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영역 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어려웠다’는 국어 문제 45문항을 훑어보았다. 수험생 시절로 돌아가 보려 했던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까다로운 지문의 양이 꽤 많아서 멀미가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서술어의 자릿수’를 다룬 문제는 낯설었다. 우리말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문장 성분의 수’를 굳이 따져야 하나 싶은 생각이 따라왔다. 쉽게 넘길 수 있으리라 예상했던 맞춤법 문제는 만만하지 않았다. 한글 맞춤법에 맞게 쓰인 것은? ①‘엇저녁’에는 고향 친구들과 만나서…, ②…안건은 다음 회의에 ‘부치기로’ 했다, ③‘적쟎은’ 사람들이 그 의견에…, ④…‘깍뚜기’를 먹어 보았다, ⑤저기 ‘넙적하게’ 생긴 바위가…. ‘어제(의)저녁’의 준말은 ‘엊저녁’, ‘적은 수나 양이 아닌’ 뜻의 표기는 ‘적잖은’, 무를 ‘깍둑썰기’로 다듬어 담근 김치는 ‘깍두기’, ‘편편하고 얇으면서 꽤 넓은’ 것은 ‘넓적-’이다. ‘넙적하다’는 ‘넙죽하다’와 같은 말이다. 안건을 회의에 ‘부치다’는 맞춤법에 맞는 표현으로 정답은 ②번이다. ‘부치다’의 뜻과 쓰임은 여럿이다. 편지를 부쳤다, 안건을 회의에 부친다, 편집장이 창간호에 부치는 글, 토론 결과를 비밀에 부치다, 빈대떡을 부쳐 먹다, 실력이 부친다(모자라거나 미치지 못한다), 부채를 부쳐라… 등 이다. 오래전 서울대 본고사 문제가 생각난다. 한자 ‘樂’의 음과 뜻을 쓰라, 이런 문제였다.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수준이었지만 당황한 수험생이 많아서 화제가 된 것이다. 덕분에 웬만한 일반인들도 ‘즐길 락, 노래 악, 좋아할 요’를 한동안 읊고 다니던 때의 기억이다. 이번 국어 영역 문제에 ‘모둠’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초·중등학교에서, 효율적인 학습을 위하여 학생들을 작은 규모로 묶은 모임’을 이르는 말이다. 기성세대에겐 생소한 표현이다. 사전은 ‘교육’에 한정해 풀이했지만 사회 일반에서 두루 쓸 수 있는 용어다. 시험은 평가 도구이지만, 습득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 애정 행각 프랑스 파리는 흡연에 관대했다. 실내는 금연이지만 문밖은 천지가 흡연구역이었다. 유모차 밀고 가면서, 횡단보도 건너면서, 유적지에 들어가려 줄 서 있으면서 담배 피우는 사람을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파리의 풍경이 부럽다는 이를 만났다. 어렵게 찾은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노라면 죄인 보듯이 인상 찌푸리고 손사래 치는 사람이 많은 우리 현실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 없는 우리 사회’를 두고 볼멘소리 하던 그가 ‘애정 행각도 흡연처럼 단속해야 한다’며 말을 돌렸다. 공공장소의 ‘애정 행각’이 눈살 찌푸리게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애정 행각’은 무엇일까.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불쾌한 경험을 했다. 남녀 커플이 서슴없이 애정행각을 벌인 것’(ㄷ일보), ‘우리 결혼했어요, 닭살 행각의 결정판’(ㅅ일보), ‘전 검찰총장, 성추행 피소. 대담 행각’(ㅈ일보)…. 신문 기사에 등장한 ‘행각’의 쓰임이다. 인터넷 연관검색어인 ‘공공장소(공원/10대/S대/…) 애정행각’, ‘애정행각 대학생(교사/버스/경찰/…)’에서 ‘행각’은 ‘과도한 애정 행위’와 한뜻으로 쓰이고 있다. ‘행각’은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 어떤 목적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님’이다.(표준국어대사전) 구걸 행각, 도피 행각, 애정 행각은 ‘행위’보다는 ‘돌아다니는(다닐 行, 다리 脚) 것’에 무게가 실린 표현이다. ‘엘리베이터, 녹화 현장, 도우미 숙소’처럼 한 장소에서 하는 행위는 ‘행각’이 아닌 것이다. ‘전국 유세 행각 이범석 씨’(ㄷ일보, 1956년), ‘친일 1호 김인승 묻힌 행각 드러나’(한겨레, 1996년)에서 보듯 옛날 기사 속 ‘행각’은 제 뜻을 담고 있다. ‘11년간 31차례 강도 행각 30대’(ㄱ신문), ‘농촌 빈집 찾아다니며 절도 행각’(ㅇ경제신문), ‘복무이탈 수배 중 절도행각 공익요원 구속’(ㄴ통신) 따위는 ‘행각’의 뜻을 제대로 쓴 뉴스의 보기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16. 모방 <남의 흉내나 내고 있진 않은 지 살펴 보라. 남을 흉내내면 자기 속안의 진짜 씨앗은 살아날 수 없으니. 그대 의식의 칼로 베어라. 흉내내기를. 아무리 고통스럽다 해도 단칼에 베어라. 고통이 뼛속까지 사무치겠으나 그 베힘으로 그대 자신, 그대 진면목이 드러나리니> 구지 선사는 선문답으로 엄지손가락을 일으켜 세우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그런데 한 어린 학승이 선사를 흉내내어 누가 물으면 엄지손가락을 번쩍번쩍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구지 선사가 그 얘기를 듣고 가봤더니 마침 녀석이 그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선사는 녀석의 팔목을 꽉 붙들고는 칼을 빼들어 엄지손가락을 싹뚝 잘라버렸다. 