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21. 주기 <때가 왔다. 구두쇠 노릇을 집어치우고 그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그대가 갖고 있는 최고의 것을 주는 때, 열리는 때, 열려서 그대의 다함 없는 사랑과 자비로 베풀 때가. 마침내 때가 왔다> 막달라 마리아. 그녀야말로 예수의 참된 제자이다. 막달라 마리아의 진정함은 무량하다. 어느 날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를 찾아가 아주아주 값비싼 향수로 예수의 발을 씻어주려 하였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유다가 때를 놓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선생님. 이 여자의 행동을 막아야 합니다. 이건 낭비도 이만저만한 낭비가 아닙니다! 보아하니 값이 무척 비싼 향수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 마당에... 그 비싼 향수로 발을 씻다니 그런 낭비가 어디 있겠습니까?> 유다의 말이 참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예수는 뭐라 하던가? <가난은 언제나 있는 것. 유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거든 그땐 그대가 얼마든지 사람들을 보살펴 줄 수 있으리. 그대는 이 여인의 속 마음을 알지 못하네. 그녀가 향수를 붓도록 놔두게. 비싼 것이든 아니든 상관 없으니. 이 여인의 가슴에선 거룩한 힘이 일고 있지. 이건 기도라네... 그녀의 거룩한 기도를 방해하지 말게>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가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예수는 향수를 본 게 아니라 그녀의 마음을 본 것이다.
Board 추천글 2020.06.21 風文 R 1262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제1권 사랑으로 크는 아이들 지금으로부터 35 년 전 어느 가을, 미국 오래곤 주 유게네라는 마을에서의 이야기입니다. 그 날 그곳의 신문에는 마을회관에서 종교영화 집회가 있다는 광고가 났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지는 않았지만 서로 아는 사람들이라 즐거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참석자 중에는 어느 농부 부부도 있었습니다. 그 날의 영화 내용은 한국전쟁 과정에서 생긴 고아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아들을 돌볼 수 있는 손길을 찾는다는 것이 그 영화의 결론이었습니다. 이윽고 집회가 끝나자 참석했던 농부 부부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눴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농부야. 우리같은 가난한 농부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 농부 부부는 이렇게 자탄을 하면서 모든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 날의 영화 장면들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부부는 이윽고 농장의 일부를 팔고 직접 한국에 가서 8 명의 혼혈고아들을 양자로 데려왔습니다. 이 사실이 마을신문에 사진과 함께 실리자 여러 곳에서 그들을 돕겠다는 편지가 왔고, 어떤 가정에서는 그들처럼 혼혈고아를 양자로 삼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결국 이 농부 부부는 전적으로 이 일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 부부는 1 만 6천여 명의 전쟁고아를 각 가정에 맺어 주게 되었습니다. 이 농부가 바로 유명한 홀트 양자회 주인인 해리 홀트 씨입니다. 생명만이 신성하다. 생명에 대한 사랑이 제일의 미덕이다. (로망롤랑)
Board 추천글 2020.06.21 風文 R 1322
-시- ① 환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씨, 맛있는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이렇게 주문하면 커피가 반값이 된다. 무표정하게 “아메리카노 한 잔” 하면 제값 다 치러야 하고, 무뚝뚝하게 “아메리카노”라고 짧게 말하면 벌금처럼 값이 더해져 정가의 1.5배를 내야 한다. 어떻게 주문하느냐에 따라 커피 값이 할인되고 할증되는 셈이다. 한 커피 체인점이 점원을 존중하고 배려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이벤트다. ‘커피 한 잔’(7유로), ‘커피 한 잔 부탁해요’(4.25유로),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부탁해요’(1.4유로)를 가격표에 써놓은 프랑스의 한 카페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고객과 바리스타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따뜻한 말 한마디’ 행사의 반응이 꽤 좋다는 게 회사 쪽 분석이다. 체인점의 한 매장을 찾아 점원에게 물어보니 “모두 반값에 드렸다” 한다. 무뚝뚝하게 주문한 손님에겐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뜻을 담아 그랬을 것이다. 행사 취지가 잘 이뤄지면 이른바 ‘진상고객’은 줄어들고 가게 분위기는 밝아질 것이다. 그래서 좋다, 끝? 아니다, 접어 두었던 아쉬움이 더 커졌다. 관련 소식을 접하면서 이전부터 겪어왔던 불편했던 기억이 스멀대며 떠올랐기 때문이다. ‘커피 나오셨습니다’, ‘거스름돈이세요’ 따위의 사물을 높이는 얼치기 화법 탓이다. 김선우 시인은 “남발되는 높임 선어말어미 ‘-시-’의 문제는 비문이어서만이 아니다. 말 속에 교묘히 들어 있는 ‘비굴함’의 강제 때문이기에 당장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 높인다. 일리 있는 말이다. 손님을 불쾌하게 하는 점원의 어긋난 존대법은 넓게 퍼져 있는 구조적인 문제이고 ‘진상손님’은 어쩌다 나오는 개별적인 문제다. 