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서열
어딘가 더 높은 곳으로 가게 되면 올라간다고 하고 반대로 낮은 곳으로 이동하면 내려간다고들 한다. 그런데 위치의 높낮이가 아닌 사회적 혹은 심리적인 높낮이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도 있다. ‘서울에 올라간다’든지 ‘부산에 내려갔다 온다’든지 하는 표현들 말이다. 어느 한 지점이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종종 지도의 북쪽을 위쪽으로, 남쪽을 아래쪽으로 말하기도 한다. “광주에서 대전으로 올라갔다가 대구로 내려가서…” 하는 말은 지도에 나타난 지점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그 까닭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그러나 수도나 도청 소재지 등처럼 한 지역의 행정적인 서열에 맞추어서 오르내림을 드러내는 것은 마땅치 않다.
그나마 한동안 많이 쓰던 ‘상행선, 하행선’이란 말이 요즘은 별로 쓰이지 않는 것 같아 퍽 다행이다. 최근에는 “대전에서 천안 방향 15㎞ 지점에서” 하는 표현으로 ‘상행, 하행’과 같은 단어를 피하고 있다. 우리의 언어 사용 태도가 과거보다 좀 나아진 것이다.
오르내림만이 아니라 드나듦의 표현도 문제다. ‘본사에 들어갔다가 나온다’든지 ‘국회에 들어가서…’ 하는 표현도 거북스럽기 그지없다. 대개 상급 기관이나 우월한 기관에 드나들 때 사용을 한다. 머리카락만한 우월함이나 서열까지도 이렇게 언어 속에 촘촘히 박혀 있는 것을 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어떤 때는 특정한 외국에 갈 때도 들어간다는 말을 사용할 때가 있어서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한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언어에 박혀 있는 권위주의나 위계질서의 못 자국을 의식적으로 지워나가야겠다. 워낙 오랜 세월 우리한테 인이 박인 말들이어서 익숙하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답답한 부분을 더욱 강고하게 만드는 낡은 사례들이다. 작심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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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차와 언어감각
근대 이전에는 ‘문자’를 사용하는 상층 집단의 언어가 사실상 사회를 대표하는 소통 수단이었다. 세대로 보면 대개 장년과 노년이 중심이었을 것이다. 이후의 근대 교육은 폭넓은 중산층 청년층을 가르쳐 사회적 소통의 주도 세력으로 길러냈다. 이때 표준어 사정과 맞춤법 제정이 촉진제 구실을 했다. 이렇게 형성된 신세대는 사회, 경제, 문화를 아우르는 소통 능력을 체득하여 지금의 기성세대가 되었다.
그동안은 인쇄 매체와 전파 매체만으로도 사회적 소통이 충분했다. 그런데 요즘은 새로운 통신수단이 등장하여 세대간의 분화를 재촉한다. 모두가 같은 통신기기를 사용하면서도 어떤 매개 수단을 사용하는지는 제각각이다. 카카오톡,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메신저 등 매개물에 따라 가지각색의 소통 집단을 이루고 있다. 많이 겹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세대간의 문자 사용 방식과 수준의 차이는 매우 심하다. 20년 전만 해도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통신 문자를 보고 한글을 괴상하게 만들었다고 못마땅해했다. 그런데 이젠 오히려 그들이 청소년들의 약식 문자를 흉내 내는 데 여념이 없다. 낱글자, 줄임말, 초성어 등 그 개념조차 따라잡기 어렵다. 이젠 제목만 보면 어느 연배의 연락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지역간, 계층간의 차이는 줄어들었고 세대간의 차이는 벌어졌다. 언어의 변화는 별로 없는데 언어감각의 차이가 매우 크게 벌어진 것이다.
이제는 한글 파괴니 외계어니 하고 교조적인 잔소리를 늘어놓을 때가 지난 듯하다. 언어에 대한 엄격한 규율과 질서보다는 사용 매체에 따라 그 규칙이 어느 정도 헐거우면서도 언어감각을 공유할 수 있는 ‘너그러운 언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언어는 궁극적으로 반듯해야만 하는 게 아니라 ‘잘 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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