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잊을 수 없는 사람 벙어리 장갑 - 오성삼 친절한 말은 간단하고 말하기 쉽지만 그 메아리는 아주 오래 간다. - 마더 데레사 해마다 겨울철이 되어 장갑을 낄 때가 되면 나는 곧잘 어느 소녀의 환상에 젖어들게 된다. 난 대학 입학 시험을 앞두고 입학 원서를 사기 위해 수험생들이 교문을 드나들 때면 교문 앞에 서서 대학 입학 시험 문제지를 프린트해 팔던 고학생이었다. 날씨가 몹시 차갑던 날이었다고 기억된다. 그날따라 추위 때문이었는지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내가 팔고 있는 시험지엔 눈길조차 돌리지 않고 입학 원서만 사 갖고 추위에 쫓기듯 되돌아가고 있었다. 바람에 날려가는 시험지를 과목별로 챙기고 있을 무렵, 어느 여학생이 내게 다가와 영어, 국어, 수학, 그리고 가정 모두 네 가지를 집더니 5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놓았다. 거스름돈이 없었다. 500원짜리를 바꾸기 위해 앞쪽 구멍가게에 다녀오니 그 여학생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먼지로 뒤덮인 시험지 더미 위엔 초록색 벙어리 장갑 한 켤레가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 조금 전 500원짜리를 내놓은 여학생의 것임에 들림없었다. 돈을 받아 쥐던 나의 시퍼렇게 얼은 손이 몹시도 애처로워 보인 모양이었다. 벙어리 장갑을 손에 든 나는 마음 깊숙한 곳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수험생들의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도, 입학식장에서도, 그리고 종종 캠퍼스나 도서관에서조차 그 여학생의 모습을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 그런 나의 바람은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아무튼 그해 겨울은 어느 이름 모를 여학생이 놓고 간 초록색 벙어리 장갑 덕분에 따스하게 지낼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두번째 맞이하는 겨울,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지금까지도 나는 그 초록색 벙어리 장갑을 끼고 유유히 교문을 들어서곤 한다. 학생들이나 동료 교사, 심지어는 교장 선생님까지도 웃으시지만 나는 그런 웃음이나 놀림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금년 겨울 그리고 내년 겨울에도, 가능하다면 그 다음다음 겨울까지도 오래도록 이 초록색 벙어리 장갑을 끼리라 다짐한다. (경기도 신흥중고등학교 교사) 진리의 빛을 찾아서 - 김수환 중학 시절 감명 깊은 은사님이 기억난다. 그는 신부님으로 우리에게 신앙에의 반석이 되어 준 분인데 내가 일제 말기에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온 뒤 인사차 모교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 신부님은 나를 반겨 맞으며 말없이 호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보이시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때묻은 내 사진 한 장이 나왔다. 내가 시련의 고비길에서 허덕이는 동안 그분은 나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를 드려 온 것이 아닌가. 평소의 그분의 온정을 피부에 느끼지 못항 나로서는 이름없는 한 제자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밤낮으로 기도해 주신 그 정성에 그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참기 어려웠다. (추기경) 회장님 퇴임하시던 날 - 이영근 어느날 내가 모시고 있던 회장님이 임기가 끝나 퇴임하게 되었다. 마지막 날이 되자 그분은 회사 일의 정리를 모두 끝냈고 개인적인 것까지 말끔히 정리를 마쳤다. 이제는 그냥 사무실을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도 그분은 그냥 앉아서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윽고 퇴근 시간이 되자 그분은 내게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네. 내 마지막으로 자네를 집에까지 바래다 주지." 너무나 뜻밖의 말에 당황하면서 아무리 거절을 해도 그분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그분의 뜻대로 집 앞까지 함께 올 수밖에 없었다.나를 바래다 주고 나서 그분은 아무 말씀도 없이 그냥 가셨다. 마치 이제 나는 내 할일을 다 마쳤다는 표정으로. 그때 나는 깨달았다. 바로 저 마음이야말로 오늘의 저 분을 있게 한 것이 아닌가 하고. 퇴임하는 날까지도 끝까지 퇴근 시간을 지키는정신과 초라한 말단 사원까지도 한 사람의 동료로 사랑하는 마음, 그것에 나는 감동받았다. (주식회사 경방 수출과 근무)
