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절현(伯牙絶鉉) / '백아(伯牙)가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여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고사에서 '참다운 벗의 죽음'을 이르는 말. 出典 : '列子' 湯問篇 / '荀子' 勸學篇 춘추 시대, 거문고의 명수로 이름 높은 백아(伯牙)에게는 그 소리를 누구보다 잘 감상해 주는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있었다. 백아가 거문고를 타며 높은 산과 큰 강의 분위기를 그려 내려고 시도하면 옆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종자기의 잎에서는 탄성이 연발한다. "아, 멋지다. 하늘 높이 우뚝 궨는 그 느낌은 마치 태산(泰山)같군" "응, 훌륭해, 넘칠 듯이 흘러 가는 그 느낌은 마치 황하(黃河)같군" 두 사람은 그토록 마음이 통하는 연주자였고 청취자였으나 불행히도 종자기는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러자 백아는 절망한 나머지 거문고의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기(知己)를 가리커 지음(知音)이라고 일컫는 것은 이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순자(荀子)》'勸學篇'에,『옛날에 호파가 비파를 타면 물 속에 있던 물고기가 나와 들었고, 백아(伯牙)가 거문고를 타면 여섯 필의 말이 풀을 뜯다가 고개를 들어 쳐다 보았다. 그러므로 소리는 작더라도 들리지 않는 것이 없고 행동은 숨기어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없다. 옥이 산에 있으면 풀과 나무가 윤택하고, 연못에 진주가 생기면 언덕이 마르지 않는다. 善을 행하고 惡을 쌓지 않는다면 어찌 명성이 들리지 않겠는가?』 그 후부터 친한 벗이 죽었을 때 <백아절현(伯牙絶鉉)>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동의어】백아파금(伯牙破琴) 【유사어】지음(知音), 고산유수(高山流水)
Board 고사성어 2022.06.21 風文 R 857
말과 서열 어딘가 더 높은 곳으로 가게 되면 올라간다고 하고 반대로 낮은 곳으로 이동하면 내려간다고들 한다. 그런데 위치의 높낮이가 아닌 사회적 혹은 심리적인 높낮이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도 있다. ‘서울에 올라간다’든지 ‘부산에 내려갔다 온다’든지 하는 표현들 말이다. 어느 한 지점이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종종 지도의 북쪽을 위쪽으로, 남쪽을 아래쪽으로 말하기도 한다. “광주에서 대전으로 올라갔다가 대구로 내려가서…” 하는 말은 지도에 나타난 지점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그 까닭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그러나 수도나 도청 소재지 등처럼 한 지역의 행정적인 서열에 맞추어서 오르내림을 드러내는 것은 마땅치 않다. 그나마 한동안 많이 쓰던 ‘상행선, 하행선’이란 말이 요즘은 별로 쓰이지 않는 것 같아 퍽 다행이다. 최근에는 “대전에서 천안 방향 15㎞ 지점에서” 하는 표현으로 ‘상행, 하행’과 같은 단어를 피하고 있다. 우리의 언어 사용 태도가 과거보다 좀 나아진 것이다. 오르내림만이 아니라 드나듦의 표현도 문제다. ‘본사에 들어갔다가 나온다’든지 ‘국회에 들어가서…’ 하는 표현도 거북스럽기 그지없다. 대개 상급 기관이나 우월한 기관에 드나들 때 사용을 한다. 머리카락만한 우월함이나 서열까지도 이렇게 언어 속에 촘촘히 박혀 있는 것을 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어떤 때는 특정한 외국에 갈 때도 들어간다는 말을 사용할 때가 있어서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한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언어에 박혀 있는 권위주의나 위계질서의 못 자국을 의식적으로 지워나가야겠다. 워낙 오랜 세월 우리한테 인이 박인 말들이어서 익숙하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답답한 부분을 더욱 강고하게 만드는 낡은 사례들이다. 작심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 세대차와 언어감각 근대 이전에는 ‘문자’를 사용하는 상층 집단의 언어가 사실상 사회를 대표하는 소통 수단이었다. 세대로 보면 대개 장년과 노년이 중심이었을 것이다. 이후의 근대 교육은 폭넓은 중산층 청년층을 가르쳐 사회적 소통의 주도 세력으로 길러냈다. 이때 표준어 사정과 맞춤법 제정이 촉진제 구실을 했다. 이렇게 형성된 신세대는 사회, 경제, 문화를 아우르는 소통 능력을 체득하여 지금의 기성세대가 되었다. 그동안은 인쇄 매체와 전파 매체만으로도 사회적 소통이 충분했다. 그런데 요즘은 새로운 통신수단이 등장하여 세대간의 분화를 재촉한다. 모두가 같은 통신기기를 사용하면서도 어떤 매개 수단을 사용하는지는 제각각이다. 카카오톡,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메신저 등 매개물에 따라 가지각색의 소통 집단을 이루고 있다. 많이 겹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세대간의 문자 사용 방식과 수준의 차이는 매우 심하다. 20년 전만 해도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통신 문자를 보고 한글을 괴상하게 만들었다고 못마땅해했다. 그런데 이젠 오히려 그들이 청소년들의 약식 문자를 흉내 내는 데 여념이 없다. 낱글자, 줄임말, 초성어 등 그 개념조차 따라잡기 어렵다. 이젠 제목만 보면 어느 연배의 연락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지역간, 계층간의 차이는 줄어들었고 세대간의 차이는 벌어졌다. 언어의 변화는 별로 없는데 언어감각의 차이가 매우 크게 벌어진 것이다. 이제는 한글 파괴니 외계어니 하고 교조적인 잔소리를 늘어놓을 때가 지난 듯하다. 