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1. 강은 우리의 어머니 - 압록강과 오리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갑산(三水甲山) 가는 길은 고개의 길 (김소월의 '산(山)'에서) 눈 덮인 산과 끝 없는 고갯길을 새들이 힘겨워 울고 넘는다. 삼수갑산(三水甲山). 본 이름은 갑산의 삼수이다. 산이 깊고 험하여, 물 때문에 깊고 깊은 산골의 부름말로 쓰인다. '에라 모르겠다 내일 삼수갑산을 갈망정 오늘 하고 만다는 식'. 삼수(三水)는 백두산 천지에 샘을 둔 압록강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오리의 머리처럼 물이 유난스레 푸르다. 해서 압록강이란다(水色似鴨頭). 하늘도 산도 그 사이를 흐르는 압록강도 푸르다 해서 청하(靑河)가 되었을까. 푸른 산빛에 물든 청산이 어디 압록강뿐이랴. 한자를 글자의 소리로 읽을 수도 뜻으로 읽을 수도 있다. 중국말로는 압록을 '알루'라 한다. 한강을 달리 아리수(阿利水)라 하거니와 알맹이의 '알'과 같은 뜻으로 새기기도 한다. 한편 오리압(鴨)의 오리를 따서 읽을 수도 있다. 통감집람주(註) 에서는 '오라(烏刺)'로 적고 있다. 정인보(1941)는 조선사연구 에서 압록강과 송화강을 '아리가람'으로 읽었거니와 천소영(1990. 고대국어의 어휘 연구)에서는 '아래 앞 남쪽'의 공간적 방위로 다시 '아리'는 시간적 개념으로 전의되었다(멀다 길다 어제)고 풀이한다. 글쓴이는 압록강을 고유한 우리말로 당시의 '오리강'으로 읽었을 것으로 상정한다. 오리는 중세국어에서 '올히(신증유합 상12)'였다. 이 말을 잘게 쪼가르면 '올(ㅎ)'에 사물 접미사 '- 이'가 녹아 붙어 이루어진 말이다. 하면 '올(ㅎ)'은 무슨 뜻일까. 높게 솟아 오르는 움직임을 '오르다'라고 한다. 중세국어에서는 오르다를 '올다(上)(석보상절 6 3)'로 적기도 한다. 이제 '오리 올'이 '위'임을 앞 세워 '오리'를 풀이해 본다. '올'이 위니까 오리는 '물 위에 떠 있는 새'란 뜻이 되지 않는가. 그러니까 압록강은 오리강이요, 오리가람은 '위강' 또는 '머리가람'이란 말이 된다. 790키로. 거의 2천리가 되는 한국에서 제일로 긴 강이요, 백두산에서 흐르니 제일 높은 강이 될 밖에. 옛부터 압록강은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워 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따르자면, 압록강 압강 청하 용만(龍灣) 마자강 패강의 이름이 적혀 있다. 패강의 경우, 대동강 부분에서 살펴 보았듯이 중국과 경계를 이루는 한국의 내(韓水名)를 속으로 풀이하였다. 마자강 또한 예외는 아니다. 우리말로 '맏이강 - 맏강(머리강)'이 아닌가 한다. 한자의 뜻으로 보아도 그러하다. 마자의 '자'가 '한계선'을 뜻하는 것인데 중국과의 경계임을 알 수 있다. 김기빈(1990) 에서는 ‘마'를 남쪽으로 보아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물로 풀이하였다. 그럼 용만(龍灣)의 경우는 어떠한가. 큰 산이나 강이 있으면 그와 걸림을 보이는 이름이 많이 있다(예> 한강 한양 한양대학교 남한산성 등). 마찬가지로 용만은 구룡연(九龍淵)의 용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보인다. 용신앙과 관련한 용계열의 이름은 흔히 있다. 용만을 그대로 용틀임으로 풀이한 보기도 있음은 재미로운 일이다. 평안도의 의주는 본디 이름이 용만이었다. 물신을 숭배하는 일종의 물신앙이요, 불교적인 빛깔이 아주 짙게 드리워져 있다. 위화도(威化島)의 회한 나라의 경계 험하기도 하여라 하늘이 내린 천혜의 웅걸함 세 강물 하도 깊어 헤아릴 길이 없는데 이 한길 멀어 통하기 어렵다네 요동을 돌아 중국으로 가자매 압록강을 건너야 한다. 조선조의 권근(權近)이 강을 건너면서 지은 글이다. 의주의 북쪽에서 강은 세 갈래로 되어 흐르나니 구룡연, 서강, 소서강이 그것이다. 세 갈래는 다시 어우러져 큰 가람을 이루고 위화도를 에둘러 암림곶 미륵당에 이르러 적강(狄江)과 합하여 대총강이 되어 바다에 든다. 위화도(威化島). 생각만해도 속이 끓는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잘못 돌아 악순환의 고리들이 끊일 날이 없질 않았는가. 어렵고 힘이 들더라도 위화도에서 요동반도로 올라서 말만 달리면 되는 그 결정적인 시기에 무슨 놈의 말도 안되는 명나라 사대주의를 앞 세워 되돌아 서다니. 그 때만 해도 양자강의 남경에서 이제 막 원나라를 몽고로 내몰고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요동까지 방비할 충분한 힘이 없었다. 말을 타고 구원병이 요동까지 오자면 한 달 이상 걸리니까. 최영 장군은 새로 일어난 명나라와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야 말로 잃어버린 민족의 강토를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음은 널리 아는 일이다. 우왕14년(1388) 이성계와 조민수에게 명을 내려 4만 군사로 요동 정벌을 나서게 된 것이다. 명나라를 치는 게 하늘에 죄가 된다는 둥 무슨 4불가론(不可論). 핑계 없는 무덤이 어디에. 이르러 대권(大權)에 눈이 어두워 민족 앞에 큰 죄를 짓다니. 정말 한스러울 뿐이다. 딱한 일이로고. 금동도(黔同島) 아래 있는 위화도는 45리의 둘레가 된다. 금동도와 위화도의 사이를 압록강이 흐른다. 금동도를 지나면서 강은 세 갈래로 갈리며 한국과 중국 사이에 놓여 있어 압록강을 건너는 징검다리의 구실을 한다. 위화 금동 어적 세 섬은 땅이 비옥하여 농사가 잘 된다. 농민들이 오랑캐들에게 잡힌 일이 있은 그 뒤로는 개간과 옮겨 사는 일을 금하기도 하였다. 동명성왕의 덕화에 감화 받아 물고기가 다리를 놓아 준 데가 바로 위화도가 아닌가. 그래서 위화도라 했을까. 오리강 - 압록강은 위로 솟아 오른 '가장 길고 큰 가람'이다. 이제 그 가람을 싸고 도는 겨레의 노래는 용틀임처럼 끝이 없다. 하나 될 그 날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1. 강은 우리의 어머니 - 금강(錦江), 그 영원한 어머니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물밀어 들어오는 외세에 대항하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마지막 덜미를 잡힌 곳이 바로 금강이 북서로 휘돌아 가는 공주의 우금치 고개. 다만 동학혁명군 위령탑이 지는 노을에 외로울 뿐이다. 금강가에 살면서 '껍데기는 가라'고 외쳤던 신동엽 시인도 곰의 전설과 함께 강물 소리 속에서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물굽이이듯 우리의 땅을 안아 돈다. 금강의 본 이름은 웅천하(熊川河)였다. 공주의 동북 5리 쯤에서 흐르며 그 근원은 전라도 장수(長水)의 물갈래 고개에서 갈라져 북으로 흘러 진안의 용담, 무주, 금산, 영동, 옥천, 회덕을 거쳐 공주에 이른다. 공주의 북쪽을 고리 모양으로 안고 흘러 정산, 부여에 이르매 여기서는 그 이름을 백마강(白馬江)이라 한다. 다시 석성, 은진, 임천, 한산, 서천을 지나 진포(鎭浦)로 가서 바다로 든다. 그러니까 전체 모습이 낚시 갈고리처럼 흐른다. 해서 고려조의 왕건은 훈요십조(訓要十條)에서 공주 금강 이남의 사람들은 강의 모양처럼 마음이 갈고리져 있으니까 인재 등용을 삼가하라는 말씀. 아니 강이 뻐드렁니이면 어떻고 용의 모양이듯 뒤틀렸으면 어떤가. 별 수 없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지역 감정을 말뚝 박은 것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이러고서도 나라가 평안하기를 바랐던가. 한심한 일이다. '금강 - 웅천 - 곰내'로 그 걸림을 생각하면 '곰'에서 그 이름들이 지어졌으며 공주의 공(公)도 곰에서 비롯했음을 알 수가 있다. 본디 곰(고마 구무(굼))은 말끝에 기역(ㄱ)이 붙는 말이었으니 자음접변을 따라 공이 되었을 것이요, 짐승으로서의 곰보다는 귀공(公)을 쓰는 것이 훨씬 모양새가 좋아서 공주로 고쳤을 것으로 보인다. 곰이 무슨 까닭으로 땅이름에 끼어 들었을까. 지금은 아득한 옛 일로 우리의 정서에서 멀어졌으나 본디 곰은 사람의 조상으로 떠받들어졌던 경배의 대상이었던 까닭에서이리라. 곰에 대한 믿음은 역사 이전의 때로 거슬러 오른다. 믿음의 분포는, 한반도는 물론이요, 동북아시아, 시베리아를 비롯해서 북미에까지 걸쳐 있다. 동북아시아, 시베리아 지역의 경우, 곰신앙은 대략 신석기 시대로 미루어 잡는다. 시베리아에서는 곰신앙을 보여 주는 곰의 상(熊像)들이 여기저기에서 출토된 일이 있다. 지금도 흑룡강 둘레의 아무르 강가에서는 나무로 만든 곰상을 숭배한다고 한다. 금강에 얽힌 곰전설은 말할 것 없고, 그 뿌리라고 할 삼국유사 의 고조선조에 나오는 곰계집(熊女)에 대한 이야기도 모두가 곰신앙의 한 거리로 보아 좋을 것이다. 공주의 웅진동에서 나온 돌곰은 무녕왕릉 주위에서 길목의 밭주인 이씨가 처음으로 보아 갈무리 하던 것을 1972년 공주박물관으로 옮겨 놓은 것. 돌곰이 나온 곳은 왕릉이 있는 신성한 곳이다. 부근에 백제의 옛 무덤들이 있음을 고려할 때, 곰상은 백제 때 만들어 제사 드리는 숭배의 상징으로 썼을 것이다. 마치 절에서 불상을 놓고 예배하듯이 말이다. 곰나루에 가면 지금도 솔숲에는 곰을 제사하며 모시던 웅진단(웅진사熊津祠) 터가 있다. 공주군지를 따르자면 여기서 웅진의 물신 제사를 제사하였으니 향교에서 제사 비용으로 매년 베 54자를 이바지하였다는 것이다. 한일합방 이후에 제사를 지내지 않고 사당도 무너지게 되었다는 것. 지금은 다시 지어져 외로운 영혼을 달래고 있다. 곰을 '고마'라고도 한다. 한데 신증유합을 보면 고마(곰)가 경건하게 숭배해야 할 보람을 풀이하였으니 곰신앙은 역사적으로 끊임없는 하나의 흐름을 이어 왔던 것이다. 그러니까 금강은 곧 고마강 또는 곰강이랄 수가 있다. 하면 고마(곰)의 소리상징은 무엇인가. 뒤의 '어머니와 곰신앙'에서 살펴 보았듯이 고마(곰)는 곰신앙을 드러내며 마침내 소리의 바뀜을 따라서 어머니가 되었다.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정착하면서 곰의 상징은 다름 아닌 땅과 물 - 지모신으로 떠 오른다. 결국 곰(고마)의 동물상징이 곰에서 거북(검水神)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물신과 고마(곰 검) 삶의 원초적인 가능성은 물에서 비롯된다. 물이 없는 곳에 생명 현상은 없다. 농업생산이 산업의 중심을 이루던 때는 실로 강물이나 샘이란 신의 축복이요, 그런 물신이나 땅신은 우러러서 마땅하다. 마침내 물의 신은 임금이 받들어 모시는가 하면 지방의 벼슬하는 이들도 농사 때에 비를 오게 하는 등의 제사를 모셨다. 해서 임금은 용이 그려진 옷이나 그릇을 쓰는데 여기 용은 바로 물을 다스리는 신으로 상징되기 때문이다. 용과 함께 북방 또는 물을 다스리는 신을 가리키는 짐승이 거북이다. '거북'이란 말은 '거미(거무)'에서 왔다. 이는 이미 앞서 캐어 본 살핌을 따르기로 한다(박지홍(1952) 구지가연구). 경남 양산지방의 왕거미 노래에서 '거미'가 그러하고 땅이름에서도 그렇다.왕거미는 거북을 뜻하며 곰(고마)의 또 다른 변이형이다. 한반도의 땅이름 가운데 곰(고마)계와 검(거미龜)계의 이름이 널리 분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이들이 물신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어 보자. ('곰(고마)'의 이야기) ㉮. 암콤은 고기잡는 어부를 데려 가서 굴 속에서 함께 살았다. 새끼곰 두마리를 낳고서 별 일 없겠지 하고는 바위문을 열어 놓고 사냥을 갔다 와 보니 어부는 도망치고 새끼들만 있었다. 어미곰은 새끼를 데리고 물 속에 빠져 죽었다는 것. 해서 사람들은 이 나루를 곰나루(고마나루)로 부르게 되었다. 이후로 까닭없는 풍랑으로 배가 뒤집혀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어 강가에 제단을 모셔 곰을 제사하였다(충남 공주) ㉯. 섬진강의 동방천에 곰소라는 곳에 물 위로 바위가 솟아 징검다리마냥 놓여 있어 곰의 다리로 불리워 진다(전남 구례). ㉰.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사람의 부녀자를 빼앗은 죄 막심하다. 너 만일 내놓지 않으면 그물로 널 잡아다가 구워 먹겠다(수로부인(水路夫人)). ㉱. 왕핑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산으로 겨우 피했다. 이어 암콤에게 붙잡혀 굴속에서 함께 살게 되어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 암콤이 마음 놓고 나간 사이에 왕핑은 배를 타고 굴을 벗어나게 되었으나 곰은 필사적으로 따라 왔다. 왕핑은 바다의 신에게 기도를 드려 무사히 돌아왔으며 그 뒤로 물신의 사당을 지어 경배하였다(중국 후민 마을). 중국의 후민 마을의 후민도 '고마(고모)'에서 비롯하였음을 고려하면 보기로 들은 땅이름은 모두가 곰과 걸림을 둔 이름이다(koma(komo) - homa(homo) - oma(omo)). 생각해 보면 곰신앙 중심의 사회에서 벗어나 농경생활로 접어 드는 사회의 특성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한다. 소리는 비슷한 고마(곰) - 거미(검)이지만 동물상징이 벌써 거북으로 혹은 용으로 바뀐 것이다. 물이나 곰이 여성으로 드러남은 선사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낯 익은 모습이다. 만씨족들은 곰을 '숲의 여인 산의 여인'으로, 돌칸족들은 곰이 본디 여성이었다고 본 것이다. 이같은 생각은 시베리아의 여러 민족들에게서도 널리 퍼져 있다. 물이 생명의 어머니임은 여성이 갖는 속성과 다를 바가 없다. 바슐라르를 따르자면 물은 재생이며 영원한 사랑이요, 죽음의 상징이란 것. 하긴 물과 불(태양)이 어울려 너울대는 삶의 말미암음을 빚지 않는가. 앞서 왕건 태조의 풀이처럼 금강이 갈고리처럼 생겨서 사람들의 마음이 잘못 되었다고 함은 되돌아 볼 아무런 그 무엇도 없다. 오히려 어미닭이 새끼를 품에 안듯 우리의 뭇 가람들은 어머니이듯 우리를 감싸 돌아 흐른다. 그 푸르른 몸짓으로, 목소리로. 하여 금강은 곰신앙을 드러낸 한국인의 고향이요, 정서적인 샘줄기인 셈이다. 고려 현종이 거란의 침입을 피하여 공주에서 피란을 하였다. 이 때 지은 글을 소개하고 마무리를 하면 어떨까. 일찍이 남쪽에 공주가 있음을 들었노라 신선의 지경이 예나 지금도 영원히 아름다운 것을 여기 당도하니 푸근한 마음이어라 뭇 사람들이 온갖 시름을 놓겠구나.
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12. 울림과 진실 (3/3) 12-8 옷과 위 몸에 걸치는 옷은 새것이 좋아 보이고 사람은 오래 사귀어 정이 두터울수록 좋다 하여 '옷은 새옷이 좋고, 임은 옛임이 좋다' 고 한다. 흉하지만 않다면 때묻은 옷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때가 종종 있기는 하지만. 피륙과 같은 천 따위를 몸에 걸침으로써 추위와 더위를 다스리거나 몸뚱이를 가리기 위하여, 사람이 입는 물건을 '옷'이라 일컫는다. 옷을 입는 까닭이 몸을 보호하려는 실용적인 측면에 있든, 아니면 보다 멋있게 꾸며 보려는 인간의 심미적인 자기표현 욕구에 있든 '옷'은 그 위치로 보아 본래의 몸 위에 덧붙여 입는 물건이라고 하겠다. 옷은 그 옷을 입는 사람의 몸 자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중요한 꼼의 종속물이라 할 것이다. 누가 감히 옷을 걸치지 않고서 거리를 다니고 사회활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장소와 시간에 따라서 입는 옷이 다르듯이, 예의를 생각하는 사림들의 의식은 그 의식만큼이나 여러 가지의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옷을 만들어 낸다 요컨대, 옷은 우리의 몸 위에 걸쳐 따라붙이는 종속물로서의 속성을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옷은 어떤 말에서 비롯되었으며, 어떻게 갈라져 나아갔는가. 우선 중국 자료 몇 가지를 살펴 보기로 하자. 1) 공회의 의복은 비단에 금. 은으로 장식을 했다. (其公會衣服붐銃憲金銀以 自飾 ; ((三國志,,) 2) 백제의 언어는 고구려와 거의 같았다. 모자를 관이라 하였고 소매를 복삼이라 했다. (今言語略與高麗同呼帽日冠嬌日複떴, ((梁書),) 3) 신라어는 백제어와 비슷했다.-증략-모자를 고깔, 소매를 우개라 부른다. (新羅言語待둠濟而後通-中略-冠日遣子禮儒日射解 ;(梁書)) 1)에서는 고구려가 복식에서 상당히 앞서 있었음을, 2)에서는 복삼, 관 등의 복식 용어가 쓰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3)의 신라조에서 '遣子禮'는 '고깔' 을, '射解'는 '옷(방언형으로는 우티/우치/오티)'을 나타내고 있다. 이로 보아 오늘날의 '옷'은 신라말 계통이 아닌가 추정된다(김동윽, <한국 복식사연구>, l973). '옷'이 신라어 '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생자을 뒷받침해 주는 증빙자료로서는 오늘날 각 지방에서 쓰고 있는'옷'의 방언형들을 들 수 있다. '옷'과 관련한 방언 분포 1) [ㅇ/옷]-우리나라 전역 2) [우티]-경기 연천, 김포, 강화, 가평/강원 강릉,명주 삼척, 원주, 횡성, 원성/횡남 순천. 3) [우테]-황해 장연 은율, 안악,재령,서홍/평남 중화. 4) [오트이]-황해 연안,해주 5) [우트이]-경기 개성, 장단/강원 양양/황해 김천, 옹진, 태탄, 황주, 신계, 수안, 곡산/함남 신고산,안변, 덕원 문천, 고원, 영흥, 정평, 함흥 오로, 신홍, 흥원, 북청, 이원, 단천, 풍산 갑산 혜산/함북 성진, 길주, 명천, 경성, 나남, 청진, 부거, 부령, 무산, 회령, 경성, 경원, 경흥, 웅기/평북 박천, 영변, 회천, 구성, 강계, 자성, 후창, (김형규, ((한국 방언 연구), 서울대출판부, 1986.) 위 자료들을 미루어 볼 때 오늘날의 '옷'은 '射理[우(ㅎ)>옷]'과 '우티 (오티)'의 형태들에서 그 기원을 찾아 볼 수 있다, '우티(오티)' 의 변이형들은 어말모음의 탈락과 함께 '옷'으로 굳어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맙에서도 지적한 바 '몸 위에 걸치는 물건'이라는 옷의 속성을 잘 나타내 주는 보기라 하겠다. 방위로서의 위 를 드러내는 방언 가운데서도 신라어의 '射解[우(ㅎ)/위개]'와 서로 통하는 말들이 쓰이고 있다. '위' 와 관련한 방언 분포 1) [위]-우리나라 전역. 2) [우]-경기 연천, 파주, 강화, 용인/강원 속초, 양양, 강릉, 명주 삼척/충북 층주 층원, 괴산, 옥천 영동/층남 서천/경북 울진, 영주, 청송, 영덕, 예천, 상주, 의성, 포항, 군위, 영천, 금릉, 경산, 경주, 청도/경남 양산, 울주, 함안, 진주, 합천, 하동, 사천, 고성, 통영, 층무, 동래 김해, 부산, 창원 3) [우 :]-경북 봉화, 안동. 4) [우이]-경기 김 포. 5) [우그]-전북 익산, 부안, 고창, 정읍. 6) [우구]-전북 전주. 7) [우게]-전북 익산, 고창, 순창/전남 영광 장성, 담양, 곡성, 구례, 광주, 함평, 목포, 나주, 화순, 순천, 광양 여수, 장흥, 강진. '위'의 _방언 형태를 통하여, 신 라어에서 '옷' 을 가리키는 '射解 '가 방위로서의 '위' 의 변이형 '우게/우구/우그'와 그 형태가 서로 비슷함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서 다시 한번 '옷' 이라는 말이 '몸 위에 걸치는 것'이라는 특성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일본어 자료 가운데 상고어인 '오스히'도 우리 옛말 '오티 (우티)' 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학계의 지적도 있다. 몸 위에 걸치는 것이면 모두가 '옷' 이 었지만, 차츰 분절되어 바지 ((역해보), 저고리, 치마 등의 기능화된 하위 범주로 갈라져 나아가게 되었다. 김동욱에 따르자면 '저 고리'는 몽고어 '져거덕치'에서 나온 말로 고려 이후의 형식으로 보이며, '두루마기'도 몽고어 '쿠루막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치마[裳]' 는 중국어 계통의 말일 것으로 보고 있다. '옷[衣]' 과 '옻[漆]'을 중세어에서는 다 같이 '옷'으로 표기하고 있다. 성조적 (聲調的)인 차이는 있었지만 두 말은 동음이의어였던 것이다. 가구에 칠하는 도료로서의 '옻'은 어떤 일정한 물체 위에 색을 더함으로써 시각적인 효과를 얻어내기 위하여 사용한다. 우리 몸 위에 걸쳐 입는 '옷'이나 가구에 칠하는 '옻'은 모두 원래의 물체에 덧붙인다는 속성을 갖고 있으니, 그 형태의 비슷함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즉 '옷'에서 '옻[漆]'으로 갈라져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옷'이 '옻'으로 된 것과 '옷'이 '옻'의 한자음인 칠(漆)'로 된 것 둥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옷'과 '옻'과 '칠'의 중세어와 현대어 자료들을 통해서 그러한 가정들을 확인해 보도록 한다. '옷[衣]' 의 낱말겨레 1) 중세어 옷爲衣((훈례) 종성해), 옷ㄱㅇ(衣料 ; ((역해보), 40), 옷ㄱ외 (衣裳 ; (초두해), 7-5), 옷가숨((초두해) 20-45), 옷거리 (衣架 ; ((동문), 하 15), 옷거족(衣面 ; ((동문), 상 56), 옷것섭((역해보), 40), 옷고흠(옷고름 ; ((사성), 상 39), 옷긋((유합), 하 16), 옷길(옷길이 ;(역 해) 하 6), 옷단(衣料擇 ; ((한청)330 a), 옷자락((한청), 330 C), 옷홰 ((소해), 2-50), 옷ㅅ매 ((유합) 하 14) 등. 2) 현대어- 옷, 옷가슴(가슴에 닿는 옷의 부분), 옷가지(몇 가지옷), 옷감, 옷갓(윗옷과 갓 ; 衣冠), 옷걸이, 옷고름, 옷기장(옷길이), 옷깃차례 (시작한 사람의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차례), 옷단(옷의 자락, 소매, 가랑이의 가장자리를 안으로 붙이거나 감친부분), 옷매무시, 옷보(옷을 싸는 보), 옷섶 (저고리나 윗옷의섶), 옷솔, 옷엣니 (옷에 있는 이), 옷자락(경상도 말로는 오지랍 또는 옷질앞). 옷치레 (종은 웃을 입고 옷을 가꾸는 것) 둥. '옷[衣]'에 관한 말들 중, 중, 근세 어의 자료에서는 보이나 현대어 자료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몇몇 있다. '옷거족(옷것), 옷것섶, 옷홰'등이 그것이다 '옷홰'의 경우는 '옷걸이'와 같은 뜻으로 쓰인 말이었으나, 동의충돌의 결과, 죽은말이 되어 버린 경우이다. 한편 형태는 음운변천에 따라서 조금 바뀌었으나, 같은 뜻으로 쓰이는 보기도 확인되는바, '옷가ㅅ>옷가슴, 옷가ㅇ>옷감, 옷거리>옷걸이, 옷골흠>옷고름, 옷긋>옷깃, 옷쟈락>옷자락'과 같은 형태들이 그것이다. 이중에서 '옷가둠'은 원래는 옷소매의 뜻으로 쓰이었으나, '옷가ㅅ'에서 발달한 형태로 보이는 '옷가슴'이 현재는 가슴에 닿는 옷의 부분'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으니, 뜻이 바뀌어 오늘에 이른 형태라고 하겠다. 새로이 만들어져서 상이는 것들로는, '옷가지, 옷갓, 옷매무시, 옷보, 옷섶, 옷치레, 옷장, 옷좀, 옷좀나방' 등이 있다. 여기 '옷갓'의 경우는 '의관(衣冠)'을 뜻하지만 그 싱임은 아주 제한적이어서 찾아 보기 어렵다. '옷치레' 는 겉만 꾸미는 '겉 치레`와 같은 뜻으로 쓰이다가 지금은 '겉 치레'가 더 많이 쓰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옷과 관련하여 관용적으로 쓰이는 표현으로는 경상도 방언에 '오지랖 넓다' 라는 것이 있다. 실속도 없이 겉으로만 그럴싸하게 보이며 선심을 쓰는 경우를 이르는데, 바로 '옷자락'에서 비롯한것이라고 하겠다. 