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전 (3/3) 토끼가 듣고 마음 속에 의심이 크게 일어 물었다. "그대의 노래 속에 뭔가 깊은 뜻이 있는 것 같구려. 무슨 까닭이요?" 자라는 속으로 움찔했으나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내가 흥이 나서 그냥 부른 것인데 거기에 무슨 뜻이 있겠오?" 토끼는 그래도 의심이 안 가셔져 다시 물었다. "간사한 토끼를 얻어 공을 세웠다고 한 것과 우리 대왕의 병환이 나으셨다는 말은 무슨 뜻이오?" 자라가 토끼의 말을 듣고 속으로 비웃었다. '네가 이미 여기까지 왔으니 나를 의심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이에 대꾸하지 않고 바삐 헤엄쳐 눈깜짝할 사이에 남해 수궁에 이르러 토끼를 내려놓았다. "그대는 부질없이 나를 의심하지 말고 빨리 숙소로 갑시다." 자라의 말에 토끼가 눈을 들어 살펴보니 천지가 넓고 해와 달이 밝은데 눈부신 대궐이 하늘에 솟아 있고 문과 창에는 서기가 어려 있었다. 토끼는 마음속에 남아 있던 의심이 봄눈 녹듯이 사라져 자라를 따라 숙소에 이르렀다. "토선생은 여기서 잠시 기다리시오. 내가 바로 용궁에 들어가서 우리 대왕께 그대와 같이 온 것을 여쭈고 오리다." 자라가 말하고 바삐 나가므로 토끼는 마음속에 다시 의심이 일었다. '내가 이처럼 멀리 왔는데 술 한 잔도 대접하지 않고 바삐 궁중으로 들어가니 이 어찌된 일인가?' 그러나 곧 머리를 흔들어 의심을 떨어냈다. '아마 나의 높은 이름을 수국의 임금과 신하들에게 먼저 들어가서 아뢰려는 거로구나. 임금은 급히 통문관 대제학 벼슬을 주시어 며칠 안으로 여러 해 그냥 두었던 사기를 쓰라고 하기에 정신이 없어 사소한 접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겠지.' 해서 할 일 없이 혼자 앉아 있었다. 이때 자라가 급히 궁중으로 들어가니 모여있던 신하들이 모두 반기며 즉시 용왕께 아뢰었다. 용왕은 자라를 불러들여 용상 아래 가까이 앉으라 하며 무사히 다녀온 것을 치하하는 한편 토끼의 소식을 물었다. 자라가 머리를 거듭 조아리며 아뢰었다. "신이 왕명을 받자와 거친 풍랑을 헤치고 무사히 동해가에 이르렀나이다. 하여 그곳 깊은 산으로 들어가 토끼 하나를 만나 백가지로 꾀고 천 가지로 달래어 간신히 데리고 지금에야 돌아와 토끼를 여관에 머물러 있게 하고 급히 들어왔나이다. 그 동안 귀하신 몸의 병환은 어떠하신지 염려가 되옵니다." 이어 토끼를 꾀던 일을 낱낱이 아뢰었다. 용왕이 듣고 나서 무릎을 치며 기뻐하셨다. "그대의 충성심과 말재주는 가히 남해 용궁에서 으뜸이라 할 만 하도다. 하늘이 도우셔서 그대 같은 신하를 내게 내린 것이로다." 용왕은 즉시 온 조정의 신하들에게 분부하셨다. "짐이 옥황상제의 명을 받자옵고 수국의 어른이 되어 지금까지 다스렸지만 덕이 부족하여 늘 두려운 생각이 들었도다. 그러다가 갑자기 병을 얻어 치료할 방법이 아득하던 중에 별주부의 지극한 충성으로 인간 세상에 나아가 토끼를 얻어왔으니 이제 그 간을 시험하면 짐의 병이 깨끗이 나을 것이로다. 이는 온 나라의 큰 경사이므로 모든 신하들은 영덕전으로 모여라. 별주부는 특별히 벼슬을 높여 자헌대부-정이품의 문관벼슬,-약방제조-궁중의원의 우두머리-겸 충훈부당상을 제수하노라." 자라가 듣고 황공하여 엎드려 절했다. "항공무지로소이다." 모든 신하들이 이 분부를 듣고 즐거워하며 일제히 영덕전으로 모였다. 이윽고 하례가 끝난 다음 용왕이 분부했다 ."어서 토끼를 잡아 들여라." 그러자 금부도사 명태가 나졸들을 이끌고 여관으로 풍우같이 달려갔다. 한편 토끼는 여관방에 앉아서 자라가 돌아오기만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다. 그런데 자라는 오지 않고 대신 금부도사가 이르러 어명을 전하며 나졸들을 시켜 꽁꽁 묶은 다음 바람처럼 몰아다가 영덕전 아래에 꿇어앉히는 것이 아닌가. 놀란 토끼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용상을 우러러보니 용왕이 머리에 황금관을 쓰고 몸에 용포를 입고 손에 백옥홀을 쥐었는데 뭇신하들이 좌우에 시립하고 있는 것이 매우 엄숙하고 위세가 놀라웠다. 용왕이 선전관 전어를 시켜 토끼에게 분부하셨다. "짐은 수국의 왕이요, 너는 산중의 조그만 짐승이로다. 짐이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남해를 다스리다가 갑자기 병을 얻어 자리에 누운지 오래인데 오직 너의 간만이 약이 된다고 하는도다. 해서 특별히 별주부를 보내어 너를 데려왔으니 너는 죽음을 한탄하지 말라. 네가 죽은 뒤에는 네 몸을 비단으로 싸고 백옥과 호박으로 관을 만들어 명당자리에 장사지내 줄 것이다. 만약에 짐의 병이 낫기만 하면 마땅이 사당을 세워 너의 공을 잊지 않을 것이로다. 네가 산중에 있다가 호랑이와 늑대의 밥이 되거나 사냥군에게 잡히어 죽는 것보다 어찌 영광스럽지 않겠느냐? 짐이 결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니 너는 죽은 넋이라도 짐을 원망하지 말라." 이어 신하에게 명하여 빨리 토끼의 배를 갈라 간을 꺼내 오라고 분부했다. 그러자 군사들이 한꺼번에 우- 몰려들었다. 토끼는 공연히 헛된 욕심을 내어 자라를 따라 왔다가 물 속에서 원통하게 죽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스스로 취한 화인지라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탓할 것인가? 세상에 턱없이 명예와 이익을 탐내는 자는 능히 이것을 보아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 토끼는 용왕의 분부를 듣자 마른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머리를 깨뜨리는 듯하고 정신이 아찔했다. '내가 부질없이 부귀와 영화를 탐내어 고향을 버리고 왔으니 어찌 뜻밖의 변이 없겠는가? 이제 날개 있다 해도 날아가지 못할 것이요, 땅을 좁히는 술법이 있다 해도 날아가지 못할 것이요, 땅을 좁히는 술법이 있다 해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테니 꼼짝없이 원통한 귀신이 되는구나.' 토끼는 생각할수록 기가 막혀 속으로 자신을 호되게 꾸짖었다. '옛말에 이르기를 죽을 곳에 빠진 뒤에 살아난다 하였으니 어찌 죽기만을 생각하고 살아날 방도를 헤아리지 않겠는가.' 토끼는 갑자기 한 꾀가 떠올라 짐짓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용왕이 보고 토끼가 죄 없이 죽는 것이 원통해서 우는 줄 알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말하였다. "너무 서러워하지 말라. 네가 우니 짐의 마음도 아프구나." 토끼가 눈물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대왕께 아뢰오. 소인 토기는 서러워 우는 것이 아니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대왕은 수국의 어른이시고 소인 토끼는 산중의 조그마한 짐승이오니 만일에 소토의 간으로 대왕의 병환이 나으신다면 어찌 감히 사양하겠습니까? 또 소토가 죽은 뒤에 후하게 장사지내며 심지어 사당까지 세워 주신다고 하시니 이 은혜는 하늘같이 커 소토는 죽어도 여한이 없나이다. 다만 소토가 비록 작은 짐승이오나 보통 짐승과 달라 본래 방성의 정기를 타고 세상에 내려와 날마다 아침이면 옥 같은 이슬을 받아 마시며 밤낮으로 아름다운 꽃과 향기로운 풀을 뜯어먹으므로 그 간이 참으로 신령스러운 약이 되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이를 알고 항상 소토를 만나면 간을 달라고 보채옵니다. 이에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몸에서 꺼내어 푸른 산 맑은 물에 여러 번 씻어 높고 험한 산봉우리 깊은 곳에 감추어 두고 다니다가 뜻밖에 자라를 만나게 되었나이다. 만약에 대왕의 병환이 이렇게 중한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어찌 가져오지 않았겠나이까?" 용왕이 들으시고 크게 성내어 꾸짖었다. "네가 참으로 간사한 놈이로다. 천지간의 온갖 짐승이 어찌 간을 넣었다 꺼냈다 할 수가 있겠느냐? 네가 얕은꾀로 짐을 속여 살기를 꾀하나 짐이 어찌 이치에 맞지 않는 말에 속겠느냐? 네가 짐을 속인 죄는 더욱 크니 빨리 너의 간을 꺼내어 짐의 병을 고치는 한편 짐을 속인 죄를 다스릴 것이로다." 토끼가 듣고 정신이 아찔하고 가슴이 막히어 속으로 부르짖었다. '내가 속절없이 죽는구나!' 그러나 애써 용기를 가다듬어 다시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소토가 아뢰는 말을 자세히 들으시고 굽어살피옵소서. 만약 소토의 배를 갈라 간이 없으면 대왕의 병환도 고치지 못하고 소토만 부질없이 죽을 뿐이니 다시 그 누구에게 간을 구하시려고 하시나이까? 그때에는 뉘우쳐도 소용없으니 대왕께서는 세 번 생각 하시옵소서." 용왕이 토끼의 말을 듣고 또 그 기색이 태연함을 보고 약간 믿는 눈치였다. "네 말과 같다면 간을 넣었다 꺼냈다 하는 표적이 있을 것이로다." 토끼가 이 말을 듣고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이제는 내게 살아날 길이 있구나.' 해서 엎드려 공손히 아뢰었다. "세상의 날짐승과 들짐승 가운데 소토만이 홀로 아랫몸에 구멍이 셋 있나이다." "셋이라고?" "그렇사옵니다. 하나는 대변을 볼 때 쓰옵고, 또 하나는 소변하는데,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간이 출입하는 곳이옵니다." 용왕이 듣고 크게 꾸짖었다. "네 말이 어찌 그리 간사스러우냐? 날짐승과 들짐승을 막론하여 어찌 아랫몸에 구멍이 셋 있는 것이 있겠느냐?" 토끼가 다시 여쭈었다. "소토의 구멍이 셋이 있는 내력을 아뢰겠나이다. 대개 하늘이 자시-밤 열 한 시에서 한 시 사이-에 열려 하늘이 되옵고, 땅이 축시-밤 한 시부터 세 시까지-에 열려 땅이 되옵고, 사람이 인시-밤 세 시부터 다섯 시까지 -에 생겨 사람이 되옵고, 만물이 묘시-아침 다섯 시부터 일곱 시까지 -에 나와 짐승이 되었나이다. 여기서 묘라는 글자는 곧 토끼의 다른 이름이니 날짐승과 들짐승의 근본을 살피자면 소토는 곧 짐승의 으뜸이라 할 수 있나이다. 산의 풀을 밟지 않는 저 기린도 소토의 아래이옵고 굶주리되 좁쌀을 먹지 않는 저 봉황새로 소토만 못하옵기에 특별히 해와 달과 별의 세 빛을 따라 아랫 몸에 세 구멍이 있나이다. 대왕께서 소토의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소토의 아랫몸을 한번 조사해 보시옵소서." 용왕이 듣고 이상하게 생각되시어 나졸을 시켜 자세히 살피게 했다. 그러자 과연 토끼의 아랫 몸에 세 구멍이 있지를 않은가. 용왕이 머리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네 말을 간이 구멍으로 꺼낼 수 있다고 하니 도로 넣을 때는 그리로 넣는가?" 토끼가 듣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는 내 꾀가 거의 맞아 들어가는구나.' 그러나 내색은 않고 엄숙히 대답했다. "소토는 다른 짐승과 같지 않은 점이 많사옵니다. 만약에 새끼를 배려면 보름달을 바라보아 배옵고 새끼를 낳을 때는 입으로 낳사옵니다. 옛글을 보아도 능히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을 넣을 때에도 입으로 넣사옵니다." 용왕이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네가 간을 자유롭게 출입시킨다 하니 혹시 깜빡 잊고 간이 몸 속에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어서 꺼내어 짐의 병을 고치도록 하라." 토끼가 다시 아뢰었다. "소토가 비록 간을 능히 넣고 빼고 하오나 또한 정한 때가 있사옵니다. 달마다 초하루부터 십오 일까지는 뱃속에 넣어 해와 달의 정기를 빨아들여 음양의 기운을 받사옵니다. 그리고 십 육일부터 달 말까지는 몸에서 꺼내어 맑은 시냇물에 깨끗이 씻어 푸른 소나무가 우거진 바위틈에 아무도 알지 못하게 감추어 두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영약이라 하옵나이다. 오늘은 마침 오월 하순이니 만약 자라가 대왕의 병세가 이렇듯 중하심을 말하였다면 며칠 더 있다가 가져 왔을 터인데 아깝나이다." 그러자 자라가 엎드려 용왕께 아뢰었다. "토끼의 간이 출입한다는 말은 사기에도 없사옵고 이치에도 부당하니 먼저 배를 가르게 하옵소서. 그래서 간이 없으면 신이 다시 땅으로 나가 다른 토끼를 잡아오겠나이다." 토끼가 듣고 큰일이다 싶어 호되게 꾸짖었다. "자라야, 네 하는 수작이 갈수록 방정맞구나. 처음에 나를 만났을 때 모든 것을 얘기했다면 약이 많이 든 간을 여러 개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네 속이 응큼하여 벼슬하러 수궁으로 가자고 나를 꾀기만 했으니 이것이 첫 번 허물이로다. 그리고 대왕의 병세가 시급하니 어서 간을 가져와야 치료할 수 있을 텐데 무조건 나만 죽이라고 하니 한심하구나. 네놈의 생긴 형용이 음침하고 고약하니 함께 안락함을 맛볼 수가 없도다. 나를 죽여 간이 없으면 어떤 토끼가 다시 오겠느냐? 내가 수궁 벼슬하러 너를 따라갔다는 말이 온 산중에 퍼졌을 테니 만약에 내가 다시 안 나가고 너 혼자 또 나가면 산중 벗들이 나를 어떻게 했느냐고 물을 것이로다. 그렇게 되면 다른 토끼를 잡기는커녕 네 목숨조차도 보전키 어려울 것이다. 너 죽는 것은 아깝지 않으나 대왕의 병환은 어떻게 고치겠느냐? 너처럼 앞일을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말을 하니 가엾구나. 정말 나라 망칠 역신이로다. 내 목숨 죽는 것은 조금도 한이 없다. 독수리, 사냥개에게 구차스럽게 죽지 말라고 수정궁 용왕 앞에서 칼로 이 배를 가르면 그런 영화 어디 있겠느냐? 자, 어서 내 배를 갈라라." 토끼가 배극 왈칵왈칵 내미니 자라는 대꾸할 말이 없어 눈만 꿈뻑꿈뻑했다. 용왕이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에 배를 갈라 간이 없다면 토끼만 죽을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어디 가서 다시 토끼를 잡아온단 말인가? 차라리 잘 달래어 간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 좋겠다.' 이에 신하에게 명하여 토끼를 묶은 것을 끌러주고 용상 가까이 불러올리니 토끼가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였다. 용왕은 옥으로 만든 잔에다 천일주를 가득 부어 토끼에게 주며 놀란 마음을 진정하라고 위로하였다 ."토선생은 짐이 실례한 것을 용서하라." "황공무지로소이다." 토끼가 공손이 받들어 마신 다음 아뢰는데 갑자기 한 신하가 앞으로 나와 여쭈었다. "신이 듣자하니 토끼는 본래 간사한 짐승이라 하옵나이다. 또 옛말에도 군자는 이치를 따져 속인다고 하였사오니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토끼의 말을 곧이 듣지 마시고 어서 간을 꺼내어 귀하신 몸을 고치시옵소서." 모두가 바라보니 바른 말 잘하기로 이름난 대사간 자가사리였다. 토끼가 듣고 가슴이 떨려 얼른 엎드려 죄를 청했다. "대왕께서 소토가 거짓말을 아뢰었다고 믿으신다면 서슴치 마시고 소토의 배를 가르시옵소서." 용왕이 웃으며 말했다. "토선생은 산중의 선비인데 어찌 거짓말로 짐을 속이겠는가. 대사간은 물러가 있으라." 이어 토끼를 위해 잔치를 베풀라 명하였다. 토끼가 대접을 받는데 금강초, 불로초는 옥으로 된 쟁반에 가득 담겨 있고, 향기롭고 맑은 술은 잔마다 가득히 차고 풍악이 꽝꽝 울리었다. 또 미녀 수십 명이 나와 춤추며 노래하니 토끼는 절로 흥이나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 간을 내어주고도 죽지 않을 것 같으면 이곳에서 살고 싶구나.' 이때 용왕이 토끼의 기분 좋음을 보고 은근히 위로했다. "짐은 수국에 있고 그대는 산중에 있어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서로 만난 것은 좀체로 보기 힘든 기이한 인연이로구나. 그대가 짐을 위하여 간을 가져오면 짐이 어찌 그대의 두터운 은혜를 저버리겠는가. 후한 상을 내릴 뿐만 아니라 부귀를 같이 누릴 것이니 그대는 깊이 생각하여 실행하라." 토끼가 엎드려 공손이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너무 염려하지 마소서. 소토가 분수에 넘치게 대왕의 너그러우신 덕을 입고 목숨을 살렸으니 그 은혜를 어찌 잊을 수가 있겠나이까? 하물며 소토는 간이 없을지라도 살 수 있으니 어찌 이를 아끼겠나이까?" 용왕이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토선생의 뜻은 참으로 크도다." 잔치가 끝나나 뒤에 용왕은 신하에게 명하여 토끼를 인도하여 딴 궁궐에 가서 쉬게했다. 토끼가 신하를 따라 갔더니 너무나 화려한 것이 눈이 으리으리했다. 운모병풍과 진주발이 사방으로 드리워져 있으며, 저녁밥을 올린 것을 살펴보니 맛있는 음식들이 여지껏 듣도 보도 못할 것들이었다. 그러나 토끼는 자신의 처지가 바늘방석에 앉은 듯하여 속으로 궁리했다. '내가 비록 한때의 속임수로 용왕을 속였으나 이곳에서 어영부영하고 있다가는 큰일 날 것이다.' 해서 밤이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이튿날 다시 용왕을 뵙고 여쭈었다. "대왕의 병세가 날로 악화되어 가므로 소토는 빨리 산중으로 가서 간을 가져올까 하옵니다. 부디 소토의 작은 정성을 살피옵소서." 용왕이 크게 기뻐하시며 자라를 불러 분부하셨다. "그대는 수고를 아끼지 말고 토선생을 따라 인간 세상에 나가 간을 구해 오라."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자라가 머리를 조아리며 분부를 받들었다. 용왕이 다시 토끼에게 말했다. "토선생은 빨리 돌아오라." 하고는 진주 이백 개를 선물로 내리셨다. "이것은 비록 적은 것이지만 우선 짐이 정으로 선사하노라." "황송하나이다." 토끼가 공손히 받은 후에 용왕께 하직하고 용궁을 벗어났다. 그러자 모든 신하들이 모두 나와 전송하며 빨리 간을 가지고 돌아오기를 부탁하는데 대사간 자가사리만은 보이지가 않았다. 이 때 토끼가 자라의 등에 다시 올라타고 넓고 푸른 바다를 건너 바닷가에 이르렀다. 토끼는 자라의 등에서 내려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속으로 외쳤다. '이는 참으로 그물을 벗어난 새요, 함정에서 벗어난 호랑이로다. 만약 나의 지혜가 아니었다면 어찌 고향 산천을 다시 볼 수 있겠는가.' 해서 이리저리 깡충깡충 뛰어 놀았다. 자라가 이를 보고 재촉했다. "우리의 길이 바쁘니 어서 빨리 간이 있는 곳으로 가십시다." 토끼가 듣고 눈을 부릅뜨며 꾸짖었다. "네 이놈 자라야, 네 죄를 논하자면 죽여도 분이 풀리지 않겠도다. 대체 오장육부에 붙은 간을 어떻게 넣고 빼겠느냐? 이것은 내 기특한 꾀로 너의 왕과 신하들을 속인 것이다. 그리고 너의 용왕의 병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 그야말로 바람난 말과 소는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옛말과 같은 것이다. 또 네가 공연히 산중에서 한가롭게 지내는 나를 갖은 감언이설로 꾀러 내어 네 공을 나타내려고 하였으니 내가 용궁에 들어서 놀란 것을 생각하면 온 몸에 소름이 끼친다. 네가 한 짓을 생각하면 산중으로 잡아다가 우리 산중 짐승을 다 모아서 잔치를 베풀어 너를 푹 삶아서 백소주 안주감으로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네놈이 왕께 충성하느라고 한 짓이고, 또 네가 나를 업고 푸른 바다를 왔다 갔다 한 수고를 생각하여 목숨만은 살려 보내겠다. 그리 알고 돌아가되 좋은 약을 보내기로 왕에게 약속했으니 점잖은 내 체면에 어찌 거짓말을 하겠느냐? 나의 똥이 무척 좋아 열을 식힌다 하고 사람들이 주워다가 병든 아이들에게 먹이나니 네 왕의 두 눈이 열에 들떠 있더라. 갖다가 복용하면 병이 곧 나으리라." 이어 철환똥을 많이 누어 칡잎에 단단히 싸서 자라등에 올려놓고 칡으로 감아주니 자라가 짊어지고 무수히 감사하며 용궁으로 돌아갔다. 하마터면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으니 토끼가 오죽 좋겠는가. 깡충깡충 뛰어가면서 크게 소리치기를, "천하장사 항우는 병사 팔천을 거느리고 한태조와 천하를 다투다가 오강을 도로 건너가지 못했고, 형가는 만고 협객으로 함 척 검 빼어들고 진시황을 찌르려다가 역수를 도로 건너지 못하였도다. 신통한 나의 재주 죽음에서 교묘한 언변으로 용왕을 속이고 이 물을 도로 건넜구나. 반갑도다, 반갑도다. 우리 고향 반갑도다. 청산록수는 이전에 볼 때와 다름이 없고 푸른 산봉우리 흰구름은 내가 앉아 졸던 곳이로다. 저 과실나무 열매는 내가 주워 먹던 것이로다. 너구리 아저씨 평안하오. 오소리 형님 잘 있는가. 부귀공명 생각일랑 부디 하지 말고 고향 떠날 생각 부디 하지 마소. 벼슬하던 몸 괴롭고 타향에 가면 천대받네. 몸에 익은 푸른 산, 밝은 달, 낯익은 우리 친구 주야로 만나서 즐겨 노세." 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며 산 속으로 들어갔다. 이때에 자라는 용궁으로 들어가서 가지고 간 토끼의 똥을 바치니 용왕이 먹고서 병이 나아 만고충신이 되었다. 토끼는 신선을 따라 월궁으로 올라가서 여태까지 약을 빻고 있구나. 자라와 토끼가 본래 미물로서 장한 충성, 교묘한 꾀가 사람과 같은 고로 얘기로 길이 전해진다. 사람이라 스스로 뽐내다가 자라나 토끼만도 못하면 그 아니 부끄러운가. 부디부디 조심하소.
토끼전 (2/3) 토끼가 귀를 벌룸벌룸 하며 대꾸했다. "이 세상의 재미를 말하면 그대는 재미가 나서 오줌을 줄줄 쌀 것이오. 그러나 그렇게 둥글넙적한 몸이 오줌 속에 빠져서 뱃놀이하느라고 헤어나지 못할텐데 그래도 괜찮겠소?" 자라가 속에서 치밀었지만 꾹 참고 점잖게 대꾸했다. "헛된 자랑만 하지 말고 어디 대강 말해 보시오." 토끼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말했다. "형씨는 산경치가 어떤 줄 아시오? 산봉우리는 칼날같이 하늘로 치솟아 있는데 산을 등지고 물을 마주 대하니 앞에서 봄비가 연못에 가득 차 있고 뒤에는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오른다오. 좋은 장소에 집터를 잡고 초당 한 칸을 지으니 반 칸은 청북이 차지하고 나머지 반 칸은 밝은 달이 차지하는구려. 흙섬돌에 대나무 사립문이 고요하고, 깨끗하기 그지없는 학은 춤을 추고 봉황은 날아 오른다오. 뒷산에서 약을 캐고 앞내에서 고기를 낚으니 이 아니 즐겁지를 않겠소? 청산에 밝은 달이 고요한데 깊은 산 속에 홀로 문을 닫고 산다오 .한가로운 구름이 그림자를 희롱하니 이 어찌 신선이 사는 곳이 아니겠소? 이 몸이 구름과 같아서 세상의 시비가 없고 보니 내 자취를 그 누가 알겠습니까? 추위가 지나가고 더위가 돌아오면 철이 바뀌었음을 짐작하고 날이 가고 달이 오니 세월이 흘러가는 것도 모른다오. 물 맑고 산 푸른 깊은 곳에 온갖 화초는 우거지고 봉황새와 꾀꼬리가 아름답게 지저귀니 이 봉우리 저 봉우리가 풍악으로 가득 차오. 석양에 취한 흥을 반쯤 띄고 강산의 풍경을 구경하며 곤륜산 상상봉에 흰구름을 쓸어 밀치고 땅의 형세를 내려다보니 태산은 청룡이 되어 있고, 화산은 백호로 변해 있더이다. 상산은 현무가 되고 형산은 주작이 되었구려. 소상강과 팽려택으로 연못을 삼고 황하와 양자강으로 띠를 삼아 적벽강의 아름다운 경치는 글을 지어 노래하고, 아미산의 달빛은 취중에 희롱하고, 삼신산의 불로초는 마음대로 뜯어 먹고, 동정호에서 목욕하다가 산속으로 돌아오면 바윗돌이 곧 집이 되지요. 한가롭게 누워 있으면 수풀 사이로 밝은 달이 나타나 은근한 친구와 같고, 소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는 은은한 거문고 소리라 할 만하지요. 돌베개를 높이 베고 취흥에 잠이 드니 어디선가 학의 울음소리가 잠든 나를 깨우지요. 이윽고 일어나서 한산의 돌길을 지팡이에 의지하고 이리저리 거니니 흰 구름은 천리만리 피어 있고, 밝은 달은 앞내와 뒷내에 골고루 비치고 있다오. 산이 첩첩하고 물이 잔잔하니 이 아니 좋으리오. 도도한 이 내 몸은 산과 물 사이에 있으니 무한한 이 경치를 어찌 정승 벼슬과 바꾸리오. 동편 언덕에 올라 휘파람을 부니 한가롭기 그지없고 앞에 있는 시냇물을 굽어보며 글을 지으니 이 아니 좋습니까? 오동밭의 밝은 달은 가슴에 비치고 버들가지의 맑은 바람은 얼굴에 불어오니 청풍 명월이 나의 친구가 아니겠소? 병 없는 이내 몸은 태평한 세상에 한가로운 백성이 되었으니 이는 참으로 땅 위의 신선이외다. 강산의 풍경을 마음대로 희롱한들 그 누가 시비하겠습니까? 배꽃과 복숭아꽃이 활짝 피고 푸른 버들이 드리운 곳에 동서남북의 미인들 와서 노니 그 풍경 한 번 근사하지요. 오월 단오날이면 녹음 방초 우거진 곳에 색동옷을 입은 미인들이 버들가지에 그네를 매고 짝을 지어 뛰는 모습은 광한루가 분명하지요. 풍류를 즐기는 호걸로 태어난 이내 몸은 이 세상 재미를 나 혼자 즐기고 있소이다." 말을 다 듣고 난 자라가 목을 이리저리 흔들며 입을 열었다. "참으로 우습고 우습도다. 그대의 말은 모두 거짓이니 그 누가 곧이 들으리오. 내가 그대의 신세를 생각하건대 최소한 여덟 가지 어려움이 있으니 두 귀를 기울여 잘 들으시오. 동지 섣달 추운 겨울내 흰 눈은 휘날리고 깎아지른 절벽은 빙판이 되어 산골짜기가 막혔으니 어디 가서 지낼 것인가? 이것이 바로 첫 번째의 어려움이오. 북풍이 사납게 부는데 돌구멍 찬 자리에서 먹을 것은 전혀 없어 콧구멍을 핥을 적에 이는 얼음같이 얼어 붙고 네 다리가 굳어져서 팔자타령 절로 나오니 이것이 둘째 어려움이오, 봄바람이 따뜻한데 꽃송이와 풀잎이나 뜯어 먹자고 산 속으로 얼마큼 들어가니 뜻밖에 저 독수리란 놈이 날개를 접고 살같이 달려들 때 두 눈에서 불이 나고 작은 몸이 오그라져서 바위틈으로 기어들어 넋을 잃으니 불쌍하구나. 이것이 셋째 어려움이요. 오뉴월 삼복 중에 산과 들에 불이 나고 시냇물이 끊어질 적에 살에서는 기름이 번지고 털에서는 누린내가 풍풍 풍겨 짧은 혀를 길게 빼고 급한 숨을 헐떡이며 샘가로 달려갈 대 그 꼴이 오죽 합니까? 이것이 네 번째의 어려움이오. 단풍이 붉어지고 국화꽃이 만발할 적에 과실이나 얻어먹자고 조용한 곳으로 찾아가니, 아뿔싸 매를 가진 사냥군이 봉우리에 높이 앉아 있고 근력 좋은 몰이군과 냄새 잘 맡는 사냥개가 뒤를 쫓으니 발톱이 뭉그러지고 진땀이 바짝 나서 천방지축 달아나는구나. 이것이 다섯째 어려움이오. 천행으로 멀리 도망하여 죽을 고비를 벗어나니까 총 잘 쏘는 포수가 총을 둘러메고 이 목과 저 목에 질러앉아 탄환을 재어서 염통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기니 꼬리를 사타구니에 끼고 간장을 말리며 간신히 도망해 숨을 곳을 찾으니 여섯째 어려움이오. 모진 고생 끝에 간신히 숲속으로 달려드니, 얼숭덜숭한 큰 호랑이가 철사같이 모진 수염을 위엄있게 꼬고 버티고 있구나. 소리는 우레와 같고 대가리는 산덩이 만하며 허리는 반달 같고 터럭은 불빛인데 칼 같은 꼬리를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주홍같은 입을 크게 벌리고 써레 같은 이빨을 딱딱거리며 번개같이 날랜 몸을 사방으로 이리저리 번득이며 좌우를 충돌하여 이 골짜기와 저 골짜기를 두루 다니니 어찌 무섭지가 않으리오. 공연히 돌도 툭툭 밟아보고 나무도 뚝뚝 꺾어보고 하니 그 위풍이 늠름하고 풍채가 또한 씩씩하여 당당한 산군이로다. 제 용맹을 버럭 써서 횃불같은 두 눈을 부릅뜨고 톱날 같은 발톱을 내놓고 숨을 한 번 씩 하고 쉬면 나무가 왔다갔다 하는구나. 소리를 한 번 우웡 하고 지르면 산악이 움직움직하니 천지가 캄캄하고 정신이 아득하여 죽을 맛이로다. 이것이 일곱째의 어려움이요. 죽을 것을 겨우 면하고 목숨을 보존하여 넓은 들판으로 달려드니 침이 말라 목구멍이 다 칼칼하도다. 그런데 이게 또 무슨 변인고. 나무를 베는 초동들과 소먹이는 아이들이 창과 몽둥이를 둘러메고 잡으려고 달려드니 이것이 바로 여덟째 어려움이오. 그대가 이렇듯 어려울 때에 무슨 경황에 경치를 구경하며 어느 틈에 삼신산에 가서 불로초를 먹고 동정호에 가서 목욕할 것이오? 그 밖에 다른 고생도 부지기수이지만 그대가 듣기에 좋지 않은 듯하여 이만하겠소." 토끼가 듣고 샐쭉하여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소진-전국 시대의 웅변가-과 장의-전국시대의 웅변가-말씀도 잘 하시고 소강절의 추수인지 알기도 잘 아오. 그러나 남의 흠을 너무 말하지 마십시오. 듣는 이도 생각이 있소이다. 거룩하신 공자님도 진채에서 어려움을 당하셨고 천하제일의 장사였던 초패왕도 대택 속에 빠졌으니 화와 복은 하늘에 매여 있고 잘되고 못됨은 운수에 달린 것이오. 그건 그렇고 그대의 고향인 용궁의 재미는 어떤지 한번 말씀해 보구려." 자라가 목청을 가다듬고 점잖게 입을 열었다. "우리 용궁의 얘기를 하면 토선생은 아마 놀라 자빠질 것이오. 오색 구름이 깊은 곳에 붉고 높은 궁궐이 하늘로 치솟았는데 백옥으로 층계를 만들고 호박으로 주춧돌을 하였으며 기둥은 산호요, 난간은 대모로다. 황금으로 기와를 잇고 유리창과 수정렴에 야광주로 초롱을 달고 칠보를 방마다 깔았으니 그 빛깔은 햇빛마저 가리고 서기가 공중에 서려 있소이다. 날마다 잔치가 베풀어지고 잔치마다 풍류가 귾이지를 않으니 정말 선경이오. 연꽃 같은 미녀들이 쌍쌍이 춤을 추며 포도주와 벽동주와 천일주를 앵무배에 가득히 부어 놓고 호박반 유리상에 금강초 옥찬치 불사약을 소복히 담아다가 일일이 권하니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황홀해지지요. 아미산의 달빛과 적벽가으이 좋은 경치, 방장산 봉래산 영주산을 낱낱이 구경하고 뱃놀이를 한 끝에 돌아올 적에 채석강, 소상강, 동정호, 팽려택을 뜻대로 오고가니 이 아니 좋은가. 이슬은 강에 빗겨 있고 물빛은 하늘을 접하였구나. 지는 노을은 따오기와 함께 날고 가을 물은 긴 하늘과 한빛일 때 오나라와 초나라는 동남으로 터져 있고 하늘과 땅은 밤낮으로 떠 있지요. 모랫가에 기러기는 내려 앉고 흰 갈매기는 잠드는구나. 어디선가 구슬픈 퉁소 소리는 어부사를 화답하니 깊은 구렁에 잠긴 용은 춤을 추고 외로운 배에 있는 과부는 슬피 운다오. 달이 밝고 별은 드문드문한데 까마귀와 두 아내인 아황과 여영이 비파를 뜯어 울적함을 씻어주고 강 건너편에서 장사하는 아가씨가 부르는 노랫가락은 간장을 녹여내는구나. 밤중에 은은한 쇠북소리는 어디서 들려오는 것인가. 바람결에 뚜렷한 방망이 소리는 강촌에서 울리는 거로구나. 초강에서 고기잡는 어부들은 어기여차 노래하고 금못과 옥섬에서 연꽃을 따는 아가씨들은 상사곡을 노래하니 정신이 다 황홀하구나. 아마도 신선 세계는 수궁 뿐인가 생각되오." 토기가 저으기 의심이 일어나 흥미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대는 참으로 복이 많은 분이구료. 나는 본래 팔자가 기박하여 산림처사로 산중에 매여 있으니 부질 없이 남의 호강을 부러워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자라가 점잖게 입을 열었다. "나는 벗을 위하여 좋은 도리를 권하려고 한 것이니 그대는 조금도 달리 생각하지 마시오. 옛말에도 말하기를 위태한 곳에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 있지 말라고 했소이다. 그런데도 그대는 어찌하여 이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 그냥 살고 계시오? 이제 이렇게 나를 만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만약에 그대가 이 티끌 세상을 하직하고 나를 따라 수궁으로 들어간다면 선경에서놀면서 천도, 반도 복숭아와 불사약, 천일주, 홍감로를 날마다 취하도록 먹을 수 있을 것이외다. 또한 깊은 대궐 높은 집에서 무산의 선녀가 벗이 되어 순임금의 오현금과 왕대욱의 옥퉁소와 춘면곡, 양양가를 때때로 화답하며 악양루의 경치도 구경하고 등왕각에서 잔치하니 이 이상 좋은 일이 어디 있겠오? 그리고 황학루에서 글도 짓고 봉황대에서 술을 먹으니 태평한 세상의 부귀공명은 꿈 속에서 부쳐 두고 조금이나마 생각해 보십시오." 자라가 그럴 듯하게 꾀자 토끼는 수상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흔들었다. "그대의 말은 비록 듣기에는 좋으나 매우 위태하오. 속담에 이르기를 팔자 도망은 독 안에 들어도 못한다고 했소이다. 나처럼 육지에 살던 몸이 무엇하러 물나라에 들어가겠소? 용궁의 고생이 육지의 고생보다 더하지 말라는 법은 어디 있소? 첫째로 숨을 쉴 수가 없을 것이니 세상 만물 중에서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 어디 있겠으며, 둘째로 네 발은 멀쩡해도 헤엄을 칠 줄 모르는데 넓고 깊은 푸른 물을 무슨 수로 건너갈 것입니까? 팔자에 없는 남의 호강을 쓸데없이 욕심내어 이 세상을 하직하고 그대를 따라 수궁으로 들어갔다가는 반드시 일곱 구멍에 물이 들어가 필경 죽을 것이오. 내 목숨을 속절없이 고기 뱃속에 장사 지내면 임자 없는 내 넋이 푸른 바닷물 속에 외로운 넋이 되어서 굴원과 짝이 될 것이니 일가친척과 자손들이 어떻게 나를 찾을 수 있겠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십에 팔구는 위태합니다 그려." 자라가 웃으며 그럴 듯하게 대꾸했다. "토선생은 어찌 그리도 답답합니까? 그대는 한 가지만 알고 두 가지는 모릅니다 그려. 옛말에도 긴 강을 한 개의 갈대로 건너간다라고 했소이다. 여선문-송나라의 상량문을 잘 짓는 인물-은 광묘궁에 들어가서 상량문을 지어주고, 천하에 글 잘 짓는 이태백은 고래를 타고 달을 건지러 들어갔고, 삼장법사는 수륙 삼천 리를 건너가서 대장경을 구해왔고, 한나라 대 장건은 은하수에 올라가서 직녀의 지기석을 주워 오고, 서방세계의 아란존자는 연잎에 거북을 타고 넓은 바다를 마음대로 헤엄쳤으니 생물의 목숨이 하늘에 달려 있는데 공연히 죽을 것 같습니까? 대장부로 태어나서 이렇듯 연약하니 될 말이오? 자고로 군자는 사람을 몹쓸 곳에 추천하지 않는 법이니 내가 어찌 그대를 나쁜 곳에 권하겠습니까?" 토끼가 마음이 솔깃하여 물었다. "나는 본디 산중에 깊이 살아 벗을 사귀지 못하였고 또한 평안이 살 곳을 찾고자 한 생각이 없지 않으니 그대가 빨리 가르쳐 주면 어떻겠습니까?" 자라가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뻐했다. '이놈이 드디어 내 계략에 말려드는구나.' 그러나 내색은 않고 사뭇 점잖은 투로 말했다. "내가 그대의 얼굴을 보니 털빛이 누릇누릇, 해뜩해뜩하고 금빛을 띠었으나 염려할 필요가 없소이다. 