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잊을 수 없는 사람 세계를 향한 웅비의 꿈을 가져라 - 김운용 1949년, 대학 입시를 앞두고 나는 많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대학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어느 대학에 진학할 것인가... 결국 나의 선택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였다.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었던 외교관에 대한 소망이 당신 유일하게 '외교'란 단어가 붙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하게 한 결정적인 동기였다. 그 당시 연세대는 교수 중 많은 분이 외국 선교사들이었기 때문에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특히 서양의 합리작이고 이성적인 사고와 앞선 문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총장이셨던 백낙준 박사께서는 나의 미래를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말씀을 깊이 새겨 주셨다. "해방된 조국에서 젊은이들의 사명은 무엇인가. 안을 보지 말고 밖을 봐라. 이상과 꿈이 작으면 성취하는 일도 작고 보잘것없다. 국제 지향적인 사고를 가지고 세계를 향해 웅비의 뜻을 펼쳐라." 백낙준 박사의 말씀대로 젊은 날의 나는 세계를 향해 열심히 뛰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유엔, 미국, 영국 등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던 중에도 그 말씀을 새겨 세계로 시야를 넓혔고,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스포츠계에 첫걸음을 내딛던 때도 태권도의 세계화를 앞장서서 부르짖었다. 백 박사께서 내게 들려주셨듯이 나도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늘 이런 말을 해준다. "비전을 가지고 세계의 흐름을 앞서 달려라. 또 그러기 위해서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 (IOC 위원) 연구보다 우선 시험해 봐라 - 박종오 1983년 12월 말경 독일 대학에서 박사 논문 작성에 몰두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실험실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옆을 지나가시는 지도교수 바르네케 선생님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은 반갑게 맞아 주시며 "연구원은 책상에서 연구를 하는 것보다는 시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얘기를 해주셨다. 미국이나 한국과는 달리 독일 교수의 권위는 대단하다. 특히 내가 있었던 연구소는 직원이 삼백 명이 넘고 독일 생산공학을 주도하는 연구소여서 연구원이라도 지도교수님을 차분하게 만나 뵙기가 힘들었다. 이런 상황이라 우연이나마 개인적으로 지도교수님을 만나 직접 이런 저런 얘기를 친절히 듣고나니 이상이 매우 강렬했다. 1987년 귀국해 8년 간은 오로지 나의 모든 생활 및 관심이 연구에 있었다. 이 시기에는 모든 일을 철저히 온몸으로 체험했다. 그동안의 연구 결과 이형 부품 삽입 로봇, 금형 연마 로봇, 비전인식 자동 가공 로봇, 힘 인식 로봇, 섬세한 촉감 인식 로봇 손 등을 만들었다. 나의 모든 연구 결과에 있어 동통적인 것은, 한 가지 이론 정립보다 여러 가지 실험과 엔지니어로서의 감각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몇 년 전 옛날 자료를 뒤적이다가 바르네케 교수님께서 얘기한 내용을 기록한 메모를 발견하고 한동안 감회가 깊었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내용 없이 이론적으로만 접근하는 방식을 경계하셨던 그분은, 현재 막스 프랑스와 쌍벽을 이루는 독일 프라운호프 연구재단 총재로서 인생의 정점에 계신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기전연구부 책임연구원) 솔직한 표현과 반성할 줄 아는 용기 - 최현수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깨달음을 얻는다. 나는 그것을 열림 마음으로 수용해 실천할 수 있는 넉넉한 삶을 좋아한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고정웅 선생님이라는 무서운 기술 과목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어느 월요일 오후 시간이었다. 수업 시간이 가까워서야 생각이 난 숙제, 그날따라 숙제 안한 학생들은 왜 그렇게도 많았는지. 이런 저런 핑게를 대는 급우들에게 이 소문난 강타자의 실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공포와 갈등 속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나는 맞아 죽을 각오로 소신을 솔직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힘들고 지겨운 숙제보다 공 차고 노는 게 더 재밌어서 숙제를 안했습니다. 오늘을 계기로 앞으로는 나아진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눈을 감은 채 몸을 맡긴 나에게 선생님은 전혀 예상 외의 반응을 보이셨다. "너의 솔직한 대답이 맘에 든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사회는 자신의 소신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반성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정신을 잃지 말아라. 그러면 너는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후 그 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업 시간이 되었고, 그 격려의 말씀은 내 생활의 철학이 되었으며,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독학을 하던 시절에도 큰 힘이 되었다. (성악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Board 삶 속 글 2022.05.12 風文 R 597
