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1 가족 꼴찌 하려는 달리기 - 조승호 해마다 두 번씩 찾아오는 전주 교도소 체육 대회. 특히 지난 가을의 체육 대회는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지난 여름 부임한 교도소장의 배려로 20년 이상 복역한 수형자와 2급 이상 우량 수형자의 가족이 초청되었기 때문이다. 예정 시간이 조금 넘어 여러 종교 교화위원들과 초청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장 행렬을 선두로 대회의 막이 올랐다. 이미 지난 보름 동안 예선을 치른 핸드볼, 족구, 배구 등의 구기 종목과 당일의 씨름, 줄다리기, 달리기 등의 경기를 통해 십여 개 취업장의 각축전과 열띤 응원전이 벌어져 흡사 초등학교 운동회를 방불케 했다. 특히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오전 경기 끝 무렵에 열린 효도 관광 달리기였다. 부모님을 등에 업고 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 이 경기는 효도 관광이라는 이름과 경기 내용이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하늘에 날려보낸 비둘기와 오색 풍선으로 한껏 고조되었던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진 것은 이 경기에 참가한 재소자와 가족이 출발선상에 모이면서부터였다. 화약총 신호로 경기가 시작됐지만 정작 달리는 주자는 하나도 없었다. 재소자 아들의 등에 업혀 쌓인 얘기를 하는 아버지, 아들의 눈물을 닦아 주느라 자신의 눈물을 미처 훔치지 못하는 어머니, 그리고 여러 다른 재소자들이 안쓰러워 손을 흔드는 어머니...... 이들이 아들의 등에 업혀 운동장을 천천히 돌 때 그 행렬을 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급기야 한 재소자가 "어머니,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내셨어요. 백 날을......" 하며 노래를 부르자, 그 광경을 지켜보던 재소자들까지 모두 서로의 시선을 피한 채 허공만을 올려다보았다. 무기수, 더러는 10년 이상을 죄수로 있으면서 철창 사이로만 얼굴을 대할 수밖에 없었던 나날들. 그들은 잠시나마 아버지, 어머니 앞에서 맘껏 울 수 있는 자유를 누린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재소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주 교도소 1763 고시반)
Board 삶 속 글 2020.05.10 風文 R 1202
풋- “‘풋닭’은 채 자라지 못한 닭이고, ‘닭곰’은 삼계탕의 북한말이다. ‘풋닭곰’은 북한에서 영계백숙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난주 이 자리에 쓴 글을 본 동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갈래였다. 피디 누구는 “사전에서 ‘닭곰’을 찾아보니 ‘닭을 고아서 만든 국’, ‘곰’은 ‘고기나 생선을 진한 국물이 나오도록 푹 삶은 국’이라 한다. 그렇다면 ‘닭곰’은 (삼계탕이 아니라) ‘닭곰탕’ 아닌가?” 물었다. 북한에 가 본 경험이 없으니 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답할 거리가 나왔다. <북한어휘사전>의 설명이다. “남한에서는 ‘닭곰’ 하면 닭을 고아서 만든 국을 떠올린다. 그러나 북한에서 말하는 ‘닭곰’은 삼계탕이다. 남한에서 말하는 닭곰이나 닭곰탕을 북한 사람들은 흔히 ‘닭고기국’이라고 한다. 북한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북한에서는 ‘닭곰탕’이라는 말을 전혀 쓰지 않으며 조선말대사전에도 등재돼 있지 않다.” 서른 즈음의 동료 아나운서는 “‘풋닭’의 말맛이 풋풋해서 좋다. 