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부연록 [정의] 조선 전기의 문인 김시습(金時習)이 쓴 소설. [개설] 「용궁부연록」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에 들어 있는 5편 가운데 하나로, 주인공이 용궁에 다녀온 일을 삽입시로 표현하며 서술한 소설작품이다. 글재주가 뛰어난 한 인물이 용궁에 초대받아 누각의 상량문을 써주고 돌아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창작경위] 「용궁부연록」은 생육신의 한 명인 김시습이 경주금오산에 머무르는 동안 명나라 구우(瞿佑, 1347~1427)의 『전등신화(剪燈新話)』를 읽고 작품배경과 인물, 사건을 자국화(自國化)하여 쓴 한문소설이다. 「용궁부연록」의 용궁은 임금이 사는 곳이며, 김시습은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불만과 처지를 주인공 한생(韓生)에게 감정이입하여 창작하였다. [내용] 주인공 한생이 어느 날 꿈속에 용궁으로 초대되어 갔는데, 용왕의 청을 받아 상량문을 써주었다. 용왕은 그 재주를 크게 칭찬하고 잔치를 베풀어 대접하면서 구슬과 비단을 선물로 주었다. 꿈에서 깬 한생은 용궁의 일을 통해 일장춘몽과 같은 세상의 벼슬과 명예를 추구하지 않고 명산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내용이다. 현실적 지상계와 가상적 용궁계를 넘나드는 구성을 통해 이승과 다른 의식의 세계를 연결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자신이 처한 현실과 이상의 대립을 제기하고 있다. [특징] 몽자류(夢字類) 소설로 환몽적 구조를 보여준 「용궁부연록」은 동해안 용궁설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전등신화』의 「수궁경회록(水宮慶會錄)」과 유사한 것으로 분석되나, 오히려 강릉 일대 안인진자락바위와 관련된 김자락의 용궁설화와 대단히 흡사하다. 이러한 용궁설화와 환몽구조는 매월당김시습이 은둔하며 기이한 행적을 보인 색은행괴(索隱行怪)의 전기적 생애와도 연결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관동지역을 돌아다니며 많은 시를 남긴 김시습의 일화가 전해지는데, 「용궁부연록」은 동해안의 용궁설화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동해용궁설화」는 안인진해령산의 명선문과 해랑당, 정동진등명낙가사 등지에 전하는데 이러한 사상적 배경이 작품과 상통하고 있다. ************************************************************************************* 송도에 천마산이 있는데 그 산은 높이 공중에 솟아 험준함으로 천마산이라 한다. 그 산 속에 용추 하나가 있는데, 이름은 박연이라 한다. 이 못은 둘레는 얼마 되지 않으나 깊이가 몇 십 자가 되는지 알 수 없으며, 못 물이 넘쳐서 폭포를 이루고 있는데, 폭포의 길이는 몇 십 길이나 될 것 같다. 경치가 맑고 아름다웠으므로 구경 오는 스님이나 손들은 반드시 이 곳을 관람했다. 예부터 여기에 용신이 살고 있다는 이산한 전설이 전기에 실려 전해오므로, 나라에서는 해마다 명절이면 큰 소를 잡아서 제사를 지내게 했다. 고려 때 한 씨 성을 가진 서생이 살고 있었는데, 젊어서부터 글을 잘 지어 조정에 이름이 알려져서, 문사로 평판이 있었다. 어느 날 서생은 고초하는 방에서 해가 저물 때까지 편히 쉬고 있었더니, 문들 청삼을 입고 복두를 쓴 관원 두 사람이 공중으로부터 내려와서 뜰 밑에 엎드렸다. "박연 못의 용왕께서 모셔오란 분분이십니다". 서생은 깜짝 놀라 낯빛을 밝히면서 말했다. "신과 인간 사이에는 길이 막혀 있는데 어찌 통할 수 있겠소? 더구나 용궁은 길이 아득하고 물결이 사나우니 어찌 갈 수 있겠소?" 두 사람은 말했다. "준마를 문 밖에 준비시켜 두었습니다. 사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침내 그들은 몸을 굽혀 서생의 소매를 잡고 문 밖으로 모셨다. 거기에는 과연 총마 한 필이 있는데, 금 안장 옥굴레에 누런 비단으로 배띠를 둘러 놓았는데, 날개가 돋혀 있었다. 수종자는 모두 붉은 수건으로 이마를 싸고 비단바지를 입고 서 있는데, 여남은 사람이나 되었다. 그들이 서생을 부축하여 말 위에 태우니, 일산을 쓴 사람이 앞에서 인도하고 기락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 두 사람도 홀을 손에 잡고 따랐다. 미구에 말이 공중을 향해 날으니 말발굽 아래 구름이 뭉게뭉게 이는 것만 보일 뿐, 땅에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잠깐 후에 일행은 벌써 용궁문 바께 도착했다. 말에서 내려서니 문지기 들이 방게, 새우, 자라의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주르르 늘어서 있는데, 그들은 눈자위가 한 치나 되었다. 서생을 보더니 모두 머리를 숙여 절하고는 고의를 놓고 앉아 쉬기를 청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듯했다. 두 사람이 재빨리 안으로 들어서서 보고하니, 곧 푸른 옷을 입은 두 동자가 나와 손을 마주잡고 서생을 인도했다. 그는 조용히 걸어 나아가다가 궁문을 쳐다보았다. 현판에 함인지문이라 씌어있었다. 그가 문 안에 들어서자 용왕은 절운관을 쓰고 칼을 타고 손에 홀을 쥐고 뜰 아래로 내려와서 맞이했다. 그를 이끌고 다시 뜰 위로 해서 궁전으로 올라가더니, 앉기를 청하니 그것은 수정궁 안에 있는 백옥 걸상이었다. 서생은 엎드려 굳이 사양하며 말했다. "어리석은 백성은 초목과 함께 썩을 몸이 온데, 어찌 감히 거룩하신 임금님께 외람히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용왕은 말했다. "오랫동안 선생의 성화를 들어왔습니다만 오늘에야 모시게 되었습니다." 의아히 생각하지 마십시오. 마침내 손을 내밀어 낮기를 청했다. 서생은 세 번 사양한 후 자리에 올랐다. 용왕은 남쪽을 향해 칠보로 만든 교의에 걸터앉았고, 서생은 서쪽을 향해 앉았는데 교의에 앉기 전에 문지기가 와서 말씀을 올렸다. "손님이 오십니다." 용왕은 또 문 밖으로 나가서 맞이해 들였다. 세 사람이 붉은 도포를 입고 채색 수레를 타고 나타났다. 위의와 종자들로 보아 임금임에 틀림없었다. 용왕은 또 그들을 궁전 위로 인도했다. 서생은 들창 밑으로 몸을 비꼈으나 그들이 자리에 앉은 후에 인사를 청하겠다고 생각했다. 용왕은 그들 세 사람에게 권해서 동쪽을 향해 앉히고는 말했다. "마침 인간 세상에 계신 문사 한 분을 모셔왔습니다. 여러분은 서로 의아히 생각하지 마십시오." 측근 사람에게 명하여 서생을 모셔오게 했다. 그가 재빨리 나아가서 인사를 하니 그들도 모두 머리를 숙이고 답례를 했다. 서생은 윗자리에 앉기를 사양하면서 말했다. "여러 신께서는 귀중하신 몸이오나 저는 일개 가난한 선비올시다. 감히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겠습니까?" 윗자리를 굳이 사양하니 그들이 말했다. "서생은 양계에 계시고 우리는 음계에 사니 매여있지는 않습니다만, 용왕님은 위엄이 있을 뿐 아니라 사람을 보는 안식도 밝으십니다. 선생은 틀림없이 인간 세계의 문장 대가이실 것입니다. 용왕님의 영이시니 거절하지 마십시오." 용왕은 말했다. "어서들 앉으십시오." 세 사람은 한꺼번에 자리에 앉고 서생은 몸을 굽혀 올라가서 자릿가에 꿇어앉았다. 용왕은 말했다. "편히 앉으십시오." 자리에 앉자 술잔을 돌린 후에 용왕이 그에게 말했다. "내 슬하에는 오직 딸이 하나 있을 뿐입니다. 벌써 결혼할 시기가 되어서 곧 시집을 보내려 합니다. 그러나 거처가 누추해서 사위를 맞이할 집도 화촉을 밝힐 만한 방도 없습니다. 그래서 따로 누각을 지을까 하며, 집 이름을 가회각이라 하기로 했습니다. 장인도 벌써 모았고 목재,석재도 다 준비했습니다만, 다만 없는 것이 상량문입니다. 풍문에 들으니, 선생께서는 문명이 삼한에 나타났고 재주가 백가에 으뜸 간다하므로, 특별히 부하들을 먼 곳으로 보내어 모셔오게 한 것입니다. 나를 위해 상량문을 하나 지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 아이가 하나는 푸른 옥돌 벼루와, 상강의 반죽으로 만든 뭇을 받들고, 다른 하나는 얼음 같이 흰 명주 한 폭을 받들어 들어오더니, 꿇어앉아서 서생 앞에 놓았다. 서생은 고개를 숙이고 엎드렸다가 일어나더니, 붓에 먹을 찍어 곧 상량문을 써 내려가는데, 그 글씨는 구름과 연기가 서로 얽히는 듯했다. 