서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장군님 잠간 군사를 머물게 하고 내말을 들으소서." 김응서가 놀라서 돌아보니 머리를 산발한 사람이 와서 절을 하거는 급히 물엇다. "그대는 주구인데 진중에 들어왔는가?" 그러자 그 사람이 땅에 엎드려 아뢰었다. "저는 조선에 사는 귀신으로 왜덕강이라 하옵니다." "할말이 무엇인고?" "장군님이 군사를 급히 행군하옵기로 만류하러 왔나이다. 군사를 사흘만 머물게 하면 반드시 공을 이룰 것이나 급히 행군하면 크게 패할것이옵니다." 하고는 문득 간곳이 없엇다. 이에 김응서가 급히 강홍엽을 만나 사흘동안 군사를 머물러 있게 하자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한낱 귀신의 말을 믿고 군대를 쉬게 한다이 될말이오?" 하며 강홍엽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김응서는 몇번이고 간청하다가 강홍엽이 끝끝내 고집을 부리자 탄식하며 말했다. "장군이 이대로 갔다가 패하더라도 나를 원망치는 말라." 이에 조선 군사는 배를 타고 여러날 만에 왜국에 당도하여 동설령으로 향했다. 한편 왜국에서는 조선을 치러 나간 군사가 대패하여 돌아옴을 분히 여겨 군병을 밤낮으로 조련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조선군사가 왜국에 상륙했다는 말을 듣자 동설령 좌우에다 군사를 매복시켜 기다렸다. 김응서는 천기와 진리를 살피고 강홍엽에게 간곡히 말했다. "동설령은 지세가 험하니 들어가면 반드시 위험할것이오." 그러나 강홍엽은 듣지 않고 군사를 곧장 동설령 안으로 진격시켰다. 그러자 좌우 골자기에서 대포소리가 크게 울리며 미리 매복해 있던 왜병들이 몰려나와 들이치니 조선 군사는 미처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이 이십만 명의 대병이 삽시간에 남김없이 죽어 버렸다. 시체가 산같이 쌓이고 피가 강물의 되어 흐르니 김응서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만리 타국에 들어와 대병을 모두 북였으니 무슨 낯으로 고국에 돌아가 전하를 죄오리오. 여기서 죽는 것이 차라리 마음이 편하리라." 이어 강홍엽을 돌아보고 크게 꾸짖었다. "이것은 모두 장군 탓이로다!" 강홍엽이 부그러워 고개를 숙이고 아무 대구를 하지 못했다. 이때 왜장 홍대성등이 임진년의 원수를 갚으려고 칼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김응서가 그렇지 않아도 분노를 누를 길 없어 벽력같이 호통치며 달려 들어 불과 십합도 안되어 두명의 적장 목을 베었다. 이에 왜왕은 크게 놀라 싸우지 말고 서로 화친하자고 사신을 보냈다. 군사없는 김응서와 강홍엽은 하는 수 없이 왜왕 앞으로 나아가니 왜왕이 크게 기뻐하며 좋은 말로 위로했다. 두 장수는 군사를 잃고 고국으로 돌아갈수도 없고 해서 왜국에서 세월을 보내니 어언 삼년이 지났다. 그러자 왜장은 금은 보화와 미녀로서 두 장수를 유혹하는데 김응서는 눈하나 까딱하니 않았지만 강홍엽은 그만 왜왕의 괴임에 넘어가 부귀와 영화를 탐냈다. 김응서는 이에 분함을 참을 길이 없어 하루는 강홍엽에게 가서 꾸짖듯이 말했다. "옛글에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고 햇으나, 장군의 뜻은 이미 바뀐듯하오. 나는 이제 왜왕의 목을 베어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가 전하를 베옵고 죄를 청하려 하니 그리아시오." 그러나 강홍엽은 고국으로 돌아갈 뜻이 없어 도리어 김응서가 한 말을 왜왕에게 고해 바쳤다. 왜왕이 크게 성이 나 수만 명의 군사를 풀어 김응서를 잡으려고 했다. 김응서는 일이 틀려졌음을 깨닫자 하늘을 우러러 깊이 탄식했다. "내, 왜왕의 머리를 베어 분함을 덜을까 했으나 강홍엽이 배반할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슬프도다, 만리 타국에 와서 죽으니 하늘이 나를 돕지 아니하는구나. 일이 틀린 이산 소인배 홍엽을 죽여 전하께 죄를 조금이라도 덜 짓게 하리라." 김응서는 즉시 장검을 빼어들고 나는 듯이 달려가 강홍엽을 내려치니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그리곤 자기도 그자리에서 스스로 목을 베어 죽으니 하늘도 슬퍼하는지 갑자기 천지가 컴컴해지며 뇌성벽력이 울리었다. 이때 임금께서는 두 장수와 이십만 명의 대병을 왜국에 보내놓고 소식이 없어 무척 근심하였다. 삼년째 되는 어느날 임금께서 용상에 기대어 잠깐 졸고 있는데 갑자기 김응서가 생시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아뢰었다. "소신이 힘을 다해 왜왕의 머리를 베어 전하의 은혜를 만분지 날이라도 갚을까 했으나 불길히도 강홍엽이 제멋대로 하는 바람에 이십만 명의 대병을 모두 죽이업고 구차한 삶을 살았나이다. 그러다가 몰래 왜왕의 머리를 베어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더니 강홍엽이 끝내 배반하는 바람에 소신은 홍엽을 베고 자결했나이다. 신은 비록 황천에 가 있으나 귀신이라도 전하를 도와 이나라를 편안케 하오리다." 임금게서 감작 놀라 깨어보니 한바탕의 꿈이었다. 임금이 크게 상심하고 있르때 왜국에서 보내온 김응서의 목이 대궐에 닿았다. 이에 임금게서는 애통해 하시며 후에 장사지내어 충신의 넋을 위로했다. 세월은 흘러 경자년 삼월이 되었다. 이때 묘향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서산대사가 문득 천기를 살피더니 안색이 변해 산을 내려와 곧바로 임금께 나아가 뵙기를 청했다. 임금께서는 서산대사의 높은 덕을 익히 듣고 있던 터라 황망히 맞이해 하문하셨다. "대사 게서 어인 연고로 갑자기 짐을 보고자 하오?" 서산대사가 함장하여 아뢰었다. "빈승이 천지를 보오니 왜적이 임진년의 원한을 갚으려고 다시 조선을 침략하였기에 이를 여쭈려고 왔나이다. 지금 김응서 같은 장수가 죽고 없나니 누가 왜적을 당해내겠나이까?" 임금게서 듣고 크게 놀라시었다. "그렇다면 어지해야 좋을고?" "빈승에게 왜적이 다시 나오지 못하게 할 묘책이 있나이다." "어디 말씀해 보오." "빈승의 제자 사명당이 육도 삼략에 통달하옵고 퍌만 대장경과 둔갑술에 능통하오니 왜국에 사신으로 보내옵소서." 임금게서는 크게 기뻐하시어, 즉시 사명당을 불러 간곡히 분부 하였다. "서산대사의 말을 들으니 그대가 높은 재주를 지녔다고 하니 왜국으로 들어가 항복을 받아 후환을 없게 하라." "소승이 어찌 수고를 아끼겠나이까?" 사명당은 공손히 절하고 봉명사전의 직함을 받고 즉시 왜국으로 출발했다. 여러날 만에 왜국에 당도하자 사명당은 왜왕에게 글월을 보냈다. "조선국 생불인 사명당이 당도했으니 왜왕은 공손히 접대하라." 왜왕이 글월을 보고 크게 놀라 대책을 강구했다. "조선에서 생불이 왔다 하니 어찌 하겠는가?" 한 신하가 앞으로 나와 여쭈었다. "소신에게 묘책이 하나 있나이다. 삼백 육십간짜리 병풍을 만들어 일만 일천 귀의 글을 지어 병풍에 써서 길에 펼쳐 놓으소서. 그런 다음 사신을 향해 천리마를 급히 몰아 사처에 오거든 병풍에 씌인 글월을 외워 보라고 하소서. 만약 못외우면 죽이사이다." 왜왕이 듣고 그럴듯하게 여겨 그대로 시행하게 했다. 왜국성들은 조선서 생불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백리에 걸쳐 새까맣게 몰려 나와 구경하는데 사명당이 말을 풍우같이 몰아 지나갔다. 이어 왜왕 앞에 나아가 서로 인사를 나누어 왜왕이 물었다. "사신이 생불이라 청하니 들어오는 길에 병풍의 글을 보았습니까?" "보았노라." 왜왕이 청하자 사명당이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찌 그만한 글을 외우지 못하리오." 하고는, 삼경에 시작하여 이튿날 오시가지 외우니 모두 일만 구백구십 귀를 물 흐르듯이 역어 내려갔다. 그러자 왜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지하여 열귀는 외우지 않는지요?" 사명당이 눈을 부릅뜨고 호령했다. "없는 글도 외우라 하느뇨?" 왜왕이 안색이 변해 신하를 불러 일렀다. "가서 보고 오너라." 신하가 갔다 오더니 아뢰었다. "과연 병풍 두간이 닫혀있어 글 열귀가 보이지 않나이다." 왜왕이 그제서야 크게 놀라 머리를 조아려 사과햇다. 첫 번재 계교가 실패로 돌아가자 왜왕은 다시 신하를 불러놓고 의논했다. 그러자 한 신하가 앞으로 나와 계책을 아뢰었다. "일백 오십자 되는 구리방석을 만들어 물에 띄우라 하소서. 제아무리 생불이라 하더라도 이번만은 죽을 것이옵니다." 왜왕이 크게 기뻐하여 즉시 구리 방석을 만들어 놓고 사명당에게 타보라고 했다. 이에 사명당이 구리방석에 올아앉아 팔만대장경을 외우니 동풍이 불면 서쪽으로 가고, 서풍이 불면 도쪽으로 가니 완연히 돛이달린 배였다. 왜왕이 보고 크게 놀라 탄식했다. "조선 사신이 저토록 재주가 뛰어나니 어떻게 하리오?" 그러자 또한신하가 앞으로 나와 아뢰엇다. "내일은 잔치를 열어 채단 방석을 내놓고 앉으라 하여 그대로 앉으며 필시 요물이요, 백목을 취하면 부처일 것이니 요물이오면 죽이소서." 왜왕이 그대로 시핸하자 사명당은 백팔염주를 손에 들고 백목에 앉으니 왜왕이 의아하여 물었다. "대사는 어찌하여 비단을 취하지 아니하고 백목에 앉으시는지요." 사명당이 엄숙하게 대꾸했다. "부처가 백목을 취하지 어찌 비단을 취하리오, 백목은 목화에서 핀 꽃이요, 비단은 벌레에서 나온것이니 취하지 않노라." 잔치가 끝난후 왜왕은 다시 신하들을 모아놓고 한숨만 내쉬었다. "조선 사신은 생불이 분명하니 이 일을 어찌하리오." 그러자 한 신하가 앞으로 나와 여쭈었다. "내일은 구리로 된 집을 지어 조선 사신을 안에 넣고 밖에서 문을 잠그고 사면에서 숯불을 피우면 제아무리 생불이라 할지라도 구리집안에서 죽을 것이옵니다." 왜왕은 이번만은 자신있다 생각되어 구리집 속에다 사명당의 자리를 만들어 놓고 앉으라 한후 문을 잠궜다. 그리곤 사면에서 숯을 쌓고 태우니 불꽃이 일어나며 구리가 녹아 흘렀다. 그러나 사명당은 왜왕의 간계를 미리 알아 서면 벽에 서리 상자를 써붙이고 방석 밑에는 얼음 빙자를 써놓은 다음 팔만대장경을 외우니방안이 흡사 얼음창고 같았다. 이것도 모르고 왜왕은 크게 기뻐하며 소리쳤다. "저렇게 뜨거우니 생불이라도 살아남지 못하리라." 하고는, 신하들을 시켜 문을 열어 보니 사명당이 꼿꼿이 앉아 있느 눈썹에는 서리가 기고 수염에는 고드름이 달려있지 않은가. 사명이크게 꾸짖었다. "왜국은 남방이라 덮다 하더니 왜이렇게 추우냐?" 왜왕이 듣고 크게 놀랐으나 다시 꾀를 내어 무쇠로 만든 말을 시뻘겋게 달군후 타라 했다. 이에 사명당이 조선을 바라보며 팔만대장경을 외우니 난데없이 구름이 모여들어 소나기가 끊어지지 않고 쏫아져 삽시간에 성 중에 물이 가득차 백성들이 무수히 빠져 죽었다. 사명당이 왜왕을 보고 호령했다. "간사한 왜왕은 듣거라. 네가 깨닫지 못하고 생불인 나를 죽이려고 하다니 괘씸하도다. 목숨을 보존하려면 급히 항서를 써서 올리되 그렇지 않으면 너의 왜국은 동해 바다가 되리라." 왜왕이 그제서야 까무러칠 정도로 놀라 두 손을 비비며 애걸했다. "비나이다. 생불이신 조선사신 사명당께 비나이다. 소왕이 무지 하여 부처님을 희롱했으니 그죄 죽어 마땅하오나 한번만 용서하소서." "어서 항서를 써서 올려라." 사명당이 거듭 호령하니 왜왕은 즉시 항서를 써서 바쳤다. 이에 사명당은 왜왕을 준절히 꾸짖은 다음 비를 그치게 했다. 임무를 무사히 마친 사명당이 마침내 고국으로 떠나게 되니 왜왕이 부두까지 나와 전송하였다. 사명당은 왜왕이 다시는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하게 못박았다. "왜왕은 들으라. 너는 욕심을 내어 청정과 소서를 보내어 우리 동방예의지국을 침범하였으니 그 죄를 따지면 왜국을 없애 바다로 만들어도 부족하리라. 하지만 인명이 불쌍하여 이번 한번만은 용서해 주는 것이니 다시는 헛된 욕심을 먹지 말라. 다시한번 야욕을 품었다가는 용서하지 않겠도다. 그리고 차후에는 매년마다 인피 삼백장씩 바치되 십 오륙 세된 처녀의 가죽으로 바치고, 불알 서 말씨을 바치되 십오륙 세된 남자 아이것으로 하라. 만일 하나라도 모자르면 내가 또 건너와 너의 왜국을 불바다로 만들것이니 그리알라." "분부대로 꼭 거행하겠나이다." 왜왕은 벌벌 떨며 명령대로 하겠다고 하늘에 대고 맹세했다. 이에 사명당이 왜왕의 항서를 갖고 고국으로 돌아오니 그 위풍과 이름이 멀리 중국까지 떨쳐졌다. 임금게서 사명당을 맞이하여 극구 칭창하였다. "대사가 왜국에 들어가 항복을 받았으나 그 공로는 천주에 빛날 것이로다." 하시고는, 서산대사와 사명당에게 벼슬을 내리려고 했으나 두 분대사가 한사코 사양하고는 산 속으로 홀연히 떠나갔다. 임금께서는 브게 섭섭하시어 백관을 데리고 멀리까지 전송했다. 그후 왜왕은 인피 삼백장과 불알 서 말식을 매년 바치고, 동래당레 왜관을 짓고 구리 삼백 육십근, 주석 삼만 육천근, 쇠통 삼만 육천근, 시우쇠 삼만 육천근 으로 매년 조공(작은나라가 큰나라에 바치는 물건)을 바치고 다시는 외람된 생각을 먹지 못했다. 이에 조선 임급께서는 왜왕에게 금자광록대부의 벼슬을 내려 위로했다.
