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소재정하기 글의 주제와 소재와 구성이 분명하게 결정되어야 글도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 중에서도 소재 선택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재를 잘 선택해야만 주제가 제 모습으로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 소재가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하는지 알아보도록 할까? 옷을 만들 옷감을 고르기 위해 직접 시장으로 나가 보자는 말이다. 시장에는 옷감이 지천으로 놀려 있게 마련이다. 그 수많은 옷감들 중에서 요즘 유행하는 비닐 천, 살갗이 아슬아슬하게 드러나는 편직물, 또 눈부시게 빛나는 반짝이, 이런 것들이 먼저 우리의 눈길을 잡아챌 것이다. 텔레비젼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즐겨 입는 이런 현란한 소재의 옷들은 우선 보기에 좋을지 모르지만 학생의 신분인 여러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다. 아무리 값나가고 화려한 옷이라 해도 내게 맞지 않는다면 입을 수가 없다(주제와 동떨어진 허홍된 소재). 그러면 모시나 마를 보도록 할까? 그것은 너무 뻣뻣해서 몸에 닿으면 거끌거끌하다. 또 명주올로 짠 비단은 몸의 굴곡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그뿐아니라 여러분들이 입기에는 매우 고급스런 옷감이다. 이런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으면 거동하기가 아주 불편한 것이다. 먼지가 묻을까, 구김이 갈까 늘 노심초사하게 될 것이다(자기도 잘 알지 못하는 겉보기에 번지르르한 소재). 뭐니뭐니 해도 여러분들이 입을만한 옷은 순수한 무명실로 곱게 짠 것이 좋다. 그래야지 입었을 때 땀 흡수가 잘 되고 보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나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나의 분수에 맞는 것이 가장 훌륭한 옷 아닐까?(주제를 잘 드러낼수 있는, 자기가 잘 알고있는 소재) 그런데 시장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마땅한 옷감이 없다면 어떻게 할까? 적당한 것이 없으니, 내게 어울리지 않더라도 그 곳에 있는 것 중에서 아무거나 골라와야 할까? 그래서는 안된다. 마땅한 것이 없다면 내가 손수 그 옷감을 짜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내가 뜻한대로의 옷을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4. 자신의 마음을 잘 담아낸글 그러면, 이제 독자들이 보내 온 글들을 좀 살펴보도록 하자, 이번에는 <불국사의 장엄함>과 <나에게로의 여행>이라는 제목의 글이 눈길을 끌었다. 이것은 모두 '여행'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알맞은 소재를 고른다음 잘 짜여진 구성에 맞추어 차근차근 착실하게 써 나간 글들이다. 그래서 주제를 중간에 흘려버리지 않고 온전히 담아내고 있다. <불국사의 장엄함>을 먼저 보도록 하자. s에게 전에 나는 몇몇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경주에 있는 불국사를 갔었단다. 우리는 모두 7시 30분에 집결하여 버스를 타고 갔어. 푸른하늘과 넓은 벌판이 우리를 부르는 것 같았어. 오랜만에 나와서인지 공기도 맑고, 기분도 상쾌하고 머릿속이 깨끗해 지는 것 같았어. 그렇게 약 두 시간쯤 가니 깨끗한 경주시가 우리를 맞았어. 경주시를 조금 벗어나자 한적한 도로를 따라 갔지. 그리하여 우리는 불국사의 입구에 도착하였단다. 불국사라는 이름 그 자체에서도 느낄 수 있는 그 장엄함, 그리고 웅장함을 직접 눈으로 보니 더욱더 웅장하고 장엄해 보였어. 본관에서 조금 안으로 들어가자 두 탑이 버티고 있었어, 그게 바로 정교함을 자랑하는 석가탑과 다보탑이었어 석가탑과 다보탑을 보면서 그 탑드를 다듬던 석공들의 망치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어, 책의 사진속에서 본 석가탑과 다보탑의 모습보다 더웃더 멋있었고, 그것을 볼때는 묘한 느낌이 느껴졌어. 나의 몸 속에 흐르고 있는 겨레의 끈끈한 얼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막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는 것 같았어. 불국사 대웅전 앞에 섰을때 나와 친구들은 모두 부처의 은은한 시선에 눌려 엄숙해지는 것 같았어. 그렇게 불국사 경내를 다 둘러본 우리는 내일을 위하여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어. 돌아오는 버스에서 피곤했던지 친구들은 잠이 들기도 하고 밤의 풍경을 보는 이도 있었어. 그 때 마침 해가 저편 너머로 지고 있었어. 붉은 노을 속에서 나는 신라인의 즐거운 모습을 보았어. 불국사는 정말 살아있는 역사이자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문화유산인 것 같아. 기회가 된다면 너와 같이 가고만 싶다. 그럼 다음 편지를 기약하며 이만 줄인다. - S의 영원한 친구 동훈으로부터 이것은 편지글이다. 그런데 편지글은 자신의 감정을 가장 솔직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반면,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칠 우려가 있다. 다시말해, 일반 서술문보다 덜 냉정하고 덜 명쾌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일반 서술문으로 고쳐 보았다. 지난해 초가을에 나는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경주에 있는 불국사에 갔었다. 우리는 7시30분에 버스 터미널에 집결하여 경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창밖으로 내닫는 푸른 하늘과 넓은 벌판이 마치 우리를 향해 손짓이라도 하는 듯 했다. 오랜만에 하는 여행이어서 일까? 답답하던 기분도 상쾌해지고, 머릿속도 깨끗해 지는 것 같았다. 약 두시간쯤 달렸을 때, 경주시가 깨끗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하였다. 버스는 경주시를 벗어나 한적한 도로를 얼마쯤 달리다가 불국사의 입구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불국사는 들어오던 이름 그대로 웅장했다. 돌로된 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가자 두 개의 탑이 버티고 있었다. 그게 바로 정교함을 자랑하는 다보탑과 석가탑이었다. 석가탑과 다보탑을 바라보자 그 탑들을 다듬던 석공들의 망치소리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책속의 사진에서 본 석가탑과 다보탑보다 훨씬 더 멋있었다. 나의 가슴속에 묘한 느낌이 서렸다. 나의 몸속에 흐르고 있는 겨레의 얼이 꿈틀거린 것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피가 뜨겁게 끓어 오르는 것 같았다. 이윽고 우리는 대웅전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부처님의 자비롭고 은은한 시선 앞에서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몄다. 