문장은 이러했다. "생각건대, 천지 안에서는 용왕님이 가장 신령스럽고 인물 사이에서는 배필이 아주 중한데, 용왕님께서는 이미 만물을 윤택하게 하신 공을 마련해 두셨으니 어찌 복을 받을 터전이 없으랴. '시경'관저장에서 요조숙녀는 군자호구라 함도 조화의 시초를 나타낸 것이며, '주역'의 건괘에서 비룡재천에 이견대인이라 함도 신령스러운 변화와 자취를 나타낸 것이다. 이에 새로 큰 궁궐을 지어 아름다운 칭호를 높이 게시했는데, 이무기를 불러 힘을 내게 하고, 보배를 모아 재목을 삼으며, 수정과 산호로 기둥을 세우고, 용뼈와 낭간으로 들보를 걸어 구슬발을 걷으면 산에는 놀이 푸르러 있고 백옥 들창을 열면 골짜기에 구름이 둘러 있다. 가족은 화합하여 복록을 만녀토록 누릴 것이요, 부부가 화락하여 귀한 자손이 길이 억대에 번성하리라. 풍운의 변화를 돕고 영원히 조화의 공덕을 나타내어 높은 하늘에 오를 때나 깊은 못에 있을 때나 하민의 갈망을 구제하고 상제의 어진 마음을 도와서 기세가 천지에 떨치고 위엄과 덕망이 원근 지방에 흡족하여 검은 거북과 붉은 잉어는 기뻐 뛰면서 소리를 지르고 산괴물과 산도깨비도 차례대로 와서 축하한다. 마땅히 단가를 지어 곱게 조각한 위에 높이 걸어야겠다. 원컨대 이 집을 건축한 후에 혼례를 이룬 날에는 온갖 부록이 다 이르고, 많은 상서가 모두 모여들어 요궁 옥전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피어어르고, 봉화 베개와 원앙 이불에는 즐거운 소리가 들끓게 되며 그 덕이 나타나게 되고 그 신령이 빛나게 될 것이다." 서생은 그 글을 쓰기를 마치자 곧 용왕에게 바치었다. 용왕은 크게 기뻐하며 이에 세 신에게 명하여 이 글을 차례로 보게 하니 세 신이 모두 떠들썩하게 감탄하고 칭찬하여싿. 이에 용왕은 서생을 대접하기 위하여 잔치를 열게 하니 서생은 꿇어앉아서 물었다. "높은 신들이 이 자리에 다 모였사오나 존함을 미처 묻지 못했습니다." 용왕은 말했다. "선생은 양계에 계시므로 모르실 것입니다. 이 세 분 중에는 첫째 분은 조강의 신이요, 둘째 분을 한가의 신이며, 셋째 분은 벽란의 신입니다. 우리 오늘 다 같이 놀까 해서 이렇게 초대한 것입니다." 술자리가 다하려 하자 풍악이 시작되었다. 미인 십여 명이 푸른 소매를 흔들거리며 머리에 구슬꽃을 꽂고 앞으로 나아왔다가 뒤로 물러갔다 춤을 추면서 벽담곡 한 곡조를 불렀다. 춤이 끝나자 다시 총각 십여 명이 왼손에는 피리를 잡고 오른 손에는 새깃 일산을 들고 서로 돌아보면서 회풍곡을 불렀다. 춤이 끝나자 용왕은 기뻐하면 다시 술잔을 씻고 다시 술을 부어 서생 앞에 권하면서 스스로 옥피를 불고 수룡음 한 곡을 노래하여 즐거운 정을 다하였다. 용왕은 노래를 마치자 측근 사람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이 장소의 놀음은 인간 세상과 같지 않으니 그대들은 귀한 손님을 위하여 각기 재주를 보이라." 이에 한 사람이 자칭 곽개사라 하고는 발을 들고 모로 걸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저는 바위 틈에 숨은 선비요, 모랫구멍에 사는 한가한 사람입니다. 팔월에 바람이 맑으면 동해 바닷가에 가서 뱃속으로 벼까끄라기를 쏟아내고, 하늘에 구름이 흩어질 때는 남정성의 곁에서 광채를 머금기도 합니다. 속은 누르고 겉은 둥글며 갑주로 몸을 싸고 예리한 병기를 가졌습니다. 늘 손발을 잘려서 솥에 들어가게 되며, 비록 정수리를 갈더라도 사람을 이럽게 했습니다. 멋스러운 맛은 장사의 얼굴빛을 기쁘게 하고 조롱하는 꼴은 마침내 부인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조나라 왕윤은 물 속에서 만나더라도 저를 미워했으나 송나라 전곤은 지방에 나가 있으면서까지 저를 생각했으며, 죽어서는 진나라 필이부의 손에 들어갔으나 초상은 당나라 한진공의 화필에 의탁되었습니다. 또한 장소를 만나 놀음을 하게 되니 마땅히 다리를 들어 춤을 추겠습니다." 하더니, 곽개사는 그 앞에서 갑옷을 입고 창을 쥐고 침을 내뿜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동자를 돌리더니 사지를 흔들고 비틀거리면서 재빨리 앞으로 갔다가 뒤로 불러나면서 팔풍무를 추었다. 그의 동류 몇 십 명이 고개를 숙여 엎드려 돌면서 절차에 맞추에 춤을 추었다. 이에 그 춤추는 태도가 왼쪽으로 돌다가 오른쪽으로 굽으며 뒤로 물러 갔다가 앞으로 달아나기도 하니 온 좌석에 있던 이들이 모드 몸을 뒹굴면서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이 놀음이 끝나자 또 한 사람이 자친 현선생이라 하고는 꼬리를 끌고 목을 빼고 기분을 뽐내고 눈을 뚫어지게 보면서 앞으로 나와 말하였다. "저는 시초 떨개에 숨은 자요, 연잎 밑에 노는 사람입니다. 낙수에서 글을 등에 지고 나왔으니 이미 하나라 우임금의 공로를 나타내었으며, 맑은 강에서 그물에 잡혔으나 일찍이 송나라 원군의 계책을 이룩했습니다. 비록 배를 갈라 사람을 이롭게 할지언정, 껍질 벗기는 것은 감내하기 어렵겠습니다. 두공에 산을 새기고 동자 기둥에 마름을 그렸으니, 껍질은 노나라 장공이 소중이 어겼으며 돌 같은 내장을 가지고 검은 갑옷을 입었으니 내 가슴은 장사의 기상을 뽐내었던 것입니다. 진나라 노오는 나를 바다 위에서 걸터앉았으며, 진나라 모보는 나를 강 가운데 놓아주었습니다. 살아서는 세상을 기쁘게 하는 보배가 되고 죽어서는 도리를 예언하는 보물이 되었습니다. 마땅히 입을 벌려 노래를 불러 천 년 동안 속에 쌓였던 회포를 풀어 보겠습니다." 하고, 곧 그 앞에서 기운을 토하매 실오라기처럼 나부끼어 그 길이가 백여 척이나 되더니 이를 들이마시매 흔적도 없어졌다. 그리고 그 목을 움츠려 사지 속에 감추기도 하고 또 목을 길게 빼어 머리를 흔들기도 하더니 조금 후에는 앞으로 조용히 걸어와서 구공의 춤을 추면서 홀로 앞으로 나왔다가 뒤로 물러갔다. 하더니 이어 노래를 지어 불렀다. 곡은 끝났으나 그래도 망설이고 황홀하여 발을 높고 낮게 춤을 추니 그 태도는 형용할 수 없어 온 좌석에 있던 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이에 숲 속의 도깨비와 산 속의 괴물들이 일어나서 각기 그 기능을 자랑하는데, 어떤 것은 휘파람을 불고 어떤 것은 그냥 뛰놀았다. 그들의 노는 꼴은 각기 달랐으나 소리는 똑같았다. 이에 노래를 지어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강의 군장이 꿇어앉아 시를 지어 드렸다. 쓰기를 마치자 용왕에게 바치니 용왕은 웃으면서 이 시를 보고난 후에 사람을 시켜 서생에게 주었다. 서생은 이 시를 받아 꿇어 앉아 읽고 세 번이나 거듭 음미하고 난 후 곧 그 자리에서 장편시 12운을 지어 훌륭한 일을 서술하였다. 시를 지어 올리니 온 좌석에 있던 이들은 모두 감탄하고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용왕이 감사하면서 말하였다. "마땅히 금석에 새겨 제 집의 보배로 삼겠습니다." 서생은 절하고 사례한 후에 나아가 용왕에게 말하였다. "용궁의 좋은 일들은 이미 다 보았습니다만 그 위에 또한 궁궐의 웅장함과 강토의 광대함도 두루 구경할 수 있겠습니까?" 용왕은 말하였다. "좋습니다." 서생은 허가를 얻어 문 밖에 나와서 눈을 크게 뜨고 보니 다만 오색 구름이 주위에 둘러 있으므로 동쪽과 서쪽을 분별할 수가 없었다. 용왕은 구름을 불어 없애는 사람에게 병하여 그름을 걷게 하매 한 사람이 대궐 뜰에서 입을 줄이면서 한 번 불어 버리니 하늘이 환하게 바락아져서 산과 바위 벼랑도 없어지고 다만 넓은 세계가 바둑판처럼 된 것이 수십리나 되었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그 안에 벌여 심겨 있고, 바닥엔 금모래가 퍼져 있고, 둘레는 금성으로 쌓아졌으며, 그 행랑과 뜰에는 모두 푸른 유리 벽들을 펴고 깔아서 광채와 그림자가 서로 비치었다. 용왕이 두 사자에게 명하여 서생을 인도하여 관람시켰는데, 한 곳에 이르매 누각 한 채가 있으니 그 이름은 조원지루라 하였다. 이 누각은 전체가 파려로 만들어졌고 구슬과 옥으로 장식하고 누르고 푸른빛으로 아로새겼는데, 그 위에 오르매 마치 허공에 오른 것 같았으며 그 층계는 열 층계나 되었다. 서생이 그 위 층계에까지 다 오르려 하니 사자는 말하였다. "여기는 신왕께서 신력으로 자기만 오르실 뿐이옵고 저희들도 또한 관람하지 못했습니다." 대체 이 누각의 위층은 구름 위에 솟아 있으므로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곳이었다. 서생은 7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다시 한 누각에 이르니, 그 누각의 이름은 능허각이라 하였다. 서생은 물었다. "이 누각은 무엇에 소용됩니까?" 사자는 대답하였다. "이 누각은 신왕께서 하늘에 조회하실 때 그 의장을 정돈하고 그 의관을 치장하는 곳이옵니다." 