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57. 일, 숭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 자신의 일에 성심껏 임하여 최선을 다하라. 그러면서 긴장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려, 믿고, 자신의 행위가 기도가 되게 하라. 결과에 집착하지 말며> 한 스승이 제자 한 사람과 함께 여행을 하였다. 제자는 낙타를 맡아 돌보기로 하였다. 날이 어두워졌고, 지친 두 사람은 사막에 텐트를 치고 쉬기로 하였다. 제자는 낙타를 묶어 잘 돌볼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칫 방심하여 낙타를 그냥 내 버려 두었다. 그리곤 그저 신에게 기도만 하엿다 "알라여, 낙타를 돌봐주소서" 그리고는 지쳐 그만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낙타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도둑을 맞든 낙타가 딴 데로 갔든, 어쨌든 낙타가 보이질 않았다. 스승이 물었다. <얘야, 낙타가 어디 갔느냐?> 제자가 말했다. <글쎄요, 저도 모르겠네요. 전 그냥 알라 신께 맡겼거던요. 낙타를 좀 돌봐 주십사 하고요. 그리곤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잠들었어요.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제가 책임질 일도 아니죠. 전 알라 신께 맡겼거던요. 스승님께서도 알라 신을 믿으라고 가르치셨잖아요. 그래서 전 그저 믿었을 따름이예요> 스승이 말했다. <알라 신을 믿되, 우선 낙타를 잘 묶어 둬야 했지 않느냐. 알라신껜 그대완 달리 손이 없질 않느냐>
Board 추천글 2021.10.30 風文 R 1023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영감이 흐르는 스와니 강 주옥같은 민요를 작곡했던 포스터는 아내 제니와의 이별, 남북전쟁의 혼란 속에서 음악의 샘이 말라 폭음으로 고통을 잊으려 했지만 마침내 알콜중독과 결핵, 가난으로 불행한 운명을 걷게 됩니다. 스와니 강, 켄터키 옛집, 금발의 제니, 오 수재너, 올드 블랙 조 등 주옥같은 미국의 민요들이 스티븐 포스터라는 젊은이에 의해 작곡되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노래의 가사도 모두 그가 작사했으며 그의 생애가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아는 사람을 흔치 않습니다. 스티븐 콜린스 포스터는 미국독립기념 50주년이 되는 1836 년 7월 4일 부유한 지방 명사의 일곱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지금 피츠버그 시 근교 벤 아베뉴라고 불리우는 언덕 위의 하얀 저택이었는데,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세가 기울어 그가 네 살 되던 해에는 이 저택도 남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일곱으로 줄어든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만 했는데, 어린 스티븐도 이곳 저곳으로 학교를 옮겨다녔습니다. 학교도 사람도 싫어진 고독한 소년에게 구원의 손길은 오로지 플룻으로 익히는 음악뿐이었습니다. 어느 악기점 주인으로부터 음악교육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오로지 영감을 통해 노래가 떠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스티븐의 운명을 결정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뉴욕의 토요신문인 '뉴밀러'지에 그의 가곡이 실린 것입니다. 그는 결심한 듯 학업을 포기하고 음악 그룹을 조직해서 작곡 발표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이때 오 수재너, 루이지애나 미인 같은 곡들이 나와 미국 각지로 번져갔습니다. 가곡 작곡가로 선망의 대상이 된 그는 유명한 '금발의 제니'로 노래 불러진 '제니'와 행복한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녀와의 결혼은 그의 앞날을 보랏빛으로 보이게 했습니다. 이윽고 외동딸 마리온이 태어납니다. 시골 경마, 넬리 브라이, 스와니 강 등 36 편의 주옥같은 노래가 결혼 후 2 년만에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도 포스터 내외는 결혼한지 3 년째부터 별거하다가 결국 헤어지게 됩니다. 포스터는 보다 넓은 활약의 터전을 찾아 뉴욕으로 떠나지만 때마침 남북전쟁이 터져 국토는 혼란의 도가니에 빠지고, 음악적 영감이 고갈되어 노래의 샘이 말라 버립니다. 그는 고통을 잊기 위하여 폭음하다 마침내는 알콜중독자가 되어 버립니다. 더구나 기온의 격차가 심한 뉴욕은 결핵성이 있는 그의 건강을 급속도로 악화시켰습니다. 