언어에 대한 엄격한 규율과 질서보다는 사용 매체에 따라 그 규칙이 어느 정도 헐거우면서도 언어감각을 공유할 수 있는 ‘너그러운 언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언어는 궁극적으로 반듯해야만 하는 게 아니라 ‘잘 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제8 교시 글에도 업어치기가 있다. - 반이법, 도치법, 인용법, 문답법, 점층법, 열거법 1. 반대되는 말을 겉으로 내세우는 표현법- 반어법 어느날 무학대사는 왕좌에 앉은 이성계를 찾아 뵙고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이성계는 무학 대사를 시험해 보기 위해, "자세히 보면 대사는 영락없는 돼지야" 하고 말했다. 그것은 무학대사에 대한 심한 모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무학 대사는 눈썹도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빛 하나 변함 없이 이렇게 말했다. "상감께서는 부처님 같사옵니다" 그 말을 듣자, 이성계는 어허허허 하고 너털거렸다. 자기가 그를 돼지 같다고 비하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부처님 이라는 최고의 존재에 비유해 준 것이 통쾌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승려라는 것들도 권력 앞에서는 어찌할 수 없이 아부, 아첨을 하는 무리로구나. 하고 무학 대사를 경멸했다. 그 일이 있고 난 며칠 뒤, 한 신하가 대사를 추궁 하였다. "대사께서는 어찌하여 그러한 모욕을 당하고도 화 한번 내지 않고, 도리어 왕에게 아첨만 하셨소이까?" 무학 대사는 신하의 말을 듣고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돼지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는 법이니까요" 옛날 이름 높은 스님들이 주고 받았다는 말(선문답)들에는 이렇듯 우리들의 마음을 통쾌하게 씻어주는 맛이 있다. 그렇다면 위의 이야기에 쓰인 비유법은 무엇일까? 이성계가 "대사는 영락없는 돼지야"라고 말한 것은 언뜻 보기에 하나의 은유법에 지나지 않는다. 또 무학대사가 "상감께서는 부처님 같사옵니다."라고 한 것도 직유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훗날 무학 대사가 신하에게 한 말에는 어마어마한 뜻이 숨어 있었다. '돼지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는 법이니까요' 이말로 인해 그들 두 사람이 주고 받은 말의 뜻은 정 반대로 달라지고 만 것이다. 즉 무학대사를 돼지라고 말한 이성계는 돼지처럼 천하고 안목없는 눈을 가진 사람이 되고, 이성계를 부처님이라고 한 무학 대사는 부처님 처럼 지혜로운 눈을 가진 자비로운 사람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나타내려는 뜻과 반대되는 말을 앞으로 내세우는 표현법을 반어법 이라고 한다. 이것은 겉으로 드러낸 내용과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내용을 반대로 말함으로써 표현 효과를 높이는 방법이다. 가령 어른이 타이르는 말을 듣지 않은 채 장난치고 까불거리던 아이가 땅바닥에 넘어졌다고 하자 그때, 어른들은 대게"아이고 잘 한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으로 잘 했다는 뜻'도 아니고, '아이고 네가 다치니 내 마음이 시원하다는 뜻'도 아니다. "그것 보아라, 어른 말씀을 듣지 않더니 그렇게 다치지 않느냐? 앞으로는 어른의 타이름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 알겠느냐?" 하는 뜻인 것이다. 이러한 반어법에는 상대방을 비꼬아서, 말하려는 의미를 한층 더 강조하는 익살과 해학과 유머가 담겨 있다. 이것은 또한 지리하고 건조한 글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이야기의 끝 부분에서 반전을 일으키기도 한다. 2. 문장의 순서를 바꿔 놓는 표현법 - 도치법 .보고 싶어요, 붉은 산이, 그리고 흰 옷이! .보십시오, 얼마나 장엄한지를.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왔구나, 봄이 .울렸네, 새벽종이. .아아 잊으랴, 어찌우리 이 날을. 이 문장들은 모두 문장의 배열 순서를 앞뒤로 바꿔 놓은 것이다. 그 바뀐 순서를 제자리에 놓으면 다음과 같다. .붉은 산이, 그리고 흰 옷이 보고 싶어요! .얼마나 장엄한지를 보십시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봄이 왔구나. .새벽종이 울렸네. .아아, 우리 이날을 어찌 잊으랴. 그런데 사람들은 왜 차근차근 순서대로 말하지 않고 그 순서를 바꾸는 것일까? 그것은 누구나 자기가 강조하고 싶은 말을 먼저 뱉아 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앞에 내세운 말이 그만큼 상대방에게 먼저 가 닿으므로 돋보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말하자면, 위의 보기에서는 '보고싶어요','보십시오','안녕하십니까','왔구나','울렸네','아아 잊으랴'를 강조하려 한 것이다. 이렇듯, 문장의 배열 순서를 바꾸어 놓음으로써 강한 인상을 주는 표현법을 도치법 이라고 한다. 이것은 흔히 특정한 내용을 강조하려 할 때나, 문장에 변화를 주려고 할 때에 쓴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김상헌의 시조 .그 색시 서럽다 그 얼굴 그 동자가 가을 하늘 가는 도는 바람 씻긴 구름 조각 핼쓱하고 서느라워 어디로 떠갔으랴 그 색시 서럽다. 옛날의 옛날의 -김영랑의 <그 색시 서럽다> 중에서 3.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표현법 - 인용법 요즘 우리는 국어 시간을 참 쓸쓸하게 보내고 있다. 국어 선생님이 편찮으셔서 며칠째 출근을 못 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국어 시간에는 뜻밖에도 예쁘게 생긴 여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기다란 머리칼을 등 너머로 너풀거리며 우리 앞으로 사뿐사뿐 다가오시는 선생님, 그분이 오늘부터 우리 반 국어 수업을 맡으셨다는 게 아닌가 선생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반 아이들은 '와아!'