서생은 다시 청하였다. "그 의장을 보여 주십시오." 사자는 서생을 인도하여 한 곳에 이르니 한 물건이 있는데 마치 둥근 거울과 같은 것이 번쩍번쩍 광채가 있어 눈이 아찔아찔하여 똑똑히 볼 수가 없었다. 서생은 물었다. "이것은 무슨 물건입니까?" "번개를 맡은 전모의 거울입니다." 또 북이 있는데 크고 작은 것이 서로 맞았다. 서생이 이를 쳐보려고 하니 사자는 말리면서 말하였다. "만양 한 번 친다면 온갖 물건이 모두 진동하게 되니 이것은 곧 우레를 맡은 뇌공의 북입니다." 또 한 물건이 있는데 풀무와 같았다. 서생이 이를 흔들어 보려고 하니 사자는 다시 말리면서 말하였다. "만약 한 번 흔든다면 산의 바위가 다 무너지고 큰 나무가 뽑혀지게 되니, 곧 바람을 일게 하는 풀무입니다." 또 한 물건이 있는데 모양이 청소한는 비와 같고, 그 옆에는 물독이 있었다. 서생이 비로써 물을 뿌려보려고 하니 사자가 또 말리면서 말하였다. "만약 한 번 물을 뿌린다면 큰 물이 져서 산과 언덕이 물로 둘러싸이게 될 것입니다." 서생은 말하였다. "그렇다면 어찌 여기에 구름을 붙어 내는 기구는 비치하지 않았습니까?" "구름은 신왕의 신력으로 되는 것이지 기계의 움직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서생은 또 말하였다. "우뇌를 맡은 뇌공, 번개를 맡은 전모, 바람을 맡은 풍백, 비를 맡은 우사는 어디 있으니까?" "이들은 천제께서 깊숙한 곳에 가두어 나와 놀지 못하게 했다가 신왕이 나오시면 이에 접합시킵니다." 그 나머지 기구도 많았으나 일일이 다 알 수가 없었다. 또 긴 행랑이 삼사 리나 연해 뻗어 있었는데 문에는 용의 형상을 새긴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서생은 물었다. "여기는 어떤 것입니까?" 사자는 대답하였다. "이곳은 신왕께서 칠보를 간수한 곳입니다." 서생은 한 시간 동안 구령하였으나 다 볼 수 없었다. 서생은 말하였다. "그만 돌아가고자 합니다." 사자는 말하였다. "예, 좋습니다." 서생이 돌아오려고 하니 그 문들이 첩첩이 싸여서 앞이 아득하여 갈 길을 알 수 없었으므로 사자에게 명하여 앞에서 인도하게 하였다. 서생은 본디 있던 자리에 도착하자 용왕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표하였다. "대왕의 은덕으로 좋은 경치를 두루 구경하였습니다." 두 번 절하고 작별하니 이에 용왕은 산호반위에 야광주 두 개와 빙초 두 필을 담아서 전별의 노자로 주고 문밖까지 나와서 전송하였다. 세 신도 한꺼번에 하직하고는 수레를 타고 곧 돌아갔다. 용왕은 다시 두 사자에게 명하여 산을 뚫고 물을 헤치는 서각을 가지고 인도하게 하였다. 사자 한 사람이 서생에게 말하였다. "선생께선 애 등에 올라타고 반 나절만 눈을 감고 계십시오." 서생은 그 말 대로 하였다. 사자의 한 사람은 서각을 휘두르면서 앞에서 인도하니, 마치 공중으로 올라 날아가는 것 같은데 다만 바람 소리와 물소리가 잠깐 동안 끊어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윽고 소리가 그치어 서생이 눈을 떠보니 다만 자기 몸은 거처하는 방 안에 누워 있을 뿐이었다. 서생이 문 밖에 나와서 보니 하늘의 별은 드문드문하고 동방은 밝아오며 닭은 세 홰를 쳤는데 밤은 벌써 오경이었다. 빨리 그 품속의 물건을 찾아서 보니 야광주와 빙초가 있었다. 서생은 이 물건을 상자 속에 깊이 간직하여 소중한 보물로 삼고 남에게는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 후에 서생은 세상의 명예와 이익에는 생각을 두지 않고 명산에 들어 갔는데, 그가 어디서 세상을 마쳤는지 알 수 없었다
윤지경전 해동 조선국 중묘조에 윤 총재라는 재상이 있으니 명은 현이라. 삼자를 두었으되 개개이 준걸이나, 필자지경의 자는 자산이니, 문장이 세상에 빼어나고 풍채가 준하니 윤공이 제자 중 편애하더라. 지경의 나이 십육 세에 과거를 보아 진사를 고등하니, 성명이 일세에 진동해서 두루 구혼함이 구름 모이듯 하되 허혼치 아니터니, 그 해 여름에 여역이 대치하여 낭재가 불안하거늘 윤공이 지경을 데리고 피접을 나더라. 사촌매부 최 참판의 전취 윤부인이 두 아들을 낳고 일찍죽으니, 또 후부인 이씨에게 일녀를 두었으니 이름은 연화요, 시년이 심삼이라. 용모의 고움은 장강에 비기고, 성정이 유함은 임사에 미칠지라, 부모가 극히 사랑하는 중 가르치 아니한 문앙과 배우지 아니한 여공이 세상에 무쌍이러라. 윤공이 최부에 이르니, 공이 소저를 명하여 나와 숙부에게 예로 뵈거늘 지경 형제 또한 남매지예로 볼 새, 지경이 추파를 들어 잠깐 보니 기인한 용모는 공산에 밝은 것을 새겼고, 자약한 쌍협은 홍백 모란이 아침 이슬을 머금은 듯, 연연하고 정정한 태도는 진실로 세상에 없을 듯 하더라. 지경이 한번 보고 마음이 여광 여취하여 스스로 생각하되 효성같은 면목이 맑고 어질고 어여쁜 태도는 장강의 고운 눈이라도 이에 및지 못할 것이고, 이부인의 횐 얼이라도 여기 및지 못할 바이요, 비연의 너무 경신함과 태진의 너무 풍랭함으로도 어찌 족히 비기리오. 천고의 절색이라. 대장부 이런 옥안 화용이 아니면 일생이 어찌 쾌락하리오. 당당히 부모께 고하여 최씨에게 정혼하리라 하고 물러나와 모부인에게 왈, "최씨 여자는 짐짓 지경의 배필이라, 모친은 구혼하여 소자의 일생이 부부 쾌락함을 바라나이다." 부인이 또한 소저의 향명을 들었는지라, 윤공께 청하여최부에 통혼하니 최공이 내당에 들어가 부인과 의논하리 부인이가로되, "지경이 풍채가 준수하고 문장이 세상에 빼어나고 소년진사함을 아름다이 여겼으나. 기상이 본대 활달하여 청루에 왕래한다 하오니 어찌 어린 딸을 경솔히 허혼하오리까." 공이 본래 부인의 뜻을 어기지 아니하는지라 다른 말로 칭탁하여 물리치니, 윤공이 가장 무안하여 하더라. 염질이 대단하여 지경이 중히 않는지라, 또 수일 안에 최 소저가 앓으니 두 집이 민망하여 구완하더니, 토혈하거늘 종들에 맡기고 양가에서 비접나니, 지경은 외헌에 있고 연화소저는 내당에 있더라. 병이 점점 나으며 윤생이 심심하여 거닐다가 내당에 들어가 소저를 찾아보고 반갑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병이 나음을 서로 치하하고 생이 눈을 들어보니, 사병 후 단장함이 없으나 더욱 아름답고 어여쁜 태도가 만 가지나 솟아나니, 생이 마음이 연하여 혹 바둑도 두며 혹 쌍육도 쳐 김심한 것을 위로하더니, 생이 짐짓 친밀히 하여 저의 거지를살피매 인사 처신이 어른이 믿지 못하더라. 더욱 은애지정을 억제치 못할 제, 소저의 옥협에 향한이 흐르거늘 생이 부채를 들어 부치니 소저가 소왈, "수고로이 부치시니 감사하여이다." 생이 낭소 왈, "나는 윤생이오. 소저는 최공 여아시니 어찌 남매지의 있으리오. 한림 형제는 외가로 육촌이나 소저는 이부인 소생이니 남매지의 없나이다." 소저가 대왈, "어린 아해 촌수와 곡절을 모르고, 또한 부친이 가르치시기를 그러하나이다." 언파에 옥안에 숙여 들었던 사외를 놓거늘 생이 소왈, "거년에 소저께 구혼하니 허혼치 아니함은 무슨 주의 계시고, 내 비록 용렬하나 풍채와 재화는 소저께 지지 아니하고, 문장이 세상에 빼어나니 남에게 부끄럽지 아니커늘, 거절하심은 어쩐 연고니이까. 알고자 하나이다." 소저가 머리를 숙이고 말을 아니하거늘 생이 가로되, "혼인은 인간 대사어들 어찌 속예를 하여 말을 아니하리오. 소저의 뜻은 어떠하시니이까. 우리 두 사람이 한 집에 있어 이 깊거늘, 어찌 심곡을 기이리이까." 소저가 양구에 가로되, "부모의 하시는 일에 내 어찌 알리이까." 생 이 소왈, "소저가 생을 그러다 하고 다른 데 구혼하시다가 천생이 나와 같으면 모르거니와, 만일 나와 같지 않으면 뉘우치나 및으랴. 실로 진정을 이르소서." 소저가 수괴하여 대답지 아니하고 일어나니, 생이 나수를 붙들 간청하니 소저가 할 일이 없어 나직이 대왈, "모친께오셔 군이 청루에 다닌다 하셔 허치 아니하시더이다." 생 이 소왈, "내 언제 청우에 가던고. 내 진사하였을 제 여러 창기 모이니 그 중하나 친한 게 있으나 버린 지 오래거늘 그 무슨 혐의 있으리오. 다만 소저의 뜻을 얻고자 하니, 소저가 유정하실진대 생이 소저를 위하여 신후경의 직금을 효칙 하리이다." 소저가 대왈, "왕교량은 음란한 계집이요, 신후경은 어리기 심하여 죽으니, 불효가 큰지라 군자의 이를 말 아니로소이다. 다만 첩이 군을 위하여 포숙의 신을 지키리이다." 생이 대열하여 소왈, "그럴진대 맹서하여 사생을 정하소서." 소저가 왈, "큰 신은 맹서를 아니한다 하고, 여자는 지아비를 위하여 죽어도, 군자는 여자를 위하여 죽으면 불가하니 부질없는 필적을 써 번거할 뿐이로소이다." 생 왈, "소저의 말씀이 옳소이다. 다만 소저의 지성을 믿고자 하나이다." 소저가 대왈, "후일에 혹 어떤 일이 있어 죽어도 오늘 말을 어찌 아니하리이까. 의심마소서." 