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1/2) 화설, 아조 인조조 때에, 전라도 남원 부사 이등이 한 아들을 두었으니 이름은 령이라. 연광이 십육에 관옥의 기상과 두목지 풍채와 이 백의 문장을 겸하였으니, 칭찬 않는 이 없더라. 책방에 있어 신성지여에 학문을 힘쓰더니, 때는 방춘화류 호시절이라. 초목군생지물에 개유이자락하여, 너구리 넛손자 보고, 두꺼비 순산하고 면산의 불탄 잔디 밤비에 속잎 나고 진처사 옲문은 초록장 드리운 듯, 뒷동산 녹음중의 꾀꼬리 환우이라. 소년 과부 새벽달 봇짐 봇짐 쌀 때러라. 춘흥을 못 이기어 화류차로 방자 불러 분부하되, "내 고을 구령처가 어디어디 좋은고." 방자 여짜오되, "관동 팔경과 해주 매월당, 진주 촉석루, 평양 봉부벽루, 성천 강건루, 황주 월파쌍성 호이라 하오되 절승한 경개는 남원 광한루 경치를 따를 길 없삽기로 팔도에 유명하와 일컫기를 소강남이라 하나이다." 이도령 말이, "만일 네 말 같을진데 제일 강산이로다. 아모커나 광한루 구경차 포진거행하라."하고 방자놈 앞세우고 탄탄대로로 마음심자 갈지자로 세류 춘풍에 명맥의 걸음으로 뒷동뒷동 걸어 광한루에 다달아 뒤짐지고 배회하며 방자 불러 하는 말이, "악양루 봉황대 풍광과 황학루 고소대 경치가 이에서 더할소냐." 방자놈 속여 여짜오되, "경개 이렇기로 일기 청명하면 운무 잦아지고 종종 신선이 내려와 노나이다." 도령 왈, "그럴시 분명하다." 이 때 마침 본읍 기생 춘향이 추천자로 위복 단장 치레할 새, 아리따운 고운 양자 팔자 청산을 춘색으로 반분대 다스리고, 호치 단순은 삼색도화미개종이 하룻밤 찬 이슬에 반만 핀 형상이요, 흑운 같은 허튼 머리반달 같은 화룡유 솰솰 흘리빗겨 전판 같이 넓게 땋아 자저 항라 너른 댕기 맵시 있게 들였구나. 맥저포, 깨끼적삼, 보라내단, 속저고리, 물명주, 고장바지, 맥방수화주, 너른 바지, 광월사 곁막이 난봉 항라 대단치마 잔살 잡아 떨쳐 입고, 대단낭자 삼승 버선 자지 향직 수당혜를 날출자로 제법 신고, 앞에는 민적절 뒤에 금봉채 손에 옥지환귀에 일기탄이요, 노리개 더욱 좋다. 이궁전 대방전 인물향 산호가지, 밀화 불수, 금사오리, 옥장도를 오색당사 끈을 꿰어 양국대장 병부 차듯 남북병사 동개 차듯 휘늘어지게 차고 만첩청산으로 기엄 둥실 올라가며 꽃도 주루룩 훑어다가 맑고 맑은 구곡수에 풍덩 띠워도 보며 두 손으로 시내에 조약돌도 덥썩 쥐어다가 양유간에 훨훨 던져 꾀꼬리도 날려보니 근들아니 경일소냐. 흥에 겨워 점저 올라가서 장장 채긴 그넷줄을 섬섬옥수로 이리저리 갈라 쥐고 몸을 날려 올라 한 번 굴러 앞줄이 높고 두 번 굴러 뒷줄이 높아 공중에 소굿쳐 백능 버선 두 발길로 작작 도화 늘어진 가지 툭툭차니, 날리나니 낙화로다. 뒤에 지른 금봉채가 반석상에 떨어져 쩡그렁 쩡그렁 하는 소리 근들 아니 경일소냐. 한창 이리 노릴 적에, 도령이 배회 고면하여 산천도 구경하며 잊은 글귀를 생각다가 문득 녹음간 어떤 일 미인이 추천하는 양보고 심신이 황홀하여 급히 방자 불러 묻는 말이, "저 건너 저것이 무엇인고." 방자 대답하되, "어디 무엇이 뵈나이까." 도령 왈, "아따, 저 건너 뵈는 것이 부엇인고. 선녀 하강하였는가 보다." 방자놈 대답보소. "방장, 봉래, 영주, 삼신산 아니어든 선녀 어이 이 곳에 있으리까." "그러면 무엇인고. 금이냐?" "금성여수라 하오니 여수 아니어든 금이 어이 있으리까." "그러면 옥이냐?" "옥출곤강이라 하오니 곤강이 아니어든 옥이 있으리까." "그러면 해당화냐?" "명사십리 아니어든 해당화 어이 있으리까." "그러면 귀신이냐?" "북방산 아니어든 귀신이 어이 있으리까." 도령이 역정내어 왈, "그러면 무었이냐?" 방자 그제야 여짜오되, "다른 것이 아니오라, 본읍 기생 월매 딸 춘향이로소이다." 도령 말이, "얼싸 좋을 씨고, 제 본이 창녀면 한 번 구경 못할소냐. 방자야 네가 불러오라." 방자놈의 거동 보소. 입 쪽쪽 고라진 허리 참나무들 웃동 찍고 아래 잘라 거꾸로 집고 탄탄대로로 진 데 마른 데 헤지 않고 우당퉁탕 걸어가서 헐덕이며 눈 위에 손을 들어, "춘향아. 춘향아." 방자 대답하되, "큰일 났다. 어서 가자. 바삐 가자." 재촉하니 춘향이 하는 말이, "이 몹쓸 아이야. 사람을 그다지 놀래느냐. 내 추천을 하든지 그네를 뛰든지 대수랴. 춘향이니 사향이니 침향이니 강진향이니 너더러 도련님께 일러바치랏더냐." 방자놈 말이, "추천인지 그넨지 은근한 곳에서 너구 나구 할 것이지, 광한루 가까운 요런 똑바라진 등성마루에 매고 뛰라더냐. 사또 자제 도련님이 산천 경개 구경코자 광한루 올랐다가, 녹음중 추천하는 네 거동 사래 혀 보고, 성화같이 불러오라 분부 지엄하니 아니가던 못하리라. 네 만일 갔으면, 우리 도련님이 신궁둥이라, 네 향리로운 말로 초친 무렵을 만든 후에 네 항라 속것가래를 슬쩍궁 빼다가 돌돌 말아 네 왼편 볼기짝에 붙였으면 남원 것이 다 네 것이 될 것이니 그 아니 좋을쏘나." 춘향이 하릴없이 삼단같이 허튼 머리 제 색으로 집어꽂고 난봉항라 대단치마 섬섬옥수로 거두쳐 맵시 있게 빗어 안고, 방자놈 따라 행심 일경 빗긴 길로 백모래 마당 금자라 기듯, 대명전 대들보에 명매기의 걸음으로, 행뚱행뚱 바삐 걸어 계하에 이르러 문안을 아뢰니, 도령이 눔꼴이 다 틀리고 정신이 표탕하여 두 다리를 잔뜩 꼬고 서서 하는 말이, "방자야, 네 하정이란 말이 되는 말이냐. 바삐 오르게 하라." 춘향이 마지 못하여 당상에 올라 예필좌정후, 도령이 문왈, "네 나이 몇이며 이름이 무엇인다." 춘형이 아리따운 소리로 요짜오되, "소녀의 나이 이팔이요, 이름은 춘향이로소이다." 도령이 웃으며 왈, "네 이팔이 십육이 나의 사사십유과 정 동갑이라, 어찌 반갑지 아니리오, 이름 춘향이라 하니 네 형용이 이름과 같도다. 절묘하고 어여쁘다. 매화월미에 두루미도 같고, 썩은 나무에 앉은 부엉이도 같고, 줄에 앉은 초록 제비로다." 하고 또 묻되, "네 생일 이 어늬 땐고." 춘향이 여짜오되, "소녀의 생일은 하사월 초파일 자시로소이다." 도령이 웃고 왈, "사월이라 하니 날과 동년 동월이니 천장배필이어니와 다만 일시가 틀리니 그것이 한이로다." 하고, 앞에 앉히고 어루는 형상은 홍문연 잔치의 번쾌가 항우를 미워보아 두발이 상지하고 목자진열하여 큰칼빼어 검무하는 형상이요, 구룡소 늙은 용이 벽해를 오르고 여의주 어루는 형상이요, 만첩천산 백액호가 큰 개 잡아 앞에 놓고 흥을 겨워 어루는 형상이라. 좌불안석하여 이른 말이, "너를 부른 뜻은 다름 아니니, 나도 서울서 삼월춘풍화류시와 구황국시에 화조월석 빈 날 없이 주사청루에 만준향은을 진취하고 절대가인 결연하여 청가묘무로 세월을 소견하였거니와, 금일 너를 보매 세간 인물이 아니로다. 정신이 황홀하여 불승탕전이라. 탁문군의 거문고에 월로승 맺어 두고 백년가약을 세세생생이 누릴까 부름이라." 하니, 춘향이 이 말 듣고 아미 숙이고 여짜오되, "소녀의 몸이 비록 창가여자오나 마음은 북극천문에 턱을 걸어 남의 별실이 되지 말자 맹세하였사오니 도련님 분부가 이러하시나 이는 봉행치 못하리로소이다." 도령 왈, "육례는 비록 갖추지 못하나 혼인은 착실한 혼인이 될 것이니 잡말 말고 허락하여라." 춘향이 여짜오되, "만일 허락한 후 사또께옵서 필경 갈리시면 도련님은 올라가고 관대가에 성취하 금슬지락으로 세월을 보낼 적에 날 같은 천첩이야 생각할까. 속절없는 이내 일신 개밥에 도토리 되리니, 아무리 하여도 이 말씀 시행치 못할소이다." 도령이 만단 개유하여 이르되, "만일 불행하여 사또께서 경직으로 올라가실 터이면 너를 설마 버리고 갈소냐. 우리 대부인은 삿갓가마에 모실지라도 너는 쌍경자에 달려갈 것이니 염려말라. 양반이 일구 이언은 아니리니 바삐 허락하여라." 춘향이 여짜오되, "그러하실진대 먹의 찌는 삭는 일이 없삽고, 관가는 종문권시행이라 하오니, 혹 실신지폐 있은즉 후일 상고차로 불망기하여 주소서." 도령이 희부자승하여 화전을 펼치고, 요연에 먹을 갈아 황모필에 흠썩 묻혀 일필휘지하였으되, "모년모일 춘향전 불망기라. 우불망기단은 우연히 산천 구경코자 광한루에 올랐다가 천생배필을 만나니 불승탕정이라, 백년가약을 밎기로 상약하되 일후 만약 배약한는 폐 있거든 이차문기로 고관 변정사라." 하였더라. 춘향이 받아 이리접고 저리 접쳐 금낭에 넣은 수에 또 여짜오되, "무족지언이 비천리라 하오니, 만일 이말이 누설하여 사또께서 알으시면 소녀는 속절없이 죽을 터이오니 부디 삼가소서." 도령이 웃고 왈, "사또 소시에도 시큰둥하사 주사청루에 다녀계신지 모르거니와 각접 통지기 방에 방귓내를 무수히 맡으러 다녀 계신지라, 이런 일 안다손 관계하랴, 부디 염려말라." 하고 이렇듯 담소하다가, 춘향더러 묻되, "네 집이 어디뇨." 춘향이 옥수를 번 듯 들어 대답하되, "이 산 너머 저 산 너머 한 모퉁이 지나가면 죽림심처 돌아 들어 벽오동 섰는 것이 소녀의 집이로소이다." 도령이 춘향을 홀연 보낸수에 책방으로 돌아와 정신이 산란하여 진정할 길 없는지라, 마지 못하여서 책을 보려고 펼쳐 놓은즉, 글자마다 춘향이요, 글귀마다 춘향이라. 한 자가 두 자되고 한 줄이 두 줄이 되어 모두 춘향이라. 이렇듯 성화하여 이 책 저책 대문대문 읽어 보니, "하늘천 따지 감을현 누루황." "천지지간 만물지중에 유인이 취귀하니." "천황씨는 이목덕으로 왕하여 세기섭제하여 무위이화하니 이십삼대라." "초명진대부 위사 조직 한건하여 위제후하다." "원형리정은 천도지상이요, 인의예지는 인성지강이니라." "대학지도는 재명명덕하며 재신민하며 재지어지선이니라." "자왈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맹자 견양혜왕하신대 왕왈 수불원천리이래하시니 역장유이리오국호잇가." "관관저구 재하지주로다. 요조숙녀는 군자호구로다." "왈약계고제요한대." "건은 원코 형코 이코 정하니라." 하다가 하는 말이, "이 글을 못 읽겠도다. 글자가 다 뒤보이는 구나. 하늘 천자 큰대되고, 사략이 노략이 되고, 시전이 선전되고, 서전이 딴전되고, 통감이 곶감되고, 논어가 붕어되고, 맹자가 탱자되고, 주역이 누역이 되어, 뵈는 것이다. 춘향이라 보고지고 칠년대한에 빗발같이 보고지고 구년지수에 햇빛같이 보고지고, 무월동방에 불현 듯이 보고지고, 통인, 방자, 군노, 사령, 별감, 좌수, 약정, 풍현, 급창이 거진 다 춘향으로 뵈고, 왼집안이 다 춘향이라, 이를 어찌하잔 말고. 보고지고 잠깐 보고지고." 라며, 전전반측하여 소리나는 줄 깨닫지 못할 즈음에, "네 바삐 책방에 가서 도련님더러 글은 아니 읽고 무엇을 보고 지고 하는고 자세히 알아오라." 하고 연하여 보고 지고 하다가, 방자 불러 묻는 말이, "해가 얼마나 갔는고." 방자 하늘을 가리켜 왈, "이제야 백일이 도천중하였나이다." 도령이 심중 자탄왈, "어제는 저 날이 뒷덜미를 치던지, 그리 수이 가더니, 오늘은 뒤를 결박하였는지 어이 그리 더디 가는고. 날이 용심도 불량하다." 이윽고 방자 석반을 올리거늘 도령이 한는 말이, "밥인지 무엇인지 해가 얼마나 남았느뇨." 방자 여쭈오되, "일락함지하고 월출동령하나이다." 도령이 동헌 퇴등하기를 기다려 몸을 숨겨 가만히 성을 넘어 방자놈 따라 감돌아 풀돌아 훨쩍 돌아들어 춘향의 집을 찾아가니라. 이 때 춘향이 만뢰구석한데 사창을 반개하고 벽오동 거문고에 새줄 얹어 무릎 위에 놓고 대엿날 곡조를 자탄자가하여 당지덩 둥둥지 덩동당슬 이렇듯 노닐 적에, 방자 문에서 춘향 어미를 부르니, 춘향 어미 나와 본즉, 책방 도련님이어는 가장 놀라는 체하며 이른 말이, "이 어인 일이오. 사사또께서 알으시면 우리 모녀 다 죽을 것이니 돌아가라." 하거늘, 이도령 하는 말이, "관계치 아니하니 바삐 들어가자." 한 대, 춘향어미 위뭉주머니라 속으로 딴 마음먹고, "잠깐 다녀가라." 하고, 이도령 앞세우고 들어갈 제, 춘향의 집을 살펴보니 사면팔작 입구자로 고주대문 안 사랑에 안팎주문 줄행랑이 즐비하고, 층층벽창 처헌 다락이며, 대청 육간, 안방, 삼간, 건너방 이간, 차방 방간, 부겨한간, 내의 분합 물림퇴에 구울 도리 선자 추녀 대접받침 분명하다. 완자창 가로닫이 국화새김 제법이다. 부엌 삼간, 과사간, 마구 삼간 근검하다. 백릉화 도매에 청릉화 띠를 띄고, 각장 장판 소란 반자 당유지 굽도리 제격이라. 서화부벽 입춘서는 만고재사 솜씨로다. 동벽에는 진처사 도연맹이 팽택려 마다하고 추강에 배를 띄워 청풍명월에 흘리 저어 삼양으로 향하는 경을 그렸고, 서벽에는 삼국풍진 요란시에 한 종실 유현덕이 적토마 바삐 몰아 남양초당 풍설중에 와룡 선생보려하고 지성으로 가는 형상을 그렸고, 남벽에는 강태공이 선팔십 궁곤하 위수변에 갈 삿갓 숙여 쓰고 줄 없는 낚시를 드리우고 주문와 기다리는 경을 그렸고, 북벽에는 육관대사의 제자 성 진이 춘풍 것교상에 팔선녀 만나 육환장을 백운각에 흩던지고 합장배럐하는 경을 그렸고, 해학반도십장생을 횡축으로 붙여두고, 부엌 문에 열오정제팔신이요, 고앙문에 취지묵궁 용지불갈이요, 방문 위에 부모 천년수 자손만세영이요, 대문에는 울지경덕 진숙보를 도화서에 마쳤든가. 춘도문전증부귀는 문 위에 가로 붙었구나. 뒷동산에 산정 짓고, 앞 연못에 연당을 지어 두고 숙석으로 면을 맞춰 층층쭉을 무였구나. 쌍쌍 비오리징경이며, 대접같은 금붕어는 물계위 둥실 떠서 이리로 출렁 저리로 꿈틀 노는구나. 삼층화계 살펴보니 동편에 배설백, 서에 백학영, 남에 호학령, 북편에 금사오죽, 가운데 황학령이며, 노송반송 월사계 왜철쭉, 진달래, 석류, 들쭉, 종려, 모란, 작약, 치자, 동백, 춘계동매, 분도, 포도, 어여쁘다. 연산홍 이름 봏다.백일홍, 이름좋다.백일홍, 인물일새가 붕선화, 키 크다. 파초잎 향기롭다. 산국화 늘어졌다. 원추리 당명황의 양귀비를 여기저기 심었구나. 집물 치레볼짝시면 위금 돌미장 좋은 머리, 장 자개함롱 반다지 왜경대 가께수리 계자 다리 옷걸이며 철책 퇴침 벼구, 집피 행담 쌍봉 그린 빗접 고비 용두머리 장목비며 청동 화로 전대야, 유경 촛대 광명두리, 요강, 타구, 재떨이, 쌍상이 벌여놓고 이층 찬장 삼층탁자, 괴목 뒤주, 반닫이며 당화기, 서산사발, 동래 기병 실굽달이, 용중항은 분원봉사하든가. 춘향의 거동 보소. 계하 바삐 내려 옥수를 덥썩 잡고 방으로 들어가 좌정후 대객에 초인사는 당수복, 현수복의 부산죽 서천작 소상반죽 양칠간줒 각죽 칠죽 서산용죽 백간죽이 수수하다. 이름좋은 금산초며 장광 좋은 직산초며, 수수하다. 영월치며, 향기롭다. 성천처요. 불 잘 타는 남의 초요, 빛이 좋은 상관초며, 서초 양초 장절초며 숭숭 썰은 풋담배를 너울지게 붙였고나. 방치레 살펴보니 호피방장 걷어치고 대병 중병 소병풍에 소상팔경 호렵도며, 곽분양의 행락도며, 왕희지 노정연과 모란초충 백자동과 배란송죽 곡병이며, 돌돌 말아 봉족자며 문갑위에 산호 필통 사방탁자 어항이요, 국기판 시계판과 자명종을 걸었으며, 금농과 앵무새며 천하지도 붙여두고, 거뭉고, 양금, 생황, 단소, 개약고를 곁들여 놓고 양금, 비취침에 자줏빛 천이 더욱 좋다. 춘향이 주찬을 갖추어 은근히 드리니 갖은 음식 풍성하다. 팔모접시 대모반에 강화 닭 두메 꿩에 대양푼에 갈비찜, 소 양에 제육초, 두귀 발쑥 송편이며, 먹기 좋은 화전이며 송기떡의 웃기로다. 봉산 참베 양주 밤과 남양 연시, 보은 대추봉, 전목 염통산적, 양 볶이 죽순 나물, 씀바귀를 곁들여 놓고 청포도 혹 포도, 머루, 다래 유자, 감자, 능금, 석류, 참외, 수박, 개암, 비자, 춘당 매당, 오화당, 초장, 겨자, 생청, 흑청 틈틈이 괴어 놓고, 각색 술병 놓았으되, 꽃 그린 왜화병, 벽해수상 거북병, 몸거위병, 이적선의 포도주, 진처사의 국화주, 마고 선여의 천일주, 과하주, 산중처사 송엽주며, 일년주 백화주 감고 감흥로, 죽력고, 계당주, 황소주, 과하주, 청주, 모주, 막걸리, 모두 합해 혼돈주를 노자작, 앵무배에 가득 찰찰 가뜩 부어 도련님께 권할 적에, "물로초로 술을 밎어 만년잔에 가득 부어 잡수시오. 이 술 한잔 잡수시면 하오리다. 남산수를 제것 두고 목 먹으면, 왕장군의 고자로다. 인생 한 몸 돌아가면 뉘라 한잔 먹자하리. 살았을 제 이리 노세." 도령이 술에 반취하여 춘향더러 갖은 소리를 다하여 흥을 돋우라 하니 연하여 부르되, "군불견황하지수천상래한다. 도해명명불부회를 우불견 고당명경비백발하다. 조여청사모성설을 인생득의수진환이라. 막사금준공대월하소." "노세, 젊어 보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인생이 일장춘몽이니 아니놀구." 도령이 술을 진취토록 먹은 후에 횡설수설, 중언부언하며 왼가지로 힐난할 제, 이미 삼횡두전야오경이라. 춘향이 민망히 여겨, "이미 월락야심하였으니, 그만저만 자사이다." 도령이 좋다하고 먼저 벗기를 서로 힐난할제, 도령 왈, "아무리 취중이나 그저 자기 무미하니 글자타령 하여 보자." 하고는 세잔 경작 먹은 후에 글자를 모이되, "우리 둘이 만났으니 만날 봉자 비점이요, 우리둘이 마주 섰으니 좋을 호자 비점이요, 백년가약하였으니 즐길 낙자 비점이요ㅏ 야반무인 사람 없으니 벗을 탈자 비졈이요, 한 베개 둘이 베니 누울와자 비점이요, 두 몸이 한몸되니 안을 포자 관주요, 두 입이 마주 닿니 법중여자 관주요, 네 아래 굽어 보고 내 아래 굽어보니 웃음 소자 관주로다. 남대문이 개구멍이요, 인경이 매방울루이요, 선혜청이 오 푼이요. 호조가 푼이요, 하늘이 돈짝 같고 딸이 맴돈다." 흥을 겨워 노닐 적에 춘향더러 이른 말이, "인연이 지중하여 우리 둘이 만났으니 인자 타령 하여 보자." 하고 모았으되, "임하하증견일인, 월명고루유미인, 금일번성송고인, 비입궁중불견인, 양류청청 도수인, 불견 낙교인, 푸설야귀인, 귀인, 천인, 노인, 소인, 통인으로 인연하여 양인이 혼인하매 너의 대부인이 증인되니 즐겁기도 그지없다." 춘향이 여짜오되, "도련님은 인자를 달았으니 소녀는 연자를 달아 보리이다." "우락중분비백년, 호기장구오륙년, 인노증무갱소년, 상빈명조우일년, 함양유협다소년, 경세우경년, 천년, 만년, 우연히 결연하여 백년이 정년이라." 하니 도령 왈, "양인이 다정하니 천만세를 기약이라. 나는 죽어 새가 되고 난봉, 공작원양, 비위, 두견, 접동 다 버리고 청조라 하는 새가 되고, 너는 죽어 물이 되되 황하수, 폭포수, 구곡수 다 버리고 음양수란 물이 되어 주야장천 물에 떠서 둥실둥실 놀자꾸나. 너는 죽어 회양 금성 들어 가서 오리목 되고, 나는 삼사월 칡덩굴이 되어 밑에서 끝까지 끝에서 밑까지 나무 끝끝들이 휘휘친친 감겨 있어 일생 풀리지 말자꾸나." 이렇듯 즐기다가 날이 새면 몸을 빼어 돌아오고 어두우면 천방지방 날아 가서 자취 없이 다니기를 여러 날이 되었더니, 이 때 남원부사 선치함을 성상이 들으시고 승품으로 호조판서를 제수하시고 패초하시는 문첨이 내려오니, 부사 택일발행할새, 도령을 불러 이르되, "너는 내행을 모시고 먼저 올라 가라." 하니 도령이 이 말 들으매 낙담상혼하여 목이 메어 겨우 대답하고 내아에 들어가 치행 제구를 차리는 체하거고, 바로 춘향의 집으로 가니, 춘향이 바삐 나와 도령의 손을 잡고 목이 메어 울며 두 손으로 가슴을 치며 하는 말이, "이 일이 어인 일고. 이 설움을 어찌 할고, 이제는 이멸이 절로 될지라. 이별이야 평생에 처음이요, 다시 못 볼 임이로다. 이별마다 슬프다 하되, 살아 생이별은 생초목에 불이로다.초생 이별이야 이별이 원수로다. 남북에 군신 이별, 역로에 형제 이별, 만리에 처자 이별, 이별이 다 슬프지만 우리같이 슬픈 이별 또 어디 있을손가. 답답한 이 술픔을 어이 하리." 도령이 두 소매로 낯을 씻고 훌쩍 훌쩍 울며 하는 말이, "울지 마라. 네 울음 소리에 구곡간장 다 놋는다. 울지 마라. 우지 될라. 평생에 원하기를 너는 죽어 꽃이되고, 나는 죽어 나비 되 삼촌이 다 진토론 떠나 살지 말겠더니 인간에 일이 많고, 노물이 시기하여 금일 이별을 당하나 설마 장이별이 될소냐." 춘향 울며 왈, "도련님 올라가시면 나이 일신 그 아니 가련하오. 늘 바라고 살잔 말고 하지일과 동지야에 이 시름을 어이 하잔 말고. 날 죽이고 올라가오." 도령 왈, "사또께서 호조판서를 맡으시고 이 고을 풍헌이나 하시더면 이 이별이 없을 것을, 내게는 이런 원수가 없다마는, 울지마라 우리연분은 청송녹죽 같아서 무너지고 끊어질 즐 없을 지니, 설마 후일 상봉하여 그리던 회포를 못 펴 볼까." 애련지심을 서려 담고 마지못하여 이별할새, 눈물을 금치 못하는지라. 도령이 금낭을 열고 면경을 주며 왈, "장부의 어엿한 마음 이 면경과 같아서 변치 아니리라." 춘향이 답왈, "도련님이 이제 가면 언제나 오려시오. 절로 죽은 고목 꽃 피거든 오려시오. 벽에 그린 황계 짧은 목 길게 늘여 두 날개 땅땅 치고 꼬끼요 울거든 오려시오. 금강산 상상봉의 물 밀어 배 둥둥 뜨거든 오려시오." 하며, 옥지환 벗어 내어 도련님 주며 왈, "계집의 높은 절개는 이 옥지환과 같을 지라. 천만년이 지나간들 옥빛이야 변하리까." 도령이 노래를 지어주니 하였으되, "조이 있거라. 조이 다녀오마. 간들 아주 가며, 아주 간들 잊을소냐. 잠깨어 옆에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춘향이 받아 보고 화답하되, "간다고 슬퍼하오. 보내는 내 한도 있소. 산첩첩 수중중한데 평한히 가오. 가다가 긴 한숨 나거든 낸 줄 아오." 하였더라. 십리 밖에 나와 전송할새, 춘향이 여짜오되, "떠나는 회포는 측량 없거니와 부디 학업이나 힘써 입신양명하여 부모께 영화 뵈고 나도 수이 찾으시오. 머리 위에 손 얹고 기다리이다." 도령이 답 왈, "그런 말이야 어찌 형언하리. 부디 신을 지키어 오기를 고대하라." 하고, 마지못하여 말에 올라 서울을 향할새, 돌아보고 돌아보니 한 산 넘어 오 리 되고 한 물 건너 십 리 되매, 춘향의 형용이 묘연한지라. 할 수 없이 장우단탄을 벗을 삼아 올라가니라. 춘향이 눈물을 씻고 북천을 바라보니 임이 떨어졌는지라. 하필 하릴 없이 집에 돌아와 의복단장 전폐하고 분벽사창 귿이 닫고 무정 세월을 시름 속에 보내더라.
