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함께 사는 삶 지게꾼 아저씨 - 한계숙 바로 어제였다. 짐을 운반할 일이 있어서 용달차를 부르려니까 다 나가서 없단다. 할 수 없이 지나가는 빈 용달차라도 잡으려고 큰 길가로 나가니까 그곳에서 늘 짐을 지곤 하는 지게꾼 아저씨가 앉아 게셨다. 그와는 별로 얘기를 해본 적도 없이 오가며 그저 얼굴이나 익힌 사이였다. "아저씨 용달차를 못 구해서 그러는데요. 제법 큰 짐인데 청계천 2가까지 가주실래요?" 아저씨는 선뜻 응했다. 가을 햇살이라고 해도 한낮의 햇살은 따가웠다. 빈 몸으로 걷는 나도 등에 땀이 배는데 저 아저씨는 얼마나 더우실까 싶어 나는 마음속으로 수고비를 후하게 작정하고 있었다. 한 시간은 족히 걸려 목적지에 닿아서 수고비를 드리려고 손지갑을 열려니까 그 아저씨는 황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돈은 무슨 돈이요. 서로 얼굴 아는 처지에, 처음으로 짐 한 번 져 드렸는데 그냥 두슈." 아저씨는 한사코 돈을 마다하시고는 일거리를 찾아 훌훌 인파 속으로 사라져 가셨다.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거주) 정직한 이들의 달 - 김승옥 응급치료실의 문이 활짝 열린다. 땀과 피로 걸레처럼 젖은 가운을 입은 의과 대학생이 들것을 무겁게 들고 비틀거리며 달리다시피 들어온다. 들것 위에는 대학 교복을 입은 한 젊은이가 입으로 피거품을 가쁘게 뿜어내며 꿈틀거리고 있다. "중상입니다. 치료대는 어디 있어요?" "치료대가 모자라요. 우선 중환자실로, 이쪽으로 오세요." 땀투성이의 간호사가 쉰 음성으로 말하며 벌써 앞장서 달린다. 사실, 그다지 좁지도 않은 치료실 안은 먼저 실려 온 총상자들로 꽉차 있다. 거의 모두가 스무 살 안팎의 대학생들이다. 그들의 옷에 묻어 온 화약 냄새와, 그들의 상처에서 솟아나는 피와, 그들의 고통스런 비명과 신음 그리고 긴장할 대로 긴장해 있는 간호사들과 의사들의 바쁜 손길로 치료실은 꽉차 있는 것이다. 데모 군중들의 함성과 합창소리 그리고 그 우렁찬 소리들을 침묵시키고야 말겠다는 듯 쉬지 않고 쏘아대는 경찰들의 총소리가 이 수도육군병원 복도에서도 만져질 듯 가까이 들린다. "야단났어요. 부상자는 자꾸 들어오는데 손이 모자라는 건 손만이 아녜요. 피가, 피가 모자라서 큰일났어요. 더 이상 부상자가 늘어나면 수혈도 못 시켜 보고 죽일 것 같아요. 부상자가 많겠죠?" 금방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은 음성으로 간호사가 말한다. 수술실에서는 수술 도중에 죽은 부상자가 흰 시트에 덮여 실려 나오고 다른 부상자가 실려 들어간다. "벌써 열한 명이 수술 도중에 죽었어요. 수술 받은 부상자 중에서도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은 명 명밖에 안 될 거예요. 수술받아 보지도 못하고 죽은 학생들도 있어요. 미쳤어요. 모두 미쳤어요. 왜 데모를 하구 또 왜 총을 쏘아 아까운 젊은이들을 죽이는지. 모두, 모두 미쳤어요." "학생들은 미치지 않았어요." 들것에 실려 가고 있는 절은이가 피거품과 함께 띄엄띄엄 말을 토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배웠어요. 