풋고추가 익으면 빨갛게 되는 걸 모르고 ‘풋고추와 붉은 고추는 다른 종자’로 아는 사람도 꽤 있는 세상이니 접두사 ‘풋-’이 붙은 말을 찾아 되새겨주면 좋겠다”고 청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풋고추는 ‘아직 익지 않은’ 고추 아닌가. ‘풋’은 풋곡식, 풋과일, 풋김치, 풋나물, 풋내, 풋마늘, 풋사과 따위나 풋눈(초겨울에 들어서 조금 내린 눈)에서처럼 ‘처음 나온’ 또는 ‘덜 익은’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이다. 여기서 파생되어 나온 쓰임도 있다. 풋기운(아직 힘이 몸에 깊게 배지 못한 젊은 사람의 기운), 풋내기, 풋돈(얼마 되지 않은 적은 돈), 풋되다(어리고 경험이나 분별이 적다), 풋사랑, 풋바둑(서투른 바둑 솜씨), 풋술(맛도 모르면서 마시는 술=생술), 풋심(어설프게 내는 힘), 풋잠(잠든 지 얼마 안 되어 깊이 들지 못한 잠) 등으로 이때 ‘풋-’은 ‘미숙한’, ‘깊지 않은’의 뜻이다. ……………………………………………………………………………………………………………… ‘열’(10) ① 방송에 뜻을 둔 학생 몇 명과 ‘8888 모임’을 했다. 달력을 보니 왠지 8이 유난히 눈에 들어와 만든 이른바 ‘빠빠빠빠 모임’이다. 8이 겹친 지난주 목요일 저녁 8시8분에 8의 기운을 제대로 받으려 장소도 중국집으로 잡았다. 발음이 ‘발’(發)의 ‘파’와 비슷해서 중국인들이 좋아한다는 숫자 ‘팔’(八). 학생들이 세운 목표가 꽃처럼 피어나기 바라는 선생의 마음을 담아 그렇게 했다면 지나친 말일까. 어쨌든 그래서인지 ‘8888 모임’에서는 웃음꽃, 이야기꽃이 만발했다. 이야기꽃의 한 송이는 ‘숫자놀이’로 피어났다. ‘2 4 5 열 십 만 두 세 네 석 넉’. ‘숫자놀이’의 시작을 알린 학생이 시처럼 읊은 내용이다. “차림표 2쪽 4번째, 5번째 메뉴는 한 접시에 ‘열’개씩 나오는 ‘만두’이니 각자 ‘세’ 개나 ‘네’ 개씩 먹으면 된다. ‘석’ 점, ‘넉’ 점씩 먹는 것도 같은 표현이다” 이런 말이 아니다. 조선의 역대 왕을 외기 위해 동요 ‘산토끼’ 가락 따위에 맞춰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으로 읊던 것과 같은 것이다. 길게 발음해야 하는 수를 외우려 같은 말을 되뇌는 학생들이 기특했지만 이에 낀 고춧가루처럼 마뜩잖은 정보가 하나 있었다. ‘열’[열:]이었다. ‘십’(十)의 토박이말인 ‘열’은 과연 장음인가? 사전은 ‘열’을 ‘아홉에 하나를 더한 수’로 풀이하고 발음 정보를 따로 붙이지 않았다. 장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해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엣센스국어사전> <동아새국어사전>이 그랬다. 전영우가 펴낸 <표준한국어발음사전>도 ‘열’을 단음으로 명시했다. 소리 길이는 물론 높낮이까지 표시하는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도 ‘열’은 단음으로 나온다. 사전 대부분이 ‘열’을 단음으로 표시하고 있으니 학생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끝? 아니다. 간단치 않은 ‘열’의 발음 얘기는 다음주에 이어진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 ‘열’(10) ② ‘열’(10)의 발음은 [열]이다. 최근 사전은 물론 예전에 간행된 <신찬 국어사전>(동아출판사, 1963년) 등과 이은정이 엮은 <표준발음법에 따른 우리말 발음사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발음사전을 보면 그렇다. ‘열’의 장단은 문화방송 아나운서들의 발음 등 여러 정보를 종합할 때 짧은소리다. 따라서 ‘열’은 단음이다, 이렇게 단언하기 전에 짚어볼 게 있다. 어문 규정과 일부 발음사전의 정보, 특정 방송사 아나운서의 소릿값이 이와 다르기 때문이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열’이 장음으로 알려져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열’의 소리 장단을 따지게 된 계기는 ㅎ방송 라디오의 시보였다. ‘열[열:] 시를 알려드립니다’가 귀에 설었다. 