狐疑不決(호의불결) 狐(여우 호) 疑(의심할 의) 不(아닐 불) 決(터질 결) 술정기(述征記)의 이야기. 맹진(盟津)과 하진(河津)은 모두 황하(黃河)에 있는 나루터이다. 맹진은 지금의 중국 하남성 맹현(孟縣)에 있었으며, 하양도(河陽渡)라고도 하였다. 하진은 중국의 산서성 하진현(河津縣)에 있었다. 이 두 곳은 양자강보다는 좁고, 회하(淮河)나 제수(濟水)보다는 넓었다. 겨울이 되어 얼음이 얼면 두꺼운 곳은 몇 장(丈)에 달했으므로, 거마(車馬)들도 얼음 위로 통과할 수 있어 나룻배보다 편리하였다. 하지만 얼음이 막 얼기 시작할 때에, 사람들은 섣불리 건너지 못하고 먼저 여우들을 건너가게 하였다. 여우는 본시 영리한 동물로서 청각이 매우 뛰어났다. 여우는 얼음 위를 걸으면서도 이상한 소리가 나면 곧 얼음이 갈라지는 것을 예감하고 재빨리 강가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이렇게 여우가 강을 다 건너간 것을 확인하고나서야 안심하고 수레를 출발시켰던 것이다. 의심많은 여우의 성질을 이용한 사람들의 지혜. 이는 사람들이 여우를 의심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들의 지나친 의심은 사회의 결집력을 약화시킨다. 이제는 서로 믿는 분위기가 필요한 때이다. 狐疑不決 이란 의심이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함 을 비유한 말이다.
Board 고사성어 2020.06.23 風文 R 1673
돔 삼다도, 삼무도, 삼다삼무도. 제주도를 이르는 말이다. 바람과 여자와 돌이 많은 섬, 도둑과 거지와 대문이 없는 섬, 그리고 이 세 가지가 각각 많고 없는 특징을 담아 부르는 표현이다. 이런 특성은 21세기 제주에서는 사실상 사라졌다. 바람과 돌은 여전하지만 2014년 남녀 비율은 반반이다. ‘산천은 의구하되 여성 우세는 간데없다’인 셈이다. 제주 세태를 담은 삼무도는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철도, 고속도로, 국도가 없는 ‘삼무’가 되었다. 도로 총연장은 3200㎞가 넘지만 모두 지방도다. 이 시대의 ‘삼다’는 유커(중국인 관광객), ‘제주 흑돼지’를 내건 고깃집, 횟집 차림표에 씌어 있는 돔이 아닐까 싶다. 지난달 말 제주에 다녀왔다. ‘고등어회를 맛보고 싶다’는 일행의 뜻에 따라 찾은 횟집은 뜻밖에 한갓졌다. 으깬 얼음 위에 얹혀 나온 고등어회는 기왕에 알던 맛이 아니었다. 소문만 요란한 ‘맛집’과 사뭇 다른 느낌. 맛의 비결을 물어보니 ‘선어(말리거나 절이지 아니한, 물에서 잡아낸 그대로의 물고기=생선)가 아닌 활어(살아 있는 물고기)만 쓰기 때문’이란다. 주인의 자부심 가득한 말이 믿음직했지만 ‘숙성한 회가 더 좋다’는 이도 있으니 꼭 그래서인 것만은 아닐 듯했다. 고등어회를 먹자니, 고도리(고등어의 새끼) 구이 생각이 났다. 갈치 횟감으로 제격인 풀치(갈치의 새끼) 생각도. 우럭볼락을 뼈째 우려낸 뽀얀 국물의 우럭탕은 별미였다. ‘우럭’ 하면 대개 물고기를 떠올리지만 사전은 ‘우럭’의 본말로 ‘우럭볼락’을 제시한다. 곁들이로 차려진 참돔과 돌돔 구이의 쫀득한 듯 푸석한, 푸석한 듯 쫀득한 맛이 오묘했다. 돔과 도미는 같은 것이지만 본딧말인 도미(20개)보다 준말인 돔(73개)을 붙인 이름이 훨씬 많다.(표준국어대사전) ‘물고기 도미’(약 17만건), ‘물고기 돔’(약 29만건)의 검색 결과도 다르지 않다.(구글) 우럭과 우럭볼락, 돔과 도미. 언중은 발음하기 쉬운 걸 따라간다. ……………………………………………………………………………………………………………… 식해 새로운 맛을 알게 된 때는 혼인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엄마 밥상’에 ‘장모 밥상’이 더해지면서 맛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처가와 본가의 음식 맛은 같은 듯 달랐다. 밥상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맛깔은 미묘하게 갈렸다. 고깃결 따라 찢어낸 장조림과 넓적하게 썰어낸 그것의 차이는 육개장의 걸쭉하고 맑은 국물에서도 나타났다. 