임진록 (2/3) 청정은 운천동으로 좌익장을 삼고 그 밖의 장수들에게도 각기 소임을 맡긴 후에 대포를 한 방 크게 쏘게 했다. 그러자 왜군이 분부히 흩어져 한 개의 진을 치니 팔만금사진이었다. 정출남이 이를 보자 한바탕 크게 웃었다. "하하하... 왜놈들도 제법 진법을 펼칠 줄 아누나." 이어 깃발을 흔들어 오행진을 치고 중군장 백여철로 하여금 진세를 지키게 했다. 정출남은 진세가 갖추어지자 말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 크게 외쳤다. "적장은 들으라. 네 아무리 도리를 모른다 한들 하늘의 의로움을 모르고 분수에 맞지 않게 동방예의지국을 침범하였으니 그 죄를 논하면 백번 죽어도 죄를 씻지 못할 것이다. 불행한 백성들만 죽이지 말고 어서 나와 내 칼을 받아라. 우리 전하께서 나로 하여금 너의 왜적을 모조리 죽이라 명하옵기에 어명을 이행하려고 왔으니 어서 나와 내 칼을 받아라." 그러자 적진에 한 장수가 말을 타고 내달으며 마주 호통쳤다. "조선 장수 정출남은 들으라. 강보에 싸인 아이가 어른을 능멸하고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격이로구나. 나는 왜국의 선봉장 청룡이로다. 보잘 것 없는 내가 당돌하게 나서서 우리 대군을 희롱하니 네 목을 베어 분함을 풀린다." "이런 발칙한 놈!" 정출남은 크게 성이 나 말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이에 청룡도 달려들어 맞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정출남의 장창이 적의 목을 노리고 찔러가고, 청룡왕과 범이 정출남의 머리를 노리고 번뜩이는데 과연 용과 범이 싸우는 듯 무시무시했다. 양편의 군사들은 북을 두드리고 함성을 질러 자기 편 장수를 응원하는데 그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두 장수는 이십 합을 겨루어도 승부를 재지 못했다. 무예 실력이 엇비슷한지라 두 마리의 범이 노루고기를 놓고 다투는 것같고, 청룡과 왕용이 여의주를 서로 가지려고 다투는 듯했다. 그러나 삼십 합이 막 넘는 순간, "받아랏!" 정출남이 소리를 크게 외치며 오른손의 장창으로 적의 허리를 찌르고, 왼손으로 장검을 신속하게 뽑아 머리를 후려쳤다. 그러자 청룡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피를 뽑으며 그대로 말 아래로 떨어졌다. 정출남은 청룡의 머리를 칼 끝에 꿰어 들고 크게 외쳤다. "청정도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아라.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청정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죽은 청룡은 바로 그의 동생이었기 때문이다. 동생이 허무하게 죽어버리자 청룡은 두 눈을 부릅뜨고 호통소리와 함께 말을 몰아 달려나왔다. "네 이놈, 꼼짝하지 말라!" 정출남이 눈을 들어보니, 왜장 청정은 신장이 구 척이요, 몸에 푸른 갑옷을 입고, 왼손에 백여 근이 나가는 무거운 철주를 들었다. 또한 오른손에는 날이 시퍼런 장검을 들고 붉은 털이 온몸을 감싼 말을 타고 살같이 달려오는 데 보기에도 무시무시했다. 정출남은 청정의 모습을 한번 보자 정신이 아찔하여 자기도 모르게 말머리를 돌리어 본진으로 도망쳤다. 그러자 청정이 벽력같이 호통치며 뒤를 쫓았다. "정출남은 도망치지 말고 내칼을 받아라. 네가 내 아우를 죽이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왜장 청정이 탄 말은 그 옛날 삼국시대의 관운장이 탔던 적토마와 같이 천하에 보기드문 명마였다. 해서 정출남은 미처 본진에 닿기도 전에 바싹 뒤따라 추격해온 청정이 휘두르는 칼날에 대항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목없는 귀신이 되어버렸다. 한칼에 조선 장수의 목을 날린 청정은 손을 들어 일제 공격의 신호를 내렸다. 순간, 왜적들은 짐승같이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그러니 대장이 죽어 기가 팍 죽은 조선 군사들이 어찌 대항하겠는가. 삽시간에 삼만 대병은 왜적이 휘두르는 칼날 앞에 낙엽처럼 떨어지니 시체가 산같이 쌓이고 흐르는 피가 강을 이룰 정도였다. 특히 지옥의 악귀같이 날뛰는 청정의 칼에 맞아 죽은 조선 군사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청정이 크게 승리하여 승전고를 높이 올리며 본진으로 돌아오니 수하 장수들이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장군의 용맹은 그 옛날 초패왕도 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장군은 사람이 아니오라 하늘에서 내려온 신장이 분명합니다." 청정이 듣고 크게 웃으며 스스로 뽐내었다. "사내 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나서 이만한 용맹이 없으면 어찌 만리 타국에 와서 나라를 빼앗으려 마음먹겠는가? 내 기필코 조선을 정복하여 왕위에 오를 것이니 그대들은 힘써 싸우라." 제장들은 청정의 용맹에 새삼스럽게 감복하여 충성을 다시금 맹세했다. "소장들은 장군과 생사를 같이 하겠나이다." 청정이 즉시 군사들을 독촉하여 서울로 향하니 그 형세를 당할 군사는 아무도 없었다. 이때 임금께서 정출남을 전장에 보내시고 십여 일 동안 소식을 몰라 크게 근심하였다. 그러던 차에 양주목사가 보낸 장계가 이르렀거늘 급히 펼쳐 보시었다. '포도대장 정출남은 충주에서 외적과 만나 싸운 끝에 왜장 청룡을 한칼에 베었나이다. 그러나 정출남 역시 왜군 총대장 청정의 칼에 죽었고, 거느린 십만 대병도 모조리 몰살당했나이다. 지금 왜적은 이긴 기세를 틈타 서울로 쳐들어 올라가오니 엎드려 비옵건데 전하께서는 급히 왜적을 막으소서.' 임금께서 장계를 보시고 크게 놀라시어 신하들을 보고 깊이 탄식하였다. "왜적의 형세가 이토록 위급하니 무슨 수로 종묘 사직을 보존하리오." 신하들도 믿고 믿었던 정출남 역시 허무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한편 놀라고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임금과 신하들이 이렇게 정신이 없을 때 대궐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들어와 급히 아뢰었다. "왜적이 벌써 한강을 넘었나이다." "무엇이!" 임금께서는 자신도 모르게 용안이 변하시었다. 그러나 탄식만 하고 있을 수도 없고 해서 어영대장 최달령과 금위대장 백수문을 불러 영을 내리시었다. "그대들은 성 중의 백성들이 놀라지 않게 단속하고 동서남북 사대문을 굳게 지키도록 하라." 그러나 군사가 얼마 없고 장수 또한 믿을 자가 없으니 어떻게 서울을 지킬 수 있단 말인가. 신하들이 엎드려 저마다 아뢰었다. "전화께옵서는 어서 피난하옵소서." "백성들을 두고 어찌 떠날 수 있단 말이오?" "전하, 지금 왜적이 세력이 강세하니 잠시 몸을 피했다가 후일을 기약함이 좋을 듯하옵니다." 신하들이 극력으로 주장하는 바람에 임금께서도 하는 수 없이 피난길을 떠나기로 정하였다. 하지만 남대문으로 나와 보니 갈 곳이 막막했다. 임금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탄식하자 한 신하가 나와 엎드려 아뢰었다. "평안도는 아직 왜적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오니 전하께옵서는 바라옵건대 그리로 가시옵소서." "그렇게 하라." 이에 뭇신하들은 임금을 모시고 평안도로 떠났다. 한편, 왜군 청대장 청정은 조선 임금이 피난간 줄은 모르고 군사들을 이끌고 와서 서울을 철통같이 포위했다. "조선 왕은 무엇하는가? 어서 나와 항복하라." 그 소리가 마치 벼락이 떨어지는 듯하여 성벽이 다 들썩였다. 그러니 성 중에 남아 있는 불쌍한 백성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이젠 다 죽었구나!" "잔인 무도한 왜적이 들어왔으니 어찌 살기를 바라겠는가." 백성들은 서로 붙들고 통곡을 하니 흡사 물이 끓는 듯했다. "서울을 짓밟고 조선왕을 사로잡아라!" 청정이 군사들을 독촉하여 서울을 들이치려고 할 때 문득 남대문에서 오색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며 한 장수가 무수한 군사들을 이끌고 왜군 앞을 딱 가로막으며 우레 같은 음성으로 꾸짖는 것이 아닌가. "조선 나라 종묘 사직이 오백 연도 넉넉하거늘 너, 청정은 하늘의 운수를 모르고 불쌍한 백성만 죽여 천하를 소란스럽게 하느뇨? 어서 썩 물러가라. 나는 촉한의 관운장이니라." 청정이 크게 놀라 눈을 들어 바라보니 한 대장이 적토마를 타고 세 가락의 수염을 가슴까지 내리우고 봉의 눈을 부릅뜨고 달려오는데 손에는 청룡과 월도가 햇빛에 번쩍이는 것이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서늘했다. "틀림없는 관운장이구나!" 청정은 여지껏 오만하던 기세가 자기도 모르게 수그러들고 오금이 저려 말머리를 돌리고 그대로 도망쳐 버렸다. 이에 서울에 남은 백성들은 왜적의 손에 의해 하나도 해를 입지 않으니 모두가 관운장의 덕택이었다. 이때 평안도 평강땅에 한 이인이 있었으니 이름을 김덕령이라 했다. 나이는 불과 열 다섯 살이나 힘은 능히 천 근의 바위를 들고 앉아서 한 주발의 밥을 먹는 천하 장사였다. 또한 일찍이 둔갑술을 배웠던 바 그 재주가 삼국시대의 제갈량을 능가할 정도였다. 그러나 시절이 태평하여 재주를 감추고 집에서 농사에만 전념했다. 그러던 중 늙으신 부친이 세상을 떠나 모친과 함께 정성껏 삼년상을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천만 뜻밖에도 왜적이 강토를 침략하여 함부로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노략질한다는 말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모친앞에 나아가 여쭈었다. "소자가 듣자오니 왜적이 나라를 침범했다 하나이다." "그 소문은 이 어미도 이미 듣고 있다." "바라옵건대, 어머니께서는 소자의 소망을 허락하옵소서. 부친상을 당한 때이지만 상복을 벗어 불사르고 출전하여 왜적을 무찔러 나라의 근심을 덜게 허락해 주옵소서. 왜적을 쳐없애 시절이 다시 태평해지면 소자의 이름이 청사에 올라 부모님께 영화를 드리옵고 또한 벼슬길에도 오를 듯하오니 부디 소자의 희망을 들어주소서." 그러자 모친이 크게 놀라며 매섭게 꾸짖었다. "우리집의 사내란 너 하나뿐이다. 조상의 무덤에 향을 피워 받들어야 마땅하거늘 어찌 이런 말을 하느냐? 그 옛날 명나라 호왕이 둔갑술에 정통하여 소대성(군담소설의 주인공)을 유인해 장운동에다 불을 질렀으나 소대성을 잡지 못하고 오히려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그리고 기운이 태산이라도 뽑을 듯한 초패왕도 오강(초패왕 항우가 유방에게 쫓겨 자살한 곳)을 못건너서 죽었다. 그런데 네가 무슨 재주로 수십만 왜적을 물리칠 수 있겠느냐? 속절없이 전장터의 백골이 될 것이니 다시는 그런 말 꺼내지 말고 농사일에나 힘을 쓰도록 하라." 덕령이 모친의 엄한 말씀을 거역하지 못하고 물러나 탄식만 했다. 그러나 왜적이 이미 가까이 이르렀다는 말을 듣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해서 한밤중에 모친 모르게 상복을 벗어 상문에 걸고 불효를 사죄했다. "어머님, 소자는 어머님의 영을 어기고 왜적을 막으러 가겠나이다. 부디 이 불효 자식을 용서하십시오." 절하고 나서 즉시 둔갑술을 써서 왜진 속으로 들어갔다. 청정이 수하 장수들과 평안도를 칠 의논을 하다가 문득 앞에 나타난 덕령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청정은 급히 수문장을 불러 호령했다. "우리 진문이 얼마나 허술하길래 조선 사람을 함부로 들어오게 하는가?" 수문장은 벌벌 떨며 아뢰었다. "소.... 소장은 저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몰랐습니다." 청정이 크게 분노하여 군사들에게 호령했다. "활과 총으로 쏘아 잡으라!" 명령을 받은 군사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 활과 총을 비오듯이 쏘아댔다. 그러나 김덕령의 몸은 홀연히 사라져 헛되이 허공에 대고 쏘아대는 판이었다. 총과 화살이 그친 후 김덕령은 다시 모습을 드러내 청정을 향해 크게 꾸짖었다. "나는 평안도 평강땅에 사는 조선 백성 김덕령이다. 네가 천운을 모르고 외람된 생각을 품어 평화스런 조선땅에 쳐들어왔으니 그 죄가 크도다. 너는 조선에 사람이 없는 줄 아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 재주를 보라. 내일 오시(오전 열 한 시부터 열 두 시까지)에 너희 군사 머리에 백지 한 장씩을 붙일 것이니 그리 알고 기다려라." 말이 끝나자마자 김덕령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청정이 크게 놀라 뭇장수들을 불러 놓고 엄히 분부했다. "내일 총과 활을 많이 준비하였다가 오시가 되거든 일시에 쏘아라. 보이는 것이면 모조리 죽여라." 청정이 명령을 내렸지만 마음이 불안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날을 밝혔다. 이튿날 오시가 되자 왜군의 진중에 오색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났다. 오색 구름이 점점 짙어져 이윽고 눈 앞에 다섯 손가락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왜군이 크게 놀라 눈을 뜨지 못하고 우왕 좌왕할 때 구름 속에서 김더령이 홀연히 나타났다. 그리곤 청정을 가리키며 크게 꾸짖었다. "왜적은 나의 재주를 보라." 호통과 함께 미리 준비한 백지를 허공에 휙 던졌다. 그러자 보라! 던져진 백지가 수십만 명 왜적의 이마에 똑같이 붙으니 그 모습은 꼭 목화송이가 활짝 핀 것 같았다. 청정이 보고 크게 놀라 자기도 모르게 탄식했다. "나도 일찍이 도술을 팔 년 동안이나 공부하였으나 저런 재주는 처음 보았도다. 저런 사람이 조선 군사의 선봉장이 되면 우리 군사는 크게 패하리라." 그러자 김덕령이 왜군 이마에 붙은 백지를 일시에 걷어 치우고 청정으로 보고 말했다. "나는 지금 부친상을 당해 살해를 할 수 없어 재주만 보여주는 것이니 너는 빨리 돌아가거라. 만일거역할 시는너희들을 한 칼로 무찌를 것이니 어서 목숨을 보존하여 급히 돌아가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덕령의 모습은 간 데가 없었다. 청정은 간담이 서늘하여 부대를 이끌고 급히 그곳을 떠났다. 이때 선조대왕께서 영의정 정현덕 이하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시고 서울을 떠나 평안도로 피난을 떠나셨다. 그러나 평양 성충이 이미 왜장 소서에 의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하는 수 없이 한적한 토곡고을에 유하였다. "그 누가 나서서 왜적을 무찌른단 말인가?" 선조대왕께서는 자나 깨나 근심이 되어서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셨다. 그러던 어느날 임금께서 뜰을 거느리고 계시는데 산에서 한 아이가 나무를 해내려오는데 그 지게가 거의 집채 만했다. "이 시골에 저런 장사가 있을 줄은 몰랐도다." 임금께서는 속으로 크게 기뻐하시며 그 아이에게 다가가 보았다. 아이응 열 여섯 살 정도인데 기골이 장대하고 눈에 정기가 내비치는 것이 과연 인물다왔다. 임금께서 아이를 보고 은근히 말씀하셨다. "네 기상을 보니 재주가 미간에 나타나 있도다. 군사를 거느리고 왜적을 토벌하여 큰 공을 세우는 것이 네 마음에 어떠한가?" 