근거를 찾으려 탐문해 보니 “‘열’(十)은 긴소리로 발음하면서도 올린 ‘ㅕ’로 발음하지 않는다”(표준발음법 제5항, 해설)는 규정이 있었다. 이에 따르면 ㅎ방송 시보의 [열:]은 규정에 어긋난다. 올린 ‘ㅕ’의 ‘열:’로 발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린 ‘ㅕ’는 무슨 소리인가. 표준발음에서 ‘ㅕ’의 긴소리는 반모음 'y'에 장음 'ㅓ'가 결합된 올린 ‘ㅕ’이다. [현:대], [여:론]의 첫소리 소릿값이다. 숱한 발음 중에 ‘열’만 예외로 다룬 것은 1984년 정신문화연구원이 펴낸 <한국어 표준발음사전>의 일러두기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아홉, 열, 열하나…’의 ‘열’은 (긴소리지만 올린 ‘ㅕ’가 아닌) ‘열:’이다”가 그것이다. 국립국어원의 김세중 박사는 “이 단어에 한해 장음이면서 낮은 ‘ㅕ’로 발음해야 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했고, <한국어의 표준발음과 현실발음> 등을 펴낸 전남대 이진호 교수는 “‘열’의 예전 성조는 거성(높은 소리)이다. 거성은 대체로 짧은소리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열’은 원래 장음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했다. 이제 ‘열’ 발음의 장단 문제를 정리할 때가 되었다.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1 가족 도시락 두 개와 소주 한 병 - 이형구 내가 초등학교 때 그렇게도 우리를 사랑하시던 엄마가 세상을 떠나셨다. 그로부터 얼마 안 지나 아버지마저 우리 형제를 남겨 둔 채 눈을 감으셨다. 기나긴 겨울 밤들은 무척 힘이 들었다. 동생 준구의 울음을 달래기가 가장 힘들었다. 무서워서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잠든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큰아버지가 온양에 살고 계셨지만 어쩌다한 번씩 들릴 뿐, 누구 하나 돌봐 줄 사람이 없었다. 절간 할머니와 옆집 아주머니가 와서 빨래도 해주시고 김치도 담가 주셨다. 4월 22일, 아버지 제사가 다가왔다. 큰아버지는 오지 않으셨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준구와 나는 도시락 두 개를 준하고 아버지께서 평소 즐겨 하시던 소주를 한 병 사 가지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계시는 산소로 갔다. 비가 오고 있었다. 우리는 도시락을 펴놓고 술을 부었다. 절을 하려고 서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우리는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며 엉엉 울었다. (충남 보령군 청라중 3학년) 낙엽 케이크 - 정숙희 결혼 2주년 기념일을 앞둔 크리스마스였다. 그가 제안을 했다. "우리 과천 대공원 가자." '왜요?'하는 내 눈빛에 그가 말했다. "크리스마스인데 먼 여행은 못 떠나도 가까운 데라도 다녀와야지." 그 무렵 그이는 낮에는 현장 기사로, 밤엔 야간 대학 3학년생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새벽 다섯 시 삼십 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출근하고 밤 열두 시가 되어야 집에 오는 생활. 평일에는 물론 휴일에도 숙제 때문에 더 바빠 커다란 상 앞에서 일어날 생각도 못하던 그였다. 그런 그가 그날은 큰마음을 먹었음에 틀림없었다. 그의 제안대로 우린 눈사람처럼 옷을 꽁꽁 챙겨 입힌 한 돌바기 아들을 앞세우고 과천 대공원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나섰다. 