목을 길게 타고났으니 고향을 바라보고 타향살이할 기항이요, 하관이 뾰족하니 위로 구하면 거슬리게 되어 무슨 일을 해도 어렵지만 아래로 구하면 순리대로 되어 온갖 일이 크게 좋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두 귀가 희고 잘 생겼으니 남의 말을 잘 들어 부귀를 누릴 것이요, 이마가 탁 틔었으니 용문에 올라 이름을 빛낼 것이요, 목소리가 부드러우니 사는 동안 험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토선생의 관상이 이처럼 좋으니 이 뒤에 영화와 부귀가 무궁하여 즐거움을 누리는데 끝이 없을 것입니다. 당나라 명황의 양귀비와 한나라 무제의 승로반이요, 팔자로는 백자천손을 거느린 곽자의요, 부자라는 석승이요, 풍악으로는 요임금의 대황곡과 순임금의 봉조곡, 장자방의 옥퉁소가 저절로 따를 것입니다. 또한 사마상여의 거문고에 탁문군이 담을 넘어올 것입니다. 말솜씨는 전국시대를 휩쓸던 소진과 장의도 따라오지 못하고, 가슴에 품은 경륜은 팔진도로 지휘하던 제갈량이 저리 물러갈 것이오. 이러한 생김새와 너그러운 마음씨가 세상에 으뜸이요, 천하를 주름잡을 만한 영웅호걸입니다. 그대가 마침 팔딱팔딱 뛰는 버릇이 있으므로 이 땅에서만 묵혀 있어서는 위에 말한 여러 가지 즐거움을 결코 한 가지도 누리지 못하고 도리어 그 전과같이 재앙만 있을 것입니다. 오직 이 땅을 떠나야만 온갖 일이 뜻대로, 될 것이니 심사숙고하시오." 토끼가 듣고 나더니 기분이 좋아 코를 벌름벌름하면서 말했다. "내 얼굴도 뛰어나지만 그대의 관상보는 재주도 신통하구료. 내가 그대를 보니 보통 인물은 아닙니다. 마음이 너그럽고 착한 것이 평생에 남을 속이지 않을 것입니다. 나같이 보잘 것 없는 떠돌이꾼을 좋은 곳에 추천하니 고맙기가 그지없소이다. 그건 그렇고 수궁에 들어가면 벼슬하기는 쉬운지요?" 자라가 듣고 속으로 기쁨을 이기지 못했다. '네가 드디어 내 꾀에 말려 들었구나.' 해서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토선생은 아직 모르고 계시는군요. 역산에서 밭을 갈던 순임금은 당요로부터 임금자리를 물려받았고, 위수에서 고기를 낚던 강태공은 주나라 문왕의 스승이 되었고, 신야에서 밭을 갈던 이윤은 탕임금의 재상이 되었고, 부암에서 담을 쌓던 부열은 은나라 고종의 어진 재상이 되었고, 소를 먹이던 백리해는 진나라 목공의 정승이 되었고, 빨래하는 여자에게서 밥을 빌어먹던 한신은 한나라의 명장이 되었으니, 이 세상이나 우리 수국이나 뽑히기는 일반이오. 어진 임금은 신하를 가려 쓰고, 밝은 신하는 임금을 가리는 법이니 우리 용왕께서는 문무를 다 갖추시어 어진 선비를 널리 구하는 중이올시다. 그래서 한 가지 능력과 한 가지 재주만 있는 자라도 모두 높은 벼슬에 올려 쓰십니다. 나같이 재주없는 인물도 벼슬이 외람되게 주부에 이르렀으니 더구나 토선생처럼 훌륭한 바탕과 뛰어난 문필을 지닌 인물이야 가기만 하며 부귀가 저절로 굴러 들어올 것입니다. 지금 용궁에는 역사책을 꾸미지 못해 태사관-역사를 기록하는 관리-이 될 인물을 널리 구하고 있지만 적당한 사람이 없어서 근심한 지가 오래입니다. 보아하니 토선생의 글재주가 이 소임에 꼭 알맞을 듯합니다. 만약 그대가 중서군의 옛붓대를 잡아 동호의 의리를 밝혀 준다면 우리 수국의 다행이겠고 그대의 높은 이름이 온 세상에 떨쳐질 것입니다. 내가 토선생과 함께 용궁으로 들어가면 즉시 우리 용왕께 곧장 추천할 것입니다." 토끼가 듣고 마음이 솔깃했지만 아직도 의심이 있어 주저했다. "그대의 말이 그럴 듯하지만 어젯밤의 내 꿈이 불길하니 마음에 저으기 꺼림칙합니다." 자라가 듣고 점잖게 말했다. "내가 젊어서 조금 해몽하는 법을 배웠으니 그대의 꿈 얘기를 한 번 듣고 싶소이다." 토끼가 눈을 껌벅껌벅하면서 대꾸했다. "꿈에 칼을 빼어 배에 대고 몸에 피를 칠해 보이니 아마도 좋지 못한 일을 당할까 염려됩니다." 자라가 잠시 생각하다가 능청스럽게 말을 받았다. "너무 좋은 꿈을 가지고 공연히 걱정하십니다. 그려. 배에 칼을 대었으나 칼은 곧 금이므로 금띠를 띌 것이요, 몸에 피칠을 하였으니 붉은 관복을 입을 징조입니다. 이름을 온 세상에 떨칠 것이니 이 어찌 부귀할 꿈이 아니겠오? 공자가 주공을 본 것은 성인의 꿈이요, 장자가 나비로 된 꿈은 사물의 이치를 깨달은 꿈이요, 제갈공명이 초당에서 꾼 꿈은 먼저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대의 꿈은 수국으로 들어가면 모든 사람 위에 오를 것을 의미하니 이 얼마나 좋은 꿈입니까?" 토끼가 듣고 정신이 황홀해지고 지금 당장이라도 높은 벼슬길에 오를 것만 같았다. 해서 기쁜 얼굴로 자라를 보며 말했다. "그대의 해몽 실력은 참으로 귀신같소이다. 소강절-송나라의 학자-과 이순풍이 다시 살아온다 해도 그대보다 잘 풀지는 못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꿈이 이미 나타났으니 내 부귀는 손 안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오. 그러나 넓고 깊은 바닷속을 어찌 들어가겠습니까?" 자라가 크게 기뻐하며 대답했다. "토선생은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내 등에만 오르면 어떤 풍랑이라도 파선할 염려가 없고 무사히 용궁에 당도할 것이니 무엇을 걱정하겠소?" 토끼가 제법 점잖은 체하며 사례했다. "그대가 벗을 위하여 이렇게 수고를 아끼지 않으려 하니 정말 고맙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대의 등에 올라가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니 마음이 불안하구려." 자라가 웃으며 말했다. "토선생은 참으로 고지식합니다. 그려. 위수에서 고기를 낚던 강태공은 주나라 문항과 함께 수레를 함께 탔고, 이문에서 문을 지키던 투영이는 신릉군의 웃자리에 앉았으며 부추산에서 밭을 갈던 엄자릉은 한나라 광무제와 한 베개를 베고 누웠습니다. 그러니 친구를 위한 자리에 높고 낮음이나 귀하고 천한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제 함께 들어가면 한평생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나눌 것이니 무엇이 미안할 것이 있습니까?" 토끼가 크게 기뻐하여 고개를 숙여 절하며 입을 열었다. "그대의 높은 은혜는 참으로 뼈에 사무치도록 잊을 수가 없소이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못당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중에서도 저 몹쓸 사람들이 총을 둘러메고 암상스럽게 보챌 때는 송편으로 멱을 따고 접시물에 빠져 죽고 싶은 때가 그동안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맏아들 놈은 나무하는 아이에게 죄없이 잡혀가서 구멍밥을 먹어가며 갇힌 지가 어느덧 칠판 년인데 놓여 나올 가망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놈은 사냥개에게 물려가서 까막까치의 밥이 되었는지 지금까지 소식이 없습니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 이가 갈리고 속이 상해서 어찌하면 이 원수 같은 세상을 하직할까 생각하며 밤낮으로 궁리하던 차에 천만 뜻밖에도 그대 같은 군자를 만나 밝은 세상을 보게 되니 이것은 하늘이 지시하고 귀신이 도우신 것으로 압니다. 성인이라야 능히 성인을 안다고 하더니 나와 같은 영웅이 아니면 그 누가 능히 알 것입니까? 하늘에서 내리신 영웅이 그대가 아니었더라면 헛되이 산중에서 늙을 뻔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아니면 수국의 백성들이 어진 벼슬아치를 만나지 못할 뻔했습니다." 토끼는 의기양양하여 자라와 함께 바다로 떠나려고 했다. 이때 바위 뒤에서 한 짐승이 달려나오며 크게 소리쳤다. "내가 지금까지 너희들의 수작을 처음부터 대강 들었도다. 이 어리석은 토끼야, 내 말을 자세히 들어보아라. 대개 부귀 공명이란 뜬구름과 같은 것이요, 또 차례가 있는 법인데 네가 이제 허무맹랑한 자라의 말을 듣고 죽을 땅에 가려고 하니 그 아니 불쌍하냐? 그리고 속담에도 이르기를 고향을 떠나면 천해진다고 했으니 네가 만약 용궁으로 들어간들 무슨 부귀를 갑자기 얻을 것이냐? 너는 헛된 욕심을 내지 말고 나의 충고를 듣거라." 토끼가 이 말을 듣고 두 귀를 쫑긋거리며 발을 멈추는 것이 머뭇거리는 빛이 완연했다. 자라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너구리였으므로 크게 노하여 속으로 욕을 했다. '내가 지금 토끼를 온갖 꾀로 달래 어서 거의 뜻을 이루었는데 저 원수 같은 너구리놈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방해하는 것인가? 하지만 내가 만약 어색한 빛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면 간사한 토끼 놈이 의심할 것이니 내가 먼저 너구리 놈의 말을 타박하여 토끼가 스스로 깨닫게 하리라.' 해서 껄껄 웃으며 너구리를 향해 말했다. "그대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어찌 그리 무식하오? 조주땅 선비인 여선문은 일개 가난한 문사였으나 우리 수궁에 들어와서 영덕전의 사량문을 지었으므로 우리 용왕께서 야광주 열 개와 통천서각 한 상을 내리셨오. 이 소문이 천하에 알려져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거늘 그대는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구료. 더구나 태사관은 나라의 귀중한 벼슬이므로 내가 토선생의 문장과 필법을 아끼어 함께 가자고 한 것인데 그대가 공연히 남을 의심하여 마치 천한 벗을 죽을 땅으로 인도하는 것같이 말씀하니 이 무슨 논리입니까? 나는 남의 의심을 받아가며 토선생과 함께 가지는 못하겠오." 준절히 꾸짖고는 토끼를 보고 정중히 말했다. "내가 토선생과 지난날에 아무런 원한이 없는데 어찌 그대에게 조금이라도 해로운 일을 권하겠습니까? 그대는 나와 불과 하루의 사귐이 있을 뿐이니 어찌 옛친구의 충고를 저버릴 수 있겠소. 나는 본래 우리 용왕의 분부를 받들고 동해로 사신차 갔다가 오는 길이므로 오래 머무르지 못하겠으니 이제 떠나렵니다. 토선생은 부디 편히 지내시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돌아서서 가려고 하니 너구리는 무안하여 한편으로 물러서고 말았다. 그러자 토끼의 마음이 급해져 너구리를 향해 매섭게 꾸짖었다. "네가 무슨 일로 남의 앞길을 방해하느냐?" 하고는 급히 자라를 쫓아가며 크게 소리쳤다. "주부어른, 그대는 거기 잠깐 머물러 나의 말을 들으시오." 자라는 속으로 크게 기뻤으나 일부러 두어 걸음 더 가다가 뒤로 돌아섰다. "토선생은 무슨 일로 나를 쫓아옵니까?" 토끼는 점잖게 한 마디 했다. "그대는 왜 이다지도 마음이 넓지 못합니까? 내가 아무리 어리석으나 어찌 무식한 자의 부질없는 말을 곧이 들으려고 합니까. 내가 어찌 그대가 나를 생각해 주는 점을 모르겠습니까? 내가 잠깐 망설인 것을 탓하지 말고 어서 떠납시다." 자라가 크게 기뻐하여 서둘러 토끼와 함께 해변으로 내려갔다. 망망한 대해는 그 끝이 보이지 않으니 산에서만 살던 토끼 어찌 놀라지 않으랴. "아니, 저게 모두 물이요?" "그렇지요." "수국의 사람은 모두 저 속에서 산단 말씀이요?" "물론이지요." "콧구멍에 물이 들어갈 테니 숨을 쉴 수 있겠오?" "그렇기에 내 콧구멍은 조금만 뚫렸지요." "내 코는 구멍이 크니 어찌하란 말씀이요?" "쑥 잎을 뜯어 막으시오." "얼마나 깊으오?" "한 번 빠지면 한 달을 내려가도 발이 땅에 닿지 않으오."수작하며 토끼를 등에 업고 푸른 물결에 뛰어들어 남해 용궁으로 향했다. 토끼는 자라의 등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니 소상한 깊은 물은 눈앞에 고요하고 동정호 넓은 호숫물은 그 크기를 짐작하지 못 하겠구나. 토끼는 마음이 흐뭇하여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하늘의 도움으로 자라를 만나 세상의 티끌과 산중의 고생을 다 내던지고 수국으로 들어가사 부귀를 누릴 것이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해서 자기도 모르게 의기양양해서 한 곡조의 노래를 불렀다. <세상을 하직하고 길을 떠나니 물나라가 푸른 산보다 크구나. 자라 등에 높이 앉아 한없이 가고 또 가니, 흰 구름이 오고 가며 웃는도다. 내가 장차 사기의 붓대를 잡으면 수국의 백성들이 모두 무릎을 꿇을 것이로다. 부귀와 영화에 맑고 한가함을 겸하였으니 평생의 편안함을 기약하는도다.> 토끼는 노래를 마치고 한바탕 크게 웃었다. 자라가 듣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 토끼란 놈이 정말 교만하구나.' 그러나 내색은 않고 노래로 화답했다. <한 조각 붉은 마음을 품고 바쁘게 청산을 오고가는구나. 이 몸이 수고를 아끼지 않고 푸른 물결을 박차고 갔다 오는구나. 간사한 토끼를 얻어 공을 세우니 대왕의 기쁜 안색을 뵈오리라. 우리 대왕의 병환이 쾌차하시고 나라의 평안함을 기뻐하리라.>
토끼전 (1/3) 천하에는 네 개의 큰 바다가 있으니 동해와 서해, 남해 그리고 북해다. 이 네 바다는 용왕이 다스리고 있는데 동해는 광연왕, 서해는 광덕왕, 남해는 광리왕, 그리고 북해는 광택왕이라 불렀다. 남해 광리왕은 어느 해 봄에 영덕전을 새로이 짓고 다른 세 곳의 용왕을 청해서 크게 낙성식을 베풀었다. 그러나 이게 탈이었다. 잔치가 끝난 후 광리왕은 먹은 것이 체했는지 자리에 눕고 말았다. 놀란 신하들이 바닷속에서 나는 온갖 약을 병구완을 했으나 효험이 없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용왕이 하루는 모든 신하들을 모아 놓고 말하였다. "불쌍하구나. 짐이 죽은 다음에는 북망산의 깊은 곳에 묻혀 흰 뼈가 티끌로 변할 테니 세상의 영화와 부귀가 다 헛일이로다 .그 옛날 전국 시대의 육국을 통일했던 진시황도 삼신산에서 불로초를 구하려고 사람을 보냈으나 소식이 없어 죽었고, 그 권세가 온 천하에 떨쳐졌던 한나라 무제는 백량대를 높이 쌓고 오래 살 수 있다는 이슬을 받으려고 구리 쟁반을 만들었지만 헛되이 죽었도다. 하물며 나 같은 미미한 왕이야 말해 무엇하겠느뇨. 그러나 대대로 내려오던 왕가의 가업을 놓아두고 죽을 일이 슬프도다. 마지막으로 이름 높은 의원이나 널리 청하여 자세히 진맥하고 약을 써보는 것이 좋겠도다." 이어 뭇신하들을 둘러보고 분부했다. "짐의 병세가 이렇게 위중하니 경들은 충성을 다하여 훌륭한 의사를 널리 구하여 군신이 함께 즐기도록 하라." 그러자 한 신하가 앞으로 나와 여쭈었다. "신이 듣자 하니 월나라의 범상국과 당나라의 장사군, 그리고 초나라의 육처사가 천하에 이름 높은 현인이라 하옵니다. 이 세 현인을 청해다 대왕의 병을 물어보시면 좋은 도리가 있을 듯하옵니다." 모두들 바라보니 대대로 충성심이 많은 수천 년 묵은 잉어였다. 용왕이 크게 기뻐하시어 곧 사신을 시켜 예물을 갖추어 세 사람을 청하여 오게 했다. 며칠 뒤에 세 사람이 용궁에 도착했다. 용왕이 수정궁으로 세 사람을 접견하실 때 기운이 없어 용상에 기댄 채 감사의 뜻을 표했다. "여러 선생이 짐을 위하여 천리를 멀다 아니하시고 이처럼 누추한 곳에 와주시니 정말로 감사하오." 세 사람이 절하며 아뢰었다. "저희들은 어지러운 인간 세상의 천한 몸으로 높은 벼슬과 영화를 마다하고 자연 경치를 사랑하여 무정한 세월을 헛되이 보내고 있었사옵니다. 그러다가 이처럼 뜻밖에 용왕님의 부르심을 받자옵고 용안을 뵈오니 황공하기 그지없사옵니다." 용왕이 크게 기뻐하시어 극진히 대접하며 용건을 말씀하셨다. "짐이 운수가 불길하여 뜻밖에 병을 얻은 지가 벌써 여러 날이 되어 병이 골수에 스며들었오. 온갖 약을 써도 전혀 효험이 없으니 살길이 아득하오. 청컨대 선생들께서 큰 덕을 베푸시어 다 죽게 된 목숨을 살려만 주시면 그 은혜는 기필코 갚으리라." 세 사람이 용왕의 말을 듣고 서로 얼굴을 돌아보며 뜻을 통하더니 장사군이 입을 열었다. "대체로 술이란 마음을 미치게 하는 나쁜 음식이옵고, 색은 사람의 목숨을 줄이는 근본이옵니다. 이제 대왕께서 술과 여자를 너무 가까이 하시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입니다. 옛말에도 이르기를 <사람은 젊어서 주색에 빠져 마침내 중한 병에 들면 편작-춘추전국시대의 명의-과 화타-삼국시대의 명의-도 다시 살아나기 어려우며, 금강초와 불사약이 산처럼 쌓였다해도 특효가 없으며, 인삼과 녹용을 매일 먹을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 라고 했사옵니다. 그러니 재물이 백만금이 있다 해도 고칠 수가 없으며, 힘이 천하장사라 할지라도 막아낼 길이 없는 것이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운수가 불행하고 대왕의 목숨이 다한 것이므로 병환은 다시 회복되시기가 어렵겠나이다." 용왕이 이를 듣고 비오듯이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였다. "그렇다면 마지막이 왔다는 말씀이구려? 슬프도다. 짐이 이제 이 세상을 하직하고 쓸쓸히 무덤 속에서 들어가면 언제 어느 때에 다시 올 수 있단 말인가. 춘삼월에 꽃피고, 사월이면 녹음 짙은 숲속, 팔구월에 노란 국화와 밝은 단풍, 동지섣달 눈 속의 매화도 다시는 못 보겠구나. 삼천 궁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황천객이 된다니 이 이상 슬픈 일이 또 있단 말인가. 어떻게 해서든지 여러 선생께서는 신통한 재주를 다해 비록 효험이 없더라도 약이름이나 가르쳐 주오. 그러면 비록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겠오." 그러자 범상국이 빙그레 웃으며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너무 상심하지 마시옵소서." 용왕이 귀가 번쩍 뜨여 급히 물었다. "아, 그렇다면 살아날 수가 있단 말씀이오?" "그렇사옵니다. 물론 지금의 대왕 병환은 매우 위중한 상태이옵니다. 본래 병이란 증세에 따라 약 쓰는 방법이 다르옵니다. 한기가 침범한 병세는 시호탕이 좋고, 음기가 허한 데에는 보음익기전이 약이옵고, 열병에는 승마갈근탕이 좋고, 원기부족증에는 육미지황탕, 체증에는 양위탕, 다리의 통증에는 우슬탕, 안질에는 청간명목탕 그리고 풍증에는 방풍통성산이 좋습니다." 청산 유수처럼 설명하는 데에는 용왕도 황홀해졌다. "선생은 과연 박학다식하오이다. 그래, 짐의 병에는 어떤 약이 좋소?" "제가 열거한 이러한 약들은 대왕의 병환에는 하나도 알맞지 않습니다. 다만 오직 한 가지 약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토끼의 생간이옵니다." "토끼의 생간?" "그러하옵니다. 토끼의 간을 얻어 김이 무럭무럭 날 대 잡수시오면 효험을 보실 것입니다." 용왕은 의아하여 물었다. "토끼의 간이 어찌하여 짐의 병에 좋다는 말이오?" 이번에는 육처사간이 절하며 아뢰었다. "토끼라 하는 것은 천지가 생긴 다음에 음양 조화로 된 짐승이옵니다. 이 짐승은 월궁에 들어가서 계수나무 그늘 속에서 장생약을 찧을 적에 음양을 먹어 눈이 무척 밝습니다. 병은 오행의 상극으로도 고치고 상생으로도 고치는 법인데 산은 양이오, 물은 음이옵니다. 그리고 간이라 하는 것은 목기로 된 것이오니 만일 대왕께서 토끼의 생간을 잡수신다면 음양이 서로 화합하나이다. 그러므로 병이 쾌차 하실테니 토끼의 간을 구하소서." 용왕이 듣고 기뻐하자 세 사람은 작별을 고했다. "푸른 산에 사는 친구들과 무릉도원-신선이 사는 곳-으로 꽃놀이를 가기로 언약이 있어 저희들은 이만 하직할까 하옵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옥체를 부디 보증하옵소서." 이에 용왕이 좋은 선물을 하사하고 헤어짐을 섭섭해했다. 세 사람을 떠나보내고 용왕은 즉시 조정의 온 신하를 불러들였다. 그러자 신하들이 줄지어 들어와 동편에 문관이 서고 서편에는 무관이 서는데 좌승상 거북, 우승상 이어, 이부상서 노어, 효부상서 방어, 예부상서 문어, 병부상서 수어, 형부상서 준어, 공부상서 밀어, 한림학사 깔다구, 간의 대부 모치, 백의재상 궐어, 금자광록 금치, 은청광록 은어는 문관이요, 대원수 고래 대사마 곤어, 용양장군 이무기, 호위장군 사어, 표기장군 벌덕게, 유경장군 새우, 합장군 조개, 언참군 메기, 주부 자라는 무관이다. 그 밖에 청주자사 청어, 서주자사 서대, 연주자사 연어, 주천태수 승어, 청백리 자손 뱅어, 탐관오리 자손 오적어, 허리 긴 뱀장어, 수염 긴 대하, 구멍없는 전복, 배부른 올챙이 등이 주르르 들어와서 엎드렸다. 용왕이 뭇신하들을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짐의 병이 위중하여 아무런 영약이 소용없었으나 오직 토끼의 생간이 신효하다 하니 그 누가 세상에 나가서 토끼를 사로잡아 오겠는고?" 그러자 공부상서 민어가 부복하고 아뢰었다. "대왕마마, 대원수 고래에게 전병 사마천을 내주어 잡아오게 하소서." 대원수 고래가 이를 듣고 앞으로 나와 노한 어조로 외쳤다. "우리 용궁과 토끼가 사는 육지는 서로 다른데 수중에 있는 군사가 어떻게 육전을 한단 말이오? 자신 있으면 공부상서 그대가 군사를 이끌고 가 보시오." 공부상서 민어는 대꾸할 말이 없어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한림학사 깔다구가 나와 아뢰었다. "토끼라 하는 것은 미물 중의 미물이라 대왕의 위덕으로 그까짓 것 구하는데 염려하실 것이 뭐 있습니까? 토끼 몇 마리 바치라고 산군에게 편지를 내면 즉시 잡아 올릴 것이옵니다." 용왕이 듣고 그럴 듯하여 하문하셨다. "편지를 쓴다면 누가 산군에게 갖다 줄 것인가?" 간의대부 모치가 즉시 아뢰었다. "표기장군 벌덕게가 의갑이 굳사옵고 열 발이 있어 자유롭습니다. 또한 제 고향이 육지오니 편지를 갖다 주라 하옵소서." 그러자 벌덕게가 분이 잔뜩 나서 입에 거품을 부글부글 머금으며 앞으로 나와 소리쳤다. "수륙이 다른데 산군이 어찌 대왕마마의 말씀을 듣겠습니까? 문관들이란 그저 입으로만 떠들기를 좋아하고 궂은 일은 우리 무관에게만 시키려고 하니 억울하옵니다. 자신 있으면 한림학사 자신이 편지를 가지고 가라 하십시오." 용왕이 들어보니 불쌍한 무관들이 문관들에게 평생 눌리다가 이런 때에 화풀이를 하는 것 같기에 손을 들어 말렸다. "경들은 더 이상 떠들지 말라." 용왕이 명령하니 벌덕게와 깔다구가 입을 다물고 물러났다. 이에 용왕은 눈길을 백의재상 궐어에게 돌리고 입을 열었다. "토끼의 간을 구하기가 시급한데 문무가 불화하여 쓸데없이 떠들기만 하는구료. 어느 신하를 보내면 좋을지 선생이 말해 보오." 궐어가 어찌하여 백의재상이 되었는가. 본래 벼슬하기가 번거롭다 하여 한가이 물러가서 좋은 경치와 벗삼고 문장을 닦기에 힘썼다. 해서 용궁의 군신들이 강호선생이라 존칭하여 나라에 일이 있으면 예관을 보내 청해다가 의견을 들었다. 그러므로 벼슬 없이 나라의 일을 보아 백의재상이라 부르는 것이다. 용왕이 묻자 백의재상 궐어는 궐하에 엎드려 아뢰었다. "신하를 아는 것은 임금밖에 없다고 옛말에도 있사옵니다. 그러니 대왕께서 충성스런 신하를 지목하여 보내옵소서." 그러자 용왕은 그 말이 옳다 하여 말씀하셨다. "합장군 조개는 전신에 갑주를 입었으니 보내면 어떠한고?" 궐어가 부당하다고 아뢰었다 "합장군 조개는 진정 대장부라 보내면 좋을 것이오나 두루미하고 원수지간이라 아니 되옵니다. 만약 서로 다투다가 낚시군에게 잡히면 큰일이 아니옵니까?" 용왕이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한 신하를 지목하셨다. "언참군 메기가 긴 수염이 점잖으니 보내면 어떨꼬?" 이부상서 노어가 적격이 아니라고 아뢰었다. "요사이 종피 가루를 돌 밑에다 풀어놓았으니 메기는 민물 근처에 가면 죽을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대대로 충성으로 이름이 높은 도미를 보내면 어떠한가?" 우승상 잉어가 즉각 반대했다. "서울은 쑥갓이 한창이고 시골은 풋 고사리가 날 때이니 보내면 소위 탕, 찜감으로 변할 것이옵니다." 용왕은 답답하여 다시 한 신하를 지목했다."올챙이가 저토록 배부른 것을 보니 속에 경륜이 가득 찼으리라. 올챙이를 보내면 어떠할꼬?" 좌승상 거북이 느릿한 어조로 아뢰었다. "올챙이는 보내면 한두 달 안에 못 돌아올 것이니 개구리가 되면 뱀에게 죽을 것이옵니다." 용왕이 듣고 탄식했다. "용궁의 이 많은 신하들 중에서 충성스러운 신하가 하나도 없단 말인가? 정말 통탄스럽도다." 이 때 갑자기 한 대장이 앞으로 나와서 크게 외치었다. "신이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뭍에 나아가 토끼를 사로잡아 오겠으니 보내 주옵소서." 모두들 눈을 돌려 바라보니 머리는 두루 주머니 같고 꼬리는 여덟 갈래로 갈라진 수천 년 묵은 예부상서 문어였다. 용왕이 크게 기뻐하여 칭찬하셨다. "그대의 용맹은 짐이 잘 아는도다. 그대는 충성을 다하여 빨리 세상에 나아가 토끼를 사로잡아 오라. 성공하면 그 공을 잊지 않으리라." 하고는 즉시 문성 장군에 봉하려고 하셨다. 이 때 갑자기 한 신하가 뛰어나오며 큰 소리로 문어를 꾸짖었다. "문어야, 네가 아무리 키가 크고 위풍이 좀 있다 해도 말주변이 없고 생각이 모자라니 무슨 공을 세우겠다는 것이냐? 또한 세상 사람들이 너를 보면 좋아라 하고 잡아다가 요리조리 오려내어 국화 송이 모양으로 만들어서 혼인 잔치와 환갑 잔치에 쓸 것이다. 그리고 여러 선비들과 기생들이 즐기는 술상이나 아이들의 군것질에 쓰일 것이 네 고기니 무섭고 두렵지 않느냐? 내가 세상에 나가면 맹획을 일곱 번 놓아주었다가 일곱 번 다시 잡던 제갈량같이 귀신도 모르는 계교로 토끼를 사로잡아 오기를 손바닥 뒤엎듯이 할 것이다." 모두들 크게 놀라 바라보니 수천 년 묵은 자라로 벼슬은 주부였다. 문어는 자라의 이 같은 말을 듣자 크게 노한 나머지 두 눈을 부릅뜨고 다리를 쭉 벌리며 검붉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벽력같이 꾸짖었다. "요망한 자라야, 네 듣거라. 기저귀에 싸인 애가 감히 어른을 몰라보니 바로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로다. 네 죄를 논하자면 태산이 오히려 가볍고 바다가 얕을 것이다. 네 모양을 볼 것 같으면 참으로 이상야릇하니 어물전의 꼴뚜기도 웃을 판이구나. 사면이 그토록 넓적하니 나무 접시와 뭐가 다르냐? 저렇게 작은 머리 속에 무슨 생각이 들었겠느냐? 세상 사람들이 너를 보면 두 손으로 움켜다가 끓는 물에 솟구쳐 끓여내니 자라탕이 별미로다. 세도 있는 집의 젊은이들이 즐겨 먹으니 네가 무슨 수로 살아오겠느냐?" 자라가 듣고 또한 분노하여 마구 꾸짖었다. "너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오직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오자서-춘추시대 오나라 충신-는 남보다 뛰어난 지혜와 용기를 지니고서도 왕이 내려준 칼로 자결했고, 초파왕-초나라의 항우-은 그 기운이 세상을 덮을만 했으나 해하성에서 패한 것을 모르느냐? 어리석은 네 용맹이 내 지혜를 당하지 못할 것이로다." "흥, 네가 무슨 재주가 있다고 떠드느냐?" "문어야, 내 재주를 들어보아라. 넓고 넓은 바다에서 푸른 하늘에 구름이 뜬것처럼, 거센 바람에 낙엽이 지듯이 두둥실 떠올라서 네다리를 바트게 끼고 긴 목을 움추리고 넙죽하게 엎드리면 둥글둥글한 것이 수박 같고 평평하고 넓적한 것이 솥뚜껑 같도다. 나무 베는 아이들과 고기 낚는 늙은이들이 보아도 무엇인지 모르니 오래 살기가 태산 같고 평안하기가 반석과 같다. 남이 모르는 변화가 무궁하고 육지에 이르러서 토끼를 만나면 잡을 꾀가 신통하다. 한신-한나라의 유명한 장군-이 광무군 싸움에서 이좌거-한나라의 이름난 선비-의 꾀를 얻어 초패왕을 꾀어낸 수단으로 토끼를 잡아올 수 있는 자는 나뿐이다. 네가 어떻게 나의 지혜와 깊은 계교를 따를 것이냐?" 문어가 듣고 보니 옳은 말이라 대꾸할 건덕지가 없었다. 별 수 없이 뒤통수를 툭툭 치고 흔들흔들 물러나니 낭패스럽기 짝이 없었다. 용왕이 자라의 손을 잡고 술을 부어 주면서 칭찬을 하셨다. "그대의 슬기와 말솜씨는 참으로 놀랍도다. 부디 충성을 다하여 공을 세우고 빨리 돌아오라. 공만 세우면 부귀영화를 대대로 누릴 것이로다." 자라가 황공하여 엎드려 절한 뒤 아뢰었다. "소신은 용궁에만 있었고 토끼는 산 속에만 있으니 그 모습을 알 길이 없사옵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화공을 부르시어 토끼의 모양을 그려 주옵소서." 용왕이 옳게 여겨 즉시 그림과 글씨를 관장하는 도화서에 분부하여 화공들을 불러오게 했다. 이에 여러 화공들이 모이는데 인물을 잘 그리는 모연수-한나라 화가-, 산수도를 잘 그리는 오도자-당나라 화가-, 용을 잘 그리던 이장군-당나라 화가-그밖에 여러 화가들이 토끼 화상을 그리려고 문방사우를 차려 놓았다. 이어 화공들이 둘러앉아 토끼화상을 그리는데 각기 한 가지씩 맡아서 그리었다. 천하에 이름난 산의 경치를 보던 눈을 그리고, 두견새와 앵무새가 지저귈 때 소리 듣던 귀를 그리고, 난초, 지초 등 온갖 향기로운 풀과 꽃을 따먹던 입을 그리고, 동지섣달 찬바람에 바람막던 털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겹겹이 싸인 산봉우리와 골짜기를 펄펄 뛰던 발을 그렸다. 그려놓고 보니 두 눈은 도리도리, 앞다리는 짤막, 뒷다리는 길쭉, 두 귀는 쫑긋한 것이 분명히 산토끼였다. 용왕이 보고 크게 기뻐하여 뭇화공들에게 황금과 비단을 내리시고 그림을 자라에게 주었다. 자라가 공손이 절하며 받자 용왕은 친히 술잔에 술을 가득히 부어 거듭 석 잔을 권한 다음 말했다. "짐이 이제 그대를 먼 곳에 보내게 되니 군신 사이에 그리운 정을 이길 수가 없도다. 짐이 이 감회를 한 수의 글로 나타내 그대를 전송하려 하니 받아 보도록 하라." 이어 한 폭의 비단에 붓으로 시를 써서 주었다. 자라가 받아보니, <오늘 그대가 먼길을 가는 것은 오직 짐 때문이니, 흰 구름 흐르는 머나먼 길에 반드시 청산의 명약을 얻어오게나.> 자라가 두 손으로 비단을 받아 시를 읽더니 곧 한 수의 시를 지어 용왕께 올렸다. <귀하신 글이 갈 길을 재촉하니 눈물은 그릇에 다하고 새벽빛이 열리도다. 떠나가는 신하의 의로운 뜻은 영약을 못 얻으면 돌아오지 않으리라.> 용왕이 자라가 바친 글을 보고 크게 칭찬하셨다. "그대의 붉은 충성이 글 속에 나타나 있으니 토끼를 잡아오는 것은 이제 걱정할 것이 없도다." 이어 자라의 글을 여러 신하들에게 읽어보라고 좌승상 거북에게 내리셨다. 뭇신하들이 읽어보고 모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라가 용왕께 하직하고 토끼 화상을 이리 접고 저리 접어 등에다 지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물에 가라앉기 알맞았다. 한참동안 생각한 끝에 오므렸던 목을 길게 늘이고 한 편에 접어 넣고 도로 움추리니 감쪽같았다. 주부가 집으로 돌아오니 이미 소식을 듣고 집안 식구들, 친척들이 모두 다 모였다. 자라의 모친이 근엄한 어조로 훈계했다. "너의 부친이 욕심 많아 낚싯밥을 물었다가 일찍 세상을 떠난 다음 오직 너 하나만 믿고 살았느니라. 네가 지금 벼슬하여 대왕을 섬기다가 대왕께서 병환이 나셔서 약을 구하러 간다 하니 부디 충성을 다하여라. 지성으로 하다가 못 얻거든 거기서 죽으리다 결심해라. 대대로 충신 집에 불충한 신하가 나오면 살아서 무엇하겠느냐?" 자라가 절하며 공손히 아뢰었다. 그러자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물 밖의 세상은 위태로운 땅이니 부디 조심하셔서 큰 공을 세워 가지고 오십시오. 다시 기쁘게 만나기를 부디 바라옵니다." 자라가 엄숙하게 대꾸했다. "목숨이 길고 짧음과, 행운이 있고 없음은 모두 하늘에 달렸으니 뜻대로 되지는 못할 것이오. 다녀올 동안에 늙으신 어머님과 어린 자식들을 잘 보호하고 살피시오." 이어 친척들이 차례로 하직했다 ."아저씨, 평안히 다녀오십시오." "형님, 부디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조카, 잘 다녀오너라." 자라가 뭇친척들과 일일이 작별 인사를 나누고 행장을 마련하여 넓은 바다 깊은 물에 두둥실 떠올랐다. 그리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지향없이 흐르다가 뭍으로 기어 올라갔다. 때는 춘삼월 한창 좋은 시절이었다. 산천의 초목과 뭇생물들이 저마다 즐기는데 활짝 핀 두견화에서는 향기가 진동하고, 쌍쌍이 나는 봄나비는 즐거움을 못 이기어 날아들었다. 하늘하늘한 버들가지는 시냇가에 휘늘어지고, 금황색 꾀꼬리는 고운 소리로 노래하고, 뻐꾸기는 서로 부르는데 참으로 신선 세계와 같았다. 소상강의 기러기는 간다고 인사하고, 강남서 방금 온 제비는 왔다고 인사하느라 분주히 날아들었다. 나무 위의 비죽새는 즐겁게 웃고 함박꽃에는 뒤웅벌이 모여들었다. 방울새는 떨렁, 물레새는 짝걱, 접동새는 접동, 뻐꾸기는 뻐꾹, 까마귀는 까욱, 비둘기는 꾹꾹 우니 그것 또한 좋은 경치였다. 모든 산봉우리와 골짜기에는 꽃들이 활짝 피었고 시냇물은 흰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고 푸른 대나무아 소나무는 오랫동안 지녀온 절개를 나타내고 있었다. 복숭아꽃과 살구꽃은 활짝 피었고, 이상야릇한 바위들은 사방에 겹겹이 싸였다. 절벽 사이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와당탕 퉁탕 소리를 내며 흘러가니 진정 선경이었다. 자라가 한참 이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당신은 어디서 오셨소?" 자라가 정신이 들어 바라보니 자기 모습과 비슷한 짐승이었다. 해서 반가운 김에 꾸벅 인사를 하고 말하였다. "나는 용궁에서 온 자라 이온데 댁은 뉘시오?" 그러자 그 짐승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내 신분을 말하자면 장황하나 그대의 생김새가 나하고 비슷하니 설명을 하리라. 우리집 선조께서 남해의 용궁에서 벼슬하여 대대로 충신을 지내더니 조부님이 본래 성질이 강직하여 용왕께 직간 하시다가 소인의 참소를 만나 용궁 밖으로 내쫓겼소. 그 이후고향에 못 가시고 산에서 지내시니 사람들이 보고 불쌍하다 하여 남생 선생이라 불렀소. 할머니도 수중에서 기다리다 못해 육지살림 차리니 자식들을 낳아 도토리를 주워 먹고 살고 있다오." 자라가 들어본즉 바로 친척이 아니겠는가. 해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참으로 세상일이란 알 수가 없구료. 우리 선조가 육형제이신데 지금 수중에는 다섯 갈래 밖게 없구료. 얘기를 듣고 보니 형씨가 바로 우리집 종손이구료." 남생이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다정하게 말했다. "우리가 여지껏 헤어져 있다가 이제야 만났으니 정말 반갑기 이를 데 없소이다. 그런데 종씨는 어찌하여 수궁에서 나와 이렇게 거닐고 있습니까?" 