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1 가족 소리 없는 웃음 터진 날 - 김윤덕 영화는 오늘 아침 책가방에 사회, 산수, 음악책에다 분홍색 부채 하나를 더 챙겨 넣었다. 가을 운동회 때 동네 어른들께 보여 드릴 부채춤 연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아니 아니 틀렸어!' 호랑이 같은 무용 선생님께 야단맞아 가며 한 시간 동안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할 생각을 하니, 영화는 아침부터 몸에 땀이 차는 것 같았다. "우아와... 우아... 우우." 책가방을 등에 지고 문을 나서는데, 엄마가 뭐라고 웅얼거리며 손짓을 하셨다. '아참, 도시락!' 영화는 말 못하는 엄마의 표정과 손짓을 보면 엄마가 뭐라고 하시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영화네 집은 영화만 빼고 나머지 여섯 식구가 말을 못한다. 태어날 때부터 말을 못하셨다는 아빠(양선우 씨, 42세)와 엄마(민순식 씨, 40세)는, 둘째 영화를 낳았을 때 아기의 귀와 입이 트인 것을 보고 부푼 마음에 내리 삼남매를 더 낳았는데, 불행히도 셋 다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영화네 집을 벙어리네라고 부른다. 그 소리에 금세 기가 죽는 영화는 '우리 아빠 엄마는 왜 저런 사람들일까?' 하고 화가 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평생을 말 못하고 살아가는 부모님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에게 "안녕 안녕" 하고 손을 흔든 영화는 동네 어귀를 향해 걸어 나왔다. 영화는 집에서 2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학교를 걸어서 다닌다. 맨다리에 때가 탄 반바지를 입고 터덜터덜 걸어 가는 영화는 꼭 선머슴 같다. 걷다가 심심해서 영화는 나무에 붙어 있는 매미를 잡아 손으로 꼭 쥐고 학교까지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걸어갔다. 학교에는 임진왜란 전에 심어졌다는 450년 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운동장 한 구석에 버티고 서 있는데, 나무가 만들어 준 넓다란 그늘 아래서 여자 아이들은 맨발로 곧잘 고무줄 놀이를 했다. 영화는 오늘 산수 시간에 큰 수를 숫자로 나타내는 법을 배웠다. "0이 여덟 개면 억이에요. 그럼 30,000,000,000은?" "3백억이요!" 선생님의 물음에 아이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3백억? 대체 그 숫자는 얼마나 큰 것일까, 100원짜리 동전이 몇 개 있어야 3백억이 되는 거지? 공책에 동그라미를 부지런히 그리다, 영화는 문득 제 저금통장에 씌어진 다섯 자리 숫자가 생각났다. 35,200. 종례 시간이 끝나고 담임 선생님이 영화를 교무실로 오라고 하셨다. 새 학기 가정방문 때문에 그러시나, 해서 영화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영화에게 전혀 뜻밖의 소식을 저해 주셨다. 한 달 전 영화는 저축에 관한 글을 하나 써 낸 적이 있는데, 그 글이 서울까지 올라가서 전체 대상에 뽑혔다는 것이었다. 곁에 계시던 선생님들이 "영화 좋겠네" 하시며 벙글벙글 웃어 주셨다. '내가 그때 무슨 이야기를 썼었지? 맞아, 아빠의 저금통장 이야기!' 영화네 집에는 두 개의 저금통장이 있다. 하나는 아빠 것이고 또 하나는 영화의 것이다. 아빠는 석회 공장에 나가 일을 해주고 하루에 1만 5천 원을 받아 오시는데, 그 돈을 조금씩 쪼개 두었다가 월말이면 우체국에 가서 저금을 하신다. 그렇게 3년 동안 부어 온 적금이 지난 3월 만기가 되어 아빠에게 110만 원이라는 목돈이 생겼다. 아빠는 엄마와 상의하여 괴산 장날 암송아지 한 마리를 사오셨다. 영화네 식구들을 닮아 눈망울이 새까만 송아지는 영화네 집에서 가장 큰 재산이다. 