어린 학승은 아우성을 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선사가 외쳤다. <이놈, 게 섰거라!> 학승이 엄칫 서서 뒤돌아 보니 고통의 눈물 사이로 얼핏 스승이 보였는데,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 올려 보이고 있는 거였다. 학승이 저도 모르게 습관대로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려는 찰나... 자기 손가락이 없음을 알아챘다. 학승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깨쳤던 것이다. 스승은 손가락 하나라도 불필요한 행동을 결코 않는다. 구지 선사가 날이면 날마다 온종일 엄지손가락을 일으켜 세우곤 했던 게 아니다. 구지 선사는 선적인 물음에 답할 때만 그리했다. 왜? 그대의 모든 의문, 의혹들은 그대가 조각나 있고 찢겨져 있고 혼란 속에 있고 부조화 속에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 명상이란 무엇인가? 그건 그대를 통합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구지 선사에게 있어 설법이나 강의는 부차적이다. 그에게는 엄지손가락 치켜들기가 진짜 알맹이다. 구지 선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이어라! 그러면 모든 의문이 플리리니" 한데 어린 학승이 무턱대고 선사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그 흉내내기는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할 엉뚱한 곳으로 데려갔다. 흉내내기란 아무 근거도 없는 망상같은 것이다. 그건 전혀 자기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게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속안에 자신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남을 흉내내기 시작하면 그 씨앗은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다. 흉내내기는 가차없이 베어야 한다. 여기서 엄지손가락은 바로 베어져야만 하는 흉내내기이다. 어린 학승은 아주 호된 맛을 봤을 것이다. 그 고통이 그 존재의 뿌리 밑까지 사무쳤을 것이다. 바로 그 사무치는 순간에 구지 선사는 외쳤다. "게 섰거라!"하고. 그러자 사무치던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스승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것을 본 제자는 자신도 모르게 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려다가 처음으로 알아챘다. 자신이 곧 몸뚱아리가 아님을 제자는 눈 떠 알았다. 자신은 바로 영혼이며, 몸뚱아리는 한낱 영혼의 집임을. 그대는 속안의 빛이다. 램프가 아니라 불꽃이다.
Board 추천글 2020.06.11 風文 R 1442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평범한 행복 산타 할매 - 김기숙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바라보며 올해도 다 가는구나 하는 서글픔과 함께 12월 25일에 눈길이 머물자 새삼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일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유난히도 춥고 바람이 차가웠던 대구에서였다. 기숙사 안은 온통 겨울 방학, 크리스마스 계획으로 술렁대었다. 당시 간호학과 학생이던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까?' 하고 생각하면서 하모니카를 들고 뒷산에 올라갔다. 그때 문득 군부대 초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초병을 보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곧 시내로 나갔다. 다과점에 들러 도넛을 사고 홍차도 준비했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이브, 나는 커다란 보온병에 홍차를 끓여 넣고 조그만 그릇에 도넛을 담아, 지금은 전방 어느 후송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와 함께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총을 든 군인이 무서워서 초소 앞까지는 못 가고 근처에서 먼저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소리를 치고서야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우리는 차를 따라 주고, 빵을 나눠 주었다. "수고하십니다!" 하는 우리의 합창에 반가워하는 군인들의 얼굴이 달빛에 비칠 때, 나는 기뻐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다음 초소에서 그 다음으로, 우리는 신나게 다녔다. 어떤 군인 정신이 투철한 일병 아저씨는 "손들엇!" 하며 총을 들이대기도 했고, 그 바람에 우리는 놀라 보온병을 땅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며칠 뒤 사령부 신문에 '어느 산타 할매, 초소를 방문하다!' 라는 기사가 실렸다. '그 산타 할매가 바로 나란 말이야.' 나는 몇 번이나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간호사)
