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웅전 (4/4)
그러나 계양 태수가 마중나와 위왕의 편지를 바쳤다. 원수가 부모의 편지를 받은 듯 기뻐하며 뜯어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위왕은 원수께 몇 마디 알리노라. 무사히 태자님을 구했는지 근심이 되어 자리에 누으니 그리움이 병이 되었노라. 또한 원수의 근심을 덜기 위하여 모친을 편안히 모시었으니 빨리 돌아와 재회의 기쁨을 맛보기를 바라노라.> 원수는 크게 기뻐하여 사람을 시켜 위왕에게 먼저 통지케 했다. 원수가 길을 재촉하니 자사와 태수들이 줄지어 마중하는데 끊이지를 않았다. 드디어 위국 서울에 무사히 도착하니 위왕이 모든 신하를 거느리고 나와 기다렸다가 태자에 엎드려 네 번 절하고 울면서 아뢰었다. "소왕이 이제야 태자님을 뵈오니 죄가 너무나도 크옵니다." 태자가 같이 눈물을 흘리며 위로했다. "내가 살아옴은 모두 위왕의 덕이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위왕이 태자와 원수를 모시고 궁궐로 들어오니 온 백성이 춤을 추며 반겼다. 원수가 시간을 내어 모친과 장모를 뵈오니 다시 만남을 크게 즐거워했다. 이날 밤은 모든 사람들이 나와 태자를 위로하는 잔치를 베푸니 노랫소리가 백 리 밖에까지 들렸다. 이어 수고한 장졸들에게 일일이 상을 내리고 벼슬을 높였다. 이 때 연락병이 와서 알리기를 서번왕이 등창에 걸려 죽고 그의 아들이 즉위하였다 하므로 위왕과 원수가 불행히 여겼다. 원수가 가족과 같이 머물고 있는 사이 경사가 겹쳤다. 즉, 위왕의 두 딸 중에 장녀는 태자에게 시집을 가고, 차녀는 원수의 첫째 부인 장씨가 극구 추천하여 원고의 둘째 부인이 된 것이다. 또한 번국에서 데려온 금년의 모친을 찾아 모녀가 다시 만나는 기쁨을 나누게 했다. 원수는 한가한 틈을 타서 스승이신 월경대사가 계신 강선암으로 오랜만에 스승을 뵈오러 찾아갔다. 그러나 강선암은 텅텅 비었고 스승 또한 간 곳을 몰라 쓸쓸히 돌아서는 수밖에 없었다. 오는 도중에 큰 칼을 허리에 차고 말을 타고 급히 달려오는 사람을 만났다. 원수가 수상이 여기어 물으니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계량도에 귀양 간 송태자에게 사약을 내리기 위하여 보낸 사신이 넉 달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으므로 황제께서 알아보라고 하시기에 가는 길이오." 하기에, 원수가 크게 노하여 벽력같이 호통쳤다. "나는 전조의 충신 조승상의 아들 조웅이다. 역적 이두병을 따르는 무리를 어찌 살려 두겠는가!" 호통이 미처 떨어지기 전에 칼이 번뜩하더니 사신의 목이 땅 위로 굴렀다. 원수가 위나라 서울로 다시 돌아오니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대송에 속한 번양 땅 학산이란 곳에 충신들이 군사를 모아 역적 이두병을 칠 준비를 하는데 지휘자는 바로 전 한림학사 왕열이라는 것이었다. 왕열이라면 바로 원수의 모친 왕부인의 사촌이 아닌가. 이에 원수가 때가 왔음을 깨닫고 태자와 위왕 앞에 나아가 엎드려 아뢰었다. "황태자께 삼가 아뢰나이다. 역적 이두병이 대송을 빼앗은지 이미 이십 년이 지났사옵니다. 이제 각처에서 충신 열사들이 역적을 토벌하러 일어서려고 하니 소신은 앞장 서서 나라를 되찾고 역적을 멸하겠사오니 허락해 주시옵소서." 태자가 듣고 크게 기뻐하여 즉시 허락했다. "과연 충신의 후예로다. 어서 역적을 쳐서 나라를 되찾으라." 태자는 그 즉시 조웅을 대사마 겸 대원수로 봉했다. 위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정병 삼만 명을 내주며 격려했다.