Board 삶 속 글 2022.02.24 風文 R 625
기호지세(騎虎之勢) // 범을 타고 달리는 기세. 곧 중도에서 그만 둘 수 없는 형세. 《出典》'隋書' 獨孤皇后傳 남북조(南北朝) 시대 말엽인 581년, 북조 최후의 왕조인 북주(北周)의 선제(宣帝)가 죽자, 재상 양견(楊堅)은 즉시 입궐하여 국사를 총괄했다. 외척이지만 한족(漢族)이었던 그는 일찍이 오랑캐인 선비족(鮮卑族)에게 빼앗긴 이 땅에 한족의 천하를 회복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차에 선제가 죽은 것이다. 양견이 궁중에서 모반을 꾀하고 있을 때 이미 남편의 뜻을 알고 있던 아내 독고부인(獨孤夫人)으로부터 전간(傳簡)이 왔다.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이므로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일입니다.(騎虎之勢 不得下) 만약 도중에서 내리면 잡혀 먹히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호랑이와 함께 끝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부디 목적을 달성하옵소서." 이에 용기를 얻은 양견은 선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나이 어린 정제(靜帝)를 페하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문제(文帝)라 일컫고 국호를 수(隋)라고 했다. 그로부터 8년 후인 589년, 문제는 남조(南朝) 최후의 왕조인 진(陳)나라마저 멸하고 마침내 천하를 통일하였다. 周나라의 宣帝가 돌아가심을 당하여, 高祖인 文帝가 조정에 들어가서 백가지 일을 총괄하고 있었다. 독고황후는 사람을 시켜 高祖에 일러 말하기를, "대사는 이미 그러한 것이니, 호랑이를 탄 형세로 내려 올 수가 없으니, 이것에 힘쓰라." 當周宣帝崩 高祖入居禁中 總百揆 后使人謂高祖曰 大事已然 騎虎之勢 不得不勉之. 【원 말】기수지세(騎獸之勢) 【유사어】기호난하(騎虎難下)
Board 고사성어 2022.02.24 風文 R 898
발음의 변화 글자는 말을 담는 그릇이다. 그래서 맞춤법에는 말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발음이 변하면 고민이 생긴다. 맞춤법을 고칠 것인가? 아니면 발음과 맞춤법의 일정한 차이를 인정하고 말 것인가? 발음이 달라졌다고 맞춤법을 대폭 고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충분히 교육받은 사람들’을 삽시간에 문맹자 비슷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덟’이란 단어는 자음 앞에서는 [여덜 사람]처럼 발음하고, ‘사람 여덟이 모여서’라는 문장에서처럼 모음이 오면 [여덜비]라고 발음하는 게 옳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것까지 [여더리]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흔하다. 어느새 ‘ㅂ’ 받침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닭’이란 단어도 좀 복잡해졌다. ‘암탉’과 ‘수탉’은 모음 [이]가 뒤에 붙으면 자연스레 발음이 [암탈기]와 [수탈기]가 된다. 그런데 비교적 최신 합성어인 ‘통닭, 불닭, 옻닭’에다가 모음 [이]를 붙이면 거의 대부분이 [통다기], [불다기], [옫따기]라고 하지, [통달기], [불달기], [옫딸기]라고 발음하지 않는다. ‘칡’도 이제는 주로 [치글 캐다]라고 하지 [칠글 캐다] 같은 ‘표준 발음’은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진다. 주로 겹받침 단어에서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 같다. 발음만이 아니다. ‘내가 할게’도 눈에 띄게 ‘-할께’라고 적는 사람이 많아졌다. 