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 '답’을 알고 나면 허무해지는 게 있다. ‘철조망 통과 요령’이다. 군대에서는 ‘(철조망) 위로, 밑으로, 절단, 폭파, 우회’ 이렇게 다섯 가지 방법을 적시한다. 철조망을 맞닥뜨리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다. 뻔한 방법을 숙지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전투나 이에 준하는 위급상황에서는 우왕좌왕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필드 매뉴얼(Field Manual), 흔히 ‘에프엠’이라 부르는 야전교범이 필요한 이유다. 기사 제목 “안이한 현장대처·지위체계 혼선…‘어이없는 정부’”에서 보듯 매체들은 ‘매뉴얼’이 없거나, 이를 지키지 않은 현실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매뉴얼’의 뜻을 ‘설명서’로 밝히면서, “‘설명서’, ‘안내서’, ‘지침’으로 순화”하라고 풀이한다. ‘응급상황 매뉴얼’, ‘현장학습 안전대책 매뉴얼’, ‘승객대피 매뉴얼’처럼 ‘서해 여객선 침몰 사고’에 즈음해 쏟아지는 ‘매뉴얼’은 곧 ‘지침(서)’인 것이다. 여객선이 침몰한 지난 수요일, 일터로 출근하니 책상 위에 ‘재난방송 내규’가 놓여 있었다. 두툼한 분량의 내규 가운데 ‘현장취재·방송 요령’에는 ‘(피해자들의) 심리적 안정 유도, 프라이버시 보호’ 지침도 들어 있다. ‘뉴스특보’ 진행자의 말에는 배려가 담겨야 한다. 갓 구조된 고등학생과 인터뷰하면서 대뜸 “당시 상황이?” “친구들은 어딨나?”고 묻는 것은 잔인하게 들린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뉴스특봅니다’, ‘시청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재난상황 설명자에게) 어서 오십시오’ 따위의 상투적인 인사말은 하지 않는 게 차라리 나을 때가 있다. 피해자 상황과 시청자 마음을 배려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17일 “일부 기자들의 섣부르고 경솔한 행동이 희생자 가족과 국민 여러분에게 상처를 줬다는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통렬히 반성하고 있다”며 “재난보도준칙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2003년 ‘대구지하철 사고’ 직후 ‘재난보도준칙(안)’을 만들었지만 여태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 동통 ‘냉온욕’이 편하지 않다. 서해 여객선 사고 이후의 일이다. 시원함이 아닌 냉탕의 싸늘함이 마음을 휘감는 느낌…. 배 안에 차올랐을 차가운 바닷물이 떠올라 소름이 돋기 때문이다. 피할 길 없는 ‘뉴스 특보’를 접하며 안타까움에 탄식하고, 관련 기사를 읽을라치면 가슴 먹먹해지는 탓에 숨 고르는 일이 많아졌다. ‘여객선 참사’로 일상의 변화를 겪는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직업병’이 도진 것도 ‘일상의 변화’ 가운데 하나다. 뉴스 화법의 적절성 여부를 더 따지게 되었고, 곳곳에 널려 있는 ‘안내문’, ‘주의사항’ 따위의 문안을 더욱 꼼꼼히 톺아보게 된 것이다. 적절한 경고문과 주의·안내문은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는 방편이기 때문이다. ‘옷 입은 채 다림질하지 마시오’, ‘사다리로 사용하지 마시오’(시디 보관 케이스), ‘사람을 넣지 마시오’(세탁기), ‘아이를 앉힌 채 접지 마시오’(유모차) 따위는 미국에서 볼 수 있는 안내문이다. ‘악덕소송’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폄하는 사람이 없지 않지만, 이런 시시콜콜한 안내가 사고 방지에 도움 된다면 흰 눈으로 볼 일만은 아니다. 가슴 써늘하게 하는 냉탕을 빠져나와 열기 그득한 사우나탕에 들어서니 ‘주의사항’이 붙어 있다. 무심히 흘렸던 안내문 내용이 새삼 흐리터분하게 다가왔다. 의사 몇에게 적절한 내용인지 물어보았다. ‘순환기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사람은 안 하는 게 좋다는 뜻’이라며 ‘(주의사항은) 더 구체적인 게 좋다’고 답한다. ‘발에 동통을 느꼈을 때(열기욕 중단)’의 뜻은 바로 새겨지지 않았다. ‘동통’을 찾아보니 ‘안구(瞳) 통증’, ‘움직일(動) 때 아픈 것’이라는 제멋대로의 풀이가 떠돈다. 아플 동(疼), 아플 통(痛)이 어우러진 동통의 뜻은 ‘몸이 쑤시고 아픔’(표준국어대사전)이다. ‘주의사항’은 알기 쉬운 표현이어야 한다. ‘발이 쑤시고 아플 때’ ‘발에 통증이 있을 때’로 하면 될 일이다. 동통’은 ‘페인’(pain, 통증)의 번역으로 구식 표현이다. 