불국사의 경내를 다 둘러본 우리는 내일을 위하여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우리는 고도 경주의 저녁 노을을 구경했다. 해가 지평선 저쪽으로 가라앉자 붉은 노을이 새빨간 단풍빛으로 타올랐다. 구름도 들판도, 친구들의 얼굴도 모두 붉게 물들었다. 그 속에서 나는 신라인의 아름답고 슬기로운 삶의 모습들을 보았다. 불국사는 정말 살아있는 역사이자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문화유산 이다. 기회가 된다면, 이 여행을 함께 하지 못한 친구들과 다시한번 오고 싶다. 이번에는<나에게로의 여행>을 보기로 하자. 이 글은 글의 구성이나 문장력이 아주 빼어나다. 5월의 둘째 주 일요일, 활짝 열린 창문으로 한낮의 햇살과 포근한 5월의 바람이 자꾸만 나를 부른다. 창문으로 살포시 들어온 5월의 바람이 자꾸만 나를 부른다. 창문으로 살포시 들어온 5월이 나에게 그녀에게로의 여행을 권한다. 5월은 정녕 모든 달 중에서 여왕이다. 밖에 좀처럼 나가기 싫어하는 내가 이토록 여행을 떠나고 싶은건 아마도 그녀의 여왕다운 매력 때문일 것이다. 시계를 본다. 벌써 정오이다. 나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온다. 한시간 후면 과외 선생님이 오신다. 나의 조그만 여행, 아니 산책 계획은 부서진 셈이다. 그래도 웬지 여행을 떠나고 싶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저 밑에 키 작은 나무들이 서 있다. 바람은 나무의 푸르름과 생기를 그대로 나에게 속삭여 준다. 문득 어릴적 추억이 스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난 나무라고도 할 수 없는 조그만 꽃나무를 키웠었다. 키는 내 팔길이의 절반도 안 되었지만 그녀는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친구요 상담자였다. 그녀의 분홍빛 꽃을 난 매일 정성껏 닦아 주었고 행여 꺾일까봐 나 이외엔 아무도 못 만지게 했다. 학교에 갔다 와서 진딧물을 잡아주고 물 주는 것이 나의 유일한 행복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렇게도 소중했던 그녀는 동네 장난꾸러기 아이들의 발길질로 무참히 꺾여 버렸다. 한동안 그녀를 부여잡고 울다가 묻어 주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속삭였다. 비록 넌 꺾여버렸지만 난 널 언제까지라도 내 마음속에 심어 두겠노라고......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슬퍼했던 이유를 모르겠다. 꽃나무야 새로사면 되고 어차피 한해살이 식물인데...... 8년을 더 보내면서 어느새 나는 순수하고 깨끗한 아이의 마음을 잃어버렸다. 사람이 자란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도 슬픈일인가 보다.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천진한 초등학생들의 얼굴은 나에게 또 다른 여행을 권했다. 초등학생들은 아마 일기장이 한 권일 것이다. 그들은 진정 그들의 담임 선생님을 믿는 탓에, 아직 이중적인 인격을 지닐 만큼 마음이 오염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들의 진솔한 일기를 정성껏 써서 선생님께 보여드릴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엔 난 너무 많이 자라 버렸다. 마음이 오염된 탓에 선생님을 믿지 못해 학교 검사용 일기장과 나 혼자만의 일기장이 따로있다. 가끔 온갖 거짓으로 가특차서 도저히 일기장리라고도 할 수 없는 나의 학교검사용 일가장을 보면 슬퍼지기 일쑤다. 어느새 3시이다. 나는 나에게로의 여행에서 깨어나 부랴부랴 과외선생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오늘의 여행은 꼭 짜여진 시간표 속에 감추어 버린 어린 시절의 꿈들을 돌이켜 주었다. 오늘 나에게로의 여행은 정말 가치있는 여행이 되었던 것 같다. 가슴이 뭉클하지 않은가?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내용이 진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용에 있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있다. 자신의 은밀한 이야기를 선생님께 보여주고 싶지 않은(수줍어하는)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오염되었다고 표현한 대목이다. 이것은 지나친 자기비하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수줍음은 그만한 또래들만이 가지는 아름답고 순수한 마음 아닐까? 뭐든지 감추려 하지 않고 다 까발려 버린다면 그 얼마나 데면데면하고 멋없어 보일까? 생각해 봅시다. 1. 글쓰기는 옷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글을 쓰든지 옷을 만들든지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완성해 내기 위해, 그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 진행 순서를 설정해 두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일관성 있는 글을 써 내기 위해서는 어떤 순서를 밟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해 보자. 2. 글쓰기에 있어서 '소재'는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 좋은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소재가 필요한지 자세히 설명해 보자.
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나만의 글쓰기 비법 제4교시 - 앞뒤가 일관성 있는 글을 써라 글쓰기는 옷만들기의 순서와 같다 1.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야기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어느 여름날, 건망증이 매우 심한 어떤 사람이 혼자서 밭을 매고 있었다. 그 사람은 땀도 싯힐 겸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 한번 기차게 파랗구나"하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다시 밭을 매려고 보니, 조금 전까지 자신이 부지런히 밭을 매 왔던 호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사람은 벌떡 일어나서, "이놈의 호미가 어디로 갔나"하고 허둥거리며 온 밭을 다 둘러보았지만 그것은 도무지 눈에 띄지가 않았다. 호미에 발이 달린것도 아닌데 어디로 갔을까? 사실 호미는 바로 그 사람의 오른손에 처음부터 그대로 쥐어져 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담뱃대를 오른손에 들고 길을 갈 때 였는데, 빨리 가려고 팔을 부지런히 휘젓다 보면 팔이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팔이 뒤쪽으로 사라지면, "아이고 내 담뱃대 잃어버렸네"하고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고, 팔이 앞으로 나타나면 "아하, 여기 있구나"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곤 하였다. 