이생규장전 송도에 이씨성을 가진 서생이 낙타교 옆에 살고 있었다. 나이는 열 여덟인데 얼굴은 말쑥하며 재주가 뛰어났다. 일찍부터 국학에 다녔는데 길을 가면서도 글을 읽었다. 그때 선죽리 귀족집에 최씨 처녀가 살고 있었다. 나이 열대여섯쯤 외었는데 맵시는 아리땁고 자수에 능하며 시부에도 뛰어났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칭찬했다. 이 서생은 일찍부터 책을 끼고 학교에 갈 때는 언제나 최 처녀의 집 앞을 지나다녔는데 그 집 북쪽 담 밖에는 수십 그루의 수양버들이 운치 있게 둘러 처져 있었다. 이 서생은 어떤 날 그 나무 밑에서 쉬다가 문득 담 안을 엿보았더니 이름 있는 온갖 꽃들이 활짝 피어 있고 벌과 새들이 그 사이를 요란하게 날고 있었다. 그 옆에는 자그마한 누각이 꽃 숲 사이에 은은히 보이는데, 구슬로 만든 발은 반쯤 가려 있고 비단 휘장은 나지막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속에 한 아름다운 여인이 수를 놓고 있다가 손을 잠시 멈추고 아래턱을 괴더니 시를 읊는다. 이 서생은 그녀가 읊은 시를 듣고는 자기의 재주를 급히 시험하고자 안달이 났다. 그러나 그 집의 담장은 높고 가파르며 안채가 깊숙한 곳에 있었으므로 다만 서운한 마음으로 학교로 갔다. 그는 돌아올 때에 흰종이 한 폭에다 시 3수를 써서 기와 쪽에 배달아 담 안으로 던져 보냈다. 최 처녀는 시비 향아를 시켜 주워보니 이 서생이 보낸 시였다. 최 처녀는 그 시를 읽고 또 읽은 후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자기도 종이 쪽지에다 짤막한 글귀를 적어서 담장 밖으로 던져 주었다. "도련님은 의심하지 마십시오. 황혼에 뵙기로 합시다." 황혼이 되자 이 서생은 최 처녀의 집을 찾아갔다. 문득 복숭아 꽃나무 한 가지가 담 밖으로 휘어져 넘어오면서 간들거리기 시작했다. 이 서생이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넷줄에 매달린 대광주리가 아래로 드리워져 있었다. 이 서생은 그 줄을 타고 담을 넘어갔다. 때마침 달이 동산에 돋아오고 그림자가 땅에 깔려 맑은 향기가 사랑스러웠다. 이 서생은 자기가 신선 세계에 들어오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은 은근히 기뻣으나 몰래 숨어들고 보니 모발이 곤두섰다. 그가 좌우를 살펴보니 최 처녀는 벌써 꽃떨기 속에서 시녀 향야와 함께 꽃을 꺾어 머리에 꽂고 구석진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이 서생을 보자 방긋 웃으며 시 두 구절을 먼저 읊었다. 최 처녀는 곧 낯빛이 변하면서 말했다. "도련님 저는 애당초 도련님을 끝내 남편으로 보셔 오래도록 즐겁게 지내려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련님께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비록 여자의 몸이오나 조금도 걱정함이 없는데 대장부의 의기를 가지고서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뒷날에 규중의 비밀이 누설되어 부모님께 꾸지람을 듣게 되더라도 저 혼자 책임을 지겠습니다." 말을 마친 후, 그녀는 향아를 시켜 방에 들어가서 술과 과일을 가져오게 했다. 향아가 떠나 버리자 사방이 적막하며 인적이라고는 없었다. 이 서생이 물었다. "여기는 어떤 것입니까?" "이것은 저의 집 뒷동산에 있는 작은 누각 밑입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제가 무남독녀이므로 여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따로이 연못가에 누락을 지으시고 시비와 더불어 화창한 봄을 즐기게 해주셨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여기서 떨어진 깊숙한 곳에 계시기 때문에 비록 웃으며 큰소리로 얘기해도 쉽게 들리지 않습니다." 여인은 좋은 술을 따라 이 서생에게 권하면서 시 한 편을 읊었다. 이 서생도 시를 지어 화답했다. 이 서생이 읊기를 마치자 최 처녀가 말했다. "오늘 일은 결코 작은 인연이 아닙니다. 도련님은 저를 따라오셔서 두터운 정의를 맺는 것이 좋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그녀가 북쪽 창문으로 들어가자 이 서생도 취를 따랐다. 누각에 걸쳐진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니 다락이 나타났다. 그곳은 서재였다. 책상은 매우 말끔했으며 한 쪽 벽에는 안개 낀 강 위에 첩첩이 싸인 산봉우리를 그린 그림 한 폭과 우거진 대와 묵은 나무를 그린 그림 한 폭이 걸려 있는데 모두 유명한 그림들이었다. 그림 위에는 시를 써 놓았는데 그것은 누가 지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첫째 그림에 시가 씌어 있었다. 둘째 그림에도 시가 씌어 있었다. 한 쪽 벽에는 사시의 경치를 읊은 시를 각각 네 수씩 붙여 놓았는데, 그것도 역시 어떤 이가 지었는지 알 수 없었다. 글씨는 조맹부의 서체를 본받아서 자체가 뛰어나게 아름다웠다. 그 다음 폭에도 역시 시가 있었다. 한 쪽에 따로 작은 방 하나가 있는데, 휘장, 요, 이불, 베개 등이 또한 매우 정결했고, 휘장 밖에는 사향을 태우고 난향의 촛불을 켜 놓았는데 환학 밝아서 대낮과 같았다. 이 서생은 여인과 더불어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면서 이곳에서 머물렀다 며칠 후 이 서생은 최 처녀에게 말했다. "옛 성인의 말씀에 어버이의 슬하에 있는 몸은 집을 나갈 때는 반드시 가는 것을 알려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집을 나온 지 벌써 사흘이나 되엇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반드시 마을 입구에 나와서 기다릴 것이니 어찌 자식의 도리가 하겠습니까?" 최 처녀는 서운하게 여기면서도 이를 옳게 여겨 승낙하고는 담을 넘어 보내 주었다. 이 서생은 그 후 저녁이면 최 처녀를 찾지 않는 날이 없었다. 어느 날 저녁에 이 서생의 아버지는 그에게 꾸짖으면서 말했다. "네가 아침에 집을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것은 옛 성현의 참된 말씀을 실천하려 함인데 요사이는 황혼에 집을 나가서 새벽에 돌아오니 어찌된 까닭이냐? 틀림없이 경박한 놈의 행실을 배워서 남의 집 담장을 넘어가서 처녀를 엿보고 다니는 것이겠지? 이런 일이 만일 탄로나면 사람들은 모두 내가 잘못 가르쳤다고 책망할 것이요, 또 그 처녀도 지체 높은 집안의 딸이라면 반드시 네 행동 때문에 그의 가문이 누를 입게 될 것이니 이는 작은 일이 아니다. 너는 한시바삐 영남으로 내려가서 노복들의 농사 감독이나 해라. 그리고는 다시는 돌아올 생각은 하니 말라." 아버지는 이튿날 아들을 울주로 내려보내 버렸다. 최 처녀는 저녁마다 화원에 나와서 이 서생을 기다렸으나 두 서너 달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이 서생이 병이나 나지 않았나 염려되어 향하를 시켜서 몰래 이웃 사람들이게 물어보게 했더니 이웃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 도령은 아버지께 죄를 얻어 영남으로 내려간 지가 벌써 두서너 달이 되었네." 여인은 이 소식을 듣고 너무나 상심하여 병이 나서 침상에 쓰러졌다. 그녀는 음식도 먹기 못하고 말도 두서가 없었으며 피부는 피빛을 잃었다. 그녀의 부모는 이를 이상히 여겨 병의 증상을 물어보았으나 묵묵히 말이 없었다. 그들은 딸의 상자 속을 들추어보았다 거기에는 딸이 이 서생과 서로 주고받은 시가 들어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그제야 놀라면서 무릎을 쳤다. "아이고 까딱 잘못했으면 내 귀한 딸을 잃을 뻔했구나." 그들은 딸에게 물었다. "이 서생이란 대체 누구나?" 일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니 최 처녀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었으므로 목구멍에서 간신히 나오는 목소리로 부모님께 사뢰었다. "저를 고이 길러 주신 아버님과 어머님께 어찌 감히 사실을 숨기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하옵건데 남녀가 서로 사랑을 느낌은 인간의 정리로서 가장중대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혼기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시경의 주남편에도 나타나고, 여자가 정조를 지키지 못하면 흉하다는 것은 역경에 경계되어 있습니다. 저는 냇버들 같은 연약한 자질로서 용색이 시드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서 절개를 지키지 못하여 옆 사람의 비웃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새삼 덩굴과 여러 이끼가 다른 나무에 의지해서 살 듯이 벌써 위당의 처녀 행세를 하게 되었으니, 죄가 이미 가득 차 수치가 가문에 미치고 말았습니다. 저는 장난꾸러기 도련님과 정을 통한 후에야 도련님께 대한 원망이 첩첩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저의 연약한 몸으로 괴롬을 참고 살아가려니 사모하는 정은 날로 깊어 가고 아픈 상처는 날로 더해 가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니 원한 맺힌 귀신으로 화해 버릴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남은 생명이나 보전되겠습니다만, 만약 저의 이 간곡한 청을 거절하신다면 죽음만이 있을 뿐입니다. 도련님과 저승에서 다시 함께 만날지언정 절대로 다른 가문에는 시집가지 않겠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이미 그 딸의 뜻을 알았으므로 다시는 병의 증세를 묻지 않고 깨우쳐 주고 달래오 주고 하여 그녀의 마음을 누그럽게 해 주었다. 그들은 매자를 사이에 넣어 예를 갖추어 이 서생의 집으로 보냈다. 이 서생의 아버지는 최씨 집안에 대해서 묻고 난 뒤 이렇게 말했다. "저의 집 아이가 비록 나이 젊어서 바람이 났다고 하더라고 학문에 정통하고 풍채도 현인답게 생겼소. 훗날엔 장원으로 급제할 것이며 이름을 세상에 떨칠 것이니, 그의 배필을 서둘러 구할 생각이 없소" 매자가 돌아가서 사실대로 전하니 처녀의 아버지는 다시 매자를 이씨 집에 보내어 말하게 했다. "송도에 사는 친구들이 모두 그 댁의 영식은 재주가 남달리 뛰어났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직 과거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어찌 끝까지 초야에 묻혀 있을 인물이겠습니까? 제 여식도 과히 남에게 뒤지지는 않으오니 그들의 혼인을 이루어 주심이 어떠하겠습니까?" 매자는 다시 이 서생의 아버지를 찾아가서 그대로 전했다. 이 서생의 아버지는 말하였다. "나도 젊어서부터 책을 들고 학문을 닦았으나 아직 성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노복들은 뿔뿔이 흩어져 가고 친척들도 도와주지 않아서 생활이 치밀하지 못해 살림이 궁색해졌습니다 그런데 어찌 권세 잇는 가문에서 빈한한 선비의 자제를 사위로 삼으려 하겠습니까? 이는 반드시 호사가들이 내 가문을 지나치게 칭찬해서 규수댁을 속이려는 것입니다." 매자는 한번 더 돌아와서 들은 대로 일러주니 최씨 집에서는 말했다. "모든 예물 드리는 절차와 의장은 저희 집에서 다 처리할 것이니 좋은 날만 가려 가약을 맺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고 여쭈어 주시오." 매자는 또 달려가서 이 말을 전했다. 이씨 집에서는 마침내 뜻을 돌려서 곧 사람을 보내어 이 서생을 불러와서 그의 의사를 물었다. 그는 기쁨을 이기지 못해서 시를 지어 읊었다. 최 처녀는 이 서생이 이 같은 시를 지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병이 차차 나아져 그녀도 시를 지어 읊었다. 이에 길일을 택해서 혼례를 이루니 끊어졌던 사랑이 다시 이어졌다. 그들은 부부가 된 이후에는 서로 사랑하면서도 공경하여 손님과 같이 대하니, 옛날의 양홍, 맹광과 포선, 환소군의 부부일지라도 그들의 절개와 의리를 따를 수 없었다. 이 서생이 이듬해에 대과에 합격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니 그의 명성이 조종에까지 알려졌다. 이윽고 신축년에 홍건적이 서울을 점령하매 임금은 복주로 피난 갔다. 적들은 집을 불태우고 사람과 가축을 주기고 잡아먹으니, 그의 가족과 친척들은 능히 서로 보호하지 못하고 동서로 달아나 숨어서 제각기 살기를 꾀했다. 서생은 가족을 데리고 궁벽한 산골에 숨어 있었는데 한 도적이 칼을 빼어들고 쫓아왔다. 서생은 겨우 달아났는데 여인은 도적에게 사로잡힌 몸이 되었다. 적은 여인의 정조를 겁탈하고자 했으나 여인은 크게 꾸짖어 욕을 퍼부었다. "이 호랑이 창귀 같은 놈아! 나를 죽여 씹어먹어라. 내 차라리 이리의 밥이 될지언정 어찌 개돼지의 배필이 되어 내 정조를 더럽히겠느냐?" 도적은 노하여 여인을 한 칼에 죽이고 살을 도려 흩었다. 한편 서생은 황폐한 들에 숨어서 목숨을 보전하다가 도적의 무리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살던 옛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집은 병화에 타버리고 없었다. 다시 아내의 집을 가보니 행랑채는 쓸쓸하고 집안에는 쥐들이 우글거리고 새들만 지저귈 뿐이었다. 그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작은 누각에 올라가서 눈물을 거두고 길게 한숨을 쉬면 날이 저물도록 앉아서 지난날의 즐겁던 일들을 생각해 보니, 완연히 한바탕 꿈만 같았다. 밤중이 거의 되자 희미한 달빛이 들보를 비쳐 주는데 낭하에서 발자국 소기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먼 데서 차차 가까이 다가왔다. 살펴보니 사랑하는 아내가 거기 있었다. 서생은 그녀가 이미 이승에 없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으나 너무나 사모하는 마음에 반가움이 앞서 의심도 하지 않고 말했다. "부인은 어디로 피난하여 목숨을 보전하였소." 여인은 서생의 손을 잡고 한바탕 통곡하더니 곧 사정을 얘기했다. "저는 본디 양가의 딸로서 어릴 때부터 가정의 교훈을 받아 자수와 바느질에 힘썼고, 시서와 예법을 배워 왔습니다. 그러니 다만 규중의 법도만 알았을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낭군께서 붉은 살구꽃이 피어 있는 담을 엿보게 되자 저는 스스로 몸을 바쳤으며, 꽃 앞에서 한번 웃고 난 후 평생의 가약을 맺었었고 휘장 속에서 거듭 만났을 때는 정이 백년을 넘쳤습니다. 사세가 이렇게 되자 부끄로움을 차마 견딜 수 없었습니다 장차 백년을 함께 하려 했는데 어찌 횡액을 만나 구렁에 넘어질 줄 알았겠습니까? 끝내 이리 같은 놈들에게 정조를 잃지는 않았습니다만, 스스로 몸뚱이를 진흙창에서 찢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진실로 천성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만 인정으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낭군과 궁벽한 산골에서 헤어진 후론 짝 잃은 새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집도 없어지고 부모님도 잃었으니 피곤한 혼백 의지할 곳 없음이 한스러웠습니다. 의리는 중하고 목숨은 가벼우므로 쇠잔한 몸뚱이로서 치욕을 면한 것만은 다행이었습니다만, 누가 산산조각난 제 마음을 불쌍히 여겨 주겠습니까. 다만 애끊는 썩은 창자에만 맺혀 있을 뿐입니다. 해골은 들판에 던져졌고 몸뚱이는 땅에 버려지고 말았으니, 생각하면 그 옛날의 즐거움은 오늘의 이 비운을 위하여 마련된 것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그러나 이제 봄바람이 깊은 골짜기에 불어와서 제 환신이 이승에 되돌아 왔습니다. 낭군과 저와는 3세의 깊은 인연이 맺혀져 있는 몸, 오랫동안 뵙지 못한 정을 이제 되살려서 결코 옛날의 맹세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낭군께서 지금도 3세의 인연을 알아주신다면 끝내 고이 모실까 합니다. 낭군께서는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서생은 기쁘고 또 고마워서, "그것은 본디 나의 소원이오." 하고는 서로 즐겁게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윽고 이야기가 가산에 미치자 여인은 말했다. "조금도 잃지 않고 어떤 산골짜기에 묻어 두었습니다." "우리 두 집 부모님의 해골은 어디에 있소?" "하는 수 없이 어떤 곳에 버려 두었습니다." 서로 쌓였던 이야기가 끝나고 잠자리를 같이 하자 지극한 즐거움은 옛날과 같았다. 이튿날 여인은 서생과 함께 개녕동을 찾아가니 거기에는 금은 몇 덩어리와 재물 약간이 있었다. 그들은 두 집 부모님의 해골을 거두어 금은과 재물을 팔아서 각각 오관산 기슭에 합장하고는 나무를 세우고 제사를 드려 모든 예절을 다 마쳤다. 그 후 서생은 벼슬을 구하지 아내와 함께 살게 되니 피난 갔던 노복들도 또한 찾아들었다. 서생은 이로부터 인간의 모든 일을 전혀 잊어버리고서 친척과 귀한 손의 길흉사 방문에도 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으며, 늘 아내와 함께 싯구를 지어주고 받으며 즐거이 세월을 보냈다. 어느덧 두서너 해가 지난 어떤 날 저녁에 여인은 서생에게 말했다. "세 번째나 가양을 맺었습니다마는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으므로 즐거움도 다하기 전에 슬픈 이별이 갑자기 닥쳐왔습니다." 하고는 마침내 목메어 울었다. 서생은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그 무슨 까닭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오?" 여인은 대답했다. "저승길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저와 낭군의 연분이 끊어지지 않았고 또 전생에 아무런 죄악도 없었으므로 이 몸을 환신시켜 잠시 낭군을 뵈어 시름을 풀게 했던 것입니다. 오랫동안 인간 세상에 머물러 있으면서 산 사람을 유혹할 수는 없습니다." 하더니 시비에게 명하여 술을 올리게 하고는 옥루춘곡에 맞추어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서생에게 술을 권했다. 노래 한 가락씩 부를 때마다 눈물에 목이 막혀 거의 곡조를 이루지 못했다. 서생도 또한 슬픔을 걷잡지 못했다. "나도 차라리 부인과 함께 황천으로 갔으면 하오. 어찌 무료히 홀로 여생을 모내겠소. 지난번에 난리를 겪고 난 후에 친척과 노복들이 각각 서로 흩어지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해골이 들판에 버려져 있을 때 부인이 아니었더라면 누가 능히 장사를 지내 주었겠소. 옛 사람의 말씀에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예절로써 섬기고 돌아가신 후에도 예절로써 장사 지내야 한다 했는데, 이런 일을 모두 부인이 실천했소. 그것은 부인은 천성이 순효하고 인정이 두터운 때문이니 감격해 마지않았으며, 스스로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였소. 부인은 이승에서 함께 오래 살다가 백년 후에 같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어떻겠소?" 여인은 대답했다. "낭군의 수명은 아직 남아 있으나. 저는 이미 저승의 명부에 이름이 실려 있으니 오래 머물러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굳이 인간 세상을 그리워해서 미련을 가진다면 명부의 법에 위반됩니다. 그렇게 되면 죄가 저에게만 미칠 것이 아니라 낭군님께까지 미칠까 두렵습니다 베풀어주시겠다면 유골을 거두어 비바람 맞지 않게 해주십시오."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미구에 여인은 말했다. "낭군님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말을 마치자 점점 사라져서 마침내 종적을 감추었다 서생은 아내가 말한 대로 그녀의 해골을 거두어 부모의 무덤 곁에 장사를 지내 주었다. 그 후 서생은 아내를 지극히 생각한 나머지 병이 나서 두서너 달만에 그도 또한 세상을 떠났다. 이 사실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슬퍼하고 탄식하면서, 그들의 절개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 김시습(金時習:1435~93)이 지은 한문소설. 〈금오신화 金鰲新話〉에 실려 있다.