아이가 듣고 속으로 크게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 양반은 누군데 이런 말을 하는 걸까?)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매우 점잖은 어른이라 공손히 아뢰었다. "제가 재주는 없사오나 왜적이 쳐들어왔다는 소문을 듣고 그렇지 않아도 나가 싸우려고 했나이다." 임금께서 크게 기뻐하시며 물으셨다. "장하도다. 네 성명이 무엇인고?" "저는 성은 김이요, 이름은 고원이라 하나이다." 임금께서는 김고원에게 편지 한 장을 써주시며 이르셨다. "너는 이 편지를 갖고 관아에 들어가 부윤(오늘날의 시장)한성록에게 주라." 김고원은 편지를 받고 즉시 관아로 달려가 편지를 바쳤다. 무심코 편지를 받아든 부윤 한성록은 그만 대경 실색해 버렸다. 천만 뜻밖에도 임금께서 보내신 편지가 아닌가. 해서 김고원을 재촉하여 한들음에 토곡성 중으로 들어가 임금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소신이 전하의 납시옴을 모르고 있었으니 그 죄 죽어 마땅한 줄 아뢰오." 김고원은 그제서야 임금의 정체를 알고 놀라 같이 엎드려 죄를 빌었다. 임금께서는 두 사람더러 일어나라 하시며 처연한 안색으로 탄식하셨다. "나라의 운명이 불행하여 왜적이 쳐들어와서 마구 날뛰니 종묘사직을 어찌 보존하리오. 평양이 이미 왜장 소서에게 떨어졌다고 하니 짐은 이곳에서 유하는도다." 한성록이 통곡하며 아뢰었다. "소신은 나라의 변란을 듣고도 나아가 왜적을 무찌르지 못하였으니 그 죄 백 번 죽어도 마땅하나이다. 엎드려 비옵건대 전하께서 소신에게 나아가 싸우도록 하옵소서. 죽기로써 왜적을 무찌르겠나이다." 임금께서 크게 기뻐하시어 영을 내렸다. "그대는 흩어진 군사를 모아 왜적을 막으라. 그리고 김고원은 선봉장애 서라." 이에 한성록은 각처에 흩어진 군사들을 모아 왜적을 치러 나아갔다. 이때 조선의 삼백 육십 주는 거의 왜놈에게 함락되 남은 것은 겨우 육십 주밖에 안되었다.그 중에서 함경도 천북군사가 온전하게 남았으나 길이 막혀 올 수가 없었고, 황해도 군사는 뿔뿔히 흩어져, 있으나 마나였다. 그리고 경기도 군사는 도성을 지키느라고 급급한지라 쓸 만한 군사는 평안도 군사 겨우 일만명이었다. 그러나 군사가 있다한들 용맹한 장수가 없으니 어이하랴. 임금께서는 땅이 꺼지도록 탄식만 하셨다. "군사도 부족하거니와 장수도 없으니 어찌 왜적을 막으리오. 현명한 재상 최일령이라도 짐의 곁에 있으면 오죽이나 좋으랴." 임금께서는 한 때의 잘못으로 최일령을 귀양보낸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다. 한편 귀양갔던 최일령은 왜적의 세력이 강대한 것을 보자 적소인 동래에서 깊이 생각했다. "이제 왜적이 강토를 유린하도 있으니 어찌 적소에서 허송 세월하랴. 전하께 나아가 이 늙은 목숨을 나라에 바치자." 해서 즉시 길을 나서서 서울로 떠났다. 가는 도중에 왜적에게 잡힐까 염려되어 낮이면 산에 숨고, 밤이면 길을 재촉했다. 길을 떠난 지 십여 일 만에 서울에 도착해 보니 임금께서는 이미 피난을 떠나신 뒤였다. 서울 장안은 늙은이와 아녀자만 남은 것이 이미 죽어있는 서울이었다. 최일령은 임금께옵서 평안도로 피난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길을 떠났다. 온갖 고생을 다한 끝에 최일령은 드디어 토곡에 닿아 임금을 뵈옵고 땅에 엎드려 울면서 아뢰었다. "전하, 이 어인 변고이나이까? 신 최일령은 감히 왕명을 거역하고 적소를 떠나 전하를 뵈오니 그 죄 죽어 마땅하나이다." 임금께서 어진 재상을 다시 만나자 손을 잡고 일으키며 말씀하셨다. "짐이 경의 말을 진작 들었으면 이런 변고를 당하지 않을 것인데 짐이 밝지 못하여 오히려 경을 귀양보냈도다. 경은 옛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이렇듯 짐을 찾아오니 진정 충신이로다." "소신은 용안을 한번 뵈옵고 죽을 작정이었나이다." "자, 우리 옛일을 생각지 말고 어서 나라를 위해 왜적을 막을 계책을 생각하기로 하오. 지금 군사가 약간 있으되 장수가 없으니 경이 한 사람 천거하라." 최일령이 엎드려 아뢰었다. "평안도에 김응서라는 사람이 있는데 힘은 삼천 근을 들고 재주와 용맹은 삼국시대의 조쟈룡을 능가한다고 하나이다. 전하께옵서는 급히 사람을 보내시어 김응서를 불러와 왜적을 막게 하소서." 임금께서는 크게 기뻐하시며 즉시 사신을 보냈다. 이때 김응서는 왜적이 평안도를 휩쓰는 것을 보고도 왕명이 없어서 탄식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하루는 사신이 와서 왕명을 전했다. (김응서는 사신을 따라 즉시 짐을 위해 오라.) 김응서는 엎드려 왕명을 받고 갑옷과 투구를 갖추고 천리마를 달려 토곡으로 달려갔다. 임금께서는 엎드려 절하는 김응서를 보니 눈은 봉의 눈이요, 신장은 팔 척, 그리고 황금 투구에 순금 갑옷을 입은 것이 보기에도 위맹스러웠다. 또한 왼손에는 구십 근짜리 장창을 들고 오른손에는 팔십 근짜리 철구를 들었으니 늠름하기 그지없었다. 임금께서 한번 보시고 크게 기뻐하시어 최일령에게 하문하셨다. "과연 천하 명장이로다. 그러나 좋은 장수가 있으되 군사가 부족하니 어찌하리오?" "왜적이 세력이 너무 강하여 우리 조선 군사로는 당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김응서가 제아무리 용맹하고 재주가 뛰어나다 해도 왜적을 당하기는 어렵사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중국의 군대를 청하소서." "경의 말이 옳도다." 임금께서는 최일령의 의견을 받아들여 중국에 구원병을 청하러갈 사신을 찾으셨다. "누가 중국에 가서 구원병을 청해 올까?" 그러자 병조판서 유성룡이 엎드려 아뢰었다. "신이 청병 사신으로 가겠나이다." 임금께서 유성룡이 나서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시며 즉시 사신으로 임명해 중국 명나라로 보냈다. 어전 회의가 끝나자 최일령이 은밀히 김응서를 불러서 말했다. "왜장 소서가 평양 기생 월천을 첩으로 삼고 술과 노래로 세월을 보낸다고 하오. 만약에 월천과 약속을 하면 소서를 죽이는 것쯤은 손바닥 뒤집기보다도 쉬울 것이오. 그러나 연광정 사방에는 방울이 있어 침입자가 있으면 저절로 소리가 난다 하니 좀체로 접근하기가 어려울 것이오." 응서가 엄숙히 대답했다. "방울 소리는 둔갑술로 쉽게 막을 수 있습니다. 우선 기생 월천과 약속할 묘책을 가르쳐 주소서." 최일령이 즉시 묘책을 가르쳐 주었다. "그대는 당태 한 근과 독한 술 백여 병을 가지고 성벽을 넘어 가라. 당태로 능히 방울 소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니 연광정 안으로 무사히 들어갈 수가 있으리라. 시간이 자시쯤 되면 월천이 밖으로 나올 것이니 그대는 이때를 틈타 약속을 단단히 하라. 소서에게 술을 먹인 후에 장군이 조심하여 소서를 죽이라.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소서를 베는 즉시 연광정 아래에 엎드리라. 그러면 소서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소장이 힘써 왜적을 죽이고 오겠습니다." 응서는 쾌히 대답하고 즉시 당태 한 근과 독한 술 백여 병을 가지고 평양으로 말을 달렸다. 응서가 탄 말은 천리마라 평양까지의 거리 팔십 리를 진시 초에 떠나 유시 때 당도했다. 이에 말을 성 밖에 매어놓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자니까 이윽고 초경이 되었다. (이때다!) 응서는 속으로 외치고 높은 성벽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그런 다음 주문을 외워 신장을 불러 당태를 주며 분부했다. "그대는 이것으로 방울 소리를 막으라." 그러자 신장이 공손히 절하며 당태를 받아들고 방울을 모두 막았다. 이에 응서는 마음놓고 연광정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이때 왜장 소서는 등촉을 환히 밝히고 월천을 데리고 노래하며 노는데 가히 안하 무인격이었다. 응서는 생각 같아서는 단숨에 뛰어들어 한칼에 목을 베고 싶었지만 소서의 무서운 검술을 익히 소문들었는지라 꾹 참고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과연 자시쯤 되어서 월천이 소피를 보러 밖으로 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응서는 즉시 그녀를 가로막았다. "아... 뉘시온지..." 월천이 크게 놀라자 응서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고 일렀다. "쉬잇! 너를 해치러 온 사람은 아니니 나와 함께 저리로 가서 얘기 좀 하자. 나는 전하의 명령을 받고 온 김응서이니라." 김응서의 용맹은 일찍부터 평안도에 알려졌으니 월천이 어찌 그 이름을 모르겠는가. 월천이 묵묵히 으슥한 곳까지 따라오자 응서는 침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월천아, 너는 비록 기생이기는 하나 조선 사람으로 태어나서 조선의 국토를 먹고 살아왔다. 그런데도 왜놈을 섬겨 부부의 예를 취할 수 있느냐? 나는 왕명을 받잡고 소서를 죽이러 왔다. 네 뜻은 어떤가?" 월천이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다. "천한 계집은 비록 소서의 첩이 되었으나 마음만은 항상 나라를 생각하고 있었나이다. 이제 장군 같은 영웅을 만났으니 어찌 반갑지 않겠습니까? 천한 계집은 장군이 시키시는 대로 하겠사오니 왜장을 죽일 계책을 가르쳐 주옵소서." "장하도다." 응서는 크게 기뻐하여 가지고 온 독한 술병을 내어 주고는 월천의 귀에 입을 대고 계교를일러주었다. 이어 소서의 거동이 어떠한가를 물었다. 그러자 월천이 낱낱이 아뢰었다. "소서는 잠이 반쯤 들면 한 눈만 뜨옵고, 깊은 잠에 떨어지면 두 눈을 다 뜨나이다." "알았도다. 그럼 너는 어서 들어가 내가 시키는 대로 거행하라." 이에 월천이 굳게 맹세하고 연광정으로 들어갔다. 소서는 술이 거나하게 취한 채 물었다. "어찌 이렇게 늦으냐?" 월천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소녀의 오래비가 있사온데 지금 장군님을 뵈러 왔나이다. 부디 만나보소서." 애첩의 청이니 소서가 어찌 거절하겠는가. "너의 오래비라면 나하고는 처남 매부가 된다. 지금 어디 있느냐?" "문 밖에 있나이다." "어서 들라 하라." 소서가 독촉하자 월천은 즉시 문을 열고 응서더러 들어오라고 했다. 응서가 들어와서 절을 하고 있으니 소서가 응서의 용맹한 기상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실로 영웅의 기상을 지니고 있도다. 그대가 만약 나를 도와 조선 군사들을 모두 항복 받으면 나는 우리 총대장 청정의 일등공신이 되고 그대 또한 영화를 누릴 것이로다. 청정의 조선왕이 되고 우리 두사람이 크게 공을 세우면 후세에 이름을 빛낼 것이로다. 그대가 나를 도우는 것이 어떠한가?" 응서가 거짓으로 항송한 듯이 대답했다. "장군이 저를 수하로 써 주신다면 목숨을 각오하고 힘써 돕겠나이다." 월천이 옆에 있다가 계획대로 아양을 떨었다. "소녀의 오래비가 장군님을 위하여 술과 안주를 준비해 왔으니 잡수십시오." 소서가 크게 기뻐하여 칭찬했다. "너의 오래비가 이 매부를 위해 술을 가지고 왔다니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 어서 술상을보아 오너라." 월천이 즉시 술상을 준비하여 소서에게 술을 권하는데 갖은 아양을 떨며 쉴 새 없이 잔을 채웠다. 그 독한 술을 거의 열 병이나 마시자 제아무리 소서가 술을 즐긴다 해도 취한 나머지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그러자 응서가 월천을 데리고 밖으로 나와 속삭였다. "왜적이 혹시 눈치채지 못했느냐?" 월천이 귀를 기울려 살피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나이다. 어서 처치하옵소서." 이에 응서가 삼 척 장검을 뽑아들고 살며시 방으로 들어갔다. 과연 들은 바대로 소서는 두눈을 부릅뜨고 자고 있는데 코고는 소리가 마치 우레같았다. 응서가 칼을 겨누고 가까이 가자 소서의 명검 명천검이 벽에 걸려 있다가 웅웅 울어댔다. 그러나 칼 임자가 깊이 잠들어 있으니 그 누가 알랴. 이때 방문 밖에서 월천이 급히 소리쳤다. "입으로 침을 세 번 밷고 달려들어 치소서." 응서가 듣고 침을 세 번 뱉고 달려들어 소서의 목을 치니 검광이 번뜩이는 가운데 구레나룻 투성이인 목이 떨어졌다. 응서는 미리 주의 받은 대로 즉시 칼을 내던지고 바닥에 납짝 엎드렸다. 그러자 문득 머리가 없는 소서가 벌떡 일어나더니 벽에 걸린 명천검을 집어 번개같이 휘두르는 것이었다. 순간, 연광정의 대들보가 칼에 맞아 뚝 부러지더니 소서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이에 응서가 겨우 안심하고 소서의 목을 칼 끝에 꿰었다. 그리곤 월천을 옆구리에 끼고 나는 듯이 성벽을 넘어 말을 매어 놓은 곳으로 갔다. "왜장의 목을 벤 것은 오로지 너의 공로로다. 전하께서 이를 아시면 후히 상을 내릴 것이니 너는 나하고 같이 가자." 응서가 말하자 월천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땅에 무릎을 꿇고 애걸히 소리쳤다. "장군님, 천한 계집은 시운이 불행하여 왜적의 첩이 되었나이다. 비록 잠시 동안이지만 원수와 부부의 관계를 가졌으니 천한계집이 무슨 낯으로 세상을 살아가겠습니까? 이제 원수도 죽고 없으니 저의 원한도 사라졌나이다. 장군님은 부디 저의 목도 함께 베어 주소서." "그게 무슨 말이냐? 안될 말이로다." 응서가 듣고 크게 놀라 거듭 만류했지만 월천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장군님, 왜적이 저희 대장이 죽었다는 것을 알면 급히 추격해올 것입니다. 장군님의 말이 비록 천하에 보기 드문 명마라 할지라도 천한 계집까지 함께 타면 걸음이 더뎌 붙잡힐 것입니다." 응서가 다시 좋은 말로 회유하려고 하자 월천이 갑자기 손을 내밀어 응서의 칼을 뽑아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앗! 월천아, 이 무슨 짓이냐?" 응서가 놀라 부축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 월천의 가슴에서는 피가 샘솟듯이 흐르며 안색 또한 창백하게 변했다. 