Board 삶 속 글 2020.06.11 風文 R 1095
Board 고사성어 2020.06.11 風文 R 1242
황금시간 “경제를 다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다”(대통령),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전적으로…”(새누리당 대표), “개헌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낡은 정치는 지속될 것…”(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 “경제 회생의 ‘골든타임’이 되도록…”(같은 당 대변인).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지난주 국회 연설, 당 대변인 발언에 공통적으로 등장한 열쇳말은 ‘골든타임’이다. ‘골든타임’은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초반 금쪽같은 시간’(한경 경제용어사전), ‘의학적으로 어떤 치료가 효과 있기 위해 행해져야 하는 제한시간’(위키백과)의 의미로 널리 쓰이지만, 예전부터 ‘청취율이나 시청률이 가장 높은 시간’(매스컴대사전, 시사상식사전 등)의 뜻으로 써온 표현이다. ‘골든타임’은 영어가 아니라 일본 조어로, ‘프라임 타임’(prime time)을 이르는 말이다. 요즘 정치권 등에서는 ‘시청률’이나 ‘사람 살리기 위한 시급함’보다는 ‘중요한 시기(때, 기회)’와 관련 깊게 쓰인다. 1999년 이전 네이버뉴스 검색 결과는 ‘골든타임’(189건)과 ‘골든아워’(354건), ‘황금시간’(3052건) 등으로 황금시간 쪽이 많았다. 요즘은 ‘골든타임’의 쓰임이 많다. 사용 빈도가 뒤집힌 것은 ‘사건·사고’에 관심이 많아진 세태 변화 때문일 것이다. 쓰임이 어떻든 ‘골든타임’은 금쪽같은 시간, 곧 ‘황금시간’이다. 국립국어원 ‘말다듬기 위원회’와 서울시 ‘국어 바르게쓰기 위원회’가 ‘골든타임’을 ‘황금시간’으로 새삼 다듬은 까닭이다. 올해 8월 이후 두 위원회의 ‘황금시간’을 다룬 뉴스는 각각 11건과 16건뿐이다. 대통령과 여야대표 연설의 ‘골든타임’은 사흘 동안 뉴스에 757건 등장한다. ‘20여건’ 대 ‘750여건’. ‘아래’에서 다듬어도 ‘위’에서 쓰지 않으면 널리 퍼지지 않는다. 아시겠지만, 국어기본법은 국회가 입법했고, 국립국어원장은 정부가 임명한다. ……………………………………………………………………………………………………………… 우리말 속 일본어 ‘골든타임’은 ‘시청률이 높은 시간대’를 뜻하는 ‘프라임 타임’(prime time)을 일본에서 부르는 말에서 왔다. 지난주 짚어 본 내용이다. 이런 영어를 ‘재플리시’(Japlish) 또는 ‘쟁글리시’(Janglish)라 한다. 아이돌, 스킨십, 백미러, 사인펜, 오토바이, 라이브 하우스, 샌드백, 콘센트, 캠핑카, 아르바이트, 모닝콜…. 일본 위키백과 ‘와세이에이고’(和製英語) 항목에서 열거한 것의 일부이다. 아파트, 리모컨, 레미콘, 슈크림, 테마파크 따위도 일본에서 들어온 얼치기 외래어이다. 일본어가 우리말에 미친 영향은 외래어(외국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말 속 일본어’를 톺아 엮은 사전이 나왔다. 대통령, 헌법, 검사, 철학, 오방떡, 팔방미인, 모험, 전망, 사회, 연애 따위가 일본 한자를 음독한 것이라는 걸 새삼 일깨워주는 말광이다. 이참에 관련 정보를 사전에 반영하면 어떨까 싶다. ‘냄비’가 일본어 ‘나베’(なべ)에서, ‘몽타주’가 프랑스어(montage)에서 왔음을 알리는 것처럼 관련 낱말에 ‘우리말 속 일본어’임을 밝히는 것이다. 사전은 원어를 밝혀주는 구실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게 일본어에서 유래한 것인지 구별이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사전을 엮어낸 이한섭 교수(고려대 일어일문학과)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걱정스러운 것은 어떤 단어가 일본어에서 온 것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라며 ‘영어나 중국어에서 온 말과 같이 외래어의 일부로 보아도 될 시점’이라고 했다. 외래어를 제대로 받아들여 쓰는 것은 언어문화를 풍성하게 가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서 온 말이니 무조건 쓰지 말자 하는 것은 소아병적 발상이다. 아, ‘소아병’(小兒病)도 일본어에서 온 것이다. 레닌이 1920년에 쓴 글을 일본어로 직역한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1926년)에서 비롯한 것이니.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제1권 요술을 부리는 수통 한바탕 큰 전투를 치르고 나서 부상당한 병사 한 명이 애타게 물을 찾고 있었습니다. 