흥부전 (2/2) "슬근슬근 톱질이야." 힘써 켜고 보니, 한데 가얏고쟁이 나오며 하는 말이, "우리 놀부 인심 좋고 풍류를 좋아한다 하기에 놀고 가옵세."둥덩둥덩 둥덩둥덩 하거늘, 놀부가 이를 보고 째보를 원망하는 말이, 톱도 잘못 다리고 네 콧소리에 보화가 변하였는가 싶으니, 소리를 일병하지 말라." 하니 째보 삯받기에 한 말도 못하고 그리하라 하니, 놀부 일변 돈백냥을 주어 보내고, 또 한 통 타고 보니 무수한 노승이 목탁을 두드리며 하는 말이, "우리는 강남 황제 원당시주승이라." 하니, 놀부놈이 어이없어 돈 오백 냥을 주어 보내거늘 째보 하는 말이, "즉금도 내 탓이냐." 하고 이주거니니, 놀부 이형상을 보고통분하여 성결에 또 한 통을 따오니 놀부 아내 말리는 말이, "제발 덕분에 켜지 마오. 그 박을 켜다가는 패가망신할 것이니 덕분에 마오." 놀부놈이 하는 말이, "소사한 계집년이 무슨 일을 아는 체하여 방정맞게 날뛰는가." 하며 또 켜고 보니, 요령 소리나며 상제 하나가 나오며, "어이어이 이보시오. 벗님네야 통짜 운을 달아 박을 헤리라, 헌원씨 배를 무어 타고 가니 이게 불통코 대성현 칠십 제자가 육례를 능통하니, 높고 높은 도통이라. 제갈 양의 능통지략 천문을 상통지리를 달통하기는 한나라 방토이요, 당나라 굴돌통 글강의 순통이요, 호반의 전동통이요, 강릉 삼척 꿀벌통, 속이 답답 흉복통, 호란의 입식통, 도감 포수 화약통, 아기 어미 젖통 다 터진다. 놀부의 애통이야. 어서 타라, 이놈 놀부야 네 상전이 죽었으니, 네 안방을 치우고 제물을 차려라."하며 애고애고 하거늘, 놀부 할 일 없어 돈 오천 냥을 주어 보내고, 도 한 통을 타고 보니 팔도 무당이 나오며, 각색 소리 하고. 뭉게뭉게 나아오는데, "청유레리 황유리라. 화장청라 저계온대부진, 각시가 놀으소서, 밤은 다섯 낮은 일곱 유 리 여섯 사십 용왕 팔만 황제 놀으소서. 내 집 성주는 와가 성주요, 네 집 성주는 초가 성주, 가내마다 걸망성주, 오막성주, 집동성주가 철철이 놀으소서. 초년 성주 열 일곱, 중년 성주 스물 일곱, 마지막 성주 쉰 일곱. 성주 삼위가 놀으소서." 하며, 또 한 무당 소리하되, "어찌 과히 하랴.오천 냥만 바치고 문서를 찾아가라." 하거늘, 놀부 즉시 고문을 열고 오천냥을 내어 주니라. 이때 놀부 계집이 이 말을 듣고 땅을 두드리며 울고 하는 말이, "애고 애고 원수의 박일네. 난데없는 상정이라고 곡절없는 속량은 무슨일고, 이만 냥 돈을 이름 없이 줄 수 없으니 나의 못할 노릇 그만하오."놀부 하는 말이, "에라 이년 물렀거라, 또 일이 틀리겠다. 이번 돈 들인 것은 아깝지 아니하다. 사전을 두고야 살 수 있느냐. 궁용한 판에 아는 듯 모르는 듯 잘되어 버렸다."하며 또 동산에 올라가서 살펴보니, 수통박이 아직도 무수한지라, 한 통을 따다 놓고 타려 할 새, 째보 하는 말이, "이번은 선셈을 아니 하려나 일은 일대로 할 것이니, 삯을 내어오소." 하니 놀부 이놈의 의수의 들어 본 열 냥을 주며 하는 말이, "자네도 보거니와 공연히 매만 맞고 생돈을 들이니 그 아니 원통한가. 이번부터는 두 통에 열 낭씩 정하세." 하니, 째보 허락하고 박을 반만 타다가 귀를 기울여 들으니, 소고치는 소리가 들리는지라 놀부 하는 말이, "째보야 이를 또 어찌 하잔 말고." 째보 하는 말이, "이왕 시작한 것이니 어서 타고 구경하세, 슬근슬근 톱질이야." 툭 타놓고 보니, 만여 명 사당거사 뭉게뭉게 나오며, 소고를 치며 다각다각 소리한다. "오동추야 달 밝은 밤에 임 생각이 새로워라. 임도 나를 생각 하는가." 혹 방아타령, 혹 정주타령, 혹 유산가 달거리 동타령, 혹 춘면곡, 전주가 등 온갖 가사를 부르며, 거사놈은 노방태 평양자, 길짐거사, 길을 인도하고 번개소로 번득이고, 긴염불, 짧은 염불하며 나오면서, 일ㄹ변 놀부를 사족을 뜨며, 허영가래를 치니 놀부 오장이 나올 듯하여 살고지라 애걸하니, 사당사들이 하는 말이, "내 명을 지탱하려 하거든 논문서와 밭문서를 죄죄 내어오라." 하거늘, 놀부 또 비위 동하여 박을ㄹ 따다가 타고 보니, 만여 명 왈자들이 나오되, 누구누구 나오던고, 이죽이, 저죽이, 난죽이, 홧죽이, 모죽이, 바금이, 닥정이, 거저리, 군평이, 털평이, 태평이, 이숙이, 무죽이, 팥껍질, 나돌모이, 쥐어 부디치기, 난정몽둥이, 아귀소, 악착이, 모로기, 변통이, 구변이, 광면이, 잣박쇠 믿음이 섭섭이, 든든이, 우리, 몽술이, 아들놈이, 휘몰아 나와 차례로 앉고, 놀부를 잡아내어 참바로 찬찬 동여 남게 거꾸로 달고 집장질 하는 놈을로 팔갈아 가며 심심치 않게 족이며, 왈자들이 공논하되, "우리 통문 없이 이같이 모임이 쉽지 아니한 일이4? 놀부놈은 종차 발기질 양으로 실컷 놀다가 헤어짐이 어떠하뇨." 여러 왈자들이 좋다 하고 좌정한 후 털평이 대강장에 앉아 말을 내되, "우리 잘하나 못하나 단가 하나씩 부딪혀 보세. 만일 개구 못하는 친구 있거든 떡메질 하옵세." 공론을 돌리고 털평이 비두로 소리를 내어 부르되, "새멱비 일갠 후에 일와세라. 아이들아 뒷뫼에 고사리가 하마아니 자랐으랴. 오늘은 일찍 꺾어 오너라. 새술 안주하여 보자." 또 무숙이 하나 하되, "공변된 천하없을 힘으로 어이 얻을손가. 진궁실 불지름도 오히려 무도하거든 하물며 의제를 죽이단 말가." 또 군평이 뜨더귀 시조를 하되, "사랑인들 임마다 하며, 이별인들 다 설우랴. 임진강 대동수를 황능묘이 두견이 운다. 동자야 네 선생이 오거든 조리박장사 못 얻으리오." 또 말껍질이 풍자 운을 단다. "만국병전 초목풍 취적가성 낙원풍, 일지홍도 낙만풍, 제갈 양의 동남풍, 어린아이 만경풍, 늙은 영감 변두풍, 왜풍, 광풍, 청풍, 양풍, 허다한 풍자 어찌다 달리." 또 보금이 사자 운을 단다. "적막강산금백년, 강남풍월한다년, 우락중분비백년, 인생부득항소년, 일장여소년 한진부지년, 금년, 거년, 친년, 만년, 억만년이로다." 또 나돌몽ㅇ이 인자 운을 다니, "양유청청 도수인, 양화수쇄도강인, 편삽주유소이린, 강청월근인, 귀인, 철인, 만물지중 유인이 최귀로다." 아귀쇠 절자 운을 단다. "꽃피었다 춘절, 잎피었다 하절, 황국단풍 추절, 수락석출하니 동절, 정절, 충절, 마디절 하니 절의로다." 또 악착이 덕자 운을 다니, "세상에 사람이 되어나서 덕이 없이 무엇하리. 영화롭다 자손의 덕, 충효전가 조상의"성황당 뻐꾸기 새야 너는 어이 우짖나니, 속빈 고양 남게 새잎 나라 우짖노라, 새잎이 이울어지니 속잎날가 하노라, 넋이야 넋이로다 녹양산 전세만일세, 영이별 세상하니 정수 없는 길이로다. 이화제석, 소함제석, 제불제친대신, 몸주벼락대신." 이렇듯 소리하며 도한 무당 소리하되, " 바람아 월궁의 달월이로세. 일광의 일광 강신 마누라, 전물로 나리소서. 하루도 열 두시 한 달 설흔달, 일년 열두달과 년 열 석달 백사를 도와주시옵는 안광당, 국수당, 마누라 개성부 덕물산 최형 장군 마누라, 왕십리 이기시당 마누라, 고개고개 두좌하옵신 성황당 마누라, 전물로 내리사이다." 이렇듯 소리 하거늘, 놀부 이 형상을 보고 식혜먹은 고양이 같은지라. 무당들이 장구토으로 놀부의 흉복을 치며 생난장을 치니, 놀부 울며 하는 말이, "이 어인 곡절인지, 죄나 알고 죽어지라." 한데, 무당들이 하는 말이, "다름이 아니라 우리 굿한 값을 내되 일푼 여축 없이 오천 냥만 내라." 하거늘, 놀부 할 일 없이 오천냥을 주 연후에 성즉성 패즉패라 하고 또 한 통을 따놓고, 째보놈더러 당부하되, "전 것은 다 헛 것이 되었으니 다시 시비할 개아들 없으니, 어서 톱질 시작하자." 하니 째보 하는 말이, "또 중병 나면 뉘게 떼를 써 보려느냐. 우습게 아들 소리 말고, 유복한 놈 다리고 타라." 하거늘 놀부 하는 말이, "이 용렬한 사람아, 내가 맹서를 하여도 이리하나. 만일 다시 군말 하거든 내 뺨을 개뺨치듯 하소." 하며 우선 선셈 열 냥을 채우거늘, 째보 그제야 비위 동하여 조랑이를 받아 수세하고박을 탈새, 놀부 반만 타고 귀를 기울여 눈이 나오도록 들여다보니, 박 속에 금빛이 비치거늘 놀부 가장 기뻐하는 체하고, "이 얘 째보야, 저것 뵈느냐? 이번은 완구한 금독이 나온다. 어서 타고 보자." 하며 슬근슬근 톱질이야, 툭 타 놓고 보니 만여 명 등짐꾼이 빛좋은 누른 농을 지고 귀역뀌역 나오는지라, 놀부 놀라 묻는 말이, "그것이 무엇이니," "경이오." "경이라 하니 면경과 석경이냐! 천리경 만리경이냐 그 무슨 경이니." "요지경이오. 얼시고 절시고 요지연을 둘러보소. 이 선의 숙향 당명황의 양귀비요, 항우의 우미인, 여포의 초선이 팔선녀를 둘러보소. 영양공주, 난양공주 진채봉, 가추눈, 심요연, 백능파, 계섬월, 적경홍 다 둘러보소." 하며 집을 떠 이니, 놀부 할 일 없어 돈 오백 냥을 주어 보내고, 또 한 통을 타고 보니, 천여 명 초라니 일시에 내다라 오곡(온갖) 방정을 떨되, 바람아 바람아 소소리 바람에 불렸는다. 동남풍에 불렸는다, 대자운을 달아 보자, 하걸의 경궁요대 달기로 희롱하던 상주적 녹대 올라가니 멀고먼 봉황대 보기 좋은 고소대 만세무궁 춘당대, 금군마병 오마대, 한무제 백양대, 조조의 동작대, 천대, 만대, 저대, 이대, 온갖 대라, 본대 익은 면대로세. 대대야 일시에 내달으며, 달려들어 놀부를 덜미잡이하여 가로 떨어치니, 놀부 거꾸로 떨어져, "애고애고 하라니 형님 이것이 어인 일이오. 생사람을 병신 만들지 말고 분부하면 하라 하는 대로 하리이다." 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거늘, 초라니 하는 말이, "이놈, 목숨이 귀하냐 돈이 귀하냐. 네 명을 보전하려거던 돈 오천냥만 내어라." 놀부 생각하되, 일이 도무지 틀렸으매 앙탈하여 쓸때없다 하고 또 오천 냥을 내어 주며, "압통 속을 자세히 알거든, 일러달라." 하니 초라니 대답하되, "우리는 각통이라 자세치 못하거니와, 어느 통인지 분명히 생금독이 들었으니 도모지 타고 보라." 하고 흔적없이 가더라. 놀부 이 말을 듣고 허욕이 복받쳐 동산으로 치달아 박 한 통을 따다가 켜랴 하니 째보 가장 위로하는 체하고 하는 말이, "이사람아 그만 켜소. 다 그러할가 하는 돈을 들이고 자네 매 맞은 양을 보니, 내가 아니 타겠네. 그만 쉬어 사오 일 후에 또 타 보세." 하니, 놀부 하는 말이, 아무렴 오죽할까, 아직도 돈냥이 있으니 또 그럴 양으로 마자 타고 보자." 하고 타려 할 제, 째보가 하는 말이, "자네 마음이 그러하니 굳이 말리지 못하거니와, 이번 박타는 삯도 먼저 내어오소."하니, 놀부 또 열 냥을 선급하고 한참을 타다가 귀를 기울여 들으니, 사람의 숙덕거리는 소리 나거늘, 놀부 이 소리를 듣고 가슴이 끔찍하여 미어지는 숨이 차 헐덕헐덕이다가 한 마디 소리 지르고 자빠지거늘 째보 하는 말이, 노부 하는 말이, "자네는 귀가 먹었는가. 이 소리를 못 듣는가. 또 자박이만 한 일이 벌어졌네! 이 박은 그만 둘밖에 할 일 없네." 하니 박 속에서 호령하는 말이, "이놈 놀부야, 그만두단 말이 무슨 말인고, 바삐 타라." 하거늘, 놀부 할 일 없어 마자 타니, 양반 천여 명이 말콩 망태를 쓰고 우그럭 벙거지 쓴 놈을 다리고 나오면서 각각 풍월을 하되, 서남협구 무산벽하니 대강이 번안 신예연을 추강이 적막어룡냉을 하니 인재서풍중선누라 혹 대학도 읽으며, 혹 맹자도 읽으며, 혹 맹자도 읽으며, 이렇듯 집을 뒤집는지라, 놀부 이 형상을 보고 빼려하니, 양반이 호령하되, "하인 없느냐, 저놈이 그치려 하니 바삐 움쳐라." 하니, 여러 하인이 달려들어 열 손가락을 벌려다가 팔매뺨을 눈에 불이 번쩍 나도록 치며, 덜미짚고 오듬(줌)이 진상하여 깔리거늘, 양반이 분부하되, "네 그놈의 대고리를 빼 밑굼에 박으라, 네 다라나면 면할까 바람갑이라 하늘로 오르며, 두더지라 당으로 들까. 상전을 모르고 거만하니, 저런 놈을 사매로 쳐 죽이리라." 놀부 비는 말이, "과연 몰랐사니 생원님 덕분에 살려지이다." 양반이 하인을 불러 농을 열고 문서를 주섬주섬 내어 놓고 하는 말이, "네 이 문서를 보라. 삼대가 우리 종이로다. 오늘이야 너를 찾았으니, 네 속량을 허든지 연련이 공을 하든지 작정하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너를 잡아다가 부리리라." 놀부 여짜오되, "소인이 과연 잔속을 몰랐사오니, 속량을 할진대 얼마나 하리잇가." 양반이 하는 말이, "어찌 과히 하랴. 오천 냥만 바치고 문서를 찾아가라." 하거늘, 놀부 즉시 고문을 열고 오천 냥을 내어 주니라. 이때 놀부 계집이 이 말을 듣고 땅을 두드리며 울고 하는 말이, "애고 애고 원수의 박일네. 난데없는 상전이라고 곡절없는 속량은 무슨 일고, 이만 냥 돈을 이름 없이 줄 수 없으니 나의 못할 노릇 그만 하오." 놀부 하는 말이, "애라 이년 물렀거라, 또 일이 틀리겠다. 이번 돈 들인 것은 아깝지 아니하다. 상전을 두고야 살 수 있느냐. 궁용한 판에 아는 듯 모르는 듯 잘되어 버렸다." 하며 또 동산에 올라가서 살펴보니, 수통박이 아직도 무수한지라, 한 통을 따다 놓고 타려 할 새, 째보 하는 말이, "이번은 선셈을 아니 하려나 일은 일대로 할 것이니, 삯을 내어오소." 하니 놀부 이놈의 의수의 들어 본 열 냥을 주며 하는 말이, "자네도 보거니와 공연히 매만 맞고 생돈을 들이니 그 아니 원통한가. 이번부터는 두 통에 열 냥씩 정하세." 하니, 째보 허락하고 박을 반만 타다가 귀를 기울여 들으니, 소고 치는 소리가 들리는지라 놀부 하는 말이, "째보야 이를 또 어찌 하잔 말고." 째보 하는 말이, "이왕 시작한 것이니 어서 타고 구경하세, 슬근슬근 톱질이야." 툭 타놓고 보니, 만여 명 사당거사 뭉게뭉게 나오며, 소고를 치며 다각다각 소리한다. "오동추야 달 밝은 밤에 임 생각이 새로워라. 임도 나를 생각 하는가." 혹 방아타령, 혹 정주타령, 혹 유산가 달거리 동타령, 혹 춘면곡, 전주가 등 온갖 가사를 부르며, 거사놈은 노방태 평양자, 길짐거사, 길을 인도하고 번개소롤 번득이고, 긴 염불, 짧은 염불하며 나오면서, 일변 놀부를 사족을 뜨며, 혀영 가래를 치니 놀부 오장이 나올 듯하여 살고지라 애걸하니, 사당사들이 하는 말이, "내 명을 지탱하려 하거든 논문서와 밭문서를 죄죄 내어오라." 하거늘, 놀부 견딜 수 없이 전답문서를 주어 보내니라. 째보 하는 말이, "나도 집에 볼 일 많으니 녹잡죄지 말고 어서 따오소. 종말에 설마 좋은 일이 업슬가." 하니, 놀부 또 비위 동하여 박을 따다가 타고 보니, 만여 명 왈자들이 나오되, 누구누구 나오던고, 이죽이, 저죽이, 난죽이, 홧죽이, 모죽이, 바금이, 딱정이, 거저리, 군평이, 털평이, 태평이, 이숙이, 무숙이, 팥껍질, 나돌모이, 쥐어 부디치기, 난정몽둥이, 아귀소, 악착이, 모로기, 변통이, 구변이, 광면이, 잣박쇠 믿음이 섭섭이, 든든이, 우리, 몽술이, 아들놈이, 휘몰아 나와 차례로 앉고, 놀부를 잡아내어 참바로 찬찬 동여 남게 거꾸로 달고 집장질 하는 놈으로 팔갈아 가며 심심치 않게 족이며, 왈자들이 공논하되, "우리 통문 없이 이같이 모임이 쉽지 아니한 일이니, 놀부놈은 종차 발길질 양으로 실컷 놀다가 헤어짐이 어떠하뇨." 여러 왈자들이 좋다 하고 좌정한 후 털평이 대강장에 앉아 말을 내되, "우리 잘하나 못하나 단가 하나씩 부딪쳐 보세. 만일 개구 못하는 친구 있거든 떡메질 하옵세." 공론을 돌리고 털평이 비두로 소리를 내어 부르되, "새벽비 일갠 후에 일와세라. 아이들아 뒷뫼에 가사리가 하마 아니 자랐으랴. 오늘은 일찍 꺾어 오너라. 새술 안주하여 보자." 또 무숙이 하나 하되, "공변된 천하없을 힘으로 어이 얻을손가. 진궁실 불지름도 오히려 무도하거든 하물며 의제를 죽이단 말가." 또 군평이 뜨더귀 시조를 하되, "사랑인들 임마다 하며 이별인들 다 설우랴. 임진강 대동수를 황능묘이 두견이 운다. 동자야 네 선생이 오거든 조리박 장사 못 얻으리오." 또 말껍질이 풍자 운을 단다. "만국병전초목풍 취적가성 낙원풍, 일지홍도 낙만풍, 제갈 양의 동남풍, 어린아이 만경풍, 늙은 영감 변두풍, 왜풍, 광풍, 청풍, 양풍, 허다한 풍자 어찌다 달리." 또 보금이 사자 운을 단다. "한식동풍 어류사, 원상한산석경사, 도연명의 귀거래사, 이태백의 죽지사, 그린 사사, 불사이자사, 이사, 저사, 무수한 사자로다." 또 주어 붙이기 년자 운을 단다. "적막강산금백년, 강남풍월한다년, 우락중분비백년, 인생부득항소년, 일장여소년 한진부지년, 금년, 거년, 친년, 만년, 억만년이로다." 또 나돌몽이 인자 운을 다니, "양유청청 도수인, 양화수쇄도강인, 편삽주유소일인, 강청원근인, 귀인, 철인, 만물지중 유인이 최귀로다." 아귀쇠 절자 운을 단다. "꽃피었다 춘절, 잎피었다 하절, 황국단풍 추절, 수락석출하니 동절, 정절, 충절, 마디절 하니 절의로다." 또 악착이 덕자 운을 다니, "세상에 사람이 되어나서 덕이 없이 무엇하리. 영화롭다 자손의 덕, 충효전가 조상의 덕, 교인화식 수인씨덕, 용병간과 헌원씨 덕, 상백제중 신농씨 덕, 사획팔괘 복희씨 덕, 삼국성 주 유혀덕, 촉국명장 장익덕, 난세간옹 조맹덕, 위의 명장 방덕, 울지경덕, 이덕, 저덕이 많건마는 큰 덕자가 덕이로다." 또 떠중이 연자 운을 단다. "황운새북의 무인연, 궁류저수삼월연, 장안성중의 월여인, 내연자가 이뿐인가." 또 변통이 질자 운을 모운다. "삼국풍진에 싸움질, 오월염친에 선자질, 세우강변 낚시질, 만첩청산 도끼질, 낙목공산 갈퀴질, 술먹은 놈의 주정질, 마누라님 물레질, 며눌아기 바느질, 좀영감은 잔말질, 사군영감 몽둥이질이라." 또 구변은 기자운을 단다. "곱장이 복장차기, 아이밴 계집의 뱃대기차기, 옹기장수의 작대기 차기, 불붙는데 키질하기, 해산하데 개잡기, 역신하는데 울타리 밑에 말뚝박기, 서로 싸우는 데 그놈의 허리띠 끊고 달아나기, 달음질하는 데 발내밀기라." 이렇듯 돌린 후에 차례로 거주를 물을 제, "저기 저분은 어디 계시오." 하니 한 놈이 대답하되, "내 집은 왕골이오." 하거늘, 그 중 군평이 삭임질은 소 아래턱이 아니면 옴니 자식이라 하는 말이, "게가 왕골 산다 하니 임금 왕자 골이니, 동관 대궐 앞 살으시오." "또 저 분은 어디 계시오." 한 놈이 대답하되, "나는 하늘골 사오." 군평이 하는 말이, "사직이란 마음이 하늘을 위한 아믈이니, 사직골 살으시오." "또 저분은 어디 계시오." 한 놈이 하는 말이, "나는 문안밖 사오." 군평이 하는 말이, "문안 문밖 산다하니, 대문 안 중문 밖이니 행랑어멈 자식이로다." "또 저분은 어디 계시오." 한 놈이 대답하되, "나는 문안 사오." 군평이 하는 말이, "그는 알지 못하겠소. 문안은 다 그대의 집인가." 그놈이 하는 말이, "우리집 방문 안 산다는 말이오." "또 저분은 어디 계시오." 한 놈이 대답하되, "나는 횟두루목골 사오." 군평이 하는 말이, "내가 삭임질을 잘 하되 그 골 이름은 처음 듣는 말이오." 그놈이 하는 말이, "나는 집없이 되는 대로 횟두루 다니기에 할 말 없어 내 의사로 한 말이오." 군평이 하는 말이, "바닥 셋째 앉은 분은 성자를 뉘라 하시오." 한 놈이 대답하되, "나무 둘이 씨름하는 성이오." 군평이 하는 말이, "목자 둘이 겹으로 붙이니, 수풀림자 임 서방이오." "또 저분은 뉘라 하시오." 한 놈이 답하되, "내 성은 목독이에 갓 쓰인 자이오."군평이 하는 말이, "갓 머리에 안에 나무목 하였으니, 나라송자 송서방이오." "또 저분은 뉘라하시오." 한 놈이 답하되, "내 성은 계수남기란 목자 아래 만승천자란 잣자를 받친 오얏이자 이서방이오." "또 저분은 뉘라 하시오." 한 놈이 원간 무식한 놈이라 함부로 하는 말이, "내 성은 난장 몽둥이란 나무목자 아래 발 긴 역적의 아들, 누렁쇠아들 검정개 아들이란 아들자 받침 복성화이자 이 서방이오." "또 저분은 뉘라 하오." 한 놈의 성은 배가라, 정신이 헐하기로 주머니에 배를 사넣고 다니더니 성은 묻는 양을 보고, 우선 주머니를 열고 배를 찾되 배가 없는지라, 기가 막혀 꼭찌를 치며 하는 말이, "나는 원수의 성으로 망하겠다. 이번도 뉘 아들놈이 남의 성을 내어 먹었구나, 생후에 성을 잃어버린 것이 돈반 팔푼 열 여덟 푼어치나 되니, 갓득한 형세에 성을 장만하기에 망하겠다." 하고 부리나케 주머니를 뒤진다. 군평이 하는 말이, "게 성을 물은즉, 팔결에 주머니를 왜 만지시오." 그놈이 하는 말이, "남의 잔속을랑 모르고 답답한 말 말으시오. 내 성은 먹는 성이올세." 하며 구석구석 찾으매 배꼭지만 남았는지라 가장 무안하고 위급하여 배꼭지를 내어 들고 하는 말이, "하면 그렇지 제 어디로 가리오." "성 나머지 보시오." 하니 군평이 하는 말이, "친구의 성이 꼭지성방인가 보오." "그놈의 말이 옳소. 옳소 과연 아는 말이올세." "또 저분은 뉘라 하시오." 한 놈이 하는 말이, "내 성은 안감이라는 안자에 부어터져 죽다는 부자의 난장몽동이란 동자를 합한 안부동이라 하오." "또 저 분은 뉘시오." 한 놈이 답하되, "내 성은 쇠금자를 열 대엿 쓰오." 군평이 색여보고 하는 말이, "쇠가 열이니 김자 하나를 떼어 성을 만들고, 나머지 쇠가 아홉이니 부딪치면 덜렁덜렁 할 듯하니 합하면 김덜렁쇠요." "또 저분은 뉘시오." 한 놈이 손을 불끈 쥐고 하는 말이, "내 성명은 이러하오." 군평이 색여보고 하는 말이, "성은 주가요, 명은 머귄가 보오." "또 저분은 뉘라 하오." 한 놈이 손을 길길이 평어 보이거늘, 털펑이 색이는 말이 "손을 펴 뵈니 성은 손이오, 명은 가락인가 보오." "저분은 뉘라 하시오." 한 놈이 답하되, "내 성명은 한가지요." 떠중이 하는 말이, "저기 저분 성명과 같단 말이오." 그 놈이 하는 말이, "어찌 알고 하는 말이오." "내 성은 한이오.이름은 가지란 말이올세." "또 친구의 성은 뉘라 하오." 한 놈이 답하되, "나는 난장몽동의 아들놈이오." "또 저분은 뉘시오." 한 놈이 하는 말이, "나도 기오." 부딪치기 내달아 히히 웃고 하는 말이, "게도 난장몽동이가 같단 말인게오." 그놈이 하는 말이, "이 양반아 이것이 우스운 체요, 짖궂은 체요. 말 잘하는 체요. 누를 욕하는 말이요, 성명을 바로 일러도 모르옵나. 각가 뜯어 일러야 알겠습니다. 성은 가나요, 이름은 도기라 하옵네." "또 저분은 뉘라 하오." 한 놈이 하는 말이, "내 성명은 이털 저털, 괴털쇠털, 말털, 시금털털하는 털자에, 보뵤 못자 합하면 털보란 사람이올세." "또 저분은 뉘시오." 한 놈이 답하되, "조치 아니하오." 거절이 내달아 하는 말이, "성명을 물은즉, 조치 아니하단 말이 어쩐 말이오." 그 놈이 하는 말이, "내 성은 조요, 이름은 치아니올세."군집이 내달아 하는 말이, "저기 저분은 무슨 성이오." 한 놈이 답하되, "나는 헌 누더기 입고 덤불로 나오던 성이오." 떠중이 색여 하는 말이, "헌 옷 입고 가시덤불 나올 적에 오죽이 뭐여졌겠소 무인생인가." "또 저 친구는 무슨 성이오." 한 놈이 답하되, "나는 대가리에 종기나던 해에 났소." 군평이 하는 말이, "머리에 종기 났으면 병을 썼으니 병인생인가." 도 한 놈이 하는 말이, "나는 동창나던 해오."군집이 삭이되, "병을 등에 짊어졌으니 병진생인가 보오." 또 한 놈이 대답하되, "나는 햅쌀머리에 난 놈이오." 나돌몽이 하는 말이, "햅쌀머리에 났으니 신미생인가." 또 한놈이 말하되, "나는 장에 가서 송아지 팔고 오던 날이오." 숫쇠 내달아 단단히 웃고 하는 말이, "장에 가 소를 팔았으면 값을 받아 지고 왔을 것이니 갑진생인가 보오." 이렇듯 지껄이다가 그 중에 한 활자가 내달아 하는 말이, "그렇지 아니하다. 놀부놈을 어서 내어 발기자." 하니 여러 왈자 대답하되, "우리가 수작하느라고 이때가지 두었지 벌써 짖을 놈이니라." 하니 안착이 내달아 하는 말이, "그 말이 옳다." 하고 놀부를 잡아 들여 찢고, 차고 구울리며, 주무르고, 잡아 뜯고, 사주리를 하며, 휘추리로 후리며, 다리사북을 도지계 틀며, 복숭아 뼈를 두드리며, 용심지를 하여 발 살을 탄근질 하여, 여러 가지 형벌로 쉴 사이 없이 갈라트려 가며 죽이니, 놀부 입으로 토혈하며 여러 해 묵은 똥을 싸고, 세치 네치를 부르며 애걸하니, 여러 왈자 한번씩 두드리고 분부하되, "이놈 들으라. 우리가 금강산 구경가다가 노자가 필접하였으니, 돈 오천 냥만 내어 와야 하지,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절명을 시키기라." 하니 놀부 오천 냥을 주니라. 놀부 사족을 쓰지 못하여 혼백이 떨어졌으되, 종시 박탈 마음이 있는지라. 기염기염 동산에 올라가서 박 한 통을 따다가 힘을 다하여 타고 보니, 팔도 소경이 뭉치어 여러 만동이 막대를 흩어 짚고 인물을 구긱이며 내달아 하는 말이, "놀부야 이놈 날까, 길까, 네 어데로 갈다 너를 잡으려고 안남산, 밖남산, 무계동, 쌍계동으로 면면 촌촌 방방 곡곡이 두루 편답하더니, 오늘날 이에서 만났도다."하고 되는 대로 휘 두다리니, 놀부 살고지라 애걸하거늘, 소경들이 북을 두드리며 소리하여 경을 읽되, "전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무애대비심, 신묘장구대다라니왈, 나무라다라다라야, 남막일약바로기제사바라야아, 사토바야지리지리지지리도 도도로모자모자야, 이시성조원시천조, 제옥청성경태상노군, 태청성경나후설군게도성군, 삼라만상이십팔수성군, 동방목제성군, 남방화제성군, 서방금제성군, 북방수제성군, 삼십육등신선, 연즉, 월즉, 일즉, 시즉, 사자태을성군, 놀부놈을 급살방양탕으로 갖초 점지하옵소서. 급급여율 영사파하." 이렇듯 경을 읽은 후에, 놀부더러 경 읽은 값을 내라하고 집안을 뒤집으니 놀부 할 일 없어 오천 냥을 주고 생각하되 집안에 돈일푼이 없어 탕진하였는지라, 이를 어찌하지 하나니 하면서도 동산으로 올라가서 또 왜골의 박 한 통을 따 가지고 내려와서 째보를 달래되, "이번 박은 겉으로 봐도 하 유명하니 바삐 타고 구경하세." 하며 타다가 귀를 기울여 들으니, 우레 같은 소리 진동하며 비로다 비로다 하니 놀부 어찌할 줄 모르고 박타기를 머무르니 박 속에서 또 불러 이르되, "무슨 거래를 이다지 하는가." 놀부 더욱 겁을 내어 하는 말이, "비라 하니 무슨 비온지 당명황의 양귀비오니잇가, 창오산 이비닛가. 위선 존호를 알아지이다." 박 속에서 하는 말이, "나는 유현덕의 아우 거기장군 장비로다." 하니 놀부 이 소리를 들으며 정신이 아득하여 하는 말이, "째보야 이 일을 어찌하단 말이니. 이번은 바칠 돈도 없고, 할 일 없고 네고 나고 죽는 수밖엔 없다."하니 째보놈이 하는 말이, "이 사람아 그 어인 말인고. 나는 무슨 탓으로 죽는단 말인가. 다시 그런 말 하다가는 내 손에 급살탕을 먹을 것이니, 그런 미친 놈의 소리는 말고 타던 박이나 타세. 장군이 나오시거든 빌어나 보소." 놀부도 할 일 없으매 마지 못하여 마저 타고 보니 한 장수 나오되, 얼굴은 검고 구레나룻을 거사리고, 고리눈을 부릅뜨고, 봉 그린 투구에 용린갑을 입고 장팔사모를 들고 내달으며 "이놈 놀부야 네 세상에 나서, 부모에게 불효하고 형제 불화할 뿐더러, 여러 가지 죄악이 많기로 천도가 무심치 아니하사, 날로 하여금 너를 죽여 없이하라 하시기로 왔거니와, 너 같은 잔명을 죽여 쓸데 없으니 대저 견디어 보아라." 하고 엄파 같은 손으로 놀부를 훔쳐 잡아 끌을고 헛간으로 들어가 호령하되, 멍석을 펴라 하니 놀부 벌벌 떨며 멍석을 펴니, 장비 벌거벗고 멍석에 엎드려 분부하되, "이놈 주먹괴를 쥐어 내 다리를 치라." 하니 놀부 진력하여 다리를 치다가 팔이 지쳐 애걸하니, 장비 호령하되, "이놈 잡말 말고 기어올라 발길로 내 등을 찧어라." 하거늘 놀부 그 등을 치어다 본즉, 천만장이나 한지라 비는 말이, "등에 올라가다간 만일 미끄러져 낙상하면 이후에 빌어먹을 길도 없으니 덕분에 살거지이다." 하니 장비 호령하되, "정 올라가지 어렵거든, 사닥다리를 놓고 못 올라갈다." 놀부 마지 못하여 죽을 번 살 번 올라가서 발로 한참을 치더니, 또 다리가 지쳐 꿈쩍할 길 없는지라. 또 애걸하니 장비 호령하되, "그러하면 잠깐 나려앉아 담배 한 대만 먹고 올으라." 하니 놀부 기어 내리다가 미끄러져 모저비로 떨어져, 뺨이 사태나고, 다리 접질려 혀를 빠지우고, 엎드려 애걸하니, 장비 이를 보고 어이없어 일어 앉아 하는 말이, "너를 십분 용서하고 가노라." 하더라. 놀부 생급살을 맞고도 동산으로 올라가서 박 한 통을 따 가지고 내려와서 하는 말이, "째보야, 이 박을 타고 보자." 하니 째보 생각하되, 낌새를 본즉 탈 박도 없고 날찍이 없는지라, 소피하러 감을 핑계하고 밖으로 빼니라. 놀부 할 일 없어 종을 다리고 박을 켜고 보니, 아무것도 없고 박속이 먹음직 한지라 죽을 끓여 맛을 보고 하는 말이, "이런 국맛은 본 바 처음이로다." 하며, 당동당동 하다가 미쳐서 또 집 위에 올라가 보니, 박 한 통이 있으되 빛이 누르고 불빛 같은지라, 놀부 비위 동하여 따 가지고 나려와 한참 타다가 귀를 기울여 들으니, 아무 소리 없고 전 동네가 물신 놀신 만치이거늘, 놀부 하는 말이, "이 박은 농 익어 썩어진 박이로다." 하고 십분의 칠팔 분을 타니, 홀연 박 속으로서 광풍이 대작하며, 똥줄기 나오는 소리 산천이 진동하는지라 왼집이 혼이 떠서 대문 밖으로 나와 문틈으로 엿보니, 되똥, 물지똥, 진똥, 마른똥 여러 가지 똥이 합하 나와 집 위까지 쌓이는지라, 놀부 어이없어 가슴을 치며 하는 말이, "이런 일도 또 있는가? 이러할 줄 알았으면 동냥할 바가지나 가지고 나오더면 좋을 번하다." 하고 뻔뻔한 놈이 처자를 이끌고 흥부를 찾아가니라.