원수가 학산으로 나아가 대송의 충신 열사 오천 명과 합세하니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원수가 머리에 은빛 투구를 쓰고 몸에는 금빛 갑옷을 입고 허리에는 활을 차고 천리마에 타니 오른 손에는 보검이 들려 있고 왼손에는 장창이 춤추고 있었다 이것을 본 백성들은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원수의 행군하는 법은 천병과 같구나!" 이윽고 원수가 군사들을 이끌고 번양땅에 이르니 태수로 있는 태원이 군사를 이끌고 나와 길을 막았다. 원수가 보고 우레처럼 호통쳤다. "너는 누구인데 앞길을 막느냐? 나는 대송의 충신 조웅으로 지금 역적 이두병을 치러 가는 중이다." 그러자 태원이 크게 놀라 칼을 버리고 말에서 내려와 땅에 엎드려 빌었다. "소장이 원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천병에 항거하려 했으니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용서하시고 진중에 두시오면 힘을 다해 돕겠나이다." 원수가 그 비겁함에 더욱 노해 큰소리로 꾸짖었다. "너는 이두병을 도와 갖은 나쁜 짓을 하고서도 살기를 바라느냐? 정말 음흉한 놈이로다!" 호통과 함께 칼을 내리치니 태원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이에 무기와 군량을 거두어 다시 길을 재촉하는데 사방에서 소문을 듣고 따르는 자가 헤아릴 수없이 많았다. 행군을 재촉하여 한 곳에 이르니 천여 명의 군사가 진을 치고 있어 원수가 이상하게 여겨 알아본즉 이두병의 친위대였다. 원수가 크게 성을 내어 적토마를 몰아 짓쳐들어가서 칼을 휘두르니 가을 낙엽처럼 적의 머리들이 땅에 떨어졌다. 살아남은 병사 대여섯이 겨우 도망쳐서 이두병에게 가서 아뢰었다. "조웅이 번양태수를 베고 지금 황성으로 쳐들어오는 중입니다. 어서 군사를 내어 막으소서." 황제의 지위를 빼앗고 그동안 거드름을 피우던 이두병에게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이두병이 놀라 어찌할 줄을 몰라할 때 다시 급한 전갈이 왔다. 조웅의 군사 팔십 만이 광음을 함락하고 서주를 침범 중이라는 것이었다. 이두병이 더욱 가무러치도록 놀라 급히 신하들을 모아놓고 대책을 논의하니 좌장군 장덕이 앞으로 썩 나섰다. "신의 재주는 없사오나 조웅을 폐하께 바치겠나이다." 이두병이 크게 기뻐하여 대원수의 벼슬을 내리고 많은 군사를 주어 적을 치라 했다.
한편 조원수는 군사를 이끌고 제양산에 이르러 잠시 쉬고 있었다. 이 때에 골짜기 안에서 한 장수가 군사 수백 명을 이끌고 원수 앞으로 와서 엎드려 아뢰었다. "소장은 전조의 충신 강걸의 아들 강백으로 역시 이두병 때문에 부친을 잃고 여지껏 숨어 있었나이다. 그동안 무예를 연마하고 군사 수백을 길러 떼를 기다리다가 하늘이 도와 원수를 만났으니 진중에 거두어 주옵소서." 원수가 듣고 크게 기뻐하여 강백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그대가 바로 강백인가? 그대 부인은 계량도에서 태자를 모시고 있다가 지금 위나라에 편히 있으니 안심하라." 강백이 뛸 듯이 기뻐하며 원수에게 무수히 절했다. 이에 강백으로 선봉장을 삼아 서주로 쳐들어가니 서주자사 위길대가 삼천의 군사로 길을 막았다. 원수가 선봉장 강백을 불러 명했다 ."그대의 재주를 오늘 시험할 것이니 나가 싸우라." 강백이 명을 받고 즉시 긴 창을 휘두르며 말을 몰아 위길대에 달려들었다. 위길대도 지지 않고 칼을 들어 상대하는데 불과 삼 합만에 강백의 창 끝에 목이 뚫려 죽었다. 그러자 위길대의 아들 위영이 부친의 원수를 갚겠다고 칼을 휘두르며 달려드는데 매우 용맹스러웠다. 