이제 '옻[漆]' 과 관련하여 중근세어 자료와 현대어 자료를 살펴보기로 한다. 옻[漆]'의 낱말겨레 1) 중,근세어-옷(漆 ; (법화), 1-219, (초두해), 8-31), 옷것 (옻칠한 물건 ; (소해), 6-10), 옷곳ㅎ다(향기롭다 ; ((남명), 하 7), 옷나모((훈몽)상 1O), 옷칠((번소), 10-32), 옻((태산집요), 53) 등. 2) 현대어-옻(옻나무 진이 피부에 닿아 가렵고 부풀어 오르는 피부중독의 한 가지), 옻기장(검은 기장), 옻나무(약용 및 염료로 쓰임), 옻칠, 옻타다(살갗이 옻의 독기를 타다) 등. 형태 변동으로 볼 때 '옻'은 옷>옻'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말이다. 중근세어의 옷은 '漆' 곧 검은 칠을 하는 염색의 뜻으로 쓰이었으나, 현대어의 '옻' 은 옻나무의 진으로 말미암는 '皮膚中壽'의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결국 '옷>옻[皮膚中毒]` 이 된 셈이다. 지금은 쓰이지 않으나 중세어 자료에 보이는 것으로는 '옷것, 옷곳ㅎ다' 가 있으며, 현대어에서만 쓰이는 말로는 '옻기장, 옻나꾸, 옻타다' 등이 있다. 결론적으로 볼 때 '옷'파 '옻' 모두 '겉에다 더 입힘'이라는 속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라 하겠다. '옷, 옻'과 함께 중세어.현대어에 나타난 '칠 (漆)'의 낱말겨레를 살펴보도록 한다. '칠 (漆)'의 낱말겨레 1) 중세어-칠ㅎ다(옷칠 한것, (번소), 1O-32), 漆은 오시라((법화), 1-219), 옷칠((유합), 상 26) 등. 2) 현대어- 칠 (도료로 쓰는 물질), 칠공(칠장이), 칠그릇(칠기) 칠독(옻의 독기), 칠립 (옻칠올 한갓), 칠목(옻나무), 칠물(옻칠을 한 기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칠박(칠올 한 함지박), 칠붓(옻칠을 한 부채), 칠실 (어두운 방), 칠야(캄캄한 밤), 칠일 (칠하는 일), 칠장(칠을 한 옷장), 칠전 (옻나무 밭), 칠창(급성 피부병), 칠판(혹판), 칠포(칠을 한 헝겊), 칠피 (에나멜을 칠한 가죽), 칠함(칠을 한함), 칠화(옻칠로 그린 그림), 칠흑같다 등. 현대어의 경우를 볼 때, '옻' 보다 '칠'의 낱말겨레가 횔씬 많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는 색깔에 관계없이 '칠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검은색'을 뜻하는 '칠'이 색칠의 원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칠서벽경(漆晝壁經)'이라고 하여 오래된 경전을 옻진으로 써서 보존한 까닭에 생긴 말이다. 지금도 고급스러운 옷장에는 옻칠을 한다. 색깔도 뭏거니와 향기 또한 좋아서 가구에 많이 사용하게 된다. 겉만 보기 좋게 꾸민 것올 겉치레'라고 한다. 이 표현 역시 컬만 보기 뚱게 색칠을 하다 에서 '겉을 칠하다' 로. 다시 '겉치레'로 바젼 것으로 보이나, 속단하기는 어렵다. 이제까지의 줄거리를 추려 본다면, 중세어의 '옷'은 '衣. 漆'의 의미를 다 드러내는 말이었다. 이 형태는 문헌 또는 방언의 분포로 보아 방위를 드러내는 위의 의미를 바탕으로 하여 쓰였음을 알 수 있었다. 뒤로 오면서 의복은 '옷'으로, 칠울 하는 재료, 혹은 피부질환은 '옻' 으로 갈라져 쓰이게 되 었다. 이와 함께 주목할 형태는 '칠 (漆)'로서, 이는 '옻'을 훈(뜻)으로 하는 한자어이다. 오늘날 '검은색'이나, 검은색과 관계 있는 사물을 드러내는 말의 대표적인 꼴로 쓰이게 되 었다. 이러한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면 결국 '옷을 입다'나 '옻칠을 입히다'나 '칠을 하다'나 모두 '어떤 사물(사실) 위에다 무엇인가 다른 것을 입힘'을 속성으로 하여 발달해 나아간 말들이라 하겠다. 형식과 내용의 관계가 매우 가까운 것이라고 볼 때,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의식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들 역시 대단히 중요하다고 하겠다. 자칫하면 속과 겉이 다른 가치를 드러내기 쉬운 일이니까. 그래서 칼라일은 그의 '의상철학'에서 사람은 가면을 벗는 데에서 삶의 진정한 실마리를 찾게 된다고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옷을 중심으로 하여 꾸미는 정도에도 적절성을 부여할 수만 있다면, 그 또한 우리 인간들의 삶을 너그러이 빚어 낼 수 았을 것이다. 담 대신에 풀이나 나무 등을 얽어서 집을 둘러막거나 경계를 가르는 것을 '울(울타리)'이라고 하는데, 이 말도 옷과 같은 낱말겨레에 드는 분화어로, '위' 의 뜻을 의미소로 하는 형태이다. 짐승을 가두기 위하여 둘러막은 공간을 '우리' 라고도 한다. '소 우리, 돼지 우리, 염소 우리'가 바로 그러한 이 름들이다. '울/우리'는 한정된 공간을 나타낸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었다고 하겠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운명지워진 공간과 시간에서 살고 있다. 너와 나를 함께 뭉뚱그린 복수의 개념으로서의 '우리' 또한 소 우리의 '우리'와 같은 말에서 발달하여 다른 뜻으로 갈라져 나간 형태라고 하겠다. 물론 우리말의 인칭대명사에 나와 너를 합한 호평이 없어 이른바 보충법에 따른 공간을 가리키는 '우리'가 인칭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그러니까 특정한 공간을 바탕으로 하여 특정한 공간에 사는 사람들을 합쳐서 그냥 '우리' 라고 했으니, 마치 당호(棠號)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나 같다고 하겠다. '우리' 와 관계를 보이는 말에는 '우리구멍 (논물이 빠지도록 뚫은 구멍), 우리네, 우리다(특정한 공간에서 짐승을 기르듯이 물건을 물에 담가 맛. 빛이 물에 플리게 하는 것), 우리들, 우리말, 우릿간(우리로 사용하는 간)' 둥의 형태들이 있다. 한편 '울/우리'와 관계된 증세어 자료를 들어 보면, '울(ㅎ) ((훈례) 용자례), 울밋((청구), p. 63), 울섭 ((역해보), 14), 울히다((송강) 2-12)' 등이 있다. 이때 '울'은 형태론적으로보아 히웅(ㅎ)특수곡용을 하는 명사로 확인된다. 한편, 현재 쓰이고 있는 방언형을 보면 '울-'계가 장형화하여 쓰임을 알 수 있다. '울-' 계의 방언 분포 1) [우리]-경북 선산, 문경, 상주, 김천 2) [우타리]-경남 하동/전남 장성,나주 3) [우따리]-경남 거창, 양산 4) [우딸]-경북 영주,청송,청도 5) [울다리]-경남 함안, 창녕 6) [을타키]-경남 대부분 지역/충북 영동,옥천, 층주,제천/전남 여수, 순천, 광양, 진상, 구례, 장성, 나주, 광주, 완도 장흥 영암, 영광, 함평, 목포, 해남, 진도, 강진, 화순, 보성, 고흥/강원 영월, 정선 7) [을따리]-경북 포항, 대 구/경남 합천, 밀양, 창왼, 창녕, 김해/층북 음성/제주 전역 8) [울딸]-경북 안동,영천 9) [웃다리]-경남 거창 '울타리'가 폭넓게 쓰이고 있으며, 경상도 지역에서는 '울'의 '리을(ㄹ)'받침이 탈락하여 쓰이는 경우도 눈에 뜨인다. 우리는 한 조상의 피를 이어받은 배 달 겨레이니, '우리'는 배달겨레의 정신을 지키는 공동체 의식의 공감과 공명의 현주소이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아들과 딸들이 겨레의 울타리(우리) 안에서 아주 탐스럽고 그윽한 향기가 있는 영흔의 누리를 빚어 나아 갈 수 있으리라. 12-9. 집과 풀 거처하는 집이나 재산도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 다님을 일러 '집도 절도 없다'고 한다.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집은 동물이나 사람에게 삶올 이어 가는 중요한 장소가 된다. 사람이 거처하는 장소나 동물의 보금자리, 흑은 겨레붙이의 한 떼나 물건을 담아 두거나 끼워 두는 도구를 통틀어 '집'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에서 '보금자리'는 새가 깃들이는 둥우리를 뜻하는 말로서 비유적으로 지내기가 매우 포근하고 평화로워 아늑한 곳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 가면 집의 형태는 대체로 굴이나 나무숲과 같은 곳에 자리잡은 보금자리의 꼴이었음을 알수 있다. ((진서 (辰書))의 기록에 따르면 동이(東夷)는 여름에는 둥우리(보금자리)같은 나무 위에서, 겨울에는 굴에서 살았다(夏則眞居冬則穴處)고 한다. (삼국지)에는 그 굴의 깊이가 사다리 아홉 개가 들어갈 정도의 큰 무덤과 같은 집이 있엇다고 전해 오기도 하며, (후한서)에는 흙으로 방을 만들었는데 마치 무덤과 같았으며, 그 위에다 문을 만들었다(作土室形如뭄閑戶在上)고도 한다. 이상의 기록에서 집 '과 연계지을 수 있는 것은, 숲 속 나무 위의 둥우리 모양의 집 (보금자리)이 아닌가 한다. 한마디로 '집'은'김'에서 비롯한 것으로 본다. '김'은 홍조류의 바다플로서 종이처럼 얇게 떠서 말려 가지고, 불에 구워서 먹는 반찬의 한 가지이다. 동음이의어로서의 '김 '은 '기음'의 준말로, 논밭에 나 있는 잡풀을 말한다. 보통 농가에서 '김을 맨다' 고 할 때의 김이나 먹는 김이나 본질이 풀임에는 모두 같다. '김'에서 '집' 에 이르는 국어학적인 풀이는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김'이 입천 장소리되기를 따라서 '짐 '이 되었다가 음절의 끝소리가 같은 입술소리 계열에 따른 자음교체를 함으로써 '집 '이 되었던 것이다. 다시 '집'은 음절의 끝소리가 바뀌어 '짚'이 되기도 한다 지금도 지역에 따라서는 '김'을'짐'(쓰인 예 ; 짐 먹는다)'이라고 하는 것을 그 근거로 들 수 있으며, '집/짚'의 관계는 '짚'이 중세어에서 '집 ((유씨명)' 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결국 '김'에서 비롯한 '짐/집/짚'은 모두가 하나의 낱말겨레인데, '풀'로서 그 기본적인 의미소를 가정할 수 있겠다. 그러면 '김'은 풀로서, 거처하는 집과 관련이 있다고 하였는데 어떤 형태에서 발달한 말일까? 우선 방언분포를 살펴 보도록 한다. '김'의 방언을 알아 보면, 기음(층청, 전북 강원), 기임(강원호산), 거울(경남 거창), 기심 (경북 안동, 봉화, 영양, 청송, 영천), 김 (경북 청송 영천, 군위, 왜관/전남 영광, 함평, 목포, 나주 광주), 지슴(경상, 전라, 제주), 지섬 (경남 진주), 지심 (경상, 전라, 제주), 풀(경북 문경/경남 밀양, 울산 양산, 마산, 층무), 풀(경남 부산 김해), 짐 (충남 예산, 논산/전북 진안, 장계, 이리/전남 헤남, 장흥) 등과 같은 꼴이 있다. 방언의 보기에서 '김' 은 '기 음, 기임, 기심, 김, 지슴, 지섬, 지심, 짐 풀, 품'의 변이형으로 실현되고 있다. 여기서 '기심(>지심,지슴,지섬)-기 임(기음)-김 (>짐)'으로 발달해 왔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기심'이 '깃'에서 발달한 말이 아닌가 한다. '새가 깃들인다' 는 말이 있거니와 이때 '깃' 은둥우리 보금자리가 있는 풀숲(둥우리)으로 풀이할 수 있다 '깃'은 '굿' 의 부분에서 보인 바와 같이 '굿(>궂)/굳/굴/곳(>곶)/곧/골, 깃/긷/길'의 대립 체계를 이루는 낱말의 떼로 이어져 나아간 것이다. 중세어에서 기둥을 '긷((내훈) 서 4)' 이라고 하거니와, '깃/긷/길' 은 하나의 말 겨레임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지금도 짐승을 가르쳐 사람의 말을 잘 듣고 부리기 편하게 함을 '길들이다'라고 하는데 이때의 '길'도 그 바탕은 거처하는 곳의 개념에서 멀지 않음을 드러내 주고 있다. 거처하자니까 오고 감이 있기 마련이고, 특히 씨족사회와 같은 혈연성이 강조되는 집단생 활에서는 서로 단합해야 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서의 길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재료를 들여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건물 따위를 세우는 것을 씻다'라고 하는데, 이때 '짓-'도 깃>짓'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러 상이고 있을 가능성이 보인다. 증세어 자료의 '깃깃다(둥지를 틀고 살다 ; ((초두해), 15-7), 깃다(풀이 무성하다, ((남명) 하 35), 깃다(깃하다, (남명), 하 16), 깃(羽 ; (삼역) 9-15)' 등을 보면 결코 '깃_>짓-'의 '짓-' 이 집의 개념과 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집을 세울 때 물론 여러 가지 재료가 드는데 그 중의 하나가 '깁'이라고 본다. '깁'은 비단의 뜻으로 쓰이었으나, 원래는 풀을 의미하는 '김/깁/깊'의 낱말겨레에서 발달한 말이니 결국 '김'은 '깁/ 집_' 계로 나뉘어 발달해 나아간 것으로 볼 수 있겠다. 형용사 '깊다'도 수풀과 연관을 지어 풀이할 수 있을 듯하다. 숲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의 서식처(보금자리)였으며, 삶을 이어 가는 바탕이었으니 집이란 말이 풀숲을 뜻하는 말에서 말미암았음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하겠다. ((삼국유사)의 단군에 대한 기록을 보면 '소도(蘇塗)' 가 나오는데 이는 제사를 모시는 제단이 있는 숲(나무)을 뜻한 것으로 보인다. (성경)의 창세기에도 에덴 동산은 생명을 만든 거룩한 숲속이었고, 석가모니가 해탈득도한 곳도 숲속의 보리수 아래였다. 또한 우리의 '소도'도 박달나무로 전해 오는 신단수(神壇樹)가 있는 숲속이었음을 돌이켜 볼 때, 집과 수풀(나무)과의 관련성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소박한 의미에서 모든 식량은 풀의 열매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때, 풀과 나무로 뒤덮인 수풀은 목숨살이의 상징이라 하여 지나침이 없다. 초식성 동물은 말할 것도 없고, 육식성 동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초식을 하는 동물을 먹이로 해야 하니까. 동물이 먹고 사는 의미는 풀(수플)이 있음으로 해서 살아난다. 이를테 면, 먹고, 입고, 사는 그 모든 팥동과 과정이 수풀에서 말미암았다면 어떨지. 정말 숲은 거룩한 곳인 반면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이 더 탐스러운 열매를 얻기 위하여는, 숲이 있는 자연과 함께하는 마음을 구체적으로 생활화해야 한다. 숲은 생명의 고향이니까. '집 '과 관련이 있는 낱말에는 '집, 집가시다(사람이 죽은 집을, 무당으로 하여금 악기를 물리치게 하다), 집가축(집을 매만져서 잘 거두는 일), 집다(물건을 집 속에 넣게 하니까), 집게, 집게손가락, 집팽 이, 집구석, 집나다, 집내다(살던 집을 비우다), 집다, 집더미, 집세, 집사람(자기 아내를 겸손하게 일컫는 말), 집들이, 집알이 (집구경 겸 인사로 찾아 보는 일)' 와 같은 꼴들이 있다. '집'과 같은 낱말겨레에 드는 '짚/짐'을 증심으로 하는 말들에는, '짚 (이삭을 떨어낸 줄기), 짚가리 (짚의 더미), 짚나라미 (새끼 등에서 떨어지는 너더분한 부스러기), 짚다('깊다' 의 경상, 전라,충청, 함경 강원도 방언), 짚단, 짚등우리, 짚등우리 타다(못된 판원을 백성들이 짚둥우리에 태워 몰아 내는 것), 짚믓(짚단), 짚북더기, 짚신 (함경, 강원도에서는 짖세기), 짚볼/짐장('김장'의 경산, 강원 함경도 방언), 짐짝, 짐치 ('김치'의 경상, 강원, 제주, 전라, 층청, 함경도 방언)' 등이 있다. 우리는 영원한 삶의 집을 바란다. 그러기 위하여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견고한 숲을 이루도록 마음을 모아 자연과 함께하는 더불어 살기를 힘써야 한다. 풀로 만든 숲 속의 집이 이제 완전히 바위굴의 변형된 짐으로 바뀌어 사는 세상이니 우리의 정서가 점차 메말라 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생명이 살아 숨쉬는 그런 집을 가꾸어 나아가야 한다. 12-10. 웃음과 드러냄 농담으로 한 말이 잘못되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있다 하여 '웃느라 한 말에 초상 난다'고 한다. 함부로 말을 하지 말고 말은 지극히 삼가야 됨을 강조하고 있다 반대로 용기를 주고 기쁨을 주는 말은 적절한 때와 장소를 가려서 다른 사람에게 해 주는 것이 훨씬 생산적일 때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음이 기쁘거나 즐거울 때, 또는 기가 막힐 때, 그러한 감정의 변화나 상태에 어울리게 밖으로 드러내는 생리적인 동작을 '웃는다/웃다'라고 한다. 외형상으로는 입을 벌리고 소리를 내며 기뻐하기도 하며, 사람을 조롱하거나 같잖이 여겨 코웃음을 치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은 반드시 행동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행동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은 언제나 사람의 행동을 통하여 심리적인 모습을 알아낸다. 해학과 같은 웃음은 사람의 마음에 일어난 긴장이 해소될 때에 정신적인 반옹으로 일어나게 된다(시라사, <문학에 있어서의 웃음의 개념>, 국어국문학 51, 1971). 우리는 어떤 불안이나 불만족, 불쾌감을 주변 어더에서나 경험하며 살아 간다. 이러한 불안이나 불쾌감이 풀어질 때 즐거움이나 안락한 느낌을 갖게 되는데, 바로 이때 웃음이 따라붙어 겉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배해 수, <현대국어의 웃음 동사에 대하여>, 1982). 결국 웃음은 내적인 감정의'드러남'을 의미적인 바탕으로 한다고 할 것이다. 말의 짜임을 보면 '웃다'는 '웃十-다>웃다'로 볼 수 있는데, 이때 '웃' 은 위아래의 '때' 에 해당되는 말이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마음의 여러 가지 감정이나 생각을 위로 드러내는 셈 이다. 마침내 얼굴의 모양이나 입으로 소리를 내서 시각 또는 청각적인 표현으로 드러나는 게 아닐까 한다. 친절하고 상냥한 미소가 있는 인간상이 우리 모두에게 기쁨을 주듯이, 진정한 뜻에서의 미소를 머금은 자신의 모습을 추구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모나리자나 성모마리아 혹은 고마성모의 미소와 같지는 않을 지라도. 그럼 그 소리나 얼굴의 표정과 모습 또는 신체의 다른 부분에 따른 양태의 변화가 어떻게 웃음의 낱말겨레와 관련되는지를 알아보도록 한다. 먼저 소리에 따른 웃음의 표현에 대해서 살펴 보자. 웃음 소리가 기냐 짧으냐, 작냐 크냐페 따라서 몇 가지로 표현된다. '길게 웃다'는 뜻으로 '장소하다'가 있다. 그러나 그 반대되는 '단소(短笑)하다'는 말은 잘 쓰이지 않는다. 웃음소리의 크기에 따라서 대소(大笑)하다, 굉소(柰笑)하다, 폭소(爆笑)하다'는 말들이 있는데 대소<굉소<폭소'에서 보는 것처럼 폭소는 폭발적인 웃음소리를 연상케 함으로써 가장 큰 웃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 말들은 웃음의 크기에 따라서 단계적인 대립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 소리의 상징의 크기가 곧 감정의 단계를 변별적으로 드러낸다고 하겠다. 대소(大笑)하다' 에 다른 말을 더하여 그 모양을 드러내는 일이 있으니, 입을 크게 벌려 웃음을 '흥연대소(峽然大笑)하다', 즐거운 표정을 '간간대소(澤澤大笑)하다', 하늘을 바라보는 웃음을 '앙천대소(仰天大笑)하다'고 한다 아울러서 손뻑치며 웃는 웃음은 '박장대소(拍掌大笑)하다'고 하며 깔칼대며 웃는 것을 보고 '가가대소(阿阿大笑)하다'고 한다. 이 밖에 웃음에 대한 소리 증심의 표현으로는 '방소(放笑)하다(방자하게 웃다), 소쇄(笑殺)하다(웃어넘기다)'와 같은 말들이 있다. 주로 한자어 계통의 말이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눈에 띄는 점은 소리의 크기가 작은 경우에 대한 표현은 찾아 보기 어렵다는 점 이다. 물론 양태적인 것이긴 하지만 소리 없이 입을 약간 벌리고 웃는 모양을 '빙그레'라고 함은 고유어계의 한 표현이기도 하다. 이상에서는 소리에 따른 웃음의 낱말겨레를 알아 보았거니와 양태(모습)의 변화에 따른 갈래를 알아 보도록 한다. 먼저 얼굴의 모양을 중심으로 한 표현을 살펴 보면, '환소(歡笑)하다(즐겁게 웃다), 담소(談笑)하다(이야기하며 즐겁게 웃다), 언소(탐笑)하다(이야기하며 웃다)'와 같은 말들이 있다. 이 밖에도 얼굴 모습의 변화와 연관한 표정을 드러내는 말로는 '교소(嬌笑)하다(요염하게 웃다), 교소(巧笑)하다(사랑스럽게 웃다)' 와 같은 꼴들이 있다. 얼굴 표정의 변화와 함께 입 모양의 변화를 중심으로 하는 낱말겨레에는 어떤 표현들이 있는가 알아본다. '부드럽고 가벼운 입모양의 변화'와 '소리가 없는 의미특성' 을 드러내는 말에는 '신소(笑)하다(약간 입을 벌려 웃다), 미소(徵笑)하다(소리 없이 웃다)'와 같은 한자어 계통의 말이 있고, 고유어 계롱의 말로는 '방긋하다, 방글거리다'의 쿄현이 있다. '방긋하다' 는 일회성의 동작을 드러내고, '방글거리다'는 반복성의 의미 특성을 갖고 있다. 입 모양의 변화와 함께 눈 모양이 달라지면시 짓시능을 하는 말이 있는바, '상긋하다(일회성)/상글거리다(반복성)'가 그것이다. 한편 입과 눈 모양의 달라짐을 따라 드러내는 웃음의 낱말겨레에는 '상긋방긋하다(일회성)了상글방글하다(반복성)' 와 같은 형태들이 있다. 웃음의 정도가 좀더 심해지면, 신체의 특정한 부분의 달라짐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넬소(絶笑)하다(아주 지지러지게 웃다), 배꼽잡다{배에 통중을 느껀 양으로 웃다), 요절복통(腰絶腹痛)하다(허리가 굽어진 양으로 옷다)'와 같은 것이 그러한 예다. 앞에서 풀이한 웃음은, 겉과 속을 의도적으로 두들겨 맞추는 식의 것이 아닌 자연발생적 인 경우이다. 하지만 혼히 복선이 깔려 있거나 정상이 아닌 웃음을 일컫는 말들이 있다. 배해수는 이를 내면과 외면의 어긋남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으나(1982), 이를 뭉뚱그려 소개하기로 한다. 이런 경우 의도성이 있고 없음에 대한 풀이는 주관적인 문제가 되기 때문에 객관성이 결여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정상적인 웃음이 아니라는 점을 떠올리면서 낱말겨레란 관점에서 간추려 가기로 한다. 웃는 사람의 마음 속에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전제 아래 비정상적인 웃음으로 보이는 경우에는 '실소(失笑)하다(웃지 않아야 할 적에 자신도 모르게 웃는 것), 가소(假笑)하다(거짓으로 웃다), 습소(濕笑)하다(어쩔 수 었이 웃다), 헛웃음치다(겉으로만의 표정으로 웃다). 등의 표현이 헤 당된다고 본다. 그러나 정확하게 그 개념을 가려 내기란 쉽지 않다 이 밖에도 웃는 소리나 모습을 강조하여 드러내는 웃음에 대한 말이 있으니, 히소(怪笑)하다(괴상하게 웃다),광소(狂笑)하다(미친듯이 웃다), 치소(燒笑)하다(바보처럼 웃다),빈소(傾笑)하다(찡그려 웃다)' 와 같은 표현들이 있다 서시빈목(西施微目)이라고 하거니와 서시란 월 (越)나라의 미인이 여러 사람 앞에서 얼굴 한번 찡그린 것이 계기가 되어 이런 고사가 생겼다. 