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ard 고사성어 2020.07.02 風文 R 2264
문어발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의 웬만한 정보·오락 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는 게 있다. 음식을 먹거나 요리하는 법을 보여주는 방송, 이른바 ‘먹방’이다. 기본 시청률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먹는 정보에 대한 관심은 방송의 것만이 아님을 확인했다. 이 자리에서 오징어의 이모저모를 다룬 뒤 참으로 많은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학계와 수산업계, 국어사전 등이 제각각으로 다루고 있는 오징어 종류의 표준 명칭을 하루빨리 정비해야 한다’, ‘제주도의 반건조 오징어를 준치라고 하는데, 한치와 관계있는 것인가’처럼 명칭에 대한 의견이 많았다. ‘오징어 다리’와 ‘문어발’의 차이를 묻는 이도 있었다. 별생각 없이 말하고 무심히 듣던 연체동물의 다리(발)를 곰곰이 짚어 보았다. 오징어에는 ‘다리’, 문어에는 ‘발’이 붙는 게 자연스러웠다. ‘세(細)발 낙지’는 발이 가늘어서 나온 이름이다. ‘오징어+발’, ‘문어+다리’라 하면 안 되는 걸까. “오징어는 걷지 않고 물에 떠 헤엄친다. 문어는 발을 움직여 바닥을 기어 다닌다. ‘-다리’와 ‘-발’의 차이는 여기서 비롯한다”는 그럴듯한 주장도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오징어 다리’(58만9천개), ‘오징어 발’(62만8천개)의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문어발’(44만5천개), ‘문어 다리’(25만9천개)는 그렇지 않았다.(구글 검색) 마땅한 답은 없을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쓸 만한 게 나왔다. 사전은 ‘발’의 1번 뜻으로 ‘사람이나 동물의 다리 맨 끝 부분’, ‘다리’의 3번 뜻으로 ‘오징어나 문어 따위의 동물 머리에 여러 개 달려 있어, 헤엄을 치거나 먹이를 잡거나 촉각을 가지는 기관’을 제시한다. 뜻풀이에 기대어 정리하면 ‘오징어/문어/주꾸미/꼴뚜기…’에는 ‘다리’가 어울린다. 그렇다면 ‘문어발’은 무엇인가. 뜻풀이 ‘문어의 발처럼 여러 갈래로 나눔’은 ‘문어의 다리’를 적시해 설명하지 않는다.(표준국어대사전) ‘문어발’은 ‘문어발 확장’, ‘문어발 인맥’, ‘문어발배당’에서 보듯 비유적인 표현인 것이다. ……………………………………………………………………………………………………………… 징크스 프로야구가 개막했다. 첫 주 전적을 두고 각 팀의 희비가 엇갈린다. 겨울철 혹독한 담금질로 기대를 모은 팀, 최강 전력을 자랑하는 우승 후보, 뚜껑 열린 신생 구단의 실전 기록 분석은 경기장 밖의 또 다른 재미를 자아낸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제 기량을 다하기 위해 나름의 징크스를 피한다는 얘기는, 믿거나 말거나, 팬들의 관심을 끌어모은다. 메이저리그에는 오랜 역사에서 비롯한 유명한 징크스가 있다. 1945년 이후 이어져 오는 ‘염소의 저주’(시카고 컵스), 2004년 86년 만에 우승하면서 비로소 깨진 ‘밤비노의 저주’(보스턴 레드삭스)가 대표적이다. 일본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우승하면 경기가 나빠진다’처럼 특정 팀의 성적과 경제를 연관 짓기도 한다. ‘2년차 징크스’(소포모어 징크스, sophomore jinx)는 나라와 분야를 떠나 두루 쓰인다. 징크스(jinx)는 재수없는 것, 불길한 것, 불운을 가리키는 영어에서 왔다. ‘목을 뱀처럼 180도 비트는 고대 그리스의 흉조(jynx) 이름에서’, ‘나팔소리 때문에 모자를 떨어뜨린 기병대장 징크스를 노래한 가사에서’ 유래했다는 게 알려진 어원이다. 유력한 설은 뒤의 것이다. 