생이 대열하여 차후로 경중함이 비할 데 없어 밤은 밖에서 자고 낮은 종일토록 모여 소일하더니 다시 앓는 이 없으매, 각각 집에 갈 생은 소저 떠남은 애연하더라. 소저가 하루는 윤생의 수말을 부모에 고왈, "저의 정성이 이 같고, 소저의 사병 후 두어 달 사람이 막역이라 윤가의 사람 되기를 원하나이다." 최공 부부가 대열왈, "만일 양정이 이러하면 어찌 물리치리오." 즉시 윤공을 보아 청혼하니, 윤공이 대회왈, "영애 나이 어리고 두 아해 사병을 지내었으니, 명년 춘으로 지내자." 언약하였더니 춘이월에 생이 정시장원을 하니 일시에 재명이 조정에 가득 하더라. 종실 희안군이 즉시 와 구혼하거늘, 최가에 정혼하였으므로 허 치 아니하다. 차설 귀인 박씨 일자녀 있으니, 왕손은 복성군이요, 장녀 영희 옹주는 홍상에게 하가하고 차녀 연성 옹주의 시년이 십사세라. 희안군이 구혼하여 허치 아니함을 노하여 즉시 상께 주왈, "신방장원 윤지경이 시년이 십칠 세에 취처 아니 하였사오니 연성 옹주와 결친하옵소서." 아뢰니 상이 신청하시다. 어시에 윤공이 최공을 보고 첨전 계화로 성례함을 청하니 생이 불승 회열하여, 백양을 휘동하여 최부에 이르러 전안할 새, 흘연 상명이 급하시니 생이 길석에 이르러서 합주를 파하고 즉시 승명하여 귈하에 나아가니, 상이 인견왈, "연성 옹주로써 경에게 허혼하노라." 지경이 복지 주왈, "신이 의외에 이 같은 하교를 듣사오니, 천은이 지중하오나 신이 참판 최흥일의 여자를 취하여 행례를 파하고 승폐하여 이르렀나이다." 희안군이 계하에 있다가 상께 눈주어 가로되, "비록 납폐 전안을 하였으나 합궁 전이오니 이제 간택하오나, 상명을 승순함이 신자의 직분이오니, 제가 거역 하지는 못하오리이다." 상이 노색활, "너를 사랑하여 부마를 정하거늘, 어찌 사양하여 칭탁하느뇨." 지경이 돈수왈, "어찌 감히 최녀로 성례함이 없사오면 초방은택을 어찌 사양 하리이까." 상이 대로하사 가로되, "네 불과 소년장원하여 세상에 화세코자 하여 옹주인 줄을 염이 여김이라, 가장 범람하도다." 지경이 돈수왈, "신이 어찌 또 감히 기망하여 아뢰리이까. 사람마다 초방은택을 원하옵거든 어찌 염이 여기 오며, 신의 나이 어리오되 조정 명사의 무리 연석에 모였사오니 불러 물으소서." 상이 변색왈, "합쿵 전은 남이라, 옛 증참이 있으니, 성묘조에 경애 공주를 길례하고 합궁 못하여서 죽으니 파혼하고 부마위를 거두시니, 왕가에도 불행하던 바이라, 네 위엄이 성묘에 더하냐." 지경 이 대왈, "신은 그와 다르나이다. 그때 공주 기세하시고, 신은 최씨 살아있사오니 신이 부마 되오면 최씨 청춘 과부 되오리디니, 전하의 관인하신 덕택으로 신하의 인륜을 차마 어찌 끊으시리이까." 회안군이 주왈, "빙채를 거두고 최녀를 다른 데로 보내면 어찌 홀로 늙으리오." 지경이 노왈, "자기가 당초에 소관에게 구혼하다가 최가에 정한고로 허치 아니하였더니, 일로 혐의를 이어 전하께 천거하여 폐군 아부한 죄를 면니 못하라로다. 신하의 자식이 많거늘 고이한 소인의 간사 불계를 깨닫지 못하시니 전하의 불명이로 소이다. 상이 대노왈, "희한군은 과인의 동생이니 네게 작은 임금이라, 내 앞에서 욕하고 날을 혼폐한 임금으로 능모하니 자식 못 가르친 죄로 네 아비를 죄주리라." 지경이 소왈, "전하 중흥 십구 년에, 일월 같사온 성덕이 심산 궁곡에 미쳤거늘, 유독 소신에게 불명하시고 무거하신 정사가 이러하니 죽어도 항복치 아니하리이다." 상이 더욱 노하사 왈, "내 윤지경을 못 제어하리오. 군부를 욕한 죄로 금부에 나수하고, 또 윤 현을 가두고 길례날을 받아 놓고, 최 흥일은 빙채를 도로 주라." 하니 윤 지경 부자가 나옥하여 원정하되, "신의 자식이 망녕되이 상의를 불복하와 범죄 이렇듯 하오니 부자를 함께 죽이셔도 마땅하옵거니와, 최홍일의 딸은 지경의 아내요, 신의 며느리오니, 전하의 성덕으로써 신자의 인륜을 잇게 하시면 최녀 비록 미세한 여자이오나 천은을 감축하와 화산의 풀을 맺어 성덕을 갚사올 것이오. 신의 부자 진충 육력하리니 북원성상은 익히 헤아리옵소서. 고문 대가에 재랑을 간택하오셔 만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답왈, "내 아는 바이어늘, 경의 부자가 한결같이 가망하느뇨. 인간 대사육 연고가 있어 퇴혼하는 일이 왕왕 있나니 최녀를 재랑을 택하여 맡기게 하고 지경의 방자함을 가르치라." 하니 윤공이 하릴없어 하더라. 양사 합계 왈, "신등이 듣사오니 윤지경이 최흥일의 사위로 부르나이다. 혼인이란 것은 왕법의 위엄이나가, 양가가 상의할 것이어늘, 윤 현의 부자를 가두시며 퇴채하라 하신 하교 옳지 아니 하나이다." 상이 양사를 파직하시니 옥당이 차주 왈, "혼인은 길사이오니 신랑과 사장을 가두심이 크게 옳지 아니하여 이다." 이에 상이 놓으라 하시고, 하교하사 길일을 정하라 하시니 수십 일이 격하였는지라. 지경이 불승 분원하나, 하릴없어 하더라. 상 왈, "지경의 죄 중 하나 길일 전에 관면이 있으리라." 하시고 응교를 제수하시니, 지경이 하릴없어 입공하더라. 하루는 최부에 이르니 최공 부부 서로 볼 새, 부인은 누수 여우하고, 공도 역시 슬퍼 탄식왈, "상명이 퇴채하라 하시니 여아는 심규에 늙기를 정하고 또한 내 어른 재상으로서 군명을 위월하리오." 생이 애연왈, "그러면 서로 얼굴이나 보사이다." 공이 왈, "불가하나 네 아내이니 잠깐 보고 가라." 인파에 소저를 부르니 소저가 승명하여 전당에 이르러 부인 곁에 앉아 수괴함을 띠어 사색이 태연하여 아는 듯 모르는 듯 하고 아리따운 태도가 달같아 반가운 정이 유동하고, 어진 태도와 약한 기질을 대하매 마음이 깨어지는 듯 하니, 공의 부부가 더욱 슬퍼하더라.돌아가기를 잊고 앉았으니 공이 여아를 들여보내고 생의 손을 밖으로 나와 십 분 개유하니 생이 부득이 돌아와 병이 되어 식음을 폐하더니, 길일이 다달아 할례할 새 옹주의 자색이 전혀 없고 포독 불인함이 외모에 나타나는지라, 생이 더욱 불쾌하며 띠를 끄르지 아니하고 밤을 새우고 명조에 궐하여 문안 상이 소왈, "네 죄 크게 통한하더니 이제 자식이 되니 가장 어예쁘다." 즉시 부마와 관교를 주시니 웃고 꿇어 받자와 계하 사은하고, 귀인을 보니 극히 교만파고 포독하니, 더욱 모골이 송연하더라. 박 귀인이 부마의 미려한 풍채를 사랑하고 더욱 기꺼워하더라. 부마가 집에 돌아와 대문에 들며 하인을 명하여 교자를 산산히 깨치고 들어와 소맷속으로 부터 부마의 관교를 내어 땅에 던지니, 윤공이 대책왈, "이 어인 일이뇨. 임금이 주신 교지를 업수이 여김이 어찌 이렇듯 불공한다." 하고, 또 개유하더라, 부마가 삼년 죽었던 부인을 만나 떠날 줄 알리오. 비복을 당부하여 왈, "내 한림 형제와 양가 부모를 다 피하고 왔으니, 종이 오거든 미리 일러 나를 피하게 하라." 하더라, 이러구러 여러 날이 되니 윤공은 매양 알기를, 심사나 사나와 천계산 나라 원당에 가던 것이란, 또 게 갔는가 찾지 아니코, 옹주는 본대 불화한 사이라 거취를 모르니 찾지 아니코, 상이 여러 날 불참함을 괴이 여기사 찾으시니 그제야 찾기를 시작하여, 친우의 집과 천계산 절에 가 보되 종적이 없으니, 괴이하여 찾아가 돌아와 본즉, 부마의 타던 말이 있거늘, 최씨 있는 곳에 갔는가 의심하여 가 보되 숨었으매 보지 못하고 게도 아니간 줄 알아 두루 찾아도 찾지 못한 지 수십 일이라. 조정이 다 알기를 심회 사나와 미쳐 달아났는가 의심하고 상이 진경하사 종야 번뇌하시더니, 윤공이 오히려 의심하여 영리한 사환을 시켜 부지 불각에 들이닥쳐 보라 하니, 과연 최씨 침실에 있는지라 이대로 상전에 고하고 대죄하니 상이 어여뻐서 웃으시고, 환관 김송환을 불러 수죄하고 부르라 하시니, 이 때는 유월이라. 지경이 중당에 있어 죽피 연석을 깔고 수안석을 베고 최씨를 곁에 앉히고 발 벗고 당판 책을 보더니 시비 들어와 중사왔음을 고하니, 부마가 최씨를 곁에 앉힌 채 두고 들어오라 하니 송환이 들어와 중계에 서니, 부마가 안석에 머리를 들어보다가 왈, "네 어찌 온다." 송환끼 대왈, "부마를 잃은 지 이십 일이라, 천심이 지성하자 수라를 폐하고 지내시더니, 오늘이야 이곳에 숨어 계심을 알으시고 천노가 진발하사, 송환으로 부르라 하시나이다." 부마가 일어나지 않고 이르되, "주상이 가장 부지런하시고 부질없도다. 신하 제 아내 데리고 있는 것을 꺼려 잡으려 보내시니 조정에 애처하는 관원이 몇이나 잡혀 들어왔느냐." 송환이 어이없이 소왈, "부마 옹주 박대하고 최 부인에 혹하여 문안 불참하신 지 일월이 당근하고, 또 그저께 박 귀인 생신이어늘, 그 사위로서 불참함을 문죄하려 하시더이다." 지경이 벌떡 일어앉아 소리질러 가로되, "혼군이 요첩에게 혹하여 소인과 합세하여 흥계 깊이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여 현신 충랑을 살해하 천하 박색 괴물의 첩딸을 위하여 나를 괴롭게 보채느냐. 간특한 첩의 생일이 무슨 대사라 그리 구속히 구시더니, 그저 신하를 부르시면 가려니와 박 귀인 생일 불참죄와 옹주 박대한다 부르시면 끌어도 아니 가리라." 웃고 가로되, "내 아내 고우냐." 