미인의 껑그린 듯한 웃음이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웃음이라니 (속이 좋지 않아 찡그릴 수도 있을텐데) 웃는 사람 자신이 열등감이'나 우월감에 젖어 그것을 웃음으로 드러낼 수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본래 웃음이란 개념이 갖고 있는 마음 속의 기쁨이나 즐거움은 배제된다. 먼저 열등감에시 말미암은 웃음의 말겨레를 찾아 보면, '검소(劒笑)하다(원한 어리게 웃다),첨소(請笑)하다(아첨하는 웃음을 짓다),간소(好이)하다(간사하게 웃다), 미소(媚笑)하다(아양을 떨며 웃다), '선웃음치다(미숙하게 웃다),매소(賣笑)하다(술자리 등에서 웃음을 팔다), 눈웃음치다(눈으로 웃다)'와 같은 표현들이 있다. 반면에 우월감을 바탕으로 한 웃음에 드는 형태로는, '치소(?笑)하다(악의 있게 웃다), 회소(誠笑)하다(실없이 놀리는 양으로웃다), 비웃다(업신여기는 양으로 웃다), 조소(빼笑)하다(비웃다의 한자어)' 등이 있으며, 업신여김의 의미를 드러내는 표현에는 앞에 든 것 밖에도 비소(鄧笑)하다, 암소(暗笑)하다, 고소(苦笑)하다(쓴웃음짓다), 비소(鼻笑)하다(코웃음을 치다), 기소(欺笑)하다(남을 업신여기고 웃다), 냉소(冷笑)하다(찬 웃음짓다)' 등이 있다. 이와 더불어 자기만 못한 사람을 가볍게 여기는 것으로 '경소(理笑)하다(가볍게 여기다), 일소(一笑)하다(일회성), 민소(憫笑)하다(민망히 여겨 웃다), 비소녕F笑)하다(비난하는 듯 웃다], 저소(認笑)하다(잔소리격으로 웃다), 비소(排笑)하다(비방하듯 웃다), 기소(謙笑)하다(헐뜯듯이 웃다)'와 같은 표현이 있다. 웃는 동작은 그 내용의 감정이 어떠하냐에 상관없이 안에서 느끼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인가 감정에 옷을 입히는 동작이 웃음일진대 그 옷의 본체 (몸)는 웃는 사람의 기분이나 즐거움, 노여움, 의향과 같은 감정과 사고라 할 것이다. 옷의 필요성이 실용과 심미적인 측면 모두에 있듯이 웃음도 여러가지 복합적인 말미암음에서 비롯된다. 오손도손 서로가 슬픔과 기쁨을 함께 하는 데서 오는 화합의 웃음이 드러내는 소리나 그 모양은 분명 우리들의 삶에 큰 위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12-11. 비와 돌림 보통 비가 오는 날에 어린 모종을 내면 잘 살아 난다고 하여 '비 오거든 산소 모종을 내라'는 속담이 생겼을까. 한마디로 산소를 좋은 곳에 모셔서 자손을 번영할 수 있도륵 하라는 교훈적인 말이다. 공기중에서의 수증기가 대기권의 높은 곳에서 찬 기운을 만나 방울이 되어 내리면서 다른 물방울과 합쳐서 떨어지는 물방을을 우리는 '비' 라고 한다. 비의 본질은 물방을(물)이요, 그 속성은 바다에서 하늘로 다시 하늘에서 바다로 돌아가는 순환성 곧 돌림에 있다고 하겠다. 순풍우조(順風雨調)란 말이 있듯이 비가 적절하게 내리지 않으면 큰일이요, 너무 내려도 큰일이다. 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고리에 고리가 걸리어 하나의 줄올 잇듯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치로 플이할 수 있다. 바다와 강에서 그 많은 수증기(김)가 피어올라, 기압의 골짜기를 따라서 구름의 바다를 이루게 된다. 실상 우리들이 눈앞에 바라다 보이는 바다와 강의 믈이 땅 위에 흐르는 물의 모습이라면 비는 땅 위의 물이 구름으로 그 모습을 바꾸어 있다가 다시 이 대지에 내리는 물이라고 하겠다. 우리가 살아 가는 삶의 현상 자체가 먹고 먹히며 살고 죽으며, 죽고 다시 살아가는 삶과 죽음의 연쇄적인 현상이라고나 할까? 일종의 돌림현상이라 해도 될 것 같다. 피는 우리 몸속을 흐르는 동맥과 정맥의 통로를 따라 돌아가면서 골고루 필요한 영양을 대어 주며, 필요없는 찌꺼기를 거두어 간다. 이러한 돌림현상 곧 신진대사가 활발하게 계속됨으로써 우리의 목숨은 늘 힘을 얻으며 할기차게 움직일 수 었게 된다. 앞에서 '똥'이 '뒤'에서 비롯되었음을 얘기하였거니와, 원천적으로 순환파정을 마무리하는 끝내기 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한 결과 즉 '뒤`에서 비롯한 말인 '똥' 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리라. 비나 피, 모두 물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피'는물이 존재하는 하나의 변이형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비'가 무생물로서 우주 공간을 떠돌아 다니는 것이라면, '피'는 생물의 몸 속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돌아다니는 물인 것이다. 옛말에 '물'은 땅 이름이나 사물의 이름으로써 '니(꾀)'와 같은형태로 쓰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삼국사기) 권 37 에 나오는 '미추흘(柰鄕忽). 내미 (內米)' 둥이 그러하다. 히(海柰 ; ((제중), 미더덕 (바다의 더덕), 미나리 (((초두해) l5-7), 미 역 (미 +역괴>미역 ;(박해), 미여기 (>메기, (시해)' 와 같은 어휘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물은 '믈/끼/미/되'와 같은 여러 가지 변이형으로 실현된다. 이 가운데에서 '미 (뫼)'는 소리의 느낌으로 말미암아 서로 다른 뜻을 가진 형태로 실현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비'와 '피'가 아닌가 한다. 한마디로 'ㅁ/ㅂ/ㅍ'이 다를 뿐 나머지는 같은 모음 이(ㅣ)에 그 터를 대고 있다. 소리의 느낌으로 보면 미음(ㅁ)은 예사스런 소리이니 보통 땅 위에서 예사롭게 존재하는 물이요, 비읍(ㅂ)은 무성파열음으로서 두 입술이 닫혔다가 '먹'하는 소리가 나니,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져 부서지는 비 '인 것이다. 한펀 피읖(ㅍ)은 미음(ㅁ), 비읍(ㅂ)과 같은 두입술소리로서 파열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더 거센 느낌을 준다. 예컨대 '피가 괄찰 솟는다'는 표현이나, 심장으로부터 혈관을 흐르는 피의 박동 소리 등은 확실히 거센 느낌을 준다. 땅 위에 내린 비는 마치 피가 혈관을 따라 흐르듯이 냇물에서 다시 강으로 흘러 바다에 이른다. 이떻게 흘러야 할 비가, 그리고 피가 흐르지 않고 괴면 그곳에는 정지와 부패와 죽음이 있을 따름이다. 지구가 밤과 낮의 가림 없이 돌아가듯 비도 땅 아래에서 땅 위로 돌며, 피도 온 몸을 똘아가는 것이다. 강물이 흐르는 곳에 마을이 셍겨나고 다시 한 부족과 국가가 이루어지며 사람들의 삶의 본거지가 만들어진다. 피 또한 온몸이 살아가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강물이요 뿌리깊은 샘뜰인 것이다. 이러한 곳에 삶의 가능성은 실현되고, 사람은 인식과 사랑에 눈올 뜨게 된다. 비는 지구에서 살아 가는 생물 모두에게 피요, 피는 우리 개개의 동물에 있어 비가 된다. 지역에 따른 '비'의 방언형을 보면 '바이(평북 연풍), 비 (우리나라 전역), 빙이(경남 밀양, 김해, 합천. 거창), 줄삥이(강원 춘성). 흐림(합남 풍산. 갑산/평북 후창)'의 형태들이 있다. 비와 상관을 보이는 낱말겨레로는 빗믈, 빗밑 (오던 비가 그치어 날이 완전히 개기까지의 파정), 빗방울, 빗소리' 등의 형태들이 있다. 비가 식물성의 색깔이라면 피는 동물성이다. 동물은 식물을 바탕으로 하여 살아 간다. 비와 피의 원형 은 '미' 라고 하였거니와, 온 누리를 뒤덮는 모든 생명의 샘은 하나로되, 그것은 이 지구를 감싸고 도는 물이다. 그래서 배달겨레의 뿌리인 단군은 물과 땅의 신인 '고마(곰)'에게 정성어린 제사를 올렸던 것이다.
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12. 울림과 진실 (2/3) 12-4. 어이구의 변모 몹시 아플 때, 힘이 들거나 놀라고 원통할 때, 또는 기가 막힐 때 내는 감탄사로서 '아이고(아이구/아이쿠)'가 있다. 부모가 돌아가셔서 상을 당했을 때 호곡하는 소리이기도 한데 지방에 따라서는 어이구(어이)라고 하는 수도 있다. 필자는 슬픔과 같은 감정이나 놀라움을 표현하는 이 감탄사를 불교적 배경을 가지고 풀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불교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가 이미 천 년이 넘었다. 신라 법흥왕(514-539) 때부터 호국불교의 국교로서 14세기말까지 이어 왔고 지금도 그 명맥을 이어 왔다. 지배층의 문화는 피지배층의 문화 형성에 동화주(同化主)로서 깊은 영향을 준다고 생자할 때, 블교적인 예식의 영향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도 장례를 모실 적에 승려들이 흔히 (금강반야경) 을 읽음으로써 죽은 자의 명복을 빈다. 49제를 올릴 때도 (금강반야경),을 독송하는 것을 흔히 듣게 되는데 그때마다 중간중간에 '하이고, 하이고'하는 소리가 자주 들려 매우 특별한 느낌을 갖게 된다. 불경을 읽다 보면 어느 불경에서나 이 '하이고(何以故)' 란 말이 자주 나옴을 알 수 있다 일례로 (금강반야경), 만 살펴보아도 전편에 걸쳐 약 30여회나 나타난다. 하이고(何以故)는 주로 세존(世尊)이나 수보리와 같은 고덕한 선사와 신도들간의 질의와응답, 또는 스스로의 감탄을 드러내는 구실을한다. (금강경언해,, 를 보면 '하이고(何以故)' 를 '엇데어뇨' 로 뒤치고 있으니, 다시 말하자면 '어찌 합니까, 어찌된 까닭입니까`의 속뜻을 드러내어 입버릇처럼 상이고 있는 것이다. '엇데어뇨'의 '-어뇨'는 '하다(허다)'의 히웅이 떨어져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 머리에서 히뭏(i)이 떨어지는 예는 어떠한가. 그런 가능성을 방언형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오얄머니 (외할머니의 층남 논산 방언), 엉가(형의 경남 하동 방언), 오마씨 (할머니의 경남 진주. 사천 방언), 언가(형의 경남 김해 방언)' 등익 예가 있다. 결국 '하이고>아이고~아이구~아이쿠~어이쿠'와 같이 그 모양이 바뀌었다고 하겠다. '아이쿠(어이쿠)'의 '-쿠`는 '-고(故)'의 소리와 관련이 있는 것이니 지금도 중국어에서 '-고(故)` 는 '-쿠' 로 읽힌다. '아이고'는 다시 음절이 축약되는 경우와 음절이 첨가되는 경우를 들 수 있으니, '아이 (아이고의 줄임)'와 '아이고나' 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아이' 는 남에게 무엇인가를 조를 때에 쓰이는 감탄사요, '아이고나'는 어린 아이들의 재롱이나 착한 일을 보고 기특해서 내는 감탄사이다. 하나의 가정이기는 하지만 감탄의 어미 '-고나了-구나' 도 '아이고[何以故]' 에서 비롯하여 어말어미로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간혹 '아이고머니' 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아이고보다 더 간절하게 부르짖는 감탄의 뜻을 드러낸다. 이상의 풀이처럼 어찌된 까닭입니까'의 '아이고[何以故]' 가 감탄사로 쓰이게 되었다고 하겠다. 이러한 예는 많지는 많으나 확인 되고 있다. '에라 모르겠다/에라 만수'에서의 '에라'는 실망이나 금지의 뜻을 나타내는 감탄사이다. 기원적으로 '에라`는 지배자(임금)' 의 뜻으로 쓰였는데 후대로 오면서 감탄사로서 쓰이게 되었다. (주서 (周書))의 이역전 백제조(異域傳百濟條)에 '왕족의 성은 부여의 계통이었는데 어라하(於羅瑕)라고 불렀으며 백성들은 건길지라 하였다 '하(夏)에서는 왕으로 통용된다(王姓夫餘氏號於羅理民呼爲鎖놈룽夏言竝王也)'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어라하'는 왕을 뜻하는 말이었다 민요 성주풀이에서 '에라 만수'하는데 이 뜻은 '임금님 만수무강하소서'의 의미를 갖는다. 방언에서 그 변이형을 살펴 보면 '에라, 어라, 얼래 (월래)' 등이 있고 일본어에서도 '에라이' 란 말이 있으니 '하이고>아이고'의 개연성을 더해 준다고 하겠다(도수회, <백제어 지명 연구>, 1977). 이처럼 하나의 문화적인 관습이 관습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언어에 투영되면 언어변화의 질서를 따라 음운 및 형태적으로 바뀌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라 할 것이다. 언어는 그 나름의 길을 가지고 있으니까. 12-5. 쑬개와 쓸림 어떤 상황에 부딪혔을 때 을바르게 판단을 못하고 이성을 잃은 채 제 구실을 못하는 사람을 비유해 '쓸개 빠진 놈'이라고 한다. 원래 쓸개는 담낭이라고도 이르는바, 간장에서 나오는 담즙을 일시적이나마 담아 두는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담에서 나오는 즙은, 간에서 만들어져 주머니 같은 담낭에 갈무리되었다가 수담관을 거쳐서 십이지장으로 흐르는 일종의 소화액아다. 지방 효소의 소화를 도움으로써 음식물에서 얻어 낼 것은 얻어 내고 가릴 것은 가려낸다. 말 그대로 마당의 쓰레기를 쏠어 내는 빗자루와 같다고나 할수 있을까. 담낭의 기능을 잘 풀이한 말이 '쓸개'다. 동사어간'쓸-' 에 접미사 -개'가 더하여 이루어진 복합어이다. 동작을 나타내는 '쓸개'는 중세어에서는 쓸다((석보) 6-6)' 로도 드러난다. 중심이 되는 뜻으로는 '비로 쓰레기를 쓸다[掃]'가 있고, 주변적인 듯으로는 '제 일만 깨끗이 해 치우다, 돌림병 따위가 널리 퍼지다, 일정한 처소에 있는 물건을 모두 그러모아서 독차지하다' 등이 있다. 흑은 낟알의 껍질을 벗기어 깨끗하게 하는 동작도 쏠어 낸다고 한다. 쓰레기가 없어야 할 장소에 자꾸만 쓰레기가 쌓인다든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으면 큰 불펀을 겪게 되는 것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정화(淨化)란 말을 하거니와 그 핵심은 '쓸어 깨끗하게 함'에서 멀리 있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의 기능을 독자들의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카타르시스로 풀이한 바 있다. 본래 카타르시스란 설사를 촉진시키기 위한 약제로 사용하여 왔다. 그러니까 카타르시스란 소화가 잘 되지 않고 배가 아픈 사람에게 설사약을 먹이어서 배설을 지킴으로써 소화기능의 안정을 꾀하는 일과 같다고나 할까? 우리가 음식을 먹음에 불필요한 독소들이 더러 끼여 들어온다. 이를테면 중금속처럼 받아들이면 배출할 수도 없는 것이 섞여 들어오기도 하니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어쨌거나 불필요한 물질(쓰레기)을 '쓸개'에서, '간'에서 쓸어 내고 가려 냄으로써만 생활의 에너지를 공급받고 살아 가게 되는 것이다. 신진대사라고 할까? 하여간 벼의 껍질을 벗겨 내고 알쌀을 만들어 내듯이 쓸개는 우리 몸이소화해 낼 수 있도록 깍아 내고 삭여서 반죽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기원적으로 보아 '쓸다' 는 중세어 '슬다((능엄), ((원각)) 에서 비롯한 것으로, 그 표기적인 변이형으로서 '쓸다(증두해), 쓸다(왜해))' 가 있는데, 이들은 좀더 후대의 표기형태이다. '-슬다'는 원래 '사라지다. 스러지다'의 뜻으로 쓰이었다. '쓸다'는 있던 형체가 없어져 버리거나 블필요한 것을 없애 버림을 뜻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니까 '쓸개'가 소화작용과 관계가 있음을 생각할 때 음식물이 소화되어 곧 사그라져서 몸의 일부가 되어 가는 작용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하여 크게 잘못됨은 없을 듯하다. 원천적으로 소화는 느린 산화, 다시 말하자면 연소작용의 다른 표현이라고 하겠으니 본래의 모습이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슬다'와 방점표기는 다르지만 같은 꼴에 '슬다(슬퍼하다 ; ((용가), (두해))' 가 있음도 어느 정도의 상관성을 보이는 예라 하겠다. 바라고 믿던 것이 무너져 내 리거나, 의지하여 따르며 사랑하고 아끼던 사람이 돌아갔을 때 우리는 '슬프다'란 표현을 하는데, 결국 사라져 감'의 뜻이 그 바닥에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슬다'는 '실다사르다[燒]'의 교체형으로 보인다. '쏠다'를 중심으로하는 낱말겨레에는 '쏠개, 쏠개머리 (소의 쏠개에 붙은 고기), 쏠개진 (담즙), 쓸리다, 쏠어들이다, 쏠어 버리다, 쏠음질(물건을 줄로 쓰는 짓), 쓿다(곡식의 껍질을 벗겨 깨끗하게 하다)'와 같은 꼴 들이 있다. 대표적인 민속 경기인 씨름의 열기가 대단한데, '씨름'도 '쏠다'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17세기의 문헌자료인 ((박통사언해),증간본에 '시름'이 씨 름'의 뜻으로 실린 예가 보인다. 짐작하건대 '시름'은 '슬다'가 모음의 빠짐에 따라 '실다'가 되어, '실-十으十-ㅁ'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말로 보인다 이후 'ㅅ>ㅆ' 의 변화에 따라 오늘날의 씨름'이 되 었으리라. 방언에서는 지금도 '쓸개'를 '씰개 (경기, 강원, 충남 경남 경북, 제주 일원)' 혹은 '씨레(경기, 강원 층북, 전북, 전남, 경북, 경남의 일부 지역)'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스(쓰, 즈,츠,쯔)>시 (씨,지, 치,찌)'의 과정을 층분히 짐작할 수 았다. 이른바 모음 '으(-)' 의 전설음화라고 부르는데, 이 밖에도 우리말의 발전과정에서 많은 보기를 찾을 수있다. 그런즉 '씨름'은 '쓸다'에서 비롯한 형태라고 볼 수 있게 된다. 두 사람의 맞수가 붙어 힘을 겨루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쓰러뜨리면 이기는 것이 씨름이다. 힘과 꾀의 대결에서 강한 쪽이 약한 쪽을 공격하여 이기는 자연의 섭리를 승화시킨 경기라고 하겠다. 언제나 힘이 약한 편은 강한 편의 지매를 받게 되어 있으니 다시 어떤 설명이 필요없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 우리는 우리들의 쓸개의 쓸어 내는 힘을 길러 주고 북돋울 일이다. 지나친 허욕과 낭비나 향락은 건강에 그리 도울이 되지 않을 것이니 삼가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12-6 삶과 사름 보통 때에는 서로 잘 모르지만 노름을 함께 해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된다고 하여 '사람은 잡기를 해 보아야 그 사람의 마음을 안다'고 한다. 특수한 한계상황에 부딪뜨려 보면 사람의 마음을 바로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목숨이 있는 사물이 그 목숨을 이어 나아가려고 움직이는 모든 동작을 '살다' 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생물이 존재하는 목적은 자신의 생명과 종족보존에 있다고 한다. 생명현상은 어떤 면에서 에너지의 이행과정으로 볼 수 있다. 움직임 자체가 에너지 없이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고 바라는 바 번영을 약속할 길이 없다. 에너지는 태양에서 비롯되는바, 태양은 예로부터 불의 상징으로, 삶의 바탕인 대지를 생성시키는 '화생토(火生土)' 의 본거지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대지 (땅)는 용암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부딪혀 쪼개지고 다시 갈라진 부드러운 흙, 모래와, 식어서 굳은 바위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화산작용을 따라 용암이 끓어오르다가 물이 흐르듯 엄청난 흐름을 이루고, 거기서 피어 오르는 구름과 같은 수증기가 공기중에 방울져 엄청난 비가 되어 그 위에 내 림으로써 삶의 고향 곧 우리가 살아 숨쉬는 이 땅에 윤기를 더하고 끝없는 생명을 너울거리게 하였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불이 타오르는 화산을 살아 있는 화산(활화산 ; 活火山)이라고 하거니와, 언어적인 상상력의 밑바탕은 연소작용 곧 불을 사르는 현상이라고 본다. 불사름의 현상을 유추하여 살아 있는 생명현상도 그렇게 설명한 것 이다. 꽃이나 얼굴이나 형편이 '핀다'고 표현하는 것도 불이 타올라 환해지는 현상을 유추한 데서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다' 라는 말은 원초적으로 보아 불이 타고 에너지가 정지상태에서 운동상태로 옮아간다는 뜻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러한 것은 '젊음을 불사른다' 는 표현에서도 잘 나타난다. 중세어 자료를 보면 '살다((원각), 상 2-1 :48)' 가 확인되는데 '살아가다'의 뜻을 드러내는 '살다(生, ((석보) 10-3)' 와 같은 낱말겨레에 넣을 수 있다고 본다. 오늘날의 '사람`도 '살다/살다'에서 파생되어 나온 말이다. 표기적 인 변 이형태로 보이는 말은 '사 람 (석보, 6-5), 싸람 ((석보, 19-5), 사름((정속), l)'등이 있는데, '사람 `이 그 중심을 이룬다_ 결국 '사람'은 살아가는 존재라는 말인데, 어찌 사람만이 살아가는 존재이겠는가. 인간은 만물 중에 가장 보배로운 존재로 일컬어져 왔거니와, 어찌 보면 이는 철저한 인간중심의 이기주의적 사물인식이며 독선적인 판단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만이 냉 각할 수 있는' 존재라는 데에서 그러한 인식의 출발점을 찾아 본다. 거친 음식을 먹고 거친 입성을 걸치더라도 자유로이 살것인가, 아니면 정신적 고통과 억압을 받을지라도 물질적,풍요를 누리며 살 것인가를 놓고 고민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다. 그래서 파스칼은 냉각하는 갈대' 라고 하여 이러한 인간의 양면성을 표현한 것일까. 일면 정신적으로, 일면 물질적으로 어떻게 조화로운 삶을 이루어 나아갈 것인가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과제라고 하겠다. 사람의 속성을 잘 드러낸 몇 가지 전래되는 속언 또는 성구를 찾아 보면 들쭉날쭉하다. '사람 살 곳은 골골이 있다'는 착한 사람을 알아주는 아름다운 풍속이 있음을,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태어날 때부터 인간 모두는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가짐을 드러낸다. 그런가 하면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 는 후세에 이름을 남기는 데에 삶의 목적을 두었음을, '사람은 키 큰 덕을 입어도 나무는 키 큰 덕을 못 입는다' 는 큰 인물이 줌은 영향을 줄 수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이 자주 변함을 일러 '사람의 마음은 하루에도 열두 번' 이라 하며, 환경의 중요성을 일컬어서 '사람의 새끼는 서울로 보내고 마소 새끼는 시골로 보내라'고도 한다. 고등어는 고등어 냄새가 있고 꽁치는 꽁치대로의 냄새가 있기 마련이다. 참다운 마음과 행실에서 비롯하는 인격의 향기. 그것은 사람의 내음으로서 가장 찬사를 받아 마땅한 냄새일 것이다. 어원으로 보아 '살다' 는 연소현상을 뜻한다고 하였거니와 '사르다'에서 음절 사이의 모음이 떨어지고 리을(ㄹ)이 앞음절 받침으로 붙어 '살-' 이 된 것이라 하겠다. 중세어에서 '살다[生]' 는 '사로다(<동문> 상 63)' 인데, 이 말을 중심으로 하는 낱말겨레에 드는 말로는 'ㅅ다((석보) 11-43), ㅅ다(生 ; (계초) 26), 삶다(<능엄> 1-81), 살(ㅎ)(<능엄> 8-7)' 과 같은 형태들이 있다. 