히트한 노래 덕에 유명해진 ‘징크스’가 댄스곡, 드라마, 소설 제목에 쓰이면서 널리 알려졌고 미국 표준영어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영어위키) 지난주 한 방송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낡은 티셔츠를 입어야 잠이 온다”고 하니까 진행자가 “아, 징크스!”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어원과 일반적인 쓰임에 따르면 적절한 맞장구가 아니다. 국어사전 뜻풀이는 ‘재수 없는 일. 또는 불길한 징조의 사람이나 물건’이고 국립국어원은 이 표현을 ‘액(厄)’, ‘불길한/재수없는 일’로 다듬어 쓰기를 권한다. ‘경고 조치를 받은 사람이 당선된다는 속설에 비춰보면 경고 처분은 징크스보다 오히려 길조에 가깝다.’ 의사협회장 선거를 전망한 업계 전문지의 기사는 징크스의 뜻을 제대로 밝혀 쓴 셈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25. 실제 <그대 자신 속의 신성에 매혹되어 사로잡히지 말라. 그저 경건한 길을 가라> 두 사람이 어두운 밤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 사나운 짐승들이 우글우글하고 숲이 우거진 데다 사방이 캄캄하니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한 사람은 철학자였고, 또 한 사람은 신비가였다. 한 사람은 의심이 많았고, 또 한 사람은 신심이 깊었다. 돌연 폭풍이 몰아치면서 천둥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번갯불이 번쩍하였다. 번갯불이 번쩍하는 순간, 철학자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러나 신비가는 제 갈 길을 살폈다. 그대는 지금 이 얘기 속의 숲보다 훨씬 더 빽빽이 우거진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그리고 훨씬 더 캄캄한 속에서. 그러나 이따금 번갯불이 번쩍 하는데, 그 순간을 놓치지 말라. 한 사람의 장자, 한 사람의 붓다는 번갯불이다. 나는 번갯불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장자, 한 사람의 붓다, 나를 보지는 말라. 번갯불이 번쩍하는 그 순간, 길을 보라. 그때 나를 보면 길을 놓칠 터인데... 빛은 순간적으로만 번쩍인다. 아주 드문 그 순간, 영원이 시간을 관통하는 그 순간은 번개와 같다. 그러나 그 번갯불을 본다면, 장자를, 붓다를 본다면, 그 아름답고 황홀하며 매혹적인 모습과 얼굴과 눈을 본다면, 그땐 이미 길을 놓치리니. 길을 보라... 길을 가라.
Board 추천글 2020.07.01 風文 R 1369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제1권 우정으로 일어서는 위인 귀족의 아들이 시골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는 마을 호수에서 밤낚시를 하다가 수영 실력을 믿고 물속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발에 쥐가 나는 바람에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마침 그 마을에 사는 농부의 아들이 그 소리를 듣고 달려와 위험을 무릅쓰고 귀족 아들을 구해 주었습니다. "몇 살이니?" 시골 소년은 귀족 아들보다 7살이 아래였습니다. 그러나 귀족 아들은 소년의 손을 꼭 쥐면서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두 소년은 깊이 사귀며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12살이 된 시골 소년이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귀족 아들이 그의 장래 희망에 대해 물었습니다. "의학 공부를 하고 싶은데, 난 가난한 농부의 9 남매 중 여덟 번째야. 집안일을 도와야 돼. 둘째 형이 런던에서 안과 의사로 일하고 있지만 아직은 날 데려다 공부시킬 수가 없대." 귀족 아들은 아버지를 졸라 소년이 런던 세인트 메리어즈 의과대학을 졸업하게 했습니다. 