최씨를 안고 단순을 접하고 운으떠 벌떡 누워 책을 맑은 음성으로 읽다갸 왈, "부인아, 김 영웅 주찬먹이라." 송환이 어이없어 중계에 앉아 최씨를 보니 절묘하게 고우니, 가로되, "저렇거든 어이 옹주와 화락하리오." 하며 중심에 못내 차탄하더라. 주찬을 먹고 하직 왈, "들어가 무엇이라 아뢰오리까." 부마가 왈, "내 하던 말을 일일지 고하라" 기지개하며 발을 문지방에 얹어 소왈. "열황소 끌어도 못 가리로다."이적에 남 곤 심 정이 조광조이 군빈등 삼십여 인을 모해하랴 홍상 복성군과 모계하여 박씨가 후원 나뭇잎에 꿀로 글을 쓰되 이 군빈 등이 모반한다 썼으니 꿀 먹는 버러지 꿀을 다 갈아 먹으니, 글자가 완연한지라 장녀 따서 박씨주어 상께 보이니 상이 놀라시고 귀인과 복성군 홍상이 안으로 혼동하고 밖으로 남 곤 심 정이 고변하니 조광조 등 삽인은 내어 버히니, 원민한 줄을 참담이 여기나 역불체하여 구치 못하고 불승 통한 하더니, 짐짓 흥계를 이름이라. 송환이 돌아와 일일이 고하고 최씨의 절색을 같이 고하니, 윤공이 이전에 있다가 바삐 섬에 내려 연관대좌하고, 상은 대노하사 내유사 별파진 다섯과 대전별감 다섯과 김송환이 영거하여 잡아오라 하시니, 송환이 엄지를 받자와 즉시 최부에 가니 지경이 약불 동념하여 집에 가서 관대를 갖다 입을 새, 최씨로 관복을 잡히고 팔을 궤어 송환을 돌아다보며 소왈. "우리 옥인으로 더불어 이십 사일을 동처하였으니 자식이 생겼을지라, 내 이제 잡혀서 죽어도 후사는 이르리니 내 신주를 옹주에게 맡기지 말라." 하고 목혜신고 나오다가 도로 들어가 최씨가 감고 있는 염주꾸리를 앗아 소매에 넣고 잡혀 들어가, 상이 노하사 여성질왈 "임금을 욕하고 왕녀를 능모 천대함이 태심하여, 군부를 속여 도망한 놈은 쓸데없으니 끌어내어 죽이라." 하니 지경이 즉시 옷을 벗을 새 소매에게 꾸리를 내어 대전별감을 주며 왈, "집에 있을 제 아내 염주꾸리를 감아 주더니 소매에 넣고 들어왔으니, 네 마땅이 내 집에 가 전하라." 상이 이 거동을 보고 잠깐 웃으시니 세자가 또한 대소하더라. 상이 가라사되, "네 나를 수욕하더라 하니 그 어인 일고, 바로 고하라." 지경 이 계고왈, "실로 고하리이다. 수욕은 아니옵고 바른말하였나이다." 상 왈, "충양을 살해하고 소인을 사랑한다 하니, 누구는 소인이며, 누는 충양이며, 요첩을 혹하여 혼군이라 하더라 하니 그 어인 말고, 바로 이르라. 딸을 못 낳았다 하더라 하니 누구는 못 낳고 누는 잘 낳았느뇨." 지경이 대 왈, "거년 사화제 죽은 조광조 등은 충양군자요, 남 곤 심정 박빈홍 명화 등은 소인입니다." 상 왕, "조광조 역적 한다 하니 죽였거든, 네 어찌 역드는가." 지경이 대 왈, "전하께서 역적하는 기미를 보시이니까, 타일에 뉘우치시리니 그 대신의 영달을 알으시리이다." 상 왈, "심 정 남 곤 을 무슨 일로 소인이라 하는가." 지경이 대 왈, "권을 다하고 재주를 꺼려 군자를 잡아 구하여 사화를 짓고, 전하께서 구태여 그리 쫓지 못하시어늘, 심 정 군법상서를 지어 차의 문덕을 기리니 그 당한 계고라, 어찌 소인이 아니리까. 남 곤, 심 정, 흥명화 등이 있다가 밖으로 달아나더라." 상이 묵연 양구에 왈. "나를 어찌 혼군이라 하느뇨." 지경이 대왈, "군자와 소인을 분간치 못하시니 어찌 밝으시다 하리니까." 상이 우문 왈, "요첩에게 고혹함은 무슨 일고." 지경이 왈, "박 귀인이 전하께 후궁 옆에서 전총함을 들어 동렬을 투기하여 잡고, 중전이 자존하시거늘 항형하여 촉범하여 교만히 아들을 가르쳐 대신을 체결하여 사통하고, 조정의 정사를 간여하여 사화를 참여하니 어이 요첩이 아니리이까." 상 왈, "뉘 이르거늘 이리 자세히 아는가." 부마가 대왈, "신이 지식 항렬에 있사오니, 자유로 귈내 출입이 잦아 일동일정은 목도하오니, 어이 모르리이까." 상이 무연하시더니, 우문 왈, "딸을 어찌 하여 나를 못 낳고 누구는 잘 낳았느뇨." 지경이 소왈, "공주와 다른 옹주는 어떠한지 모르오나 신이 자연 사 년을 두고 보오니, 전하의 성은을 입사와 의식이 퐁족하옵거늘, 연고 없이 부리는 종과 성내는 매질이 잦사오니 성행이 사납고 어린 처녀 출가하여 구가에 오매 보는 이 다 애처롭사올 것이로되 신을 만나온 지 수개월이 못하와 동침 아니한다 하고 날마다 싸우자하오니 염치 무쌍하옵고, 얼굴이 곱지 아니하오니 더럽더이다. 신의 조강 지처 최씨는 성정이 부드럽고 인자하고 신이 어려서부터 아는 터라 어른의 안전과 남편의 앞에서 절대로 성내고 높은 소리하옵는 상을 보지 못하였사옵고, 신을 만난 지 사 년에 옹주로 하여 신세 참담하거늘 어른의 지위대로 웅변하여 슬기로움이 남자에 지나오니 비록 천위지엄하오나 제 얻은 남편을 옹주가 앗았으니 서러을 듯 하되, 신을 보면 개유하여 옹주 후대하기를 권하고 삼 년을 죽은 체하여 신을 거절하오니 그 신세 괴로움과 설움을 견디기 어려운 것이로되, 늙은 어버이께 수색을 뵈지 않으니 효성이 높음이요, 제 부마가 천은을 입사와 부자가 관면이 있아오니 조업이 없고 청렴하기 과도하며, 여러 자식에 가장 군립하여 어렵사오나 신을 대하여 한 번도 얻고자 하는 빛이 없사오니 마음이 은공 청렴함이요, 얼굴이 극히 고우키 신이 어찌 사랑하지 아니하리이까. 옹주는 당초에 주신 부부 전설은 이르지 말고 삼십 소신의 녹이 있삽고 삼전에서 주시는 것이 많사와 적곡적보하고, 앉아서 날마다 문안에 또 주소서 하오니 무렴한 욕심이 있삽고, 신이 비록 사정이 중치 못하오나 대하여 공경하오니 일신이 안한하여 반석 같거늘 매양 서사운 사설로 전하의 마음을 혼동하오니 불효를 면치 못하오리라, 일로 탁량하오매 전하는 최일홍만치 딸을 못 낳아 계시니이다. 이제야 약 한 말씀 다 아룃사오니 어서 죽여지이다." 이때 윤공이 곁에 엎드렸더니, 지경의 대답을 듣고 입을 막지 못하고 마음이 침상에 앉았는 듯 하더라, 상 왈, "저리 미운 놈을 죽이지 못하니 내 딸 낳은 죄로다." 박씨 중사로 전어 왈, "윤 부마가 날과 무슬 원수관대 이전부터 죽고 남지 못할 죄로 진달하더니 또 오늘 이런 말을 들으니 다른 말은 이르도 말고 심정승 남 판서와 동시하여 조광조를 죽인 듯이 되어 가니, 뜻을 자세히 물어 알고자 하나이다." 지경이 소왈, "정 나와 겨루고자 하다가는 속을 것으니 잠자코 계시소서, 왕래하던 편지 두 장이 있고 군사관이 살아있으니 가장 어려을 것이니, 여러 말씀말으소서 하여라. 더운 뜰에 오래 앉았으니 목이 마르오니 얼음차나 주소서." 박씨가 가장 밉게 여겨, 또 전어 왈 "왕녀를 박대하고 최녀의 화락하여 군부를 경멸하니 부마의 일은 옳을까. 귀양이나 보내어 개과하게 하소서." 상 왈, "너를 죽일 것이로되 옹주를 보아 사하나니, 충청도 대흥 땅에 정배하나니 회과하게 하고, 최녀는 광망한 지아비를 미혹케 하여 옹주 박대하는 죄로 함흥으로 정배하노라." 부마가 사죄하고 나오니, 윤공이 나와 지경을 대책하고 치죄하려 하니 지경 왈, "부친이 어찌 소자의 뜻을 모르시나이까, 불과 수년이 못 되어 대환이 날 것이니, 소자가 끝내 박씨를 노엽게 하여 정배를 자원함에 부자가 경종코자 함이로소이다." 공이 부마의 등을 어루만져 왈, "네 팔자라 일찍 가르쳐 바가 없거늘 지혜 이 같이 과인하고 강렬함이 이 같으니 내 자식 두었다 하리오다." 하더라. 염춘에 세자의 침전 밖에 쥐를 죽여 방법하거는 상과 궁중이 다 놀라더니 세자의 병환이 계셔 달포 미령하사 백약이 무효하니, 상이 의심하사 이인 남사교를 명하사 귈내를 망기하라 하시니, 동궁 편 부엌벽을 보고 운이 사납다 하거늘, 벽을 헐고 보니 목인과 인골을 많이 묻었으되, 연월 박힌 글씨 박씨 복성군 홍상 등의 글씨라. 상이 대노하사 즉시 국문하시니 박씨 일차에 승복하니, 목잘라 죽이고 홍상은 장하여 죽이고, 복성과 홍상의 처와 옹주는 다 귀양 보내었더니, 또 소계하여 사사하고 거평위 옹주는 어미 연좌로 밀양땅에 귀양보내다. 상이 세자를 대하여 차탄 왈 "윤지경은 소년이나 기특함이 장 견의 범 잡음과 두 목의 위풍과 장 탕의 몸 보전하는 계책을 두었으니, 어찌 기특지 아니하오." 하시고, 즉시 사하여 부르실 새 부마위는 거두시고 승지 제수하사 부르시고, 최씨를 다 놓으시다. 대간이 다시 계하여 홍명화 등을 버히고 적몰하다. 지경이 돌아와 복지하여 사은하고 울며 왈, "신이 전하의 슬하 되온 지 칠 년에 신이 충성이 업사와 상전에 득죄하여 슬하를 떠났삽더니 천은이 망극하와 다시 용전에 뫼시오나, 박씨 죽삽고 옹주가 귀양갔다오니 국가 불행과 신의 반자지정의 단절하오니, 인정에 슬픔을 금치 못하리로소이다." 하며 묵연에 눈물이 흐르니, 상이 또한 슬퍼 손을 잡으시고 유체하시더라. 지경이 주왈, "옹주가 홍계에 참여 아니하였사오면 신이 사람을 불러 물으리이까." 상이 탄왈, "네 아내는 실로 참여함이 없던가 싶으니, 물으나 무슨 협의 있으리오." 하시더라. 지경이 집에 와 부모를 반기고 옹주궁을 보니 집이 황량하며 약간 궁인들이 지키고 있으니 심히 처량한지라 부마가 불쌍히 여겨 노비를 엄칙하여 지키게 하고 인마를 차려 질자를 보내어 최씨를 데려오니 반갑고 기쁘기는 이르도 말고 아자가 이미 컸으니 더 반지고, 구고가 이제야 신부와 손아를 보고 사랑함이 측량 없고 그 화란 중 일호도 그룻함이 없으니 더욱 기특히 여기고, 흉변을 지경이 지혜로 벗어나니 부모 형제는 이르도 말고 일가가 무사하니 그 재덕을 칭찬 아니하는 이 없더라. 