그러나 강백의 창술은 신출 귀몰하여 십 합을 겨루다가 한 소리 크게 호통치며 창을 내지르니 왕의 목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이를 본 원수가 크게 기뻐하여 칭찬을 아끼지 아니했다. "강백의 용맹은 그 옛날 조자룡에 못지 않도다." 적진의 군사들은 자사의 부자가 허무하게 죽어 버리자 당할 수 없음을 깨닫고는 산산히 흩어져서 도망쳐 버렸다. 이에 원수가 군대를 몰아 황성 가까이 있는 관산에 도착하니 적군이 벌써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원수가 적진을 살피자 문득 한 장수가 뛰어나와 크게 호령했다. "반적 조웅은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으라!" 원수가 이를 보고 크게 성이 나 강백을 내보내어 싸우게 했다. 강백이 명을 받고 나는 듯이 달려나가 불과 오합도 되지 않아 적의 머리를 창 끝에 꿰어 돌아왔다. 그러나 이두병으로부터 대원수의 벼슬을 받은 장덕이 앞으로 나와 호통을 쳤다. "반적 조웅은 듣거라. 너는 도망쳤던 죄인으로 아직도 죄를 뉘우치지 않는구나. 내 오늘 너를 잡아 죄를 물으리라." 원수가 크게 노하여 마주 호통쳤다. "역적 장덕이 무슨 낯으로 나서느냐? 너같이 더러운 놈이 여지껏 살아 있었다니 우습구나!" 호통과 함께 내달아 칼을 풍자처럼 휘둘렀다. 장덕도 용기를 뽐내어 대항했다. 그러나 장덕이 어찌 원수의 무예와 용맹을 당해내겠는가. 삼십 합을 겨우 지탱하다가 팔을 돌려 도망쳤다. 원수가 뒤를 쫓으며 꾸짖었다. "대적은 도망가지 말고 내 칼을 받아라!" 이 순간, 도망치는 장덕 앞에 난데없이 황소만한 백호가 나타나 입을 벌려 물려고 했다. 장덕이 크게 놀라 멈칫하는 사이에 뒤쫓아온 원수의 칼이 번뜩하더니 목이 떨어졌다. 이 소식은 지체없이 이두병에게 전해졌다. 믿었던 장수가 허무하게 죽어 버리자 이두병은 간담이 서늘하여 신하들을 돌아보며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반적 조웅의 군세가 저토록 강하니 어찌할꼬?" 그러자 사마장군 추천이 앞으로 나와 여쭈었다. "장덕은 적을 얕보았다가 패했나이다. 소신이 재주는 없으나 조웅을 잡아 오겠나이다." 이두병이 크게 기뻐하며 주천으로 선봉장을 삼고 좌승상 최식에게 대원수의 직책을 내리고 군사 팔십만 명을 거느리게 했다. 한편 조원수는 군사를 몰아 위세 당당하게 들어가니 감히 맞서 싸우는 적군이 없었다. 드디어 관동땅에 이르자 적의 대원수 최식이 팔십만 명의 대병을 거느리고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조원수는 형세를 살핀 다음 초목을 의지하여 진을 쳤다. 이때 적진에서 갑자기 대포소리가 울리면서 적군에서 한 장수가 나와 소리쳤다. "반적 조웅은 발리 항변하라.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리라." 선봉장 강백이 듣고 크게 성이 나 즉시 말을 몰아 나가려고 하니 원수가 말했다. "그대는 잠시 분노를 참으라. 내게 좋은 계책이 있느니라." 하고는, 군사들에게 명해 적의 도전에 절대로 응하지 말라고 했다. 이 때 적의 대원수 최식은 원수의 진세를 유심히 살피더니 장수들을 모아 분부했다. "조웅이 초목에 의지하여 진을 쳤으니 어찌 병법을 안다 하겠는가? 그대들은 화약을 준비해 가지고 오늘밤 자정에 적지에 나아가 불을 놓아 적을 몰살시켜라. 조웅을 잡는 것은 이제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쉽도다." 