흥부전 1/2 화설 경상 전라 양도 지경에서 사는 사람이 있느니, 놀부는 형이오, 흥부는 아우라. 놀부 심새 무거하여 부모 생전 분재 전답을 홀로 차치하고, 흥부 같은 어진 동생을 구박하여 건너 산 언덕 밑에 내 떠리고 나가며 조롱하고 들어가며 비양하니, 어찌 아니 무지하리. 놀부 심사를 볼작시면 초상난 데 춤추기, 불붙는 데 부채질하기, 해산한 데 가닭작비, 장에 가면 억매흥정하기, 집에서 못쓸 노릇하기, 우는 아해 볼기치기, 갓난아해 똥먹이기, 무죄한 놈 뺨치기, 빚값에 계집뺏기, 늙은 영감 덜미집기, 아해밴 계집 배차기, 우물 밑에 똥누기, 오려논에 물터놓기, 자친 밥에 돌 퍼붓기, 패는 곡식 이삭자르기, 논두렁에 구멍뚫기, 호박에 말뚝박기, 곱사장이 엎어놓고 발꿈치로 탕탕치기, 심사가 모과 나무의 아들이라. 이놈의 심술은 이러하되, 집은 부자라 호의호식 하는고나. 흥부는 집도 없이 집을 지으려고 집재목을 내려갈 양이면, 만첩청산 들어가서 소부등 대부등을 와드렁퉁탕 버혀다가 안방, 대청, 행라, 몸채 내외 분합 물림퇴에 살미살창 가로닫이 입구자로 지은 것이 아니라, 이놈은 집재목을 녀려하고 수수밭 틈으로 들어거서, 수수대 한 뭇을 베어다가 안방, 대청, 행랑, 몸채 두루짚어 말집을 꽉 짓고 돌아보니 수수대 반 뭇이 그저 남았구나. 방 안이 넓던지 말던지, 양주 드러누워 기지개켜면 발은 마당으로 가고, 대고리는 뒷곁으로 맹자 아래 대문하고, 엉덩이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니, 동리 사람이 출입하다가 이 엉덩이 불러들이소하는 소리, 흥부 듣고 깜짝 놀라 대성 통곡 우는 소리, "애고답답 설운지고 어떤 사람 팔자 좋아, 대광보국숭록대부 삼태육경 되어나서, 고대광실 좋은 집에 부귀공명 누리면서 호의호식 지내는고, 내 팔자 무슨 일로 말만한 오막집에 성소광어공정하니, 지붕 말래 별이 뵈고, 청천한운세우시에 우대량이 방중이라, 문 밖에 세우오면 방 안에 큰 비 오고 폐석 초갈 찬 방 안에, 헌 자리 벼룩 빈대 등이 피를 빨아먹고 앞문에는 살만 남고, 뒷벽에는 외만 남아 동지섣달 한풍이 살쏘듯 들어오고, 어린 자식 젖 달라고 자란 자식 밥달라니, 차마 설워 못 살겠네." 가난한중 우엔 자식은 풀마다 나하서 한 설흔나믄 되니, 입힐 길이 전혀 없어, 한 방 안에 몰아 넣고 명석으로 쓰이고 대강이만 내여놓으니, 한 녀석이 똥이 마려우면 뭇 녀석이 시배로 따라간다. 그 중에 값진 것을 다 찾는고나. 한 녀석이 나오면서, "애고 어머니 우리 열구자탕에 국수 말아 먹으면." 또 한 년이 나앉으며 "애고 어머니 우리 벙거지를 먹으면." 또 한 녀석 내달으며, "애고 어머니 우리 개장국에 흰 밥 조금 먹으면." 또 한 녀석이 나오며, "애고 어머니 대추찰떡 먹으면." "애고 이녀석들아 호박국도 못 얻어 먹는데 보채지나 말려무나." 또 한 녀석 나오며, "애고 어머니 우에 울부터 불두덩이 거려우니 날 장가 들여주오." 이렇듯 보챈들 무엇 먹여 살려낼고. 집안에 먹을 것이 있던지 없던지, 소반이 네 발로 하늘게 축수하고 솥이 목을 매여 달렸고, 조리가 탁걸이를 하고, 밥을 지어 먹으려면 책력을 보아 잡자일이면 한 때씩 먹고 새앙쥐가 쌀알을 얻으려고 밤낮 보름을 다니다가 다리에 가래토시 서서 파종하고 앓는 소리, 동리 사람이 잠을 못 자니 어찌 아니 설울손가. "아가 아가 우지 마라. 아모리 젖 달란들 무엇 먹고 젖이 나며, 아모리 밥달란들 어디서 밥이 나랴." 달래올 제 흥부 마음 인후하여 청산유수와 곤륜옥결이라. 성덕을 본받고 악인을 저어하며 물욕에 탐이 없고 주색에 무심하니, 마음이 이러함에 부귀를 바랄소냐? 흥부 아내 하는 말이, "애고 여봅소. 부질없는 청렴 맙소. 안자 단표 주린 염치 삼십 조사하였고, 백이숙제 주린 염치 청루소년 우었으니, 부질없는 청렴 말고 저 자식들 굶겨 죽이겠으니, 아자번데 집에 가서 쌀이 되나 벼가 되나 얻어옵소." 흥부가 하는 말이, "낯을 쇠우에 슬훈고! 형님이 음식 끝을 보면 사촌을 몰라보고 똥싸도록 치옵나니, 그 매를 뉘 아들놈이 맞는단 말이오. 애고 동냥은 못준들 쪽박조차 깨칠손가. 맞으나 아니 맞으나 쏘아나 본다고 건너가 봅소." 흥부 이 말을 듣고 형의 집에 건너갈 제, 치장을 볼작시면 편자 없는 헌 망건에, 박쪼가리 관자달고, 물레줄로 당끈 달아, 대고리 터지게 동이고, 짓만 남은 중치막, 동강이은 헌술띠를 흉복통에 눌러띠고, 떨어진 헌 고의에 청올치로 다님매고, 헌 짚신 감발하고 세 살부채 손에 쥐고, 서흡들이 오망자루 꽁무니에 비슥 차고, 바람맞은 병인같이 잘 쓰는 새수같이 어슥비슥 건너달아, 형의 집에 들어가서 전후좌우 바라보니, 앞노적, 뒷노적, 멍에노적 담불담불 쌓았으니, 흥부 마음 즐거우나 놀부 심사 무거하여 형제끼리 내외하여 구박이 태심하니, 흥부 할 일 없이 뜰 아래서 문안하니, 놀보가 묻는 말이, "네가 뉜고." " 내가 흥부요." " 흥부가 뉘 아들인가?" "애고 형님, 이것이 우엔 말이오. 비나이다. 형님전에 비나이다. 세 끼 굶어 누운 자식 살려 낼 길 전혀 없으니 쌀이 되나 벼가 되나 양단간에 주시면 품을 판들 못 갚으며, 일을 한들 공할손가. 부디 옛일을 생각하여 사람을 살려 주오." 애걸하니, 놀부놈의 거동보소. 성낸 눈을 부릅뜨고 볼을 올려 호령하되, "너도 염치 없다. 내 말 들어 보아라. 천불생무록 지인이요, 지불생무명지최라. 네 복을 누를 주고, 나를 이리 보채느뇨? 쌀이 많이 있다한들 너 주자고 노적 헐며, 벼가 많이 있다고 너 주자고 섬을 헐며, 가룻되나 주자한들 북고왕 염소독에 가득 넣은 것을 독을 열며, 의복이나 주자한들 집안이 고로 벗었거든 넌를 어찌 주며, 찬밥이나 주자 한들 새끼 낳아 거먹암개 부엌에 누웠거든 너 주자고 개를 굶기며 지거미나 주자한들 구중방 우리 안에 새끼 낳은 돛이 누웠으니 너 주자고 돛을 굶기며, 겻섬이나 주자 한들 큰 농우가 네 필이니 너 주자고 소를 굶기랴! 염치없다. 흥부놈아!" 하고 주미괴를 불끈 쥐어 뒷꼭지를 꽉 짚으며, 몽둥이를 지끈 꺽어 손재승의 매질하듯 원화상의 법고치듯, 아주 쾅광 두다리니, 흥부 울며 이른 말이, "애고 형님 이것이 우엔 일이오. 방약무인 도척이도이에서 성현이오. 무지불측 관숙이도 이에서 군재로다. 우리 형제 어찌하여 이다지 극악한고." 탄식하고 돌아오니 흥부 아내 거동보소. 흥부 오기를 기다리며, 우는 아기 달래올 제 물레질하며, " 아가 아가 우지마라. 어제 저녁 김 동지집 용정방아 찧어 주고 쌀 한되 얻어다가 너희들만 끓여주고, 우리 양주 어제 저녁 이때까지 그저 있다 윙윙윙 너 아버지 저 건너 아자버니집에 가서 돈이 되나 쌀이 되나 양단간에 얻어 오면, 밥을 짓고 국을 끓여, 너도 먹고 나도 먹자. 우지 마라" 윙윙윙 아무리 달래어도 악치듯 보채는고나. 흥부 아내 할 일 없어 흥부 오기 기다릴 제, 의복치장 볼작시면 깃만 남은 저고리, 다 떨어진 누비 바지, 몽동치마 떨쳐입고 목만 남은 헌 버선에, 뒷죽없는 짚신 신고 문 밖에 썩나서며,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다릴 제, 칠 년 대한 가문 날에 비오기 기다리듯, 구년지수 장마진 데 볕나기 기다리듯, 제갈 양 칠성단에 동남풍 기다리듯, 강태공 위수상에 시절 기다리듯, 만리 전장에 승전하기 기다리듯, 어린 아해 경풍에 의원 기다리듯, 독수공방에 낭군 기다리듯, 춘향이 죽게 되어 이도령 기다리듯, 과년한 노처녀 시집가기 기다리듯, 삼십 년은 노도령 장가가기 기다리듯, 장중에 들어가서 과거하기 기다리듯, 세끼 굶어 누운 자식 흥부 오기 기다린다. "애고애고 설운지고." 흥부 울며 건너오니 흥부 아내 내달아, 두 손목을 덥썩 잡고, "우지 마오. 어찌하여 울으시오. 형님 전에 말하다가 매를 맞고 건너옵나, 출문망 출문망 허위 허위 오는 사람, 몇몇이 날 속인고. 어찌하여 이제 옵나." 흥부는 어진 사람이라 하는 말이, "형님이 서울 가고 아니 계시기에 그저 왔읍내." "그러하면 저를 어찌하잔 말고. 짚신이나 삼아 팔아 자식들을 살려 내옵소. 짚이 있읍나 저 건너 장자 집에 가서 얻어 보옵소." 흥부 거동 보소. 장자 집에 가서, "장자님 계시오." " 계 누군고." " 흥부요." " 흥부 어찌 왔노." " 자네는 어찌나 지내노." "지내노라니 오죽하오. 짚 한 못만 주시면 짚신을 삼아 팔아 자식들을 살리겠소." "그리하소." 하고 종을 불러 좋은 짚으로 서너 뭇 갖다가 주니, 흥부 짚을 가지고 건너와서 짚신을 삼아 한 죽에서 돈 받고 팔아 양식을 팔아 밥을 지어 처자식과 먹은 후에 이리하여도 살길 없어 흥부 아내 하는 말이, " 우리 품이나 팔아 봅세." 흥부 아내 품을 팔 제 용정방아 키질하기, 매주가에 술거르기, 초상집에 제복짓기, 제사집에 그릇닦기, 신사집의 떡만들기, 언손 불고 오좀치기, 해빙하면 나물 뜯기, 춘보 갈아 보리놓기. 온갖으로 품을 팔고, 흥부는 정이월에 가래질하기, 이삼월에 붙임하기, 일등전답 못논 갈기, 입하전의 면화 갈기, 이집저집 이엉엮기, 더운 날에 보리치기, 비오는 날 멍석걷기, 원산근산 시초베기, 무곡주인 역인지기, 각읍 주인 삯길가기, 술만 먹고 말짐실기, 오 푼 받고 마철박기, 두 푼 받고 똥재치기, 한 푼 받고 비매기, 식전에 마당쓸기, 저녁에 아해 만들기, 온 가지로 다 하여도 끼니가 간데없네. 이 때 본읍 김 좌수가 흥부를 불러 하는말이, "돈 삼십 냥을 줄것이니, 내 대신으로 감영에 가 매를 맞고 오라." 하니 흥부 생각하되, 삼십 냥을 받아 열 냥아치 양식팔고, 닷 냥아치 반찬사고, 다 냥아치 나무사고, 열 냥이 남거든, 매맞고 와서 몸 조섭을 하리라 하고, 감영으로 가려 할 제 흥부 아내 하는 말이, "가지 마오. 부모 혈육을 가지고 매 삯이란 말이 우엔 말이오." 하고, 아무리 만류하되 종시 듣지 아니하고, 감영으로 내려가더니 아니되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마침 나라에서 사가내려 죄인을 방송하시니, 흥부 매품도 못 팔고 그저 온다. " 매를 맞고 왔읍나, 아니 맞고 왔읍네. 애고 좋쇠 부모유체로 매품이 무슨 일고." 흥부 울며 하는 말이, " 애고 애고 설운지고. 매품 팔아 여차여차 하자 하였더니 이를 (어찌)하잔 말고." 흥부 아내 하는 말이, " 우지마오, 제발 덕분 우지 마오. 봉제사 자손 되어나서, 금화금벌뉘라 하며, 가뫼 되어나서 낭군을 못 살리니 여자 행실 참혹하고, 유자 유녀 못 차리니 어미 도리 없는지라. 이를 어찌 할고. 애고 애고 설운지고, 피눈물이 반죽되던 아황여영의 설움이요, 조작가 지어 내던 우마시의 설움이요, 반야산 바위 틈에 숙낭자의 설움을 적자한들 어느 책에다 적으며, 만경창파 구곡수를 말말이 두량할 양이면 어느 말로 다 되며, 구만 리 장천을 자자히 재이련들 어느 자로 다자힐고. 이런 설움 저런 설움 다 후리쳐 버려두고, 이제 나만 죽고지고." 하며 두주머리를 불끈 쥐어 가슴을 쾅쾅 두다리니, 흥부 역시 비감하여 이른 말이, "우지 말소, 안연 같은 성인도 안빈낙도 하였고, 부암에 담쌓던 부열이도 무정을 만나 재상이 되었고, 신야에 밭갈던 이윤이도 은탕을 만나 귀히 되었고, 한신같은 영웅도 초년 궁곤하다가 한나라 원융이 되었으니, 어찌 아니 거룩하뇨. 우리도 마음만 옳게 먹고 되는 때를 기다려 봅세." 하여 그달 저달 다 지내고, 춘절이 돌아오니, 흥부가 이왕 식자는 있는지라 수수대로 지은 집에 입춘을 써 붙이되 글자를 새겨 붙였구나. 겨울동자 갈거자, 천지간에 좋을시고, 봄춘자, 올래자 녹음방초 날비자, 우는 것은 짐승수자, 나는 것은 새조자, 연비여천 소리개 연자, 오색의관 꿩치자, 월삼경파(화)지상에 슬피우는 두견성자, 쌍거 쌍내 제비 연자, 인간만물 찾을심자, 이 집으로 들입자, 일월도 박식하고, 음양도 소새커든, 하물며 인물이야 성식인들 없을소냐. 삼월 삼일 다달으니 소상강 떼기러기 나노라 하직하고, 강남서 나온 제비 왔노라 현신할 제, 오대양에 앉았다가 비래비거 넘놀면서, 흥부를 보고 반겨라고 좋을호자, 짖어귀니 흥부가 제비를 보고 경계하는 말이, "고대광실 많건만은 수숫대 집에 와서 네 집을 지었다가 오뉴월 장망에 털석 무너지면 그 아이 낭패오냐." 제비 듣지 아니하고 흙을 물어 집을 짓고 알을 안아 깨인 후에 날기 공부 힘쓸 때에 의외에 대망이 들어와서 제비새끼를 몰수이 먹으니 흥부 깜짝 놀라 하는 말이, "흉악하다 저 짐승아, 고량도 많건마는, 무죄한 저 새끼를 몰식하니 악착하다. 제비새끼 대성황제 나계시고, 불식 고량 살아나니 인간에 해가 없고, 옛 주인을 찾아오니, 세 뜻이 유정하되, 제 새끼를 이제 다 참척을 보니 어찌 아니 불쌍하리. 저 짐승아. 패공의 용천검이 적혈이 비등할 제 백제의 영혼인가. 신장도 장할시고, 영주광야 너른 뜰에 숙낭자에 해를 입히던 풍사망의 대망인가. 머리도 흉악하다." 이렇듯 경계할 제, 이제 제비새끼 하나이 공중에서 뚝 떨어져 대발 트메 발이 빠져 두 발이 자끈 부러져 피를 흘리고 발발 떨거늘, 흥부가 보고 펄쩍 뛰어 달려들어 제비새끼를 손에 들고 잔인히 여겨 하는 말이, " 불쌍하다 이 제비야, 은왕 성탕 은혜 미쳐, 금수를 사랑하여 다 길러 내었더니, 이 지경이 되었으매, 어찌 아니 간련하리. 여봅소 아기어미 무슨 당사실 있읍내." "애고 굶기를 부자의 밥 먹듯 하며 무슨 당사실이 있단 말이." 하고, 친만 의외 실 한 닙 얻어 주거늘, 흥부가 칠산 조개 껍질을 벗겨 제비 다리를 싸고 실로 찬찬 동여 찬 이슬에 얹어두니 십여일이 지난 뒤 다리 완구하여 제 곳으로 가려 하고 하직할 제, 흥부가 비감하여 하는 말이, "먼 길에 잘 들어가고 명년 삼월에 다시 보지."하니, 저 제비 거동보소, 양우 광풍 몸을 날려 백운을 냉소하고, 주야로 날아 강남을 득달하니 제비황제 보고 물으되, " 너는 어이 저나니." 제비 여짜오되, "소신의 부모가 조선에 나가 흥부의 집에다가 득주하고 소신등 형제를 낳았삽더니, 의외 대망의 변을 만나 소신의 형제다 죽고 소신이 홀로 아니 죽으려 하여 바르작거리다가 뚝 떨어져, 두 발목이 자근 부러져 피를 흘리고 발발 떠온즉, 흥부가 여차여차 하여 절각이 의구하와 이제 돌아왔사오니 그 은혜를 십분 일이라도 갚기를 바라나이다." 제비황제 하교하되, " 그런 은공을 모랄서는 행세치 못할 금수라, 네 박씨를 갖다 주어 은혜를 갚으라." 하니, 제비 사은하고 박씨를 물고 삼월 삼일이 다달으니, 제비 건공에 떠서 여러 날 만에 흥부집에 이르러 넘몰 적에, 북해 흑룡이 여의주를 물고 채운간에 넘노는 듯 단산 채봉이 죽실을 물로 오동상에 넘노는 듯, 춘풍 황앵이 나비를 물고 세류 변에 넘노는 듯, 이리 갸웃 저리 갸웃 넘노는 것, 흥부 잠깐 보고 낙낙하여 하는 말이, " 여봅소 거년 가던 제비 무엇을 입에 물고 와서 넘노읍네." 이렇듯 말할 제 제비 박씨를 흥부 앞에 떨어뜨리니 흥부가 집어 보니 한 가운데 보은표라 금자로 새겼거늘, 흥부 하는 말이, "수안의 배암이 구슬을 물어다가 살린 은혜를 갚았으니, 저도 도한 생각하고 나를 갖다 주니, 이것이 또한 보배로다." 흥부 아내 묻는 말이, " 그 가운데 누르스름한 것이 아마 금인가 보외." 흥부가 대답하되, " 금은 이제 없나니, 초한적의 진평이가 범아부를 쫓으려고, 화금 사만 근을 흩었으니 금은 이제 절종되었읍네." "그러하면 옥인가 보외." " 옥도 이제는 없나니, 곤륜산에 불이 붙어 옥석이 구분하였으니, 옥도 이제 없읍네." "그러하면 야광준가 보외." " 야광주도 이제는 없나니, 주 세종이 탐장할 제, 당나라 장갈이가 술잔 만드노라고 다 들였으니, 유리 호박도 이제 없읍네." "그러하면 쇤가 보외." 쇠도 이제는 없나니 진시황 위엄으로 구주의 쇠를 모아 금인 열둘을 만들었으니 쇠도 없읍네." "그러하면 대모산혼가 보외." " 대모산호도 없나니, 대모갑은 병풍이요, 산호수는 난간이라 광리왕이 상문의 수궁 보물을 다 을였으니, 이제는 없읍네." "그러하면 무엇인고." 제비가 내달아 하는 말이, "건지 연지 뇌지 조지 부지요."흥부가 하는 말이, "옳다 이것이 박씨로다." 하고, 날을 보아 동편 처마 단장 아래 심어 두었더니, 삼사 일에 순이 나서 마디마디 잎이요, 줄기줄기 곷이 피어, 박 네 통이 열었으되, 고마수영 절설 같이, 대동강상의 당두리같이 덩그렇게 달렸구나. 흥부가 반기여겨, 문자로써 말하되, "유월에 화락하니, 칠월에 성실이라, 대자는 여항하고, 소자는 여분이라. 어찌 아니 좋을소냐. 여봅소 비단이 한 기라 하니, 한 통을 따서 속을라지지 먹고, 바가지는 팔아 살을 팔아다가 밥을 지어 먹어 봅세." 흥부 아내 하는 말이, "그 박이 유명하니, 한로를 아주마쳐, 견실커든 따봅세." 그날 저달 다 지나가고 팔구월이 다달아서, 아주 견실하였으니 박 한 통을 따놓고 양주 켠다. 슬근슬근 톱질이야, 당기어 주소 톱질이야, 북창한월성미파에 동자박도 가야로다. 슬근슬근 톱질이야. 당하자손 만세평에, 세간박도 가야로다. 슬근슬근 톱질이야. 툭 타 놓으니 오운이 일어나며, 청의동자 한 쌍이 나오니, 저 동자 거동보소. 약비봉래 환학동이면, 필시천대채약동이라. 좌수에 유리반, 우수에 대모반을 눈 위에 높이 들어 재배라고 하는 말이, 천은병에 넣은 것은 죽은 사람을 살려 내는 환혼주요, 백옥병에 넣은 것은 소경 눈을 뜨이는 개안주요, 금잔지로 봉한 것은 벙어리 말하게 하는 개언최요, 대모접시에는 불로초요, 유리접시에는 불사약이니, 값으로 의논하면 억만 냥이 넘사오니, 매매하여 쓰옵소서." 하고 간데 없는지라. 흥부 거동보소, "얼시고 절시고 즐겁도다. 세상에 부자 많다한들, 사람 살리는 약이 있을 소냐!" 흥부 아내 하는 말이, " 우리 집 약계 배판 한 줄 알고 약 사라 올이 없고, 아직 효험 빠르기는 밥만 못하외." 흥부 말이 "그러하면 저 통에 밥이 들었나 타 봅세." 하고, 또 한통을 탄다. 슬근슬근 톱질이야. 우리 가난하기 일읍에 유명하매 주야 설워하더니, 부지허명, 고대 천냥, 일조에 얻었으니 어찌 아니 좋을소냐. 슬근슬근 톱질이야, 어서 타세 톱질이야. 툭 타 놓으니 온갖 세간이 들었으되, 자개함농, 반다지 용장, 봉장, 제두주, 쇄금들미, 삼층장계자다리, 옷거리, 쌍룡 그린 빗접고비, 요두머리, 장복비, 놋촛대, 광명두리, 요강,타구, 벌여 놓고, 선달이불, 대단요며 원앙금침 잣벼개를 쌓아놓고 사랑기물 볼작시면, 용목래상 벼룻집, 화류책장, 각겨수리 용연벼루, 앵무연적 벌여 놓고, 천자, 유합, 동몽선습, 사략, 통감, 논어 맹자, 시전, 서전, 소학 대학 등 책을 쌓았고, 그 곁에 안경, 석경, 화경, 육칠경, 각색 필묵 퇴침에 들어 있고, 부엌 기물을 의논컨대, 노구새, 옹곱돌솥, 왜솥, 절솥, 통노구무쇠, 두멍 다리쇠 받쳐 있고, 왜화기, 당화기, 동래반상, 안성유기 등 물찬장에 들어 있고, 함박, 쪽박이, 남박, 항아리, 옹박이 동체, 깁체, 어럼이, 침채 독, 장독 가마, 승교 등 물이 꾸역꾸역 나오니, 어찌 아니 좋을손가. 또 한 통을 탄다. 슬근슬근 톱질이야 우리 일을 생각하니, 엊그제가 꿈이로다. 부지허명 고대 천냥을 일조에 얻었으니, 어찌 아니 즐거우랴. 슬근슬근 톱질이야 툭 타 놓으니, 집지위와 오곡이 나온다. 