김칫국을 먹는 횟수는 줄었고 토란국이 상에 오르는 횟수가 상대적으로 잦아졌다. 난생처음 맛본 음식도 생겼다. 함경도가 고향인 장인어른 덕분이다. 매콤 새콤한 맛에 비릿한 느낌 살짝 묻은 독특한 향이 입안에 퍼지던 때를 기억한다. 조밥에 고춧가루, 무채 따위를 양념해 참가자미를 한데 버무려 삭힌 반찬, ‘가자미식혜’로 알고 있던 가자미식해였다. 무와 고춧가루가 들어가 맵고 칼칼한 안동식혜가 있으니 함경도엔 ‘가자미식혜’가 있으려니 싶었다. ‘식혜’와 ‘식해’? 1963년에 펴낸 <신찬국어사전>은 ‘식해’를 ‘생선젓’으로만 풀이하고, 양주동이 감수한 <국어대백과>(1980년)는 식혜의 2번 뜻으로 ‘생선을 토막쳐서 소금과 조밥과 고춧가루 따위를 넣고 만든 찬’으로 설명한다. 옛날 사전은 ‘식해=생선젓’을 가리킨 셈이다. 신문기사를 보면 1980년대까지는 식혜, 그 이후엔 식해를 쓴 비율이 높아진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식해를 ‘생선젓’과 비슷한말로 제시하면서 ‘생선에 소금과 밥을 섞어 숙성시킨 식품’으로 풀이한다. 설날 ‘고향 맛’을 전한 특집 프로그램은 당연히(!) 사전을 좇아 ‘-식해’라 했다. 북한 <조선말큰사전>은 ‘생선을 토막쳐서 얼간했다가 채친 무우와 함께 밥을 섞어 고춧가루를 넣고 양념하여 버무려서 삭힌 반찬’을 식혜라 한다. 함경도 출신 누구는 “함경도에서는 ‘-식혜’라 했다. 엿기름을 넣어 만들기 때문”이라 주장하지만 힘을 얻지는 못한다. 같은 음식을 두고 남한은 ‘식해’, 북한은 ‘식혜’라 하는 것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제1권 용기있는 사람들의 승리 프랑스 북쪽의 칼레라는 조그만 도시에는 로댕이 만든 '칼레의 시민들'이라는 조각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청동조각에는 실로 놀라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백년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였습니다. 영국 왕이 군대를 이끌고 프랑스로 쳐들어왔습니다. 영국왕은 조그만 칼레 시를 우습게 보고 단숨에 함락시킬 생각으로 성을 공격했으나 칼레의 시민들은 한마음이 되어 용감하게 적과 싸웠습니다. 영국 왕은 번번히 실패를 거듭하자 작전을 바꾸어 먹을 것이 떨어져 항복할 때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영국군이 몇 달째 성을 포위하고 있자 성 안의 사람들은 지치고 식량도 바닥나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식량이 한톨도 없게 되자 칼레의 시민들은 회의를 열었습니다. 결국 칼레의 시민 대표 한 사람이 영국군 진지로 가서 항복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영국 왕은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그래 좋다. 너희들은 모두 살려 주겠다. 그러나 그 대신 시민들 중에서 대표로 여섯 명을 뽑아 처형하겠다. 내일 아침 여섯 명은 성문 앞으로 나오라." 이 말을 전해 들은 칼레 시민들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때 생피에르가 입을 열었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이 말 한마디에 사람들은 용기를 얻고 서로 죽음 앞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두 사람이 나서는 바람에 일곱 명이 됐습니다. 사람들은 제비를 뽑아서 목숨을 건질 한 사람들 정하자고 했으나 생피에르는 반대했습니다. "제비를 뽑는 순간 '내가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우리의 용기가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장터에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이 빠지기로 합시다." 