아빠는 또 얼마 전에 3년짜리 체신 적금을 하나 더 드셨다. 이번에는 그 돈을 모아 충주 농아학교에 있는 영모 오빠(14세)와 옥화(8세)에게 특수 보청기를 사주실 거라고 하셨다. 보청기는 당장에 필요했지만, 하나에 50만 원이나 하는 보청기는 하루벌이로 먹고 사는 영화네 집 형편에 벅찼다. 영화는 식구들을 위해 열심히 저축하시는 아빠가 참 고마웠다. 영화에게도 통장이 하나 있다. 통역(?)을 하러 아빠를 따라 우체국에 다녔는데 그곳에 있는 언니가 하나 만들어 준 것이다. 통장이 생기고 나서 영화는 버스도 안 타고, 아이스크림 가게를 지날 때도 눈을 꼭 감았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이 3만 5천 2백 원. 영화는 조금씩 불어 가는 아빠의 통장과 제 통장이 식구들의 희망을 두 배로 불어나게 해준다는 이야기를 글로 썼다가 이번엔 상을 탄 것이었다. 집과는 반대쪽으로 2킬로미터쯤 걸어가면 아빠가 일하시는 하얀 석회 공장이 나온다. 영화의 아빠는 그곳에서 시멘트 포대를 트럭에 실어 나르는 일을 하는데, 영화는 무거워 보이는 시멘트 포대를 한 번에 번쩍번쩍 들어 옮기는 아빠의 모습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하얀 석회가루가 온몸에 묻어 아빠는 마치 눈사람 같았다. 공장 문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하얀 땅바닥에 돌멩이로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는 영화에게 아빠는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고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내셨다. 영화의 자랑을 듣고 아빠는 정말 아이스크림을 한 개 사주셨다. 하지만 아빠는 영화의 말을 잘 알아듣지는 못하시는 모양이었다.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며 발을 동동 구르던 영화는, 아빠가 초등학교를 못 다년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네 집은 새 집이다. 돈이 많아서 새로 지은 집이 아니라, 지난해 홍수로 집이 털썩 내려앉아 동네 사람들이 다시 지어 준 것이다. 나라에서 얼마 보태 주고 남의 돈도 빌리고 해서 다시 집을 지었는데, 영화 엄마는 빚 갚을 길이 막막한지 요사이 한숨이 부쩍 늘었다. 영화는 전보다 더 좋은 집에 사는데도 엄마는 별로 즐거워하는 것 같지 않아 이상했다. 하지만 밭에서 썩어 가는 고추 때문에 엄마가 걱정하신다는 것은 영화도 알고 있다. 남의 땅을 빌려 부치는 형편에 그 흔한 햇볕은 여름내 내리쪼여 주질 않아 고추들이 시들시들 썩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는 아빠와 자주 다투셨다. 엄마의 걱정을 모를 리 없는 아빠지만 속이 상하면 하루 번 돈으로 몽땅 술을 드시고 오는 날도 있는데, 그런 날이면 두 분은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마루에 나가 싸우곤 하셨다. 그러면 영화는 흥모(6세)와 연화(4세)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숨죽이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엄마의 얼굴에서도 모처럼 웃음꽃이 피어났다. 아주 오랜만에 고개를 내민 초가을의 햇살만큼이나 기쁜 소식을 딸아이가 안겨 주었으므로. 영화는 이번에 상금으로 50만 원을 타면, 그 돈을 모두 아빠의 저금통장에 넣기로 했다. 상금은 아빠의 고마운 저금통장 때문에 받은 것이니까. 그러면 오빠와 동생의 보청기를 1년 더 빨리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저녁에는 엄마가 맛있는 소시지 반찬을 만들어 주셨다. 영화가 큰 상을 탄다고 엄마는 소시지에 달걀을 씌워 기름에 자글자글 부쳐 주셨다. 소시지를 한 입 물다 엄마랑 눈이 마주친 영화가 히쭉 웃었다. 아빠도 조용히 미소를 지으셨다. 영화네 집 앉은뱅이 밥상 위로 소리 없는 웃음이 번져 갔다. (샘터 기자)