응서가 가슴이 아파 눈물을 뚝뚝 떨구자 월천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미천한 계집은 이제 여한이 없으니 구천에 가서라도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나이다. 장군께서는 부디 공을 세워 나라를 평온케 하소서." 말을 마치자 월천은 고개를 푹 떨구고 영원히 눈을 감았다. "월천아, 네가 비록 미천한 출신의 여자이기는 하나 대장부보다 몇배 더 의기롭도다." 응서는 싸늘하게 식은 월천의 몸을 안고 대성통곡하다가 마지못해 머리를 베어 가지고 말을 달려 토곡으로 달려갔다. 응서가 임금 앞에 엎드려 소서의 머리를 드린 후에 또 월천의 머리를 올리며 전후의 사정을 상세히 아뢰니 임금께서 한편으로 기뻐하시고 또 한편으로는 가슴 아프게 여기셨다. "아... 월천이 비록 미천한 여인이기는 하나 오직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왜적 소서를 죽이고 또 저도 죽었으니 만고에 빛날 열녀로다." 이에 소서의 목을 개돼지의 먹이로 내던지게 하고, 월천의 목은 무덤을 잘 써 후히 장사지내 주었다. 한편. 유성룡은 중국으로 원병을 얻으러 사신의 자격으로 떠났다. 거의 한달 만에 명나라 황제를 뵈옵고 예를 차렸다. 그러자 명나라 황제는 의아스런 어조로 물었다. "조선에 무슨 일이 있기로 짐의 나라에 들어왔느뇨?" 유성룡이 엎드려 아뢰었다. "황제 폐하께 아뢰나이다. 소신의 나라 조선국에 갑자기 섬나라 왜적이 쳐들어와 종묘 사직이 풍전 등화같이 위태하나이다. 지금 서울까지 왜적이 침범하여 소신의 국왕은 평안도 토곡성 안으로 피난하였나이다. 왜적의 형세가 갈수록 강하기에 소신의 국왕이 황제폐하께 여쭈라고 해서 소신이 대국으로 들어왔나이다." 하고는, 조선 임금이 보내는 글월을 올렸다. 명나라 황제가 글월을 보고 크게 놀라 신하들을 불러 하문했다. "지금 조선 국왕이 왜적의 침입을 받아 나라가 위태롭다고 구원병을 청하였도다. 경들의 의견은 어떠한지 말해보라." 그러자 좌승상 유필이 엎드려 아뢰었다. "조선이 위급하다 하니 구원병을 보내는 것이 당연하기는 하나 지금 때가 한창 농사철이라 군사를 보내는 것은 시기가 아닌 줄로 아뢰나이다." 이에 명나라 황제는 구원병을 보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임진록 (1/3) 임진록에 대하여 '임진록'은 임진왜란을 소재로 한 일종의 전쟁소설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다른 것과는 달리 민족적 설화적 성격을 띤 것으로, 보통 말하는 역사소설과는 색다를 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본래 역사소설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상의 인물이나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소설을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역사상의 기록을 소재로 삼되, 이를 작자 자신의 주관에 의하여 해석하고 창조하여 다시 재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나타내어야 할 필요는없다. 이런 점에서 역사가 사실의 기록이라면 역사소설은 진실, 곧 가능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역사소설에서 그 작자의 인생관이나 회고, 그리고 현재에 대한 비판과 풍자 등을 엿볼 수가 있다. 그러나 '임진록'은 우리가 민요에서 작자를 찾아볼 수 엇는 것 처럼 작자도 없는 설화문학적 성격을 띄고 있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 전쟁을 소재로 삼기는 했으나 한 작가에 의한 창작 이상의 것으로서 외적의 침입에 대한 전 민족의 몸부림이며 염원의 표출, 그리고 민족 자체의 삶을 구현한 민족 설화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이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미증유의 대전란 이후 민족의 떨어진 사기를 다시 진작시키고, 왜적에 대한 민족적 적개심을 고양시키기 위하여 이 작품은 부득이 허구적 사실을 중심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 있어서는 내용이 사실과 어긋난다든가 인명, 지명 등이 틀린다든가 하는 문제는 크게 탓할 바가 못된다고 본다. 더구나 작중 인물들에게 거의 모두 초인적인 도술을 갖게 하였고, 또한 광해군 때에 중국에 출전한 일이 있었던 김응서, 강홍립 두 장군을 등장시킨 것 등도 의식적인 허구였을 것이다. 비록 나라의 운명이 불행하여 현실적으로 패배한 민족이 정신적으로 승리한 것처럼 꾸며 놓은 문학을 편의상 '정의적 승리의문학'이라고 부른다면 바로 이 작품이 가장 전형적인 것이 될 것이다. 중국에서도 이런 예의 대표적인 작품이 있는데, 바로 저 유명한 '삼국지연의'이다. 이러한 문학이 민중 사이에 널리 읽혀지고 믿어지는 것은 대개문화는 고도로 발달하였으나 무력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여 주변의 야만적인 민족에게 늘 위협을 받는 이른바 문약한 민족에게 고통되는 사실이다. 이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약소 민족의 문학이 갖는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패배한 유비를 비롯한 뭇장수들이 활약하는 '삼국지연의'가 일찍부터 우리 나라에 수입되어 널리 애독되어 온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임진왜란 이후 전국 도처에서 이'임진록'의 내용과 비슷한 설화나 전설이 많이 나돌아 다녔는데 그것은 대개 신앙적, 자존적, 반항적인 것들이다. 그럼 여기서 <임진록>에 나타난 특징을 몇 가지 간추려 보기로 하자. 첫재로 지적할 점은 임금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다. 즉, 처음 장면에서 임금이 꾼 꿈을 올바르게 해몽한 여의정을 오히려 귀양보내는 데서 작자는 임금이 대외 정세관에 어두웠다는 것을 은근히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왕의 재목이 초라하다하여 군사를 돌리겠다고 하는 말할 수 없는수모를 당하는 대목도 작자가 임금을 바라보는 시선의 한 면을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둘째로 민간 영웅의 구국 의거를 민족적 시야에서 바로 보았다는 점이다. 물론 이 작품에 나타나는 인물들 중에서 허구적인 인물이나 또는 사실과 달리 설정된 인물도 있지만, 어쨋든 그들의 활약은 눈부신 바가 있다. 또 이들의 대부분이 민중 속에 파묻혀있던 영웅과 의인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셋째로 왜적에 대한 적개심이 잘 나타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 한 예로 실제 인물이 아닌 듯한 김수업이 군량미를 조달하라는 임금의 청을 받았을 때 두말하지 않고 쾌히 희사한 장면에서 볼 수 있다. '굶주려 죽은 시체가 산과 들을 덮고 나중에는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었다.'라고 하는 당시의 정황을 생각할 때 이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그만큼 왜적에 대한 적개심과 난세를 극복하려는 집념이 민중 속에 도도히 넘치고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왜적에 대한 보복심의 정도는 등장인물인 김응서와 강홍립의 행적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사실에 없는 왜국 정벌에 두 장수가 출전했다는 것은 보다 적극적인 적개심의 발로로 볼 수 있겠다. 실제 사료를 보면 김응서와 강홍립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기록은 없고 다만 김응서가 평양서 왜적을 방어한 것으로 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1620년에 명나라가 후금을 칠 때 두 사람이 원군으로 함께 출전한 일이 있다. 강홍립이 원수, 김응서가 부원수로 출전해서 처음에는 공을 세웠으나 부거에 서 패한 뒤 강홍립이 전군을 이글고 후금에 항복하여 함께 포로가 되었다. 이때 김응서가 적의 정세를 몰래 기록하여 본국에 보내려고 했으나 강홍립의 고발로 죽음을 당했다. 이같이 임진왜란 후 중국과 결부된 역사적 사실을 이삼십 년전의 대외적 투쟁에 결부시키고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대외적적개심의 정도가 높았던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기본적인 색조를 이루고 있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요소는 신이적, 주술적인 힘의 존재와 그 징후다. 우선 임금이 왜적의 침입을 예시하는 꿈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처절한 국난 속에 휘말려 들었다. 그리고 신립은 원귀의 간계에 빠져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가 변변히 싸우지도 못하고 죽고 만다. 또한 김응서 일행이 왜국 정벌을 떠나려고 할 때 왜덕강이라는 신이 나타나 사흘 후에 떠나라고 간곡히 권했으나 강홍립이 이를 일축하고 자기 고집대로 했기 때문에 결국 참패하여 대군을 잃는다. 이상은 모두가 신이적 존재의 조언을 무시하거나 빠져 들었기때문에 당한 패배의 예라 볼 수 있다. 가장 특이한 것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명장이던 관운장이 실제로 나타나거나 꿈에 나타남으로써 전란에 깊이 개입하고 우리를 돕는다는 발상이다. 이것은 비운의 장군인 관운장이 우리 민족이 겪는 고통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기에 작자가 민족신앙에서 따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비현실적, 신이적인 수법에 의한 사건 처리방식은 작품 전편의 밑바닥에 흐르는 하나의 기본적인 색조를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임진록'과 아울러 연구되어야 할 작품은 병자호란을 소재로한 '박씨전'을 들 수 있는데, 그 까닭은 이 두 작품에서 유사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진록'은 사본으로만 전해져온 관계로 이본이 매우 많은데 대표적인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국립도서관본 '임진록' 2. 이명선본 '흑룡록' 3. 백순재본 '흑룡일기' 4. 박로춘본 '임진록' 5. 권영철본 '임진록' 6. 숭전대도서관본 '임진록' 7. 고려도서관본 '임진록' (한문본) 이상 여러 작품들은 등장인물, 사건의 내용, 허구적인 심도, 사건을 파악하는 방식과 시각 등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앞으로 깊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 작품은 일제 관헌의 금기의 책이 었으므로 많은 박해를 받았음을 밝혀 둔다. ************************************************************************************* 임진록(작자미상) 조선 선조대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 외척의 침입이 없어 나라는 평온하고 백성들은 힘써 일해 풍년을 노래하니 그야말로 태평 성대였다. 임진년 정월 어느날. 대왕께서 책을 읽으시다가 잠깐 졸으셨다. 이때 한 여자가 기장을 잔뜩 넣은 자루를 머리에 이고 들어와 대왕 앞에 내려놓았다. "그게 무엇인고?" 그러나 여인은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물러가 버렸다. 대왕이 놀라 벌떡 일어나니 한바탕의 꿈이었다. 대왕께서는 크게 이상하게 여기어 뭇신하들을 모이게 하고 꿈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신하들을 돌아보고 물으셨다. "경들은 이 꿈을 행몽해 보라." 그러자 영의정 최일령이 엎드려 아뢰었다. "신이 해몽해 보겠나이다." "어서 말해 보오." "신이 해득하오니 가장 불길하옵니다." 대왕께서는 듣고 놀라시어 급히 물으셨다. "왜 불길한지 어서 까닭을 얘기해 보오." 최일령이 엎드린 채 자세히 여쭈었다. "신이 해득한 바로는 인변에 벼 화하고, 그 아래 계집 여자가 붙었으니 이 글자는 왜자 이옵니다. 아마도 왜놈이 곧 쳐들어올 거인가 하옵니다." 대왕께서 듣고 크게 노하시어 꾸짖으셨다. "그 무슨 요망한 소리인가? 시절이 이렇게 태평하거늘 어찌 요사스러운 말을하여 인심을 소란케 하고 짐의 마음을 불안케 하느뇨?" 이어 금부도사를 불러 명하였다. "일령을 멀리 귀양 보내도록 하라." 최일령은 궐하에 엎드려 사죄했다. "신이 아는 것이 없사와 요망한 말을 하였으니 그 죄는 만 번죽어도 갚지 못할 것이옵니다. 하오나 엎드려 비오니 폐하의 너그러우신 용서만 바라겠나이다." 그러나 대왕께서는 도리어 역정을 내렸다. "무슨 잔말이 이렇게 많은가? 어서 빨리 적소로 가라." 이에 최일령은 불평하지 않고 오직 대왕의 안위만 생각하며 보냈다. 세월은 흘러 임진년 춘삼월이 되었다. 온갖 꽃들이 활짝 피고, 풀들은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니 최일령은 자기도 모르게 고향이 생각나 마음이 어리러웠다. 이에 근처에 있는 한 정자에 올라가 산천을 구경하며 시름을 잊으려고 하였다. 바로 이때 갑자기 바람이 크게 일어나며 멀리 보이는 수평선상에 커다란돞을 단 배가 백여 척 나타났다. 최일령은 크게 놀라 큽히 정자에서 내려와 그 고을을 다스리는 동래부사를 불러 말했다. "적의 배가 쳐들어오니 그대는 어서 군사를 이끌고 나가 막으라." 비록 귀양은 와 있지만 최일령은 임금 다음의 지위까지 올랐던 대신이니 동래부사는 즉시 명을 받아들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동래부사는 황급히 군사를 모으고 한편으로는 임금께 올리는 글월을 써서 보냈다. 