소년은 오랜 연구 끝에 푸른 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이라는 기적의 약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시골 소년이 바로 1945 년 노벨 의학상을 받은 인류의 은인 알렉산더 플레밍입니다. 한편 귀족 아들은 훌륭하게 자라 26세 때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정치가로서 자질을 드러내기 시작하여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육, 해, 공군의 장관을 두루 거쳤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수상으로 뽑혀 영국에 승리를 안겨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 영웅이 폐렴에 걸려 생명이 위독하게 됐습니다. 그때 옛 시골 소년이 발견한 페니실린이 급송되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는 다름 아닌 '제2차 대전 회고록'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입니다. 어릴 때 싹튼 우정이 평생 동안 계속되면서 꽃을 피운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의지는 자기 이성에 의해 좌우된다. The will of man is by his reason sway'd. (셰익스피어)
Board 추천글 2020.07.01 風文 R 1404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평범한 행복 사과 한 알 - 이광해 휴가 기간이 끝났다. 버스 타는 데까지 바래다 주시던 아버지는 차비를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서운한 듯 말씀하셨다. 나는 군생활을 하면서 적은 월급에서 저금을 하였다. 전우들로부터 지독하다느니, 장가 밑천을 하려고 그런다느니, 그까짓 적은 돈을 저금해 뭘 하느냐는 등 핀잔을 받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지만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하자는 것이 나의 생활 신조다. 1년에 한 번 기대하던 휴가를 나오는 날, 우체국에서 저금한 돈을 찾아 동생들의 학용품과 늙으신 부모님 곁에 고기라도 사 갖고 가는 마음이란 얼마나 흐뭇한 일인지. 농촌에서 태어난 나는 늙으신 부모님이 고생으로 찌든 손으로 일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잘살아 보겠다고 혼자서 다짐을 하기도 한다. 어떤 친구들은 귀대하면 많은 돈을 집에서 가져왔다면서 자랑스러운 듯이 카페나 당구장 출입을 하지만, 내 딴엔 내가 아낀 돈으로 집에 다녀온 것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보내는 자식의 손에 돈 한 푼 쥐어 주지 못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은 자식의 마음보다 더 아프신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문득 호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빨갛게 익은 사과를 한 알을 꺼내셨다. 그것을 내 가방에 넣어 주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면서 나는 고마운 미소를 지었다. 비록 한 알의 사과라지만 내겐 너무도 귀한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사과 한 알, 버스 속에서 사과를 만져 볼 때마다 차창 밖의 높은 가을 하늘이 더 푸르게 느껴졌다.
Board 삶 속 글 2020.07.01 風文 R 1604