그러니 그 사람은 어디를 갈 때든 길을 걸을 때마다 수백번이나 간이 오그라 들었다 펴졌다 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하루는 몇가지 살것이 있어 장엘 가기로 하였다. 어물전에서 사돈네 제사에 쓸 농어와 광어 두 마리씩을 사고, 또 튼튼하고 예쁜 암송아지 한 마리를 사 오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의 건망증을 잘 알고 있는 아내는 송아지를 잃어 버리지 않도록 고삐를 단단히 쥐고 오라고 대문 밖까지 따라 나와서 단단히 일렀다. 그 사람이 장에 도착해 보니, 거리거리마다 갖가지 물건들이 잔뜩 널려 있었다. 그 사람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손으로 만져도 보고, 맛도 보면서 장 구경에 신바람이 났다. 그러다가 걸음을 멈추고 서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내가 무얼 하러 장에 왔더라" 한참위에야, "아하, 돼지 한 마리를 사러 왔지": 하고 손뼉을 마주쳤다. 그래서 돼지 파는 데로 가 살찌고 퉁퉁한 놈으로 한 마리 골랐다. 돼지 모가지에다 고삐를 매어 질질 끌면서 집으로 가고 있던 그 사람이 산 중턱쯤에 다다랐을 때였다. 갑자기 대변이 마려워 왔다. 아랫배가 콕콕 쑤시는 것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할 수 없이 돼지를 나무에 묶어 놓고 숲속으로 들어가 볼일을 보았다. 그리고 허리띠를 맨 다음 다시 길 쪽으로 어기적 어기적 걸어 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 횡재인가 돼지 한 마리가 나무에 묶인 채 꿀꿀 거리고 있지 않은가 그는 사방을 슬그머니 휘둘러보았다.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 정신나간 사람이 돼지를 여기다 묶어놓고 그냥갔나?" 그는 흐흐흐하고 웃으며 집으로 가는 발길을 재촉했다. 어서 빨리 이 사실을 아내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그런데 돼지의 걸음이 너무 느린게 아닌가. 참을성 없는 그는 급한 마음에 돼지를 등에 업었다. 그러고는 땀을 뻘뻘 흘리며 집으로 뛰어갔다. 물론 돼지는 등위에서 들컹거리는 괴로움을 견뎌내며 연방 꿀꿀거렸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읽으며 절로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을 함부로 비웃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도 똑같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 우리도 건망증이 심한 그 사람처럼 주제를 잊어버리고 옆길로 새는 경우가 많다. 송아지를 사러 갔다가 돼지를 사 가지고 온 것이나, 사돈에게 줄 생선을 잊어버리로 사지 못한 일은 바로 글의 주제를 잊어 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마지막에 돼지를 등에 업고 뛴 것은 사람의 격에 맞지않는, 채신머리 없는 행동이다. 그렇게 되면 글의 품위가 떨어져 버린다. 2. 글쓰기는 옷 만들기와 같다 우리가 글을 쓸 때, 건망증이 심한 그 사람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글을 일관성 있게 써야한다. 무엇에 대해 쓸 것인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글쓰기는 옷 만들기와 똑같다. 그렇다면 옷 만드는 일과 직접 비교해 보자.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흔히 옷감을 먼저고른다. 옷감에는 비단, 양복지, 가죽, 무명, 모시, 마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 알맞는 옷감을 골랐다면, 다음에는 그 옷감을 가지고 어떤 옷을 만들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치마, 저고리, 두루마기, 청바지, 블라우스, 셔츠, 미니스커트, 내의...... 그 다음에는 옷을 어떠한 모양새로, 또 얼마만한 크기로 지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아무래도 옷을 만드는 순서가 잘못된 성싶다. 옷 만들기를 제대로 하려면 옷감을 먼저 고를것이 아니라, 어떤 옷을 만들것인가부터 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옷의 쓸모(주제)에 맞는 옷감도 고를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하나하나 짚어보도록 하자. 첫째, 옷을 만들려면 먼저 누가 언제 어디서 입을 옷인가(주제)부터 결정해야 한다. 옷 입을 사람의 나이, 성별, 성격, 계절, 또 어떠한 경우에 입을 옷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학교에 다니면서 입을 것인가, 파티에서 입을 것인가, 장례식장에서 입을 것인가 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우리는 여름철에 부담없이 입을 수 있는 블라우스 한 장을 만들어 보기로 하자. 그럼 이제 옷의 주제가 결정된 셈이다(글의 주제 결정). 둘째, 그 블라우스에 알맞는 옷감(소재)를 골라야 한다. 여름철이니까 모시나 마가 시원하기는 하겠지만, 살갗이 그대로 비친다는 점에서 학생의 옷차림으로는 적당하지 않다. 뭐니뭐니 해도 우리가 입을 만한 옷의 옷감으로는 소박하고 부담 없는 옥양목이 알맞다(글의 소재 결정) 셋째, 옷감을 골랐으면 이제 어떤 모양으로 할 것인지(구성)를 정해야 한다. 반팔로 할 것인가 긴 팔로 할 것인가. 칼라를 달 것인가 말 것인가. 주머니는 달 것인가, 말 것인가. 단추를 달 것인가, 말 것인가. 그리고 등에는 주름을 잡을 것인가, 말 것인가. 우리는 지금 여름철 옷을 만드려는 거니까 반팔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칼라는 없는쪽이 좀더 예쁘고 깜찍하게 보일 것 같다. 못선이 드러나도록 동그랗게 파면 좀더 시원해 보일 듯 싶고......, 주머니는 단정하게 왼쪽가슴위에 하나만 달기로 하자(구성하기) 넷째, 이번에는 옷감에다가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물론 믿그림을 그리기 전에 필요한 부분들의 사이즈를 정확하게 재어 두는 건 기본이다. 그럼 이제 밑그림에 따라 옷감을 마름질해 보자. 마름질이 끝나면,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바느질을 해야 한다. 이때 주의할 점이 있다. 도중에 목표(주제)를 잊어버리거나 계획(구성)이 바뀌지 않도록 새새하게 매모를 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메모에 따라 옷을 만들어 나가야 처음에 구상한 데서 어긋나지 안는 옷이 완성될 수 있다.(글쓰기). 다섯째, 자, 이제 바느질이 끝났다. 그럼 옷 모양이 제대로 갖춰진 셈인가? 그런데 밖으로 입고 나가기에는 어쩐지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든다. 왜 그럴까? 마무리 작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머니도 달고 단추도 달고......, 그리고 처음에 계획한 대로 만들어 졌는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뜻대로 만들어졌다면, 끝으로 옷 매무새를 매끈하게 하기 위한 다림질을 한다(글 다듬기)