Board 삶 속 글 2020.05.24 風文 R 1205
경텃절몽구리아들 지난번 글감으로 삼았던 프로그램 누리집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남자 출연자 넷을 첫째(아들), 둘째, 셋째, 넷째로 소개하고 ‘일녀’인 여자 출연자는 ‘고명딸’이라 했다. ‘외동딸’과 ‘고명딸’의 본뜻과 말맛 차이를 밝혀 놓은 것이다. “‘(음식의)고명+딸’ 형태인 것을 이참에 알았다”는 독자도 여럿 만났다. 내친김에 사전 속의 ‘딸’과 ‘아들’을 찾아 나섰다. 그에 담긴 뜻을 더듬고 어원을 들추어 보니 사전 속의 ‘딸’은 어휘 수, 담긴 뜻에서 ‘아들’보다 더 후한 대접을 받았다. ‘알딸딸’, ‘도리깨아들’(도리깻열)처럼 사람과 관계없는 표현을 빼고 헤아려보니 ‘-아들’(33개)보다 ‘-딸’(44개)이 붙은 말이 많았다.(표준국어대사전) 좋은 뜻을 담아 ‘첫딸’을 이르는 ‘복딸’(福-)은 있지만 ‘복아들’은 없었다. ‘딸’에는 ‘귀동딸’(貴童-), ‘금딸’(금같이 귀한 딸, 북한어)같이 입꼬리 올라가게 하는 단어가 눈에 띄지만 ‘아들’은 달랐다. ‘실없다’(實--)가 붙으면 ‘시러베아들’(실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 되고 ‘홀’(짝이 없어 혼자뿐인)이 얹혀지면 ‘호래아들’(후레아들)이 된다. 배운 데 없이 제풀로 막되게 자라 교양이나 버릇이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아버지와 딸(아들)을 아우르는 말은 ‘아비-’가 아닌 ‘어비딸’(어비아들), 어머니와 딸(아들)을 이르는 표현은 ‘어미-’가 아닌 ‘어이딸’(어이아들)이다. 아버지(어머니)의 어원이 ‘어비’(어이)인 까닭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울러 이르는 말은 그래서 ‘어버이’다.(한민족 언어검색, 세종계획 누리집) ‘-아들’ 가운데 익살맞은 표현이 눈에 띄었다. ‘경텃절몽구리아들’이 그것이다. ‘경텃절’은 ‘정토(淨土)의 절’이 변한 말이고 ‘몽구리’는 ‘바싹 깎은 머리, 중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니 ‘머리를 빡빡 깎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 모이 새가 날아든다. 흔히 산까치라 부르는 어치가 첫 손님이었다. 삼십 센티미터쯤 되는 듬직한 몸집에 검은색 줄무늬로 파란색 날개 덧깃을 치장한 멋진 녀석이다. 어치가 다녀간 뒤 온갖 잡새, 아니 여러 새들이 찾아온다. 박새, 쇠박새, 곤줄박이, 동고비 등이다. 일일이 이름 밝혀 불러주기 어려울 만큼 많은 새들이 들락거리기 시작한 지 보름이 되었다. 친구 따라 찾아온 녀석, 큰 새 눈치 보다 포르르 날아와 한입만 물고 날아가는 조막만한 녀석들…. 단골도 제법 생긴 듯하다. 큰길 뒤편 아파트에 새가 날아드는 까닭은 서재 베란다에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버드피더’ 덕분이다. 먹잇감 찾기 어려운 겨울철 이것은 새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오아시스이리라. ‘버드피더’(bird feeder)라 했지만 거창한 것은 아니다. 에어컨 실외기 위에 나뭇가지와 꽃다발 펼쳐놓고 그 위에 땅콩, 해바라기 씨 따위를 잘게 부수어 놓은 게 다이다. 눈 좋은 새들의 눈길 끌기 위해 붉은빛의 연시와 감귤도 내어놓았다. 해 뜰 녘부터 새가 찾아드는 것을 보니 효과 만점이다. 손 뻗으면 닿을 창가에서 새들이 ‘먹이’를 콕콕 쪼아 뾰족한 ‘입’으로 집어삼킨다. 형형색색 고운 각양각색의 ‘꼬리’는 그 모양으로 새 종류를 가리게 한다. 아주 가벼운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하는 말인 ‘새털’의 차이도 그렇다. 날짐승의 부위 이름은 길짐승의 그것과 구별해 부른다. 새의 ‘먹이’와 ‘입’을 ‘모이’와 ‘부리’처럼 따로 이르는 것이다. 