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13. 지식 버리기 <가짜를 버리고, 자신의 지혜를, 자신의 이해를 일으켜라.> 위대한 학자 나로빠가 깨닫기 전의 일이다. 그때 나로빠는 학생수가 만 명이나 되는 큰 대학의 부총장이었다. 그날 나로빠는 제자들에 둘러싸여 앉아 있었다. 주변에는 온통 경전들과 귀한 책들이 가득하였다. 마침 깜빡 잠이 든 나로빠는 어떤 비젼을 보았는데, 전혀 꿈같진 않은 생생한 것이었다. 비젼이었다. 아주 늙고 추하기 짝이 없는 마녀같이 징그러운 노파가 나타났는데, 너무도 추하여서 나로빠는 몸서리를 쳤다. 마녀같은 노파가 기괴한 입으로 말하기를, <나로빠,뭘 하고 있소?> 나로빠가 덜덜 떨면서 말했다. <공부하고 있소> <철학, 종교, 인식론, 어학, 논리학 또...> <나로빠, 그걸 죄다 이해하시오?> <... 그렇소. 모두 이해합니다만> <낱말을 이해한다는 건가요, 뜻을 이해한다는 건가요?> 노파의 눈빛이 어찌나 날카로운지 감히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로빠는 자신이 완전히 발가벗겨 지는 걸 느꼈다. <낱말을 이해한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갑자기 마귀같은 노파가 춤을 추며 노랠 부르기 시작하였다. 노파의 징그럽게 추한 모습이 점점 변해가더니 아주 아리따운 모습이 나타나는 거였다. 그걸 보고 나로빠는 얼른 생각했다. "이 여자를 더 행복하게 해줘야지. 더욱 즐겁게" 나로빠는 재빨리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또 그 뜻도 이해합니다> 아리따운 모습으로 변해가던 여인이 돌연 노래를 그치고 춤도 멈추었다. 그러더니 슬프게 울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아리따운 모습은 다시 추하게 일그러져 갔고 마침내는 전보다 훨씬 더 추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나로빠는 당황하여 물었다. <아니, 어떻게 된 겁니까?> <나로빠, 그대가 거짓말을 안 하는 훌륭한 하자여서 난 행복했는데, 이제 거짓말을 했으니 슬퍼서 그러오. 나나 그대나 아는바이지만, 그대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지 않던가요> 순간 비젼이 사라져 갔고 나로빠는 꿈을 깨듯 퍼뜩 눈을 떴다. 나로빠는 이미 완전히 변해 있었다. 그는 그 길로 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다시는 책에 손대지 않았다. 그는 "안"것이다. 지혜로운 자, 이해하는 자는 언제나 새롭다. 언제나 향기롭다. 뜻을 이해하는 자는 아름다워지고, 말만 이해하는 자는 추해진다. 추해라, 말들은. 아름다워라, 뜻은.