문자를 사용해온 역사가 깊은 다른 언어에서는 언어 변화에 굳이 맞춤법을 따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대신에 좋은 사전을 만든다. 사전을 활용하면서 모범적인 발음과 의미의 분화, 그리고 용법을 익히는 것이다. 맞춤법과 발음이 일치하는 경우는 보통 갓 태어난 맞춤법, 즉 맞춤법의 역사가 얕은 경우에나 가능하다. 그래서 좀 불편한 진실이지만 국어 공부는 평생 하는 것이다. 한번에 책 하나 떼고 작별하는 공부가 아니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 망언과 대응 ‘망언’이라는 말은 간결한 뜻매김이 쉽지 않다. 대개의 사전에서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라든지 ‘망령된 말’, ‘정상을 벗어난 말’과 같이 퍽 ‘감정적’인 표현을 그 뜻풀이에 사용한다. 곧 ‘뜻풀이’만 들어서는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고 무언가 감성 체험을 해보아야 비로소 말뜻이 이해 가능하다. 매우 복잡한 감성이 얽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들어 이 말의 쓰임새가 조금 더 넓어졌다. 미인으로 유명한 연예인이 ‘미모에 콤플렉스가 있다’고 말해서 ‘망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든지 하며 그 말의 느낌이 가벼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망언이라는 단어와 밀접한 사람들은 역시 정치인들이다. 정치 생태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셈이다. 망언은 듣는 사람의 속을 뒤집어 버린다. 문제는 그 분노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워낙에 근본적인 윤리감각을 뒤집어 버리기 때문에 합리적인 설명 자체를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니 동일한 망언이 계속 반복되면 사실 대책이 없다. 국내 정치인들의 망언에는 투표로 심판할 수도 있건만 외국 정치인들의 발언이면 손을 쓸 수도 없다. 생각해보면 화를 내서 해결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발언 내용을 ‘합리적으로’ 그리고 ‘냉정하게’ 반격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로 망언을 일삼으면 그들의 군 조직이 성노예 혹은 성매매와 어떤 동업 관계에 있었는지를 거론해야 하고, 그들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문제 삼아야 한다. 그래서 ‘합리성의 지배’라는 대원칙을 더 강하게 지켜야 한다. 급하게 화내는 사람보다 질기게 논쟁을 벌이는 사람이 이길 가능성이 더 높다. 아무리 화가 나도 망언이라고 목청을 돋우기 이전에 어떤 원리를 적용하는 게 유리한지를 냉정하게 살피는 지성이 더욱 필요하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왜 벌써 절망합니까 - 정문술 사업은 외로운 예술창작이다 - 창조 경영 경영하지 않는 경영자들 2년 전, 인간개발연구원에 있다는 한 지인(지인)이 날 찾아왔다. 인간개발연구원에서 매주 한번씩 경제인 조찬모임을 하는데 다음 회에 나더러 강사로 와달라는 것이다. 얼핏 들으니 그럴 듯 했지만 사실 배운 것도 짧고 말도 못하는 내가 그런 곳에 갔다가 무슨 망신을 당하랴 싶어서 처음에는 정중히 거절했다. "잘 모르시나 본데, 다른 분들은 이 자리에 초청되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미래산업 정 사장님께서 나와주신다면 모두들 아주 좋아할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그런 분들 앞에서 감히 무슨 말을 하겠소." "사장님께서 겪어오신 이야기나 경영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점 같은 것들을 그냥 편하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하도 간곡하게 부탁하는지라 별 수 없이 승낙은 했지만 사실 남들 앞에서 강사연하며 서본 적이 없는 인생이라 저으기 걱정이 되었다. 더구나 인간개발연구원 회원으로 있는 내 친구가 소문을 듣자마자 나를 들볶아대기 시작했다. 강연도 처음이고 그런 자리도 처음이다 보니 혹시나 실수해서 무안이나 당하지 않을까 싶어 자기가 지레 안달이 났던 것이다. 나름대로 충고를 한답시고 하도 법석을 떠는 통에 도움은커녕 나는 더 초조해졌다. 