자라가 듣고 적당히 대답했다. "우리 수궁에서 이번에 대궐을 다시 짓는데 지관이 없어 눈이 밝기로 이름난 토끼를 모셔다가 터를 잡으려고 했소이다. 그런데 토끼의 생긴 형용을 몰라 이렇게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남생이가 머리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 토끼를 만나려고 오셨구료. 토끼라면 저쪽 산골자기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자라가 듣고 크게 기뻐했다. "종씨, 고맙소이다. 왕명이 급하니 나는 이만 가 보겠소이다.""살펴 가십시오." 자라는 남생이와 헤어져 푸른 시냇물을 따라 올라가며 토끼를 찾았다. 산골짜기를 들어서니 온갖 짐승들이 내려오고 있는데 발발 떠는 다람쥐, 노루, 사슴, 이리, 승냥이, 곰, 멧돼지, 너구리, 고슴도치, 호랑이, 원숭이, 코끼리, 여우, 담비 등이었다. 자라가 목을 늘여 이리저리 살피었더니 뒤쪽에서 한 짐승이 내려오는데 그림과 비슷했다. 얼른 갑주 안에 감추었던 그림을 꺼내어 비교해 보니 틀림없는 토끼가 아닌가. 자라가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즉시 부르려다가 그 짐승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고자 거동을 잠시 살펴보았다. 풀잎도 뒤적이며 사리순도 뜯어보고 높은 낭떠러지 사이를 이리저리 뒤며, 할금할금 강동강동 뛰노는데 영락없는 토끼였다. 자라는 음성을 가다듬고 점잖게 물었다. "높은 산마루에 산수도 좋을시고. 저 양반, 혹시 토선생이 아니십니까? 나는 본래 물나라의 호걸인데 천하에서 좋은 벗을 만나고자 널리 찾아다니다가 오늘에야 산중의 호걸을 만났소이다. 이 기쁜 마음 그지없어 토선생을 초청하니 선생은 꼭 허락해 주십시오." 토끼의 근본 성질이 무겁지 못하고 몸 또한 왜소하니 산중의 모든 짐승들이 멸시했다. 하다못해 쥐와 다람쥐까지도 토끼야, 토끼야 하고 아이 부르듯 하는데 누가 와서 선생이라 부르니 토끼는 기분이 너무 황홀하여 깡충깡충 뛰면서 점잖게 대꾸했다. "그 누가 날 찾는가? 산이 좋고 골짜기가 깊어 경치가 좋은 이 강산에서 나를 찾는 이가 그 누구인가? 수양산의 백이와 숙제가 고사리를 캐자고 나를 찾는가, 소부와 허유가 귀를 씻자고서 나를 찾는가, 부춘산의 엄자릉이 밭을 갈자고 나를 찾는가, 먼 산의 불탄 잔디에서 개자추가 나를 찾는가, 한나라의 장자방이 퉁소를 불자고 나를 찾는가, 상산사호-상산에 산다는 네 명의 신선-가 바둑을 두자고 나를 찾는가, 굴원이 물에 빠져 건져 달라고 나를 찾는가, 시 잘 짓는 이태백이 시 짓자고 나를 찾는가, 유령이 술 마시자고 나를 찾는가? 석가여래 아미타불이 설법하자고 나를 찾는가, 적벽강의 소동파가 뱃놀이를 하자고 나를 찾는가, 취용정에서 구양수가 잔치하자고 나를 찾는가, 그 뉘시오?" 두 귀를 쫑긋거리고 네 발을 발발 놀려 가만히 와서 보니 둥글하고 넙적하며 검고 편편한 것이 매우 이상하게 생기어 머뭇거리기만 했다. "토선생, 어서 이리 오시오." 자라가 자꾸 오라고 청했다. 토끼는 위험이 없다고 느끼어 가까이 가 서로 절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l자라가 먼저 말을 꺼냈다. "토선생의 이름을 들은 지 오래여서 한 번 보기를 원하였는데 오늘에서야 호걸을 만나니 참으로 감개무량하오이다." 그러자 토끼가 귀를 쫑긋거리며 대답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온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를 구경했지만 그대같이 못생긴 짐승은 처음 보는 바이오. 담구멍을 뚫다가 학지뼈가 빠졌는지 발은 어찌 그리 몽똥하며, 양반 보고 욕을 하다가 상투를 잡혔는지 목은 어찌 그리 기다랍니까? 사면으로 살펴보아야 나무 접시 모양이구료. 그건 그렇고 댁은 도대체 뉘시오?" 자라가 듣고 보니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토끼를 잘 꾀어 가려면 성질을 부려선 안되겠으므로 애써 분을 누르고 의젓하게 대답했다. "나는 남해 용궁에서 주부 벼슬을 하고 있는 자라이외다. 토선생이 나더러 못생겼다고 하였는데 그건 천만의 말씀이요, 등이 넓은 것은 물에 떠다녀도 가라앉지 않기 위함이요, 목이 긴 것은 먼 데를 살피기 위함이요, 몸이 둥근 것은 모든 처사를 둥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물 속의 영웅이요, 수중 생물의 어른이니 세상에서 문무를 겸한 이는 오직 나뿐인가 생각되오." 토끼가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오랜 세월을 두고 갖은 풍파를 다 겪었으나 그대와 같은 호걸은 처음 만나오." 자라가 목을 길게 늘이고 물었다. "그대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기에 그런 말씀을 하시오?" 토끼가 한 번 깡충 뛰고는 대답했다. "내 나이를 알려면 육갑이 몇 번이나 지났는지 모를 지경이오. 소년 시절에 달나라에 가서 계수 나무 밑에서 양방아를 찧다가 유궁후예-옛날에 선경에서 불사약을 구한 사람-의 부인이 불로초를 얻으러 왔기에 내가 얻어준 적이 있지요. 이것만 보아도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이 내게는 제자 뻘이요, 팽조-오래 살았다는 전설상의 인물-가 비록 오래 살았다고는 하나 내게 비하면 입에서 젖비린내가 날 정도지요. 그러니 그대와 비교해서 내가 어른이 아니겠소?" 이를 듣고 자라가 뒤질세라 자기의 자랑을 늘어놓는다. "토선생, 그대는 스스로 어른이라 칭하니 소가 다 웃겠소이다. 아무튼 내가 지내온 일을 대강 말할 것이니 들어보시오. 다 듣고나면놀라 자빠질 것이오. 반고-한나라 때의 역사가-의 생일날에 잔치상을 내가 마련해 주었으며 천황씨가 임금 자리에 오를 때 술안주로 어물 갖추기를 내가 했으며 지황씨, 인황씨가 온 세상을 마련하여 다스릴 때의 일을 어제처럼 기억하고 있으며, 유소 씨가 나무를 얽어 집을 지을 때와 수인 씨가 불을 만들어 음식을 익혀 먹을 때도 모두 나와 함께 의논했다오. 어디 그뿐인 줄 아시오? 복희씨가 만든 팔괘로 용마의 등에 하도수를 나와 하마께 풀어 내었고, 또 공공씨가 싸우다가 하늘이 무너져서 여와씨가 오색돌로 하늘을 기울 때에 석수장이 노릇을 내가 하였지요. 또한 신농씨가 장기를 만들고 온갖 풀을 맛보아서 의약을 마련할 때에 내가 역시 참견하였으며, 헌원씨가 배를 만들 때 목수 일을 내가 했으며 축록들에서 치우가 싸울 때에 내가 돌기를 추천해서 잡게 하였으며, 금천씨의 봉조서와 전옥씨에게 제신하던 술법을 내가 가르쳐 주었소. 그것 뿐이 아니오. 고신 씨가 스스로 제 이름을 자랑하던 말을 내가 옆에서 들었다오. 요임금의 강구노래는 지금까지 흥겹고, 순임금의 남풍가는 어제인 듯 즐겁구려. 우임금이 구 년 홍수를 다스릴 때에 그 공덕을 내가 칭송하였으며, 탕임금이 상림들에서 비를 빌던 일과 주나라의 문왕, 무왕, 주공의 찬란하던 시절이 내 눈에 아직도 뚜렷하고, 서해 바다로 놀러갔다가 굴원이 벽라수에 빠져 죽을 때 미처 건져내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한이 된다오. 이런 일들로 헤아려 보면 나는 토선생보다 몇 천 갑절이나 웃어른이 아니겠소?" 토끼가 듣고 어이가 없어서 입만 딱 벌렸다. 그러자 자라는 의뭉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이런 재담은 그만 두고 세상의 재미나 서로 이야기 해 봅시다."
조웅전 (4/4) 그러나 계양 태수가 마중나와 위왕의 편지를 바쳤다. 원수가 부모의 편지를 받은 듯 기뻐하며 뜯어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위왕은 원수께 몇 마디 알리노라. 무사히 태자님을 구했는지 근심이 되어 자리에 누으니 그리움이 병이 되었노라. 또한 원수의 근심을 덜기 위하여 모친을 편안히 모시었으니 빨리 돌아와 재회의 기쁨을 맛보기를 바라노라.> 원수는 크게 기뻐하여 사람을 시켜 위왕에게 먼저 통지케 했다. 원수가 길을 재촉하니 자사와 태수들이 줄지어 마중하는데 끊이지를 않았다. 드디어 위국 서울에 무사히 도착하니 위왕이 모든 신하를 거느리고 나와 기다렸다가 태자에 엎드려 네 번 절하고 울면서 아뢰었다. "소왕이 이제야 태자님을 뵈오니 죄가 너무나도 크옵니다." 태자가 같이 눈물을 흘리며 위로했다. "내가 살아옴은 모두 위왕의 덕이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위왕이 태자와 원수를 모시고 궁궐로 들어오니 온 백성이 춤을 추며 반겼다. 원수가 시간을 내어 모친과 장모를 뵈오니 다시 만남을 크게 즐거워했다. 이날 밤은 모든 사람들이 나와 태자를 위로하는 잔치를 베푸니 노랫소리가 백 리 밖에까지 들렸다. 이어 수고한 장졸들에게 일일이 상을 내리고 벼슬을 높였다. 이 때 연락병이 와서 알리기를 서번왕이 등창에 걸려 죽고 그의 아들이 즉위하였다 하므로 위왕과 원수가 불행히 여겼다. 원수가 가족과 같이 머물고 있는 사이 경사가 겹쳤다. 즉, 위왕의 두 딸 중에 장녀는 태자에게 시집을 가고, 차녀는 원수의 첫째 부인 장씨가 극구 추천하여 원고의 둘째 부인이 된 것이다. 또한 번국에서 데려온 금년의 모친을 찾아 모녀가 다시 만나는 기쁨을 나누게 했다. 원수는 한가한 틈을 타서 스승이신 월경대사가 계신 강선암으로 오랜만에 스승을 뵈오러 찾아갔다. 그러나 강선암은 텅텅 비었고 스승 또한 간 곳을 몰라 쓸쓸히 돌아서는 수밖에 없었다. 오는 도중에 큰 칼을 허리에 차고 말을 타고 급히 달려오는 사람을 만났다. 원수가 수상이 여기어 물으니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계량도에 귀양 간 송태자에게 사약을 내리기 위하여 보낸 사신이 넉 달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으므로 황제께서 알아보라고 하시기에 가는 길이오." 하기에, 원수가 크게 노하여 벽력같이 호통쳤다. "나는 전조의 충신 조승상의 아들 조웅이다. 역적 이두병을 따르는 무리를 어찌 살려 두겠는가!" 호통이 미처 떨어지기 전에 칼이 번뜩하더니 사신의 목이 땅 위로 굴렀다. 원수가 위나라 서울로 다시 돌아오니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대송에 속한 번양 땅 학산이란 곳에 충신들이 군사를 모아 역적 이두병을 칠 준비를 하는데 지휘자는 바로 전 한림학사 왕열이라는 것이었다. 왕열이라면 바로 원수의 모친 왕부인의 사촌이 아닌가. 이에 원수가 때가 왔음을 깨닫고 태자와 위왕 앞에 나아가 엎드려 아뢰었다. "황태자께 삼가 아뢰나이다. 역적 이두병이 대송을 빼앗은지 이미 이십 년이 지났사옵니다. 이제 각처에서 충신 열사들이 역적을 토벌하러 일어서려고 하니 소신은 앞장 서서 나라를 되찾고 역적을 멸하겠사오니 허락해 주시옵소서." 태자가 듣고 크게 기뻐하여 즉시 허락했다. "과연 충신의 후예로다. 어서 역적을 쳐서 나라를 되찾으라." 태자는 그 즉시 조웅을 대사마 겸 대원수로 봉했다. 위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정병 삼만 명을 내주며 격려했다. 원수가 학산으로 나아가 대송의 충신 열사 오천 명과 합세하니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원수가 머리에 은빛 투구를 쓰고 몸에는 금빛 갑옷을 입고 허리에는 활을 차고 천리마에 타니 오른 손에는 보검이 들려 있고 왼손에는 장창이 춤추고 있었다 이것을 본 백성들은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원수의 행군하는 법은 천병과 같구나!" 이윽고 원수가 군사들을 이끌고 번양땅에 이르니 태수로 있는 태원이 군사를 이끌고 나와 길을 막았다. 원수가 보고 우레처럼 호통쳤다. "너는 누구인데 앞길을 막느냐? 나는 대송의 충신 조웅으로 지금 역적 이두병을 치러 가는 중이다." 그러자 태원이 크게 놀라 칼을 버리고 말에서 내려와 땅에 엎드려 빌었다. "소장이 원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천병에 항거하려 했으니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용서하시고 진중에 두시오면 힘을 다해 돕겠나이다." 원수가 그 비겁함에 더욱 노해 큰소리로 꾸짖었다. "너는 이두병을 도와 갖은 나쁜 짓을 하고서도 살기를 바라느냐? 정말 음흉한 놈이로다!" 호통과 함께 칼을 내리치니 태원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이에 무기와 군량을 거두어 다시 길을 재촉하는데 사방에서 소문을 듣고 따르는 자가 헤아릴 수없이 많았다. 행군을 재촉하여 한 곳에 이르니 천여 명의 군사가 진을 치고 있어 원수가 이상하게 여겨 알아본즉 이두병의 친위대였다. 원수가 크게 성을 내어 적토마를 몰아 짓쳐들어가서 칼을 휘두르니 가을 낙엽처럼 적의 머리들이 땅에 떨어졌다. 살아남은 병사 대여섯이 겨우 도망쳐서 이두병에게 가서 아뢰었다. "조웅이 번양태수를 베고 지금 황성으로 쳐들어오는 중입니다. 어서 군사를 내어 막으소서." 황제의 지위를 빼앗고 그동안 거드름을 피우던 이두병에게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이두병이 놀라 어찌할 줄을 몰라할 때 다시 급한 전갈이 왔다. 조웅의 군사 팔십 만이 광음을 함락하고 서주를 침범 중이라는 것이었다. 이두병이 더욱 가무러치도록 놀라 급히 신하들을 모아놓고 대책을 논의하니 좌장군 장덕이 앞으로 썩 나섰다. "신의 재주는 없사오나 조웅을 폐하께 바치겠나이다." 이두병이 크게 기뻐하여 대원수의 벼슬을 내리고 많은 군사를 주어 적을 치라 했다. 한편 조원수는 군사를 이끌고 제양산에 이르러 잠시 쉬고 있었다. 이 때에 골짜기 안에서 한 장수가 군사 수백 명을 이끌고 원수 앞으로 와서 엎드려 아뢰었다. "소장은 전조의 충신 강걸의 아들 강백으로 역시 이두병 때문에 부친을 잃고 여지껏 숨어 있었나이다. 그동안 무예를 연마하고 군사 수백을 길러 떼를 기다리다가 하늘이 도와 원수를 만났으니 진중에 거두어 주옵소서." 원수가 듣고 크게 기뻐하여 강백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그대가 바로 강백인가? 그대 부인은 계량도에서 태자를 모시고 있다가 지금 위나라에 편히 있으니 안심하라." 강백이 뛸 듯이 기뻐하며 원수에게 무수히 절했다. 이에 강백으로 선봉장을 삼아 서주로 쳐들어가니 서주자사 위길대가 삼천의 군사로 길을 막았다. 원수가 선봉장 강백을 불러 명했다 ."그대의 재주를 오늘 시험할 것이니 나가 싸우라." 강백이 명을 받고 즉시 긴 창을 휘두르며 말을 몰아 위길대에 달려들었다. 위길대도 지지 않고 칼을 들어 상대하는데 불과 삼 합만에 강백의 창 끝에 목이 뚫려 죽었다. 그러자 위길대의 아들 위영이 부친의 원수를 갚겠다고 칼을 휘두르며 달려드는데 매우 용맹스러웠다. 그러나 강백의 창술은 신출 귀몰하여 십 합을 겨루다가 한 소리 크게 호통치며 창을 내지르니 왕의 목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이를 본 원수가 크게 기뻐하여 칭찬을 아끼지 아니했다. "강백의 용맹은 그 옛날 조자룡에 못지 않도다." 적진의 군사들은 자사의 부자가 허무하게 죽어 버리자 당할 수 없음을 깨닫고는 산산히 흩어져서 도망쳐 버렸다. 이에 원수가 군대를 몰아 황성 가까이 있는 관산에 도착하니 적군이 벌써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원수가 적진을 살피자 문득 한 장수가 뛰어나와 크게 호령했다. "반적 조웅은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으라!" 원수가 이를 보고 크게 성이 나 강백을 내보내어 싸우게 했다. 강백이 명을 받고 나는 듯이 달려나가 불과 오합도 되지 않아 적의 머리를 창 끝에 꿰어 돌아왔다. 그러나 이두병으로부터 대원수의 벼슬을 받은 장덕이 앞으로 나와 호통을 쳤다. "반적 조웅은 듣거라. 너는 도망쳤던 죄인으로 아직도 죄를 뉘우치지 않는구나. 내 오늘 너를 잡아 죄를 물으리라." 원수가 크게 노하여 마주 호통쳤다. "역적 장덕이 무슨 낯으로 나서느냐? 너같이 더러운 놈이 여지껏 살아 있었다니 우습구나!" 호통과 함께 내달아 칼을 풍자처럼 휘둘렀다. 장덕도 용기를 뽐내어 대항했다. 그러나 장덕이 어찌 원수의 무예와 용맹을 당해내겠는가. 삼십 합을 겨우 지탱하다가 팔을 돌려 도망쳤다. 원수가 뒤를 쫓으며 꾸짖었다. "대적은 도망가지 말고 내 칼을 받아라!" 이 순간, 도망치는 장덕 앞에 난데없이 황소만한 백호가 나타나 입을 벌려 물려고 했다. 장덕이 크게 놀라 멈칫하는 사이에 뒤쫓아온 원수의 칼이 번뜩하더니 목이 떨어졌다. 이 소식은 지체없이 이두병에게 전해졌다. 믿었던 장수가 허무하게 죽어 버리자 이두병은 간담이 서늘하여 신하들을 돌아보며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반적 조웅의 군세가 저토록 강하니 어찌할꼬?" 그러자 사마장군 추천이 앞으로 나와 여쭈었다. "장덕은 적을 얕보았다가 패했나이다. 소신이 재주는 없으나 조웅을 잡아 오겠나이다." 이두병이 크게 기뻐하며 주천으로 선봉장을 삼고 좌승상 최식에게 대원수의 직책을 내리고 군사 팔십만 명을 거느리게 했다. 한편 조원수는 군사를 몰아 위세 당당하게 들어가니 감히 맞서 싸우는 적군이 없었다. 드디어 관동땅에 이르자 적의 대원수 최식이 팔십만 명의 대병을 거느리고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조원수는 형세를 살핀 다음 초목을 의지하여 진을 쳤다. 이때 적진에서 갑자기 대포소리가 울리면서 적군에서 한 장수가 나와 소리쳤다. "반적 조웅은 발리 항변하라.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리라." 선봉장 강백이 듣고 크게 성이 나 즉시 말을 몰아 나가려고 하니 원수가 말했다. "그대는 잠시 분노를 참으라. 내게 좋은 계책이 있느니라." 하고는, 군사들에게 명해 적의 도전에 절대로 응하지 말라고 했다. 이 때 적의 대원수 최식은 원수의 진세를 유심히 살피더니 장수들을 모아 분부했다. "조웅이 초목에 의지하여 진을 쳤으니 어찌 병법을 안다 하겠는가? 그대들은 화약을 준비해 가지고 오늘밤 자정에 적지에 나아가 불을 놓아 적을 몰살시켜라. 조웅을 잡는 것은 이제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쉽도다." 같은 시각에 조원수는 강백을 불러 은밀히 명을 내렸다. "적장은 우리가 숲에 의지하여 진을 친 것을 보고 반드시 오늘 밤 불을 놓으러 올 것이다. 모든 군사를 은밀히 옮기되 소리를 내지 말라 " 과연 이날 밤 자정에 최식의 군사가 쳐들어와 사방에 불을 놓았다. 그러자 불빛이 하늘까지 치솟으며 숲을 모두 태웠다. 최식이 이를 보고 크게 기뻐했다. "이제 적은 흔적도 없이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뻐하기도 잠깐, 갑자기 대포소리가 벼락치듯이 울리며 조원수가 칼춤을 추면서 군사들의 목을 무 베듯 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사방에서 조원수의 군사가 벌떼처럼 쏟아져 나와 닥치는대로 베고 찌르니 최식의 군대를 거의 반수나 죽고 부상했다. 놀란 최식은 진문을 굳게 닫고 쥐죽은듯이 엎드려 있었다. 이에 원수가 진문 앞으로 와 크게 호통치기를 "역적은 빨리 나와 항복하라!" 하니, 뭇군졸들이 겁을 먹고 쥐구멍만 찾았다. 이에 최식이 주천을 보고 말했다. "조웅을 당해낼 장수가 없으니 항복하여 살길을 찾을 수밖에 없구려." 주천 또한 싸울 용기를 잃고 있던 터라 찬성했다. "그렇습니다. 빨리 항복하여 살길을 찾는 것만이 현명한 길입니다." 최식과 주천은 즉시 항서를 써 가지고 진문을 활짝 열고 나가 원수의 발 밑에 꿇어 엎드려 애걸했다. "소인들이 무지하여 원수의 뜻을 어겼으니 죄는 죽어도 마땅하나 원수께서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목숨만은 살려 주옵소서." 원수가 듣고 두 눈을 부릅뜨고 꾸짖었다. "너희들은 천하에 둘도 없는 간신이요, 이두병은 만고의 역적이니 어찌 살려 두겠느냐?" 호통과 함께 들어 최식과 주천의 목을 베어 적진 속으로 던지니 적의 군사들이 모두 놀라 도망해 버렸다. 한편, 이두병은 좋은 소식이 오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발군이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 와서 보고하기를,, "조웅이 대원수 최식과 주천을 죽이고 팔십 만 대병은 하나도 없이 사라졌나이다." 이두병은 너무 놀라운 소식에 넋을 잃고 신하들을 돌아보았다. "가는 군사마다 모조리 패하니 이 일을 어찌할꼬?" 한참 근심하고 있는 중에 문득 밖에서 키가 구 척에 가깝고 눈이 왕방울 같은 장수 셋이 들어와 땅에 엎드려 절하는 것이 아닌가. 이두병이 크게 의아하여 어디 사는 누구냐고 묻자 가운데 엎드린 장수가 공손히 아뢰었다. "신들은 동해에서 무예를 연마하고 있던 중 태산부자사로 간 아비가 반적 조웅의 손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나이다. 해서 부친의 원수를 갚으려고 벼르던 중 조웅이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기에 달려 왔나이다. 신들 삼형제의 이름은 일대, 이대, 삼대인데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조웅 따위는 두렵지 않사오니 반적을 치는 데 앞장서게 해주소서." 이두병이 듣고 크게 기뻐하여 즉시 군사 오십만을 내주고 일대를 대원수에 봉하고, 이대를 부원수, 삼대를 선봉장을 삼아 간곡히 부탁했다. "그대들은 힘을 다해 조웅을 잡아라. 반적을 잡아 없애면 그 공은 길이 잊지 않겠노라." 이에 일대 등 삼형제는 용기 백배하여 군사를 이끌고 곡강에 이르러 백사장에 진을 쳤다. 거기서 며칠 머물러 계책을 의논한 후, 앞으로 진군하여 서창에 도착하니 조원수가 벌써 와서 동창에 진을 치고 기다렸다. 이에 일대는 서창에 진을 치고 이대는 회음에, 삼대는 강진에 진을 쳤다. 이 때 원수의 진에 한 도사가 와서 뵙기를 청하므로 원수가 이상히 여기어 윗자리에 모시고 예의를 다해 대접했다. 그러자 도사는 소매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어 내주며 이르기를, "원수는 과연 하늘이 낸 영웅이로다. 지금 적진을 지휘하는 삼 형제는 내가 가르친 제자들인데 죄악에 빠졌도다. 원수는 이 편지에 적힌 대로 행하라. 나는 세상에 머물러 있을 사람이 아니므로 떠나노라." 하더니, 문득 종적이 보이지 않았다. 원수가 크게 의아하여 편지를 펼쳐 보니 아래와 같이 적혀 있었다. <일대의 진중에는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대의 진중에는 백마의 피를 칼에 칠하고 귀신을 쫓는 주문을 외우라. 삼대의 진중에서는 결코 삼대 왼쪽에 가까이 하지 말라.> 원수가 보고 마음속 깊이 기억해 두고 도사에게 감사했다. 이튿날 원수는 갑옷을 갖추고 말에 올라 일대의 진 앞으로 나가 크게 외쳤다. "반적은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아라." 그러나 일대는 진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않았다. 이에 원수는 말을 돌려 본진으로 돌아와 강백을 불러 주의를 주었다. "적장이 문을 열고 나오지 않으니 특히 조심하라." 이튿날이 되자 일대가 진문을 열고 나오더니 우레같이 호통쳤다. "반적 조웅은 듣거라, 네가 감히 천하를 시끄럽게 하니 오늘 너를 죽여 공을 세우겠다." 원수가 진 앞으로 나가 바라보니 일대는 키가 구 척에 쇠로 만든 갑옷을 입고 수영은 두 자고, 눈이 왕방울 같았다. 원수는 즉시 강백을 불러 일렀다. "그대는 나가 싸우되 적장이 거짓 패하여 도망치거든 절대로 뒤쫓지 말라." 강백이 나가 싸우는데 과연 일대는 삼십여 합 겨루다가 거짓 패한 척하고 달아났다. 강백은 원수의 명대로 뒤를 추격하지 않고 본진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원수가 친히 나서서 크게 호령했다. "반적 일대는 어서 나와 나의 칼을 받아라. 감히 나에게 반항 하다니 목숨이 몇 개냐?" 일대가 크게 성내어 나와 싸우니 흡사 두 마리의 호랑이가 싸우는 것 같았다. 오십여 합을 겨루다가 일대가 또 거짓 패한 척 도망치니 원수가 조롱을 퍼부었다. "너는 도망치는 공부만 배웠나 보구나." 하고는, 더 이상 싸우지 않고 본진으로 돌아와 강백에게 계책을 알려주었다. "내일 그대가 적장과 싸우되 날이 저물거든 거짓 패한 척하고 적진으로 들어가라." 이튿날 일대가 나와 여러 번 싸움을 걸었으나 원수는 진문을 굳게 닫고 나가지 않다가 저녁 무렵에야 강백에게 나가 싸우라고 했다. 강백이 일대와 싸우기를 오십여 합에 이르니 날이 완전히 저물었다. 이에 강백은 원수가 지시한 계책대로 거짓 패한 척하고 적진으로 달려드니 적의 군사들이 진문을 열어 왼쪽으로 안내했다. 크게 놀란 일대가 강백을 뒤따라 달려드니 일대의 군사들이 적장인 줄 잘못 알고 한꺼번에 달려들어 말을 때렸다. 그러자 일대의 말이 놀라서 함정에 덜어졌다. 군사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창살로 마구 찌르니 일대는 비명을 질렀다. "이놈들아, 너희대장도 모르느냐?" 군사들이 크게 놀라 불을 밝히고 자세히 보니 과연 대장인 일대였다. 이 때 조원수가 군사를 이끌고 풍우같이 덮치니 적의 군사는 모두 흩어져 달아났다. 원수와 강백이 함정 안을 들여다 보니 일대는 온몸이 창칼에 찔러 비참하게 죽어 있었다. 원수가 보고 탄식했다. "제 꾀에 제가 죽으니 참으로 미련한 놈이로다." 이에 적진의 무기와 군량을 거두고 백마를 잡아 칼에 칠하고 이대의 진으로 나아갔다. 이대는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슬피 울며 이를 갈다가 진문을 열어 나와 호통쳤다. "반적 조웅아, 너를 죽여 맏형의 원수를 갚겠다." 하고, 나는 듯이 달려들었다. 이에 원수가 맞아 싸울 때 백마의 피를 바른 칼로 치니 이대의 칼이 허공에서 날아 오다가 중도에서 막히곤 했다. 그러나 이대의 용맹은 일대보다 십 배나 강하여 백여 합을 겨루어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에 원수는 도사가 가르쳐 준 대로 귀신을 쫓는 주문을 외우며 평생의 힘을 다하여 이대의 칼을 쳤다. 그러자 이대가 깜짝 놀라며 칼을 떨어뜨렸다. 이 순간, 원수의 칼이 번쩍하더니 이대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대장이 죽자 이대의 군사들은 개미떼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다. 원수는 이대의 목을 창 끝에서 꿰어들고 승전고를 울리며 삼대의 진에 이르렀다. "서창에서 일대의 목을 베고 회음에서 이대의 머리를 베어 왔다. 삼대야, 어서 나와 칼을 받아라!" 원수가 호통치니 삼대가 크게 분노하여 창을 들고 달려 나오며 외쳤다. "너를 죽여 돌아가신 형님의 원수를 갚겠다." 원수가 맞이하여 싸우는데 도사가 일러준 대로 삼대의 오른편만 쳤다. 용과 범이 싸우듯 백여 합을 싸워도 승부가 나지 않아 원수는 약간 초조해졌다. 이를 보고 선봉장 강백이 우레같이 호통치며 달려나와 역시 삼대의 오른 편을 노리고 창을 찔렀다. 삼대가 제 아무리 재주가 용한들 두 장수를 당해 내겠는가. 강백의 창이 번뜩하더니 삼대의 말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러자 삼대가 크게 놀라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이를 본 원수가 번개처럼 내달아 삼대의 창든 손을 차니 삼대는 혼비백산하여 창을 버리고 하늘로 날아갔다. 원수도 함께 하늘로 치솟아 칼을 날려 삼대의 목을 쳤다. 그러자 한바탕 거센 바람이 일어나며 삼대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이어 진 앞에 푸른 안개가 자욱이 일어나며 두 줄기 무지개가 공중으로 뻗치는데 삼대의 왼팔 밑에 있던 날개가 날아가는 모습이었다. 삼대의 부하들은 대장이 죽자 역시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원수는 승전고를 높이 울리며 위풍당당하게 황성으로 쳐들어가니 감시 맞설 자가 없었다. 이두병은 믿었던 삼형제가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넋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신하들을 돌아보고 누가 나가서 조웅의 군사와 싸우겠냐고 물어도 나서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이날 밤에 승상 황덕이 조정의 뭇신하들을 모아놓고 은밀히 논하기를, "나라의 멸망이 눈앞에 닥쳤으니 살 길이 없다. 그대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하니, 모든 신하들이 두려운 어조로 대답했다. "우리에게 계책이 있을리 있겠습니까? 승상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황덕이 칼을 놓고 계책을 말했다. "모든 죄는 지금 황제로 있는 이두병에게 있다. 우리가 대궐에 들어가 이두병과 아들 오형제를 묶어 조웅에게 바치면 일등 공신이 될 것이니 어떠한가?" 모든 신하들이 듣고 찬성했다. "그 게책만이 우리들이 살 길입니다." 이에 황덕은 힘센 군사 육십여 명을 거느리고 대궐에 들어가 이두병과 그 아들 오형제를 묶어 수레에 싣고 조원수의 집으로 찾았다. 이 때 황성의 백성들은 조원수가 온다고 하는 말에 크게 기뻐하고 있다가 이두병이 사로잡혀 간다는 말에 모두 나와 구경하는데 그 광경이 구름 떼와 같았다. 이윽고 원수가 팔십만 대병을 몰고 황성으로 들어오니 황성의 남녀노소 모두가 뛰어나와 길에 엎드려 절하며 외쳤다. "장하고 장하구나! 하늘이 조원수를 내서 대송을 회복했구나." 원수도 감개무량하여 힘껏 백성들을 위로하며 천천히 나아갔다. 이때 황덕 이하 뭇 신하들이 이두병과 이관 이하 오형제를 수레에 싣고 와 원수 앞에 엎드려 간곡하게 여쭈었다. "소신들이 나라를 버리고 황제를 배신한 죄는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대는 이두병의 강압에 못이겨 참여한 것이옵고 날마다 송태자님을 생각하며 세월을 보내다가 천행으로 원수께서 오신다고 하였기에 이렇게 이두병 부자를 잡아 바치옵니다. 원수께서는 부디 소신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원수가 이두병을 보니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 즉시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끌어내어 엎드리게 했다. "두병아, 낯을 들어 나를 보아라. 네 죄를 생각하니 죽어도 분이 풀리지 않겠다. 태자를 귀양보내고 독약까지 내리었으니 그 죄가 어떠하며 또 나를 잡으려고 군사를 보내어 세상을 시끄럽게 했으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원수가 크게 꾸짖으니 백성과 군사들이 달려들어 마구 치고 때린다. 이두병은 견디지 못하여 비명을 지르며 외치기를, "이미 붙잡힌 신세이니 무슨 말을 하리오. 그러나 대송의 옥새를 가로치고 태자를 귀양보내 독약을 내린 것은 모두가 저들 소인배들이 의견을 낸 것이오. 또한 이 지경이 되자 저희들은 죄를 면하고자 꾀를 내어 나를 붙잡아 원수에게 바쳤으니 죄는 모두 저들에게 있지 나는 결백합니다. 원수께서는 밝히 살피십시오." 그 말이 너무 간사하므로 원수가 크게 꾸짖었다. "이 간악한 놈아! 너를 잠깐이나마 살려두는 것은 태자님을 기다리는 것이니 그렇게 알라." 이어 군사들에게 명하여 이두병과 이관의 형제를 수레에 싣고 대궐로 들어가니 백성들이 춤추며 맞이했다. 역적을 모두 토벌하자 원수는 충신들에게 황성을 지키도록 하고 위나라로 떠났다. 며칠 만에 태자 앞에 엎드려 절하며 승리한 사연을 여쭈니 태자와 위왕이 크게 기뻐하며 수고를 치하했다. 이어 가족들을 만나 다시 만난 것을 즐긴 다음 이튿날 태자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황성이 오래 비었으니 어서 환궁하시옵소서." 태자가 크게 기뻐하여 허락했다. "즉시 떠날 차비를 차려라." 그러자 위왕이 백리 밖에까지 나와 전송하면서 작별을 아쉬워했다. 태자가 환궁하시는데 강백이 군사를 거느리고 앞에 서고 원수가 태자비와 가족들을 모시고 팔십만 명의 대병을 지휘하여 가니 그 위엄은 하늘까지 덮는 듯했다. 여러 날 만에 황성에 도착하니 백성들이 모두 나와 반겼다. 태자가 환궁하여 즉시 성대한 즉위식을 가졌다. 그런 다음 이두병과 그 아들 오형제를 잡아들여 추상같이 꾸짖고 사지를 찢어 죽였다. 백성들은 역적의 시체에 침을 뱉으면서 춤을 추며 즐거워했다. 모든 일이 끝나자 모두 잔치를 열어 싸움에 나갔던 장수들을 일일이 표창하였다 .조원수를 번왕에 봉하고 부인 장씨를 왕비로, 원수의 모친은 정절부인, 장모인 위인은 정부인, 원수의 외숙부 왕열은 우승상, 강백의 부친은 좌승상에 임명하였다. 또한 이번 싸움에 특히 공이 큰 강백에게는 대사마 겸 대원수로 봉하고 나머지 장수들에게도 공을 따라 벼슬을 내리고 군졸들에게도 많은 상금을 내리니 모두들 성은에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이두병을 도운 전조의 신하들을 모두 잡아들여 크게 꾸짖기를, "너희는 간사한 무리로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무리를 내 어찌 살려 두겠느냐?" 하시고 능지처참해 버렸다. 이윽고 번왕이 된 조웅이 번국으로 떠나는 날이 되니 황제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며 작별을 아쉬워했다. "짐이 그대의 충성을 생각할 때 번국으로 보낼 수는 없다. 이 천하가 어찌 짐 혼자의 천하인가." 번왕이 섬돌 아래 엎드려 공손히 아뢰었다. "황제께서 귀하신 몸으로 만 리 밖에 귀양살이하신 것은 오로지 저희 신하의 잘못이옵니다. 이제 역적으로 무찌르고 다시 나라를 세웠으니, 다시는 간신들이 날뛰지 못하게 미리 방비해야만 할 것입니다. 소왕도 어서 임지로 가서 오랑캐가 준동하지 못하도록 미리 방비하겠나이다." 황제가 매우 기뻐하시며 당부했다. "짐이 그대를 만 리 밖으로 보내고 어찌 잠시라도 잊겠는가?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짐을 보러 오도록 하라." 번왕이 엎드려 가족들을 이끌고 번국으로 떠났다. 새 황제가 즉위한 후로는 해마다 풍년이 들어 백성들이 태평세월을 마음껏 즐겼다. 대송 제일 충신 조웅은 번왕이 되어 임지에 귀임하는 즉시 백성들을 따뜻이 보살피어 만민이 태평가를 부르며 찬양했다. 매년 한 번씩 황성으로 올라 그 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즐기니 보는 사람마다 번왕 조웅의 충성을 기리었다.