신경과 의사의 말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4. 맡김 <무얼 하든 온몸으로 하라. 통째로 맡겨라> 크게 깨달은 달마는 제자를 찾았으나 도무지 구할 수가 없었다. 해서 인도를 떠나중국으로 갔다. 그는 열쇠를 갖고 있었지만 마땅한 전수자를 발견할 수 없었던것이다. 달마는 산 속의 한 동굴에서 9년을 기다렸다. 벽만 바라보며 그는 기다렸다. 그러나 그에게는 엄청난 자기력, 끄는 힘이 일고 있었다. 그의 뜻은 이러했다. <진짜 사람이 와야만 만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벽 쪽에서 눈을 돌리지 않겠다> 그런 어느 하룻날, 한 사람이 달마의 동굴을 찾아왔다. 그 사람은 달마의 곁에 가 앉았다. 그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사람은 그냥 곁에 앉아 기다렸다. 끈기있게 기다렸다. 거기엔 두 침묵뿐이었고, 두 침묵의 만남뿐이었다. 이튿날 아침,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자기 한쪽 팔을 싹둑 잘라 달마에게 내놓으며 외쳤다. <제쪽으로 돌아보시지 않으면 이번엔 머리통을 자르리다!> 그러자 달마가 즉각 돌아봤다. 그가 마침내 돌아섰다. 9년 동안 그는 아무도 돌아본 적이 없었다. <이제야 왔는가?> 자기 목숨까지 기꺼이 내놓을 줄 아는 자만이 진짜 제자이다. 그 사람이 싹둑 잘라 내놓은 팔은 무엇인가? "제 쓰임을 모두 당신에게 바칩니다. 저를쓰십시오" 모두 바칠 테니 쓰라는 것이다. "당신의 수레가 되겠습니다. 당신이 나르고자 하는 것을 나르고, 주고자 하는 것을 전해 주겠습니다" 수레로 쓰라는 것이다. "이 순간부터 제 쓰임은 당신 것입니다. 저는 이제 자신의 행위자가 아닙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움직일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잘라 내놓은 팔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진짜로 머리통을 자른다는 게 아니다. 진짜로 그렇다면 그건 대단히 모자라는 짓일 게다. 그 사람은 분명 말했다. <제쪽으로 돌아보시지 않으면 머리통을 자르리다!> 이건 통째로 맡긴다는 뜻이다.
Board 추천글 2020.05.30 風文 R 1511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1 가족 무정한 전화 - 정서운 작년 봄에 갑자기 언니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그 무렵 저도 다리에 신경통을 앓고 있던 참이라서 당장 가지 못하고 한 달쯤 후에 가까스로 서울대병원으로 언니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좋던 언니의 몸은 피골이 상접하여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제가 잠든 것 같은 언니의 손목을 잡으며 "성님!" 하고 부르자 언니는 심봉사 눈처럼 눈꺼풀을 떨며 "어이 동숭! 자네 기다리다가 눈 빠지겠네" 하고 울었습니다. '이것이 형제 정이구나. 나이 들고 병 들면 형제 소중한 것을 깨친다더니......'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철들고 처음으로 언니한테 잘못했다고 빌었습니다. 이렇게 기다리고 있던 언니한테 앉은뱅이 걸음으로라도 어서 올 것을 하고 저도 울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언니의 병원 수발을 하였습니다. 특히 언니는 우리가 어렸을 적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보리 퍼내서 떡 사 먹던 기억을 말할 땐 그 고통중에서도 웃으셨습니다. 며느리도 가라, 딸네들도 가라 해놓고서 한사코 저하고만 있자고 붙들었습니다. 병원에서 암 환자인 언니한테 퇴원할 것을 권하였습니다. 언니는 저더러 퇴원해서 시골 집으로 함께 가자고 하였습니다. 시골 언니네 가면 제가 좋아하는 홍어회도 고로쇠약수도 먹게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환자 곁에 있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가요? 저는 금방 따라간다고 언니한테 철석같이 약속해 놓고서는 우리 집에 가서 한 열흘 쉬었습니다. 그런데 무정한 전화는 제가 언니한테 가려고 가방을 챙기고 있던 날 아침에 오고 말았습니다. 제가 병실을 나서려고 하자 베개 밑에서 구겨진 1만 원짜리 한 장을 내놓으면서 "동숭, 이걸로 차비해서 택시 타고 얼른 와주소잉" 하던 우리 언니. 그 해맑은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삼삼히 떠올라와 제 가슴을 훑어 놓습니다. (인천시 북구 계산동 거주)
