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벌써 절망합니까 - 정문술 미래를 창조하는 미래 시장은 언제나 불안하다. 더구나 국경이 의미 없다면 '글로벌 마켓'의 시대에는 지구상의 어떤 변수가 지금 이곳의 물정을 뒤흔들어 놓을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하여 미래산업은 현재 몇 가지 실험을 하는 중이다. 당장은 쓸모 없어 보이지만 가까운 장래에 반드시 필요해질 미래형 산업들을 조용히 준비하는 중이다. 예를 들자면 네트워킹 보안 시스템이다. 온라인 뱅킹이나 네트워크 결재 등은 앞으로 경제사회의 핏줄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네트워킹 보안이다. 더구나 이 영역의 국가적 독립은 매우 시급하다. 미래경제의 근간이 될 분야를 외국기술에만 의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팀의 명칭은 '소프트 포럼 그룹'이다. 현재 8명의 엔지니어가 참여하고 있다. 이곳의 팀장은 학창시절에 '수학계의 풀리지 않는 6가지문제'중 하나를 호주의 어느 수학자와 동시에 해결해서 주목을 받았던 사람이다. 현재는 암호학의 메칼 알려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회사의 지원 아래 박사학위를 준비하고 있다. 그곳에서도 별 무리 없이 분당의 연구팀을 주도하고 있다. 역시 네크워킹의 놀라운 힘이다. 올해 초에는 드디어 시험제품을 내놓아 판매에 들어갔다. '원스 아이디 카드 시스템(Once ID Card System)'이라는 것으로, 쉽게 설명하자면 매번 사용할 때마다 1회용 암호를 발생하는 보안장치다. 네트워크 뱅킹 서비스를 보완하는 데 필요한 제품이다. 관공서와 은행들에서 현재 도입을 검토 중인데 꽤 긍정적인 반응들을 보이고 있다. 초기부터 128비트 암호 솔루션을 개발해서 업계와 학계의 주목을 받았는가 하면, 1996년에는 국내 최초의 인증기관인 'SFCA'를 운영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 문서보관 시스템, 전자지갑 등 미래형 금융에 필요한 보안패키지를 계속 개발 중에 있다. 그 외에도 디스플레이 장치인 LCD 검사장비를 개발하는 팀과 반도체 장비 중 테스터 분야만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팀도 운영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기업다각화는 일종의 실험이다.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려는 헛된 욕심이 아니라, 다가오는 미래를 능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해 오늘 조심스레 뻗어보는 더듬이 같은 것이다. 작년에 어느 부서 과장이 개인면담을 신청한 일이 있다. 당연히 업무상담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막상 마주앉아 들어보니 재미있는 사연이었다. "저, 사장님, 난감한 일이 생겨서 말입니다." "무슨 일?" "제 아들 놈 학교에서 숙제를 내줬는데 글쎄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의 사훈을 적어 오라고 했다네요." "음, 그거 문제로군." 그때부터 두 사람은 학교숙제용 사훈 만들기에 들어갔다. 워낙에 사훈이란 것이 없었던 회사인지라 얼른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생각해낸 것이 '우리는 미래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창조하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그 문장을 대외용 카피로 곧잘 쓴다. 미래를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로 두려운 것이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미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기에 미심쩍어 하면서도 점집을 다니고 미래서(미래서)도 뒤적이고 하는 것이리라. 나 역시 하루 앞을 모르기에 언제나 전전긍긍하는 가엾은 중생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내다보려 하고 준비하려 한다. 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저 넋놓고 안일하게 앉아 있는 것은 내게 죄악이다. 나는 그 카피를 좋아한다. 미래산업은 언제나 미래를 기다리지 않고 창조해왔다. 물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윈스 아이디 카드 시스템(Once ID Card System)'이라는 것으로, 쉽게 설명하자면 매번 사용할 때마다 1회용 암호를 발생하는 보안장치다. '우리는 미래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벤처기업 증후군 풍수가 좋다고들 하지만, 정말 우리나라에는 인재가 많이 난다. 해외의 유수한 기업체나 연구소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보면 절로 어깨가 으쓱해지고 목에 힘이 들어간다. 환경만 조성된다면 어디에 가도 한가락씩 하게끔 되어 있다. 우리 민족이 워낙에 낭만적이면서도 저돌적인 데가 있다. 끈기가 승부근성은 우리를 따라갈 민족이 없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모처럼 생겨난 인재들이 덧없이 시들고 만다. 환경이 그렇게 되어먹었기 때문이다. 주변을 보면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현실로 전환시키고 유지하는 데에는 안타까울 만큼 허약하다. 물론 끈기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한 무형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고 환경을 조성해주는 사회적 안목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인큐베이터가 필요한 것이다. 