땅은 화산작용에 따른 과정에서 만들어겼다고 하였는바, '살/할(흙)'은 같은 말이었다고 본다. 시옷(ㅅ) ~히읗(ㅎ)의 넘나듦은 혼히 볼 수 있는 예이기 패문이다. 의미상으로 보아도 지구의 살은 흙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살~살'은 표기적인 변이형태로, 점차 다른 뜻으로 분화되어 쓰이기는 했지만 이들 모두는 '불사름'이라는 같은 속성을 드러내는 말들이다. 한마디로 '살' 은 연소현상 곧 음식을 먹고 마신 그 결과로 얻어진 것이요 '사르다/살다'는 그 과정을 이르는 것이다. 죽었던 블이 다시 타오르는 것도 '살아난다'고 하며 시들어 메마르던 풀이 단비를 머금고 소생하는 것도 '살아난다' 고 한다. 반대로 꺼져 가는 것을 '사라진다'고 일컫는다. 물론 보이던 모습이 눈앞에서 보이지 않음도 '사라진다'고 한다. 이러한 뜻의 전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림이나 글 등이 효과적인 인상을 줄 때에도 그 글이나 그림이 살아 있다고 말하게 된다. '살다'에 연상되는 속담이나 성구들이 있으니, '산 닭 주고 죽은 닭 바꾸기도 어렵다(상대방이 필요로 할 때에 참다운 가치가 드러난다)라든가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치랴', '산 사람의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쉽사리 죽지 않는다)' 또는 '산 호랑이 눈썹(도저히 얻을 수 었는 것)'과 같은 조상 전래의 말들이 있다..살다'와 같은 뜻으로 이루어지는 말의 무리로는 '살려 내다, 살려 주다, 살맛, 살아가다, 살아나다, 살아 생전, 살아 오다, 사로잡다, 살잡다(삽러져 가는 집 등을 바로 잡는 것)'와 같은 꼴들이 있다. 혼탁해 가는 우리의 영흔 속에서 살아 오르는 듯한 모습과 목소리가 차츰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되돌아 보아야 하겠다. 12-7. 사랑과 연소(燃燒) '믿음이 없는 곳에 사랑의 신은 살 수 없다' 고 하며, '아모레는 프시케를 버린다'는 서양의 신화가 있다.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어 가장 값진 인간의 가치는 사랑에 있다고까지 힘주어 말하는 종교가 있음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랑에는 여러 가지의 사랑이 있다. 부모와 형제간의 사랑, 이웃과 민족에 대한 사랑, 친구간의 사랑, 학문과 예술에 대한 사랑, 절대자 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등 참으로 다양하다. 우리말의 사랑이란 말은 그 밑바탕이 무엇일까? 필자는 '사랑'이란 말이 한자어가 아닌 우리 고유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첫째 '사랑 애(愛) ((유합),하 3)',사랑할 ㅌ((훈몽), 하 33)' 에서와 같이 훈과 음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좀더 자세하게 풀어보자. 한자에 대해 풀이말(훈)과 한자음(음)을 밝척 적을 때 '하늘 천(天), 돌 석(石), 고마경 (敬)'등에서와 같이 풀이말과 한자음의 표기가 서로 다르면 풀이말은 대체도 우리 고유어 계통이며, '군사 군(軍), 공경 경 (敬)'에서와 같이 풀이말에 한자음이 포함되어 있으면 풀이말은 대체로 한자어 계통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경우는 고유어 계통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우리말의 조어법을 보면 용언의 어간에'-앙/-엉'이 붙어 명사를 이루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는 점이다. 니랑 고랑, 노린, 거멍'등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랑'을 '생각하다'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지만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우리 조상들은 '사르다' 란 말을 써 왔다. 불태워 없앰을 이르는 말이다. 혼히 젊음을 불태운다든가 블사른다고 한다. 근원적으로 생명현상은 그 무엇을 불태움으로써 생겨나는 에너지를 통해 가능해진다. 사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도 일종의 불사르개를 우리 몸에 제공하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의 밥통은 변형된 불아궁이라고나 할까. 소화작용은 느린 산화로서, 갑작스런 파열음이나 순간적인 고열과 및을 내지 않을 뿐 연소와 매한가지다. 불사름이 끝나는 날, 그 사람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며 어두운 영계로 돌아간다. 필자는 생명현상을 반영하고 있는 이 '살다[燒]' 에서 '사랑'이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살-+-앙>살앙>사랑'의 과정을 거쳐'사랑' 이 된 것이다. 즉 사랑이란, '불을 사르는 것' 이라는 본래의 의미에서 '애틋이 여기어 위하는 마음'의 뜻으로 승화된 것이다. 자신을 불태움으로써 말미암을 수 있는 것이니 사랑은 참으로 숭고한 마음이 아닌가. 또한 불사름은 생명현상의 본질이니, 사랑은 삶의 가장 큰 명제라 할 것이다 누가 사랑을 일러 차갑다, 어둡다, 고깝다 할 수 있으리오.
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12. 울림과 진실 12-1. 아리랑과 한(恨) 한국에서 널리 불리는 민요 가운데 아리랑처럼 많은 설화와 변이형을 갖고 있는 노래는 드물 것이다. 흔히 민요는 어느 민족에서든지 그 민족 혹은 특정한 지역이나 사람들의 정한(情恨)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다. 혹인 영가의 경우는 그 대표적인 본보기라고 하겠거니와, 우리나라에서 남존여비, 관존민비 혹은 삼강오륜의 제약으로 빚어지는 한이나 푸념 등이 각 지역의 내방가사를 포함한 민요에서 애창되고 있음은 널리 얄려진 사실이다. 그 중에는 임진왜란이나 동학혁명과 같은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마음속에 빚어진 응어리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 문학이나 노래로 남아 예술이란 옷을 입기도 한다. 한 개인이 평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잊혀지지 않는 한의 응어리가 있겠거늘, 힘이 없고 가진 게 없는 무산대중의 한, 성의 차별에서오는 여성의 한, 특히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갈등에서 일어나는 한, 남녀 간의 애정에서 말미암은 응어리진 감정 둥 실로 우리네 삶에는 응어리진 것이 너무도 많은 듯하다. 어느 누가 처음으로 아리랑을 지어 불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세월이 갈수록 공감대는 더하여 여러 지방에서 즐겨 불렀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른바 우리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민요 아리랑에서 '아리 랑'이란 말은 어떻게 쓰인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하여 열 사람이 열 소리 격으로 참으로 많은 풀이가 있어 그 열기를 쉽게 알게 된다. 김지연의 '알영설 (顯英說)', 김재도의 '아랑설 (阿娘說)' 이병도의 '낙랑설 (樂浪說)', 양주동의 '아라리설', 이규태의 '아린설', 국어국문학 사전의 '얄리 얄리설' 등이 있으며, 주창자가 알려져 있지 않은 가설로서는 '아리랑(我離娘-처와의 이별을 슬퍼한다), 아이롱(料耳聲- '나는 귀가 먹었다'에서 유래), 아난리 (我難離-가정을 떠나기가 어렵다), 아미일영 (-澤, 美, 日, 英을 경계하자는 데에서 유래)'의 주장이 있다. 이 문제는 다시 정동화에 와서 간추려져 동아리를 짓게 되었는데, 조율성과 흥을 돋우기 위한 '무의미한 나머지 후렴의 소리'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1977). 물론 아리랑은 한자어가 아니고 고유어의 계통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선 그 기능으로 보아 고유어 계통의 말로서 음악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한 여음이 아닌가 한다. 문제는 과연 아무런 뜻도 없는 말일까 하는 것이다. 문자의 표기에서, 모든 소리에는, 그 소리가 어휘적이든 문법적이든 간에, 거기에 걸맞은 뜻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아리랑의 경우, 특히 밀양 아리랑의 경우에서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은 어떤 아픔과 정한이 담긴 실제 어휘 곧 실사의 의미를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후렴구로 보인다. 이때 음운의 모음은, 입을 벌리는 개구도가 제일 큰 아(ㅏ)와 제일 입벌림이 작은 이(ㅣ)로 구성된다. 자음은 목청떨림 곧 가청도가 제일 큰 리을(ㄹ)과 이응(ㅇ)으로 짜인다. 그럼 '아이랑, 쓰리랑'의 어휘 또는 문법의미는 무엇인지 ? 문법 의미는 찾아 보기가 어려우며 어휘의미가 그 중심을 이룬다. 비교언어학적으로 보아 여진어의 '아린'이란 말에서 왔을 가능성보다는 고유한 우리말 '아리다'와 '쓰리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옛말에서 보면 아리고 쓰리다는 말로서 '알슬히다((경민) 23)' 라는 형태가 있다. 이 말은 '알히다((법화) 2-162) 十슬히다((구급간)1-12)' 로 이루어진 합성어로서, '알히다'는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을 맞거나 베였을 때 오는 아픔을 이름이요, '슬히다'는 너무도 추워서 몸이 얼어붙을 때의 괴로움을 이른다. 이렇게 보면 '아리랑'과 '쓰리랑'은 그 어휘의미로 보아 님을 향한, 이별과 꾸관심에 대한 마음의 아픔, 낙심하고 한심한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며, 소리로 보아서는 모음과 자음의 조화를 통해 음악적인 효과를 살리는 기능을 이루어 내고 있다고 하겠다. 여기서 '-랑'은 접속의 구실과 함께 음악성을 살리는 보람을 드러내고 있다. 삶의 길에 있어 아픔과 낙망은 언제나 있을 수 있다. 검은 구름같이 몰려오는 시련을 딛고, 다시 그 뒤에 푸른 하늘과 빛나는 해를 바라서 얼마만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가 이것이 바로 큰 문제요, 풀어 내야 할 명제가 되는 것이다. 아프고 시린 계절에 피는 수선화는 자연의 부름을 좇아 이냥 피어 타는 것을. 아리랑 뒤에 서린 아픔과 시린 정한을 딛고 일어나 새로운 사랑의 열병을 앓더라도, 우린 소담스러운 의지의 날개로 거룩한 조물주의 영지에 몇 이랑의 밭을 갈아야 하지 않겠는가. 저 유명한 예이츠의 이니스프리는 아닐지라도. 아리랑 고개 곧 아픔과 시림의 고개를 넘으면 우리가 바라는 겨레의 뜨락에 봄이 올지도 모르니까. 12-2. 아픔과 통과제의 자신의 팔과 다리, 열 손가락을 깨물어 하나하나 아프지 않은 것이 없을 뿐더러, 아프기도 마찬가지여서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있나' 하는 속담이 생긴 듯하다 여러 형제가 있을 적에 부모의 근심은 어느 아들이나 딸에 대하여도 한가지임을 드러내고 있다. 몸이나 마음에 직접 흑은 간점으로 와닿는 괴로움을 일러 '아프다'고 한다. 몸에 열이 나고 쑤셔서 참기 어려운 생리적인 아픔이 있는가 하면,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문제나 존재에 대한 물음에서 일어나는 문제, 신앙상의 이유로 일어나는 문제 등으로 인한 심리적인 아픔이 있다. 때에 따라서는 앞의 경우보다는 뒤의 경우가 더욱 힘드는 때가 많이 있음을 우리는 경험하게 되곤 한다. 아픔에는 개인 또는 민족, 더 나아가서 인류의 정황에 매임 없이 뒤범벅이 되는 전쟁, 질병, 천재지변과 같은 극한 상황의 아픔도 있다. 역사적으로 보아,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군사 등의 여러 문제로 굉장한 시련에 부닥뜨려, 이 아픔을 슬기롭게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은 살아 남고, 무릎을 끓고 마는 경우에는 생존의 의미를 잃고 스스로 자취를 감추거나 다른 사람들의 다스림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앞에서 풀이한 바의 정신적인 아픔(고통)을 교육의 한 덕목으로 과하여서 수도자들을 특별하게 훈련하는 일은 우리의 역사에도 드러나고 있다. ((삼국지) 동이전에 보면 '국가의 비상시에 성을 쌓게 하면서 나이 젊은 사람들을 뽑아 모두 등가죽에 노끈을 궤어 긴 나무에 매고 날마다 소리지르며 잡아당겨도 아플 줄을 모르게 단련한다. 이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단단히 하는 이외에 몸을 튼튼하게 하는데 필요하다(其國中有所爲及官家捨築城郭諸年少勇健者皆쁠흠皮以大鄕貫之以丈許木鑛之通順呼作力不爲以痛旣以勸作且以爲健)'고 기록되어 있다. 요컨대 극기훈련으로써 인재를 기르는 방법으로 삼았던 것이니 아픔의 통과제의랄까. 필자도 육이오 전쟁 때 어른을 잃었다. 어렸을때는 그 아픔이 나 흔자만의 시련인가 싶어, 남 모르게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병드신 어머니한테 아버지를 사 오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한다. 자라 어른이 된 지금은 그리 생각하지는 않는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그것은 우리 모두의 시련이요 아픔이었다. 다시 그 의미를 생산적으로 플이하건대, 그 아픔의 세월은 오히려 오늘과 내일, 나와 겨레의 삶올 보다 밝게 함에 더욱 값진 토양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중세어에 '아프다'는 '알파다((월인) 119)' 였는데, 오늘날의 '아리다'가 옛말에 '알히다(법화) 2-162)' 로 확인되는 걸로 미루어 아프다는 '알(ㅎ)+바다>알파다'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알파다'의 어근 '알(ㅎ)' 은 조류의 알[卵] ((석보) 13-10)을 뜻하는 말이다. 알에 대한 방언의 분화형을 보면, 히웅(ㅎ)종성이 다음 말에 이어져 거센소리로 나는 경우로 보아, 증세어 '알(ㅎ)의 분포와 같음을 알게 된다. 알타(경북 영주, 영천, 안동, 봉화, 영양, 울진, 청송, 대구, 군위, 의성/경남 합천, 거창, 함양, 산청, 진주, 층무 거제 하동/충남 서천 예산 홍성/층북 제천, 청주, 영동, 연퐁) 등. 따져 보면 알의 상태로 있다가 그 생명이 자라 더 큰 개체로 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생물은 아주 드물다. 생물학에서 이르는 수정란(씨받이 알)도 알의 상태로 있는 생명이 아니겠는가? 알을 낳는 어미의 경우도 그러하거니와 하나의 알에서 나오는 새끼도 일정한 과정의 진통을 겪지 않으면 안 된다. 동물 중에는 어미가 알을 바로 자신의 몸 속에다 낳고 그 속에서 까서 기르는 것도 있고, 밖으로 낳은 뒤 자신의 몸으로 품어서 부화시키는 것도 있다. 일정한 온도와 일정한 영양의 공급, 그리고 일정한 방어의 상태가 이루어져야 그 새끼가 태어나는 것이니, 실로 어미의 엄청난 희생이 요구되는 것이다. 하지만 잘 돌보아 준 경우에라도 알 자체에 문제가 있으면 새로운 개체의 생명으로 태어나지 못한다. 이럴 경우 그 어미가 감정이 있는 주체일 때, 자식을 잃어 버린 그 고통, 그 쓰라림은 참으로 작지 않은 것이다.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 새끼를 부화시키는 동물도 있다고 하거니와 자식(새끼) 올 낳아서 기르는 것, 이 모든 과정은 힘들고, 때로는 자신의 목숨을 거는 엄청난 희생이 따르는 일이다. 어미 닭이 알을 품거나 병아리를 기를 때 가장 사나워지는 것을 보아도 알 수있는 노릇이다. 생물체의 기초적인 본능이 바로 종족보전과 자기의 생명보전에 있음을 생각하면 알을 낳기 위하여, 알을 까기 위하여, 새끼를 기르기 위하여 아픔과 자기희생을 감수함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그 많은 동물의 알과 고기 그 많은 새끼를 잡아 먹고 살아야 하니 이 또한 자연의 섭리이며, 우리 또한 죽어 땅에 묻힘으로 뭇 플과 나무의 밥이 되니 이 또한 자연의 섭리인고로 아픔이 전제되는 삶의 과정을 운명이듯 사랑해야 한다. 12-3. 울림과 진실 이제 막 울려고 하는 아이를 잘 달래지는 않고 오히려 뺨을 쳐서 더욱 울게 만드는 것을 일러 '울려는 아이 뺨치기' 라고 한다. 문제를 쉽게 플어 내기는커녕 오히려 화를 크게 만들어 잘못되거나 어려운 상황을 더 나쁘게 하는 경우를 비유하고 있다. 본디 울음이라고 하는 현상은 함께 울리는 '공명 (共鳴)' 을 기초로 하여 일어난다. 교향악의 소리를 포함해서 모든 소리는 함께 울림으로써 귀로 층분히 듣고 느낄 수 있도록 우리들의 감각에 와 닿는다. 실험음성학적 인 보고에 따르면 한국인의 성대는 약 2센티 전후가 된다고 한다. 부아(폐)로 들어간 들숨이 호흡기를 통하여 나오는 날숨의 바람이 성대를 울린다. 그 소리는 다시 입 안이나 코 안에서 자음, 모음으로 갈라져서 무수한 떨림을 수반함으로써 함께 울게 하며, 언어학적으로 의미 있는 변별적인 소리 곧 음성을 내게 된다. 여기서 얻어진 일정한 수의 땋소리와 홀소리가 결합하여 음절을 구성하고 다시 형태소로 인식되어 필요한 정보가 말하는 이에게서 듣는 이에게 전달되어 간다. 입으로 피리를 불면 소리가 나듯이 우리의 성대도 나오는 날숨을따라 피리와 같은 작용을 일으켜 인간의 언어활동을 가능하게 해준다. 생각건대 '울다'는 '불다'싸서 비롯하여 쓰이는 것이라고 본다. 결국 '불다>울다'와 같이 말머리에서 비읍이 떨어져 만들어진 형태 다..울긋불긋/울며불며'에서 앞머리의 '울-' 이 '불-' 에서 말미암은 것임을 전제한다면 비읍의 탈락은 인정하기 어렵지 않다. 서재극은 중세어에 나타난 '울다'의 단어족을 '우르다((초두해)8-56), 울다((월석 10-3)' 로 보고 있다(l980) 이와 함께 '불다'와 관계되는 형태로는 '불다((석보) 11-16), 부르다(자세한 설명을 하다 ; ((법화) 3-121), 불이다((법화) 7-50)' 가 확인된다. 이어 현대어로 눈을 돌리면 부들부들(>우들우들 ; 몸을 크게 떠는 모양). 부르르(>우르르 ; 갑자기 끓는소리)' 등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공명작용에는 그 바탕으로서 공감(共惑)이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공감과 공명의 관계는 어떻게 풀이되는 것인지 살펴 보기로 한다. 사람을 가리켜 흔히 감정의 동물이라고 한다. 인간의 감정 곧 마음은 인간행위의 밑바닥이 되며 구심점에 해당하는 것. 이 감정 (마음)은 손짓, 몸짓 또는 말소리 등의 여러 가지 움직임으로 드러나게 된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느낌도 뭔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게 돼 있다. 우리가 어떠한 자극을 받았을 때 함께 느끼어 형성하게 되는 공감대에서 비롯되는 공명이 그것이다. 지극한 기쁨이나 슬픔, 노여움을 만날 때 사람들은 몸을 가누지 못하기도 하며 때로는 울음으로써 그 내면을 드러내 보인다. 주체와 객체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정감의 밑바닥을 흐르는 굽이에 닿아 함께 우는 공명을 일으킨 것이라고 하겠다. 우는 아이의 경우, 만져 볼 수도 없지만 정감의 내면에서 어떤 특정한 자극에 대하여 공감을 하였기 때문에 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입에서 피어나는 말소리나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선율이 그렇고 언어의 예술로 불리는 문학의 경우도 그러하다. 목소리는 말하는 이의 입을 떠나 듣는 이의 고막을 울림으로써 말하는 이의 생각과 느낌을 듣는 이에게 전달한다. 바이올린도 공명실을 울게 하여 어울린 소리로 승화되어 우리들의 마음에 와닿는다. 그러면 언어예술 곧 문학의 경우는 어떠한가. 필연적으로 싱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느낌 곧 충동을 바탕으로 하여 값진 체험을 예술적으로 처리 보존함으로써, 진실과 아름다움이 어울려 작품을 대하는 사람을 감동시켜 공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힘의 문학이란 용어를 쓰거니와, 여기서 힘이란 바로 앞에서 이른바 진실과 아름다움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되는 공명의 또 다른 표현일 뿐 결코 그 밑바탕에 있어 앞의 두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의 사회를 계약사회로 규정한다. 계약은 서로가 공감하는바로써 서로의 행위에 대해 공명에 해 당하는 제약을 가하는 것이다. 실로 공감은 공명의 속알맹이가 되며, 공명은 공감의 겉모습(외연)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다운 삶을 누리기 위하여 공감과 공명은 더욱 생산적으로 이끌어 가야 할 명제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전혀 공감대를 갖지 못한 채 살아 가기도 하며, 공감은 하지만 공명이 없는 부조리한 삶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또한 우리들의 마음은 공감과 공명이 있는 삶의 형태를 그리워한다. 전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경우는 사람이 모여 사는 모둠살이에서 고립과 독존의 관계로 나타나며 때로는 사나운 이기주의로 치닫기도 한다. 거기에는 제 스스로를 무너져 버리게 할 수밖에 없는 파멸과 증오의 늪이 가로놓여 있을 뿐이다. 공명이 없으면서 공감은 하는 상황이 우리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인 수가 많다. 충분히 알면서도 함께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현실 앞에서 아쉬워하고 후회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한 속성이 아닐까. 참으로 공감이 있으면서 함께 공명도 하는 값있고 보람찬 한 생애를 누리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오롯한 믿음을 향하여 함께 울고 웃으며 아끼고 바치며 애틋하게 그 길로 가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믿는 진실에 대하여 공감하면서 기꺼이 함께 울리는 자세로써 인간에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그 길에는 그다지 아름다운 꽃이나 풀도 없다. 그러나 사람이 가야 할 가장 아름다운 여로이기에 그들은 그 길을 가는 것이다. 이와 관련지어 '울다' 와 걸리는 말겨레로는 '울남(울기를 잘 하는 사내아이), 울녀 (잘 우는 여자 아이), 울대 (조류의 발성기관), 울보, 울부짖다'와 같은 형태들이 있다. 가장 순수한 감정은 슬픔이라고 하거니와 공감과 공명이 있는 '울음'이 있는 곳이야말로 정녕 화평으로 가는 길목일 것이다.