포스터의 비참한 모습을 뉴욕의 어느 악기점 여점원이었던 파크 허스트 듀어 여사가 회고담으로 기록에 남겨 두었습니다. 어느 날 인생에 지친 듯한 사나이가 악기점에 들어왔습니다. 마침 손님도 뜸해서 한곳에 몰려 있던 점원들이 "스티븐도 말씀이 아니군." 하면서 그 사나이를 비웃었습니다. "스티븐이라니, 누구 말이죠?" 여사는 남자점원에게 물었습니다. "왜 거 있잖아, 스티븐 포스터, 하지만 이젠 떠돌이니까 가까이 가지 말아요." 그러나 포스터의 가곡을 애창해 왔고 기회가 있으면 그 작곡가를 만나고 싶어 했던 여사는 그 초라한 모습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힘주어 말했습니다. "아녜요! 저는 가까이 가겠어요. 저분은 다정하게 해드릴 사람이 필요할 거예요." 여사는 말을 건넸습니다. "포스터 선생님이신가요?" "그렇소이다. 스티븐 콜린스 포스터의 산송장입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산송장이라고 하시면 안 됩니다. 누가 뭐래도 선생님을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정말 기뻐요." 포스터는 자기도 모르게 흘러내린 눈물을 옷소매로 훔쳤습니다. "용서하시오, 체면없이 눈물을 흘린 것을. 그렇게 다정하고 따뜻한 말을 들어 보기는 너무도 오랫동안 없었던 일이라서......" 그리고 그는 숙녀 앞에서 옷차림이 남루한 점을 신사답게 사과했습니다. "아녜요. 제가 뵙고 싶었던 건 선생님이세요. 옷차림이 아닙니다." 여사는 손을 저으며 대답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한 달 후, 1864 년 1월 10일 오후, 알콜과 결핵으로 싸구려 여인숙에 누워서 새해를 보낸 포스터는 때가 밴 몸을 닦기 위해서 욕조로 갔습니다. 욕조에 물을 받고 옷을 벗으려는 순간 현기증이 일어나 머리를 욕조에 부딪히고 쓰러졌습니다. 낡은 유리욕조가 깨지면서 그의 경동맥을 끊고 말았습니다. 빈사 상태의 피투성이가 되어 병원으로 옮겼으나 사흘 후에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가 남긴 지갑에는 현금 몇 푼과 다음과 같은 글이 적힌 종이쪽지가 들어있었습니다. 'Dear Friends, and gentle hearts : 다정한 친구, 그리고 따뜻한 마음' 작곡가는 자동차 운전수와 심부름하는 소년이 휘파람 불 수 있는 곡을 지어야 한다. (T. 비첨 경)
Board 삶 속 글 2021.10.30 風文 R 691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시련을 딛고 암을 이긴 무대 - 선경식 분명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다. 엄청나게 나를 압도하는 일이. 숨소리도 들릴 것 같은 정적. 의사는 내 진료 기록장에 무얼 자꾸 적는다. 영어로.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입 안이 타 들어가는 그 고약한 정적을 내가 먼저 깨고 싶었다. 하지만 목소리를 가다듬어 "병이 깊은 모양이지요?" 하고 물었더니 의사는 퉁명스런 목소리로 "보호자 없어요?" 하고 되묻는다. 불안했던 마음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찰나다. "그냥 제게 말씀해 주세요." 내 딴에는 당신의 어려운 입장을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의 CT필름을 뷰박스에 건 다음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사진 보실까요? 오른쪽 여기, 여기 보이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헛뜨고 있는 것이다. "여기 겨드랑이도 그것 같아요." 중견 연극배우 이주실 씨(53세)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유방암 선고를 받은 뒤 '시린 가슴'으로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1993년 초여름 어느 날이었다. <주치의가 서명한 입원 지시서를 받아 들고 갈 길을 잃었다. 젖가슴의 암세포가 겨드랑이에 새끼를 치도록 몰랐다니... 이제 나에게 요술 지팡이는 없다. 그것(?)이 그것이라.> 담당 의사는 '보호자 없는 환자'가 측은했던지 차마 암이란 단어를 입에 담지 못하고 '그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녀의 증세는 유방암 3기에 암세포가 임파선으로 전이된 상태였다. 그녀가 '그것'의 징후를 알게 된 것은 이보다 보름 전쯤 둘째 딸 단비(13세)와 함께 욕실에서 목욕을 하면서였다. 단비는 엄마의 젖가슴을 만지더니 "엄마 쭈쭈에 구슬이 들어 있나 보다"고 신기해 했다. 그리고는 욕실 밖에 있는 언니 도란(27세)에게 외쳤다. "언니도 와서 한 번 만져 봐!" 10년 전 성격 차이로 남편과 헤어진 그녀에게 도란과 단비는 마음의 끈이자 삶의 줄이었다. 두 딸은 의학 서적을 뒤적이며 엄마의 젖가슴에 박혀 있는 '구슬'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부산을 피웠다. 