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평범한 행복 용기와 단념 - 박찬순 완전한 소유는 오직 줌으로써 가능하다. 당신이 주지 못하는 것은 결국 당신을 소유해 버린다. - 앙드레 지드 아름답고 싶은 의지로 아름답게 되어 가는 여자, 지혜롭고 싶은 의지로 하루하루 자신의 교양을 닦아 가는 여자, 그래서 세련됨을 간직하는 여자, 내가 아는 여성 중에 K여사가 그런 분이다. K여사는 늘 자기의 소망을 이야기했는데, 그것은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할 만한 일을 발견하는 것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그녀는 이 두 가지 소망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거부하지 않을 만큼 열정적이었다. 그녀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직장에 들어갔는데, 남자 동료들이 놀랄 만큼 자기 일에 충실했다. 우리 나라 대부분의 직장이 그렇듯이, 그녀도 여성으로서 여러 가지 한계에 부딪혔지만 결코 거기서 물러나지 않았다. 두 번째 소망,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소망이 이루어졌을 때, 그녀는 또 자기의 개성과 인격을 여기에 다 바쳤다. 부모의 빗발치는 반대도 무릅쓰고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단칸방에 살림을 차린다는 소식이었다. 상식의 기분으로 보면 참으로 영리하지 못한 일을 한 셈이었다. 3류 예식장에서 하객도 별로 없는 쓸쓸한 결혼식, 그러나 그런 결혼식이었기에 그녀는 더욱 돋보이고, 강인한 용기의 화신처럼 보였을 것이다. 벌써 그녀의 나이 마흔이 넘었다. 이 세상에선 훌륭하다는 것이 결코 보상받을 만한 일은 아닌 것인지, 그녀의 남편은 그동안 아내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자식까지 있는 형편에 이혼이란 말을 꺼내게끔 되었다. 이때 보여 준 그녀의 용단, 이것이야말로 그녀다운 것이었다. 그녀는 깨끗이 단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미 사랑은 자기한테서 멀리 달아나고 있는데 붙잡아 두는 것은 너무나 부질없고 비굴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화방송 프로듀서)
Board 삶 속 글 2020.06.18 風文 R 1098
멀쩡하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은 말은 지록위마(指鹿爲馬)이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이다. ‘2014년엔 온갖 거짓이 진실인 양, 수많은 사슴들이 말로 바뀌어 말의 진짜 모습은 볼 수 없는’ 요즘 현실을 담아낸 표현이다. 선정 이유가 ‘말’(馬)과 ‘말’(言)의 뜻이 뒤섞인 중의적 느낌으로 다가왔다. 사슴을 두고 말이라 하는 것은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멀쩡한 사슴을 보면서 멀쩡한 세상에 멀쩡한 사람이라면 ‘그것은 말’이라고 멀쩡한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멀쩡한 인간들에겐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섯 차례 거듭한 ‘멀쩡하다’는 중의적이고 다의적이다. ‘중의적’(重義-)은 ‘한 단어나 문장이 두 가지 이상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또는 그런 것’이고 ‘다의적’(多義-)은 ‘한 낱말이나 표현에 여러 가지 뜻이 있는, 또는 그런 것’이다. 사전은 ‘멀쩡하다’의 뜻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흠이 없고 아주 온전한)멀쩡한 사슴을, (지저분한 것이 없고 아주 깨끗한)멀쩡한 세상에 (정신이 맑고 또렷한)멀쩡한 사람이, (그릇된 짓을 하는 태도가 예사롭거나 뻔뻔한)멀쩡한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속셈이 있고 아주 약삭빠른)멀쩡한 사람은 밥 먹듯 하는 일일 것이다. 한 해를 보내며 빼놓을 수 없는 말이 ‘송구영신’(送舊迎新)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말이다. 멀쩡한 거짓말로 뒷일 모른 채 눈앞의 권력에만 붙어사는 멀쩡한 사람들을 보며 ‘송구영신’의 원말을 떠올린다. <한서>(漢書) ‘왕가전’(王嘉傳)에 나오는 ‘송고영신’(送故迎新)이다. ‘구관(옛 관리)을 보내고 신관(새 관리)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십상시’에 ‘문고리 3인방’, ‘7인회’가 유령처럼 떠돌던 올해가 저문다.