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8. 제자다움 <그대 삶의 모든 상황에서 배워 알아라> 위대한 수피 신비가 하산이 임종을 맞는데 누가 물었다. <하산, 당신의 스승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하산이 말하기를, <내 스승은 수도 없이 많지. 그 이름을 대자면 몇 달 몇 해가 걸릴게야. 그렇지만 내 딱 세 스승만 말해 주겠네> 하산은 말을 이었다. <첫 번째 스승은 도둑이었네. 언젠가 황야에서 길을 잃고 밤늦은 시각에야 겨우 한 마을로 찾아 들어갔었지. 너무 늦은 때여서 집집마다 문이 다 잠겨 있더군. 마을을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웬 사람이 담장 밑에 구멍을 파고 있는 걸 발견하였지. 내가 머물 곳을 찾는다니까 그가 말하더군. "오늘밤엔 찾기 어려울 테니 나와 함께 지냅시다. 도둑과 함께 지내도 괜찮다면 말이요" 그러더군> 하산이 말을 계속했다. <그 사람 대단히 멋진 사람이었어. 난 한 달 동안을 그와 함게 지냈지. 매일 밤마다 그는 내게 말했어. 이제 자신의 일이 다되어간다고. 나더러는 쉬면서 기도나 하라고. 그가 돌아오면 나는 묻곤 했었지. 오늘은 뭘 얻었소? 하고. 그는 말하는 거였어. 오늘밤엔 아무것도. 허나 내일 또 해 볼 참이오. 신의 뜻이라면...... 그는 조금도 희망을 저버리는 일이 없었지. 언제나 행복해 보였지> 하산은 게속 말을 이었다. <그 후로도 나는 여러 해 동안 명상하고 또 명상을 했는데 그토록 애를 써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네. 그저 수도 없는 분열과 절망만을 맛 볼 따름이었지. 그때마다 난 생각했지. 이따위 것 죄다 집어치워 버리자고. 그러다 도둑이 매일 밤마다 하던 말이 문득 행각이 났다네. 신의 뜻이라면 내일은 일어날 테지 하는> 하산이 잠시 숨을 돌린 다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스승은 개였네. 몹시 목이 말라 강가로 갔는데 개 한 마리가 오더군. 그 개도 목이 말랐었지. 개가 목을 축이려고 강물로 얼굴을 가져가다가 문득 강물 위에 비친 개의 모습을 보곤 깜짝 놀라고 말았지. 개는 컹컹 짖어대며 냅다 뒤로 내빼더니 이내 되돌아 오더군. 목이 너무 탔거든. 개는 주저주저 하다가 용기를 내어 물 속으로 첨벙 뛰어들어지. 그러자 강물 위에 비쳤던 개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지 뭔가. 그때 나는 순간적으로 신의 메시지를 알아챘네. 무릅쓰고 뛰어들라는> 하산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세 번째 스승은 어린 아이였네. 어떤 도시엘 갔는데 웬 어린 아이가 촛불 하나를 들고 가더군. 아이는 사원으로 가고 있었지. 내가 장난삼아 물었지. 얘야, 네가 촛불을 밝혔니? 하고. 아이가 말하더군. 그렇다고. 내가 다시 물었지. 그 초에 불이 밝혀 있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불이 밝혀져 있구나 얘야. 넌 그 빛이 어디서 왔는지 아느냐? 하고. 아이가 돌연 깔깔거리며 웃더니 촛불을 훅, 불어 끄더군. 그리곤 말하기를, 빛이 어디로 갔는지 보셨겠죠. 어디로 갔죠? 하고 도리어 묻는 거였어. 순간 내 자아는 박살이 나버렸지. 나의 모든 지식이 가루가 되어 버렸어. 난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철저하게 깨달았어. 내 모든 지식을 깡그리 내던져 버렸지> 내겐 스승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배운 바 없다는 걸 뜻하는게 아니다. 그렇다. 나는 모든 존재, 삼라만상을 내 스승으로 삼았다. 나는 구름을, 나무들을 스승으로 삼았다. 삼라만상 모두를. 나는 수많은 스승을 섬겼으므로 차라리 스승이 없었다. 한 사람의 제자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길" 위에 있는 것이다. 제자가 된다는 게 뭔가? 그건 배울 수 있음을, 배우기 시작한다. 서서히 그대는 더불어 있을 줄 알게 되며, 삼라만상 모든 것과 더불어 함께 있을 수 있는 길을 보아 알게 된다. 스승은 그대가 헤엄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수영장이다. 거기서 헤엄치는 법을 배우기만 하면 모든 강물과 바다가 그대의 것이 되리라.