오징어 1 '남녘의 오징어가 북녘에 가면 낙지가 된다. 남녘의 낙지를 북에서는 서해낙지라 한다. 북한의 오징어는 남한의 갑오징어이다.’ 남북한 언어 이질화를 다룬 자료는 물론 언론을 통해서도 제법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에서 1965년에 발행한 5전짜리, 2000년에 나온 1원50전짜리 ‘낙지 우표’는 ‘남북한이 달리 부르는 오징어’를 확인해 주는 증거이다. “개성에 가서 ‘마른 낙지’를 사왔다. 분명 ‘마른 오징어’였다”, “금강산에 가보니 오징어를 낙지라 하더라”는 북한어 연구자의 증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광복 직후 문세영이 엮은 <수정증보 조선어사전>(1946년)의 오징어는 ‘몸은 작은 주머니 같고 열 개의 발이 있으며 등 속의 작은 뼈 같은 흰 물건이 있는 해산동물’이다. 북한 사회과학출판사가 펴낸 <조선말대사전>(2006년)의 설명 ‘(낙지) 몸은 원통 모양이고 머리부 량쪽에 발달한 눈이 있다. 다리는 여덟 개인데…’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오징어(북한의 낙지) 다리가 8개 ‘2개의 촉완(觸腕)과 8개의 다리가 있고…’(두산백과)를 참고하니 의문이 풀렸다. 먹이를 잡거나 교미할 때 쓰는 양쪽으로 길게 달린 두 개를 발로 셈하지 않은 것이다. 옛 문헌의 오징어(오적어, 烏賊魚)는 지금의 갑오징어를 가리킨다. ‘(오징어) 뼈는 두께가 3~4푼 되고 작은 배와 비슷하며 가볍고 약하다’(동의보감, 1610년), ‘등에는 기다란 타원형의 뼈가 있다’(자산어보(현산어보), 1814년), ‘오징어 뼈를 우물 가운데 담그면 잡벌레가 다 죽는다’(규합총서, 1809년)에 등장하는 오징어는 하나같이 지금의 갑오징어(참오징어)를 일컫는다. ‘군산 죽도 어장에서 많이 잡히는 것은… 민어, 오적어 등이니…’(황성신문, 1903년)에서처럼 구한말 신문에 나오는 ‘오적어’도 갑오징어이다. 죽도에서는 지금도 갑오징어가 잘 잡힌다. 오징어는 원래 갑오징어였고, 북한에서는 지금도 갑오징어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징어라 부르는 것은 옛날엔 뭐였을까. ……………………………………………………………………………………………………………… 오징어 2 갑오징어, 건오징어, 마른오징어, 물오징어, 뼈오징어, 일본오징어, 오징어, 참오징어, 한치오징어, 화살오징어.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른 ‘오징어족’이다. 갑오징어(뼈-, 참-), 마른오징어(건-), 생것을 가리키는 물오징어와 이를 두루 이르는 오징어를 빼면 달랑 다섯 종류뿐이다. 입술무늬갑오징어, 흰오징어, 창오징어, 화살오징어, 참갑오징어, 살오징어, 빨강오징어, 날개오징어, 지느러미오징어, 쇠오징어, 좀귀오징어…. 사전 밖, 바닷가의 오징어 명칭은 참으로 많다. 이 가운데 갑오징어 종류가 아닌 것들은 옛날에 ‘-꼴뚜기’라 불렸던 것들이다. 옛 문헌에 나오는 오징어(烏賊魚, 오적어)는 지금의 갑오징어를 가리킨다. ‘요즘 오징어’는 뭐라 했을까. “모양은 오적어(지금의 갑오징어)와 닮았지만 몸은 더 길고 날씬하다. 등에 타원형이 아닌 종잇장처럼 얇은 뼈만 있으며, 이것을 등뼈로 삼는다. 선비들이 바다에서 나는 귀중한 고기라 하여 ‘고록어’(高祿魚)라고 불렸다.” <자산어보>(현산어보)에 나오는 설명은 오징어를 묘사한다. 고록어는 꼴뚜기의 옛말이다. 꼴뚜기가 곧 오징어인 것이다. 현대 생물학 사전 여럿은 오징어를 여전히 ‘피둥어꼴뚜기’로 설명한다. ‘흰꼴뚜기’, ‘창꼴뚜기’, ‘화살꼴뚜기’, ‘반원니꼴뚜기’ 따위는 국립수산과학원에서 분류한 오징어 종류의 명칭이지만 국어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남한의 갑오징어가 북한에 가면 오징어가 되고, 남한의 오징어를 북한에선 낙지라 한다. 남도의 낙지를 북에서는 서해낙지라 한다. 오징어가 옛날엔 꼴뚜기 종류를 이르는 말이었고 오적어는 갑오징어를 가리켰다. ‘참갑오징어가 오징어라는 이름을 피둥어꼴뚜기에게 넘긴 때는 대략 1930년 무렵이었다. 수산업에서 일본식으로 용어가 통일되어가는 과정 중에 일어난 일’이라는 설이 있지만 바뀐 시기와 이유는 오리무중이다. 1923년에 ‘울릉도 오징어’, 1927년에 ‘전북 고창의 오징어(갑오징어)’가 신문에 등장하는 등 갈피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