같은 시각에 조원수는 강백을 불러 은밀히 명을 내렸다. "적장은 우리가 숲에 의지하여 진을 친 것을 보고 반드시 오늘 밤 불을 놓으러 올 것이다. 모든 군사를 은밀히 옮기되 소리를 내지 말라 " 과연 이날 밤 자정에 최식의 군사가 쳐들어와 사방에 불을 놓았다. 그러자 불빛이 하늘까지 치솟으며 숲을 모두 태웠다. 최식이 이를 보고 크게 기뻐했다. "이제 적은 흔적도 없이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뻐하기도 잠깐, 갑자기 대포소리가 벼락치듯이 울리며 조원수가 칼춤을 추면서 군사들의 목을 무 베듯 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사방에서 조원수의 군사가 벌떼처럼 쏟아져 나와 닥치는대로 베고 찌르니 최식의 군대를 거의 반수나 죽고 부상했다. 놀란 최식은 진문을 굳게 닫고 쥐죽은듯이 엎드려 있었다. 이에 원수가 진문 앞으로 와 크게 호통치기를 "역적은 빨리 나와 항복하라!" 하니, 뭇군졸들이 겁을 먹고 쥐구멍만 찾았다. 이에 최식이 주천을 보고 말했다. "조웅을 당해낼 장수가 없으니 항복하여 살길을 찾을 수밖에 없구려." 주천 또한 싸울 용기를 잃고 있던 터라 찬성했다. "그렇습니다. 빨리 항복하여 살길을 찾는 것만이 현명한 길입니다." 최식과 주천은 즉시 항서를 써 가지고 진문을 활짝 열고 나가 원수의 발 밑에 꿇어 엎드려 애걸했다. "소인들이 무지하여 원수의 뜻을 어겼으니 죄는 죽어도 마땅하나 원수께서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목숨만은 살려 주옵소서." 원수가 듣고 두 눈을 부릅뜨고 꾸짖었다. "너희들은 천하에 둘도 없는 간신이요, 이두병은 만고의 역적이니 어찌 살려 두겠느냐?" 호통과 함께 들어 최식과 주천의 목을 베어 적진 속으로 던지니 적의 군사들이 모두 놀라 도망해 버렸다.
한편, 이두병은 좋은 소식이 오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발군이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 와서 보고하기를,, "조웅이 대원수 최식과 주천을 죽이고 팔십 만 대병은 하나도 없이 사라졌나이다." 이두병은 너무 놀라운 소식에 넋을 잃고 신하들을 돌아보았다. "가는 군사마다 모조리 패하니 이 일을 어찌할꼬?" 한참 근심하고 있는 중에 문득 밖에서 키가 구 척에 가깝고 눈이 왕방울 같은 장수 셋이 들어와 땅에 엎드려 절하는 것이 아닌가. 이두병이 크게 의아하여 어디 사는 누구냐고 묻자 가운데 엎드린 장수가 공손히 아뢰었다. "신들은 동해에서 무예를 연마하고 있던 중 태산부자사로 간 아비가 반적 조웅의 손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나이다. 해서 부친의 원수를 갚으려고 벼르던 중 조웅이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기에 달려 왔나이다. 신들 삼형제의 이름은 일대, 이대, 삼대인데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조웅 따위는 두렵지 않사오니 반적을 치는 데 앞장서게 해주소서." 이두병이 듣고 크게 기뻐하여 즉시 군사 오십만을 내주고 일대를 대원수에 봉하고, 이대를 부원수, 삼대를 선봉장을 삼아 간곡히 부탁했다. "그대들은 힘을 다해 조웅을 잡아라. 반적을 잡아 없애면 그 공은 길이 잊지 않겠노라." 이에 일대 등 삼형제는 용기 백배하여 군사를 이끌고 곡강에 이르러 백사장에 진을 쳤다. 거기서 며칠 머물러 계책을 의논한 후, 앞으로 진군하여 서창에 도착하니 조원수가 벌써 와서 동창에 진을 치고 기다렸다. 이에 일대는 서창에 진을 치고 이대는 회음에, 삼대는 강진에 진을 쳤다. 