이튿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섯 명이 다 모였으나 생피에르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은 생피에르의 집으로 가보았는데 그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죽음을 자원한 대표들의 용기가 약해지지 않도록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입니다. 생피에르의 죽음을 본 대표 여섯 명은 영국 왕 앞에 두려움 없이 나설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떳떳한 얼굴을 보고 놀란 영국 왕이 이유를 묻자 그들은 생피에르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영국 왕은 큰 감동을 받고 그들을 모두 칼레성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생피에르의 값진 죽음이 나머지 여섯 사람의 목숨을 살린 것입니다.
Board 추천글 2020.06.22 風文 R 1270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평범한 행복 불행과 행복 - 조연희 작년 8월의 일이다. 친구의 남편이 경부 고속도로의 버스 전복 사고로 중상을 입었다. 처음 신문 발표에는 사망자 명단에 낄 만큼 중상이어서 주위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나는 친구 몇몇과 함께 꽃을 사 들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8층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다리에 기운이 빠질 정도로 불안하고 초조했다. 눈이 퉁퉁 붓도록 통곡을 하고 있거나 실신 상태에 빠져 있을 친구를 무슨 재주로 위로해 줘야 하는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걱정은 병실 문을 여는 순간 깨끗이 사라졌다. 친구는 함박꽃 같은 웃음을 보이며 기운차게 달려나오는 게 아닌가. "어머! 너희들 와줘서 고맙다. 아직은 의식 불명이지만,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거나 같아서 난 너무 기뻐. 생명을 건졌다는 그 사실에 그저 감사할 뿐이야." 친구의 음성은 기쁨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온몸이 시커멓게 탄 채, 두 팔다리가 절단되어 누워 있는 환자의 뒤에서 난 흘러나오는 눈물을 감출 수조차 없었다. 똑같은 불행을 당했어도 그 불행을 한탄하고 절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큰 불행이 아님에 오히려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절망의 고비를 즐겁게 넘길 수 있는 친구의 그 지혜는 내게 큰 교훈이 되었다. (진명여고 교사)
Board 삶 속 글 2020.06.22 風文 R 1642
Board 고사성어 2020.06.22 風文 R 1570
‘○○○ 의원입니다’ “존칭 보조어간을 남발해 ‘사물 존대’하는 것 못지않게 거슬리는 표현이 있다. 자신을 높이는 ‘뻔뻔한 화법’이다. 사기업 직원은 물론이고 공무원, 국회의원 중에도 그런 사람이 많다. 적어도 ‘민의를 대변’한다는 의원들에게는 쓴소리 한마디 해 주고 싶다.” 지난 2주에 걸쳐 선어말어미 ‘-시-’의 오남용을 짚은 뒤 받은 독자 의견이다.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하거나 방송에 출연해 자신을 소개할 때 “안녕하십니까, ○○○ 의원입니다” 하는 게 마뜩잖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우리 언어예절에 비추어 따지면 독자의 말처럼 ‘뻔뻔한 사람’이란 핀잔 받을 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직함을 이름 앞에 넣어 말하면 높이는 것이 아니지만 직함을 이름 뒤에 넣어 말하면 높이는 것이 우리 전통 예절’이다.