막상 당일 아침에 가보니 사회를 봐야 할 연구원장은 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나를 무시하는 태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를 섭외 했던 사람이 원장한테 잔소리를 좀 들었던 모양이다. 돈 좀 벌었다고 아무나 강사로 초빙하면 이 모임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말이다. 사실 그곳 강사로 초빙되는 사람들은 내로라 하는 정계, 재게 거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쨌든 원장이 하도 오지 않으니 급하게 다른 사람이 나와서 허둥지둥 사회를 보았다.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지만 이왕 허락한 것이니 최선을 다하리라 작정하고 마이크를 잡았다. 유식한 소리라곤 애초에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들이라고는 그 동안 기업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과 그로부터 얻었던 대단치 않은 깨달음 들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체계적으로 이야기할 줄 모르는 나는, 육두문자까지 마구 섞어가며 되는대로 떠들 수밖에 없었다. 강연 도중에 자꾸만 사람들이 웃길래 나는 속으로 '비웃는구나' 하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강연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놀라운 일이었다. 강연 도중에 도착한 연구원장은 나중에 나를 찾아와서 진심으로 자신의 무례함에 대해 사과했다. "강연 정말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재미도 있었구요. 이래봬도 벌써 9백 회가 넘은 조찬강연입니다. 그런데 오늘처럼 기립박수가 터져나온 건 정문술 사장님이 꼭 세 번째랍니다." 그때 내게 쏟아지던 기립박수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것은 내가 가진 현장성 내지는 진실성에 대한 환호였다. 나주에 알고 보니 이 모임에서 하는 강연이란 것이 그저 그런 점잖은 소리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람이 바뀌어도 강연의 주제나 성격 역시 반복되는 것이 많았다. 정치인이나 행정관료가 나오면 보통 정책설명이 강연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마저도 해당관청의 자료를 보거나 신문만 신경 써서 읽어도 금세 알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경영인들이 강사로 나와도 사실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살아 있는 소리라기보다는 대개 비서실에서 작성해준 원고를 읽게 마련이었다. 그런 점잖은 자리에서 내가 앞뒤 없이 마구 떠들어대었으니 사람들이 재미있어 할 수밖에. 요즘도 나는 한 달에 몇 번씩이나 각종 모임과 회합에 초청을 받는다. 그렇지만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거절하거나 은근슬쩍 무시해버리고 만다. 관청에서 소집하는 기업정책 세미나에도 가급적이면 불참한다. 정 들어두어야 할 내용이라면 나중에 녹음 테이프를 구해서 듣는다. 무슨 특별한 의도가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재미가 없고 지루하기 때문이다. 물론 경영일선에서 일하다 보니 여러 가지 사정상 울며 겨자 먹기로 참석해야 할 때가 없지는 않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항상 봐야하는 단골손님들이 있다. 무슨 무슨 유명 짜한 모임이라며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서 수선스럽게 악수하기 바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거의 노골적이다. 강사에게 질문하는 것을 빌미로 강사를 어떻게든 자신의 비즈니스에 엮어보려고 하는가 하면, 강연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명함 도리기에 정신이 없다. 이런 사람들은 참 보기가 싫다. 정치계도 마찬가지겠지만 경제계에도 수많은 조찬모임이니 연합회니 하는 것들이 있다. 나도 그런 모임에는 몇 번 연사로도, 방청객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실지로 유용하게 활용될 귀중한 정보를 그런 모임을 통해 얻는 경우도 많다. 