해외선진국들은 인재 인큐베이터 시스템이 훌륭하게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끝까지 제대로 자라나는 인재들이 생겨나지만, 그런 점에서 우리 실정은 매우 비관적이다. 앞에서 마한 벤처육성책만 해도 그렇다. 재기 발랄한 인재들은 항상 무엇인가를 시작하고 추진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너무 숫자를 좋아하고 그래프를 좋아한다. 하나라도 제대로 밀어주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그러나 일방적으로 환경 욕만 할 수 없는 것은 요즘의 허황한 '벤처붐'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기업만화라는 것을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아니면 남의 밑에서 일하기 싫어하는 자유주의적 세태 때문일까. 어쨌든지 간에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라면 너무나도 벤처창업을 한답시고 난리다. 대량실업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서점엘 가도 소호(SOHO)니 아이피(IP)니 하는 소자본 창업 매뉴얼과 각 벤처경영서들이 지천이다. 각 대학 이 공부에는 벤처포럼도 결성되어 대학생 창업 붐에 일조하고 있다. 이러다가 정말 국민 전체가 '사장님'이 될 판이다. 무엇이든 해본다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 적인 필요의 충만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일종의 허영심과 유행의 열병에 의해서라면 문제다. 하나의 회사를 만들어서 멀쩡하게 굴러가도록 만드는 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통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할 텐데 말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괜찮은 소프트웨어 하나 개발했다 싶으면 곧바로 창업부터 하려고 한다. 얼핏 보면 뜻있고 재능 있는 젊은이들을 도와줄 호의적인 손길들이 많은 것 같지만, 막상 세상에 뛰쳐나와 보면 그것이 얼마나 껍데기뿐인 호의인 줄을 금세 알게 된다. 창업하자마자 '눈먼 돈'부터 찾느라 혈안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니 망한 다음에 환경 탓이나 하지 말고 스스로 버틸 수 있는 자신과 여건이 마련된 자들만 창업하라는 것이 내 조언이다. 철없는 정책바람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신중하게 냉정해지라는 것이다. 인내와 노력 없이는 모험도 없다. 벤처기업이란 허황하고 철없는 기업이란 뜻이 아니다. 창업에 앞서 진정한 '내 것'을 과연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스스로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망한 다음에 환경탓이나 하지 말고 스스로 버틸 수 있는 자신과 여건이 마련된 자들만 창업하라는 것이 재 조언이다. 철없는 정책바람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신중하고 냉정해지라는 것이다.
Board 말글 2022.05.17 風文 R 2070
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잊을 수 없는 사람 항상 깨끗하게 공정하게 하라 - 차범근 축구 선수들에게 '벤치'는 정말 달갑지 않은 곳이다. 아무리 후보 선수라고 해도 자신의 능력이 모자라 경기장에 못 나간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선수는 거의 없기 때문이고 감독들에게 있어서 벤치는 늘 '문제의 소굴'이기도 하다. 내가 선수 생활을 마치고 지도자의 길로 들어설 때, 지금은 FIFA(세계축구연맹)의 기술위원장을 맡고 계신 전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리누스 미쉘 선생님의 말씀하셨다. "선수 관리는 항상 깨끗하고 공정하게 하라." 이것이 안되면 감독은 결국 자신의 무덤을 파게 되는 것이라고 그분은 거듭 일러주셨다. 귀국해서 프로팀을 맡았을 때, 기득권을 가진 선수들에 대한 배려 없이 과감하게 능력대로 선수 선발을 시도했다. 한국 축구의 질적 향상과 젊은 선수들에 대한 동기 부여로 활기를 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노장인데..." "내가 국가대표 선수인데..."하는 기득권층의 반항은 생각보다 거셌다. 그러난 2년 정도 지나자 "우리 선생님은 선수를 기용하는 것만큼은 확실하다"는 얘기가 선수들 사이에서 술술 나오는 것 같았다. 보잘것없이 보이는 집단이라 할지라도 지도자가 공정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미쉘 선생님의 충고. 지금도 나에게는 변할 수 없는 윈칙이다. (한국 월드컵축구 대표팀 감독) 훌륭한 연기는 인격이 앞선다. - 안성기 지난 80년대는 내게 여러모로 행운을 가져다 준 시기였다. 지금의 내 아내와 결혼하여 가정도 꾸몄고, 전에 없이 좋은 영화들을 만날 수 있었던 덕택에 굵직한 상도 몇 개 맏았으며 차츰 영화인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던 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나의 마음속에는 '과연 훌륭한 배우는 어떤 배우일까'하는 물음이 생겼고,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나는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우연한 기회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최인호 형의 원작인 (깊고 푸른 밤)에 캐스팅 되어 촬영을 하고 있었다. 