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11. 고움과 원형(圓形) 11-1. 인지 (認知)와 아름다움 '꿈에 세수 그릇을 보면 아름다운 아내를 얻게 된다'고 한다. 물론 그 말에 필연성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면 기분이 전환되므로 꼭 아름다운 아내를 얻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좋은 일이 아닌가. 세수하는 것은 얼굴을 깨끗하게 해 줄 뿐만아니라, 손과 얼굴, 그리고 몸을 움직이는 동작이 이루어짐으로써 운동도 된다. 세상 사람들은 나이나 성, 동과 서를 불문하고 아름다운 몸과 마음씨를 갖기 원한다 사물의 상태가 아주 원만하게 어울려, 예쁘고 고운 모양을 일컬어 '아름답다'고 한다. 키츠가 말한 대로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기쁨'일 수 있다.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사라져 가는 아름다운 감정이나 사물들을 보존하거나,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예술이란 미적인 표현 행위를 한다. 사람의 성격이 좋은 것을 원만하다고 하고, 보기에 좋은 것을 곱다고 하거니와, 아름다움의 가장 기본이 되는 형태는 '등근 모양(圓形)'과 '구부러진 모양(曲形)'이 아닌가 한다. 아무래도 직선의 고갯길보다는 굽이져 앞이 똑바로 보이지 않는 고갯길에서 상상을 통한 마음의 움직임이 싹트는 법이니까. 우리는 흔히 '각선미가 있다: 허리가 잘록하다'고 하여 몸매가 아름다운 여성을 표현한다. 이 모두가 그 대상의 조화 있는 구부러짐을 아름담게 인식한다는 증거이다. 아름답다고 느끼게 하는 형태의 전형은 둥근 모양이다. 사람의 모습을 보라. 어느 것 하나 기본구조가 둥글지 않은 것이 없다. 우선 눈이나 얼굴이 그러하며 원초적으로 세포의 원형질이라든가 생식을 위한 난자의 모습 또한 그러하다 이렇게 둥근 모양을 갖추게 되는 것은 지구가 둥근 데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둥근 모습을 하는 것이 살아가기에 가장 편안하기에 그렇게 되는지도 모른다. '아름답다'에서 접미사 '-답다'를 떼면 '아름'이 남는다. 이 '아름'에 대하여 몇 가지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알다, 안다, 아름'과 각각 관련지어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세 어에서는 '아름'에 해당하는 말로 동음이의어인 '아름[私,抱]'이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름' 에 '-답다'가 붙어 이루어진 말인 듯하다. 그러면 파연 동사의 명사형에 '-답다'가 붙어 형용사가 된 경우가 있느냐고 되물을 수 있다. '아름[抱]'은 본시 '안다[抱]' 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명사형이 아니고 파생명사이기 때문에 그러한 의문은 큰 어려움 없이 줄어나갈 수 있다. 파생명사는 대개의 경우 용언의 어간에 'ㅇ/으'와 '-ㅁ' 이 붙어 이루어지는데 완전한 자립명사로서 사용되기 때문이다. '아 ㄹ [抱]'의 원형은 '안다'이며, 그 듯은 두 팔을 벌려서 껴안은 둘레의 길이로 풀이할 수 있다. 그 동작으로 보아 두 팔로 껴안으려면, 즉 안으로 끼려면 팔을 둥그렇게 해야 한다. 구부리는 동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두 팔로 껴안아 보고 난 뒤에라야 그 길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안는 행위는 대상의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 된다. 또한 자신의 두 팔로써 품안에 넣어 자신의 것으로 느끼고 소유하는 경우도 있으니, 때에 따라서는 자신만이 아는 비밀스러움이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아 ㄹ [抱]' 은 그 동작의 과정이나 결과로 보아 원형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아 ㄹ ' 이나 '알음' 과 상당히 가까운 의미의 유연성을 띤다. 원형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인식의 자기화라고나 할까. '아름답다'의 세 가지 가정, 抱 知, 私는 따라서 결코 서로 완전히 독립된 별개의 형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단, '알다 ' 를 기본으로 삼는 것은 그 명사령으로 '알옴' 은 보이나 '아ㄹ'은 찾아지지 않아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이 세 형태의 기본형은 '알-' 이라고 생각한다. '알' 은 동물의 생명을 간직하는 가장 소중한 공간이며 물체로서는 등근 모양을 하고 있다. '곱다(曲 ; (석보), l1-6)' 도 곱다고 인식하는 본바탕이 '곱음(굽음)'임을 말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곱음은 굴절이요 변화다. 조지훈이 한국의 미의식을 '곱다/아름답다'로 갈래지은 것은 이러한 의식에 그 터를 둔 것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공감이 가는 풀이라고 하겠다. 11-2. 그림과 상징 '그림의 떡' 이라고 한다. 그림 속에 있는 떡은 먹음직스러워 보여도 먹을 수가 없는 것이어서 자기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도 욕구를 층족할 수 없음을 비유하고 있다. 어떤 물체가 있을 때 그 물체의 모양과 비슷하게 모습을 그리어 나타낸 것을 '그림'으로 풀이한다. 그림은 '그리다'에서 갈라져 나온 말이다. 중심이 되는 의미는 '사물의 형상을 그리는 것'이 며, 부차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고 싶어하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다. 마음 속에 어떤 물체나 정황을 그리는 애틋함이 간절할 때 '그립다'고 하며 이에서 말미암은 파생명사는 '그리움'이 된다. 누구나 무지개 같은 그리움이 피어오를 때 삶의 참다운 보람을 느끼고 삶이 축복임을 느끼게 되는 것. 또 누구나 자유와 평등을 누리며, 기펴고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 사물을 그리는 그림은 원형적인 관점에서 보아 상징성을 갖고 있다. 구체적인 어떤 도상 으로 상징화되는 것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환웅천왕이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바, 도장은 하나의 도상이요 상징인 것이다. 도장에 새겨진 그림이 보여 주는 상징은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제사장격인 군왕들만이 그러한 상징적인 도상(圖像)을 가졌으며, 거기에서 진정한 군왕의 권위가 인정되었던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글씨도 그림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의 상징적인 특징을 살려서 변형시켜, 더 편리한 모양을 갖춘 것이 오늘날의 문자가 아닌가 한다. 상형문자의 경우에는 이러한 특징이 더욱 강하다. 표음문자라고는 하지만 ((훈민정음해례본), 제자해를 보면,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자음을 만들고, 천지인의 삼재 (三才)를 흉내내어 모음을 만들었다 하니, 이 역시 일종의 그림의 성격을 강하게 퐁기는 게 아닌가. 바라다보기만 써도 낯익은 태극기는 참말로 우리들에게는 위대한 가치를 드러내는 도상이요 상징이다. 이른바 음양오행에 입각한 우주의 생성 원리를 따라서, 불과 물을 드러내기 위하여, 붉은색과 푸른색을 써서 태극을 만든 것이다. 천부인과 관련하여 김양기는(한국의 신화 전설),에서 천부인 세 개를 칼, 방울,거울로 풀이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용숙은 ((한국의 시원사상),에서 '칼-산술, 거울-천문지리, 방울-음악'으로 대응할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요컨대 그림의 본질은 상징이며, 이러한 상징을 드러내는 도상은 특정한 종교나 집단을 드러내는 징표가 되어 쓰이는 일이 혼히 있다. 지금은 오락 기구가 되었지만, '윷놀이 판'은 단군시대에 자부선생(紫府先生)이 만든 것으로서, 신성 (神性)을 뜻하는 거북이의 등에 그려지는 그림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물론 그림에 대한 풀이나 의미부여는 보편성을 갖는 범위 안에서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이 인위적으로 하는 것이다. 빛이 있고 어떤 실체가 있으매 그 형체에 해당하는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옛말로는 그림자를 '그리메 ((월석), 9-22)' 라고 한다. '그리다'와 상관을 보이는 증세어의 낱말겨레에는, '그리다((용가50), 그리메 ((금강) l51), 그리이다((초두해), 22-46), 그림((초두해) 16-25), 그림재 ((역해보) 1), 그립다((윌석) l7-15) 등이 있다. '그리다'는 '글十이 十-다>그리다'이며, 여기에서 '글'은 '긋/글/굳'의 계열로 간추릴 수 있다. 오늘날에는 지역에 따라서 여러가지 형태로 분화되어 쓰이는데, 그 꼴은 아주 다양하다. 거렁지(경북 영주, 안동, 봉화, 영 양), 거름자(강원 삼척), 거림자(전남 장성), 그럼자(경남 합천, 함양, 층무, 거제), 그늘(경남 함양, 합천, 진양), 그렁지 (경북 군위, 선산, 예천 문경), 그링지 (경북 상주), 기림자(경북 경산, 군위, 대구/경남 충무 남해/층북 연풍, 단양/전북 임실, 진안, 장계/전남 여수, 순천, 광주, 완도, 영암, 해남, 진도) 등. 우리 겨레가 하나됨은, 정녕 거리도 멀고 척러 모양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으나, 계절이 끊임없이 피고 지듯 우리의 하나 됨에의 그리움 또한 마구 솟구처 오르나니......어릴 적 하늘에 높이 아롱져 빛나는 무지게를 보며 그리움을 키우다가, 자라 높은 산 위에 올라 무지개가 발 아래 드리우매, 몹시 실망한 일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 속에 무지개에 대한 그리움, 곧 하나의 위대한 가정 흑은 이상이 없을 때 삶은 메마르고 보잘것없어지리라. 11-3. 고움과 원형(圓形) '고운 일 하면 고운 밥 먹는다'는 말이 있다.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럴싸한 몫을 차지하는 건 아니지만, 대략 자신이 어떤 원인 행위를 하였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결정된다. 원천적으로 좋은 일 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이미 보상을 받은 것이니까 고운 밥은 이미 떼어 놓은 당상이렷다. 겉모양이 산뜻하고 아름답거나 말 또는'소리가 귀로 듣기에 좋을때 '곱다'는 말을 쓴다. '곱다'에서 나온 고움의식은 둥그렇게 생긴 원형(圓形)의 사물인식에서 말미암은 것이라고 본다. ((훈민정음해례본)을 보더라도 원형은 하늘의 상징이요, 시간의 순서로 보아 맨 첫번인 자시(子時)에 해당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곧은 직선에서보다는 꼬부라진 길이나 산의 능선을 바라다보면서 마음의 펀안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꼬부라져 있는 모습들은 원형에서 그 완성된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인격이 원만하다'고도 하며, '예술이 원숙한 경지에 이 르렀다'고도 한다. 이는 모두 둥그런 원형에 마지막 구경(究竟)을 두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곱다'와 첫 음절의 모음이 다른 말로 '굽다'가 있다. '굽다'는 큰 모양의 원형으로 생긴 것을 이른다. '곱다'가 주는 음상이 '굽다' 보다 작고 귀여우니, '곱다' 가 작은 모양의 원형으로 생긴 것을 이르는 줄을 알 것이다. 따라서 '곱다'는 작은 것이 잘 어우러져 있을 때 느끼는 마음의 만족 곧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하겠다. 자연의 누리에는 정말 둥근 모양으로 존재하는 것이 많이 있다. 당장 우리의 눈과, 손발의 끝부분이 그러하며, 얼굴 또한 그러하다, 봄철이면 다투어 피는 꽃들의 모양이 그러하며, 식물의 열매며 가뭄 끝에 내리는 빗방울이 그러하다. '곱다'와 한 동아리를 이루는 말로는 '곱다랗다(아주 곱다), 곱다래지다, 곱살스럽다, 곱살하다'와 같은 꼴이 있다. 방언 분포를 보면 아주 다양한 형태를 확인하게 된다. '곱다'의 방언 분포 1) 어간의 비읍(ㅂ)이 유지되는 경우-고바서 (경상 대부분 지역/전남 전역/강원 삼척), 고벙께(경남 층무, 거제), 고붕께 (경남 함천, 거창), 고바(경상 전역/전남 돌산, 여수, 순천 구례/강원 삼척). 2) 어간의 비읍(ㅂ)이 떨어지는 경우-고아(전라 대부분 지역/층남 금산), 고옵다(강원 호산), 고웁다(층남 예산), 고읍다(전북 무주). 3) 기타-미하다{경남 창녕), 야무다(경남 남해), 에쁘다(전남 진상), 예뿌다(경남 산청, 울주/전남 광양), 이뿌다(경남 합천, 창녕, 김해/전남 여수, 순천), 이쁘다(전남 화순, 광양, 진상) 요컨대 어간의 '-ㅂ-' 이 유지되기도 하고 탈락되기도 하며 활용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가 중세어에서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살펴보자. '곱다'의 낱말겨레 1) 어간의 비읍(ㅂ)이 유지되는 경우-곱다(曲 ; ((석보), 11-6), 곱돌다((악장), (이상곡)), 곱숑그리다(꼬부리다 ; (가곡원류) p.26), 곱흐리다((한청), 198 C) 등. 2) 어간의 비읍(ㅂ)이 떨어지는 경우-고ㅂ며뷔트디아ㅎ며 ((월석), 17-53), 너추른고바((초두해) 15-8), ㄱ장고오ㄷ((초박해) 상 63), 얼구리고오몬 ((법화), 2-74), 고우닐스ㅅ옴널셔 ((동동) (악범)) 등. 위의 보기를 보면 오늘날의 방언 분포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비읍(ㅂ)'이 어말에서 다음 음절 초성으로 이어나는 활용의 과정에서 보존되기도 하고 그러하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주시경 선생은 '-ㅂ-/-순경음 비읍-'의 양계열로 기본형을 재구성하기도 하였다. 11-4. 단단함과 동그라미 마음이 야무지고 단단해야 재물이 모인다고 하여 '단단한 땅에 물이 괸다'는 속담이 쓰인다. 상대적으로, 낭비벽이 있는 사람에게 재물을 모을 수 없다는 내용으로, 무서운 결심과 절약하는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혼히 속이 꽉 차서 실속이 있거나, 약하지 않고 굳센 상태를 '단단하다'고 이른다. 단단하다는 말은 '단단(團團) +-하다>단단하다'로 풀이할 수 있는데 여기서 주목하고자 함은 단단(團團)이 드러내는 물체의 모양이라고 하겠다. 가장 안정되고 견고한 사물의 상태를 '원형(圓形)' 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근원적으로 이땅 위에 있는 모든 사물들은, 원형의 지구가 둥글게 돌아가는 질서의 제약 속에서 그 가치를 실현해야 하기 때문에, 원형지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달이나 이슬과 같은 물체를 묘사한 자료에서 그런 가능성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團團似明月 ((만첩여)), 團團滿葉露(江捨의 時), 心若磨廳月夜團團轉((僧惠洪))]. '단단'은 우리말에 수용되어 하나의 어근을 형성하여 발달하여 가는 과정에서 파생어와 합성어를 이루며 낱말의 겨레를 만들어 왔다. 낱말의 겨레를 이루는 틀은, 음성상징에 따른 자음의 바뀜으로 일어나는 것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모음의 바뀜에 따른 분화형태들의 집합이라 하겠다. 먼저 자음교체에 따른 분화형태를 이루는 말무리는 예사소리와 된소리, 그리고 거센소리의 형태를 뿌리로 하여 각각의 계열이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단단하다/딴딴하다/탄탄하다'). 이들 형태들은 다시 모음의 교체를 따라서 말의 무리를 만드니, '단단하다/든든하다, 딴딴하다/뜬뜬하다(방언), 탄탄하다/튼튼하다'와 같이, 양성모음과 음성모음의 대립을 따라서 분화한 것으로 보인다.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이라고 할 때 '튼튼(하다)'도 사실은 '단단(하다)'에서 비롯함을 알 수 있다. 경우에따라서는 음절의 끝부분(받침)에서 자음의 바뀜을 따라 만들어지는 같은 계열의 이형태(異形態)들이 있어 홍미를 더해 준다. '딴딴하다'가 'ㄴ>ㅇ'에 따라 '땅땅하다'로 다시 모음교체를 입어 '땡땡하다/띵띵하다'로 바뀜이 그러한 경우다. 속이 꽉 차는 그 정도가 강하여 마주 켕기어서 몹시 괭팽함을 이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땅땅하다'는 모음교체에 따라 '땅땅하다/뚱뚱하다/똥똥하다'와 같은 말로 계열울 늘려 가기도 한다. '탄탄하다, 탱탱하다, 팅팅하다, 퉁퉁하다, 통통하다'도 역시, 모두가 실속이 꽉 차고 등그런 원 모양의 '차 있음, 원형성'올 특질로 하는 말로, '단단하다'와 같은 겨레의 말로 보인다. 이상에서 한자어 '단단(團團)' 올 어근으로 하여 갈라지는 말의 무리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그러면 고유한 우리말 가운데 '단단하다'와 같이 왼형 (圓形)을 드러내는 형태는 없었을까. 현대국어에 '둥글다 동글다, 담기다, 담다'와 같은 말들이 있는데, 중세어 자료의 지명이나 중세어 이전의 형태에서는 '두무(ㄱ)/도무(ㄱ)'의 꼴을 확인할 수 있다. 몇 가지 실례를 들어 보기로 한다. 1) 舊拏山在州南二十里鎭山其日舊拏山者以雲舊可拏引也一云 頭 無岳峯峯???一云圓山((동여) 권 37) 2) 道康郡本百濟道武郡新羅景德王改爲陽武郡((삼사) 35) 3) 耽津郡本百濟冬音縣新羅改耽津縣爲道康領縣高麗改靈쌍 任 內((세종실록) 지리지 전라도조) 4) 표音山, 효毛曉 豆尾山, 豆땋只, 豆毛山, 斗理, 豆잘領 豆毛浦 豆無山, 豆廊川, 都麻時, 豆無領, 杜門洞 豆붐洞, 斗흄里,斗武里,볐無谷(<대동여지도>) 5) 딜둠기 쪼 豆도 푹니 라(陶盆亦可 ; (자초)) 6) 두무골(전남 완도), 돔방골(전남 노화도), 두멍 (큰솥, 水鐵大料貯水者 ; (行吏)) 이상의 보기에서 '도무(두무) ~돔[둠(ㄱ)]' 은 둥그런 모양이거나 적어도 둘러싸인 모양의 특성을 드러내는 형태임을 알 수 있다. '도무[돔(ㄱ)]' 계열보다는 '두무[둠(ㄱ)]' 계열의 형태가 더 많은 보기를 드러낸다. '둠(ㄱ)>둥(ㄱ)[동(ㄱ)]' 의 형태로 갈라져 나아 가기도 하였으며, 모음이 바뀌어 '담' 으로 쓰인 경우도 확인된다. 먼저 '동-'계에 드는 낱말들로는 동그라미 (원 모양), 동그랗다, 동그래지다. 동그마니(둥글게 따로 떨어져 있는 모양), 동그스름하다(모나지 않고 좀 둥글다), 동글갸름하다(동근 편이면서도 좀 긴 듯 하다), 동글납대대하다(생김새가 둥글고 납작스름하다), 동글납작하다(<둥글넙적하다), 동긋하다(동그스름하다), 동글다(중심에서 둘레 가장자리의 거리가 어느 곳이나 같다), 동글반반하다(생김새가 둥그스름하고 반반하다), 동글동글, 동글리다(동글게 만들다), 동긋이 (동긋하게)와 같은 꼴들이 있다. 한편 '둥-'계에 들어가는 말에는 '둥글다, 둥그렇다, 둥그미, 둥조리(((역해), 하 19), 둥그스름하다'와 같은 말들이 있다. 다시 '동-/둥-' 계의 자음음상에 따르는 형태들이 있으니 '똥그랗다(<뚱그떻다), 통통하다(<퉁퉁하다)'와 같은 보기들이 그러한 예이다. 아울러 모음교체에 따른 꼴로는 '당그렇다(<덩그렇다)'와 같은 형태가 있다. 요약건대 '단단' 계의 말은 둥그런 원형에 꽉 차 있는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 중심이라면 '동(ㄱ)-/둥(ㄱ)-' 계는 둥그런 모양 곧 원형 자체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덧붙여 두고자 하는 것은, 모음의 바꿩에 따라 '돔(ㄱ)-/둠(ㄱ)'은 '담(ㄱ)-'계의 말로도 발달하여 갔다는 것이다. '담다, 담기다. 