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함께 사는 삶 하느님, 용서하십시오 - 이광환 미국 동부 시카고에서 서울까지는 비행기로 열다섯 시간이 걸린다. 공항까지의 이동과 입출국 수속 등까지 합치면 거의 하루가 걸리는 장거리 여행이다. 탐승 후 오랫동안 옆 좌석이 비어 있어 나는 매심 이번 여행은 편하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륙을 불과 몇 분 앞두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장애인 여성이 휠체어를 타고 올라와서는 여러 승무원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내 옆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당황해서 승무원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승무원은 내게 "불편해서 어떡하죠?" 하며 만석이라 자리를 옮겨 드릴 수 없는 것이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비행기가 이륙한 후 나는 다시 한 번 옆 좌석을 보았다. 혼자서는 식사도 할 수 없고 화장실도 갈 수 없는 중증 장애인으로, 얼굴도 화상을 입은 듯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흉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출발한 지 서너 시간이 지난 뒤부터 나는 부끄러운 내 모습에 "하느님, 용서하십시오"하고 수없이 고백해야만 했다. 나와 그 장애인 여성이 앉은 옆자리에는 또 다른 미국인 승객이 앉아 있었다. 내가 쌀쌀한 모습으로 냉담한 것과 달리 잘생긴 그 미국 청년은 장애인 여성에게 이야기 상대도 되어 주고 식사 시간엔 손수 식사를 준비해 도와 주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갈 때면 부축해 주며 동행해서는 화장실 밖에서 기다렸다가 다시 좌석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비행기가 경유지인 서울에 도착하기 전, 빗으로 머리까지 손질해 주는 그는 바로 천사의 모습이었다. 청년은 컴퓨터 엔지니어로서 태국의 수도 방콕으로 휴가를 가는 길이었고, 장애인 여성은 어릴 적 심한 화상으로 불구가 되어 미국에 입양되었다가 지금 태국의 친부모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매번 미국 여행 때마다 미국의 외적인 모습만 보고 본받고 싶지 않았는데 오늘 본 미국인의 모습은 바로오늘의 미국을 있게 한 힘이었다. 장애인의 어려움을 자기 일처럼 도와 주는 미국 청년, 화상으로 불구가 되어 버려진 고아를 입양해 성장시켜서는 다시 부모의 나라로 여행시키는 미국인. 그것은 내게 잊을 수 없는 교훈이었다. (경남 마산시 거주) 14년 만의 외출 - 윤진용 어느 해 가을이었다. 세모의 바쁜 걸음에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교도소 정문 밖에는 인정과 사랑 그리고 기쁨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오랫동안 흰벽돌담의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부녀간의 정을 나누던 수형자가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7일 간의 휴가를 받아 교도소 문을 나섰다. 가시 한 번 하늘을 우러러보는 그는 민족의 비극이었던 6,25때 공산당에 부역한 죄로 붙들려 왔고 그때 외동딸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빠를 부르며 재롱을 피우던 여섯 살의 귀염둥이였다. 그가 무기징역을 받던 날 아내는 헌신짝 버리듯 부녀를 두고 달아났고 귀염둥이 딸은 할머니 손에서 부모의 사랑을 그리워해야만 했다. 열 살이 되던 해, 아빠가 있는 교도소 근처 양과점에서 일하며 틈틈이 아빠를 찾아가 정을 나누며 눈물을 거두기도 했다. "아빠, 내일이 어버이날이야. 카네이션 사 가지고 왔어." "그래, 우리 미영이 착하기도 해라. 근데 왜 엄마는 안 오고 혼자 왔니?" "엄마? 할머니가 그러는데 엄만 돈 벌러 갔대. 근데 아빠는 언제까지 여기서 살아야 해?" "글쎄, 한 열 밤?" 면회를 시키던 그곳 교도관도 세상에 물들지 않은 어린 딸의 동심에 얼굴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그녀가 공장에 다니는 건실한 청년과서로를 이해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결혼 승낙을 얻기 위해 교도소에 여러 차례 면회를 왔다. 그때마다 딸의 얼굴에서 그간의 사연을 생각하며 엄마 같은 여자가 되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으리라. 비록 그의 죄는 미웠지만 그 사람은 미워할 수가 없었다. 우리들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딸의 결혼식에 축하객으로 참석할 수 있도록 교도소에서 휴가를 허락해 주었다. 14년 만의 외출, 생각하면 그것은 너무나 벅찬 기쁨이었다. 결혼식에 참석차 떠나는 그에게 교도소 직원들은 조그만 축하 선물을 안겨 주었고 그는 딸과 고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교도소의 아빠 손을 잡고 결혼식을 올린 지도 어언 몇 해, 세월이 지난 요즈음도 그때의 그 일이 눈에 선하기만 하다. (법무부 교정국 근무)
Board 삶 속 글 2022.06.16 風文 R 456
발본색원(拔本塞源) / 폐단의 근원을 아주 없애 버림. 《出典》'春秋左氏傳' 昭公 九年條 발본색원(拔本塞源)은 '春秋左氏傳' 昭公 九年條 중, 주왕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유래된 故事이다. "나에게 백부(伯父)가 계신 것은 마치 옷에 갓이 있는 것과 같다. 나무와 물에 근원이 있어야 하듯 백셩들에게 지혜로운 임금이 있어야 한다. 백부께서 만약 갓을 찢어버리고 뿌리를 뽑고 근원을 막으며[拔本塞源], 오로지 지혜로움을 버린다면 비록 오랑캐들이라도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 '春秋左氏傳' 昭公 九年條에 실린, 윗글의 원문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나에게 큰아버지가 계신 것은, 마치 의복에 갓과 면류관이 있고, 나무와 물에 근원이 있고, 백성들에게 지혜로운 임금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큰아버지께서 만일 갓을 짜개고 면류관을 부수고, 근본을 뽑아 근원을 틀어막고[拔本塞源], 오로지 지혜로운 임금을 버리신다면, 비록 오랑캐라 할지라도 그 남음이 어찌 한 사람에 있으리오. 我在伯父 猶衣服之有冠冕 木水之有本源 民人之有謀主 伯父若裂冠毁冕 拔本塞源 專棄謀主 雖戎狄其何有餘一人.. 이와는 다른 出典으로, 명나라 때의 철학자 왕양명(王陽明)의 '발본색원론(拔本塞源論)' 이 있다. 왕양명의 '발본색원론(拔本塞源論)'을 여기 다 소개할 수는 없으나, 그가 평소 제창하던 "하늘의 이치를 지니고 사람들은 욕심을 버리라."는 말과 취지가 같다. 즉, 사사로운 탐욕은 근본부터 뽑아버리고 그 근원을 틀어막음에 있음을 알 수 있다.이런 정신적인 고사가 지금 세상에서는 범죄나 범죄 조직의 뿌리를 뽑아버린다는 데에만 사용되고 있으니 이는 통탄할 일인가, 아니면 언어의 사회성에 대한 금석지감이라 할 일인가?