이 때 원수의 진에 한 도사가 와서 뵙기를 청하므로 원수가 이상히 여기어 윗자리에 모시고 예의를 다해 대접했다. 그러자 도사는 소매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어 내주며 이르기를, "원수는 과연 하늘이 낸 영웅이로다. 지금 적진을 지휘하는 삼 형제는 내가 가르친 제자들인데 죄악에 빠졌도다. 원수는 이 편지에 적힌 대로 행하라. 나는 세상에 머물러 있을 사람이 아니므로 떠나노라." 하더니, 문득 종적이 보이지 않았다. 원수가 크게 의아하여 편지를 펼쳐 보니 아래와 같이 적혀 있었다. <일대의 진중에는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대의 진중에는 백마의 피를 칼에 칠하고 귀신을 쫓는 주문을 외우라. 삼대의 진중에서는 결코 삼대 왼쪽에 가까이 하지 말라.> 원수가 보고 마음속 깊이 기억해 두고 도사에게 감사했다. 이튿날 원수는 갑옷을 갖추고 말에 올라 일대의 진 앞으로 나가 크게 외쳤다. "반적은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아라." 그러나 일대는 진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않았다. 이에 원수는 말을 돌려 본진으로 돌아와 강백을 불러 주의를 주었다. "적장이 문을 열고 나오지 않으니 특히 조심하라." 이튿날이 되자 일대가 진문을 열고 나오더니 우레같이 호통쳤다. "반적 조웅은 듣거라, 네가 감히 천하를 시끄럽게 하니 오늘 너를 죽여 공을 세우겠다." 원수가 진 앞으로 나가 바라보니 일대는 키가 구 척에 쇠로 만든 갑옷을 입고 수영은 두 자고, 눈이 왕방울 같았다. 원수는 즉시 강백을 불러 일렀다. "그대는 나가 싸우되 적장이 거짓 패하여 도망치거든 절대로 뒤쫓지 말라." 강백이 나가 싸우는데 과연 일대는 삼십여 합 겨루다가 거짓 패한 척하고 달아났다. 강백은 원수의 명대로 뒤를 추격하지 않고 본진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원수가 친히 나서서 크게 호령했다. "반적 일대는 어서 나와 나의 칼을 받아라. 감히 나에게 반항 하다니 목숨이 몇 개냐?" 일대가 크게 성내어 나와 싸우니 흡사 두 마리의 호랑이가 싸우는 것 같았다. 오십여 합을 겨루다가 일대가 또 거짓 패한 척 도망치니 원수가 조롱을 퍼부었다. "너는 도망치는 공부만 배웠나 보구나." 하고는, 더 이상 싸우지 않고 본진으로 돌아와 강백에게 계책을 알려주었다. "내일 그대가 적장과 싸우되 날이 저물거든 거짓 패한 척하고 적진으로 들어가라." 이튿날 일대가 나와 여러 번 싸움을 걸었으나 원수는 진문을 굳게 닫고 나가지 않다가 저녁 무렵에야 강백에게 나가 싸우라고 했다. 강백이 일대와 싸우기를 오십여 합에 이르니 날이 완전히 저물었다. 이에 강백은 원수가 지시한 계책대로 거짓 패한 척하고 적진으로 달려드니 적의 군사들이 진문을 열어 왼쪽으로 안내했다. 크게 놀란 일대가 강백을 뒤따라 달려드니 일대의 군사들이 적장인 줄 잘못 알고 한꺼번에 달려들어 말을 때렸다. 그러자 일대의 말이 놀라서 함정에 덜어졌다. 군사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창살로 마구 찌르니 일대는 비명을 질렀다. "이놈들아, 너희대장도 모르느냐?" 군사들이 크게 놀라 불을 밝히고 자세히 보니 과연 대장인 일대였다. 이 때 조원수가 군사를 이끌고 풍우같이 덮치니 적의 군사는 모두 흩어져 달아났다. 원수와 강백이 함정 안을 들여다 보니 일대는 온몸이 창칼에 찔러 비참하게 죽어 있었다. 원수가 보고 탄식했다. "제 꾀에 제가 죽으니 참으로 미련한 놈이로다." 이에 적진의 무기와 군량을 거두고 백마를 잡아 칼에 칠하고 이대의 진으로 나아갔다.