마침 군종목사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얼마의 물이 남아 있었습니다. 군종목사는 수통을 그 병사에게 건넸습니다. 병사는 무심코 그 물을 마시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소대원들의 눈이 자기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들 또한 목이 타기는 마찬가지일 것이었습니다. 그는 목마른 것을 꾹 참고 그 수통을 소대장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소대장이 그 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소대장은 그 수통을 받아들더니 입에 대고 꿀꺽꿀꺽 소리를 내며 마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부상당한 병사에게 다시 그 수통을 넘겨 주었습니다. 부상당한 병사가 물을 마시려고 보니 수통의 물은 조금도 줄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병사는 소대장의 뜻을 짐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부상당한 병사는 수통을 입에 대고 소대장처럼 꿀꺽 소리를 내며 맛있게 물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수통은 다음 사병에게로 전해졌습니다. 소대원들은 모두 꿀꺽꿀꺽 물을 마셨습니다. 마침내 수통은 군종목사에게로 돌아갔지만 그 수통의 물은 처음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갈증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Board 추천글 2020.06.10 風文 R 1652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15. 약점 <스승과 함께라면 어느 때 어떤 상황이라도 그대의 눈을 뜨게 하는 데 소용된다. 자신을 방어하지 말라. 불안한 대로, 여린 대로, 있으라. 스승한테 완전히 맡기고, 믿으라.> 대단히 엄한 선사가 있어서 제자들은 모두 그를 두려워 하였다. 어느 날 한 제자가 종을 치고 있던 제자가 순간적으로 헛치고 말았는데, 막 절문 앞을 지나가는 어여쁜 처녀를 보고 정신이 아뜩하였던 것이다. 제자는 그 자리에 더는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속안에서 잠자고 있던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꿈꾸듯 처녀의 뒤를 쫓으려 하였다. 바로 그 순간, 뒤에 서서 지켜보고 있던 스승이 지팡이로 제자의 머리통을 냅다 후려 갈겼다. 어찌나 셌는지 제자는 그 자리에서 꼬꾸라져 죽고 말았다. 선가에는 오랜 전통이 하나 있는데, 어떤 스승한테 제자로 들어 갈 때는 약조를 해야 한다. "이 목숨이 살고 죽음은 오직 스승님께 달려 있습니다" 제자는 이를 서약한다. 이런 전통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모두 그 엄한 선사를 비난하였다. 자신이 후려 갈겨 제자가 죽었는데도 스승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전하였다. 누군가 그 죽은 제자에 대해 물으면 도리어 털털거리며 웃는 것이었다 스승은 뭐가 잘못되었노라 얘기 한 마디 한 일이 없었다. 스승에게 있어 제자의 죽음은 하나의 우연한 "일"이었다. 스승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왜? 속 안의 내용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 제자는 뭔가를 얻었다. 그의 육신은 꼬꾸라졌지만 안으로 그는 눈을 번쩍 떴던 것이다. 욕망이 뿌리채 뽑히고, 꿈도 순식간에 걷혔으며, 모든 것이 육신과 함께 박살난 것이다. 그는 안으로 눈 뜨는 그 순간에 죽은 것이다. 만약에 눈 뜨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대는 깨닫게 될 것이다. 선사는 죽음의 찰나를 너무나 멋지게 이용한 셈이다. 그랬으므로 제자는 눈 뜰 수 있었다. 이 선사야말로 참으로 위대한 예술가요 스승이 아니냐. 이 얘기를 읽고 그대는 분명 스승이 제자를 죽인 사건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건 이 얘기의 핵심이 아니다. 사실 제자는 어떻게든 죽게 되어 있었다. 스스은 그걸 알고 있었다. 얘기 속에는 이런 암시가 들어 있지 않은데, 그렇지 않았다면 스승이 마침 그때 제자의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제자가 종을 치는 일은 아주 일상적이고 날마다 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 제자의 죽음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그건 내적 신비여서, 만약에 내가 그때 그곳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걸 막을 도리는 없었을 것이다. 스승은 그대의 속 안을 꿰뚫어 본다. 스승은 그대의 죽음의 때를 안다. 그러나 그대가 완전히 맡겨야만이 죽음은 아주 뜻깊게 이용될 수가 있다.
Board 추천글 2020.06.10 風文 R 1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