담그다, 담다(닮다 ; 동일한 틀 속에 넣어 같은 사물의 모양을 빚어냈으니까)'와 같은 낱말겨레가 그러한 예이다. 시가 음악적인 상태를 그리워하듯, 모든 사물은 원형에의 지향성을 가진다. 그러한 지향성은 언어에 되비치어 낱말의 겨레들로 가지를 뻗는다. 가지는 더욱 많은 잎새로 번져 가서 말의 숲을 이룬다. 그 청정한 빛으로....... 11-5. 두께와 양면성 '두꺼비의 꽁지만 하다'는 말을 쓴다 두꺼비의 꽁지란 얼핏 보아서는 알아 볼 도리가 없다. 사람의 배움이나 솜씨가 아주 짧은 경우를 이르고 있다. 때로는 게의 꽁지만 하다고도 한다. 두꺼비는 겉모양으로 보아 두꺼운 개구리와 같다고 하여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말의 동물이나 식물 이름 가운데는 이렇게 모양이나 소리를 흉내내고, 그 뒤에 동작이나 상태의 주체가 되는 행위자 '이 '를 어울러서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컨대 '따오기 (따옥十-이>따오기), 부엉이(부헝 +-이>부헝이>부엉이), 두꺼비 (두껍 +-이>두꺼비)'와 같은 것들이 있다. 이렇게 상징적인 의성어나 의태어를 이용하는 동식물의 이름은, 언어 형성이란 관점에서 볼 패 매우 생산적임은 이미 누누이 말한 바이다. 한 면과 그에 나란히 가는 맞은 면과의 사이에서, 감각적이든 구체적이든, 인식되는 넓이를 '두께' 라고 하며, 그 두께가 많은 상태를 '두껍다'고 한다. 옛말을 찾아 보면 '두껍다'는 '듯겁다((삼역)9-10), ㄷ텁다((소해) 5-22), ㄷ겁다((월석) 17-53), 두텁다-((훈해) 와 같은 형태들로 드러난다. 여기서 어간의 기본이 되는 것은'ㄷ'으로 보인다. '둘-' 은 '둘(ㅎ) ((석보))' 의 표기적 변이형이 아닌가 한다. 한 면에 맞서는 다른 면과의 사이에 생기는 공간을 두께라고 하였다. 결국 두 면이 전제되어야 하고, 그 사이에 생기는 공간이 존재함을 요구하는 공간개념이라고도 하겠다. 점심 도시락이라는 말을 쓰거니와 '도시락'은 옛말 '두스락'에서 비롯되었는데, 서재극은 이와 관련하여 향가 <두솔가(料率歌)>의 '두솔'도 '뭘 싸 둔다' 는 뜻으로 풀이한 바 있다. 이 말은 바로 '듯'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니까 가운데에 어떤 물건을 놓아 두고 다른 것으로 쌀 경우, 그 모양이 직선이든 아니면 곡선이든 심지어 원형이든 간에 싸인 물체의 겉모양과 나란히 됨으로써 두 개의 면이 생기게 되며, 그 사이에는 하나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 공간이 두껍든 얇든 그것은 큰 문제가 안 된다. 야단법석을 떠는 것을 '두스럭 떤다'고 하거니와, 이 말도 결국은 하나의 물건을 다른 것으로 싸맨다든지, 아니면 갑작스런 도시락처럼 갑자기 처리하게 됨을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받침에 쓰이는 자음의 교체를 따라서 그 형태가 분화되는 일이 있다. 이를테면 '듯/ㄷ/둘' 이 그러한 보기들인데, '듯/ㄷ'은 앞에서도 형태를 들어 보였거니와 '듯겁/듣텁-/듣겁-' 과 같이 쓰이다가 오늘에 와서는 '두껍다'로 굳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면 '둘' 은 어떻게 플이할 수 있을까. '싸서 가리다, 원을 그리며 돌리다, 사물을 이리 저리 변통하다, 사람을 마음대로 다루다, 이치에 그럴 듯하게 하여 남을 속이다'의 뜻을 드러내는 말로 '두르다'가 있다. 이 가운데 '싸서 가리다, 원을 그리며 돌리다, 남을 속이다'와 같은 뜻은 분명 두 개의 평행되는 면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로 하여서만 가능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싸서 가리다'는 한 믈체를 다른 물체로 가리니 두 개의 면이 생기며, '남을 속이다'는 겉면과 속이 달라야 속일 수 있으니 이 또한 두 개의 면이 있어야 한다 '원을 그리며 돌리다'도 하나의 공간에 원을 그리면 결국 그 선을 안과 밖으로 하여 두 개의 면이 이루어진다. '두껍다'의 방언형으로 '두루막하다(전남 담양)' 형이 있음을 생각해 보면 '두껍다'가 '싸서 가리다'는 뜻의 '두루막'과 상통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사람들은 앞과 뒤 흑은 위와 아래, 처음과 끝에 해당되는 공간을 인식함으로써 그 두께의 정도를 알게 된다. 다른 풀이로 '듯(듣)' 은 '뒤'와 상관이 있지 않은가 한다. 물건을 두어 둔다고 할 때, 옛말에서는 '뒷다((월석) 21-118), 듯다((남명), 하 48)' 로 나타난다. 비교언어학적 인 풀이는 그만두고라도 우리말에서 이와 같이 실현되는 변이형들을 통하여 그 원형태를 짐작할 수 있음은 재미있는 일이다. 이렇게 공간이나 사물을 알아차림에 있어 긴요한 것은, 가시적인 공간에서 다음 공간으로 이어지는 공간의 변화이다. 사람이 살아 감에 있어 양면성을 전혀 띠지 많기란 어렵다. 흔히 염치없는 이를 일러 '얼굴이 두껍다'고 한다. 염치를 잃음에 대한 양심의 감정이 무딘 사람이란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겉과 속이 서로 다름을 고민하며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록, 우리 사회는 밝고 좋은 세상이 된다. 양심의 두께가 염치없음의 두께에 비해 두터우면 두터울수록 좋은 일이다. 옛부터 '물박후정(物薄厚情)`이라고 하였거니와, 우리는 진실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인간다운 누리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
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10. 막다른 골목 (2/2) 10-4. 아침과 알 '아침 놀 저녁 비 저녁 놀 아침 비'라고 한다. 전해 오는 말에 아침에 놀이 서면 저녁에 비가 오고, 저녁에 놀이 서면 아침에 비가 온다는 것이다. 경험을 통해 비가 오고 안 오는 것을 짐작하는 방법을 이르고 있다. 하루의 일은 아침에 있고 한 해의 계획은 봄에 있다고 하였거니와, 아침 또는 한 해의 봄, 곧 시작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불리는 한국은 아침의 정신에 기초하여 문화의 맥을 이어 왔다. 아침 정신, 그것은 첫머리 의식이며 및을 그리워하는 지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아침이 환기하는 뜻과 첫머리 의식 사이에 어떤 상관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아침에 대응되는 개념은 중세어로 '이르다'의 뜻으로 드러난다 아침(朝 ; (여사서),3-9), 이르다 ((초두해), 15-l7). 새벽 (晨 ; (동문), 상 3) 등이 그것이다. 말을 하는 사람의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서 말은 분열되기도 하고 통일되기도 한다. '아침'의 지역적인 변이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 아저게 (경남 울산, 양산/전남 순천), 아적 (평안 황해), 아척 (경남 양산, 울산, 합천/전북 남원, 순창, 정읍/전남 강진, 고흥/경기 연천/제주 전역), 아칙 (경남 밀양/전남 해남, 강진, 화순. 보성/평북 박천, 영변, 구성, 강계, 철산) 등이 있다. '아+ㅈ(ㅊ)-' 계가 중심을 이루어 널리 분포하고 있다. 아침의 방언형들은, 오늘날 부사로서 '이제까지'의 뜻으로 쓰이는 '아직'과 같은 낱말겨레로 볼 수 있다. 시간이 '아직 이르다'고 하거니와 시간이나 공간 상황이 정해 놓을 때보다 앞서 있음을 뜻 한다. 방언의 분포에서 아침이 '아저게, 아적, 아척, 아칙' 으로 상이고 있음은 '아직'과 관계 있음을 뒷받침해 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아침은 시간적으로 점심이나 저녁에 비하면 더 이른 시점임에 틀림없다. 낱말의 음절구조란 관점에서 보아 그 바탕이 되는 음절의 원형은 'ㅇ-' 으로 보이는데 '앗-' 에서 비롯한 것으로 판단 된다. '알'의 낱말 겨레에서 지적하였듯이, 원형적인 뜻은 '시작, 생명, 자식' 등으로 파악되며, '앗(ㅇ)/맏/알/맞' 이 바로 이 계열에 드는 말들이다. 아침과 관련하여 쓰이는 말로는 '아침, 아침밥, 아침결'과 같은 복합어가 많이 있으며, '아직 (때가 이르지 않음), 아직까지, 아주(매우 앞서서 뛰어나 있음)' 등의 꼴도 있다. 옛부터 배달겨레는 보다 이른 시기에 아침을 몰고 온 사람들이었음을 우리는 어떻게든 보여야 하리라. 10-5. 저녁과 나중 '저녁 굶은 시어미 상'이란 말이 있다. 가뜩이나 며느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시어머니가 며느리 때문에 저녁을 굶었다고 가정했을 때 그 모습이 아주 좋지 않음을 이르는 경우다. 해가 지고 밤이 오는 때를 저녁이라고 한다. 저녁은 아침과 서로 대립되는 상대적인 뜻으로 쓰인다. 방언에 따라서는 조금씩 다른변이 형태들이 있다. '저녁'의 방언분포를 보면, '지녁 (경기 강원, 전라, 경상, 황해, 함경), 지역 (강원, 경상, 함경), 지 악(강원 속초/경남 고성/경기 고양), 나조(함남), 나주곽(평북)' 등이 있다. <두시 언해>와 같은 중세어 자료에서 저녁이 '나조(ㅎ)' 이었음을 고려할 때, 방언형의 '나조, 나주왁' 은 고어의 잔재형으로서 지금도 쓰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조'는 '늦다[晩]. 저물다[暮]'의 뜻이었는데 근대국어로 오면서 '낮'으로 바뀌어 '아침'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쓰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나조'와 연관을 보이는 형태로는 '나중(얼마 지난 뒤), 낮, 낮 거리 (대낮에 하는 남녀간의 성관계), 낮곁 (한낮으로부터 해지기까지의 시간을 둘로 나눈 그 전반), 낮대거리 (광산에서 밤과 낮으로 패를 갈라 일할 때 낮에 들어가 일하는 대거리), 낮도둑, 낮잠' 둥 이 있다. 특히 '나조'가 앞과 뒤의 '뒤'로 쓰인 것이 '낮-'이라면 이 '낮'이 파생어간이 되고 접미사가 붙어 형용사 '낮다'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낮다'의 '낮'은 높지 않은 것, 좀 떨어지는 상태를 드러내게 되었던 것이다. '낮'과 관련된 말로는 '나즈막하다, 나즉나즉, 나즉이, 나즉하다, 낮다, 낮보다, 낮추다, 낮춤말'과 같은 형태가 있다. '낮-'계의 말과 같은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늦-'이 있다. '낮'에서 모음이 바뀜에 따라서 된 형태로, 시간적으로 이르지 않음'을 뜻한다. '늦다'가 그 대표적인 형태다. '늦-'계에 해당되는 말로는 '늦가올, 늦거름, 늦깍이(나이가 많아서 중이 꾄 사람), 늦다, 늦더위, 늦둥이(나이가 많아서 낳은 자식), 늦되다(늦게서야 이루어지다), 늦모(철 늦게 낸 모), 늦바람, 늦배 (늦게 낳은 새끼). 늦은블(그리 심하지 아니한 욕이나 괴로움), 늦은씨(만생종), 늦잠, 늦틀이명주말이(명주말이 과에 딸린 연체동물), 늦하늬(서남풍, 西南風謂之緩柰意或팠緩琢-성호)' 등 여러 형태가 있다. '나조(낮)'의 변이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잊어 버린다'의 '잊다'도 그 형태나 의미로 보아 서로 가까움을 알 수 있다. 중세어에서 '잊다'는 '낮다((용가), l05)' 로 나타나는데, 한마디로 'ㄴ'은 '낮/늦/낮'과 같이 대립적으로 짝을 이루는 낱말겨레의 한 형태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나조(낮)-/늦-' 을 중심으로 하는 중세어의 낱말겨레 분포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나조'의 낱말겨레(중세어) 1) '낮 '계-나조(ㅎ) ((초두해) 8-9), 나죵내 ((동문), 하 49) /낫도적 ((역해), 상 66), 낫맛감(한낮의 때 ; ((온역방) 6}, 낫밤(日夜 ;((능엄,) 8-137) 등. 2) '늦-'계-눗왜ㅈ(늦벼 ; (금양잡록)) 등. 3) ㄴ- 계-ㄴ다((용가) 1O5), 닛다((용가), 11O) 등. 'ㄴ다'의 형태를 보면, 모음의 교체를 따라서 '낮/늦/낮' 으로 분화한 것이요, 의미로 본다면 '어떤 기억이나 지식을 잃어버림으로써 과거의 일 곧 뒤의 일이 되어 버린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시간이 홀러 감으로써 아침을 과거로 생각하게 됨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ㄴ (>잊)-'계열의 낱말겨레를 현대어에서 찾아 보면'잊다, 잊어 버리다, 잊히다/니지 삐리다(잊어 버리다 ; 평안 방언)'와 같은 형태들이 있다. 경험한 일 또는 알던 지식을 모두 기억할 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고 그럴 만한 능력도 없는 것이 보통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러 도움이 안 되는 일들을 기억하곤 한다. 다른 사람들의 홈을 많이 알고 기억하여 뭐 그리 도움이 되겠는가. 미워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을 과거시제로 돌려 주고 잊어 버려 주는 미덕은 삶의 진정한 슬기로움이 되기에 층분하다. 10-6. 어디와 여태 '어디 개가 짖느냐'고 한다. 사실상 개가 짖고 있어도 관심이 었으면 들은 둥 만 둥하게 지나간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동네 개가 짖는 정도로 지나침을 이른다. '어느 곳, 아무 곳'의 뜻을 드러내는 '어디'는 처소대명사로서의 구실을 하고, 옛말로는 '어되(何處 ; (용가) 47)' 로 쓰이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어디'로 그 형태가 바뀌어 쓰이고 있는바, '어느[何]十디 [處]>어디'로 풀이된다. 장소를 나타내는 '어디'는 의문의 조사 '-여'와 함께 '어디여'와 같은 소몰이 소리로도 쓰인다. '어디'는 지시관형사 '이'와 결합하여 '이어디>여디>여지 (끗)'의 형태로 바뀌어 왔다. 여기 '여디,여지 (끗)'는 'ㅇ今((훈몽), 하1)'의 'ㅇ'과 그 맥을 같이한다고 본다. 그럼 '지금까지'의 뜻으로 쓰이는 '여태(껏)'는 어떻게 풀이해야 할는지. 'ㅇ' 이 이어디' 에서 음절이 줄어들고 모음이 한데 이루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풀어 볼 수 있겠다. 본디 '-디'는 의존명사 'ㄷ'에 다른 형태소가 들러붙어 만들어진 것이므로 'ㄷ'의 분화어로 ㄷ/듸'를 상정할 수 있다. 그런데 'ㄷ'가 히읗(ㅎ)말음체언인 까닭에 'ㄷ(ㅎ)>ㅌ'의 과정을 거쳐 '이어ㄷ>여ㅌ>여태 '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ㅇ/여듸/여ㅌ'보다 '이제((석보) 6-5)' 가 더 많이 쓰이게 됨으로써 현재를 드러내는 말로 '이제'가 대종을 이루게 되었고, 다시 한자어 현재(現在)'와 함께 쓰이다가 밀려나, 오늘날에는 '현재'가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ㅇ'이 (한청문감)에서는 '엿ㅌ'로 쓰이는 것을 보면, 'ㅇ~엿'이섞여 쓰였음을 알 수 있다. 'ㅇ'과 관련하여 만들어진 말로서 '엿보다'를 생자해 볼 수 있다. '엿보다'는 '남 모르게 가만히 보는 것'을 이른다. 겉으로 보면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실상은 어떤 특정한 사물이나 사실에 비밀스례 관심을 둔다. 같은 계열에 들어가는 형태로, 엿듣다, 엿어 듣다(엿듣다 ;강원, 함경 방언), 엿살피다'와 같은 꼴들이 있다. 옛말로는 '엿다((청구)) ' 가 있다. 생각건대 지금 이 시점에서 특정한 공간을 나타내는 '엿 (ㅇ)'에서 비롯된 말이 아닌가 한다. 물론 지금은 '엿보다. 여태 '와 같은 꼴들에서 그 상징적인 화석을 찾을 수 있올 뿐이지만. 10-7. 막다른 골목 가다가 더 이상 길이 없으면 돌아설 수밖에 없다. 해서 '막다른 골이 되면 돌아선다'는 속담이 생겼을 것이다. 어떤 일이, 막다른 궁한 지경에 이르게 되면 새로운 피와 방법이 생김을 비유한 것이다. 어떤 물체와 물체 사이를 가리거나 사방을 둘러싸며 물리치는 것을 '막다' 라고 한다. 살다가 보면 시간이나 공간의 상황에 따라 공격을 해야 할 때도 있고 방어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사나운 짐승들의 공격을 받았을 때 피하여 도망하거나 맞서 싸우지 않으면, 생존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어디 그뿐인가. 천재지변이 일어나 무서운 재난이 닥쳤을 때도 효과적으로 그 재해에 대 처해야만 한다 또한 배가 고플 때에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면 큰일이다. 굶주리다 견디지 못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어떻게 하든지 식 량문제를 비롯한 주거와 의복문제를 해결해야만 자기보존을 할 수 있게 된다. 만일 자손을 잇지 않는다면, 그 집안이나 씨족은 번영을 기약할 수 없으며 더 나아가 인류의 멸종을 막을 길이 없어진다. 방어본능은 우리가 삶의 전과정을 펴 감에 있어 주요한 몫을 차지한다. 우리는 혼히 인생을, 연극에서 말하는 삼막오장으로써 가늠하기도 한다. 짐작하건대 우리말의 '막다'도 '막(幕/隱)'의 기능과 관련하여 비롯된 것이 아닐까. 모든 생물체는 그 기능이 서로 다른 여러 막으로 구성된다. 우선 세포막이 그러하고 나무의 껍질, 사람의 위막이 그러하다. 우리의 옷도 또한 막과 같은 구실을 한다 종이에 많은 문화유산이 기록, 보존됨으로써 오늘날 고도의 문화가 이룩된 것 또한, 인간이 식물의 막을 이용히여 종이를 만듦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막다'가 모음이 바뀌어 '먹다'가 됨은 어떠한 의미상의 연관성을 지니는가. 먹는 행위 역시 삶의 위협을 막는 본능적이고 제일차적 행위라는 데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예부터 먹는 걸로 하늘을삼는다(食以爲天)'고 하여 먹는 것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왔다. 우선 먹어야 살고, 그때 비로소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할 수 있게 되니까. 중세어 자료를 중심으로 '막다'의 계열에 드는 낱말의 겨레를 찾아 보도록 하자. '막다'계열의 낱말겨레 (중세어) 1) '막 '계 막다((월석), 8-66), 막다 ㄷ다(끝까지 다닫다 ; ((유합), 하 37), 막디 ㄹ다(막히다 ; (어륵), 5), 막ㅈㄹ다((초두해) 16-17), 막키다((소해) 6-15) 등. 2) '먹-'계-먹다((석보), 6-32), 먹다(막다 ; (능엄), 7-43), 먹통((한청), 309 a), 먹이다((소해), 4-4) 등. 한편 현대국어에 나타난 '막다'계열의 낱말겨레는 훨씬 다양하다. '막다'계열의 낱말겨레 (현대어) 1) '막-'계-막간(행랑채), 막걸다(노름판에서 가진 돈을 모두 털어 걸다), 막깎다(머리털을 짧게 깎다), 막나이 (아무렇게나 짠 막치 무명), 막내, 막놓다, 막다르다(더 갈 길이 없다), 막동이, 막되다, 막바지, 막벌이, 막일, 막살이, 막서다(맞서다), 막아내다, 막장(갱도의 막다른 곳), 막지르다, 막짠, 마구, 마구잡이, 마구리 (길쭉한 물건이나 상자 등의 양쭉 면) 등. 2) '먹-'계-먹다, 먹먹하다(귀가 잘 들리지 압다), 먹보, 먹새(먹 음새), 먹어나다(먹어 버릇하다), 먹어대 다(남을 해롭게 하려고 자꾸 헐뜯어 말하다), 먹은금(치인 돈의 값), 먹음직하다, 먹이풀(가축의 사료로 쓰이는 플), 머구리 (개구리), 머그락지 (개구리) 등 이와 함께 오늘날 지역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쓰이는 '먹다'의 변이형을 보면 입술소리 아래에서 모음이 둥글게 바뀌는 원순모음화에 따라 '무-'계로 바찝을 알 수 있다. '뭉는다(경상, 전라 대부분 지역/강원 춘성), 무근다(경남 전역/전남 고흥, 화순), 묵다(경남 대부분 지역/전남 강진)' 등의 형태가 바로 그러한 보기이다. 먹는 것은 비어 있는 속을 채워 막음으로써, 삶을 연장시켜 주는 중요한 작업이다. 군인이 나라를 지켜 주듯 먹는 동작이 우리의 생존을 지켜 준다. 그러나 사람은 밥과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우리는 육체의 배고픔뿐 아니라 더 나아가 영흔의 황폐와 부패를 막음으로써 건전한 삶을 꾸려 나아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하여는 삼시 세 때 밥을 먹듯이 영흔의 양식을 하루도 빠짐없이 먹어야 한다.