Board 고사성어 2022.06.15 風文 R 870
정보와 담론 북한과 미국이 연출하는 세기적인 만남의 자리 때문에 선거도 월드컵 경기도 관심에서 밀려난다고 푸념이다. 그러나 지나간 70년 동안의 냉전을 녹여 버릴지도 모른다는 마음 설렘을 지방 권력 재편이나 축구 열기가 밀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더구나 모든 과정이 순탄할지 혹시 또 삐걱대지나 않을지 조마조마한 면도 적지 않아 늘 텔레비전 뉴스에 시선을 고정하게 된다. 이럴 때일수록 앞으로 북-미 관계가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지, 그 방향이 미국과 한국의 여러 정파나 이익 집단들의 이해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근근이 살아가는 남과 북의 서민 대중들이 입을 수 있는 혜택과 짊어져야 하는 부담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전문적이고 다양한 논평을 제공하는 것이 제대로 된 보도 매체의 임무일 것이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대개의 보도는 주변적인 호기심, 또는 알아도 몰라도 그저 그런 주변적 담론만 되풀이하고 있다. 북측의 전용기가 싱가포르까지 한번에 갈 수 있는지 없는지는 북이 걱정할 문제이지 우리가 이러쿵저러쿵할 문제가 아니다. 또 호텔비를 누가 내는지도 회의의 핵심 내용과 동떨어진 문제에 불과할 뿐이다. 같은 경호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마치 북측 정상의 신변이 유난히 예민하다는 듯이 촐싹거리는 것 자체가 시청자들로 하여금 기울어진 선입관을 가지고 이 세기적 행사에 임하게 만드는 ‘선동’ 같아 보인다. 언론의 자유는 어떠한 신념이든지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고,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정확하게 알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 넘쳐나는 쪼잔한 정보를 산더미처럼 쌓아놓는 것이 그 본업이 아니다. 이런 것의 대부분은 허접한 과잉 정보에 지나지 않는다. 보도 매체는 시시한 정보를 치워 버리고 중요한 알짜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다함으로써 이 중요한 시대의 행사를 감당해야 한다.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 덕담 남에게서 덕담을 들으면 그게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겠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만큼 덕담은 외교적이고 사교적인 대화에서 쓰이는 말이다. 서로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거나 대화 상대방과 매끄러운 관계를 다듬어 나가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사회 활동의 윤활유인 셈이다. 덕담이 성립되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상대방의 소망, 욕망, 목표에 부합하는 덕담을 해야 한다. 당사자가 별로 관심이 없는 분야나 꺼림칙해하는 분야에서 성공하라고 말해서는 덕담이라고 하기 어렵다. 기업인한테는 사업의 성공을 빌고 정치가에게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를 축원해주는 것이 가장 상식적인 덕담이다. 그다음 조건으로, 덕담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덕담은 약간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는 것이 자연스럽고 경우에 따라 약간의 과장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권한이나 영향력이 필요한 내용은 덕담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 정당성의 문제가 생긴다. 인사권을 가진 사람이 인사 대상에게 “이번 기회에 꼭 진급하세요”라고 말했다면 그 누가 그것을 덕담으로 받아들이겠는가? 아마 누구든지 ‘거래 의사’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대법원장이란 사법부의 수장이다. 견제해야 할 행정부의 최고 책임자에게 ‘재판’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을 덕담이라고 했다는 것은 분명히 ‘언어 오용’이다. 더구나 행정부가 관심을 가지는 사항을 곁들여 ‘판결’에 관한 언급을 한 것은 누가 보든지 미끼를 던진 것이고 ‘거래’를 위한 바람잡이 구실을 한 것이다. 덕담의 조건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법관은 ‘법률의 언어’로 옳고 그름의 기준을 다듬어주는 전문가이다. 그들이 언어를 오용했다는 것은 법을 오용했다는 뜻이다.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나만의 글쓰기 비법 제3교시 읽는이가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라야 한다. 숫자를 셈하느 수학과 감정을 드러내는 문학의 차이. 1. 나만 아는 이야기 어느 여름날 한밤중이었다. 누군가 초인종을 다급히 누르면서 문을 부서져라 두들겨 댔다. 막 잠자리에 들려던 시인 ㄱ씨는 깜짝놀라 맨발로 달려 나갔다. 찾아온 사람은 그의 친구 ㄴ씨였는데, 술에 얼근하게 취해 있었다. 친구 ㄴ씨는 ㄱ시인과 함게 문학공부를 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직 시인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ㄴ씨는 자기의 실력을 인정해 주지 않는 기성 문인들에게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친구 ㄴ씨는 자기가 써온 시를 주머니에서 써냈다. "야, 이사람 꾼, 내가 오늘 내 일생 일대 최고의 아름다운 시를 써 가지고 왔네, 한번 읽어보고 자네가 관여하고 있는 잡지에 추천좀 해주게." 하고 말했다. "머리에 털이 돋은 이래 지금까지 이렇게 진한 감격과 감동을 받아 본 적이 없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이 감격과 감동을 손톱만큼도 놓치지 않고 모두 다 이 시 속에다 담았다네, 아마, 모나마나 자네도 깜짝 놀랄 거야." 친구 ㄴ씨는 그 시를 쓸 수 있게 한 그 감격과 감동을 새삼 되새기면서 "아아, 하아" 하고 탄성을 지르며 울먹이기까지 하였다. 시인 ㄱ씨는 잔뜩 기대를 하면서 ㄴ씨가 건네줌 시를 읽어 보았다. 오오, 나의 사랑, 나의 기쁨 오 나의 이 감격 이 감동을 누구에게 다 말할까 하늘이 알까 땅이 알까, 오호 나의 사랑이여 나에게 이 감격과 아름다운 감동을 준 그대여 그 시에는 정말로 감격과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던 듯 감탄사가 줄줄이 쓰여 있었다. 그러나 시인 ㄱ씨는 친구의 가슴속에 넘쳐 흘렀다는 그 감격과 감동을 눈곱만큼도 느낄 수가 없었다. ㄱ씨는 정말로 난감했다. 솔직하게 말을 하면 ㄴ씨가 크게 실망할 테니까. 그렇지만,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이 시에서 아무런 감동을 느낄 수가 없네" 하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ㄴ씨가 자신이 직접 느낀 감격과 감동을 표현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감탄사들을 연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는 왜 읽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엇을까? 