지경이 옹주께 편지하여 묻기를 극진히 하고, 하루는 상께 주왈, "박씨 비록 죄 중이오나 국은 후는 그렇지 아니하오니 신설 하오시면 마땅하올 듯 하오이다." 상이 불열하시니, 또 다시 주왈, "정굉필은 은사함이 마땅하오이다." 상이 조광조 신설온 허치 아니하시고 정굉필은 사하시고, 다시 정승하이시니 받지 아니하다. 지경이 이십 사 세에 동부승지 하였더니, 상이 유명하사 붕어하시고, 세조가 즉위하시니 시호는 인종이라 초상을 마치시고 지경을 보시며 유체하사 왈, "옹주는 과인의 골육 동거라 경이 데려다가 전과 같이 말고 중대하여 살면 내 죽어도 한이 없노라." 지경 이 울고 사례왈, "오늘 하교를 간폐에 새겨 잊지 아니하오리다." 하고 즉시 인마를 보내여 옹주를 데려오니, 옹주가 돌아와 보매 부왕이 마저 없으시고 의지 없으니 더욱 서러워함이 가히 없어 따라 죽고자 하더니, 상이 불러 보시고 붙들어 통곡왈, "이제는 전과 다르니 위 높음을 가세말고 가부를 공경하고 구고를 효성으로 섬기고 동렬을 사랑하여 조심하여 살라." 하시고, 주시는 것이 부항 때보다도 배나 더하더라. 옹주가 집에 오니 부마가 조상하고 은근함이 극진하니, 옹주가 감격히 여기는 중 최씨 옹주 대접을 극진히 공경하여 친동기 화목함 같이, 옹주 출입에 일어나 맞으니 부마가 "이는 너무 과하도다." 최씨 답왈, "옹주는 비록 어미 죄 있사오나 양선제의 탁고하신 말씀이며, 옹주는 왕녀요, 주상이 상공에 탁고하신 말씀이 간절히 슬프고 우리 부부 생존함이 선왕 성덕이시니 더욱 공경하나이다." 하니 그 지현을 탄복하여 더욱 개정하더라. 지경이 대사간이러니, 상소하여 남 정 등이 직관에 멀둥하여 꿀로 글시 사화 지은 말을 떨고, 사이에 의논하던 편지 두 장을 첩부하여 아뢰니, 상이 남 곤, 심 정 등은 국문하여 처결 안치하시고 조광조 신원은 듣지 아니하시는 선왕이 아니 계시기 허치 아니하시다. 하루는 윤공이 제 자부를 앞에 거느리고 기뻐하며 이르되. "석일 네 최부의 단순을 접하고 꾸리 감아 주며 좋은 서답하여 주더니 노부 보는 데는 아니하고 중사 있는데는 어찌하였느뇨. 이 또 하여 웃게 하여라." 부마가 소이대왈, "이 다 소자의 변화 계교이나이다. 또 하라시면 어렵지 아나하여이다." 최 부인이 언파에 옥면에 흥광이 취집하여 일어나니 공이 옥수를 잡고 옥빈을 어루만지며 가뢰되, "어렇듯 다름답거든 어찌 아자를 책하리오." 하니 만좌가 다 칭찬하더라. 조정과 벗들이 기롱하여 이르되, "꾸리 감는데 시간이 어디 있으리." 하더라, 차회라. 상이 집상하시기 과도하사 상후 중하시니, 부마가 깨어 들어가니, 상이 손을 잡고 울며 왈, "짐짓 충신이로다. 내 아마도 살지 못하겠으니, 경원군이 덕이 있으니 입후하고 네 안으로 정사를 도우라. 옹주를 화락하니 내 죽어도 한이 없으리로다. 또 조광조 신원을 여러 번 간하되 허치 아니했더니, 신원하게 하라. 친이 쓸 길 없으니 네 쓰라." 우왈. "경원대군을 도와 모후의 선왕 후궁 대접하기를 극진히 가르치라. 네 매양 정굉필의 업적을 성묘에 배양할 사람이라 하더니 내 장저에 있을 제 사적을 기록하였더니, 이제 생각하나 부족함이 없으니 경이 알아 사후에 성묘에 더하라." 우왈, "경의 처 최씨 가장 어질어 내 누이를 극진히 대접한다 하니, 크게 기특한지라. 상을 주나니 무명과 옷을 주어 그 현덕을 표하노라." 써 내관을 맡기시니 지경이 이렇듯 상후가 평복지 못하심을 알고, 훙격이 막혀 눈물이 만연하니 상이 거들떠보시고 한숨지어 돌아 누우시더라. 삼 일 만에 승하시니 지경의 설움이 부모상에 감치하니해 초상을 마치고 상께 품하여 조광조 등 신원 관작하고, 정굉필, 이언적을 사후에 배성묘하게 하다. 지경이 청렴하고 어진 덕이 일국을 기울이니, 상이 중대하시고 기리는 소리 진동하더라. 지경이 거가체 부모께 효도와 형제 우애 비길 데가 없으니, 운공이 치사하고 들어 매양 이르되, "내 아들 두었다 하리로다." 자랑하며 너무 혹처하여 살할까 두려워하더라. 옹주가 최씨를 감격하여 지극히 조심하고 존고의 내림이 없이 받드니 조금하여 옹주의 어짐이 최씨에 지지 아닌지라, 부모가 그 정사를 장히 여겨 진중 후대하니 인묘의 간절히 의탁함이요 또 충성이 지극함이더라. 하루는 부마가 술 먹고 옹주의 무릎 베고 강개히 노더니 사형이 들어와 소왈, "자산아 옹주를 저만치 대접할 것을 그대도록 매몰하여 군상께 죄를 얻었는다." 부마가 소이대왈, "남자가 이렇게 매몰하리이까. 그때는 박씨의 준 배요 이제 중대함은 양선왕의 부탁함이로소이다." 차형이 소왈, "네 진사하였을 계 성천 여기 녹운선을 대하여 청산 녹수로 언약하였더니, 내 어제 대궐에서 나오다가 만나니 경선 공주 시녀로 있노라 하고, 네 말을 묻고 울며 가로되, 그 영감이 옹주로 꾸기시기 감히 다시 와 뵈옵지 못하고 수절하여 있삽더니 서울 온 지 해포 되었으되 찾지 아니하시니 무심한 것은 남하고 서러워 우니, 네 불러 보고 다시 옛정을 이음이 어떠하뇨." 부마가 왈, "만물이 변하여 청산 녹수인들 아니 변하리이까. 가중에 꽃같은 부인을 두고 삼십대 재상이 처녀 첩을 두리니까. 생각하면 녹운선이 절통하떠이다. 소제 최씨께 순히 입장할 것을 녹운선이 마장이 되어 칠 년을 꾸겼나이다." 하니 서로 웃더라. 최 부인에게 삼자 이녀요, 옹주에게 이자 이녀더라, 명 묘 중년에 지경이 좌의정 하였더니 명묘 후사 없이 승하시니 여의정 이출경이 원인대신 신중업 등으로 잠저에 선묘 대왕을 맞아와 복귀하고, 부부 삼 인이 종고 화락으로 험 없이 살더라.
어우야담 : 어우야담에 수록된 이야기 중 두 편을 골라 현대의 맞춤법으로 고쳐 소개한다. 수염 잡고 손 맞는 주인 한 적은 사나이 수염 긴 자가 있어, 집이 넉넉하며 매양 술과 안주를 갖추어 손님을 먹이더니, 가만히 아내와 더불어 언약하되, "내 상객을 보거든 웃수염을 잡고, 중객을 보거든 가운데 수염을 만지고, 하객을 보거든 아랫수염을 만질 것이니, 세 층으로 술과 안주를 장만하라." 방안에서 가만히 한 말을 바깥 사람이 아는 자가 있더라. 하객이 오거늘 주인이 아랫수염을 잡으니, 아내 술과 안주를 박하게 하여 대접하더니, 석 잔이 지나매 주인이 말하기를, "집이 가난하여 술과 안주 맛이 없으니, 손님을 대접할 만하지 못하다." 하여 명하되 "걷으라." 하니, 객이 말하기를, "이 술과 음식이 맛이 특별하니 이어 마시고 걷지 말라." 한 대, 주인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이것이 나를 비웃는 말이다." 하고 즉시 걷으니, 후에 손이 그 일을 아는 자가 있어 오니, 주인이 아랫 수염을 잡는데, 객이 말하기를, "청컨대 손을 조금올려 잡으라." 한 대, 주인이 크게 부끄러워한 고로, 요사이 사람이 술 마시는 것을 '수염 잡는다'하더라. 한 상국의 농사 상국 한응인 이 신천 땅에서 상중에 있더니, 때에 왜군이 온 나라에 가득 차 명문의 집안들도 생계를 유지하기라 어려운지라, 상국이 가족을 데리고 내려가 시비로 하여금 농사를 짓게 하였다. 오뉴월 즈음에 오려를 이미 두 번 매에 이랑에 가득히 벼가 무성하거늘 심히 즐거운지라, 상국이 박대를 집고 논을 보고 기뻐하며 돌아와 나이 많은 농부들에게 자랑하여 말하기를, "우리 농사지어 두 번 매어 벼가 구름같이 무성하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리오." 하였다. 늙은 농부들이 가서 살펴보니 오려가 아니라 다 피 같은 잡초라. 대개 시비는 서울에서 성장하여 일찍이 전원을 보지 멋하고, 하는 일이 오직 비단과 거문고와 비파와 노래와 춤이라, 하루아침에 몰아 논밭에 넣으니, 매어 버리는 바는 아름다운 벼이고, 복돋아 심는 것은 다 피와 잡초라. 온 집안이 어리석어 알지 못하더라. 신천 사람들이 웃어 매양 농사 잘못하는 이를 보면, 반드시 말하기를 '한상국의 농사라' 하니 말세의 사람 쓰는 것이 다 이런 이유이니라.