하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아이들은 먼젓번 국어 선생님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새 선생님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한 껏 들떠 술렁거렸다. 그 바람에 국어 시간 5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후딱 흘러가 버렸다. 아이들은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자, 전에 없이 책상을 두드리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나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화장실에 갔다온 소식통 빠른 한 아이가 대뜸, "야야야, 들어봐! 지난해 그 선생님 한테서 배운 3학년 형들이 그러는데, 그 선생님 되게 무섭다더라. 숙제를 엄청나게 많이 내는데, 만일 안 해 오면은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때린대 하고 소리쳤다. 그 말을 들은 우리 반 아이들은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듯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여기에서 국어 선생님이 무서운 분이니 쉽게 생각하지 말을 전하는 소식통 빠른 아이는, 행여 친구들이 자기 말을 믿지 않을까 싶어 3학년 형들의 말을 인용했다. 이처럼 글을 쓰는 사람도 동서고금에 널리 알려져 있는 성인이나 유명한 시인, 또 소설가나 철학자 정치가 들이 한 말을 끌어다가 자기의 말을 합리화 시킬 때가 있다. 다시말해, 다른 사람의 말이나 격언, 속담, 일화 등을 인용하여 자기 주장을 뒷받침 하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법을 우리는 인용법 이라 한다. 이것은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필 때 흔히 쓰인다. 적절한 인용은 자기 주장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고, 또 글의 흐름에 변화를 주어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타고르가 '한국은 동방의 등불' 이라고 말했듯이...... .석가모니가 마음을 비우라고 한 것처럼, 우리도 겸허한 마음으로 그 일에 착수 해야 한다. . 예수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했듯이, 헛욕심을 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게 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누군가 그랬듯이...... .어느 성인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들이 자기를 마찬가지로 사랑해 준다고 말했듯이...... .'인생은 한권의 책이요,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매일 그 한페이지를 창작한다.' <파랑새>의 저자 메테를칭크의 이말은 인생을 책에 비유한 명언이다. 4.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표현법 -문답법 .우리는 왜 자연을 보호해야 합니까? 그것은 자연 곹 우리를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파도는 한 순간에 몰아쳐 와 모래톱을 휩쓴 뒤 바닷물 속으로 다시 돌아간다. 만약 파도가 없다면 얼마나 밋밋하고 따문하고 지리할까? 파도는 바다를 움악적이고 경쾌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 에게까지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그 때문에 우리는 마음이 답답할 때면 바다를 찾아가곤 한다. 문답법은 바닷가 모래밭의 파도와도 같은 것이다. 글을 쓰다가 답답하고 지루하다 싶으면, 글쓰는 사람이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문답법을 써 보라. 이것은 답답하고 지리한 글에 변화를 줄 뿐만 아니라,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 문답법은 읽는 이들을 글 속으로 끌어들이는 강한 힘이 있어서 연설문에 많이 쓰인다. (1) 여러분은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정녕 누구를 위해서 하는 공부인가. 부모를 위해서인가, 형제들을 위해서인가. (2) 내가 공부를 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이며, 또한 나의 발전을 위해서 이싿. 그리고 나의 발전은 나라와 민족과 인류의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다. (1)에서는 질문을 던져서 읽는이의 생각을 유도한 다음, (2)에서는 대답을 했다. 그 대답은 곧 글쓴이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연극은 우리 사회에 대하여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하는가? 우리를 변혁 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정치 사회적 변혁의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 사회적 변혁에 티끌만큼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하고, 그 재현은 이 세계의 창조걱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 이태주의 <연극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중에서 .선이란 무엇인가? 위엄을 바라는 마음을 높이는 모든 것이다. 사람이 가진 힘 자체이다. 악이란 무엇인가? 악함으로써 일어나는 일체의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위엄이 커짐을 느끼고 저항을 이겨 내었다고 느끼는 일이다. -니체 5. 