이때 적의 배는 벌써 강변에 닿았다. 배에서 새까만 갑옷을 입은 왜병들이 개미떼처럼 몰려나왔다. 왜놈의 장수 소서가 칼을 들고 강변으로 뛰어 나오며 벽력같이 외쳤다. "조선 동래부사는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으라!" 동래부사 이순경이 크게 노하여 장창을 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아뿔싸! 소서의 칼이 번뜩 하더니 이순경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이를본 왜군 대장 청정이 크게 기뻐하여 북을 울리고 군사들을 진격시켰다. 그 군사가 거의 칠십만 명이고 용맹스런 장수가 수만 명에 달하니 동래를 지키던 조선 군사들은 더 이상 대항하지 못하고 모두 도망쳤다. 동래를 점령한 청정은 장대에 높이 앉아 휘하 장병들에게 큰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먼저 소서행장을 불러 이르기를, "그대는 강원도 원주를 친 후 평안도로 올라가라."하고, 이어 동경청을 불러 명령했다. "그대는 전라도를 친 다음 김해에 있는 군량을 우리 군사에게 수송토록 하라."하고 군사 일만 명과 장수 천 명을 주었다. 또 문경을 불러 명령했다. "그대에게는 군사 오만 명과 장수 삼천 명을 줄 것이니 충청도영동을 치고, 함경도 이십 육 주를 치도록 하라." 문경이 명을 받고 나가자 이번에는 부경이 들어왔다. "그대는 강원도 십팔 주를 치고 군량을 각처로 운반토록 하라."하고는, 군사 이십만 명과 용장 삼천 명을 내주었다. 다만 마룡을 불러 정병 일만 명과 용장 천 명을 주며 명했다. "그대는 전라도를 친 다음 황해도로 가라." 흉악하게 생긴 평수길이 앞에 대령했다. "그대는 군사 오만 명과 장수 삼천 명을 거느리고 경상도를 석권하라" 마지막으로 뭇장수들에게 엄히 분부했다. "나, 청정은 남은 장수와 군졸들을 거느리고 경상우도로 짓쳐 들어갈 것이다. 거기를 평정한 다음에는 충청좌도 로 쳐들어 가겠다. 소서는 충청우도를 친 다음, 다음 목적지인 경기도로 가라. 조선왕을 항복시킨 후에 나, 청정은 조선왕이 되어 그대들에게 일품 벼슬을 주리라. 그러자 뭇군졸들과 여러 장수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화답했다. "만약 명령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군법으로 엄히 다스릴 것이다." 청정이 즉시 출발하라고 명령하니 왜군은 조선 파도로 짓쳐 들어갔다. 깃발과 창검이 햇빛에 번쩍이고 고각과 함성이 천지를 진동시키니 어찌 놀랍지 않으랴. 조선 팔도의 백성들은 여지껏 평화스럽게 살다가 아닌 밤중에 홍두께 격으로 난을 당했다. <왜놈이 쳐들어왔다!> <어서 피난하자!> 백성들은 남녀노소 구별없이 서로 붙들고 통곡하며 피난길을나섰지만 어찌 무사하겠는가. 처절한 울음소리가 산천 여기 저기서 울려나니 그 가련한 광경은 눈뜨고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이때 왜장 소서는 군사를 풍우같이 몰아 강원도로 향했다. 왜놈들이란 원래 성질이 포악한데다 장수되는 소서가 용맹을 한껏 떨치니 조선 군사가 그 앞에서 낙엽처럼 흩어져 달아났다. 흡사 무인 지경러럼 소서가 강원도를 휩쓸어 들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전령이 와서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장군, 본국에서 편지가 왔나이다." "오, 편지라고? 누구한테서냐?" "장군의 매씨되는 분이옵니다." "누이 동생이? 어디 보자." 소서는 전령이 바치는 누이동생의 편지를 보았다. '번거로운 인사말 줄이옵고 용건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부디 소나무 송자 있는 곳에 가지 마십시오. 만일 송자 있는 곳을 가면 크게 패할 것입니다. 부디 잊지 마십시오.' 누이 동생 올림 편지를 읽은 소서는 크게 놀랐다. 그의 누이 동생은 앞날에 일어날 일을 귀신같이 알아 맞추는 재주가 있는지라 평소에도 늘 이런 충고를 아기지 않았던 거이다. "송자 있는 곳을 가지 말라. 대체 어느 곳일까?" 소서는 중얼거리다가 휘하의 장수들을 불러놓고 물었다. "내 누이 동생이 주의를 주었다. 송자 있는 마을에는 가지 말라고 하니 대체 어느 곳인가?" 그러자 조선 지리에 밝은 한 장수가 앞으로 나와 아뢰었다. "송자가 있는 곳이라면 분명히 청송과 송도, 지금의 개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청송과 송도라고? 그렇다면 우리 군사를 그곳으로 보내지 말라." 이에 소서는 청송과 송도를 일부러 피해 군사를 몰았다. 한참 진격하는데 앞길에 제법 많은 조선 군사들이 진을 치고기다렸다. 바로 강원감사, 지금의 강원도 도지사, 이래의 군사였다. 그러나 그동안 태평 성세를 즐기느라 훈련을 쌓지 않은 조선 군산들이 어찌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을 당해낼 수 있겠는가.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조선 군사들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도주해 버렸고, 강원감사 이래는 장렬하게 전사했다. 삽시간에 강원도를 짓밟은 소서는 쉬지 않고 평안도로 북상했다. 왜적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평안감사 이공태는크게 놀라 각 고을의 군사를 모아 대비했다. 하지만 모여든 병사 역시 오랫동안 평화로운 세월을 보낸 탓으로 몸이 둔하고 창칼 역시 녹이 슬어 있었다. 그러니 기세 등등한 소서의 군사를 어찌 막으랴. 이공태가 필사적으로 군사들을 독려하여 맞아 싸웠으나 역부족 이었다. "적장은 나의 칼을 받으라!" 이공태는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단신으로 소서에게 달려들었다. "흥, 가소롭구나!" 소서는 껄걸 웃더니 장검을 풍차처럼 휘둘렀다. 그러자 칼날이 번뜩 하더니 이공태가 피를 뽑으며 말 위에서 떨어졌다. 대장이 죽으니 군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의기 양양해진 소서는 군사들을 이끌고 평양성에 입성했다. 미처 피난가지못한 수많은 백성들은 악귀처럼 날뛰는 왜군에 의해 무참하게 죽었다. 소서가 평양감영 높은 자리에 앉아 한창 군사들을 호령하고 있을 때, 한 여자가 잡혀 들어왔다. 여인을 바라본 소서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버들 같은 눈섭, 앵도 같은 입, 오똑한 콧날, 하느적 하느적거리는 버들허리는 그야말로 양귀비가 무색할 지경인 절세 가인이었다. 소서는 갑자기 눈이 게슴츠레해지며 목소리 또한 한껏 부드러웠다. "웬 여인이냐?" 서소가 묻자 군졸이 땅에 엎드려 아뢰었다. "예, 이곳 평양 기생 월천이라 하옵니다." "월천이라고? 과연 천하 일색이로다. 오늘부터 내게 수청을 들라." 왜장의 명령이니 그 누가 거역할 수 있으랴, 이에 그날부터 소서는 월천을 첩으로 삼아 평양에서 경치가 제일 아름다운 연광정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래와 춤으로 세월을 보냈다. 한편 다른 왜장들도 조선 팔도에 흩어져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으니 곡성이 하늘 끝까지 울려 퍼졌다. 왜군 총대장 청정은 경상도를 삽시간에 짓밟고 조령에닿았다. 조령에는 병자, 정삼품의 무관 벼슬, 이 군사를 이끌고청정의 군사들을 막으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조령은 산이 높고 험악하여 지키기에는 쉽고 깨뜨리기는 어려웠다. 또한 이곳은 서울로 통하는 관문이라 매우 중요한 요새였다. 그러나 조총을 탕탕 쏘며 물밀 듯이 쳐들어오는 왜군 앞에 별장은 변변히 싸우지도 못하고 청정의 칼날 아래 이슬이 되었다. 이렇게 되니 왜군의 진격을 막을 장수가 그 누가 있겠는가. 이때 재상 벼슬에서 이미 은퇴한 이순신은 미리 왜군이 쳐들어올 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은 새로 발명한 거북선이었다. 이순신은 왜군이 바다로 밀려 들어오자 거북선 수천 척을 몰로 싸우러 나갔다. 거북선 안에는 맹렬히 훈련을 쌓은 용맹한 군사 수만 명이 숨어 있었다. 또한 거북선 좌우에는 구멍이 무수히 있어 안에서 밥을 지을 때 나는 연기가 배 입으로 통해 나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누가 보아도 어마어마하게 큰 거북이 물에 떠다니며흰 안개를 뿜어내는 모습이었다. 왜군들은 거북선을 보자 그만 대경 실색해 버렸다. "괴상하게 생긴 배다!" "괴물이 나타났다!" 군졸들이 무서워 도망치려고 하자 왜장은 급히 명령을 내렸다. "총과 화살을 쏴라!" 그러자 왜군들이 총과 활을 무수히 쏘아댔다. 하지만 거북선 등은 철판으로 깔려 있는지라 총알과 화살이 도저히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수천 척의 거북선이 검푸른 바다 위를 떠다니며 일제히 포를쏘니 흡사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이에 비오듯이 화살이 날고 대포알이 적선을 깨뜨렸다. 왜군들은 피하지도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무수히 죽어갔다. 청정이 이를 보자 크게 놀라 부하들을 재촉했다. "어서 저 거북선을 막으라!" 대장의 명령이라 왜군들은 목숨을 각오하고 총과 화살을 쏘는 데 마치 소나기가 쏟아지는 듯했다. 그러나 거북선은 끄떡도 하지 않고 도리어 입으로 안개를 토하고 등의 구멍에서는 화살이 마구 쏟아지니 왜군의 시체는 바다로 새까맣게 떨어졌다. "안되겠다, 어서 후퇴하라!" 청정은 도저히 당할 수가 없어 후퇴 명령을 내리고 산으로 올라갔다. "왜적은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섬멸하라! 어서 추격하라!" 이순신은 삼 척 장검을 짚고 우레같이 호통쳤다. 용기 백배한 조선 군사들은 적을 뒤쫓아가 창칼을 휘둘러 치니적의 시체가 삽시간에 산을 이루고 흐르는 피는 내를 이루었다. 이순신의 거북선은 가는 곳마다 왜적을 무찔러 남해에서는 적의 배는 그림자조차 발견할 수가 없었다. 이순신은 적을 뒤쫓아 어느덧 한산도에 닿았다. 여기서 군사들을 잠시 쉬게 하고 정탐군을 보내 왜적의 동정을 살피게 했다. 이윽고 밤이 되어 둥근 달이 두둥실 떴다. 이순신은 밤의 경치를 살피다가 나라의 운명이 근심되어 시조 한 수를 읊었다. '한산선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긴칼을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 호가는 나의 애를 끊나니.' 이튿날 새벽. 왜적의 동정을 살피러 나갔던 정탐군이 돌아와 아뢰었다. "아뢰옵나이다. 적의 배 수백 척이 이리로 오고 있나이다." 이순신은 보고를 듣자 즉시 장졸들을 모아 놓고 명을 내렸다. "왜적이 다시 쳐들어 온다고 한다. 한 척도 남김없이 물 속에 장사지내라." 명령을 내리고 이순신은 사당으로 홀로 들어가 하늘에 간절히기도를 드렸다. '하늘이시어, 제 한 목숨을 바치겠사오니 왜적을 남김없이 섬멸케 해주옵소서.' 이어 전포를 입고 은빛 투구에 삼 척 장검을 찼다. 거북선에 올라 진군의 북을 치니 수천 척의 거북선이 위풍 당당하게 나아갔다. 한 시간쯤 바다로 나가자 왜적의 배가 개미떼처럼 달려들었다. "장병들은 들어라! 왜놈들은 하나도 살려보내지 말라!" 이순신은 삼 척 장검을 빼어 들고 벽력같이 외쳤다. 드디어 양쪽 배가 맞붙어 화포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총쏘는 소리가 콩볶듯이 일었다. 그러나 왜적들이 어찌 거북선을 당할 수 있으리오. 처음에는 숫자를 믿고 제법 용맹스럽게 달려들었으나 화포에 맞아 머리가 으깨지고,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에 맞아 속속 물고기밥이 되었다. "한 놈도 살려보내지 말라!" 이순신은 친히 북채를 잡고 군사들을 독려했다. 왜장 청정은 이를 보자 부하들에게 은밀히 일렀다. "이순신을 쏘아 죽여라. 그러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이에 왜군 중에서 총을 제일 잘 쏘는 자가 배를 가까이 몰아 이순신 을 노리고 조총을 쏘았다. "타앙." 귀를 찢는 듯한 총소리가 났다. 이 순간 왜병이 탄배는 거북선 에서 쏜 화포를 맞고 산산 조각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 무슨 하늘의 시기심이란 말인가. 이순신은 적의 총알이 날아와 가슴을 정통으로 맞히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그만 그 자리에 쓰러지고야 말았다. "장군님!" 옆에 있던 휘하 장병들이 놀라서 달려와 부축했다. 이순신은 손을 내저으며 영을 내렸다. "어서 방패로 나를 가려라. 그리고 내가 죽었다는 것을 군사들에게 알리지 말라. 계속 북을 울려 군사들을 독려하라..." 말을 마친 이순신은 자는 듯이 눈을 감았다. 이에 휘하 장졸들은 치밀어오는 통곡을 억지로 죽여 참고 이순신이 시키는 대로 했다. 이순신의 조카 이완이가 더욱 힘차게 북을 치니 대장의 죽음을 아직 모르는 군사들은 용맹을 떨쳐 닥치는 대로 적을 베고 찔렀다. 바다에는 온통 왜적이 시체들로 가득찼다. 푸른 바닷물조차도 왜적의 붉은 피로 붉게 물들었으니 실로 귀신이 보고 놀라 달아날 지경이었다. 왜장 청정은 자기편 배가 불과 수척밖에 남지 않자 혈로를 뚫고 간신히 목숨만 건져 도망쳤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 "왜적을 모두 쳐부셨다. 만세!" 군사들은 환호성을 치르며 기뻐했으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이순신이 적의 탄환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장군이 가시다니... 이 무슨 청천 벽력이란 말인가!" "하늘도 무심하구나!" 왜적을 쳐부셨다는 기쁨은 삽시간에 통곡으로 변하였다. 군사들이 이순신 장군의 유해를 모시고 돌아올 때 통곡하는 소리가 멀리 왜국에까지 들렸다. 