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오면 새해에 걸맞은 새사람이 오기를 기대한다. 기왕이면 ‘흠이 없고 온전한, 정신이 맑고 또렷한’ 멀쩡한 사람으로…. ……………………………………………………………………………………………………………… 내외빈 다양한 송년회를 치르며 여기저기에서 사회자 노릇을 했다. 내 재주 부릴 곳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스물 몇 해 방송 월급쟁이로 살아온 덕분이다. 웬만한 행사에 빠지지 않는 게 있다. 단상이나 앞자리에 앉은 이를 소개하는 일이다. 처음으로 공식 행사에서 사회를 맡았을 때가 새삼스럽다. 식순에 ‘내빈’과 ‘외빈’, 그리고 마무리 즈음엔 ‘내외빈’ 소개가 있었다. ‘-빈’(賓, 손님)은 알겠는데 ‘내/외-’의 구별이 아리송했다. 선배에게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주최 측 고위층은 ‘내빈’이고 외부 인사는 ‘외빈’, ‘내외빈’은 둘을 한데 이르는 말이다.” 한마디로 ‘안팎의 차이’라는 중견 아나운서의 답은 의심할 여지를 남기지 않은 ‘확언’으로 남았다. 이후 줄곧 그렇게 알고 살았다. 지난해 마지막날, 불현듯 잘못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전을 찾아보기 전까지는…. ‘내빈’은 ‘내빈’(來-, 오다)으로 ‘모임에 공식적으로 초대를 받고 온 사람. 초대 손님’이다. ‘내빈’(內-)은 여자 손님을 일컫는 ‘안손님’이다. 남자 손님을 이르는 ‘바깥손님’의 반대말인 것이다. ‘외빈’(外-)은 ‘외부나 외국에서 찾아온 손님’이지만 대개 ‘외국 손님’을 가리킬 때 쓴다. ‘우방 제국으로부터의 외빈과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요인…’(ㄷ일보, 1948년 8월15일)처럼 오래전부터 써온 표현이다. 널리 쓰이는 사전 밖의 말 가운데 하나가 ‘내외빈’이다. ‘한국 독립을 위하여 노력한 내외빈을 위문하게 되었다’(ㄱ신문, 1948년 8월), ‘졸업식에 참석한 내외빈과 환담하고…’(ㅇ뉴스, 1998년 3월), ‘야구공원 기공식에 참석한 내·외빈’(ㅇ경제, 2014년 7월)처럼 ‘내외(內外)귀빈’과 한뜻으로 쓰는 표현이다. 국어원의 ‘온라인 가나다’는 ‘내외 귀빈’을 다루면서 ‘행사를 주최한 기관에 속해 있는 사람도 행사에 참석한 손님이라는 점을 고려해’ 설명했다. ‘내외빈’과 ‘내빈’(내부 손님)은 이제 표제어 대접을 해줄 때가 되었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19. 한가운데에 있기 <가운데에 있으라. 남들의 주장이나 손끝에 좌지우지하지 말고 중심을 잡으라> 붓다 시대에, 아름답기로 유명한 한 매춘부가 붓다의 제자인 거지 승려를 흠모하게되었다. 마침 장마철이 되어서 승려들은 네 달 동안은 꼼짝없이 발이 묶이게 되었다. 그녀는 흠모하는 거지 승려에게 네 달 동안만이라도 자신의 집에 머물러 줄 것을 간절히 애원하였다. 해서 거지 승려는 말하기를, <스승님께 여쭙고, 허락하시면 그리 하겠소> 그가 붓다를 뵙고 여쭙자. 승려들이 죄다 일어나 난리를 쳤다. <아니 되오. 어떤 여자도 그대의 발끝조차 건드려서는 아니 되오. 붓다께서 말씀하셨소. 여자를 가까이 하지 말라, 또 여자가 가까이 오게 하지도 말라고. 그대의 소행은 분명 법을 어기는 것이오. 하물며 네 달 동안이나 여자와 함께 지내겠다니!> 그런데 붓다가 말하기를, <어떤 여자도 가까이 하지 말며, 또 여자가 가까이 오게 하지도 말라고 했으되, 그건 그대들이 아직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저 애한테 그법이 이젠 필요가 없느니, 내가 지켜본 바 그는 그대들과는 다르다> 하면서 붓다가 말했다. <좋다. 그리 하여라> 참으로 엄청난 일이었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자들은 모두 분노했고, 시기했다. 날마다 매춘부의 집에서 뭔 일이 있었다는 숱한 소문들이 쏟아져 나와 들끓었다. 넉 달 뒤 그가 매춘부와 함께 돌아오자, 붓다가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인아, 내게 할 말이 있느냐?> 그녀가 말하기를, <붓다시여, 부디 저를 받아 주시옵소서. 저는 당신의 제자를 유혹하려 했으나 그러질 못하였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전 실패하였답니다. 수많은 남자들을 능히 홀려 냈었습니다만 저이는 그럴 수 없었답니다. 저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게도 크나큰 욕망이 일었습니다. 어찌하면 저이처럼 굳게 중심을 잡을 수 있을까 하고요.