명당에 집터를 닦아, 안방 대처 행랑 몸채 내외분함 물림퇴, 살미살창 가로닫이, 입구자로 지어 놓고, 앞 뒤 장원 마구곡간 등속을 좌우에 벌여 짓고, 양지에 방아 걸고, 음지에 우물 파고, 울 안에 벌통 놓고, 울 밖에 원두 놓고, 온갖 곡식 다 들었다. 동편 곡간에 벼 오천 석, 서편 곡간에 쌀 오천 석, 두태 잡곡오천석, 참깨 들깨 각 삼천 석, 딴 노적하여 있고 돈이 십만 구천냥은 고 안에 쌓아두고, 일용전 오백 열 냥은 벽장 안에 넣어두고 온갖 비단 다 들었다. 모단, 대단, 이광단, 궁초, 숙초, 쌍문초, 제갈선생 와룡단, 조자룡의 상사단, 뭉게뭉게 운문대단, 또드락 꿉벅 말굽장단, 대천 바다 자개문장단, 해 돋았다 일광단, 달 돋았다 월광단, 요지왕모 천도문, 구십 춘광 명주문, 엄동설한 육화문, 대접문, 완자문, 한단 영초단, 각색 비단 한필이 들어 있고, 길주명천 좋은 베, 회령 종성 고운 베, 온갖 베와 한산 모시, 장성 모시, 계추리, 황저포 등 모든 모시와 고야 화전 이 생원의 맏딸이 보름만에 마쳐 내는 난대 하세목, 송도 야다리목, 강진 내이 황주목, 의성목 한편에 들어 있고, 말매니 같은 사나이 종과 열쇠 같은 아이 종과 앵무 같은 계집종이 나며 들며 사환하고 우걱부리, 잣박부리, 사족발이 고리 눈이, 우억지억 실어들여, 앞뜰에도 노적이요, 뒷뜰에도 노적이요, 안방에도 노적이요, 부엌에도 노적이요, 담불담불 노적이라, 어찌 아니 좋을소냐. 흥부 아내 좋아라고, "여봅소 이년이나 내나 옷이 없으니, 비단으로 온 몸을 감아 봅세." 덤불 밑에 조그만 박 한 통을 따서 켜려 하니 흥부 아내 하는 말이, "그 박을랑 켜지 맙소." 흥부가 대답하되, "내 복에 태인 것이니, 커졌옵네." 하고, 손으로 켜내니, 어여쁜 계집이 나오며 흥부에게 절을 하니, 흥부 놀라 묻는 말이, "뉘라 하시오." "내가 비요." " 비라 하니 무슨 비요." "양귀비요." " 그러하면 어찌하여 왔소." " 강남 황제가 날더러 그대의 첩이 되라 하시기에 왔으니, 귀히 보소서." 하니 흥부는 좋아하되 흥부 아내 내색하여 하는 말이, "애고 저 꼴을 뉘가 볼고, 내 언제부터 켜지 말자 하였지." 하며 이렇듯 호의 호식 태평히 지낼 제, 놀부놈이 흥부의 잘 산단 말을 듣고 생각하되, 건너가 이놈을 욱닥였으면, 반은 나를 주리라 하고, 흥부집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문 밖에 서서, "이놈 흥부야!" 흥부 대답하고 나와 놀부의 손을 잡고 하는 말이, " 형님 이것이 웬일이오. 형제끼리 내외 하단 말은 불가사문어인국이니, 어서 들어가사이다." 하니, 놀부놈이 떨더리며 하는 말이, " 네가 요사이 밤이슬을 맞는다 하는구나." 흥부가 어이없어 하는 말이, "빔이슬이 무엇이오." 놀부놈이 대답하되, " 네 도적질한다는구나." 흥부 이른 말이, "형님, 이것이 웬말이오." 하고 전후 사연을 일일이 설파하니 놀부 다 듣고, 그러하면 들어가 보자 하고 안으로 들이달아 보니, 양귀비 나와 뵈거늘 흥부보고 하는 말이, "웬 부인이냐." 흥부 곁에 있다가 대답하되, " 내 첩이오." " 어따 이놈 네게 웬 첩이 있으리오.날다고." 화초장을 보고, "저것이 뭣이뇨?" "그게 화초장이오." "날 다고." "애고 사랑도 아니 떠혔소." " 이놈아. 네 것이 내 것이오, 내 것이 네 것이오, 내 계집이 네 계집이요, 네 계집이 내 계집이라." "그러하면 종하여 보내오리다." " 어서 질방 걸어 다고, 내 지고 가마." "그러하면 그러 하오." 질방 걸어 주니 놀부 짊어지고 가며, 화초장을 생각하며 화초장 화초장 하며 가더니, 개천 건너 뛰다가 잊어버리고 생각하되, 간장인가 초장인가 하며, 집으로 오니, 놀부 아내 묻는 말이 "그것이 무엇이온고." "이것 모르옵나." "분명 모르옵나." "저 건너 양반의 집에서 화초장이라 하옵데." "내 언제부터 화초장이라 하였지." 놀부톰 거동보소, 동지 섣달부터 제비를 기다린다. 그물 막대 둘러메고, 제비를 몰로 갈 제, 한 곳 바라보니, 한 즘생이 떠 들어오니, 놀부놈이 보고 "제비 인제 온다." 하고 보니, 태백산 갈가마귀 차돌도 돌도 바이 못 얻어먹고, 주려청천에 높이 떠, 갈곡 길곡 울고 가니, 놀부 눈을 멀겋게 뜨고 보다가 할 일 없어 동릿집으로 다니면서 제비를 제 집으로 몰아들이되, 제비가 아니 온다. 그 달 저 달 다 지내고 삼월 삼일 다달으니, 강남서 나온 제비 예집을 찾으려 하고, 오락가락 넘을 적에 놀부 사면에 제비 집을 지어 놓고 제비를 들이모니, 그 중 팔자 사나운 제비 하나가 놀부 집에 흙을 물어 집을 짓고 알을 낳아 안으려 할 제, 놀부놈이 주야로 제비 집 앞에 대령하여 가끔 만져본즉, 알이 다 곯고 다만 하나가 깨였는지라 날기 공부 힘쓸 제 구렁 배암 아니 오니 놀부 민망 답답하여, 제 손으로 제비새끼를 잡아 내려 두 발목을 자끈 부러뜨리고, 제가 깜짝 놀라 이르는 말이, "가련하다. 이 제비야."하고, 자개껍질을 얻어 찬찬 동여 뱃놈의 닻줄 감듯, 삼층얼레 연줄 감듯하여 제 집에 얹어 두었더니 십여 일 후 그 제비 구월 일을 당하여 두 날개를 펼쳐 강남으로 들어가니, 강남 황제 각처 제비를 점고할 제, 이 제비 다리 절고 들어와 복지한데, 황제 제신으로 하여금 그 연고를 사실하여 아뢰라 하시니 제비 아뢰되, "상년에 웬 박씨를 내어 보내어 흥부가 부자 되었다 하여 그 형 놀부놈이 나를 여차여차 하여 절뚝발이 되었사오니 이 원수를 어찌하여 갚고저 하나이다." 황제 이 말 들으시고, 대령하여 가라사대, "이놈 이제 전답 재물이 유여하되, 동기를 모르고 오륜에 벗어난 놈을 그저두지 못할 것이요, 도한 네 원수를 갚아 주리라." 하고, 박씨 하나를 보수표라 금자로 새겨주니, 제비 받아 가지고 명년 삼월을 기다려 청천을 무릅쓰고 백운을 박차 날개를 부쳐 높히 떠 높은 봉 낮은 뫼를 넘으며, 깊은 바다 너른 시내며, 개골창 잔돌바위를 훨훨 넘어 놀부 집을 바라보고, 너훌너훌 넘놀거들, 놀부놈이 제비를 보고 반겨할 제 제비 물었던 박씨를 툭 떨어뜨리니, 놀부놈이 집어보고 낙낙하여 뒷담장 처마 밑에 거름놓고 심었더니, 사오날 후에 순이 나서 덩굴이 뻗어 마디 마디 잎이요, 줄기줄기 꽃이 피어 박 십여 통이 열렸으니, 놀부 놈이 하는 말이, "흥부는 세 통을 가지고 부자 되었으니, 나는 장자 되리로다. 석숭을 행랑에 넣고, 예 황제를 부러워할 개아들 없다." 하고, 굴지계일하여 팔구월을 기다린다. 때를 당하여 박을 켜라 하고, 김 지위 이 지위 동리 머슴 이웃 총각 건넌집 쌍언청이를 다 청하여 삯을 주고 박을 켤 제, 째보놈이 한 통의 삯을 정하고 켜자 하니 놀부 마음에 흐뭇하여 매통에 열 냥씩 정하고 박을 켠다.
의유당 관북 유람 일기 中 동명일기 행여 일출을 못 볼까 노심초사하여, 새도록 자지 못하고, 가끔 영재를 불러 사공더러 물으라 하니, "내일은 일출을 쾌히 보시리라 한다."하되 마음에 미쁘지 아니하여 초조하더니, 먼 데 닭이 울며 연하여 자초니, 기생과 비복을 혼동하여 어서 일어나라 하니, 밖에 급창이 와, " 관청 감관이 다 아직 너모 일찍 하니 못 떠나시리라 한다."하되, 곧이 아니 듣고 발발이 재촉하여, 떡국을 쑤었으되 아니 먹고, 바삐 귀경대에 오르니 달빛이 사면에 조요하니, 바다이어제 밤도곤 회기 더 하고, 광풍이 대작하여 사람의 뼈를 사못고, 물결치는 소래 산악이 움직이며, 별빛이 말곳말곳하여 동편에 차례로 있어 새기는 멀었고, 자는 아해를 급히 깨와 왔기 치워 날치며 기생과 비복이 다 이를 두드려 떠니, 사군이 소래하여 혼동 왈, "상없이 일찍이 와 아해와 실내다 큰 병이 나게하였다."하고 소래하여 걱정하니, 내 마음이 불안하여 한 소래를 못 하고 김히 치월하는 눈치를 못하고 죽은 듯이 앉았으되, 날이 샐 감망이 없으니 연하여 졍재를 불러, "동이 트느냐?" 물으니, 아직 멀기로 연하여 대답하고, 물 치는 소래 천지 진동하여 한풍 끼치기 더욱 심하고, 좌우 신인이 고개를 기울여 입을 가슴에 박고 치워 하더니, 마이 익한 후, 동편의 성쉬 드물며, 월색이 차차 열워지며, 홍색이 분명하니, 소래하여 시월함을 부르고 가마 밖에 나서니, 좌우 비복과 기생들이 옹위하여 보기를 죄더니, 이윽고 날이 밝으며 붉은 기운이 동편 길게 뻗쳤으니, 진흥 대단 여러 필을 물 우희 펼친 듯, 만경창파가 일시에 붉어 하늘에 자욱하고, 노하는 물결 소래 더욱 장하며, 홍전 같은 물빛이 황홀하여 수색이 조요하니 차마 끔찍하더라. 붉은빛이 더욱 붉으니, 마조 선 사람의 낯과 옷이 다 붉더라. 물이 굽이져 치치니, 밤에 물치는 굽이는 옥같이 희더니, 즉금 물굽이는 붉기 홍옥 같하야 하늘에 닿았으니, 장관을 이를 것이 없더라. 붉은 기운이 퍼져 하늘과 물이 다 조요하되 해 아니 나니, 기생들이 손을 두드려 소래하여 애달와 가로되, "이제는 해 다 돋아 저 속에 들었으니, 저 붉은 기운이 다 푸르러 그름이 되리라." 흔공하니, 낙막하여 그저 돌아가려 하니, 사군과 숙씨셔, "그렇지 아냐, 이제 보리라." 하시되, 이랑이, 차섬이 냉소하여 이르되, "소인 등이 이번뿐 아냐, 자로 보았사오니, 어찌 모르리이까. 마누하님, 큰 병환 나실 것이니, 어서 가압사이다." 하거늘, 가마 속에 들어앉으니 봉의 어미 악써 가로되, "하인들이 다 하되, 이제 해 일으려 하는데 어찌 가시리요. 기 생 아해들은 철 모르고 즈레 이렁 구는다." 이랑이 박장 왈, "그것들은 바히 모르고 한 말이니 곧이듣지 말라."하거늘, 돌아 사공드려 물으라 하니, "사공려 오늘 일출이 유명하리란다." 하거늘, 내도로 나서니, 차섬이, 보배는 내 가마에 드는 상 보고 몬저 가고, 계집 종 셋 몬저 갔더라. 홍색이 거룩하여 붉은 기운이 하늘을 뛰노더니, 이랑이 소래를 높이 하여 나를 불러, :저기 물 밑을 보라." 외거늘, 급히 눈을 들으 보니, 물 밑 홍운을 헤앗고 큰 실오리 같은 줄기 붉기 더욱 기이하며, 기운이 진홍 같은 것이 차차 나 손바닥 넓이 같은 것이 그믐밤에 보는 숯블 빛 같더라. 차차 나오다니, 그 우흐로 적은 회오리밤 같은 것이 붉기 호박 구슬 같고, 맑고 통랑하기는 호박도곤 더 곱더라. 그 붉은 우흐로 훌훌 움직여 도는데, 처음 났던 붉은 기운이 백지 반 장 넓이만치 반듯이 비치며, 밤 같던 기운이 해 되어 차차 커가며 큰 쟁반만 하여 불긋불긋 번듯번듯 뛰놀며, 적색이 온 바다에 끼치며 몬저 붉은 기운이 차차 가새며, 해 흔들며, 뛰놀기 더욱 자로 하며, 항 같고 독같은 것이 좌유로 뛰놀며, 황홀히 번득여 양목이 어즐하며, 붉은 기운이 명랑하여 첫 홍색을 헤앗고, 천중에 쟁반 강은 것이 수렛바퀴 같하여 물 속으로서 치밀어 치듯이 올라붙으며, 항, 독 같은 기운이 스러지고, 처음 붉어 곁을 비추던 것은 모여 소혀처로 드리워 물속에 풍덩 빠지는 듯 싶으더라. 일색이 조요하며 물결에 붉은 기운이 차차 가새며, 일광이 청량`하니, 만고천하에 그런 장관은 대두할 데 없을 듯하더라. 짐작에 처음 백지 반 장만치 붉은 기운은 그 속에서 해 장차 나려고 우리어 그리 붉고, 그 회오리밤 같은 것은 진짓 일색을 빠혀 내니 우리온 기운이 차차 가새며, 독 같고 항 같은 것은 일색이 모딜이 고온고로, 보는 사람의 안력이 황홀하여, 도모지 헛기운인 듯 싶은지라. ************************************************************************************* 의유당일기 《의유당일기(意幽堂日記)》는 조선 순조 때 판관(判官)의 아내 의유당이 쓴 한글기행문으로, 1829년 그의 남편이 함흥판관으로 부임할 때 같이 가서 그 부근의 명승고적을 탐승하여 지은 기행·전기·번역 등을 합편한 문집이다. 원명은 《의유당관북유람일기(意幽堂關北遊覽日記)》이다. 〈낙민루(樂民樓)〉〈북산루(北山樓)〉〈동명일기(東溟日記)〉〈춘일소흥〉〈영명사득월루상량문〉 등이 실려 있으며, 그 중〈동명일기〉가 가장 우수하다. 적절한 묘사, 참신한 어휘력구사, 순수한 한국어의 표현을 통하여 수필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작품집으로 국문학적으로 의의가 크다. - 위키백과
조침문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에 미망인 모씨는 두어 자 글로써 침자께 고하노니, 인간 부년의 손 가운데 종요로운 것이 바늘이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에 흔한바이로다. 이 바늘은 한낱 작은 물건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 통재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손 가운데 지닌 지 우금 이십 칠년이라. 어이 인정이 그렇지 아니하리오. 슬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을 겨우 진정하여 너의 행장과 나의 회포를 총총히 적어 영결하노라. 연전에 우리 시삼촌께옵서 동지상사 낙점을 무르와 북경을 다녀오신 후에, 바늘 여러 쌈을 주시거늘, 친정과 원근 일가에게 보내고, 비복들도 쌈쌈이 낱낱이 나눠 주고, 그 중에 너를 택하여 손에 익히고 익히어 지금까지 해포되었더니, 슬프다. 연분이 비상하여 너희를 무수히 잃고 부러뜨렸으되, 오직 너 하나를 연구히 보전하니, 비록 무심한 물건이나 어찌 사랑스럽고 미혹지 아니하리오. 아깝고 불쌍하며, 또한 섭섭하도다. 나의 신세 박명하여 슬하에 한 자녀 없고, 인명이 흉완하여 일찍 죽히 못하고, 가산이 빈궁하여 침선에 마음을 붙여, 널로 하여 시름을 잊고 생애를 도움이 적지 아니하더니, 오늘날 너를 영결하니, 오호 통재라, 이는 귀신이 시기하고 하늘이 미워하심이로다. 아깝다 바늘이여, 어여쁘다 바늘이여. 너는 미묘한 품질과 특별한 재치를 가졌으니, 물중의 명물이요, 철중의 쟁쟁이라. 민첩하고 날래기는 백대의 협객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의 충절을 듣는 듯한지라. 능라와 비단에 난봉과 공작을 수놓을 제, 그 민첩하고 신기함은 귀신이 돕는 듯 하니, 어찌 인력이 미칠 바리오. 오호 통제라, 자식이 귀하나 손에서 놓일 때도 있고, 비복이 순하나 명을 거스를 때 있나니, 너의 미묘한 재질이 나의 전후에 수응함을 생각하면, 자식에게 지나고 비복에게 지나는지라. 천은으로 집을 하고, 오색으로 파란을 놓아 겉고름을 채였으니, 부녀의 노리개라. 밥먹을 적 만져 보고 잠잘 적 만져 보아, 널로 더불어 벗이 되어, 여름 낮에 주렴이며, 겨울 밤에 등잔을 상대하여, 누비며, 호며, 감치며, 박으며, 공그릴 때에 겹실을 꿰었으니 봉미를 두르는 듯, 땀땀이 떠 갈 적에, 수비가 상응하고, 솔솔이 붙여 내매 조화가 무궁하다. 이생에 백년 동거하렸더니, 오호 애재라, 바늘이여. 금년 시월 초십일 술시에, 희미한 등잔 아래서 관대 깃을 달다가 무심중간에 자끈동 부러지니 깜짝 놀라와라. 아야 아야 바늘이여, 두 동강이 났구나. 정신이 아득하고 혼백이 산란하여, 마음을 빻아 내는 듯, 두 골을 깨쳐 내는 듯, 이윽도록 기색혼절 하였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만져 보고 이어본들 속절없고 하릴없다. 편작의 신술로도 장생불사 못 하였네. 동네장인에게 때이런들 어찌 능히 때일쏜가. 한 팔을 베어 낸 듯, 한 다리를 베어 낸 듯, 아깝다 바늘이여, 옷섶을 만져 보니, 꽂혔던 자리 없네. 오호 통제라, 내 삼가지 못한 탓이로다. 무죄한 너를 마치니, 백인이 유아이사라, 누를 한하며 누를 원하리오. 능란한 성품과 공교한 재질을 나의 힘으로 어찌 다시 바라리오. 절묘한 의형은 눈 속에 삼삼하고, 특별한 품재는 심회가 삭막하다. 네 비록 물건이나 무심치 아니하면, 후세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과 일시 생사를 한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오호 애재라, 바늘이여. ************************************************************************************* 조선 순조 때 유씨부인(兪氏夫人)이 지은 국문수필. 〈제침문 祭針文〉이라고도 한다. 일찍 남편을 잃고 바느질로 소일하며 지내던 양반 가문의 한 부인이 오랫동안 아끼고 애용하던 바늘이 부러지자 바늘을 의인화한 제문을 지음으로써 애통한 심정을 달랜 것이다. 조침(弔針)하는 상황 설정이 재미있으며 표현이 신선하고 문장력이 뛰어나다. - 백과