며칠 뒤 그녀는 의사의 진찰을 받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러나 동네 병원 앞을 빙빙 맴돌 뿐 선뜻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그러다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병원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결과는 심상치 않았다. 의사는 큰 병원으로 가서 정밀 진단을 받아 보라고 권유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이었다. 1965년 9월 <망향> (오사랑 연출)의 주인공으로 데뷔한 이후 30여 년 동안 연극배우, 탤런트, FM 라디오 DJ로 이름을 날리던 그녀는 수술하기 위해 입원 수속을 밟으라는 말을 듣는 순간 차라리 홀가분했다. 그녀는 말했다. "왠지 모르게 머리 속이 하얘지면서 마음이 편안하더군요." 그의 친구인 소설가 남지심 씨가 느낀 것처럼 그가 받아들인 인생은 그가 감당하기에 그만큼 벅찬 것이기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그해 11월 초 오른쪽 유방과 오른쪽 겨드랑이 임파선 절제 수술을 받았다. 입원한 지 열이틀 만에 퇴원한 그녀는 항암제 주사를 계속 맞았고 차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방안에 힘없이 누워 있든지 아니면 고통에 겨워 손톱이 보랏빛이 되도록 방바닥을 기어다녀야 했다.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 건지,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 건지 갈등을 느꼈다. 1994년 봄 그녀는 고민 끝에 두 딸을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남동생에게 보냈다. 단비는 아예 입양을 시켰다. 하루 종일 엄마 걱정에 안절부절못하는 딸들을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죽음을 눈앞에 둔 이씨와 딸들간의 '이별 연습'이었다. 그녀는 서울에 혼자 남아 1년 동안 항암 치료를 받았다. 그러면서 연극과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했다. 활동해도 좋다는 주치의의 허락이 있었지만 '쌀과 치료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항암제 주사 한 대에 17만 원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1994년 봄부터 가을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특별 기획한 <덕혜옹주>에 1인 3역으로 출연했으며, 11월에는 일본 공연에도 참가했다. 연출가 한태숙 씨에게는 암에 걸려 투병중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렸다. 그러자 연출가는 말했다. "당신은 살 수 있다. 그리고 연극에서도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1995년 여름에는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어머니역으로 출연했다. 그때 연극배우이자 연극 기획자로 전태일의 아버지역을 맡은 명계남 씨를 만났다. 연극계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촬영기간 중 많은 얘기를 나누던 끝에 서로 힘을 모아 좋은 연극을 한 번 해보자고 약속했다. 그후 수시로 만나 작품을 고르다가 이씨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속얘기를 동생 같은 명계남 씨에게 털어놓았다. 유방암 수술을 받았으나 절망하지 않고 있으며 죽음에의 두려움은 이미 극복했다는 것을. 그리고 절망감에 몸부림치는 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죽음과 절망을 극복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는 것을. 명계남 씨는 자신의 아픔과 치부를 부끄러움 없이 드러낸 채 삶과 정면으로 맞서 활기차게 사는 그녀의 모습에 감동하여 암 투병 여배우의 50년 인생을 무대에 올리기로 결심했다. 이때부터 1년이 넘는 준비 기간을 거쳐 선을 보인 것이 96년 11월 29일부터 서울 대학로 인간소극장에서 공연중인 모노드라마 <쌍코랑 말코랑, 이별 연습>이다. 대본은 그녀가 그동안 기록해 온 일기를 바탕으로 극작가 오은희 씨가 눈물을 흘리며 각색했다. "일기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써왔지만 죽음이 내 어깨를 툭 친 무렵부터는 더 진지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썼지요." 쌍코와 말코는 딸 단비와 도란의 애칭.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두 딸과의 후회스럽지 않은 이별을 준비하기 위해 그녀는 스케치북에 4B 연필로 쓴 일기를 두 딸에게 복사해 나눠 주었다. 그녀는 현재 항암 치료를 중단한 상태이다. 머리카락이 빠져 가발을 쓴 채 연기하고 싶지 않은 데다, 환자처럼 사느니 하루를 살더라도 배우로 남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시인)