여관방에서 밤새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감독과 형에게 가끔 먹을 것을 사 들고 가서 일돋 도와 주고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최인호 형이 내게 이렇게 물었다. "모든 일에 있어서 기술적인 것보다는 인격적인 것이 앞선다고 생각해. 영화도 마찬가지야. 좋은 사람이 좋은 연기를 하고 좋은 영화도 만들 수 있는 거지." 바로 그 말이 내게 해답을 주었다. 육체와 마음이 건강해야 살아 있는 연기를 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작품을 빛낼 수 있는 것이다. 훌륭한 인격자가 바로 훌륭한 배우의 밑거름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해준 말이었다. (영화배우) 덮개를 걷고 홀로 서기 - 이창호 '천재 소년 기사' '홍안의 승부사' '무서운 10대'... 내 이름 앞에는 늘상 과분한 별칭이 붙어 다닌다. 어려서 바둑계에 입문한 탓인지 선배님들 곁에서 가르침도 많이 받았고, 그래서 '승부의 세계'에 발을 디뎠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음 고생 한 번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만큼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지내 온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 따뜻한 관심이긴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내 자생력을 더디게 하는 벽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비록 따뜻한 덮게일망정, 그것을 조심스레 걷어내야 할 때가 아닌다 싶다. 그 제일보로, 초등학교 2학년이던 코흘리개 꼬마를 제자로 거두어 바둑의 묘미를 일러주신 스승님 곁을 떠나 홀로 설 결심을 하고 있다. 아직은 기량도 힘도 부족하지만, 오로지 땅에 디딘 내 두 발을 버팀목 삼아 우뚝 서려고 한다. 그리하여 국내 바둑계뿐만 아니라 세계 바둑의 아성을 한 귀퉁이라도 '기사 이창호'의 이름으로 허물고 싶다. 스승님께선 허허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이제야 너와의 싸움을 시작했구나. 너를 이겨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거란다." (바둑 기사) 필름에 세상의 참모습을 - 변영주 내가 영화에 미치게 된 것은 순전히 아버지 때문이다. 영화광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본 영화들은 대부분 프란츠 랑, 데이비드 린, 존 포드의 작품들이었다. 본격적으로 영화 제작에 관여하게 된 것은 4학년 때였는데, 나는 주로 여성을 주제로 한 기록 영화를 만들었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마음놓고 일할 수 없는 어느 산동넨 아주머니, 자신의 꿈을 잃어버린 성폭력 피해자,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웃음을 파는 매춘부들... 최근엔 강제 종군위안부로 고향 땅에도 가보지 못하고 임종을 맞이하는 정신대 할머니들의 삶을 필름에 기록했다. 첫 시사회 때 할머니들은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 이 영화 속에 우리가 살아 있으니"라고 하시며 모처럼 즐겁게 웃으셨다.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믿는 나에게 기록 영화는 이처럼 너무도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나는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기를 꿈꾼다. 여성이란 이름으로, 정의란 이름으로, 그리고 자유와 평등이란 이름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돈 못 버는 삼류 감독'이라고 흉을 보시지만 어려울 땐 가장 든든한 후견인이 되어 주시는 아버지의 뜻에 보답하기 위해, 오늘도 나의 두 눈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향한다. (영화감독) @ff
Board 삶 속 글 2022.05.17 風文 R 769
도원결의(桃園結義) / '의형제를 맺음'이란 뜻. 出典》'三國志演義' 전한(前漢)은 외척(外戚)에 의해 망했고 후한(後漢)은 환관(宦官)에 의해 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후한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은 황건적(黃巾賊)의 봉기에서 찾을 수 있다. 문란한 국정에 거듭되는 흉년에 백성들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여 태평도(太平道)의 교조 장각(張角)의 깃발 아래로 모여 들어 누런 수건을 머리에 두른 도적떼가 되었는데 그 수는 무려 50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를 진압하기 위한 관군은 이들 난민들 앞에서는 너무도 무력했다. 당황한 정부에서는 각 지방 장관에게 의용병을 모집해서 이를 진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유주(幽州) 탁현에서 의용군 모집 공고문을 본 유비(劉備)는 나라 걱정에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때 유비를 끄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장비(張飛)였고, 그 다음에 관우(關羽)를 만났다. 그들 셋은 주막에 가서 술을 마시며 서로 나라 걱정을 하다가 의기가 투합하여 나라를 위해 함께 일어서기로 결심을 했다. 장비의 요청(要請)으로 그의 집 후원 복숭아밭에서 세 사람이 의형제(義兄弟)를 맺고 천하를 위해 일하기로 맹세를 했다.[桃園結義]이어서 세 사람은 3백 명의 젊은이들을 이끌고 황건적 토벌에 가담하게 되었고 그 후, 제갈공명을 군사로 맞아들여 유현덕(劉玄德)은 조조[魏], 손권[吳]과 함께 촉(蜀)나라를 세워 삼국시대를 이루었다.