그 정도나 범위를 점차 높여가는 표현법 -점층법 손오공은 요술 막대기 여의봉을 들고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기도 하고, 공중에서 재주를 부리기도 한다. 이 세상에 손오공 처럼 요술을 부리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그가 만약 등산을 한다면, 아래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가지 않아도 쉽게 산 중턱으로 뛰어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마음이 달라지면 산 밑으로 훌쩍 뛰어내리기도 할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거기에서 다시 산꼭대기로 단숨에 올라가 버틸 수도 있을 것이다.그런사람이 나타나 재주를 부린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두 깜짝깜짝 놀랄 것이다. 뿐만아니라, 그의 모습이 여기서 번쩍 저기서 번쩍 하기 때문에 상상도 할 수 없는 혼란에 빠져 들게 된다. 글은 손오공이 요술을 부리듯이 어지럽게 써서는 안된다. 읽는이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지도첵을 펴 보면, 산에는 낮은 곳에서 높은곳으로 올라가는 등고선이 그려져 있다. 정상까지 제대로 오르기 위해서는 그 등고선에 따라 한 걸음씩 한걸음씩 위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가장 작은것에서 점차 큰 것으로 나아가거나, 아니면 덜 중요한 것에서부터 점점 더 중요한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람은 집에서 부모의 아들딸 노릇을 해야 하고, 학교에서는 그 학교의 학생 노릇을 해야 하고, 동네에서는 동네 사람 노릇을 해야 하고, 그 민족 속에서는 민족의 한 구성원 노릇을 해야 하고, 그 나라 안에서는 그 나라의 국민 노릇 더 나아가 세계에서는 세계인으로서의 노릇을 충실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한마디 한 마디를 더할 때마다. 그 정도나 범위, 또는 그 중요성이나 강도를 점점 높여가는 표현법을 점층법이라 한다. 처음에는 작은 이야기로 시작해서 읽는이를 잔잔히 끌어들이다가, 나중에는 읽는이의 감정을 최고조로 이끌어갈 수 있기 때 문에 점층법도 문답버처럼 연설문에 많이 쓰인다. 점강법은 이러한 점층법과 반대되는 표현법이다. 다시 말하면 점강법은 큰 데서 작은 데로 조금씩 좁혀 가는 표현 방법을 가리킨다. 저 끝에선 황소만하게 밀려오던 파도가 방파제께로 올수록 작아져 강아지만해지고 곧 암탉으로 되더니, 이윽고 둑에 철석 부딪히면서 점점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사라진다.보다시피 점강법은 점점 범위를 좁혀 가면서 글의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6. 비슷한 것들을 죽 늘어놓는 표현법-열거법 조금전에 이야기한 인용법의 일화를 다시 한 번 보도록 하자. "야야야, 들어봐! 지난해 그 선생님한테서 배운 3학년 형들이 그러는데, 그 선생님 되게 무섭다더라. 숙제를 엄청나게 많이 내는데, 만일 안 해 오면은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때린대." 이 때, 만약 한 아이가, "그 형 한 사람의 말만 듣고 어떻게 아냐? 그 형이 잘못 알고 있 을 수도 있잖아"하고 말했다면, 그 소식통 친구는 이에지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 반 반장이었던 영식이 형, 또 지난번 백일장에서 장원한 찬일이 형, 총 학생회장 규정 이 형, 생활 반장 종석이 형도 옆에 있었는데, 다들 그러더라, 믿기 싫으면 관둬, 괜스레 깝 죽거리다가 된통 혼나 보라구." 여기서 영식이 형, 찬일이 형, 규정이 형, 종석이 형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죽 늘어 놓는 것, 이것이 바로 열거법이다. 다시, 말해 열거법은 서로 비슷한 성격을 지닌 낱말들을 죽 늘어놓음으로써 그 내용을 강조하는 표현법이다. .들국화, 쑥부쟁이, 코스모스, 장다리는 모두 가을 꽃이다. .들판 한가운데 서 있는 한 그루의 소나무는 무척 외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의 옆에는 들과 강과 바다를 건너온 바람이 있고, 또 구름과 별과 달과 해와 이슬, 그리고 합창하는 새들과 벌레들이 열심히 자기 표현을 하고 있으므로, .자기네는 동물이 아니고 인간이라고, 잘났다고, 배는 부르고 할 일은 없으니 머릿속에서 갖은 요물을 조작해 낸 것이다. 이따위 조작꾼들은 예로부터 철학자라 하며 떠받들어 왔다. 이 자들을 떠받들어 배불리 먹여 놓으면 별의별 색동 저고리가 다 터져 나왔다. 그리하여 인간이라는 요물 위에다가 가지각색 색동 저고리를 입혔겠다. 도덕이다, 정의다, 의리다, 인간애다, 애국이다, 애족이다, 가치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색동 저고리에다 또 가지각색 노리개를 붙임으로써 교수도 되고 박사도 되고 권력있는 인간 동물의 총애를 받아서 고깃점이나 더 얻어먹고 못나도 잘난체 하다가 땅 속에 들어가서 구더기 밥이 되었겠다. -김성한의 <방황>중에서 생각해 봅시다. 1. 자신이 나타내려는 뜻과 반대되는 말을 앞으로 내세우는 표현법을 반어법이라고 한다. 이 반어법은 소설 속에서 흔히 반전효과로 보습을 드러내는데, 이것이 잘 드러나는 단편소설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말해 보자. 2. 문장의 배열 순서를 바꾸어 놓음으로써 보다 강한 표현 효과를 노리는 방법을 도치법이라 한다. 이러한 도치법을 쓰게 됨으로써 얻어지는 효과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설명해 보자. 3. 한 마디 한 마디를 더할 때마다 그 정도나 범위, 또는 중요성이나 강도를 점점 높여가는 표현법을 점층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와 반대되는 표현법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혁신의 의미 오래전에는 ‘혁신계’라는 말이 정치권의 진보적 성향의 정치인들을 뜻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의회 진출도 어려웠고, 툭하면 이런저런 ‘시국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우리 사회가 정치적으로 자유로워지면서 어느 결엔가 ‘혁신’이란 말은 그 ‘진보성’이라는 의미가 퇴색되기 시작했고 요즘은 아예 그 뜻이 거의 반대가 되어버린 것 같다. 