>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저이는 늘 저와 함께 지냈죠. 저는 저이 앞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지요. 갖은 방법으로 유혹하였지만 저이는 산처럼 꼼짝도 않았어요. 저이의 마음에 티끌 한 점 끼는 것을 못 봤고, 저이의 눈에 욕망의 먼지 한 점 어리는 것 못 봤어요. 전 저이를 개종시키려 애썼어요. 그러나 도리어 저이가 저를 개종시켰지요. 한 마디 말도 안 했지만요. 저이가 절 여기로 데려온 게 아니랍니다. 제 스스로 온 거죠. 전 처음으로 사람의 존엄함이 뭔지를 알았습니다. 그걸 배우고 싶습니다> 그는 언제나 저의 길을 간다. 그러므로 이리저리 허둥대지 않는다. 그는 단지 자기 자신일 뿐이며, 자기 자신 속에 깊이 뿌리박아 한가운데에 있다. 그러므로 흩트림이 없이 어디서나 살 수 있다. 굳이 환경을 바꿀 게 없고, 몸가짐을 바꿀 게 없다. 외적 상황은 내적 상황을 따르는 것. 그러므로 외적 상황을 바꾼들 아무 소용 없는 것. 그건 스스로를 조롱하는 것. 진짜는 의식의 상태를 바꾸는 일이다.
Board 추천글 2020.06.17 風文 R 1412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제1권 새장처럼 부서진 사랑 늙은 죄수가 있었습니다. 평생 감옥을 전전했기에 그에게는 가족이나 친척이 없었으며 고독만이 그의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어느 날 늙은 죄수는 감옥 창 밖에 날아온 참새 한 마리를 만나게 됩니다. 참새는 매일 죄수가 주는 빵부스러기를 쪼아 먹으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죄수로서 70 평생 처음 느끼는 행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참새에게 정을 쏟은 죄수는 비로소 사랑에 눈을 뜹니다. 하지만 지상의 모든 행복이 그러하듯 불행의 여신은 질투의 비수를 꽂기 위해 죄수를 바다 깊숙한 섬으로 이감시킵니다. 참새를 두고 떠날 수 없는 늙은 죄수는 철사 부스러기를 주워다 조그만 조롱을 만들었습니다. 노인은 허술한 조롱을 소중히 가슴에 품고 배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죄수들의 밀고 당기는 혼잡 속에 아차 하는 순간 노인의 허술한 조롱이 부숴지고 말았습니다. 놀란 참새는 푸르르 날아올라갔으나 이내 수면으로 푹 떨어졌습니다. 참새가 조롱에서 빠져나와 날아가버리지 않을까 염려한 노인이 새의 꼬리를 잘랐기에 그 새는 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참새를 건져 달라는 부르짖음은 뱃고동소리에 삼켜지고 애타게 울부짖는 노인의 처절한 사연에는 아무도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습니다. 찬란한 낙조가 어려 붉게 출렁이는 수면에 팽개쳐져 파닥거리는 작은 새를 늙은 죄수는 난간에 기댄 채 그저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로티의 "늙은 죄수의 사랑"이란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노죄수의 쓰라린 고통을 목격한 간수가 친구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펼쳐지는데 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친구는 "좋은 새를 구해서 그 가엾은 죄수에게 줘야겠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간수는 "소용없는 일이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를 갖다 주더라도 늙은 죄수의 슬픔은 달랠 길이 없어"라고 단언합니다. 늙은 죄수에게는 그 참새가 아름다운 새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고 오직 사랑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또 사랑이란 결코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 있는 성질의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다 마셔 버린 깡통처럼 언제든지 획 던져 버릴 수 있게 편리한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늙은 죄수에게 있어서 사랑의 알파와 오메가는 오직 참새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아름다운 새를 준다 해도 그 마음에 뚫린 구멍을 메울 수도 치료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오직 한 길뿐입니다.