이른바 ‘갑질손님’의 피해자는 동정과 공감을 얻지만 말 같지 않은 화법에 노출된 손님의 불편한 마음을 풀어낼 방법은 딱히 찾기 어렵다. ‘괴상한 높임말’의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 -시- ② 새색시가 시아버지께 아침 인사를 했다. “아버지, 잘 잤나요?” 시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님’과 ‘시’를 붙이면 존댓말이 된다”는 신랑의 말을 듣고 밤새 연습한 새색시, 이튿날 환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아버님 대갈님에 검불님이 붙으셨어요.” 오래된 우스개다. 옛날이야기 속의 이런 일이 요즘에도 널려 있다. “커피 나오셨습니다”, “거스름돈 800원이십니다” 따위의 말이 꼭 그 짝이다. ‘사물 존대’를 꼬집은 기사는 2006년부터 등장한다. 그릇된 높임말의 역사가 십년 가까이 된 셈이다. 찻집이나 백화점 같은 곳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선어말어미 ‘-시-’의 오용은 “체납세가 있으십니다”처럼 공무원 사회에도 만연해 있다. “점원에게 잘못을 일러주는 것도 지쳤다”는 볼멘소리가 그치지 않지만, “사물 존대를 하지 않았다고 ‘무시당했다’며 항의하는 손님 탓에 조심스럽다”는 변명도 없지 않다. 해마다 ‘고객 응대 문안’을 국어전문상담소에 의뢰해 감수받는 백화점이 있다. 임직원을 대상으로 ‘우리말 바로쓰기 캠페인’을 펼치는 곳도 있다. 해당 백화점을 찾아보니 여느 곳보다 낫긴 하지만 ‘사이즈가 없으시다’ 같은 표현은 여전했다. 손님에게 바른 존대어를 쓰자는 취지와 현장의 상황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괴상한 높임말’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먼저, ‘소비자주권운동’을 들 수 있다. 손님들이 점원의 그릇된 높임말을 정중하게 바로잡아주는 것이다. 사물을 높이는 화법 탓에 소비자가 대접받지 못하는 풍토를 바로잡기 위한 시민운동이다. 여의치 않으면 불매운동을 할 수도 있겠다. 커피 체인점 등의 ‘고객 응대 화법’을 다듬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방법도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업체는 ‘표준 언어 예절’을 지키도록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에 앞서는 것이 화법 교육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반듯한 우리말을 하는 게 상식인 사회가 되면 절로 이루어질 일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Board 추천글 2020.06.18 風文 R 1499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제1권 하늘나라에 교실을 짓자꾸나! 폴란드의 조그만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독일군이 나타나지 않아 불안한 가운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유태인 앞에 드디어 독일군이 나타났습니다. 독일군의 일부는 마을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학교로 와서 학생 중에 드문드문 섞여 있는 유태인 어린이들을 끌어내려고 했습니다. 독일군의 모습을 본, 가슴에 별을 단 유태인 어린이들은 무서워서 선생님에게 달려가 매달렸습니다. 코르자크란 이름을 가진 선생님은 자기 앞으로 몰려온 유태인 어린이들을 두 팔로 꼭 안아 주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 죄도 없는 어린 아이들을 왜 잡아가느냐고 호통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짐승만도 못한 그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트럭 한 대가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오자 아이들은 선생님의 팔에 더욱 안타깝게 매달였습니다. "무서워할 것 없단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면 마음이 좀 편해질 거야." 독일군은 코르자크 선생님 곁에서 유태인 어린이들을 떼어놓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코르자크 선생님은 군인을 막아서며, "가만 두시오. 나도 함께 가겠소!"라고 말했습니다. "자, 우리 함께 가자. 선생님이 같이 가면 무섭지 않지?" "네, 선생님.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코르자크 선생님은 아이들을 따라 트럭에 올랐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본 독일군이 선생님을 끌어내리려 하자, "어떻게 내가 가르치던 사랑하는 이 어린이들만 죽음으로 보낼 수 있단 말이오" 하며 선생님도 아이들과 함께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 마침내 트레물렌카의 가스실 앞에 도착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손을 꼬옥 잡고 앞장서서 가스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자신은 유태인이 아닌데도 사랑하는 제자들의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기 위해서 함께 목숨을 버린 것입니다. 히틀러에게 학살된 동포들을 기념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세워진 기념관 뜰에는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두 팔로 꼭 껴안고 있는 코르자크 선생님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견고한 탑은 부서지지만 위대한 이름은 사라지지 않는다. Strong towers decay, But a greatname shall never pass away. (P. 벤자민)
Board 추천글 2020.06.18 風文 R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