요즘의 ‘혁신’은 옛날과 달리 주로 기업에 대해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구조 조정’이라는 말과 흔히 동행한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의 수를 어떻게 해서라도 줄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그러다 보니 기업인들이나 정부 관료들의 입에서 ‘혁신’이라는 말이 나오면 또 집단 해고자가 나온다는 신호음처럼 들린다. 세간에서는 그들이 퇴직하고 나와서 자영업을 하면 ‘폭망’의 지름길이라고도 한다. 도대체 이 많은 사람이 가야 할 길은 어디란 말인가? 기업과 시장에 ‘혁신’이 필요하다고 진단이 내려지면 당연히 외과수술 같은 것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좀 수상한 것은 더 큰 책임이 있을 것 같아 보이는 ‘자본’과 ‘기업주’에 대한 혁신은 아니 하고 오로지 노동자들에게만 칼끝을 겨눈다. 아무도 희망하지 않는 희망퇴직 같은 것 말이다. 기업주들은 그들의 경영 실책이나 개인 비리가 드러난다 해도 사직이나 구속 한번 시키기도 쉽지 않다. 모든 사회적, 경제적 위기를 별다른 책임과 권한이 없는 약자들에게만 덤터기를 씌우다 보니 ‘혁신’이라는 말의 의미가 변질돼버렸다. 폭탄 피하는 사람은 있어도 경제 위기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단다. 그러니만큼 고통의 부담은 진정 공정하게 나누어야 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각계각층의 ‘이익’을 세밀히 따지며 다시 손질하고 절충하는 일, 그것이 진정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혁신’의 길일 것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 말과 폭력 대체로 사람들은 말과 폭력을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 본다. 그래서 싸움을 뜯어말릴 때 말로 하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말과 폭력은 서로 반대되는 면도 있지만 매우 비슷한 면도 가지고 있다. 우리 시대가 물리적 폭력은 억제하고 언어적 활동에는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서로 마주보며 말할 때의 원칙은 주로 ‘주고받기’였다. 내가 한마디 하면 상대도 한마디 하는 식 말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통신기기가 발전한 상태에서는 ‘주고받기’가 아니라 ‘쏟아붓기’가 더 일반적이다. 더구나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언어로 이처럼 잔인하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하는 한탄이 나올 정도로 말이 사납고 아프며, 견디기 어렵다. 물리적 상처는 치료가 가능하나 심리적 상처는 치료 여부가 불확실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또 어떻게 해야 보상이 되는지도 불투명하다. 오늘날 새롭게 사회적 소통을 지배하게 된 컴퓨터나 휴대전화, 유튜브 등은 소통의 도구인 동시에 새로운 갈등의 전파자인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과거에 인쇄물이 주류 매체일 적에는 스스로 통제되고 걸러지던 분노와 짜증이 이제는 매우 생생히 전달된다. 방송의 종류가 많아지면서 갈등의 수습보다는 갈등의 증폭이 잦아졌다. 이제 언어를 ‘평화적 수단’으로만 보기 어려워진 것이다. 몸이 힘들거나 짜증이 날 때 욕설이 나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되는 바가 있지만 공공의 ‘통신 기기’를 이용하여, 집중적으로, 씻기 어려운 치욕과 혐오감을 쏟아붓는 행위가 물리적 폭력보다 이제 더 위험한 행위가 되어가고 있다. 공적인 통신 수단을 사사로운 분노 방출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법적 대응을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언어와 소통 활동을 보호하는 하나의 현실적인 방책이 될 것 같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3. 죽어 있는 것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비유법 - 활유법 글을 잘 쓰려면 우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다 아름답고 예쁘게 보인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자기 한사람을 축복해 주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 처럼 느껴진다는 뜻이다. 달도 해도 별도 구름도 무지개도 바람도 강물도 파도도...... 이 드넓은 우주 속에는 살아있는 것(생물)과 죽어있는 것(무생물)들이 있다. 가령 바위나 돌이나 산이나 강이나 바다는 죽어 있는 것이고, 사람, 뱀, 닭, 소 소나무, 메뚜기, 파리, 벌, 애벌레 따위는 살아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죽어있는 것들을 살아있는 것 처럼 표현하는 방법이 활유법이다. .강물은 슬피 울면서 꿈틀거리며 달려가고 있었다. .푸나무들도 우쭐우쭐 춤을 추고, 시냇물도 소리쳐 노래하고 있었다. .자동차들은 눈을 부릅뜨고 식식거렸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 김수영의 <풀> 중에서 .남북으로 나누며 달리는 철도는 항만의 끝에 이르러서야 잘려졌다. 석탄을 싣고 온 화차는 자칫 바다에 빠뜨릴듯한 머리를 위태롭게 사리며 깜짝 놀라 멎고, 그 서슬에 밑구멍으로 주르르 석탄 가루를 흘려 보냈다. - 오정희의<중국인 거리> 중에서 그렇다면 활유법과 의인법은 어떻게 다를까? 의인법은 반드시 그 대상을 사람으로 여기고 표현하는 것이며, 활유법은 책상이나 바위 같은 무생물들을 생물로 여기고 표현하는 것이 그 차이점이다. 4. 사람들의 잘못을 꼬집는 비유법 - 풍유법 (1) 당나귀 두 마리가 길을 가고 있었다. 