한중록 (2/2) 선희궁께서는 나를 대하시면 눈물을 흘리시고 두려워하셔 "어찌 할꼬?" 하는 탄식만 하셨다. 수일을 머무르시고 올라가시니 어머님도 우시고 아드님도 매우 슬퍼하시니 마지막 영결로 그리하셨던가? 갈수록 동궁의 하시는 일이 극도로 낭자하시니, 전후 일이 모두 본심으로 하신 일이 아니건마는 인사 정신을 모르실 적은 화에 들떠서 하시는 말씀이 칼을 들고 가서 죽이고 싶다 하시니, 조금이라도 본 정신이 계시면 어찌 이러하시리오. 당신의 팔자가 기구하여 천명을 다 못하시고 만고에 없는 참혹한 일을 당하려는 팔자니, 하늘이 아무쪼록 그 흉악한 병을 지어 몸을 그토록 만들려 하신 것이다. 하늘아 하늘아, 차마 어찌 이리 만드는가. 선희궁께서 병으로 그러신 아드님을 아무리 책망하여도 믿을 것이 없으매, 자모되신 마음으로 다른 아들도 없이 이 아드님께만 몸을 의탁하고 계시더니 차마 어찌 이 일을 하고자 하시리오. 처음은 자애를 받잡지 못하여 이같이 되신 것이 당신의 종신지통이 되어 계시나, 이미 동궁의 병세가 이토록 극심하고 보모를 알지 못할 지경이니 사정으로 차마 못하여 미적미적하다가 마침내 증세가 위급하여 물불을 모르고 생각지 못할 일을 저지르게 되시면 사백 년의 종사를 어찌하리오. 당신의 도리가 옥체를 보호 하옵는 대의가 옳고, 이미 병이 할 수 없으니 차라리 몸이 없는 것이 옳고, 삼종(효종, 현종, 숙종) 혈맥이 세손께 있으니 천만 번 사랑하여도 나라를 보존하기가 이밖에 없다 하시고 십삼 일 내게 편지하시되, "어젯밤 소문이 더욱 무서우니 일이 이리 된 후는 내가 죽어 모르거나, 살면 세손을 구해서 종사를 붙드는 것이 옳으니 내가 살아서 빈궁을 다시 볼 것 같지 않소." 하셨다. 내가 그 편지를 잡고 울었으나 그 날에 큰 변이 날 줄이야 어찌 알았으리오. 그 날 아침에 대조께서 무슨 전좌 나오려 하시고 경현당 관광청에 계셨는데, 선희궁께서 가서 울면서 아뢰되, "큰 병이 점점 깊어서 바랄 것이 없사오니 소인이 모자의 정리에 차마 이 말씀을 못 하올 일이오나, 옥체를 보호 하옵고 세손을 건져서 종사를 평안히 하옵는 일이 옳사오니 대처분을 하옵소서." 하고, 또 이어서 말씀하시되, "부자지정으로 차마 이리하시나 병이니 병을 어찌 책망하오리까? 처분은 하시되 은혜는 끼치셔서 세손 모자를 평안하게 하옵소서." 하시니, 차마 그 아내로 처하여 이것을 옳게 하신다고 못하나 일인즉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내가 따라 죽어서 모르는 것이 옳되 세손을 위해 차마 결단하지 못하고 다만 망극한 운명을 서러워할 뿐이었다. 대조께서 들으시고 조금도 지체하시지 않고 창덕궁 거동령을 급히 내리셨다. 선희궁께서 사정을 끊고 대의로 말씀을 아뢰시고 가슴을 치고 기절할 듯이 당신 계신 양덕당으로 가서 음식을 끊고 누워 계시니 만고에 이런 정리가 어디 있으리오. 그 날이 임오년(영조 38년) 윤오월 열 이틀이었다. 그 날 아침 들보에서 부러지는 듯이 굉장한 소리가 나니 동궁이 들으시고, "내가 죽으려나 보다. 이게 왠일인고." 하고 놀라셨다. 동궁은 부왕의 거동령을 듣고 두려워서 아무 소리 없이 기계와 말을 다 감추어 흔적없이 하라 하시고 교자를 타고 경춘전 뒤로 가시며 나를 오라고 하셨다. 근해에 동궁의 눈에 사람이 보이면 곧 일이 나기 때문에 가마 뚜껑을 하고 사면에 휘장을 치고 다니셨는데, 그 날 나를 덕성합으로 오라 하셨다. 그 때가 오정쯤이나 되었는데 홀연히 무수한 까치 떼가 경춘전을 에워싸고 울었다. 이것이 무슨 징조일까 괴이하였다. 세손이 환경전에 계셨으므로 내 마음이 황망중 세손의 몸이 어찌 될지 걱정스러워서 그리 내려가서 세손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 천만 당부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거동이 웬일인지 늦어서 미시 후에나 휘녕전으로 오신다는 말이 있었다. 그 때 동궁은 나를 덕성합으로 오라 재촉하시기에 가보니, 그 장하신 기운과 언짢은 말씀도 않으시고 고개를 숙여 깊이 생각하시는 양 벽에 기대어 앉으셨는데, 안색이 놀라서 핏기가 없이 나를 보셨다. 응당 홧증을 내고 오즉 하시랴. 내 목숨이 그 날 마칠 것도 스스로 염려하여 세손을 경계 부탁하고 왔었는데 생각과 다르게 나더러 하시는 말씀이, "아무래도 이상하니, 자네는 잘 살게 하겠네. 그 뜻들이 무서워." 하시기에 내가 눈물을 드리워 말없이 허황해서 손을 비비고 앉았었다. 이때 대조께서 휘녕전으로 오셔서 동궁을 부르신다는 전갈이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피하자" 는 말도 "달아나자"는 말씀도 않고 좌우를 치지도 않으시고 조금도 홧증 내신 기색도 없이 썩 용포를 달라 하여 입으시더니, "내가 학질을 앓는다 하려 하니 세손의 휘항(남바위와 같은 방한모)을 가져오너라." 하셨다. 내가 그 휘항은 작으니 당신 휘항을 쓰시라고 하였더니 뜻 밖에도 하시는 말씀이, "자네가 참 무섭고 흉한 사람일세. 자네는 세손 데리고 오래 살려고 하기에 오늘 내가 나가서 죽을 것 같으니 그것을 꺼려서 세손 휘항을 안 주려고 하는 심술을 알겠네." 하시지 않는가. 내 마음은 당신이 그 날 그 지경에 이르실 줄은 모르고 이 일이 어찌 될까 사람이 설마 죽을 일이요, 또 우리 모자가 어떠하랴 하였는데 천만 뜻밖의 말씀을 하시니 내가 더욱 서러워서 세자의 휘항을 갖다 드렸다. "그 말씀이 하도 마음에 없는 말씀이니 이 휘항을 쓰소서." "싫다. 꺼려하는 것을 써 무엇할꼬." 하시니 이런 말씀이 어찌 병드신 이 같으며, 어이 공순히 나가려 하시던가. 모두 하늘이 시키는 일이니 슬프고 원통하다. 그러할 제 날이 늦고 재촉이 심하여 나가시니 대조께서 휘녕전에 앉으시어 칼을 안으시고 두드리시며 그 처분을 하시게 되니 차마 망극하여 이 경상을 내가 어찌 기록하리오. 섧고 섧도다. 동궁이 나가시며 대조께서 엄노하시는 음성이 들려 왔다. 휘녕전과 덕성합이 멀지 않아서 담 밑으로 사람을 보내서 보니 벌써 용포를 덮고 엎드려 계시더라 하니, 대처분이신 줄 알고 천지가 망극하여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였다. 거기 있는 것이 부지러워서 세손 계신 데로 와서 서로 붙잡고 어찌할 줄 몰랐더니, 신시(오후 4시 전후) 쯤 내관이 들어와서 밖 소주방에 있는 쌀 담는 궤를 내라 한다. 이것이 어찌 된 말인지 황황하여 내지 못하고, 세손궁이 망극한 일이 있는 줄 알고 뜰 앞에 들어가서, "아비를 살려 주업소서." 하니, 대조께서 "나가라." 하고 엄하게 호령하셨다. 세손은 할 수 없이 나와서 왕자재실에 앉아 있었는데, 그 때 정경이야 고금 천지간에 없으니 세손을 내어 보내고 천지가 개벽하고 일월이 어두웠으니 내 어찌 일시나 세상에 머무를 마음이 있으리오. 칼을 들고 목숨을 끊으려 하였으나 옆의 사람이 빼앗아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죽고자 하되 칼이 없어서 못하였다. 숭문당에서 휘녕전 나가는 건목문 밑으로 가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다만 대조께서 칼 두드리시는 소리와 동궁께서, "아버님 아버님, 잘못하였으니 이제는 하랍시는 대로하고, 글도 읽고 말씀도 다 들을 것이니 이리 마소서." 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소리를 들으니 내 간장이 마디마디 끊어지고 앞이 막히니 가슴을 아무리 두드린들 어찌하리오. 당신의 용력과 장기로 궤에 들어가라 하신들 아무쪼록 들어가지 마실 것이지 왜 필경 들어가셨는가? 처음엔 뛰어나오려 하시다가 이기지 못하여 그 지경에 이르시니, 하늘이 어찌 이토록 하였는가? 만고에 없는 설움뿐이며, 내 문 밑에서 통곡하여도 응하심이 없었다. 집으로 나와서 나는 건넌방에 눕고, 세손은 내 중부와 오라버님이 모셔 나오고, 세손빈궁은 그 집에서 가마를 가져다가 청연과 한데 들려 나오니 그 정상이 어떠하리오. 나는 자결하려다가 못하고 돌이켜 생각하니 십일 세 세손에게 첩첩한 고통을 남긴 채 내가 없으면 세손이 어찌 성취하시리오. 참고 참아서 모진 목숨을 보전하고 하늘만 부르짖으니 만고에 나 같은 모진 목숨이 어디 있으리오. 세손을 집에 와서 만나니 어린 나이에 놀랍고 망극한 경상을 보시고 그 서러운 마음이 어떠하리오. 놀라서 병날까, 내가 망극히 함을 이기지 못하고, "망극 망극하나 다 하늘이 하시는 노릇이니, 네가 몸을 평안히 하고 착하여야 나라가 태평하고 성은을 갚사올 것이니, 설움 중이나 네 마음을 상하지 말라." 하고 위로하였다. 이십 일 신시쯤 폭우가 내리고 뇌성도 하니, 뇌성을 두려워하시던 일이나 어찌 되신고 하는 생각 차마 형용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이 음식을 끊고 굶어 죽고 싶고 깊은 물에도 빠지고 싶고, 수건을 어루만지며 칼도 자주 들었으나 마음이 약하여 강한 결단을 못하였다. 그러나 먹을 수가 없어서 냉수도 미음도 먹은 일이 없으나 내 목숨 지탱한 것이 괴이하였다. 그 이십 일 밤에 비오던 때가 동궁께서 숨지신 때던가 싶으니, 차마 어찌 견디어 이 지경이 되셨던가. 그저 온 몸이 원통하니 내 몸 살아난 것이 모질고 흉하다. 선희궁이 마지못하여 그렇게 아뢰어서 대처분은 하시려니와, 병환 때문에 마지못해서 하신 일이라 애통하여 은혜 더하시고 복제나 행하실까 바라왔더니, 성심이 그 처분으로도 성노를 풀지 못하시고 동궁께서 가깝게 하시던 기생과 내관 박필수 등과 별감이며 장인이며 부녀들까지 모두 사형에 처하시니 이는 당연한 일이오시니 감히 무슨 말을 하리오. 슬프고 슬프도다. 모년 모월 일을 내 어찌 차마 말을 하리오. 천지가 맞붙고 일월이 빛을 잃고 캄캄해지는 변을 만나 내 어찌 일시나 세상에 머무를 마음이 있으리오. 칼을 들어 목숨을 끊으려 하였더니 곁의 사람들이 칼을 빼앗음으로 인하여 뜻 같지 못하고, 돌이켜 생각하니 십 일 세 세손에게 첨첩한 큰 고통을 끼치지 못하겠고 내가 없으면 세손의 성취를 어찌하리요. 참고 참아서 모진 목숨을 보전하고 하늘만 부르짖었다. 그 때 부친이 나라의 엄중한 분부로 동교에 물러나서 근신하고 계시다가 사건이 일단락 된 후에 다시 들어오시니 그 무궁한 고통이야 누가 감당하리오. 그날 실신하고 쓰러지니 당신이 어찌 세상에 살 마음 계시리요마는, 내 뜻과 같아서 오직 세손을 보호하실 정성만 계셔서 죽지 못하시니 이 뜨거운 정성이야 귀신이나 알지 누가 알리오. 그 날 밤에 내가 세손을 데리고 사저로 나오니 그 망극하고 창황한 정경이야 천지도 응당 빛을 변할지니 어찌 말로 형용하리오. 선왕께서 부친께, "네가 보전하여 세손을 보호하라." 하고 분부하셨다. 이 성교 망극지중하나 세손을 위하여 감읍함이 측량없고 세손을 어루만지며, "착한 아들이 되어 선친께 효도하고 성은을 갚으라." 하고 경계하는 슬픈 마음이 또 어떠하리오. 그 후 성교로 인하여 새벽에 들어갈 때에 부친께서 내 손을 잡으시고 중마당에서 실성 통곡하시며, "세손을 모셔 만년을 누리사 노경의 목록이 양양하소서." 하고 우셨으니, 그 때의 내 슬픔이야 만고에 또 있으리오. 인산전에 선희궁께서 나를 와 보시니 가없이 원통하신 설움이 또 어떠하시리오. 노친께서 슬퍼하심이 지나치시니 내가 도리어 큰 고통을 참고 우러러 위로하되, "세손을 위하여 몸을 버리지 말으소서." 하옵더니, 장례 후에 윗대궐로 올라가시니 나의 외로운 자취가 더욱 의지할 곳 없었다. 팔월에야 선대왕께 뵈오니 나의 슬픈 회포가 어떠하리오마는 감히 말씀드리지 못하고 다만, "모자 함께 목숨을 보전함이 모두 성은이로소이다." 하고 울며 아뢰었다. 선대왕께서 내 손을 잡고 우시면서, "네 그러한 줄 모르고 내 너 보기가 어렵더니 네가 내 마음을 편하게 하니 아름답다." 하는 말씀을 듣자오니, 내 심장이 더욱 막히고 모질게 살아 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또 아뢰기를, "세손을 경희궁으로 데려다가 가르치시기를 바라옵나이다." "네가 떠나기를 견딜까 싶으냐?" 하시기에, 내가 눈물을 흘리고 "떠나서 섭섭한 것은 작은 일이요, 위를 모시고 배우는 것은 큰일이옵니다." 하고 세손을 경희궁으로 올려 보내려 하니 모자가 떠나는 정리 오죽하리오. 세손이 차마 나를 떨어지지 못하고 울고 가시니 내 마음이 칼로 베는 듯 참고 지냈다. 선대왕께서 세손을 사랑하심이 지극하시고 선휘궁께서 아드님 정을 세손에 옮기셔서 매사를 돌아보시고 한 방에 머무시면서 새벽이면 밝기 전에 깨워서 "글 읽으라."하고 내보내셨다. 칠 십 노인이 한가지로 일찍 일어나셔서 조반을 잘 보살펴 드리니, 세손이 이른 음식을 못 잡수시되 조모님 지성으로 억지로 자신다 하니 선희궁의 그때의 심정을 어찌 또 헤아리리오. 그해 구월에 천추절을 만나니 내가 몸을 움직일 기운이 없었으나 상교로 인하여 부득이 올라가니 이름 지으시고 현판을 친히 써 주시며, "네 효성을 오늘날 갚아주노라." 하셨다. 내가 눈물을 드리워 받잡고 감히 당치도 못하고 또 불안해 하더니 부친이 들으시고 감축하시오 집안 편지에 매양 그 당호를 써서 왕래하게 하시더라.
한중록 (1/2) 앞 부분을 생략하고, 사도세자(경모궁)의 출생에서부터 화를 당할 때까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신년 (영조 4년)후로 왕세자가 오래 비었으매 영조께서 주야로 초조하게 극심하시다가 을묘년 영조 11년 정월, 선희궁께서 경모궁 사도세자 을 탄생하시니 영조께서와 인원, 정성 두 성모께서 종사의 큰 경사를 기뻐하심이 비할 데 없고, 나라의 신민이 또한 기뻐서 춤을 추었다. 경모궁께서 태어나시니 천성과 용모가 비범하게 특이하셨으니 궁중에 기록하여 전하는 바를 보면, 나신 지 백일 안에 기이한 일이 많으시고, 넉 달만에 걸으시고 여섯 달 만에 영조께서 부르시는 데 대답하시고, 일곱 달만에 동서남북을 알아서 가르키고, 두 살에 글자를 배워서 육십여 자를 쓰시고 세 살에 과자를 드리매 수자 복자 박은 것을 골라 잡수시고 팔괘 박은 것은 따로 골라 놓고 잡숫지 않으므로 어떤 신하가, "잡수소서." 하고 권하였더니, "싫다. 팔괘는 먹지 않겠다." 하고 잡숫지 않았다. 그 후에 태호 복희씨가 그려진 책을 높이 들라 하고 절하시고 천자문을 배우시다가, 사치할 치와 부할 부자에 이르러서 치자를 짚으시고 입으신 옷을 가르켜서 이것을 사치라 하시고 영조 어리실 때 쓰시던 감투에 칠보 얽힌 것이 있어서 쓰시게 했으나 이것도 사치라 하고 쓰지 않으셨다. 돌 때에 새 옷을 입으시게 하매 "사치스러워서 남 부끄러워 싫다." 하고 입지 않으셨다. 세 살 때 어느 신하가 명주와 무명을 놓고, "어느 것이 사치요, 어느 것이 사치 아니오니까?" 하고 물었다. 대답하시기를, "명주는 사치하고 무명은 사치하지 않다." "어느 것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싶으십니까?" 하고 물으니 무명을 가르키시며, "이것이 좋을 것이다."하셨다. 이것으로 보더라도 그 어른께서 탁월하시던 성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체구가 커서 웅장하시고 천것이 효우 총명하셨으매, 만일 부모님 옆을 떠나지 말게 하고 모든 일을 교도하여 자애와 교육을 명행하여 드렸더라면 덕기의 성취가 놀라웠을 것을, 그렇지 못하여 일찍이 각각 멀리 떠나 계신 일로 인연하여 사태가 역전하여 작은 일이 크게 되어, 필경은 말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이것이 천수의 불행과 국운의 망극함이니 인력으로는 어찌하지 못할 일이려니와 나의 지극히 원통함이야 어찌 측량하리오. 영조께서 처하시는 데와 선희궁 처소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두 분께서 더위와 추위를 가리지 않으시고 날마다 오셔서 머무셨다 하나, 어찌 한 집 속에서 조석으로 양육하시며 끊임없이 교훈하심과 같으리오. 어찌하신 생각에서인지 귀중하신 종사를 의탁하실 아드님을 겨우 얻으셨으니 부모측에서 양육하며 성취하시게 하지 않고, 처소가 멀리 떨어져서 인사 아실 즈음부터 자연 떠나심이 많고 모이심이 적으니 조석에 대하시는 사람은 환신, 궁첩이요, 들으시는 것이 항간의 잡담뿐이니, 이것이 벌써 잘 되지 못한 장본이며, 어찌 슬프고 원통하지 않으리오. 어렸을 때에 이미 덕기가 이상하시고 행동에 법도가 있어서 상도에 벗어남이 없으시고, 기상이 엄중하시고 말이 없고 침착하셔서 뵈옵는 사람이 어른 임금을 모시는 것이나 다름이 없게 여겼다. 이러하신 천품과 자질로써 부모 옆을 떠나지 않으시고 부왕께서 정사의 여가에 글 읽고 일 배우심을 옆에서 몸으로 가르쳐 주시고, 모빈께서도 이 아드님 성취하시는 것이 당신의 으뜸가는 소원이시니, 손 밖에 내보내지 마시고 매사를 가르치셔서 흔연히 사이가 없었더라면 어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리오. 처음 당하는 참변이라 슬프고 애닲은 것이, 하나는 어리신 아기를 저승전에 멀리 두심이요, 둘은 괴이한 나인들을 들이신 연고이매 이는 여편네의 잔소리가 아니라 사실의 시초를 대략 기록한다. 처음엔 영조께서 지극하신 자애가 비할 데 없으셔서 서오 세까지도 저승전에 오셔서 주무시고 계시기를 자주하셔서 자야하심이 틈이 없으시더니, 국운이 그릇되려고 보잘 것 없는 작은 일에도 성심이 불언중 격노하시고, 하루 이틀 어찌 된 줄 모르게 동궁에 머무시는 일이 차차 줄어들게 되었다. 막 자라시는 아기네라 한때만 가르치지 않고 잘못을 금하지 않으면 달라지기 쉬운 시절에 자연 안 보실 때가 많으니 어찌 탈이 나지 않으리오. 점점 자라심에 따라 놀기에 열중하게 되었는데 이는 아기네의 성정이라. 그 때 한 상궁이라 하는 것이 나무와 종이로 큰 탈도 만들고 활과 화살도 만들어드리며 부채질을 하였으니, 놀기에 팔려서 글은 아니 하시고 놀기만 하다가 부왕께 꾸중을 들을까, 모친이 아실까 염려하게 되니 자연 부모님 만남을 두려워하게 되고 사이가 뜨게 된 것이다. 더구나 부자 성품이 다르셔서 영조께서는 영명인효하시며 자세하고 민첩하신 성품이시고, 경모궁께서는 말이 없이 침중하셔도 행동이 날래지 못하고 민첩치 못하시니 덕기는 거룩하시나 범사에 부왕의 성품과는 다르셨다. 성시에 물으시는 말씀이라도 곧 응대하지 못하셔 머뭇머뭇 대답하시고 무엇을 물으실 때에도 당신 소견이 없는 것이 아니로되,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 곧 대답지 못하여 영조께서 매양 갑히 여기셨는데 이런 일도 또한 큰 화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대저 아이 가르치는 것이 비록 지존한 터에 나셨더라도 당신 부모를 모시고 가르침을 받자와 부모 스스로가 허물이 없어야 할 때에 그렇지 못하고, 포대기 시절부터 부모를 떠나고 나인들이 아기 네 스스로 할 일까지 전부 시중들어서, 심지어 옷고름, 대님 매는 것까지 다하여 드리니 매사를 남에게 맡기고 너무 편하시기만 하였다. 강연에서 학만을 인접하실 때 글 외는 소리도 엄숙하며 맑고 크시고 글 뜻도 그릇됨이 없으시니, 뵈옵는 이가 거룩하다 하여 영명이 많이 나타나시되 갑갑하고 애닲을손, 부왕을 모시고는 어려워서 응대를 민첩하게 못하시는 일이다. 영조께서 한 번 갑갑하시고 두 번 갑갑하시다가 결국 격분도 하시고 조심도 하시나, 이럴수록 가깝게 두어서 친히 가르치셔야 지정이 무간하게 될 도리는 생각지 않으시고, 항상 멀리 떼어 두고서 스스로 잘 되어서 성의에 맞으시기를 기다리시니 어찌 탈이 생기지 않으리오. 그리하여 점점 서먹서먹하게 지내시다가 서로 보실 때에는 부왕께서는 책망이 자애에 앞서시고, 아드님께서는 한 번 뵈옵는 것도 조심스럽고 두려우심이 무슨 큰 일이나 지내는 것 같아서 불언중 부자분 사이가 막히게 되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가깝게 두실 적은 책문도 힘쓰시고 부자분 사이도 무간하시고 유희도 안하시더니, 멀리 계신 후는 유희도 도로 하시고 강학도 전일치 못하시니 부자간의 서먹서먹 하신 것도 더 심해졌으니, 만일 부모님 손 밖에서 내시지만 않았다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으리오. 이 한 가지 일로 생각하여도 서러운데, 어찌하신 성의인지 아드님을 조용한 때 친근히 앉히시고 진정 교훈하시는 일이 없으시던가? 모두 남에게만 맡겨 버리고 아는 체하지 않으시다가 항상 남들 모인 때면 흉보시듯이 말씀하시니 얼마나 답답하리오. 한 번은 인원 왕후도 내려오시고 여러 옹주와 월성, 금성 두 부하도 들어오고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나인을 명하셔서, "세자 가지고 노는 것을 가져오라." 하시고 여러 사람이 보게 하여 무안하게 하시고, 강학에 대해서도 여러 신하가 많이 모인 때에 굳이 부르셔서 글 뜻을 물으시되, 아기네 자세히 대답하지 못할 대목을 각박히 물으시곤 하셨다. 본대 부왕 면전에서는 분명히 아시는 것도 쭈볏쭈볏하시는 데 여러 사람 앞에서 어려운 것을 일부러 하시듯이 물으시니 경모궁께서는 더욱 두렵고 겁이 나서 못하면 남이 보는 좌 중에서 꾸중하시고 흉도 보셨다. 