Board 삶 속 글 2020.05.29 風文 R 1053
Board 고사성어 2020.05.29 風文 R 1370
하룻강아지 지난주 야당 대표 국회 연설 때 ‘막말 공방’이 도졌다. 연설 중계방송의 ‘오프 마이크’를 통해 장내 소란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그저 그런 ‘국회의 일상’이라 여겼다. ‘너나 잘해’ 외친 여당 대표, 이름에 빗대 ‘철수해라’ 비아냥댄 여당 의원의 발언은 얘깃거리로 삼기 민망하다. 현장 분위기에 휩쓸려 ‘어쩌다 보니 튀어나온’ 실수였을 것이라 덮어두고 싶을 정도이니까. 여야 서로가 ‘새정치민주연합’을 ‘새민련’으로, ‘새누리당’을 ‘새리당’으로 부르며 치고받는 모양도 점잖지 않아 보인다. ‘내 이름을 이렇게 불러 달라’ 하면 그 뜻을 존중하는 기본을 지키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막말 공방’의 정점은 ‘하룻강아지’를 입에 올린 여당 대변인 말이었다. 공식 브리핑을 통해 ‘초년생 당 대표가 상대 당 대표를 향해 인신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이라 단정했기 때문이다. 야당 대표를 ‘범에게 달려드는 하룻강아지’ 꼴로 만든 것이다. 사전은 ‘하룻강아지’의 비유적인 뜻을 ‘사회적 경험이 적고 얕은 지식만을 가진 어린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로 풀이한다. ‘하룻강아지’는 ‘태어난 지 하루 된’ 강아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하룻’은 ‘나이가 한 살 된 소, 말 따위를 이르는 말’인 ‘하릅’이 변한 것으로 보는 게 통설이다. 우리 조상들은 하릅(1), 두습(2), 사릅(3), 나릅(4), 다습(5), 여습(6)…처럼 가축의 나이를 달리 매겼다. 하룻망아지, 하룻비둘기처럼 하룻강아지는 ‘한 살 된 강아지’인 것이다. ‘하루 된 강아지’의 근거로 꼽히는 ‘일일지구(一日之狗) 부지외호(不知畏虎)’는 중국 속담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이 고유 속담을 한문으로 옮겨 1820년 이맘때 펴낸 <이담속찬>(耳談續纂)이 출처다. 갓 태어난 강아지는 눈도 뜨지 않은 ‘눈에 뵈는 게 없는’ 존재인 것이니 ‘하룻’(하릅)의 뜻을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한 살 된 강아지쯤 되어야 찧고 까불며 나댈 수 있는 것이다. ……………………………………………………………………………………………………………… 밥약 학보를 받아 보며 아쉬운 때가 많았는데, 이번엔 참기 힘들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에 후배가 찍어 올린 학보를 보았다. 기사 제목 ‘해드라인의 맞춤법부터’가 눈에 들어왔다. ‘해드라인’이 헤드라인으로 버젓이 찍혀 나오는 그 학보를 찬찬히 읽어 보았다. 정치에 대한 대학생의 인식을 머리기사에 올린 학보는 학생회·학교 관련 소식과 문화가 이슈, 지상 철학 강좌 따위를 다루고 있었다. 다른 기사는 크게 흠잡을 데 없었고 학생기자와 교수의 칼럼은 제 나름의 시각을 잘 담아내고 있었다. ‘괜찮게 만든 학보’라는 생각을 하며 신문을 넘기는데 고개 갸우뚱하게 하는 기사 몇 꼭지가 눈길을 끌었다. ‘중국어 강의 신설’, ‘대학원생의 눈물 모은 생수통’, ‘학교 빵 매출 급증으로 등록금 10% 인하’ 따위의 기사는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총장과 학생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총장 밥약 사업’ 잠정 중단”을 알린 기사가 특히 그랬다. “과다한 식사로 총장이 비만으로 고생하면서… ‘밥약 부총장’ 임명안이 제기됐다”는 사연을 보며 요즘 학생들은 총장과 먹는 밥을 ‘약’(藥)이라 생각한다, 지레짐작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밥약’은 ‘밥 먹는 약속’이라는 것이다. 혼자 밥 먹는 것을 ‘혼밥’, 이런 무리를 ‘혼밥족(-族)’이라 한다는 걸 떠올리니 그럴듯했다. 관련 신어를 찾으니 ‘밥터디’가 나온다. ‘따로 공부하다가 밥만 함께 먹는 모임’, ‘함께 밥 먹으며 공부하는 모임’으로 ‘밥+스터디(그룹)’를 합해 만든 말이다. 2005년 11월에 매체에 등장했으니 쓰임은 더 오래되었을 것이다. 올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혼밥’, ‘밥약’의 형뻘인 셈이다. 그나저나 ‘총장밥약사업 중단’을 다룬 학보 기사의 ‘팩트’를 찾아 관련 정보를 뒤져보니 허망했다. 