왜장 청정은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숨어 있다가 이 소식을 들었다. 그러자 청정은 너무 기쁜 나머지 춤을 덩실덩실 추며 외쳤다. "이제는 조선에 명장이 없으니 이 나라를 빼앗기는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우리라." 하고는 흩어진 군사들을 모아 바로 서울로 향했다. 하늘이 보낸 장수 이순신이 죽었으니 그 누가 왜적을 막을 수 있으랴. 진주병사 양익태와 경상감사 이짐이 필사적으로 왜군을 막으려고 했으나 도리어 많은 군사만 죽이고 항복했다. 기세 등등한 청정은 다음으로 상주를 쳤다. 상주목사 남덕천인들 어떻게 막겠는가. 청정의 칼날아래 속절없이 목숨을 잃고 군사들은 모두 죽거나 도망쳤다. 삽시간에 경상도를 짓밟은 청정은 휘하 장병들에게 영을 내렸다. "칠십 일 주에 있는 군량을 급히 수송하라." 이어 조령을 넘어 충청도를 쳤다. 이때 조선 명장 신립장군은 충청도 군사들을 이끌고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었다.신립 장군은 군사적 요충지인 조령산성에다 진을 펼치려고 했다. 그러나 한 여인이 홀연히 나타나 신립 장군에게 엎드려 아뢰었다. "장군께 아뢰나이다. 이곳에다 진을 치면 반드시 패할 것이니 고개 아래 장변에 있는 탄금대에다 진을 치옵소서. 그러면 반드시 승전할 것이옵니다." 장군이 놀라 깨어보니 한바탕의 꿈이었다. 신 립은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것은 하늘이 지시한 것이다.) 하고, 군사들에게 영을 내려 탄금대에다 진을 치라고 명령했다. 휘하 장졸들은 대장의 이와 같은 명령에 불평이 대단했지만 군령이 엄한 터라 명령대로 탄금대에다 배수진을 쳤다. 장졸들의 근심스러운 표정을 보자 신 립은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대들은 걱정하지 말라. 우리가 물을 등지고 이렇게 배수진을 치면 뒤로 물러날 수가 없으므로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을 것이다. 그 옛날 한신(중국 한나라의 명장)이 조군을 대파한 것이 바로 이 배수진이니 염려 말라." 이때 청정이 조령을 넘어 신 립의 진을 보고는 크게 기뻐했다. "조선에 장수가 없음을 가히 알겠도다. 신립이 조령에서 우리를 막지 아니하고 강변에 배수진을 치다니 정말 우습도다. 신립이 그 옛날 한나라의 한신을 본받아 배수진을 친 것 같은데 어찌 나를 당하리오." 청정은 즉시 공격 명령을 내렸다. "단숨에 저 배수진을 깨뜨려라!" 그러자 왜졸들은 언덕에서 조총을 콩볶듯이 쏘아대며 개미떼처럼 몰려 내려갔다. 슬프다! 칼창과 활밖에 없는 조선 군사 십만 대병은 신병기인 조총 앞에 가을철의 나뭇잎처럼 쓰러졌다. 비명소리, 총소리, 물에 빠지는 소리... 뒤는 시퍼런 강물이니 어디로 몸을 피할 수 있단 말인가. 십만 대병은 손 한 번 제대로 눌리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으니 시체가 산을 이루고 강물이 피로 시뻘겋게 물들었다. "하늘이여, 이 무슨 변이란 말씀입니까!" 신립은 하늘을 우러러 깊이 탄식하고 자기도 강물에 몸을 던져 죽으니 여지껏 쌓아올린 무명이 하루 아침에 허물어졌다. 청정이 승전고를 높이 울리고 단숨에 강을 건너니 백성들이 놀라 통곡하며 어지럽게 도망쳤다. 청정은 쉬지 않고 군사를 몰아 충주목사 지군을 베고, 병사 문명마저도 한칼에 무찌르고 경기도로 들어갔다. 기세 등등한 왜군이 진격을 당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때가 임진년 사월이었다. 충청감사가 임금께 장계를 올리거늘 펼쳐보니 이러했다. '왜적이 세력이 너무 강하여 칠십만 대병이 물밀 듯이 쳐들어왔나이다. 동래부사가 죽음으로 맞아 싸웠으나 소용이 없었나이다. 대적은 지금 각 도로 짓쳐 들어가니 조선 팔도가 위험하나이다. 왜적의 대장 청정과 소서는 그 용맹이 너무 뛰어나 삼국시대의 조자룡이라도 해내지 못할 듯하옵니다. 폐하께서는 통촉하시옵소서.' 이어 경기감사의 장계가 당도했다. '왜적은 경기도 칠십 일 주를 항복받고 바로 충청도로 쳐들어왔나이다. 신 립의 십만 대병이 이를 맞아 싸웠으나 장졸만 모조리 죽고 대장 신립도 물에 빠져 자결했나이다. 승승 장구한 왜적은 충청도로 들어가 충주목사와 병사를 죽이고 일로 서울로 향하오니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군사를 내어 왜적을 막으소서.' 장계를 보신 임금께서는 크게 놀라시었다. "최일령이 꿈을 해득한 것이 꼭 들어맞는구나. 그런데도 짐은 그것을 모르고 오히려 충신을 귀양보냈으니 어찌할꼬..." 임금께서는 즉시 좌우 대신을 둘러보고 하문하였다. "누가 나가서 능히 왜적을 대적하겠는가?" 신하들은 머리를 숙이고 있을 뿐 누구 한사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 제일의 명장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신립이 단 한번의 싸움에서 허무하게도 패해 죽었다고 하니 그 누구라도 어찌 간담이 서늘하지 않겠는가. 임금께서 보시고 용상을 치며 탄식하였다. "왜란을 당했는데 안으로 용장이 없고, 밖으로 왜적의 세력이 크게 강성하니 그 누가 나가서 왜적을 맞겠는가? 종묘 사직(역대 왕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과 한 왕조의 기초)과 곤경에 빠진 백성을 구하여 짐의 근심을 덜게 할 인재는 없는고?" 그러자 포도대장(죄인을 다루는 관청의 우두머리)정출남이 앞으로 나와 엎드려 절하며 아뢰었다. "신이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왜적을 무찔러 전하의 근심을 덜게 하겠나이다." "오오, 장한지고." 임금께서는 크게 기뻐하시어 즉시 군사 오만 명과 장수 오십명을 주시며 분부하였다. "경은 군사를 이끌고 어서 나가 왜적을 무찌르고 짐의 근심을 없게 하라." 이에 정출남이 어명을 받고 남대문을 나와 여러 장수들에게 임무를 맡겼다. 칼을 잘 쓰는 김여춘으로 선봉장을 삼고, 창을 잘 쓰는 백여철로 중장군을, 남익신으로 우익장을 삼았다. 또한 좌선봉에는 기운이 장사인 양희발, 후군장에는 지략이 뛰어난 김치운이 군사를 거느렸다. 그리고 남은 장졸들에게도 각기 소임을 정한 후에 정출남은 푸른 털빛을 가진 말에 높이 올라타고 진군을 했다. 손에는 거의 칠십 근이 나가는 장창을 비껴들고 군사들에게 엄히 분부했다. "강토를 침범한 왜적을 무찔러 이 나라를 지킬 것이다. 만일 영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군법으로 엄히 다스릴 것이다." 정출남이 군사를 이끌고 충주로 내려오니 왜적이 이미 포진하고 있었다. 적진을 바로보니 군세가 매우 웅장했다. 창칼이 햇빛에 번쩍이고 어깨에 둘러맨 조총이 위합감을 주니 조선 군사들은 겁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운영전 처음으로 '조선소설사'를 쓴 김태준은 이작품의 작자를 작품안에 나오는 몽유자인 유영으로 보았으나, '유영전'이란 표제가 있고, 작가가 작품끝에서 몽유자인 유영이 꿈을 깨고 나서 명산을 두루 찾아 놀다가 그맞힌 바를 알수 없다고 한 것으로 보아 몽유자인 유영을 작자로 볼수 없으므로, 이작품은 작자 미상으로 돌릴수밖에 없다. 그러나 선조조 임진왜란 이후의 황폐한 궁중의 묘사를 해 놓앗고, 몽유자인 유영이 선조 34년에 배경이 되어 있는 수성궁으로 들어갔다고 하는 선조 34년을 이 작품의 창작 연대로 보고자 한다. 운영전에 대하여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수성궁 몽유록'이다. '운영전'은 여주인공을 표제로 하였고, '유영전'은 몽유자를 표제로 한 것이다. 이 작품은 원래 제목과 같이 꿈 속의 세계를 표현해 놓은 몽유소설의 유형에 속한다. 다른 몽유 소설에서는 작자 자신이 몽유자가 되고 주인공이 되어 있으나. 이 작품은 몽유자를 따로 설정해 놓았다. 이 작품의 몽유자인 유영이 선조 34년에 세종의 아들인 안평대군이 살았던 수성궁을 찾아가 술을 마시고 잠이 듦으로써 꿈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 그 꿈 속에서 유영은 안평대군의 궁녀 운영과 노녀의 애인인 김 진사를 만나 그들의 비련을 듣는다는 것이 플롯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법은 '달천몽유록'이나 '강도몽유록'과 같다. 이중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중 구조에서는 플롯 중의 플롯이 작품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작품의 중심은 몽유자가 듣는 남녀 주인공들의 비련담이다. 안평대군의 궁녀인 운영은 궁녀의 몸으로 궁 밖에 나가도 엄형에 처하고, 궁 밖 사람이 궁녀와 내통해도 궁 밖 사람을 엄벌에 처한다는 엄명을 거역하고 궁 밖에 살고 있는 김 진사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하여 김 진사는 밤중에 수성군의 높은 담을 넘어가 운영과 운우의 즐거움을 나누는데, 가을이 가고 겨울이 돌아와 눈이 와서 발자국이 나게 되니 궁인들이 수상히 여겼다. 이에 운영은 김 진사와 짜고 도망할 준비를 위해 가지고 있는 보물을 궁 밖으로 운반해 낸다. 안평대군은 드디어 운영과 김 진사의 관계를 알고 운영과 같이 있는 궁녀들을 문초하거니와, 작자는 궁녀들의 초사를 통하여 궁녀의 해방을 주장하였고, 궁녀들의 성 문제를 표현해 놓고 있다. 궁녀들의 초사를 받아 본 안평대군은 운영을 옥에 가두니, 운영은 옥중에서 목매어 자살하고 만다. 운영의 장사를 지내 준 김 진사도 운영의 뒤를 따라 자살하고 말았다는 것으로하여, 운영과김 진사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나고 있다. 이와 같은 이 작품은 한국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할 수 있는, 우리 고전 소설에 잇어서 유일한 비극 소설이다. 작자는 이 작품에서 남녀간의 사랑이 인간의 가장 고귀한 생명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제시해 놓았다. 남녀가 일생을 살기 전에 이룩할 수 없는 사랑을 위하여 고귀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어리석은 행동이나,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것이 또한 인간이기에, 이 작품의 남녀 주인공들은 목숨을 스스로 끊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음에는 왕궁에 한평생 갇혀 사는 궁녀의 해방을 제기해 놓았다. 작자는 밀폐되어 있는 궁중에서 자유로운 궁 밖의 생활이 그리워 몸부림치는 궁녀들의 정신 상태를 잘 묘사해 놓았다. 안평대군의 문초를 받고 올린 초사에서는 특히 궁녀들이 성적인 해방을 절규하고 있다. 이러한 처절한 절규는 그야말로 궁녀들의 인권 옹호라 하겠다. 이와 같은 웃사람에 대한 반항은 '윤지경전'이나 '춘향전'에서도 볼 수 있으나. 인간의 본성적인 성의 해방에대한 반항은 이 작품에서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이 작품은 우리 고전 소설에서 명작 중의 명작이라 하겠다. *********************************************************************************** 운영전 수성궁은 안평대군의 옛날 집으로 장안성서쪽 인왕산 밑에 있었다. 산천이 수려하며, 용이 서리고 호랑이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과 같이 험준했다. 사직이 남쪽에 있고 경복궁이 동쪽에 있었다. 인왕산의 산맥은 굽이쳐 내려오다가 수성궁이 있는 곳에 이르러서는 높은 봉우리를 이루었다. 비록 험준하지는 아니하나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거리에 흩어져 있는 점포와 온 장안의 저택이 바둑판과 같고 하늘의 별과 같아서 역력히 헤아릴 수 있었다. 모양은 완연히 베틀의 실오라기가 갈라진 것과 같이 정연했다. 동쪽을 바라보면 궁궐이 아득하며 복도가 공중에 비껴 있고 구름과 연기는 아침 저녁으로 푸름을 더하여 한층 운치를 보여 주고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한때주도들은 몸소 가아와 적동을 동반하고 가서놀았으며, 소인과 묵객들은 3월달 꽃피는 시절과 9월달 단풍이 익어 가는 시절에는 그 위에 올라서 놀지 아니하는 날이없었고, 음풍 영월 하면서 즐기느라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잊을 지경이었다. 청파사인 유영은 이 동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익히 듣고있었다. 한 번 가서 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의상이남루하고 얼굴빛이 파리하여 유객의 조소를 살 것을 알고가려다가 주저한지가 오래 되었다. 만력 신축 춘삼월 가망에야 탁주 한 병을 샀으나, 동복도 없고 또 한 친구나 아는 사람도 없었다. 몸소 술병을 차고 홀로 궁문으로 들어가 보니, 구경 온 사람들이 서로 돌아보고 손가락질 하면서 웃지 않는 이가 없었다. 유생은 하도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랐으나 바로 후원으로 들어갔다. 높은 데 올라가서 사방을 바라보니, 새로 병화를 겪은 후라 장안의 궁궐과 성 안의 화려했던 집들은 당연하였다. 무너진 담도 깨어진 기와도 묻혀진 우물도 흙덩어리가 된 섬들도 찾아볼 수 없었다. 풀과 나무만 이 우거져 있었으며, 오직 동문 두어 간만이 우뚝이 홀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유생은 천석이 있는, 그윽하고도 깊숙한 서원으로 들어갔다. 온갖 풀이 우거져서 그림자가 밝은 못에 떨어져 있었고, 땅 위에 가득히 떨어져 있는 꽃잎은 사람의 발자취가 이르지 아니하여 미풍이 일 적마다 향기가 코를 찔렀다. 유생은 바위 위에 앉아 소동파가 지은 '아상조원춘반로 만지낙화무인소'라는 싯구를 읊었다. 문득 차고 있던 술병을 풀어서 다 마시고는 취하여 바윗가에 돌을 베개 삼아 누웠다. 잠시 후 술이 깨어 얼굴을 들어 살펴보니 유객은 다 흩어지고 없었다. 