Board 추천글 2020.06.17 風文 R 1518
捲土重來(권토중래) 捲(말 권) 土(흙 토) 重(거듭 중) 來(올 래) 당대(唐代) 시인 두목(杜牧:803-852)의 제오강정(題烏江亭)이라는 시. 초한(楚漢)이 천하를 다투던 때, 항우는 해하(垓下)에서 한나라의 포위를 빠져 나와 천신만고 끝에 오강(烏江)까지 퇴각하였다. 오강의 정장(亭長)은 항우를 위해 배를 한 척 준비해 놓고 그에게 강을 건너라고 했다. 그러난 항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거절했다. 그는 살아남은 20여명의 병사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대세를 반전시키지 못하고 31년의 생애를 자결로 마쳤다. 항우가 죽은 지 1,00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시인 두목은 패배의 수치를 참지 못하고, 훗날을 도모하지 않은 채 자결해 버린 항우를 애석히 여기며 시 한 수를 지었으니, 승패란 병가에서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니, 수치를 삼키고 참는 것이 바로 남아로다. 강동의 자제 중에는 재능있고 뛰어난 이들이 많은데, 흙 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올 것은 알지 못 하였구나(捲土重來未可知). 捲土重來 란 실패 후 재기를 다짐함 을 비유한 말이다. …………………………………………………………………………………………………………… 권토중래(捲土重來) / 한 번 패했다가 세력을 회복해서 다시 쳐들어옴. 《出典》杜牧의 詩 '題烏江亭' 이 말은 당나라 말기의 시인 두목(杜牧 : 803-852)의 詩 <제오강정(題烏江亭)>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이다. 승패는 병가도 기약할 수 없으니 수치를 싸고 부끄럼을 참음이 남아로다 강동의 자제 중에는 준재가 많으니 '권토중래'는 아직 알 수 없네 勝敗兵家不可期 包羞忍恥是男兒 江東子弟多豪傑 捲土重來未可知 오강(烏江 : 安徽省 內 所在)은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 : B.C 232-202)가 스스로 목을 쳐서 자결한 곳이다. 한왕(漢王) 유방(劉邦)과 해하(垓下 : 안휘성 내 소재)에서 펼친 '운명과 흥망을 건 한판 승부[乾坤一擲]'에서 패한 항우는 오강으로 도망가 정장(亭長)으로부터 "강동(江東)으로 돌아가 재기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러나 항우는 "8년 전(B.C 209) 강동의 8,000餘 子弟와 함께 떠난 내가 지금 혼자 '무슨 면목으로 강을 건너 강동으로 돌아가[無面渡江東]' 부형들을 대할 것인가?"라며 파란만장(波瀾萬丈)한 31년의 생애를 마쳤던 것이다. 항우가 죽은 지 1,00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두목(杜牧)은 오강의 객사(客舍)에서 일세의 풍운아(風雲兒)―단순하고 격한 성격의 항우, 힘은 산을 뽑고 의기는 세상을 덮는 장사 항우, 사면초가(四面楚歌) 속에서 애인 우미인(虞美人)과 헤어질 때 보여준 인간적인 매력도 있는 항우―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강동의 부형에 대한 부끄러움을 참으면 강동은 준재가 많은 곳이므로 권토중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텐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31세의 젊은 나이로 자결한 항우를 애석히 여기며 이 시를 읊었다. 이 시는 항우를 읊은 시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다. 【참 조】선즉제인(先則制人), 건곤일척(乾坤一擲), 사면초가(四面楚歌) …………………………………………………………………………………………………………… 권토중래(捲土重來) 捲 : ?말 권. 土:흙 토. 重:무거울?거듭할 중. 來:올 래. [원말] 권토중래(卷土重來) [참조] 선즉제인(先則制人), 건곤일척(乾坤一擲), 사면초가(四面楚歌). [출전] 두목(杜牧)의 시〈題烏江亭〉 흙먼지를 말아 일으키며 다시 쳐들어온다는 뜻으로, 한 번 실패한 사람이 세력을 회복해서 다시 공격(도전)해 온다는 말. 이 말은 당나라 말기의 시인 두목(杜牧:803~852)의 시〈제오강정(題烏江亭〉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이다. 승패는 병가도 기약할 수 없으니 [勝敗兵家不可期(승패병가불가기)] 수치를 싸고 부끄럼을 참음이 남아로다 [包羞忍恥是男兒(포수인치시남아)] 강동의 자제 중에는 준재가 많으니 [江東子弟俊才多(강동자제준재다)] ‘권토중래’는 아직 알 수 없네 [捲土重來未可知(권토증래미가지)] 그러나 당송 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왕안석(王安石)은 ‘강동의 자제는 항우를 위해 권토중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읊었고, 사마천(司馬遷)도 그의 저서《사기(史記)》에서 ‘항우는 힘을 과신했다’고 쓰고 있다.