앞에가는 당나귀는 황금 보따리를 싣고 가고, 뒤에가는 당나귀는 보리자루를 싣고 갔다. 황금을 실은 당나귀는 기세 당당하게 가고 있었으므로 방울이 요란스럽게 딸랑거렸고, 보리를 실은 당나귀는 기가 죽어 있었으므로 방울 소리가 그리 크게 나지 않았다. 얼마나 갔을까. 별안간 산모퉁이에서 도둑들이 나타나더니 방울 소리가 요란한 당나귀를 죽여버린 뒤, 황금을 모두 빼앗아 갔다. 살아난 당나귀는 후유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생각했다. 황금을 싣지 않기를 얼마나 잘 한 일이냐 하고. (2) 이 세상에서는 너무 호화롭고 너무 당당하고 너무 오만하면, 사람들의 표적이 되어 해를 입을 수 있는 법이다. -<이솝우화> 중에서 이러한 것을 풍유법 이라고 한다. (1) 에서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그냥 재미있게 늘어 놓았고 (2)에서는 독자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다. 물론 그 동물들의 이야기는 <시튼 동물기>에서 처럼 실제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라 지어낸 것들이다. 여기서 만일 (1)을 생략하고 (2)만 써 놓았다면 얼마나 딱딱하고 재미없는 글이 되겠는가? .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갈잎을 먹으면 죽는다. . 상여 내가는데 귀청 파 달라고 한다. . 옹기점에서 돌팔매질하고, 우는 아기 꼬집어 주고, 불난데 부채질 한다. . 혹을 떼러 갔다가 되레 하나 더 붙이고 왔다. . 초저녁에는 살이 통통하게 찐 암송아지나 한 마리 잡았으면 하고 바라던 호랑이가, 새벽녘이 되니까 비루먹은 강아지라도, 쥐나 개구리라도, 하루살이라도 한 마리 잡혔으면 한다. .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 . 산에 가야 범을 잡는다. . 하룻강아지 호랑이 무서운 줄 모른다. 이러한 속담을 비유로 표현하는 것도 풍유법이다. 즉 풍유법은 인간들의 잘못된 행동을 직접적으로 꼬집는 것이 아니라, 속담이나 우화 등에 빗대어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이다. 다시 말해, 독자가 숨겨진 뜻을 짐작하여 깨달음을 얻도록 하는 경고의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속담은 선조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보석 같은 지혜의 말이다. 민족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므로 해학이 있고, 재치가 깃들어 있다. 그래서 거부감이 없고 친밀하게 느껴진다. 우리 민족의 생활과 정서를 잘 이해하고, 그것을 잘 드러내는 글을 쓰려면 속담 공부를 하는 것이 좋다. 그리하여 글을 쓸 때 속담을 직접 활용해 본다면 더욱 유익할 것이다. 5. 글에는 글쓴이의 영혼이 담겨 있다. 모든 글에는 글쓴이의 영혼이 담겨 있게 마련이다. 우리들이 글을 읽는 다는 것은 그 글을 쓴 사람의 영혼과 만나는 일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영혼을 건강하고 아름답고 풋풋하게 가꾸어야 하고, 또 그렇게 하려면 좋은 글을 골라 읽어야 한다. 물론 차워높은 예술 세계 하고도 가까이 해야 한다.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고기를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나기 때문이다. 생각해 봅시다. 1. 한마디로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느낌을, 그것과 가장 잘 어울릴만한 구체적인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방법을 상징법이라 한다. 이러한 상징법은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자주 발견된다. 상징법이 잘 드러나는 예를 보자. 2. 의인법과 활유법은 비슷한 점이 많으면서도 엄연히 차이가 있는 비유법이다. 두 비유법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설명해 보자 3. 우리는 생활을 해 나가다가 잘못된 일이나 훈계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흔히 속담이나 우화를 이용하여 상대편에게 깨우침을 주려 한다. 이러한 경향은 글쓰기 에서도 자주 나타나는데, 이처럼 속담이나 우화를 이용해 잘못을 꼬집는 비유법을 무엇이라 하는가?
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제7교시 가장 멋있는 비유법의 보기 -상징법,의인법, 활유법, 풍유법 1. 구체적인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비유법 (1) 상징법이란 밤 파도 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지는 해운대 모레밭을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거닐고 있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 지는 그 두 사람에게 장미꽃 장수가 다가왔다. 남자는 장미 한 송이를 사서 여자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 난 며칠 후, 그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다시 만났을 때, 그 여자는 그 남자에게 백합 한송이를 수줍게 내밀었다. 그 남자는 장미츷 토해 무슨 말을 하려 했을까?, 또 그가 사랑하는 여자는 하고 많은 꽃들중에서 하필이면 왜 백합을 그에게 내밀었을까? 우선 그 사람들이 주고 받았던 장미와 백합이 무엇을 상징하는가부터 생각해 보도록 하자.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장미는 '정열적인 사랑'을 상징하고 백합은'순결'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남자는 "나는 당신을 정열적으로 사랑합니다"라고 말한 셈이고 여자는 "저는 순결합니다."하고 말한 셈이 된다. 