학보 상단에 ‘만우절 특집’이란 글자가 떡하니 박혀 있다. ‘중강’(中講), ‘눈물 생수통’, ‘등록금 10% 인하’ 또한 그랬던 것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Board 추천글 2020.05.29 風文 R 2077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1 가족 아버지가 사 오신 구두 - 이기정 나는 1957년 봄에 서울 혜화동 동성고등학교 뒤에 자리한 성신중고등학교(가톨릭교회의 신부가 되기 위한 소신학교)에 입학해 착실하게 공부하며 고등학교에도 그대로 올라갔다. 학생들은 중1부터 전부 신학교 공동 기숙 생활을 해야만 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 교모에 높을 고 자를 달고 나니 어깨가 으쓱하고 괜히 건들거리고 싶은 마음은 신학생이라고 없을 리 없었다. 나는 그때에 남들처럼 튼튼한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래서 집에다 워카에 까만 물감을 들여서 갖다 달라고 편지를 썼던 것이다. 면회실에 커다란 잠바를 입으신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시며 계셨고 탁자 위에는 신문지로 싼 큼직한 물건이 있었다. 아버지 앞에 서서 인사를 깍듯이 하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속으로 아버지에게 대견하게 보여야 하고 사치스럽게 보이면 안되고 학교 생활이 힘들어도 모든 게 좋다고 말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여하튼 아버지를 만나니 기쁘기도 하지만 어색하기도 했다. 이러저러한 문안을 올린 나에게 아버지는 구두를 풀어서 신어 보라는 것이었다. 잔뜩 호기심에 싸여 신문지를 한 겹 두 겹 벗기면서 '군인 구두인 워카보다는 일반 구두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사치스러운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돼! 아버지가 신학생인 안에 대해 실망하실 거야' 하는 생각도 하면서 풀었는데, 순간 번쩍하고 빛나는 구두 코끝이며 발목의 부드러운 가죽이 아주 비싼 부츠였다. 당시에는 이런 구두면 백 명 중 한두 명이 신을까말까 한 정도였다. 외출하거나 놀러 갈 때 신으면 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매일 서울 장안을 두 바퀴씩 자전거로 도시면서 자동차 부속을 배달하는 일을 하시던 때였다. 아버지의 힘든 일을 생각하면 나의 콧등이 시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자동차 부속 판매가 전망이 있다며 너도 나도 끼여들었고 서울이라도 자동차들이 너무나 적어 소비가 잘 안되므로 이 장사는 누가 계속 더 많이 외상을 깔아 놓느냐 하는 경쟁이 일던 때였다. 이 정도의 구두를 사려면 일주일 정도의 수입을 몽땅 합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잠시 구두를 내려다보다가 불현듯 퉁명스럽게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아버지, 나 이거 안 신을래. 도로 가져가요." 속으로는 가져가실까 봐 불안해 하면서도 겉으로는 말이 왜 그렇게 나왔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멋 좀 부리려고 혼자 몰래 꿈꾸던 것을 그 이상으로 알아맞혔다는 데 대한 불쾌감이 갑자기 내 안에서 동의도 없이 발동해 버린 것이다. 나는 왠지 아버지를 괴롭히고 싶은 마음까지 갑자기 들었다. 아마 반항기라 그랬는지, 너무 좋아 그랬는지, 욕망이 너무 쉽게 이루어져 허탈감에 그랬는지 좌우간 잘 모르겠다. "내가 워카 물들여 달랬지 누가 이런 거 갖다 달랬어?" 원래 아버지는 모든 것을 좋게만 해석하시는 착한 분이시기에, 그게 나를 짜증나게 한다고 속으로 이유를 아버지께 돌리려는 심산도 일어났다. 그러나 아버지는 잔잔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그래도 아버지가 사 온 건데 신어 보기라도 하려무나." 나는 하라는 대로 묵묵히 신어 보았다. 약간 컸다. 그래도 고맙다는 말이나 좋다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어색한 투정을 하면서 사치스럽다느니, 운동장에서 마구 신지는 못하겠다느니, 너무나 커서 양말을 다섯 개는 신어야 되겠다느니 하며 투덜대었다. 그러는 가운데 나의 속마음이나 겉마음도 모두 동의해서 싫다는 쪽으로 밀어붙이기로 작정해 버렸다. 한참이나 나의 어리석은 이중적인 불평을 들으시곤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며 멋쩍은 손놀림으로 꾸역꾸역 구두를 다시 싸시는 아버지의 모습, 그때 그 모습이 '아버지'라는 단어만 들으면 언제나 내 마음에 뭉클하며 솟아난다. (신부)
Board 삶 속 글 2020.05.28 風文 R 1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