동산에는 달이 떠 있었고, 연기는 버들가지를 포근히 감쌌으며, 바람은 꽃잎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때 한 가닥 부드러운 말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 왔다. 유영은 이상히 여겨 일어나서 찾아가 보았다. 한 소년이 절세미인과 마주앉아 있다가 유영이 옴을 보고 흔연히 일어나서 맞이하였다. 유영은 그 소년을 보고 물었다. "수재는 어떠한 사람이관대, 낮을 택하지 않고 밤을 택해서 놀고 있느뇨." 소년은 빙긋이 웃으며, "옛 사람이 말한 '경개여고'란 말은 바로 우리를 두고 한 말이지요."하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이들 세 사람은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인이 나지막한 소리로 아이를 부르니, 시녀 두 사람이 숲속에서 나왔다. 미인은 그 아이들을 보고 이렀게 말했다. "오늘 저녁에 우연히 고우를 만났고 또한 기약하지 않았던 반가운 손님을 만났으니, 오늘 밤을 쓸쓸하게 헛되이 넘길 수가 없구나. 그러니 네가 가서 주찬을 준비하고 아울러 붓과 벼루도 가지고 오너라." 두 시녀는 명령을 받고 갔다가 잠시 후 돌아왔다. 표연히 왕래하는데 마치 나는 새와 같았다. 유리로 만든 술병과 술잔, 그리고 자하주와 진기한 안주 등, 모두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세 사람이 석 잔씩 마시고 나자, 미인이 또 새로운 노래를 불러술을 권했다. 노래를 마치고 나서 한숨을 쉬면서 흐느끼니 구슬 같은 눈물이 얼굴을 덮었다. 유영은 이상히 여겨 일어나 절하고 물었다. "내 비록 양가의 집에 태어난 몸은 아니오나, 일찍부터 문묵에 종사하여 조금 문필의 고을 알고 있거니와 이제 그 가사를 들으니, 격조가 맑고 뛰어났으나 시상이 슬프니 매우 괴의하구려. 오늘 밤은 마침 월색이 낮과 같고 청풍이 솔솔 불어오니 이 좋은 밤을 즐길 만하거늘, 서로 마주 대하여 슬피 욺은 어인 일이오. 술잔을 더함에 따라 정의가 깊어졌어도 성명을 서로알지 못하고 회포도 펴지 못하고 있으니, 또한 의심하지 않을 수 없구료." 유영은 먼저 자기의 성명을 말하고 강요했다. 이에 소년은 대답했다. "성명을 말하지 아니함은 어떠한 뜻이 있어서 그러하온데, 당신이 구태여 알고자 할진대 가르쳐드리는 것은 무엇이 어려우리 까마는, 말을 하자면 장황합니다." 그리고는 수심 띤 얼굴을 하고 한참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나의 성은 김이라 합니다. 나이 10세에 시문을 잘하여학당에서 유명하였고 나이 13세에 진사 제이과에 오르니, 일시에 모든 사람들이 김 진사라고 부릅디다. 제가 나어린 호협한 기상으로 마음이 호탕함을 능히 억누르지 못하고 또한 이 여인으로하여 부모의 유체를 받들고서 마침내 불효의자식이 되고 말았으나. 천지 간에 한 죄인의 이름을 억지로 알아서 무엇하리까. 이 여인의 이름은 운영이요, 저 두 여인의이름은 하나는 녹주요, 하나는 송옥이라 하는데, 다옛날 안평대군의 궁인이었습니다." "말을 하였다가 다하지 아니하면 처음부터 말하지 않은 것만같지 못합니다. 안평대군의 성시의 일이며, 진사가 상심하는 까닭을 자상이 들을 수 없겠소?" "성상이 여러 번 바뀌고 일월이 오래 되었는데, 그 때의 일을 그대는 능히 기억할 수 있겠소?" 운영은, "심중에 쌓여 잇는 원한을 어느 날인들 잊으리까. 제가이야기 해 볼 것이오니, 낭군님이 옆에 있다가 빠지는 것이 있거든 보충하여 주옵소서."하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루는 동문 밖에 사는 한 무녀가 영이함으로써 명성을 얻고 대군의 궁에 드나들면서 매우 사랑과 신용을 받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진사가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 무녀는 나이가 아직 30도 못 되는, 얼굴이 예쁜 여자로서 일찍 과부가 되고는 음녀로 자처하고 있었는데, 진사가 옴을 보고는 성대히 주찬을 갖추고서 대접하므로 진사는 잔을 잡았으나 마시지는 아니하고 말하기를, "오늘은 바쁘고 급한 일이 있으니 내일 다시오겠소."했습니다. 다음 날 또 가니 또한 그렇게 하므로, 진사는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또 말하기를, "내일 또 오겠소."했답니다. 무녀는 진사의 얼굴이 속된 티를 벗어난 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연일 진사가 왔다가 말 한 번 하지 않으므로, 나 어린 선비로 반드시 부끄러워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니 내가 먼저 정으로써 돋움어 붙들어 놓고 밤을 새우면서 같이 자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다음 날, 목욕하여 짙은 화장을 하고 화려한 꾸밈을 하고 꽃 같은 담요와 옥 같은 자리를 깔아놓고, 작은 계집종으로 하여금 문 밖에 앉아서 망을 보게 하였답니다. 진사가또 와서 그 얼굴과 꾸밈의 화려함에 베풀어 놓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고 마음 속으로 이상하게 여겼더니, 무녀가 "오늘 저녁은 어떠한 저녁이관대 이같이 훌륭한 분을 뵈옵게 되었을까"하였으나, 진사는 뜻이 없었기 때문에 그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아니하고초연히 즐거워하지 않고 잇으니 무녀가 또 말하더랍니다. "과부의 집에 젊은 남자가 어찌 왕래하기를 거리지 아니하는지요?" 진사가 "점이 신통하다던데 어찌 내가 찾아오는 뜻을 알지못하시오."하니, 무녀는 즉시 영전에 나아가 앉아서 신에게 절을 하고는, 방울을 흔들고 점대롱을 어루만지면서 온몸을 추운 듯이 떨며 한참 몸을 움직이다가 입을 열어 말하더랍니다. "당신은 정말로 가련합니다. 불안한 방법으로써 그 뜻을 이루기 어려운 계교를 성취시키고자 하니, 다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3년이 못 가서 황천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진사는 울면서 사례하고는, "당신이 비록 말하지 아니해도 나는 다 알고 있소. 하오나 마음 속에 맺힌 한은 백 가지 약으로도 풀 수 없으니, 만일 당신으로 말미암아 다행히 편지를 전하게 된다면 죽어도 또한 영광이겠소."하자, 무녀가, "비천한 무녀로서 비록 신사로 인해 때로 혹 드나들지만 부르시는 일이 없으면 감히 들어가질 못합니다. 그러하오나 진사님을 위하여한 번 가 보겠습니다."하더랍니다. 진사는 품속에 서한 봉서를 내어주면서 말씀했답니다. "조심하여, 잘못 전하고서 화의 기틀을 만드는 일이 없도록하여 주오." 무녀가 편지를 가지고 궁문을 들어가니, 궁 안 사람들이 모두 그 옴을 괴이히 여기기에 그 무녀는 권사로써 대답하고는틈을 엿보아 들을 사람이 없는 곳으로 저를 끌고 가서 편지를 주더이다. 저를 보기를 마치자, 소리가 끊기고 기가 막혀서 입으로는 능히말할 수 없었고, 눈물이 다하자 피가 눈물을 이었습니다. 병풍 뒤에 몸을 숨기고서 오직 사람이 알까 봐 두려워했어요. 이러한 후로부터 잠깐 사이도 잊을 수 없었으니, 시는 성정에서 나오는 거으로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습니다. 이에 여러 사람은 다 이의가 없었습니다. 저는 물러나와 서궁으로 돌아가서 흰 나삼에다 가슴속에 가득 찬 슬픔과 원한을 써서 품에 넣고는, 자란과 같이 일부러 뒤떨어져 마부보고, "동문 밖에 있는 무녀가 가장 영험하다고 하니 내 그집에 가서 병을 묻고 오겠다."하고 이르니, 동복이 그 말대로 하였습니다. 저는 그 집에 가서 좋은 말로 애걸하며 말했어요. "오늘 찾아온 것은 김 진사를 한 번 만나보고 싶은 것뿐이오니, 가급적 통지해 주신다면 몸이 다하도록 은혜를 갚겠어요." 무녀가 그 말대로 사람을 보냈더니, 진사가 엎어지며 자빠지며 쫓아왔습니다. 둘이 서로 만나서 할 마로 하지 못하고 다만 눈물을 흘릴 뿐이었지요. 제가 편지를 주면서, "저녁을 타서 꼭 돌아 올 것이니 낭군님은 여기에서 기다려 주옵소서."하고는 바로 말을 타고 갔습니다. 진사는 편지를 뜯었습니다. 하루는 대군이 서궁 수헌에 앉아 계시다가 철쭉이 만발하였음을 보시고 시녀들에게 명하여 오언 절구를 지어올리라 하시었습니다. 대군이 보시고 칭찬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의들의 글이 날로 접점 발전하므로 내 매우 가상이 여기거니와, 다만 운영의 시에는 뚜렷이 사람을 생각하는 뜻이 있구나. 전일 부연시에 있어서도 다소 그러한 뜻이 있었으나 이 제 또한 이와 같으니, 네가 좇고자 하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냐.김생의 상량문에도 의심할 만한 대목이 있었는데, 너는 김생을 생각하고 있지 아니하냐." 이에 저는 즉시 뜰에 내려 머리를 땅에 대고 울면서 고했어요. "대군께 한 번 의심을 보이고는 바로 곧 스스로 죽고자 했으나, 나이가 아직 30미만이고, 또 부모님을 뵙지 아니하고 죽으면구천지하에 죽어서도 유감이 있는 까닭으로 살기를 도적하여 여기까지 이르렀다가 또한 이제 의심을 나타냈사오니 한번 죽기를 어찌 애석히 여기리이까. 천지 귀신은 밝게 살피소서.시녀 다섯 사람이 잠시라도 떠나지 아니하였사온데 더러운 이름이 홀로 저에게만 돌아왔사오니, 살아도 죽는 것만 같지 못하옵니다. 제가 이제 죽을 바를 얻었사옵니다." 바로 곧 비단 수건으로 스스로 난간에다 목을 맺더니, 자란이말했습니다. "대군께서는 이와 같이 영명한 죄 없는 시녀로 하여금 스스로 죽을 땅에 나아가게 하시니, 이로부터는 저희들은 맹세코 붓을 잡아 글을 짓지 아니하겠습니다." 대군이 비록 크게 노하셨으나 마음 속으로 정말로 죽이고 싶지는 아니한 고로, 자란으로 하여금 구하여서 죽지 못하게 하고는 대군이 흰 비단 다섯 필을 내어서 다섯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서"가장 잘 짓는 사람에겐 이로써 상을 주리라."하셨습니다. 이러한 후로부터 진사는 다시는 출입하지 아니하고 문을 닫고 병으로 누워 눈물은 베개와 이불을 적시었으니, 목숨은 가는 실오리와 같았어요. 특히 와서 보고는 말했습니다. "대장부 죽으면 죽었지, 어찌 상사 원결을 참고서초조하게 아녀자와 같이 상심하여 스스로 천금 같은 귀한 몸을 버리려고 하십니까. 이제는 마땅히 계교로써 취하기가 어렵지 아니하옵니다. 깊은 밤 고요할 때에 담을 넘고 들어가서 솜으로 입을 막고 업고 뛰쳐나오면, 누가 저를 감히 쫓으리이까." "그 계교도 또한 위험하니 정성을 다하여 물어보는 것만 같지못하다." 진사가 그 날 밤 들어오셨으나 저는 병이 들어 능히 일어나지 못하고 자란으로 하여금 맞해 들여 술 석잔을 권하게 하고는 봉서를 주면서, "이후로는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니 삼생의 인연과 백 년의 가약이 오늘 밤으로 다한 것 같습니다. 혹 천연이 끊어지지 않았으며, 마땅히 구천지하에서 서로 찾게 되겠지요."하고 말했습니다. 진사는 편지를 받고는 우두커니 서서 맥맥히 마주보다가,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나가더이다. 자란은 처량하여 차마 볼 수 없어 기둥에 기대어 몸을 숨기고 눈물을 뿌리면서 서 있었읍니다. 진사가 집에 돌아가서 봉서를 뜯어 보았습니다. 진사는 능히 다 보지를 못하고 기절하여 땅에 넘어지니 집사람들이 급히 구하여 다시 깨어났습니다. 특이 바깥에서 들어와, "궁인이 무슨 말로 대답하였기에 이렇듯 죽으려고 하십니까?"하고 물었으나, 진사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다만 한 가지만 말했습니다. "재보는 네가 잘 지키고 있느냐. 내 장차 팔아 가지고 부처님에게 바쳐서 숙약을 실천하리라." 특이 집으로 돌아와서 혼자 생각하기를, "궁녀가 나오지 아니하니 그 재보는 하늘과 나의 것이겠지."하며 벽을 향하여 남몰래 웃었으나, 사람들은 까닭을 알 수 없었어요. 하루는 특이 스스로 옷을 찢고 코를 쳐서 피가 흐르게하여 온몸을 더럽히고 머리를 흐뜨리고 맨발로 뛰어 들어와서는 뜰에 엎드려 울면서, "제가 강적의 습격을 받았습니다."하고는 다시는 말을 아니하고 기절한 사람과 같이 하니, 진사는 특이 죽으면 보화를 묻어 둔 곳을 알지 못할까 봐 근심이 되어 친히 약물을 달여여러 가지로 구하여 살려냈습니다. 술과 고리고 공궤하니 10여 일 만에 일어나서 말하기를, "외로운 한 몸이 홀로 산중에서 지키고 있는데 수많은 도적 떼들이 습격해 왔습니다. 사세가 죽게 되었던 까닭으로 목숨을 걸고 도망해 와서 겨우 실오리 같은 목숨을 보존하게 되었거니와 만일 그 보화가 아니었다면 제게 어찌 이와 같은 위험이 있으리이까. 그러하오나 명령을 어김이 이와 같으니 어찌 빨리 죽지 아니하리이까."하고는 발로 땅을 구르고 주먹으로 가슴을 치면서 통곡을 하므로, 진사는 부모님이 알까봐 두려워서 따뜻한 말로 위로하여 보냈다 합니다. 얼마 후, 진사는 특의 소행을 알고 노복 10여 명을 거느리고 가서 불의에 그 집을 둘러싸고 수색을 하였으나 다만 금팔지 한쌍과 운남 보경 하나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것을 장물로 삼아 관가에 고소하여 찾아내고자 하나 일이 샐까 봐두렵고, 만일 그 보화를 얻지 못하면 부처님에게 바칠 수가 없고, 특을 죽이고자 하나 힘으로 능히 누를 수 없어서 입을 다물고 묵묵히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특이 스스로 그 죄를 알고는 궁장 밖에 있는 맹인한테 가서 물었습니다. "내 일전 새벽에 이 궁장 밖을 지나가다가 어떤 사람이 궁중에서 담을 넘어오기로 나는 도적인 줄로 알고 큰 소리를 치면서 뒤를 쫓앗습니다. 그놈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버리고 달아나기에 저는 주워가지고 돌아와서 감추어두고 임자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인이 방구석에서 무엇을 찾다가 내가 물건을 주어왔다는 말을 듣고 와서 찾기로 내가 다른 재화는 없고 다만 팔찌와 거울 두 날을 얻었다고 한즉, 주인이 몸소 들어와서 찾다가과연 그 두 물건을 얻고도 또한 마음에 차지 않아 바야흐로 나를 죽이고자 합니다. 제가 달아나면 길하겠습니까?" 맹인이 "길하겠소."하니, 그 옆에 있던 사람들이 듣고는 특을보고, "너의 주인은 어떠한 사람이관대 노복을 학대하기가 그와 같은가?"하고 물었습니다. 