이렇듯 새의 ‘꼬리’는 ‘꽁지’로, ‘새털’은 ‘깃털’로 ‘콕 찍어’ 가리키는 게 더 분명한 표현이다. 이런 까닭에 ‘버드피더’는 ‘새먹이통’보다 ‘새모이통’, 넓적한 곳에 펼쳐놓은 것이라면 ‘새모이대(-臺)’라 하면 되겠다. 새 부위 이름을 따져보다 새롭게 안 것이 있다. 새 다리의 정강이뼈와 발가락 사이를 ‘부척’이라 한다는 것, 목의 앞쪽은 ‘멱’이라 한다는 것이다. ‘돼지 멱따는 소리’의 멱이 바로 그것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1 가족 혼자 우셨던 나의 아버지 - 최현숙 어제 오후, 무거운 우편 행낭으로 어깨가 기울어질 것 같은 집배원 아저씨가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15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뒷모습과 너무나 닮은 모습이어서 나는 몇 번이나 눈길을 보냈다. 아버지도 한때 집배원 생활을 하신 적이 있었다. 어깨를 내리누르는 우편 행낭의 무게만큼이나 당신이 겪으셨던 삶의 무게는 보통 사람과 달랐다. 말수는 적으셨지만 아버지는 병치레가 잦았던 어머니와 다섯 딸들을 언제나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런 저런 병치레가 잦았다. 늑막염, 폐결핵, 심장병......그러다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마침내 어머니는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자기 세계 속에 갇힌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가 정신 이상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동안 어린 동생들은 마당 귀퉁이나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의 곁에 다가갔다가는 그 억센 손아귀에 잡혀 몸을 짓눌리게 될 것 같은 공포 때문이었으리라. 어머니가 제풀에 지쳐 발작을 그만둘 때까지 아버지와 나는 어머니를 힘껏 부둥켜 안고 있었다. 땀으로 뒤범벅이 된 어머니의 몸이 걸레 뭉치처럼 지쳐 어슴푸레 잠든 기척이면, 아버지는 안주도 없이 홀로 소주잔을 기울이셨다. 눈자위가 붉어진 아버지의 두 눈에 어리는 눈물을 보는 순간 난 참았던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 냈다. 주변 사람들의 곱지 않는 시선 속에 맏딸인 나와 동생들이 마음에 상처나 입지 않을까 아버지는 늘 염려하셨다. "현숙아, 마음 굳세게 먹어라. 동생들 잘 돌보고...... 나는 네가 있어서 마음 든든하다. 그래도 엄마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너희들에게 낫지 않겠니?" 어린 마음에 차라리, 늘 아프고 정신없는 엄마라면 죽고 없는 게 나으리라는 생각도 했던 내 마음을 아버지께선 미리 읽어 내셨던 것일까? 아버지는 더 이상의 말씀을 줄이시고, 내 등만 두드려 주셨다. 어머니가 발병중에 있을 때, 아버지는 월급 봉투를 내게 맡기시며 대견해 하셨다. 난 어머니 대신 밥을 짓고, 밑반찬을 만들고, 아침마다 도시락을 네 개씩 싸고, 막내 동생 기저귀 빨래까지 하면서 학교를 다녔지만 내 처지를 비관하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내게 보여 주신 신뢰감 때문이었다. 어쩌면 병든 배우자로 인해 깨져 버렸을지도 모를 가정이었지만, 움켜잡고 다시 일으켜 세우려 애쓴 아버지의 노력은 인간에 대한 책임이며 믿음 그 자체였다. 어머니가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어머니로서 제 구실을 못했다고 해서 아버지로부터 무시당하거나 학대받는 모습을 나는 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장파열로 갑자기 돌아가신 후, 우리 가족의 삶은 전보다 더 피폐해졌다. 하지만 우리 다섯 딸들이 지금까지 올곧게 잘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베푸신 인정, 희생, 책임, 사랑을 배우며 자랐기 때문이다. (강릉 YMCA 글짓기 강사)