춘향전(2/2) 이 때 구관은 올라가고, 신관은 사은 숙배하고 신연관속 현신 받은후에 이방을 불러 분부하되, "네 골에 양이가 있느냐." 이방이 아뢰되, "소인 골에 양은 없사와도 염소는 한 스무 마리 있나이다." 신관이 하는 말이. "아따 이 놈아. 기생의 양이가 있느냐." 이방이 그제야 알아 듣고 여짜오되, "기생 춘향이 있사오되 이름은 기생안에 없나이다." 신관이 이 말 듣고 놀라 이르되, "이 말이 어인 말고." 이방이 아뢰되, "다름 아니오라. 구관 사또 자제 도령님과 상약한 후 대비정속하고 지금 수절하나이다." 신관이 노왈, "어린 자식들이 작첩이란 말이 되는 말가. 아직 물러스라." 하고, 치행하여 떠날새, 남대문 나서 칠패 팔패 청파를 모로 동작이 과천읍 신수원 얼른 지나 상유천 하유천 죽빗외뫼 진위 읍내 갈원 소사 성화 빗트리 천안 삼거리 진게역 바삐 지나, 덕평, 원터 인주원 광정 모로원 공주감영 잠깐 지나 널티 경천 노성 은진 닥다리 여산 능개울 삼례를 지나 전주성 내달아 노구바위 임실을 얼른 지나 남원 오리정에 다다르니, 일읍관속이 위의차려 영접하되, 청도 한 쌍 홍문 한 쌍, 주장 한 쌍, 순시 한 쌍, 금고 한 쌍, 호추 한 쌍, 집관이 우영전 앞세우고 난후 별대 제집사장 교자 위에 벌였는데 아기 기생 녹의 홍상, 어른 기생착전립하고, 늙은 기생 영솔하여 모든 관속이 배행하니, 위의 거룩하되 신관의 속 마음은 춘향만 오매불망이라. 도임 후에 환상 전결 폐줄 일은 묻지 않거, "우선 기생 점고 하라." 기생안을 앞에 놓고 차례로 호명하여, 채련이, 홍령이, 봉월이, 추월이, 죽삼이 등이 다 나오되 춘향의 이름이 없거늘 이방 불러 묻되, "춘향의 이름이 도안에 없으니 어인 일고." 이방이 대답하되, "춘향이 대비정속 후 지금 수절하나이다." 신관의 말이, "제라 수절이 어이 있으리오. 바삐 잡아 들이라." 군노 사령 등이 우당퉁탕 바삐 가서 대문을 박차며 춘향을 부르니, 춘향이 놀라 곡절을 물은즉 잡으로 관차여날, 울며 어미를 부러 우선 주찬을 먹은 후, 이른 말이, "제가 수절이 어이 있으리오. 바삐 잡아 들이라." "이 돈이 닷 냥이니 주채나 하오." 사령 등이 거짓 사양타가 뒤 손 벌리며 하는 말이, "내 난장 결치를 당하여도 말 없이 할 것이니 염려말라." 하고, 돌아돠 관가에 아뢰되, "춘향이 명재경각하기고 대령치 못하였나이다." 신관이 개 골내어, "사령을 엄곤하옥하라." 하고, 장차를 분부하여, "잡아 들이되 더디는 폐 있으면 크게 속으리라." 모든 장차 나가 춘향더러 하는 말이, "널로 하여 다른 사람 다 죽게 되었다. 바삐 가자." 재촉하니, 춘향이 울며 이른 말이, "오라버니 들어 보오. 유죄무죄간에 성화같이 잡아 올라하니 내 무삼 죄 있느뇨." 차사등 대답하되, "네 형상 가긍하나 우린들 어찌 하리. 바삐 감만 못하니라." 춘향이 하릴없어 머리를 싸매고 헌 저고리 몽땅치마 두루치고 울며 관문에 이르니 신관이 뇌성같이 소리 질러, "잡아 들이라." 하거늘, 계하에 섰던 나졸 춘향의 머리를 동댕이쳐 잡아들이니, 신관이 춘향을 한 번 보매 형산 백옥이 진퇴에 묻힌 형상 같으니, "더욱 수수하다." 하며, 침을 질질 흘리는지라, 이낭청 돌아보면서 하는 말이, "듣던 말과 같은 줄 아는가." 이낭청 이현령 비현령으로 신관의 마음만 맞추더라. 신관이 분부하되, "네 본읍 기생으로 도임 초에 현신 아니 하기를 잘했느냐?" 춘향이 아뢰되, "소녀, 구관 사또 자제 도련님 모시고 대비정속하온 고로 대령치 못하였나이다." 신관이 증을 내어 분부하되, "너 같은 노류장화가 수절이란 말이 고이하다. 요망한 말 말고 오늘부터 수청 거행하라." 춘향이 여짜오되, "만 번 죽어도 봉행치 못하겠소이다." 신관이 대노하여 춘향을 결박하여 형틀에 앉힌 후, 집장 분부하여, "대매에 허락하도록 치라." 하니 군노 등이 주장 곤장 도리깨 다 버리고 형장을 눈 위에 번듯들어 검장 소리 발 맞추어 한 번 후려치니 청천백일에 벽력 소리 같은지라. 신관이 이르되, "이제도 분부 거역할소냐." 춘향이 아뢰되, "사또께서 용천검로 나의 일신을 둘에 내어 아래 토막은 저미거나 오리거나 하실지라도 목은 한양성내에 보내어 주심을 바라나이다." 신관의 말이, "저 년 요약한 년, 한 매에 승복하게 하라." 하니, 집장이 한 번 치고 두 번 치니 백옥 같은 다리에 솟아나느니 유혈이라. 보는 이 뉘 아니 가련히 여기리오. 삼사십장에 이르러는 불성인사하여 죽은 듯한지라 분부하여 하옥하니라. 이때 남원 활량들이 춘향의 소식 듣고 이 숙이, 군령이, 군빈이, 떠중이 풍헌 약정 등물이 모두와 춘향의 경상을 보고 혹 위로도 하며, 혹 청심환도 플어 넣으며 한바탕 분분히 지저귀다가, 문숙이는 춘향을 업고 떠중이는 칼머리를 받들고 태령이 군빈이 주빈 들은 좌우로 옹위하여 옥문을 천신만고 다다르니, 그 창황만조하는 모양가히 모암 직하더라. 춘향이 활량을 보낸 수 차면 왈, "일구월심에 이 슬픔을 어이 할꼬. 우리 도련님을 언제 다시 볼고." 하며, 해진 자리에 칼머리를 베고 누워 정신이 혼미하더니, 춘향어미 미음을 가지고 와서 춘향을 불러 왈, "어찌 음성이 없으니. 이를 어찌 하잔 말고." 하며, 방성대곡할 즈음에, 춘향이 놀라 정신을 차려본즉, 제 어미 미음을 권하거늘 춘향의 말이, "용미봉탕도 먹기 싫은지라. 아무라도 도련님 다시 보고 죽겠으니 내 병은 편작이라도 할길 없는지라. 만일 죽거든 육진장포로 염습하여 한양성내 올려다가 도련님 다니는 길에 묻어 주면 도련님 왕래시에 성음이나 듣게 하오." 춘향 어미 하는 말이, "이것이 웬 말인고. 이제 원수의 몸쓸 놈을 철썩같이 믿고 수절인지 하다가 이 형벌 받으니 어찌 원통치 아니하리오." 이러구러 여러잘이 되매, 춘향이 장우단탄 벗을 삼아 세월을 허송하더니, 일일은 비몽사몽에 주유천하 하다가 집에 돌아 가니 방문 위에 허수아비를 달았고 뜰에 앵도화 떨어지고, 보던 몸 거울이 한복판이 깨어졌거늘 깨달으니 남가일몽이라 하오되, "이것이 무삼일고. 내가 죽을 꿈이로다. 도련님 다시 못 보고 죽으면 눈을 감지 못하리라." 하고, 한탄할 즈음에, 건넛마을 허봉사란 판수 마침 지나거늘 옥졸더러 판수를 부르되 죄수 춘향이 부른다 하거늘 봉사옥 길을 찾아 갈새, 길에 풀이 가득하매 옷을 걷어쳐 안고 눈을 희번덕이며 코를 찡그리며 막대를 휘저으며 입으로 휘파람 불며 오다가 쇠똥에 미끄러져 개똥에 업더녀 손을 짚으니 네 혼자 말로, "이리 미끄러우니 쇠똥이로구." 하며, 손을 뿌리치다가 옥담 모퉁이에 부딪치니 아픔을 견디지 못해 입에 넣으니 어찌 가소롭지 않으리오. 옥문을 찾아가매 춘향이, "들어 오라" 하니 봉사 들어가 앉으며 하는 말이, "네 일이야 할 말 없다. 장처나 만져 보자." 춘향이 두 다리를 끌러 뵈니 판수놈이 음흉하여 장처는 만져 보지 않고 두 손으로 종아리부터 치만지며 하는 말이, "아뿔사, 몹시 쳤구나. 김패두가 이패두가 치더냐 바른대로 일러라. 내게 굿날 받으러 오거든 절명일을 가리어 줄 것이니 그 설치는 내 하여 주마." 하고, 이리만지며 저리 만지며 점점 들어가다가 정속을 꼭 찌르니, 춘향이 분을 못 이기어 바로 빰을 치려다가 점을 아니할까 하여 능쳐 이른 말이, "봉사님, 우리 부형과 좋은 벗으로 다니더니, 나의 운수 불행하여 부친이 먼저 기세하시니, 봉사님은 부형과 좋은 벗이라 상없이 그리 말으시고 점이나 잘하여 주오." 판수놈이 말 눈치 알아 듣고, "네 말이 옳다. 우리 사귀기가 세교 뿐 아니라, 비슷 척분이 되나니 어찌하면 복상칠촌이 되는 법하니라." 춘향의 말이, "봉사님을 부모로 아니 점하나 잘하여 주오." 하고, 돈 서돈을 주니, 판수 왼손으로 받으면서, "우리 사이에 복채 없으면 관계할까. 꿈말이나 자세히 이르라." 하거늘, 춘향이 수말을 이르니, 봉사 산토를 높이어늘 축 왈, "천하언재고 고자즉응 신지영의 감이순통하소서, 모년월일 해동 조선국 전라도 남원부 동면 이화동에 거하는 곤명 임자생 안씨 금년 신수 길흉여부와 모일 몽사 여차여차하옵기 근목문하오니 복걸 열위신명은 의시상쾌하여 이결길흉하소서." 하고, 점을 해제하여 이르되, "화락하니 능성실이요, 경파하니 기무성가. 문상에 현괴뢰하니 만인이 개양시라. 이 글 뜻은 꽃이 떨어지니 능히 열매를 이룰 것이요, 거울이 깨어지니 어찌 소리 없으며, 문 위에 허수아비를 달았으니 이 반드시 도령이 급제하여 쉬 만나 볼 점쾌라." 춘향이 말이, "어찌 그렇게 바라리오." 봉사의 말이, "고름 맺고 내기할 것이니 조금도 염려 말고 잘 있으라." 하고 가거늘, 춘향이 더욱 주야번뇌하더라. 이 때 이 도령이 올라가 주야로 학업을 힘쓰매 태백을 압두할러라. 차시 성상이 태평과를 보실새, 이생이 과장에 들어가 현제판을 보니, "강구의 문도요라." 시지를 펼쳐 놓고 일필 휘지하여 일천에 권장한데 상이 받아 보시니 문필이 무흠이라 장원을 하이시고 비봉을 떼었으니, 이 등의 아들 령이니 연이 십육이라 하였거늘, 신래를 재촉하신대 이생이 천은을 사례하고 나올새, 위의 기특하더라. 삼일 유가후, 선산에 소분하고 돌아와 옥계에 숙재하온데 상이 칭찬하고 소원을 물으시니 자원이 여짜오되, "천하태평하어매 궁중이 깊사와 백성의 질고를 살피지 못할 지라, 신이 각도에 순행하와 수령의 선악과 백성의 우락을 염탐하와 성상의 교화를 펴고자 하나이다." 상이 가라사되, "네 말이 가장 애군지심이 간절하도다." 하시고, 삼도어사를 하이시니, 어사 사은하고 물러와 치행할새, 마쾌를 고도리뼈에 차고, 칠 푼자리 헌 파립에 헌 망건 박쪼가리 관자달고, 물레줄로 당줄하고 헌도포에 오픈자리 무령 동다회를 양지 머리에 잔뜩 눌러 띄고, 세 살 부채 차면하고, 버선목 주머니에 탄담배 골통대가 제격이라. 역졸을 데리고 가만히 숭례문 내달아, 칠해 팔패 돌모퉁 승방돌 바빠지나 여러 날 만에 전주성 안에 가만히 들어, 여기저기 염문하고 노고바위 임실을 다다르니, 이 때는 삼촌 호시절이라. 한 곳을 바라보니 원산은 중중 근산은 첩첩 기암은 층층 장송은 낙락 비오리 둥둥 두견접동은 좌우에 넘노는데 온갖 새 날아들고 각색은 초목 무성하다. 