Board 추천글 2020.06.03 風文 R 1692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7. 탐욕을 넘어서 <완전한 믿음이 있으면 시간 자체가 필요없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시간이라도 부족하다> 위대한 신비가 나라다가 신을 만나러 가던 길이었다. 성심으로 기도하며 숲속을 지나던 그는 나무 아래 앉아 있는 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이 말하기를, <신을 만나거든 꼭 한 가지만 여쭤주십시오. 이 사람은 벌써 삼생 동안이나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 얼마나 더 그래야 하는지요? 언제나 해탈할 수 있는지요?> 나라다는 신께 여쭈겠노라고 쾌히 승낙했다. 길을 계속 가던 나라다는 이번엔 나무 아래서 즐겁게 춤추며 노래하고 있는 젊은이를 만났다. 그래서 나라다가 장난삼아 묻기를, <그대도 신께 여쭙고 싶은 게 있는가?> 젊은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들은 척도 않은 채 계속 춤만 추었다. 며칠 후 나라다가 돌아왔다. 그가 노인에게 말하기를, <신께 여쭤봤는데 삼생은 더 해야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말을 들은 노인은 버럭 화를 내었다. 염주와 경전을 냅다 집어던지면서 외치기를, <말도 안 되오. 또 삼생을 더 하라니!> 나라다는 젊은이한데로 갔다. 젊은이는 여전히 즐겁게 춤추며 노래하고 있었다. 나라다가 말하기를, <젊은인 아무것도 묻지 않았지만 내가 젊은이에 대해서 신께 여쭈어 봤다네. 그런데 신의 말씀을 해줘야 할지 어떨지 걱정이 앞서네. 그 노인이 화를 내는 걸 보니 말하기가 꺼려지는군!> 젊은이는 여전히 아무 말도 않은 채 춤만 추었다. 나라다가 입을 열기를, <내가 여쭈었더니 신께서 말씀하시기를, 젊은이는 그가 춤추고 있는 그 나무의 이파리들 만큼이나 많이 태어나야 할 게야 하시더군> 그러자 젊은이는 점점 더 황홀하게 춤추기 시작하는 거였다. 황홀한 춤 속으로 어우러져 들어가면서 젊은이가 말하기를, <그렇게나 빨리요.? 세상엔 수많은 나무들이 있고, 그래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파리들이 있는데...... 너무 빠르지 않나요? 다음엔 신을 만나시거든 감사하다고 꼭 좀 전해주세요!> 바로 그 찰나에 젊은이는 깨달았다. 완전한 믿음이 있으면 시간 자체가 필요없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시간이라도 부족하다. 그 노인은 지금도 세상 어디선가 떠돌고 있을 터인데, 그러한 마음은 결코 깨닫지 못한다. 그 마음이 곧 지옥이다.