그것은 그 감격과 감동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느낌이 어떠한 것이었는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쓴이가 말하려고 하는 생각의 덩어리(주제)가 읽는 사람의 가슴에 와 닿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런 경울르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누가 들어도 배꼽을 잡고 까르르 넘어갈 만한 우스운 이야기 하나를 내가 알고 있다고 치자. 그 이야기를 해 주겠다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 놓고는, "아이고, 나 이렇게 웃기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 야아, 아이고, 내 배꼽 달아난다. 아하하하하......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이래 이렇게 웃어 본 일은 정말로 처음이다. 아하하하하하...... 야 너희들 우습지 않냐 우습지 우습지 하하하하하......" 하고 깔깔 거리고 웃었다. 친구들은 과연 나를 따라 웃을까? 친구들은 "야, 참, 별 이상한 애 다 보겠네"하고 투덜거릴 것이 뻔하다. 이런 실수는 글쓰기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2. 읽는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글 4월 봄이다. 학교에 가서 수업하기에는 마치 전쟁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제 곧 떠날 소풍만 생각하면 힘이 부쩍 솟는다. 선생님 말씀이 귀에 절로 들어온다. 이와 같이 나에게는 소풍을 기다리는 것이 인생의 한가지 낙이다. 내 인생 15년 지금까지 소풍을 수없이 갔다가 왔다. 또 이러는 과정에서 소풍가느 ㄴ장소에 대하여 많은 감정이 생겼다. 놀이공원, 고궁, 산성...... 많은 장소 가운데서 가고 싶은 장소가 있고, 그럭저럭 놀다 오는 장소도 있다. 누군가 나에게 소풍가는장소 가운데서 어디가 제일 좋은가 라고 물어보면 나는 초등학교 4학년때 간 경복궁과 중학교 2학년때 간 드림랜드에 갔다온 이야기를 해 줄 것이다. 경복궁은, 그냥 도착해 가지고 고궁을 둘러보고 점심을 먹은 다음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놀다가 온게 전부이다. ㄱ) 드림랜드에 갔을때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왠지 같이 노는 것이라도 느낌이 달랐다. 그렇다고 해서 경복궁은 재미없고 드림랜드만 재미 있다는 것은 아니다. 고궁은 나에게 있어서 공부가 되므로 거의 ㄴ) 90퍼센트 이상 재미 있다. 드림랜드에서 노는 것과 경복궁에서 노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이렇듯 소풍도 각 장소마다 재미가 다르다. 소풍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옛날 누군가가 말했다. 소풍은 학생을 위한 거라고. 이 글에는 글을 쓴 사람 혼자서만 알 수 있을 뿐, 읽는 사람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이야기가 많다. 그 대표적인 석이 밑줄친 ㄱ)'드림랜드에 갔을 때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왠지 같이 노는 것 이라도 느낌이 달랐다' 와 같은 말이다. 경복궁에 소풍갔을때와 드림랜드에 갔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글 쓴 사람 혼자만이 아는 일이다.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고 생각했다면, 무엇이 어떻게 다른 가 하느 ㄴ내용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령, 이런식으로 말이다. 드림랜드에 갔을때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거기에는 우리들의 꿈이 깃들어 있었다. 마법에 걸린 공주를 구하러 가기 위해 금세라도 말을 탄 왕자님이 달려나올 것 같은 궁전, 거대한 강물 같은 하늘의 은하수 위를 달리는 공중 철도, 그뿐만 아니었다. 나무꾼과 선녀가 살던 초가집, 도깨비 불이 번쩍거리는 무시무시한 동굴, 간이 오그라붙을 듯 아찔하게 공중을 오르내리는 바이킹 등 눈길 닿는 곳마다 신비로움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드림랜드에서 노는 동안, 나는 내내 어릴적 읽은 동화 게계속을 헤엄쳐 다니는 기분이었다. 3. 수학적인 표현과 문학적인 표현 글을 쓸 때, 또 한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수학적인 표현과 문학적인 표현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밑줄친 ㄴ)에서 처럼 '90퍼센트 이상 재미있었다' 든지 '100퍼센트 훌륭했다.' 든지 하는 표현은 쓰지 않는게 좋다. 그런 표현에 유의하면서 다음이야기를 읽어 보도록 하자. 어느 학교에 말주변이 무척 없는 교장 선생님이 있었다. 화창한 봄날을 맞아, 그 학교에서는 운동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그날 아침에는 으레 운동회를 즐겁고 안전하게 치르기 위한 교장선생님의 훈화가 있었다. 교장선생님은 '아, 아' 하고 마이크 시험을 마친 뒤, 이야기의 서두를 꺼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아래서......" 그런데 교장 선생님이 이렇게 말을 하자마자,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앞산 잔등 위로 구름 한 장이 떠올랐다. 당황한 교장 선생님은 자기가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고, 즉시 그 구름장을 가리키면서 다음과 같이 고쳐 말했다. "저기, 저 구름 한 장이 떠 있기는 합니다만, ......참으로 맑고 프르른 하늘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 이렇게 막 말하고 났을 때. 운동장에 줄을 맞춰 서 있던 학생들이 서쪽 하늘을 손가락질 하면서 수근거렸다. 교장 선생님은 눈잎이 아찔했다. 이번에는 서쪽 하늘에 구름이 석장이나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당황한 교장 선생님은 다시 그 구름장을 가리키며 자기의 말을 수정하였다. "저 서쪽 하늘에 또 구름 석장이 떠오고 있기는 합니다만, ......어떻습니까 그래도 참으로 맑고 프른 하늘이기는 합니다." 운동장에 서 있던 학생들과 선생님들과 관중석에 모여 있는 학부모 들은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그러자 교장 선생님은 얼굴이 새빨개져 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웃었을까 하늘에 구름이 한두장 또는 너댓장 떠 있다고 해서 맑고 푸른 하늘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것을 기어이 수학적으로 따지려 하다 보니 그런 우스꽝 스런 실수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다음 글을 한번 보도록 하자. 우리학교 운동장 가에는 느티나무가 열다섯 그루 서 있는데, 그 수천개나 되는 가지들에서 바야흐로 새싹 수만개가 트고 있다. 또 그 옆에 서 있는 다섯 그루의 눍운 벚나무들과 스물아홉 그루의 진달래 나무들은 꽃이 떨어진 뒤 녹색의 잎사귀들 수십만개를 피워 내고 있다. 이런 표현은 어떨까 만일 이런 식으로 남산의 숲을 표현해야 한다면 어떡할까? 그 산에 서 있는 수없이 많은 나무들의 수를 모두 다 헤아려 보아야 할까 우리 느낌이나 생각은 이렇게 수학적으로 계산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 그러면 앞에 인용했던 글을, 앞에서 이야기한 부분에 주의하면서 함께 고쳐보도록 하자. 4월이다. 