Board 추천글 2020.06.08 風文 R 1376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평범한 행복 금붕어 - 강정순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키 작은 소년이 금붕어 가게 앞에서 어항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큰 대야에 담겨 있는 풀을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한참이나 서성거리고 있었다. 소년은 별로 깨끗한 옷을 입고 있지는 않았으나 동그란 문이며 까무잡잡한 피부가 무척 귀여운 아이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인지 한쪽 어깨에 책가방을 메고 있었다. 드디어 주인 아저씨가 눈치채고 주의를 주었다. "얘, 왜 거기 서 있니? 비켜라." 소년은 아직도 주저하는 몸짓으로 조금 비켜 섰다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아저씨, 저 빨간 붕어 얼마예요?" 주인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가 사려고? 그건 비싸다. 200원 자리야." 소년이 말했다. "150원밖에 없는데 어떡하죠? 할머니가 돌아가시려고 해요." 소년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할머니와 그 소년은 붕어를 기르고 있는데 그중 한 마리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할머니가 그날부터 몹시 편찮으시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소년은 붕어 때문에 할머니가 병이 나신 걸로 생각하고 매일 10원씩, 20원씩 생기는 돈은 모조리 저금해서 붕어 값을 보아 온 모양이었다. 조금 싼 붕어를 가져가면 어떠냐고 했더니, 반드시 처음의 그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죽은 붕어와 닮았다는 것이었다. 소년의 간절한 눈빛을 본 주인이 마침내 150원에 붕어를 주었다. 소년은 동전을 하나하나 털어 내놓고는 붕어를 들고 기뻐하며 뛰어갔다. (주부)
Board 삶 속 글 2020.06.08 風文 R 1058
美國 - 米國 “영길리국(英吉利國), 애란국(愛蘭國), 사객란국(斯客蘭國)이 합쳐져 한 나라를 이루었기 때문에 대영국(大英國)이라고 부르고, 국왕의 성은 위씨(威氏)이며….” 잉글랜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와 윌리엄 4세를 한자로 옮긴 이름이 그럴듯하다. 순조32년(서기 1832년) 7월21일치 <조선왕조실록>의 한 대목이다. 기록이 있던 날 이후 180여년이 흐른 오늘, ‘대영국’은 변함없다.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 결과 ‘독립안 부결’이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지난주 ‘영란’(英蘭)은 ‘잉글랜드’를 음역한 것이라 하면서 ‘미국, 독일, 호주, 태국은 여전히 음역어로 통하는 나라’라 했다. 그랬더니 “미국도?”, “다른 나라는 그럴듯한데 ‘미국’은 어떤 이름을 옮긴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美國’과 ‘米國’으로 달리 표기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묻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미국’을 뜻하는 한자이름은 크게 둘로 나뉜다. ‘아묵리가’(亞墨利加), ‘아미리가’(亞美里加)처럼 ‘아메리카’와 비슷한 게 있고, ‘미리가’(美理哥), ‘미리견’(美利堅·彌利堅·米利堅)처럼 원이름이 알쏭한 것이다. ‘America’의 발음이 첫음절 ‘어’는 약하게, 악센트가 있는 둘째 음절 ‘메’는 강하게 들리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美國’, 일본은 ‘米國’이라 한다. 조선왕조실록과 옛 신문을 훑어보면 ‘美國’과 ‘米國’이 외국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고종 때부터 순조 즉위년(1907년)까지는 ‘美國’이다가 1908년부터 ‘米-’로 기록된다. 일제강점기 ‘米國’은 광복 후 미 군정기를 거치면서 다시 ‘美國’이 된다. ‘美國’은 ‘아름다운 나라’이고 ‘米國’은 ‘쌀이 많이 나는 나라’라는 이야기는 제 나름의 생각을 담아 갖다 붙인 것이다. ‘아세아’(亞細亞)와 같이 음역은 ‘한자를 가지고 외국어 음을 나타내는 것’일 뿐이다. ……………………………………………………………………………………………………………… 3M 어느 대기업 사장이 시설 담당자를 불러 호통쳤다. “우리가 테이프 만드는 회사인가? 