Board 추천글 2020.06.02 風文 R 1384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평범한 행복 한 잔의 커피 - 심치선 내가 젊었을 때 나는 똑똑한 사람들을 훌륭한 인간으로 알았다. 이제 나이가 들어 나는 친절한 사람들이야말로 훌륭한 인간임을 안다. - 아브라함 헤셀 얼마 전 어떤 제자의 가정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특별한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시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이 나서 밤이 좀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보기로 하였던 것이다. 초인종을 누르자 내 목소리를 알아들은 부인이 반겨 맞아 주었다. 아이들도 모두 나와서 인사하고 커피를 끓여 온다, 사과를 깎아 온다, 온 집안이 떠들썩할 만큼 환영을 받았다. 한 30분 동안 우리는 아이들 자라는 이야기며 살림 이야기며 두서없는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밤도 늦었고 밖에서 기다려 주는 운전기사에게도 미안해서 곧 일어났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였다. 운전기사의 기분이 퍽 가벼운 듯 보였다. 나는 내가 일찍 나와 줘서 고맙게 생각하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에 운전기사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커피요."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커피라니요?" 그러자 운전기사가 말했다. "따끈한 커피 한 잔 마셨어요. 그 댁 부인이 갖다 주시던데요." 나는 아차 싶었다. 그 운전기사는 내가 특별히 부탁해 커피를 갖다 준 것으로 믿은 모양이었다. 나는 속으로 흐뭇하게 생각하면서도 그 집 주부의 놀랍도록 세심한 배려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하고 함께 이야기하면서 어느새 밖에 있는 운전기사 생각까지 했다니. 겉으로만 반긴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사소한 데까지 마음을 쓰는 그 주부의 섬세함은 오래도록 내 마음을 훈훈하게 하였다. "오늘 기분 좋겠수." 운전기사에게 말을 건네니 그도 내가 부탁한 커피가 아님을 눈치챘는지 이렇게 말했다. "정말 흔한 일이 아니죠." 그 후 나는 커피 잔을 들 때마다 그 여인을 마음에 떠올리고 마음 흐뭇함을 느끼곤 한다. 아마 운전기사도 그러하리라. (연세대 여학생 처장)
Board 삶 속 글 2020.06.02 風文 R 1128
기림비 2 '(위안부)기림비’는 미국과 일본, 우리나라에 설치되어 있다. 국회가 밝힌 국내 ‘기림비’를 찾아보니 ‘평화비’(주한 일본대사관 앞), ‘정의비’(正義-, 통영시 남망산조각공원), ‘해원비’(解寃-, 공주 영명고등학교) 등으로 새겨진 이름이 각기 달랐다. 미국 뉴욕과 뉴저지, 캘리포니아에 세워진 조형물에는 ‘위안부’(Comfort Women), ‘성노예’(Sexual Slavery), ‘~추모하며’(In Memory)라는 표현이 등장할 뿐 ‘기림비’라는 명칭은 확인할 수 없다. “‘위안부’나 ‘위안부의 넋’을 ‘기리는 것’이 말이 되는가. ‘뛰어난 업적이나 바람직한 정신, 위대한 사람을 추어서 말하다’의 뜻인 ‘기리다’와 ‘위안부’는 어울리지 않는다. ‘한중비’(恨中碑)라 하는 건 어떨까.” 국립국어원에 들어온 민원 내용이다. 이 얘기를 듣고 한국어문기자협회가 전문가에게 의견을 물었다. 돌아온 답은 한결같았다. “‘(위안부)기림비’ 명칭 검토 민원은 일리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추념비’, ‘불망비’가 ‘기림비’를 대신할 명칭으로 제시되었다. ‘추모비’는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기에 생존해 계신 ‘위안부’ 할머니를 고려하면 적절하지 않은 명칭이어서, ‘물망비’(勿忘-)는 물망초의 꽃말 ‘나를 잊지 마세요’를 떠올리게 하지만 낯설다는 이유로 제외하였다. ‘추념비’는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뜻이 담긴 명칭이다. ‘불망비’(不忘-)는 ‘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사실을 적어 세우는 비석’으로 사전에 올라 있는 말이다. 학생들은 왜 ‘해원비’라 했을까. “‘위안부’를 기린다는 말은 얼토당토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학생 회의를 통해 ‘(위안부 할머니의) 원한을 풀어드리는 비석’이라는 명칭으로 결정했다.” 