다마 s서로 얼굴이나 익혀두었다가 필요할 때 득이나 보자는, 일종의 사교모임 같은 자리들이 불만이라는 것이고, 멀쩡한 정보 세미나를 그런 식으로 변질시키는 얄팍한 비즈니스맨들이 보기 싫다는 것이다. 그런 경영자들을 보면 어쩌며 그토록 한가할 수 있는지 신기하게만 여겨진다. 물론 그들에게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이게 다 비즈니스고 사업이다'라고 말이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무슨 비즈니스가 경제현장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이런 자리에서 이루어져야 하는가 말이다. 간혹 얼굴과 손목으로만 장사하려는 경영자들이 있다. 그 집안이야 들여다보지 않아도 뻔하다. 그들에게 관심 있는 것이라면 기껏해야 정부지원금이나 정책정보 나부랭이들일 것이다. 덩치만 크고 속으로는 잔뜩 곯아버린 껍데기 기업들의 일용할 양식이 보통 그런 것들 아니었던가. 나는 정책과 특혜 좋아하다간 기업 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1980년대 중반에 '수입선 다변화 정책'이란 것이 시행되었다. 쉽게 말하자면 외국제품을 목록별로 분류해서수입을 규제하고,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들의 내수경쟁력을 키워주겠다는 내용이다. 신청만 하면 눈엣가시 같던 외국경쟁사 장비들을 이 땅에서 몰아 낼 수 있는 모처럼의 호기였다. 나는 '수입선 다변화 정책'을 거부했다. 가장 먼저 고객이 불편해질 것이 뻔한 노릇이기 때문이다. 외국의 장비가 훨씬 뛰어나다면 당연히 외국의 장비를 써야지, 애국한답시고 엉터리 국산 장비를 울며 겨자 먹기로 쓰다간 생산성도 떨어지고 국가경쟁력도 떨어질 것 아닌가. 내가 돈을 벌 수는 있겠지만, 고객들에게 욕을 먹는 것 또한 나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국산 장비만을 보호하다 보면 점차로 신기술의 공급선을 끊어지게 마련이다. 외국의 좋은 장비들이 적당히 들어와야 그들의 기술도 배우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당장 코앞의 이익 때문에 그들을 모두 몰아낸다면 그대로 '우물안 개구리'가 되는 수밖에 없다. 경쟁하지 않는 기업은 낙오될 수밖에 없다. 외국장비들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면 기업은 당연히 안일한 태도를 갖게 될 것이다. 경쟁이 없는데 무슨 기술개발을 하며 경쟁력을 키우겠는가. 정책은 영원하지 않다. '수입선 다변화 정책'이 무너지면 기업도 무너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나는 나의 선택 덕을 보고 있다고 자부한다. 미래산업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 정도의 기술력과 자금력을 가질 수 있게 된 데에는 그때의 '거부'가 한몫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호받지 않고 정면으로 덤비는 용기가 경영자들에게는 필요하다. 그래야 보호가 끝나더라도 기업이 죽지 않는다. 내게 쏟아지던 기립박수의 의미는 내가 가진 현장성 내지는 진실성에 대한 환호였다. 간혹 얼굴과 손목으로만 장사하려는 경영자들이 있다. 그 집안이야 들여다보지 않아도 뻔하다. 그들에게 관심 있는 것이라면 기껏해야 정부지원금이나 정책정보 나부랭이들일 것이다. 보호받지 않고 정면으로 덤비는 용기가 경영자들에게는 필요하다. 그래야 보호가 끝나더라도 기업이 죽지 않는다. 경영은 창작이다 나는 미술품 애호가다. 미술품을 보며 생각 없이 즐기기도 하는 편이지만, 예술 창작행위들과 나의 경영을 비교해보는 버릇도 가지고 있다. 나는 언제나 사업을 예술행위처럼 이해했다. 계산과 원칙보다는 낭만과 열정을 보다 중시했다. 에둘러 돌아가거나 머뭇거리기보다는 맞바로 부딪치고 실험하는 것을 보다 좋아했다. 기업행위는 실로 예술적 창작의 연속이다. 실패의 고통과 성취의 가타르시스에 있어서도 기업행위와 예술은 일맥상통한다. 기업경영은 매우 고독하고 피 마르는 작업이다. 단 한순간을 방심해도 감각을 잃고 둔해진다. 기업가는 예술가처럼 부단히 노력하고 고민해야 하며,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처세로서의 경영이 아닌, 창조로서의 경영이 필요하다. 수입선 다변화 정책을 거부함으로써 단기적인 이익을 포기하고 장기적인 발전가능성을 선택한 것이야말로 '창조적 선택'이었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기업가는 끊임없이 발상을 전환하고 새로운 것을 꿈꿔야 한다. 