이렇듯 상징법은 한마디로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느낌을, 그것과 잘 어울릴 만한 구체적인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방법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한 시울의 눈물을 줄 수 있는 작은 책 여기서 눈물은 무엇인가를 상징하고 있다.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는 문장 속에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눈물이 어떠한 감동이나 공감을 의미한다는 것을 금방 알아 챌 수 있다. 같은 사람이 쓴 또 다른 문장을 한번 보도록 하자. . 소박하기도 벅차기도 한 이내 꿈들을 언제... . 내게는 꿈이 있다. 이글을 써 보낸 독자는 여기서도 꿈이라는 상징법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꿈이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각자 생각해 보도록 하자. 다만 꿈이란 우리가 가장 즐겨쓰는 상징법 중의 하나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자, 이번에는 앞서 이야기한 장미를 가지고 직유법과 은유법, 상징법의 차이를 살펴 보도록 하자. 원래의 말(생각) ; 연결고리; 비유가 동원된 말(생각) 직유법 ; 정열적인 사랑 ; 처럼 ; 빨간장미 ;빨간 장미처럼 정열적인 사랑 은유법 ; 내 사랑은 ; 생략; 빨간장미 ;내 사랑은 빨간 장미이다. 상징법 ; 생략 ; 생략; 빨간장미 ;장미 (2) 흔히 쓰이는 상징들 가만히 보면, 상징법은 문장에서 뿐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흔히 쓰인다. 다음의 보기를 곰곰히 생각하면서 읽어 보자. . 깃발 : 그 나라, 그 학교, 그 단체를 상징한다. . 국화(나라꽃) : 그 나라 그 민족의 국민성과 민족성을 상징한다. 우리나라의 나라꽃은 무궁화요, 북한의 나라꽃은 진달래 이며 일본의 나라꽃은 벚꽃이다. . 황금 : 재물을 상징한다. 예)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 황금에 눈이 어두워서 ...... 등등 . 우리의 태양 : 우리들의 희망, 우상을 상징한다. . 서울의 달 : 서울 지방의 가난한 사람들의 꿈을 상징한다. 여기서 꿈은 신분 상승을 위한 노력을 뜻한다. . 곱슬머리와 옥니 : 오기와 집년ㅁ이 강하고 영악한 사람을 상징한다. . 뿌리 : 전통 근본을 상징한다. . 날개 : 자유나 상승할 수 있는 도구를 상징한다. 또한 상징법은 산문보다는 시에서 더 많이 쓰인다. 다음에 인용된 시를 읽어 보자. 창공을 움켜쥔 적이 있었다. 창공도 별것이 아니다. 내 손아귀 속에서 펄럭펄럭 가슴 두근거리고 있었다. 처마 구멍에 그물을 받치고 잡아 낸 참새 한 마리 그 참새와 한 구멍에 있다가 푸르륵 어둠을 가르고 날아간 다른 참새는 어느 창공을 헤메고 있을까 그때 실수로 날려 보낸 참새의 발목에 묶어 놓은 내 가슴속의 명주실 꾸리는 계속 풀렸고 어른이 되었다. 나는 지금 내 손아귀 속에 가슴 두근거리던 그 참새같이 누군가의 거대한 손아귀에 잡혀있다. 그는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제주로 제주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서울로 날고 또 날아 보아도 나는 내내 붙잡혀 있는 참새 한 마리 일 뿐 - 한승원의 <새> 여기서 새는 자유를 상징하고 있다. 또 그것을 붙잡고 있는 것은 그 새를 억압하는 어떤 거대한 존재이다. 다시 말해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하느님이라든지 부처님이라든지, 혹은 나를 지배하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든지...... 2. 사물이나 동물도 사람처럼 생각하는 비유법 - 의인법 아주 외로운 아이가 하나 있었다. 그 아이는 친구가 없어 늘 혼자 놀았다. 딱지치기나 구슬치기나 공놀이도 혼자서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 아이에게는 딱지나 구슬이나 공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 아이에게는 그 딱지나 구슬 공들이 사람 못지않게 좋은 친구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그 아이처럼 자기 주변에 널려있는 사물이나 동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그런것들이 사람하고 똑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나 고양이, 소, 말으 키우는 사람들이나 난초같은 식물을 기르고 분재하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자기 부모나 형제처럼 소중히 여기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듯 의인법은 새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람으로 여기고, 그것의 모양새나 움직임을 사람의 그것인 것 처럼 표현사는 방법이다. 그래서 의인법은 읽는 사람을 친근하고도 그윽한 정겨움 속으로 끌어 들인다. .간지럼을 먹이듯 불어오는 따스한 바람에 부끄러워 고새 숙이는 아카시아 잎사귀들 .잉크병, 그는 언제나 말없이 앉아 있다. .도시락 뚜껑은 나를향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함께 늙어 온 그와 나는 늘 서로의 눈을 들여다 보곤 한다. 내 우울을 먼저 알고 그는 꼬리를 치면서 산책을 하자고 조른다. 그는 앓을 때 나한테 미안해 한다. 나를 위하여 함께 즐길수 없음을 사과하듯이 여리게 꼬리를 치면서 안타까워 한다. -한승원의 <개에관한 이야기>중에서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의 기관과 같이 힘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려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석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민태원의 <청춘예찬> 중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 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뺄 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운동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 이성부의 <봄> 중에서