안내판 표기 제대로 못 하면서 믿을 수 있는 제품을 어찌 만들 수 있겠는가!” 주차장 천장 높이 안내판의 ‘3M’이 문제였다. 이것은 다국적기업의 회사 이름이고, 단위로 해석하면 ‘3메가(M, 백만)’가 된다. 안내판은 ‘3m’로 바로잡혔다. 그 일은 사내 문서는 물론 소비자를 위한 제품 설명서도 쉽고 바른 문장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단위를 밝히는 기호는 전문 영역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바루어 써야 ‘뒤탈’이 없다. 도량형 표준화의 공식적인 움직임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에 즈음해 시작되었다. 토지 면적을 줄여 세금을 적게 내려는 귀족의 꼼수에 맞서기 위한 필요성 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발맞춰 1791년 프랑스 국민회의는 과학아카데미에 십진법에 기초한 측정법을 보고하도록 했다. 길이에 미터(m), 무게에 킬로그램(㎏), 시간에 초(s, second)를 기준으로 삼은 ‘엠케이에스(MKS) 시스템’은 여기에 기초를 두고 있다. 국제단위계(SI)는 1960년 국제 도량형 총회에서 결정되었다. 국제단위계의 기본 단위는 길이(m, 미터), 질량계(㎏, 킬로그램), 시간(s, 초), 전류(A, 암페어), 온도(K, 켈빈), 물질량(mol, 몰), 광도(cd, 칸델라)의 일곱 개다. 단위 기호와 접두어는 로마자 소문자로 쓰는 게 원칙이지만 고유명사(인명)에서 온 경우에는 대문자를 허용한다. 넓이(㎡)는 ‘제곱미터’, 부피(㎥)는 ‘세제곱미터’로 읽는다. ‘평방’과 ‘입방’은 쓰지 않는다. ‘m/s’의 이름은 ‘미터 매 초’이지만 읽을 때는 ‘초당 *미터’라 하면 된다. “사고 당시 차량 속도는 ‘백삼십칠 킬로미터 퍼 아워(137㎞/h)’였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걸그룹 ‘레이디스코드’ 교통사고 조사 결과를 전한 ㅇ케이블의 한 대목이다. ‘퍼’(per)와 ‘아워’(hour)는 영어이다. ‘시속 137킬로미터’라 해야 시청자가 이해하기 쉽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12. 수용성 <해답 구하기를 딱 멈춰 보라.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라. 풀고, 기다리고, 좋은 때를 가져보라> 한 철학자가 선승을 찾아와서 붓다와 명상과 이런저런 것들을 물었다. 헐떡이면서. 가만히 듣고 있던 선승이 말하기를, <객이 몹시 지쳐 보이는구려. 이 높은 산을 올라 먼 길을 오셨으니 우선 차나 한 잔 하시게> 철학자는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그의 마음은 온갖 의문들로 들끓었다. 이윽고 주전자가 보글보글 소리를 내고 차 향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승은 말하기를, <기다리시게. 그리 서둘지 마시게. 혹시 아는가? 차 한 잔 마시노라면 객의 의문들이 싹 풀릴지> 순간 철학자는 자신이 완전히 헛걸음한 게 아닌 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 미친 거 아냐? 차 한잔 마신다고 붓다에 대한 내 의문이 어떻게 풀릴 수 있단 말야?' 그러나 그는 너무 지쳐 있으니 차나 한 잔 받아 마시고 산을 내려가는 게 좋겠다고생각했다. 이윽고 선승이 주전자를 들고 찻잔에 기울였다. 찻잔이 가득차고 넘치는데도 선승은 계속 붓는 거였다. 잔 받침대까지 가득 찼다. 한 방울만 더 따르면 마룻바닥으로 넘쳐 흐를 지경이었다. 철학자가 외쳤다. <그만! 이게 무슨 일입니까? 잔이 넘치고 받침대까지 넘치는게 안 보이십니까?> 선승이 말하기를, <아항, 객의 모양이 꼭 이렇지. 객의 마음이 꼭 이렇게 의문들로 그득해서 내가 뭘 말해 줘도 들어갈 틈이 없지. 도리어 내가 한 마디라도 해주면 객의 의문들은 넘쳐 흘러 물바다를 이룰 게야. 이 오두막이 객의 의문들로 가득 찰 테지. 돌아가시게. 객의 잔을 싹 비워 가지고 다시 오시게. 우선 객의 속 안에 조금이라도 빈 틈을 내시게> 이 선승은 그래도 봐줘 가며 하느니, 나한테 오면 어림도 없다. 난 빈 잔도 허락지 않는다. 잔 자체를 박살 내버릴 것이다. 아무리 비워도 잔은 다시 차기 마련이니까. 그대가 아예 있질 않아야 만이 차를 따를 수 있다. 그렇다. 그대가 아예 있질 않으면 차를 따를 필요조차 없다. 아예 있지를 말라. 그러면 모든 존재가 온갖 차원, 온 방향에서 그대의 없음으로 부어질 테니.