부정한 짓을 하면 안된다구. 그래서 선거를 부정으로 한 사람들에게 선거를 공정하게 다시 하라고 말했어요. 그것뿐이에요. 미친 게 아니죠." "말하지 말아요. 말하면 피가 더 나와요." 들것을 들고 가던 의과 대학생들 중 하나가 부상자의 말을 중단시킨다. "이 학생, 데모 주동자인가요?" 간호사가 의과 대학생에게 묻는다. 들것 위의 젊은이는 고개를 젖는다. 그리고 말한다. "학교 교과서가 주동자예요. 부정을 그냥 보고만 있는 것도 부정이라고 가르치는 교과서가." "말하지 말라니까요. 피가." 중환자실 역시 부상자들의 비명과 신음으로 꽉차 있었다. 거기에 새로운 부상자들이 잇달아 들어오고 있다. 뜨거운 피는 쉼없이 흘러 상처를 틀어 막은 가제 뭉치를 적시고 베드의 비닐커버를 적시고 마룻바닥을 적신다. 간호사가 다시 달려나가서 혈액병을 들고 돌아왔을 때 그 젊은이는 거의 의식을 잃어가고 있다. 수혈하기 위한 차비를 하고 있을 때 그 젊은이가 눈을 뜬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다해 옆 병상의 고등학생 부상자를 가리키며 간호사에게 말한다. "피가 모자란다면서요? 저 학생한테 먼저 수혈해 주세요. 난 나중에." "체혈 지원자들이 많이 몰려왔어요. 피는 부족하지 않을 거예요." "고맙군요. 어쨌든 저 학생부터 먼저." "그렇게 하라고 교과서에 씌어 있던가요?" "예, 그렇게 배웠어요." 젊은이는 미소지으며 말한다. 간호사는 젊은이가 시키는 대로 고등학생의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돌아와서 병상에 붙은 카드를 들여다본다. '김치호. 22세. 서울대학교 문리대 수학과 3학년'이라고 씌어 있다. "김치호 씨는 이담에 정확한 수학 교수님이 되겠어요." 그러나 김치호는 수학 교수가 되지 못한다. 그날, 1960년 4월 19일 밤 열 시에 영원히 뜨지 못할 눈을 감은 것이다. (소설가)
Board 삶 속 글 2022.05.26 風文 R 670
막역지우(莫逆之友) // 아주 허물없는 사이. 《出典》'莊子' 大宗師篇 <莊子>에 똑같은 형식으로 이야기한 두 가지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자사(子祀)와 자여(子輿)와 자리(子犁)와 자래(子來) 이렇게 네 사람은 서로 함께 말하기를, "누가 능히 無로써 머리를 삼으며, 삶으로써 등을 삼고, 죽음으로써 엉덩이를 삼을까? 누가 사생존망(死生存亡)이 한 몸인 것을 알랴! 우리는 더불어 벗이 되자." 네 사람은 서로 보고 웃었다. 마음에 거슬림이 없고, 드디어 서로 벗이 되었다. 子祀 子輿 子犁 子來 四人相與語曰 孰能以無爲者 以生爲背 以死爲尻 孰知死生存亡之一 體者 吾與之友矣 四人相視而笑 莫逆於心 遂相與爲友. 자상호(子桑戶)와 맹자반(孟子反)과 자금장(子琴張) 이렇게 세 사람은 서로 더불어 말하기를, "누가 능히 서로 더불어 함이 없는데 서로 더불어 하며, 서로 도움이 없는데 서로 도우랴. 능히 하늘에 올라가 안개와 놀며, 끝이 없음에 날아 올라가며, 서로 잊음을 삶으로써 하고, 마침내 다하는 바가 없으랴"하고 말했다. 세 사람은 서로 보고 웃으며, 서로 마음에 거슬림이 없고, 드디어 서로 더불어 벗이 되었다. 子桑戶 孟子反 子琴張 三人相與語曰 孰能相與於無相與 相爲於無相爲. 孰能登天遊霧 撓撓 無極 相忘以生 無所終窮 三人相視而笑 莫逆於心 遂相與友.
