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의 세계 여중생들의 폭력, 참으로 낯설다. 그러면 남중생들은 지금 뭐 할까? 그들은 얌전하게 학교에 다니고 이 여중생들만이 겁도 없이 사고를 치고 있는 걸까? 아마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더 큰 사회 변화가 이 자그마한 사건 뒤에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눈길을 반대편으로 한번 돌려 보자. 요즘은 노인들이 취업도 열심히 하고 폭력과 범죄에도 많이 연루된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스무 살부터 예순 살까지를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는 시기로 보고 10대 청소년과 60대 이후 노인들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이해해왔는데 어찌 보면 지금 그들이 몸부림치며 사회에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청소년들은 아직 아이들에 가깝고 60대 이상은 성인이란 말을 쓰기에는 나이가 초과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그들은 지금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폭력을 사용할 수 있고, 취업도 하고 싶고, ‘정상적인 성인’ 대접 받으며 살고 싶다는 신호 말이다. 이미 청년, 장년, 중년, 초로 등과 같은 세대 구분 용어는 무의미해졌다. 다 같은 성인일 뿐이다. 여기에 청소년과 노인들이 끼어들고 싶어 하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를 거치면서 사실상 같은 수준의 언어적 정보를 공유하고 있으니 세대 간의 지식과 정보의 차이를 구분해내기 쉽지 않다. 사실 모두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해 동일한 ‘성인의 세계’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사회 구조가 새로이 재편성되고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들과 초고령 노인들을 제외한 거대한 사회집단이 동일한 성인 세계를 공유하자고 외치고 있다. 이제 나이 몇 살 차이로 존댓말 써야 하는 낡은 언어 체계는 곧 ‘옛말’이 되어 버릴 것 같다. 오히려 동등한 성인으로서의 유대감과 친근감이 더욱 필요하게 될 것이다. 경어법도 크게 약화되거나 단순화되어야 할 듯하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마그나 카르타 이 세상에는 기계를 다루거나 돈을 만지는 직업들도 많지만 ‘말’을 다루는 직업도 매우 많다. 말의 기능이 워낙에 다종다양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치와 종교가 언어 없이 활동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교육과 법률도 마찬가지이다. 더 나아가 작가와 언론매체 종사자들은 말을 다루거나, 말을 사용하거나, 말에 대해 고민하거나 하는 등, 한시도 말과 떨어져 있을 수 없는 직종에 속한다. 독재 권력은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일방적인 선전과 홍보에는 관심을 가지지만 와글거리는 말, 곧 ‘의견’과 ‘질문’은 질색한다. 그래서인지 과거 독재 정부 때는 똑 부러진 말을 많이 하는 정치인과 종교인들이 ‘수난’을 많이 당했다. 정치적 자유가 어느 정도 확보되자 교육자들과 법조인들이 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매사에 끊임없이 ‘쟁점’을 찾아 정당함과 부당함을 논하려 했다. 역시 권력자들은 이들을 멀리하려 했다. 실무적으로 그리고 실존적으로 말을 다루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와 언론인들이다. 이들에게 말이나 글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한 숟가락의 밥도, 한 모금의 물도 허락하지 않는 폭력이다. 그동안 작가들에게는 권력에 의해 블랙리스트가 덧씌워졌으며, 대통령은 기자들을 기피했고, 방송 종사자들에게는 일자리에서 쫓겨나거나 마이크를 빼앗기는 인사조치가 행해졌었다. 작가들의 글 쓸 권리를 방해한 블랙리스트 문제는 ‘재판’으로 결말을 내게 되었다. 그러나 방송사의 문제는 ‘파업’으로 승패를 결정짓게 되었다. 말과 글에 대한 권리를 ‘재판과 파업’으로 결말을 짓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정말 특기할 만한 일이다. 여기에서 승리했을 때 획득하게 될 권리는 곧 우리의 언어 사용권에 대한 ‘마그나 카르타’(대헌장)가 될 것이다. 자고로 허락받아 얻은 권리와 승리해 얻은 권리는 그 근본이 다른 법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