Board 추천글 2020.06.07 관리자 R 1530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평범한 행복 잊을 수 없는 중국인 가정 - 이경희 그 가족과의 사진을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실패한 몇 개의 필름 속에 들어 있는 모양이다. 미국 여행중 방문한 가장 인상적이었던 하와이의 한 가정.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잊혀지지 않는다. 파티에서 정말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눴는데, 그 집 부부는 나를 자기 집에 초대했다. 사실 낯선 여행에서의 초대란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그들이 중국인이라는 데서 이상하게도 같은 민족을 만난 것 같은 친근함이 들어 초대에 응했다. "저 분은 언제나 말이 적습니다. 그러나 속은 무척 다정하답니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별말 없이 자기 방으로 가버린 남편을 보면서 상냥한 부인이 내게 말했다. 방으로 들어가는 그 남편의 뒷모습만으론 결코 부인의 설명대로 다정하게 느끼기는 어려웠으나, 말 없는 남자의 본심은 어떤 것일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공과 계통의 연구소에서 일한다는 그 남자는 재미 중국인 2세였다. 부인은 대만에서 이곳으로 공부하러 왔다가 그와 결혼해 그대로 눌러앉게 된 미모의 어학도였다. 아직 아이가 없는 이 부부는 모두 직장에 나가고 있었다. 부인의 유일한 즐거움은 남편이 운전해 바래다 주는 직장과 집 사이의 드라이브 코스, 그리고 먼 곳에서 찾아오는 손님의 대접 같은 것이었다. 애들이 없어서인지 무척 쓸쓸하게 느껴지는 이 가정에서 한 동양 여인의 생활상을 나름대로 평가하며 앉아 있었다. 차를 마시면서 부인은 서랍에서 아주 귀중한 보물이라도 만지듯 예쁜 봉투 하나를 꺼내 보여 주었다. 봉투 안에는 비행기 표가 들어 있었다. "이거 비행기 표예요."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타이베이로 가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저이가 어머니날 선물로 제 어머니를 위해 저에게 사준 거랍니다." 그녀는 감격으로 거의 울상이 되면서 그 표의 사연을 내게 얘기하는 것이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자기가 항상 타이베이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한다고 남편이 그곳의 왕복표를 이렇게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다. "우리 월급으로는 굉장한 금액입니다. 저이는 자신이 즐기는 일체의 것을 끊고 절약해 이것을 마련해 주었어요. 그리고는 제가 어머니를 초청하는 것처럼 하라고, 딸이 초청하는 게 어머니날의 선물로 더욱 뜻있지 않겠냐고 말했어요." 나말고도 벌써 몇 사람에게 했을 그 자랑스러움. 그녀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별로 말이 없는 남편과 부인과의 관계... 그러나 그들의 조용한 대화며 정중한 태도는 내게 아무 설명 없이 그 가정의 따스한 분위기와 향기를 말해 주었다. (서울전문직업여성클럽 회장)
Board 삶 속 글 2020.06.07 風文 R 1084