Board 삶 속 글 2020.05.23 風文 R 1117
Board 고사성어 2020.05.23 風文 R 1467
청마 고독은 욕되지 않으다/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겨울의 숲으로 오니/ 그렇게 요조(窈窕)하던 빛깔도/ 설레이던 몸짓들도/ 깡그리 거두어간 기술사(奇術師)의 모자(帽子).// 앙상한 공허만이/ 먼 한천(寒天)의 끝까지 잇닿아 있어/ 차라리/ 마음 고독한 자의 거닐기에 좋아라.//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내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에/ 무쇠 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 들어보라./ 이 거짓의 거리에서 물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새해 이 자리를 시로 열었다. “그때 그 시가 뭐였지?” 미국에서 사업하는 오랜 벗이 건넨 한마디 때문이다. 학창 시절 펜으로 휘갈겨 써준, 가슴 뛰게 했던 시 한 수를 이제 와 새삼 이 시절에 떠올린 까닭은 캐묻지 않았다. 그저, 벗 앞에서 다시 읊게 된 것이 고마웠을 뿐. 시에 담긴 뜻 따위를 분석하는 짓은 주제넘은 일이니 시어 몇 개만 짚어보자. ‘요조하다’는 ‘여자의 행동이 얌전하고 정숙하다’, ‘기술사’는 ‘기술을 가지고 있거나 부리는 사람’, ‘한천’은 ‘겨울의 차가운 하늘’을 뜻한다. ‘에이다’는 ‘에다’(칼 따위로 도려내듯 베다)의 피동사, ‘옥’은 곧 ‘감옥’, ‘연자’는 ‘연자매(소나 말이 돌리는 큰 맷돌) 위에 있는 굴대 모양의 맷돌’을 가리키고 ‘치레하다’는 ‘실속 이상으로 꾸미어 드러내다’이다.(표준국어대사전) 시가 발표된 때는 ‘3·15 부정선거’로 시끄럽던 1960년, 제목은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작가는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회자되는 ‘깃발’을 쓴 유치환, 그의 호는 청마(靑馬)이다. ……………………………………………………………………………………………………………… 고명딸 새해 들어 선보인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첩첩산중의 주인공을 찾아 연예인 몇이 자식 노릇을 한다는 설정이다. ‘신개념 리얼리티 관찰 프로그램’을 내세운 이 제작물의 출연자는 단출했다. 외딴곳에 사는 노부부와 자식뻘의 남자 넷, 여자 하나. 거기에 개 몇 마리가 양념처럼 등장했다. 첫 방송치고는 시청률이 나쁘지 않았던 이 프로그램에 고개 갸웃거리게 한 대목이 나왔다. ‘4남1녀의 외동딸을 소개한다’는 자막이다. ‘아들 많은 집의 외딸’은 ‘고명딸’이고 ‘외동딸’은 무남독녀를 이르는 말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확인해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외동딸’은 ‘외동아들’(외아들)처럼 ‘외딸’을 귀엽게 이르는 말이다. 사전은 ‘외딸’을 ‘다른 자식 없이 단 하나뿐인 딸’로 설명하면서 다음 뜻으로 ‘다른 여자 동기 없이 하나뿐인 딸(독녀)’로 풀이하고 있다. 아울러 뜻풀이 뒤에는 참고 어휘로 ‘고명딸’을 제시하고 있다. 사전의 두 번째 뜻풀이에 따르면 ‘4남1녀의 외동딸’이 틀린 표현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이 경우엔 ‘고명딸’이라 콕 찍어 표현하는 게 낫겠다. ‘고명딸’이라 하는 것이 뜻을 분명하게 할뿐더러, 이 말의 어원을 밝혀보면 ‘외동딸’보다 한결 살갑게 다가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고명딸’은 ‘고명+딸’로 분석된다. ‘고명’은 ‘모양과 빛깔을 돋보이게 하고 맛을 더하기 위해 음식 위에 얹거나 뿌리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고명딸’은 음식을 만들 때 주재료 위에 예쁘게 장식하는 고명처럼 아들만 있는 집에 예쁘게 있는 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명딸’을 전남과 평안 지방에서 ‘양념딸’이라고 하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고명딸’은 고명처럼 예쁜 딸이란 뜻이다.