조웅전 (3/4) 한편, 장수를 잃은 번왕은 크게 놀라 주위의 신하들을 돌아보고 물었다. "그 장수는 누구인가? 그 싸우는 모습을 보니 실로 범상한 인물이 아니구나." 그러자 한 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호기 있게 외쳤다. "그 장수의 머리는 저의 칼 끝에 달렸으니 대왕께서는 염려 마옵소서." 하고는 곧 장창을 비껴들고 진 앞으로 나와 우레같이 외쳤다. 그러나 몇 합 지나지 않아 조웅의 보검이 한 번 번쩍하더니 번장의 머리가 말 아래로 떨어졌다. 조웅은 기세를 틈타 칼을 휘두르며 외쳤다. "번왕은 빨리 나와 항복하라. 만일 항거하면 머리를 베어 본보기로 삼으리라." 번진의 장졸들은 조웅의 무서운 기세에 눌러 멀찍이 물러났다. 조웅이 그대로 쳐들어가려 하자 위왕이 염려하며 북을 쳐서 불렀다. 또 한 명의 장수를 잃자 번왕은 사색이 되었다. 그러자 좌장군 이황이 앞으로 나가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안심하소서. 내일은 소장이 나가 적장을 사로잡겠나이다." 이황이 용맹을 뽑내니 번왕은 겨우 마음을 놓았다. 한편 위왕은 조웅으로 대원수를 삼고 대장기를 고쳐 금빛 글자로 <대국충신 위국 대원수>라 크게 쓰게 했다. 이튿날 원수가 대장기를 진 앞에 세우고 천리마에 올라 외쳤다. "번왕은 빨리 나와 항복하라." 그러자 적진에서 한 장수가 크게 대답하고 달려 나왔다. 이 때 갑자기 진지에 안개가 자욱하여 사물을 분별할 수가 없었다. 이 틈을 노려 원수 뒤에서 또 한 적장이 달려 들었다. 드디어 세 장수가 얽혀 싸우니 수십 합을 겨루어도 승부를 낼 수가 없었다. "받아랏!" 이 순간, 대원수 조웅의 칼이 번쩍하더니 한 장수의 목이 떨어졌다. 양편 군사가 놀라 바라보니 바로 번장 이황의 머리였다. 위진에서 이를 보자 기세가 올라 함성이 떠나갈 듯했다. 이어 원수의 맑은 호통소리가 울리며 또 하나의 머리가 떨어지는데 역시 번장의 것이었다. 원수가 크게 위세를 떨쳐 보검을 높이 들고 번진으로 짓쳐들어가 적을 무찌르니 삽시간에 송장이 산같이 쌓이고 서로 밟혀 죽는 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번진의 장졸들은 견디지 못하고 사방으로 도망쳤다. 번왕 또한 옷을 벗어 팽개치고 도망쳐 버렸다. 원수가 남은 장수들을 묶어 위진으로 돌아오니 위왕이 몸소 진문까지 나아가 원수를 맞이하여 무수히 치하했다. 원수가 땅에 엎드려 사양했다. "모든 것이 다 대왕의 넓으신 덕이옵니다." 이어 군사들에게 명해 적의 군량과 무기를 거두어 오도록 했다. 그리고 번장 열 넷을 묶어 들여 준절히 꾸짖었다. "오늘 너희들을 모두 죽일 것이지만 특별히 살려 보내니 너희 왕에게 가서 헛된 생각을 먹지 말라고 하라." 하고는 모두 놓아 보내니 패장들은 무한히 감사하며 돌아갔다. 위왕은 크게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어 승전을 축하하고 이번 싸움에 죽은 혼령을 위로했다. 잔치가 끝난 후 원수는 위왕을 모시고 돌아오는데 위엄과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이 때 도망쳤던 번왕은 가까스로 군대를 수습하고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위군이 번양 땅에 와서 잠시 쉬니 몰래 따라온 번왕은 군사를 매복하여 습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천문 지리에 능통한 원수를 어찌 속아 넘기랴. 원수가 미리 알고 준비하고 있다가 습격해 오는 번왕과 그 장졸들을 깡그리 잡으니 위왕이 더욱 신임했다. 원수가 사로잡힌 번왕을 잡아다가 죽이려 하자 번왕은 땅에 엎드려 애걸했다. "이두병이 대국을 빼앗아 천자가 되었으니 천하가 모두 미워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두병을 없애고 대송을 회복하고자 은근히 노리다가 잘못하여 대왕께 죄를 졌습니다. 대왕과 원수께서 저를 살려 주시면 군사를 일으켜 대송을 회복하는데 힘쓰겠습니다.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위왕이 이를 듣고 그럴 듯하여 항서를 받고 엄히 명령했다. "오늘 너를 죽일 것이지마는 특별히 놓아 보낸다. 돌아가서도 위국을 배반하지 말라." 이에 번왕은 무수히 절하고 물러갔다. 위왕이 환궁하니 서울의 백성들이 모두 나와 춤을 추며 반겼다. 환궁한지 사흘 만에 큰 잔치를 베풀고 상벌을 고르게 하니 모두들 위랑과 원수의 덕을 칭송했다. 하루는 위왕이 모든 신하들이 모인 자리에서 원수에게 말했다. "과인의 나이가 늙어 정신이 차츰 흐려지니 이제 위국의 옥새를 원수에 전하고자 하니 경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원수가 황공하여 땅에 엎드려 아뢰었다. "소신은 여기에 있을 처지가 못되옵니다. 대송이 역적에게 넘어갔으니 신이 어찌 밤잠을 편히 잘 수가 있겠습니까?" 이에 간곡하게 하직 인사를 올렸다. "제가 재주가 없으나 하늘이 도우시고 대왕의 높은 덕으로 다행히 적을 무찔렀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을 객지에 두고 떠났으니 마음이 불안합니다. 이제 송태자의 귀양지로 가서 태자를 모시고 어머니를 뵈오러 떠나겠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위왕이 크게 놀라 함께 떠나겠다고 고집하였다. 이에 원수와 신하들이 일제히 간했다. "어찌 한시라도 나라를 비우시겠다고 하십니까?" 위왕은 할 수 없이 탄식을 토했다. "아, 내가 원수와 함께 갈 수 없는 형편이로다. 생전에 태자를 뵈오면 저승에 가서도 문제께 군신의 예로 뵈올 낯이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어찌 신하라 하겠는가. 태자께서는 지금 어떻게 지내시는지..." 말 끝을 맺지 못하고 비오듯이 눈물을 흘리자 여러 신하들이 위로했다. "진정하시옵소서. 언젠가는 대국을 회복할 날이 올 것이옵니다." 왕이 가까스로 슬픔을 거두고 원수에게 거듭 부탁을 하였다. "태자를 구하거든 이리 모시고 와 대송을 회복할 의논을 하는 것이 좋으리다. 원수는 부디 내 뜻을 저 버리지 말고 불충의 죄를 면하게 하라." 그런 다음 날랜 군사 일천 명과 용맹한 장수 수십 명을 주며 작별을 아쉬워했다. 원수는 위왕과 헤어져 바로 송태자의 귀양지를 향해 행군했다. 한편, 장진사 댁에서는 조웅의 소식이 없어 밤낮으로 근심하며 지냈다. 이때에 강호자사 - 지금의 도지사 - 가 아내를 잃고 다시 혼인을 하려고 사방으로 수소문하던 중 장낭자의 용모와 덕행이 뛰어나게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유모를 보냈다. 유모가 와서 위부인께 말했다. "소문을 듣자하니 귀댁이 낭자가 용모와 행실이 뛰어나게 아름답다 하여 왔으니 만나 보게 해 주십시오." 위부인이 듣고 거듭 사양했으나 강호자사의 유모는 막무가내였다. 하는 수 없이 위부인이 딸을 불러 만나게 하니 유모가 그 아름다움에 크게 기뻐하며 돌아갔다. 유모의 보고를 들은 강호자사는 욕심이 크게 일어 장낭자를 기어코 아내로 맞이하려고 했다. 위부인과 장낭자가 거듭 사절해도 강호자사의 위압적인 권력 앞엔 속수무책이었다. 마침내 강호자사는 혼례날을 자기 마음대로 정하여 준비하라고 통지했다. 위부인과 장낭자는 서로 붙들고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지방을 다스리는 자사의 명을 거역했다가는 그대로 목숨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이면 강제로 혼례식을 올리게 되는 날 저녁, 장낭자는 욕을 보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결심하고 자기 방에서 슬피 울고 있었다. 이때에 문득 부친이 돌아가시기 전에 유서를 주시면서 말씀하신 것이 떠올랐다. <앞날에 변이 생길테니 그때 가서 뜯어보아라.> 장낭자는 생각이 떠오르자 급히 유서를 꺼내 보았다. 그 글에 적혀 있기를, <강호자사가 힘으로 너를 핍박할 테니 그때는 서강으로 가거라. 거기 가면 배가 있을 것이로다. 그 배를 타고 남쪽으로 가면 반드시 너를 구해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장낭자는 부친이 이렇듯 앞날을 미리 내다보시는 힘이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감격의 눈물을 흘리었다. 한시가 급하니 어찌 더 이상 우물쭈물하겠는가. 장낭자는 급히 행장을 꾸며 강호자사의 군사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집을 간신히 빠져 나왔다. 서강에 이르니 과연 배 한 척이 있기에 많은 돈을 주고 사서 남쪽으로 흘러갔다. 수백 리를 가서 물가에 닿자 배를 내려 산 속으로 들어가니 흰 구름이 산봉우리를 둘러싸고 냇물이 졸졸 흘러 마치 선경 같았다. 차츰 들어가니 목탁 소리가 은근히 들려왔다. 이에 절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찾아가니 깨끗한 법당이 나타났다. 중들이 낯선 처녀가 홀로 절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여시주는 뉘시온데 이렇듯 깊은 산중으로 들어오셨습니까?" 장낭자는 애처롭게 대답했다. "저는 위국 강호땅에 살았는데 집안에 변이 일어나 의지할 곳없이 떠돌다가 이곳까지 왔나이다." 이곳은 바로 조웅의 모친 왕부인이 계신 절이었다. 이에 중들이 장낭자를 왕부인과 월경대사가 계신 곳으로 데려갔다. 왕부인이 보니 세상에서 보기 힘든 미인이라 평범한 사람이 아닌 줄 알고 은근히 물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험한 고생을 겪는구나. 위국땅에 산다고 하니 이번 싸움의 승패를 아는가?" 장낭자가 절하며 아뢰었다. "오다가 듣자오니 서번 오랑캐가 크게 패하여 돌아갔다 하옵니다." 부인은 이 말을 듣고 조웅이 반드시 살아 돌아오리라 믿고 근심을 덜었다. 이어 장낭자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다가 물었다. "강호에 살았다면 혹시 장진사 댁의 딸을 아는가?" 장낭자가 크게 의아하여 도리어 물었다. "어떻게 장처녀를 아십니까?" 그러자 왕부인은 아들 조웅이 그간에 겪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장낭자가 듣고 눈물을 흘리며 행장을 끌러 부채를 내놓았다. "소녀가 공자를 처음 만나자마자 즉시 이별하게 되었는데 그때 공자께서 주고 가신 신물이옵니다." 왕부인은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여 장낭자의 손을 잡고 말했다. "네가 정말 장처녀라면 나의 며느리이니라." 하면서, 부채를 들어 유심히 살피며 감개무량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 부채를 내 아들 웅의 부채가 틀림없구나. 그 아이가 전에 산을 내려가서 장진사 댁의 사위가 되었다고 하면서 네 말을 여러번 했느니라. 내 생전에 너를 보지 못하고 죽을까 염려했더니 하늘이 도우사 오늘 이렇게 만났구나." 장낭자도 그대서야 모든 일을 알고 즉시 일어나 두 번 절하며 아뢰었다. "객지에 모친을 모셨다는 말씀은 들었으나 이곳에 계실 줄이야 어찌 알았겠습니까?" 왕부인은 그녀의 등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나는 팔자가 기박하여 이곳에 와서 머물고 있지만 너는 무슨 까닭으로 여기까지 왔느냐?" 이에 장낭자는 조웅을 처음 만나던 일과 도중에 병을 고쳐준 일을 여쭈고 도 도망하게 된 사연을 자세히 하니 부인과 여러 중들이 매우 기특하게 여겼다. 이날부터 시어머니와 며느리로서 예를 차려 왕부인을 섬기기를 지성으로 하니 칭송이 자자했다. 한편 조원수는 태자의 귀양지로 향하면서 각 고을로 미리 연락을 하니 놀라지 않는 곳이 없었다. 들르는 곳마다 자사와 현령들이 줄지어 서서 마중했다. 관서 땅에 이르자 즉시 황 장군의 무덤을 깨끗이 소제하고 제물을 마련하여 친히 제사를 지내니 깃발과 창칼이 줄지어 섰다. 제사가 끝나자 갑옷과 칼을 무덤에 묻으려 하니 돌로 만든 함이 무덤 속에서 솟구쳤다. 원수가 친히 갑옷과 칼을 묻고 승전고를 울리라 명령하자 북과 피리 소리가 요란했다. 그러자 원수기 아래에 난데없이 신장 하나가 나타나 허리를 굽혀 술 서너 잔을 마셨다. 그리곤 원수를 향해 절을 하더니 홀연히 없어졌다. 이튿날 떠나가면서 원수는 마을 백성들을 불러 단단히 일렀다. "황장군의 무덤을 착실히 가꾸고 봄가을로 제사를 올리라." 누구의 명령인데 거역하겠는가. 고을 백성들은 명을 받들 것을 하늘에 두고 맹세했다. 다시 길을 떠나 여러 날 만에 스승이 계신 관산에 이르렀다. 군사들을 산 밑에 쉬게 하고 원수 혼자서 산 중에서 들어가니 주위 풍경은 여전하되 초가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히 여겨 두루 살펴보니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것이 빈 지가 오래였다. 원수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하늘을 우럴 크게 탄식하는데 벽에 전에 보지 못하던 글자가 씌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화산도사는 어느 때 돌아올 것인가. 아침에 금강호요, 저녁에 관산이라. 그림자처럼 가는 곳을 모르니 다시 만날 날이 그 어느 때일꼬.> 조웅은 글귀를 다 보자 스승의 인자한 모습이 더욱 생각나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이윽고 관산에서 내려와 군사들을 거느리고 강호로 떠나면서 장진사 댁에 숙소를 정하리라고 사람을 먼저 보냈다. 이때에 강호자사는 원수의 통지를 받고 매우 놀래어 장진사 댁의 일을 숨기기로 흉계를 꾸몄다. 강호자사의 밀명을 받은 하인이 달려와 원수에게 아뢰었다. "장진사 댁에 살인이 있어 아가씨는 도망하였고 부인은 옥에 갇혔으니 그곳에 머무르기가 불편하실 것이옵니다. 부디 객사에서 쉬시옵소서." 원수는 크게 놀라 객사에게 자리잡는 즉시 옥에 갇힌 죄수들을 모두 불러들이라 분부했다. 이에 강호의 온 고을이 술렁이게 되었다. 죄인을 모두 불러들이니 거의 백여 명인데 원수가 하나하나 심문하자 모두들 원통하다는 사람뿐이었다. 그 중에서 왕부인이 쇠약한 몸으로 큰 칼을 쓰고 앉았는데 그 처참한 모습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원수가 가까이 불러 죄목을 물으니 말을 못하고 품속에서 원통한 사연을 적은 글을 꺼내어 올렸다. 원수가 이를 받아 보고 그만 소스라치게 놀랐다. 급히 분부하여 칼을 풀어 위부인을 댁으로 모시라 하고 나머지 죄인들도 모두 석방하도록 했다. 그러자 백여 명의 억울한 죄인들은 허리를 굽혀 사례하고 춤추며 나갔다. "강호자사를 묶어 들여라." 원수가 추상같이 호령하니 군사들이 한꺼번에 달려가서 강호자사를 꽁꽁 묶어 대령했다. 이에 원수가 낱낱이 죄목을 들어 꾸짖었다. "네가 국록을 받는 신하로 손가락으로 꼽기 어려울 만큼 죄를 지었으니 살려둘 수 없다." 하고 호령하고 병사를 시켜 목을 베게 했다. 이를 본 고을 백성들은 십년 묵은 체증이 가시는 듯 기뻐했다. 원수가 진사 댁에 들어가니 집이 몹시 거칠어지고 쓸쓸하여 절로 눈물이 났다. 위부인이 나와 감격한 어조로 사의를 표했다. "원수는 누구이시옵니까? 옥석을 가려 주시고 미천한 목숨을 살려주시니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겠습니까?" 원수가 절하며 아뢰었다. "부인께서는 오랫동안 옥중에서 고생하시어 저를 몰라 보시는군요. 저는 저번에 부인 댁에 들른 조웅이옵니다." 위부인이 그제서야 원수가 조웅임을 알아보고 손을 잡고 통곡했다. 원수가 부인을 위로하며 그간의 사정을 물었다. 그러자 위부인은 약간 진정되어 그간의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하고 딸아이는 혼례식 전날 밤에 집을 나가 어디로 갔는지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고 했다. 원수가 듣고 부인을 좋은 말로 위로했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설마 죽기야 하겠습니까? 언젠가는 만나볼 날이 있을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우선 저와 함께 모친이 계신 강선암으로 가십시오." 이튿날 원수는 위부인의 식구를 모두 거느리고 강선암으로 떠나는데 미리 통지하기를 <동국충신 위국대원수 겸 각도안찰어사 조웅>이라 했다. 왕부인이 장낭자와 월경대사와 함께 이 통지를 받자 크게 기뻐하여 절 밖으로 나가 기다렸다. 이윽고 한 소년이 황금 갑옷에 보검을 차고 적토마를 타고 들어오는데 그 위엄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뒤에는 수많은 장군들이 질서정연하게 따르고 있었다. 원수가 말에서 내려 모친께 절하며 뵈오니 왕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재회의 기쁨이 약간 진정되자 왕부인이 입을 열었다. "너를 난리 속에 보내고 소식이 없으니 이 어미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어디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보아라." 원수가 땅에 엎드려 서번을 무찔러 항복받고 위국을 구한 것과 대원수가 되어 오는 길에 강호에 들러 악덕 관리 강호자사의 목을 베었다는 것을 얘기했다. 그러자 왕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웅이야, 너는 걱정하지 말아라. 장낭자가 이리로 도망하였기에 나와 함께 있었느니라. 또한 오늘 사부인을 모셔 왔으니 이런 기쁨이 또 어디 있겠느냐." 하고는, 장낭자더러 나오라고 일렀다. 이윽고 장낭자가 나와 모친을 만나니 서로 붙들고 울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원수는 두 부인과 장낭자를 별당으로 모시고 밤이 늦도록 얘기를 나누면서 즐기었다. 이튿날 원수는 강선암에게 남은 모친과 위부인, 그리고 장낭자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송태자의 귀양지로 떠났다. 며칠 후에 원수 일행은 태산부 계량도로 가는 도중에 서번국을 지나게 되었다. 그러자 여러 장수들이 원수께 아뢰었다. "서번국은 우리 위국과는 원수지간이니 근심이 되옵니다." 원수가 듣고 크게 꾸짖었다. "장수된 자가 어찌 그리 겁이 많은가? 두렵거든 따라오지 말라." 그러자 모든 장수들이 크게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원수가 음성을 부드럽게 하여 위로하였다. "그대들은 너무 근심말라. 번국으로 들어가면 틀림없이 번왕이 나를 유인하리라." 이 때 번왕은 원수가 온다는 말을 듣자 모든 장수들을 불러 의논했다. "조웅이 온다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꼬?" 한 신하가 앞으로 나와 여쭈었다. "조웅은 욕심이 많고 색을 좋아한다 하니 대접을 잘하고 예쁜 궁녀를 보내어 만호후에 봉한다고 유인하소서." 번왕이 옳게 여겨 조웅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조원수가 번국에 이르니 번왕이 사신을 보내어 천금보화를 바치며 반겼다. 원수는 이 선물을 모두 번국의 신하들에게 나누어주니 모두들 크게 기뻐하였다. 번국 성내에 들어가자 진을 치고 군사들에게 휴식하기를 명했다. 이때 번왕이 친히 와서 원수를 뵙고 지난 일을 사죄하니 원수가 좋은 말로 위로했다. "지난 일은 각기 나라를 위함이니 어찌 탓하겠습니까? 다시 만나뵈니 반갑습니다." 번왕이 크게 기뻐하여 원수를 유혹했다. "원수는 본래 위국 사람이 아님을 잘 압니다. 지금 우리 번국이 작아도 길이 천 리요, 군사가 백만이며 또한 땅이 기름지고 백성들이 부지런합니다. 원수를 남양후에 봉하려 하니 노여워 마시고 머물러 부귀영화를 누리십시오." 원수가 듣고 괘씸하였으나 마음을 너그럽게 먹고 부드럽게 대꾸했다. "저는 지금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대왕의 분부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널리 양해하십시오." 이에 한 신하가 나와 예쁜 궁녀를 보내 조원수를 유혹하라고 여쭈었다. 번왕이 이 계책을 받아들여 인물과 노래가 뛰어난 월대라는 궁녀를 원수에게 보내 유혹하게 했다. 그러나 원수가 어떤 인물인데 한낱 오랑캐 궁녀에게 빠질 것인가. 월대가 와서 온갖 교태로 유혹하자 요망하다 하여 한칼에 목을 베었다. 번왕이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 모든 궁녀들을 모아놓고 조원수를 유혹할 자신이 있는 미녀를 구했다. 그러나 뭇궁녀들이 다 도망하는 가운데 한 궁녀만이 거문고를 안고 자청하여 나섰다. "제가 원수의 마음을 돌이켜 보겠나이다." 번왕이 크게 기뻐하여 원수의 진영으로 보냈다. 궁녀가 원수 앞에 나서서 거문고를 뜯으며 노래하는데 슬프기가 그지없었다. 궁녀가 문득 거문고를 놓고 눈물을 흘리며 원수께 아뢰기를, "저는 번국 사람이 아니고 위국 서강땅에 사는 두우성의 딸 금년이라 하옵니다. 일직이 아비를 잃고 늙은 어미를 모시고 살다가 저번 난리 때 번국으로 잡혀 왔나이다. 그러다가 하늘이 도우사 원수를 만났으니 바라옵건대 저를 데리고 가셔서 어미의 소식을 알게 해주소서." 하고 통곡하며 애걸하니 원수가 심히 불쌍히 여겨 허락했다. 이튿날 원수는 번왕에게 금년을 데리고 가니 양해해 달라고 통지하고 군대를 이끌고 떠났다. 번왕이 듣고 이를 갈며 분해했다. "수많은 재물고 궁녀까지 잃었으니 이 분함을 어찌풀꼬." 여러 신하들이 위로하기를 조웅이 다시 이리 올 때에 사로잡아 분을 풀라고 했다. 한편 원수는 길을 재촉하여 태산부 근처에 이르러 진영을 치고 쉬었다. 이미 고을 사람을 불러 계량도의 소식을 물었다. 그러자 마을 사람이 울면서 말했다. "원수께 아뢰나이다. 지금 태산부의 자사가 송태자를 죽이려고 독약을 가지고 갔사옵니다. 또한 같이 머물러 있는 예전 충신들을 모두 죽인다고 하나이다." 원수가 크게 놀라 계량도까지의 거리를 물으니 칠십 리라고 하므로 군사들에게 진영을 치고 엄히 지키라고 분부했다. 그리고 혼자서 적토마에 올라 계량도로 달려갔다. 때마침 밤이 깊었는데 태자가 머무는 곳으로 가니 사방에 창칼이 번뜩이고 군사가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것이 나는 새라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원수가 안의 형편을 몰래 살피니 늙은 충신들이 가득히 앉은 가운데 한 미인이 거문고를 뜯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옥도끼 금도끼 날을 갈아 월궁의 계수나무를 베는구나. 흔들리는 곳은 어디뇨? 계량도로다. 모시도다, 모시도다, 우리 황태자 모시도다. 눈 속의 매화가지에 봄바람이 불어 꽃이 피었네.모였도다. 모였도다, 송나라 충신들이 모였도다. 묻노라 이 밤이 몇 시더냐? 쓸쓸한 바람은 머리카락을 날리니 늙은 충신 부여잡고 눈물로 하직하니 돌아올 수 없는 것이로고. 바라노니 푸른 산의 매화나무 앞 무덤 아래 묻어 주소서.> 노래가 끝나자 모든 신하들이 눈물을 비오듯이 흘리며 황태자에게 절하며 물러갔다. 이에 원수가 몸을 솟구쳐 바람같이 들어가 엎드려 네 번 절하고 울며 아뢰었다. "태자께옵서는 귀하신 몸이 안녕하시옵는지요? 소신은 선황제의 충신 조정인의 아들 조웅이옵니다." 황태자는 크게 놀라 하문하였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그대가 어찌하여 여기에 왔는가?" 그러다가 진짜 조웅임을 알아보시고 눈물을 흘리며 반기셨다. 원수가 좋은 말로 위로했다. "진정하소서. 소신이 왔으니 이제 안심하시오." 태자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걱정하셨다. "그대는 어찌하여 죽을 곳에 왔는가? 나는 운이 없어 내일이면 죽을 몸인데 이렇게 만나니 반갑기는커녕 슬프기만 하도다." 원수가 위로하며 미녀를 돌아보고 물었다. "이 여인은 누구이옵니까?" "이 고을의 별장이 보내온 계집종으로 나와 함께 슬픔을 함께 하는구나." 태자의 대답에 원수가 또 물었다. "이 고을의 별장이란 누구이옵니까?" "백성추라고 하는데 충신이로다. 내가 이곳에 귀양온 후 별장이 잘 대접해 주어 그 은혜를 잊을 수가 없구나." 태자는 이어 태산부자사가 내일이면 독약을 먹이고 함께 있는 충신들을 모두 잡아갈 것이라고 하며 통곡을 그치지 않았다. 원수가 태자와 함께 울다가 은밀히 여쭈었다. "소신이 지금 백 리 밖에 군사를 숨겨 놓고 들어왔으니 안심하소서. 소신이 이제 나가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태자님을 모실 것이니 부디 몸을 보증하소서." 하고는, 바로 하직하고 나왔다. 단숨에 진영까지 달려온 원수는 즉시 여러 장수를 모아 놓고 분부했다. "그대들은 내가 시키는대로 하라." 명령을 내리고 군사를 몰아 계량도로 가니 어느새 날이 어슴푸레해졌다. 원수가 다급하여 칼을 뽑아들고 몸을 날려 태자의 처소로 달려갔다. 이 때 벌써 자사의 부하가 약그릇을 들고 나오는데 충신들은 모두 묶여 있었다. 원수는 이를 보자 분함을 참지 못해 약그릇을 쳐서 깨뜨리고 칼을 들어 자사의 부하를 치니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이어 군사를 재촉하여 모든 충신들을 다 풀어 놓게 하고 태자 앞에 엎드려 절하니 태자가 원수의 손을 잡고 기뻐하였다. "이것이 꿈이 아니길 비는도다." "태자께선 안심하소서." 원수가 위로하고 있을 대 증군장 원충이 군사들을 이끌고 풍우같이 들어왔다. 삽시간에 고을을 에워싸고 자사와 그의 부하들을 깡그리 잡아 원수 앞에 끌어오니 모두들 기뻐했다. 원수는 자사 이하 악독한 관리들을 추상같이 꾸짖고 목을 베었다. 이때 태자와 충신들은 기쁨을 이깆 못하여 무수히 치하했다. "장군의 공은 하늘 같도다. 만고에 이런 충신이 또 어디 있겠는가." 원수가 사양하고 잔치를 베푸니 백여 명 충신이 모두 일어나 춤을 추면서 즐겼다. 또한 고을 안의 백성들도 모두 춤추며 노래하고 즐기는데 그 소리가 천지에 진동하였다. 사흘 동안의 잔치가 끝나자 원수가 태자께 아뢰었다. "태산부의 자사와 이웃 고을의 현령들을 모두 없앴으니 따라온 신하 중에서 각기 임명하여 지키게 하십시오." 태자가 옳게 여긴 신하를 뽑아 각기 임명하였다. 원수는 일이 끝나자 태자와 여러 충신들을 모시고 길을 떠났다. 위국으로 가려면 부득이 번국을 또 지나야 했다. 이때 번왕은 조웅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잡고자 기다리던 참에 염탐꾼이 알리기를, "조웅이 송태자를 모시고 이리로 오나이다." 하므로, 즉시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의논했다. "먼저는 재물과 궁녀만 잃었으니 어찌할꼬?" 한 신하가 앞으로 나와 아뢰었다. "조웅이 송태자와 함께 온다 하니 먼저 태자를 유인하여 대궐 안에 가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조웅에게 우리 번나라와 힘을 합해 대국을 회복하자고 달래면 될 것입니다. 그래도 듣지 않거든 위나라로 가는 길에 마을과 객점을 없애고 다만 만나관과 숙소관만 남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을 따로 쌓아 군사를 숨겨 두어 습격하면 사흘 안에 조웅은 잡힐 것입니다." 번왕이 크게 기뻐하여 그 계교대로 하라고 했다. 이 때 원수는 여러 날만에 번국에 이르니 번왕이 십리 밖까지 나와 반기므로 웃으며 말했다. "대왕이 옛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오고 갈 때마다 이렇게 융숭히 대접하니 죄송하나이다." 번왕 또한 웃으며 응대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라에 오신 손님을 어찌 박대하겠습니까? 우리 번나라가 비록 가난해도 군사가 강하니 원수를 도와 능히 대국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수께서는 깊이 생각하시어 우리와 합작하도록 하십시오." 원수가 좋은 말로 이를 거절했다. "대왕의 뜻은 고맙지만 대국의 남은 충신들이 구름같이 많으니 태자님을 도와 능히 대국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대왕의 고마우신 뜻은 마음 속에 간직하겠습니다." 이에 번왕은 멋적은 표정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원수는 군사들에게 편히 쉬라고 말하고 자신도 막사로 나와 쉬었다. 이 때에 번왕은 여러 신하들과 함께 흉계를 꾸미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에 처음 계획한 대로 태자의 숙소를 군사로 둘러싸고 몰래 잡도록 했다. 태자가 잠을 자다가 주위가 시끄러워 눈을 떠보니 번왕 이하 장수들이 겹겹이 둘러싸 있지를 않은가. 번왕이 반 협박조로 태자에게 말하기를, "내게 딸 하나가 있는데 인물이 뛰어나니 이제 태자께 드리려고 합니다. 거절하시지 마시고 받아 주옵소서." 태자가 듣고 크게 꾸짖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국왕이라 하면서 딸아이를 길거리에서 술파는 계집처럼 여기니 한심하도다." 이 때 조원수는 잠자리가 뒤숭숭하여 일어나 태자 숙소로 갔다. 가서 보니 번왕이 태자를 능멸하고 있지 않은가. 원수는 크게 분노하여 칼을 빼들고 쳐들어가 지키는 번국의 군사를 마구 죽이니 번왕이 이에 놀라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몇 걸음도 도망가지 못하고 원수에게 사로잡혔다. "벌써 죽일 놈을 이제까지 살려두었더니 안되겠구나!" 원수가 당장에 칼을 내리치려 하니 번왕이 땅에 엎드려 애원했다. "부디 한 번만 용서하소서. 다시는 나쁜 마음을 먹지 않겠나이다." 그 비는 모습이 너무 처량하여 태자께서는 한 번만 용서하라고 원수에게 권했다. 이에 원수가 번왕의 상투를 잘라 벌하고 밖으로 내쳤다. 그런 다음 군사들을 재촉하여 떠나갔다. 번국의 신하들은 왕이 상투가 잘려진 채 꼴이 말이 아닌 것을 보고 이를 갈며 복수를 맹세했다. 번왕과 신하들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결과 함곡에다가 군사를 매복하여 조웅을 죽이기로 했다. 이윽고 원수가 태자를 모시고 함곡에 도착하니 사방이 온통 절벽인데 오직 좁은 오솔길만이 양의 창자처럼 꼬불꼬불 이어진 것이 천하 제일의 탁한 길이었다. 해는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려고 하니 원수는 마음이 급하여 군사를 재촉해 험곡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이 때 문득 동쪽 작은 길에서 누추한 옷을 입은 한 노인이 지팡이를 의지하여 힘겹게 오더니 부채를 들어 원수를 만류했다. "위나라로 가는 조원수를 혹시 보지 못했습니까?" 원수가 속으로 크게 놀라 급히 물었다. "제가 바로 조웅인데 무슨 일로 찾으십니까?" 그러자 노인이 크게 기뻐하며 대답했다. "나는 천하를 두루 구경하다가 오봉롱에 들어가서 천명도사를 만나 사나흘 묵었습니다. 떠날 때에 편지를 주며 그대에게 전하라 하였으니 받으십시오." 원수는 스승이 편지를 보냈다는 말을 듣자 깊이 감사드리고 받았다. 편지를 전한 노인은 두말 않고 오던 길로 돌아갔는데 그 발길이 무척 빨리 삽시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원수가 스승이 계신 곳을 향해 절한 다음 편지를 펼쳐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함곡에 들어가지 말고 대포만 한 방 쏘아라.> 원수가 보고 크게 놀라 즉시 좌장군 이홍창을 불러 군사들을 함곡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고 당부했다. "원수께 아뢰오. 선봉은 이미 함곡으로 들어갔나이다." 이홍창이 대답하니 원수는 대경하여 엄히 명령을 내렸다. "좌장군은 급히 들어가 선봉을 뒤로 물리라. 그곳에 진을 치는 척하고 한둘씩 빠져 나오면 무사하리라." 위홍창이 명령을 받고 급히 들어가 선봉을 무사히 물러나게 했다. 원수는 진을 치고 장졸들에게 명령했다. "그대들은 움직이지 말고 깃발과 무기는 모두 숨기라." 그리고 중군장 오원충을 불러 분부했다. "그대는 선봉 군대를 거느리고 함곡 성문 좌우에 숨어 있다가 대포 소리가 울리면 들이치라." 하고 다시 유연을 불러 명령했다. "그대는 자정에 몰래 함곡성 안에 들어가 대포 한 방만 쏘고 급히 나오라. 이날 밤 자정에 유연이 명령대로 성에 들어가 대포 한 방을 쏘고 물러나오니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는 고함 소리가 울리면서 매복한 번국 군사가 쫓아 나왔다. 그러자 미리 매복하고 있던 중군장 오원충이 달려들어 낱낱이 사로잡았다. 원수 앞에 모두 끌어오니 거의 천여명이 되었다. 원수는 크게 꾸짖기를, "너희들 모두를 죽일 것이로되 특별히 살려 보내니 번왕에게 가서 말하라. 다시 한 번 이런 짓을 하면 내 달려가서 목을 끊겠다고!" 하고 모두 놓아 보냈다. 그런 다음 명령을 내려 산성을 불사르고 함곡을 지나 위나라 계양에 당도했다.
