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잊을 수 없는 사람 우리는 각자 무한 능력자이다. - 양승옥 당신의 미래는 많은 것들에 달려 있지만, 대부분은 당신 자신에게 달려 있다. - 프랭크 타이저 1976년 나이 스물여섯 살 때 나는 비로소 그동안의 내 인생을 지배했던 큰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다. 서울여상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내내 나를 괴롭히던 의문이 있었다. '공부도 잘했고 비교적 성실하고 진실한 내가 왜 이런 환경인가? 어떤 이유로 사람은 서로 다르게 태어나는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노력하던 중 (불광)이라는 월간지를 접하게 되었다. 그곳에 광덕 스님의 법문이 실려 있었다. '나의 환경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닌 내 탓이다. 지금 처해진 환경이 불만족스럽다면 그것은 나의 능력을 부정하고 한정한 결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래 큰 지혜와 아름다운 품성과 뛰어난 능력이 갖추어져 있는 무한 능력자이기 때문이다.' 목마른 대지가 물을 흠뻑 빨아들이듯이 나는 이 말씀에 공감했다. 나의 환경은 부모의 탓도, 절대자의 탓도 아닌 내 탓. 나는 비로소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임을 인정하는 인생의 큰 전기를 마련했다. 나에게 이미 주어진 무한한 능력을 모르고 환경을 탓하고 나 자신을 괴롭혔던 모든 일들을 바람에 실어 보내고, 새롭게 내 삶을 계획했다. 오남매의 맏이인 나는 집안에서 내가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기쁘게 인정하고 동생들을 보살핀 뒤 1985년에 15년 10개월의 직장 생활을 마감했다.그리고 이듬해인 서른다섯 살에 그렇게 소망하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진실한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혹시 이루어지지 않는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더 크고 아름다운 소망을 이루기 위한 단계일 뿐이다. 기쁘게 받아들이고 노력한다면 이생에, 또 다음 내생에서라도 꼭 이루어질 것이다. 아니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그것이 이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진리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1996년 대한민국 공예대전 대상 수상자) 음지에서 찬란한 빛이 만들어진다 - 이봉주 바로셀로나 올림픽의 영웅이자 동료인 황영조 선수가 부상으로 애틀란타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게 되자 한국 마라톤에 대한 기대는 자연 내게로 집중되었다. 애틀란타 올림픽은 국민들이 내게 거는 기대 이상으로 내 자신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무대였다. 마라톤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심어 주고 은퇴한 황영조 선수나 국제 대회에 늘 불운이 따르는 김완기 선수에게 결코 실망스런 모습을 조여 주지 않겠다고 각오를 새로이 했다. 1990년 전국체전 준우승 이후 열다섯 번의 마라톤 풀코스 완주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이봉주란 이름은 는 사람들에게 1위를 받쳐주는 어시스트의 역할 정도로 기억되고 있었다. 애틀란타 올림픽을 준비하며 하루 평균 50킬로미터를 달리는 강행군이 진행되었다. 극한 상황에 처하면 인간은 생존 자체에만 매달리게 됨을 잘 아는 정봉수 감독님은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항상 내 정신을 먼저 다듬어 주셨다. "봉주야, 우리는 프로다. 영광의 순간을 위해 지금의 고통을 참아야지. 우리 음지에서 찬란한 빛을 만들어 보자."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지만 나야말로 마라톤이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닌가. 애틀란타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으로 접어들면서 앞서 달리는 투구와네의 모습을 보았지만 아쉽지만은 않았다. 나는 최선을 다해 여기까지 왔고 그는 분명 나보다 더 잘 달렸으니까. 결국 진정한 마라토너는 자신의 한계를 향해 달리는 것이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마라톤 2위 입상)
Board 삶 속 글 2022.05.11 風文 R 650
누란지위(累卵之危) / 몹시 위험한 형세. 《出典》'史記' 范雎列傳 전국시대, 세 치의 혀[舌] 하나로 제후를 찾아 유세(遊說)하는 세객(說客)들은 거의 무두 책사(策士)모사(謀士)였는데, 그 중에서도 여러 나라를 종횡으로 합쳐서 경륜하려던 책사 모사를 종횡가(縱橫家)라고 일컬었다. 위(魏)나라의 한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난 범저(范雎)도 종횡가를 지향하는 사람이었으나 이름도 연줄도 없는 그에게 그런 기회가 쉽사리 잡힐 리 없었다. 그래서 우선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의 종자(從者)가 되어 그를 수행했다. 그런데 제나라에서 수가보다 범저의 인기가 더 좋았다. 그래서 기분이 몹시 상한 수가(須賈)는 귀국 즉시 재상에게 '범저는 齊나라와 내통하고 있다'고 참언(讒言)했다. 범저는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거적에 말려 변소에 버려졌다. 그러나 그는 모사(謀士)답게 옥졸을 설득, 탈옥한 뒤 후원자인 정안평(鄭安平)의 집에 은거하며 이름을 장록(張祿)이라 바꾸었다. 그리고 망명할 기회만 노리고 있던 중 때마침 진(秦)나라에서 사신이 왔다. 정안평은 숙소로 은밀히 사신 왕계(王稽)를 찾아가 장록을 추천했다. 어렵사리 장록을 진나라에 데려온 왕계는 소양왕(昭襄王)에게 이렇게 소개했다. "전하, 위나라의 장록 선생은 천하의 외교가이옵니다. 선생은 진나라의 정치를 평하여 '알을 쌓아 놓은 것보다 위태롭다.(危於累卵)'며 선생을 기용하면 국태민안(國泰民安)할 것이라고 하였사옵니다." 소양왕은 이 불손한 손님을 당장 내치고 싶었지만 인재가 아쉬운 전국시대이므로 일단 그를 말석에 앉혔다. 그후 范雎[張祿]은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으로 그의 진가를 발휘했다. 【동의어】위여누란(危如累卵)