(21세기 세종계획 누리집) ‘고명’에 기대어 나온 ‘고명아들’이 없는 까닭은 그래서일 것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1 가족 너거 아부지가? - 박선애 나는 1987년 가을에 교원 발령을 받아 오지의 섬 학교에서 2년 반을 보내고 1981년 봄, 포항 인근의 읍 소재지에 새로 부임을 했다. 막연한 불안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를 안고 나는 함께 발령 받은 백 선생과 포항에 도착했다. 우리는 좀더 넓은 방에서 살아보자는 생각에서 아침밥도 거른 채 새벽부터 방을 구하러 돌아다녔다. 2월 말이지만 겨울이 그 끝자락을 드리우고 있던 터라 날이 몹시 추웠다. 어중간한 옷차림의 우리 두 사람은 춥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배까지 고팠다. 하지만 백 선생이나 나나 배부른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팔짱을 끼고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 다녔다. 여고 시절 수학 여행 때말고는 와본 적이 없는 곳이라서 포항은 완전히 생소한 곳이었다. 누구 하나 아는 사람 없는 곳에서 그날 나는 아주 눈에 익은, 그러면서도 너무 낯선 듯한 사람을 만났다. 다름아닌 아버지였다. 집에서 한 밥상에서 같이 밥 먹고 전방 2미터 안에서만 보던 아버지를 포항이라는 낯선 곳에서 드라마같이 만나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새벽 시간을 이용해 포항에 수금하러 온 아버지는 더운 국물 한 모금 못 드셨는지 몹시 추워 보였다. 도저히 우리 아버지라고 여기고 싶지 않은 초라한 모습, 낡은 잠바 사이로 어깨를 움츠린 아버지는 내가 평생을 다 바쳐 모셔도 아깝지 않을 불쌍한 모습이었다. 내가 아버지께도 내 친구에게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엉거주춤하는데 친구가 물었다. "너거 아부지가?" 친구의 말에 아버지는 겹겹이 쌍꺼풀 진 송아지 눈 같은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시며 말씀하셨다. "아이고, 이 불쌍한 가시나야! 니 뭐하로 이 춥은데 이 꼴로 다니노? 방 구해 돌라카지 니가 뭐할라꼬 밥도 안 묵꼬 이 춥은데 어설프게 다니노." 나와 아버지는 서로를 불쌍하게 바라보고는 그날 그렇게 헤어졌다. 훗날 나는 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그날 가슴 아파 점심도 안 잡수시고 우울해 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때 국밥이라도 같이 먹자고 붙잡는 손을 창피하다고, 우리 둘이 방을 구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린 것이 내내 마음 아팠다. 그날 함께 따뜻한 국밥을 먹었다면 아버지도 추운 마음을 녹일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아버지 가슴의 여러 구멍 중에 또 한 구멍으로 바람이 들도록 하고서는 아버지를 영원히 잃어버렸다. 그때 친구 몰래 터미널 화장실에서 흘렸던 그 눈물의 몇 배가 아버지 가슴을 적셨을까 생각하니 나는 지금도 눈물이 난다. 아버지, 보고 싶어요. (포항 두호초등학교 교사)
Board 삶 속 글 2020.05.22 風文 R 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