(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 ‘(국회)의원 ○○○입니다’, ‘총무부장 ○○○입니다’ 하는 게 바른 표현이고 자신을 ‘○○○ 의원입니다’, ‘○○○ 총무부장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것은 스스로를 높이는 야릇한 표현이 되는 것이다. 국어원이 펴낸 <표준언어예절>에서도 “이름을 앞에 두고 뒤에 직함을 붙여 ‘○○○ 부장입니다’라고 하면 상대방에게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되도록 쓰지 않는 것이 좋다” 했다. ‘예의에 어긋난다’는 뜻을 ‘상대방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표현으로 에둘러 밝힌 것이다. 직함은 ‘벼슬이나 직책, 직무 따위의 이름’이다. 사장, 부장, 시장, 장관, 도지사, 감독, 아나운서 등처럼 국회의원도 직함의 하나이다. 얼마 전 한 국회의원의 전자우편을 받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란다’는 덕담과 ‘○○○ 올림’이란 끝인사가 생뚱맞아 보였다. 편지 목록에 뜬 제목이 ‘○○○ 의원입니다’였고, 첫인사도 ‘○○당 ○○수석부의장 ○○○ 의원입니다’인 탓이다. 인사할 때는 ‘(○○당) 국회의원 ○○○입니다’, 정당과 직위를 밝힌 뒤라면 ‘○○당 ○○수석부의장 ○○○입니다’ 하는 게 옳다. ……………………………………………………………………………………………………………… ‘영업시운전’ 김포공항에서 잠실종합운동장까지 38분 만에 갈 수 있게 되었다. 3월28일 서울 지하철 9호선 2단계 구간이 개통되면 가능한 일이다. 연장 운행을 앞두고 지난 주말부터 배차 간격이 달라졌다. 역 곳곳에 붙어 있는 ‘9호선 2단계구간 개통을 위한 영업시운전 안내문’을 보니 얼른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눈에 띈다. ‘영업시운전’이 첫눈엔 ‘영업-시(時) 운전’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내 ‘영업 시운전’이라 생각했지만 미심쩍은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영업 시 운전’일까 ‘영업 시운전’일까. 운영 회사 고객지원센터에 물으니 ‘영업(을 위한) 시운전’이란다. 애초에 띄어쓰기를 제대로 했으면 엉뚱한 오해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의외로 많다.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괜한 오해를 부르고, 생뚱한 뜻이 떠오르는 문장 몇 개를 꼽으면 이렇다. 누나가자꾸만져요(-자꾸 만져요/자꾸만 져요), 무지개같은사람(무지 개같은-/무지개 같은-), 비상용차(비상용-차/비-상용차(商用車)), 서울시장애인복지관(-시장 애인-/-장애인 복지관)…. ‘영업시운전’의 뜻을 단박에 알아차리지 못한 까닭은 띄어쓰기에만 있는 게 아니다. 관련 업계에서 통하는 이 용어의 뜻은 ‘손님을 태우지 않는 것만 빼면 운행 구간, 배차 간격을 비롯한 모든 운영 방법을 정식 개통 이후와 똑같이 하는 시운전’이다. ‘시운전’은 차량 점검을 위한 뜻이 강하다. ‘기차, 배, 자동차, 기계 따위를 새로 만들거나 수리하였을 때에 실제로 사용하기 전에 시험 삼아 하는 운전’이 ‘시운전’이고 ‘정해진 길을 따라 차량 따위를 운전하여 다님’은 ‘운행’이다.(표준국어대사전) ‘포항케이티엑스(KTX)열차 시험 운행…’(ㄱ신문), ‘… 승객만 태우지 않을 뿐 실제 승객이 탔다는 가정하에 시험 운행이 이뤄진다’(ㄱ일보)에서처럼 ‘영업시운전’은 ‘시험운행’이라 해야 제 뜻에 더 맞는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