캐럴송이 울려 퍼지는 거리와는 달리 대공원은 고요함에 잠겨 있었다. 넓은 벌판은 어제 내린 눈에 잠겨, 보이는 것은 온통 눈천지였다. 남이 밟지 않는 눈 위에 발자국을 새기며 정신없이 아이와 노는 남편의 모습이 이날따라 무척 행복해 보였다. 아이는 흰 눈 위를 뛰어다니며 웃어대고, 남편은 아이를 잡으러 뛰어가고...... 그러더니 저쪽에서 그이는 흰 눈 위에 앉아 있는 내게 소리쳤다. "거기서 기다려. 이쪽으로 오지 말라구." "왜요?" "아, 글쎄... 비밀이 있어." 멀리서 무엇인가 열심히 하는 남편이 보이고 아이는 제 아빠가 하는 모양을 흉내내고 있었다. 드디어 남편이 내게 손짓을 했다. "이리 와 봐. 선물을 줄게." "뭔데요?" 물으며 다가간 내 눈에 쏟아져 들어온 빛무리. 그이는 흰 눈발 위에 색색의 낙엽들을 주워 모아서 글씨를 써놓았다. '축 결혼 2주년!' 낙엽 글씨. 이런 선물은 상상도 못했었다. 그이는 외투를 뒤적이더니 그 위에 호빵 두 개가 담긴 비닐 봉지를 꺼내 놓았다. 성탄을 축하하는 케이크 대신이라며. 흰 눈발 위의 그 선물이 내 눈에 들어온 순간, 입은 웃고 있었지만 내 눈시울이 자꾸 따뜻해져 옴은 왜일까? 그의 가슴속 온기 때문인지 아직도 따뜻한 호빵은 비닐 봉지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이가 말했다. "미안해, 여보. 크리스마스인데 아무것도 못해 줘서 예쁜 선물을 해주고 싶었지만 당신이 주는 하루 용돈 1,500원으론 역부족이야. 하지만 내 마음 알지, 당신." (주부)
Board 삶 속 글 2020.05.09 風文 R 1333
Board 고사성어 2020.05.09 風文 R 1463
백열 남북 문인 교류를 위해 북한에 다녀온 선배가 들려준 ‘전구 시리즈’가 있다. 휘황한 전등으로 빛나는 만찬장에서 들었다며 그가 전한 내용은 대충 이랬다. “북에서는 전구를 불이 들어오는 알, ‘불알’이라고 한다. 형광등은 ‘긴불알’이고, 거기에 꽂혀 있는 점등관은 ‘씨불알’이다. ‘불알’ 여럿으로 만든 것은 ‘떼불알’, 가로등은 ‘선불알’이다….” 하지만 북한 사람 만나서 ‘불알’ 얘기 꺼내면 오해받기 십상이다. 이 얘기는 한자어와 외래어 다듬어 쓰는 북한 언어 정책을 비틀어 지어낸 것일 뿐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우스개가 농담을 넘어 진담처럼 퍼져 있다. 그냥 떠도는 게 아니라 ㄱ 교수(ㅅ스포츠신문 칼럼), ㄱ 논설위원(ㅅ신문)처럼 일부에서는 사실인 양 받아들이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북한에서는 샹들리에를 ‘무리등’(여러 개의 전등알이나 갖가지 모양의 형광등으로 이루어진 큰 조명등)이라 하지만 ‘샨데리야’도 적지 않게 쓰인다. 흔히 ‘스타트전구(램프)’라 하는 점등관(글로스타터)은 북한 사전에 ‘글로우스위치’(glow switch)로 올라 있기도 하다. 표기 방식의 차이일 뿐 북한도 외래어를 제한적으로나마 쓰고 있는 것이다. 남한의 ‘꼬마전구’는 북한에 가면 ‘콩알전구’가 된다. ‘전등알’(전기알), ‘등알’은 전구를 두루 이르는 북한말이다.(표준국어대사전) ‘내년부터 백열전구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듣고 ‘전구 시리즈’를 떠올렸지만 ‘백열전구’에 담긴 뜻도 새겨볼 만하다. ‘백열’(白熱)의 뜻은 ‘물체가 흰빛이 날 만큼 온도가 높음’, ‘최고조로 오른 기운이나 열정’이다.(고려대한국어대사전) ‘백열’은 물리 현상만 가리키는 게 아니라 ‘백열하다’, ‘백열적이다’처럼 인성을 드러낼 때도 쓰는 표현인 것이다. 새 기술에 밀려 백열전구는 사라지지만 그 불빛 아래에서 일하고 바느질하고 공부하던 우리의 백열함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 풋닭곰 올해 중복에 수산시장 나들이를 했다. 모처럼 저녁 함께하자며 불러낸 선배 따라 간 곳은 시장 한구석의 횟집이다. 가게는 허름했지만 여러 해산물이 올라온 상차림은 풍성했다. 푸지게 차려낸 밥상의 주인공은 민어였다. 