아침 저녁으로는 아직 쌀쌀한 기운이 남아 있긴 하지만, 교정에 피어난 붉고 노란 꽃들을 보면 봄이 왔음을 절로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새 학년 새 학기 공부가 시작된 지도어느덧 두 달 째 이다. 하지만 아직 새 학년의 공부에 적응이 잘 되질 않아서 일까 후업이 마치 전쟁을 치르기 위한 준비인 듯 무섭고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예습도 해야 하고, 복습도 해야 하고, 거기다 영어.수학 과외 수업까지...... 그렇지만 이제 머지않아 있을 소풍을 생각하면 힘이 부쩍 솟는다. 답답한 학교 교정안에서 하는 공부를 잠시 접어두고, 야외로 나가 한바탕 뛰어 놀 수 있다니 생각만해도 신이 안다. 그럴 때만은 선생님의 말씀이 절로 귀에 들어오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해마다 두 번 씩 가는 소풍은 학교 공부에 찌든 나에게 새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활력소인 셈이다. 소풍 날짜를 헤아리며 기다리는 동안, 내 삶은 알 수 없는 기대로 한없이 설레고 들뜨게 된다. 내가 살아온 15년의 세월동안, 나는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시작해서 꽤 여러번 소풍을 다녀온 셈이다. 그런만큼 소풍 장소도 여러 곳이다. 각기 특색이 있는 그 여러 장소들에 대해 많은 추억과 느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놀이공원, 고궁, 산성...... 그 많은 장소들 가운데는 , 우리들이 반드시 가보고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될 장소가 있고, 그럭저럭 즐겁게 뛰어 놀다가 오면 되는 장소 도 있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곳이 소풍 장소로서 가장 적당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초등학교 4학년때 다녀온 경복궁과 중학교 2학년때 다녀온 드림랜드를 권하겠다. 경복궁은 우리 민족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서 속속들이 둘러보아야 할 고궁이다. 그 때는 별 생각 없이 한 바퀴 휘둘러본 다음, 잔디 밭에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즐겁게 뛰어놀다가 온 게 전부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조선 시대의 왕들이 살았던 궁궐의 예스러운 분위기가 아직도 내 가슴에 깊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 곳은 나의 마음 속에 우리 민족의 오랜 뿌리를 소리 없이 심어 주었던 것이다. 그 다음에 드림랜드에 갔을 때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거기에는 우리들의 꿈이 깃들어 있었다. 마법에 걸린 공주를 구하러 가기 위해 금세라도 말을 탄 왕자님이 달려나올 것 같은 궁전, 거대한 강줄기처럼 하늘의 은하수 위를 내닫는 공중 철도,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무꾼과 선녀가 살던 초가집 도깨비불이 번쩍거리는 무시무시한 동굴, 간이 오그라 붙을 듯 아찔아찔하게 공중을 오르내리는 바이킹 등 눈길 닿는 곳마다 신비로움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드림랜드에서 노는 동안, 나는 내내 어릴적 읽은 동화 세계속을 헤엄쳐 다니는 기분이었다. 경복궁에서 노는 것과 드림랜드에서 노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이렇듯 소풍은 가는 장소에 따라서 얻고 느끼는 맛과 재미가 각기 다르다. 학교 공부를 잠시 접어두고 바람을 쐬러가되, 그 특이한 소풍장소가 말없이 가르쳐 주는 것을 가슴에 빨아들이고 온다면 꿩먹고 알먹기가 아닐까. 소풍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답답한 학교 공부에 찌들어 있는 우리에게 풋풋한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이 고마운 소풍을 이번 기회에는 더욱 잘 이용하도록 해야겠다. 생각해 봅시다. 1. 우리는 흔히 자신의 가슴속으로 밀려든 감동을 주체할 수가 없어 감탄사를 연발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감동도 와 닿지 않는게 사실이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설명해 보자. 2. 숫자를 정확하게 세고 셈해야 하는 수학과 자신의 감정을 글로써 솔직하게 그려 내 보이는 문학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끔 그것을 혼동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지 함께 이야기해 보자.
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함께 사는 삶 바가지 도시락 - 이은구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으니까 벌써 40여 년이 지난 일이다. 입학한 지 얼마 안되는 저학년 학생들은 마을의 공회당을 빌려 교실로 이용하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흙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공부를 해야만 했다. 점심은 주로 찐 고구마나 보리 누룽지를 가져와 뒷동산에서 먹곤 했다. 점심을 양은 도시락에 싸오는 학생은 가정이 매우 부유한 편에 속하는 몇몇에 불과했다. 우리 담임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서 엄하기로 소문난 분이셨는데, 하루는 점심 시간에 둥그런 보따리 한 개를 들고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부터 너희들은 점심을 나와 함께 교실에서 먹어야 한다. 가정방문을 하니 도시락이 없어 점심을 싸오지 못하는 학생이 많더구나. 오늘부터 나도 이 바가지 도시락에 점심을 싸 오기로 했으니 너희들도 바가지에 밥을 싸오도록 해라. 이 바가지 도시락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너희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선생님은 교탁에 그 바가지 도시락을 풀어 놓고 식사를 하셨다. 그후부터 우리 반 학생들은 둥그런 바가지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오는 것이 자연스러워졌고, 덕분에 어머니가 준비해 주신 뽀송뽀송한 점심밥에 생마늘 몇 조각과 풋고추를 곁들여 맛있는 점심을 나눠 먹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우리 반에는 예상치 못했던 우스운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울퉁불퉁한 교실 바닥에 놓여 있던 바가지 도시락은 살짝만 건드려도 곧잘 대굴대굴 굴러 흙이 묻곤 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점심 거르는 것을 염려해 스스로 바가지 도시락을 들고 다니셨던 그 인정 많으신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거주) 총장에서 걸인들의 친구로 - 안치열 꼭 10년 전이었다. 친구가 사는 청주로 가는 길에 꽃동네라는 표지판을 보게 되었는데 순간 나는 운명의 손에 이끌리듯 발을 멈추게 되었다. "뒤를 닦을 신문지조차 없어 화장실을 사용하기 힘듭니다." 한 수녀의 그 말 한 마디는 주는 것보다 받기에 더 길들여졌던 나의 이기적인 삶을 뒤돌아보게 했다. 그후 시간을 내어 꽃동네를 찾게 되었고, 서울로 돌아올 때면 부족한 시간이 마음에 걸렸다. 