조웅전 (2/4)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조웅의 나이 어느덧 열 다섯 살이 되었다. 이제는 누가 보아도 생김새가 뛰어나고 기골이 장대한 대장부였다. 하루는 조웅이 모친을 뵙고 아뢰었다. "소자의 나이 열 다섯 살이 되었나이다. 대장부가 세상에 나서 한 곳에서 보낼 것이 아니라 천하를 두루 다니며 세상 구경도 하고 서울의 일도 알고 싶사오니 허락하여 주소서." 왕부인은 듣고 크게 놀라 거듭 말했다. "만리 타향에 와서 오직 너만을 믿고 살아왔는데 어찌 이 어미를 두고 떠나려고 하느냐? 네가 떠나겠다면 이 어미도 같이 가겠다." 조웅은 더 이상 여쭙지 못하고 스승인 월경대사에게 의논을 드렸다. "제가 모친께 세상에 나아가 역적의 소식도 듣고 그 간의 형편을 알고자 했더니 꾸중만 들었습니다. 부디 스승께서는 어머님의 마음을 돌리시어 제 뜻을 펴게 해주십시오." 월경대사도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생각하던 중이라 쾌히 응낙했다. 그리하여 며칠 뒤에 왕부인을 찾아가 조웅의 뜻을 아뢰니 부인은 벌써 안색이 어두워졌다. "대사님의 말씀은 옳습니다만 옹의 나이 아직 이십도 안되었는데 어찌 홀로 보낼 수 있겠습니까?" 월경대사가 웃으며 말했다. "부인께서는 어찌 그리 약한 말씀을 하십니까? 빈승이 웅의 길흉을 짐작하지 못하면 절대로 내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왕부인은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만약 대사님의 예측이 빗나가면 어찌하겠습니까?" "그건 염려하지 마십시오. 빈승이 웅의 일생을 짐작하는 것쯤은 감히 장담하겠습니다." 이에 부인은 마지못해 허락했다. 조웅은 크게 기뻐하여 이튿날 아침 모친과 스승, 그리고 여러 중들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산을 내려왔다. 몇 년만에 세상에 나오니 조웅은 기분이 날아갈 듯하여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이리하여 천하를 돌아다니며 구경하기를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하루는 강호라는 곳에 이르니 무척 큰 고을이어서 사람이 분주하게 오가고 상점이 즐비했다. 한참 구경하다가 한 곳에 이르니 머리가 눈같이 흰 노인이 다 떨어진 옷에 검은 띠를 두르고 앉아 있었는데 아무래도 범상치가 않았다. 특히 조웅의 눈에 띈 것은 백발노인의 앞에 놓인 장검이었다. 이 장검은 보기에는 웅장하여 저절로 욕심이 생겼으나 수중에 돈이 없으니 멀리서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람들이 칼을 사려고 해도 백발노인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었다. 날이 저물자 백발 노인은 장검을 들고 가버렸다. 조웅은 객점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으나 백발노인의 칼이 머리를 떠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튿날 조웅은 아침 식사도 잊은 채 백발노인이 앉았던 곳으로 달려갔다. 백발노인은 벌써 나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칼 이외에도 벽에 글귀를 써 붙였는데 살펴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화산도사의 한쪽 소매가 무거우니 행색이 칼 파는 노인 같다. 사람마다 칼 값을 물으니 노인이 이르되, 내 기다리는 자 있도다. 앞으로 만 사람이 와도 팔기를 원치 않노라. 아, 조웅의 소식을 누구에게 물어볼 것인가, 기다리는 사람은 어이해서 오지 않는고.> 조웅은 글을 다 읽자 크게 놀라 백발노인에게 절했다. 백발노인은 한참 살피더니 조웅의 손을 잡고 물었다. "그대 이름이 조웅인가?" 조웅은 공손히 대답했다. "제가 바로 조웅이옵니다. 어르신네께서는 어떻게 저의 이름을 아시는지요?" 백발노인은 크게 기뻐하며 대답했다. "그야 자연히 알고 있지. 하늘이 보검을 주시었으므로 임자를 찾아내고 온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얼마 전에 큰 별이 강호에 비쳤기에 이곳에 와서 기다렸다. 어제 그 별이 더욱 비치므로 자네가 나타날 줄 알고 글을 써서 알렸다." 하면서 보검을 주었다. 조웅은 보검을 공손히 받아 살펴보니 길이가 석 자요, 그 가운데는 금빛 글자로 <조웅검>이라고 뚜렷이 씌어져 있었다. 조웅은 머리를 조아리며 입을 열었다. "귀한 보검을 주시니 이 은혜를 죽어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 보검은 그대의 것이다. 나는 다만 전해 주었을 뿐이니 어찌 은혜라 할 수 있겠는가?" 백발노인은 말하고 나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대의 앞길은 창창하니 부디 큰 공을 세우라." 조웅이 무척 섭섭해 하니 백발노인은 다시 말했다. "여기서 남쪽으로 칠백 리를 가면 관산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그 산중에 천명도사라는 분이 계시다. 네 정성이 지극하면 만날 수가 있으니 어서 여기를 떠나거라." 하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조웅은 백발노인이 가르쳐 준대로 남쪽으로 떠나 며칠만에 관산에 도착했다. 산중으로 들어가니 깎아 세운 듯한 절벽 밑에 아담한 초가집이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는 맑은 연못이 있어 연꽃이 만발하고 이름모를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조웅이 들어가 사람을 찾으니 흰 수염을 가슴까지 드리운 신선 차림의 천명도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와 맞이했다. 조웅이 엎드려 절하고 뵈오니 천명도사가 크게 기뻐하며 이르기를, "내 너를 기다린 지 오래다. 하늘의 뜻을 따라 내 너에게 모든 것을 가르칠 것이니 힘써 배우라." 하거늘, 조웅이 제자의 예를 베풀고 그날부터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먼저 육도삼략을 익힌 다음 천문 지리를 담은 천문도를 배우니 조웅은 눈앞이 트이는 듯하여 침식을 잊고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하루는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쯤에 갑자기 거센 바람이 크게 일어나고 벼락치는 소리가 산중의 고요를 깨뜨렸다. 조웅이 놀라 천명도사에게 까닭을 물었다. "스승님, 이게 무슨 변입니까?" 천명도사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이 산중에는 한 마리의 천마가 있는데 어찌나 날쌔고 용맹한지 구름을 부르고 바람을 일으키는구나. 너는 나가서 이 천마를 얻도록 하여라." 조웅이 크게 기뻐하여 나가보니 과연 한 마리의 천마로 전신의 털이 불꽃처럼 붉었다. 그리고 절벽 사이를 비호처럼 뛰어다니는데 바람 소리가 윙윙 날 지경이었다. 조웅이 이를 보고 크게 외쳤다. "네 어찌 임자를 모르고 날뛰느냐?" 그러자 적토마는 조웅을 뒤돌아보더니 반가운 듯이 달려와 울어댔다. 조웅은 말의 목을 몇 번 쓰다듬어 주다가 조웅을 뒤따라 나와 지켜보고 있는 천명도사에게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저를 위해 미리 말까지 마련해 주셨군요?" "하하하... 이 천마는 네가 앞으로 행동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하늘이 낸 물건은 임자가 있는 법이니 너는 내게 감사할 필요는 없느니라." 천명도사는 가볍게 웃어넘기며 더욱 힘을 다해 신통한 술법을 가르치니 조웅의 무술은 날로 눈부시게 뛰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조웅이 스승에게 나아가 여쭈었다. "어머님을 객지에 두옵고 오랫동안 뵙지 못했으니 잠깐 찾아 뵈옵고 오겠습니다." 천명도사는 허락하고 빨리 돌아오라고 말했다. 조웅이 하직하고 적토마에 올라 한 번 채찍질하고 바람같이 달려갔다. 어느 새 칠백 리 밖의 강호에 이르러 한 객점에 들어가 쉬었다. 이 객점은 위나라 장진사의 집인데 진사는 일찍이 죽고 그 부인이 홀로 딸 하나만을 데리고 사는 집이었다. 그 진사의 딸이 인물도 아름답고 학문에도 뛰어나 인근에 소문이 자자했다. 해서 그 모친은 딸에 어울리는 훌륭한 신랑을 얻고자 객점을 차리고 오가는 길손을 청하여 은근히 인물을 구경하던 참이었다. 이날 조웅이 들어가니 부인이 계집종에게 어떤 손님이냐 물었다. "마님, 어린 나그네이옵니다." 계집종은 간단히 대답했다. 부인은 크게 실망하여 딸의 나이가 벌써 열 여섯인데 신랑감이 나타나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으냐고 안타까와했다. 조웅은 저녁을 먹고 뜰에 나가 밝은 달을 감상하고 있었다. 이때 안채로부터 꾀꼬리같이 아름답고 고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초산의 나무를 베어 객실을 지은 뜻은 인걸을 보려한 것인데, 영웅은 아니 오고 거지들만 오는구나. 오동나무 베어 거문고를 만든 뜻은 원앙새를 보려 한 것인데 까마귀만 지저귀는구나. 아이야, 술잔에 술 부어라. 술로써 근심이나 풀자꾸나.> 조웅은 자기도 모르게 노랫소리에 취해 정신이 황홀해졌다. 이에 행장을 풀어 퉁소를 꺼내어 화답하니 그 소리가 그지없이 맑았다. 부인과 딸이 내당에서 이 퉁소 소리를 듣고 매우 놀랐다. 이어 우렁찬 노랫소리가 들려오니 그 가사는 이러했다. <십 년을 공부하여 천문도를 배운 뜻은 달나라의 항아 - 달 속에 있다는 선녀 -를 보려했더니, 은하수에 오작교가 없어 오르기 어렵구나. 푸른 대나무를 베어 퉁소를 만든 뜻은 그리운 님을 보려 한 것인데, 그 누가 이 뜻을 알리오. 아서라, 아는 이 없으니 나그네의 근심이나 위로할까 하노라.> 부인과 딸이 듣고 마음이 황홀하여 중문으로 나와 살며시 엿보니 나그네의 얼굴이 비범하고 풍채가 훌륭한 것이 눈이 번쩍 뜨였다. 부인이 크게 기뻐하여 딸을 보고 말했다. "공자 같은 성인이 나시매 기린이 나고, 아름다운 딸이 나매 영웅이 나는도다." 하니, 장낭자가 부끄러워 별당에 들어가 숨었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깜빡 졸았는데 꿈속에 부친이 나와 엄숙히 이르기를, "너의 평생 좋은 짝을 데려왔으니 오늘밤에 아름다운 인연을 맺도록 하라. 집없는 나그네이니 한 번 가면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하시며 빨리 나가라고 성화같이 재촉하는 것이었다. 장낭자가 일어날 때 갑자기 하늘에서 일곱 개의 별을 입에 물은 황룡이 내려와 치마 속으로 몸을 숨기는 것이 아닌가. 크게 놀라 깨어보니 일생에 한 번도 보기 힘든 기이한 꿈이었다. 이때 조웅은 자기도 모르게 발길이 옮겨져 중문을 열고 별당까지 이르렀다. 장낭자가 이를 보고 놀라 이불 속에 몸을 숨기니 조웅은 부드럽게 말했다. "낭자께선 놀라지 마십시오. 나는 길가던 나그네인데 시를 읊는 소리가 들리기에 나도 모르게 끌려 들어왔소이다." 장낭자가 황망히 대단했다. "남녀 칠세 부동석인데 어찌 예절을 돌보지 않고 아녀자의 방에 들어오십니까? 어서 나가십시오." 그러나 조웅은 물러가지 않고 자기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낭자께서는 너무 꾸짖지 마십시오. 나도 양반의 후예이니 어찌 예절을 모르겠습니까? 다만 지금의 처지가 부모의 승낙을 받을 수가 없으니 나중에 아뢰기로 하고 백년 가약을 정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장낭자는 부끄러움에 고개만 푹 떨구었다. 이에 조웅이 낭자의 손을 이끌고 백년 가약을 맺으니 어찌 천생 배필이 아니겠는가. 은근한 정으로 밤을 지냈는데 날이 샐 무렵에 닭이 울자 조웅이 떠나가려고 했다. 장낭자가 하루만 더 머물러 모친을 뵙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붙잡았으나, 조웅은 자기도 역시 모친을 천 리 밖에 두고 떠난 지 삼 년이나 되기 때문에 하루도 지체할 수 없는 형편임을 알려 주었다. 장낭자는 할 수 없이, "그렇다면 무슨 신물이라도 남겨 주소서." 하니, 조웅이 옳게 여기며 행장에서 부채를 꺼내 시 한 구절을 지어주면서 이 다음에 만나는 신표로 삼도록 했다. 장낭자가 받아서 읽어보니 다음과 같은 시귀였다. <퉁소로 미인의 거문고에 화답하고, 쓸쓸한 방안으로 나를 모르게 들어갔도다. 오늘밤 어린 신랑은 누구인가? 소년 영웅 조웅이 분명 하도다. 새벽바람에 눈물로 하직하니, 길이 아득하여 언제 온다 약속을 못하겠구나.> 조웅이 하직하고 말을 재촉하니 장낭자는 문에 기대어 눈물만 흘렸다. 이 때 장낭자의 어머니 위부인이 한 꿈을 꾸었는데 황룡이 난데없이 나타나 딸을 업고 구름 속으로 올라가므로 발을 구르며 딸을 부르다가 깨어보니 참으로 기이한 꿈이었다. 창문을 여니 날이 밝았으므로 별당으로 나가보니 딸은 아직 자리에 누워 있었다. "얘야, 날이 밝았는데 아직도 누워 있느냐?" 모친이 말하자 장낭자는 어색한 어조로 물었다. "어찌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습니까?" 위부인이 딸의 모습을 살피다가 근심스럽게 말했다. "네 모습을 보니 정신이 없는 듯하구나. 어디가 아프냐?" "아니옵니다. 밤에 달빛을 구경하다가 늦게 잤으므로 조금 피로할 따름이옵니다." 이 때 계집종이 와서 바깥채에 머무른 손님이 벌써 떠나갔음을 알렸다. 위부인은 크게 놀라 급히 종들을 풀어 나그네의 종적을 찾았으나 천리마를 타고 날 듯이 간 조웅이 눈에 띌 리가 없었다. "여러 해를 벼른 끝에 훌륭한 신랑감을 만났다가 곧 잃었으니 이런 변이 있나!" 위부인이 발을 구르며 애석해 하자 장낭자가 곁에서 위로했다. "어머니는 너무 근심 마옵소서. 세상사는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후일을 기다려 봄이 좋을 듯합니다." 한편 -. 왕부인은 아들을 보낸 다음 밤낮으로 근심하며 세월을 보내는데 하루는 월경대사가 와서 위로했다. "부인께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웅이는 어진 스승을 만나고 또 훌륭한 보물을 많이 얻었으니 어찌 즐겁지 않겠습니까?" 왕부인은 의아하여 급히 물었다. "대사께서는 어떻게 아십니까?" "빈승이 어젯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웅이 나타나 말하기를 좋은 스승과 기이한 보검, 그리고 하루에 능히 천 리를 달릴 수 있는 천마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이제 웅이가 이리로 오고 있으니 만나 보시면 모든 것을 아실 것입니다." 부인이 크게 기뻐하여 언제 당도할 것인가를 물었다. 월경 대사는 잠시 손을 짚어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지금 밖에 있으니 조금 후면 도착할 것입니다." 하고 부인을 모셔 절 문밖에 나가 기다렸다. 과연 잠시 후에 불꽃같이 붉은 털을 가진 천리마 위에 한 소년이 타고 나는 듯이 달려오는데 그것이 바로 조웅이었다. 조웅이 말에서 내려 모친게 엎드려 절하니 부인은 아들을 붙들고 흐느껴 울었다. 이윽고 안으로 들어가 조웅이 그 간에 있었던 일을 말하니 모친과 스승은 하늘이 도와주셨다고 크게 기뻐하였다. 다시 모친과 만나 조웅은 그 동안 못다한 효도를 하느라고 세월 가는 줄 몰랐다. 하루는 부인이 아들을 보고 말하기를, "이제 네가 이렇게 컸다만 머나먼 타향에 친척도 없으니 너의 짝을 누가 정해줄 것이냐? 내가 생전에 네 짝을 보지 못할까 걱정이 되는구나." 하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이에 조웅이 모친을 위로했다. "어머님께서는 상심하지 마시옵소서. 천지 만물이 모두 짝이 있는데 사람이 설마 짝이 없겠습니까?" 하고는, 문득 땅에 엎드려 사죄를 청했다. "어머님, 이 불효 자식을 꾸짖어 주십시오." 왕부인이 크게 놀라 물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 네가 대체 무슨 죄를 졌다는 것이냐?" "어머님께 불효한 일이 있나이다. 소자가 스승님을 떠나오다가 강호에서 장낭자와 백년 가약을 맺었나이다." 하고는 일의 전후를 소상히 아뢰었다. 왕부인이 듣고 크게 기꺼워하였다. "네 말을 들으니 참으로 천생배필이구나. 그것 역시 하늘이 지시한 것이로다." 월경대사도 듣고 같이 기뻐했다. 조웅이 며칠 후에 모친께 아뢰었다. "스승님과 기한을 정하고 왔사오니 이제 어머님 곁을 떠나야 할까 합니다." 모친이 섭섭한 마음을 억누르고 대답했다. "네 말이 당연하다. 그러나 네 소식이 궁금하면 어디 가서 알아보면 될지 모르겠구나." 월경대사가 옆에서 대신 말했다. "부인께서는 조금도 염려하지 마소서. 웅의 거처는 빈승이 아나이다." 부인이 월경대사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어서 떠나라고 도리어 재촉했다. 조웅이 하직하고 여러 날 만에 관산에 이르니 천명도사께서 웃으며 맞이했다. "네가 기약한 날짜를 잊지 않았으니 기특하도다. 어머님께서는 편안하시더냐?" 조웅은 엎드려 아뢰었다. "어머님은 편안하시옵니다. 스승님께서도 그 동안 안녕하셨는지요?" 천명도사는 빙그레 웃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네 거동을 보아하니 분명 배필을 정한 듯하구나." 조웅이 땅에 엎드려 사죄했다. "스승님께 큰 죄를 지었나이다." "하하하... 하늘이 정한 것이니 너는 너무 부끄러워하지 말라." 천명도사는 조웅의 손을 잡아 일으키고는 그 동안 쉬었던 공부를 다시 계속했다. 조웅의 뛰어난 재질은 육도삼략과 천문 지리, 그리고 신기한 술법을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어 스승은 매우 흐뭇해 했다. 하루는 천명도사가 밝은 달빛에 조웅을 데리고 천문을 살피다가 갑자기 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웅아, 네 앞길에 큰 근심이 생겼구나." 조웅이 놀라 급히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자세히 가르쳐 주소서." "너의 처가집에 죽음의 변이 닥쳤으니 빨리 가 보아라." 천명도사는 엄숙히 말하고는 환약 세 알을 내주었다. 조웅은 약을 받아 가지고 적토마를 몰아 나는 듯이 강호로 달려갔다. 이 때에 장낭자는 조웅을 보내고 소식이 없자 마침내 병이 들어 눕고 말았다. 이에 어머니 위부인이 온갖 약을 써서 치료하였으나 치료되기는커녕 병만 더 위중해졌다. 그러던 차에 조웅이 장진사 댁에 도착하니 슬피우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고 있었다. 조웅이 계집종을 불러 물으니 울면서 대답하기를, "저의 아가씨의 병이 위중하여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니, 조웅이 급히 말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 주인께 아뢰어라. 내게 약이 있으니 병세를 자세히 알려주면 쉽게 고칠 수 있을 것이다." 계집종이 안으로 들어가 그대로 여쭈니 위부인은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때라 부리나케 병세를 적어 보냈다. 그러자 조웅이 잠시 생각하더니 환약을 꺼내 주며 말했다. "이 환약을 환자에게 먹이고 따뜻한 음식을 먹이도록 하라." 과연 시키는대로 환약을 먹이니 장낭자는 언제 병이 들었냐는 듯이 일어났다. 위부인이 크게 기뻐하여 밖으로 나와 조웅의 손을 잡고 사례했다. "공자는 나의 딸을 살려냈으니 우리 집의 은인입니다. 부디 우리 딸을 맞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조웅이 듣고 겸사했다. "떠돌아다니는 몸에게 이렇듯 중한 말씀을 하시니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의 분부가 있어야 하니 돌아가서 소식을 알리겠습니다." 하고는, 작별을 고하자 위부인은 부디 소식을 빨리 전해 달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이었다. 조웅이 관산으로 돌아와 스승께 절하며 감사드렸다. 하루는 천명도사가 조웅을 데리고 큰 바위에 올라가 천기를 보더니 크게 놀라며 말했다. "웅이야, 저것이 보이느냐? 별들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으니 천하가 시끄럽게 되었구나. 지금 서쪽 오랑캐가 크게 세력을 떨쳐 대륙을 취하려고 하니 너는 먼저 위나라를 돕고 그 다음에 대송을 회복하라." 조웅이 엎드려 아뢰었다. "어리석은 제자가 어찌 공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그건 염려 말아. 네 재주면 능히 나라를 구할 수 있도다." 스승이 엄숙히 말하니 조웅이는 즉시 행장을 차리고 하직 인사를 올렸다. "스승님, 제자는 다녀오겠습니다." 천명도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번 이별은 꽤 오래 걸릴 것이다. 부디 몸을 자중하라." 조웅은 스승과 작별하고 나서 즉시 모친에게로 말을 몰았다. 인사를 드리고 나서 장낭자의 병을 고쳐준 일을 여쭈니 모친이 크게 기꺼워하셨다. 조웅이 몸을 바로 하고 모친께 아뢰었다. "지금 서쪽 오랑캐가 세력을 떨쳐 위국을 침범하려고 하니 소자가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나가 막을까 합니다." 왕부인이 크게 놀라 극구 만류했다. "네가 어린 나이에 어떻게 싸움터에 나가겠다는 거냐? 부질없는 생각은 먹지 말아라." "스승님의 명령인데 소자가 어찌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조웅이 꿋꿋이 말하니 부인이 한숨을 내쉬며 허락했다. "스승님의 말씀이 그러하다면 이 어미도 막을 수가 없구나. 위왕은 네 부친과 전부터 친교가 있는 분으로 이름은 신광이시다. 먼저 위왕을 도와 큰 공을 세우고 돌아와서 이 어미를 다시 보도록 하여라." 조웅이 모친에게 작별을 하고도 천리마를 몰아 전쟁터로 향했다. 그러나 하루종일 가도 인가가 하나도 없어 하는 수 없이 컴컴한 산길로 들어왔다. 얼마쯤 가다가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리므로 발길을 재촉하니 초가집 두 채가 나타났다. 문을 두드리니 한 늙은이가 나와 맞이했다. 조웅이 사정을 말하고 하룻밤 쉬기를 청하자 노인은 쾌히 응낙했다. 차려준 저녁밥을 먹고 병서를 읽고 있는데 자정이 되어서 문득 선녀같이 아름다운 여자가 살며시 들어와 절을 했다. "너는 어떤 여자이길래 깊은 밤중에 남자의 거처를 찾아오느냐?" 그러자 절세 미녀가 맑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저는 이 마을에 사는 여인으로 공자의 행차가 쓸쓸한 것을 보고 위로해 드리고자 왔나이다." 조웅이 듣고 틀림없이 귀신이라 여기고 축귀문 - 귀신을 쫓는 주문 -을 외우니 여인이 울면서 방을 나갔다. 이에 조웅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병서에 열중했다. 이때 갑자기 바람이 크게 일며 돌멩이가 사방으로 나는 것이 천지가 뒤집히는 듯했다. 게다가 문이 저절로 열리고 닫히고 하므로 조웅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앉아 있었다. 한참 후에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키가 구 척에다가 몸에 갑옷을 걸치고 장검을 찬 한 장수가 안으로 들어섰다. 보통 사람이면 한 번 보고 까무라칠 정도로 무시무시한 형상이었으나 조웅은 도리거 두 눈을 부릅뜨고 보검을 빼어 책상을 두드리며 호통쳤다. "너는 어떤 귀신이길래 감히 대장부를 능멸하는가!" 그러자 그 장수가 땅에 엎드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 조웅이 이상하여 음성을 부드럽게 하여 물었다. "깊은 밤중에 이렇게 나타난 것은 깊은 사연이 있는 듯한데 무슨 곡절이오?" 장수가 눈물을 거두고 대답했다. "저는 관서땅에서 약간 이름을 날린 장수인데 뜻을 이루지 못하고 떠도는 신세가 되었으니 어찌 원한이 없겠습니까? 그러다가 오늘 뜻밖에 훌륭한 영웅을 만났으니 제 원수를 갚을 때가 온 듯하여 감히 시험해 보았습니다. 조금 전의 그 여인은 제가 평생 사랑하던 아내입니다." 하며, 문을 열고 부르자 그 미인이 갑옷과 큰 칼을 들고 들어와 절을 했다. 조웅이 급히 답례하자 그 장수가 말을 이었다. "제 아내가 영웅께 드리는 갑옷과 칼은 부디 성공하시어 저의 원한을 풀어주십사 하는 뜻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승리하시고 돌아오는 길에 갑옷과 칼을 무덤 앞에 묻어 주십시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수와 미인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이튿날 노인을 불러 물으니 한 무덤을 가르쳐 주었다. 마을 뒤로 가보니 두 개의 무덤이 있는데 한 무덤 앞에는 <관서장군 활달의 묘>라는 비석이 서 있고, 그 보다 작은 무덤 앞에는 <관서 장군 월랑의 묘>라고 씌인 비석이 서 있었다. 조웅이 절하고 황금 갑옷과 칼을 가지고 위국으로 떠나니 마치 호랑이에게 날개가 돋친 듯했다. 며칠 후에 위나라에 당도해서 싸움터로 가서 보니 넓은 벌판에 양쪽이 진을 쳤다. 서쪽 오랑캐 서번국 군사는 산을 등지고 진을 쳤고, 위나라 군사들은 강을 등지고 진을 치고 있었다. 이때 서번은 세력이 강해 용맹한 장수가 구름처럼 많고 군사가 강해 위나라가 맞서 싸우기를 한 달이 되어도 매번 지기만 했다. 이 날도 서로 맞붙어 싸우는데 서번국의 장수가 칼을 번뜩일 때마다 위국 장수는 맥없이 죽거나 도망치기에 바빴다. 번장이 의기양양하여 크게 외쳤다. "위국 장수는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으라!" 그러자 위국 병사는 얼굴색이 변해 벌벌 떨었다. 위왕이 더 버틸 수가 없어 항복하는 글을 써서 후군장에게 주어 보냈다. 후군장이 번왕에게 나가 항서를 바치니 번왕은 도리어 크게 화를 냈다. "너의 왕이 앉아서 항서만 보내니 어찌 이토록 무례하냐? 우선 네 머리를 베어 본보기로 삼으리라." 호통이 채 끝나기도 전에 후군장의 머리가 벌써 말 아래로 굴렀다. 이어 번국 중에서 가장 용맹한 장수가 머리를 칼로 꿰어들고 달려드는 위국 병사는 사시나무 떨듯했다. "마지막이로다!" 위왕은 이를 보자 비통히 부르짖으며 스스로 자결하려고 했다. 이때 조웅이 이 모양을 보고 크게 분노하여 갑옷을 입고 보검을 빼어든 채 천리마를 타고 나는 듯이 달려가며 우레같이 호통쳤다. "번장은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으라!" 양진의 군사들이 어리둥절하여 보고 있는 사이 조웅은 번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건 또 웬놈이냐?" 번장은 우습다는 듯이 칼을 내리쳤다. 그러나 조웅은 머리를 낮추어 쉽게 적의 칼을 피하더니 보검을 번개같이 휘둘렀다. 그러자 부로가 일 합도 겨루지 못하고 번장의 목이 땅위로 굴렀다. 조웅은 적장의 목을 칼 끝에 꿰어들고 나는 듯이 위진으로 돌아왔다. 위왕은 이것이 혹시 꿈이나 아닐까 해서 조웅이 말에서 내려 엎드리는 것도 보지 못했다. 조웅은 엎드린 채 죄를 빌었다. "제가 외인으로 당돌하게 나섰으니 죄를 내리소서." 위왕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치하했다. "과인이 어리석은 탓으로 장군을 미리 맞아들이지 못했구려. 과인의 목숨이 오늘로 끝나게 된 것을 장군이 살려 주었으니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겠소. 그런데 장군의 성함은 어떻게 되시오?" 조웅은 위왕이 부친과 친함을 아는지라 자기의 내력과 지난 일을 숨김없이 아뢰었다. 그러자 위왕이 크게 놀라며 조웅의 손을 붙들고 말하였다. "장군의 부친은 곧 내 어릴 적의 벗이다. 이제 그대를 보니 어찌 감개무량하지 않으랴." 이어 대성의 소식을 물었다. 조웅은 이두병이 송나라를 멸하고 자칭 황제가 되었다는 사실과 자신과 어머니가 역적의 손길을 벗어나려고 망명하여 다니던 일을 자세히 아뢰었다. 위왕이 듣고 송나라 서울을 향해 절하고 슬피 우시니 그 충성이 본래 크고 아름다웠다. 조웅이 같이 눈물을 흘리다가 도리어 위로했다. "대왕께서는 고정하십시오. 아직 오랑캐를 무찌르지 못하였으니 우선 이들을 없앤 후에 앞으로 할 일을 의논하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조웅전 (1/4) 때는 중국 송나라 문제가 즉위한 지 이십 삼 년이 되는 해였다. 어진 황제를 모신 백성들은 농사짓기에 바빴고 거리에는 평화로운 노랫가락이 흘렀다. 이후 추구월 병인일에 문제께서는 갑자기 충렬묘에 납시었다. 충렬묘란 만고에 다시 없는 충신이었다. 좌승상 조정인이 잠들어 있는 묘였다. 조정인이 이부상서-조선시대의 이조 판서에 해당되는 벼슬-로 있을 때 남방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에 조정은 문제를 모시고 뇌성관까지 피했다가 사방으로 다니며 의병을 모집하여 석 달 만에 반란을 진압시켰다. 이 공로로 조정인은 좌승상으로 벼슬이 올랐고 정평왕이란 칭호까지 내렸다. 그러나 좌승상 조정인이 굳이 사양하므로 문제는 하는 수 없이 금자광록대부와 조상만을 제수하고 그의 부인 왕씨는 공렬부인에 봉하였던 것이다. 그후 여러 해가 지났다. 그러자 간신들이 은밀히 날뛰기 시작하고 어진 신하들이 점점 숨어 살게 되었다. 특히 우승상 이두병이 앞장에서 모함하고 참소하니 좌승상 조정인은 독약을 마시고 자결해 버렸다. 문제는 충신이 허무하게 죽자 크게 애통하여 친히 제문을 지어 조상하시고 충렬묘를 지어 거의 날마다 거동하시었다. 그러나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우승상 이두병은 황제의 이런 거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권세만을 위하여 노력할 뿐이었다. 이두병은 자기의 지위를 반석같이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병권을 잡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에 아들인 이 관으로 하여금 병부시랑이란 요직에 앉도록 했다. 이 날도 문제는 충렬묘로 거동하시어 늘 하는 대로 좌승상 조정인의 공적을 극구 칭찬했다. 이에 병부시랑 이 관이 엎드려 아뢰기를, "폐하께옵서는 항상 좌승상 조정인의 공로를 찬양하옵시니 신들이 몸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어찌 많은 신하 중에서 조정인 만한 인물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이까? 폐하가 이처럼 옥안에 슬픔이 가득하시니 이 후로는 충렬묘에 납시는 것을 거두소서." "무엇이? 어허 무엄하도다." 황제께서는 괘씸한 생각이 들어 즉시 이 관을 끌어내라고 엄명하셨다. 그리곤 환궁하신 다음에 조종인의 아내 공렬 부인 왕씨를 정렬부인에 봉하시고 많은 금은을 하사하시면서, "듣자 하니 조승상에게 아들이 있다 하니 조정으로 불러서 짐의 마음을 덜게 하라." 하고 하교하시었다. 한편 왕씨 부인은 애를 가진 지 일곱 달에 남편을 여의고 유복자를 낳으니 이름을 웅이라 했다. 왕씨 부인은 삼년상을 지내고도 소복을 벗지 않고 아들 웅을 데리고 세월을 보내었다. 이 날 황제께서 또 다시 충렬묘에 거동하신다는 말에 더욱 슬퍼하고 있는데 황제가 특별히 보낸 신하가 와서 정렬부인의 칭호와 많은 금은을 전하니 부인은 황공하여 급히 절하며 받았다. 또한 아들 웅을 대궐로 들여보내라는 조서를 보고 더욱 황송하여 깨끗한 옷을 입혀 보냈다. 이때 조웅의 나이 불과 일곱 살이었지만 얼굴은 관옥 같고 행동거지는 어른보다 더 의젓했다. 환관을 따라 옥좌 아래에서 몸을 굽혀 절하니 황제께서 보시고 크게 칭찬하였다."충신의 아들은 과연 다르도다. 짐이 오늘 네 거동을 보니 충효에 벗어나지 않으니 어찌 아름답지 않으리오. 또한 나이가 일곱 살이라 하니 태자와 동갑이로다. 어찌 더욱 사랑스럽지 않으랴." 이어 태자를 불러오게 하시어 분부하셨다. "조웅은 충신 조정인의 유복자로다. 또한 너와 동갑으로 충효를 겸하였으니 훗날에 국사를 의논하라. 짐은 늙어 여든 살이 가까우니 너희들의 힘이 필요하도다." 하시니, 태자도 즐거워하였다. 조웅이 땅에 엎드려 아뢰었다. "성은 망극하나이다. 그러나 소신은 나이가 어리옵고 또한 나라에 법도가 있으니 어찌 벼슬길에 오르지도 않은 아이가 대궐 안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폐하께서 이렇듯 어린 아이에게 국사를 의논하시니 어찌 두렵지 아니하오리까? 업드려 비옵건대 소신은 물러가서 공부를 마친 후에 다시 용안을 뵈옵게 하소서." 그 어조가 지극히 간절하니 비록 어린 아이의 말이지만 황제는 사리에 맞다 하여 하교하셨다. "네 나이 십 삼 세가 되거든 벼슬을 내릴 것이니 가서 열심히 공부하도록 하라." 조웅이 황공하여 큰 절을 올리고 물러 나오니 태자도 못내 서운해 하였다. 황제께서는 조정의 신하들을 모아놓고 조웅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신 후 물으셨다. " 이 관은 지금 어디 있느냐?" 우승상 최 식이 앞으로 나와 아뢰기를, "폐하께서 내치라 하시었으므로 지금 옥에 갇히었나이다." 하니, 황제께서는 관대한 분부하셨다. "이 관의 말이 경솔하나 이번만은 용서하라." 원래 이두병에게는 아들이 다섯 있는데 모두 일품의 벼슬에 올라 있으므로 조정의 모든 신하들이 두려워했다. 이 날 황제께서 조웅을 크게 칭찬하심을 보고 이두병의 아들들은 모여 의논했다. "조웅이 벼슬길에 오르면 필시 아비의 원수를 갚으려고 할 것이다. 조심해야 하겠다." 마침내 그들은 조웅을 몰래 죽일 흉계를 꾸몄다. 이것도 모르고 조웅은 집으로 돌아와 모친을 뵈오니 정렬부인은 엄숙히 물었다. "그래 폐하를 뵈었느냐?" 조웅은 공손히 아뢰었다. "들어가 뵈었나이다." "그렇다면 황제께서 하문하신 말씀이 있었을 것인데 어떻게 대답했느냐?" 조웅은 황제께서 열 세 살이 되면 벼슬을 주시겠다고 하시던 말씀과 태자도 다시 만나기를 원한다고 낱낱이 고하니 부인이 크게 기뻐하였다. "폐하의 은혜가 하늘처럼 높고 바다같이 깊으니 너는 명심해서 충성을 다하여라." "어머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모자는 성은에 거듭 감사하고, 더 한층 몸과 마음을 닦기에 열중했다.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어느덧 병인년 섣달이 되었다. 이날 황제께서는 온 조정의 신하들로부터 조회를 받고 말하였다. "아, 짐의 나이가 어느덧 여든을 바라보게 늙었구나. 하늘은 짐의 죽음을 재촉하는데 태자의 나이가 어려 국사를 보기에 아직 이르니 어찌할꼬?" 그러자 모든 신하들이 엎드려 절하며 아뢰었다. "폐하께서는 아직도 이렇듯 정정 하시온데 어찌 동궁의 어리심을 근심하나이까." 이부 상서 정출이 앞으로 나와 간사를 떨었다. "폐하께서는 염려하지 마옵소서. 승상 이두병이 아직 건재하오니 국사는 아무런 근심이 없나이다." 모든 신하들이 또한 이두병의 권세를 두려워해 맞장구를 쳤다. "승상 이두병은 한나라의 소무 같은 신하이오니 폐하께서는 근심하지 마옵소서." 