특은, "우리 주인은 나이는 어리지만 조만간 당당히 급제할 것이오나, 탐욕하기가 그와 같으니, 다른날 조정에 설 때의 용심은 가히 알 수 잇지요."하고 대답했답니다. 이 말이 전파되어 궁중에 들어가고 궁인이 대군에게 고하니, 대군이 대로하시고는 남궁 사람으로 하여금 서궁을 찾아보게 한즉, 저의 의복과 보화가 모두 없어졌으므로 대군이 서궁 시녀 5인을뜰 가운데 불러놓고 형장을 눈앞에다 엄하게 갖추어 놓고는 영을 내려 말씀하시기를, "이 5인을 죽여서 다른 사람을 경계하라."하시고는 또한 집장한 사람에게 분부하셨습니다. "장수를 헤아리지 말고 죽을 때까지 쳐라." 이에 5인이 호소하기를, "원하건대 한 번 말이나 하고 죽게 하여 주소서."하니 대군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고. 그 사정을다 말해 보아라."하셨습니다. 은섬이 먼저 글월을 올리니 이러했읍니다. "남녀의 정욕은 음양의 이치에서 받은 것이므로, 귀천을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습니다. 한 번 심궁에 갇히자 외로운 몸이 되어 꽃을 봐도 눈물이 가리며, 달을 대하여도 넋을 잃어 매화나무에 앉은 꾀꼬리로 하여금 짝을 지어 날지 못하게 하며 발 사이에는 드나드는 제비로 하여금 양소를 얻지 못하게 하였사옵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스스로 정욕의 뜻을 이기지 못함이며, 또한 투기의 정을 이기지 못해서 그러할 뿐이오니어찌 슬프지 않으리까. 한 번 궁장을 넘어가면 인간의 낙을 알 수 있겠사오나 저희들은 오래도록 심궁에 갇히어 이와 같은 일을 하지 못하고 있사오니, 어찌 저희들의 힘으로 할 수 있으며 도 마음으로 참을 수 있으리이까. 오직 대군의 위엄이 두려워서 이 마음 을 굳게 지키고 있다가 시들어 죽어질 뿐이업니다. 궁중이 일에 있어서 이제 범한 죄가 없사옵는데도 불구하고 죽을 땅에 두고자 하오시니, 어찌 원통하지 않으리이까. 저희들은 구천지하에서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겠나이다." 다음으로 비취가 올리니 이러했습니다. "대군께서 사랑해 주신 은혜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사온, 어찌 감동하옴이 없사오리까. 저희들이 대군의 깊은 은혜에 감축하고는 홀로 심구에 거처하면서 달 밝은 가을 꽃 피는 봄날 에도 이 뜻을 변치 않고 오직 문묵과 현가에 종사하고 있을 따름이온데, 이제 씻을 수 없는 누명이 서궁에 미치고 말았사오니 어찌 원통하지 않으리이까. 살아도 죽는 것만 같지 못하옵니다. 오직 엎드려 빌건대 빨리 죽을 땅으로 나아가게하여 주옵소서." 세 번째로 자란이 올리니 이러했습니다. "오늘 일은 죄가 헤어릴 수 없는데 있사오니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바를 어찌 차마 숨겨두리이까. 저희들은 여항의 천녀로서 아버지가 대순이 아니고 어머니가 이비가 아닌즉, 남녀간의 정욕이 어찌 홀로 저희들에게만 없겠습니까. 주나라 목왕도 천자로서 매양 요대의 낙을 생각하였고, 항우 같은 영웅도 해하의 눈물을 금치 못하였으며, 당현종 같은 영왕으로도 매야 마외의 한을 생각하였거니와, 대군께서는 어찌하여 운영으로하여금 홀로 운우의 정이 없다고 할 수 있사옵니까. 김생은 곧 당대의 단정한 선비이온데 내당으로 끌어들인 것도 대군께서 하신 일이오며, 운영에게 명하여 벼루를 받들게 한 것도대군의 영이었습니다. 운영이는 오래도록 심궁에 갇히어 있으면서 달 밝은 가을 꽃 피는 봄날이면 매양 마음을 상하였고, 오동잎에 떨어지는 밤비에는 몇 번이나 애를 끊었습니다. 한 번 호협한 남성을 보고 나서는 넋을 잃고 실성하여 병이 골수에 사무쳐서, 비록 죽지 않는 약과 월나라 사람의 손으로도 효력을 보기가 어렵게 되었사옵니다. 하루 저녁에 아침의 이슬과 같이 죽어지면 대군께서 비록 측은한 마음이 잇어 돌보고자 하신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한 번 주실 것 같으면 대군의 적선이 막대할 것이옵니다. 전일 운영의 훼절은 죄가 저에게 있사옵고 운영에게는 있지 아니하오니, 저의 이한 말씀은 위로는 대군을 속이지 아니하고 아래로는 동료를 저버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오늘의 죽음은 죽어도 또한 영광이라 생각하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대군게서는 저의 몸으로써 운영의 목숨을 이어 주시옵소서." 네 번째로 옥녀가 아뢰니 이러하였습니다. "서궁의 영광을 저도 이미 같이하였사온데 서궁의 액운을 저만이 면할 수야 있겟습니까. 곤강도 같이 타고 옥석도 같이 타는 데 오늘의 죽음은 그 죽을 바를 얻었사오니 죽어도유감이 없겠습니다." 끝으로 제가 말했습니다. "대군의 은혜는 산과 같고 바다와 같사온데 능히 정절을 굳게지키지 못하였사오니 그 죄 하나이며, 전후로 지은 시에서 대군께의심을 보이고도 끝내 바로 아뢰지 못하였사오니 그 죄 둘이옵고, 서궁의 죄 없는 사람들이 저로 인하여 같이 죄를 받게 되었사오니 그 죄 셋이옵니다. 이와 같은 큰 죄를 셋이나 짓고서 산들 무슨 면목으로 살며, 만약 죽음을 면하여 주시다 하더라도 저는 마땅히 자결하여 처분을 기다리겠습니다." 대군은 보기를 마치시고 또 한 번 자란의 초사를 다시 펴고 보시는데 노염이 좀 풀리는 것 같으므로, 소옥이 꿇어앉아 울면서고하였습니다. "전날 빨래하러 갈 때 성 안으로 가지 말자고 한 것은 저의 의견이었으나, 자란이 밤에 남궁으로 와서 매우 간절히 청하기에 제가 그 뜻을 안타까이 여겨 군의를 물리치고 따랐사옵니다. 운영의 훼절은 그 죄가 저의 몸에 있사옵고 운영에게 있지 아니하오니 저의 몸으로써 운영의 목숨을 이어 주옵소서." 이에 대군의 노여움이 좀 풀어져서 저를 별당에다 가두고 다른 궁녀들은 다 돌려보냈는데, 그 날 밤 저는 비단수건으로 목매어 죽었습니다. 진사는 붓을 잡아 기록하고 운영은 옛일을 당겨서 이야기하는 데 매우 자상하였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슬픔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다가 운영이 진사보고, "이로부터 이하는 낭군님께서 이야기하옵소서,"하고 말했다. 이에 진사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운영이 자결한 후, 모든 궁인들은 통곡하지 않는 사람이 없이 부모가 돌아가신 것같이 했습니다. 곡성이 궁문 밖에까지 들려 저도 또한 듣고서 오래도록 기절하여 있었습니다. 집사람들이 초혼하고 발상할 준비를 하는 한편 살려 내기에 힘쓰니, 해질 무렵에서야 겨우 깨어났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생각해 보니 모든 일이 끝난 것 같았습니다. 저는 공불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엇어 구천의 영혼을 위로해 주고자 그 금팔찌와 보경과 문방기구를 다 팔아 가지고 쌀 40석을 사서 청녕사로 보내어 제를 올리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믿을만한 사람이 없기로 사환을 시켜 특을 불러 오게 하고는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내 너의 전날의 죄를 전부 용서해 줄 것이니 이제 나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겠느냐." 특은 엎드려 울면서, "제가 비록 어리석과 완악하나 또한 목석이 아니옵니다. 한 몸에 지은 죄가 머리카락을 다 뽑으면서 헤아려도 헤아리기 어려운 것을 이제 용서해 주시니, 이것은 고목에 잎이 나고 백골에 살이 붙는 것과 같사옵니다. 감히 진사님을 위하여 죽음을 다하지 아니하겠읍니까."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 운영을 위하여 초례를 베풀어 놓고 불공을 드려 발원하고자 하나 신임할 만한 사람이 없으니 네가 가지 않겠느냐."하니, 특은 "삼가 분부를 받들겠습니다."하고는 즉시 절로 올라가서 3일을 궁둥이를 뚜드리면서 누워 놀다가 중을 불러 일렀습니다. "40석의 쌀을 어디에 쓰겠소. 다 부처님에게 바치겠는가. 오늘은 술과 고기를 많이 장만해 놓고 널리 속객을 불러 먹이는 것이 좋겠소." 그리고는 마을 여인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강제로 끌고 들어와승당에서 같이 자기를 수십 일을 지내고도 재를 올릴 생각을 하지 않더랍니다. 중들이 통분히 여기다가 그 초렛날에 미쳐서 특을 보고 말했답니다. "불공하는 일은 시주가 중하온데, 시주가 이와 같이 불결하여 일이 극히 미안하오니, 저 맑은 시내에 가서 목욕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예를 행함이 좋겠소." 특은 마지못하여 나가 잠시 물로 씻고 들어와서는 부처님 앞에 꿇어앉아서 빌었지요. "진사는 오늘 빨리 죽고 운영은 내일 다시 살아나 특의 짝이되게하여 주소서." 이와 같이 3일을 밤낮으로 발원하는 말이 오직 이것뿐이었습니다. 특은 돌아와서 저에게 말하기를, "운영 아씨는 반드시 살길을 얻을 것입니다. 재를 올리던 그 날 밤에 저의 꿈에 나타나서 지성으로 발원해 주니 감사한 마음 다할 수 없다고 하면서 절하고 울었으며 중들의 꿈도 그러하였다 합니다."하므로, 저는 그 말을 믿었지요. 마침 계수나무가 누렇게 익는 계절이었습니다. 저는 비록 과거에 나아갈 뜻은 없었으나, 마음을 가다듬고 독서하고 있다가 청녕사에 올라가서 수일을 묵었습니다. 그 동안 특의 한 일을 중들로부터 자세히 듣고는 그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였으나 특이 없으니어찌 할 수 없었지요. 목욕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부처님 앞에 나아갔지요. 절하고 머리를 땅에 대고 향을 사르면서 합장하고 빌었답니다. "운영이 죽을 때의 약속이 하도 처량하여 차마 저버릴 수 없어 노복 특으로 하여금 지성으로 제를 올려 명복을 빌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축언을 들으매 그 패악함이 이루 말할 수 없고, 운영의 유언을 헛곳으로 돌아가게 하였사오니, 소자가 감히 무슨 면목으로 축언하리이까. 엎드려 바라건대 부처님께서는 운영으로 하여금 다시 살아나게 하시와 이 김생으로하여 짝을 짓게 하시고 운영과 이 김생으로 하여금 후세에 가서 이 원통함을 면하게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정말로 이 소원을 들어 주신다면 운영은 비구니가 되어 십지를 불살라 가지고 십이층금탑을 지을 것이며, 이 김생은 비구승이 되어 오계를 닦아 세 거찰을 지어 부처님의 은혜를 갚겠사옵니다." 빌기를 마치고 일어나 머리가 땅에 닿도록 수없이 절을 하고나왔습니다. 그랬더니 7일만에 특이 우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이런 후부터 저는 세상 일에 뜻이 없어 목욕하여 몸을 정결히 하고 새옷으로 갈아 입고 고요한 곳에 누워 나흘을 먹지 않았지요. 마침내 한 번 깊이 탄식하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할 몸이 되고 말았답니다. 쓰기를 마치자 붓을 던지고 두 사람은 마주보고 슬피 울면서 능히 스스로들 그칠 줄을 몰랐다. 유 영은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났으니 소원이 없겠소. 원수인 종도 이미 없어졌고 통분함도 사라졌을 것인데, 어찌 슬퍼하여 마지 않는가,다시 인간에 나오기를 얻지 못하여 한함인가." 김생은 눈물을 흘리면서 사례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다같이 원한을 품고 죽었기로 염라대왕이 그죄 없음을 불쌍히 여겨 다시 인간에 태어나도록 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지하의 낙이 인간보다 못하지 않는데, 하물며 천상의 낙은어떠하겠습니까? 이러므로써 인간에 나아가기를 원치 않습니다만오늘 저녁 슬퍼한 것은 대군이 한 번 돌아가시자 고궁에주인이 없고, 까마귀와 새들이 슬피 울고 사람의 자취가 이르지아니하기로 그랬을 뿐입니다. 게다가 새로 병화를 겪은 후로 빛나던 집이 재가 되고 옥 같은 섬돌, 분같은 담이 모두 무너지고, 오직 섬도 위에 피어 있는 꽃만이 향기롭고 뜰에는 풀만이 깔리어 봄빛을 자랑할 뿐이니, 그 옛날의 모습이 바꾸어지지 아니하였다고는 하지만 인사의 변화가 쉬움이 이와 같거늘, 다시 와옛일을 생각하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겠습니까." "그러면 그대들은 천상의 사람인가?" "우리 두 사람은 본래 천상의 선인으로서 오래도록 옥황상제를 모시고 있었더니, 하루는 상제께서 태청궁에 앉아 저에게 옥동산의 과실을 따오라 하기로 제가 반도를 많이 따가지고 와서 운영이와 같이 먹다가 발각되어 진세에 적하되어 인간의 괴로움을 골고루 겪다가, 이제 옥황 상제께서 전의 허물을 용서하사 사멍궁으로 올라가서 다시 옥황상제의 향안 앞에서 상제를 모시게 하였삽기로 돌아가는 이때를 타서 바람의 수레를 타고 다시 진세의 옛날 놀던 곳을 찾아와 모았을 뿐입니다." 김생은 말을 마치고는 눈물을 뿌리면서 운영의 손을 잡고 또 말했다. "바다가 마르고 돌이 불에 타 버린들 우리들의 정은 사라지지않을 것이요. 또 땅이 늙고 하늘이 거칠어진들, 우리들의 원한은지우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존군과 서로 만나 이와 같이 따뜻한 정을 나누었으니, 속세의 인연이 없으면 어찌 얻을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존군께서는 이 원고를 거두어 가지고 돌아가시와 영원히 전해 주시옵고, 경솔한 사람들의 입에 전하여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여 주시면 매우 다행으로생각하겠습니다. 이 때 유영도 또한 취하여 잠깐 누워 있다가 산새 소리에 깨어났다. 구름과 연기는 땅에 가득하고 새벽 빛은 창망한데, 사방을 살펴보아도 사람은 보이지 않고 다만 김생이 기록한 책자만이 있었다. 유 영은 쓸쓸한 마음 금할 수 없어 신책을 거두어 가지고 돌아왔다. 장 속에 감추어 두고 때때로 내어보고는 망연자실하여 침식을 전폐했다. 후에 명산을 두루 찾아다니더니 그 마친 바를 알 수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