Board 고사성어 2022.05.11 風文 R 1000
세계어 배우기 영어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어’다. 문제는 그 세계어에 대한 개념이 좀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온 세계인이 다 알고 있는 언어? 그건 아니다. 아직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조금만 열심히 배우면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 이건 비슷하게 맞는다. 아직도 이 세계에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더욱 많다. 그럼에도 이방인에게는 으레 영어로 말을 건다. 그리고 영어 질문에 대답을 못하거나 하면 민망해한다. 다시 말해서 모두 잘 알아서 세계어가 아니라 당연히 잘 알아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 세계어인 셈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어의 위력이다. 영어는 잘 몰라도 쓸 수밖에 없다. 영어도 일본어도 모르는 한국인과 역시 영어도 한국어도 모르는 일본인이 외국에서 만나서 무언가 말을 하려면 엉망진창의 영어로 말을 하는 수밖에는 방도가 없다. 또한 이런 것이 결코 흉이 아니다. 오히려 최선의 문제 해결 방식이다. 세계어는 어쩔 수 없이 상처투성이의 언어가 된다. 오만 사람들이 각자 나름대로 주워섬기니 불가피하게 언어는 많이 망가진다. 그것이 세계어가 된 업보이고 대가이다. 그래서 세계어를 쓰면서 자주 틀리는 것을 너무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자주 틀리는 것, 헛갈리거나 실수하는 것은 세계어의 숙명이다. 세계어는 무슨 이론적 바탕으로 정해 놓은 것이 아니다. 그저 사회적 추세이다. 그 추세를 각종 국제기구와 국제 행사에 반영해서 사용 언어를 선택한다. 그렇기에 하나의 세계어를 배우는 데 모든 것을 다 거는 것은 그리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차라리 ‘세계어로서의 영어’의 한계선을 어느 정도 설정해 놓고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다. 지금처럼 무한정 배우는 것은 고액의 학습비용을 곧바로 매몰비용으로 처리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한국어의 위상 그리 신뢰할 만한 방식은 아니지만 각 언어의 사용자 인구를 비교하면서 언어별 위상을 견줘 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중국어 사용자는 거의 12억 정도라고 하고 영어 사용자는 3억이 좀 넘는다. 중국어의 세력이 영어보다 4배로 강해 보이지만 또 다른 숫자가 이 두 언어의 위상을 뒤집는다. 영어는 무려 100개 정도의 나라에서 사용된다. 반면에 중국어는 30여 나라에서 사용된다. 그것도 거의 그 지역 화교들 중심이다. 그러니 중국어는 중국인 및 화교들 사이에서 주로 쓰이는 ‘민족어’에 가깝고, 영어는 영국인이나 미국인들보다 비원어민들 사이에서 많이 쓰이는 ‘국제어’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어는 어떨까? 한국어는 대략 7700만 정도의 사용자 인구에, 사용 국가는 남북한, 일본, 중국 등 동포들의 분포지역 중심이다. 아직 국제어라기보다는 민족 내부의 의사소통 중심이다. 최근에 한국어 학습자들이 점점 늘고, 한국으로 귀화하거나 이주하는 사람들도 는다고 하지만 아직 통계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머지않아 ‘인구 절벽’이 닥칠 거라는 우울한 소식이다. 현재 한국어 사용 인구 순위가 세계에서 12등에서 15등 사이에서 머무는 중인데 뒤에는 인구가 빨리 늘어나는 타이(태국)어, 베트남어, 인도의 타밀어, 마라티어 등이 따라붙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언젠가는 인구 절벽이 언어 절벽을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어 교육을 장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문화에 대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평가를 받는 것도 중요하다. 맨부커상을 받았던 한 젊은 작가가 또 다른 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은 한국어에 다양하고 긍정적인 소통 기능을 부여하는 귀한 작업이다. 인젠 머릿수로 언어의 위상을 다툴 시기는 지난 것 같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잊을 수 없는 사람 전체를 위하면 나도 위해진다 - 김애량 1967년 이화여고 3학년 시절, 진학을 준비하는 다른 등기들과는 달리 나는 형편상 직장을 구해야만 했다. 그때 마침 카이스트(KAIST)에서 여성 인력을 뽑는다는 추천장이 학교로 들어왔다.