이대는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슬피 울며 이를 갈다가 진문을 열어 나와 호통쳤다. "반적 조웅아, 너를 죽여 맏형의 원수를 갚겠다." 하고, 나는 듯이 달려들었다. 이에 원수가 맞아 싸울 때 백마의 피를 바른 칼로 치니 이대의 칼이 허공에서 날아 오다가 중도에서 막히곤 했다. 그러나 이대의 용맹은 일대보다 십 배나 강하여 백여 합을 겨루어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에 원수는 도사가 가르쳐 준 대로 귀신을 쫓는 주문을 외우며 평생의 힘을 다하여 이대의 칼을 쳤다. 그러자 이대가 깜짝 놀라며 칼을 떨어뜨렸다. 이 순간, 원수의 칼이 번쩍하더니 이대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대장이 죽자 이대의 군사들은 개미떼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다. 원수는 이대의 목을 창 끝에서 꿰어들고 승전고를 울리며 삼대의 진에 이르렀다. "서창에서 일대의 목을 베고 회음에서 이대의 머리를 베어 왔다. 삼대야, 어서 나와 칼을 받아라!" 원수가 호통치니 삼대가 크게 분노하여 창을 들고 달려 나오며 외쳤다. "너를 죽여 돌아가신 형님의 원수를 갚겠다." 원수가 맞이하여 싸우는데 도사가 일러준 대로 삼대의 오른편만 쳤다. 용과 범이 싸우듯 백여 합을 싸워도 승부가 나지 않아 원수는 약간 초조해졌다. 이를 보고 선봉장 강백이 우레같이 호통치며 달려나와 역시 삼대의 오른 편을 노리고 창을 찔렀다. 삼대가 제 아무리 재주가 용한들 두 장수를 당해 내겠는가. 강백의 창이 번뜩하더니 삼대의 말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러자 삼대가 크게 놀라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이를 본 원수가 번개처럼 내달아 삼대의 창든 손을 차니 삼대는 혼비백산하여 창을 버리고 하늘로 날아갔다. 원수도 함께 하늘로 치솟아 칼을 날려 삼대의 목을 쳤다. 그러자 한바탕 거센 바람이 일어나며 삼대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이어 진 앞에 푸른 안개가 자욱이 일어나며 두 줄기 무지개가 공중으로 뻗치는데 삼대의 왼팔 밑에 있던 날개가 날아가는 모습이었다. 삼대의 부하들은 대장이 죽자 역시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원수는 승전고를 높이 울리며 위풍당당하게 황성으로 쳐들어가니 감시 맞설 자가 없었다.
이두병은 믿었던 삼형제가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넋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신하들을 돌아보고 누가 나가서 조웅의 군사와 싸우겠냐고 물어도 나서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이날 밤에 승상 황덕이 조정의 뭇신하들을 모아놓고 은밀히 논하기를, "나라의 멸망이 눈앞에 닥쳤으니 살 길이 없다. 그대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하니, 모든 신하들이 두려운 어조로 대답했다. "우리에게 계책이 있을리 있겠습니까? 승상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황덕이 칼을 놓고 계책을 말했다. "모든 죄는 지금 황제로 있는 이두병에게 있다. 우리가 대궐에 들어가 이두병과 아들 오형제를 묶어 조웅에게 바치면 일등 공신이 될 것이니 어떠한가?" 모든 신하들이 듣고 찬성했다. "그 게책만이 우리들이 살 길입니다." 이에 황덕은 힘센 군사 육십여 명을 거느리고 대궐에 들어가 이두병과 그 아들 오형제를 묶어 수레에 싣고 조원수의 집으로 찾았다. 이 때 황성의 백성들은 조원수가 온다고 하는 말에 크게 기뻐하고 있다가 이두병이 사로잡혀 간다는 말에 모두 나와 구경하는데 그 광경이 구름 떼와 같았다. 이윽고 원수가 팔십만 대병을 몰고 황성으로 들어오니 황성의 남녀노소 모두가 뛰어나와 길에 엎드려 절하며 외쳤다. "장하고 장하구나! 하늘이 조원수를 내서 대송을 회복했구나." 원수도 감개무량하여 힘껏 백성들을 위로하며 천천히 나아갔다. 이때 황덕 이하 뭇 신하들이 이두병과 이관 이하 오형제를 수레에 싣고 와 원수 앞에 엎드려 간곡하게 여쭈었다. "소신들이 나라를 버리고 황제를 배신한 죄는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대는 이두병의 강압에 못이겨 참여한 것이옵고 날마다 송태자님을 생각하며 세월을 보내다가 천행으로 원수께서 오신다고 하였기에 이렇게 이두병 부자를 잡아 바치옵니다. 원수께서는 부디 소신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원수가 이두병을 보니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 즉시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끌어내어 엎드리게 했다. "두병아, 낯을 들어 나를 보아라. 네 죄를 생각하니 죽어도 분이 풀리지 않겠다. 태자를 귀양보내고 독약까지 내리었으니 그 죄가 어떠하며 또 나를 잡으려고 군사를 보내어 세상을 시끄럽게 했으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원수가 크게 꾸짖으니 백성과 군사들이 달려들어 마구 치고 때린다. 이두병은 견디지 못하여 비명을 지르며 외치기를, "이미 붙잡힌 신세이니 무슨 말을 하리오. 그러나 대송의 옥새를 가로치고 태자를 귀양보내 독약을 내린 것은 모두가 저들 소인배들이 의견을 낸 것이오. 또한 이 지경이 되자 저희들은 죄를 면하고자 꾀를 내어 나를 붙잡아 원수에게 바쳤으니 죄는 모두 저들에게 있지 나는 결백합니다. 원수께서는 밝히 살피십시오." 그 말이 너무 간사하므로 원수가 크게 꾸짖었다. "이 간악한 놈아! 너를 잠깐이나마 살려두는 것은 태자님을 기다리는 것이니 그렇게 알라." 이어 군사들에게 명하여 이두병과 이관의 형제를 수레에 싣고 대궐로 들어가니 백성들이 춤추며 맞이했다.