찜갈비 - 갈비찜 한가위 즈음이 되면 단골로 등장하는 기사와 프로그램이 있다. ‘귀성길’, ‘차례상차림’, ‘제수용품 가격’, ‘선물세트’ 따위를 소재로 삼은 것들이다. 엊그제 뉴스는 여기에 새로운 시선을 더했다. ‘달라진 추석 풍속도’를 다룬 것이다. “‘추석’ 연관 검색어를 분석해보니 ‘차례’, ‘귀성’, ‘고향’보다 ‘여행’, ‘레저’의 빈도가 3배 높았고 ‘성형’도 빠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기자는 ‘민속 명절’에서 ‘가을 휴가’로 바뀌어 가는 세태를 보도했다. 그래도 변함없는 게 ‘추석 선물’이다. 명절 선물에서 빠지지 않는 ‘갈비세트’는 구이용과 찜, 탕거리에 따라 ‘불갈비’와 ‘찜갈비’, ‘탕갈비로 구분해 판다. ‘갈비구이’와 ‘갈비찜’, ‘갈비탕’ 같은 음식 이름과 구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1984년 신문에 ‘불갈비는 고기량이 많고 찜갈비는 지방이 많으며 탕갈비는 뼈가 많다’(경향신문), ‘불갈비(킬로그램당 8천원), 국갈비(˝ 3천원)…’(동아일보)가 보인다. 재료로써 ‘○+갈비’는 오래전부터 쓰인 셈이다. 사전은 ‘찜’의 뜻과 쓰임을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찐 음식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 제시한다. 사전까지 끌어오지 않아도 된다. 갈비찜, 게찜, 계란찜, 북어찜, 생선찜, 닭찜, 아귀찜, 애저찜…. 이처럼 음식 이름은 ‘○+찜’의 형태이다. ‘찜+○’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음식을 가리키는 ‘찜갈비’와 ‘찜닭’은 어떻게 봐야 할까. ‘찜갈비’의 고향은 대구의 ‘동인동 찜갈비 골목’이다. ‘동인동 찜갈비’는 갈비찜과 달리 ‘경상도 음식답게’ 맵다는 게 특징이다. 2002 월드컵 경기가 대구에서 열리면서 널리 알려진 음식이다. ‘찜닭’의 본고장은 경북 안동 구시장의 ‘찜닭골목’이다. ‘안동찜닭’이 개발되기 전인 1980년대까지 ‘통닭골목’으로 불린 곳이다. ‘(동인동)찜갈비’와 ‘(안동)찜닭’은 고유명사이다. 갈비찜과 닭찜의 한 종류인 ‘찜갈비’, ‘찜닭’을 일반화해 가리키는 것은 삼가야 한다. ……………………………………………………………………………………………………………… 영란은행 야트막한 언덕 위 시계탑 건물의 강의실. 학창시절에 전공과목을 듣던 곳이다. 영시를 강의하던 교수는 ‘애란’ 얘기를 할 때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예이츠를 배울 때였을 것이다. <더블린 사람들>(Dubliners)을 읽을 때도 ‘애란’은 빠지지 않았고, <고도를 기다리며> 강독 시간에도 그러했다. 제임스 조이스, 사뮈엘 베케트의 고향이 ‘애란’이기 때문이다. 영어 ‘아일랜드’, 게일어 ‘에이레’보다 한자 음역어 ‘애란’(愛蘭)이라 부르는 게 왠지 그 나라 정서에 어울리는 것 같았던 시절의 일이다. 불란서(프랑스), 이태리(이탈리아), 서반아(스페인), 희랍(그리스), 화란(네덜란드), 파란(폴란드), 서전(스웨덴), 오지리(오스트리아), 애급(이집트), 아라사(러시아), 토이기(터키) 따위는 널리 쓰인 한자 음역어이다. 앞 글자를 딴 ‘불’(佛, 프랑스), ‘화’(和, 네덜란드), ‘인니’(印尼, 인도네시아), ‘마’(馬, 말레이시아) 같은 표현도 신문에 자주 등장했다. 미국, 독일, 호주, 태국, 인도 그리고 영국은 여전히 음역어로 통하는 나라이다. 영국의 정식 명칭은 ‘대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를 통틀어 이르는 ‘브리튼’과 아일랜드 섬 북쪽 일부 지역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는 ‘유케이’(UK), ‘지비’(GB)로 줄여 표기하기도 한다. 영국(英國)은 ‘잉글랜드’의 음역어 ‘영란’(英蘭)에서 온 말이다. ‘뱅크 오브 잉글랜드’(BOE, Bank of England)를 ‘영란은행’으로 번역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에 즈음한 소식을 전하는 뉴스는 ‘BOE’를 ‘영란은행’, ‘영국은행’, ‘영국중앙은행’으로 달리 이른다. ‘한 은행, 다른 이름’? 하나로 정한다면 ‘영국(중앙)은행’이 어떨까 싶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