Board 고사성어 2022.05.26 風文 R 959
보편적 호칭 한 사회를 제대로 유지하려면 서로 말을 거는 방식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뒤집어 말해서 서로 말을 거는 합의된 방식이 없다면 그 사회는 작동 불능이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일 말을 걸기에 불편한 장치가 언어 안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편리하게 개조를 하거나 수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어를 사용할 때 몹시 불편한 것이 ‘호칭’ 문제다. 특히 누구한테든지 두루두루 쓸 수 있는 ‘보편적 호칭’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고위직이나 하위직이나, 남자나 여자나, 누구한테 붙여도 실례가 되지 않을 호칭이 우리에게는 딱히 없다. 이는 남에게 말을 걸 때마다 상당한 부담감을 느낀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까닭은 우리가 현대에 들어서면서 불완전한 ‘언어 현대화’를 한 탓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장 편하게 사용하는 호칭은 주로 가족 관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가족 관계를 넘어서는 ‘사회적 관계’ 혹은 ‘시민적 관계’에서는 적절한 호칭을 못 찾아 ‘저기요’ 같은 말 혹은 그럴듯한 직위를 가리키는 말로 우회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가까스로 문제를 피해 간다. 만일 우리가 누구한테나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적절한 호칭을 만들거나 발견해내면 어떠한 이점이 생길까? 우리에게 보편적 호칭이 생긴다면 남에게 말을 걸 때마다 나이를 포함한 서로의 사회적 위상을 비교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의 직위나 직종을 미리 알아둘 필요도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스트레스 없이 용건을 말하거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효율성 높으면서 마음 편한 사회가 될 것이다. 아마 직책이나 부서가 바뀔 때마다 굳이 새 명함을 만드는 수고도 덜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편하면서도 평등한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될 것이다. 김하수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 번역 정본 번역본을 읽은 사람은 원본을 읽은 사람보다 무언가 실력이 달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만큼 글의 정통성은 번역본보다 원본에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말한다면 모든 문서를 원본으로만 읽을 수는 없다. 또 모든 문서는 불가피하게 ‘번역’되어야 한다. 그래야 광범위한 독자가 생긴다. 어떤 경우에는 원전 못지않은 번역본이 나올 수도 있다. 혹시 원본이 어떤 사고로 사라져버렸을 경우에는 원본 못지않은 가치를 번역본이 가지기도 한다. 5세기 초에 인도계의 혈통으로 태어나 중국에서 불경을 번역한 ‘구마라습’이라는 불경 전문가는 다량의 불경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서유기에 등장해 유명해진 ‘현장 법사’와 더불어 중국어 불경 번역 사업에 가장 큰 공로를 세웠다. 그 이후 불교가 발생지인 인도에서 사그라지며 힌두교가 발전했고, 불경의 권위는 오히려 중국어본에서 더 빛나게 되었다. 기독교 성서도 그 원전은 고대 히브리어와 고대 그리스어 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17세기 초에 나온 영어 성경, 일명 <흠정번역성서> 혹은 <킹 제임스 성서>는 전문적인 성서학자들이 아니라면 굳이 원전을 읽을 필요가 없는, 영어로 된 ‘원전 못지않은 번역본’이다. 그런 것들이 바로 ‘번역 정본’이다. 우리가 수많은 고전 문헌을 번역 없이 접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회를 지혜롭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신뢰할 수 있는 고전 번역의 정본화가 절실하다. 남과 북이 대화의 창을 열고 스포츠와 평화를 위한 만남의 계기를 만든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이참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전 문헌의 공동 번역 작업도 같이 할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이다. 특히 서로 따로 번역해놓은 <조선왕조실록>을 함께 새로 번역하여 공동 번역 정본을 삼을 수 있으면 더욱 값진 일이 될 것이다. 김하수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함께 사는 삶 소아마비 어린이와 매스 게임 - 권도희 수정처럼 파란 5월의 하늘을 바라보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교정에 푸르름이 짙던 몇 해 전 어느 날 오후, 나는 2, 3학년 여학생 이백여 명을 데리고 매스 게임을 지도하고 있었다.