한 모틍이 돌아 가니 상평전 하평전 농부들이 갈거니 심으거니 격양가 노래하니, "시화세풍 태평시에 평원광야 농부네야. 우리 아니 강구 미복으로 동요 듣더 요 임금의 버금인가 얼널널 상사디야." 흥을 겨워 노닐거늘 어사 부채 차면하고 이 소리 들은 후에 농부더러 묻는 말이, "저 농부 말 좀 들어 보자니." 여러 농부 섰다가 한 농부 내달아 하는 말이, "꼴막산이 어줍지 않게 동떨어진 말 뉘게다가 하나뇨. 말은 무삼 말고. 약계 모퉁이 핥고 병풍 뒤에 코 골다 왔읍나." 하고, 욕설이 비령할 제, 그 중 늙은 농부 내달아 말려 왈, "이 사람 그 괄시 마소. 그도 봐하니 맹물은 아니기로 세 폭 자락에 동떨어진 말하니 과히 괄시 마소." 하거늘, 어사 이 말을 듣고 혼잣말로, "사람은 늙어야 쓴단 말이 옳다." 하고, 또 묻되, "이 골 원님 정사 어떠하며 빈폐나 없으며 또 호색하여 춘향을 수청 들렸단 말이 옳은지." 농부 증을 내어 하는 말이, "우리 원님 정사는 잘 하든지 못하든지 모르거니와 참나무 마주 휘어진 듯이 하니 어떻다 하리오." 어사 하는 말이, "그 공사는 쇠코뚜레 공사라 하니이라. 욕심은 있는지 없는지 민간의 마전 목포를 다 고매패질하여 들이니 어떻다 하리오. 또 음물이라 철석같이 수절하는 춘향이 수청 아니 든다고 엄형 엄수 아였으되 그관의 아들인지 개아들인지 한번 떠난 후 종무 소식하니 그런 쇠 자식이 어디 있으리오." 어사 서서 듣다가 하는 말이, "남의 일은 알지 못하거니와 욕은 과히 마오." 하고 돌아서서 혼잣말로, "대저 양반의 욕을 과히 보았도다." 하고, 한 모퉁이 돌아가니, 한 주막에 반백노인이 한 가히 앉아 청을치 그를 비비며 노래 부르고 슬슬 비비며 줄을 낚거늘 어사 보다가, "이보시오. 상다에 조정에 박여작이요, 향당에 막여치라 하니 그만 인사는 알 듯한데 어이 그리 미거하뇨." 어사 하는 말이, "내 언제 반말했다고. 그렇거니 저렇거니 들은즉 본관이 호색하여 기생 춘향을 작첩하여 호강한단 말이 옳은지." 노인이 증을 내어 하는 말이, "송백같은 춘향에게 그런 누명을 씌우지 마소. 원님이 움타마여 춘향이 수청 아니 든다고 엄형하여 옥귀신을 만들되 구관의 아들인지 난정의 아들인지 그런 계집은 버려 두고 찾질 아니 하니 그런 개 아들이 어디 있으리오." 하거늘, 어사 이 말을 들은 후 춘향의 생각이 더욱 간절하여 일각이 여삼추라. 바삐 남원성중에 들어가 수근숙덕 염문할 제 관속들이 어사 내려온단 말을 듣고 관전목포 환상전결 복수 무철 닦을 적에, 사결에는 한짐 열말, 육별에는 석집 열 닷 뭇이요, 동창서창 마전 목포를 무턱으로 내입이라 꾸몄어라. 어사 탐문한 수 급히 춘향의 집 찾아가니, 밖 장원은 자빠지고 밧채는 기울어져 석까래 나발 불고 마당은 개똥 밭이 되었으니 어찌 한심치 아니리오. 춘향 어미 탕관에 죽을 쑤며 탄실하거늘, 어사 춘향 어미를 부르니 대답하되, "뉘라서 이 심란중에 부르는고." 하며 보다가, "거러지는 눈이 없어 동냥 달라 왔는가." 어사 웃으며 또 부르니, 춘향 어미 그리하여도 몰라보고, "그 뉘시오, 김권룡이 환상 재촉하러 왔소." 하며, 자세히 보다사 깜짝 놀라 하는 말이, "얼굴은 도련님이 분명하나 의복은 상거지라. 애고 저 형상 눌더러 말할꼬." 어사 왈, "잔말은 그만 두고 춘향이나 보고 가세." 춘향 어미 마지못해 옥문밖에 가서 춘향을 부르니 춘향이 기운이 피곤하여 칼머리 베고 누웠더니, 놀라 이른 말이, "거 뉘라서 날 찾는고." 어사 또 부르니 그제야 음성을 알아듣고 여취여광하여, "이것이 꿈인가 생신가. 서방님 날 살려 가오. 명일은 사또 생일이라. 필경 일이 있으리니 칼머리나 들어주오." 어사 대답하되, "어찌 하든지 염려 말라." 하고, 춘향의 어미를 따라가 밤을 지내고, 이튿날 평명에 관문밖에 가서 탐지 하니 과연 본관의 생일이라. 포진범백이 이루 다 말할 수 없더라. 어사 문 밖에서 기웃기웃하다가 문근사 소피하러 간 사이에 돌입하여 청상에 올라 하는 말이, "내 마침 지나가 오늘날 성연에 음식이나 얻어먹을까 하노라." 본관은 미안히 여기고 운봉영장은 웃고 하는 말이, "또한 예사라. 좌석에 참례함이 무방하다." 하더라. 이윽고 배반이 들어올 제 운봉이 통인 분부하여, "술상을 저 양반께 드리라." 하니 통인놈이 붜 드리니 어사 받지 않고, "내 가만히 본즉 어떤 데는 기행년으로 술 드리고 어떤 데는 이 모양으로 얼렁뚱하니 어쩐 일이오. 대저, 술이란 것은 권주가 없으면 무미하니, 기생 중 묘한 년으로 한 보내오." 본관 듣고 이르되, "고객이로다. 내 운봉의 말을 듣고 이런 고약한 꼴을 본다." 하고, 움봉은 웃고 기생에게 분류하여, "아무 년이나 가보라." 하니 한 년이 마지못하여 가며 하는 말이, "아니꼬와라. 권주가 없으면 술이 목 궁에 넘어 들어 가지 아니하나" 하고, 술을 드릴 적에, "들으세요, 들으세요, 이 술 한잔 들으세요. 이 술 한 잔 움키시면 하오리다. 난장결치." 노래를 파한 후에 큰상을 차례로 드릴 새 어사 받아 보니, 개다리 헌 소반에 이면이 한 접시오, 경계다리 한 놓고 양지 차돌 곁들였네. 마른 대추 부시럭떼기 대명공이 근검하다. 어사 두 다리로 상을 박차 엎질고 일어서 그 엎지른 것을 긁어모아 소매에 묻혔다가 좌상을 향하여 뿌리니 본관의 얼굴에 뛰었는지라, 상을 찡기며 하는 말이, "인사불성이로고." 움봉을 탓하더라. 어사 하는 말이, "나도 부모 은덕에 글자인지 배웠더니, 이런 잔치에 그저 감이 무미하니, 운을 부르면 글귀나 짓고 감이 어떠하뇨." 좌중 논란이 분분하다가 기름고자 높을 고자 둘 내고 지필을 주니 어사 응구첩대하였으되,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 옥반가표는 만성고라. 촉루낙시에 민루낙이요, 가서고처 원성고라." 하였거늘, 면면 상고할 제 움봉이 이 글을 보고 변색하더라. 그 글 뜻이 금잔에 아름다은 술은 일천 사람의 피요, 옥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촉루 떨어질 제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더라란 말이다. 대저원을 시비하고 백성을 위함이니, 가장 수상하다. 운봉이 본관더러 왈, "명일 환상 시작하겠기로 종일 동락지 못하고 몬저 가노라." 하고 가더니, 이윽고 어사 역졸에게 분부하여 마패로 삼문 두드리며, 암행어사 출두라 하니, 일읍이 진동하여 부서지느니 해금, 저, 피리, 깨어지느니 장구 거문고 등물이라. 각읍 수령들이 쥐 숨듯 달아날 제, 임실현감 갓을 옆으로 쓰며, "이갓 궁글 누가 막았는고." 하며, 전주판관은 말을 거꾸로 타며, "이 말 목이 근본이 없느냐 아무커나 바삐가자." 여산 부사 상투를 쥐 구명에 박고 하는 말이, "뉘라 날 찾거든 벌써 갔다 하여라." 하고, 원님은 강똥 싸고, 이방은 기절하고, 삼반관속은 오줌 싸고, 내동헌에서도 물똥을 싼다 하니, 원님이 떨며 왈, "우리 집안은 똥으로 망한다." 할 제, 어사 남원 부사를 봉고파출반 후, 공사를 처결할 새, "관속의 신상은 대분부하라." 하고, "죄수 춘향을 오리라." 하니, 옥쇄장이 춘향을 압령하여 들어올 제, 춘향이 울며 하는 말이, "우리 서방님더러 칼머리나 들어 달라 하였더니, 오늘은 사생간 결단이 날거여늘 어디 가서 이 경상을 아니 모는고." 하고 방성대곡하더라. 형방이 이르되, "어사 사또 분부내에 오늘부터 나를 수청 들이라 하시니 그대로 거행하라." 춘향이 여짜오되, "소녀 전등 사또 자제 도령님과 백년결약하였기로 분부시행 못하겠삽내다." 어사 이르되, "노류장화는 인개가절이라 하니, 너 같은 천기로 수절이란 무엇인고. 바삐 거행하라." 춘향이 또 여짜오되, "소녀를 만단에 내실지라도 마음은 변치 못하리로소이다." 어사 왈, "너 같은 절개 어찌 아름답지 아니리오." 하고 기생들을 분부하여 춘향의 쓴 칼을 이로 물어 뜯어 벗긴 후 춘향더러 왈, "네 나를 보라." 춘향이 마지못하여 살펴 보니, 의심 없는 낭군이라. 뛰어 올라가며 어사의 소매를 잡고 울며 목이 메어 말을 못하거늘, 어사 옥수를 잡고 만단으로 위로하더라. 이 때 춘향 어미 미음을 가지고 오거늘 관속들이 분붕히 치하하니 춘향 어미 이른 말이, "그 어인 말고." 하며 삼문 틈으로 드밀어 보다가 뛰어나와 손뼉치며, "얼싸 좋다. 좋을시고,. 지화자 좋을시고. 사람마다 딸을 두어 날 같이 효도를 볼작시면, 부중생남중생녀라 하는 말이 허언이 아니로다." 어사 대연을 배설하고 춘향과 즐길 때, 전후사를 서로 이르며 비밀히 교접하여 은근한 정회를 측량치 못할레라. 이튿날 공사를 다 결처하고 허판수를 상급하며 옥졸 불러 주찬으로 치사하고 각읍 문서를 각 닦은 후, 춘향 모녀를 데리고 떠날 새, 일읍 관속이며 여러 기생들이 십 리에 나와 춘향을 붙들고 연연 전별하고, 열읍에 지대를 차려 위의 기특하더라. 졍사에 이르러 수의를 친 후 , 그 연유를 주달하온대 상이 크게 칭찬하사 왈, "천기로 수절함은 천고에 희한하도다." 하시고, 정렬부인을 봉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