경모궁께서는 그런 일이 한두 번 만이면 감히 원망하실 것이 아니로되, 당신은 진정 교훈을 하시지 않는 것을 노엽고 어렵게 여겨서 필경 천성을 잃기에 이르도록 하시니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 있으리오. 본디 경모궁께서는 천질이 넓고 크시며 도량이 활달하시고, 부왕을 무서워는 하시나 잘못한 일이라도 사실대로 정직하게 아뢰고 일호도 기망하시는 일이 없으므로 영조께서도 속이지 않는 것은 알고 계셨다. 기사년 경모궁이 십오 세 되시니 관례하시고 합례를 정하니 그저 기뻐하시고 조용히 재미를 보시면 좋으실 텐데, 어찌하신 성의이신지 홀연히 대리하실 영을 내리시니, 억만사 대리 후에 탈이니 어찌 서럽지 않으리오. 영조께서는 공사 중 금부, 형조, 살육 등의 일은 친히 보시지 않고 동궁께 맡기셨다. 대리를 맡으신 후의 공사는 한 달에 여섯 번 있는 차대에 보름전 세 번은 대조께서 하시는데 동궁이 시좌하시고, 보름 후 세 번은 소조께서 혼자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순편하지 못하고 편론이나 하는 상소는 소조께서 혼자 결단하지 못하여 대조께 묻자오면, 상서가 아랫사람의 일이지 소조께서는 아실 바 아니로되 격노하셨는데 그것은 소조께서 신하를 잘 조화시키지 못한 탓으로 그런 상소가 나왔다고 책하셨다. 그리고 그런 상소에 대한 비답도, "그만 일을 결단하지 못한 탓으로 나를 번거롭게 하니 대리시킨 보람이 없다." 하시며 꾸중하셨다. 그러나 아뢰지 않으면 또, "그런 일을 어찌 알리지 않고 왜 자탄할 수 있느냐?" 하고 꾸중하셨다. 이처럼 저리할 일을 이리하지 않는다 꾸중하시고 이리할 일을 저리하지 않았다 꾸중하셔서 이 일 저 일 다 격노하여 마땅하지 않게 여기셨다. 심지어는 백성이 추운데 입지 못하고 굶주리거나 날이 가물거나 천재지변이 있어도 "소조에게 덕이 없어서 이렇다." 하고 꾸중을 하셨다. 그러므로 소조께서는 날이 흐리거나 겨울에 천둥을 하거나 하기만 해도 겁을 내게 되므로, 마침내 사사망념으로 병환이 생기는 줄을 깨닫지 못하시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한 번 꾸중에 놀라시고 두 번 격노에 겁내시면 아무리 웅위하시고 영장하신 기품이라 한들 한 가지 일이라도 자유롭게 하실 수 있으리오. 경모궁이 십오 세 되시니 능행을 한 번도 못하시고 성장하셨는데, 항상 교외 구경을 하고 싶으셨어도 매양 거절하고 못 가시게 하니, 처음에는 서운하고 섬득하신 것이 점점 성화가 되어서 우실 적도 있었다. 당신이 부모님께 속으로 본디 정성은 거룩하시건마는 민첩하지 못하신 행동이 정성의 백분지 일도 나타나지 못하니, 부왕은 그 사정을 모르시고 미안하신 사색은 매양 한 번도 부왕의 관용을 입지 못하시니 점점 두려운 것이 마침내 병환이 되어서 화가 나시면 푸실 데가 없었다. 그래서 내관과 나인에게 푸시고, 심지어 내게까지 푸시는 일이 몇 번이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영조께서는 창의궁에 오래 머무르시고 환궁하지 않으실 때 경모궁께서는 시민당 손지각 뜰의 얼음 위에 짚자리를 깔고 엎드려서 대죄하시다가 창의궁에 걸어가셔서 또 짚자리를 깔고 엎드려서 대죄하시고 머리를 돌에 부딪쳐서 망건이 다 찢어지고 이마가 상하여 피가 나왔으니, 이런 일이 천성의 효성과 본질이 중후하신 것이요, 억지로 꾸민 일이 아님을 잘 알 수 있다. 그리하실 즈음에 또 꾸중이 어떠하시리요마는 공손히 도리를 다하시니 변을 당하여 잘 처리하시기로 영명을 많이 얻으셨다. 경모궁께서 매양 경문 잡설 등을 심하게 보시더니, "옥주경을 읽고 공부하면 귀신을 부린다하니 읽어보자." 하시고 밤이면 읽고 공부하셨다. 그러더니 과연 깊은 밤에 정신이 아득하셔서, "뇌성보화 천존이 보인다." 하시고 무서워하시며 병환이 깊게 드시니 원통하고 슬프다. 십여 세부터 병환이 생겨서 음식 잡숫기와 몸을 움직이는 것까지 다 예사롭지 않으시더니 옥추경 이후로 자주 기질이 변화하신 듯이 되어 무서워하시고 옥추 두 글자를 거들지 못한다. 단 오셨을 때는 옥추단도 무서워서 찾지 못하고, 그 확에는 하늘을 퍽 무서워하시고 우레뢰, 벽력벽, 그런 자를 보지 못하시고 그 전에는 천둥을 싫어하시나 그리 심하지는 않으시더니 옥추경 이후는 천둥 때면 귀를 막고 엎드려서 다 그친 후에야 일어나시니 이런 일을 부왕과 모친께서 아실까 질겁하시는 것은 형용하지 못할 일이었다. 을해년 이월에 역변이 나서 오월까지 영조께서 친히 심판하시니 그 때 역적을 정법하여 모든 대신들이 늘어서는 때면 동궁을 불러내서 오게 하시고 날마다 전파하셔서 심판하시다가 들어오시면 인정 후나 이 경이 되고 삼사 경이 될 적도 있었으니 하루도 폐하지 않으시고, "동궁 불러라." 하시어 가시면 "밥 먹었느냐?" 하고 물으신 후에 대답하시면, 즉시 그 날 친국하신 일 물으시고 가시려는 것이매, 실은 좋고 길한 일엔 참례치 못하게 하시고 상서롭지 못한 일에는 참석하게 하시고 잠깐 수작이나 하시면 그러도 하련마는 날마다 다른 말씀은 한 마디 하시는 일없이 마치 대답시켜서 듣고 귀를 씻고 가시기 위해서 하루도 폐하지 않고 밤중에 그러시니 아무리 지극한 효심이요, 병 없는 사람이라도 어찌 싫지 아니하리오, 그 병환의 증세를 생각하면 짜증이 나셔서, "왜 부르십니까." 하실 듯 하되 그 병환을 능히 참으시고 날마다 방중이라도 부르시는 때를 어기지 않으시고 대령하고 계시다가 그 대답을 어기지 않고 하시니 본연의 효성을 알 수 있다. 그 병환이 이상스러운 것은 처자가 애쓰고 내관이나 나인이 주야에 두려워 지내나 자모도 자세히 모르시니 부왕께서 어찌 자세히 아실 수 있으리오. 위에 뵈올 적과 신하에 대하실 적은 보통과 다름없이 예사로우시니 그것이 더욱 답답하고 서러운 일이었다. 병자 설날에 상으로부터 존호를 받자오시되 경모궁은 참례시키지도 않으셨다. 병화는 더욱 깊어서 강연도 더듬으시고 취선당 바깥 소주방이 깊고 고요하다 하여 많이 머무르시더니 오월에 영조께서 홀연 낙선당을 보러 나오시니 그 때 동궁이 세소도 잘 못하시고 의대 모양이 모두 다정치 않으셨다. 마침 금주가 엄한 때라 술을 잡수셨나 의심하시고 대노하셔서, "술 드린 이를 찾아내라." 하시고 경모궁께서 누가 술을 드렸느냐고 엄중히 물으셨으나 사실로 술 잡수신 일이 없었으니 얼마나 억울한 일이리오. 영조께서는 아무일이든지 억측으로 생각하시어 엄히 꾸짖으시는 일이 많았다. 그날 경모궁을 뜰에 세우시고 술 먹은 일을 엄문하시니 실지로 잡수신 일이 없건마는 감히 무서워서 변명을 하는 성품이시라 하도 강박히 물으시니 하는 수 없이, "먹었나이다." 하시니 "누가 주더나?" 델 데가 없어서 "밖의 소주방 큰 나인 희정이가 주옵더니다." 하시니 영조께서 두드리시며. "네 이 금주하는 때 술을 먹어 광패히 구느냐?" 하고 엄책하셨다. 이 때 보모 최상궁이 원통하여 참을 수 없어서 아뢰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모궁께서는 최상궁을 꾸짖으셨다. "먹고 아니 먹고 간에 내가 먹었다고 아뢰었으니 자네가 감히 말할 것이 있는가. 물러가소." 보통 때는 부왕 앞에서 주저하여 말씀을 못하시더니 그 날은 원통이 꾸중을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잘하셨던가. 그 때 두려워서 벌벌 떠시던 중에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일이 다행하더니 영조께서 또 격노하셨다. "네 내 앞에서 상궁을 꾸짖으니 어른 앞에서는 개도 꾸짖지 못하는데 그리하느냐?" "감히 와서 변명을 하기로 그리 하였습니다." 얼굴을 낯추어서 아래사람의 도리로 잘하신 일이었다. 그러나 금주령 하래서 동궁께 술을 드렸다고 희정이를 멀리 귀양보내시고 대신 이하 인견하라 하시고 춘방관을 먼저 들어가 면담하라 하오시니, 그 날 억울하고 슬퍼서 홧증을 참기 어렵다가 춘방관이 들어오니 처음으로 호령하셨다. "너희놈들이 부자간에 화하게는 못하고 내가 이렇게 억울한 말을 들어도 너희들은 말 하나 아뢰지 않고 감히 들어올까 보냐. 다 나가라." 춘방관 하나는 누구였는지 모르나 하나는 원인손이었다. 그는 무어라 아뢰고 썩 나가지 않으니 경모궁께서 화를 내시고 "어서 나가라 " 하고 쫓아내실 즈음에 촛대가 거꾸러져서 낙성당 온돌 남창에 닿아 불이 붙었다. 불 잡을 사람은 없고 화세는 급하여 순식간에 낙선당이 타니 영조께서는 아드님이 성결에 불을 지르신 것이 아닌가 하고 노염이 십 밴타 더 하셔서 함인정에 제신을 모으시고 경모궁을 부르셔서, "네가 불한당이냐, 불을 왜 지르느냐?" 하고 호령하셨다. 그때의 설움이 가슴에 복받쳐서 또 거기서도 그 불이 촛대가 굴러서 난 불이라는 원인을 여쭙지 않으시고 스스로 방화한 듯이 하시니 절절이 슬프고 갑갑하였다. 그날 그 일을 지내시고 막히셔서 청심환을 잡수시고 울화를 내리시더닝, " 아무래도 못살겠다." 하고 저승전 앞뜰의 우물로 가서 떨어지려 하시니 그 놀라운 경상과 끔찍한 형용을 어찌 말할 수 있으리오. 가까스로 구하여 덕성합으로 나오시게 하였다. 대저 부자분 사이가 좋지 못하신 곡절이 또 있으니,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신미 동짓달에 현빈궁 상사나시니 영조께서 효부를 잃으시고 애통하시어 장례에 친히 임하시어 간곡하게 돌보셨다. 그러는 중 그 곳 시녀 나인이 문녀였는데 상사 후 가까이 하셔서 잉태하고, 그 오라비는 문성국이란 놈인데 그것을 별감으로 사랑하시고 문녀도 총애하여 계유 삼월에 옹주를 낳았다. 문성국이 제 무슨 심장으로 동궁께 흉한 뜻을 먹었는지 요악 간흉한 놈이 아니리오. 부자분 사이가 좋지 못하신 것을 그놈이 알고 그 틈을 타서 부왕의 성의만 맞추어서 동궁 하시는 일을 전부 염탐해다가 고자질해 올렸다. 동궁 하시는 일을 누가 사이에서 말할 이 있으리오마는, 성국이는 세력을 믿고 무서운 마음이 없어서 동궁 액속들이 모두 제 동류이므로 동궁의 사소한 일까지 듣는 족족 대조께 여쭙고, 문녀는 안으로 모든 소문인즉 다 여쭈니, 모르실 제도 의심하시던 터에 날로 동궁의 험만을 들으시니 성심이 갈수록 갑갑하게 되실 수밖에 없었다. 국운이 불행하여 요녀와 간적이 일어난 일이 슬프다. 병자년 마마병으로 모친 상사를 당하시니 슬프시기도 하고 마음을 많이 쓰시니 병환은 점점 더하시고 성국이는 듣는 일마다 아뢰어 두 분 사이가 더욱 망극하여다. 그 때 가뭄은 들고 노염이 장하셔서 엄교가 많으시니 그 밤에 동궁이 덕성합 뜰에서 휘녕전 바라보시고 슬피 울면서 죽고자 하시던 일을 어찌 다 적으리오. 그 유월부터 홧증이 더 하셔서 사람 죽이기를 시작하시니 그때 당번 내관 김환채라는 것을 먼저 죽여서 그 머리를 들고 들어오셔서 나인들에게 보이시니, 내가 그때 사람의 머리를 벤 것을 처음 보았는데 그 흉하고 놀랍기 이를 것이 어이 있으리오. 사람을 죽이고야 마음이 조금 풀리시는지 그 때 나인 여럿이 상하니 그 갑갑하기 측량없어 마지 못하여 선희궁께, "병환이 점점 더하여 이러하시니 어찌 할꼬?" 하고 여쭈니 놀라서 음식을 끊고 자리에 누워서 근심하시니 또한 망극하니 그저 죽어서 모르고 싶었다. 정축년 동짓달 변 후에 관희합에서 머무르시더니 무인 삼십 사년 이월에 부왕께서 또 무슨 일로 불평하시고 동궁 계신 데로 찾아가시니 동궁 하고 계신 것이 어찌 눈에 거슬리지 않으시리오. 숭문당으로 오셔서 동궁을 부르시니 동짓달 후 처음 만나셨다. 여러 조건을 많이 꾸중하시고 하신 일을 바로 아뢰라고 추궁하셨다. 경모궁께서는 아무리 어른들이 아시면 큰 일이 날 줄 아시면서도 어전에서는 당신 하신 일을 바로 아뢰시는 품이니 이는 천성이 숨김이 없어 그러신지 이상하였다. 그 날도 그 말씀에 대답하시기를, "심화가 나면 견디지 못하여 사람을 죽이거나 닭 짐승을 죽이거나 하여야 마음이 풀립니다." "어찌하여 그러하냐?" "마음이 상하여 그러합니다." "어찌하여 마음이 상하느냐?" "사랑하지 않으시므로 슬프고, 꾸중하시기로 무서워서 화가 되어 그러하오이다." 하고 사람 죽인 수를 하나도 감추지 않고 세세히 다 고하였다. 영조께서도 그 때 일시 천륜이 정이 통하셨던지 마음에 측은하셨는지, "내 이제는 그리 않으마." 하시고 노염이 조금 감하시고 경춘전으로 오셔서 나더러 하시기를, "세자가 이러이러 하니 그리할시 옳으냐?" 하시니 부자간에 그런 말씀이 처음이었다. 하도 뜻밖의 말씀이라 내가 창졸에 듣잡고 놀라 기뻐하고 감읍하여 눈물을 드리워 아뢰었다. "그러옵다 뿐이오리까? 어려서부터 자애를 입삽지 못하와 한 번 놀라고 두 번 놀라서 심병이 되어 그러하옵니다." "마음이 상하였다 하는구나." " 상하기 이르오리까? 은혜를 드리시면 그렇지 않으오리다." 이렇게 여쭈며 서러워서 우니 안색과 말씀이 좋아지셨다. "그러면 내가 그리한다 하고, 잠은 어찌 자고 밥은 어찌 먹느냐? 내가 묻는다고 하여라." 하셨는데, 그 날이 무인(영조 34년) 이십 칠일이었다. 내가 대저께서 관희합에 가시는 양을 보고 또 무슨 변이 날까 혼비백산하여 애를 쓰다가 의외의 하교를 받잡고 하도 감격하여 울며 웃으며 "이리하와 그 마음을 잡게 하시면 오죽 좋겠습니까?" 하고 절하고 손을 비비며 축수하매 내 거동이 가엾으시던지 온화하게, "그리 하여라." 하고 가셨다. 이것이 어찌 되신 성교이신지 희한한 꿈 같았다. 마침 경모궁께서 나를 오라하여 가 뵙고 "왜 묻지도 않으신 사람 죽인 말씀을 하셨습니까? 스스로 그런 말씀을 하시고 나중에는 남의 탈을 삼으시니 어찌 답답지 않습니까?" "알고 물으시니 다 말씀드릴 수밖에." "무엇이라 하시옵더이까?" "그리 말라 하시더군." "이렇게 듣자왔으니 이 후는 부자간이 다행히 좋아지겠습니다." 하였더니 홧증을 덜퍽 내시면서, "자네는 사랑하는 며느리라 그 말씀을 다 곧이 듣는가? 부러 그러하시는 말씀이니 믿을 수 없소. 필경을 내가 죽고 마느니." 그러할 제는 병환 계신 이 같지 않고, 아까 부와께서 유연한 천륜으로 말씀하셨으니 믿잡지 못하오나 한때 그 말씀이라도 감축하여 울었고, 경모궁께서 병환 중 능히 하시는 밝은 소견을 들으니 어찌 흐뭇하지 않으리오. 대저 하늘이 부자 두 분 사이를 그토록 하시게 하여 아버님께서는 말고자 하시다가도 누가 시키는 듯이 도로 미움이 생기시고, 아드님은 속이는 일이 없이 당신 과실을 고하시니 이는 천질의 착함이라 좀 예사로우시면 어찌 이같이 하시리오. 하늘 뜻이 어찌하여 이토록 만고에 없는 슬픔을 끼치셨는지 애통할 뿐이다. 이때 의대병이 극심하시니 그 무슨 일인고. 의대병환의 말씀이야 더욱 형편없고 이상한 괴질이신, 대저 옷을 한가지 입으려 하시면 열 벌이나 이삼십 벌이나 하여 놓으며 귀신인지 무엇인지 위하여 놓고 혹 불사르기도 하고, 한 벌을 순하게 갈아입으시면 천만 다행이요, 시종드는 이가 조금만 잘못하면 옷을 입지 못하여 당신이 애쓰시고 사람이 다 상하니 아니 망극한 병이냐? 어떤 때는 하도 많이 하니 무명인들 동궁 세간에 무엇이 많으리오. 미처 짓지도 못하고 옷감도 얻지 못하면 사람 죽기가 순식간에 일이니, 아무쪼록 옷을 해대려도 마음이 쓰이는지라. 부친이 이 말을 들으시고 근심하는 탄식이 무궁하시고, 내가 애쓰는 일과 사람 상할 일을 민망히 여기시고 그 옷을 이어 주셨다. 그 병환이 육칠 년에 걸쳐서 극히 성한 때도 있고 좀 진정한 때도 있었다. 그 옷을 입지 못하여 애를 쓰시다가 어찌하여 조금 증세가 나아서 천행으로 한 벌 입으시면 당신도 다행한 것같이 여기고 더럽도록 입으셨으니 그 무슨 병이련고. 천백 가지 병 중 옷 입기 어려운 병은 자고로 없는 병인데 어찌 지존하신 동궁이 이런 병을 들으셨는지 하늘을 불러 알 길이 없었다. 정성 왕후와 인원 왕후 두 분의 소상을 차례로 무사히 지내고 두어 달은 극심한 탈은 없이 지나가고 국상 후에 동궁께서 홍릉에 참배하지 못하였으므로 마지못하여 따라가게 하셨다. 그 해 장마가 지지하다가 거동날 큰비가 쏟아지매 부왕께서 날씨가 이런 것은 아드님을 데려온 탓이라 하시고 능에 미처 가지 못하여, "도로 들어가라." 하고 동궁을 쫓아 돌려보내고 부왕만 가셨다. 동궁께서는 능에 전알하려 하시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셨으니 어찌 섭섭하지 않으시리오. 거동이 잘 다녀오시기를 축수하다가 이 기별을 듣고 나는 망연 실색하고 이제 들어오시면 짜증을 얼마나 내실까 하고 쩔쩔매고 있었더니 동궁께서 큰비를 맞고 도로 들어오시니 그 마음이 어떠하시리오. 격기가 올라서 바로 오실 수 없어 경영고에 들러서 기운을 진정하고 들어오셨다니 그 모양 얼마나 고통스럽고 걱정스러웠을까? 그런 동굴을 생각하니 그 일은 병들지 않으시더라도 대순의 효도가 아니고는 섧지 않으실 리 없을 것이다. 선희궁과 나는 서로 마주잡고 울뿐이었다. 당신도 비관하신 어조로, "점점 살길이 없다." 하시고 그 후에 옷을 잘못 입고 가서 그런 일이 났는가 걱정으로 의대 증세가 더 하시니 안타까왔다. 이렇듯 신사년이 되니 동궁의 병환이 더욱 심해지셨다. 대조께서 이어하신 후에는 후원에 나가서 말타기와 군기 붙이로 소일할까 하시다가, 칠월 후에는 후원에도 늘 가시니 그것도 심심해서 뜻밖에 미행(몰래 나들이 하는 일)을 시작하셨다. 처음의 일이라 어이없으니 어찌 다 그 근심을 형용하리오. 병환이 나서면 사람을 상하고 마셨다. 그 옷시중을 현주의 어미가 들었는데, 신사년 정월에 미행하려고 옷을 갈아입으시다가 의대증이 발작하여 당신이 총애하시던 것도 잊으시고 그것을 쳐죽이고 나오셨다. 즉각에 대궐에서 이런 탈이 났으니 제 인생이 가련할 뿐 아니라 제 자녀가 있으니 어린것들의 정상이 더 참혹하였다. 이렇게 하여 정월 이월 삼월을 미행으로 보내서 궁 밖 출입이 잦으시니 그 때 내 마음이 얼마나 무섭고 조심스러웠으리오. 경진년 이후 내관 나인이 동궁께 상한 것이 많으니 기억하지 못하되 뚜렷이 나타난 것은 서경달이니 내수사 것 더디 거생한 일로 죽이고 출입한 내관도 여럿이 상하고, 선희궁 나인 하나도 죽어서 점점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장님들도 불러 점을 치시다가 그것들이 말을 잘 못하면 죽이고 의관이며 역관이며 액속 죽은 것들도 있어서 하루에도 대궐에서 사람 죽는 것을 여럿 쳐내니 내외 인심이 황황하며 언제 죽을지 몰라서 벌벌 떨었다. 당신의 천질은 진실로 거룩하시건만 그 착하신 본성을 잃으시고 아주 그릇되시니 이를 어찌 차마 말하리오. 경진 오월 선희궁이 세손 가례 후 처음으로 세손빈도 보실 겸 아랫대궐에 내려오셨다. 동궁께서 반갑게 대하심이 과중하셨는데 마음이 영하여 마지막 영결로 그리하셨는지 모른다. 잡수시는 것과 잔치하는 진상이 거룩하여 과실을 놓게 고이고 인삼과도 하여 놓고, 수연시를 지으시고 잔을 올리시고 남은 것 없이 받으셨다. 그리고 후원에 모셔갈 제 가마를 대연 모양으로 하여 권하자, 선희궁께서 마다하시고 억지로 태우시고 앞에 큰 기를 세우고 풍악을 합치며 모셨다. 그 모양이 당신으로는 극진히 효행하기는 일이라 선희궁께서는 동궁의 그러시는 것이 병환인 것을 망극히 놀라시고 거절하셨다.