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학교에서 마련한 체육대회 준비였던 것이다. 나는 몸이 부자연스런 아이들은 나무 그늘에서 쉬도록 했다. 그중 소안마비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를 저는 애가 유난히 열심히 구경하는 게 눈에 띄었다. 드디어 체육대회날이 되었다. 학부모들이 반별로 모여 선 가운데 갖가지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매스 게임을 얼마나 잘 치러낼 수 있을까만을 생각하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매스 게임 차례가 왔다. 아이들에게 잘하자고 다시 한 번 다짐을 한 뒤, 구령대 위에 올라가 입장 대열을 바라보던 나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매스 게임을 갖추어 입지 않은 학생 하나가 우측 2열 가운뎃줄에 끼여 다리를 절면서 들어오고 있지 않은가. 옆의 아이들을 보며 겨우겨우 매스 게임을 따라하는 그 아이를 지켜보며 나는 매스 게임을 하는 그 몇 분 간이 지겹도록 길게만 느껴졌다. "너는 하지 말랬는데 옷도 안 입고 끼어 들면 어떡하니?" 나는 모처럼 정성들인 매스 게임이 엉망으로 되었다는 생각에 화가 나서 그 아이에게 심한 꾸중을 했다. 그때 곁에서 듣고 있던 그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그 애 엄마가 와서 억지로 넣고 가더군요." 순간 나는 온몸을 엄습해 오는 죄책감을 느꼈다. 자기 자식이 단체 행동에서 빠지는 게 오죽 가슴이 아팠으면 그랬을까. 성한 애들 가운데 유독 부자유스러운 자기 애를 보는 게 괴로웠을 터인데도 끝내 참여 정신을 가르치고 싶었던 그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다니. 나는 우는 아이를 달래서 그 애 어머니를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어머니들을 기쁘게 하자고 마련한 체육대회인데, 그 애 어머니의 마음을 다소라도 흐뭇하게 했다면 까짓 매스 게임이 잘되고 못되고가 무엇이란 말인가. 해마다 어버이날이 오면 그 일이 생각난다. 그토록 꿋꿋한 어머니가 있는 한 그 아이는 어느 건강한 애 못지않게 밝고 건강하게 자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경북 산동초등학교 교사) 사랑의핏줄 - 연관흠 "3락년 2반 담임 선생님 계십니까?" 점심을 막 들고 교무실에 앉아 있는데 누가나를 찾아왔다. 자녀의 성적을 알아보러 온 학부모려니 생각하며 맞아들였다. "저, 심기학의 집안네 형뻘 되는 사람인데, 선생님께 죄송한 부탁을 좀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침울한 표정으로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는 듯이 꺼내 놓는 부탁은 과연 어려운 문제였다. 기학의 어머니가 심장병과 복막염이 겹쳐 스물네 시간 이내에 수술을 받아야 될 처지인데 피가 보족하니 도와 달라는 거이었다. 여러 곳으로 뛰어다니며 AB형 피를 구했으나 갑자기 그렇게 많은 혈액을 구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착하고 성실한 한 학생의 어머니가 죽어 간다고 하는데 어찌 모른 체할 수가 있는가. 나는 힘껏 노력해 보겠다고 대답을 해놓고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과연 스물네 시간 이냉에 4천cc를 구할 수 있을까. 나는 방송실로 가서 마이크를 잡았다. 늘 학교이 방송 일을 도맡다시피 했으면서도 이번엔 흥분한 탓인지 마이크를 잡은 손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학생 여러분, 여러분 친구의 어머니께서 지금 이 순간 무서운 병으로 죽어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고귀한 피로 그 생명을 수해 드립시다." 3분 남짓 방송을 한 후 고뮤실로 들어왔다. 정말 초조했다. 부탁하러 온 그분도 마음이 조이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거렸다. 잠시 후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조그마한 여학생이 들어왔다. 잠시 후 또 한 명, 또 한 명, 무려 백삼십이 명의 학생이 들어왔다. 나는 하나씩 손을 잡아 주며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그중 체격이 크고 건장한 학생 스무 명을 추리고 나머지 학생은 돌려보냈다. 아쉬운 눈빛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사랑스럽게 보였다. 나는 스무 명과 함께 43야전병원으로 갔다. 정밀 검사 결과 적당한 학생은 아홉 명밖에 없었다. 붉은 피가 뽑히는 팔뚝을 바라보며 태연히 웃는 꼬마들. 나는 그들의 모습이 대견하고 기특해 와락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경기도 의정부시 경문중학교 교사)
Board 삶 속 글 2022.05.25 風文 R 6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