Board 고사성어 2022.05.17 風文 R 852
외국어 선택하기 오랫동안 사람들은 이 세상에 우수한 언어와 열등한 언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들의 것보다 열등해 보이는 언어를 멸시하거나 구박했다. 이른바 우월한 언어란 국제 관계 속에서 여러모로 유리한 지위를 확보한 나라의 말이었다. 언어에서 이러한 ‘우월’과 ‘열등’ 분류 방식이 무너진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오늘날은 언어의 질적인 우열은 없다는 것이 상식이 되어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는 뭔가 그럴듯한 언어와 보잘것없는 언어가 분명히 갈라져 있다. 곧 특정 언어에 대한 호오가 분명히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언어의 우열이 아니라 이익의 문제이다. 어떤 언어가 더 이익이 나느냐의 문제라는 말이다. 개인에게 어떤 언어를 배울지 선택하게 하면 모두 더 유리한 하나의 언어만을 선택하게 마련이다. 보통 선호되는 외국어는 언어 시장에서 가장 잘 알려진 명품으로 인식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외국어 시장은 영어가 독점하다시피 한다. 다양한 언어가 진열대에 오르지도 못하고 고객의 선택권 밖에 있다. 외국 서적을 파는 곳에서도 주로 영어 책만 보일 뿐 독일어나 프랑스어나 스페인어로 된 책, 또 이웃의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책들도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우리의 지식과 정보에는 ‘쏠림’이 심각하다. 이런 심각한 중독 현상은 어떤 외국어를 배울 것인가를 시장의 흐름에 맡겨 버렸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정부와 학계가 함께 고민해서 해결해야 한다. 각 개인의 선호 언어와 사회적으로 필요한 외국어를 조화롭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 이 세계에는 참으로 다양한 지식과 관점이 풍부하게 널려 있다. 모든 구성원이 이러한 것을 골고루 받아들여 함께 사회적인 지혜를 꽃피울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영어 절대평가 외국어를 잘 가르치는 일도 그리 쉽지 않지만, 외국어 능력을 정확하게, 정밀하게 평가하는 것은 훨씬 더 까다로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미래에 큰 영향을 주는 대학 입시에서 외국어 시험을 출제하고 평가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고통스럽고 이론적으로도 매우 고민스러운 작업이다. 외국어 학습, 구체적으로 영어 공부 같은 것은,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 ‘환경’이 더 큰 역할을 하기에 문제가 많다. 다시 말해서 영어 원어민과 접촉을 많이 할 수 있으면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것을 그 외국어에 ‘노출’된다고 말한다. 외국어에 노출시키는 것은 학습자 개인의 노력보다도 부모의 경제력에 의존하기 쉽다. 이것은 ‘교육적’으로는 매우 큰 문제가 된다. 부자들에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그저 책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외국어 학습의 기본이었다. 이럴 때는 부모의 경제력 차이가 영어 능력 향상에 그리 강하게 투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말하는 능력’을 중시하면서부터 이렇게 교육 외적인 요소가 더 강한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또 ‘실제로 말하는 능력’에는 지능이나 지식의 영향보다는 감성과 교감 능력이 크게 작용한다. 그러다 보니 자칫하면 지적인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부모의 재력을 평가하게 될 위험성이 크다. 다음번 수능시험에서부터는 영어 과목이 절대 평가로 바뀌게 되었다. 다행히 합리적인 대안을 찾은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고교 영어 교육이 무한 경쟁으로 튀어나가지 못하게 안전장치를 단단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고등학교에서는 기초를 탄탄하게 하도록 하고 대학에서의 ‘전문 영어’는 더 강화해야 한다. 전문 영어는 상대적으로 환경의 영향을 덜 받는다. 오히려 전공 분야에 대한 열정이 더 큰 영향을 끼친다. 훨씬 교육적이라고 할 수 있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