공주시 청소년기자단이 누리집에 올린 내용이다. 학생들의 뜻이 갸륵하다. ……………………………………………………………………………………………………………… 오른쪽 “‘오른쪽’을 제 나름의 생각으로 설명하라.” 이번 학기말 시험 문제의 하나다. ‘정답 없는 문제’의 답은 참으로 기발했다. ‘운전석에서 조수석 연인과 손잡을 때 내미는 방향’, ‘결혼반지 끼는 반대 손 쪽’이라 밝힌 학생은 한창 연애 중인 듯했다. ‘컴퓨터 자판에서 한글 모음이 있는 쪽’, ‘컴퓨터 화면에서 창 닫기(x)가 있는 방향’, ‘마우스에서 설정이 목적인 버튼이 있는 쪽’은 펜보다 자판에 익숙한 세대임을 드러낸다. ‘지도를 정면으로 바라보았을 때 독도가 있는 쪽’은 ‘애국심’ 투철한 학생, ‘남성복의 단추가 달려 있는 쪽’은 의상디자인학과 학생, ‘자음 ㄷ의 열려 있는 쪽’은 국문과 학생, ‘피아노 건반의 음역대가 높아지는 방향’은 음대생, ‘도다리 주둥이를 마주보았을 때 눈이 쏠려 있는 방향’은 횟집 딸? 아무러면, 또 아니면 어떤가. 골똘히 말뜻을 새기려는 듯 초롱초롱한 눈빛, 그것으로 되었다. 오른쪽 <표준국어대사전>은 ‘오른쪽’을 ‘북쪽을 향하였을 때의 동쪽과 같은 쪽’으로 설명한다. ‘오른손 방향’(한+ 국어사전)으로 싱겁게 풀이한 것도 있지만 국어사전 대부분과 북한의 <조선말대사전>도 뜻풀이는 같다. 영어권 사전의 뜻풀이 ‘북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동쪽’처럼 동서남북에 기대어 설명하는 방법은 동서를 가리지 않는다. 옛날 국어사전은 어땠을까. ‘사람이 동쪽으로 향하여 남쪽이 되는 곳’(조선어사전, 1946년), ‘동쪽으로 향했을 때 남쪽과 같게 되는 편’(신찬국어대사전, 1963년)처럼 ‘동쪽’이었다. ‘동쪽’이 ‘북쪽’으로 바뀐 것은 네 방위를 ‘북남동서’로 부르는 서구 문화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숫자 10의, 0이 있는 쪽’. 일본 영화 <행복한 사전>에 나오는 ‘오른쪽’의 정의는 신선하다. 방위를 알 수 없어도, 문화가 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다. 소설가 김훈은 ‘언어 존재의 목적은 소통’이라 했다. 소통은 말뜻의 제대로 된 정의와 이해에서 비롯한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평범한 행복 삶의 보람 - 박충희 6월이면 생각이 난다. 10년 전 어느 날 나는 군청 공보실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사기를 가지고 어느 농촌을 찾아갔다. 그곳은 면에서 8킬로미터나 떨어진 산골이었다. 연일 야근 근무로 몸도 피로하고 날씨도 덥고 해서 그냥 면 소재지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말까 했으나, 면장님이 직접 걸망을 만들어 영사기를 짊어지시기에 나도 하는 수 없이 녹음기를 어깨에 메고 구슬땀을 흘리며 뒤쫓아갔다. 막상 가보니 영사기를 놓을 만한 테이블 하나 구할 수도 없어, 나의 불평은 더욱 심했다. 하는 수 없이 우리 일행은 마을 뒷산으로 올라갔다. 어느 묘 앞 상석에다 영사기를 놓고 스크린을 여기에 맞추어 치는 수밖에 없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큰 잔치나 난 듯이 뒷산으로 모여들었다. 그런 대로 영화를 끝내고 모든 기계를 정리하다 문득 영사기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웬일인지 머리가 하얀 노인 한 분이 영사기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울고 계시지 않은가. 내가 그곳으로 가서 물었다. "할아버지, 좋은 구경하시고 왜 이렇게 울고 계십니까?" 할아버지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여보게, 이 조그마한 통 안에 무엇이 이렇게도 많이 들었소. 산과 들도 나오고 자동차도 사람도 수없이 나오니, 그 얼마나 신기한 것이오. 만일 내가 어제 죽었다면 어떻게 이런 것들을 구경했겠소? 내 생전에 이런 신기한 것은 처음 보았기에 나 스스로가 오늘까지 살아온 것이 기뻐서 울었소." 그 노인은 나이가 칠십도 넘어 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순간 모든 피로가 일시에 사라졌다. 우리 나라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고 뉘우쳐졌다. 나는 산을 내려오며 곰곰이 생각했다. 오늘에야말로 나는 삶의 보람을 가장 크게 느낀 것이라고. 그 노인은 지금은 고인이 되었겠지만, 만일 저승이 있다면 "나는 영사기를 보고 왔다"고 자랑할 것이다. (충북 옥천 문화원장)
Board 삶 속 글 2020.06.01 風文 R 1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