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10. 막다른 골목 (1/2) 10-1. 낮과 늦음 '낮에 난 도깨비'라 하여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이 인사불성이고 체면도 없이 기괴망측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이른다. 해가 떠 있는 동안으로서 밤과 대립되는 시간대를 '낮'이라고 한다. 시간의 순서로 생각해 보면 하루는 아침-낮-저녁으로 이루어져서 주기적으로 되플이된다. 아침은 하루 중 가장 이른 시간이고, 낮은 그 뒤에 오는 시간이며, 이어서 밤이 된다. 우리 조상들은 이렇듯 시간의 앞서고 뒤섬에 따라 때를 가리키는 말들을 만들어 나아갔다. 심재기가 지적한(l982) 바와 같이 아침은 (조선관역어) 등의 중세어 자료에서 '이르다[早]'와 서로 대응하고 있다. 아침은 방언에서 '아칙 (강왼), 아적 (경기, 서울)' 등으로 나타난다. 대략 열두시를 전후하여 그 이전을 아침, 그 이후를 낮이라 한다. '낮-'은 '날, 저물다[暮], 저녁, 늦다[晩]' 등의 뜻으로 쓰이는바, 이가운데에서 중심을 이루는 뜻은 '늦다[晩]'로 보인다. 오늘날에는 하루 중 해가 저무는 때를 '저녁'이라고 하지만 옛말로는 '나조(ㅎ)((능엄) 2-5)' 였다. 지금도 방언에 따라서는 저녁을 '나조, 나주왁(함경)'이라고 한다. 그러면, '낮-' 은 그 중심된 의미인 '늦다'의 '늦-' 과 어떠한 관련성을 보이는 것일까 ? '늦다'의 '늦-'은 '낮-'이 모음교체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파생, 또는 합성을 하여 이루어지는 '낮_' 계와 '늦-' 계의 낱말겨레를 살펴 보기로 한다. '낮_' 계에는 '낮거리 (대낮에 하는 남녀간의 성관계), 낮곁(한낮으로부터 해지기까지의 시간을 둘로 나누었을 때의 전반), 낮다, 낮때, 낮잠, 낮추다'와 같은 형태들이 있다. 한편 '늦-'계에는 '늦다, 늦더위, 늦둥이(나이가 많이 들어 늦게 본 자식), 늦마(늦장마), 늦심기 (곡식이나 식믈을 제철이 지나서 심는 일), 늦은불(그리 심하지 않은 곤욕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늦잡죄다(늦게 잡두리를 하다), 늦하늬 (서남풍)'와 같은 말들이 있다. '낮(늦)-'계의 말이 중세어에서 '낫_' 계로 나타남은 '낫-' 계가 더 기원적인 형태임을 드러낸다. 'ㅅ>ㅈ'의 마찰음이 파찰음으로 발달한 단계를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생산,해'의 뜻을 드러내는 '나(ㅎ) ((법화1 5_18)' 의 단어족으로도 묶일 가능성이 있다(서재극,((중세국어 단어족 연구) l980). 여기서 '낮'의 형태로 돌아가서 몇 개의 뜻을 같이하는 변이형들을 찾아서 그들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 어떤 까닭으로 '아침'과 시간적인 순서로 이어지게 되었는가를 살펴 나아가기로 한다. 중세어의 자료를 더듬어 보면 '낮'은 '낫(훈몽)' 으로도 표기되며, '낫'은 다시 '낫(穀 簡 ; (중두해))' 의 뜻으로도 쓰인다. '낫'은 또한 '낟(훈례)), 낟(嫌 ; (훈례))' 으로 드러난다. 앞부분에서 지적하였듯이 '낮'이 '해' 를 뜻하는 것임을 고려해 보면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올까 싶다. '해'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곡식이나 풀은 자라고 성장하며 마침내 완성된 개개의 알맹이로 익어 가게` 마련이다. 아울러 풀올 베는 '낫(낟)'도 곡식이나 자란 풀을 베어 들이거나 거두어들일 때 사용하는 것올 생각해 보면, '곡식'의 뜻을 나타내는 '낫'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낮'과 '아침'은 서로 시간의 순서로 보아 '아침'이 앞서는 것을 어떻게 플이할 수 있올까. 방언에서 '아침' 올 '아적, 아칙'이라고 하거니와 '아사(阿斯)' 또는 '앗'이라고 했올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앗'은 '아우(석보))` 의 의미로도 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을 방언으로 '아시 (흑은 아이)'라고 하거니와 본시 동일한 어근 '앗'에서 비롯한 것으로 본다. 오늘날 일본어에서 아침을 '아사'라고 함도, 어떤 경로를 거쳐 이루어겼는지는 모르지만, 동일한 형태 '앗'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보인다. 첫번 논매기를 '아시논매기 (혹은 애벌논매기)'라고 하고, '아시당초'라는 말을 쓰는 것으로 보아 분명 '아시' 는 '처음' 곧 순서의 머리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앗' 이 '동생' 올 뜻하는 것은 어떻게 순서의 머리로 볼 수 있을까.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부모편으로 보면 맏이보다는 더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와 사랑을 기울이게 마련이다. 따라서 바로 위의 형제로 보면 부모의 사랑을 아우에게 빼앗긴 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우를 뜻하는 '앗'에 '-다'를 붙여 '앗다>빼앗다'로 했을 가능성도 있다. 아우를 일부 방언에서는 지금도 '아수' 라고 하는데, 이는 '앗'에서 발달한 형태로 보인다. 결국 하루 해가 떠오르는 아침은 '처음'의 개념으로 그 중심된 의미를 삼아 '이르다[早]'의 듯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앗' 은 음성 인식으로 보아 '디굳(ㄷ)' 과 같이 드러나는데, 디굳 (ㄷ)이 리을(ㄹ)이 되어 '알'로 갈라져 나아감으로써 생명의 씨앗을 나타내게된 것으로 보인다. 플이나 곡식으로 보면 아침은 이제 막 싹이 터서 움이 솟는 때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루를 해에 비유한다면 이제 해가 떠을라 환한 빛을 이땅 위에 비추는 단계로 볼 수 있다. 또한 '낮'은, 풀이 자라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과, 그리고 해가 만물의 성장을 돕기 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것과 같지 아니할까. 이처럼 아침과 낮은 마치 풀의 싹이 틈과 그 싸이 자라 피어남과 같다. 이내 해는 기울어지고 어두워져, 낮은 가고 밤을 맞게 된다. 저녁올 중세어에서 '나조(ㅎ)' 라고 하거니와 이 말은 '나중'이란 형태와도 같은 뜻을 드러낸다. '나조'가 되면 해가 짐과 함께 밝음은 물러가 다음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해가 지는 것을 '져믈다((훈몽) 상 l; 져[彼]十므르[>믈 ;退+-다)' 라고 했다. 또한 저녁도 이쪽 아닌 저쪽의 공간이라고 보아 '뎌[彼]十녁 [方, 所]>뎌녁 >져녁 >저 녁 '이 되었다고 할 것이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으로 '낫다(능엄), 9-72)' 를 쓴 것도 해가 아침에 처음 떠오른 뒤 점점 제 모습으로 펴 나아가는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 모든 사물은 때가 있다고 한다. 태어날 때가 있고 숨을 거두어 들일 때가 있는 것이다. 하루는 해가 처음 떠올라(아침), 제 모습으로 세상을 밝히다가(낮), 이내 저물어 가는 흐름인 것이다. 그 끝은 곧 '물러남[退]'의 상황이다. 해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이 해를 바탕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다시 그것을 언어 형성의 기본으로 삼았으니, 말에 사람의 얼이 비치어 있음을 다시 한 번 알게 된다. 10-2. 갓과 한계 '갓 이사온 집에 볶음질 않는다'는 금기어(禁忌語)가 있다. 새롭게 이사를 해서 바로 볶음질하는 것은 좋지 않으니 삼가라는 내용이다. 딴은 이제 이사를 한 뒤 아직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채 안 되고 마음이 조금은 불안정의 상태인데 콩과 같은 식품을 볶아대면 십중팔구 가족들의 심적인 안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를 이야기할 때 '갓 스물' 이라고 하는데, '이제 막'의 뜻을 드러내고 어떤 동작이 끝난 뒤 오래 되지 않음을 뜻하는 말로서 '갓'이란 형태를 흔히 쓴다. 중세어 자료를 보면 니제 막, 겨우, 방금' 등의 뜻으로 쓰인 말에 '갓 ((석보) 6-35)' 이 보인다. 아울러 같은 형태이면서 '끝,가장자리'의 뜻으로서 쓰이는 '갓 (邊 ; ((월석) 23-90)' 도 확인된다. '갓/갓'은 그 형태와 의미에서 어떤 상관성을 보이는 것일까. 우선 형태로만 보면 같은 음절의 짜임새를 바탕으로 '아래아(?)가 '아(ㅏ)'로 바뀜을 따라서 만들어진 표기적인 변이형으로, 같은 낱말겨레로 묶을 수 있다. 즉 '갓>갓'의 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의미상의 관계는 어떠한가. '가장자리'의 뜻을 나타내는 공간명사 '갓'은 '갓갑다(近 ; ((한청), 264 b)'에서도 보이듯이 어떤 사물이 서로 가까이 있는 상태로 그 뜻을 풀이할 수 있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둘 이상의 사물이 잇닿는 경계선 곧 한계선은 그 둘 혹은 그 이상의 사물이 가장 가까이 맞닿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쳐음'으로 그 뜻을 새길 수 있음도, 한 사물로 들어가는 첫부분이니 시간 흑은 사실의 '첫머리'로 유추가 가능하다. '한계'는 사물에 있어서 '거죽[表面]' 을 의미할 수도 있는데 중세어 자료에서 확인되는 '갓(갓)-' 계열의 낱말겨레는 크게 '갓(갓)/것(겉)/긋(귿>끝)'의 형태로 무리지을 수 있다. '갓 (갓)' 의 낱말겨레 1) '갓(갓)-'계-갓 ((목결) 20), 갓갑다((한청) 264 a), 갓다(같다 ; (중두해), 11-42) /갓갑다((월석) 2-50), 갓가ㅅ로(>가까스로 ; (석보, 6-5) /ㄱ다(한계를 함께 하다 ; ((용가) 85) 등. 2) '것(걸)-'계-것 (皮 ; (초두해), 15-5), 것거플((한청), 197 c),것다(같다 ; (한청), 255 c), 것ㅁㄹ죽다(까무러치다 ; (석보) 11-20), 것보리 ((구황) 7), 것조((역해), 하 9)/겉다(같다 ; (오륜),3-62) /ㄱ (거죽 ;(구급방) 하 73) 등. 3) '긋'-'계-긋(끝 ; (내훈) 1-26), 긋긋다((법화) 3-156), 긋누르다(그처누르다 ; ((몽법) 32)/귿((석보) l1-29) 등. '갓' 은 다시 'ㄱ장(>가장)'계로 발달하여 오늘날의 '가장자리/까지/까장(꺼정)'계로 갈라져 나와 한 낱말겨레를 이루게 되었다. '갓/갓'의 관계가 모음의 바뀜을 따라 이루어지듯이 '긋' 또한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쳤다고 보인다. 결국 'ㅈ/갓/긋'은 동일한 형태소 '갓'이 분화하여 된 변이형태로 보인다. '갓'은 접미사 '-갑다'가 붙어 '가다>가깝다'의 과정을 거쳤으며, 받침의 다름을 따라서 '갖(겆)'으로 변이한 것이 아닐까 싶다. '긋'은 '끝`을 뜻하는 말로서 '긋>귿>ㄱ>?>끝'과 같은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고 본다. 그러니까 '끝'은 가장자리가 사물의 한계를 이루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의 형태가 갖는 가장 중심을 이루는 의미는,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시대나 공간에 따라서 조금씩 달리 가지 벋어 나아간다. 먼저 '갓(갖~겆)-'계에 속하는 형태를 들어 보면, '가깜다, 가까워지다, 가까스로(간신히, 겨우), 가까이, 갓나다(막 태어나다) 갓나오다, 갓난아기, 갓난이(갓나온 아이), 갓밝이 (밝은 무렵), 가죽, 가죽다(가깝다의 경상도 방언), 가지다(손에 들어와 있게 하다 ; 소유의 한계 즉 경계선을 다르게 하여 소유자를 바꾼다는 뜻을 바탕으로 한 듯), 가지런하다, 갖바치(가죽신 만드는 사람), 갖옷(가죽으로 만든 옷), 갖다 주다, 갖벙거지, 갖춘마디'와 같은 형태들이 있다. 아울러 풀이해 두고 싶은 것은 '같다'의 경우이다. '같_'은 '갓'에서 받침이 자음교체되어 분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 뜻으로 보면 '같다' 는 '두 개 이상의 대상이 서로 다르지 아니하다'로 정의된다 서로가 다르지 아니함은 그 성질이나 상태가, 혹은 정도가 다르지 않다는 말이지만, 우선 사물인식에서는 표면 곧 시각적인 공간이 가장 두드러진 인식의 초점이 된다. 한마디로 표면에 드러난 모습 곧 겉모양이 동일한 것이다. '겉/같'은 동일한 어근 '갓(갓)'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물론 모음교체에 따라서 이루어진 형태들이다. '겉_' 계에 드는 말로서는 '겉가루(먼저 되는 가루), 겉고삿(지붕을 이을 때, 이엉 위에 걸쳐 매는 새끼), 겉꺼풀, 겉꾸미다, 겉날리다(대충 되는 대로 해치우는 것), 겉넓이, 겉놀다(건성으로 따로따로 노는 것), 겉눈감다(속으로는 눈을 뜨고 무엇을 보고 있으면서 남 보기에는 눈올 감은 듯이 보이는 것), 겉늙다, 겉맞추다, 겉보리, 겉볼안(겉으로 보아 안을 짐작할 수 있음), 겉봉, 겉수작, 겉여믈다, 겉잠(선잠), 겉장, 겉잣(껍데기를 까지 않은 잣), 겉짐작, 겉치레, 겉절이다(김장할 래 배추의 억센 잎을 부드럽게 하기 위하여 우선 소금을 뿌리어 절이다), 겉치레 (-속치레), 겉피 (겉껍질을 벗기지 아니한 피), 겉흙'와 같은 형태들이 있다. '같_'계로는 '같다, 같이, 같이하다, 같잖다(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같지다(씨름에 두 사람이 같이 넘어지다)' 등의 꼴이 있다. '긋'에서 비롯한 '끝(귿)-' 계에는 어떠한 말의 무리들이 있는지 알아 보도록 한다, '귿-'계에는 '그지없다(한이 없다), 그지없이, 그치다(계속되던 일이 멈추게 되다)' 등이 있고, '끝-'계에는 '끝걷기 (서까래 등을 흩어 까는 일), 끝나다, 끝내기, 끝닿다, 끝돈(믈건 값의 나머지를 끝으로 마저 치르는 돈), 끝마치다, 끝바꿈(어미의 변화), 끝반지 (노느매기할 때 맨 끝판의 차례), 끝빨다(끝이 뾰족하다), 끝소리(말음), 끝장, 끝장나다, 끝지다(끝에 이르다), 끝판(일의 마지막 관)'과 같은 형태들이 있다. 가장자리 곧 한계는 사람들이 사물이나 사실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사람들은 그것이 시간이든 공간이든 관계없이 서로의 한계를 분명히 하고자 한다. 이러한 의식은 '갓(끝)'이란 형태의 낱말밭을 통하썩 많은 갈래를 드러내고 있다. 가장자리는 동일한 물체가 갈라져 나아간 분기점이며, 시간이 오래 지나면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되어 버리는 근거가 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좁히고 가깝게 느끼면서 살고자 하는 것 역시 이상과 현실의 가장자리를 맴도는 일 아닐까. 10-3. 끼니와 때 형제 또는 이웃에 양식이 없어 굶는 사람이 있게 되면 누군가는 걱정을 하게 된다. 몹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에 대해 우리는 '끼니를 굶는대서야' 햐며 혀를 찬다. 일정한 때에 밥을 먹는 일을 '끼니'라고 한다. '끼니'는 '끼 [時]十니[稻]'로 분석된다. 한마디로 '끼' 는 특정한 때를 이름이요, '니'는 벼를 뜻하는 말에서 유추하여 식사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때만 되면 주기적으로 아침, 점심 저녁에 맞추어 밥을 먹어야 하니 그러한 말이 샘긴 듯하다. 옛말에 '끼' 는 '끼((월석), 2-26), 끼 ((용가) 113), 끼 ((노해)상 47)' 의 형태로, '니'는 '니(稻 ; (구급간), l-86), 닛딥 (稻草 ; (역해) 하 10)' 의 꼴로 나타난다. 여기 벼의 뜻으로 쓰이는 '니'는 벼 그 자체가 쌀을 대신한 것으로 보이며 식 량을 원관념으로 하는 형태로 풀이할 수 있는데, 아침밥, 점심밥, 저녁밥의 의미로 써 온 지가 오래다. 'ㄲ/끼'는 본래 장소를 드러내는 말이었는데, 시간의 뜻을 드러내는 말로 전이되어 쓰인 것으로 보인다. 공간적인 거리가 시간적인 간격으로 인식된 것이 니, 시간의 인식은 공간적인 것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앞에서도 말한 바 있다. 곧 일종의 유추현상에 따른 의미의 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날 불을 끄다의 '끄다'는 중세어서는 'ㄲ+-다>끄다'와 같이 쓰였는바, '끄'는 공간적인 틈으로 풀이된다. '끄다'의 파생명사는 '끔'으로, (훈민정음해례본),에는 '끔爲際'로 대응되니, 현대어의 '틈'은 분명 공간적이 거리 '끔'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하겠다. 한숨을 너무 크게 쉬면 '땅이 꺼질 듯하다'고 한다. 이때 '꺼지다'는 정상적인 땅의 표면에 일정한 공간이 푹 내려알아 그 사이가 벌어진 것을 뜻한다. '끼니'의 지역에 따른 방언분포는 '끄-/끼-'계가 중심을 이룬다. 끄녁 (전남 담양,화순), 끄니 (전남 여수, 담양, 곡성, 구례, 함평/강원 평창), 끄니때 (경남 남해/층남 홍산,예산/전남 구례, 곡성 여수 순천, 광양, 강진, 화순, 보성, 영광), 끼니 (전남 구례, 곡성, 순천) 등. 따지고 보면 시간도 어느 시점과 또다른 시점 사이를 말하는 것으로 공간의 개념과 아주 가까이 연접해 있음을 알겠다. (설문해자(認文解字)에 보면 '時'는 '日十土+寸'으로서 공간에 나타나는 해 그림자의 길이로써 시점과 시점 사이를 이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끄-' 의 계열에 드는 형태로는 '끄다, 꺼지다(불이나 거품이 없어지다, 속이 곪아서 우묵하게 들어가다), 끈(일정한 공간을 제거나 잇는 줄), 끈질기다, 끊기다, 끊어뜨리다, 끊다, 끊어치다, 끊임없다' 등이 있다. '끼-'의 계열로서는 '끼니, 끼니때, 끼다(안개나 연기가 끼다, 겨드랑이 같은 페에 넣어 빠지지 않게 죄다), 끼들다, 끼리 (일정한 공간에서 일정한 집단으로 전이), 껴안다, 끼얹다, 끼웃끼웃(기웃기웃 ; 이쪽 저쭉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과 같은 꼴로 분화되어 한 무리를 이루어 나아간다. 마치 손자에 손자를 치듯이.
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9. 겨레와 분화 (2/2) 9-4. 가랑잎파 갈라짐 바짝 마른 잎에 불이 붙으면 걷잡기가 매우 어렵다. 성질이 아주 급하고 아량이 적은 사람을 드러내 '가랑잎에 불 붙기' 라고 한다. 밑동이 둘 혹은 셋으로 갈라진 무우를 가랑무우라 하거니와 가랑잎 또한 본래의 푸른 활엽수의 잎이 저절로 떨어진 뒤에 말라 버린 잎을 뜻한다. 시대와 장소가 바뀌면 문화의 형태와 생리가 변하기마련이다. 더러는 서로 한 몸으로 미분화 상태에 있다가 갈라져 나아가며, 더러는 아예 형태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무엇인가 다른 문화가 나타나기도 한다. 좋은 뜻으로 보아 갈라짐은 개척이요 선의의 경쟁을 의미하지만, 반대의 뜻으로 보면 배신이요 패망이요 어두운 사망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실마리라 할 것이다. 말을 사람들의 정신할동으로 말미암은 결과라고 정의할 때, 언어 또한 문화의 분화과정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가랑잎'도 본래의 잎에서 갈라져 나감으로써 생겨난 분화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가랑'은 독립되어 쓰이지 않는 의존적인 형식으로, '가랑니 (이의 새끼), 가랑머리 (두 가닥으로 땋아 늘인 머리), 가랑비 (가느다란 비), 가랑이 (원몸의 끝이 갈라져 벌어진 부분)'와 같은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랑비'의 방언 분포를 보면, '가락비(경남 진주), 가늘비(전남여수, 순천, 장성/평안/함북), 가시랑비 (경남 창원, 창녕, 김해)'등과 같다. '가랑잎'과 마찬가지로 왼래의 몸에서 갈라져 나온 것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중세어에서 '가랑-'은 '가람-' 또는 '가랍-' 의 형태로 드러나는데 '가랍-' 은 '가람-' 의 표기적인 변이형으로 보인다. 예컨대 '가람 기 (峽) ((유합) 하 54)' 와 같온 보기에서 기본형을 확인할 수 있으며, '가랍남기오((내훈), 가랍나모((사성), 하 38), 가랑나모(料木 ; (역해)), 가랑남우((물보) 잡목) ' 등에서 '가랍-/가랑'이 동일한 형태의 변이형임을 알 수 있다. 분화되어 갈라짐을 드러내는 '가랑-' 은 '가닥(한 곳에서 갈려나간 낱낱의 줄)'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도 `가닥'이 관여하는 형태로는 '가닥가닥, 가닥수(가닥의 수효)'와 같은 꼴들이 있다. 모음과 모음 사이에서 디굳(ㄷ)이 리을(ㄹ) 소리로 약화되어 유음화되는 것은 흔히 찾아 볼 수 있는데, '가닥>가락'도 그러한 보기라고 할 것이다. '가락'은 본래 '가느스름하고 갸름하게 토막진 물건의 낱개, 손이나 발의 갈라진 부분의 하나, 물레로 실을 자을 때 고치솜에서 풀려 나오는 실을 감는 쇠꼬챙이, 노래 같은 데에서 소리의 길이와 높낮이의 고운 어울림'을 뜻하는 말이다. '가락' 이 들어가 만들어지는 말에는 '가락가락(가락마다),가락고동(물레의 왼쭉 괴머리 기둥에 가락을 꽂기 위하여 박은 두개의 고리), 가락국수, 가락나무, 가락떼다(몽류를 치다), 가락엿, 가락옷(가락에 끼어 실을 감아 내는 댓잎이나 종이 또는 지푸라기), 가락잡이 (굵은 물레가락을 바로잡아 주는 사람), 가락지 (손에 끼는 고리), 고락지 (물건을 걸어두는 쇠굽), 가락토리 (물레로 실을 겹으로 드릴 때, 가락의 두 고동 사이에 끼우는 대롱)'와 같은 꼴이 있다. '가락'은 독립해서 쓰일 수 있는 형태인 반면에 '가랑-' 은 제 흘로 쓰이지 못하는 형태이다. 믈론 '갈라짐'을 뜻함에 있어서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같은 뜻이라도 소리의 어감을 달리하는 일이 있으니, 이를 음상이라고 한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다. '가닥'의 경우 'ㄱ>ㄲ'의 된소리되기를 좇아서 갈라겨 나간 말의 무리들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까닥'계라고 할 수 있다. 그 보기를 들면, '까닥거리다(갈라진 줄기가 바람에 휘날리듯이 좋아서 까불거리는 것), 까닥까닥(물기가 실낱만큼이나 마른 모양), 까닥이다(고개를 앞뒤로 가볍게 움직이다), 까딱(고개를 앞으로 꺽어 가볍게 움직이는 모양), 까딱없다 (실오라기만한 변동도 없다), 까딱하면 (조금이라도 그르치면,실오라기만한 것이라도 잘못되면)' 등과 같다. '까닥'에 'ㄹ' 음 받침이 덧붙어 '가닥'치 무리를 이루는 것이 있으니, 오늘날 '이유, 연고, 일의 근본 흑은 실마리'의 의미로 쓰이는 '까닭'이 그 대표적인 형태라고 하겠다. 이러한 범주에 들어가는 말로는 '까닭수(까닭의 수), 까닭표(이유의 표시)'가 있고 받침의 'ㄹ'은 남고 'ㄱ'은 떨어져 쓰이는 '까다롭다, 까다로이'의 꼴들도 있다. 중세어에서 '가닭[실 한 가닥(線一續) ; (역해보; 39)'이 확인되는 바 '까닭'이 실뭉치의 한 오라기에 해당하는 뜻이 아닌가한다. 미루어 보건대 실뭉치가 엉켜 있을 때 엉킨 결을 따라 한 오라기씩을 찾아 풀어 내면 큰 실뭉치를 헤쳐 냄과 같은 의미로 '까닭' 을 생각한 것이리라. 따라서 '까닭을 모르겠다'는 말은 일을 해결해 가는 계기 곧 이유, 근본을 모르겠다는 내용으로 되풀 수 있다. 다시 '까닭'에서 모음이 바뀌면서 그 형태와 소리가 달라지는 말의 무리가 있으니 '꺼덕-'계가 그것이다. 보기를 들면, '꺼덕치다(모양, 차림새 따위가 상스럽거나 어울리지 아니하다), 꺼덕거리다(신이 나서 건방지게 행동하다), 꺼드럭거리다(자꾸 잘난 체 거만을 떨다), 꺼들먹거리다(신이 나서 자꾸 도도하게 굴다)'와 같은꼴들이 있다. '가닥'과 같은 의미로서 경기,강원,경북의 방언인 '가달'이 있다. 이는 다시 모음교체를 따라 '거 덜'로도 상인다. 보기를 들면, '가달(바지가달), 거덜나다(살림이나 무슨 일이 흔들리어 결딴나다), 거덜거덜하다(살림이나 무슨 일이 위태하다), 까들거리다'와 같은 꼴들이 있다. 참으로 무슨 일이나 사물의 까닭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것에서 일어나 큰 일을 만들어 간다. 작은 실오라기가 모여서 큰 뭉치를 이루듯이 말이다. 정녕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큰 일을 이루는 지름길임을 알겠다. 9-5. 겨레와 분화 같은 조상으로부터 태어나 같은 겨레를 이룬 사람을 일러 겨레붙이라고 한다. 샹물이 종족보존을 하는 모습은 다윈이 지적한 바와 같이 하나의 개체와 다른 개체가 서로 만나 하나의 무리를 만들어 냄으로써 이루어진다. 나무의 줄기에서 가지가 벋어 나아가듯이 같은 조상의 자손들이 점차 많은 수효로 갈라져 간다. 씨족(氏族)이란 말을 쓰거니와 같은 성씨를 가진 족속을 이르고 있다. 우리는 한민족을 배달겨레라고 부르고 단군 할아버지의 피를 이은 운명공동체로서의 의식을 함께하고 있다. 겨레의 본질은 갈라짐 곧 갈래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기능이나 형태로 보아 모든 생물들은 갈라짐으로써 번식의 과정을 이루어 나아가지 않는가. 사람들의 겨레붙이가 살아 가는 모양이 그러할진대 그들, 곧 겨레가 이루어 내는 문화도 그 예외일 수는 없다. 모든 문화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분화되지 않은 종합문화의 성격을 보인다. 음악, 미술, 문학, 무용 등의 요소가 한데 어우러진 종합적인 상태에서 한 동아리씩 갈라져 나와 오늘날에 이르렀다. 