황제는 신하들이 이처럼 장담하자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대궐 안으로 난데없이 흰 호랑이 한 마리가 들어와 돌아다니다가 궁녀 하나를 물고 후원으로 달아나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에 황제와 모든 신하들은 크게 놀라고 장안의 백성 또한 앞으로 닥칠 길흉을 알지 못해 소동을 피웠다. 황제가 크게 걱정하시니 신하 중의 하나가 나와 아뢰었다. "며칠 동안 북풍이 크게 불고 눈이 산을 덮었으므로 굶주린 호랑이가 내려온 것이니 폐하께서는 근심하지 마옵소서." 황제는 이 말에 약간 마음을 놓았으나 웬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 때 한림학사 왕열은 사촌누이 되는 왕부인께 이 변고를 편지로 알렸다. 왕부인은 조웅에게 옛날의 역사를 가르치다가 이 편지를 받고 뜯어보았다. 편지에는 대궐 안으로 흰 호랑이가 들어와 난동을 부린 사실을 자세히 알림과 동시에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풀어 달라고 했다. 왕부인은 이것을 보고 크게 놀라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답서를 써서 보낸 다음에 아들에게 일렀다. "국가에 이런 흉한 재앙이 일어났으니 네가 앞으로 벼슬한다 해도 간신들에게 당하겠구나." 조웅이 엄숙한 태도로 아뢰었다. "어머님은 염려마옵소서. 사람의 영욕은 임의로 되는 것이 아니옵고 오직 하늘이 정하는 것이옵니다. 조정에 간신들이 가득해도 소자는 백옥같이 죄가 없사오니 그 누가 저를 모함하겠습니까?" 왕부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얘야, 너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산에 불이 나면 옥이나 돌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태우는 법이다. 어찌 간신들이 너를 가만히 두겠느냐?" 조웅은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사람이 일을 당하여 오래 조심하면 가슴만 아플 뿐 백 가지 일이 불리하옵니다. 그러나 어머님께서는 너무 근심하지 마옵소서. 설마 하늘이 죄없는 저희들에게 재앙을 내리겠습니까?" 아들의 활달한 말에 왕부인은 근심하지 않고 묵묵히 집안 일을 돌보았다. 한편 왕부인의 편지를 받은 한림박사 왕 열은 깊이 깨닫는 바가 있어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때는 정묘년 정월 보름이었다. 신하들의 하례가 끝난 다음 황제께서는 갑자기 이르시었다. "전에 짐이 조웅을 보니 충효를 범전하였도다. 해서 태자를 위해 대궐로 데려오고자 하니 경들의 뜻은 어떠한가?" 이두병이 즉시 앞으로 나와 반대의 뜻을 표했다. "폐하, 그건 아니 되옵니다. 벼슬 없는 아이를 조정에 두는 것은 법도에 없나이다." 폐하께서는 불쾌한 안색을 지으셨다. "충효한 인재를 거두는데 어찌 법도를 따지는가?"이두병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조웅을 깎아 내렸다. "인재를 얻고자 하시면 장안에서만도 조웅보다 십 배나 더한 충효스런 인재가 수백이요, 조웅과 같은 아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사옵니다." 황제께서는 불쾌한 나머지 옥좌를 박차고 들어가셨다. 그러자 이두병이 뭇신하들을 돌아보고 엄포를 놓았다. "만약 조웅에 대해 좋게 아뢰는 사람이 있으면 좋지 못할 것이오." 이렇게 되니 겁내지 않는 신하가 그 누구이겠는가. 이 때 왕부인과 조웅은 우연히 이두병이 말한 것을 듣고 앞으로의 일이 크게 잘못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드디어 불행이 닥쳤다.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황제께서는 뭇백성들이 축원한 보람도 없이 정묘년 삼월 삼일에 승하하시었다. 이에 온 조종의 신하들과 천하의 백성들이 슬피우니 천지에 사무쳤다. 왕부인과 조웅의 슬픔은 그 누구보다 컸다. 문제가 돌아가시니 세상은 온통 이두병의 마음대로였다. 조정의 뜻 있는 신하들은 하나 둘 사직하고 떠나니 간신들만 우글우글했다. 백성들은 나라가 망할 조짐이라고 속으로 한탄할 뿐 그 누구도 감히 나서서 이두병의 죄악을 꾸짖지 못했다. 그러나 기회가 왔다가 생각한 이두병은 시월 십삼 일에 드디어 만조 백관이 모인 자리에서 본색을 드러냈다. "지금 태자의 나이 겨우 여덟 살이니 황제의 자리에 앉는 것은 불가하다. 나라에는 하루도 주인이 없으면 곧 시드는 법이니 그대들은 어찌하겠는가?" 온통 이두병의 패로 이루어진 신하들은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 저마다 떠들어 댔다.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덕이 있는 사람의 것입니다. 나라가 지금 위태로운데 어찌 여덟 살밖에 안 되는 태자가 즉위할 수 있으리오, 그러니 승상께서 옥쇄를 받으시고 즉위하십시오." 그러자 이두병은 짐짓 세 번 사양하다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니 장안이 온통 놀라 버렸다. 그러나 이두병의 군사들이 곳곳에 서서 위세를 떨쳐 감히 항거하는 자가 없었다. 이두병은 자칭 순제라 일컫고 국법을 제 마음대로 개정하고 동궁을 폐하여 외각관에 감금하니 충성스런 신하들은 남몰래 피눈물을 흘렸다. 이 때 왕부인은 이두병이 드디어 나라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자 통곡하며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었다. "슬프구나! 나라가 망했는데 옹의 나이 겨우 팔 세이니 어찌할 것인가?" 조웅이 급히 들어와 모친을 애써 위로했다. "어머님께서는 불효자를 근심하지 마옵시고 몸을 보호하소서. 이두병은 아버님을 해친 원수이자 대역적이옵니다. 소자가 비록 나이 어리나 원수를 갚지 못하고 어찌 역적의 손에 죽겠습니까? 어머님께서는 조금도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그러나 조웅의 눈에서도 분노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한편 이두병은 맏아들 이 관을 동궁으로 삼고 연호를 건무 원년이라 했다. 그리고 외각관에 감금한 송태자는 태사부 계량도로 귀양보냈다. 왕부인과 조웅은 태자가 귀양간다는 소식에 매우 슬퍼하며 또한 분노했다. 그들은 태자를 따라가고 싶었으나 역적들의 눈에 띄면 죽을 것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하루는 조웅이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여 모친 모르게 장안 큰 거리로 돌아다니었다. 그러다가 한 곳에 이르니 어린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뜻이 묘했다. "나라가 망했으니 아비 없는 난세로다. 문제가 순제 되고 태평 세월이 어지러운 세상으로 변했구나 그러나 남의 것 빼앗아 사는 자가 그 며칠이나 갈 것인가. 충신의 피눈물이 흐르니 역적은 망하는도다. 사해에 숨어 놀다가 시절이 좋아지면 다시 만나리." 조웅이 듣고 나서 자기도 모르게 피눈물을 흘리며 어느덧 대궐 경화문에 이르렀다. 인적은 고요하고 달빛은 교교히 흐르는데 저절로 돌아가신 황제의 따뜻한 정이 생각났다. 조웅은 당장이라도 대궐 안으로 들어가 역적 이두병을 죽이고 싶었지만 수많은 군사들이 곳곳에 지키고 있으니 감히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분노가 너무 치밀어 품속에서 붓을 꺼내 이두병의 죄상을 욕하는 글을 써서 몰래 경화문에 붙였다. 이 때 왕부인은 잠을 자다가 한 기이한 꿈을 꾸었다. 돌아가신 승상이 생시의 모습으로 나타나 엄히 이르는 것이 아닌가. "부인은 어서 일어나시오. 날이 밝으면 큰 변이 생길 것이니 어서 웅을 데리고 도망하시오." 부인이 놀라 급히 물었다. "천지에 역적이 깔리었거늘 어디로 가란 말씀이십니까?" 그러나 대답이 없어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이때 황급히 아들을 부르니 간 곳이 없었다. 왕부인은 다급한 마음에 문 밖을 나와 살피니 조웅이 총총히 걸어오는 것이었다. "얘야, 이렇듯 깊은 밤에 어디를 갔었느냐?" 모친이 묻자 조웅은 사실대로 말했다. "소자는 이두병의 죄악이 너무 크므로 경화문에 가서 역적을 욕하는 글을 써서 붙였사옵니다." 모친이 크게 놀라 엄히 꾸짖었다. "네 어찌 이렇듯 경망스러우냐? 그렇지 않아도 역적이 우리 모자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었는데 그 글을 보면 만사를 젖혀놓고 우리를 죽이려고 할 것이다. 다행히 너의 아버님께서 꿈에 나타나 알리셨으니 어서 도망가자." 두 사람은 즉시 간단한 행장을 차린 다음 충렬묘로 달려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제단 위의 초상화에 땀이 나서 얼굴에 물기가 축축했다. 모자는 크게 울지도 못하고 엎드려 흐느끼니 그 형상이 가련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초상화를 떼어 간수하고 모자는 수십 리를 걸어 어느 강가에 도착했다. 날씨는 험악하여 물결은 거친데 사공 없는 나룻배만이 덩그렇게 매어져 있었다. 모자가 황급히 배에 올라 노를 저었으나 매여있는 배가 어찌 움직이겠는가. 일이 이렇게 되니 왕부인과 조웅은 초조하기 그지없었다. 당장이라도 이두병의 군사들이 몰려와 꼼짝없이 잡힐 것만 같아 발을 동동 굴렀다. 이때 갑자기 상류 쪽에서 한 조각배가 등불을 밝히고 이쪽으로 쏜살같이 오는 것이 보였다. 왕부인은 크게 기뻐하여 목청껏 외쳤다. "사공께서는 제발 우리들을 살려 주십시오." 그러자 조각배가 모자 곁에 이르더니 늙은 사공이 재촉하는 것이었다. "두 분은 어서 배에 오르십시오." 모자가 반겨 배에 오르자 사공은 있는 힘을 다해 배를 저었다. 왕부인은 마음이 약간 진정되자 사공에게 물었다. "사공께선 어인 일로 이 밤중에 배를 몰고 내려왔습니까?" 늙은 사공은 웃으며 대답했다. "이렇듯 깊은 밤중에 누가 배를 몰겠습니까? 다만 꿈에 한 귀인이 나타나셔서 급히 이리로 와서 사람을 구하라고 하시기에 달려왔을 뿐입니다." 사공의 얘기를 듣자 모자는 하늘의 도우심에 깊이 감사드렸다. 이윽고 날이 희미하게 밝을 무렵 조각배는 낯선 강가에 닿았다. 왕부인은 사공에게 깊이 감사를 드리고 아들의 손목을 잡고 정처 없이 걸어갔다. 한편, 이두병의 대궐에서는 큰 야단이 났다. 날이 밝자 경화문을 지키던 포졸이 당황한 기색으로 들어와 아뢰는 것이었다. "날이 밝았기에 보니 문에 이런 글이 붙어있기에 가져왔나이다." '송화실이 약해지니 역적이 조정에 가득 찼도다. 불행히 황제께서 돌아가시니 소인들이 득세하여 태자를 모반하고 역적 이두병에 붙었도다. 만고 역적 이두병은 듣거라. 너는 성은을 입어 벼슬이 일품에 이르렀는데 무엇이 부족하여 역적이 되었느냐? 네 죄악을 생각하면 천하 만민이 살을 씹고 뼈를 갈아도 부족하리라. 내 어느 때건 너를 잡아 만백성 앞에서 목을 베어 역적의 최후가 어떠한지를 보여줄 것이다. 전조 충신 조종인의 유복자 조웅' 이두병은 이 글을 읽자 크게 노하여 하늘이 얕다고 호령했다. "즉시 조웅 모자를 결박하여 잡아들여라." 그러자 때는 이미 늦어 조웅의 집으로 달려갔을 때는 텅텅 빈 집이었다. 이에 더욱 화가 난 이두병은 군사를 풀어 조웅의 행방을 찾는 한편 충렬묘로 사람을 보내 조종인의 초상화를 가져오라고 했다. 하지만 충렬묘의 초상화까지 감쪽같이 없어졌다는 보고가 아닌가. 이두병은 너무 분한 나머지 아무 죄없는 대궐 문지기의 목을 베어 성문에 높이 달아 놓았다. 이에 조웅이 살던 집과 충렬묘를 불살라 버리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래도 이두병이 화가 풀리지 않아 호통을 치자 뭇 신하들이 좋은 말로 아뢰었다. "조웅의 나이 겨우 여덟이고 그 어미는 늙은 여인이니 멀리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천하에 명을 내려 잡으라고 하면 머지않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옵니다." 이에 이두병은 천하에 영을 내리기를 만약 조웅 모자를 잡아오는 자가 있으면 천금의 상과 만호후의 벼슬을 주겠다고 했다. 이런 소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웅 모자는 정처 없이 걷다가 소나무와 대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선 한 깨끗한 고을에 이르렀다. 마을에 들어서 보니 사람들의 행동이 매우 유순하고 깨끗했다. 이에 한 사람을 붙잡고 하룻밤 지내기를 청하니 쾌히 한 집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그 집에 들어가니 나이 많은 할머니가 어린 처녀를 데리고 살거늘 매우 조용했다. 주인 되는 노파가 물었다. "부인은 어디 사시며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왕부인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저희 모자는 변을 당해 이처럼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무엇이라 부르는 고을입니까?" "이곳은 계량섬 백자촌이라는 마을입니다." 주인 노파는 대답하고 나서 모자에게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니 왕부인은 감사해 마지않았다. 노파는 사양하며 자기 신세도 조웅 모자와 비슷하니 이곳에 함께 살자고 했다. 이에 조웅 모자는 그 집에서 머물렀으나 마음은 항상 고향과 빼앗긴 나라에 가 있었다. 이윽고 한 해가 속절없이 가니 부인의 나이는 마흔 살이요, 조웅은 아홉 살이 되었다. 하루는 주인 노파가 왕부인에게 오더니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부인은 아직 마흔 살밖에 안 되었으니 개가토록 하십시오. 내 사촌 남동생이 있는데 젊어서 상처하고 지금 마땅한 곳을 정하지 못해 널리 사람을 구하고 있습니다. 남동생에게는 재산도 많으니 부인이 개가하면 큰복을 누리리다." 왕부인이 놀라 얼굴빛을 바꾸고 쌀쌀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나를 길거리의 여자로 취급하다니... 나는 남은 생애를 아들을 위해 바칠 것이니 아예 그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주인 노파는 사죄하며 얼른 물러났다. 하지만 몰래 사촌 남동생에 좋은 혼처가 생겼다고 연락했다. 사촌 동생되는 자는 크게 기뻐하여 어떻게 하든지 왕부인을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호시탐탐 노렸다. 왕부인은 이런 기색을 깨닫고 더 이상 이곳에 있으면 큰일나겠다고 생각했다. 해서 조웅과 함께 노파가 잠든 사이에 집을 나서 다시 정처없이 길을 떠났다. 들을 지나 수십 리를 걸으니 어느덧 발도 붓고 가지고 온 식량도 떨어져 굶주림이 심하였다. 모자는 별 수 없어 길가에 앉아 잠시 쉬었다. 이때 그들 곁에 마침 말을 탄 길손이 지나거늘 조웅이 앞으로 나아가 절을 하고 도움을 청했다. "길을 가다가 피곤에 지쳐 있으니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자 길손은 말에서 내려 대답했다. "가진 것이라곤 마른 음식이 조금 있으니 어서 요기를 하라." 조웅이 인사를 하고 마른 음식을 받아 모친과 함께 요기하니 겨우 살아날 수가 있었다. 다시 며칠을 걸어 한 곳에 이르니 해상현 옥구라는 곳이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모여 수근거리기를, "새 황제가 천하에 이르기를 조웅 모자를 잡아 바치면 천금상과 만호부에 봉한다 하니 우리가 그들을 잡으면 크게 복을 누리리라." 하고, 오가는 행인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조웅 모자는 이 말을 듣고 간담이 서늘하여 급히 마을에서 도망쳤다. 너무 급히 도망치는 바람에 발도 아픈 줄을 몰랐다. 이윽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니 날이 이미 저물었다. 모자는 신세를 생각하니 눈물이 비오듯 흘러 서로 붙들고 울었다. "이제는 어디로 가도 역적의 손에 잡혀 죽겠구나." 때는 꽃피는 춘삼월이어서 나무마다 새 잎이 돋았는데 모자의 신세는 더욱 처량하기만 했다. 바위를 의지하여 밤을 지내는데 부엉이는 울고 늑대는 사방에서 울부짖어 사람의 마음을 더욱 고달프게 했다. 왕부인은 아들을 끌어안고 연신 눈물만 흘리니 달빛조차 함께 슬퍼하는 듯했다. 밤을 지새며 굶주림을 참자니 몸이 더욱 무거워져 왕부인은 자기도 모르게 누워 버렸다. 이에 조웅이 꽃을 꺾어다가 모친에게 드리니, "이게 어찌 요기가 되겠는가?" 하고 탄식하고 있는 어디선가 갑자기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살피니 오륙 명의 여승들이 산골짜기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왕부인은 용기를 내어 물었다. "여승님께서는 어느 절에 있으며 어느 절로 가나이까?" 여승 중의 하나가 의아스런 어조로 반문했다. "부인은 뉘신데 이렇듯 깊은 산중에 와 있습니까?" 왕부인은 애처로운 얼굴로 사실대로 대답했다. "저의 모자는 길을 잃고 이곳에 들어왔다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여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여승들은 저마다 보따리를 끌어 음식을 내주었다. 조웅 모자는 절하며 치하했다. "죽을 사람을 구해 주시니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여승들은 사양하며 길을 가리켜 주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수십 리를 가면, 인가가 있으니 그리로 가십시오." 모자는 그들과 헤어지자 허겁지겁 요기를 했다. 이윽고 기운을 차리자 조웅은 다시 길을 떠나려고 했다. 그러자 왕부인이 울며 말했다. "얘야, 어디로 가겠다는 거냐? 마을도 가면 반드시 관리들에게 잡힐 것이다. 역적에게 끌려가 죽느니 차라리 이 산중에서 굶어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 조웅은 애써 밝은 표정으로 모친을 위로했다. "사람의 목숨이 하늘에 달려 있으니 하늘이 죽이면 죽을 것이오, 살리면 살 것이옵니다. 어찌 사람이 두려워 이 산중에서 굶어 죽거나 짐승의 밥이 되겠습니까? 조금도 염려하지 마시고 마을로 내려가십시오." 왕부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얘야, 우리 모자가 이렇게 가면 반드시 행적이 드러나 잡힐 것이다. 이 어미의 생각으로 우리가 행색을 달리하면 좋을 것이다." "어떻게 말입니까?" "나는 삭발하여 여승이 되고 너는 상좌 - 중의 수업을 닦는 남자아이 - 가 되면 누가 알겠느냐?" "어머님, 목숨을 건지는 것도 중하지만 어찌 머리카락을 없애겠습니까?" "얘야, 머리를 깎는다고 해도 중이 아니니 상관 있느냐? 너는 조금도 걱정하지 말아라." 조웅은 모친의 결심이 굳은 것을 보고 결심했다. "그렇다면 소자도 머리를 깎겠습니다." "얘야, 너같이 어린아이가 삭발하면 도리어 의심할 것이다. 이 어미만 깎을테니 너는 더 이상 말하지 말아라." 왕부인은 엄히 이르고 행장에서 가위를 꺼내 머리를 깎으라 하니 조웅이 차마 가위질을 할 수가 없어 눈물만 흘렸다. 이를 본 모친이 크게 꾸짖었다. "이 어미가 여지껏 산 것은 오로지 너 때문이다. 그런데도 너는 이 어미를 위로해 주지는 못할망정 울고만 있으니 어떻게 원수를 갚고 나라를 되찾겠느냐?" 이에 조웅은 억지로 울음을 그치고 가위를 들어 모친의 머리를 깎으니 간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얘야, 울지 말아라. 내 마음도 아프구나." 왕부인이 위로하니 조웅은 눈물을 씻으며 말했다. "어머님, 소자는 오늘을 잊지 않고 반드시 역적을 없애겠습니다." 머리를 다 깎자 왕부인은 행장에서 옷을 꺼내어 장삼을 지어 입고 머리에 여승이 쓰는 고깔을 쓰니 완연히 모습이 달라졌다. 그리곤 조웅을 앞세우고 마을로 내려오니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집집마다 들러 밥을 빌어먹고 가다가 하루는 한곳에 장이 섰으므로 깎은 머리카락을 팔았다. 머리 값으로 겨우 돈 닷 냥을 받아 이날 밤은 객점에서 잤다. 그런데 밤이 깊은 후에 갑자기 마을이 떠들썩했다. 조웅 모자가 놀라 나와보니 도적들이 흉기를 들고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왕부인은 놀라 담을 뛰어 넘어 도망하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조웅이 없었다. 부인은 간담이 떨어지는 듯하여 마을을 돌아보니 불길이 온통 마을을 휩쓸고 도적들이 여기저기서 날뛰는 것이었다. 이어 도적이 한사코 뒤를 쫓으니 왕부인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자꾸만 도망쳤다. 얼마쯤 도망치다가 보니 한 채의 낡은 묘가 있기에 비석 뒤에 숨었다. 한편 조웅은 북새통에 모친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이때 도적이 달려들어 봇짐을 빼앗으려 하니 붙들고 애걸했다. "봇짐 속에는 돈 몇 푼이 있으니 그것만 가지고 가고 짐은 남겨 주십시오." 그러자 한 늙은 도적이 불쌍히 여겨 짐 속에서 석 냥의 돈과 초상화만 꺼내고 봇짐을 내주었다. 조웅은 이를 보고 애절히 부르짖었다. "나를 죽이고 그 초상화를 가져가시오!" 도적이 크게 의아하여 물었다. "도대체 이것이 누구의 초상화냐?" "나는 보다시피 상좌인데 우리 대사께서는 늘 불상을 모시고 다닙니다. 오늘도 대사를 모시고 객점에 들어갔다가 혼란 중에 서로 헤어졌으니 만약 이 불상마저 가져가면 나는 절에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가져가도 소용없는 불상은 이리 주십시오." 조웅이 거듭 애원하니 늙은 도적이 여러 도적들에게 권하여 돌려주었다. 조웅은 초상화를 받자 물었다. "어디로 가면 저의 대사님을 만나겠습니까?" "그 여승 말이냐? 저쪽 길로 갔으니 그리로 가 보아라." 조웅은 크게 기뻐하여 도적이 가르킨 길로 달려가면서 모친을 불렀다. 이 때 왕부인은 비석 뒤에서 잠깐 졸고 있는데 꿈에 남편이 나타나 빨리 일어나라고 해서 깜짝 놀라 깨어났다. 그러자 묘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부인이 크게 기뻐하여 불렀다. "웅이냐?" 조웅이 듣고 급히 들려와 외쳤다. "어머님, 소자 웅이옵니다." 모자는 다시 만난 기쁨에 서로 붙들고 울고 웃고 했다. 이윽고 날이 새자 비석의 글자가 뚜렷하게 보이거늘 조웅 모자는 무심코 이를 읽었다.거기에는 금빛 글자로, <만고충신 병부시랑 겸 진부어사 조종인의 불망비라> 씌어 있었고 밑에는 작은 글자로, <황제께서 밝히 살피사 위왕은 죄주시니 모두가 조승상의 공이로다. 흩어진 백성들이 다시 모여 성덕을 찬양하니 이 은덕 무엇으로 갚을꼬> 라고 씌어 있었다. 조웅 모자가 이 비문을 보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니 산천 초목이 함께 흐느끼는 듯 빛을 잃었다. 조웅이 겨우 눈물을 삼키고 모친께 여쭈었다. "아버님 비석이 어찌하여 이곳에 있나이까?" 모친이 천연한 안색으로 대답했다. "아, 이 비석을 보니 이곳이 위나라 땅이구나. 네 부친이 병부시랑을 지낼 때에 위왕 두침이 포악한 왕으로 천하 만인이 미워했었다. 백성들이 이에 참을 수가 없어 고향을 등지고 사방으로 떠나니 황제께서는 네 부친을 보내어 위왕을 벌주시고 다시 살기 좋은 땅으로 만드셨단다. 이곳 백성들이 이 은공을 잊지 못하고 네 부친의 비를 세웠구나." 이에 붓을 꺼내어 비문을 베낀 다음 하직했다. 그러나 이 천지에 어디로 간단 말인가. 더구나 푼돈마저 도적에게 빼앗겼으니 앞길이 아득하기만 했다. 조웅이 모친에게 아뢰었다. "다시 마을로 다니다가는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르니 절을 찾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부인도 이를 옳게 여겨 길가는 사람에게 절이 있는 곳을 물었다. "여기서 서쪽으로 쭉 가시오." 길손이 가리켜 준 대로 모자는 험한 산중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어서 허기에 지쳐 산골짜기에 앉아 쉬는 시간이 많았다. 이때 한 늙은 중이 철장을 짚고 다가오더니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매우 시장한 것 같아 보이니 우선 이것으로 요기나 하십시오." 조웅 모자는 염치 불구하고 음식을 받아 요기하고 감사를 드렸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굶어 죽을 뻔했는데 인자하신 대사님을 만나 살았으니 은혜를 잊을 수 없나이다." 그러자 늙은 중이 웃으며 말했다. "조금 요기하신 것을 은혜라 하신다면 빈승은 부인에게서 천금을 얻었으니 그 은혜는 어찌하오리까?" 부인이 놀라 물었다. "저는 본래 가난한 여승으로 사방에 다니며 빌어먹는 신세인데 어찌 천금의 재물을 대사님께 주었다고 말씀하나이까?" 늙은 중이 엄숙한 얼굴로 도리어 반문했다. "부인께서는 조충공의 부인이 아니시옵니까? 이렇게 변장 하신들 빈승이 모르시겠습니까?" 조웅 모자는 크게 놀라 속으로 부르짖었다. '우리의 본색이 탄로되었으니 어찌할 것인가.' 왕부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애걸했다. "대사님, 우리 모자를 잡아 관청에 바치면 천금의 상과 만호후의 벼슬을 받겠지만 부귀는 뜬구름 같은 것이니 부디 저희들을 놓아주소서." 늙은 중은 웃으며 대답했다. "부인께서는 안심하십시오. 빈승은 부인을 잡아가려는 것이 아닙니다. 빈승은 지난달 승상의 화상을 그렸던 중 월경이옵니다. 그때 승상의 화상을 그려 부인께 바쳤더니 천금의 상을 주셨기에 가지고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부인께서는 빈승을 몰라보십니까?" 이 말을 듣고 왕부인은 늙은 중을 자세히 살피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그런 일이 있지만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없습니다. 대사께서는 저희들을 농락하지 마시고 본심을 얘기하옵소서." 그러자 늙은 중은 엄숙히 말했다. "부인께서는 우선 초상화를 내주소서." 왕부인은 더욱 놀라 완강히 부인했다. "떠돌아다니는 사람에게 무슨 초상화가 있겠습니까, 대사께서는 사람을 놀리지 마십시오." "부인께서는 어찌 이렇게 의심하십니까? 그때 빈승이 부인을 뵈올 적에 임신하신 지 여러 달 되었기에 앞으로 닥칠 일을 초상화 뒤에 써 넣었으니 어서 꺼내어 살펴보십시오." 늙은 중의 간곡한 말에 왕부인은 이상하게 생각되어 마침내 초상화를 꺼내어 뒤에 붙어 있는 종이를 떼어 살펴보았다. 과연 거기에는 깨알같은 글씨로, <충신의 부인은 어인 일로 머리를 깎으셨는가? 도둑에게 망한 나라 바닷가에 거북을 만났도다. 주인은 누구인고? 굴원 - 초나라의 충신으로 물에 빠져 죽음 - 의 넋이로다. 뱃속에 있는 아이 충신 열사로다. 아들로 상좌를 삼고 모습을 고치려 해도 어찌 옛일을 잊겠는가. 위나라 강서 출신 월경> 라고 씌어 있었다. 왕부인은 놀랍기도 하고 기쁨에 겨워 울며 말했다. "우리 모자는 나라를 도둑질한 역적을 피하다가 천행으로 이곳에서 대사님을 뵈었으니 이 기쁨을 어찌 말로써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월경대사가 좋은 말로 위로했다. "부인께서 고생하신 것을 빈승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존귀하고 비천하게 되는 것은 모두가 하늘의 뜻이니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빈승은 이렇게 만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나이다." 라고 말하고는, 조웅 모자를 데리고 산골짜기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 있고, 맑은 냇물이 구불구불 흐르다가 폭포를 이루고 있었다. 이윽고 돌다리를 건너 절간에 이르니 많은 중들이 나와 반가이 맞이했다. 조웅 모자는 고생 끝에 이렇게 신선이 사는 듯한 선경에 이르니 마음이 절로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왕부인은 경내에 이르자 거듭 감사를 드렸다. "속세에서 때가 묻은 저희 모자가 극락을 어지럽힌 듯하니 마음이 불안하옵니다." 그러나 모든 중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오시니 더욱 영광이옵니다." "저희들은 가난하여 그저 비바람이나 피할 수 있는 암자에 살고 있었는데 월경대사께서 서울에 가셨다가 부인께서 천금을 주신 것을 가지고 오셔서 절을 지었나이다. 저희들이야말로 부인의 은혜를 어찌 다 갚겠습니까?" "원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작은 것을 시주하고 이렇듯 큰 인자를 받으니 도리어 부끄럽습니다." 서로 얘기를 나누며 별당에 이르니 왕부인이 앞으로 거처할 곳이었다. 월경대사는 조웅을 데리고 글을 가르치는 한편 신통한 술법도 아낌없이 전해 주었다. 조웅은 본래 영특하고 민첩한지라 한 가지를 가르쳐주면 열 가지를 깨우쳤다. 이에 왕부인은 편안한 마음으로 아들의 성장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날개 - 이상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 하도록 피로했을 때 만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 다나는 위트와 파라독스를 바둑포석처럼 늘어놓소. 가증할 상식의 병이오. 나는 또 여인과 생활을 설계하오. 연애기법에 마저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흘깃 좀 들여다 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분열자말이오. 이런 여인의 반 - 그것은 온갖 것의 반이오. - 만을 영수하는 생활을 설계 한다는 말이오. 그런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놓고 흡사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쳐다보면서 낄낄거리는 것이오. 나는 아마 어지간히 인생의 제행이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게끔 되고 그만둔 모양이오. 굿바이. 굿바이.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로니를 실천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소. 위트와 파라독스와…….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 그대의 작품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기성품에 의하여 차라리 경편하고 고매하리다. 19 세기는 될 수 있거든 봉쇄하여 버리오. 도스토예프스키 정신이란 자칫 하면 낭비일 것 같소. 위 고를 불란서의 빵 한 조각이라고는 누가 그랬는지 지언인 듯싶소. 그러나 인생 혹은 그 모형에 있어서'디테일' 때문에 속는다거나 해서야 되겠소? 화를 보지 마오. 부디 그대께 고하는 것이니…… "테이프가 끊어지면 피가 나오. 상채기도 머지않아 완치 될 줄 믿소. 굿바이." 감정은 어떤' 포우즈'. (그 '포우즈'의 원소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지 나도 모르겠소.) 그 포우즈가 부동자세에까지 고도화할 때 감정은 딱 공급을 정지합네다. 나는 내 비범한 발육을 회고하여 세상을 보는 안목을 규정하였소. 여왕봉과 미망인 - 세상의 하고 많은 여인이 본질적으로 이미 미망인이 아닌 이가 있으리까? 아니, 여인의 전부가 그 일상에 있어서 개개 '미망인'이라는 내 논리가 뜻 밖에도 여성에 대한 모험이 되오? 굿바이. 그 33 번지라는 것이 구조가 흡사 유곽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한 번지에18가구가 죽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서 창호가 똑같고 아궁이 모양이 똑같다. 게다가 각 가구에 사는 사람들이 송이송이 꽃과 같이 젊다. 해가 들지 않는다. 해가 드는 것을 그들이 모른 체 하는 까닭이다. 턱살밑에다 철줄을 매고 얼룩진 이부자리를 널어 말린다는 핑계로 미닫이에 해가 드는 것을 막아 버린다. 침침한 방안에서 낮잠들을 잔다. 그들은 밤에는 잠을 자지 않나? 알 수 없다. 나는 밤이나 낮이나 잠만 자느라고 그런 것을 알 길이 없다. 33 번지18가구의 낮은 참 조용하다. 조용한 것은 낮뿐이다. 어둑어둑하면 그들은 이부자리를 걷어 들인다. 전등불이 켜진 뒤의 18가구는 낮보다 훨씬 화려하다. 저물도록 미닫이 여닫는 소리가 잦다. 바빠진다. 여러 가지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비웃 굽는내, 탕고도 오랑내, 뜨물내, 비눗내.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도 그들의 문패가 제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다. 이 18가구를 대표하는 대문이라는 것이 일각이 져서 외따로 떨어지기는 했으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번도 닫힌 일이 없는, 한 길이나 마찬가지 대문인 것이다. 온갖 장사치들은 하루가운데 어느 시간에라도 이 대문을 통하여 드나들 수 있는 것이다. 이네들은 문간에서 두부를 사는 것이 아니라, 미닫이를 열고 방에서 두부를 사는 것이다. 이렇게 생긴 33번지 대문에 그들18가구의 문패를 몰아다 붙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들은 어느 사이엔가 각 미닫이 위 백인당이니 길상당이니 써 붙인 한 곁에다 문패를 붙이는 풍속을 가져버렸다. 내방 미닫이 위 한 곁에 칼 표딱지를 넷에다 낸 것 만한 내 - 아니! 내 아내의 명함이 붙어있는 것도 이 풍속을 좇은 것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러나 그들의 아무와도 놀지 않는다. 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사도 않는다. 나는 내 아내와 인사하는 외에 누구와도 인사하고 싶지 않았다. 내 아내외의 다른 사람과 인사를 하거나 놀거나 하는 것은 내 아내 낯을 보아 좋지 않은 일인 것만 같이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만큼까지 내 아내를 소중히 생각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내 아내를 소중히 생각한 까닭은 이 33번지 18가구 속에서 내 아내가 내 아내의명함처럼 제일 작고 제일 아름다운 것을 안 까닭이다. 18가구에 각기 빌어들은 송이송이 꽃들 가운데서도 내 아내가 특히 아름다운 한 떨기의 꽃으로 이 함석지붕 밑 볕 안 드는 지역에서 어디까지든지 찬란하였다. 