대학 총장으로 장년을 앞두고 주위에서 함께 일하자는 권유가 적지 않았지만 미련과 유혹을 벗어나자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40년 넘게 총장이니 박사니 하는 직함을 달고 다녔으면 충분하다 싶었다. 퇴임 직후 곧바로 짐을 꾸려 꽃동네로 내려갔다. 단 한 명도 성한 사람이 없는 꽃동네, 우선 급한 것은 그들이 와서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었다. 병실은 고사하고 변변한 의료 시설 하나 없었다. 폐업하는 병원에서 내다 버린 의료장비를 모으고 못 쓰게 된 커튼과 내의 공장에서 내다 버린 면조각으로 기저귀를 만들면서 병원 꼴을 갖춰 갔다. 절대 속을 내보일 것 같지 않던 사람들도 차차 말을 걸어 오기 시작했다. 그건 나를 꽃동네에 받아들인다는 신호였다. 어느 해 가을이었다. 고급 승용차를 몰고 휘황찬란하게 차려 입은 중년 여자가 다니러 왔다. 그이는 요양소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나서는 이마에 잔뜩 주름을 모으며 말했다. "왜 기저귀를 안 쓰는지 모르겠군요. 기저귀를 쓰면 훨씬 편하고 좋을 텐데..." 분명 오물로 뒤범벅이 된 세탁실을 보고 왔을 터였다. 내가 말했다. "그럼 부인께서 매일 두 트럭씩 실어다 주시지요." 그러자 단번에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천오백 명이 넘는 식구들이 먹고 입으려면 많은 식량과 물품이 필요하다. 종이 기저귀를 하루 세 번만 갈아 준다고 해도 두 트럭은 족히 든다. 꽃동네는 열 트럭의 선심보다는 한 수레의 신문지가 더 필요한 곳이다. 음성 꽃동네에서 지내던 이태 전이었다. 하루는 오웅진 신부가 나를 찾았다. 신부님을 보는 순간 다른 말은 들을 요량도 없이 불쑥 말했다. "가평 꽃동네에 제 방 하나 내주십시오." 그 말이 끝나게 무섭게 신부님이 말했다. "총장님이 함께 가주신다면 저희들로서야 고마운 일이지요." 나의 가평 꽃동네 편입은 그런 식으로 싱겁게 끝이 났다. 드디어 올 3월 15일, 가평에 노체 안드리아 자애병원이 생겼다. 자그마치 5년 동안의 긴 공사와 300억 원의 거금이 드는 대공사였다. 그 공사를 단 한 포대의 시멘트 값도 받지 않고 맡아 해준 회사는 진로그룹이었다. 무너진 백화점을 짓고, 끊어진 다리로 아까운 목숨을 잃게 했던 기업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요즘도 매일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그들은 힘들다는 군소리 한 마디 없이 진종일 묵묵히 일만 하다가 저녁이면 소리 없이 떠난다. 그들은 자원봉사 나왔네 하고 생색내는 법도 없다. 그저 먹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흥미도 관심도 없는 환자들에게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는다. 속옷 한 번 제대로 빨지 않았을 손으로 환자의 욕창 부위를 닦아 내는 모습을 볼 때면 절로 감탄하게 된다. 무보수로 일하는 열 명의 의사들 역시 대단하다. 그들은 떼쓰기에 신경질, 가끔은 우악스럽게 덤벼드는 노인네들을 어린애 달래듯 한다. 이들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 나라는 건강하고 미래가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주이에는 버려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하루에도 사오십 명이 병자라는 이유로, 무능하다는 이유로 가족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있다니 말이다. 이곳에서도 큰 행사가 있을 때면 번번이 버려진 노인네 한두 명쯤은 발견된다. 깨끗하게 옷을 차려 입은 이도 있고 고급 휠체어에 실려 있는 이도 있다. 누군가 - 설마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 일부러 먼길까지 데려와 버리고 간 것이다. 마치 더 이상 못쓰게 된 물건을 쓰레기통에 버리듯이 말이다. 벌건 대낮에 공공연히 벌어지는 '현대판 고려장'.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겠지 하고 자신을 달래 보지만 그래도 뒷끝이 씁쓸하다. 한 번쯤 죽음 앞에 불려 나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지만, 쉽게 받아들일 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이곳에서는 1년이면 삼백 명에 가까운 이들이 죽음을 맞는다. 이제 죽음에 초연할 나이인데도 매번 당혹스럽다. 누구처럼 부귀영화를 누려 본 적도 없고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지도, 제 밥그릇을 위해 칼을 들이댄 적도 없는 선량한 사람들, 단지 약삭빠르지 못해 사는 일에 무능하고 서툴렀던 그들의 죽음이기에 더욱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장' 달린 직위에서 벗어나 이름 없는 사람으로 그들과 함께 하고 싶었는데 가평으로 옮겨 앉으면서 덜컥 '의무원장' 자리를 맡게 되었다. 더 큰 짐을 통해 더욱 낮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몸이 부자연스럽고 제 밥그릇 챙기는 데 조금 무능하다고 해서 그들이 나와 다를 게 뭐 있는가? 한 번쯤 손을 잡았던 이, 아니면 복도에서 어깨라도 한 번 부딪친 어떤 이가 나의 마지막 길에 따뜻한 동행이 되어 준다면 그것 또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경희대 총장 역임, 가평 꽃동네에서 무료봉사 활동 중)
Board 삶 속 글 2022.06.14 風文 R 863
미생지신(尾生之信) / ① 신의가 굳음. 《出典》史記 蘇秦列傳 ② 우직하여 융통성이 없음. 《出典》莊子 盜甁篇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미생(尾生 : 尾生高)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는 사나이였다. 어느날 미생은 애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는 정시(定時)에 약속 장소에 나갔으나 웬일인지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미생이 계속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져 개울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생은 약속 장소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결국 교각(橋脚)을 끌어안은 채 익사(溺死)하고 말았다. "尾生은 믿음으로써 여자와 더불어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기약하고, 여자가 오지 않자, 물이 밀려와도 떠나지 않아, 기둥을 끌어안고서 죽었다." 信如尾生 與女子期於梁下 女子不來 水至不去 抱柱而死. ① 전국시대, 종횡가로 유명한 소진(蘇秦)은 연(燕)나라 소왕(昭王)을 설파(說破)할 때, <신의있는 사람의 본보기>로 앞에 소개한 미생의 이야기를 예로 들고 있다. ② 그러나 같은 전국시대를 살다간 莊子의 견해는 그와 반대로 부정적이었다. 莊子는 그의 우언(寓言)이 실려 있는《莊子》'盜甁篇'에서 근엄 그 자체인 孔子와 대화를 나누는 유명한 도둑 도척(盜甁)의 입을 통해서 미생을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이런 인간은 책형(?刑)당한 개나 물에 떠내려간 돼지 아니면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마찬가지다. 쓸데없는 명목(名目)에 구애되어 소중한 목숨을 소홀히 하는 인간은 진정한 삶의 길을 모르는 놈이다. 【동의어】포주지신(抱柱之信)
Board 고사성어 2022.06.14 風文 R 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