학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 사람이 박물학자격으로 철학에서 시작하여 거의 모든 학문을 섭렵하는 경우를 찾아 보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좋은 본보기라고 할 것이다. 한 민족의 언어, 역사, 학문과 예술은 하나의 원형성을 띤다. 갈라져 나오기는 했으나 본래 한 가지에서 나온 것이므로. 따라서 다른 겨레와 비교할 때 한 겨레는 서로가 같은 속성을 갖는 집합으로 묶이는 것이다. 겨레는 한 가지에서 나온 갈래로, 공간, 시간적으로 항상 운명을 함께하는 가장 가까운 무리라 하겠다. 중세어 자료에 '걷' 흑은 '곁'이 보이는데 '걷'에서 '결'이 온것은 아닌가 한다. 음운의 변천과정을 보더라도 'ㄷ>ㄹ'의 호전현상이 많이 나타나기 대문에 미더운 바가 있는 추정이다. 그러한 전제에서 살펴 보면, '결 十ㅇ (에)>겨ㄹ ~겨 레'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겨레'는 한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갈래'의 뜻에서 그 밑뿌리를 찾을 수 있고, '갈래'가 점차 형태의 꼴바꿈과 뜻의 변이를 입어 '걷 (곁) ~.결'로 바뀌어간 것이 아닌가 한다. 씨와 날이 서로 어긋매끼게 엮어 짜는 것을 '걷다'라고 하니 겨레야말로 운명공동의 집단이라고 할 밖에. '우선 '걷-'을 중심으로 하는 낱말겨레를 들어 보면, 걷고틀다(이리 걸고 저리 틀어 대항하는 것), 걷지르다(엇결어 딴 쪽으로 지르다), 겯질 리다'와 같은 형태들이 있다. '곁'은 옆이라고 하거니와 사물의 중심이 되는 부분에 딸린 한 쪽을 뜻한다. 원형에서 벋어 나간 갈래라고나 할까. 이 말이 관여하여 이룬 낱말을 보면, 곁가닥, 곁가리 (갈빗대 아래쭉에 붙어 있는 짧고 가는 뼈), 곁가지 (가지에서 다시 곁으로 돋은 가지), 곁군(옆에서 남의 일을 도와 주는 사람), 곁길 (큰 길에서 곁으로 갈라진 길), 곁눈질, 곁들이다, 곁마(따라가는 말), 곁마름(많은 전답을 관리하기가 힘이 드는 경우에 마름을 돕는 사람), 곁말(빗대어 하는 말 고드름 장아꺼 같다고 하는 따위), 곁매 (싸움판에서, 삼자가 곁에서 한쭉을 편들어 치는 매), 곁바대 (겨드랑이 한쭉에 덧붙이는 기역자 모양의 헝겊), 곁방, 곁방살이, 곁부축, 곁붙이 (한조상의 자손이기는 하나 촌수가 먼 일가붙이), 곁비다(부축할 사람이 없다), 곁순, 곁쫴기, 결자리, 곁집, 곁쪽(가까운 일가붙이), 곁하다(가까이하다)'와 같은 꼴들이 있다. 사람의 몸 가운데에서 양편 팔 밑에 오목한 곳을 '겨드랑' 혹은'겨드랑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몸에서 갈라져 나간 지체 곧 가지임을 드러내는 형태로 보인다. 형태의 짜임을 보면 '겯+으랑>겨드랑'으로 보이는데 아무든 쪼개져 갈라짐을 본바탕으로 하는 기능적인 이름으로 보인다. 혼히 신발을 헤아릴 때에 한 켤레, 두 켤레라고 한다. 이때의 '켤레'도 겨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항상 신발은 짝으로 제 구실을 다하는 것이니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 겨레의 '겨 -'가 거센소리로 굳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겨레는 한 몸(조상)에서 가지 덛어 나와 하나의 떼를 이루고 사는 무리다. 말도 기본이 되는 말은 다시 여러 가지의 언어적인 꼴바꿈을 하여 그 갈래의 골짜기를 따라 오늘에 이른다. 조상의 얼흑은 그 원형성은 겨레의 맥을 타고 내려와 가지마다 소박한 꽃으로 피거나, 열매로 맺히어 조상이 살던 그 공간, 그 마당 위에 묻히 며, 또다시 태어난다. 그러기에 우리 겨레 모두는 서로가 서로를 기워 주는 운명을 함께해야 한다. 그러면 중세어의 자료에 나타난 '겨레'의 낱말겨레를 알아 보도록 한다. '겨레'의 날말겨레(중세어) 1) '겻-'계-겻눈질 ((한청) 437), 것도라이 (곁달아 ; (한중륵) p.146), 겻문((한청), 287), 겻셔다(角立하다 ; (법 화), 5-8), 겻자리(법구)), 켯조치일 (곁 따른 일 ; (청구)), 겻칼(粧刀 ; (청 구),116), 겻곳비 (한청), 134) 등. 2) '겯(결)-'계-겯방(소해) 6-79), 겯디르다(결어지르다 ; (유합)하 61), 겯주름(노박집람), 상 2), 겯아래 (겨드랑 ;(월석)) 2-13).결에 (유합), 상 13) 등. 3) ㄱ-'계-입 ㄱ ((월석)서 1) 등. 이상의 보기를 보면 '겻/겯(>결)/ㄱ'의 표기적인 변이형이 보이는데, 모두가 '갈라져 붙음'의 속성을 지닌 낱말들이다. 한 몸(한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겨레는 분명 뿌리가 같은 족속들이다. '겨레' 란 말만 들어도 그 어떤 운명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은 필자 혼자만의 정서는 아닐 것이다. 겨레는 겨레답기를 힘써야 한다. 가장 우리다운 모습으로 삶의 터전을 갈고 닦아야 하는 부름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9. 겨레와 분화 (1/2) 9-1. 사회와 제의(祭儀) 세상은 아무래도 혼자 살 수는 없게 되어 있다. 일찍이 인간을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했고, 겨레란 말이 암시하여 주듯이 우리는 운명공동체가 되어 삶의 누리를 함께 살고 있다. 옛날의 제도를 보더라도 소박한 의미에서 사회(社會)는 동네 부락의 사람들이 사일(社日)에 모이던 모임을 뜻한다. 스물다섯 집을 일조(一組)로 하여 이를 일사(一社)로 하였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사회의 개념과는 조금 달라 토지신에 대한 제사를 모시기 위해서 가졌던 모임이었다. 그러니까 사회는 신에게 제사함으로써 부락과 종족의 번영을 꾀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공동의 목표로 추구되었다. 따라서 같은 겨레끼리 모이어 이루는 집단을 사회의 보편적인 개넘으로 쓰게 되었다. 사회의 공동 목표가 어떠한가에따라서 사회는 아주 많은 갈래로 나누어진다. 이를테면 겨레는 혈연 또는 지연과 같이 생활에 근거를 둔 자연발생적인 공동사회이고, 노동조합이나 회사는 자유 의지도 개개인의 셈속을 따라서 결합된 이익사회 이다. 사회란 개념은 원초적으로 개인을 포함한 부족의 안녕과 번영을 위하여 토지신. 곡식신에게 제사를 모시기 위하여 모인 공익성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진다. 글자의 `짜임을 보면 '사(社)'는, 흙을 수북히 쌓아올려 소나무 따위를 심는 것(土)에 신을 모시는 제단(示)이 합하여 이루어진 글자이다. 말하자면 토지의 신체 (神體)라고 할것이다. 그래서인지 '사(社)는 '땅귀신, 제사 지냄, 단체, 사일 등의 뜻으로 새겨진다. 여기 사일(社 日)이란 입춘과 입추 뒤의 다섯번째 무일 (戊 日)을 말하는데, 입춘의 제사를 춘사(春社), 입추의 것을 추사(秋社)라고 한다. 춘사에는 대략 곡식의 순조로운 자람을 빌고, 추사에는 곡식의 수확을 감사하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부족이 모이는 가장 큰 목적은 부족의 번영을 위하여 신에게 제사를 드려 빌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그 곳에는 인간관계가 이루어질 밖에. 그리하여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으며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하여 더 잘 살 수 있는 모듬살이 곧 사회생활을 꾀하였을 것이다. 국가를 예전에는 '사직(社稷)'이라고 하였거니와 '사(社)'는 토지의 주신이며 '직'은 오곡(五穀)을 다스리는 신이었다. 예로부터 천자와 제후는 반드시 사직의 제단을 세우고 나라의 흥망성쇠를 함께 하였으니 사직은 곧 국가란 개념이 이루어지게 되 었다. 사직단의 위치를 보면 왕궁의 오른편에 두었으며 종묘(宗廟)는 왼편에 세워서 제사를 모셨다. 남좌여우(男左女右)라 하여 왼편을 더욱 높은 방위로 보았지만 그 이전의 시대에는 바른편 곧 여성을 더 높이 생각하였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한데, 이는 모계사회의 질서를 반영하는 화석 조각과도 같은 것이다. 덧붙여 둘 것은 '사(社)'는 토지신이어서 땅의 신인 기(祝)와 같은 말이며, 이는 하늘의 신(神)과 서로 대립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이 복잡한 사회도 제사를 모시기 위한 모임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따라서 신을 모시기위한 인간과 신의 관계에서 점차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전제로 하는 개념으로 바뀌어 나아간 것이다. 사회와 관계되는 말에는 참으로 많은 형태가 있다. 몇 가지의 예를 들어 보이면 다음과 같다. '사회개량주의, 사회경제, 사회계약설, 사회과학, 사회관, 사회관계론, 사회학, 사회구조, 사회규범, 사회극, 사회동학(일정한 사회체계 안의 여러 부문의 시간적, 계속적인 공존관계의 변화를 대상으로 하는 이론), 사회문제, 사회물리학, 사회위압(개인에 대한 사회의 강제)' 등이 있다. '사회 경제 (社會經料)'란 말이 있는바, 사회와 경제는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 본디 경제란 말은 '경세제민 (經世濟民)'을 줄여서 쓰는 말로, 모두가 함께 공생공존한다는 개념이 전제된것이다. 사회 또한 부족 모두의 번영을 위하여 이룩된 모임임을 고려해 보면 사회와 경제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와 같다고나 할는지 앞에서 '사(社)' 를 수북히 쌓아 놓은 흙더미 위에 소나무 같은 것을 심는 것(土)에 신을 모시는 제단(示)이 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풀이하였는데, 오늘날에도 무속신앙에서는 대나무와 같은 높이 솟은 장대를 사용한다. 종교는 서로 다르지만 서구에서 들어온 기독교의 교회들이 높고 뾰족한 탑에 십자가를 세우고 종을 달아 울리는 것을 보면, 더 높은 곳에 제단을 마련하려는 문화적인 관습은 거의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인위적인 것을 떠나 자연물로 본다면 역시 가장 큰 제단은 높은 산의 마루에 세운 것이리라. 구월산의 단이 그러하고 마니산의 신단이 그러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함께 잘 살기 위하여 정성을 다하여 빌었던 처음의 그 마음으로 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 나아간다면, 그곳에 땅의 축복이 꽃처럼 피어 오르고 하늘의 감화가 땅 끝까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9-2. 딸과 따름 '딸이 셋이면 문 열어 놓고 잔다'하거니와 딸을 여윌 때 혼수 비용이 많이 들어감과, 옛부터 딸이 물건을 가져 가는 풍습이 묵인되어 온 데서 비롯한 속담이다. 하나도 제대로 출가시키자면 어려운데 하믈며 셋은 말하면 잔소리가 되는 것이다. 집안의 살림이 너무 줄어들다 보니까 도적이 들어와도 가져 갈 게 없을 정도로 딸이 많으면 어렵다는 이야기가 된다. 여자로 태어난 자식을 딸이라고 한다. 딸을 낳으면 기와를 회롱하는 경사로, 아들을 낳으면 구슬을 회롱하는 경사로 좋아하였다. 말인즉슨 아들을 낳음에 비하여 딸을 얻음은 그 기쁨이 떨어진다고 하겠다. 심지어 산모조차 딸을 낳으면 운다는 말이 전해져 온다. '남존여비 (男尊女卑)'에서 비롯된 남아선호의식이라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를 살피건대 여성을 더 높이는 이른바 모계사회가 있었다. 지금도 성씨 뒤에 '_씨 (氏)'를 붙이는데, 이 씨 '가 바로 자시 곧 여성의 성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가부장의 부계사회로 넘어오면서 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예컨대 고구려의 서옥(塔屋)제도만 해도 그러하다. 장가를 든다고 할 때, 여기 장가(丈家)는 장인의 집 곧 아내의 집을 말하는 것으로서 처가에 들어 사윗감으로서의 시험을 거쳐 통과하면 혼인을 맺고 다시 아이를 낳아 신랑의 집으로 되돌아오는 제도인 것이다. 혼인(婚姻) 이라고 하거니와 (석보상절)에 보면 사위 쪽에서 며느리 쪽을 보고 혼(婚)이라고 하며, 며느리 쪽에서 사위 쪽을 인(姻)이라고 했음을 알 수 있다. 혼(婚)은 '女(여인)'와 '昏(해질 녁)'이더하여 이루어진 말로 혼기가 찬 여인이 혼례를 치를 때 해가 질무렵부터 혼례식이 시작된 데서 비롯한 말이다 밤은 방위로는 별과 물의 신이 다스리는 북방의 공간을, 성 (性)으로는 여성을, 그리고 생산을 상징한다. 한편 인(姻)은 여인[女]이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가는 말미암음이며 의지하게 되는 것을 이른다. 요컨대 인은 잠자리 모양(ㅁ)에 누운 남자(大)의 모양을 더하여 남자의 집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여성은 남편의 집으로 가서 남편에게 의지하여 살게 된다. 삼종지도(三從之道)라 하여 여성은 모름지기 어려서는 친정의 부모를 따르고, 흔인하여서는 남편을 따르고, 나이가 들어서는 자식을 따르는 도리를 이른다. 여성의 일생을 이런 점에서 보면 순종의 질서 곧 따름의 원리로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이조시대에는 여성에게는 성씨가 있을 뿐 정당한 이름이 없었다. 물론 벼슬길에는 나아갈 생각도 못했다. 그래서인지 상당한 기록들에는 '-씨 부인' 흑은 '-집' 등으로 적히기 일쑤다. 옛말에서 보면 딸을 '((능엄), 6-33), ((속삼강), 효 116)' 로 썼거니와 여기서 이들 말이 람스테트의 설명대로 보달(寶捨)에서 초성의 모음이 떨어져 이루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딸'이 갖는 따름의 논리가 바탕이 되어 '따르다'가 만들어져 쓰인 것으로 보인다. '따르다'는 여러 가지 뜻으로 드러난다. '남의 뒤를 좇다, 남이 하는 일을 본떠서 하다, 어린 아이가 자기에게 친절한 사람을 좋아하다, 남을 그리워하며 붙좇다, 나란히 가다, 복종하다'와 같은 쓰임은 모두가 따름의 논리로 풀이할 수 있다. 동음이의어로서 '따르다'는 '물이나 기름 같은 액상의 물질을 기울여서 붓다'로도 풀이하지만 이 말 또한 근본에 있어 다를 바가 없다. 물과 같은 액체는 높은 데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러므로 액체를 기울여 붓는 '따르다'도 위치의 다름을 따라서 이 루어지는 말이라 할 것이다. 이 '딸'과 관련하여 이 루어지는 말에는 '따라가다, 따라다니다, 따라서, 따라오다, 따라지 (노름판에서 '한 끗' ; 다른 패에 따라다니니까), 따라지 목숨(남에게 딸려서 자유 없이 사는 목숨), 따름수(함수), 따리 (키의 아랫부분에 달린 넓적한 나무), 따리 (아첨하는 말). 따리붙이다, 따리꾼(따리를 잘 붙이는 사람)'과 같은 형태들이 있다. '딸'의 방언 분포를 보면, '따님 (경북 울진/층북 음성/전북 남원, 진안, 장계/강원 횡성), 딸(한반도 전역), 딸아(경북 포항, 영천/경남 양산), 딸내미 (층북 단양, 영동/강원 호산, 춘성), 딸따니 (경남 진주, 사천), ㄸ(제주)' 등으로 쓰인다. 여성에게만 요구되었던 순종의 질서는 옛말이 되었다고 할 것이다. 따라가야 할 것에는 남녀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겨레가, 직장이, 가정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어떤 부름을 주었을 때, 우리는 모든 명예를 걸고 사람답게 사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칸트가 이미 지적하였거니와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가장 큰 명령이요 사명은 양심의 명 령인 것 이다. 양심을 따라서 우리의 모듬 살이가 이어져 갈 때, 이 누리에 자유와 평등이 지배하는 낙원이 실현될 것이다. 자유와 평등을 누리면서 살아가기 위하여는 때로 자신을 버리고 큰 옳음과 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따름의 질서는 주종(主從)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신과,신하는 군왕과, 자식은 부모와, 여성은 남성과 주종관계를 맺으며 살아온 것이 우리의 역사였다. 생각컨대 '종'은 '종인(從人)'이라고도 하는 '종자(從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종자(從者)는 주인(主人)에 대립되는 말이다. 원래 한자의 새김으로 보면'주(主)'는 임금이요 '종(從)'은 신하에 해당한다. 이러한 주종관계는 격을 달리하며 계 속돼, 신하가 다시 주인이 되고 그를 좇는 이가 다시 종자가 된다. 글자의 발달이란 측면에서 보면 '主'는 등불(?)에 촛대(王)를 더한 것으로, 제사를 지내는 사람을 뜻한다. 한편 '종(從)'은 사람뒤에 사람(人人)이 따라 가는 것을 바탕으로 하며, 발자국의 모양을 더하여 나아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마디로 '종(從) '은 사람이 잇따라 나아감을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제사를 지내는 주인을 도와 이런저런 일로 따라다니는 사람이라는 원초적인 뜻을 드러낸다. '종{從)' 은 집안을 얘기할 때 같은 항렬에 딸린 친척의 계열을 드러내기도 한다. '종조부모, 종숙(아버지의 사촌형제), 종형제 (사촌인 형과 아우), 종자(조카)' 등이 그러한 쓰임이며, 신분의 계급을 말할 때 종일품에서 종구품에 이르는 품계 또한 크게 벗어나지않는다. '주'와 '종'은 인간관계로는 주종의 관계로, 말의 성분으로는 주술의 관계로 드러난다고 하겠다. 이 세상에서 누가 종속관계에 들기를 원할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독립관계로서 인간관계를 맺기 원한다. 그러나 주종이란 상대적인 개념일 뿐 절대적인 개념은 아니다. 먹이사슬이 순환의 흐름을 보이듯 우리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호 보완의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뒤엉켜 살아가는 것이다. 종속관계를 보완관계로 개선하려는 의식을 가질 때 우리는 서로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 종은 일반적으로 주인을 섬긴다. 정치.경제적으로 직접적인 주종의 관계가 아니라면 서로를 섬기는 마음으로 일을 처리함이 옳을 것 같다. 성현의 말씀대로 섬기는 자가 다스리니까. 9-3. 며느리와 이바지 속담에 며느리가 미우면 손자까지 밉다'는 말이 있다. 미운 며느리는 물론이려니와 그가 낳은 자식까지 밉게 된다는 이야기다. 어떤 한 사람이 밉게 되면 그에 딸린 사람까지도 미웁게 보이는 수가 있다. 며느리와 시 어머니의 관계는 넉넉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오거니와 반대로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귀여워하는 것이 보통이다. 며느리는 방언에 따라서 '메누리(전라, 경 남), 매느리 (전남 완도), 메느리 (전남 영양, 강진, 보성, 구례 곡성 여수 순천, 광양, 진상, 영광, 함평,해남/펑북 희천/평남 대동, 개 천), 미누리 (전남 구례, 여수), 미너리 (전남 화순)' 등으로 쓰인다. '메누리'에서 '메'는 '뫼 ((소해) (악장))' 와 같은 말로 '진지, 산' 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옛날에 며느리는 '메ㄴ리' 였으니 '메'는 '메누리'의 '메'와 같이 '음식' 을 뜻하는 말이고, 'ㄴ리 '는 ' ㄴ르_十이'로 '나르는 사람'을 뜻하는바, 곧 조상의 산소에 제사음식을 나르기도 하고 살아 있는 부모들에게 아침 저녁으로 음식 이바지를 도맡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닐까. 옛날에는 일손이 부족함은 물론이고, 조상을 섬기는 일이 지금보다 더욱 극진했으므로 거기에 따르는 뒤치다꺼리를 며느리에게 시켰던 것이다. 이를테면 부모의 상을 당하면 빠지지 말고 상청에 음식을 바쳐야 하고 초하루 삭망으로 성묘를 해야 하는 등 참으로 힘드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며느리는 아이를 낳아 기르기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민며느리'라는 말이 그것을 잘 대변하여 준다. '짐승을 기르고 아이를 기르는 자부(豚養繪婦 ; ((역해), /童養鴻婦 ; ((한청)' 로서 기록될 정도였으니 알 만하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부터 생활의 가장 바탕(밑)이 되는 모든 과정을 겪는 사람이 '민 며느리'였던 것이다. 여기서 '민' 은 '밑' 이 다음의 말(며느리) 앞에서 소리가 바젼 것으로 생각하면 될 일이다. 가장 가까이서 일하는 사람이 장점과 단점을 잘 아는 법이다. 정에서 노염이 난다고 시 어머니와 가장 가까이 지내야 되는 며느리가 시어머니 눈에 미운 경우가 혼하다. 마침내 미운 오리새끼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밉게 보아, 좋은 것도 홈을 잡을 때를 일러 '며느리가 미우면 발 뒤축이 달걀 같다고 나무란다' 고 한다. 전통적으로 며느리는 시부모를 모시기에 밤낮없이 애쓴다. '모시다'는 윗사람의 가까이에서 조심하여 받들거나 살피는 것으로 풀이 할 수 있다. 유교의 가르침에는 '살아 있는 부모를 모시는 것이나 돌아가신 부모를 섬기는 것은 같은 것이다' 고 규정하기도 한다. 인간관계로 보아 부모에 버금하여 모시는 대상으로는 오늘날에는 직장 상사, 옛 봉건시대에는 군주(임금)가 해당될 것이다. 옛말에 '모시다'는 '뫼시다((월석), 8-94)' 로 나타난다. '뫼시다'에서 어간모음 'ㅣ'가 떨어져 오늘날의 '모시다'가 된 것으로 보인다. '뫼시다'의 기본형은 '뫼다(倍 ; (석보), 11-4)' 이다. 이 말은 명사 '뫼'에 접미사 '-다'가 붙어 이루어진 것인바, '뫼'는 어른들에게 드리는 식사를 높이거나, '산'을 뜻하기도 한다. 이밖에 '뫼'는 사람의 무덤 곧 묘(舊)를 가리키기도 한다. '추원보본(追遠報本)'이라고 하여 대대로 옛조상 모시기를 잘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였다. 우리 조상들은 부모가 이 세상을 뜨면 흔히 명당이 어디인가를 골라 극진히 모시기를 힘썼다. 설날, 한가위와 같은 명절이나 음력 초하룻날과 보름, 또는 조상의 생일에 차례를 모시는 것과, 돌아가신 날에 제사를 지내는 것 등이 그러한 보기라고 하겠다. 제사를 지낼 때는 반드시 산 부모를 모시듯이 제상 위에 올리는 밥 곧 '메'를 올린다. '메'는 복모음이기 때문에, 옛말에는 '머이'로 읽었다. 결국 네'와 '뫼'는 똑같이 조상을 섬기는 데에 요구되는 음식으로부터 나온 말이라 할 것이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상제는 산소 옆에 여막(廬幕)을 짓고 삼 년동안 살아 계실 때처럼 음식[메 (뫼)]을 올린다. 보통 사람 아무나 그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여서 여막살이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 온다. 자칫 잘못되면 부모 잃고 집안 망하고 살 길이 막연해지는 것이다. '뫼'가 나타내는 중심된 의미는 역시 '산(山)'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산에서 먹올 것을 얻어 내기도 하며, 죽어서는 다시 산으로 돌아간다. 그런가 하면 산은 푸른 마음의 고향으로서 언제나 우리들 가까이에 있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뫼' 에서 '메`가 나온 것이 아닐까. '뫼'는 쓰이는 지역에 따라서 '메-, 매 -, 뫼-, 미-'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메-'는 경남, 경북 지 역에서, '매-'는 '매아리' 등의 헝태로 충북 연풍 등지에서, '뫼-'는 '뫼아리'의 형태로 전북 무주, 층남 조치원 등지에서, 미 -'는 '미아리' 등의 형태로 경북 경주. 영천. 예천/경남 산청 등지에서 확인된다. 무속에서 이르기를 모든 큰 산에는 그 산을 주재하는 신령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깊고 그윽한 산골짜기에는 신 당이 있었다. 그러한 신앙의 공간이 뒤에 오면 절로 바뀌게 된다. 산에는 산신 (山神)이 있으며 물에는 수신 (水神)이 있다고 믿었기에 큰 산은 늘 숭배의 대상이 되 었다. 그러니 산을 잘 떠받들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바로 자신들의 조상 또한 산에 모시게되니 어찌 산 곧 '뫼' 를 멀리할 수 있을까. 필자의 생각을 간추리면, 이른바 '뫼시기 ' 는 산신숭배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다시 산신과 더불어 돌아간 조상을 포함한 윗사람을 높이어 대접하는 개념으로 발전해 나아갔다는 것이다. 산신숭배에서 인간숭배로, 그 질서가 달라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뫼'와 관련하여 이루어지는 말에는 '뫼나리, 묍쌀[밭에서 나는 쌀 ; ((훈몽)), 뫼쓰다(묏자리를 잡아 송장을 묻다), 뭣골(산골)모시다, 묏대추, 묏돼지, 뭣밭(산밭), 뭣봉오리 (산봉우리), 묏자리 등이 있다. 산맥은 저 푸른 바다에 출렁이는 파도처럼 높고 낮은 산들로써 그 나름의 리듬을 드러낸다. 그 골짜기 골짜기마다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목숨살이의 묻거지가 이루어지 나니, 진실로 신령스러운 삶과 죽음이 상서로운 안개처럼 산의 주변을 맴돌아 나아간다. 백두와 한라에 이르는 그 줄기에 우리의 할아버지들의 뼈가 묻히고, 무지개는 그 위를 덮으며, 꽃은 피어서 질 것이니, 바로 우리겨레의 삶의 뿌리가 내릴 곳이다. 우리 모두는 아름답고 진실한 마음의 뫼봉우리를 그리워하며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