따라서 그런 한 떨기 꽃을 지키고 - 아니 그 꽃에 매어달려 사는 나라는 존재가 도무지 형언 할 수 없는 거북살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나는 어디까지든지 내 방이 - 집이 아니다. 집은 없다. - 마음에 들었다. 방안의 기온은 내 체온을 위하여 쾌적하였고, 방안의 침침한 정도가 또한 내 안력을 위하여 쾌적하였다. 나는 내 방 이상의 서늘한 방도 또 따뜻한 방도 희망하지 않았다. 이 이상으로 밝거나 이 이상으로 아늑한 방은 원하지 않았다. 내 방은 나 하나를 위하여 요만한 정도를 꾸준히 지키는 것 같아 늘 내 방에 감사하였고, 나는 또 이런 방을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 같아서 즐거웠다. 그러나 이것은 행복이라든가 불행이라든가 하는 것을 계산하는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나는 내가 행복 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그렇다고 불행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그날을 그저 까닭 없이 펀둥펀둥 게으르고 만 있으면 만사는 그만 이었던 것이다. 내 몸과 마음에 옷처럼 잘 맞는 방 속에서 뒹굴면서, 축 쳐져있는 것은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그런 세속적인 계산을 떠난, 가장 편리하고 안일한 말하자면 절대적인 상태인 것이다. 나는 이런 상태가 좋았다. 이 절대적인 내 방은 대문간에서 세어서 똑 일곱째 칸이다. 럭키세븐의 뜻이 없지 않다. 나는 이일 곱이라는 숫자를 훈장처럼 사랑하였다. 이런 이 방이 가운데 장지로 말미암아 두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는 그것이 내 운명의 상징이었던 것을 누가 알랴? 아랫방은 그래도 해가 든다. 아침결에 책보만한 해가 들었다가 오후에 손수건만해지면서 나가버린다. 해가 영영 들지 않는 윗방이 즉 내 방인 것은 말 할 것도 없다. 이렇게 볕드는 방이 아내 방이요, 볕 안 드는 방이 내방이요 하고 아내와 나 둘 중에 누가 정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불평이 없다. 아내가 외출만 하면 나는 얼른 아랫방으로 와서 그 동쪽으로 난 들창을 열어 놓고 열어 놓으면 들이 비치는 햇살이 아내의 화장대를 비쳐가지 각 색병들이 아롱이지면서 찬란하게 빛나고, 이렇게 빛나는 것을 보는 것은 다시없는 내 오락이다. 나는 조그만 돋보기를 꺼내가지고 아내만이 사용하는 지리가미를 꺼내가지고 그을려가면서 불장난을 하고 논다. 평행광선을 굴절시켜서 한 초점에 모아가지고 그 초점이 따근따근 해지다가, 마지막에는 종이를 그을리기 시작하고, 가느다란 연기를 내면서 드디어 구멍을 뚫어 놓는 데까지 이르는, 고 얼마 안 되는 동안의 초조한 맛이 죽고 싶을 만큼 내게는 재미있었다. 이 장난이 싫증이 나면 나는 또 아내의 손잡이거울을 가지고 여러 가지로 논다. 거울이란 제 얼굴을 비칠 때만 실용품이다. 그 외의 경우에는 도무지 장난감인 것이다. 이 장난도 곧 싫증이 난다. 나의 유희심은 육체적인 데서 정신적인 데로 비약 한다. 나는 거울을 내던지고 아내의 화장대 앞으로 가까이 가서 나란히 늘어 놓인 그 가지각색의 화장품 병들을 들여다본다. 고것들 은 세상의 무엇보다도 매력적이다. 나는 그 중의 하나만을 골라서 가만히 마개를 빼고 병 구멍을 내 코에 가져다 대고 숨죽이듯이 가벼운 호흡을 하여본다. 이국적인 센슈얼한 향기가 폐로 스며들면 나는 저절로 스르르 감기는 내 눈을 느낀다. 확실히 아내의 체취의 파편이다. 나는 도로 병마개를 막고 생각해본다. 아내의 어느 부분에서 요 냄새가 났던가를…… 그러나 그것은 분명하지 않다. 왜? 아내의 체취는 여기 늘어섰는 가지각색 향기의 합계일 것이니까. 아내의 방은 늘 화려하였다. 내방이 벽에 못 한 개 꽂히지 않은 소박한 것인 반대로, 아내 방에는 천장 밑으로 쫙 돌려 못이 박히고, 못마다 화려한 아내의 치마와 저고리가 걸렸다. 여러 가지 무늬가 보기 좋다. 나는 그 여러 조각의 치마에서 늘 아내의 동체와, 그 동체가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포우즈를 연상하고 연상하면서 내 마음은 늘 점잖지 못하다. 그렇건만 나에게는 옷이 없었다. 아내는 내게 옷을 주지 않았다. 입고 있는 골덴양복한벌이 내 자리옷이었고 통상복과 나들이옷을 겸한 것이었다. 그리고 하이넥의 스웨터가 한 조각 사철을 통한 내 내의다. 그것 들은 하나같이 다 빛이 검다. 그것은 내 짐작같아서는 즉 빨래를 될 수 있는 데까지 하지 않아도 보기 싫지 않게 하기위한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허리와 두 가랑이 세 군데다 - 고무밴드가 끼어있는 부드러운 사루마다를 입고 그리고 아무 소리 없이 잘 놀았다. 어느덧 손수건 만해졌던 볕이 나갔는데 아내는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요만 일에도 좀 피곤하였고 또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내방으로 가 있어야 될 것을 생각하고 그만 내방으로 건너간다. 내방은 침침하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낮잠을 잔다. 한 번도 걷은 일이 없는 내 이부자리는 내 몸뚱이의 일부분처럼 내게는 참 반갑다. 잠은 잘 오는 적도 있다. 그러나 또 전신이 까칫까칫하면서 영 잠이 오지 않는 적도 있다. 그런 때는 아무 제목으로나 제목을 하나 골라서 연구하였다. 나는 내 좀 축축한 이불 속에서 참 여러 가지 발명도 하였고 논문도 많이 썼다. 시도 많이 지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가 잠이 드는 것과 동시에 내 방에 담겨서 철철 넘치는 그 흐늑흐늑한 공기에다 비누처럼 풀어져서 온데 간데 없고, 한잠 자고 깨인 나는 속이 무명헝겊이나 메밀껍질로 띵띵 찬 한 덩어리 베개와도 같은 한 벌 신경이었을 뿐이고 뿐이고 하였다. 그러기에 나는 빈대가 무엇보다도 싫었다. 그러나 내방에서는 겨울에도 몇 마리의 빈대가 끊이지 않고 나왔다. 내게 근심이 있었다면 오직 이 빈대를 미워하는 근심일 것이다. 나는 빈대에게 물려서 가려운 자리를 피가 나도록 긁었다. 쓰라리다. 그것은 그윽한 쾌감에 틀림없었다. 나는 혼곤히 잠이 든다. 나는 그러나 그런 이불 속의 사색생활에서도 적극적인 것을 궁리하는 법이 없다. 내게는 그럴 필요가 대체 없었다. 만일 내가 그런 좀 적극적인 것을 궁리해내었을 경우에 나는 반드시 내 아내와 의논하여야 할 것이고, 그러면 반드시 나는 아내에게 꾸지람을 들을 것이고 - 나는 꾸지람이 무서웠다느니보다는 성가셨다. 내가 제법 한 사람의 사회인의 자격으로 일을 해보는 것도 아내에게 사설 듣는 것도 나는 가장 게으른 동물처럼 게으른 것이 좋았다. 될 수만 있으면 이 무의미한 인간의 탈을 벗어 버리고도 싶었다. 나에게는 인간사회가 스스러웠다. 생활이 스스러웠다. 모두가 서먹서먹할 뿐이었다. 아내는 하루에 두 번 세수를 한다. 나는 하루 한 번도 세수를 하지 않는다. 나는 밤 중 세시나 네시쯤 해서 변소에 갔다. 달이 밝은 밤에는 한참씩 마당에 우두커니 섰다가 들어오곤 한다. 그러니까 나는 이 18가구의 아무와도 얼굴이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 18가구의 젊은 여인네 얼굴들을 거반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 아내만 못하였다. 열한시쯤 해서 하는 아내의 첫 번 세수는 좀 간단하다. 그러나 저녁 일곱시쯤 해서 하는 두 번째 세수는 손이 많이 간다. 아내는 낮에 보다도 밤에 더 좋고 깨끗한 옷을 입는다. 그리고 낮에도 외출하고 밤에도 외출하였다. 아내에게 직업이 있었던가? 나는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만일 아내에게 직업이 없었다면 같이 직업이 없는 나처럼 외출 할 필요가 생기지 않을 것인데 - 아내는 외출한다. 외출할 뿐만 아니라 내객이 많다. 아내에게 내객이 많은 날은 나는 온종일 내방에서 이불을 쓰고 누워 있어야만 된다. 불장난도 못 한다. 화장품냄새도 못 맡는다. 그런 날은 나는 의식적으로 우울해 하였다. 그러면 아내는 나에게 돈을 준다. 오십 전짜리 은화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그러나 그것을 무엇에 써야 옳을지 몰라서 늘 머리맡에 던져두고 한 것이 어느 결에 모여서 꽤 많아졌다. 어느 날 이것을 본 아내는 금고처럼 생긴 벙어리를 사다준다. 나는 한푼씩 한푼씩 그 속에 넣고 열쇠는 아내가 가져갔다. 그 후에도 나는 더러 은화를 그 벙어리에 넣은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게을렀다. 얼마 후 아내의 머리쪽에 보지 못하던 누깔잠이 하나 여드름처럼 돋았던 것은 바로 그 금고형 벙어리의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증거일까. 그러나 나는 드디어 머리맡에 놓았던 그 벙어리에 손을 대지 않고 말았다. 내 게으름은 그런 것에 내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싫었다. 아내에게 내객이 있는 날은 이불 속으로 암만 깊이 들어가도 비오는 날만큼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나는 그런 때 나에게 왜 늘 돈이 있나 왜 돈이 많은 가를 연구했다. 내객들은 장지 저쪽에 내가 있는 것을 모르나 보다. 내 아내와 나도 좀 하기 어려운 농을 아주 서슴지 않고 쉽게 해 던지는 것이다. 그러나 내 아내를 찾은 서 너 사람의 내객들은 늘 비교적 점잖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자정이 좀 지나면 으레 돌아들 갔다. 그들 가운데에는 퍽 교양이 얕은 자도 있는 듯싶었는데, 그런 자는 보통 음식을 사다먹고 논다. 그래서 보충을 하고 대체로 무사하였다. 나는 우선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연구하기에 착수하였으나 좁은 시야와 부족한 지식으로는 이것을 알아내기 힘이 든다. 나는 끝끝내 내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말려나보다. 아내는 늘 진솔버선만 신었다. 아내는 밥도 지었다. 아내가 밥을 짓는 것을 나는 한 번도 구경한 일은 없으나 언제든지 끼니때면 내방으로 내 조석밥을 날라다 주는 것이다. 우리 집에는 나와 내 아내외의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밥은 분명 아내가 손수 지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내는 한 번도 나를 자기 방으로 부른 일은 없다. 나는 늘 웃방에서 나 혼자서 밥을 먹고 잠을 잤다. 밥은 너무 맛이 없었다. 반찬이 너무 엉성하였다. 나는 닭이나 강아지처럼 말없이 주는 모이를 넓적넓적 받아먹기는 했으나 내심 야속하게 생각한 적도 더러 없지 않다. 나는 안색이 여지없이 창백해 가면서 말라 들어갔다. 나날이 눈에 보이듯이 기운이 줄어들었다. 영양부족으로 하여 몸뚱이 곳곳의 뼈가 불쑥불쑥 내어 밀었다. 하룻밤 사이에도 수 십차를 돌쳐 눕지 않고는 여기저기가 배겨서 나는 배겨낼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이불 속에서 아내가 늘 흔히 쓸 수 있는 저 돈의 출처를 탐색해내는 일변 장지 틈으로 새어 나오는 아랫방의 음성은 무엇일까를 간단히 연구하였다. 나는 잠이 잘 안 왔다. 깨달았다. 아내가 쓰는 그 돈은 내게는 다만 실없는 사람들로밖에 보이지 않는 까닭모를 내객들이 놓고 가는 것이 틀림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왜 그들 내객은 돈을 놓고 가나? 왜 내 아내는 그 돈을 받아야 되나? 하는 예의 관념이 내게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저 예의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혹 무슨 댓가 일까? 보수일까? 내 아내가 그들의 눈에는 동정을 받아야만할 한 가엾은 인물로 보였던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노라면 으레 내 머리는 그냥 혼란하여 버리고 버리고 하였다. 잠들기 전에 획득했다는 결론이 오직 불쾌하다는 것뿐이었으면서도 나는 그런 것을 아내에게 물어보거나 한 일이 참 한 번도 없다. 그것은 대체 귀찮기도 하려니와 한 잠자고 일어나는 나는 사뭇 딴 사람처럼 이것도 저것도 다 깨끗이 잊어버리고 그만두는 까닭이다. 내객들이 돌아가고, 혹 외출에서 돌아오고 하면 아내는 간편한 것으로 옷을 바꾸어 입고 내방으로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이불을 들치고 내 귀에는 영 생동생동한 몇 마디말로 나를 위로하려 든다. 나는 조소도 고소도 홍소도 아닌 웃음을 얼굴에 띠고 아내의 아름다운 얼굴을 쳐다본다. 아내는 방그레 웃는다. 그러나 그 얼굴에 떠도는 일말의 애수를 나는 놓치지 않는다. 아내는 능히 내가 배 고파 하는 것을 눈치 챌 것이다. 그러나 아랫방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나에게 주려 들지는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든지 나를 존경하는 마음일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배가 고프면서도 적이 마음이 든든한 것을 좋아했다. 아내가 무엇이라고 지껄이고 갔는지 귀에 남아 있을 리가 없다. 다만 내 머리맡에 아내가 놓고 간 은화가 전등불에 흐릿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다. 금고형 벙어리 속에 은화가 얼마만큼이나 모였을까? 나는 그러나 그것을 쳐들어 보지 않았다. 그저 아무런 의욕도 기원도 없이 그 단춧구멍처럼 생긴 틈바구니로 은화를 떨어뜨려 둘 뿐이었다. 왜 아내의 내객들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나 하는 것이 풀 수 없는 의문인 것 같이, 왜 아내는 나에게 돈을 놓고 가나 하는 것도 역시 나에게는 똑같이 풀 수 없는 의문이었다. 내 비록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 싫지 않았다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고것이 내 손가락 닿는 순간에서부터 고 벙어리주둥이에서 자취를 감추기까지의 하잘것없는 짧은 촉각이 좋았달 뿐이지 그 이상 아무 기쁨도 없다. 어느 날 나는 고 벙어리를 변소에 갖다 넣어 버렸다. 그 때 벙어리 속에는 몇 푼이나 되는지 모르겠으나 고 은화들이 꽤 들어 있었다. 나는 내가 지구위에 살며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지구가 질풍신뢰의 속력으로 광대무변의 공간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참 허망하였다. 나는 이렇게 부지런한 지구위에서는 현기증도 날 것 같고 해서 한시바삐 내려버리고 싶었다. 이불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난 뒤에는 나는 고 은화를 고 벙어리에 넣고 하는 것조차 귀찮아졌다. 나는 아내가 손수 벙어리를 사용하였으면 하고 생각하였다. 벙어리도 돈도 사실은 아내에게만 필요한 것이지 내게는 애초부터 의미가 전연 없는 것이었으니까 될 수만 있으면 그 벙어리를 아내는 아내 방으로 가져갔으면 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아내는 가져가지 않는다. 나는 내가 아내 방으로 가져다 둘까하고 생각하여 보았으나 그 즈음에는 아내의 내객이 워낙 많아서 내가 아내 방에 가볼 기회가 도무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변소에 갖다 집어 넣어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서글픈 마음으로 아내의 꾸지람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내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않았을 뿐 아니라 여전히 돈은 돈대로 머리맡에 놓고 가지 않나! 내 머리맡에는 어느덧 은화가 꽤 많이 모였다. 내객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일종의 쾌감 - 그 외의 다른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을 나는 또 이불 속에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쾌감이라면 어떤 종류의 쾌감일까를 계속하여 연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불 속의 연구로는 알 길이 없었다. 쾌감, 쾌감, 하고 나는 뜻 밖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만 흥미를 느꼈다. 아내는 물론 나를 늘 감금하여 두다시피 하여 왔다. 내게 불평이 있을 리 없다. 그런 중에도 나는 그 쾌감이라는 것의 유무를 체험하고 싶었다. 나는 아내의 밤 외출 틈을 타서 밖으로 나왔다. 나는 거리에서 잊어버리지 않고 가지고 나온 은화를 지폐로 바꾼다. 오 원이나 된다.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나는 목적지를 잃어버리기 위하여 얼마든지 거리를 쏘다녔다. 오래간만에 보는 거리는 거의 경이에 가까울 만큼 내 신경을 흥분시키지 않고는 마지않았다. 나는 금시에 피곤하여 버렸다. 그러나 나는 참았다. 그리고 밤이 이슥하도록 까닭을 잃어버린 채 이 거리 저 거리로 지향 없이 헤매었다. 돈은 물론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돈을 쓸 아무엄두도 나서지 않았다. 나는 벌써 돈을 쓰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았다. 나는 과연 피로를 이 이상 견디기가 어려웠다. 나는 가까스로 내 집을 찾았다. 나는 내방을 가려면 아내 방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아내에게 내객이 있나 없냐를 걱정하면서 미닫이 앞에서 좀 거북살스럽게 기침을 한 번 했더니, 이것은 참 또 너무도 암상스럽게 미닫이가 열리면서 아내의 얼굴과 그 등 뒤에 낯 설은 남자의 얼굴이 이쪽을 내다보는 것이다. 나는 별안간 내어 쏟아지는 불빛에 눈이 부셔서 좀 머뭇머뭇 했다. 나는 아내의 눈초리를 못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모른 체하는 수밖에 없었다. 왜? 나는 어쨌든 아내의 방을 통과하지 아니하면 안 되니까…….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무엇보다도 다리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불속에서는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암만해도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걸을 때는 몰랐더니 숨이 차다. 등에 식은땀이 쭉 내배인다. 나는 외출한 것을 후회 하였다. 이런 피로를 잊고 어서 잠이 들었으면 좋았다. 한 잠 잘 자고 싶었다. 얼마동안이나 비스듬히 엎드려있었더니 차츰차츰 뚝딱거리는 가슴 동계가 가라앉는다. 그만해도 우선 살 것 같았다. 나는 몸을 들쳐 반듯이 천장을 향하여 눕고 쭈욱 다리를 뻗었다. 그러나 나는 또다시 가슴의 동계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아랫방에서 아내와 그 남자의 내 귀에도 들리지 않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는 기척이 장지 틈으로 전하여 왔던 것이다. 청각을 더 예민하게 하기위하여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숨을 죽였다. 그러나 그때는 벌써 아내와 남자는 앉았던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섰고 일어서면서 옷과 모자 쓰는 기척이 나는 듯 하더니 이어 미닫이가 열리고 구두뒤축소리가 나고 그리고 뜰에 내려서는 소리가 쿵 하고나면서 뒤를 따르는 아내의 고무신 소리가 두어 발짝 찍찍 나고 사뿐사뿐 나나하는 사이에 두 사람의 발소리가 대문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아내의 이런 태도를 본 일이 없다. 아내는 어떤 사람과도 결코 소곤거리는 법이 없다. 나는 웃방에서 이불을 쓰고 누웠는 동안에도 혹 술이 취해서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 내객들의 담화는 더러 놓치는 수가 있어도 아내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말소리는 일찍이 한 마디도 놓쳐본 일이 없다. 더러 내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있어도 나는 그것이 태연한 목소리로 내 귀에 들렸다는 이유로 충분히 안심이 되었다. 그렇던 아내의 이런 태도는 필시 그 속에 여간 하지 않은 사정이 있는 듯 시피 생각이 되고 내 마음은 좀 서운했으나 그 보다도 나는 좀 너무 피로해서 오늘만은 이불 속에서 아무 것도 연구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고 잠을 기다렸다. 낮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문간에 나간 아내도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흐지부지 나는 잠이 들어버렸다. 꿈이 얼쑹덜쑹 종을 잡을 수 없는 거리의 풍경을 여전히 헤매었다. 나는 몹시 흔들렸다. 내객을 보내고 들어온 아내가 잠든 나를 잡아 흔드는 것이다. 나는 눈을 번쩍 뜨고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내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다. 나는 좀 눈을 비비고 아내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노기가 눈초리에 떠서 얇은 입술이 바르르 떨린다. 좀처럼 이 노기가 풀리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벼락이 내리기를 기다린 것이다. 그러나 쌔근 하는 숨소리가 나면서 부스스 아내의 치맛자락소리가 나고 장지가 여닫히며 아내는 아내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몸을 돌쳐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개구리처럼 엎드리고 엎드려서 배가 고픈 가운데도 오늘밤의 외출을 또 한 번 후회 하였다. 나는 이불 속에서 아내에게 사죄하였다. 그것은 네 오해라고…… 나는 사실 밤이 퍽으나 이슥한 줄만 알았던 것이다. 그것이 네 말마따나 자정 전인지는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너무 피곤하였다. 오래간만에 나는 너무 많이 걸은 것이 잘못이다. 내 잘못이라면 잘못은 그것밖에 없다. 외출은 왜 하였더냐고? 나는 그 머리맡에 저절로 모인 오 원 돈을 아무에게라도 좋으니 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내 잘못이라면 나는 그렇게 알겠다. 나는 후회하고 있지 않나? 내가 그 오 원 돈을 써버릴 수가 있었던들 나는 자정 안에 집에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리는 너무 복잡하였고 사람은 너무도 들끓었다. 나는 어느 사람을 붙들고 그 오 원 돈을 내어 주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여지없이 피곤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좀 쉬고 싶었다. 눕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없이 집으로 돌아 온 것이다. 내 짐작같아서는 밤이 어지간히 늦은 줄만 알았는데, 그것이 불행히도 자정 전이었다는 것은 참 안 된 일이다. 미안한 일이다. 나는 얼마든지 사죄하여도 좋다. 그러나 종시 아내의 오해를 풀지 못하엿다 하면 내가 이렇게까지 사죄하는 보람은 그럼 어디있나? 한심하였다. 한 시간동안을 나는 이렇게 초조하게 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이불을 홱 젖혀버리고 일어나서 장지를 열고 아내 방으로 비칠비칠 달려갔던 것이다. 내게는 거의 의식이라는 것이 없었다. 나는 아내 이불위에 엎드러지면서 바지포켓 속에서 그 돈 오 원을 꺼내 아내 손에 쥐어준 것을 간신히기억 할 뿐이다. 이튿날 잠이 깨었을 때 나는 내 아내 방 아내 이불 속에 있었다. 이것이 이 33번지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내가 아내 방에서 잔 맨 처음이었다. 해가 들창에 훨씬 높았는데 아내는 이미 외출하고 벌써 내 곁에 있지는 않다. 아니! 아내는 엊저녁 내가 의식을 잃은 동안에 외출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을 조사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전신이 찌뿌드드한 것이 손가락하나 꼼짝 할 힘조차 없었다. 책 보보다 좀 작은 면적의 볕이 눈이 부시다. 그 속에서 수없이 먼지가 흡사 미생물처럼 난무한다. 코가 콱 막히는 것 같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낮잠을 자기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코를 스치는 아내의 체취는 꽤 도발적이었다. 나는 몸을 여러 번 비비꼬면서 아내의 화장대에 늘어선 가지각색 화장품 병들의 마개를 뽑았을 때 풍기는 냄새를 더듬느라고 좀처럼 잠은 들지 않는 것을 나는 어찌하는 수도 없었다. 견디다 못하여 나는 그만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나서 내 방으로 갔다. 내 방에는 다 식어빠진 내 끼니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이다. 내 방에는 다 식어빠진 내 끼니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이다. 아내는 내 모이를 여기다 두고 나간 것이다. 나는 우선 배가 고팠다. 한 숟갈을 입에 떠 넣었을 때 그 촉감은 참 너무도 냉회와 같이 써늘하였다. 나는 숟갈을 놓고 내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하룻밤을 비었던 내 이부자리는 여전히 반갑게 나를 맞아준다. 나는 내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번에는 참 늘어지게 한 잠잤다. 잘 - 내가 잠을 깬 것은 전등이 켜진 뒤다. 그러나 아내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나보다. 아니! 돌아왔다 또 나갔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것을 상고하여 무엇하나? 정신이 한결 난다. 나는 밤일을 생각해 보았다. 그 돈 오 원을 아내 손에 쥐어주고 넘어졌을 때에 느낄 수 있었던 쾌감을 나는 무엇이라고 설명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객들이 내 아내에게 돈 놓고 가는 심리며 내 아내가 내게 돈 놓고 가는 심리의 비밀을 나는 알아 낸 것 같아서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나는 속으로 빙그레 웃어 보았다. 이런 것을 모르고 오늘까지 지내온 내 자신이 어떻게 우스꽝스럽게 보이는지 몰랐다. 따라서 나는 또 오늘밤에도 외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돈이 없다. 나는 또 엊저녁에 그 돈 오 원을 한꺼번에 아내에게 주어버린 것을 후회 하였다. 또 고 벙어리를 변소에 갖다 쳐 넣어버린 것도 후회 하였다. 나는 실없이 실망하면서 습관처럼 그 돈 오 원이 들어있던 내 바지포켓에 손을 넣어 한 번 휘둘러보았다. 뜻밖에도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이 있었다. 이 원 밖에 없다. 그러나 많아야 맛은 아니다. 얼마간이고 있으면 된다. 나는 그만한 것이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기운을 얻었다. 나는 그 단벌 다 떨어진 골덴 양복을 걸치고 배고픈 것도 주제 사나운 것도 다 잊어버리고 활갯짓을 하면서 또 거리로 나섰다. 나서면서 나는 제발 시간이 화살단 듯 해서 자정이 어서 홱 지나버렸으면 하고 조바심을 태웠다. 아내에게 돈을 주고 아내 방에서 자보는 것은 어디까지든지 좋았지만 만일 잘못해서 자정 전에 집에 들어갔다가 아내의 눈총을 맞는 것은 그것은 여간 무서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저물도록 길가 시계를 들여다보고 하면서 또 지향없이 거리를 방황하였다. 그러나 이날은 좀처럼 피곤하지는 않았다. 다만 시간이 좀 너무 더디게 가는 것만 같아서 안타까웠다. 경성역(京城驛)시계가 확실히 자정을 지난 것을 본 뒤에 나는 집을 향하였다. 그날은 그 일각대 문에서 아내와 아내의 남자가 이야기하고 섰는 것을 만났다. 나는 모른 체하고 두 사람 곁을 지나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아내도 들어왔다. 와서는 이 밤중에 평생 안 하던 쓰레질을 하는 것이었다. 조금 있다가 아내가 눕는 기척을 엿보자마자 나는 또 장지를 열고 아내 방으로 가서 그 돈 이 원을 아내 손에 덥석 쥐어주고 그리고 - 하여간 그 이 원을 오늘밤에도 쓰지 않고 도로 가져온 것이 참 이상하다는 듯이 아내는 내 얼굴을 몇 번이고 엿보고 - 아내는 드디어 아무 말도 없이 나를 자기 방에 재워주었다. 나는 이 기쁨을 세상의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편히 잘 잤다. 이튿날도 내가 잠이 깨었을 때는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또 내 방으로 가서 피곤한 몸이 낮잠을 잤다. 내가 아내에게 흔들려 깨었을 때는 역시 불이 들어 온 뒤였다. 아내는 자기 방으로 나를 오라는 것이다. 이런 일은 또 처음이다. 아내는 끊임없이 얼굴에 미소를 띠고 내 팔을 이끄는 것이다. 나는 이런 아내의 태도 이면에엔 간치 않은 음모가 숨어있지나 않은가하고 적이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내의 하자는 대로 아내의 방으로 끌려갔다. 아내 방에는 저녁 밥상이 조촐하게 차려져 있는 것이다. 생각하여 보면 나는 이틀을 굶었다. 나는 지금 배고픈 것까지도 긴가민가 잊어버리고 어름어름하던 차다. 나는 생각하였다. 이 최후의 만찬을 먹고 나자마자 벼락이 내려도 나는 차라리 후회하지 않을 것을. 사실 나는 인간세상이 너무나 심심해서 못 견디겠던 차다. 모든 것이 성가시고 귀찮았으나 그러나 불의의 재난이라는 것은 즐겁다. 나는 마음을 턱 놓고 조용히 아내와 마주이해 괴한 저녁밥을 먹었다. 우리 부부는 이야기하는 법이 없었다. 밥을 먹은 뒤에도 나는 말이 없이 부스스 일어나서 내 방으로 건너가 버렸다. 아내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나는 벽에 기대어 앉아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그리고 벼락이 떨어질 테거든 어서 떨어져라 하고 기다렸다. 오분! 십분! 그러나 벼락은 내리지 않았다. 긴장이 차츰 풀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어느덧 오늘밤에도 외출 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돈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돈은 확실히 없다. 오늘은 외출하여도 나중에 올 무슨 기쁨이 있나? 내 앞이 그저 아뜩하였다. 나는 화가 나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굴렀다. 금시 먹은 밥이 목으로 자꾸 치밀어 올라온다. 메스꺼웠다. 하늘에서 얼마라도 좋으니 왜 지폐가 소낙비처럼 퍼붓지 않나? 그것이 그저 한 없이 야속하고 슬펐다. 나는 이렇게밖에 돈을 구하는 아무런 방법도 알지는 못했다. 나는 이불 속에서 좀 울었나보다. 왜 없느냐면서…… 그랬더니 아내가 또 내방에를 왔다. 나는 깜짝 놀라 아마 이제야 벼락이 내리려나보다 하고 숨을 죽이고 두꺼비모양으로 엎드려있었다. 그러나 떨어진 입을 새어나오는 아내의 말소리는 참 부드러웠다. 정다웠다. 아내는 내가 왜 우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란다. 나는 실없이 깜짝 놀랐다. 어떻게 사람의 속을 환하게 들여다 보는고 해서 나는 한편으로 슬그머니 겁도 안 나는 것은 아니었으나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아마 내게 돈을 줄 생각이 있나보다, 만일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은 일일까. 나는 이불 속에 뚤뚤 말린채 고개도 들지 않고 아내의 다음 거동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옜소'하고 내 머리맡에 내려뜨리는 것은 그 가뿐한 음향으로 보아 지폐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내 귀에다 대고 오늘을랑 어제보다도 늦게 돌아와도 좋다고 속삭이는 것이다. 그것은 어렵지 않다. 우선 그 돈이 무엇보다도 고맙고 반가웠다. 어쨌든 나섰다. 나는 좀 야맹증이다. 그래서 될 수 있는대로 밝은거리로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리고는 경성역 일 이등 대합실 한 곁 티이루움에를 들렀다. 그것은 내게는 큰 발견이었다. 거기는 우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안 온다. 설사 왔다가도 곧 돌아가니까 좋다. 나는 날마다 여기 와서 시간을 보내리라 속으로 생각하여 두었다. 제일 여기 시계가 어느 시계보다도 정확하리라는 것이 좋았다. 섣불리 서투른 시계를 보고 그것을 믿고 시간 전에 집에 돌아갔다가 큰 코를 다쳐서는 안 된다. 나는 한 복스에 아무것도 없는 것과 마주앉아서 잘 끓은 커피를 마셨다. 총총한 가운데 여객들은 그래도 한잔 커피가 즐거운가 보다. 얼른얼른 마시고 무얼 좀 생각하는 것 같이 담벼락도 좀 쳐다보고 하다가 곧 나가버린다. 서글프다. 그러나 내게는 이 서글픈 분위기가 거리의 티이루움들의 그 거추장스러운 분위기보다는 절실하고 마음에 들었다. 이따금 들리는 날카로운 혹은 우렁찬 기적소리가 모오짜르트보다도 더 가깝다. 나는 메뉴에 적힌 몇 가지 안 되는 음식이름을 치읽고 내리읽고 여러 번 읽었다. 그것들은 아물아물하는 것이 어딘가 내 어렸을 때 동무들 이름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거기서 얼마나 내가 오래 앉았는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중에 객이 슬며시 뜸해지면서 이 구석 저 구석 걷어 치우기시작하는 것을 보면 아마 닫는 시간이 된 모양이다. 