백년하청(百年河淸) / 중국의 황하(黃河)가 항상 흐리어 맑을 때가 없다는 말로, 아무리 오래 되어도 사물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뜻.《出典》'春秋左氏傳' 정(鄭)나라가 초(楚)나라의 속국 격인 채(蔡)나라를 공격하자 초나라도 정나라를 공격할 채비를 하게 되었다. 이에 정나라에서는 대책을 숙의하는 회의를 열게 되었다. 회의는 진(晉)나라에 구원병을 청하자는 측과 초나라와 강화(講和)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이 때 자사(子駟)가 말하기를, "주(周)나라의 시(詩)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황하의 물이 맑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사람 수명으로는 맞지 않다. 여러 가지를 놓고 점을 치면 그물에 얽힌 듯 갈피를 못 잡는다.(周詩有之曰 待河之淸 人壽幾何非云詢多 職競作羅)』그러니 우선 초나라와 강화를 해서 백성들을 위험에서 구하고 그 다음에 진나라를 따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 말은 진나라의 구원병을 기다리는 것은 황하의 맑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즉, "황하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晉나라의 구원병이 올 것이 어긋난다는 비유로 쓴 말로,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대처하는 괴로운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이야기라 하겠다. 그 후 정나라는 자사(子駟)의 말대로 해서 위기를 면했다.
Board 고사성어 2022.06.19 風文 R 863
성인의 외국어 학습 나이가 든 사람들은 대개 새로운 것 배우기를 꺼린다. 싫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없어서다. 어려서 혹은 젊어서 새것을 배우는 것은 청운의 큰 뜻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나이 들어서 배우는 것은 그 의미와 가치에 의문을 많이 품는다. 특히 뒤늦게 시작하는 외국어 공부는 그야말로 무의미한 일이라고들 생각한다. 실제로 나이가 들면 무엇보다도 발음 습득과 교정이 쉽지 않다. 어린 시절부터 통달한 발음이 아니면 여간해서 낯선 발음을 구현하기 어렵다. 단어를 외우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다. 매일 열심히 새로 배워가면서도 어제 배운 것은 잊어버려간다. 어휘 축적이 만만치 않다. 문법에 대한 이해는 꽤 따라갈 수 있으나 그러한 문장이 입 밖으로 술술 나오지는 않는다. 이러한 학습을 과연 꾸준히 해나갈 가치가 있는 걸까? 매끄러운 발음, 풍부한 어휘, 복잡한 문장구조 사용 등을 중심으로 본다면 성인의 외국어 학습은 효율성이 매우 낮다. 지능이 낮아서가 아니라 그러한 요소들은 성인에게 가장 불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인들의 특기는 다른 부문에 있다. 바로 상황 판단 능력이다. 성인들은 산전수전을 폭넓게 겪은 덕분에 상황을 무척 재빠르게 파악한다. 따라서 성인의 외국어 학습은 상황과 맥락을 중심으로 전형적 표현에 중점을 두는 게 유리하다. 또 다른 중요한 조언 하나. 성인들이 조그마한 종잇조각에 이것저것 메모해서 더듬거리면서 열심히 외국어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긍정적인 장면으로 받아들인다. 어딘가 틀렸다고 키득거리면 오히려 점잖지 못한 짓이 된다. 곧 성인의 외국어 능력은 잽싸게 나오는 ‘말’보다는 ‘상황 파악’과 ‘점잖은 태도’로 ‘맥락과 소통 과정’을 지배해야 한다. 능수능란하게 혀를 잘 굴리는 젊은이들의 말보다 더 넉넉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 촌철살인 한 치밖에 안 되는 작은 쇠붙이 하나로 사람을 죽인다는 꽤 무서운 뜻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는 잘 쓰이지 않고, 말에 대해서 주로 쓰이는 신기한 사자성어가 있다. 바로 ‘촌철살인’이다. 뜻인즉슨 짤막한 말 한마디로 상대방의 약점을 찌르거나, 아니면 큰 감동을 주는 경우를 가리킨다. 반짝이는 촌철살인은 다양한 비유, 의미 모순, 뜻 겹침, 유추, 동음이의어 등에서 나타나는 언어 현상을 바탕으로 구태의연한 표현의 빈틈을 찌르는 언어 사용 전략이다. 강점으로는 기존의 언어적 인습, 상투적 논리 등을 ‘단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문제점도 없지는 않다. 야무진 혀 놀림에 얼떨결에 넘어가버리는 경우다. 근본적으로는 말한 사람의 말과 행동의 일치 여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메마른 이 땅의 진보 정치계에서 대중의 마음을 울렸던 큰 정치인이 세상을 하직했다. 많은 매체가 그의 어록을 언급하며 추모하고 아까워한다. 그는 보통사람들이 자신들의 평범한 말솜씨 가지고도 얼마든지 정치의 정곡을 찌를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했다. 그가 사용한 단어들은 그리 까다롭거나 추상적이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말에는 주목하면서도 그 말로 이루어내려 한 것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할 것은 그의 ‘말’만이 아니라 말에서 드러난 그의 ‘태도’이다. 더 나아가 그 말을 통해 하려던 ‘행동의 의미’를 보아야 한다. 언어는 행동의 한 부분이자 국면이기 때문이다. 그의 행동, 곧 실천을 못 보고 그의 말만 되뇐다면 그의 촌철살인은 유쾌한 유머의 수준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의 말에서 나타난 실천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그에게 진 마음의 빚을 제대로 갚는 길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