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열 명 정도 면접을 보았는데, 첫 취업 관문에서 나는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삶에 대한 실망과 회의로 갈등의 나날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내 사정을 안 친구 혜경이가 곁으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시청에서 공무원 공채를 한대. 너도 한 번 해봐." 그러면서 시험 원서와 한법, 행정법 등의 책을 내놓는 것이었다. 혜경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단짝인 친구였다. 1968년 서울시 9급 국립 공채에 합격해 내가 첫 발령을 받은 곳은 성북구 동소문 동사무소였다. 서너 달 근무를 하는 동안 남성 위주의 조직 체계로 일관된 우리 나라의 공무 체게로 인해 내게는 갈등이 찾아왔다. 내가 아는 한 분은 금성사에 자리가 있다며 입사를 권했다.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다시 혜경이를 만났다. "글쎄. 내 생각엔 기업에서 일한다는 건 개인(사장)의 이익 추구를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 같아. 하지만 공무원은 시민 전체를 위한 것이면서 또 너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잖니. 어느것이 인생에 더 큰 보람이겠니?" 그후에도 직장 생활의 어려움은 어김없이 내게로 찾아들었다. 하지만 남성에게 결코 뒤떨어지지 않으리라는 각오로 버거운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친구 혜경이의 말이 내가 뒤로 물러서지 않는데 큰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서울시청 첫 여성 감사 담당관)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 김영섭 저문 날의 문턱에 서서 젊은 날을 회상한다는 것은 바쁜 일상을 떠나 잠시 여유를 갖는 일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젊은 날의 초상이 장밋빛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어서 한 마디로 젊은 날이 좋았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서울의 모 법과대학을 다닐 때 박정희 씨의 대통령 3선 출마를 위한 개헌안에 반대 운동을 하다가 용공 혐의로 수배받은 적이 있었다. 결국 경찰에 자진 출두하였지만 어린 나이에 데모 주동을 한 탓에 배후를캐려는 혹독한 조사를 받게 되었고 학교에서는 정학 처분이 내려졌다. 그 시련의 시간에 나는 학업을 중지하고 모 무역회사 디자인실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후 2년 뒤 전공을 바꾸어 신설된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제1회 학생으로 입학하였다. 대학을 다니면서 가정 사정으로 야간에는 회사에 다니는 생활을 4학년 때까지 계속했고 학교의 서클 활동에도 열심히었다. 그때 나의 은사님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윤일주 교수님이셨다. 당시 학회장이었더 내가 다방면의 일에 관심을 갖고 생활하는 것을 보고 그분은 이렇게 타이르셨다. "자기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이 말씀은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갈래의 길이 내 앞에 펼쳐졌을 때 하나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평생의 교훈이 되었다. 고생스러운 건축가의 길을 선택하고 나서 흔들릴 때마다 나는 돌아가신 선생님의 그 말씀을 떠올리며 다시 중심을 잡곤 한다. (교회 건축 전문가)
Board 삶 속 글 2022.05.10 風文 R 529
낭중지추(囊中之錐) / 주머니 속의 송곳. 곧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뜻. 《出典》'史記' 平原君列傳 전국시대 말엽,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동생이자 재상인 평원군(平原君 : 趙勝)을 초(楚)나라에 보내어 구원군(救援軍)을 청하기로 했다. 20명의 수행원이 필요한 평원군은 그의 3,000여 식객(食客) 중에서 19명은 쉽게 뽑았으나 나머지 한 사람을 뽑지 못해 고심하고 있었다. 이때 모수(毛遂)라는 식객이 자천(自薦)하고 나섰다. "대감,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평원군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내 집에 온 지 얼마나 되었소?" "이제 3년이 됩니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囊中之錐]' 끝이 밖으로 나오듯이 남의 눈에 드러나는 법이오. 그런데 내 집에 온 지 3년이나 되었다는 그대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이름이 드러난 적이 없지 않소?" "그것은 나리께서 이제까지 저를 단 한 번도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번에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시기만 한다면 끝뿐 아니라 자루[柄]까지 드러내 보이겠습니다." 이 재치있는 답변에 만족한 평원군은 모수(毛遂)를 20번째 수행원으로 뽑았다. 초나라에 도착한 평원군은 모수가 활약한 덕분에 국빈(國賓)으로 환대 받으면서 구원군도 쉽게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동의어】추처낭중(錐處囊中)
Board 고사성어 2022.05.10 風文 R 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