Board 고사성어 2020.06.17 風文 R 1787
전통과 우리말 “무용 평론가가 된 뒤 집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무용에 미치니 을지로 가구상점 거리를 지날 때 ‘무용’ 간판만 눈에 띄었다. 알고 보니 ‘사무용 가구’였다”, “경상도 사람은 춤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침을 뱉고도 ‘춤’을 뱉었다 한다”, “전통은 케케묵은 것이 아니라 켜켜이 묵힌 것”, “싸움에서 용감하게 활약하여 공을 세운 ‘무용담’(武勇談)이 아니라 우리 춤으로 혀 놀리는 ‘무용담’(舞踊談)이다”. ‘펀(Pun, 언어유희)의 진수’라 해도 될 표현이다. 자신을 ‘사무’에 빠진 사람이라 일컫는 진옥섭의 ‘무용담’에 나오는 대목이다. ‘사무’(四-)는 무술(武), 무용(舞), 무당(巫), 없음(無)이란다. 이소룡 영화를 보고 무술에, ‘명무전’ 공연을 보고 무용에, 고수를 찾아 헤매다 무당(춤)에 눈을 떴고, 급기야 ‘무(無)의 경지’를 만나게 되었다는 얘기다. 두 시간 남짓 펼쳐낸 ‘강연 같은 공연, 공연 같은 강연’은 ‘사무’만 얘깃거리로 삼지 않았다. ‘벼슬은 양반의 것, 구실은 하급자의 것’ 따위의 우리말 표현을 톺아보게 했다. ‘벼슬은 구실보다 높은 직’이고 ‘구실은 관아의 임무’다. ‘벼슬아치’는 ‘관청에 나가서 나랏일을 맡아보는 사람’, ‘구실아치’는 ‘벼슬아치 밑에서 일을 보던 사람’(<표준국어대사전>)이며, 서리(胥吏) 같은 하급 행정직이나 사역직은 ‘구실’이라고 하여 ‘벼슬’과 구별한 것이다.(<브리태니커>) 표 값 단돈 5000원 내고 한판 놀다 나오니 시디(CD)도 거저 준다. ‘춤을 부르는 소리꾼’ 유금선 선생의 생전 실황 음반이다. 여든답지 않은 소리의 기개에 움찔한다. ‘소리꾼만 있고 귀명창이 없는 세상이 한탄스럽다’는 말은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우리말 상실의 사회’에 뒷짐 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은 (우리)말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엔 얼굴이 화끈거렸다. ‘우리말이 살아야 겨레 전통예술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 영애와 각하 ‘각하’가 부활했다. 여당 원내대표가 ‘대통령 각하’라 한 이후의 일이다. ‘군사독재 시대의 유물’이라는 비판에 ‘권위주의와 권위는 다른 것’이란 해명이 이어졌다. 폐하(황제)-전하(왕)-저하(왕세자/황태손)-합하(정일품/대원군)-각하(정승/왕세손)의 호칭 서열에 따르면 ‘각하는 하급 경칭이니 오히려 대통령의 격을 깎아내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50대 이후에게 ‘각하’는 특정 대통령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처럼 남아 있지만, 사전 속 ‘각하’는 ‘특정한 고급 관료에 대한 경칭’일 뿐이다.(표준국어대사전) ‘각하는 대통령에게만 쓸 수 있다’는 문구를 기억한다. 1970년대 학교 게시판에서 본 ‘국가원수에 대한 예절’의 하나이다. “총무처에서 대통령에게는 반드시 ‘각하’라고 붙여서 부르기로 결정했다”(1966년 3월, ㄷ일보)는 기록을 보면, ‘각하=대통령’이란 인식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부통령, 총리, 장관은 물론 군 고위 장교에게도 ‘각하’라 하던 경칭 문화를 대통령에게로 한정한 것이다. ‘각하’와 더불어 쓰임이 좁아진 표현이 ‘영부인’과 ‘영식’, ‘영애’이다. ‘남의 부인(딸/아들)을 높여 이르는 말’인 ‘영부인(영애/영식)’이 특정인을 지칭하는 표현이 된 것도 비슷한 시기일 것이다. 원래 말뜻을 살려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우리 이웃, 옆집 아저씨의 아내가 영부인이고 그 집 딸과 아들은 영애와 영식이다. 뒷집 아줌마가 ‘영식은 잘 지내지요?’ 인사하면 ‘그 댁 영애도 많이 컸던데요!’로 답하면 된다. 행정기관을 찾아간 민원인이 공무원에게 ‘국장 각하께 잘 부탁한다고 전해 주셔요’ 해도 ‘국가원수 모독죄’를 덮어씌우지 않는다. ‘부대 생활 돌봐 주셔 고맙다’는 편지를 ‘사단장 각하’에게 보내는 가족과 여자친구가 많아지는 것도 괜찮겠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에 따따부따하는 것보다 나은 방법 아닌가.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