Board 삶 속 글 2021.10.30 風文 R 603
소통과 삐딱함 어떤 문제나 사건이 터졌을 때 당사자들이 사태를 수습하기 어려워하면 주변에서 호의적인 간여를 시작한다. 이럴 때는 자신이 유대감을 가진 사람이 누군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좋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조언한다면서 그들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도 없이 오로지 ‘메마른 논리’만 가득 찬 말만 던지면 차라리 처음부터 끼어들지 않는 게 더 도움이 된다. 미국의 흑인들이 경찰들의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면서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구호를 외친다. 이에 대해 일부 백인들은 “모든 이의 목숨도 중요하다”고 되받아치고 있다고 한다.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백인들의 반응이 논리적으로 더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그 맥락을 들여다보면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면하거나 은폐하려 하는 삐딱함을 눈치챌 수 있다. 일부 변호사들이 최근에 들어온 탈북자들에 대해 인신구제 신청을 했다. 그에 대해 또 다른 탈북자들이 그 변호사들에게 북에 남은 가족들의 인권 상황 조사를 의뢰하는 신청을 했다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삐딱한 논리를 발견할 수 있다. 북녘 주민의 인권을 다룰 능력 없으면 남으로 온 탈북자들의 인권 문제를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뜻을 넌지시 비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소통이 아닌 불통이 흘러넘치게 된 까닭은 말의 뜻이나 문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소통 자체를 삐딱하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듯하면서도 비논리적이고, 소통을 지향하는 듯하면서도 뒤통수치기가 더 앞서고 있다. 문제를 정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소통은 문제의 해결보다는 문제의 확산을 불러온다. 불통은 언어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말의 미혹 ‘최신’, ‘최고’, ‘첨단’ 등과 같은 말들은 사람을 조급하게 만든다. ‘무제한’, ‘무한 리필’과 같은 말들도 그렇다. ‘사은 행사’, ‘마지막 기회’와 같은 말도 마음이 흔들리게 한다. 이러한 표현들은 주로 시장에서 쏟아져 나온다. 이익을 추구하고 순간의 기회를 노리는 판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이다. 시장과 무관해 보이는 교육이나 복지 같은 영역에서도 언어의 미혹은 널려 있다. 매우 합리적으로 보이는 유혹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맞춤형’이나 ‘눈높이’ 같은 말들이다. 이런 말들은 언어 소비자들을 개별화시킨다. 자신이 ‘다수’나 ‘대중’ 혹은 어설픈 ‘평균치’ 속에 들어박힌 것이 아니라 각자의 특징과 속성이 우대받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더욱 유혹적이다. 이런 말의 함정은 그 ‘맞춤’과 ‘높이’의 기준이 누구를 표준으로 하고 있느냐가 불확실한 데에 있다. 마치 ‘나’가 기준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맞춤형 보육을 하면 모두가 만족할 줄 알았는데 갈등만 도드라졌다. 모두 자신의 사정이 기준이 아니라는 불만이다. 각자의 욕망에 맞추려면 더 많은 합리적 비용을 각오하는 것이 원칙이다. 무상 보육이라는 말로 마치 진짜 공짜인 듯이 해놓고는 맞춤형이라는 유혹으로 차등화를 하려다가 사달이 난 것이다. 교육과 복지는 일반적인 서비스 상품과 매우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절대로 동일시할 수 없는 성격이 있다. 사람들의 품위와 자존심 그리고 하나의 공동체에 속한다는 귀속감 등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가진다. 그래서 교육과 복지는 함부로 개별화시킬 것이 아니다. 함께, 보편적으로, 모두가 같이 누리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 꾀를 쓰다 보면 말부터 꼬이게 된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