역적을 모두 토벌하자 원수는 충신들에게 황성을 지키도록 하고 위나라로 떠났다. 며칠 만에 태자 앞에 엎드려 절하며 승리한 사연을 여쭈니 태자와 위왕이 크게 기뻐하며 수고를 치하했다. 이어 가족들을 만나 다시 만난 것을 즐긴 다음 이튿날 태자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황성이 오래 비었으니 어서 환궁하시옵소서." 태자가 크게 기뻐하여 허락했다. "즉시 떠날 차비를 차려라." 그러자 위왕이 백리 밖에까지 나와 전송하면서 작별을 아쉬워했다. 태자가 환궁하시는데 강백이 군사를 거느리고 앞에 서고 원수가 태자비와 가족들을 모시고 팔십만 명의 대병을 지휘하여 가니 그 위엄은 하늘까지 덮는 듯했다. 여러 날 만에 황성에 도착하니 백성들이 모두 나와 반겼다. 태자가 환궁하여 즉시 성대한 즉위식을 가졌다. 그런 다음 이두병과 그 아들 오형제를 잡아들여 추상같이 꾸짖고 사지를 찢어 죽였다. 백성들은 역적의 시체에 침을 뱉으면서 춤을 추며 즐거워했다. 모든 일이 끝나자 모두 잔치를 열어 싸움에 나갔던 장수들을 일일이 표창하였다 .조원수를 번왕에 봉하고 부인 장씨를 왕비로, 원수의 모친은 정절부인, 장모인 위인은 정부인, 원수의 외숙부 왕열은 우승상, 강백의 부친은 좌승상에 임명하였다. 또한 이번 싸움에 특히 공이 큰 강백에게는 대사마 겸 대원수로 봉하고 나머지 장수들에게도 공을 따라 벼슬을 내리고 군졸들에게도 많은 상금을 내리니 모두들 성은에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이두병을 도운 전조의 신하들을 모두 잡아들여 크게 꾸짖기를, "너희는 간사한 무리로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무리를 내 어찌 살려 두겠느냐?" 하시고 능지처참해 버렸다. 이윽고 번왕이 된 조웅이 번국으로 떠나는 날이 되니 황제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며 작별을 아쉬워했다. "짐이 그대의 충성을 생각할 때 번국으로 보낼 수는 없다. 이 천하가 어찌 짐 혼자의 천하인가." 번왕이 섬돌 아래 엎드려 공손히 아뢰었다. "황제께서 귀하신 몸으로 만 리 밖에 귀양살이하신 것은 오로지 저희 신하의 잘못이옵니다. 이제 역적으로 무찌르고 다시 나라를 세웠으니, 다시는 간신들이 날뛰지 못하게 미리 방비해야만 할 것입니다. 소왕도 어서 임지로 가서 오랑캐가 준동하지 못하도록 미리 방비하겠나이다." 황제가 매우 기뻐하시며 당부했다. "짐이 그대를 만 리 밖으로 보내고 어찌 잠시라도 잊겠는가?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짐을 보러 오도록 하라." 번왕이 엎드려 가족들을 이끌고 번국으로 떠났다. 새 황제가 즉위한 후로는 해마다 풍년이 들어 백성들이 태평세월을 마음껏 즐겼다. 대송 제일 충신 조웅은 번왕이 되어 임지에 귀임하는 즉시 백성들을 따뜻이 보살피어 만민이 태평가를 부르며 찬양했다. 매년 한 번씩 황성으로 올라 그 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즐기니 보는 사람마다 번왕 조웅의 충성을 기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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