다기망양(多岐亡羊) / ① 학문의 길이 여러 갈래로 갈려 진리를 얻기 어려움. ② 방침이 많아 도리어 갈 바를 모름. 《出典》'列子' 說符篇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주장했던 양자(楊子)와 관계되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양자의 이웃집 양 한 마리가 달아났다. 그래서 그 집 사람들은 물론 양자네 집 하인들까지 청해서 양을 찾아 나섰다. 하도 소란스러워서 양자가 물었다. "양 한 마리 찾는데 왜 그리 많은 사람이 나섰느냐?" 양자의 하인이 대답했다. "예, 양이 달아난 그 쪽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입니다." 얼마 후 모두들 지쳐서 돌아왔다. "그래, 양은 찾았느냐?" "갈림길이 하도 많아서 그냥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양을 못 찾았단 말이냐?" "예, 갈림길에 또 갈림길이 있는지라 양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통 알 길이 없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양자(楊子)는 우울한 얼굴로 그날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했다. 제자들이 그 까닭을 물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한 현명한 제자가 선배를 찾아가 사실을 말하고 스승인 양자가 침묵하는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그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큰길에는 갈림길이 하도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리고, 학자는 다방면(多方面)으로 배우기 때문에 본성을 잃는다. 학문이란 원래 근본은 하나였는데 그 끝에 와서 이 같이 달라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인 근본으로 되돌아가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시고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하시는 것이라네." 【동의어】망양지탄(亡羊之歎) 【유사어】독서망양(讀書亡羊)
Board 고사성어 2022.05.12 風文 R 959
영어 공용어화 2000년 초 우리가 외환위기의 수렁에서 가까스로 헤어나오고 있을 때, 일본에서는 당시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개인 자문역인 ‘21세기 일본의 구상’이라는 모임에서 21세기 일본의 정책 방향을 제안했는데 거기에 영어를 제2의 공용어로 삼자는 의견을,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전제 아래, 제안하고 있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반응은 일본보다 한국 사회에서 더 뜨거웠다. 보수적이기로 이름난 한 신문이 이를 크게 보도하자 뒤이어 어슷비슷한 신문들이 과열된 기사와 르포를 내보냈다. 당시의 기사 제목들을 살펴보자. “여덟 살도 늦다”, “영어의 바다에 빠뜨려라”, “영어 방송 채널 늘려 ‘귀’ 틔게 해야” 등등의 선정적인 보도가 넘쳐났다. 논점도 일본처럼 영어를 제2의 공용어로 삼자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공용어로 삼는 것이 낫다는 어느 유명한 소설가의 주장을 대변하기도 하였다. 그 이후 우리에게는 영어 강풍이 계속 어왔다. 대학에서는 전공을 불문하고 노골적으로 교수와 강사들에게 영어 강의를 강권한다. 취학 전에 영어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낸다. 어떤 점에서 본다면 사실상 사회 일부 영역에서는 영어의 공용어화가 조용히 진행 중인 셈이다. 그러는 중에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영어를 잘하는 것을 모든 공적인 능력의 첫째 기준으로 생각하는 습관에 익숙해져 버렸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향상된 영어 능력으로 미국의 ‘미치광이 전략’에 맞서 힘겹게 협상을 해야 한다. 다른 한편 당시 세웠던 영어마을의 거듭된 적자를 묵묵히 감당해내야 한다. 그러면서 또 이번 노벨 문학상에 한국 작가의 이름은 빠졌고 다른 아시아계가 뽑힌 것을 아쉬워하는 한숨소리가 들린다. 도대체 우리는 그동안 무슨 짓을 하며 시간을 보낸 것인가?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영어의 힘 16세기, 우리가 임진왜란으로 고통을 겪고 있을 때만 해도 영어는 그저 그런 여러 언어 가운데 하나였다. 그 이후 약 300여 년 동안 영어는 눈부신 발전을 했다. 그 이전의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이 누렸던 국제적 매개 기능을 영어가 넘겨받은 것이다. 그 힘의 원천은? 당연히 경제력과 군사력이 그 바탕이었다. 영국의 힘은 20세기에 들어오며 사그라졌다. 그리고 그 후계자는, 영어를 위해서라면 지극히 다행스럽게, 미국이었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 새로운 패권을 향유했다. 미국은 각종 대외원조, 군사동맹, 국제기구 등을 주도하며 수많은 나라의 지도부에 동료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많은 유학생들을 받아 온 세계에 ‘보편적 지식인’들을 퍼뜨렸다. 즉 영어는 지식인들의 보편적 언어로 등극한 것이다. 영어는 또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오락의 언어로 변신했다. 잘 놀기 위해서도 영어가 필요해진 것이다. 게다가 최근의 정보 기술의 발전은 영어의 패권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컴퓨터 자판의 기본 배열을 영어식 알파벳으로 삼아서 여러 변종 알파벳을 배제한 것이다. 또 각종 컴퓨터 활용 프로그램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는 영어에 대한 기초 지식 없이는 대단히 힘들어졌다. 마지막으로 영어는 또 한 가지의 힘을 자랑한다. 바로 시장의 힘이다. ‘영어’라는 언어, 아니 ‘과목’은 가장 이익이 많이 남는 ‘교육 상품’이다. 많은 소수언어들이 변두리로 밀려났다. 그러다 보니 지구상의 수많은 언어들 가운데 영어는 일종의 황소개구리 구실을 한다. 언어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위험한 종으로 지적받는 것이다. 물론 늘 비판만 할 것은 아니다. 영어의 패권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가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아가기도 한다. 위기가 가장 큰 교훈이 되기 때문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