열한시가 좀 지났구나, 여기도 결코 내 안주의 곳은 아니구나, 어디 가서 자정을 넘길까? 두루 걱정을 하면서 나는 밖으로 나섰다. 비가 온다. 빗발이 제법 굵은 것이 우비도 우산도 없는 나를 고생을 시킬 작정이다. 그렇다고 이런 괴이한 풍모를 차리고 이 홀에서 어물어물하는 수도 없고 에이 비를 맞으면 맞았지 하고 그냥 나서 버렸다. 대단히 선선해서 견딜 수가 없다. 골덴옷이 젖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속속들이 스며들면서 추근거린다. 비를 맞아가면서라도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거리를 돌아다녀서 시간을 보내려 하였으나, 인제는 선선해서 이 이상은 더 견딜 수가 없다. 오한이 자꾸 일어나면서 이가 딱딱 맞부딪는다. 나는 걸음을 늦추면서 생각하였다. 오늘 같은 궂은 날도 아내에게 내객이 있을 라구?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집으로 가야겠다. 아내에게 불행히 내객이 있거든 내 사정을 하리라. 사정을 하면 이렇게 비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알아주겠지. 부리나케 와보니까 그러나 아내에게는 내객이 있었다. 나는 너무 춥고 척척해서 얼떨김에 노크하는 것을 잊었다. 그래서 나는 보면 아내가 덜 좋아할 것을 그만 보았다. 나는 감 발자국같은 발자국을 내면서 덤벙덤벙 아내 방을 디디고 내 방으로 가서 쭉 빠진 옷을 활활 벗어버리고 이불을 뒤썼다. 덜덜덜덜 떨린다. 오한이 점점 더 심해 들어온다. 여전 땅이 꺼져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만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튿날 내가 눈을 떴을 때 아내는 내 머리맡에 앉아서 제법 근심스러운 얼굴이다. 나는 감기가 들었다. 여전히 으스스 춥고 또 골치가 아프고 입에 군침이 도는 것이 씁쓸하면서 다리팔이 척 늘어져서 노곤하다. 아내는 내 머리를 쓱 짚어 보더니 약을 먹어야지 한다. 아내 손이 이마에 선뜻 한 것을 보면 신열이 어지간한 모양인데 약을 먹는다면 해열제를 먹어야지 하고 속생각을 하자니까 아내는 따뜻한 물에 하얀 정제약 네 개를 준다. 이것을 먹고 한잠 푹 자고 나면 괜찮다는 것이다. 나는 널름 받아먹었다. 쌉싸름한 것이 짐작 같아서는 아마 아스피린인가 싶다. 나는 다시 이불을 쓰고 단번에 그냥 죽은 것처럼 잠이 들어버렸다. 나는 콧물을 훌쩍훌쩍하면서 여러 날을 앓았다. 앓는 동안에 끊이지 않고 그 정제약을 먹었다. 그러는 동안에 감기도 나았다. 그러나 입맛은 여전히 소태처럼 썼다. 나는 차츰 또 외출하고 싶은 생각이 났다. 그러나 아내는 나더러 외출하지 말라고 이르는 것이다. 이 약을 날마다 먹고 그리고 가만히 누워있으라는 것이다. 공연히 외출을 하다가 이렇게 감기가 들어서 저를 고생시키는 게 아니란다. 그도 그렇다. 그럼 외출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그 약을 연복하여 몸을 좀 보해 보리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나는 날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이나 낮이나 잤다. 유난스럽게 밤이나 낮이나 졸려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잠이 자꾸만 오는 것은 내가 몸이 훨씬 튼튼해진 증거라고 굳게 믿었다. 나는 아마 한 달이나 이렇게 지냈나 보다. 내 머리와 수염이 좀 너무 자라서 후틋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내 거울을 좀 보리라고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서 나는 아내 방으로 가서 아내의 화장대 앞에 앉아 보았다. 상당하다. 수염과 머리가 참 상당하였다. 오늘은 이발을 좀 하리라고 생각하고 겸사겸사 고 화장품 병들 마개를 뽑고 이것저것 맡아 보았다. 한동안 잊어버렸던 향기 가운데서는 몸이 배배꼬일 것 같은 체취가 전해 나왔다. 나는 아내의 이름을 속으로만 한 번 불러 보았다. "연심이..."하고…… 오래간만에 돋보기 장난도 하였다. 거울장난도 하였다. 창에 든 볕이 여간 따뜻한 것이 아니었다. 생각하면 오월이 아니냐. 나는 커다랗게 기지개를 한번 켜보고 아내 베개를 내려 베고 벌떡 자빠져서는 이렇게도 편안하고 즐거운 세월을 하느님께 흠씬 자랑하여주고 싶었다. 나는 참 세상의 아무것과도 교섭을 가지지 않는다. 하느님도 아마 나를 칭찬 할 수도 처벌 할 수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다음 순간 실로 세상에도 이상스러운 것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최면약 아달린갑이었다. 나는 그것을 아내의 화장대 밑에서 발견하고 그것이 흡사 아스피린처럼 생겼다고 느꼈다. 나는 그것을 열어 보았다. 꼭 네 개가 비었다. 나는 오늘아침에 네 개의 아스피린을 먹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잤다. 어제도 그제도 그끄제도……나는 졸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감기가 다 나았는데 도……아내는 내게 아스피린을 주었다. 내가 잠이든 동안에 이웃에 불이 난 일이있다. 그때에도 나는 자느라고 몰랐다. 이렇게 나는 잤다. 나는 아스피린으로 알고 그럼 한 달 동안을 두고 아달린을 먹어 온 것이다. 이것은 좀 너무 심하다. 별안간 아뜩하더니 하마터면 나는 까무러칠 뻔하였다. 나는 그 아달린을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산을 찾아 올라갔다. 인간세상의 아무것도 보기가 싫었던 것이다. 걸으면서 나는 아무쪼록 아내에 관계되는 일은 일체 생각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길에서 까무러치기 쉬우니까다. 나는 어디라도 양지가 바른 자리를 하나 골라 자리를 잡아가지고 서서히 아내에 관하여서 연구 할 작정이었다. 나는 길가의 돌장판, 구경도 못한 진개나리꽃, 종달새, 돌멩이도 새끼를 까는 이야기, 이런 것만 생각하였다. 다행히 길가에서 나는 졸도하지 않았다. 거기는 벤치가 있었다. 나는 거기 정좌하고 그리고 그 아스피린과 아달린에 관하여 연구하였다. 그러나 머리가 도무지 혼란하여 생각이 체계를 이루지 않는다. 단 오 분이 못가서 나는 그만 귀찮은 생각이 번쩍 들면서 심술이 났다. 나는 주머니에서 가지고 온 아달린을 꺼내 남은 여섯 개를 한꺼번에 질겅질겅 씹어 먹어버렸다. 맛이 익살맞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 벤치위에 가로 기다랗게 누웠다. 무슨 생각으로 내가 그따위 짓을 했나, 알 수가 없다. 그저 그러고 싶었다. 나는 게서 그냥 깊이 잠이 들었다. 잠결에도 바위틈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졸졸하고 언제까지나 귀에 어렴풋이 들려왔다. 내가 잠을 깨었을 때는 날이 환히 밝은 뒤다. 나는 거기서 일주야를 잔 것이다. 풍경이 그냥 노오랗게 보인다. 그 속에서도 나는 번개처럼 아스피린과 아달린이생각났다. 아스피린, 아달린, 아스피린, 아달린, 마르크, 말사스, 마도로스, 아스피린, 아달린…… 아내는 한 달 동안 아달린을 아스피린이라고 속이고 내게 먹였다. 그것은 아내 방에서 이 아달린갑이 발견 된 것으로 미루어 증거가 너무나 확실하다. 무슨 목적으로 아내는 나를 밤이나 낮이나 재웠어야 됐나? 나를 밤이나 낮이나 재워놓고, 그리고 아내는 내가 자는 동안에 무슨 짓을 했나? 나를 조금씩 조금씩 죽이려던 것일까? 그러나 또 생각하여보면 내가 한 달을 두고 먹어온 것이 아스피린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무슨 근심되는 일이 있어서 밤이면 잠이 잘 오지 않아서 정작 아내가 아달린을 사용한 것이나 아닌지? 그렇다면 나는 참 미안하다.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큰 의혹을 가졌다는 것이 참 안됐다. 나는 그래서 부리나케 거기서 내려 왔다. 아랫도리가 홰홰내어저이면서 어찔어찔한 것을 나는 겨우 집을향하여 걸었다. 여덟시 가까이였다. 나는 내 잘못된 생각을 죄다 일러바치고 아내에게 사죄 하려는 것이다. 나는 너무급해서 그만 또 말을 잊어버렸다. 그랬더니 이건 참 큰일났다. 나는 내 눈으로 절대로 보아서 안 될 것을 그만 딱 보아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얼떨결에 그만 냉큼 미닫이를 닫고 그리고 현기증이 나는 것을 진정시키느라고 잠깐고개를 숙이고 눈을감고 기둥을 짚고 섰자니까, 일 초 여유도 없이 홱 미닫이가 다시 열리더니 매무새를 풀어 헤친 아내가 불쑥 내밀면서 내 멱살을 잡는 것이다. 나는 그만 어지러워서 게가 나둥그러졌다. 그랬더니 아내는 넘어진 내위에 덮치면서 내 살을 함부로 물어뜯는 것이다. 아파 죽겠다. 나는 사실 반항 할 의사도 힘도 없어서 그냥 넓적엎드려 있으면서 어떻게 되나보고 있자니까, 뒤 이어 남자가 나오는 것 같더니 아내를 한 아름에 덥석 안아가지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다소곳이 그렇게 안겨 들어가는 것이 내 눈에 여간 미운 것이 아니다. 밉다. 아내는 너 밤새워가면서 도둑질 하러다니느냐, 계집질하러 다니느냐고 발악이다. 이것은 참 너무 억울하다.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도 무지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너는 그야말로 나를 살해하려던 것이 아니냐고 소리를 한 번 꽥 질러보고도 싶었으나, 그런 긴가민가한 소리를 섣불리 입 밖에 내었다가는 무슨 화를 볼는지 알 수 없다. 차라리 억울하지만 잠자코 있는 것이 우선 상책인 듯시피 생각이 들길래, 나는 이것은 또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툭툭 떨고 일어나서 내 바지포켓속에 남은 돈 몇 원 몇 십 전전을 가만히 꺼내서는 몰래 미닫이를 열고 살며시 문지방밑에다 놓고 나서는, 나는 그냥 줄 달음박질을 쳐서 나와 버렸다. 여러 번 자동차에 치일 뻔하면서 나는 그래도 경성역으로 찾아갔다. 빈자리와 마주앉아서 이 쓰디쓴 입맛을 거두기 위하여 무엇으로나 입가심을 하고 싶었다. 커피! 좋다. 그러나 경성역 홀에 한 걸음 들여놓았을 때 나는 내 주머니에는 돈이 한 푼도 없는 것을 그것을 깜박 잊었던 것을 깨달았다. 또 아뜩하였다. 나는 어디선가 그저 맥없이 머뭇머뭇하면서 어쩔 줄을 모를 뿐이었다. 얼빠진 사람처럼 그저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면서……. 나는 어디로 어디로들 입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 시간 후에 내가 미쓰꼬시 옥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 나는 거기 아무데나 주저앉아서 내 자라온 스물여섯 해를 회고 하여보았다. 몽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는 아무 제목도 불거져 나오지 않았다. 나는 또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허리를 굽혀서 나는 그저 금붕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금붕어는 참 잘들도 생겼다. 작은놈은 작은놈대로 큰놈은 큰놈대로 다 싱싱하니 보기 좋았다. 내려 비치는 오월 햇살에 금붕어들은 그릇바탕에 그림자를 내려뜨렸다. 지느러미는 하늘하늘 손수건을 흔드는 흉내를 낸다. 나는 이 지느러미수효를 헤어보기도 하면서 굽힌 허리를 좀처럼 펴지 않았다. 등이 따뜻하다. 나는 또 오탁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서는 피곤한 생활이 똑 금붕어지느러미처럼 흐늑흐늑 허우적거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줄에 엉켜서 헤어나지들을 못한다. 나는 피로와 공복 때문에 무너져들어가는 몸뚱이를 끌고 그 오탁의 거리 속으로섞여가지 않는 수도 없다 생각하였다. 나서서 나는 또 문득 생각하여 보았다. 이 발길이 지금 어디로 향하여 가는 것인가를……그때 내 눈앞에는 아내의 모가지가 벼락처럼 내려 떨어졌다. 아스피린과 아달린. 우리들은 서로 오해하고 있느니라. 설마 아내가 아스피린대신에 아달린의 정량을 나에게 먹여 왔을까? 나는 그것을 믿을 수는 없다. 아내가 대체 그럴 까닭이 없을 것이니, 그러면나는 날밤을 새면서 도둑질을 계집질을 하였나? 정말이지 아니다. 우리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나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 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이 발길이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옳은가 이것만은 분간하기가 좀 어려웠다. 가야 하나? 그럼 어디로 가나? 이때 뚜우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관부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 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 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더날아보자꾸나.
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4. 믿음이 깊은 곳에 새와 산, 태양 숭배의 고리 아홉이나 남아도는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잊어 야삼경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김소월의 '접동새'에서) 해 지고 밤이 들면 죽은 누나의 흐느낌같은 접동새가 울어 댄다. 자신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아홉 명 남동생들의 서러운 삶을 어이한단 말인가. 표독한 계모의 시샘에 시달리다가 저승으로 간 누나는 접동새가 되어 그것도 밤마다 뒷 동산에 와 울 적에 듣는 이의 마음은 서러움의 강물로 가득하다. 사람이 죽어 어떻게 새가 될 수 있을까. 돌고 도는 삶의 윤회라면 몰라도. 새에 대한 옛 어버이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늘과 땅의 모든 사물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으며 신이 살고 있다고 믿었던 시절. 하늘로 높이 날아 올라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새는 곧 하늘의 사자이며 영혼의 상징이라고 여겼던 터. 언제나처럼 늙지 않는 저 거룩하고 위대한 해가 떠 올라 우리 삶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해서 '해'는 늘 우리들의 우러름의 표적이 되었던 것. 이른바 태양숭배가 그것이다. 그럼 해와 새는 소리로 보아 무슨 걸림이 있을까. 해의 히읗(ㅎ)과 새의 시옷(ㅅ)은 소리가 나는 자리만 다를 뿐 마찰에 따른 소리가 되기는 마찬가지. 시옷의 소리가 약해지면 히읗이 된다. 해를 드러내는 지역에 따라서는 '해-새'의 쓰임이 보인다. ('해'의 쓰임) 닷새(어제소학언해 6.64) 닷쇄(구급간이방 6.77) 엿새(五日 六日) - 해 해거름 ㅎㄷ(금강경삼가해 3.53) (새(鳥)의 방언) 새(전역) 사이(개성 서흥 수안) 생이(제주) 쌔(경산) 새다 세다 시다 셈 심 해맑다 희다 힘 헴 허옇다 하얗다 지금도 사투리말을 보면 '새-사이'이 맞걸림을 알 수 있다. 날아 다니는 새나 하늘의 해(새)가 다같이 중세국어에서는 두 홀소리로 소리를 냈으니 '사이'가 되는 셈. 하긴 하늘의 해가 하늘 땅 사이에 떠 있음이나 새가 하늘과 땅의 사이를 나르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 그럼 '사이'의 말뿌리는 무엇인가. 그건 말할 것 없이 '삿'에서 비롯한 말이요, 삿은 '삿 솟 ㅅ 섯 숫 슷 싯'의 낱말겨레를 이루어 의미의 큰 덩이를 이룬다. 'ㅅ'과 관련하여 삼국유사 의 소도(蘇塗)가 바로 거룩한 태양 숭배의 공간이었으니 하늘신 곧 태양신에게 경건한 예배를 올렸던 제의 장소가 아니던가. 달리 말하자면 일종의 솟음현상이랄까. 민속 행사 가운데 솟대 혹은 살대라 함도 태양 숭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장대 끝에 새의 모습을 만들어 올려 놓는 일이 암시하는 바 크다. 용강의 사신총이나 쌍영총 무덤에 그려져 있는 벽화를 보라. 해와 달을 새와 토끼로 드러냄을 말이다. 우리의 민속이나 상징적인 모습을 좀 더 생각해 보자. 저승으로 가는 길목에 접어들기 전 옛부터 마지막으로 상여에 실려 간다. 수많은 민초들은 그냥 가마니뙈기에 둘둘 말려 지개 위에 짐이 되어 간 게 사실이기도 하지만. 상여에는 여러가지 그림이나 간단한 나무 조각들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꽃과 물이며 용과 새가 그려져 있거나 조각되어 있다. 여기 새와 사람의 영혼은 무엇으로 드러냄일까. 이승과 저승의 사이를 이어주는 게 바로 새라고 본 것이다. 이승에서의 삶이 다하는 날 그의 넋은 다시 살아 꽃으로, 풀로, 더러는 새와 짐승으로, 더러는 흙과 모래로, 구름으로 되돌아 산다고 믿었던 옛 적을 짐작케 해 준다. 고구려에서는 한 때 벼슬하는 이들의 모자에 새깃을 꽂았으며, 백제의 금관에서도 신라 화랑의 모자에도 새깃이 꽂혀 있다. 무당의 모자에도 새깃이 있음을 보면 이 모두가 새의 신령함을 통한 '새-해(日)'의 우러름을 위한 표상일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니까 태양이 새로 드러난 셈이라면 어떨까. 삼국지를 보면 큰 새의 날개를 타고 저승으로 간다는 기록도, 상여의 새도 같은 맥락에서 짚어 볼 수 있다(以大鳥羽送死). 소리 상징으로 본 새는 철기 문화 곧 쇠그릇 문화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사투리로는 날아 다니는 새나 인류 문화에 큰 빛을 던져준 쇠그릇의 쇠나 소리의 모습이 같다. 모두가 사이 서이 시(씨)로 말을 하는바 뒤로 오면서 동음이의어가 그 모습을 조금 달리 한 것뿐이다. 생각해 보면 쇠도 나무와 돌의 사이쯤 되는 물체가 아니던가. 나무와 돌의 장점을 모두 갖춘 걸 바로 쇠라 불렀던 것. 가장 힘이 있는 태양이 쇠의 강한 특성과 맞떨어진 것이다. 태양을 가리키는 말이 바뀌어 해를 뜻하는 말에서 갈라져 '세다'가 된 것만 보아도 그럴 가능성은 있다. 푸른 하늘에 영원히 타 오르는 태양이야말로 누리의 온 목숨살이를 이끌어가는 뿌리요, 샘인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한데, 하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이 갈수록 약해져 가니 환경을 어지럽히고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질 않은가. 정신 차려야 한다. 불 꺼진 창같은 세상이 되기 전에. 기러기와 두고 온 고향 하루밤 서리김에 기러기 울어 옐 제 위루에 혼자 올라 수정렴 걷고 보니 동산에 달이 나고 북극에 별이 뵈니 임이신가 반기니 눈물이 절로 난다. (정철의 '사미인곡' 중에서) 서리는 내리고 달은 밝은데 울며 나는 기러기의 울음소리. 엄마 기러기를 따라 따뜻한 남쪽으로 왔다가 철이 되면 두고 온 그리운 고향을 찾아 떼지어 하늘을 간다. 풀이하는 이에 따라서는 바이칼 호수 부근이 기러기들의 고향이라는 이야기. 배달겨레들의 옛 조상들도 이 부근 쯤에서 살다가 차츰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중앙아시아 곧 알타이 산맥을 지나 만주와 한반도 중심의 모꼬지를 마련했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밀러. 1984. 일본어의 기원). 그래서인가, 전통적으로 혼례 때에는 반드시 전안례(奠雁禮)를 올린다. 먼저 신부집에 가면 신랑은 기러기를 예물로 바친다. 흔히 산 기러기 구하기가 어려우니까 나무로 만든 기러기 - 목안(木雁)을 쓴다. 이 때 기러기를 드는 이를 기럭아비라 한다. 기럭아비에게서 기러기를 받아든 신랑은 새를 상 위에 올려 놓고 거드는 이의 도움을 받아 두번 절을 한 뒤 신부의 어머니나 여자 하님에게 이 기러기를 넘겨 준다. 치마폭에 새를 싸서 안방으로 들어가 예를 올리고 혼례가 모두 끝이 나고 신부를 따라서 신랑네 집으로 가는 후객(後客)이 시댁으로 가져 온다. 대체 기러기는 어떤 새인가. 많은 형제를 기러기 떼가 날아가는 모양에 기대어 안항(雁行)이라 이른다. 약한 기러기를 가운데에 세워 길을 잃지 않고 따라오도록 난다. 해서 기러기의 나는 모습을 학익진(鶴翼陣)이라 하지 않는가. 의리와 우애가 있는 새가 바로 기러기인 것이다. 규합총서 에서도 기러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날 때 차례가 있다는 것. 앞에서 울면 뒤에서 화답을 하니 예(禮)스럽고 짝을 잃으면 다시 짝을 찾지 않으니 절(節)이라. 잘 때도 새들은 떼를 지어 잔다. 반드시 새 중에 한마리쯤은 곤히 자는 다른 기러기들의 망을 보느라 깨어 있으며, 낮이 되면 갈대밭에 깃들여 다른 짐승들의 공격을 피한다. 이렇게 기러기새는 슬기로우니 혼례의 본을 삼는다고 풀이한다. 밤하늘에 별이 뜨고 기러기 울어 예는 무렵이면 헤어진 형제가 그립고 저승으로 가신 어머니의 품이 눈물겹도록 그리운 것은 나 혼자만의 느낌이겠는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던 배달의 옛 조상들은 늘 그렇게 새 한마리에도 그리운 고향 산천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였던 듯하다. 두고 온 고향의 산과 물에 대한 것은 장례의 풍습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가령 '복'을 부르는 경우 흔히 초혼(招魂) 또는 촌이라 한다. 한번, 두번, 세번을 거듭하여 사람이 죽었을 때 새 옷을 지붕에 던져 올리면서 복을 부를 때면 온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가눌 길 없는 슬픔에 사로잡힌다. 복(復), 그러니까 고향의 나라에 가서 다시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부활의 신앙을 꿈꾸는 몸부림이 아니겠는가. 육신은 가도 우리의 넋은 오래 살아 저승의 또 다른 삶과 누리를 오고 간다. 근심걱정 하나도 없는, 우리의 겨레와 나라가 꿈꾸는 영원한 그리움의 정신적 공간을 향한 영원회귀의 새는 끝없이 오래오래 우리들 잠재 의식 속을 날아 와서는 아름다운 꽃노래를 들려 줄 것이다. 하여 이승을 떠나는 날, 새의 날개를 타고 푸른 하늘 은하수 건너로 날아 오를 것이 아니겠나. 새와 땅이름 우리 둘레에는 새와 걸림을 보이는 땅이름들이 여기저기 눈에 뜨인다. 더러는 까치, 까마귀, 학, 제비, 닭, 봉황새, 독수리 따위의 많은 새들이 땅이름에 끼어 아주 스스롭게 쓰임을 알 수 있다. 먼저 간단한 보기를 들어보자. 많은 분포를 보이는 것은 역시 봉(鳳) 계열이라 할 것이다. 숫놈을 봉, 암놈을 황이라 하여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스스롭게 볼 수 있는 땅이름. 실제로 봉황은 중국사람들이 생각하는 불사조라 풀이 되기도 하는데 앞에 든 모든 새의 머리가 된다. 보기로는 대봉동, 봉두동, 봉미동, 봉무동, 봉덕동, 봉곡동, 봉원리, 봉대동, 봉전, 봉정리, 봉강리, 신봉리, 봉황동 등이 있으며 말 머리에도, 말 가운데에도, 말 끝에도 옴을 쉬 알 수 있다. 닭계열은 어떤가. 먼저 신라를 계림(鷄林)이라 함은 바로 닭을 드러내는 나라 이름으로 풀이할 수 있다. 사투리말로 보면 경상도 지역에서는 닭을 '달'이라고 한다(달구집 달구통 달집 등). 하면, 계림의 림(林)도 계를 소리로 읽지 말고 뜻인 '달'로 읽으라는 달의 끝소리를 적은 것으로 보인다. 뜻으로 보면 모든 새는 수풀에 깃들이니까, 또는 사람을 숲에 비유하였으니까 림(林)을 쓴 게 아닌가 한다. 날아다니는 모든 짐승은 다 '새'라고 한다(훈몽자회). 하니까 '계림-신라'의 맞걸림을 둔 게 아닐까. 앞에 든 봉-의 경우도 물론 마찬가지이다. 계룡산이 그러하고 치악산도 같은 어름에 든다. 밑바탕은 '새'인데 드러냄의 변별성을 더하기 위하여 서로 다른 글자를 빌어 쓴 것이다. 신라의 탈해(脫解)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당시에는 유기음 곧 거센 소리가 없었으니 탈해-달해일 것이요, 해(解)를 '개'로 읽었으니 '달해 달개'의 등식이 이루어진다. 닭을 사투리로 '달 달구 달개'로 소리냄을 짚어보면 탈해가 '달구-달개-새'의 맥락이 흐름을 알게 된다. 석탈해의 석(昔)이 성으로 되기까지는 유래로 보아 까치작에서 새조(鳥)를 떼어 냈으니까, 나무상자를 풀어 헤쳤으니까 그럴 수는 있는 게 아닐까. 높다 크다의 뜻으로 쓰이기는 하지만 땅이름 가운데 달(達)- 계열이 그러한 보기라 하겠다(달구벌 달성 달천 달내 달동 달비골 월성(月城) 월배 등). 어쩐 일인지 땅이름 가운데 많은 보기를 보이는 건 학(鶴)- 계열이기도 하다(학산 학성동 학교 학다리 학동 등). 그뿐인가. 새조의 조(鳥)로 시작하는 것도 상당하질 않던가. 조치원 조령 조촌 조곡리 등이 그러한 경우라고 할 것이다. 앞에서 풀이한 바 있거니와 새와 태양은 같은 말이며 뜻이 서로 다를 뿐이다. 결국 무엇이 알맹이인가. 두 말 할 것도 없이 해를 우러러 믿는 태양숭배에서 정신문화가 피어났으며 알타이 산맥을 거쳐 일어난 청동기 곧 쇠그릇 문화가 서로 어울어져 이루어진 강력한 신흥 부족국가들의 탄생을 온 누리에 심는 얘기들이다. 소박하게 보면 태양숭배요, 영혼불멸의 영원회귀 지향의 그리움을 안아 살던 옛 한아비들의 꿈이 어린 파랑새가 바로 새의 전설이 아닌가 한다. 새와 산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지네 (김소월의 '산유화'에서) 무수히 피었다 지는 꽃이 있는 곳에 새가 운다. 새가 있으매 숲이 있고 둥지를 틀 나무들이 큰 산을 이루어 살아간다. 새와 산은 뗄 수 없다. 삼국사기를 보매 3산5악에 산제사를 모신 보기들이 나온다. 산은 솟아 있다. 가장 높이 솟은 것은 빛나는 태양이요, 그 산위를 돌아나는 구름이며 새가 있다. 신라의 경우 큰 제사는 3산 - 나력(奈歷) 골화(骨火) 혈례(穴禮)산에서, 가운데 제사는 동에 토함산, 서에 계룡산, 남에 지리산, 북에 태백산, 중앙에 팔공산에서 모셨다. 해서 모두가 지역과 나라를 지켜준다고 믿어 우러름의 대상이 되었다. 토함산은 석탈해가 스스로 산신이 되어 일본의 침략을 막고자 하였던 일로 알려져 온다. 신라의 화랑들이 명산대천을 두루 찾아 제사를 올린 것도 산악숭배요, 태양숭배로 이어지는 믿음의 고리들이라 할 것이다. 고구려, 백제에서는 산신숭배가 어떠했던가. 3월 3일 낙랑에 모여 사냥한 멧돼지와 사슴으로 하늘과 산천에 제사를 지냈으니 고구려 사람들 또한 산신숭배를 하였던 것. 몹시 가물었던지 26대 평원왕은 끼니를 줄이고 금식하면서 산천에 제사를 모셨으며, 부여왕은 산천에 제사를 올려 왕세자를 구하였다. 백제의 제5대 임금인 초고왕은 산천에 큰 단을 모아 제사를 모셨다. 요즈음도 큰 산 입구에 국사당(國師堂)이 있음을 더러 볼 수 있다. 더러는 서낭당이 있다. 글쓴이의 보기로는 이 국사당이, 서낭이 바로 산신을 모시는 제당이었을 것으로 본다. 그 안에 모신 신위(神位)를 보면 분명 호랑이를 탄 산신이다. 대개의 절간 한 모퉁이에 산신각으로 그 남겨진 모습을 볼 수 있어 쓸쓸하다. 이두식으로 읽으면 '국사'는 '굿'이 되고 뜻으로 읽으면 나라의 스승이 제의를 모시는 집이 된다. 지금이니까 그렇지 스승이란 옛말로 무당 임금 승려 선생의 여러가지 뜻으로 쓰였던 터. 삼국사기에서는 자충(慈充)을 무당으로 규정하였으니 암시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다름 아닌 산굿을 하는 곳이 국사당이요, 산신각이다. 옛부터 내림으로 지켜 온 우리의 믿음이 밖에서 들어온 외래 종교들에 떠밀려 한 쪽 모서리 그나마도 아예 없어져 버린 절간이나 산굿의 장소가 많이 있음은 우리 모두가 우리의 종교를 잘 지켜 발전시키지 못한 탓이 아니겠는가. 어차피 모든 것은 변하고 바뀌게 마련이지만, 볼품없이 되어 버린 우리의 정신문화가 너무 초라하다. 그럼 오늘날은 어떤가. 그냥 무당이라 해서 아예 산제사는 제쳐놓고 병 고치는 푸닥거리나 하고 길흉화복을 예언해 주는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되기는 마찬가지. 서낭마저도 거의 사라져 버린 게 오늘의 현실이다. 어디나 산은 스스롭게 높이 솟아 있어 우러러 보게 된다. 스승이나 솟음이나 모두 슷(솟)에서 비롯한 소리꼴로서 '사이(間)'를 뜻한다(훈몽자회). 그러니까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땅과 저 푸른 하늘 사이에 값하는 솟음현상의 상징물인 것이다. 하여 저 산은 우리들에게 언제나 저 높은 곳을 향한 믿음과 신비로운 경건함을 배우게 한다. 더러는 바람으로, 때로는 구름으로 손짓해서 말이다. 아이를 못 낳을 제, 가물어 온 나라라가 타 들어갈 때, 산신을 찾아 산치성을 드린다. 산(山)은 어머니의 품성으로 산 자나 죽은 이를 싸 안아 준다. 영원한 쉼터로서 우리들 정서 속에 자리잡고 있다. 단군신화의 하늘나라에도 거룩한 제단이었던 '소도'가 바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현재와 미래, 찰나와 영원을 이어 주는 공간이 된다. 소도의 밑바탕은 'ㅅ-솟-솔'로 이어지는 사이 곧 새의 낱말 겨레로 고리지어 짐을 생각하면 산과 새는 불가분리의 물과 고기라고 할 수 있다. 신이 내리는 나무를 주로 솔나무 - 소나무로 한 것은 이 또한 '솔-ㅅ-솟'의 걸림을 가늠케 하는 보기가 된다. 해서 산이름에도 새의 이름을 부름말로 삼는 일이 왕왕이 있어 왔다(봉황산 봉의산 응봉 치악산 계족산 계룡산 등). 평면 공간으로 볼라치면 한 지역과 다른 지역의 사이를 가르는 가름이 산으로 일어남이니 산과 새는 상당한 걸림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한라에서 백두에 이르는 경건한 믿음의 숲이 있기에, 대대로 이어 살아 온 한민족은 기어이 하나가 될 것이며, 홍익인간의 횃불을 산봉우리에 높이 들어 올릴 것이다. google is broken
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4. 믿음이 깊은 곳에 바람의 노래 - 풍요(風謠)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더라 오다 우리들이여 공덕(功德) 닦으러 오다 너도 오고 나도 오고, 나이나 성을 가림이 없이 부처의 모습을 지어 모시는 일에 공덕을 닦으러 모든 이가 모인다. 더러는 물질로, 어떤 이는 몸으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부처 바람에 모여 든다. 극락을 그리는 마음들이 앞을 다투어 모였다는 얘기. 한데 무엇이 그리도 서러웠단 말인가. 나고 죽고 병들어 늙어감이 서러웠을까. 어떤 이의 풀이처럼 절머슴으로 일하면서 먹거리 방아를 찧어야 하는 자신들의 신세에 대한 민초(民草)들의 한스러움 때문인가. 신라 선덕여왕 시절 양지(良志)라는 스님이 영묘사에 장육존상(丈六尊像)을 만들 때에 이 노래가 불리워졌다고 삼국유사 에서 일연 스님은 적고 있다. 양지 스님은 언제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단한 슬기와 솜씨를 드러낸다. 많은 절에 탑과 불상을 만들어 모심은 물론이요, 그의 글씨 또한 뛰어나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는 터. 특히 그의 지팡이는 신통력을 갖고 있으니, 지팡이 끝에 자루 하나 걸어 둔다. 지팡이가 날아가 불공하려는 이들의 집에 가서 흔들어 대면서 소리를 낸다. 하면 사람들은 시주를 하였고 자루가 차면 다시 바람을 타고 절로 되돌아 온다. 이 게 부처바람이 아니고 무엇인가. 해서 양지 스님의 지팡이 때문에 절이름도 지팡이절 - 석장사(錫杖寺)라고 일렀던 것. 서라벌의 법림사(法林寺)의 세 부처상과 인왕(仁王)이라 불리우는 금강역사도 그가 만들어낸 불교예술이었으니 그의 마음씀과 솜씨를 알 만하다. 앞서 이른 영묘사의 장육존상을 지을 때의 일이다. 조용한 가운데 온 마음을 다하여 부처의 모습을 찾아 애쓴다. 이르러 입정(入定)의 길닦이를 지나면서 바르고 맑은 마음의 상태 정수(正受)에 든다. 때 안 탄 간절한 그의 불심이 곧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영혼의 감응을 일으킨 것이다. 이르자매 이심전심(以心傳心)의 통함으로써 사람들을 감화시켰으니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는가. 바람의 노래 - 풍요에 대하여 일연 스님은 풀이를 덧붙인다. 당시는 고려조 때가 되겠지요. 시골 사람들이 방아를 찧을 때 방아노래를 불렀으니 바로 바람의 노래에서 나왔을 거라는 방아노래의 내력에 대하여 그렇게 적고 있으니. 나중에 금으로 부처의 모습을 입힐 때 곡식이 2만 3천 7백 섬이 들어 갔다는 기록. 사람들은 먹고 살기에 바쁜데, 굶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불상(佛像) 하나 하자고 그리도 많은 물질을 쓴다(?). 별로다. 별로야. 터를 닦고 공덕을 닦고 장육존상불 모실 터를 닦기 위하여 남녀노소 가림없이 사람들이 모여 와 터를 닦는다. 물론 명당터겠지 뭐. 터를 닦으면 집을 짓게 마련. 삶에 지친 이들은 절을 찾아와 마음의 평안을 얻고 장육존상의 거룩한 모습을 가슴에 새기면서 집으로 되돌아 갔을까. 해서 절은 마음의 집이요, 부처를 모신 믿음의 집이 되질 않았을까. 무얼 닦는다고 할 때 닦음은 물체 사이의 닿음을 전제로 한다. 더 나아가 밀 보리 벼 같은 곡식을 쓸어서 껍질을 벗겨내는 닦음은 바로 '대이다 닦이다'이다. 곡식을 방아에 찧는다는 것도 옛말에서는 'ㄷ다'였으니 이 또한 같은 뿌리에서 갈라 나온 '닿음'의 낱말 겨레라고 할 수 있다. 닿음의 알맹이는 '다(ㅎ)'이니 곧 땅을 이른다. 때로 '다(ㅎ)'는 '닷 - 닻 - 닫 - 달'과 같이 벌어져 나아가며 모음이 바뀌면 '덧 - 덫 - 덛 - 덜(더럽다) / 딧 - 딛 - 딜'의 말꼴들이 이루어진다. 하니까 뒤에 방아노래나 앞의 공덕 닦음의 바람노래나 흙 곡식을 다루는 '닦음'에서라면 같은 흐름의 이야기일 밖에. 부처의 길을 닦노라면 부처의 마음을 닮아 가는 것이다. 닮는다는 게 무엇인가. 물체의 어느 부분이 닳아 없어지고 걸림을 둔, 닮고자 하는 본에 가까이 가는 것이다. 자기를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서 말이다. 하긴 누구나 마음 비우기란 그리 쉽지 않음이니 여러가지 잡스럽고 모질고 사나운 걸 버리고 부처에게 더욱 가까이 가게 만든 것이다. 그 지팡이로 좋은 뜻(良志)을 향한 그리움을 가르치고 가리킨 것으로 보여 진다. 세상을 부는 바람은 여러 갈래다. 돈바람이며 우쭐대는 자리바람, 불바람이며 칼바람, 서양바람 등 실로 바람이 많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에게는 통일바람이 간절하다. 슬기의 바람이 더 값진 것은 사람답게 되어 보고자 하는 사람되기 바람이다. 온 누리를 튼튼하고 향내나게 하기 위하여는 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