인현왕후전 '인현왕후전'중, 왕후의 즉위로 파란곡절을 겪은 뒤 승하하는 대목까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후께서 즉위하신 뒤 두 분 전 대비마마를 효양하심에 하늘에 빼어난 효성과 상감을 받들어 궁안을 다스리심에 덕으로써 인도하여 유순하시고 정정하시며, 비빈 궁녀를 거느리시는 데 있어서도 은애가 병행하시어 선악과 친소를 가리지 않으시고 사람을 아기고 사랑하는 화기가 봄동산 같으시어 만물이 다시 살아나는 듯하니 대궐 안이 모두 성덕을 흠선하고 두 분 대비께서 극진히 애중하시어 국가의 복이라 축수하시고 상감께서도 공경 중대하시며 조야가 모두 흠복하더라. 이 때 궁인 장씨가 비로소 후궁에 참예하여 희빈을 봉하시니, 간교하고 민첩하여 임금 뜻을 잘 영합하니, 상감께서 극히 총애하시더니 무진년 정월에 상감 춘추가 삼십이 거의 되었건만 아직 왕자 없음은 근심하시는지라, 후 깊이 염려하사 조용히 상감께 아뢰어 어진 후궁을 뽑으시어 자손을 보심을 원하시나, 상감이 처음에는 허락하지 않으시더니 후가 날마다 힘서 권하여, 한 여자의 출산을 기다리노라고 막주한 종사를 가벼이 못할 것으로 간절히 아뢴, 정정한 덕과 유화한 말씀이 진정에서 우러나온 것임이 분명하였다. 상감께서 감탄하시고 드디어 숙의 김씨를 뽑아 후궁에 두시니 후께서 예로 대접하시고 은혜로 거느리시니 덕학이 그 전날과 하나도 다르지 아니하였다. 무진년 시월에 희빈 장씨 처음으로 왕자를 낳으니, 상감이 지나치게 사랑하심은 이를 것도 없고, 후도 크게 기뻐하시어 어루만져 사랑하심을 당신이 낳으신 친자식과 같이 하시니, 장씨 자기 분수를 지키고 있었더라면 영화가 가득할 것이로되 문득 참람한 뜻과 방자한 마음이 불 일어나듯 하니, 중궁의 성덕과 아름다운 자태가 일국에 솟아나고 인망이 다 돌아가고 있음을 시기하여, 가만히 남 몰래 제거하고 대위를 엄습하고자 하더니, 그 참소하기를, 새로 태어난 왕자를 숨을 막아 죽이려 한다느니, 희빈을 저주한다느니 하여 국모를 헐뜯고 모함하지 아니함이 없어, 간악한 후빈들을 힘을 합하게 하여 소문을 퍼뜨리고 자취를 드러내어 상감이 보시고 들으시게 하니, 예로부터 악인이 의롭지 않으나 돕는 자가 있다더니 과연 그러한가 보더라. 중궁을 간해하는 말이 날이 갈수록 심해진 상감이 점점 의심하시게 되어 중궁을 아주 박대하시고, 장씨는 악한 교태로 천심을 영합하여 왕자를 방패삼아 권세가 대단하니 상감이 점점 장씨의 사랑에 빠지시어 능히 흑백을 분별하지 못하시니, 전날에 엄숙하고 광명하시던 성심이 아주 변하시어 어진 신하는 모두 물리치시고 간신을 반겨 쓰시니, 조정이 그윽히 의심하고 후께서는 깊이 근심하시어 장씨의 사람됨이 반드시 변괴를 낼 줄 아시나, 왕자의 당당한 상이 있는 고로 깊이 생각하시고 만행이 여기시어 사색을 나타내지 아니하시고 갈수록 현숙한 덕과 정성스러운 마음씨를 드러내시되 상감의 마음은 더욱 멀어지시니 기사년 사월 이십 삼일 드디어 폐비의 전교가 나리니라. 좌승지 이이만이 불가함을 간하니, 상감께서 크게 노하시어 승지 이이만은 파직하시고, 수찬 이만원이 또 간하니 상감께선 더욱 노하시어 멀리 귀양 보내라 하시니, 이렇듯 대신 중신 사십여 인을 먼 고을로 정배하시고 또 비망기를 나리시니 간신의 간사한 말이 상감의 뜻을 영합하고 후궁의 간사한 기운이 상감의 총명을 가리우니, 양과 같이 선량한 충신의 간언이 무슨 효험이 있으리오. 이 때 응교 벼슬에 잇는 박태보 여러 동지들과 합소하여 상소문을 올리고 폐비의 불가함을 간했다가 잡혀 들어가니 상감이 어좌에 앉으시어 소리지르사 응교더러 말씀하시기를, "내, 네놈을 자식처럼 어여삐 여긴 지 오래거든 이제 나를 배반하고 간악한 부인을 위하여 무슨 뜻을 받아 간특 흉악한 노릇을 하는고?" 응교 엎드려 아뢰기를, "전하, 어이 이런 말씀을 차마 하시나이까? 군신 부자 일체라 하오니 아비 성품이 과하여 애매한 어미를 내치고자 하면 자식이 어이 살고 싶은 뜻이 있사오리까? 이제 전하께서 연고 없이 무고한 처사를 하오셔 곤위 장차 편안하지 못하게 되오니 의신이 망극하와 오늘날 죽사옴을 정하와 상소를 드리오니 어찌 전하를 반대하올 뜻이 있사오리까? 중궁을 위하온 일이 정히 전하를 위하온 일이오니 전하를 모셔온 중궁이 아니시니이까?" 상감께서 더욱 노하시어 이르시기를, "급히 결박하라. 이놈아, 네 갈수록 나를 욕하는도다. 내 너를 형문 치려니와 압슬과 화형기구를 차리어라." 하시고 되게 매질하시니, 대궐 안에서 매질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여 향교동까지 들리었다. 피가 낭자하게 튀기고 살이 헤지되 응교는 앓는 소리 한 번도 아니하고 움직이지도 않으며 낯도 변하지 않으니 마치 헛것을 치는 것 같았다. 부동한 자를 대라 거듭거듭 이르시되 끝내 대지 아니하고 홀로 맡아 충절로써 간하니, 상감께서는 더욱 노하시어 압슬 기구를 차려 압슬을 하고, 큰 나무에 거구로 매달고 온 몸을 지지니 살이 다 녹아 온전한 데가 없고 검기가 숯덩이 같고 힘줄이 오그라져 보기에도 참혹했으니 어찌 살기를 바랄소냐. 이와 같이 하여 많은 충신들의 충간도 무릅쓰고 기어니 중궁을 내치게 되니 온 백성 차탄 않는 이가 없었다. 이 때 후께서 부원군 장례 후 지나치게 애통하시어 옥체 불편하시더니, 좌우에 모시는 상궁이 이 말씀을 듣고 대성통곡하며 바삐 들어와 후께 아뢰니 후께서는 안색도 변하지 않으신 채 트게 탄식하여 이르시기를, " 이 또한 하늘이 주시는 재앙이로다. 누구를 원망하리요. 그대들은 모두 명을 받들어 거행하도록 하라." 하시고 조금도 마음에 흔들림이 없으셨다. 명안 공주 이 변을 들으시고 크게 놀라 후께 비옵고 오열비탄하여 옷을 잡고 흐느껴 우시며 능히 말씀을 이루지 못하니, 후께서 탄식하고 위로하여 말씀하시되, "화와 복이 하늘의 뜻에 달려 있으니, 나의 복이 없고 천한 탓인즉 다만 어명대로 받들어 모실 따름이라. 누구를 원망하리요마는 공주 이렇듯 동정하시니 은혜 잊을 길이 없소이다." 공주 그 덕망을 새삼 탄복하며, 차마 놓지 못하여 후를 붙들고 눈물이 비오듯 하니 무수한 궁녀가 다 울고 차마 떠나지 못하더니, 이튿날 감찰 상궁이 상명을 받자와 침전에 이르러 궁중께 내리신 전교를 아뢰니, 후 천연히 일어나서 예복을 벗고 관잠을 끄르시고 중계를 내려오셔 전교를 듣잡고 즉시 대내를 떠나 본가로 나오실 새 궁중이 통곡하여 곡성이 낭자하더라. 이 때 선비 오십여 명이 요금문 앞에 대령하였고, 백여 명은 구파문 앞에 엎디어 상소를 드리고 소리쳐 울더니, 후의 출궁하심을 보고 깜짝 놀라 미처 신도 신지 못한 채 버선발로 따라와 모여 일시에 크게 소리내 우니, 천지가 진동하고 백성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길을 막고 통곡하여 각종 상인들은 저자를 파하고 서러워하니 수심 띤 구름이 하늘에 가득하고 하늘의 해도 빛을 잃은 것 같았다. 후 본가로 나오시니 부부인이 마주 나오시어 붙들고 통곡하시니, 후도 부원군 옛자취를 느끼사 애원 통곡하시고 이윽고 부부인께 고하여 이르시되, "죄인의 몸으로 친족을 보는 것이 옳지 못할 것이니 나가소서." 전하시니 부인과 다른 이들도 통곡하여 마지못해 나가신 후, 당일로 명하사 안팎 문들을 모두 봉쇄하고 본가 비복들은 한 사람도 두지 않으시고 다만 궁녀만 두시며 정당은 폐하시고 아래채에서 거처하시었다. 집은 크고 사람은 적어 각 방이 다 비어 휘휘 고적한데 찬과 벽을 바르지 않으시고 넓은 동산과 집에 풀을 매지 않으니, 키 한 길만큼 자라 인적이 끊겼으니 귀신 날고, 저물면 예사 사람과 같이 다니니 궁인이 움직이지 못하고 두려워하더니, 하루는 난데없는 큰 개 한 마리가 들어오니 거동이 추한지라 궁인들이 쫓으되 또 들어오고 다시 쫓으되 또 들어오니 후께서 이르시기를, "그 개 출처 없이 들어와 쫓아도 가지 않으니 고이한지라. 내버려 두어 그 하는 양을 보라." 하시니, 궁인들이 밥을 먹이며 두었더니 십여 일 뒤 새끼 셋을 낳으니 가장 크고 모진지라. 이 후는 날이 저물어 망령의 도깨비의 자취 있으면 네 마리의 개가 함께 짖으니 잡귀 급히 물러나가 종적을 감추니 그로 이하여 집안이 편안한지라, 무지한 짐승도 도움이 있거든 하물며 신민이 잊으랴만 후 폐출하신 뒤로 조정에선 기뻐하는 소인이 많으니 도리어 금수만 못하리로다. 이 때에 상감께서 민후를 폐출하시고 희빈 장씨를 왕비로 책봉하여 궁중의 조하를 받게 하니, 궁내의 모든 사람들이 서러워하고 장씨의 처사를 분하게 생각하되 조정에 어진 사람이 없으니 누가 감히 말을 할 것인가. 그윽히 원분과 눈물을 머금고 조하를 마치니 희빈의 아비를 옥산 부원군으로 봉하고, 빈의 오라비 장희재를 훈련 대장을 시키시니 백성들이 모두 한심하게 여기고 기강이 흩어져 팔도의 인심이 산란하여 별의별 소문이 다도니, 대개 예로부터 어진 임금이라도 한 번은 참소의 말을 귀담아 듣기 쉬운 법이거니와, 숙종 대왕과 같은 문무를 겸전하신 어진 임금으로도 장씨에게 이대도록 하사 국가의 체면을 손상하심은 실로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듬해 경오년에 장씨의 생자로서 왕세자를 책봉하시니 장씨 양양하여 병약무인한, 이러므로 발악을 일삼아 비빈을 절제하며 궁녀를 엄형하고 포악한 말과 교만한 행실은 말로 할 수 없었다. 한편, 궁중에 기강이 없어지고 원망은 하늘을 찌르고 장희재 욕심이 많고 포악하여 팔도에서 재물을 긁어들이나 아무도 말할이가 없었다. 이렇듯 삼사 년이 지나니 천운이 순환하여 홍진비래에 고진감래라, 구름이 점점 걷힘에 태양이 다시 밝아오니 성총이 깨달음이 계셔 민후의 억울하심을 알고 정씨의 간악함을 깨치시어 의심이 가득하시니 대하시는 기색이 전과 다르시고, 서인들이 후의 삼촌 숙질을 다 처벌하시라고 날마다 아뢰기를 수년에 이르렀으되, 상감께서 끝내 허락치 않으시니 이럼으로 민씨 일문이 보존이 되었던 것이다. 장씨 상의를 스치고 크게 두려워, 오라비 희재로 더불어 꾀하여 갑술년 무옥을 다시 일으켜 무술이를 죽이고 폐비에게 사약을 하려고 하니 상감께서 짐짓 그 하는 양을 보시고 궁중 기색을 살피사 망연히 간사한 장씨의 흉모를 깨달으시어 즉일로 조정을 살피시어, 비위만 맞추는 신하들을 다 물리치시고 예 신하를 불러 쓰실 새 갑술년 사월 초구일에 비망기를 나리시어 폐하신 중궁의 무죄하심을 밝히시고, 별궁으로 모시게 하라 하시어 어찰을 나리사 상궁 별감과 중사를 보내시매 후께서 이르시기를, "죄인이 어찌 외인을 인접하여 감히 어찰을 받으리오." 하시고 문을 열지 않으시더니, 연 삼일을 갖가지로 청하니 후 다시 이르시기를, "죄인이 천은을 입어 일명이 살았은즉 이 집이 죄인의 뼈를 감출 곳이라, 어찌 국명을 받자오며 번화히 사람을 인접하리오. 사명이 여러 번 나리시니 더욱 불안하여이다," 굳게 사양하시고 예물을 받지 않으시니 상감께서 엄지를 민부에게 내리시고, 대신이며 중신들이 문 밖에 청대하고 어찰을 하루에도 사오 차례씩 내리시니 후께서 마지못해 예복을 입으시고 입대하실 새 사람들이 대로를 덮어 칠보단장한 궁녀 벌여 섰고, 각국문 대장이 어림군 수천을 거느려 호위하고 대신과 백관이 시위하여 천기 화창하여 입궐하시니 예의 규모 존중하여 향취 웅비하고 광채 찬란하여 혜풍이 일고 상운이 피어나니 장안 백성이 영락하여 굿보는 이 길을 메워 한편 즐기고 한편 옛일을 생각하여 눈물을 흘리니 도리어 가례하실 때보다 더 하고, 가마에 흰 보 덮고 나오실 때 궁인과 선비 통곡하고 따라가던 일을 생각하고 어찌 오늘날이 있을 줄 알았으리오. 이는 전혀 민후의 원려와 덕망으로 본디 덕을 깊이 쓰시고 고초 중 자신의 처신을 아름답게 하사 하늘이 감동하심이라, 여러 부인네들 기쁘고 한편 슬퍼 혹 울고 혹 웃더란다. 상감께서 몹시 반기시나 옛일을 생각하시고 감창하심을 이기자 못하사 용안에 눈물이 떨어져 용포 소매를 적시니, 좌우 일시에 눈물을 흘려 감히 우러러 뵈옵지 못하였다. 이 때 희빈이 오래 위를 차지하여 천만 세나 누릴 줄로 알았다가 홀연히 상감께서 뜻밖에 변하여 폐후를 모셔들이고 복위하심을 듣고, 청천벽력이 일신을 분쇄하는 듯 놀랍고 앙앙 분통함이 흉즁에 일천 잔나비 뛰노니, 스스로 분을 이기지 못하여 시녀에게 전하여 말하되, "내 오히려 곧 위에 있거늘 폐비 민씨 어찌 문안을 아니하리오. 크게 실례하여 방자함이 심하도다." 궁녀 이 말을 아뢰니 후께서 어이없어 못 들으신 듯 사기 태연하시고 안색이 정정하사 답언이 없으시더니, 이 때 상감 후로 더불어 나란히 앉아 계시다가 후의 기색을 살피시고 지난날이 다 맹랑하여 스스로 혼임함을 부끄럽게 여기시고 장씨의 방자함을 통한하사, 즉시 외전에 나오사 그 날로 전지하셔 여양 부원군을 복관작하시고, 후의 삼촌 좌의정 벽동 귀양지에서 죽은 고로 벼슬을 추정하시고, 그 자손에 옛 벼슬을 조시고 새 벼슬을 높이시며, 장씨 아비는 삭탈 관직하시고 빈의 옥책을 깨치시고, 장휘재를 제주도로 귀양 보내라 하시고, 내시에게 전교하사 빈을 작은 집으로 내려오게 하시고 바삐 나리라 하니, 장씨 대오하여 크게 꾸짖어 말하되, "내 만민이 어미요, 세자 있거늘 어찌 너희가 무례히 굴리오. 내 기어이 폐비의 절을 받고 말리라." 악득을 이기지 못해 세자를 난타하니, 상감께서 들으시고 친히 납시니, 바야흐로 장씨의 밥상을 받았다가 상감을 뵈옵고 독약이 표동하여 얼굴이 푸르락붉으락 하여 말하기를, "하루라도 내 위에 있거늘 폐비 문안을 아니 하며, 내 무슨 죄로 하당에 나리라 하시나이까?" 상감께서 진노하사 이르시기를, "어찌 감히 문안을 받으며 또 어찌 이 자리를 길게 주리리오." 장씨 문득 밥상을 박차고 발악하여 말하되, "세자가 있으니 내 어찌 이 자리를 못 가지리오. 나려도 부디 민씨의 절을 받고 나리리다." 수라상이 산산이 헤쳐 방안에 흩어지니 상감께서 대노하시어, "빨리 장씨를 끌어내리라." 하시니, 궁중이 다 상감의 뜻을 알고 황황히 달려들어 장씨를 끌어 업고 총총히 단에 내려 소당으로 가니 장씨 발악하여 중궁전을 욕함을 마지않으니, 상감께서 즉시 내치시고 싶으되, 세자의 낯을 보아 내버려두시니라. 장시 외람히 곤위에 있어 일국의 존경을 받고 상감의 총애를 받다가 졸지에 폐출하여 희빈으로 나리니 앙앙 분노하고 중궁을 원망하니 불순한 언사 포악하고 화를 이기지 못하여 세자를 볼 적마다 무수히 난타하여 마침내 골병이 드니, 상감께서 대노하사 세자를 영숙궁에 가지 못하게 하시고 정전에 놀게 하시나 후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고로 희빈을 생각지 않으시었다. 장씨 오매로 교아 절치하여 원수를 갚으리라 하고 요사스런 무녀와 흉악한 술사를 얻어 주야로 모의하여 영숙궁 서편에 신당을 배설하고 각색 비단으로 흉악한 귀신을 만들어 앉히고 후의 성씨 생월 생시를 써서 축사를 만들어 걸고 궁녀에게 화살을 주어 하루에 세 번식 쏘아 종이가 헤지면 비단으로 염습하여 중전 신체라 하고 못 가에 묻고, 또 다시 화상을 걸고 쏘아 이리 한 지 삼 년이 되나, 후의 신상이 반석 같으시니 더욱 앙앙하더니, 희재의 첩 숙정과 의논하여 흉한 해골을 얻어들여 오색 비단으로 귀신을 만들어 밤중에 정궁 북쪽 섬돌 아래 가만히 묻고 채단으로 중전의 옷을 일습을 지어서 해골을 가루로 만들어 솜을 뿌려 가지고 거짓 공손한 체하고 중전께 드리며, 날마다 신당 축원과 요술 방정이 천만가지로 그칠 적이 없었으니, 예로부터 사불 범정이요, 요불승덕이라 하였으되 액운 불행한 때를 당하여 요얼이 침노하니 중전께서는 경진년 중추부터 홀연히 옥체 편찮으시어 각별히 극중 하심도 없고, 때로 한열이 왕래하고 밤중이면 골절을 진통하시다가는 명석 같은 때도 있고 진퇴무상하신 것이었다. 궁중이 크게 근심하시고 상감께서 깊이 염려하사 치료하심을 극진히 하시되, 조금도 효험이 없고 겨울을 지내고 다음해 봄이 되니 후의 백설 같은 기상이 많이 손색 되시니, 상감께서 전일에 마음 상한 것이 고질이 되심인가 하시어 더욱 뉘우치시고 슬퍼하시며, 한편 후의 기상이 너무 맑고 빼어나시니 행여 단명하실까 염려하사 마음이 편하지 못하시니 후께서 불안하시어 매양 아픈 것을 굳이 감추시고 나타내지를 않으시더라. 후께서 장씨가 드린 옷을 입지는 않으시나 집안에 두고 있는 지라, 요얼이 밖으로 침노하고 또 방안에 살기가 성하니, 이 해 오월부터 병환이 중하게 되시어 옥체를 가누지 못하시니 상감께서 크게 근심하사 약청을 배설하고 지성으로 치료하되 추호도 효험이 없고 점점 더하시니 이는 신상으로 솟아나신 병환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낮이면 맑은 정신으로 들으셨다가도 밤마다 더욱 중하시어 헛소리를 무수히 하시니 증세 고이하나 그 연유를 알지 못하더니 칠월에 병중 더하여 명이 조석에 달려 있는지라, 궁중이 진동하고 슬프기 그지없어 천신께 빌며 사찰에서 재를 올리되 세자께서 친히 임하시니 이토록 정성이 아니 미친 곳이 없으나 병환은 더욱 중해질 뿐이었다. 상감께서는 침식을 폐하시고 근심하사 용안이 초췌하시니, 후 미령하신 경황 중에도 몹시 염려하사 도리어 상감을 위로하시더라. 후 스스로 회춘하지 못할 둘 아시고 의원을 물리치고 좌우 호탕하던 시녀를 돌아보아 이르시기를, "내 이제 살지 못하리니 너희 지성을 무엇으로 갚으리오. 너희들은 내 삼년상 후 각각 돌아가 부모 동생을 보고 인륜을 갖추어 살다가 타일에 지하에서 만나기를 기약하자." 좌우 천만 뜻밖의 하교를 듣고 망극하여 일시에 낯을 가리고 체읍하니 눈물이 쏟아지고 목이 메어 능히 대답을 못하더라. 후께서 명하사, 전각을 소세하며 향을 피우고 궁인에게 붙들려 세수를 정히 하시고, 양치질을 하시고 새 옷과 새 금침을 갈아입으시고 궁녀를 시켜 상감을 청하시니, 상감께서 들어오시며 후께서 의상을 정돈하시고 좌우로 붙들려 앉아 계시매 궁인들이 다 망극하여 슬퍼 마지않더라. 상감께서 당황하사 후 곁에 가까이 다가앉으시며 이르시기를, 후께서 문득 눈물을 흘리며 아뢰기를, "신이 곤 위에 있어 성상 은혜로 영복이 극진하오니 한하올 바 없사오나, 다만 슬하에 혈육이 없이 그림자 외롭고 성상의 큰 은혜를 만분지일도 갚지 못하고 오히려 천심을 손상케 하고 오늘날 영결을 짓사오니, 구천지하에서도 눈을 감지 못하리오니, 원하옵건대 성상께서는 박명한 신을 생각지 마시고 길이 평안하소서." 상감께서 크게 설위하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르시기를, "후께서 어찌 이런 말씀을 하시느뇨." 말씀을 이루지 못하사 용포 소매를 적시니, 후께서 눈물을 흘리시고 길게 한숨지며 말씀하시기를, "성상은 옥체는 보중하사 돌아가는 첩심을 평안하게 하시고 만민의 폐를 덜으소서." 세자와 왕자를 어루만지시고 후궁과 비빈을 나오라 하사 가로되, "내 명운이 불행하여 육 년 고초를 겪고 다시 성은이 망극하사 곤 위에 올라 세자 왕자와 더불어 조용히 여생을 마칠까 하였더니 오늘날 돌아가니 어찌 박명하지 않으리오. 그대들은 나의 박명함을 본받지 말고 성상을 모셔 만수무강하라." 하시며 겨우 팔 세 되신 연잉군의 손을 잡고 이르시기를, "이 애 영특하여 내 극히 사랑하였더니 장성함을 보지 못하니 한이로다."하시고 비빈을 물러가게 하시고, 오라버님 내외와 조카 내 사촌을 안견하사 오열 비창하심을 금하지 못하시니, 민공 등이 엎드려 슬피 물며 말을 못하는지라. 삼감께서 이 거동을 보시고 가슴이 미어지고 꺾어지는 듯 차마 보지 못하시더라. 좌우 미음을 올리니 상감께서 친히 받아 눈물을 머금고 권하시니 후께서 크게 탄식하며 두어 번 받아 마시고, 상감께서 친히 부축하여 베개를 바로 우이시니, 이윽고 창경궁 경춘전에서 엄연 승하하시니 때는 팔월 십사일 사시요, 복위하신 지 팔 년이요, 춘추 삼십 오 세이셨다. 궁중에 곡성이 진동하여 귀신이 우는 듯, 궁녀 서로 머리를 맞대어 망망히 따르고자 하니, 하물며 상감께서랴. 손으로 난간을 두드리시며 하늘을 우러러 방성통곡하시니 용안에 두 줄기 눈물이 비오듯 하사 용포가 물을 부은 것 같이 젖었으니 궁중이 차마 우러러 뵈옵지 못하더라.
윤씨행장 참판공이 다른 자제 없고, 정혜옹주 다른 자제 없고, 오직 대부인 하나뿐인 고로, 옹주 친히 기르시니 입으로 외워 소학을 가르치니, 대부인이 총명하고 숙성하여 한번 가르치매 입을 올리니, 옹주 매양 그 여잔 줄을 한하더라. 및 자라매 의복과 음식을 사치치 아니케 하여 가로되 다른 날 가난한 선비의 아내 되면 어찌 장 이같이 하리요 하더니, 및 우리 선군께 들어오매, 옹주 경계하여 가로되, "너희 부가는 예법하는 집이라, 혹 부도를 어기어서 나를 부끄럽게 말라." 하여 가르치기를 아 같이 하는 지라. 대 부인이 나이 바야흐로 열 넷이로되 심히 기림을 받더라. 정축년 난리에 선군이 강도에서 사절하시니, 대 부인이 바야흐로 잉태하여 홍부인 계신 데 있더니, 배를 얻어 화를 면하니, 이때 선형은 바야흐로 다섯 살이요, 불초 만중은 배 속을 떠나지 못하였더라. 난 이 정한 후에, 두 아이를 데리고 돌라와 부모 슬하에 의지하여, 안으로는 홍 부인을 도와 가사를 보살피고, 밖으로는 참판공을 섬겨 능히 받기를 옛 효자같이 하고, 틈을 얻으면 서사를 보아서 스스로 심사를 위로하니 날로 답게 됨이 너르더라. 이에 참판공이 아들 없음을 잊고 일찍 탄하여 가로되, "매양 손녀로 더불어 말하매 마음이 문득 시원하니, 만일 사나이면 우리 집 한 대제학이니리리오." 하더라. '중략' 이로부터 집안이 더욱 가난하여 몸소 띠를 짜고 수놓아 조석을 잇되 늘 태연하여 일찍 근심하는 빛 없고, 또한 불초 형제로 하여금 알게 아니 하니, 대게 일찍이 가사에 골몰하여 서적 공부에 방해로울까 염려함이러라. 불초 형제 아이 적에 비길 스승이 없으니, 소학, 사략, 당시 같은 유는 대부인이 다 손수 가르치시니, 비록 사랑하기를 과히 하나, 그 글 전하시기는 심히 엄히 하사 늘 이르되, "너희 무지 다른 사람에 비길 바가 아니라, 반드시 재주가 남보다 한층 뛰어나야 반드시 가로되, '과부의 자식이로다'하는 지라. 이 말은 너희 마땅히 뼈에 새기라." 하시고 불초 형제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몸소 회초리로 종아리를 치시며 울며 말씀하시되, "네 부친이 네 형제로써 나에게 의탁하고 죽었으니, 네 이제 이렇듯 한지라, 내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 가 너의 부친을 보리오. 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한지라." 하니, 그 말의 통절함이 이렇듯 하더라. 선형이 글 잘하기는 비록 천성이나, 그 재주 숙성함은 또한 대부인의 힘이 많고, 만일 만중의 흐리고 어두워 스스로 바람은 가르치기를 아니기 아닐러라. 때에 난리 지난지 오래지 않은지라, 서적을 얻기 어려우니, 맹자, 중용 같은 유를 부인이 다 곡식을 주고 사고, 좌씨전 파는 사림이 있으되 권수가 많은지라, 권수 많음을 보고 감히 값을 묻지 못하니, 대부인이 베틀 가운데 명주를 끊어 값을 주니, 이 밖은 옷할 것이 남은 것이 없더라. 이웃 사람이 옥당 서리를 인연하여 홍문관에 있는 사서와 시경언해를 빌어내어 손수 벗기시되, 자획이 정세하여 구슬을 꿴 듯하여 한 곳도 구참함이 없더라. '중략' 대부인이 일찍 근대 비명을 보시다가 여자의 덕 일컫기를 너무 과히 함을 병같이 여겨 가라사되, "규문안 일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바라. 붓 잡는 자가 다만 그 집 사림이 이르는 대로 의지하려 하는 고로 그 말을 족히 믿지 못하니, 그렇지 아니하면 어찌 동방에 계집이 많으뇨." 이 말씀이 오히려 낭낭하여 귀에 있는지라, 이제 덕을 기록하는 글에 감히 한 자도 꾸미지 못하여 너무 간략하게 함은, 대개 대부인의 평생 뜻을 생각함이니라. 경오 팔월 일에 불초 고애남 만중은 읍혈하고 삼가 기록하노라. ************************************************************************************ (1) 제작동기 이 <윤씨행장>은 서포 자신이 타고난 효행을 다하지 못하고 유배지에서나마 모친께 향한 지극한 효행을 문장으로 남긴 것이었다. 그의 부친이 정축호란을 당하며 절사하여 유복자로 태어나, 두 형제는 모친의 가르침에 힘입어 가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형은 일찍 죽고 서포 자신마저 왕의 노여움을 받아 외로운 남해 적소로 유배되었다. 거기서 그는 모친의 부음을 듣고 죄인의 몸으로 분상조차 못하는 더할 수 없는 자신의 불효에 몸부림쳤다, 그것은 실로 효성 이상의 그 무엇이 담겨 있다, 그는 모친의 부음을 듣고 죄인의 몸으로 분상조차 못하는 더할 수 없는 자신의 불효에 몸부림쳤다. 그것은 실로 효성 이상의 그 무엇이 담겨 있다. 그는 모친 영전에 피눈물로써 복받치는 슬픔을 잠시 억제하고 지극한 효성을 행장에 담아 승화시키니, 모든 이들이 감동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작품은 모친의 ‘아름다운 말씀과 착한 행실’을 나타낸 행장이면서 서포 자신의 지극한 효행의 총결이며, 못 다한 효심을 응축시킨 것이다. 이 작품은 효행의 호소가 절정으로 승화되어, 모친의 장하고 빛나는 행적을 적어 길이 후세의 귀감을 삼으려 지은 것이라 하겠다. 자손들이 서포의 생장을 짓고 영정을 그려 앙모.감읍하고 나라에서는 효자정려를 내리어 현창하니 만고에 빛나게 되었다. (2) 주제의식 그리하여 이렇게 지어진 <윤씨행장>은 서포의 뜻대로 국문화 되어 널리 읽히고 유통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서포의 그 효행사상 실천과 <윤씨행장> 등의 효행 작품으로 하여 이 <윤씨행장> 그 작품자체가 드러내는 주제의식은 매우 강렬하다. 여기서는 작자의 효행사상이 확연히 나타난다. 작자의 평생 효행도 대단하게 부각되지만, 그 효행의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지었다는 점에서, 그 작가가 목숨을 바쳐 효성함으로써 출천대효의 한 귀감․전범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윤씨의 찬연한 행적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냄으로써, ‘여자의 일생’, ‘불멸의 여인상’, 내지 ‘구원의 자모상’을 형상화하려는 작자의 주제의식이 드러나고 있다. 존귀한 가문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는 학문에 정진하고 시집간 지 5년 만에 청상과부가 되어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두 아들을 훌륭한 문인이자 관리로 길러낸 해평 윤씨. 그녀는 조선이란 폐쇄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영민함을 떨칠 수 없음을 절망하지 않고 어머니로서의 그녀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으며, 말뿐이 아니라 자신의 몸소 인간의 도리와 선비의 길을 보여준 큰 교육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