점심은 구내식당의 삼계탕을 먹고 저녁에는 민어회와 부레, 탕까지 끓여 먹었으니 복달임이란 핑계로 과한 호사를 누린 셈이다. 국어사전은 복달임을 ‘복날에 그해의 더위를 물리치는 뜻으로 고기로 국을 끓여 먹음’으로 좁게 설명하지만, 민속사전은 여기에 ‘…물가를 찾아가 더위를 이기는 일’을 넣어 ‘복놀이’를 포함한 넓은 뜻으로 풀이한다. 복달임 음식 재료로 미꾸라지를 빼놓을 수 없다. 미꾸라지를 넣는 방식에 따라 추탕과 추어탕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통째로 넣는 게 서울식의 추탕이다. 삼복 즈음에 맛과 영양이 정점에 오르는 민어는 부레를 먹어야 제대로 먹은 것이라 한다. 흔히 보신탕이라 부르는 개장국, ‘개’ 대신 쇠고기를 넣은 육개장과 닭고기로 끓인 닭개장 따위도 빼놓을 수 없다. 닭개장이 아직 사전에 오르지 않은 말이어서인지 ‘닭계장’도 제법 쓰이지만 맞지 않는 것이다. 더위에 지친 몸을 추스르게 해주는 복달임 음식의 대표는 뭐니 뭐니 해도 삼계탕이고 계삼탕이다. 계삼탕은 ‘삼계탕을 한방에서 이르는 말’(표준국어대사전)이지만 삼계탕의 원말이기도 하다. 닭고기가 주재료이니 ‘계+(인)삼+탕’이었다가 귀했던 인삼을 앞세운 표현인 삼계탕이 된 것이다. 삼계탕이 신문에 처음 등장한 때는 1963년이다.(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약병아리와 한뜻인 ‘영계’(병아리보다 조금 큰 어린 닭)로 만든 영계백숙은 ‘영’(young)과 무관한 말이다. ‘연계’(軟鷄)가 영계의 원말이다. ‘초여름에 풋닭곰, 삼복에 개장, 초가을에 미꾸라지 국’이란 북한 속담이 있다. ‘풋닭’은 ‘채 다 자라지 못한 닭’(소설어 사전)이고 북한에서는 삼계탕을 ‘닭곰’(북한어휘사전)이라 하니 ‘풋닭곰’은? 그렇다, 영계백숙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1 가족 군내 나는 김치 - 모난돌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집에서 50리 떨어진 중학교에 기차 통학을 하던 때의 일이다. 새벽 다섯 시면 어머니는 신기하게도 내게 줄 밥을 다 지어 놓으시고, 곤해서 계속 자려는 나를 흔들어 깨우시곤 했다. 어느 봄날, 그날도 세수를 하고 밥상을 대했는데 며칠째 억지로 먹고 있는 군내 나는 김치가 또 올라와 있었다. 김치 국물에는 허연 거품이 부글부글 피어 있어 보기만 해도 진저리가 났다. 그래도 나 때문에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억지로나마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금방 지은 밥으로 도시락을 싸면 밥맛이 없다며 뜨거운 김이 빠지길 기다리시더니 조금 뒤에 싸기 시작하셨다. 그때 도시락 반찬을 눈여겨보았더니 지금 먹고 있는 군내 나는 김치가 아닌가. 나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 숟가락을 놓고 가방을 집어 들었다. 왜 그러느냐는 어머니에게 기차 시간이 다되었다고 변명을 하고는 어머니가 그 도시락을 쌀 틈을 안 주려고 얼른 집을 나와 역을 향해 급히 걸었다. 나는 생각했다. '어머니는 내가 반찬 투정하는 줄 아실 거야. 그리곤 조금 섭섭해 하시면서 어쩔 수 없이 도시락을 내려놓으시겠지' 그날따라 내리는 가랑비를 맞으며 500미터쯤 갔을 때였다. 갑자기 뒤쪽 멀리서 애절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다. 돌아보니 어머니가 도시락을 들고 비를 맞으시며 힘겹게 달려오고 계셨다. 나는 그만 눈물이 핑 돌아 그 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다. 반찬 때문에 화를 낸 못난 아들을 어머니는 배 곯리지 않으시려고 저렇게 뛰어오시다니! 나는 말없이 도시락을 받았다. 그리고 목이 아프도록 속으로 울면서 남은 길을 갔다. (회사원)
Board 삶 속 글 2020.05.08 風文 R 1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