상상력은 예술가에게 뿐만 아니라 기업가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사업상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나는 간혹 미술잡지를 뒤적이거나 화랑을 둘러본다. 괜한 소리가 아니라 나는 실지로 그림을 보다가 가끔 사업적 영감을 얻는 편이다. 새로운 기법, 새로운 구성, 새로운 색채 등에서 개척자들의 투지와 모험심을 본다. 그를 통해 새로운 용기와 기발한 착상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술창작에서나 기업경영에서 핵심은 창의력이다. 남들과는 다른 무엇을 항상 찾아내고 끊임없이 그것을 추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이다. 창의력을 잃어버린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창의력을 잃어버린 경영자는 종내 도태되게 마련이다. 훌륭한 경영자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예술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는 항상 자신만의 예술적 감각에 따라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 예술창작과 기업행위의 또 다른 공통점은 '항상 최초만이 의미 있다'는 것이다. 모방과 추종, 혹은 2위나 차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최초가 가져다 주는 성과에 비해 너무나 보잘것없다. 미래산업은 얼마 전 액면분할을 시도했다. 우리가 최초로 시도한 액면분할은 전체 주식시장과 미래산업에 엄청난 긍정적 파장을 몰고 왔다. 이후에 액면분할을 시도한 업체들은 모두 미래산업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 최초와 차석의 차이 때문이다. 내가 기술개발에 과도할 정도로 집착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기술개발에서 2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기술개발에서 '최초'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실패다. '벤처 마인드'란 '최초'에 대한 집착과 열정을 뜻한다. 따라서 나는 지금껏 '거꾸로 경영'을 주장해왔다. 모두가 가는 길에 언제나 '최초'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술창작과 경영자의 마지막 공통점은 '돈맛을 알면 퇴보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림을 수집해도 가난한 화가의 초기작들을 수집했다. 그런 그림들에서 나는 고독한 예술혼과 넘치는 상상력을 발견한다. 그러나 미술계에서 자리를 잡고 돈도 벌만큼 번 사람들의 그림은 재미없다. 색채부터 화려해지고 반복되는 매너리즘이 생기는 것이다. 경영에 있어서도 그렇다. 장사하는 사람이 '돈맛'을 모르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경영자들에게는 항상 '헝그리 정신'이 필요하다. 어려운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소위 '성공했다'는 기업가들은 개척하기보다는 '지키기'에 고심한다. 그런 경영자가 운영하는 기업에는 더 이상 발전과 모험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경영은 창작행위다. 창작하는 자가 알량한 돈맛에 취하면 창작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기업행위에 안정은 없다. 기업행위에 성공은 없다. 과정의 아름다움을 아는 자가 진정한 경영자다. 예술창작과 기업행위의 또 다른 공통점은 '항상 최초만이 의미 있다'는 것이다. 모방과 추종, 혹은 2위나 차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최초가 가져다주는 성과에 비해 너무나 보잘것없다. 경영은 창작행위다. 창작하는 자가 알량한 돈맛에 취하면 창작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기업행위에 안정은 없다. 기업행위에 성공은 없다. 과정의 아름다움을 아는 자가 진정한 경영자다.
Board 말글 2022.02.13 관리자 R 20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